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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사전 - 270. 제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270. 제

건방진방랑자 2020. 5. 31.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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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

 

 

()

양녕대군인데, 왕족은 성을 안 썼다.

 

()

제곡(帝嚳). 고대 제왕(帝王)의 이른다. 황제(黃帝)의 증손으로서 호를 고신씨(高辛氏)라 한다. ()에 도읍하였다.

 

제각형(蹄角瑩)

() 나라 왕군부(王君夫)는 사랑하는 소가 한 마리 있었는데, 발굽과 뿔을 늘 반들반들하게 하였다 한다.

 

제갈공(諸葛公)

제갈공은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을 말한다. 제갈량은 군중(軍中)에서도 항상 윤건(綸巾)을 쓰고 도복(道服)을 입은 채로 군사(軍事)를 지휘하였다.

 

제갈공명(諸葛孔明)

공명은 촉한(蜀漢) 제갈량(諸葛亮)의 자(), 후한(後漢) 말엽 천하가 어지러워 군웅(群雄)이 할거(割據)하자, 제갈량은 양양(襄陽)의 융중(隆中)에 은둔해 있었는데, ()의 황족(皇族)인 유비(劉備)는 초려(草廬)로 세 번이나 찾아가(三顧) 도와줄 것을 청하였다. 유비의 깊은 성의에 감동한 제갈량은 마침내 유비의 군사(軍師)가 되어 촉한을 세우고는 반란을 일으킨 남만(南蠻)의 맹획(孟獲)을 일곱 차례나 생포하여(七縱七摛) 남만을 평정한 다음, 후주(後主) 유선(劉禪)에게 전출사표(前出師表)후출사표(後出師表)를 올리고는 위()의 조비(曹丕)를 공격하였는데, 이때 군량을 운반하기 위하여 목우(木牛)ㆍ유마(流馬)를 만드니 매우 신기한 기계였다. 싸울 때에는 언제나 윤건(綸巾)을 쓰고 백우선(白羽扇)을 들고 진두에서 지휘하였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군중에서 세상을 떠나니 무후(武侯)라 시호했으며, 익주(益州)의 금관성(錦官城) 등 여러 곳에 사당이 있다. 삼국지(三國志)』 「촉지(蜀志)」 「제갈량전(諸葛亮傳), 자치통감(資治通鑑)魏紀

 

제갈량(諸葛亮)

()는 공명(孔明)으로 삼국 시대 촉() 나라의 재상. 유비(劉備)를 도와 촉한(蜀漢)을 건국, 삼국의 정립(鼎立)을 이루었으나 마침내 위() 나라를 정벌하다가 오장원(五丈原)에서 죽었다. 그가 지은 전출사표(前出師表)후출사표(後出師表)는 충절이 담긴 명문으로 유명하다.

 

제갈허치구(諸葛許馳驅)

은둔 생활을 청산하고 나라 위해 일하기로 마음을 굳힘. 제갈량(諸葛亮)이 유비(劉備)로부터 삼고초려(三顧草廬)의 예우를 받고 선제(先帝)를 위하여 구치(驅馳)할 것을 허락하였다고 한다.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

 

제거(帝車)

지남차(指南車)를 말함인데, 황제(黃帝)가 치우(蚩尤)를 정벌할 적에 만든 것이다.

 

제건십습(緹巾十襲)

자격도 없는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서 권세를 휘두르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 나라의 어리석은 사람이 옥()과 비슷하면서도 옥이 아닌 연석(燕石)을 발견하고는 이를 진짜 옥으로 여긴 나머지 주황색 수건으로 열 겹이나 싸서(緹巾十襲) 보관하며 애지중지하다가 세상의 웃음거리가 된 고사가 전한다. 후한서(後漢書)48 應劭列傳 註

 

제결(鶗鴂)

두견새로 이 새가 울면 꽃이 시든다고 한다.

 

제결명(鵜鴂鳴)

초사(楚辭)』 「이소(離騷)제격이 먼저 울어 백초를 향기롭지 못하게 할까 두렵다[恐鵜鴂之先鳴兮 使夫百草爲之不芳].” 한 데서 온 말인데, 그 주에 의하면, 제격은 곧 춘분일(春分日)에 우는 두견새의 별칭으로, 이 새가 춘분 전에 울면 백초의 꽃이 모두 꺾여 떨어져서 향기롭지 못하다 하여, 이것으로 소인의 참소가 먼저 들어가 충직한 선비가 죄를 입게 되는 데에 비유하였다.

 

제결일성성이류(鶗鴂一聲星已流)

가을이 되었다는 뜻이다. 두견새가 울면 가을이 오는데, 7월에는 화성이 흐른다.

 

제경전(制鯨鱣)

경전(鯨鱣) 즉 큰 고기같은 바다의 침략자를 막았다는 말이다.

 

제고(題糕)

() 나라 때 시인 유몽득(劉夢得)이 일찍이 중구일(重九日)에 시를 지으면서 고() 자를 쓰려고 하였으나, 오경(五經) 가운데 이 글자가 없기 때문에 끝내 쓰지 않고 말았는데, 이에 대하여 송() 나라 때 송기(宋祁)가 지은 식찬유영시(食饌有詠詩)유랑이 감히 고 자를 쓰지 못하였으니, 한 세상의 시호란 말을 헛되이 저버렸구나[劉郞不敢題糕字 虛負詩中一世豪]” 한 데서 온 말이다.

 

제과(制科)

제거(制擧)라고도 하며, 황제가 임시로 조령(詔令)을 내려 실시하는 부정기적인 과거(科擧)를 말한다. 고려 말에 최해(崔瀣)ㆍ안축(安軸)이곡(李穀)ㆍ이색(李穡) 등이 제과에 응시하여 합격하였다.

 

제교(帝郊)

천제의 교외.

하늘가.

