목록2021/07/23 (25)
건빵이랑 놀자
15. 장애물의 지형도를 지닌 채 싸우다 『본 얼티메이텀』에서는 제이슨이 아직 ‘데이비드 웹’이었던 시절, 그가 비밀 요원으로 거듭나는 결정적인 장면이 회상 신으로 등장한다. 애보트와 대화하던 중 이제야 제이슨 본의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 그때 그는 무려 72시간 동안 한숨도 못 잔 상태였으며 잔혹한 물고문까지 받은 상태였다. 그들은 고문인지 훈련인지 구분할 수 없는 이 혹독한 인성교정프로그램 속에서 제이슨이 내린 결정을 ‘바로 네가 내린 결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너의 선택이었다고. 그러니 우리는 아무 책임도 없다고. 애보트: 데이비드 웹. 설명은 다 듣고 온 건가? 제이슨: 네 애보트: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다고? 자네 임무는 미국 국민을 구하는 거야. 제이슨: 압니다. 애보트: 넌 이..
14. 애국심의 함정 오후 7시 15분 푸코는 강의를 끝냈다. 학생들이 그의 책상으로 모여들었다. 그에게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녹음기를 끄기 위해서였다. 혼잡한 청강생들 틈에서 그는 혼자였다. (……) 나는 청중 앞에서 배우 또는 곡예사가 된다. 그리고 강의가 끝나면 말할 수 없는 고독에 휩싸인다. -미셸 푸코, 박정자 역, 『비정상인들』, 동문선, 2001, 6~7쪽. 제이슨 본은 인간 훈육 프로그램의 최고의 성공작이자 그 처절한 실패를 대변하는 양가적 인물이다. 트레드스톤 프로그램이 탄생시킨 살아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제 1호였던 제이슨 본. 그는 최고의 실력을 갖춘 요원으로 거듭났지만 최악의 문제점을 노출하는 장본이었다. 제이슨의 정신 건강을 체크했던 요원 니키는 ‘실험적 훈련 중’이던 요원들의..
13. 발설된 것은 철회될 수 없고, 시행된 것은 되돌릴 수 없다 현대인은 자유의지의 힘을 믿도록 교육된다. 내 삶을 선택할 수 있다고, 내가 원하는 나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이 세상의 기회는 균등하다고. 하지만 어른이 되어갈수록 우리는 그 패기만만한 자유의지의 환상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된다. 우리가 결코 선택할 수 없는 것들로 인해(인종, 국적, 가족, 유전자 등 우리를 ‘규정’하는 모든 사회적 조건들) 우리의 선택은 철저히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내가 행동했다고 해서 모두 나의 욕망이었는가, 내가 선택한 것이 진정 나의 의지였는가, 그렇게 의심되는 상황들이 곳곳에서 발생한다. 우리의 모든 행동이 정말 자율적이고 자발적인가. 우리는 우리의 능력이 과연 어디에, 어떻게, 누구를 위해 쓰일지 진정 알고..
12. 나를 지워야 내가 될 수 있다 한마디로, 푸코의 저작은 전부 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의 연장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영원하다고 믿는 모든 개념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변전된’ 것이며, 그 기원들에는 숭고한 것이 전혀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풀 벤느, 이상길 역, 『푸코, 사유와 인간』, 산책자, 2009, 173쪽. 언제부터 사람들은 ‘신분증’이 없으면 중요한 일을 하나도 처리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일까. ‘내가 바로 나다’라는 것은 증명할 수 있는 서류가 필요해진 순간, 인간은 더욱 효과적으로 관리되고 통제되기 시작했다. 때로는 우리들 자신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소소한 과거의 행적들이 어디선가 관리되고 어디선가 보관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오싹해지는 순간이 있다. 이 모든 ‘근..
