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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형설지공(螢雪之功)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공부에 전심하여 얻은 보람 康家貧無油, 常映雪讀書. 少小淸介, 交遊不雜, 後至御史大夫. 晉車胤字武子, 南平人. 恭勤不倦, 博覽多通. 家貧, 不常得油. 夏月以練囊, 盛數十螢火, 以照書, 以夜繼日焉. 桓溫在荊州, 辟爲從事, 以辯識義理, 深重之. 稍遷征西長史, 遂顯於朝廷. 時武子與吳隱之, 以寒素博學, 知名于世, 又善於賞會, 當時每有盛坐, 而武子不在, 皆云: “無車公, 不樂.” 終吏部尙書. 『몽구(蒙求)』 車胤囊螢讀書, 孫康映雪讀書, 其貧不輟學可知. 一日, 康往拜胤, 不遇, 問家人: “主人何在?” 答曰: “到外邊捉螢火蟲去了.” 已而胤往拜康, 見康立於庭下, 問: “何不讀書?” 答曰: “我看今日這天色, 不償要下雪的光景.” -『소림광기(笑林廣記)』 개똥벌레의 불빛으로 공부한 ..
현두자고(懸頭刺股) 분발하여 공부하는 모습 孫敬字文寶. 常閉戶讀書, 睡則以繩繫頸, 懸之梁上. 嘗入市, 市人見之皆曰: “閉戶先生來也.” -『초국선현전(楚國先賢傳)』 孫敬字文寶, 好學, 晨夕不休. 及至眠睡疲寝, 以繩繫頭, 懸屋梁. -『태평어람(太平御覽)』 乃夜發書, 陳篋數十, 得『太公陰符之謀』, 伏而誦之, 簡練以爲揣摩. 讀書欲睡, 引錐自刺其股, 血流至足. 曰: “安有說人主不能出其金玉錦繡, 取卿相之尊者乎.”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 ‘현량(懸梁)’은 한(漢)나라 때 신도(信都) 사람 손경(孫敬)의 고사에서 유래한다. 손경의 자는 문보(文寶)이다. 항상 문을 닫아걸고 책을 읽었으며, 졸리면 목을 끈으로 묶어 들보에 매달았다. 그가 시장에 나가면 사람들이 모두 “폐호(閉戶) 선생이 왔다.”고 말했다...
패령자계(佩鈴自戒) 나쁜 습관을 바꾸려 애쓰다 李尙毅兒時, 性甚輕率, 座不耐久, 言輒妄發. 父兄愚之, 頻有責言李公, 佩小鈴以自戒. 每聞鈴聲. 猛加警飾, 出入坐臥, 未嘗舍鈴, 今日減一分, 明日減一分. 及至中年之後, 以太寬緩, 見譏於人而渾然天成, 無一毫作成之態. 後人之戒輕薄子弟者, 畢擧李公, 以爲法則云. 官至貳相. -『동평견문록(東平見聞錄)』 이상의(李尙毅)가 아이였을 때에 성품이 몹시 경솔하여, 앉아서도 오래 견디지 못하고 말만 하면 번번이 망령되이 말했다. 부모가 그것을 걱정하여 자주 책망하는 말을 하자, 공은 작은 방울을 허리에 차서 스스로를 경계하여 방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더욱 경계하고 삼가며, 나가서나 들어와서나 앉아서나 누워서나 일찍이 방울을 떼어 낸 적이 없었다. 이렇게 오늘 약간을 줄이고 내..
퇴고(推敲) 글을 여러 번 수정하다 島初赴擧京師. 一日於驢上得句云: “鳥宿池邊樹, 僧敲月下門.” 始欲着‘推’字, 又欲作‘敲’字, 煉之未定, 遂於驢上吟哦, 時時引手作推敲之勢, 觀者訝之. 時韓愈吏部權京兆, 島不覺衝至第三節. 左右擁至尹前, 島具對所得詩句云云. 韓立馬良久, 謂島曰: “作敲字佳矣.” 遂與幷轡而歸, 共論詩, 道留連累日, 與爲布衣之交. -『상소잡기(湘素雜記)』 가도(賈島)가 처음 과거를 보러 서울에 가던 길에 하루는 나귀 등에서 ‘새는 못가에 있는 나무에 깃들이고 중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린다.’라는 시구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퇴(推0’ 자를 쓸까 하다가 다시 ‘고(敲)’ 자를 쓸까 하며 결정을 못 하고 나귀 위에서 때때로 손짓으로 밀거나(推) 두드리는(敲) 동작을 하니, 보는 사람마다 이상하게 생..
청안시&백안시(靑眼視&白眼視) 호의적인 감정으로 보는 것과 악의적인 감정으로 보는 것 阮籍不拘禮敎, 能爲靑白眼. 見俗禮之士, 以白眼對之. 及嵆喜來, 卽籍爲白眼, 喜不懌而退. 喜弟康聞之, 乃齊酒挾琴造焉, 籍大悅, 乃見靑眼. 由是禮法之士疾之若讐. -『진서(晉書)』 「완적전(阮籍傳)」 완적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찾아오면 흰자위를 드러내었다는 말에서 ‘백안’이 유래했다. 백안(白眼)은 흰자위를 드러내고 흘겨보는 것을 말하고, 청안(靑眼)은 검은 눈동자를 가운데로 오게 하여 정상적으로 눈을 뜨고 보는 것으로 호의의 눈빛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겉뜻: 푸른 눈동자로 보다 & 흰 눈동자로 보다 속뜻: 정상적인 눈으로 볼 정도로 사물이나 사람을 호의적으로 보는 것 & 눈을 하얗게 뜨고 볼 정도로 사물이나 사람을 ..