 

제교객(題橋客)

다리에 쓴 손님은 전한(前漢) 때의 문장가 사마상여(司馬相如)를 가리킨다. 성도기(成都紀)사마상여가 장안(長安)을 가는 길에 고향 촉군(蜀郡)을 지나다가 승선교(升仙橋) 기둥에 사마의 수레를 타지 못하면 다시 이 다리를 지나지 않겠다[不乘駟馬車 不復過此橋].’ 하는 글을 써 붙였다.” 하였다.

 

제구(𩐎舊)

후추를 빻아 가루로 만드는 확을 말한다.

 

제궐승청리(帝闕承聽履)

제궐(帝闕)은 명() 황제의 궁궐을 말하는데, 황제가 우대하는 신하에게는 신을 신고 올라옴을 허락하였다.

 

제금(製錦)

① 『좌전(左傳)양공(襄公) 31년 조()자피(子皮)가 윤하(尹何)를 시켜 읍()을 다스리려 하니 자산(子産)子有美錦 不使人學製焉……其爲美錦 不亦多乎라고 했다.” 하였다.

현재(賢才)가 수령으로 나가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대부 자피(子皮)가 윤하(尹何)에게 대읍(大邑)을 맡기려 하자, 자산(子産)이 이에 반대하여 말하기를 그대에게 아름다운 비단이 있을 경우, 옷 짓기를 배우는 사람에게 옷을 지으라고 맡기지 않을 것이다. 큰 고을은 많은 사람이 몸을 의지하는 곳인데, 배우는 사람에게 시험삼아 다스리게 한단 말인가.” 한 데서 온 말이다. 좌전(左傳)襄公三十一年

 

제금(題襟)

흉금을 털어놓고 시를 짓는 것을 말한 것으로, () 나라 온정균(溫庭筠)ㆍ단성식(段成式)ㆍ여지고(余知古)가 서로 시를 주고받은 한상제급집(漢上題衿集)이 있다. 당서(唐書)』 「예문지(藝文志)

() 나라 때 온정균(溫庭筠)ㆍ단성식(段成式)ㆍ여지고(余知古) 등이 서로 창화(唱和)한 시()를 수집하여 만든 한상제금집(漢上題襟集)이라는 서명(書名)의 준말로, 절친한 친구 사이를 뜻하는 말이다.

 

제금록(題衿錄)

() 나라 때에 온정균(溫庭筠)ㆍ단성식(段成式)ㆍ여지고(余知古) 등이 서로 창화(唱和)한 시들을 수록해 놓은 한상제급집(漢上題衿集)을 가리킨 듯하다.

 

제금유자(題襟遊子)

제금(題襟)은 시를 지어 흉금을 말하는 것으로 당()의 온정균(溫庭筠)ㆍ단성식(段成式)ㆍ여지고(余知古)를 가리킨다.

 

제기(齊己)

()의 승려(僧侶). 그는 승려이면서 서한(書翰)에 마음을 쓰고, 또 시 읊기를 좋아하여 강릉(江陵) 용흥사(龍興寺)에 있으면서 정곡(鄭谷)과 많이 창수(唱酬)를 하였으며 차()에 대하여도 일가견이 있었음. 학림신편(學林新編)

 

제기(緹騎)

황궁을 경호하는 근위 기병(近衛騎兵)을 말한다. 집금오(執金吾)의 지휘를 받는데, 홍색[]의 제복을 입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 인용: 有客行(성해응)

 

제남생(濟南生)

명 나라 이반룡(李攀龍)을 가리킨다. 이반룡이 산동성(山東省) 제남군(濟南郡) 역성현(歷城縣) 출신이기 때문이다.

제남(濟南)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의 땅이름이다. 제남(濟南) 출신의 명유(名儒) 복생(伏生)을 가리킨다. 한 문제(漢文帝) 진시황(秦始皇)이 불태워 없애버린 경전을 복원할 당시 상서(尙書)를 강의할 사람이 없자, () 나라 때 박사(博士)를 역임한 뒤 제(), () 사이에서 유생들을 가르치던 복생을 불러오게 하였는데, 당시 나이 90여 세의 노인이라서 여행을 할 수 없었으므로 조정에서 사람을 보내 그에게 배우고 오도록 했던 고사가 전한다. 그의 생전에 그 지방의 장생(張生)과 구양생(歐陽生)에게 상서(尙書)의 학문을 전수하였다. 한서(漢書)88 유림전(儒林傳)복생(伏生)

 

제녀(齊女)

매미의 별칭이다. () 나라 왕후가 억울하게 죽은 뒤에 매미로 변해서 궁정 앞의 나무에 올라 애달프게 울었다는 전설에서 기인하여, 후비(后妃)나 궁녀(宮女)의 비원(悲怨)을 뜻하는 시어가 되었다. 고금주(古今注)』 「문답석의(問答釋義)

 

제노(齊奴)

석숭(石崇)의 별명이다.

 

제니(薺苨)

냉이와 도라지.

 

제대운경(齊臺隕傾)

제 나라 과부가 자식도 없이 시집도 가지 않은 채 시어머니를 잘 모시고 있었는데, 어미의 재산을 욕심낸 시누이가 과부에게 시집을 가라고 하였다. 과부가 응하지 않자, 이에 어미를 죽이고 그 죄를 과부에게 덮어씌웠는데 과부의 원한이 하늘에 맺혀 제 경공(齊景公)의 누대에 벼락이 떨어졌다고 한다.

 

제도(帝都)

천자가 있는 곳. 즉 서울을 말한다.

