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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이단과의 강도 높은 접속 정황이 그러하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중국을 유람하다가 마음껏 주희를 반박하는 이를 만나면, 반드시 범상치 않은 선비로 여기고 이단이라면서 무조건 배척하지 말고 차분히 대화를 이끌어 그 속내를 알아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이를 통해 천하의 대세를 엿볼 수 있으리라. 「심세편(審勢編)」 駁朱者 知其爲非常之士而毋徒斥以異端 善其辭令 徵質有漸 庶幾因此而得覘夫天下之大勢也哉 이 유연한 도움닫기! 여기에서도 역시 영토화하는 선분과 탈영토화하는 선분이 뒤섞여 있다. 그의 위치는? 두 선분의 사이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연암은 주자주의와 청왕조, 지식인과 주자학, 주자주의와 반주자주의 등의 선분들이 교차하는 사이를 매끄럽게 왕래한다. 그렇다면 양명학을 포함하여 주자학의 외부, 불학과 도학 ..
주자학과 이단들 주자는 주자주의자일까? 아닐까? 아마도 가장 정확한 대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일 것이다. 긍정의 경우는 주자주의가 기존의 배치를 동요시키면서 새로운 담론적 에너지를 발산하는 상황을, 부정의 경우는 주자주의가 교조적 담론으로 기능하는 상황을 상정한 것일 터이다. 즉 이 단순소박한 문답은 어떤 전복적 사유도 시공간적 배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뿐 아니라, 자신에 반하는 의미까지도 생성할 수 있다는 것을 환기시켜준다. 중세의 텍스트를 다루는 이들에게 주자는 언제나 넘어서야 할, 탈주자주의의 맥락에서만 그 얼굴을 드러내는 존재다. 앞서 간략하게 짚었듯이 16세기 이후 조선은 주자학이 통치이념으로 자리잡았고, 17세기 당파 간 분열이 가속화되면서 육경(六經)에 대한 주자 이외의 어떤 ..
천하의 형세 분석 물론 그렇다고 연암의 의도가 청문명을 예찬하는 방향으로 귀결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이념적 명분이 아니라 지상에서 펼쳐지는 힘의 배치다. 연암의 정치적 촉수는 이 배치의 미세한 결을 더듬는다. 가령 조선의 선비들은 변발을 비웃는다. 변발은 청이 한족에게 강요한 야만적 습속 중 가장 악질적인 것이다. 그럼 어째서 조선에는 그것을 강요하지 않았는가? 생각하면 정말 의아하기 짝이 없다. 그들의 무력으로서는 조선을 무릎 꿇리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을 터인데. 연암이 보기에 청나라 쪽의 입장은 이렇다. “조선은 본래 예의로 이름이 나서 머리털을 자기 목숨보다 사랑하는데, 이제 만일 억지로 그 심정을 꺾는다면 우리 군사가 돌아온 뒤에는 반드시 뒤엎을 터이니, 예의로써 얽어매어 두느니만 못할..
2장 세 개의 첨점: 천하ㆍ주자ㆍ서양 북벌론이란 관념에 갇히지 않고서 ‘사이의 은유, 차이의 열정’을 당대의 첨예한 이념적 사안들에 투사하면 어떻게 될까? 물론 우리는 이미 앞에서 그가 중화주의, 북벌, 주자학 따위를 어떻게 비틀고 헤집고 다녔는지를 대강 살펴본 바 있다. 그걸 바탕 삼아 몇 가지 첨점들을 좀더 탐색해 보자. 때론 와이드 비전으로, 때론 현미경을 들이대고서. 당시 청왕조 치하의 한족 지식인들의 고심은 이런 것이다. 심정적으로는 절대 만주족 오랑캐의 통치를 인정할 수 없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그들이 명왕조를 무너뜨리고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일까. 천하를 통치하는 건 하늘의 뜻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오랑캐로 하여금 천하를 지배하게 한 그 하늘의 뜻은 대체 뭐란 말인가. 「곡정필담(鵠..
그대 길을 아는가? 연암의 손자는 대원군 집정시 우의정까지 지냈고, 개화파의 선구자로 꼽히는 박규수다. 그가 평양감사를 지내던 시절, 친지 중에 한 사람이 박규수에게 이제는 ‘『연암집』을 공간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제안을 했다. 뜻밖에도 ‘공연히 스캔들 일으키지 말자’는 게 박규수의 답변이었다 한다. 연암 사후 무려 수십 년이 지난 19세기 후반까지도 연암의 글은 금기의 장벽을 넘지 못했던 것이다. 그만큼 그는 조선 후기 담론사의 외부자였다. 그러던 그가 20세기 초 지식의 재배치 속에서 화려하게 복권되었다. ‘태서신법(泰西新法)’의 선각자로서, 그 이후 내재적 발전론과 더불어 실학이 한국학의 주요담론으로 부상하면서 연암의 텍스트는 탈중세, 민족주의 민중성의 맹아, 근대주의 등등으로 집중적인 스포트라..
