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1/07/11 (37)
건빵이랑 놀자
열하일기(熱河日記),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고미숙 서론 초판 머리말 / 개정신판을 내며 프롤로그 여행 / 편력 / 유목 1부 “나는 너고, 너는 나다” 1. 젊은 날의 초상 신체적 특징 태양인 우울증 ‘마이너리그’ 『방경각외전』 2. 탈주ㆍ우정ㆍ도주 미스터리(mistery) 분열자 ‘연암그룹’ 생의 절정 ‘백탑청연’ 연암이 ‘연암’으로 달아난 까닭은? 3. 우발적인 마주침 열하 마침내 중원으로! 웬 열하? 소문의 회오리 4. 그에게는 묘지명이 없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레퀴엠’ 높고 쓸쓸하게 “나는 너고, 너는 나다” 2부 1792년, 대체 무슨 일이? 1. 사건스케치 서학과 명청문집 문체 전향서 희생자 이옥과 문체반정의 결과 2. 문체와 국가장치 지식인들을 길들이는 첨단의 기제 소품과 소설..
함께 읽어야 할 텍스트 『열하일기 1, 2, 3』 김혈조 옮김, 돌베개 2009 / 『열하일기 상, 중, 하』 리상호 옮김, 보리, 2004 『열하일기』 완역본은 ‘돌베개’ 판과 ‘보리’ 판 두 가지다. 후자는 북한판을 보리출판사에서 재출간한 것이다. 전자는 명실상부한 완역본이다. 이전에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나온 것이 있긴 했지만 한문식 고어투가 많아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았는데, 이 ‘돌베개’ 판은 그런 단점을 말끔히 해소한 역작이다. 꼼꼼하고 치밀한 고증으로 기존의 오역을 잡아내고 동시에 문장도 아주 깔끔하고 매끄럽다. ‘보리’판은 북한판이라 일상적 구어체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상, 하』(개정판) 고미숙ㆍ김풍기ㆍ길진숙 옮김, 북드라망..
주요용어 해설 기계(machine) 분자생물학자 자크 모노에 의해 정립되었고, 들뢰즈/가타리에 의해 철학적으로 변용된 개념. 기계라고 하면 명령 혹은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이는 고정된 시스템을 떠올릴 테지만, 그때의 기계는 mechanism에 해당한다. 들뢰즈/가타리가 말하는 기계, 즉 machine은 어떤 활동 내지 에너지의 흐름을 절단하고 채취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모든 것이다. 따라서 접속하는 짝이 달라지면 동일한 것도 다른 기계가 될 수 있다. 예컨대 입은 식도와 접속하여 영양(음식물)의 흐름을 절단하고 채취하는 경우에 ‘먹는 기계’가 되고, 성대와 접속하여 소리의 흐름을 절단 채취하는 경우에 ‘말하는 기계’가 되며, 연인의 입이나 성기와 접속하여 성적 에너지의 흐름을 절단 채취하는 경우에는 ‘섹스..
『열하일기』 등장인물 캐리커처 장복과 창대, 그리고 말 연암의 수행인들, 장복은 하인이고, 창대는 마두(馬頭)다. 술은 입에도 못 대고, 일자무식인 데다 고지식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환상의 커플’ 중화주의가 뼛속까지 침투하여 중국은 ‘되놈의 나라’라며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종종 어이없는 해프닝을 저질러 연암을 질리게 한다. 갑작스럽게 열하행이 결정되면서 장복이만 연경에 남게 되자, 울고불고 하는 바람에 연암이 그걸 빌미로 ‘이별론’을 한바탕 늘어놓는다. 창대는 가는 도중 부상에, 몸살에 거의 죽을 고생을 한다. 덕분에 연암이 창대를 돌보는 처지가 된다. 이 고지식 커플에 비하면 말이 훨씬 더 지혜롭다. 이름은 없지만, 여행 내내 연암과 한몸이 되어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호곡장론(好哭場論)」ㆍ「..
중국의 장관은 ‘상의실종’과 ‘슬리퍼’에 있다?! “청문명의 장관은 버려진 기왓조각과 똥부스러기에 있다[壯觀在瓦礫 曰壯觀在糞壤]!” 『열하일기』 「일신수필(馹汛隨筆)」에 나오는 명문징이다. 기왓조각과 똥부스러기 하나도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재활용하는 하는 걸 보고 연암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거기에는 자기 삶에 대한 존중감이 깊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변방의 가난한 사람들까지 이렇게 자기 삶을 배려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태평천하가 아니겠는가, 이것이 바로 연암의 생각이었다. 그럼 지금 중국은 어떤가? 연암이 갔던 그 중국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일단 무지하게 먹고 가차 없이 버린다. 한마디로 쓰레기 천국이다. 이번엔 더 심했다. 단동과 책문 근처의 작은 마을들은 폭격을 맞은 듯 황폐했다. 자본주의하..