 

제동야어(齊東野語)

스스로 쓸데없는 이야기를 잘 한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야어(野語)는 믿을 수 없는 황당무계한 말을 이르고, 제동(齊東)은 제 나라 동쪽의 벽촌(僻村)을 가리킨 것으로, 제 나라 동쪽 벽촌 사람들의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이른 말이다. 맹자(孟子)』 「만장(萬章)

 

제량권애민(齊梁勸愛民)

맹자(孟子)가 일찍이 앙혜왕(梁惠王)와 제선왕(齊宣王)에게 이 마음을 확충시켜 백성을 사랑하라는 뜻으로 설득했던 데서 온 말이다.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

 

제량빙(齊梁聘)

그 나라 흥망 성쇠와는 하등의 직접 관련이 없는 객경(客卿)의 입장을 말한다. 맹자(孟子)전국시대(戰國時代) 양혜왕(梁惠王) 제선왕(齊宣王)의 초빙을 받아 일정한 책임이 없는 객경 입장에서 제 나라 위 나라를 왕래하였다.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

 

제량조(齊梁調)

중국 남북조 시대 제()ㆍ양() 양조(兩朝) 사이에 유행했던 시체(詩體)로서 성정(性情)의 표현보다는 성조(聲調)와 수사학(修辭學)적인 기교가 더욱 발달하였다.

 

제량체(齊梁體)

남북조(南北朝) 시대 제()ㆍ양()양조(兩朝) 사이에 행해졌던 시체(詩體)의 하나이다.

 

제력어하유(帝力於何有)

태평(太平)을 노래한 것이다. () 임금 때에 정사가 잘 되어 천하가 태평하자, 한 노인이 땅을 치며 노래하기를, “해 뜨면 나가서 밭을 갈고, 해 지면 들어와 쉬며,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밭 갈아서 밥 먹고사는데, 임금의 힘이 나에게 미친 것이 어디 있느뇨[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何有於我哉].”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제로도문진(齊魯徒問津)

공자가 천하에 도를 펴 보고자 돌아다니다가 자로(子路)를 시켜 밭을 갈고 있는 장저(長沮)와 걸닉(桀溺)에게 나루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 본 것을 말한다. 논어(論語)』 「미자(微子)

 

제릉(齊陵)

태조의 비 신의왕후(神懿王后)의 능으로, 개풍군(開豐郡) 상도면(上道面)에 있다.

 

제목(除目)

관원의 인사이동 명단을 말한다.

 

제무(齊巫)

제 나라의 여악(女樂)을 가리킨다. “제나라에서 여악을 노 나라에 보내줌으로써 공자는 그만 떠나가 버렸다.” 하였다. 논어(論語)』 「미자(微子),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

 

제문막주우(齊門莫奏竽)

누구도 그 앞에 가서 자랑할 수 없을 만큼 군신 상하가 즐기며 흥청대고만 있다. 소진(蘇秦)이 제 선왕(齊宣王)에게 유세하기를, “임치(臨淄)가 매우 부실(富實)하여 백성들 모두가 피리 불고 비파 타고……하였다.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

 

제물(齊物)

옳고 그름, 저쪽과 이쪽, 남과 나, 단명과 장수가 서로 구별이 없이 하나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물리(物理)를 다 같게 본다는 것이고 적 대소(大小) 물아(物我)를 초월한 달관을 말한다. 전국시대(戰國時代)의 도가(道家)인 장주(莊周)는 저서인 장자(莊子)가운데 제물론(齊物論)에서는 생사(生死), 수요(壽夭), 시비(是非), 득실(得失), 물아(物我), 유무(有無) 등 우주간의 일체 상대적인 관점을 타파하고 평등하게 보려는 도가(道家)의 제물(齊物) 사상으로 평등하게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 유의어: 제물론(齊物論), 제물리(齊物理), 제물아(齊物我)

 

제물소요(齊物逍遙)

장자(莊子)의 처음 두 편()제물론(齊物論)소요유(逍遙遊)를 이른 것이다. 세속적 대소(大小) 물아(物我)를 초월한 달관을 말한다.

 

제민(齊民)

일반 백성을 말한다. / 인용: 嶺南歎(윤현)

 

제범(帝範)

당 태종이 지어서 태자(太子)에게 내린 책인데, 군체(君體)ㆍ구현(求賢)ㆍ심관(審官)ㆍ납간(納諫)ㆍ거참(去讒) 등 제왕으로서 모범이 되어야 할 12조목으로 기록되었다.

 

제복이운망(題鵩而云亡)

() 나라 때 가의(賈誼)가 장사왕 태부(長沙王太傅)로 폄척되어 나가 있을 적에 복조(鵩鳥)가 거처하는 집에 날아들자, 이 불상조(不祥鳥)가 자기 거소에 날아든 것을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할 불길한 조짐으로 여기고 스스로 복조부를 지어 자신을 애도했는데, 그후 과연 그가 그곳에서 죽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사기(史記)』 「굴원가생열전(屈原賈生列傳)

 

제봉(題鳳)

()자를 파자(破字)하면 범조(凡鳥)가 되므로 사람을 우롱하는 말이다. () 나라 때 혜강(嵇康)과 여안(呂安)이 서로 매우 친하게 지냈는데, 한번은 여안이 혜강의 집을 방문하니, 혜강은 없고 그의 형 혜희(嵇喜가 나와서 그를 맞이하자, 여안은 들어가지 않고서 혜희를 우롱하는 뜻으로 문 위에다 봉() 자를 써놓고 갔던 데서 온 말이다. 그러므로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함을 의미한 것이다.

 

제봉가세(霽峯家世)

제봉은 고경명(高敬命)의 호이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광주(光州)의 의병 6천여 명을 이끌고 금산(錦山)에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이때 두 아들 인후(因厚)와 종후(從厚)도 참전하여 인후는 함께 죽고 종후는 부친의 시신을 수습해 돌아왔다가 다시 의병을 일으켰다.

 

제봉자(題鳳字)

손이 찾아왔다가 들어오지 않고 그냥 돌아갔다는 뜻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 「간오(簡傲), 몽구(蒙求)175, “혜강(嵇康)이 여안(呂安)과 더불어 친하게 지냈는데, 생각이 날 적마다 천 리 먼 길을 찾아왔다. 어느 날 여안이 왔는데 마침 혜강은 집에 없고 혜강의 형인 혜희(嵇喜가 나와서 맞이하였다. 그러자 여안이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문 위에다가 봉() 자를 써 놓고 갔다. 혜희는 그 뜻을 알지 못하고 좋아하였는데, 봉 자를 써 놓은 것은 평범한 새(凡鳥)’란 뜻이었다.” 하였다. 이 고사는 흔히 친구를 방문하였다가 만나지 못하였다는 뜻으로 쓰인다.

