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1.1. 암송작업의 체계화
붓다의 생애에 붓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을 경전에서 추적하는 작업은 지극히 어렵다. 예수가 아람어(Aramaic language)라는 당대 팔레스타인 지역의 토속말을 한 사람이라면, 붓다 또한 지금의 비하르 지역(간지스강 중류지역)의 통속어인 마가다어(Magadha language)를 말했던 사람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예수의 아람어 이야기가 최초로 기록된 것은 코이네(κοινὴ)라는, 고전 희랍어가 대중화되고 보편화되면서 생겨난 공공언어였다. 마찬가지로 붓다의 이야기가 기록된 것은 산스크리트어나 서북인도의 팔리어, 그리고 다양한 쁘라끄리뜨어(Prākrit languages, 통속어)로 전승된 것이다. 그리고 고대인도는 양피지나 종이와 같은 필기도구가 발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애초에 인간의 언어를 문서로 남기는 것에 대한 의식이나 전통이 없었다. 그것은 인간의 앎의 대부분이 종교적 비전의 지식의 성격을 지닌 것이었으며 따라서 그것은 인간의 두뇌작용인 암송이라는 기능에 의하여 전승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러한 전승은 그들의 계급의식, 선민의식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불타의 이야기가 결집(結集)되었다 하는 것은 모두 암송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암송작업을 체계화하고 정리하고 종합하는 것이었다. 대체적으로 불타의 사후 사오백 년 간은 문자화되는 작업은 별로 없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암송의 전승도 우리가 생각하는 문헌의 전승 못지 않게 정확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예수를 알려면 우리가 『신약성서』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듯이, 붓다를 알려면 우리는 붓다의 말을 기록한 성경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붓다의 성경은 암송자들의 기억을 시각화한 것인데, 이것은 대체적으로 세 가지 종류로 대별된다. 그 하나는 스리랑카로 전수된 팔리어삼장이며, 하나는 중국으로 전수된 한역대장경이며, 또 하나는 티벹으로 전수된 티벹장경이다.
암송자들이 시각화한 붓다의 성경 | ||
스리랑카에 전수 | 중국에 전수 | 티벹에 전수 |
팔리어삼장 | 한역대장경 | 티벹장경 |
우리는 불교성전이라 하면 무조건 팔만대장경을 연상하기 쉽지만, 이 대장경이라고 하는 것은 후한말에서 시작하여 위진남북조시대, 수ㆍ당대를 통하여 성립한 것이며 그것은 이미 출발 자체가 불교의 역사에서 보자면 매우 후대의 것이며, 최소한 대승불교의 성립이후의 사건이다. 게다가 한역(漢譯)이라고 하는 무지막지하게 난해한 작업, 전혀 다른 두 언어 사이의 전사작업(傳寫作業)은 엄청난 왜곡을 수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우리가 한문으로 된 불전을 읽을 때는 그것이 이미 중국인들의 마음 속에서 중국화된 중국불교의 결실이라는 전제 하에서 세심한 문헌비평(text criticism)의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 소승ㆍ대승이라고 하는 매우 혼동스러운 용어 때문에 불교의 역사적 실상이 왜곡되기 쉽고, 소승비불설(小乘非佛說)이니 대승비불설(大乘非佛說)이니 하는 잡론까지 횡행하기 쉬우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소승불교는 초기부파불교 정도로, 대승불교는 보살운동 이후에 생겨난 대중불교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역사적 실상에 접근한다고 판단되는 것이다. 일본학자들에 의하여 근본불교, 원시불교, 초기불교 등의 말이 쓰여지고, 영어로는 fundamental Buddhism, primitive Buddhism, original Buddhism, early Buddhism, sectarian Buddhism 등의 말이 쓰여지는데, 이것은 기독교교회사의 초기시대를 규정하는 개념적 논의와 비슷한 것이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선교활동시대로부터 AD 4세기의 알렉산드리아 27서 결집 이전의 시대를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느냐는 문제와 상통하는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독교 공인 이후의 로마기독교를 대승기독교라고 한다면, 그 이전의 소아시아 초기기독교를 소승기독교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좀 더 정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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