‘서프라이즈’ 사랑 여행은 만남이다. 길 위에 나서면 누군가를 만난다. 낯선 이든 혹은 이국인이든, 이번 여행도 그랬다. 다큐팀과의 만남은 아주 생소하고 신선했다. 정규직과 함께 일을 해본 적이 없는 데다 다큐를 찍는 프로들이라 더더욱 그랬다. 평소엔 여유있고 유연하지만 일에 대한 긴장감은 결코 놓치지 않는다. 작업이 끝나면 반드시 회식을 하는 것도 역시 정규직답다!^^ 하지만 나는 잠이 많은 데다 회식체질이 아니어서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대신 나의 룸메이트이자 동반 출연자였던 사랑이와의 만남은 아주 특별했다. 처음 사랑이를 봤을 때 두 번 놀랐다. 얼굴이 꼭 인형같이 생겼다. 무슨 연예인을 데려온 줄 알았다. 동갑내기인 양PD와 비교해도 완전 ‘애송이’처럼 보였다. 또 하나 이름이 ‘사랑’이라..
카메라 : 권력과 은총의 화신 압록강을 건넌 후 연암 일행은 책문에 도착한다. 책문은 조선과 중국 사이의 경계, 곧 국경이다. 검문검색을 통과하느라 연암 일행은 온갖 곤혹을 치른다. 하지만 정작 그건 워밍업에 불과했다. 책문을 넘자 진짜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름 아닌 폭우다. 한창 장마철에 떠난지라 폭우로 강이 범람하면 말도 사람도 꼼짝할 수가 없다. 노숙을 하면서 하염없이 머무르는 수밖에. 그러다가 홀연 날이 맑으면 정신없이 달려야 한다. 만수절 행사 전에 연경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도착했건만 황제는 연경에 있지 않았다. 열하의 피서산장에 가 있었던 것. 게다가 만수절 행사에 조선 사신단을 꼭 참여시키라고 특별명령까지 내렸다. 이런! 일행은 다시 짐을 챙겨 연경에서 열하..
국경과 자본, 그 사이에서 16시간 향해 끝에 마침내 단동에 도착했다. 제일착으로 나오긴 했지만 촬영장비 때문에 발이 묶였다. 중국정부의 허가를 받은 비자를 보여줘도 막무가내였다. 우리를 담당할 중국관리와 현지 코디(쭌)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빠져나간 대합실에 덩그러니 우리 일행만 남을 즈음. 중국관리와 현지코디가 도착했다. 그들 덕분에 간신히 통과하긴 했지만 그때부터 또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나와 사랑이가 단동 관문을 통과하는 장면을 찍으려 하자 현지 관리들은 무조건 안 된단다. 담당관리가 가지고 온 중앙정부의 신임장도 현지에선 통하지 않는다. 공산당 일당체제인데 중앙정부의 명령이 통하지 않는 아주 ‘이상한 제국’이다. 다들 열을 받았지만 결국 포기하고 북한식당에 가서 만찬을 즐..
다시 열하로!(2012년 여름) 인트로: 문득, 망망대해 2012년(임진) 7월(정미) 20일(임오) 오후 5시, 인천항 연안부두 제1 터미널에서 나는 대형선박에 몸을 실었다. 난생 처음하는 항해였다. 강원도 산간 지역 출신이라 그런지 그간 바다와는 통 인연이 없었다. 아니 그보다는 바다에 대한 욕구가 전혀 없었다는 편이 맞겠다. 내게 있어 바다는 그저 막막하고 심심한 곳이었다. 게다가 뱃멀미에 대한 공포도 적지 않았다. 『열하일기』의 시발점이 단동이고 거기에 가기 위해선 배를 타야 한다는 걸 진즉부터 알고 있었지만, 늘 비행기를 타고 심양으로 간 다음 거꾸로 요양 쪽을 되짚는 방식으로 여행을 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연유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마침내 바다여행을 하기로 한 것이다. 우째 이런 일이? ..
