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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사전 - 182. 신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182. 신

건방진방랑자 2020. 4. 28.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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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

왕망(王莽)이 세운 나라의 국호(國號).

 

신가항만지유함(信可行蠻只有諴)

공자(孔子)말이 충신(忠信)하고 행실이 독경(篤敬)하면 비록 오랑캐 나라라도 행해질 수 있다[言忠信, 行篤敬, 雖蠻貊之邦行矣].” 하였다.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신각(申恪)

조선시대 무신.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중위대장(中衛大將)으로서 서울 수호에 임했고, 도원수(都元帥) 김명원(金命元)휘하에서 부원수 자격으로 한강을 지키다가 패전, 유도대장(留都大將) 이양원(李陽元)을 따라 양주(楊州)로 가 있다가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이혼(李渾)의 응원으로 흩어진 병력을 다시 규합, 양주 해유령(蟹踰嶺)에서 왜군을 요격하여 대파하였다. 그러나 당시 한강에서 패전하고 임진(臨津)에 피신해 있던 도원수 김명원의 무고 장계(狀啓)로 인하여 참형(斬刑)을 당했다. 참형이 집행되던 날 오후에 양주의 첩보가 도착했는데, 그 첩보를 받은 왕은 급히 선전관(宣傳官)을 양주로 보내 그의 형 집행을 정지하도록 하였으나 선전관이 현지에 당도했을 때는 그의 참형이 이미 집행된 뒤였음. 징비록(懲毖錄)卷一

 

신거(宸居)

임금의 거처하는 궁중을 신()이라 한다.

 

신경(神京)

서울이란 뜻으로, 임금을 가리킨다.

 

신계부긍명(晨鷄不肯鳴)

도연명(陶淵明)의 시에 베옷 입고 긴 밤 지새우나니, 오늘은 새벽닭도 울지 않으려는 듯[被褐守長夜 晨鷄不肯鳴].”이라는 구절이 있다. 도연명집(陶淵明集)3 飮酒 二十首

 

신고(神皐)

신명(神明)의 구역을 말한다. 한서(漢書)』 「교사지(郊祀志)옛날부터 옹주(雍州) 지방은 지대가 높아 신명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하늘에 제사하고 여러 신()에게 제사하는 사당이 많이 있다.” 하였다.

 

신고(神瞽)

천도(天道)를 알았던 옛 악정(樂正)이라고 한다.

 

신고송한궁(辛苦送韓窮)

살림살이의 곤궁한 것을 물리침을 말한 것으로서, 한유(韓愈)송궁문(送窮文)을 지은 데서 온 말이다.

 

신공(神珙)

() 나라 때 서역(西域) 중으로서 사성오음구롱반뉴도(四聲五音九弄反紐圖)를 편찬했다.

 

신공(申公)

일찍이 제() 나라 사람인 부구백(浮丘伯)에게서 시()를 수학했고 그 후로는 평생 집에서 후진을 양성했는데, 문하에 모인 제자가 무려 천 여명이나 되었다. 그는 나이 80이 되어서야 한 무제(漢武帝)의 부름을 받아 태중대부(太中大夫)가 되었다. 한서(漢書)卷八十八 유림전(儒林傳)

 

신공보(申功甫)

공보(功甫)는 신민일(申敏一)의 자()이다.

 

신교(神交)

정신적으로 사귀는 것. 뒤에는 피차 이름만 듣고 직접 만나지 못한 채 서신 따위로 교분을 맺는 것을 말한다.

 

신교유복호(神交游濮濠)

속세를 떠나 자연에 동화된 상태의 차원 높은 교분을 나누자는 뜻이다. 장자(莊子)』 「추수(秋水)에 초왕(楚王)의 사신을 물리치고 복수에서 낚시를 했던 장자(莊子)의 고사와, 친구 혜시(惠施)와 함께 호량(濠梁) 위에서 물고기의 뛰노는 것을 즐겼던 고사다.

 

신구(汛口)

우리 나라 사신이 바닷길로 해서 중국에 갈 때 거치는 포구(浦口)의 이름이다.

 

신국(信國)

() 나라의 충신 문천상(文天祥)의 봉호(封號)이다. 추학(秋壑)의 일은 미상(未詳)이다.

 

신국풍첨독서의(信國風簷讀書意)

() 나라의 충신 문천상(文天祥)이 원() 나라에 잡혀가 옥중(獄中)에서 지은 정기가(正氣歌)’의 맨 마지막에 바람 부는 처마에서 책을 펼치고 읽노라니, 옛날 어른들 행한 도가 나의 얼굴을 비춰 주네[風簷展書讀古道照顔色]”라는 구절이 나온다. 신국(信國)은 문천상의 봉호(封號)이다.

 

신군(神君)

도가(道家)의 신()을 말한다. 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

현명한 지방관(地方官)의 미칭(美稱)으로 쓰이는 말이다.

 

신군강원약(神君降宛若)

사기(史記)』 「효무본기(孝武本紀)신군(神君)은 장릉(長陵)에 사는 여인이었는데, 그 아들의 죽음을 너무 슬퍼하다가 죽어서 동서인 원약(宛若)에게 귀신으로 나타났다. 이에 원약이 집에다 사당을 짓고 모시자 백성들이 그 집에 가서 제사를 올렸는데, 한 무제가 신군을 데려다 상림원 속의 제씨관(蹄氏觀)에 모시도록 하였다[神君者, 長陵女子, 以子死悲哀, 故見神於先後宛若. 宛若祠之其室, 民多往祠. 平原君往祠, 其後子孫以尊顯. 及武帝卽位, 則厚禮置祠之內中, 聞其言, 不見其人云].” 하였다.

 

신귀(新鬼)

승문원(承文院)의 신진(新進)이 곤욕을 치르던 일. 고례(古例)에 새로 급제하여 괴원(傀院) 즉 승문원에 뽑히면, 밤에는 본원의 박사 이하의 관원에게 명함을 돌리고, 낮에는 장방(長房)에 갇혀서 출입을 못하게 되었으니 그것을 신귀라 부른다. 그는 여러 가지로 곤욕을 겪다가 날이 저물어서야 비로소 풀려나게 되었다. 그리고 10일 동안 회자(回刺)를 하는데, 만일 그가 공손하지 못할 때에는 그의 가동(家僮)의 종아리를 때리고 일수를 가산하게 된다. 이럴 때에 선생이나 유명한 관원이 찾아가서 요청하면 혹은 회자를 없애거나 혹은 일수를 감해 주기도 하였다.