11. 모두 너였어! 널 만든 건 너야! 우리는 진실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우리가 그것 아닌 다른 것을 사랑하게 되면,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진실이기를 바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결국 잃어버린 나를 깡그리 지우는 것이었다. 제이슨 본이 잃어버린 기억의 창고를 열기 위한 열쇠를 발견하는 순간, 그는 깨달았다. 나를 버리는 것이 나를 찾는 유일한 길임을. 과거의 나를 모조리 삭제할 수는 없을지라도, 과거의 나로부터 도망치지 않는다면 나는 영원히 ‘나를 만든 자들’의 게임 프로그램 속에서 그들의 통제를 받는 인간병기로 머물게 될 것이다. 콩클린의 말처럼, 제이슨은 미국 정부의 소유물이었으므로. 통제 불능의 삼천만 달러짜리 무기, 빌어먹을 실패작이었으므로. 제이슨은 ..
10. 훈육의 프로그램도 미처 길들이지 못한 마음 그러니까 그렇게 멀고도 높은 곳에서 다른 이들의 담론을 기술하고자 하는 당신은 대체 어디에서 말하고 있다고 자처하십니까? -미셸 푸코 감옥 아닌 곳에서 인간을 감시하는 가장 효과적인 시스템은 ‘신이(혹은 카메라가) 언제나 너를 보고 있다’는 환상을 주체의 무의식에 기입하는 것이다. 특히 카메라가 제이슨 본의 ‘등 뒤’를 비출 때, 관객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제이슨 본의 목숨을 노리는 그들의 시선은 마치 신처럼 전지전능하여 언제든 바로 그의 등 뒤에서 불쑥 튀어나와 총구를 들이댈 것만 같다. 제이슨의 기억을 상실하게 한 사건도 바로 그의 등 뒤를 쏜 두 발의 총성 때문이지 않았는가. 트레드스톤의 행동대장 격인 콩클린을 직접 독대함으로써 제이슨은 비로..
9. 조직권력이 나의 권력? 푸코는 주먹다짐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용기란 육체적인 것 말고는 없다”고 규정했다. 용기, 그것은 용기 있는 육체다. (……) 노동자 계급의 노동이 아니라, 육체가 착취당한다. 시민들은 군대식 규율로 형성되지 않는다. 그들의 육체는 훈육되고 길들여지며 그 위에 권력이 행사된다. 감금 체계는 육체들을 가둔다. -풀 벤느, 이상길 역, 『푸코, 사유와 인간』, 산책자, 2009, 222쪽. 자신을 죽이러 온 요원을 살해한 후, 제이슨 본은 비로소 이 싸움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감한다. 나와 관련 있는 모든 사람들이 위험해질 것이다. 지금 가장 위험한 사람은 내 곁의 그녀, 마리다. 그는 마리의 가족들을 대피시키면서 자신이 가진 거의 모든 돈을 마리에게 주기로 작정한다...
8. 우린 같은 기계의 부속품이야 날마다 응접실에서 ‘상벌수여’가 이루어진다. 아무리 사소한 반항에도 징벌이 가해지는데, 중대한 위반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리 가벼운 과실이라도 매우 가혹하게 처벌하는 것이다. 메트래에서는 심지어 쓸데없는 말 한마디까지도 처벌된다. 부과되는 처벌 가운데 주된 것은 독방 수감이다. -미셸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446쪽 푸코는 근대적 감옥 시스템의 초기 모델을 메트래(Mettray) 소년감화원에서 찾는다. 수도원과 감옥과 학교와 군대의 훈육 프로그램이 황금 비율로 결합되어 있는 곳. 수감된 아이들이 ‘매를 맞느니 차라리 독방 수감이 훨씬 좋다!’고 절규하던 곳. 메트래 소년감화원이 문을 연 1840년이야말로 푸코가 규정하는 ‘근대..
