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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미장센 Mise en scène 연극과 영화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가장 큰 차이는 라이브와 녹화라는 점일 것이다. 연극은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관람하는 데 비해 영화는 제작이 완료된 뒤에 관람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차이는 차원이라는 측면에 있다. 연극과 영화는 차원이 다르다. 수준이 어떻다는 말이 아니라 연극은 3차원의 예술이고 영화는 2차원의 예술이라는 이야기다. 연극의 공간은 무대와 객석으로 이루어지며, 무대 위의 공간도 3차원으로 배치된다. 그에 비해 영화에는 객석이 존재하지 않으며 - 영화는 현장에서 관객과 함께 호흡하지 않는다 - 스크린은 마치 회화 평면처럼 3차원의 현실을 2차원으로 표현하는 장치다【프레임이 있다는 점에서도 영화는 연극보다 회화에 더 가깝다. 프레임은 작가가 원하는 장면만..
미메시스 Mimesis 예술가와 의사의 공통점은 뭘까? 마음과 몸을 치유하는 기능을 한다는 점일까? 기예(art)를 중시한다는 점일까? 그보다는 교육 방식이 닮은꼴이다. 전통적으로 예술 교육과 의학 교육은 개인 교습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르네상스 시대 이래로 음악과 미술 교육은 학생들이 학교에 모여 배우는 방식이 아니라 스승의 집에 제자로 들어가 직접 1 대 1로 배우는 방식이었다. 의학 교육도 마찬가지였는데, 수련의를 뜻하는 인턴(intern)과 레지던트(resident)라는 말에 모두 ‘거주’의 의미가 들어 있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1 대 1 교육은 모방을 기본으로 한다. 제자는 스승의 작업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스승의 솜씨를 모방한다. 무수한 모방을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제자는 스승을 똑같이 흉내..
미디어 Media 정보고속도로라는 말처럼 인터넷은 도로와 같은 역할을 하는 매체, 즉 미디어다. 한자어의 매체(媒體)나 영어의 미디어(media, medium의 복수형)는 둘 다 뭔가를 매개한다는 뜻이다. 도로는 가족이 여름휴가를 가거나 화물차가 물자를 수송할 때 사용하듯이 어떻게 쓰는가가 중요할 뿐 도로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인터넷도 역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도로와 같은 기능을 한다. 이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러나 캐나다의 미디어 비평가인 맥루한(Marshall McLuhan, 1911~1980)의 생각은 다르다. 맥루한은 미디어를 매체로만 보는 기존의 견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미디어는 메시지가 오가는 도로에 불과한 게 아니라 메시지 자체다. 그래서 맥루한은 미디어는 곧 메시지라고 말..
미네르바의 부엉이 Owl of Minerva 미네르바는 지혜의 여신이고 부엉이도 서양에서 지혜를 상징하는 동물로 손꼽히니까 미네르바의 부엉이라면 탁월한 지혜를 뜻할 것이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헤겔(Hegel, 1770~1831)은 자신의 사상을 미네르바의 부엉이에 비유할 만큼 자신감으로 넘쳤다. 난해하기 짝이 없는 그의 철학을 다른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비판하는 것을 가리켜 헤겔은 마치 선문답처럼 이렇게 말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질 무렵에야 비로소 날개를 펴기 시작한다. -『법철학』” 시대를 앞서 나가는 사람은 고독하다. 남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기 때문이다(혹은 알아주지 않는다고 여기거나). 헤겔은 자신의 그런 처지를 미네르바의 부엉이에 비유했다. 선견지명(先見之明)의..
물자체 Ding an sich 모든 사물은 보편성과 특수성이라는 두 가지 존재의 측면을 가진다. 축구공은 공으로서의 보편성과 더불어 축구를 할 때 사용하는 공이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보편성의 측면을 보편자라고 부르며, 특수성의 측면을 개별자라고 부른다. 보편자와 개별자의 문제는 중세에 중요한 철학적 쟁점이었다. 나무의 개별자는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버스 정류장 앞에 서 있는 플라타너스라는 구체적인 나무다. 나무의 보편자는 개별자와 다른 차원의 존재다. 나무에는 플라타너스만이 아니라 물푸레나무, 떡갈나무, 감나무 등 수많은 종류가 있다. 이 각기 다른 나무들을 나무라는 말로 총칭하는 이유는 나무의 보편자가 있기 때문이다. 나무 같은 자연 존재만 그런 게 아니다.
