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1/07/09 (27)
건빵이랑 놀자
부와 권력에 눈 먼 이들에게 다시 서두의 논의로 돌아가면, 그에게 있어 이용과 후생은 정덕을 위한 교량이다. 정덕(正德)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그건 삶의 지혜이다. 이것이 뒷받침되지 않는 부와 편리함이란 무의미하다. 그런 점에서 연암이 추구한 문명론을 ‘근대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오히려 그의 문명론은 물질과 부를 향해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근대적 패러다임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취한다. 따라서 이용후생학자로서 연암을 다룰 때, 반드시 그가 ‘삶의 지혜’를 설파하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장대기(將臺記)」와 「황금대기(黃金臺記)」가 좋은 텍스트다. “만리장성을 보지 않고서는 중국이 얼마나 큰지 모를 것이고, 산해관을 보지 않고는 중국의 제도를 알지 못할 것이며, 관 밖의 ..
수레와 의학을 통한 이용후생 그의 관심은 이렇게 벽돌, 가마, 온돌에서 시작하여 수레, 말로 이동한다. 수레와 말은 공간적 한계를 가로지를 수 있는 이동수단이기 때문이다. “대개, 수레는 천리로 이룩되어서 땅 위에 행하는 것이며, 물을 다니는 배요, 움직일 수 있는 방이다. 나라의 쓰임에 수레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시급히 연구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조선에도 수레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조선의 수레는 바퀴가 온전히 둥글지 못하고 바퀴자국이 틀에 들지 않으니, 이는 수레 없음과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사대부들은 “우리나라는 길이 험하여 수레를 쓸 수 없다”고 한다. 언어도단! 수레를 쓰지 않으니 길이 닦이지 않는 것인데, 사태를 거꾸로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결론은 “사방이..
이용(利用)ㆍ후생(厚生)ㆍ정덕(正德) ‘이용(利用)’이 있은 뒤에야 후생(厚生)이 될 것이요, 후생이 된 뒤에야 정덕(正德)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롭게 사용할 수 없는데도 삶을 도탑게 할 수 있는 건 세상에 드물다. 그리고 생활이 넉넉지 못하다면 어찌 덕을 바르게 할 수 있겠는가. 「도강록(渡江錄)」 利用然後可以厚生 厚生然後正其德矣 不能利其用而能厚其生 鮮矣 生旣不足以自厚 則亦惡能正其德乎 이게 그 유명한 ‘이용후생’이라는 테제가 담긴 문장이다. 연암을 실학자 중에서도 ‘이용후생파’라고 분류하는 건 이런 명제들에 근거한다. 근데 어째서 ‘정덕’이라는 항은 생략되었을까? 덕을 바로 잡는다는 게 너무 추상적이어서 ‘헛소리’처럼 느껴진 건가? 아니면 너무 지당한 말이라 ‘하나마나’ 하다고 간주한 탓일까? 깊..
호모 루덴스(Homo Rudens) 그러니 이런 악동의 눈에 길 위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건이 유쾌한 이야깃거리가 된다. 한번은 길에서 소낙비를 만나, 비를 피하느라고 점포에 들러 차대접을 받고 있었다. 점포의 앞마루에 여인네들 다섯이 부채에 붉은 물감을 들여 처마 밑에 말리고 있는데 별안간 말몰이꾼 하나가 알몸으로 뛰어들었다. “머리에 다 해어진 벙거지를 쓰고, 허리 아래에 겨우 한 토막 헝겊을 가릴 뿐이어서 그 꼴은 사람도 아니요, 귀신도 아니고 그야말로 흉측했다.” 마루에 있던 여인들이 왁자그르 웃고 지껄이다가 그 꼴을 보고는 모두 일거리를 버리고 도망쳐버리고 말았다. 주인이 화가 치밀어 팔을 걷어붙이고는 뺨을 한 대 때렸다. 말몰이꾼의 말인즉슨, “말이 허기가 져서 보리찌꺼기를 사러 왔는데 당신은 ..