가는 곳마다 길이 되기를……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도무지 갈 데가 없었다. 로사(老舍)에서 보기로 한 경극도 취소되었고, 재래시장, 영화관 등 열린 광장들은 모조리 폐쇄되었다. 물어물어 연암이 다녀간 사찰들을 찾아갔건만, 거기조차 스산한 공고문과 함께 문이 닫혔다. 엄마가 깨를 사오라고 했다는 J와 여름나기 알뜰쇼핑을 계획했던 Y의 희망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L은 심각한 표정으로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댔고, 우리들은 이름없는 공원에 주저앉아 멍한 눈으로 거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열하에 다녀오는 동안 베이징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어 있었다. 느긋하게 관망하던 중국공산당이 인터넷 여론에 밀려 마침내 ‘사스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마스크의 행렬, 경계하는 눈빛들 귀국러시. 마치 외계인의 침입을 다..
낙타여! 낙타여! “찾았다!” 열하에서 돌아오는 길, 승합차 뒷좌석에서 L이 갑자기 소리쳤다. 그러고는 『열하일기』의 한 페이지를 내 코앞에 들이밀었다. 놀랍게도 거기엔 연암이 수천 마리의 낙타떼를 목격하는 장면이 또렷이 서술되어 있었다.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초판에서 연암이 낙타를 번번이 놓쳤다고 썼기 때문이다. 그간 『열하일기』를 수도 없이 읽어댔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텍스트 좀 제대로 읽으세요.” L은 의기양양, 기고만장이다. 윽, 안 그래도 여행 내내 건건사사 신경전을 벌이는 도중이었는데. 이 결정타 앞에서 나는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쓰라린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이건 또 어인 곡절인가. 가슴 저 밑바닥이 뭉클해진다. 전공도 다르고, 이번 여행..
달라이라마와 마르코스 ARS 퀴즈 하나. 달라이라마와 마르코스(Marx가 아님)의 공통점은? ① 유머로 승부한다. ② 권력이 없다. ③ 지도자다. 힌트 —— 한 사람은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서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끄는 수장이고, 또 한 사람은 멕시코 라칸도나 정글에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을 지휘하는 부사령관이다. 한 사람의 얼굴은 사방에 알려져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언제나 검은 마스크에 가려져 있다. 답은? ①, ②, ③번, 요약하면 둘 다 권력이 없는 유머러스한 지도자. 근데 이게 말이 되나? 된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정치적 상상력의 배치를 바꿀 것, 자발적 추대에 의해 구성되는 카리스마, 이데올로기가 아닌 직관의 정치, 적대가 아니라 생성에 기초하는 조직 등등, 그리고 무엇보다 이 두 사람에게는 ..
열하, 그 열광의 도가니 “노새의 족보는?” “엄마는 말, 아빠는 당나귀.” “맞았어. 말의 힘과 당나귀의 지구력을 겸비한 셈이지. 그럼, 엄마가 당나귀, 아빠가 말인 건?” “그런 놈도 있나? 글쎄다~.” “버새!” “그럼 힘도 없고 지구력도 딸리겠네? 그걸 워디에 써?” “아니지, 그러니까 되려 상팔자지. 우리도 그렇잖아. 푸하하.” L과 N, 그리고 그의 연인 Z의 ‘개콘’식 대화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고북구를 나와 열하로 가는 길목 곳곳에서 노새와 당나귀들이 출몰(?)했기 때문이다. 연암은 ‘하룻밤에 아홉 번이나 강을 건너는「일야구도하(一夜九渡河)」’ 어드벤처를 겪었건만, 지금 그 강들은 겨우 형체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고, 연암이 경탄해 마지않았던, 한 시간에 70리를 달리던 말들은 ..
‘앉아서 유목하기’ "건륭 45년 경자 8월 7일 밤 삼경(三更)에 조선 박지원이 이곳을 지나다[乾隆四十五年庚子八月七日夜三更, 朝鮮朴趾源過此].” 이름이란 한낱 ‘물거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던 연암이 이름을 남긴 곳. 그것도 남은 술을 쏟아 먹을 갈고, 별빛을 등불삼아 이슬에 붓을 적셔 자신의 흔적을 새겨넣은 곳, 고북구, 거용관과 산해관의 중간에 있어 험준하기로 이름난 동북부의 요충지다. 연암이 ‘무박나흘’의 고된 여정 속에서 통과했던 이곳을 우리는 베이징을 나선 지불과 반나절만에 도착했다. 백 개가 넘는다고 하는 입구 중 우리가 오른 곳은 반룡산(蟠龍山)에 있는 관문, ‘백두대간’을 연상시키는 천연의 요새 위로 장성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마치 용의 비늘인 양 꿈틀거린다. 오, 놀라워라! 하지만 어쩐..
