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후인(箜篌引)」은 다음과 같다.
公無渡河 公竟渡河 | 그대 물을 건너지 마오, 그대 기어이 물을 건너네. |
墮河而死 當奈公何 | 마침내 빠져 죽어 버리니 그대를 어찌 하리오? |
이 작품은 후한(後漢) 채옹(蔡邕, 133~192)의 『금조(琴操)』, 서진(西晉) 혜제(惠帝, 290~306) 때 최표(崔豹)가 편찬한 『고금주(古今注)』, 『예문유취(藝文類聚)』 등에 조선진졸(朝鮮津卒) 곽리자고(霍里子高)의 처(妻) 여옥(麗玉) 또는 곽리자고(霍里子高)가 지은 것으로 적고 있다. 이 작품은 부대설화(附帶說話)가 함께 전하고 있어 작자와 제작동기 등 작품과 관계되는 주변사정까지도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부대설화를 배제하고 독립된 작품만 보면, 물을 건너지 말라는 애원을 뿌리치고 기어이 물을 건너다 빠져 죽은 어떤 사람의 슬픈 사연을 작자가 1인칭 시점에서 바라보며 지은 것으로 된다. 다만, 부대설화를 그대로 따르면 이 작품의 작자는 작품의 바깥에 있는 진졸(津卒) 또는 그의 처이며, 공후(箜篌)를 끌어당겨 이 노래를 부른 것이다. 이 노래는 후일 송(宋) 곽무청(郭茂淸)의 『악부시집(樂府詩集)』에 악부(樂府)의 상화가사(相和歌辭, 相和引)로 포함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설화는 다음과 같다.
箜篌引者, 朝鮮津卒霍里子高所作也. 子高晨刺船而濯, 有一狂夫, 被髮提壺, 涉河而渡. 其妻追之, 不及, 墮河而死. 乃號天噓唏, 鼓箜篌歌曰: “公無渡河, 公竟渡河, 公墮河死, 當奈公河.” 曲終, 自投河而死. 子高聞而悲之, 乃援琴而一之, 作箜篌引, 以象其聲, 所謂, 公無渡河曲也. 『琴操』 卷下
箜篌, 朝鮮津卒霍里子高妻麗玉所作也. 子高晨起, 刺船而櫂, 有一白首狂夫, 被髮提壺, 亂流而渡. 其妻隨呼止之, 不及, 遂墮河水死. 於是援箜篌而鼓之, 作公無渡河之歌. 聲甚悽愴, 曲終, 自投河而死. 霍里子高還, 以其聲, 語妻麗玉, 玉傷之, 乃引箜篌而寫其聲, 聞者莫不墮淚飮泣焉. 麗玉以其聲傳隣女麗容, 名曰箜篌引. 『古今注』 卷中
우리나라에서는 『금조(琴操)』가 뒤늦게 확인되었기 때문에 주로 『고금주(古今注)』의 자료를 활용하였다. 그러나 이 설화는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하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으며 문제의 핵심은 조선진(朝鮮津)에 일차적으로 집중되었다.
이때 조선진(朝鮮津)의 위치가 대동강(大同江) 유역인지, 아니면 중국 직례성(直隸省)에 있는 것인지에 대해 논쟁이 있어 왔다. 이에 따라 작품의 국적문제가 쟁점이 되어 조선인의 노래, 중국인의 노래,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인의 노래 등의 설이 제기되었으며 창작의 시기 또한 고조선 때인지, 한사군(漢四郡) 때인지 2~3세기의 것인지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설화를 요약하면 곽리자고가 새벽에 배를 끌고 나서는데 한 백수광부(白首狂夫)가 술병을 끼고 물을 건너고 있어 그 처가 만류하였으나 마침내 물에 빠져죽게 되었다.
이에 백수광부의 처가 공후를 끌어당겨 이 노래를 부르고는 자신도 투신자살했다. 곽리자고가 돌아와 그 처 여옥에게 말하니 여옥이 다시 공후를 당겨 그 노래를 본떠 불렀다고 한다. 이로써 보면 노래의 작가가 곽리자고의 처가 되지만, 『예문유취(藝文類聚)』에는 곽리자고가 그 광경을 보고 직접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 정황으로 보아 집에 돌아온 곽리자고의 처 여옥이 최종적으로 노래를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하고 있는 「공후인(箜篌引)」은 시구(詩句)가 소박하고 구상이 웅건하여 선진(先秦)의 풍(風)이 있으나 작자 ‘여옥(麗玉)’의 명명법(命名法)이 매우 세련된 것으로 보아 후대에 붙여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작품은 그 내용만 보면, 사건의 진행과정을 본대로 그리고 순차적으로 기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제4구의 ‘당내공하(當奈公何)’에서 ‘당(當)’은 사실상 허자(虛字)로 쓰이고 있으며 ‘당내(當奈)’를 또 ‘하(何)’와 중복시켜 장차 닥쳐올 일을 안타까워하는 강도(强度)를 더해준다. 한시(漢詩)의 제작이 사실상 가능하지도 않은 상고시대(上古時代)에 더욱이 뱃사공의 아내가 이러한 작품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상상조차 미치지 못할 일이다.
국적문제에 있어서도, 송(宋) 곽무청(郭茂淸)의 『악부시집(樂府詩集)』에는 악부(樂府)의 상화가사(相和歌辭, 相和引)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 등으로 보아, 이 노래는 일찍부터 대륙의 조선(朝鮮) 지방에서 보편적으로 널리 불려진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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