 

신귀본자수류골(神龜本自愁留骨)

세속적인 출세나 명예에 구속됨이 없이 소요자재(逍遙自在)하는 것을 말한다. () 나라에서 죽은 지 3천 년 되는 신령스러운 거북이의 뼈를 묘당(廟堂)에 모셔 놓았는데, 장자(莊子)가 이를 빗대어 죽어서 뼈다귀로 남아 귀하게 되려 하겠는가. 아니면 살아서 흙탕물속에 꼬리를 끌고 싶어하겠는가[寧其死爲留骨而貴乎 寧其生而曳尾於塗中乎].”라고 한 내용이 있다. 장자(莊子)』 「추수(秋水)

 

신극(宸極)

황제의 자리를 말한다.

 

신근(辛釿)

노자(老子)의 제자로서 자는 문자(文子)이다.

 

신근남간조(辛勤南澗藻)

시경(詩經)소남(召南) 채빈(采蘋), 제사 음식을 마련하는 주부(主婦)의 훌륭한 행실을 노래하면서 남쪽 산골 시내에서 마름 풀을 뜯노매라[于以采蘋 南澗之濱].”라고 하였다.

 

신급돈어(信及豚魚)

돈어(豚魚)주역(周易)중부(中孚) 단사(彖辭)신이 돈어에 미치다[信及豚魚].” 한 데서 온 말인데, 말하자면 돼지나 물고기는 동물 중에도 가장 감동시키기 어려운 것들이지만 그 신()이 그것들에까지도 미쳐간다는 뜻이다.

 

신기(神器)

제위(帝位) 승통(承統)을 표시하는 기물로, 옥새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제위(帝位)’를 뜻하게 되었다. / 인용: 檄黃巢書(최치원)

 

신기(蜃氣)

이무기가 토해 낸 기운을 말한다. 본초(本草)이무기는 뱀 같으면서도 더 크고 뿔이 있어 용과 같으며, 갈기와 허리 이하에는 비늘이 거꾸로 되었고 제비를 즐겨 먹으며, 비가 오려면 기운을 토해 내어 누대(樓臺)와 성곽(城廓)의 모양을 형성한다.”고 하였다.

 

신기질(辛棄疾)

송 나라 역성(歷城)사람으로 자는 유안(幼安), 호는 가헌(稼軒)이다. 대리시 소경(大理寺小卿)과 호남(湖南)ㆍ강서(江西)ㆍ복건(福建)ㆍ호북(湖北)ㆍ절동(浙東)등지의 안무사(按撫使)를 역임하였는데, 절개가 꿋꿋한 인물로서 일생 동안 금()나라를 배격하는 일에 주력하였다.

 

신기취부(神奇臭腐)

신기(神奇)는 좋은 평판을 말하고 취부(臭腐)는 나쁜 평판을 말한다. 장자(莊子)』 「지북유(知北遊)호감이 가면 신기하다 하고 싫으면 취부하다고 하는데 나중에는 서로 뒤바뀌는 현상이 벌어지곤 한다[是其所美者爲神奇 其所惡者爲臭腐 臭腐後化爲神奇 神奇後化爲臭腐].”라 하였다.

 

신기혹취부(神奇或臭腐)

신기와 취부는 각각 미()와 추()를 뜻하는 말로, 유용한 것이 무용지물로 바뀌기도 하고, 진귀한 보물이 폐물(廢物)로 전락하기도 한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지북유(知北遊)

 

신낭전(腎囊錢)

조선 고종(高宗) 때 장정(壯丁)에게 매기는 세금을 비꼬아 하던 말이다.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원납전(願納錢)과 사대문(四大門)의 통행세(通行稅)까지 받아도 부족하므로 지방에서 장정의 수를 따져 돈을 받아들이니, 백성들이 이를 신낭전이라 비꼬았다.

 

신내폐외(愼內閉外)

헌원씨(軒轅氏) 즉 황제(黃帝)가 광성자(廣成子)를 찾아가서 양생의 도리를 묻자, 대답하기를 지도(至道)의 정수는 요요명명(窈窈冥冥)한 것이요, 지도의 극치는 혼혼묵묵(昏昏黙黙)한 것이다. …… 그대는 내부를 단속하고 외부를 폐쇄하라. 지각 활동이 많으면 몸을 상하게 마련이다[愼女內 閉女外 多知爲敗]. …… 나는 일자(一者)를 계속 간직하며 조화된 경지에서 살아 왔다[我守其一 以處其和]. 그래서 1200년이 되었지만 몸이 아직 쇠하지 않은 것이다.” 하였다. 장자(莊子)』 「재유(在宥)

 

신녀협(神女峽)

장강(長江) 중에 있는 무협(巫峽)을 가리킨다.

 

신농(神農)

중국 고대(古代) 삼황(三皇)의 한 사람이니, 그가 백 가지 초목(草木)을 맛본 후에 비로소 의약(醫藥)이 있게 되었다. 사기(史記)』 「삼황기(三皇紀)

 

신누일과홍수평(神累一過洪水平)

() 임금이 홍수를 다스린 공을 말한다. 우 임금이 그때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산에 올라갈 적에는 나막신을 신고 산에 올라갔다. 서경(書經)』 「익직(益稷)

 

신단(神丹)

신선이 된다는 영약(靈藥)이다. 남사(南史)』 「은일도홍경전(隱逸陶弘景傳)홍경이 신부(神符)의 비결(祕訣)을 얻어 신단을 만들 수 있었으나 약물(藥物)이 없음을 고심하던 차에, 임금이 황금(黃金)ㆍ주사(朱砂)ㆍ증청(曾靑)ㆍ웅황(雄黃) 등의 자료를 내려 주었으므로 마침내 비단(飛丹)을 만들었는데, 빛깔이 눈처럼 희었고 그것을 먹으면 몸이 가벼워졌다.” 하였다.