벽돌과 돌과 잠 그는 타고난 장난꾸러기다. 사람들 사이의 장벽을 터주면서 동시에 자신 또한 기꺼이 그 사이를 가로지르며 사건들마다 ‘유쾌한 악센트’를 부여하는 악동! 새벽에 길을 떠나면서 보니 지는 달이 땅 위에서 몇 자 안 되는 곳에 걸려 있다. 푸르고 맑은 기운이 감도는데, 모양은 아주 둥그렇다. 계수나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고, 옥토끼와 은두꺼비가 가까이서 어루만져질 듯하다. 항아의 고운 비단 옷자락에 살포시 흰 살결이 내비친다. 나는 정진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참 이상도 하이.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뜨네그려.” 정진사는 처음엔 달인 줄도 모르고 나오는 대로 응수한다. “늘상 이른 새벽에 여관을 떠나다 보니 동서남북을 분간하기가 정말 어렵구만요.” 일행이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일신수필(馹汛隨..
예기치 않은 사건 속을 경쾌히 질주하다 정진사ㆍ조주부ㆍ변군ㆍ내원, 그리고 상방 건량판사(乾粮判事)인 조학동 등과 투전판을 벌였다. 시간도 때우고 술값도 벌자는 심산이다. 그들은 내 투전 솜씨가 서툴다면서 판에 끼지 말고 그저 가만히 앉아서 술만 마시란다. 속담에 이른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는 격. 슬며시 화가 나긴 하나 어쩔 도리가 없다. 그렇지만 옆에 앉아 투전판 구경도 하고 술도 남보다 먼저 먹게 되었으니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니다. 與鄭進士 周主簿 卞君 來源 趙主簿 學東 上房乾粮判事 賭紙牌以遣閒 且博飮資也 諸君以余手劣 黜之座 但囑安坐飮酒 諺所謂‘觀光但喫餠’也 尤爲忿恨 亦復柰何 坐觀成敗 酒則先酌也 非惡事 벽 저쪽에서 가끔 여인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가냘픈 목청에 교태 섞인 하소연이 마치 제비나..
변화무쌍한 시공간을 은유로 담다 그러나 중원의 풍경이 이렇게 매혹적이기만 할 리가 없다. 땅의 크기만큼이나 거대한 스케일로 움직이는 대기의 흐름은 종횡무진으로 구름과 비를 몰고온다. 특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가공할 소낙비를 만났을 때, 그것은 일종의 경외감을 자아낸다. 이제묘(夷齊廟)에서 야계타(野雞坨)로 가는 도중 날씨가 찌는 듯하고 한점 바람기가 없더니 갑자기 사람들의 손등에 한 종지 찬물이 떨어지며, 마음과 등골이 섬뜩해지기에 사방을 둘러 보았으나 아무도 물을 끼얹는 이가 없다. 다시 주먹 같은 물방울이 모자와 갓 위에 떨어진다. 그제야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해 옆으로 바둑돌만 한 구름이 나타난다. 맷돌 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삽시간에 지평선 너머 사방에서 자그마한 구름이 일어난다...
3장 ‘천 개의 얼굴 천 개의 목소리’ 분출하는 은유 『열하일기』 곳곳에는 이국의 풍광과 정취가 매혹적으로 그려져 있다. 거대한 스케일과 무시로 변화하는 중원의 대자연을 포착하기 위해 그는 환상의 은유, 공감각, 돌연한 비약 등 화려한 수사학을 구사한다. “황대경씨의 글이 사모관대(紗帽冠帶)를 하고 패옥(佩玉)을 한 채 길가에 엎어진 시체와 같다면, 내 글은 비록 누더기를 걸쳤다 할지라도 앉아서 아침 해를 쬐고 있는 저 살아 있는 사람과 같다”고 자부했던 바대로, 그는 풀잎과 새의 울음, 별과 달의 움직임까지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기꺼이 ‘언어의 연금술사’가 된다. 그 이미지들은 때론 화려한 스펙터클로, 때론 그윽한 서정으로, 때론 공포의 어조로 변주되면서 은유와 환유의 퍼레이드를 펼친다. 먼저 그는 ..