7. 직업은 무엇입니까? 범죄는 재판에 대한 감옥의 복수이다. 재판관을 어안이 벙벙하게 할 정도로 대단히 무시무시한 복수이다. 그때 범죄학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미셸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390쪽 여동생의 애인을 처음 봤을 때 오빠나 아버지가 하고 싶은 질문 1위는 무엇일까. 애인이 무척 어리다면 ‘아버지는 뭐하시나?’일 것이고 애인이 충분히 성숙하다면 ‘자네 직업은 뭔가?’정도가 아닐까. 이 기준에 따르면 마리 크루츠가 사랑에 빠진 이 남자 제이슨 본은 결코 ‘바람직한’ 신랑감이 아니다. 직업이나 부모님의 자산 정도는 물론 가족이나 주소나 국적조차 확실하지 않은 이 남자. 결국 우리는 ‘본’ 시리즈 1편에서 주인공의 ‘진짜’ 이름조차 모르고 영화관을 나오게 될..
6. 나는 위험인물이다. 그런데 누구에게? 나의 정치적 자유는 곧 나의 반대파의 정치적 자유다. -로자 룩셈부르크 우리는 내 의견을 존중받고 싶어 하는 만큼 나와 다른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배웠다. 그러나 세상 밖으로 뛰쳐나오자마자 우리는 실제로 그 ‘원칙’이 지켜지는 곳을 찾아내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것을 배운다. 순전히 ‘나와 다르다’, 혹은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얼토당토않은 비난을 감내하며 살아가야 하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 많이 목격했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그들’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언제든지 자신의 신상 정보와 활동 내역을 낱낱이 감시당할 위험에 처해야 한다. 미네르바 사건은 수십년 동안 사문화되었던 정보통신법을 이용해 ‘그들과 다른’ 의견을 가진 한 사람의 인생..
5. ‘기억할 수 없는 나’가 ‘기억을 찾는 나’를 추격하다 과거의 나는 이미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은 새로운 나이다. (……) 자기 명시는 동시에 자기 파괴이다. -미셸 푸코, 이희원 역, 『자기의 테크놀로지』, 동문선, 77쪽 제이슨 본은 낯선 여자의 차를 힘겹게 얻어 타고 파리로 가면서 생각했을 것이다. 나를 찾기만 하면, 내가 잃어버린 나를 찾기만 하면, 이 모든 상황이 종료될 것이라고. 그러나 과거 그가 거주했던 파리와의 거리가 점점 좁혀질수록, 커져가는 두려움도 숨길 수 없다. 나를 찾기만 하면, 정말 이 모든 공포와 불안이 해소될 수 있을까. 나를 찾아내는 것이 꼭 좋은 일일까. 파리에 간다고 해도, 나를 찾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파리에 가면 나를 기다리는 가족이나 친구가 ..
4. ‘잃어버린 기억’에 추격당하며 점점 고통스러워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장치적인 것, 곧 생물학적인 것, 신체적인 것, 육체적인 것이다. -미셸 푸코 기억의 주기가 딱 24시간이라 매일 아침 같은 남자와 처음처럼 사랑에 빠지는 여자의 이야기(『첫 키스만 50번째』), 10분 이상 기억을 지속시키지 못하는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가 된 남자가 온몸에 단서를 문신해가며 아내의 살인범을 쫓는 이야기(『메멘토』), 가슴 아픈 기억만을 지워준다는 회사를 찾아가 이제 싫증이 나버린 애인과의 아픈 사랑을 지워버리지만 기억을 지우고도 이상하게 ‘기억할 수 없는 그녀’를 더더욱 그리워하는 이야기(『이터널 선샤인』)……. ‘기억 상실’을 소재로 한 수많은 영화 속의 주인공들 곁에는 ‘그들이 잃어버린 바..