‘사이’의 은유② 그러므로 ‘사이’의 은유들은 연암 사유를 떠받치는 기저를 이룬다. 이 점을 좀더 파고들기 위해 『열하일기』 바깥의 텍스트들을 음미해보자. 먼저 「낭환집서(蜋丸集序)」, 장님이 비단옷 입고 대로를 걷는 것과 멀쩡한 사람이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 이 둘을 비교하면 어느 편이 나은가? 이 황당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연암은 먼저 ‘옷과 살’의 사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옛날에 황희 정승이 공무를 마치고 돌아오자 그 딸이 맞이하며 묻기를, “아버님께서 이를 아십니까? 이는 어디서 생기는 것입니까? 옷에서 생기지요?” 하니, “그렇단다.” 하므로 딸이 웃으며, “내가 확실히 이겼다.”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며느리가 묻기를, “이는 살에서 생기는 게 아닙니까?” 하니, “그렇고 말고.” 하..
‘사이’의 은유 초월적인 중심을 전복하고 현실의 변화무쌍한 표면을 주시할 때 진리 혹은 선악에 대한 판단은 어떻게 가능한가? 만약 모든 것을 상대적으로만 본다면 허무주의(nihilism)로 나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그건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치의 무화라는 벡터(vector)로 작용할 것이다.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변화하는 흐름을 예의주시하면서 때에 맞게 새로운 가치들을 생성시켜야 한다. 그 구체적인 방편이 바로 ‘사이에서’ 사유하는 것이다. 독자들은 ‘열하로 가는 무박나흘의 대장정’을 아직 잊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의 비몽사몽 상태를 연암은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솔솔 잠이 쏟아져서 곤한 잠을 자게 되니 천상의 즐거움이 그 사이에 스며 있는 듯 달콤하기 ..
코끼리에 대한 상상 그 구체적 결과물이 「상기(象記)」다. ‘코끼리의 철학’이라 부를 만한 이 텍스트는 초월적 주체에 대한 의혹으로부터 시작된다. 아, 사람들은 세상의 사물 중에 터럭만 한 작은 것이라도 하늘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그러나 하늘이 어찌 하나하나 이름을 지었겠는가, 형체로 말한다면 천(天)이요, 성정(性情)으로 말한다면 건(乾)이며, 주재하는 것으로 말하자면 상제(上帝)요, 오묘한 작용으로 말하자면 신(神)이니, 그 이름도 다양하고 일컫는 것도 제각각이다. 이(理)와 기(氣)를 화로와 풀무로 삼고, 뿌리는 것과 품부하는 것을 조물(造物)로 삼아, 하늘을 마치 정교한 공장이로 보아 망치 도끼 끌 칼 등으로 조금도 쉬지 않고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噫! 世間事物之微, 僅若毫末, 莫非稱天, 天何..
5부 내부에서 외부로 외부에서 내부로 1장 사이에서 사유하기 말똥구리에서 코끼리까지 말똥구리는 스스로 말똥을 아껴 여룡(驪龍)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여룡 또한 여의주를 가지고 스스로 뽐내고 교만하여 저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 螗琅自愛滚丸, 不羡驪龍之如意珠; 驪龍亦不以如意珠, 自矜驕而笑彼蜋丸. 이 글은 연암의 벗이자 제자인 이덕무(李德懋)의 것으로, 연암이 「낭환집서(蜋丸集序)」에서 재인용하면서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 널리 회자된 아포리즘(aphorizm)이다. 요점은 척도를 고정시키지 말라는 것. 진리 혹은 가치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놓이는 자리, 곧 배치에 따라 달라질 따름이다. 지극히 낮고 천한 미물인 말똥구리와 신화적 상상력에 감싸인 여룡을 대비함으로..
북벌(北伐) 프로젝트 물론 이런 정도로 중화사상이 골수에 박힌 자들이 설복당할 리가 없다. 연암 또한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좀 강경한 전략을 구사한다. 먼저 표적을 북벌론(北伐論)으로 잡았다. 잘 알고 있듯이 소중화(小中華)주의는 북벌론과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있다. 조선이 ‘작은 중화’라면, 마땅히 청나라 오랑캐를 물리쳐 중원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 북벌론의 요지다. 병자호란 때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한 이후 인조는 북벌을 통치이념으로 내세운다. 복수에 눈이 먼 인조와 그 추종자들에게 청과 조선의 역학 관계 따위가 제대로 보일 리가 없다. 청문명의 역동적 기류에 눈뜬 소현세자가 조선에 돌아와 뜻을 펴지도 못한 채 의문의 죽음을 당했음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소현세자를 ..