 

신단재장(身短才長)

안영(晏嬰)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의 명상(名相)이다. 사기(史記)62 관안열전(管晏列傳)안자(晏子)는 키가 6()이 못 되는데도 제 나라의 정승이 되어 이름이 제후들에게 알려졌는데, 당신은 키가 8척이나 되면서도 남의 마부 노릇이나 하고 있다[晏子長不滿六尺, 身相齊國, 名顕諸侯. 今者妾觀其出, 志念深矣, 常有以自下者. 今子長八尺, 乃爲人僕禦, 然子之意自以爲足, 妾是以求去也].”고 하였다.

 

신도(神道)

복희씨(伏羲氏)가 팔괘(八卦)를 처음 만들어 백성을 교화시켰다는 말이다. 주역(周易)』 「관괘(觀卦)단사(彖辭)성인이 신묘한 하늘의 도리를 관찰하여 교화를 베풀자 천하가 모두 복종하였다[聖人以神道設敎而天下服矣].”라는 말이 나온다.

 

신도(申徒)

신도적(申徒狄)을 말한다. 그는 은주(殷紂)를 간()하다 듣지 않으므로 돌을 지고 스스로 물에 빠져 죽었음.

 

신도(新都)

왕망(王莽)을 가리킨다. () 영시(永始) 원년에 왕망을 봉하여 신도후(新都侯)로 삼아 남양(南陽) 신야(新野)의 도향(都鄕)을 다스리게 하였다.

 

신도반(申屠蟠)

후한(後漢) 말의 영제(靈帝) 때에 사대부인 이응(李膺), 진번(陳蕃) 등이 모의하다가 발각되어 100여 인이 피살되었다. 그러나 신도반(申屠蟠)은 벼슬을 버리고 양군(梁郡)의 탕산(碭山)에 은둔하여 나라에서 불렀으나 나가지 않아 화를 면하였다.

 

신도비(神道碑)

옛날 종2품 이상의 관원의 무덤이 있는 근처 큰길 가에 세우던 비석(碑石). 귀부(龜趺) 위에 비신(碑身)을 세우고 가담석(加擔石)이 있다.

 

신도수옥(申屠樹屋)

신도는 후한 때의 은사 신도반(申屠蟠)을 말하고, 수옥(樹屋)은 뽕나무를 의지해서 이를 마룻대로 삼아 지은 초막집을 말한다. 신도반은 본디 집이 가난하여 칠공(漆工)으로 품팔이를 하며 살다가, 끝내 한실(漢室)이 무너져가는 것을 보고는 탕현(碭縣)에 들어가 초막집에 은거하였다. 당시에 그의 훌륭한 학덕(學德)을 존경하는 이들로부터 천거를 받아 수차에 걸쳐 조정의 소명(召命)이 있었으나, 끝내 나가지 않았었다. 후한서(後漢書)卷五十三

 

신도월(申屠刖)

정자산(鄭子産)과 신도가(申徒嘉) 두 사람이 백혼무인(伯昏無人)에게서 함께 수업받을 때, 신도가가 절뚝거리는 것을 자산이 수치스럽게 여겨 함께 다니는 것을 꺼려했다는 우화가 있다. 장자(莊子)』 「덕충부(德充符)

 

신도팔경(新都八景)

신도 곧 지금의 서울인 한양(漢陽)의 팔경.

 

신독(愼獨)

자기 홀로 있을 적에 몸가짐을 삼가는 것을 말한다.

 

신독공부(愼獨工夫)

신독(愼獨)은 혼자만 알고 있는 것을 조심하는 것으로 동() 공부에 해당한다.

 

신동회(申東淮)

신익성(申翊聖)의 호이다.

 

신량(新凉)

초가을의 서늘한 기운.

 

신뢰필변(迅雷必變)

논어(論語)』 「향당(鄕黨)천둥을 급하게 치거나 맹렬한 바람이 불 때는 반드시 변색을 했다[迅雷風烈, 必變].” 한 데서 온 말인데, 변색은 곧 하늘의 노염에 경의(敬意)를 표하는 뜻이다.

 

신룡검화진(神龍劒化津)

부부가 모두 죽어 합장(合葬)할 때 만사(輓詞)에서 흔히 쓰는 말로, 검이 용으로 화해 두 마리가 합쳐졌다는 것은 죽어서 합장한 것을 말한다. 옛날에 오()나라의 무고(武庫) 안에 두 마리의 토끼가 있어서 무기의 쇠를 모두 먹어치웠는데, 이를 잡아 배를 가르니 쇠로 된 쓸개가 나왔다. 오왕이 검공(劒工)에게 명해서 이 쓸개로 검 두 개를 만들었는데, 하나는 간장(干將)으로 수컷이고, 다른 하나는 막야(鏌鎁)로 암컷이었다. 오왕은 이를 돌 상자에 넣어서 깊숙이 감추어 두었다. 그 뒤 진()나라 때 이르러서 오 땅에 자색 기운이 하늘의 우수(牛宿)와 두수(斗宿) 사이로 뻗침에 장화(張華)가 보물이 있는 것을 안 다음, 뇌환(雷煥)이 천문(天文)과 술수(術數)에 정통하다는 소문을 듣고서 그에게 가서 가르쳐 주기를 청하니, 뇌환이 말하기를, “하늘 위의 우수와 두수 사이에 자색 기운이 있는 것은 보물의 정기이다.” 하였다. 장화가 뇌환을 풍성현(豐城縣)의 현령으로 보내 이 두 검을 얻은 다음 하나씩 나누어 가졌다. 그 뒤에 장화가 화를 당하자 장화가 가지고 있던 검은 양성(襄城)의 물속으로 날아 들어가고, 뇌환이 가지고 있던 검은 뇌환이 죽고 나서 뇌환의 아들이 검을 차고 연평진(延平津)을 지나갈 때 갑자기 허리춤에서 빠져 나가 물 속으로 들어갔다. 이에 잠수부를 시켜서 검을 찾게 하였는데, 물속에는 단지 두 마리의 용이 서로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만 보일 뿐 검은 찾지 못하였다. 습유기(拾遺記)卷十태평어람(太平御覽)卷三百四十四

 

신루(蜃樓)

신기루. 허망한 기운을 말한다. 휘원(彙苑)봄 여름철에 바다에 공기가 반사되어 성시(城市)와 궁실(宮室)의 형상이 만들어지는데, 큰 조개()가 기운을 뿜어 누()를 만든다는 설이 있다.” 하였다.