여성들이여, 제기를 차라 베이징에서 합류하기로 한 후발대 중 세 명이 낙오했다. 사스 때문이란다. 뭔 사스? 아, 그러고보니 우리는 그동안 사스를 잊고 있었다! 요동벌판을 가로질러 오는 동안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었기 때문이다. 황사의 괴력에다, 고속도로 위의 질주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뺨치는 수준이었다. 추월 과속은 기본이고, 중앙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현란한 액션에는 그저 아연할 따름이었다. 우리가 그렇게 원시적 공포에 시달리는 동안, 도시에선 사스가 한층 기세를 떨치고 있었던가보다. 폭우로 범람한 강을 건널 때, 누군가 연암에게 물었다. 소경이 애꾸말을 타고 밤중에 깊은 물가에 섰는 것이야말로 위태로움[盲人騎瞎馬, 夜半臨深池]의 최고가 아니겠느냐고, 연암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소경은 아무것도..
사상체질 총출동! 나는 ‘용가리 통뼈’다. 너무 놀라지들 마시라. 마흔이 넘도록 뼈를 다치거나 삔 적이 거의 없기에 하는 말이다. 이번 여행중에도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첫관문이 있다는 발해만(渤海灣)엘 갔다가 택시기사의 실수로 바퀴에 발목을 밟히는 ‘참사’를 당했건만, 5분 만에 멀쩡해졌다. 강원도 산골 출신이라 그런가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신장이 튼튼해서 그렇단다. 사상의학적으로 보면 신장이 튼튼한 사람은 소음인에 해당된다. 소음인, 차분하고 내성적이다. 내가? 그럴 리가! 하긴, 어린 시절엔 하루에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니 그랬던 것도 같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보지 않는다.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아니나 다를까, 신장 못잖게 폐가 강하다. 날카로운 인상에 목소리가 높고 성질이 좀 급한 편이다..
사람이 살고 있었네 산해관을 지나서도 바람은 그치지 않았다. 차창 밖에서는 한겨울의 칼바람 같은 굉음이 들려오고, 고속도로 위의 나무들은 날아갈 듯 휘청댄다. 사진을 찍기 위해 차 밖으로 나설라치면 머리가 사방으로 곤두서고 다리가 꺾일 정도다. 맑은 하늘을 본 게 언제더라? 그래, 거기에 가면 좀 쉴 수 있겠지, 숲도 있고, 물도 있을 테니, 수양산 ‘이제묘’를 찾아갈 때의 심정은 대략 이랬던 것 같다. 아득한 고대, 은나라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아버지인 왕이 세상을 떠나자 ‘형님 먼저, 아우 먼저’하며 군주의 자리를 양보했다. ‘흠, 훌륭한 덕을 갖춘 군자들이로군’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정벌할 때 말고삐를 잡고 만류했으나 듣지 않자 수양산에 숨어서 고사리를 캐먹다 죽..
잡초는 범람한다! 2003년 4월 14일 오후, 여행의 첫 기착지 심양에 도착했다. 애초엔 배를 타고 단동으로 갈 작정이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일정이 바뀌는 바람에 심양이 출발지가 되었던 것이다. 일행은 나를 포함하여 모두 셋, 연암이 장복이와 창대를 동반했듯, 나 또한 Y와 J, 두 명의 후배와 함께 했다. 연암이 유머의 천재라면, 장복이와 창대는 연암조차 얼어붙게 할 정도의 ‘덤앤더머’였다. 그럼 우리 팀은? ‘갈갈이 패밀리’쯤으로 이해하면 된다. Y, 중국어와 한국어에 모두 능통하고, 여성들만 보면 일단 말을 걸고본다. J, 중국어는 물론 모국어인 한국어도 약간 더듬거린다. 여성들 앞에선 더더욱 얼어붙는다. 공항에는 밤열차를 타고 달려온 L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우리 연구실(연구공간 수유+너머)에..
열하일기의 길을 가다(2003년 봄) 2003년 5월부터 6월까지 『문화일보』에 연재되었던 것임을 밝혀둔다. 군데군데 내용을 약간씩 추가 수정하였다. 천 개의 길, 천 개의 고원 길을 나서기도 전에 여행은 시작되었다. 지난 2년 동안 나는 『열하일기』에 대한 ‘지독한 사랑’에 빠져 있었다. 동서고금 어떤 테마의 세미나에서건 『열하일기』로 시작해 『열하일기』로 마무리했고, 밥상머리에서 농담따먹기를 할 때, 산에 오를 때, 심지어 월드컵축구를 볼 때조차 『열하일기』를 입에 달고 살았다. 나의 원시적(!) 수다에 견디다 못한 후배들이 한때 『열하일기』를 ‘금서’로 지정하는 ‘운동’을 조직하기도 했을 정도다. 그럴 때면, 나는 이렇게 맞섰다. “내가 『열하일기』를 말하는 게 아니다. 『열하일기』가 나를 통해 자..