모두가 오랑캐다! 조선이 청문명을 거부하는 이유는 청이 북방의 유목민이고, 그들의 문화는 오랑캐라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 역시 동이, 곧 동쪽 오랑캐다. 차이가 있다면, 농경민이라는 것뿐이다. 오랑캐가 오랑캐를 타자화하는 것, 이것이 소중화(小中華) 주의의 내막인 셈이다. 그럴 수 있는 근거는 조선은 비록 종족적으로는 오랑캐지만, 정신은 더할 나위없이 순수한 중화라는 것이다. 더구나 중화문명의 수호자인 한족이 멸망했으니, 이제 문명은 중원땅에서 동쪽으로 이동했다. 중화의 지리적, 종족적 실체가 사라진 마당에 이제 헤게모니는 누가 더 중화주의를 순수하게 보존하느냐에 달린 셈이다. 조선 후기 들어 주자학이 도그마화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주자학이란 송나라 때 주희에 의해 완성된 유학의 한 분파다. 주희는 당..
3장 “문명은 기왓조각과 똥거름에 있다” 문명과 똥 ‘똥과 문명의 함수’ 아니면 ‘똥의 역사’를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웬 ‘개똥’ 같은 소리냐 싶겠지만, 이건 정말 진지한 담론적 이슈다. 똥이야말로 문명의 배치를 바꾸는 데 있어 결정적인 요소였던바, 어찌 보면 똥의 역사야말로 태초 이래 인류의 궤적을 한눈에 집약한다고도 말할 수 있는 까닭이다. 요즘 사람들의 똥에는 파리가 들끓지 않는다고 한다. 너무 독성이 강해서 파리떼도 기피한다는 것이다. 이러다간 ‘똥파리’라는 종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똥파리 없는 똥’,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바로 이 사실만큼 인류가 현재 처한 상황을 잘 말해주는 것도 없지 않은가? 생태계의 파괴, 이성의 경계, 타자성 등, 지금 소위 ‘포스트 모던’ 철학이 씨름하..
말의 아수라장 그의 패러독스는 모든 차이들을 무화시켜 동일성으로 환원하려는 도그마에 대한 통렬한 웃음이 깔려 있다. “중요한 것은 이데아를 파면시키는 것이고, 이념적인 것은 높은 곳이 아니라 표면에 있다”(들뢰즈), 그의 언어가 가장 높은 잠재력에 도달하는 것도 이 ‘역설의 열정’에서이다. 물론 자신도 그 프리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유머와 개그의 주인공이 언제나 연암 자신이었듯이, 타자의 시선, 혹은 역설의 프리즘은 연암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로 투사된다. 사신을 따라서 중국에 들어가는 사람에겐 모름지기 부르는 호칭이 있다. 역관은 종사(從事)라 부르고, 군관은 비장(裨將)이라고 부르며, 나처럼 한가롭게 유람하는 사람은 반당(伴當)이라고 부른다. 소어(蘇魚)라는 물고기를 우리나라 말로는 ‘밴댕이[盤當]’..
전족에 대한 시선 한족 여인들의 전족(纏足) 문제만 해도 그렇다. 전족이란 여성들이 발을 작게 만들기 위해 발을 꼭꼭 싸매는 습속이다. 예쁘고 작은 발이야말로 가장 성적인 표징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금병매(金甁梅)』를 보면, 여주인공 반금련의 걸음걸이를 연보(蓮步), 즉 연꽃 같은 발걸음에 비유하는 경우가 종종 나오는데, 그게 바로 이런 맥락이다. 보기에는 좋을지 모르나, 그걸 위해선 아주 어릴 때부터 두 발을 조일대로 조여 성장을 멈추게 해야 했으니, 이 습속이야말로 여성에 대한 신체적 억압의 대표적 사례인 셈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중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전족의 거부’를 핵심 강령의 하나로 채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것이 철저히 한족의 습속이라는 점이다. 『열하..
판첸라마의 동불도 받지 못하는 편협함 어떻든 이처럼 외부자 혹은 타자의 시선으로 ‘우리’를 보면, 전혀 예기치 않은, 혹은 보이지 않던 면목들이 ‘클로즈 업’ 된다. 시선의 전복을 통한 봉상스(bon sens)의 해체! 이런 식의 수법은 단지 풍속의 차원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안을 평가할 때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열하에서 판첸라마가 동불(銅佛)을 하사했을 때, 조선 사신단이 마치 꿀단지에 손 빠뜨린 것처럼 당혹스러워하며 한바탕 소동을 벌인 일이 있었다. 그 일에 대해 연암은 이렇게 말한다. 이번 구리 불상도 반선이 우리 사신을 위해 먼 길을 무사히 가도록 빌어주는 폐백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이라도 부처에 관계되는 일을 겪으면 평생 누가 되는 판인데, 하물며 이것을 준..