대단원 열하에서 보낸 시간은 모두 엿새였다. 떠날 시간이 다가오자, 연암의 심정은 못내 아쉽다. “일찍부터 과거를 폐하여 하찮은 진사 하나도 이루지 못했”는데, “이제 별안간 나라를 떠나서 만 리 밖 머나먼 변방에 와 엿새 동안을 노닐”다 이제 다시 돌아가자니, 감회가 없을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떠나고 머무는 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사항이다. 국가간 외교사절단을 쫓아온 것이니만큼 공식일정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열하는 정녕 매혹적인 공간이었다. 거기다 황제의 특별한 배려까지 더해져 연암은 생애 가장 특이한 엿새를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인생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황제의 편애는 조선 사신단에 예기치 않은 불운을 안겨다준다. 바로 티베트의 지도자 판첸라마를 접견하도록 은혜(혹은 명령)를 베푼 ..
낯선 세계와의 만남 이때만 해도 그렇다. 황제의 70세 잔치인 천추절 당일날 황제가 있는 곳까지 부르는 바람에 엄청난 규모의 진공(進貢)행렬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연암이 보기에, 세계 곳곳에서 당도한 수레가 만 대는 될 듯하다. 사람은 지고, 약대는 신고, 가마에 태우고 가는데, 마치 형세가 풍우와 같았다. 거대한 바람이 움직이는 듯한 진공대열에서 연암의 눈을 사로잡은 건 억센 쇠사슬로 목을 맨 범과 표범, 그리고 길들인 사슴, 크기가 말만 하고 정강이는 학처럼 우뚝 선 악라사(鄂羅斯, 러시아의 옛이름) 개, 모양은 약대 같고 키가 서너댓 자나 되는데 하루 300리를 간다는 타계 등 기이한 금수(禽獸)들이었다. 반양(盤羊)이라는 동물도 신기하기 짝이 없다. 사슴의 몸에 가는 꼬리가 있으며, 두 뿔이 구..
열하, 그 열광의 도가니 삼도량에서 잠깐 쉬고 합라하를 건너 황혼이 될 무렵에 큰 재 하나를 넘었다. 조공을 실은 수레들이 앞다투어 달려간다. 서장관과 고삐를 나라히 하여 가는데 깊은 계곡에서 갑자기 범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두세 번 들려온다. 그러자 동시에 모든 수레가 길을 멈추고서 함께 고함을 친다. 소리가 천지를 진동할 듯하다. 아아, 굉장하구나!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 少歇三道梁 渡哈喇河 黃昏時 踰一大嶺 進貢萬車 爭道催趕 余與書狀倂轡而行 崖谷中忽有二三聲虎嘷 萬車停軸 共發吶喊 聲動天地 壯哉 연암으로 하여금 수도 없이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들게 했던 열하는 이렇게 천지를 진동하는 소리와 함께 그 위용을 드러냈다. 열하는 동북방의 요새답게 수레들이 달리는 소리, 범의 포효를 효과음으로 선사한 것이다...