지음(知音) 속마음까지 알아주던 나의 친구 伯牙鼓琴, 鍾子期聽之. 方鼓琴而志在太山, 鍾子期曰: “善哉乎鼓琴, 巍巍乎若太山.” 少選之間, 而志在流水, 鍾子期又曰: “善哉乎鼓琴, 湯湯乎若流水.” 鍾子期死, 伯牙破琴絕弦, 終身不復鼓琴, 以爲世無足復爲鼓琴者. 非獨琴若此也, 賢者亦然. 雖有賢者, 而無禮以接之, 賢奚由盡忠? 猶御之不善, 驥不自千里也. 『여씨춘추(呂氏春秋)』 「본미(本味)」 伯牙善鼓琴, 鍾子期善聽. 伯牙鼓琴, 志在登高山, 鍾子期曰: “善哉! 峨峨兮若泰山.” 志在流水, 鍾子期曰: “善哉! 洋洋兮若江河.” 伯牙所念, 鍾子期必得之. 伯牙游於泰山之陰, 卒逢暴雨, 止於巖下. 心悲, 乃援琴而鼓之. 初爲「霖雨」之操, 更造「崩山」之音. 曲每奏, 鍾子期輒窮其趣. 伯牙乃舍琴而嘆曰: “善哉! 善哉! 子之聽夫. 志想象猶吾..
백아절현(伯牙絶鉉) 참다운 벗의 죽음 伯牙鼓琴, 鍾子期聽之. 方鼓琴而志在太山, 鍾子期曰: “善哉乎鼓琴, 巍巍乎若太山.” 少選之間, 而志在流水, 鍾子期又曰: “善哉乎鼓琴, 湯湯乎若流水.” 鍾子期死, 伯牙破琴絕弦, 終身不復鼓琴, 以爲世無足復爲鼓琴者. 非獨琴若此也, 賢者亦然. 雖有賢者, 而無禮以接之, 賢奚由盡忠? 猶御之不善, 驥不自千里也. 『여씨춘추(呂氏春秋)』 「본미(本味)」 伯牙善鼓琴, 鍾子期善聽. 伯牙鼓琴, 志在登高山, 鍾子期曰: “善哉! 峨峨兮若泰山.” 志在流水, 鍾子期曰: “善哉! 洋洋兮若江河.” 伯牙所念, 鍾子期必得之. 伯牙游於泰山之陰, 卒逢暴雨, 止於巖下. 心悲, 乃援琴而鼓之. 初爲「霖雨」之操, 更造「崩山」之音. 曲每奏, 鍾子期輒窮其趣. 伯牙乃舍琴而嘆曰: “善哉! 善哉! 子之聽夫. 志想象猶吾心也...
지록위마(指鹿爲馬) 윗사람을 농간하여 권력을 멋대로 행사하다 趙高欲爲亂, 恐群臣不聽. 乃先設驗, 持鹿獻於二世曰: “馬也.” 二世笑曰: “丞相誤邪. 謂鹿爲馬.” 問左右, 左右或言馬, 以阿順趙高. 或言鹿者, 高因陰中諸言鹿者以法. 候群臣皆畏高. 『사기(史記)』 「진이세본기(秦二世本紀)」 中丞相趙高, 欲專秦權, 恐群臣不聽, 乃先設驗. 持鹿獻於二世曰: “馬也.” 二世笑曰: “丞相誤邪, 指鹿爲馬.” 問左右 或黙或言, 高陰中諸言鹿者以法. 後群臣皆畏高, 莫敢言其過. 『십팔사략(十八史略)』 진이세황제(秦二世皇帝) 秦나라 시황제가 죽자 측근 환관인 조고(趙高)는 거짓 조서(詔書)를 꾸며 태자 부소(扶蘇)를 죽이고 어린 호해(胡亥)를 세워 2세 황제로 삼았다. 현명한 부소보다 용렬한 호해가 다구기 쉬웠기 때문이다. 호해는 ..
조갑천장(爪甲穿掌) 손톱이 손바닥을 뚫을 정도의 굳센 결심을 하다 公, 少時, 卓熒不羈. 至四十始學, 發奮決心, 握左手. 不爲文章, 誓不開手. 讀書于北漢中興寺, 歲餘, 文理貫通, 詩格淸高. 寄詩於其婦翁曰: “書榻燈光暗, 硯池水色淸.. 管城吾所願, 兼望楮先生.” 蓋請四友之意也. 婦翁, 佳其晩學速成, 戱而答之曰: “梁忠義四十, 讀書山堂, 嗚呼! 晩矣.” 世人, 傳爲美談. 後登科日, 始欲開手, 則爪甲穿掌. -『대동기문(大東奇聞)』 조선 중종(中宗) 때 좌찬성을 지낸 양연(梁淵: ?~1542)은 마흔이 되어서야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대학자 양성지(梁誠之: 1415~1482)의 손자였던 양연은 어릴 때부터 빼어난 재주가 있어 주변에서 칭송이 자자했지만 재주만 믿고 공부를 게을리하여 이런 상황에 이른 것이다. 불..
이여반장(易如反掌)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 能聽忠臣之言百擧必悅. 必若所欲爲, 危於絫卵, 難於上天. 變所欲爲, 易於反掌, 安於泰山. 今欲極天命之壽, 敝無窮之樂, 究萬乘之勢, 不出反掌之易, 以居泰山之安, 而欲乘絫卵之危, 走上天之難, 此愚臣之所以爲大王惑也. -『한서(漢書)』 「매승전(枚乘傳)」 오왕(吳王) 유비(劉濞)는 야심이 큰 인물이어서, 중앙정부에 저항하여 반란을 일으킬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 무렵 한(漢)나라 경제(景帝)는 조조(鼂錯)를 어사대부로 기용하고, 조조의 계책에 따라 제후들의 영지를 삭감하기 시작했다. 유비는 다른 제후들의 영지가 삭감되는 것을 보고 자신도 이를 피할 수 없음을 알고 초(楚)나라의 왕 유무(劉戊)와 함께 조(趙), 교서(膠西), 교동(膠東), 치천(菑川), 제남(濟南) 등의..