물신성 Fetishism 인간의 존엄성이 당연시되는 현대 사회지만 구체적인 일상생활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항상 인간으로서의 품위가 유지되지는 않는다. 정부조직의 하나인 교육인적자원부(敎育人的資源部)라는 부서의 명칭은 인간을 자원으로 분류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또 군대나 학교에서는 인간이 정해진 병력이나 인원을 채우는 양적 개념으로 규정된다. 지하철의 공익요원에게 출근과 퇴근 시간에 만나는 인간이란 등을 떠밀어 지하철에 태워야 하는 짐일 뿐이다. 질적으로 대우받아야 마땅한 인간이 양적 ‘덩어리’로 취급되는 현상에는 자본주의 특유의 물신성(物神性)이 깔려 있다.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가 제기한 물신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 전도 현상의 하나다. 인류 역사에서..
문화제국주의 Cultural Imperialism 몸은 가둘 수 있어도 영혼마저 가둘 수는 없다. 양심수의 자부심에 찬 선언이 아니다. 신체를 완전히 정복해도 정신까지 정복할 수 없다는 것은 세계의 지리적 정복을 완료한 서구 제국주의 열강이 새삼 깨달은 진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동시에 제국주의의 세계 분할과 재분할도 끝났다. 이 시기의 무기는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이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더 이상 그 무기의 효력이 통할 환경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식민지의 정치적 지배가 불가능해졌다. 서구의 선발 제국주의와 후발 제국주의의 대결이었던 제1차 세계대전, 서구 제국주의와 파시스트 제국주의의 대결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은 모두 제국주의적 모순의 표출이었으므로 종전 후에는 식민지 해방을 허용하지 않으..
문화상대주의 Cultural Relativism 제국주의 시대로 불리는 19세기에 구 열강은 전 세계를 자기들 마음대로 분할했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태평양 일대의 섬들처럼 문명의 힘이 미약한 지역은 물론이고 동아시아처럼 인구가 많고 수천 년 전부터 빛나는 문명을 발전시켜온 지역도 서구의 막강한 물리력 앞에 추풍낙엽(秋風落葉)처럼 무너졌다. 그 양태는 침략이었으나 세계 분할이 어느 정도 완료되자 서구는 자신들이 경제적ㆍ군사적으로 침탈한 지역에 관해 지적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오리엔탈리즘). 그 결과로 탄생한 새로운 학문이 인류학이다. 인류학은 다양한 인간 사회들을 비교 연구하고 그 특징과 성격을 분석하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인류학에서는 사회마다 대개 보편적이고 획일적인 사회경제적 메커니즘보다 ..
문화권력 Cultural Power 권력에는 공식적인 것과 비공식적인 것이 있다. 공식적인 권력은 법을 토대로 행사되는 정치권력과 공권력이다. 이 권력은 의미나 용도가 명백하다. 그러나 비공식적 권력은 정확히 정의되지 않고 행사되는 방식도 모호하다. 대표적인 예는 신분에서 비롯되는 권력이다. 오늘날은 신분사회가 아니지만 비공식적인 신분은 엄연히 존재한다. 투표할 때는 누구나 1인 1표를 행사한다 해도 평범한 시민의 발언이 재벌그룹 회장의 발언과 같은 영향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비공식적 권력 중에서도 가장 비공식적인 것은 신분이 아니라 문화에서 나온다. 바로 문화권력이다. 문화는 삶의 양식을 반영하므로 문화권력의 기반은 무척 다양하다. 지식. 정보, 미디어처럼 가시적인 게 있는가 하면 연고(緣..
무의식 Unconsciousness 꿈의 내용을 맘대로 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로또 복권에 당첨되어 프로방스(Provence)를 유람할 수도 있고, 잉베이 맘스틴(Yngwie Malmsteen, 1963~)보다 손가락이 빨리 돌아가 바로크 기타의 신이 될 수도 있다. 꿈에서는 모든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 일생 동안의 수면 시간을 모두 합하면 평균 수명의 1/3쯤 되니까 최소한 인생의 1/3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터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자기 마음대로 꿈꿀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꿈은 내 의도와는 정반대의 줄거리로 흘러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누가 내 뒤를 쫓아오는데 발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빨리 도망치지 못하고 애만 태웠던 꿈은 누구나 한번쯤 꿔봤을 것이다. 꿈꾸는 사람은 난데 왜 꿈..
뫼비우스의 띠 Möbius Strip 종이로 만든 기다란 띠가 있다. 연필을 떼지 않고 앞면과 뒷면을 따라 연속되는 선을 그을 수는 없을까? 불가능하다. 종이 띠의 앞면과 뒷면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2차원의 평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2차원을 3차원으로 만들면 가능하다. 종이의 한쪽 끝을 다른 쪽 끝과 풀로 붙이면 된다. 그래도 안 된다고? 그럼 그냥 붙이지 말고 한쪽 끝만 살짝 비틀어 뒤집어서 붙여보라. 신기하게도 연필은 종이 띠의 앞면과 뒷면에 계속 이어지는 선을 긋게 된다. 이렇게 만든 띠에는 앞면과 뒷면의 구별이 사라진다. 서로 다른 차원이 연결된다(→ 사차원). 이 띠를 고안한 사람은 19세기 독일의 수학자인 뫼비우스(August Ferdinand Möbius, 1790~1868)다. 그가 이 ..