 

제분(除糞)

불가(佛家)의 말에, “처음에 석가(釋迦)화엄경(華嚴經)를 설하니 중생(衆生)들이 놀라기에 부득이 다시 소승경(小乘經)을 설하고, 뒤에 다시 방등경(方等經)을 설하며, 최후에 법화경(法華經)를 설하여 성불(成佛)하게 하였다. 이것을 비유하면 아들이 처음에 집을 버리고 도망하여 걸인이 되어 돌아다녔다. 이것은 중생이 미혹하여 고해(苦海)에 돌고 도는데 비유하였다. 부모는 사람을 시켜 그 아들을 집으로 데려오니, 아들은 부잣집의 화려한 것을 보고 놀라 도망치려 하였다. 부모는 다시 수단을 써서 집안에서 거름이나 치고(除糞) 품삯을 받게 하여 아들은 안심하고 있었다. 다시 집안에 출입하기를 익숙히 하고 다시 차차 보물이 있는 데를 알게 하고 최후에 열쇠를 모두 주어 살림살이를 맡겼다. 거름치는 것은 소승경을 배울 때요, 최후에 법화경은 살림을 모두 맡긴 것이다.” 하였다.

 

제삼번객(第三番客)

소식(蘇軾)의 월시(月詩)이에 적선인이 있어 술을 들어 세째 손이 되노라[爰有謫仙人 擧酒爲三客]”라 하였는데, 이백(李白)과 같은 천재 시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제삼인(第三人)

() 나라 고제(高帝)가 자기의 공신(功臣) 삼걸(三傑)한신(韓信)장량(張良), 소하(蕭何)에 뒤에 두어 셋째로 쳤다.

 

제상(堤上)

박제상(朴堤上)이다. 제상을 삼국사기에서는 박제상이라 하고, 삼국유사에서는 김제상(金堤上)이라 하였는데, 박씨나 혹은 김씨의 성을 붙인 것은 후대에 붙인 것이고 본래는 제상(堤上)이다. 신라 실성왕(實聖王) 원년에 왜와 강화하기 위하여 내물왕(奈勿王)의 아들 미사흔(未斯欣)을 인질로 보냈는데, 박제상이 이를 구하기 위하여 일본으로 갔다.

 

제상충혼(堤上忠魂)

신라 때 박제상(朴堤上)이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신라 왕의 동생인 미사흔(未斯欣)을 탈출시켜 신라로 돌려보낸 뒤 자신은 억류되어 있다가 피살당한 일을 말한다.

 

제생문자구(諸生問字俱)

양웅(揚雄)고문(古文)의 기자(奇字)를 많이 알고 있었으므로 유분(劉棻) 등이 찾아와서 글자를 배웠던 고사가 있다. 한서(漢書)』 「양웅전(揚雄傳)

 

제석(除夕)

()는 사전에 除 謂去也. 除惡務本이란 뜻으로 쓰인다고 되어 있다. 제석(除夕)은 일년의 마지막날인 섣달 그믐밤으로 일년의 모든 일을 정리하고 낡은 것을 몰아내고 새해를 새로운 마음으로 맞이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제야(除夜), 또는 덜리는 밤이라고도 한다.

 

제석(帝釋)

본디 도리천(忉利天)의 임금으로 범왕(梵王)과 더불어 불법(佛法)을 지키는 신인데, 절을 뜻하기도 한다.

 

제석천(帝釋天)

불교(佛敎)에서 말하는 삼십삼천(三十三天)의 하나로 석가불이 살고 있다는 도리천(忉利天)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곧 석가불(釋迦佛)을 지칭한 것이다.

 

제성조벽일시강(齊城趙壁一時降)

한신(韓信)이 조() 나라와 제() 나라를 모두 쳐부순 일이 있었다.

 

제세안민책(濟世安民策)

세상을 도탄에서 건지고 백성을 편안케 하는 계책을 말한다.

 

제세일모(濟世一毛)

봉황의 터럭 하나라는 말로, ‘부조(父祖)의 유풍(遺風)을 이어받은 걸출한 인물을 비유할 때 쓰는 표현이다. () 나라 왕소(王劭)와 남조 제()의 사초종(謝超宗)이 각각 환온(桓溫)과 제 무제(齊武帝)로부터 봉모(鳳毛)를 확실히 이어받아 가지고 있다.”는 찬사를 받았던 고사가 있다. 세설신어(世說新語)容止남제서(南齊書)36 사초종열전(謝超宗列傳)

 

제세지재(濟世之才)

세상을 구제할 만한 뛰어난 인물을 말한다.

 

제속(齊速)

나란히 달리다는 뜻이다.

 

제수(除授)

천거(薦擧)의 절차를 밟지 아니하고 임금이 직접 벼슬을 시키는 것을 말한다.

 

제수토곡(齊修土穀)

육부(六府)ㆍ삼사(三事)가 잘 다스려짐을 가리키는 말이다. 육부(六府)는 수ㆍ화ㆍ금ㆍ목ㆍ토ㆍ곡(水火金木土穀)의 여섯 가지, 삼사(三事)는 정덕(正德)ㆍ이용(利用)ㆍ후생(厚生)의 세가지인데 토곡은 곧 이 육부를 가리키는 말이다.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수ㆍ화ㆍ금ㆍ목ㆍ토ㆍ곡(水火金木土穀)이 유수(惟修)하며 정ㆍ덕ㆍ이용ㆍ후생(正德利用厚生)이 유화(惟和)하여……라는 대목이 있는데, 이에 대한 주()수극화(水克火)하고 화극금(火克金)하고 목극토(木克土)하여 오곡(五穀)을 내는 것이니, 혹은 서로 견제하고 혹은 서로 도와서 부족한 것을 보충하면 여섯 가지가 모두 잘 다스려지기 때문이다.’ 하였다.