‘천신만고(千辛萬苦)’ 그러나 가장 힘든 건 뭐니뭐니해도 ‘야간비행’이다. 일정을 당기기 위해서는 쉴참을 건너뛰는 것, 밤을 도와 행군하는 것 말고 달리 방도가 없었다. 마침내 온 나흘 밤낮을 쉬지 않고 달리는 마지막 난코스가 시작되었다. 무박나흘의 ‘지옥훈련’! 하인들이 가다가 발을 멈추면 모두 서서 존다. 나 역시 졸음을 이길 수 없어, 눈시울은 구름장을 드리운 듯 무겁고 하품은 조수가 밀려오듯 쉴 새 없이 쏟아진다. 눈을 빤히 뜨고 사물을 보긴 하나 금세 기이한 꿈에 잠겨버리고, 옆사람에게 말에서 떨어질지 모르니 조심하라고 일깨워주면서도 정작 내 몸은 안장에서 스르르 옆으로 기울어지곤 한다. 下隷行且停足者 皆立睡也 余亦不勝睡意 睫重若垂雲 欠來如納潮 或眼開視物 而已圓奇夢 或警人墜馬 而身自攲鞍 창대가 ..
열하로 가는 험난한 여정 물론 이건 수난의 서곡에 불과했다. 북방의 기후는 한마디로 예측불허 그 자체였다. 느닷없이 구름이 덮여 하늘은 깜깜해지고 바람이 삽시간에 모래를 날려 지척을 분간할 수 없게 되었으니, 하루에 도 천국과 지옥을 수시로 오르내려야 했다. 중류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남쪽에서 한 조각 검은 구름이 거센 바람을 품고 밀려왔다. 삽시간에 모래를 날리고 티끌을 말아올려 자욱한 안개처럼 하늘을 덮어버리니,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배에서 내려 쳐다보니 하늘빛이 검푸르다. 여러 겹 구름이 주름처럼 접힌 채, 독기를 품은 듯 노여움을 발하는 듯 번갯불이 번쩍번쩍하고 벽력과 천둥이 몰아쳐 마치 검은 용이라도 튀어 나올 듯한 모습이다.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 方渡至中流 忽有一片烏雲裹..
비약과 단절의 연암식 기법 열하로 가는 길은 연경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험난하다. 지리지에는 450여 리라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700리, 그것도 험준한 산과 물을 수도 없이 지나야 하는 코스다. 길은 멀고 일정은 빠듯한지라 인원을 최소한으로 제한해야 했다. 연암은 비공식수행원이라 가도 되고 안 가도 상관없는 처지다. 그래서 연암은 머뭇거린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요해의 땅을 밟을 것인가 아니면 북경에 남아 이국(異國)의 친구들을 사귈 것인가. 정사이자 삼종형인 박명원은 그에게 중국에 온 뜻을 되새기면서 이번 길이야말로 좀처럼 얻기 어려운 기회라며 꼭 가야 한다고 충고한다[汝萬里赴燕爲遊覽 今此熱河 前輩之所未見 若東還之日 有問熱河者 何以對之 皇城人所共見 至於此行 千載一時 不可不往]. 연암도 그..
아닌 밤중에 홍두깨 그러나 황제는 연경(북경)에 있지 않았다. 열하에 있는 피서산장에가 있었던 것이다. 사신 일행은 그저 제날짜에 도착하여 예만 표하면 그뿐이라고 여긴 탓에 이 문제를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정사만은 연경에 오는 도중 혹 열하까지 오라는 명이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근심을 놓지 않긴 했다. 그러나 연경에 도착하여 나흘 동안 별일이 없었기 때문에 마음을 놓는 순간, 사태는 예기치 않게 꼬이기 시작했다. ‘예부에 가서 표자문(表咨文)을 내고’ 숨을 돌리는 사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일이 벌어진다. 깊은 밤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요란스레 들려온다. 자다가 놀라 깨어나면서 연암은 머리가 어지럽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안 그래도 관문이 깊이 잠긴 것을 생각하면서 역사적인 변고를 떠..