목적론 Teleology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 모든 행위의 구성요소는 이 세 가지다. 즉 행위에는 주체, 방법, 목적이 있다. 추리소설이 발달해온 과정도 그 세 단계로 나뉜다. 초기 추리소설은 “Who done it?” 즉 범인이 누구냐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 다음에는 범행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How done it?”)로 중심이 옮겨갔고, 가장 높은 단계로 범죄의 목적(“why done it?”)을 중시하기에 이르렀다. 사건이나 현상을 설명할 때 목적을 고려하면 상당히 그럴듯한 이론을 구성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경우 자칫하면 목적론의 함정에 빠진다. 목적은 사건의 시간 순서로 보면 맨 마지막에 위치하기 때문에 중간 과정의 모든 것을 설명하기가 편하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목적에 비..
모순 Contradiction 어떤 주장이나 논리에 조리가 없고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뜻으로 흔히 모순(矛盾)이라는 말을 쓴다. 옛날 중국의 어느 장사꾼이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矛, 모)과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창도 막을 수 있는 방패(盾, 순)를 함께 팔았다는 데서 나온 말이므로 모순은 그 자체로 모순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모순은 비록 부정적인 유래에서 비롯되었으나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만 가진 것은 아니다. 일찍이 철학의 초창기에 이오니아의 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os, BC 540~480)는 대립물의 투쟁이 모순을 이루고 이 모순에서 운동이 생겨난다고 주장했다. 이후 다양한 사상이 제기된 고대, 신학적 합의를 중시하던 중세, 인식론이 초점이었던 근대를..
모더니즘 Modernism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는 흔히 현대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주관과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냉철한 이성과 과학적인 관점을 취하는 것이 곧 현대성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식과는 달리 현대성은 사실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현대라는 말은 현재의 시기를 가리키는 보통명사이기도 하지만 고유명사로 쓰면 19세기 말~20세기 초 이후를 가리킨다. 바로 그 무렵에 전통적인 권위와 사고방식을 거부하는 모더니즘이라는 지적 흐름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낡은 틀을 부수는 데 앞장서는 것은 대개 사회 이론이나 과학보다 문학이나 예술이다. 중세의 틀을 해체한 이탈리아 르네상스(Renaissance)의 기폭제가 된 인물도 단테와 페트라르카 같은 문학가들이었듯이 모더니즘도 철학이나 과학보다 예술에서 먼저..
모노가미 & 폴리가미 Monogamy & Polygamy 지금의 문명사회에서는 대부분 모노가미(일부일처제)가 법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이 관습이 제도화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본능을 중시하는 생물학적 인간의 개념을 받아들인다면 폴리가미(일부다처제 혹은 일처다부제)가 모노가미보다 더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인류 문명이 탄생할 무렵에는 세계적으로 폴리가미가 훨씬 더 많았으며, 현재까지도 폴리가미를 관습으로 취하고 있는 사회가 상당수 존재한다. 폴리가미의 한 형태인, 형제가 공동의 아내를 취하는 경우도 그다지 드물지 않다. 인도의 어느 부족에는 형제가 동시에 한 아내를 공유하는 일처다부제의 관습이 있으며, 이슬람 율법은 한 남자가 아내를 네 명까지 맞을 수 있는 일부다처제를 허용한다. 역..
마르크스주의 Marxism 이론과 실천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지만 엄연히 다른 차원에 속한다. 학문과 삶도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지만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론을 구성하고 학문을 발전시키는 것은 학자로서의 임무이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활동가로서의 삶이다. 과학의 경우를 제외하면 두 측면을 한 사람이 소화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 드문 예에 속하는 사람이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석하기만 했으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스물일곱 살 때 쓴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Thesen über Feuerbach)』라는 책자에 나오는 마지막 열한 번째 테제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Plat..
마녀사냥 Witch Hunt 정치적인 이유에서, 혹은 여론에 밀려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모는 것을 마녀사냥이라고 한다. 그런데 마녀사냥은 원래 종교에 바탕을 둔 용어로 무고한 사람을 단죄하려는 의도가 두드러졌던 것도 아니다. 역사적으로 마녀사냥은 중세에 성행했던 종교재판에 근원을 두고 있다. “너희는 무당을 살려두지 말라. -출애굽기 22,18” 성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무당이 반드시 여자는 아니므로 특별히 여성 차별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학설이든 교리든 정설이 뿌리를 내리면 이단(異端)이 생기는 법이다. 그리스도교가 지배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은 유럽의 중세에는 교회의 ‘정통’ 교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단으로 간주했다. 이 이단을 곧 마법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터무니없게 ..