그들은 만나지 않았다! 윤리학적 태도에 있어서도 그들은 전혀 달랐다. 연암이 ‘우도(友道)’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 데 비해, 다산은 ‘효제(孝悌)’를 일관되게 주창한다. 다산에게 있어 효제는 독서의 근본이자 수행의 근간이다. 고정된 의미화를 거부하는 연암의 철학적 태도는 필연적으로 ‘우정의 윤리학’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지만, 그에 반해 주체의 명징성을 강조하는 다산에게는 우정보다는 ‘효제’라는 가치를 실천적으로 확충하는 것이 더 절실했던 것이다. 물론 이 차이는 그들의 구체적인 삶의 행로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연암에게는 벗의 사귐이 일상의 요체였지만, 다산의 인맥은 대체로 가문과 당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전자의 경우, 중심적인 가치로부터 벗어나 상하를 가로지르며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데 주력했..
호락논쟁에 대한 관점 차이 한편, 18세기 철학적 논쟁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한 인물성동이논쟁과 관련하여 볼 때, 천기론이 인간과 자연의 연속성을 강조한 동론(同論)의 입장과 연결된다면, 다산의 ‘상제관’은 이론(異論)과 궤를 같이 한다. 하지만 그것은 인격신의 설정을 통해 이론(異論)보다도 훨씬 더 과격한 인간중심주의를 표방한다. 다산에 따르면 인성과 물성은 결단코 다른 것이어서, 물성은 사물의 자연적 법칙에 한정된다. 인간의 존재는 이 물질계의 어떠한 유(類)로부터도 초월해 있으며, 이 모든 것을 ‘향유’하는 주체이다. 인간이 이러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영명(靈命)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영명은 기타 물질계와의 연속성이 부정된 독자적인 인식의 주체로서 작용한다. 자연의 모든 사물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
우주와 주체에 대한 관점 차이 다음, 우주와 주체에 대하여, ‘천’에 대한 연암의 관점은 ‘천기론(天機論)’의 지평 위에 있다. 연암을 비롯하여, 이덕무(李德懋), 박제가(朴齊家), 이옥(李鈺) 등에 의해 구성된 ‘천기론’은 ‘천리론(天理論)으로 표상되는 중세적 초원론을 전복하여 자연을 생성과 변이의 내재적 평면으로 변환시킨 것이다. 욕망, 여성, 소수성(minority) 등 기존의 체계에서 봉쇄되었던 개념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장이기도 했다. “참된 정(情)을 편은 마치 고철(古鐵)이 못에서 활발히 뛰고, 봄날 죽순이 성난 듯 땅을 밀고 나오는 것과 같다”는 이덕무의 언급이 그 뚜렷한 예가 된다. 이옥의 다음 글은 가장 명쾌한 선언에 해당된다. 천지만물은 천지만물의 성(性)이 있고, 천지만물의 ..
말과 사물에 대한 관점 차이 연암의 미학적 특질이 유머와 패러독스라면, 다산은 숭고와 비장미를 특장으로 한다. 앞에서 음미한 「양반전(兩班傳)」과 「애절양(哀絶陽)」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유머와 패러독스가 ‘공통관념’을 전복하면서 계속 미끄러져 가는 유목적 여정이라면, 숭고와 비장미에는 강력한 대항의미를 통해 자기 시대와 대결하고자 하는 계몽의 파토스(pathos)가 담겨 있다. 그리고 이런 미학적 차이 뒤에는 몇 가지 인식론적 접점들이 자리하고 있다. 먼저 말과 사물의 관계. 조선 후기 비평담론에 있어 언어와 세계의 불일치는 핵심적인 논제였다. 언어를 탈영토화하기 위한 다양한 모색이 이루어진 것도 그 때문이다. 크게 보면, 언어를 탈영토화하는 방향은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혁명시인의 비분강개 다산은 그와 달라서 지배적인 담론에 대항하기 위하여 거대한 의미체계를 새롭게 구축한다. 연암이 그러했듯이, 그 또한 문장학의 타락을 격렬하게 비난하고 과거학의 폐해를 이단보다 심하다고 분개해 마지않았지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그가 제시한 대안은 그것들이 잃어버린 원초적 의미들 혹은 역사적 가치들을 다시 복원하여 역동성을 불어넣는 것이었다. 다산에게 있어 진정한 시란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읽어내고, 세상을 경륜하려는 욕구가 충일한 상태에서 문득 자연의 변화를 마주쳤을 때 저절로 터져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내용이 아니면 그런 시는 시가 아니며,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을 분개하는 내용이 아니면 시가 될 수 없[不愛君憂國非詩也 不傷時憤俗非詩也]”다. ..