 

제슬(齊瑟)

옛날 제왕(齊王)이 피리를 좋아했는데, 제 나라에 벼슬을 구하려는 자가 있어 자기가 잘 타는 비파를 가지고 제왕이 사는 대궐 문에 3년을 서 있었으나 들어가지 못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제승(除乘)

()는 나누는 것이고, ()은 보태는 것으로, 인사(人事)의 소장(消長)과 성쇠(盛衰)를 말한다.

 

제실회초동(緹室灰初動)

동지(冬至)가 지나 양()의 기운이 퍼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제실은 옛날에 절기(節氣)를 살피던 방이고, 율관(律管)은 고대에 절후를 관측하던 기구로, 대나무나 금속으로 만들며, 모두 12개로 이루어졌다. 밀실에 이 율관을 놓아 두고 갈대를 태운 재를 채운 다음 흰 천을 덮어 두면 절후가 바뀔 적마다 한 개의 율관씩 재가 올라와서 천에 달라붙는다고 한다.

 

제악어문(祭鰐魚文)

한퇴지(韓退之)가 조주 자사(潮州刺史)로 있을 때에 악어(鰐魚)가 해를 끼치므로 악어문(鱷魚文)을 지었다.

 

제안(齊安)

송나라 때에 황강은 제안군(齊安郡)이었다

 

제야(除夜)

섣달 그믐날 밤을 말한다.

 

제양(齊揚)

나란히 들다라는 뜻이다.

 

제양(濟陽)

한 광무제(漢光武帝)가 태어난 제양궁(濟陽宮)이 있는 제수(濟水)남쪽에 있는 고을을 말한다.

 

제양주(齊梁主)

제 선왕(齊宣王)과 앙혜왕(梁惠王)를 가리킨 것으로 이들은 모두 맹자(孟子)를 초청하였으나 쓰지 못하였다.

 

제어달(祭魚獺)

매년 맹춘(孟春)에는 수달()이 잉어를 잡아 진설해 놓고 제 조상에게 제사 지낸다는 말이다.

 

제어충비(制於蟲臂)

버마재비[螳蜋]가 두 발을 버티어 수레바퀴를 항거한다하는 속담이 있는데, 여기서는 반대로 수레바퀴가 버마재비에게 제어를 받았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천지(天地)/ 유의어: 당랑거철(螳螂拒轍)

 

제여거(齊餘莒)

전국시대(戰國時代) ()의 장수 악의(樂毅)가 제()를 공격하여 제 나라 성() 70여 개가 모두 함락되었을 때 오직 즉묵(卽墨)과 거() 두 성만이 남아 있었음. 사기(史記)』 「연세가(燕世家)

 

제염(虀鹽)

나물과 소금으로, 소식(素食)을 하는 청빈한 삶을 말한다.

 

제염새폐장(虀鹽塞肺腸)

부추에다 소금으로 마른 창자 채우다. 천빈(淸貧)한 선비의 생활을 말한다. 한유(韓愈)송궁문(送窮文)태학 생활 4년 동안 아침에는 부추에다 저녁에는 소금으로 때웠다[太學四年朝虀暮鹽].” 하였다.

 

제영(緹縈)

() 나라 때 태창령(太倉令) 순우의(淳于意)의 딸 이른다. 순우의는 아들은 없고 딸만 다섯이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고소를 당해 감옥에 갇혀 형을 당하게 되자 아들 없다는 것으로 딸들에게 욕했다. 이에 제영(緹縈)이 슬피 울며 아버지를 따라 장안에 가서 자신을 관비로 삼아 부친의 죄를 사해 달라고 임금에게 상서(上書)하여 아버지의 형을 면하게 했던 효녀였다.

 

제오(題午)

옛날 이안의(李安義)라는 사람이 부자(富者)인 정생(鄭生)을 찾아뵙고 나오면서 그 정생의 문 위에다 크게 오() 자를 쓴 데서 온 말인데, 그것은 곧 소가 머리를 내놓지 않는다[牛不出頭]’는 뜻으로서 정생의 오만함을 풍자한 것이었다.

 

제오교(第五橋)

장안 남쪽 위곡(韋曲) 부근의 명승이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에 제오교 동쪽 물에 한을 흘려보내고, 황자파 북쪽 정자 시름이 서렸어라[第五橋東流恨水 皇陂岸北結愁亭].”이라는 구절이 있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6 題鄭十八著作丈故居

 

제오낙월(啼烏落月)

당 나라 장계(張繼)풍교야박(楓橋夜泊)月落烏啼霜滿天 江楓漁火對愁眼이라 하였다.

 

제우취(齊竽吹)

자격도 없는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고 관직 생활에 뛰어들었다는 말이다. 제 선왕(齊宣王)이 모집한 피리의 명인 3백 인 가운데 남곽 처사(南郭處士)가 몰래 끼어 들었다가, 아들 민왕(湣王) 때에 하나하나 독주(獨奏)를 시키자 도망쳤던 고사가 있다. 한비자(韓非子)』 「내저설(內儲說)/ 인용: 남우(濫竽)

 

제운(齊雲)

오대(五代) 한보(韓浦) 가 지은 누각.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소주(蘇州)에 있다. 구름과 같이 높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제월(齊鉞)

새로 장수를 임명하여 전쟁터로 보낼 때 왕이 수여하는 부월(斧鉞)을 말한다.

 

제월(霽月)

밝은 달(霽月)은 광풍제월(光風霽月)의 약칭인데, 황정견(黃庭堅)이 염계시서(濂溪詩序)를 지으면서 주돈이의 높은 인품과 탁 트인 흉금을 묘사한 말이다.

 

제월광풍(霽月光風)

맑고 서늘한 바람과 비가 그친 뒤의 명정(明淨)한 달이라는 뜻으로, 흉금이 툭 터지고 인품이 고아(高雅)한 것을 가리키는데, () 나라 황정견(黃庭堅)의 염계시(濂溪詩) 서문에 용릉(舂陵) 땅 주무숙(周茂叔)은 인품이 매우 고아하여, 그 쇄락한 흉중이 마치 광풍 제월과 같다.”라는 말이 있다. 무숙은 주돈이의 자()이다.