3. 내가 누구인지 알수록 나는 위험해진다 규율은 개인을 제조한다. 즉, 그것은 개인을 권력 행사의 객체와 도구로 간주하는 권력의 특정한 기술이다. -미셸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267~268쪽. 시간이 갈수록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 자체가 두려워진 이름 모를 사내. 그는 유일한 가시적 단서인 스위스 은행 계좌번호를 사용하기로 한다. 우여곡절 끝에 스위스 은행에 들어간 그는 비밀계좌에 들어 있는 자신의 소지품을 열어 보고 드디어 자신의 이름을 찾아낸다. 미합중국의 여권 위에 기재된 그의 이름은 ‘제이슨 본’이었다. 좀처럼 표정이 없던 이 ‘사내’의 얼굴에 처음으로 안도의 미소가 스쳐간다. “내 이름은 제이슨 본이구나. 파리에 살고 있군.” 자신의 이름을 알게 되자 ..
2.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있는 길이 없다! 내가 누구냐고 묻지도 말고, 또 내가 변함없이 그대로 있기를 바라지도 말라. 우리의 서류가 제대로 갖추어졌는지, 그런 것들은 관료와 경찰들에게 맡겨두라. -미셸 푸코 기억상실증으로 고생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영화들을 보면 우리는 이 사회 곳곳에서 ‘도대체 넌 누구냐’라고 묻는 곳이 저토록 많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우선 ‘이름’이다. 사람들은 낯선 타인을 만났을 때 일단 타인의 ‘이름’을 먼저 알아두어야 마음이 편해진다.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실질적인 정보’가 아무 것도 없는데도, 그저 대충 임의로 지어서 불러도 그만인 ‘이름’을 알면 그에 대해 가장 중요한 것을 알았다는 듯 뿌듯함을 느낀다. 이름은 타인을 우리 두뇌 속의..
본 아이덴티티와 미셸 푸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의심하라 1. ‘나’를 나이게 만드는 것들은, 정말 나다운 것인가 죄수의 첫 번째 의무는 탈옥이다. -미셸 푸코 내가 어떻게 너를 잊을 수 있겠어? 넌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람인데…… -제이슨 본(맷 데이먼), 『본 아이덴티티』 중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무엇인가. 가족, 국적, 모국어, 학력, 직업, 재산……. 이런 것들 중에 나의 나다움을 진정으로 결정하는 요소들은 얼마나 될까. 그런데 분명한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우리 스스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우리의 정체성을 ‘이용하는’ 세력들은 넘쳐난다는 것이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는가 하면, 각종 스팸메일과 스팸메시지를 보내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남의 번호를..
14. 너와 함께, 네 안에서, 너를 통해, 내가 된다 폴 리쾨르는 한 인간이 일생을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다음의 여섯 가지 문제를 잘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첫째,(죽음이라는 운명과 관련된) 인간의 유한성. 둘째, 신이나 신령한 존재로부터 소외당한 인간의 현실. 셋째, 생성과 초월의 과정,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 있는 존재인 개개의 인간에게 진리는 절대로 온전하게 완성된 것일 수 없다는 점. 넷째, 선택에 대한 인간의 자유와 그에 따른 책임 사이의 모순성. 다섯째, 인간이란 타자들과 함께, 그들 속에서, 그들을 통해(with, in, and through others)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므로, 우리가 의미를 인식한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 여섯째, 우주 속에서의 인간의 정체성과 그 역..
13. 예언과 믿음과 사랑이 합치되는 순간 초월이라는 신의 의지는 ‘진실과 사랑이 넘치는 투쟁’에 혼신을 바치는 나의 참 자아로 돌아가라는 뜻이다. -칼 야스퍼스 네오는 스미스의 숨겨진 두려움을 간파하고 사력을 다해 그를 공격하지만, 잠시 방심하는 사이 스미스 일당의 교활한 팀플레이로 죽음의 위기를 맞는다. 탕, 탕, 탕……. 스미스의 총격으로 매트릭스 안의 네오는 피를 토하며 죽어간다. 매트릭스 안에서의 죽음은 곧 정신의 죽음. 정신이 죽으면 매트릭스 바깥의 육신도 죽는다. 스미스는 더 이상 뛰지 않는 네오의 심장박동을 확인하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선다. 이제야 자신이 ‘그’라는 것을 알 것만 같은데, 바로 그 황홀한 깨달음의 순간 네오는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고야 만다. 모피어스와 탱크는 믿을 ..