 

신리(神理)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상(無上)의 위력을 발휘하며 재앙과 화복을 내리는 신령의 도를 말한다.

 

신립(申砬)

조선 중기(15461592)의 무장. 온성 부사(穩城府使)로 있으면서 북변을 침입한 니탕개(尼湯介)를 격퇴하고, 두만강을 건너 야인들의 소굴을 소탕하고 개선한 용장으로 우방어사(右防禦使)ㆍ한성 판윤(漢城判尹) 등을 역임하고, 1592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삼도 도순변사(三道都巡邊使)로서 약한 병력으로 충주의 탄금대(彈琴臺)배수진(背水陣)을 치고 적군과 대결했다가 참패를 당하고는 부하장 김여물(金汝物)과 함께 강물에 투신자결하였다. 징비록(懲毖錄)

 

신마린순석출주(神馬嶙峋石出洲)

신륵사(神勒寺) 옆에 마암(馬巖)이 있는데, 전설에 여기에서 황마(黃馬)와 여마(驪馬)가 나왔다 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卷六 여주(驪州)

 

신마석(神馬石)

여강(驪江)에 있는 마암석(馬巖石). 이색(李穡)여흥청심루제차운(驪興淸心樓題次韻)시에, “물 막아준 공로는 마암석이 제일이고[捍水功高馬巖石]……하였다.

 

신망(新莽)

()왕망(王莽)이 한 평제(漢平帝)를 시해하고 한 나라를 빼앗은 다음 세운 나라 이름인데, 그 당시의 문장 양웅(揚雄)이 왕망의 공덕을 높이 칭찬하였다가 후세의 비난을 받고 있다.

 

신명(神明)

정신. 귀신.

 

신목진의(新沐振衣)

새로 머리를 감은 자는 반드시 갓을 털고, 새로 목욕한 자는 반드시 옷을 턴다. 굴원(屈原) 어부사(漁父辭)

 

신무(愼懋)

조선조 숙종 때의 학자. 보민편(保民篇)을 지었음.

 

신무괘관(神武掛冠)

벼슬을 그만두고 전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남조 제()의 도홍경(陶弘景)이 관복을 벗어 신무문에 걸어 놓고 사직소를 남긴 뒤 고향으로 떠나갔던 고사가 있다. 남사(南史)76 도홍경전(陶弘景傳)

 

신무문(神武門)

() 나라 도홍경(陶弘景)이 의관(衣冠)을 신무문(神武門)에 걸어 놓고 사직한 고사가 있다. 남사(南史)隱逸下 도홍경전(陶弘景傳)

 

신무회서상득시(神武淮西想得時)

당 헌종(唐憲宗) 때 회서 절도사(淮西節度使) 오원제(吳元濟)가 모반하여 그를 토벌할 적에 장군(將軍) 이소(李愬)가 마침 큰 눈이 내리던 밤에 회서를 쳐들어가서 오원제를 사로잡고 끝내 회서를 평정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당서(唐書)154

 

신물(神物)

변화무쌍한 용()을 가리킨다.

 

신물비입왕상리(愼勿飛入王祥里)

잡힐까 두렵다는 뜻이다. 왕상은 진() 나라 때의 효자. 한번은 계모가 병으로 누워 참새고기를 먹고 싶다 하였다. 왕상(王祥)이 문앞에서 울부짖자 참새 수십 마리가 날아들므로 잡아서 공양했다. 진서(晉書)卷三十三 왕상전(王祥傳)

 

신미비오토(信美非吾土)

삼국 시대 위()나라 왕찬(王粲)이 난세를 만나서 고향을 떠나 형주(荊州)로 가서 유표(劉表)에게 의탁하고 있을 때에 누()에 올라 지은 등루부(登樓賦)강산 경치 참 좋다마는 내 고향이 아님이여, 어찌 좀 더 머물 생각 날 리가 있겠는가[雖信美而非吾土兮 曾何足以少遊].”라는 명구(名句)가 있다.

 

신반(辛槃)

오신반(五辛槃)의 준말이다. 파ㆍ마늘ㆍ부추ㆍ여뀌잎ㆍ겨자를 섞어 만든 음식을 말하는데, 정조(正朝)에 이것을 먹으면 오장(五臟)이 건강해진다고 한다. 풍토기(風土記)원단(元旦)에는 총()ㆍ산()ㆍ구()ㆍ육호(蓼蒿)ㆍ개자(芥子)를 섞어서 먹는데 영신(迎新)의 뜻을 취한 것이다.” 하였다.

 

신백(申伯)

주 선왕(周宣王) 때의 어진 재상인데, 시경(詩經)대아(大雅) 숭고(崧高)높은 사악이 신령을 내리어 보후와 신백을 내었도다 …… 신백의 덕이여 유순하고 은혜롭고 또 정직하도다[維嶽降神 生甫及申 …… 申伯之德 柔惠且直]”하였다.

 

신백거(愼伯擧)

백거(伯擧)는 신천익(愼天翊)의 자()이다.

 

신번길방(申樊吉方)

선왕(宣王)을 도와 난리를 평정한 공신들로서 선왕의 외삼촌인 신백(申伯), ()이라는 고을을 떼어받은 중산보(仲山甫), 오랑캐를 정벌하여 태원(太原)까지 쫓아버린 윤길보(尹吉甫), 형만(荊蠻)을 평정했던 방숙(方叔)을 이른다.

 

신보(申甫)

() 나라 때의 명신(名臣)인 신백(申伯)과 보후(甫侯), 어진 신하를 가리킨다. 시경(詩經)대아(大雅) 숭고(崧高), “산악이 신명을 내어, 보후와 신백을 탄생시켰네[維嶽降神 生甫及申].”하였다.

 

신부(神斧)

신기로운 도끼. () 임금이 용문(龍門)을 개착(開鑿)할 때 신부를 썼다는 고사가 있다.

 

신부(神符)

신령한 부적(符籍)을 이른다.