의려지망(倚閭之望) 문에 기대어 기다리는 애틋한 부모의 마음 卻說齊大夫王孫賈, 年十二歲, 喪父, 止有老母, 湣王憐而官之. 湣王出奔, 賈亦從行, 在衛相失, 不知湣王下處, 遂潛自歸家. 其老母見之, 問曰: “齊王何在?” 賈對曰: “兒從王於衛, 王中夜逃, 已不知所之矣.” 老母怒曰: “汝朝去而晚回, 則吾倚門而望; 汝暮出而不還, 則吾倚閭而望. 君之望臣, 何異母之望子? 汝爲齊王之臣, 王昏夜出走, 汝不知其處, 尚何歸乎?” 賈大愧, 復辭老母, 蹤跡齊王, 聞其在莒州, 趨往從之. 比至莒州, 知齊王已爲淖齒所殺. 賈乃袒其左肩, 呼於市中曰: “淖齒相齊而弒其君, 爲臣不忠, 有願與吾誅討其罪者, 依吾左袒.” 市人相顧曰: “此人年幼, 尚有忠義之心, 吾等好義者, 皆當從之.” 一時左袒者, 四百餘人. 時楚兵雖眾, 皆分屯於城外. 淖齒居齊王之宮..
우공이산(愚公移山) 어리석음이 세상을 바꾼다 太形ㆍ王屋二山, 方七百里, 高萬仞, 本在冀州之南, 河陽之北. 北山愚公者, 年且九十面山而居, 懲山北之塞, 出入之迂也. 聚室而謀曰: “吾與汝畢力平險, 指通豫南, 達於漢陰, 可乎?” 雜然相許, 其妻獻疑曰: “以君之力, 曾不能損魁父之丘, 如太形ㆍ王屋何? 且焉置土石?” 雜曰: “投諸渤海之尾, 隱土之北.” 遂率子孫, 荷擔者三夫, 叩石墾壤, 箕畚運於渤海之尾, 鄰人京城氏之孀妻有遺男, 始齔跳往助之. 寒暑易節, 始一反焉. 河曲智叟, 笑而止之曰: “甚矣! 汝之不惠. 以殘年餘力, 曾不能毁山之一毛, 其如土石何?” 北山愚公長息曰: “汝心之固, 固不可徹. 曾不若孀妻弱子. 雖我之死, 有子存焉, 子又生孫, 孫又生子, 子又有子, 子又有孫, 子子孫孫, 無窮匱也. 而山不加增, 何苦而不平.” 河曲..
와각지쟁(蝸角之爭)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 필요가? 魏瑩與田侯牟約, 田侯牟背之. 魏瑩怒, 將使人刺之. 犀首公孫衍聞而恥之曰: “君爲萬乘之君也, 而以匹夫從讐! 衍請受甲二十萬, 爲君攻之. 虜其人民, 係其牛馬, 使其君內熱發於背. 然後拔其國. 忌也出走, 然後抶其背, 折其脊.” 季子聞而恥之曰: “築十仞之城, 城者旣十仞矣, 則又壞之, 此胥靡之所苦也. 今兵不起七年矣, 此王之基也. 衍亂人, 不可聽也.” 華子聞而醜之曰: “善言伐齊者, 亂人也. 善言勿伐者, 亦亂人也. 謂伐之與不伐亂人也者, 又亂人也.” 君曰: “然則若何?” 曰: “君求其道而已矣!” 惠子聞之而見戴晉人. 戴晉人曰: “有所謂蝸者, 君知之乎?” 曰“然.”, “有國於蝸之左角者曰‘觸氏’, 有國於蝸之右角者曰‘蠻氏’, 時相與爭地而戰, 伏尸數萬, 逐北旬有五日而後反.” 君曰:..
양두구육(羊頭狗肉) 실제적인 행동과 말이 다른 사람에 대해 靈公好婦人而丈夫飾者, 國人盡服之, 公使吏禁之曰: “女子而男飾者, 裂其衣, 斷其帶.” 裂衣斷帶, 相望而不. 晏子見, 公問曰: “寡人使吏禁女子而男子飾, 裂斷其衣帶, 相望而不止者何也?” 晏子對曰: “君使服之於內, 而禁之於外, 猶懸牛首於門, 而賣馬肉於內也. 公何以不使內勿服, 則外莫敢爲也.” 公曰: “善!” 使內勿服, 踰月, 而國莫之服. -『안자춘추(晏子春秋)』 「內篇」 雜下 춘추시대, 제나라 영공(靈公) 때의 일이다. 영공은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男裝)을 시켜놓고 완상(玩賞)하는 별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취미는 곧 백성들 사이에도 유행되어 남장한 여인이 날로 늘어났다. 그러자 영공은 재상인 안영(晏嬰)에게 ‘궁 밖에서 남장하는 여인들..