12. 난 이제 그들이 두렵지 않아 신화는 별들에게 열정의 옷을 입히고, 신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지닌 결함과 과오를 덧씌우기도 했다네. 신화 속에서 바람과 파도는 음악이었다네. 모든 호수와 사내, 샘물과 산, 숲과 향내 그윽한 골짜기는 온갖 요정들의 놀이터였다네 -로버스 G. 잉거솔 세속의 아수라 속에서도 신성의 숨결을 발견하는 열쇠. 그 열쇠는 바로 ‘몸’이었다. 네오를 비롯하여 매트릭스에 갇혀 있던 모든 인류는 자신의 진짜 몸을 AI에게 건전지로 헌납한 채 가상의 이미지로만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태어나서 자신의 눈, 코, 입, 손, 발을 단 한 번도 진짜 세계에서 써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네오가 매트릭스로 철저히 세뇌된 자신의 두뇌를 해방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몸’을 매트릭스의 회..
11. 내 이름은 …… 네오다 대자연은 오류에 대해 근심하지 않는다. 자연은 스스로 이를 수정하며, 이 모든 것들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는다. -괴테 네오는 ‘과연 내 몸이 마음대로 움직일까’ 내심 걱정하지만 모피어스를 구해야 한다는 지상과제 앞에서 모든 두려움을 잊는다. 그는 ‘과연 이런 방법이 통할까’를 고민할 틈도 없이 몰려드는 적들의 주먹과 총알을 피해 자신도 모르고 있던 스스로의 잠재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잡생각을 할 틈조차 없이 ‘친구를 살리는 일’에 완전히 몰입하기에 ‘생각의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스미스와 트리니티가 매트릭스 바깥으로 무사히 탈출하고 나서도 네오는 끝까지 자신을 추격하는 스미스 일당을 제거하기 위해 천의무봉(天衣無縫)의 무술 실력을 ..
10. 길을 아는 것과 걷는 것의 차이 우리는 모순으로 인해 비옥해진다. -괴테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다. -김수환 추기경 내가 바로 ‘그’여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자 네오는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내가 반드시 ‘그’가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도, 내가 ‘그’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도 잊고, 오직 소중한 친구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꽉 찼다. 오라클의 예언이나 네오의 엄청난 능력 때문만이 아니라, 네오가 자신의 삶을 잊고 오직 모피어스를 살려야 한다는 마음을 갖게 되는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네오는 진정한 ‘그’가 된다. 이제 네오는 세상에서 제일 멀다는 그 거리, ‘마음과 머리 사이’의 거리를 극복했다. 이제 마음과 육체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 남았다. 마음처럼 움직이지..
9. “미안해, 넌 그냥 평범한 사람이야.” VS “아니, 너는 비범함이야.” 두려워하지 마라! 그대는 이미 피와 살로 된 육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떠한 소리나 빛이나 광선도 그대에게 해를 입힐 수 없나니. 그대는 죽을 수 없다. -『티벳 사자의 서』 중에서 살아남은 요원들은 그들의 마지막 희망 ‘시온’을 지키기 위해 모피어스를 포기하기로 한다. 시온은 모피어스나 트리니티나 ‘그’보다 중요하니까. 잔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판단하며 탱크를 말리지 못하는 트리니티. 탱크는 모피어스를 저 세상으로 보내기 위해 코드를 뽑으려 한다. “당신은 리더 그 이상이었죠. 우리의 아버지였어요. 잊지 않을게요.” 자신의 목숨과 모피어스의 목숨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는 오라클의 예언. 그 때문에 미칠 듯이 혼란..