표현기계의 발랄함 자, 워밍업은 이 정도로 하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연암이 표현형식을 전복하는 데 몰두한 데 반해, 다산은 의미를 혁명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것은 두 사람의 비평적 관점에서도 그대로 확인되는 사항이다. 먼저, 연암 비평의 핵심은 주어진 언표의 배치를 변환하는 데 있다. 당대 고문이 지닌 경직된 코드를 거부하고 우주와 생의 약동하는 리듬을 포착하는 것이 ‘연암체’의 핵심이었다. 문장에 고문과 금문의 구별이 있는 게 아니다. (중략)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글을 쓰는 것이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본 바에 따라 그 형상과 소리를 곡진히 표현하고 그 정경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만 있다면 문장의 도는 그것으로 지극하다. 『나의 아버지 박지원』 4권 常..
‘표현기계’와 ‘혁명시인’의 거리 蘆田少婦哭聲長 갈밭 마을 젊은 아낙네 울음소리 길어라 哭向縣門號穹蒼 고을문 향해 울다가 하늘에다 부르짖네 夫征不復尙可有 수자리 살러 간 지아비 못 돌아올 때는 있었으나 自古未聞男絶陽 남정네 남근 자른 건 예부터 들어보지 못했네 舅喪已縞兒未澡 시아버지 초상으로 흰 상복 입었고 갓난애 배냇물도 마르지 않았는데 三代名簽在軍保 할아버지 손자 삼대 이름 군보에 올라 있다오 薄言往愬虎守閽 관아에 찾아가서 잠깐이나마 호소하려 해도 문지기는 호랑이처럼 지켜 막고 里正咆哮牛去皁 이정은 으르대며 외양간 소 끌어갔네 磨刀入房血滿席 칼을 갈아 방에 들어가자 삿자리에는 피가 가득 自恨生兒遭窘厄 아들 낳아 고난 만난 것 스스로 원망스러워라 蠶室淫刑豈有辜 무슨 죄가 있다고 거세하는 형벌을 당했나요..
서학(西學), 또 하나의 진앙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하나 더 있다. 서학이 그것이다. 정조 집권시에는 노론계열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패사소품 외에도 남인들을 중심으로 급속히 퍼졌던 서학 역시 정치적 소용돌이를 야기하는 또 하나의 진원지였다. 그럼에도 정조는 유독 전자를 문제삼음으로써 후자를 적극 보호해주었다. “서양학을 금지하려면 먼저 패관잡기부터 금지해야 하고, 패관잡기를 금지하려면 먼저 명말청초의 문집들부터 금지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명분이었다. 서학과 패관잡기가 대체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언뜻 비약과 모순투성이로 보이는 이런 논법의 속내는 사실 매우 단순하다. 서학은 교리가 너무 이질적이어서 솎아내기가 쉽지만, 패사소품은 은밀하게 침투하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내부를 교란한다는..
그때 ‘다산’이 있었던 자리 비평사적 관점에서 볼 때 문체반정(文體反正)은 하나의 특이점이다. 일단 ‘문체와 국가장치’가 정면으로 대결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그렇거니와, 무엇보다 그 사건으로 인해 18세기 글쓰기의 지형도가 첨예한 윤곽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열하일기』가 이 사건의 배후조종자로 지목되었고, 연암이 정조의 당근과 채찍을 교묘하게 피해갔음은 이 책 2부에서 밝힌 바와 같다. 그렇다면 그때 다산은 어디에 있었던가? 혈기방장한 20대 후반을 통과하면서 관료로서의 경력을 쌓고 있었던 다산은 문체반정이 일어나기 직전, 이런 책문을 올린다. 신은 혜성(彗星)ㆍ패성(孛星)과 무지개 흙비 오는 것을 일러 천재(天災)라 하고 한발 홍수로 무너지거나 고갈되는 것을 일러 지재(地災)라 한다면, 패관잡서..