숙오음덕(叔敖陰德) 남에게 베푼 음덕이 자신에게 돌아오네 有陰德者, 必有陽報; 有隱行者, 必有昭明. -『회남자(淮南子)』 「인간훈(人間訓)」 孫叔敖爲嬰兒, 出遊而還, 憂而不食. 其母問其故, 泣而對曰: “今日吾見兩頭蛇, 恐去死無日矣.” 母曰: “今蛇安在?” 曰: “吾聞見兩頭蛇者死. 吾恐他人又見, 已埋之矣.” 母曰: “無憂. 汝不死. 吾聞之, 有陰德者, 天報以福.” 人聞之, 皆喩其爲仁也. 及令尹, 未治而國人信之 -『몽구(蒙求)』 영윤까지 승승장구했던 손숙오는 어렸을 때 쌍두사(雙頭蛇)를 보게 되었다. 속설에 ‘쌍두사를 본 사람은 죽는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손숙오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걱정에 휩싸인 채 식음을 전폐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이유를 물어보니 숙오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했고, 어머니께서 다시 “뱀이..
새옹지마(塞翁之馬) 삶을 거시적 시각으로 봐야하는 이유 夫禍福之轉而相生, 其變難見也. 近塞上之人有善術者. 馬無故亡而入胡, 人皆吊之. 其父曰: “此何遽不爲福乎?” 居數月其馬將駿馬而歸, 人皆賀之, 其父曰: “此何遽不爲禍乎?” 家富良馬, 其子好騎墮而折其髀, 人皆吊之. 其父曰: “此何遽不爲福乎?” 居一年, 胡人大入塞, 丁壯者引弦而戰, 近塞之人, 死者十九, 此獨以跛之故父子相保. 故福之爲禍, 禍之爲福, 化不可極, 深不可測也. -『회남자(淮南子)』 「인간훈(人間訓)」 옛날 중국 북방의 요새(要塞) 근처에 점을 잘 치는 한 노옹(老翁)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 노옹의 말[馬]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났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옹은 조금도 애석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누가 아오? 이 일이 복(福)이 될는지?..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교육엔 주변환경이 중요하다 孟軻之母, 其舍近墓. 孟子少也, 嬉戱爲墓間之事, 踊躍築埋, 孟母曰: “此非所以居子也.” 乃去舍市. 其嬉戱爲賈衒, 孟母曰: “此非所以居子也.” 乃徙舍學宮之傍. 其嬉戱乃設俎豆揖讓進退, 孟母曰“此眞可以居子矣.” 遂居之 孟子少也, 東家殺猪何爲, 母曰;“欲啖汝.” 旣而悔曰: “吾聞古有胎敎, 今適有知而欺之 是敎之不信.” 乃買猪肉以食之. 旣長就學遂成大儒 -「열녀전(烈女傳)」 鄒孟軻之母也, 號孟母. 其舍近墓, 孟子之少也. 嬉遊爲墓間之事, 踴躍築埋, 孟母曰: “此非吾所以居處子也.” 乃去舍市傍, 其嬉戲爲賈人衒賣之事, 孟母又曰: “此非吾所以居處子也.” 復徙舍學宮之傍, 其嬉遊乃設俎豆揖讓進退, 孟母曰: “眞可以居吾子矣.” 遂居之. 『列女傳』 「母儀傳」 전국시대, 유학자(儒學..
맹모단기(孟母斷機) 맹자 어머니의 교육관 孟子少也, 旣學而歸, 孟母方績. 問曰: “學何所至矣?” 孟子曰: “自若也.” 孟母以刀, 斷其織. 孟子懼而問其故, 孟母曰: “子之廢學, 若吾斷斯織也.” (……) 孟子懼旦夕勤學不息, 師事子思, 遂成天下之名儒. 君子謂 ‘孟母知爲人母之道矣.’ -「열녀전(烈女傳)」 맹자(孟子)는 공자(孔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제자가 되어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거니와, 이보다 앞서 소년시절에 유학에 나가 있던 맹자(孟子)가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어머니는 베를 짜고 있다가 맹자(孟子)에게 “네 공부는 어느 정도 나아갔느냐?”라고 물었고 맹자는 “아직 변한 것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짜고 있던 베를 옆에 있던 칼로 끊어버렸다. 맹자(孟子)가 섬찟하여 ..
삼고초려(三顧草廬) 인재를 구하고자 하는 절실함과 윗사람을 향한 노력의 진심 玄德曰: “大丈夫, 抱經世奇才, 豈可空老於林泉之下? 願先生, 以天下蒼生, 爲念, 開備愚魯, 而賜敎.” 孔明笑曰: “願聞將軍之志.” 玄德, 移坐促席, 而告曰: “漢室, 傾頹, 奸臣, 竊命, 備不量力, 欲伸大義於天下, 而智術淺短, 迄無所就. 惟先生, 開其愚, 而拯其厄, 實爲萬幸.” 孔明曰: “自董卓, 造逆以來, 天下豪傑, 竝起. 曹操, 勢不及袁紹, 而竟能克紹者, 非惟天時, 抑亦人謀也. 今操, 已擁百萬之衆, 挾天子, 以令諸侯, 此誠不可與爭鋒. 孫權, 據有江東, 已歷三世, 國險而民附, 此可用爲援, 而不可圖也. 荊州, 北據漢水, 利盡南海, 東連吳會, 西通巴ㆍ蜀, 此用武之地, 非其主, 不能守. 是殆天所以資將軍, 豈可棄乎? 益州, 險塞, 沃..