8. 오라클의 모호한 화법과 엄청난 미션 어둠은 아직 발현되지 않은 빛이다. -엘리아데 오라클은 미래를 함부로 예측하거나 단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네오에게 결국 네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은 네 자신이라고, 너의 신화를 만드는 것 또한 너의 힘이라고 암시한 것이 아닐까. 오라클이나 트리니티나 모피어스가 아니라, 그 누구도 아닌 네 스스로가 ‘그’임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 아닐까. 네오 스스로가 ‘그’에게 마치 사랑에 빠지듯 완전히 몰입할 때, 그는 운명의 문턱을 넘을 것이라고 말이다. ‘이다/아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오라클의 모호한 화법에 네오는 엄청난 혼란을 느낀다. 게다가 그녀는 내가 과연 ‘그’인지 아닌지 헷갈려 미칠 지경인 네오에게 또 다른 엄청난 미션을 선물하기까지 한다..
7. 오라클의 시험: 미안하지만, 너는 ‘그’가 아니야 신과 인간은 무엇이 다른가? 수없이 밀려드는 파도가 신들 앞에서는 영원의 물결로 변하지만 우리는 그 파도에 떠밀려 올라가고 휩쓸려 다니다가 결국 침몰하고 만다네 -괴테 엘리아데는 도시인들 대부분의 삶이 오직 경제적 타깃에만 집중되어 있다고 꼬집어 말한다. 마치 ‘진화된 인류’는 비과학적인 신화 따위엔 관심을 끊어야 한다는 듯 이성 지상주의적인 교육이 판을 쳐왔다. 그러나 신화의 힘을 믿는 종족을 원시적이고 야만적이라고 비난하는 문명인의 교육이야말로 ‘우주적 시간’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를 둘러싼 매트릭스는 무엇인가. 우리가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방해하는 힘이 있다면, 그 모든 것이 매트릭스의 회로..
6. 매트릭스에 갇히길 희망하다 오늘날이라고 해서 신화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들 자신이 바로 그 신화의 그늘 속에 살고 있고 우리 모두가 진리의 찬란한 빛으로부터 뒷걸음질 치는 탓에 그것을 감지하지 못할 따름이다. -막스 뮐러 네오가 뛰어넘어야 할 과제는 매트릭스 안에서 지금까지 가져온 시공간의 감각이 ‘절대적이고 유일하다’라는 편견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매트릭스의 가상 속에서 그것만이 유일한 실재라고 믿고 살아왔기에 모피어스가 제공하는 훈련 공간을 ‘그저 가상일뿐이야’라고 느낀다. 모피어스 “때리려고만 하지 말고 진짜로 때려!”라고 말한다. 아무런 의심 없이 믿고 살았던 매트릭스가 2199년의 인류에게 유일한 현실이었듯이, 지금 네오가 훈련하고 있는 가상공간이야말로 네오가..
5. 내가 정말 ‘그’일까? 무의미는 삶의 충만함을 저해하기 때문에 질병과 같은 것이다. 의미는 우리로 하여금 대단히 많은 것들을 ― 어쩌면 모든 것을 ― 견디게 한다. 과학은 결코 신화를 대신하지 못하며 그 어떤 과학으로도 신화는 만들어질 수 없다. -칼 구스타프 융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드라마틱한 부활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사실 인생의 곳곳에서 자기만의 ‘사적 부활’을 꿈꾼다. 일 년의 끝과 새로운 일 년의 시작을 알리는 보신각 종소리를 그저 TV를 통해서만 들어도 왠지 마음이 한껏 정화되는 느낌. 비록 작심삼일(作心三日)에 그칠지라도 저마다 스스로와의 소중한 약속을 시작하는 시간. 왠지 술 담배도 끊고 아침운동도 다시 시작하고 인생의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리모델링할 수 있을 것 같은, 보통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