우리의 술문화 시점변환이야말로 연암이 즐겨 사용하는 기법 중 하나다. 말하자면, 타자의 눈을 통해 조선의 문화나 습속을 바라봄으로써 익숙한 것들을 돌연 ‘낯설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예컨대 조선 사신들의 의관은 신선처럼 빛이 찬란하건만, “거리에 노는 아이들까지도 놀라고 괴이하게 여겨서” 도리어 연극하는 배우 같다고 한다. 또 도포와 갓과 띠는 중국의 중옷과 흡사하다. 연암이 변관해와 더불어 옥전의 어느 상점에 들어갔더니, 수십 명이 둘러서서 자세히 구경하다가 매우 의아하게 여기면서 서로 말하기를, “저 중은 어디에서 왔을까” 한다. 유학자보고 중이라니?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대체 중국의 여자와 승려와 도포들은 옛날 제도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조선의 의관은 “모두 신라의 옛제도를 답습한 것이 많..
타자의 시선으로 ‘이목(耳目)의 누(累)’는 시선의 문제로 수렴된다. 시선은 대상을 보는 주체의 관점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 공고해질 경우, 견고한 표상의 장벽이 구축된다. 소중화(小中華)주의나 ‘레드 콤플레스’ 등 한 시대를 관통하는 이데올로기 또한 결국은 시선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연암의 패러독스는 무엇보다 시선의 자유로운 이동을 수반한다. 밀운성에서 한 아전의 집에 머물렀을 때의 일이다. 정사가 불러서 청심환 한 알을 주자 여러 번 절을 해댄다. 몹시 놀라고 두려워하는 기색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막 잠이 들었을 즈음 문을 두드리는 이가 있어 나가보니 사람 지껄이는 소리와 말 우는 소리가 시끌벅적한데, 모두 생전 처음 듣는 것이었을 테니. 게다가 문을 열자 벌떼처럼 뜰을 가득 메우는 사람들, 이들은..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봉상스(bon sens)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우선 감각에 의한 ‘알음알이’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울음을 단지 슬픔에만 귀속하는 것이 울음의 잠재력을 위축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감각에 사로잡히는 순간, 인간의 지식은 한없이 비루해진다. 이목에 좌우되어 대상의 본래 면목을 보지 못하는 사유의 한계, 그것을 격파하고자 하는 것이 연암의 진정한 의도이다. 여행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문의 번화함을 마주한 연암은 기가 팍 꺾여 그만 돌아가버릴까 하는 생각이 치민다. 순간, 온몸이 화끈해진다. 이것도 남을 시기하는 마음이지. 난 본래 천성이 담박해서 남을 부러워하거나 시기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는데. 이제 다른 나라에 한 발을 들여놓았을 뿐, 아직 이 나라의 만분의 일도 못 보았는데 ..
2장 시선의 전복, 봉상스의 해체 ‘호곡장(好哭場)’? 유머가 만들어놓은 매끄러운 공간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물론 범상치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 중세적 엄숙주의와 매너리즘이 전복되면, 그 균열의 틈새로 전혀 예기치 못한 일들이 솟구치기 때문이다. 그 순간, 18세기 조선을 지배했던 통념들은 가차없이 허물어진다. 무엇보다 그의 유머에는 언제나 패러독스가 수반된다. 주지하듯이 패러독스, 곧 역설은 통념의 두 측면인 양식(bon sens)과 상식에 대립한다. 봉상스, 그것은 한쪽으로만 나 있는 방향이며, 그에 만족하도록 하는 한, 질서의 요구를 표현한다. 그에 반해 역설은 예측불가능하게 변하는 두 방향 혹은 알아보기 힘들게 된 동일성의 무의미로서 등장한다. 그런 점에서 패러독스란 봉상스의 둑이 무너진 ..
판첸라마 대소동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판첸라마 대소동!’이다. 천신만고 끝에 열하에 도착한 일행에게 또 하나의 ‘불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티베트의 판첸라마를 만나 예를 표하라는 황제의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춘추대의(春秋大義)’로 무장한 그들로선 만주족보다 더 망측한 서번의 오랑캐에게 머리를 조아린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날벼락’이었다. “모두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당번 역관들은 허둥지둥 분주하여 술이 덜 깬 사람들 같았다. 비장들은 공연히 성을 내며 투덜거렸다. 거 참, 황제의 분부가 고약하기 짝이 없네. 망하려고 작정을 했나.”라는 극단적 발언이 오고가는 그 아수라장 속에서 연암은 무얼 했던가? 나야 한가롭게 유람하는 처지인지라 조금도 참견할 없을 뿐더러 사신들 ..