2장 열하로 가는 ‘먼 길’ 요동에서 연경까지 압록강에서 연경까지가 약 2천여 리. 연경에서 열하까지가 약 700리. 토탈 육로 2천 700여 리. 상상을 초월하는 거리다. 낯설고 이질적인 공간은 언제나 모험의 대상이다. 공간적 이질성이 주는 장벽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여행은 불가능하리라. 다른 한편 두려움과 경이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 여행은 허망하기 짝이 없다. 스릴도, 서스펜스도 없다면, 대체 뭐 때문에 여행을 한단 말인가? 강을 건너 요동으로, 요동벌판을 지나 성경(지금의 심양)을 거쳐 북경 관내에 이르는 약 2천여 리의 여정은 어드벤처의 연속이었다. 찌는 듯한 무더위, 몸서리 쳐질 만큼 엄청난 폭우, 산처럼 몰아치는 파도 등 대륙의 위력은 만만치 않았다. 강을 건너는 때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소낙비는..
유리창을 헤맨 외로운 늑대 그래서 정말로 연암과 동행한 벗들은 멀리 있는 이들이다. 연암은 추억의 갈피를 들춰 여정마다에서 그들과 대화하고, 흔적을 찾는다. 특히 유리창(琉璃廠)에서 연암은 자기보다 앞서 연행을 했던 친구들 생각으로 깊은 감회에 젖는다. 조선시대 연행에서 ‘유리창’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무려 27만 칸에 달하는 서점, 골동품 가게들이 즐비한 지식의 보고(寶庫), 아니 용광로, 그야말로 세계의 지식이 흘러들어오고 다시 뻗어나가는 곳이 유리창이었다. 그러므로 근대 이전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동아시아 지식인들에게 있어 유리창은 연행의 필수코스였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공식적 업무가 없는 지식인들의 경우, 연행의 목적지는 북경이 아니라 유리창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였다. 홍대용(洪大容)이 ‘..
소중화가 만든 고지식 하긴 달밤뿐이랴. 한낮의 거리에서도, 시끌벅적한 장터에서도 그는 언제나 ‘솔로’였다. 그것은 무리로 움직이는가 아닌가와는 무관한 사항이다. 가장 가까운 동행자인 장복이와 창대는 뼛속까지 중화주의의 세례를 받았을 뿐 아니라, 대책 없는 고지식 계열의 인물들이다. 책문 밖에서 벌어진 에피소드 하나(「도강록渡江錄」). 아침밥을 먹고 행장을 정돈한즉, 양편 주머니의 왼편 열쇠가 간 곳이 없다. 샅샅이 풀밭을 뒤졌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장복이를 보고, “너는 행장을 조심하지 않고 늘 한눈을 팔더니, 겨우 책문에 이르러서 벌써 이런 일이 생겼구나. 속담에 사흘 길을 하루도 못 가서 늘어진다는 격으로, 앞으로 2천리를 가서 연경에 이를 즈음이면 네 오장인들 어디 남겠느냐. 내 듣건대 구요동(..
달빛 그리고 고독 대상을 투시하는 예리한 시각, 끈적하게 들러붙는 촉감적 능력은 잠행자만의 특이성이다. 대열을 일탈하여 솔로로 움직이고, 대열이 잠들 때 깨어 움직이는, 말하자면 지루하게 반복되는 리듬 속의 ‘엇박’ 같은 존재. 그는 새벽을 도와 먼저 떠나거나 아예 뒤떨어져 떠난다. 사행단의 또 다른 책임자인 부사(副使) 및 서장관과는 압록강에서 120리나 되는 책문을 지나 어느 민가에 들어서야 비로소 인사를 나눌 정도이다. 연암답게 “타국에 와서 이렇게 서로 알게 되니 가히 이역(異域)의 친구로군요[定交於他國 可謂異域親舊].”라는 농담을 잊지 않는다. 그뿐인가. 설령 함께 거리에 나섰다가도 온갖 자질구레한 일상사를 면밀히 주시하다 보면 일행들이 버리고 떠나기 일쑤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늘 무리 속에서..
