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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사, 한시의 초기 모습 - 개요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사, 한시의 초기 모습 - 개요

건방진방랑자 2021. 12. 20. 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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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한시의 초기 모습

 

 

한자(漢字)가 우리나라에 유입(流入)된 시기를 정확하게 말하는 것은 물론 불가능하다. 적어도 기원전 2세기에는 한자(漢字)가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어 왔지만, 이는 연() 위만(衛滿)의 동침(東侵)이나 한사군(漢四郡)의 설치에 근거한 것이므로 이 역시 추정일 뿐이다. 더욱이 이러한 사실은 우리 조상들이 언제부터 한시(漢詩)를 제작하기 시작하였는지 그 시기를 따지는 문제와는 긴밀하게 연결되지 못한다. 설사 문자(文字)의 유입은 있었다 하더라도 그 그릇에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아 한시(漢詩)와 같은 고급 예술 문화를 양성하는 데에는 일정한 시간과 거쳐야 할 과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외래문화를 수용할 때에는 서책에 의존하는 순서를 거치게 된다. 이것을 광범위하게 보급하여 일반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육기관의 창설을 기다려야 하며 이에 의한 국가적인 교육 사업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물론 배경설화에 묻혀 전하고 있는 공후인(箜篌引)이나 황조가(黃鳥歌)와 같은 것은, 현재까지의 전승 기록을 그대로 믿는다면 모두 기원전(紀元前)의 작품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를 전하고 있는 최고(最古)의 기록인 후한(後漢) 채옹(蔡邕, 133~192)금조(琴操)2세기 때의 것이고 보면, 이 무렵 국가의 정치 목적이나 역사적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는 서정시(抒情詩)가 우리나라 조상들에 의하여 한시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전하고 있는 황조가(黃鳥歌역시 삼국사기의 편찬자인 김부식(金富軾)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자료에 의거하여 황조가(黃鳥歌)를 수록하였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거니와, 황조가(黃鳥歌)로부터 1천년이 지난 뒤에 김부식에 의해 거두어져 기록된 황조가(黃鳥歌)는 이미 김부식(金富軾)이 재구(再構)한 것임에 틀림없다. 특히 이 작품은 질박(質朴)김부식(金富軾)의 산문(散文) 가운데서 상주문(上奏文)의 한 부분을 보는 듯하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기록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국학(國學)제도가 성립된 최초의 시기는 372小獸林王 2, 三國史記』 「高句麗本紀6 小獸林王 2참조이며, 신라에서는 640宣德王 9, 三國史記』 「新羅本紀第五 참조)에 국학(國學)이 창설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고시(古詩) 형식을 갖춘 을지문덕(乙支文德)여수장우중문(與隋將于仲文)(612)이나 진덕여왕(眞德女王, 647~653)치당태평송(致唐太平頌)이 모두 7세기에 이루어진 것이고 보면, 이들 시작(詩作)이 이때에 나타난 것도 결코 우연한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특히 신라에서는 이 무렵까지도 중국에서 조서(詔書)가 내도(來到)하였을 때에 통효(通曉)한 사람은 강수(强首)뿐이었다 한다【『三國史記列傳 6 强首참조. 치당태평송(致唐太平頌)조차도 강수(强首)가 제작했을 것이라 추정하기도 한다. 이로써 보면 이때까지도 신라에서는 한자(漢字) 문화의 향유층이 극히 제한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전통을 계승함에 있어서는 긍정적으로 계승하는 경우와 부정적으로 계승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는 한시(漢詩) 문학이 문학사의 한 부분으로 전승되기에는 부정적인 상황이었으므로 설사 일부 특수계층에 의하여 한시(漢詩)가 제작되었다 하더라도 그대로 전승되지 못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공후인(箜篌引)이나 황조가(黃鳥歌)도 모두 배경설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부대적(附帶的)으로 유전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을지문덕(乙支文德)여수장우중문(與隋將于仲文)나 진덕여왕(眞德女王)치당태평송(致唐太平頌)도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과 연계되고 있기 때문에 삼국사기(三國史記)와 같은 사서(史書)를 통하여 역사의 한 부분으로 전승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인용

목차 / 略史

우리 한시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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