술 마시기 사건 다음은 ‘코믹 액션’의 일종이다. 열하에 도착해서 거리를 어슬렁거리다 한 술집에 들어선다. 마침 몽고와 회자 패거리들이 수십명 술집을 점거하고 있다. 오랑캐들의 구역에 동이족(東夷族) 선비가 느닷없이 끼어든 꼴이 된 셈이다. 워낙 두 오랑캐들의 생김새가 사납고 험궂어 연암은 후회막심이나 이미 술을 청한 뒤라 괜찮은 자리를 골라 앉았다. 연암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넉 냥 술을 데우지 말고 찬 것 그대로 가져오게 한다. 심부름꾼이 웃으면서 술을 따라 가지고 오더니 작은 잔 둘을 탁자 위에 먼저 벌여놓는다. 나는 담뱃대로 그 잔을 확 쓸어 엎어버렸다. “큰 술잔으로 가져 와!” 그러고는 큰 잔에다 술을 몽땅 따른 뒤, 단번에 주욱 들이켰다.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 酒傭笑而斟來 先把兩小盞 ..
상갓집 사건과 기상새설 사건 먼저 상갓집 해프닝, 연암이 십강자(十扛子)에 이르러 쉬는 사이에 정진사, 변계함 등과 함께 거리를 거닐다가 한 패루(牌樓)에 이르렀다. 그 제도를 상세히 구경하려 할 즈음에 요란스런 음악이 시작된다. 정과 변, 두 사람은 엉겁결에 귀를 막고 도망치고, 연암 역시 귀가 먹을 것 같아서 손을 흔들어 소리를 멈추라 하여도 영 막무가내로 듣지 않는다. 다만 할끔할끔 돌아보기만 하고 그냥 불고 두드리고 한다. 호기심이 동한 연암은 상갓집 제도가 보고 싶어 따라가니, 문 안에서 한 상주가 뛰어나와 연암 앞에 와 울며 대막대를 내던지고 두 번 절하는데, 엎드릴 땐 머리가 땅에 닿도록 조아리고 일어설 땐 발을 구르며 눈물을 비오듯 흘린다. 그러고는 “창졸에 변을 당했사오니 어찌해야 좋을지..
주인공은 바로 ‘나’ 이처럼 장쾌한 편력기답게 『열하일기』에는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그러나 그 가운데 단연 도드라진 인물은 연암 자신이다. 그는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신의 심리를 미세한 부분까지 아낌없이 드러내 보인다. 불타는 질투심과 호기심, 우쭐거림, 머쓱함 등, 그 생동하는 파노라마는 이 편력기에 강렬한 색채를 부여한다. 여행이 시작되고 얼마 있다 그는 꿈을 꾼다. 밤에 조금 취하여 잠깐 조는데, 몸이 홀연 심양성 안에 있다. 꿈속에서 보니 궁궐과 성지와 여염과 시정들이 몹시 번화ㆍ장려하다. 연암은 “이렇게 장관일 줄이야! 집에 돌아가서 자랑해야지[余自謂壯觀]”하고 드디어 훌훌 날아가는데, 산이며 물이 모두 발꿈치 밑에 있어 마치 소리개처럼 날쌔다. 눈 깜박할 사이..
중국 아이와의 우정 그 숱한 엑스트라들 중에 아역이 없을 리 없다. 호삼다(胡三多)라는 꼬맹이 친구가 바로 그다. 나이는 열두 살, 얼굴이 맑고 깨끗하며 예도에 익숙하다. 일흔세 살된 노인과 함께 곡정 왕민호에게 글을 배운다. 매일 새벽이면 삼다는 노인과 함께 책을 끼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발걸음을 맞추어 와선 곡정을 뵙는다. 곡정이 바쁠 때면, 노인은 즉시 몸을 돌려 동자인 삼다에게 고개를 숙이고 강의를 받고선 간다. 돌아가선 여러 손자들에게 다시 배운 바를 가르쳐준다고 한다. 노인은 스스럼없이 어린 삼다를 동학(同學) 혹은 아우라 부른다. 연암은 이들 짝궁을 보고, “늙은이는 젊은이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젊은이는 늙은이를 업신여기지 않[老者不恥 稚者不侮]”는 변방의 질박한 풍속에 감탄해 마지않는다. 한..
중국 문인들과의 우정 중국 장사치들과의 만남이 아름답고 애틋한 ‘우정의 소나타’라면, 선비들과의 교제는 일종의 ‘지적 향연(symposium)’이다. 고금의 진리, 천하의 형세, 민감한 정치적 사안들을 두루 망라하는 색채로 비유하면 전자는 경쾌한 블루 톤에, 후자는 중후한 잿빛 톤에 해당될 것이다. 연암은 서울을 떠나는 순간부터 중원의 선비들과의 만남을 준비한다. 내가 한양을 떠나서 여드레 만에 황주에 도착하였을 때 말 위에서 스스로 생각해보니, 학식이라곤 전혀 없는 내가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중국에 들어갔다가 위대한 학자라도 만나면 무엇을 가지고 의견을 교환하고 질의를 할 것인가 생각하니 걱정이 되고 초조하였다. 余離我京八日 至黃州 仍於馬上 自念學識固無藉手 入中州者 如逢中州大儒 將何以扣質 以此煩寃 그..