티벳 불교에 관한 조선 최초의 기록 클라이맥스는 뭐니뭐니해도 티베트 불교와 관련된 부분이다. 열하에서 일어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티베트의 대법왕(大法王)인 판첸라마와의 마주침이다. 불교 자체를 사교(邪敎)로 취급하고 있던 당시 조선인들에게 밀교적 분위기에 감싸인 티베트 불교는 절대 상종해선 안 되는 이단(異端) 중의 이단이다. 조선 사행단이 벌인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은 뒤에서 자세히 언급될 것이다. 중국 선비들에게도 이 문제는 그리 녹록하지 않았던가 보다. 특히 옹정제(雍正帝)가 티베트 불교를 비판하는 상소를 올린 선비에게 찢어 죽이는 형벌을 내린 이후, 그들에게 있어 불교와 티베트에 관한 이야기는 금기 중의 금기였다. 「황교문답(黃敎問答)」에는 추사시(鄒舍是)라는 비분강개형의 투사적 지식인이 하나 나온..
속내를 끄집어내기 위한 동물적 감각 장사치들과의 밀회(?)가 수행원들의 감시를 따돌리기만 하면 되는 수준이라면, 열하에서 만난 재야선비들과의 필담은 거의 비밀 지하조직과의 접선을 연상시키듯 팽팽한 긴장 속에서 진행된다. 잘 알다시피, 당시는 만주족 출신이 지배하던 시절이라 사회 전체에서 이른바 만족과 한족 사이의 갈등이 만연해 있었다. 「피서록(避暑錄)」을 보면, 만주인 기려천(奇麗川)은 나이가 스무살이나 많고 벼슬도 조금 높은 한족 출신 윤형산(尹亨山)을 노골적으로 멸시한다. 그런가 하면 연경에서 돌아와 한인들에게 기려천에 대해 물었을 땐, “점잖은 선비가 어찌 되놈의 새끼를 안단 말이오[士大夫安知靼子]” 한다. 그만큼 두 종족 사이의 알력이 심했던 것. 연암이 만난 이들은 주로 한인들인데, 연암은 이..
스릴 만점의 잠행 실제로 그의 시선 혹은 필력은 불가사의할 정도다. 길에서 만난 여인네들의 장신구, 패션, 머리 모양에서부터 곰이나 범, 온갖 동물들의 모양새에 이르기까지 도무지 미치지 않는 영역이 없다. 한번은 객관 밖에서 재주부리는 앵무새의 털빛을 자세히 보려고 등불을 달아오는 동안에 주인이 가버리는 일도 있었다. 북진묘에서 달밤에 신광녕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는 수차(水車) 세 대가 막 불을 끄고 거두어 가려는 것을 잠깐 멈추어 세우고 ‘수총차(水統車)’를 이리저리 뒤집어 보며 그 제도를 상세히 체크하기도 했다. 또 열하에선 담장 너머로 광대 소리가 들리자 일각문 안을 엿보려고 사람들 머리 사이 빈곳으로 바라보는데, 한 사람이 연암이 오랫동안 발꿈치를 들고 선 것을 보고는 걸상 하나를 가져다가 그 위에..