오만과 편견 연암 박지원(1737~1805)과 다산 정약용(1762~1836). 이 두 사람은 조선 후기사에 있어 그 누구와도 견주기 어려운 빛과 에너지를 발산한다. 두 사람이 펼쳐놓은 장은 17세기 말 이래 명멸한 수많은 ‘천재’들이 각축한 경연장이면서 동시에 그 모든 것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특이성의 지대이다. 그래서인가? 그들이 내뿜는 빛에 눈이 부신 탓인가?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을 서로 유사한 계열로 간주하고, 그렇게 기억한다. 그러나 앞에서 언뜻 엿보았듯, 그들은 한 시대를 주름잡은 천재요 거장이라는 공통점 말고는 유사성을 거의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이질적이다. 그런데 어째서 둘은 마치 인접항처럼 간주된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둘을 비춘 렌즈의 균질성이 차이들을 평면화했기 때문이다. ‘중세적..
연암과 다산: 중세 ‘외부’를 사유하는 두 가지 경로 같은 책 다른 독법 그대가 태사공의 『사기(史記)』를 읽었다 하나, 그 글만 읽었지 그 마음은 읽지 못했구료. 왜냐구요. 「항우본기(項羽本紀)」를 읽으면 제후들이 성벽 위에서 싸움 구경하던 것이 생각나고, 「자객열전」을 읽으면 악사 고점리가 축을 연주하던 일이 떠오른다 했으니 말입니다. 이것은 늙은 서생의 진부한 말일 뿐이니, 또한 부뚜막 아래에서 숟가락 주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아이가 나비 잡는 것을 보면 사마천(司馬遷)의 마음을 얻을 수 있지요. 앞발은 반쯤 꿇고 뒷발은 비스듬히 들고,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해가지고 살금살금 다가가, 손은 잡았는가 싶었는데 나비는 호로록 날아가 버립니다. 사방을 둘러보면 아무도 없고, 계면쩍어 씩 웃다..
이름의 중력에서 벗어나 我服地黃湯 내가 지황탕을 마시려는데 泡騰沫漲 印我顴顙 거품은 솟아나고 방울도 부글부글 그 속에 내 얼굴을 찍어놓았네 一泡一我 一沫一吾 거품 하나마다 한 사람의 내가 있고 방울 하나에도 한 사람의 내가 있네 大泡大我 小沫小吾 거품이 크고 보니 내 모습도 커다랗고 방울이 작아지자 내 모습도 조그맣다. (中略) 我試嚬焉 一齊蹙眉 시험 삼아 얼굴을 찡그려보니 일제히 눈썹을 찌푸리누나 我試笑焉 一齊解頤 어쩌나 보려고 웃어봤더니 모두들 웃음을 터뜨려댄다. (中略) 斯須器淸 香歇光定 이윽고 그릇이 깨끗해지자 향기도 사라지고 빛도 스러져 百我千吾 了無聲影 백명의 나와 천 명의 나는 마침내 어디에도 자취가 없네 咦彼麈公 過去泡沫 아아! 저 주공은 지나간 과거의 포말인 게고 爲此碑者 現在泡沫 이 비..
네 이름을 돌아보라! ‘인성과 물성이 같다’는 것은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 사이의 경계를 설정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먼지’로 이루어졌을 뿐인데, 인간과 ‘인간 아닌 것’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가 대체 뭐가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그리고 이렇게 되는 순간, 인간 내부의 경계 또한 무의미해진다. 즉 개별인간들에게 부과된 고유한 정체성 역시 불변의 위치를 고수할 이유가 없다. 인연조건에 따라, 배치에 따라 일시적인 주체로 호명될 따름이지, 근원적으로는 모두가 무상(無常)한 것이다. 이런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인간은 자아의 영원성을 지키기 위해 안달한다. 무엇보다 이름이 그러하다. 이름이란 대체 무엇인가? 한번 자신의 이름을 돌아보라! 卽此汝名 匪在汝身 그것이 네 이름이기는 하지만 너의 ..
생태주의 연암은 윤리적인 차원에서도 이런 태도를 실천하려고 했다. 사사로이 도살한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개는 주인을 따르는 동물이다. 하지만 기르면 잡아먹지 않을 수 없으니, 처음부터 기르지 않는 게 낫다”며 집에서 개를 기르지 못하게 했다. 또 한번은 타고 다니던 말이 죽자 하인에게 묻어주게 했는데, 하인들이 공모하여 말고기를 나누어 먹은 일이 있었다. 연암은 살과 뼈라도 잘 수습하여 묻어주게 한 다음 하인의 볼기를 치며, “사람과 짐승이 비록 차이가 있다고는 하나 이 말은 너와 함께 수고하지 않았느냐? 어찌 차마 그럴 수가 있느냐?”며 내쫓았고, 그 하인은 문 밖에서 몇 달이나 죄를 빈 다음에야 비로소 집에 들어올 수가 있었다 한다. 열하에서 종마법에 대해 웅변을 토할 때도 그의 관점은 단지 실용..