중국 상인들과의 우정 중국인 친구들에 대한 터치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중국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그저 그런 인물들이지만, 연암이 연출하는 ‘필드’ 안에 들어오는 순간, 빛나는 엑스트라가 된다. 예속재(藝粟齋)는 골동품을 다루는 점포로 수재(秀才) 다섯 명이 동업을 하는데, 모두 나이가 젊고 얼굴이 아리따운 청년들이다. 또 가상루(歌商樓)는 먼 곳에서 온 선비들이 운영하는 비단점이다. 연암은 가상루에 들러 사람들을 이끌고 예속재로 가기도 하고, 예속재의 친구들을 꼬드겨 가상루로 가기도 한다. 연령은 10대에서 4, 50대까지 걸쳐 있다. 그런데도 다들 동갑내기들처럼 허물이 없다. 「속재필담(粟齋筆談)」과 「상루필담(商樓筆談)」은 그들과 주고받은 ‘우정의 향연’이다. 연암이 그들과 접선하는 코드는 매..
정진사와 득룡 스케치 이제 독자들도 장복이와 창대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상당히 낯이 익을 것이다. 그것은 단지 그들이 연암의 시종들이라서가 아니다. 만약 연암이 그들을 그저 그림자처럼 끌고 다니기만 했다면, 장복이와 창대는 벌써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연암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의 말, 행동, 생김새까지 눈에 삼삼하도록 생생한 호흡을 불어넣었다. “한참 서성거리다 몸을 돌이켜 나오는데 장복을 돌아보니 그 귀밑의 사마귀가 요즘 더 커진 듯했다.” 귀밑의 사마귀까지 캐치하는 놀라운 관찰력. 그래서 그들은 별볼일 없는 인물이지만 출현하는 장면마다 강렬한 악센트를 부여한다. 이름하여 ‘빛나는 엑스트라.’ 누구든 그렇다. 연암과 함께 움직이면, 혹은 연암의 시선에 나포되면 누구든지 ..
말의 아수라장② 연암은 특히 언어문제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말들이 부딪히는 장면들을 예의주시한다. 「피서록(避暑錄)」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가 보기에 “중국 사람들은 글자로부터 말 배우기로 들어가고[中國因字入語]”, 조선인들은 “말로부터 글자 배우기로 옮겨 가므로 중화와 이적의 구별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로 인하여 글자를 배운다면 말은 말대로 글은 글대로 따로 되는 까닭이다[我東因語入字 故華彛之別在此 何則 因語入字則語自語書自書].” 예를 들면 천자문을 읽을 때, 한날천(漢捺天)이라고 한다면, 이는 글자 밖에 다시 한 겹 풀이하기 어려운 언문이 있게 된다. 그러니 아이들이 애당초에 ‘한날’이란 무슨 말인 줄을 알지 못하니, 더군다나 천을 알 수 있겠는가. 말하자면, 경전을 익히는 데 있어 이중적인 ..
말의 아수라장 ‘워밍업’을 위한 퀴즈 하나 더, 『돈키호테』의 저자는? 세르반테스 정말 그렇다고 믿는가? 이게 무슨 말인지 몰라 멀뚱하게 있으면 그 사람은 분명, 책을 읽지 않았다. 그럼 세르반테스가 아니냐구? 물론 제자는 세르반테스다. 그러나 『돈키호테』를 읽다보면 원저자가 따로 있고 세르반테스 자신은 마치 번역자인 것처럼 너스레를 떠는 대목들과 도처에서 마주친다. 처음엔 웃어넘기다가도 같은 말을 자주 듣다보면, 웬만큼 명석한(?) 독자들도 머리를 갸우뚱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2부는 1부의 속편이 아니다. 1부에서 돈키호테가 한 기이한 모험들이 책으로 간행되어 사람들 사이에 널리 유포된 상황이 2부의 출발지점이다. 말하자면 돈키호테는 자신이 저지른 모험을 확인하기 위한 순례를 떠나는 것이다. 이처럼 ..
포복절도(抱腹絶倒)② 그런 ‘예인적’ 천재성은 필담을 할 때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먹어치우고, 태우고, 찢어버리는 등 금기의 벽에 도전하는 팽팽한 긴장 속에서도 연암은 긴장을 이완시키고,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끊임없이 유머를 구사한다. 작은 국자로 국물을 뜨기만 했다. 국자는 숟가락과 비슷하면서 자루가 없어서 술잔 같았다. 또 발이 없어서 모양은 연꽃잎 한 쪽과 흡사했다. 나는 국자를 잡아 밥을 퍼보았지만 그 밑이 깊어서 먹을 수가 없기에 학성에게 이렇게 말했다. “빨리 월나라 왕을 불러오시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월왕의 생김새가 긴 목에, 입은 까마귀 부리처럼 길었다더군요.” 내 말을 들은 학성은 왕민호의 팔을 잡고 정신없이 웃어댄다. 웃느라 입에 들었던 밥알을 튕겨내면서 재채기를 수없이 해댄..