중석몰촉(中石沒鏃) 정신집중하면 돌에도 화살이 박힌다 廣出獵, 見草中石, 以爲虎而射之. 中石沒鏃, 視之石也. 因復更射之, 終不能復入石矣 -『사기(史記)』 「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 李廣, 出獵, 見草中石, 以爲虎, 而射之. 中石沒失, 視之, 石也. 他日射終不得入. 儒書言: “楚熊渠子出, 見寢石, 以爲伏虎. 將弓射之, 矢沒其衛.” 或曰: “養由基見寢石, 以爲兕也, 射之, 矢飲羽.” 或言李廣. 便是熊渠ㆍ養由基ㆍ李廣主名不審, 無實也. 或以爲虎, 或以爲兕, 兕虎俱猛, 一實也. 或言沒衛, 或言飲羽, 羽則衛, 言不同耳. 要取以寢石似虎兕, 畏懼加精, 射之入深也. -「논형(論衡)」 이광(李廣)은 중국(中國) 한(漢)나라의 문제(文帝) 때의 명장(名將)으로, 흉노족(匈奴族)을 물리치는데 큰 공(功)을 세운 인물(人物)로..
백미(白眉) 재능이 뛰어난 이 馬良字季常, 襄陽宜城人也. 兄弟五人, 竝有才名, 鄕里爲之諺曰: “馬氏五常, 白眉最良.” 良眉中有白毛, 故以稱之. -『三國志』 「촉서(蜀書)」 마량전(馬良傳) 유비(劉備)는 적벽대전 후 형주(荊州), 양양(襄襄), 남군(南郡)을 얻고 군신(群臣)을 모아서 앞으로의 계책을 물었다. 이때 유비를 두 번이나 구하여 준 이적(伊籍)이, “새로 얻은 땅들을 오래 지키려면, 먼저 어진 선비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유비가 이적(伊籍)에게 “어진 선비가 누구요?”라고 묻자, “형양(荊襄) 땅 마량(馬良)의 다섯 형제가 모두들 재명(才名)이 있는데, 가장 어진 이는 양눈썹 사이에 흰 털이 난 ‘양(良)’으로 자(字)는 계상(季常)이라고 합니다. 또 향리(鄕里)에서도 ‘마씨집 오상..
배중사영(杯中蛇影) 아무 것도 않은 일을 지나치게 걱정하다 予之祖父郴爲汲令, 以夏至日請見主薄杜宣, 賜酒. 時北壁上有懸赤弩, 照於杯, 形如蛇. 宣畏惡之, 然不敢不飮. 其日便得胸腹痛切, 妨損飮食, 大用嬴露, 攻治萬端, 不爲愈. 後郴因事過到宣家, 窺視問其故. 云: “畏此蛇, 蛇入腹中.” 郴還聽事, 思惟良久, 顧見懸弩, 必是也. 則使門下史將鈴下侍徐輦載宣, 於故處設酒, 杯中故復有蛇. 因謂宣, “此壁上弩影耳, 非有他怪.” 宣意遂解, 甚夷懌, 由是瘳. -『풍속통의(風俗通義)』 「세간다유견괴(世間多有見怪)」 嘗有親客, 久闊不復來. 廣問其故. 答曰: “前在坐蒙賜酒, 方欲飮, 見杯中有蛇, 意甚惡之, 旣飮而疾.” 於時河南聽事壁上有角, 漆畵作蛇. 廣意杯中蛇, 卽角影也. 復置酒於前處, 謂客曰: “酒中復有所見不?” 答曰: “見所..
미생지신(尾生之信) 신의가 굳은 사람인가? 어리석은 사람인가? 人有毁蘇秦者曰: “左右賣國反覆之臣也, 將作亂.” 蘇秦恐得罪歸, 而燕王不復官也. 蘇秦見燕王曰: “臣, 東周之鄙人也, 無有分寸之功. 而王親拜之於廟而禮之於廷, 今臣爲王卻齊之兵而(攻)得十城. 宜以益親, 今來而王不官臣者. 人必有以不信傷臣於王者. 臣之不信, 王之福也. 臣聞忠信者, 所以自爲也 進取者 所以爲人也. 且臣之說齊王, 曾非欺之也. 臣弃老母於東周, 固去自爲而行進取也. 今有孝如曾參, 廉如伯夷, 信如尾生, 得此三人者以事大王, 何若?” 王曰: “足矣” 蘇秦曰: “孝如曾參, 義不離其親一宿於外, 王又安能使之步行千里而事弱燕之危王哉; 廉如伯夷, 義不爲孤竹君之嗣, 不肯爲武王臣, 不受封侯而餓死首陽山下, 有廉如此, 王又安能使之步行千里而行進取於齊哉; 信如尾生, 與女子期..
모순(矛盾)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 或問儒者曰: “方此時也, 堯安在?” 其人曰: “堯爲天子.” “然則, 仲尼之聖堯奈何. 聖人明察在上位, 將使天下無姦也. 今耕漁不爭, 陶器不窳, 舜又何德而化? 舜之救敗也, 則是堯有失也. 賢舜, 則去堯之明察; 聖堯, 則去舜之德化: 不可兩得也. 楚人有鬻楯與矛者, 譽之曰: ‘吾楯之堅, 物莫能陷也.’ 又譽其矛曰: ‘吾矛之利, 於物無不陷也.’ 或曰: ‘以子之矛陷子之楯, 何如?’ 其人弗能應也. 夫不可陷之楯與無不陷之矛, 不可同世而立. 今堯·舜之不可兩譽, 矛楯之說也. 『한비자(韓非子)』 「난편(難篇)」 초(楚) 나라에 방패와 창을 파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방패를 자랑하며 “이 방패는 굳고 단단해서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고, 또 창을 자랑하여 “이 창의 날카로움으로 어..