인성 물성은 같다! 18세기 철학사의 주요한 이슈를 하나 꼽으라면, 단연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 논쟁이 될 것이다.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은 같은가? 다른가? 이것을 둘러싸고 연임이 속한 노론 경화사족들 내부에서 한바탕 논란이 벌어진다. 기본적으로 동양의 사유는 인성과 물성을 연속성의 차원에서 접근한다. 인간과 외부 사이에 확연한 경계를 설정하지 않는 것이 인식의 근본전제이기 때문이다. 물아일체(物我一體) 혹은 천인합일(天人合一) 이 도의 궁극적 지향점인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런 전제를 공유하면서도 그 내부에서는 인성/물성의 차이 및 상대적인 위계를 강조하는 쪽과 그 둘의 연속성을 극단적으로 지향하는 입장이 갈라졌던 것이다. 후자의 입장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담헌 홍대용(洪大容)이다. 사람에게는 ..
3장 인간을 넘어 주체를 넘어 만물의 근원은 ‘먼지’ 연암은 연행이 시작되자, 말 위에서 중원의 선비들과 만나면 어떻게 논변을 펼칠까를 궁리한다.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지전설, 지동설로 한판 붙어보는 것.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이미 일반적인 상식이 되었지만, 지구가 돈다는 것은 아직 서양에서도 밝히지 못한 논변이다. 물론 그건 연암이 독자적으로 밝힌 이론이 아니라, 친구 정철조(鄭喆祚)와 홍대용(洪大容)에게서 귀동냥한 것이다. 「곡정필담(鵠汀筆談)」에서 드디어 실전이 벌어진다. 곡정이 묻는다. 우리 유학자들도 근래에는 땅이 둥글다는 설[地球之說]을 자못 믿습니다. 대저 땅은 모나고 정지되어 있고, 하늘은 둥글고 움직인다고 하는 설은 우리 유학자의 명맥이지요. 한데, 서양 사람들이 그것을 혼란스럽게 만들..
소박한 이단 『열하일기』에 그려진 천주교는 그래서 매우 유치한 수준이다. 대저 저 서양인들이 말하는 야소(耶蘇, 예수)는 중국의 군자나 토번의 라마와 비슷합니다. 야소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늘을 공경하여 온 천지에 교리를 세웠지만, 나이 서른에 극형을 당하고 말았답니다. 해서, 그 나라 사람들이 몹시 애모하여 야소회를 설립하고는 그를 신으로 공경하여 ‘천주’라 부르게 되었지요. 그래서 야소회에 들어간 자는 반드시 비통해하면서 야소의 수난을 잊지 않는다고 합니다. 「곡정필담(鵠汀筆談)」 耶蘇者 如中國之語賢爲君子 番俗之稱僧爲喇嘛 耶蘇一心敬天 立敎八方 年三十遭極刑 而國人哀慕 設爲耶蘇之會 敬其神爲天主 入其會者 必涕泣悲痛 不忘天主 왕곡정은 이런 식으로 천주교를 간단히 정리한 뒤, 이것이 비록 부처를 배격하고 있으..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 열하에서 곡정과 필담할 때 담배가 화제에 오른 적이 있다. 이 담배는 만력 말년에 절동(浙東)과 절서(浙西) 지역에 널리 유행했습니다. 이 물건은 사람들의 가슴을 막히게 하고 취해 쓰러지게 하는 천하의 독초이지요. 먹어서 배가 부른 것도 아니건만 천하의 좋은 밭에서 나는 귀한 곡식과 이문이 같고, 부녀자와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고기보다 더 즐기며 차나 밥보다 더 좋아합니다. 쇠붙이와 불을 입에 당겨 대니, 이 또한 세상 운수라 해야 할지. 아무튼 이보다 더 큰 변괴가 어디 있겠습니까.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 萬曆末 遍行兩浙間 猶令人悶胸醉倒 天下之毒草也 非充口飽肚 而天下良田 利同佳糓 婦人孺子 莫不嗜如蒭豢 情逾茶飯 金火迫口 是亦一世運也 變莫大焉 그러자 연암은 “만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