포복절도(抱腹絶倒) 퀴즈 두서너 가지, 『열하일기』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먹거리는? 술, 『열하일기』에서 돈보다 더 유용한 교환가치를 지닌 물건은? 청심환, 가장 큰 해프닝은? ‘판첸라마 대소동!’이 정도만 맞혀도 『열하일기』의 진면목에 꽤나 접근한 편이다. 그럼 『열하일기』에 가장 자주 출현하는 낱말은? 정답은 포복절도! 여행의 목적이 마치 포복절도에 있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연암은 이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그 자신이 남을 포복절도하게 만들 뿐 아니라, 사소한 일에도 그 자신 또한 기꺼이 포복절도한다. “내 성미가 본디 웃음을 참지 못하므로, 사흘 동안 허리가 시었다”고 할 때, 그건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그래서 연암이 움직일 때마다 ‘웃음의 물결’이 출렁거린다. 열하에서 윤가전, 기려천 등과 ..
4부 범람하는 유머 열정의 패러독스 1장 유머는 나의 생명! ‘스마일[笑笑] 선생’ ‘호모 루덴스’가 펼치는 ‘유머와 역설의 대향연’ ―― 만약 『열하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나는 예고편의 컨셉을 이런 식으로 잡을 작정이다. 고전을 중후하게 다루기를 원하는 고전주의자(?)들은 마뜩잖아 할 터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유머 없는 『열하일기』는 상상할 수조차 없으니.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면, 『열하일기』는 유머로 시작하여 유머로 끝난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도처에서 유머를 구사한다. 그것은 배꼽잡는 해프닝이 일어날 때만이 아니라, 중후한 어조로 이용후생을 설파할 때, 화려한 은유의 퍼레이드나 애상의 분위기를 고조시킬 때, 언제 어디서나 수반된다. 이를테면 유머는 『열하일기」라는 ‘고원’을 관류하는 ..
23. 안의현의 도둑들을 없애는 방법 邑底有一漢, 常以打罵人討酒食為能事, 每日鬪鬨, 或被罪官庭, 逞憾尤甚, 人皆閃避不與較也. 一日, 吏有匍匐喘息, 手持一大椎, 入庭號訴者曰: “某甲持此椎, 欲打殺小人.” 先君笑曰: “促召刻工來!” 使刻之椎上, 曰: “噫巨椎, 誰所作? 曰某甲. 酗肆惡, 出乎爾, 反乎爾, 理莫逭, 漢律疻, 用之掛, 里門側. 有不悛, 人共擊. 官所許, 證此刻.” 吏亦笑而退, 某甲聞此言也, 更不敢起鬧. 邑底素多穿窬. 一日, 夜有內衙盜警, 先君趣令入軍器庫鐵蒺藜, 又令治匠多造以入, 及入, 家人有稟請布諸垣下. 先君曰: “不必布, 只令偷兒聞之耳.” 自此近衙, 無穿窬之警. 如此事, 往往以詼諧傳之. 每使詗盜於場市之間, 隨現捉致, 則討捕營校卒輒來現. 所謂討捕營卽營將也, 而專管治盜者也. 校卒因以作姦, 與盜偕行..
9. 엄격한 사람임에도 세상의 화를 피할 수 있었던 이유 每於事爲, 其在大體法網處, 一用謹嚴規度, 雖在上官, 必爭辨之. 至於汗漫不打緊之事, 或論議不一, 或囑托沓至, 疲於酬接, 事難究竟處, 輒用詼諧漫語, 緩其機而解其紛, 故事無不成而人亦不怒. 松園金公(履度), 常語人曰: “以燕岩嚴厲之氣像高峻之性格, 若無誠諧一着以彌縫之, 則難乎免於今之世矣.” 인용 목차 유쾌한 시공간
50. 자기 당파로 들어오길 원하는 친구들을 물리치는 방법 先君窮居, 到老始登蔭路, 世人猶不知無復當世志, 或欲推輓之. 如沈鄭諸人, 俱少時交, 來致意欲使與聞世事, 而先君輒以笑語漫漶若未曉者, 遂不復來. 인용 목차 유쾌한 시공간
달라이라마를 만나다! 청왕조는 판첸라마를 황제의 스승으로 모시는 한편, 피서산장 근처에 황금기와를 얹은 전각을 마련해두고서 극진히 대접했다. 이렇게 판첸라마를 떠받든 것은 티베트의 강성함을 억누르기 위한 정치적 방편이기도 했지만, 그 못지않게 티베트 불교의 신성함을 존중하는 유목민의 유연한 태도 역시 작용했다. 그럼, 조선의 사행단은 어떠했던가? 청나라조차 오랑캐라고 보는 마당에 ‘황당무계한’ 티베트법왕에게 머리를 숙일 리 만무했다. 열하에서의 ‘한바탕 소동’은 이렇게 해서 일어난 것이다. 이름하여, ‘판첸라마 대소동!’ 「찰십륜포(札什倫布)」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예부에서 조선 사신들도 판첸라마에게 예를 표하라는 명령이 내려온다. 사신단은 “머리를 조아리는 예절은 천자의 처소에서나 하는 것인데, 어찌 ..