이질적인 것과 접속하려는 욕망 연암의 목적은 관광이 아니다. 명승고적을 둘러보거나 기념비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일 따위에는 애시당초 관심이 없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 하고, 보이는 것에서 숨겨져 있는 것들을 보려 한다. 그런 까닭에 사신을 비롯하여 구종배(驅從輩, 하인들)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되놈의 나라’라서 산천이며 누대조차 노린내가 난다고 눈도 주지 ‘않은’ 채 오직 목적지만을 향해 나아가는 집합적 배치 속에서 연암은 그 길을 함께 밟아가면서도 끊임없이 옆으로 ‘샌다’. 이질적인 것들과 접속하려는 그의 욕망에는 경계가 무궁하다. 북경 안팎에 있는 여염집과 점포들을 유람할 때, 그는 이렇게 투덜거린다. 그러나 이번에 내가 구경한 것은 겨우 그 백분의 일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3부 ‘천의 고원’을 가로지르는 유쾌한 노마드 1장 잠행자 혹은 외로운 늑대 돈키호테와 연암 여행은 압록강을 건너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물론 여행은 훨씬 이전에 시작되었다. 한양에서 압록강에 이르기까지도 한 달여가 소요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암은 이 과정은 일체 생략해버렸다. 젊은 날 이미 ‘팔도유람’을 했던 그로서는 조선 내에서의 여정에 대해 특별한 감흥을 맛보기 어려웠을 터, 그러므로 「도강록(渡江錄)」이 『열하일기』의 서두를 장식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는 이 사절단의 비공식 수행원이다. 중요한 결정에는 낄 수도 없고, 공식적인 성명단자에는 포함되지도 않는다. 북경에서 느닷없이 열하로 가게 되었을 때, “정사(正使) 이하로 직함과 성명을 적어서 예부로 보내어 역말 편에 먼저 황제에게 알..
수많은 고원으로 이루어진 텍스트 『열하일기』는 수많은 ‘고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형식상으로는 압록강을 건너는 지점에서 시작하여 마테오 리치의 무덤에서 끝나지만 그것은 사실 시작도 끝도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중도에 있으며, 따라서 어디서 읽어도 무관하게 각각은 서로 독립되어 있다. 또 연행을 마치고 돌아와 연암협에서 다시 메모지를 들고 재구성한 것이기 때문에 연암 자신의 윤색도 적지 않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리하다가 만 경우도 있다. 내가 중국에서 돌아온 지 오래되어 당시를 회상하노라면 감감하기는 아침놀이 눈을 가리는 듯하고, 아득하기는 마치 새벽 꿈결의 넋 빠진 상태 같다. 그래서 남북의 방위가 바뀌기도 하고 이름과 실물이 바뀌기도 하였다. 余旣自中國還, 每思過境, 愔愔如朝霞纈眼, 窅窅如曉夢斂魂. ..
5장 『열하일기』 고원 혹은 리좀 벅찬 텍스트 측근 관료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문체반정(文體反正)의 바람은 마침내 그 진앙지로 『열하일기』를 찾아낸다. 정조는 당시 규장각 관료였던 남공철에게 이렇게 분부했다(『과정록過庭錄』 2권). 근자에 문풍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박지원의 죄다. 『열하일기』를 내 이미 익히 보았거늘 어찌 속이거나 감출 수 있겠느냐? 『열하일기』가 세상에 유행된 후로 문체가 이같이 되었거늘 본시 결자해지(結者解之)인 법이니 속히 순수하고 바른 글을 한 부 지어 올려 『열하일기』로 인한 죄를 씻는다면 음직으로 문임 벼슬을 준들 무엇이 아깝겠느냐?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무거운 벌을 내릴 것이다. 너는 즉시 편지를 써서 나의 이런 뜻을 전하도록 해라! 近日文風如此, 莫非朴某之罪也. ..
4. 정조의 권유로 「서이방익사(書李邦翼事)」를 짓다 丁已七月, 除沔川郡守, 特命先入侍後謝恩, 及進前, 上下敎曰: “予向飭文體之變改矣. 果改之乎?” 辭敎鄭重, 先君起伏對曰: “聖敎之下, 惶恐無以爲對” 上笑曰: “吾近得一好題目, 欲使爾製出一編好文字者, 久矣.” 因親爲備說濟州人李邦翼漂海事, 首尾纖衣. 又敎曰: “爾能詳聽否?” 又敎曰: “筵說在當日入侍承宣, 處當使之下送, 官衙閑暇時, 須善爲撰著以進也!” 先君遂引邦翼所奏, 逐端攷辨, 爲一編, 送于當日叅筵承宣, 以爲進覽焉. 인용목차유쾌한 시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