 

신부약(薪斧約)

중매하는 일을 가리킨다. 시경(詩經)제풍(齊風) 남산(南山)땔나무를 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도끼가 아니면 벨 수가 없다 아내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중매가 아니면 얻지 못한다[析薪如之何 匪斧不克 取妻如之何 匪媒不得].” 한 데서 온 말이다.

 

신분(神奔)

신이 자빠른 모양.

 

신비(辛毗)

삼국(三國) 때 위() 나라 사람으로 자는 좌치(佐治). 문제(文帝) 때에 시중(侍中)이 되어 직간(直諫)을 좋아하였다. 한번은 문제가 기주(冀州)의 백성을 옮기려 하므로 직간하였으나, 문제가 듣지 않고 일어나 안으로 들어가자 임금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만류하였다.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신비전(辛毗傳)

 

신사(新死)

막 죽다. 갓 죽다. 새로 죽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신사참(辰巳讖)

()과 사()의 해에 현인(賢人)이 죽는다는 예언이다. () 나라 정현(鄭玄)이 꿈속에서 일어나라. 올해는 진()의 해이고 내년은 사()의 해이다.”라는 공자(孔子)의 계시를 받은 뒤 그해 6월에 죽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통 용사지세(龍蛇之歲)라는 표현을 많이 쓰인다.

 

신상필벌(信賞必罰)

상을 밝히고(명백히 하고) 반드시 벌을 줌. 공이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고, 죄가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벌을 줌. 곧 상벌을 규정대로 사사로움 없이 엄정히 하는 일.

 

신생(申生)

춘추시대(春秋時代) 진헌공(晉獻公)의 세자였는데 후모(後母)인 여희(驪姬)의 참소를 받아 죽을 상황이 되었다. 신생은 자신의 무죄를 밝힐 경우 후모가 죄를 받아 아버지의 마음을 상하게 되기 떄문에 주위의 권고를 물리치고 팽형(烹刑)을 당해서 죽었다. / 인용: 西銘(장재)

 

신서(神荼)

악귀(惡鬼)를 물리치는 신(). 산해경(山海經)창해(滄海)의 도삭산(度朔山)에 큰 복숭아나무가 있는데 동북쪽으로 뻗은 가지를 귀문(鬼門)이라 하여 모든 귀신들이 이곳으로 출입하며, 이 위에 신서(神荼)ㆍ울률(鬱壘)이라 하는 두 신이 있어 나쁜 귀신을 잡아서 호랑이에게 먹인다.” 하였다.

 

신서(新書)

병서(兵書)를 말한다. 삼국 시대 촉() 나라의 제갈량(諸葛亮)이 지은 신서(新書)와 명() 나라 척계광(戚繼光)이 지은 기효신서(紀效新書) 등 병서가 있다.

 

신서(信書)

오활하여 세속과 분합하지 못함을 말한다.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글을 쓰인 그대로 다 믿는다면 차라리 글이 없는 것만 못하다.” 하였다. 맹자(孟子)』 「진심(盡心)

 

신선굴(神仙窟)

관각(館閣)을 가리키는 시어(詩語)이다. 당 태종(唐太宗)이 영주(瀛洲)라는 문학관(文學館)을 설치하고 두여회(杜如晦), 방현령(房玄齡) 등 십팔학사(十八學士)를 우대했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신설(伸雪)

원통함을 풀고 부끄러운 일을 씻어 버리는 것을 말한다. / 인용: 臨溟大捷歌(홍양호)

 

신성(晨省)

혼정신성(昏定晨省)의 준말로, 이른 아침에 부모의 침소에 가서 밤새의 안후를 살핌.

 

신손(神孫)

왕위를 계승하는 자손을 높여서 성자(聖子)ㆍ신손(神孫)이라 칭한다.

 

신수화지(神水華池)

도가서(道家書)의 양생술에서 신체의 각 수분 분필의 조절을 비유로 말한 은어(隱語)들이다.

 

신숙중(辛叔重)

() 나라 때의 은사 신밀(辛謐)을 이른다. 숙중은 그의 자이다. 신밀은 진 나라가 쇠망해 가자, 역적 유총(劉聰)과 석계룡(石季龍) 등의 세대에 수차 부름을 받았으나 나가지 않았고, 급기야 염민(冉閔)이 제호(帝號)를 참칭함에 이르러서는 그가 염민에게 잘못을 충고하는 글을 남기고 인하여 밥을 먹지 않고 굶어 죽었다. 진서(晉書)卷九十四

 

신숭(神嵩)

고려(高麗)를 말한다. 개경(開京)의 진산(鎭山)인 송악(松嶽)을 숭산(崧山) 또는 신숭(神嵩)이라고 불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4 개성부(開城府)

 

신시(蜃市)

교룡의 종류인 신()이 만들어 낸 해시(海市)로 신기루(蜃氣樓) 현상을 말한다.

 

신식남정(新息南征)

신식은 전공을 세워 신식후(新息侯)에 봉해진 동한(東漢)의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다. 마원이 남방의 교지(交趾)를 정벌할 때 무더운 날씨에 장독(瘴毒)을 견디다 못해 소리개마저 물 위로 툭툭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옛날 향리에서 달구지나 타고 편히 지내는 것이 최고라고 말했던 종제(從弟) 소유(少游)의 말을 떠올리면서 내가 지금 누워서 소유가 평소에 해 주었던 말대로 해 보려 해도 어떻게 할 수가 있겠는가[臥念少游平生時語 何可得也].”라고 탄식했던 고사가 전한다. 동관한기(東觀漢記)』 「마원(馬援)

 

신신(伸伸)

느긋하고 유유한 모양, 거침없이 자유롭게 늘어나는 모양

 

신신(信信)

믿을 것을 믿음, 유연한 모양, 나흘 동안의 유숙

 

신신(侁侁)

여럿이 걷는 모양이나 소리, 말이 앞을 다투는 모양, 미덥고 성실한 모양

 

신신(藎臣)

임금이 등용하여 쓰는 신하, 곧 충성스런 신하를 말한다.

 

신신(新新)

차차 새로워지는 모양

 

신실(新室)

전한(前漢) 왕망(王莽)이 세운 신() 나라의 왕실(王室)을 말한다.