환생과 이적 잘 알고 있듯이, 달라이라마는 관세음보살의 환생으로 간주된다. 연암은 윤회와 환생의 차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법왕이 남의 몸을 빌려 태어나는 것과 윤회는 어떻게 다릅니까[余曰目今法王投胎奪舍之法 非輪回之證耶]?” 윤형산의 대답은 이렇다. “그것은 몸을 바꾸는 것이나 같은 것입니다.” “밝게 빛나는 지혜와 금강의 보체(寶體)는 본디 젊지도 늙지도 않는 것입니다. 장작 하나가 다 타고 나면 다른 나무로 불이 옮겨 붙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維此光明信識 金剛寶體 固無童耄 薪盡火傳].” “비유컨대, 천 리를 가는 자가 집을 짊어지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라, 반드시 숙소를 옮겨 가면서 길을 가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천하에 다정한 사람이라 해도 주막집에 정이 들었다고 그대..
흰 수건과 대보법왕 먼저 다음 장면부터 음미해보자. 때는 2001년 여름쯤이고, 장소는 인도의 북부 다람살라에 있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궁전 앞이다. 궁을 나섰을 때 나는 정말 놀랐다. 궁으로부터 보드가야의 대탑에 이르는 연도에는 수천수만의 티베트 군중들이 달라이라마를 한번 뵙기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두 손 모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더더욱 나에게 충격을 준 것은 그 순간에 전개된 군중들의 모습이다. 달라이라마와 내가 궁을 나서는 순간, 갑자기 온 거리가 정적에 휩싸였다. 영화의 뮤트 슬로우 모션처럼. 온 세계가 너무도 조용해진 것이다. 미동의 소리도 없었다. 그들은 달라이라마를 육안으로 쳐다보는 그 감격을 가슴으로, 눈빛으로만 표현했다. (중략) 달라이라마는 그들의 군주였고, 다르마의 구..
마술이 예지가 되는 순간 다음은 ‘판타지아’ 「환희기(幻戱記)」의 클라이맥스이자 대단원이다. 요술쟁이는 큰 유리 거울을 탁자 위에 놓고 시렁을 만들어놓는다. 거울을 열어 모두에게 구경시키니, 여러 층 누각과 몇 겹 전각이 단청을 곱게 칠했다. 관원 한 사람이 손에 파리채를 잡고 난간을 따라 서서히 걸어 간다. 아름다운 계집들이 서넛씩 짝을 지어 보검을 가지고 혹은 금병을 받들고, 혹은 봉생을 불고 혹은 비단 공도 차며, 구름 같은 머리와 아름다운 귀걸이가 묘하고 곱기가 비할 데가 없다. 방 안에는 백 가지 물건과 수없는 보물들이 그득하여 참으로 부귀가 지극하니, 여러 사람들은 부러움을 참지 못하여 서로 구경하기에 바빠서 이것이 거울인 줄도 잊어버리고 바로 뚫고 들어가려 한다. 그러자 요술쟁이가 즉시 거울..
판타지아(fantasia) 등불이 노끈에 이어져 저절로 불이 붙어 타오른다. 노끈을 따라 타면서 또 다른 등불로 이어진다. 4~50등이 일시에 타면서 주위가 환하게 밝아진다. 1천여 명의 미모의 남자들이 비단 도포에 수놓은 비단 모자를 쓰고 늘어섰다. 각각 정자 지팡이 양쪽 끝에 모두 조그만 붉은 등불을 달고 나갔다 물러섰다 하여 군진(軍陳) 모양을 하더니 순식간에 삼좌(三座) 오산(鼇山, 자라 등 위에 얹혀 있었다는 바닷속 산으로 신선이 산다고 함)으로 변했다가 다시 일순, 변해서 누각이 되고, 또 졸지에 네모진 진형으로 바뀐다. 황혼이 되자 등불빛은 더욱 밝아지더니 갑자기 ‘만년춘(萬年春)’이란 석 자로 변했다가 갑자기 ‘천하태평(天下太平)’ 네 글자로 변한다. 이윽고 두 마리 용이 되어 비늘과 뿔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