망매지갈(望梅止渴) 상상이 갈증을 멈추게 하다 操曰: “適見枝頭梅子靑靑, 忽感去年征張繡時. 道上缺水, 將士皆渴. 吾心生一計, 以鞭虛指曰: ‘前面有梅林.’ 軍士聞之, 口皆生唾, 由是不渴. 今見此梅, 不可不賞, 又値煮酒正熟, 故邀使君小亭一會.” -『삼국연의(三國演義)』 魏武行役失汲道, 軍皆渴, 乃令曰: “前有大梅林, 饒子, 甘酸可以解渴.” 士卒聞之, 口皆出水, 乘此得及前源. -『세설신어(世說新語)』 「가휼(假譎)」 위(魏)나라의 조조(曹操)는 군대를 이끌고 작전에 나섰는데, 대단히 무더운 날씨로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군사들은 타는 듯한 무더위 속을 질서정연하게 진군했다. 해가 중천에 뜨자 더위는 점점 더해, 군복은 땀으로 흠뻑 젖고, 행군의 발걸음도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더위에 지쳐 쓰러지는..
아장동사(我將東徙) 남탓만 하다 梟逢鳩, 鳩曰: “子將安之?” 梟曰: “我將東徙” 鳩曰: “何故?” 梟曰: “鄕人皆惡我鳴, 以故東徙” 鳩曰: “子能更鳴, 可矣, 不能更鳴, 東徙猶惡子之聲” -『설원(說苑)』 올빼미와 비둘기가 만났다. 이사 가려는 올빼미에게 비둘기가 어디로 가려는지 물었더니, 올빼미는 “동쪽으로 이사 가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비둘기가 그 이유를 물으니, 올빼미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우는 소리를 싫어하기 때문에 이사가려 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비둘기는 “아무리 이사 가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말했고, “차라리 울음소리를 고치는 것만 못하다.”고 알려줬다. 겉뜻: 나는 장차 동쪽으로 이사 가려한다. 속뜻: 자신의 잘못된 점은 생각도 하지 않고 남탓만 하는 것을 말한다. 유의..
도원결의(桃園結義) 의형제를 맺다 次日, 於桃園中, 備下烏牛白馬祭禮等項, 三人焚香再拜而說誓曰: “念劉備ㆍ關羽ㆍ張飛, 雖然異姓, 旣結爲兄弟, 則同心協力, 救困扶危, 上報國家, 下安黎庶. 不求同年同月同日生, 只願同年同月同日死. 皇天后土, 實鑒此心, 背義忘恩, 天人共戮.” 誓畢, 拜玄德爲兄, 關羽次之, 張飛爲弟. -『삼국연의(三國演義)』 전한(前漢)은 외척(外戚)에 의해 망했고 후한(後漢)은 환관(宦官)에 의해 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후한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은 황건적(黃巾賊)의 봉기에서 찾을 수 있다. 문란한 국정에 거듭되는 흉년에 백성들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여 태평도(太平道)의 교조 장각(張角)의 깃발 아래로 모여 들어 누런 수건을 머리에 두른 도적떼가 되었는데 그 수는 무려 50만에 이르렀다고 한다. ..
단장(斷腸) 새끼를 잃은 어미 원숭이의 애통함 桓公入蜀, 至三峽中. 部伍中有得猨子者, 其母緣岸哀號. 行百餘里不去, 遂跳上船, 至便卽絶. 破視其腹中, 腸皆寸寸斷. 公聞之, 怒, 命黜其人. -『세설신어(世說新語)』 「출면편(黜免篇)」 진(晉)나라 환온(桓溫)이 촉(蜀)으로 가다가 장강 중류의 삼협(三峽)을 지나게 되었다. 한 병사가 새끼 원숭이 한 마리를 잡아 왔는데, 그 원숭이 어미가 강안(江岸)에서 울며 백여 리를 뒤따라와 배 위에 뛰어오르자마자 혼절하고 말았다. 원숭이의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모두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환온은 크게 노하여 그 병사를 내쫓아 버렸다. 겉뜻: 창자가 끊어지다. 속뜻: ‘견딜 수 없이 심한 슬픔이나 괴로움’을 말한다. 유의어: 구회지장(九回之腸), 단..
노마지지(老馬之智) 늙은 말과 늙은 개미의 지혜를 빌리다 管仲ㆍ隰朋從於桓公而伐孤竹, 春往冬反, 迷惑失道. 管仲曰: “老馬之智可用也.” 乃放老馬而隨之, 遂得道. 行山中無水, 隰朋曰: “蟻冬居山之陽, 夏居山之陰, 蟻壤一寸而仞有水.” 乃掘之, 遂得水. 以管仲之聖而隰朋之智, 至其所不知, 不難師與老馬老蟻, 今人不止以其愚心而師聖人之智, 不亦過乎. -『한비자(韓非子)』 「설림(說林)」 上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齊桓公)이 명재상 관중과 대부 습붕을 데리고 고죽국을 정벌하러 떠났다. 시작할 때는 봄이었지만 전쟁이 길어져 겨울에서야 전쟁이 끝났다. 귀국할 때 지름길을 택했지만 그로 인해 길을 잃게 됐다. 낙심하며 헤매고 있을 때 관중은 늙은 말을 골라 고삐를 풀어놨더니 그 말은 본능적으로 후각과 경험에 따라 길을 찾아가..