비 갠 뒤의 바람과 달이란 뜻으로, 사람의 도량이 넓고 시원스러움을 표현하는 말이다. 송사(宋史) 도학열전(道學列傳) 주돈이(周敦頤), “인품이 아주 높고 흉회가 쇄락하여 비 갠 뒤의 달과 바람과 같았다.” 하였다. 인용: 霽月堂記(김창협)

 

제율(齊慄)

삼가고 두려워하는 뜻이다.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장엄히 제율하시니 고수 역시 믿어서 순해졌다[夔夔齊慄瞽亦允若].” 하였다.

 

제이월(第二月)

불교(佛敎) 용어로서 곁달, 즉 손가락으로 눈을 누르고 달을 보면 본 달 곁에 나타나는 희미한 달을 말한다.

 

제자(帝子)

상부인(湘夫人). 요임금의 딸. 고대에는 ()’가 남녀통영.

 

제자(弟子)

이원제자(梨園弟子)ㆍ악공(樂工)ㆍ여기(女妓). 이원은 당현종(唐玄宗)이 영인(伶人)들을 모아 음악을 교수하던 곳이다.

 

제자거(帝子居)

왕발의 등왕각서(滕王閣序), “제자 장주에 다다르다[臨帝子之長洲].” 하였다.

 

제자백가(諸子百家)

여러 학자와 많은 학파.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여러 학파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제자주(帝子洲)

제자(帝子)는 상제(上帝)의 아들인데. 제주도(濟州島)를 가리키기도 한다. 고려사(高麗史)지리지(地理志) 11 탐라(耽羅)고기(古記)태초(太初)에는 사람이 없었다가 모흥(毛興)의 굴 속에서 세 사람의 신인(神人)이 나왔는데, 맏이는 양을라(良乙那), 다음은 고을라(高乙那), 다음은 부을라(夫乙那)이다.’ 했다.” 하였다.

 

제잠(蹄涔)

우제잠(牛蹄涔)의 준말로, 겨우 소의 발굽이 들어갈 만한 조금 괸 물을 말한다. 회남자(淮南子)』 「숙진훈(俶眞訓)

 

제잠(鯷岑)

()는 고대에 동해(東海) 바다 가운데에 있는 종족의 이름인데,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 “회계(會稽)의 바다 바깥에 동제인(東鯷人)이 살고 있는데, 20여 개의 나라로 나누어져 있다.” 하였다.

 

제전(蹄筌)

()는 토끼를 잡는 기구요 전()은 물고기를 잡는 기구이니, 토끼와 물고기를 얻는 것이 목적이므로 토끼와 물고기를 얻은 뒤에는 제()와 전()은 잊어야 한다는 것이다[得兎忘蹄, 得魚忘筌]. 장자(莊子)』 「외물(外物)

 

제전(帝甸)

황성(皇城)에 가까운 지방을 말한다.

 

제제(晢晢)

별이 반짝이는 모양

 

제제(折折)

편안한 모양

 

제제(嚌嚌)

근심하여 슬퍼하는 소리

 

제제(悌悌)

손윗사람을 잘 섬김

 

제제(嗁嗁)

우는 모양

 

제제(提提)

우아하고 마음에 여유가 있는 모양, 편안하여 만족해하는 모양, 명백한 모양

 

제제(媞媞)

편안한 모양, 아리따운 모양

 

제제(泜泜)

가지런한 모양

 

제조삼년불긍명(齊鳥三年不肯鳴)

제 위왕(齊威王)이 임금이 된 지 3년에 음란한 놀이만 하고 정치는 돌보지 아니하였다. 순우곤(淳于髡)이 왕에게 은어(隱語)를 하기를, “큰 새가 한 마리 있는데 3년 동안이나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으니 무슨 까닭입니까.” 하니 왕이 답하기를, “3년 동안 날지 않다가 날면 장차 하늘을 찌를 것이며, 3년 동안 울지 않다가 울면 장차 사람을 놀래게 할 것이다.” 하고 그날부터 정치에 힘을 써서 강국(强國)이 되었다.

 

제좌(齊坐)

사헌부나 사간원(司諫院)의 관원이 일을 의논하기 위해 모든 인원이 함께 앉는 것을 말한다. / 인용: 용재총화(성현)

 

제주(齊州)

중주(中州) 즉 중국(中國)을 말한다.

지금의 산둥성(山東省)에 있다.

 

제주(題柱)

기둥에 글을 쓴다는 뜻인데 한()나라 사마상여가 처음에 벼슬하기 위해 서쪽의 장안(長安)으로 들어갈 때 승선교(昇仙橋)를 지나가다가 다리 기둥에 네 필의 말이 끄는 높은 수레를 타지 않고서는 이 다리를 지나지 않으리라[不乘高車駟馬 不過此橋].”라고 쓴 일을 말한다. 곧 반드시 고관 대작이 되어 금의환향하겠다는 각오를 드러낸 것이다. 한서(漢書)卷五十七 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

출세하기 위해 고향을 버림. 고향이 성도(成都)인 한()의 사마상여(司馬相如)가 벼슬하기 이전에 서쪽으로 가면서 승선교(昇仙橋)를 지날 때 그 다리 기둥에다 쓰기를, “고거사마(高車駟馬)를 타지 않고서는 다시 이 다리를 지나지 않으리라[不乘高車駟馬 不過此橋].” 하였다. 성도기(成都記)

 

제주객(題柱客)

벼슬길에 나아가 공명과 현달을 구하기로 맹서한 선비를 말한다. () 나라 때 성도(成都)의 북쪽에 승선교(升仙橋)란 다리가 있었는데,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처음 장안(長安)에 들어가서 공명을 구하던 때 이 다리를 지나면서 다리 기둥에 제하기를, “말 네 마리가 끄는 높은 수레를 타지 않고서는 이 다리를 다시 건너오지 않겠다.” 하였다. 태평어람(太平御覽)73