 

신안(新安)

평안도 정주(定州)의 속역(屬驛)이다.

 

신안천석의서수(新安泉石宜徐叟)

남조 양()의 고조(高祖)가 서리(徐摛)에게 신안은 풍광이 무척이나 뛰어난 곳으로서(新安大好山水), 임방(任昉) 등도 예전에 여기를 모두 거쳐갔으니 경()이 나를 위해 이 고을을 한번 다스려 주었으면 한다.”라고 말한 기록이 있다. 양서(梁書)30 서리전(徐摛傳)

 

신야(莘野)

유신(有莘)의 들. 이윤(伊尹)() 임금을 만나기 전에 밭을 갈면서 은거하여 도를 즐겼던 곳이다. 맹자(孟子)』 「만장(萬章), “맹자가 말하기를, ‘이윤이 신야의 들에서 밭을 갈면서 요순(堯舜)의 도를 좋아하여 의()가 아니고 도()가 아니면 천하로써 녹을 준다고 하더라도 돌아보지 않았다.’ 하였다.” 하였다.

 

신야노(莘野老)

() 나라 () 임금의 재상 이윤(伊尹)이다. 맹자(孟子)』 「만장(萬章)

 

신야별설옹(莘野蹩躠翁)

이윤(伊尹)을 가리킨다. 신야는 이윤이 () 임금을 만나기 전에 밭을 갈면서 은거하며 도를 즐겼던 곳이다. 맹자(孟子)』 「만장(萬章), “이윤이 신야의 들에서 밭을 갈면서 요순(堯舜)의 도를 좋아하여 의()가 아니고 도()가 아니면 천하로써 녹을 준다고 하더라도 돌아보지 않았다[伊尹耕於有莘之野, 而樂堯舜之道焉. 非其義也, 非其道也, 祿之以天下, 弗顧也].” 하였다.

 

신양(神羊)

법관(法官)이 머리에 쓰는 해치관(獬豸冠)을 이른다. 신양은 바로 신수(神獸)인 해치(獬豸)의 별칭인데, 해치는 사람의 시비곡직(是非曲直)을 잘 알아 부정한 사람을 보면 뿔로 받는다고 하므로 법관이 해치관을 썼다 한다.

 

신양일선장(新陽一線長)

동지는 일양지월(一陽之月)이라 하여 괘()로 보면 순음(純陰)의 상태에서 아래에 양효(陽爻) 하나가 새로 소생하는 형상()에 해당하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신언서판(身言書判)

사람의 자질을 판단하는 네 가지 기준. 중국 당나라 때 관리를 선발하는 데 활용되는데, 사람이 갖추어야 할 네 조건 풍채[]ㆍ말씨[]ㆍ문필[]ㆍ판단력[]을 말한다.

 

신연도(新淵渡)

낭천(狼川)과 소양(昭陽)의 두 강물이 합류하는 곳이다

 

신오대거봉(神鰲戴巨峯)

옛날 발해(渤海)의 동쪽에 오산(五山)이 있었는데, 오산이 뿌리가 없이 바다 위에 떠있어 항상 파도에 따라 이리저리 왕래하므로, ()가 큰 거북 15마리로 하여금 이 산을 머리로 이고 있게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신우혈(神禹穴)

석두(石竇) 즉 바위 동굴을 가리킨다. () 임금이 황제(黃帝)의 책을 얻어 동굴 속에 보관해 두었다는 우혈(禹穴)의 전설이 전한다.

 

신운(身雲)

정처가 없는 몸을 말한다.

 

신월(新月)

보통 초생달을 가리키나, 여기서는 새로 가득 찬 보름의 만월(滿月)을 말한다. 백거이(白居易)의 시에 십오일 밤 신월의 달빛, 이천 리 밖 벗의 마음[三五夜中新月色 二千里外故人心].”이라는 표현이 있다. 백락천시집(白樂天詩集)14 815日夜禁中獨直對月憶元九

 

신월(辰月)

3월을 가리킨다.

 

신위(蜃衛)

제왕의 영구차(靈柩車)이다.

 

신위계(薪爲桂)

소진(蘇秦)이 초왕(楚王)에게 하는 말에, “나라의 쌀이 옥보다 귀하고, ()이 계수보다 귀하다.” 한 말이 있다.

 

신유(神遊)

꿈속에서 놀았다는 말로서, 직접 가보지는 않았으나 정신이 그곳에서 놀았다는 뜻이다. 열자(列子)』 「황제(黃帝)황제가 낮잠을 자다가 꿈에 화서씨(華胥氏)의 나라에서 놀았는데, 수레나 배를 타고 가본 것이 아니고 신유하였을 따름이다[晝寢而夢, 遊於華胥氏之國. 華胥氏之國在弇州之西, 台州之北, 不知斯齊國幾千萬里;蓋非舟四足力之所及, 神遊而已].” 하였다.

 

신음완(呻吟緩)

장자(莊子)』 「열어구(列御寇)() 나라 사람 완()이 구씨(裘氏)의 땅에서 신음(呻吟)하면서 3년을 보내고 유자(儒者)가 되었다[鄭人緩也, 呻吟裘氏之地. 祗三年而緩爲儒].” 하였는데, 여기서 신음한다는 것은 유가의 경전을 열심히 독송하는 것을 말한다.

 

신응(神鷹)

초 문왕(楚文王)이 운몽택(雲夢澤)에 사냥을 나갔을 때 아끼던 매(神鷹)가 솟구쳐 올라가 큰 새 한 마리를 잡았는데 박식한 자가 그 새를 보고는 대붕(大鵬)의 새끼라고 하였다 한다. 유명록(幽明錄)

 

신이로(愼耳老)

이로(耳老)는 신후담(愼後聃)의 자()이다. 도ㆍ불ㆍ병가(道佛兵家)에 두루 통했고, 20세에 진사가 된 후에는 벼슬하지 않고 오직 학문에 정진했다 한다. 저서에는 하빈집(河濱集)이 있다.

 

신인미대외(神人迷大隗)

장자(莊子)』 「서무귀(徐無鬼), “황제(黃帝)가 대외(大隗)에서 길을 잃었다.”는 말이 있다.

