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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사, 한시의 초기 모습 - 1. 대륙의 노래, 황조가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사, 한시의 초기 모습 - 1. 대륙의 노래, 황조가

건방진방랑자 2021. 12. 20.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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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조가(黃鳥歌)는 다음과 같다.

 

翩翩黃鳥 雌雄相依 퍼득퍼득 꾀꼬리 암수 서로 즐겁네.
念我之獨 誰其與歸 외로운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 三國史記』 「高句麗本紀第一 琉璃明王.

 

황조가(黃鳥歌)는 출전 문헌인 삼국사기(三國史記)를 비롯하여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대동시선(大東詩選)등에 전한다. 사언사구(四言四句)로 되어 있어 시경체(詩經體)에 가깝다.

 

고구려에서의 한문(漢文) 보급이 소수림왕(小獸林王) 때에 태학(太學)이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을 것을 감안하여 후대의 위작(僞作), 또는 한역(漢譯)으로 보기도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유리왕(琉璃王) 삼년(三年) 시월(十月)에 왕비 송씨(松氏)가 죽자 화희(禾姬)와 치희(雉姬)를 계실(繼室)로 맞았는데 둘이서 서로 쟁총(爭寵)하다 치희(雉姬)가 달아나 버렸고, 이에 유리왕이 말을 타고 좇았으나 치희가 노하여 돌아오지 않았다는 부대설화가 전한다. 이 시의 제작연대에 관해 유리왕 4년 설과 5년에서 11년 사이 설, 원년에서 2년 사이 설 등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작자로 알려져 있는 유리왕이 신화(神話) 속에 묻혀있는 인물일 뿐 아니라, 한문의 수입 여부조차 확실하지 않은 기원전(紀元前) 시기에 이 작품이 한시 형식으로 제작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가정(假定)조차도 성립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불려진 노래가 중국에 유입되어 중국인에 의하여 한시체(漢詩體)로 번역되었다면 이는 이미 우리 것이 아니다. 그리고 유리왕(琉璃王)황조가와 출전 문헌인 삼국사기사이에는 시대적으로 천 년의 거리가 있으므로 설사 어떤 형태의 노래가 유리왕에 의하여 제작되었다 하더라도 유전(流傳) 과정에 그것이 온전하게 전승되었을 것이라는 것조차 신빙성이 희박하다. 특히 이 작품은 시경체(詩經體)에 가까우며 그 질박(質朴)함이 삼국사기의 편찬자인 김부식(金富軾)의 산문(散文) 가운데 한 부분을 보는 듯하여 이 작품은 이미 김부식의 것이 아닌가 의심나게 한다. 그리고 이 작품의 바깥짝에서 시범한 허자(虛字) 처리의 솜씨도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념아지독 수기여귀(念我之獨, 誰其與歸)’()’()’는 사실상 본뜻을 상실하고 있으면서도 쉽게 읽혀질 수 있는 조음(調音)의 효과를 돋보이게 한다.

 

 

 

 

인용

목차 / 略史

우리 한시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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