할고공친(割股供親) 어버이를 극진히 봉양하다 熊川州, 有向得舍知者. 年凶其父幾於餒死, 向得, 割股以給養. 州人, 具事奏, 聞景德王賞賜租五百石. -『三國遺事』 이때 조조는 이익이 없다고 하여 한중에서 후퇴하고, 그곳을 확보한 유비는 스스로 한중왕(漢中王)이 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위(魏)나라는 촉한(蜀漢)과 오(吳)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하기에 이른다. 겉뜻: 넓적다리를 베어 어버이를 공양하다 속뜻: 자신의 소중한 것을 희생하면서까지 어버이를 최선을 다해 효도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유의어: 割股療親(할고료친), 反哺之孝(반포지효) 인용 목차
계륵(鷄肋) 실행하자니 이득은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상황 操收兵於斜谷界口扎住. 操屯兵日久, 欲要進兵, 又被馬超拒守; 欲收兵回, 又恐被蜀兵耻笑, 心中猶豫不決. 適庖官進鷄湯. 操見碗中有鷄肋, 因而有感於懷. 正沉吟間, 夏侯惇入帳, 禀請夜間口號, 操隨口曰: “鷄肋, 鷄肋.” 夏侯惇傳令衆官, 都稱鷄肋. 行軍主簿楊修, 見傳鷄肋二字, 便敎隨行軍士, 各收拾行裝, 準備歸程. 有人報知夏侯惇. 惇大驚, 遂請楊修至帳中間曰: “公何收拾行裝?” 修曰: “以今夜號令, 便知魏王不日將退兵歸也. 鷄肋者, 食之無肉, 棄之有味. 今進不能勝, 退恐人笑, 在此無益, 不如早歸. 來日魏王必班師矣, 故先收拾行裝, 免得臨行慌亂.” -『삼국연의(三國演義)』 修字德祖, 好學, 有俊才, 爲丞相曹操主簿, 用事曹氏. 及操自平漢中, 欲因討劉備, 而不得進, 欲守..
거안제미(擧案齊眉) 남편을 깎듯이 공경하다 梁鴻字伯, 扶風平陵人也. 家貧而尙節介. 同縣孟氏有女, 肥醜而黑, 力擧石臼. 擇對不嫁., 曰: “欲得賢如梁伯者.” 鴻聞而聘之, 字之曰‘德曜,’ 名孟光. 至吳爲人賃, 每歸, 妻爲具食, 不敢於鴻前, 仰視, 擧案齊眉. -『후한서(後漢書)』 「양홍전(梁鴻傳)」 梁鴻字伯鸞, 扶風平陵人也. … (중략) … 後受業太學, 家貧而尙節介, 博學無不通. … (중략) … 鄕里勢家慕其高節, 多欲女之, 鴻竝絶不娶. 同縣孟氏有女, 肥醜而黑, 力擧石臼. 擇對不嫁, 至年三十, 父母問其故, 曰: “欲得賢如梁伯鸞者.” 鴻聞而聘之. … (중략) … 遂至吳, 依大家皐伯通, 居廡下, 爲人賃舂. 每歸, 妻爲具食, 不敢於鴻前仰視, 擧案齊眉. 伯通察而異之曰: “彼傭能使其妻敬之如此, 非凡人也.” 乃方舍之於家...
결초보은(結草報恩) 죽어서도 은혜를 갚다 秋七月, 秦桓公伐晉, 次于輔氏. 壬午, 晉侯治兵于稷, 以略狄土, 立黎侯而還. 及雒, 魏顆敗秦師于輔氏, 獲杜回, 秦之力人也. 魏武子有嬖妾, 無子. 武子疾, 命顆曰: “必嫁是.” 疾病則曰: “必以爲殉.” 及卒, 顆嫁之曰: “疾病則亂, 吾從其治也.” 及輔氏之役, 顆見老人結草以亢杜回, 杜回躓而顚, 故獲之. 夜夢之曰: “余而所嫁婦人之父也. 爾用先人之治命, 余是以報.”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선공(宣公)」 15년 춘추시대 진(晉) 나라의 위무자(魏武子)에게 젊은 첩이 있었는데 위무자가 병이 들자 본처의 아들 과(顆)를 불러 “네 서모를 내가 죽거든 개가(改嫁)시켜라.”라고 말했다. 위무자의 병세가 점점 악화되어 위독한 지경에 이르게 되자 아들 과(顆)에게 다시 분부하..
각주구검(刻舟求劍) 고지식함이란 무엇인가? 楚人有涉江者, 其劍自舟中墜於水. 遽契其舟曰: “是吾劍之所從墜.” 舟止, 從其所契者, 入水求之. 舟己行矣而劍不行, 求劍若此, 不亦惑乎. 以古法爲其國與此同. 時己徙矣, 以法不徙. 以此爲治, 豈不難哉. -『여씨춘추(呂氏春秋)』, 「찰금(察今)」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 나라의 한 젊은이가 양자강(揚子江)을 건너기 위해 배를 탔다. 배가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그만 실수하여 손에 들고 있던 칼을 강물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어찌 할 줄 몰라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결국 젊은이는 하나의 꾀를 냈다. 그래서 허둥지둥 허리춤에 있던 단검을 빼서 칼이 떨어진 곳을 배에 새기기 시작했다. 이윽고 배가 나루터에 도착하자 그는 곧 옷을 벗고 배 밑의 칼로 표시한 부분의 강물로 들..
고사성어와 한바탕 춤을 춰야 하는 이유? 단어란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공표하여 하나의 단어가 사용될 수 있다해도, 그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문화의 변천에 따라 의미가 다양하게 변하며 흘러왔다. 사람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변해가듯이, 단어에도 생명력이 있는 셈이다. ‘양반(兩班)’이란 단어는 조선시대에는 ‘문반(文班)과 무반(武班)을 통칭하는 말’로 계층을 나타내는 단어로 쓰였으나, 해방 이후 서민들에게 광범위하게 쓰이면서 의미가 급격하게 추락하였다. 지금은 “이 양반이 어디서 삿대질이야~”라는 문장처럼 ‘양반=사람’이라는 의미로 변한 것이다. ▲ 양반이란 하나의 단어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렇듯 변해왔다. 오해를 낳는 말과 글 이렇듯 단어는 그 단어가 만들어진 시대상을..