 

신인종(神印宗)

범어(梵語) 문두루(文豆婁)의 번역어. 신라의 중 명랑(明朗)이 선덕여왕 1(632), 당 나라에 가서 법을 배우고 돌아와 세운 종파(宗派).

 

신자응(神自凝)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서 나온 말인데 정신이 전일하여 엉킨다는 뜻이다.

 

신작(申綽)

조선 말기의 학자로, 일찍이 학문에 전심하여 경서(經書)들을 고증학적 방법으로 주석하는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호는 석천(石泉)이다.

 

신장(宸章)

왕의 시문(詩文)을 뜻하는 말이다.

 

신적(薪積)

섶나무를 쌓을 때는 나중에 쌓는 것이 계속 위로 올라가듯이, 나중에 벼슬한 자가 전임자보다 중용되고 전임자는 항상 미관말직에 있게 됨을 비유한 말이다.

 

신전(信箭)

진영에서 군령을 전달할 때 사용하는 작은 화살인데, 화살 깃 아래에 신()자를 썼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신정(新亭)

동진(東晉)의 왕도(王導) 등 명사(名士)들이 강녕현(江寧縣)에 있는 신정에 모여 연음(宴飮)하면서 국운의 쇠퇴함을 탄식하며 함께 눈물을 흘렸던 고사가 있다.

 

신정(新亭)

서진(西晉)이 멸망한 뒤에 강남(江南)으로 도망친 사대부들이 연회를 베풀다가 풍경은 특별히 다를 바가 없다마는, 산하는 어쩌면 이다지도 틀리단 말인가[風景不殊 正自有山河之異].”라고 탄식하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정자 이름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言語)

 

신정상대읍(新亭相對泣)

()나라는 외래 민족에게 중원(中原)을 빼앗기고 강동(江東)으로 옮겨갔는데, 하루는 여러 사람들이 신정(新亭)에 나와 놀다가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산하(山河)는 다르지 않으나 풍경이 예와 다르다.” 하면서 서로 보고 울었다.

 

신정수장루(新亭垂壯淚)

시세(時世)를 근심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일찍이 동진(東晉)의 명사(名士)들이 신정(新亭)에 올라가 연음(宴飮)하면서, 쇠잔한 국운(國運)을 한탄하며 눈물을 흘렸던 데서 온 말이다.

 

신조(辛朝)

고려 말의 우()ㆍ창() 두 왕을 중 신돈(辛旽)의 아들이라 하여 조선조에 와서 그 당시의 고려조를 신조(辛朝)라고 혹평하는 자들이 있었는데, 그 후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이 금오산(金烏山)을 지나면서 읊은 시에도, “신조의 주서였던 길야은[辛朝注書吉治隱].”이라는 구절이 있다. 야은집(冶隱集)言行拾遺 卷下

 

신종모루(晨鍾暮漏)

세월이 덧없이 흘러감을 말한다.

 

신좌모(申佐模)

자는 좌인(左人), 호는 담인(澹人). 벼슬이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강직한 성격으로 인해 조정에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다.

 

신주(神州)

중국을 말한다. 전국시대(戰國時代) 때의 학자 추연(鄒衍)이 중국을 신주라고 하였는데, 그 뒤에는 중국의 별칭으로 쓰여지게 되었다. / 인용: 梨花庵老僧行(최성대)

 

신주환어수(臣主歡魚水)

() 나라 유비(劉備)제갈량(諸葛亮)을 얻은 뒤에, “내가 공명(孔明)을 얻은 것은 고기가 물을 얻음과 같다.” 하였다.

 

신지식곡(神之式穀)

시경(詩經)소아(小雅) 소명(小明), “신이 들어서 녹으로 네게 주도다[神之能之 式穀以女].”하였다.

 

신천(新阡)

새로 쓴 무덤을 말한다.

 

신천옹(信天翁)

새의 이름이다. 제 스스로 고기를 잡을 줄 모르고 남이 잡은 고기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새라고 하는데, 스스로 창작할 줄은 모르고 남의 작품의 나머지나 모아서 글을 짓는 것에 비유한다.

 

신첩(臣妾)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오() 나라에 애걸하는 말에, “남자는 신하가 되고, 여자는 첩()이 되겠습니다.” 하였다.

 

신체발부(身體髮膚)

몸뚱이의 전체. 몸과 털, 피부.

 

신초(申椒)

주자집주(朱子集註), “椒 木實之香者 申 或地名 或其美名耳라 하였다.

 

신출귀몰(新出鬼沒)

귀신과 같이 홀연히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짐. 자유자재로 출몰하여 그 변화를 헤아릴 수 없는 일. / 유의어: 홀현홀몰(忽顯忽沒)

 

신토불이(身土不二)

몸과 땅이 둘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신토불이는 원래 불교용어로, 불교에서는 윤회를 하면서 한 을 살 때마다 몸을 새롭게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느냐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어디에 태어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막에서 몸을 받을 수도 있고, 깊은 산 속, 혹은 멀리 떨어진 바다의 외딴 섬에서 몸을 받을 수도 있다. 이때,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날 때 몸의 종류와 함께 그 몸이 태어날 땅까지도 함께 정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몸과 땅은 별개가 아니고 하나라는 것이다

 

신통칠십자(身通七十子)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 의하면, 몸소 육예를 통달한 제자72인이었다고 되어 있으나, 여기서 70이라고 한 것은 곧 성수(成數)만 들어 말한 것이다.

 

신포(神庖)

신통(神通)한 백정(白丁)을 가리키는 말인데, ()에 능통한 것을 비유함이다. 장자(莊子)』 「양생주(養生主)훌륭한 백정은 매년마다 칼을 바꾸는데 살을 자르기 때문이요, 보통 백정들은 달마다 칼을 바꾸는데 뼈를 자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저의 칼은 19년이 되었고 그동안에 잡은 소는 수천 마리나 됩니다. 그러나 칼날은 숫돌에 새로 갈아 낸 것처럼 예리합니다.” 하였다.

 

신포(神布)

함경도와 강원도에만 있던 세금으로 군민(軍民)에게 호()마다 베 1필씩을 거두어 관찰사나 절도사에게 바치기도 하고, 또는 상납이나 관부의 비용으로 쓰기도 하였는데 명분 없는 세금으로 민폐가 많았다.