 

제주구점연(齊州九點煙)

제주(齊州)는 중주(中州) 즉 중국으로, 중국의 구주(九州)도 높은 곳에서 바라다 보면 아홉 개의 운무 덩어리(九點煙)로 보인다는 말인데, () 나라 이하(李賀)의 시 몽천(夢天)’遙望齊州九點煙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주미응과장절(題柱未應誇壯節)

() 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촉()을 떠나 장안(長安)으로 향할 때, 성도(成都)의 승선교(昇仙橋) 다리 기둥에 네 마리 말이 끄는 붉은 수레를 타지 않고서는 이 다리를 건너오지 않겠다.”고 써서 공명(功名)에 대한 포부를 밝혔던 고사가 있다. 예문유취(藝文類聚)63

 

제주절(題柱節)

기필코 성공하겠다는 뜻이다. () 나라의 문장가 사마상여(司馬相如)가 고향인 성도(成都)를 지나다가 승선교(昇仙橋) 다리 기둥에 높은 수레와 사마를 타지 못하면 다시는 이 다리를 지나지 않겠다[不乘高車駟馬 不過此橋].”고 쓴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제주지(題柱志)

제주(題柱)는 다리의 기둥에 글씨를 쓰는 것. 전한(前漢)의 문호(文豪) 사마상여(司馬相如)는 처음으로 장안(長安)을 갈 적에 촉군(蜀郡)의 승선교(昇仙橋)를 지나면서, 교주(橋柱)에 제()하기를 높은 수레와 사마를 타지 않고는 다시 이 다리를 지나지 않겠다.” 하였다.

 

제주현(帝珠玄)

()의 본체. “황제(黃帝)가 적수(赤水)에서 놀면서 곤륜산(崑崙山) 언덕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다가 금방 돌아오면서 검은 진주를 잃어버렸는데……하였다. 장자(莊子)』 「천지(天地)

 

제준(祭遵)

후한(後漢) 사람으로, 유술(儒術)이 있는 자만을 취택하여 잔치를 벌일 때면 반드시 우아한 노래를 읊고 투호놀이를 즐겼다 한다.

 

제즉서(題鰂誓)

오적묵(烏賊墨)이란 오징어 뱃속에 든 먹통을 이르는데, 옛날 중국 강동(江東) 사람들은 흔히 먹물 대신 이 오징어 먹통을 취하여 이것으로 계약서를 작성해 주고 다른 사람과 재물을 거래하였던 바, 해가 지나면 이 먹물이 다 없어져서 빈 종이만 남았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제즙염설(虀汁鹽屑)

부추즙과 소금가루. 한유의 송궁문(送窮文)太學四年 朝虀暮盬이라 하였다.

 

제진(帝秦)

() 나라를 황제로 섬기는 일. 노중련(魯仲連)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의 변사(辯士)인데 고절(高節)의 선비로서, () 나라 신원연(新垣衍)진 나라를 황제로 섬기자.”고 하자, 중련은 의리상 황제로 섬길 수 없다.” 하였다.

 

제천(諸天)

불교에서 말하는 모든 천상계(天上界). 또는 하늘에 있는 신()을 말한다.

 

제천정(濟川亭)

한강 북쪽 언덕에 있었던 정자 이름으로, 중국 사신이 오면 으레 이곳에서 노닐면서 시를 지어 걸었다고 한다.

 

제천주(濟川舟)

임금을 보좌할 만한 재능을 지닌 사람을 말하는데, 서경(書經)』 「열명(說命), “만약 큰 강물을 건널 경우에는 너를 배로 삼겠다.” 하였다.

 

제천훈업(濟川勳業)

은 고종(殷高宗)이 부열(傅說)을 재상으로 발탁하고 자기를 도와달라는 뜻으로 부탁하기를 만약 큰 냇물을 건너게 된다면 그대를 배와 노로 삼겠다.”고 한 것에서 인용한 말로, 이항복(李恒福)이 임금을 잘 보좌하여 재상으로서의 공적을 세울 것이라는 것이다. 서경(書經)商書 열명(說命)

 

제충(梯衝)

운제(雲梯)와 충차(衝車). 모두 성()을 공격하는 무기이다. 묵자(墨子)』 「공수(公輸)

 

제칠정어기형(齊七政於璣衡)

서경(書經), “()이 선기옥형(璇璣玉衡)이란 천문(天文)의 기계를 만들어서 일월 오성(日月五星; 七面)을 다스렸다.” 하였다.

 

제파(帝羓)

임금을 말린 고기. 오대사(五代史) 사이 부록(四夷 附錄)덕광(德光)이 진()을 멸망시킨 뒤에 한 고조(漢高祖)가 태원(太原)에서 군대를 일으키니 덕광이 크게 두려워하여 북쪽으로 돌아가던 중 난성(欒城)에서 병에 걸려 살호림(殺胡林)에서 죽었다. 이에 거란(契丹)이 그의 위장을 꺼낸 다음 소금으로 채워서 수레에 싣고 북쪽으로 돌아갔는데 진() 나라 사람들이 이를 제파(帝羓)라 하였다.” 하였다.

 

제포(綈袍)

두꺼운 명주로 만든 솜옷.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 범수(笵睢)가 중대부(中大夫) 수가(須賈)를 섬기다가 진() 나라로 도망하여 이름이 장록(張祿)으로 고치고 재상이 되었다. 그 후 수가가 위 나라 사신으로 진 나라에 갔는데, 범수가 낡은 옷을 입은 누추한 모습으로 찾아가자 수가가 동정하여 제포(綈袍)를 주었다 한다. 사기(史記)79 범수채택열전(范睢蔡澤列傳)

 

제포련고정(綈袍戀故情)

정답게 지내던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때 위() 나라 수가(須賈)가 옛 친구인 범수(范睢)에게 따뜻한 솜옷(綈袍)을 주었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사기(史記)79 범수채택열전(范睢蔡澤列傳)

 

제포연연(綈袍戀戀)

벗이 추위에 떠는 것을 보고 두껍게 짠 비단옷을 주었다는 고사로, ‘우정이 깊다는 것을 말한다.