이학규李學逵: 1770(영조 46)~1835(헌종 1) 본관은 평창(平昌). 자는 성수(醒叟ㆍ惺叟), 호는 낙하생(洛下生) 또는 낙하(洛下). 1. 서울의 황화방(皇華坊) 외가집에서 태어남. 외조부는 이용휴(李用休)이며, 이가환(李家煥)은 그의 외숙임. 2. 외가를 통해 실학적 학풍을 접했으며 26세에 규장각의 도서 편찬 일에 참여함. 3. 정조 사후에 신유사옥(辛酉迫害)에 휩쓸려 24년간(1801~1824)이나 경상도 김해 땅에서 귀양살이를 함. 4. 정약용과 같은 처지에 있었고 가계적(家系的)으로도 연결되어 있어 정약용의 창작 활동이 깊은 영향을 끼침. 5. 저서로는 『낙하생고(洛下生藁)』 3책으로 출간됨. 산유화山有花앙가오장秧歌五章기경기사 북풍己庚紀事 北風기경기사 격고己庚紀事 擊皷기경기사 구산己庚紀..
나를 알아주는 유일한 친구 유백아는 춘추시기 촉나라의 저명한 음악가이다. 유백아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천부성이 아주 높았으며 음악을 남달리 좋아하였다. 그는 당시의 유명한 연주가 成連을 스승으로 모시고 음악을 공부하였다. 3년이 지난 뒤 유백아는 당지에서 명성 높은 연주가가 되였지만 예술적으로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없는 것으로 인하여 고민하였다. 그의 속마음을 꿰뚫어 본 스승 성연은 그에게, “나는 이미 나의 전부의 기예를 자네에게 가르쳤고 자네 또한 잘 소화시켰다. 음악의 감수성과 이해에 있어서는 나 자신도 아직 터득하지 못하고 있다. 나의 스승 方子春은 뛰어난 연주가로서 음악에 대해 독특한 감수성을 지닌 분이다. 그 분은 지금 동해의 한 섬에 살고 있는데 자네를 그 분한테 데리고 가서 계속 가르..
나를 알아주는 유일한 친구 ‘伯牙絕弦’, 是講述‘知音難求’的一個故事, 伯牙與鍾子期是一對千古傳誦的至交典範. 伯牙善於演奏, 鍾子期善於欣賞. 這就是‘知音’一詞的由來. 後鍾子期因病亡故, 伯牙悲痛萬分, 認為世上再無知音, 天下再不會有人像鍾子期一樣能體會他演奏的意境. 所以就‘破琴絕弦’ 把自己最心愛的琴摔碎, 終生不再彈琴了. (特此聲明: 經考證, 伯牙原本就姓伯. 說他“姓俞名瑞, 字伯牙”) -『漢語詞彙』 해석 ‘伯牙絕弦’, 是講述‘知音難求’的一個故事, ‘伯牙絕弦’이란 ‘지음은 구하기가 어렵다’라고 강론한 하나의 고사로 伯牙與鍾子期是一對千古傳誦的至交典範. 백아와 종자기는 오래도록 구전되어 오던 ‘지극한 사귐의 표본’이다. 伯牙善於演奏, 鍾子期善於欣賞. 백아는 잘 연주했고, 종자기는 잘 기쁘게 감상했다. 這就是‘知音’一詞的由來..
호의적인 감정으로 보는 것과 악의적인 감정으로 보는 것 靑眼視 & 白眼視 阮籍不拘禮敎, 能爲靑白眼. 見俗禮之士, 以白眼對之. 及嵆喜來, 卽籍爲白眼, 喜不懌而退. 喜弟康聞之, 乃齊酒挾琴造焉, 籍大悅, 乃見靑眼. 由是禮法之士疾之若讐. -『晉書』 「阮籍傳」 해석 阮籍不拘禮敎, 能爲靑白眼. 완적은 예교에 구애받지 않고 靑眼을 하거나 白眼(흰 눈동자)를 만들 수 있었다. 見俗禮之士, 以白眼對之. 세속 예의에 갇힌 선비를 보면 흰 눈동자로 그들을 대했다. 及嵆喜來, 卽籍爲白眼, 喜不懌而退. 혜희가 찾아오자 곧 완적은 백안을 하니 혜희는 기뻐하지 않고서 물러갔다. 喜弟康聞之, 乃齊酒挾琴造焉, 혜희의 아우 혜강이 그걸 듣고 곧 술을 마련하고 거문고를 끼고 찾아오니, 籍大悅, 乃見靑眼. 완적이 크게 기뻐하며 곧 청안을 ..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 易如反掌 能聽忠臣之言百擧必悅. 必若所欲爲, 危於絫卵, 難於上天. 變所欲爲, 易於反掌, 安於泰山. 今欲極天命之壽, 敝無窮之樂, 究萬乘之勢, 不出反掌之易, 以居泰山之安, 而欲乘絫卵之危, 走上天之難, 此愚臣之所以爲大王惑也. -『漢書』 「枚乘傳」 해석 能聽忠臣之言百擧必悅. 충신의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온갖 행동거지가 반드시 즐거울 것입니다. 必若所欲爲, 危於絫卵, 반드시 만약 하시려는 것을 하려 한다면 難於上天. 쌓아놓은 계란보다 위태롭고 하늘에 오르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變所欲爲, 易於反掌, 安於泰山. 하고자 하는 것을 바꾼다면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울 것이고 태산보다 편안할 것입니다. 今欲極天命之壽, 敝無窮之樂, 究萬乘之勢, 이제 하늘이 명령한 목숨을 다하고 무궁한 즐거움을 없애면서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