 

신포서(申包胥)

춘추시대 초()나라 대부로 성()이 공손(公孫)인데 신읍(申邑)에 봉해졌기 때문에 신포서(申包胥)로 불렸다. 오자서(伍子胥)와 친하였는데, 오원(伍員)이 형과 아버지가 무고하게 평왕(平王)에게 살해당하고 오()나라로 도망갈 적에 신포서(申包胥)를 만나 반드시 초()나라에 복수하여 멸망시킬 것을 맹세하자, 신포서(申包胥)그대는 반드시 멸망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초()나라를 부흥시키겠다.”라고 하였다. 뒤에 오원(伍員)이 오()나라 군대(軍隊)를 이끌고 초()나라를 공격하여 수도 영()을 함락시키자, 신포서(申包胥)는 진()나라에 가서 구원병을 요청하면서 진()나라 조정에서 일곱 밤낮을 통곡하니, 마침내 진() 애공(哀公)이 그의 정성에 감동하여 진()나라의 대군을 보내 초()나라를 구원해주었다. 이 내용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정공(定公) 45년 및 전국책(戰國策)사기(史記) 등에 보인다. 본문의 신포서(申包胥)의 말은 오원(伍員)이 초()나라의 수도 영()에 들어가 평왕(平王)의 무덤을 파헤치고 그의 시신에 3백 대의 채찍질을 가하자, 신포서(申包胥)가 오원(伍員)에게 사람을 보내어 전한 말로, 사기(史記)』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그대의 복수는 너무 심하지 않은가. 내가 들으니 사람이 많으면 천도(天道)를 이길 수 있으나 천도(天道)가 정해지면 또한 능히 사람을 패망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지금 그대는 평왕(平王)의 옛 신하로서 직접 북면(北面)하여 그를 섬겼는데, 이제 죽은 임금을 이렇게 욕보이니, 이 어찌 천도(天道)를 무시하는 지극함이 아니겠는가?[子之報讐 其以甚乎 吾聞之 人衆者勝天 天定亦能破人 今子故平王之臣 親北面而事之 今至于僇死人 此豈其無天道之極乎]”라고 보인다. / 인용: 三槐堂銘(소식)

 

신풍(晨風)

새매의 별명이다. 시경(詩經)진풍(秦風) 신풍(晨風)장에, “鴥彼晨風 鬱彼北林이라 하였다.

 

신풍(新豐)

한 고조(漢高祖)가 자기 고향 풍()이 그리워 그리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태상황(太上皇)을 위하여 풍과 비슷하게 새로 만든 고을이다.

 

신풍(迅風)

질풍을 말한다.

 

신풍절비옹(新豊折臂翁)

신풍(新豐)에 출정함을 기피하려고 스스로 어깨를 부러뜨린 늙은이가 있는 것을 보고 읊은 시제(詩題). 백장경집(白長慶集) 3권 풍유(諷諭)에 보인다.

 

신현옹(申玄翁)

현옹(玄翁)신흠(申欽)의 호이다.

 

신호숭악(神呼嵩嶽)

한 무제가 화산(華山)에서 숭산(嵩山)에 이르러 직접 산을 제사 지낼 때 어디선가 만세 삼창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한서(漢書)』 「무제기(武帝紀)

 

신호천청지자아민혜(信乎天聽之自我民兮)

서경(書經), “하늘이 보고 듣는 것이 달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보는 것은 우리 백성이 보는 것으로부터요, 하늘이 듣는 것은 우리 백성이 듣는 것으로부터라.” 하였다.

 

신혼(晨昏)

저녁에는 잠자리를 보살펴 드리고 아침에는 문안 인사를 올린다는 뜻[昏定晨省]으로, 어버이를 극진히 봉양하는 것을 말한다.

 

신화(薪火)

()의 계승을 이른다. 장자(莊子)』 「양생주(養生主)指窮於爲薪火傳也 不知其盡也라 하였다.

 

신화(新火)

옛날 사계절마다 각각 다른 나무로 불을 일으켜 그 불씨를 전해 주던 일. 개화(改火)라고도 한다. 봄에는 느릅나무와 버드나무, 여름에는 대추나무와 살구나무, 늦여름에는 뽕나무, 가을에는 떡갈나무와 참나무, 겨울에는 홰나무와 박달나무를 썼다. 예기(禮記)』 「월령(月令)

 

신화작청명(新火作淸明)

청명(淸明) 하루 전인 한식절(寒食節)에 예전의 불씨를 일단 껐다가 청명일에 새 불씨(新火)를 일으켜 나눠 받던 풍속이 있었다.

 

신확(伸蠖)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자벌레(尺蠖)이 몸을 구부리는 것은 장차 펴기 위해서이다[尺蠖之屈, 以求信也].”라고 하였다.

 

신환(新懽)

새롭게 맺은 우정을 뜻하는 말이다.

 

신후다거상(薪後多居上)

섶나무는 뒤에 오는 자가 위에 쌓이는 것이니, 자기도 그 섶나무와 같아서 뒤에 오는 사람이 모두 상관으로 있고 자기는 밑에 있다는 말이다.

 

신후명(身後名)

()나라 장한(張翰)의 자()는 계응(季鷹)인데, 제왕(齊王)의 동조연(東曹掾)으로 있다가 가을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인생은 뜻에 쾌한 것이 제일인데 하필 수천 리 객지에서 이름과 벼슬을 구할 것이 무엇인가.” 하고, 곧 돌아가서 술마시기를 즐기었다. 친구가 그에게, “신후(身後)의 이름을 생각하지 않는가.” 하니, 그는 답하기를, “안전 일배주(眼前一盃酒)를 즐길 뿐이다. 어찌 신후천재명(身後千載名)을 생각하랴.” 하였다. 얼마 후에 제왕(齊王)이 패하니 사람들이 그가 기미를 알았다 하였다.

 

신후수위부귀진(身後誰爲富貴眞)

백거이(白居易)의 시에 귀인(貴人) 되어 높은 수레 으스대는 건, 아마도 진짜 부귀 못 될 듯싶네[爲報高車蓋 恐非眞富貴].”라는 표현이 있다. 백락천시집(白樂天詩集)8 군증즉사(郡中卽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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