 

제폭구민(除暴救民)

포악한 탐관오리를 없애고 백성을 구제함을 말한다.

 

제하분주(濟河焚舟)

적을 공격하러 가면서 배를 타고 물을 건넌 후 바로 배를 태워버린다. 필사(必死)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제항(梯杭)

사다리와 배. 곧 험한 산을 오를 때 쓰는 기구와 바다를 건널 때 쓰는 장비. 저 멀리 있는 외국에서 황제의 위엄과 덕화를 듣고서 험한 산길은 사다리로 넓은 바다는 배로 와서 조공 바친다는 말이다.

 

제해(齊諧)

인명(人名)이라고도 하고 서명(書名)이라고도 한다.

 

제해(齊諧)

책 이름인데, 황탄무계한 말이 많이 실렸다 한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제해(齊諧)란 것은 괴이를 기록한 것이다.” 하였다.

 

제향(帝鄕)

상제(上帝)가 있는 곳으로 즉 하늘을 이른다. 장자(莊子)』 「천지(天地)편에, “乘彼白雲 至于帝鄕이란 말이 보인다.

 

제향(帝鄕)

임금 계신 곳을 말한다.

 

제형(提衡)

이조 판서의 별칭이다.

 

제형(提刑)

형조의 관원을 말한다.

 

제형긍견치수오(提衡肯遣錙銖誤)

인사행정을 공명정대하게 분명히 행하리라는 말이다. 제형(提衡)은 보통 관리를 선발하고 임용할 때 쓰는 표현이다.

 

제형헌서(緹縈獻書)

() 나라 때, ()의 태창 영(太倉令) 순우의(淳于意)가 죄를 지어 형벌을 받게 되었는데, 그의 딸 제형이 상서(上書)하기를 저의 아버지는 관리로 있는 동안 모든 사람으로부터 청렴하고 공평하다고 일컬어진 분인데, 이제 법에 걸려 형벌을 받게 되니 가슴이 아픕니다. 사람은 한번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는 것이니, 아무리 개과천선하려 해도 할 길이 있겠습니까. 아버지가 지은 죄의 대가로 제가 관비(官婢)로 들어가, 아버지에게 개과천선하도록 하고자 합니다.” 하니, 천자가 그의 뜻을 가상히 여겨 그의 아버지에게 육형(肉刑)을 면해 주었다. 사기(史記)卷十 효문제기(孝文帝紀)

 

제호(提壺)

새 이름으로 사다새를 가리킨다. 그 소리가 마치 술병을 들고 술을 사러 가라는 뜻으로 들리기 때문에 그렇게 불려졌다 한다.

 

제호(醍醐)

연유 위에 기름 모양으로 엉긴 맛좋은 액체. 본초(本草)』 「제호(醍醐)

우락(牛酪) 위에 엉긴 기름 모양의 맛이 아주 좋은 액체를 말한다. 피일휴(皮日休)시에, “고미밥이 다 익고 제호 맛이 연하구나. 고인이 아니고는 먹을 음식 아니로세[彫胡飯熟餬軟 不是高人不合嘗]” 하였다.

정제한 우유를 말하나, 여기서는 미주(美酒)를 가리킨다. 당 나라 백거이(白居易)의 장귀일절시(將歸一絶詩), “다시금 집의 술이 봄 맞아서 익는 것이 가련하니, 한 동이의 제호가 나오기를 기다리네[更憐家醞迎春熟 一瓮醍醐待我歸]”하였다.

최고급 수준으로 정제하여 가공한 유제(乳製) 식료품. 불가(佛家)에서 정법(正法)을 비유할 때 곧잘 쓰는 용어이다. 열반경(涅槃經)從乳出酪 從酪出生酥 從生酥出熟酥 從熟酥出醍醐 最上 佛亦如是라 하였다. 불가어에 관정제호(灌頂醍醐)가 있는데 지혜로써 사람에게 수입(輸入)함을 이른다.

 

제호관정(醍醐灌頂)

제호탕(醍醐湯)을 정수리에 부은 것같이 정신이 상쾌하고 깨끗함을 가리키는 말로, 불가(佛家)에서 지혜(智慧)를 사람에게 주입시켜 주면 모든 번뇌가 사라지고 정신이 상쾌해진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동지(同志)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뜻이다.

 

제호금속(醍醐金粟)

제호(醍醐)는 맑은 술인데 우유()라고도 한다. 불가(佛家)에서 최상의 정법(精法)으로 불성(佛性)을 깨닫는 것을 제호라 한다는 말이 열반경(涅槃經)에 보이며, 금속은 유마거사(維摩居士)의 상()을 금속여래(金粟如來)라 한다는 말이 선화화보(宣和畫譜)에 보일 뿐이고, 술의 이름이다.

 

제호려(提壺蘆)

제호(鵜鶘)라는 새, 즉 사다새를 가리킨다. 그 새의 노랫소리가 마치 술병을 들고 마시라고(提壺) 하는 것 같다 하여, 시인들이 주흥(酒興)을 표현할 때 곧잘 쓰게 되었다.

 

제호조(提壺鳥)

봄철에 잘 우는데, 이는 좋은 시절이 되었으니, 술병 들고 놀러가라고 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제호탕(醍醐湯)

옛 청량제(淸凉劑)이다.

 

제환구회(齊桓九會)

()나라 환공(桓公)이 아홉번 회맹하여 맹주가 되다.

 

제황(醍皇)

일본의 제60대 천황(天皇)인 제호천황(醍醐天皇)을 가리킨다.

 

제회기(際會期)

제회(際會)는 제우(際遇)와 같은 뜻으로, 임금이 알아줄 시기가 온다는 말이다.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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