리비도 Libido 인간은 정신과 신체로 구분된다. 이성을 인간의 중요한 속성으로 간주하는 전통 철학에서는 정신이 신체를 움직이게 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정신을 운전자로, 신체를 자동차로 보는 관점이다. 하지만 욕망을 새로이 조명하고자 하는 20세기의 현대 철학(→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정신에 대한 비중을 낮추고 오히려 신체를 중시한다. 이런 철학적 전환에 모티브를 제공한 사람이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다. 프로이트가 연구한 무의식은 분명히 인간 정신의 일부분이지만 전통적인 개념의 인간 정신(이성적 주체)과는 크게 다르다. 어떤 면에서 무의식은 정신이라기보다 신체적 속성에 가깝다. 그런 무의식의 속성을 분석하는 데 프로이트가 사용한 주요 개념이 바로 리비도다. 리비도란 성..
레세페르 Laissez-faire 프랑스어에서 laissez는 영어의 let과 비슷한 뜻을 가진 laisser 동사의 2인칭 변화 형태이고 faire는 영어의 do와 같은 뜻이다. 그러니까 laissez-faire는 “마음대로 하게 놔둬”, “내버려 둬”라는 뜻이다. 올드 팝송 〈케세라세라(Qué será será)>나 비틀스의 〈렛잇비(Let it be)> 같은 노래를 연상케 하는데, 더 고상한 말로 표현하면 자유방임주의다. 이 일상적인 프랑스어가 개념어로 자리 잡은 이유는 역사적이고 경제적인 맥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과 비슷한 의미지만 그보다 선배다. 스미스는 자본주의 초창기에 살았으나 레세페르는 자본주의의 전 단계인 중상주의 시대에 프랑스 중농주의자들이 즐겨 ..
디아스포라 Diaspora 유대인만큼 평판이 극적으로 엇갈리는 민족도 없다. 유대인은 중세 유럽에서 수전노(守錢奴)의 대명사였고 오늘날에도 미국의 재계와 언론계를 좌지우지하는 검은 손인가 하면, 인류 역사상 최대의 비극인 홀로코스트(Holocaus)의 희생자였고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 프로이트 같은 위대한 인물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또한 탈무드의 지혜를 가진 현명한 민족인가하면 악명 높은 선민의식【유대인만이 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사상】으로 똘똘 뭉친 이기적인 민족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양한 평판 속에서도 한 가지 공통점은 유대인만큼 역사에서 수난을 많이 당한 민족은 없다는 점이다. 그런 사연을 말해주는 개념이 디아스..
동일자 & 타자 le même & l'autre 사전은 수많은 정의(定義)들로 이루어진 책이다. 국어사전은 우리말에서 사용하는 낱말들의 정의를 수록하고 있으며, 백과사전은 학문과 시사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의 정의를 수록하고 있다. 그런 만큼 사전에 나오는 정의는 매우 엄정하고 최대한 객관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사전은 무수한 의미들을 정의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무수한 의미들을 누락시킨다. 정의의 배후에는 배제가 있다. 예를 들어 국어사전에서 ‘행복’의 정의를 찾아보면 “생활의 만족과 삶의 보람을 느끼는 흐뭇한 상태”라고 되어 있는데, 이 정의에 의거하면 민족을 위한 희생이나 종교적 순교는 행복에서 배제된다. 또 백과사전에서 ‘예술’이라는 용어를 찾아보면 “작품의 창작과 감상에 의해 정신의 충실한 ..
도 道 “하나의 물건도 집어들 수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려놓아라.” “아무것도 집어들 수 없는데 어떻게 내려놓을 수 있습니까?” “그럼 가져가거라.” 12세기 중국 선종(禪宗) 불교의 승려가 말한 공안(公案), 즉 화두다. 얼핏 들으면 멋진 이야기인 듯도 싶지만 그런 방면에 감수성이 발달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저 재치 있는 유머 정도일 수도 있다. 화두는 원래 선종 불교에서 자주 쓰는데, 사실 동양 사상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으니 딱히 불교적인 것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말할 수 있는 도(道)는 영원한 도가 아니며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덕경(道德經)』의 첫 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이 말도 일종의 화두다. 『도덕경..
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 읽기에도 까다로운 이 라틴어 문구를 문자 그대로 옮기면, ‘기계에서 나온 신’이라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연극에서 시기적절하게 신이 등장해 극의 플롯을 해결해버린 데서 유래한 말이다. 극의 사실성보다 메시지를 중시했던 당시에는 실제로 기중기(起重機)와 같은 기계 장치로 공중에서 신이 내려와 꽉 막혀 있는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버리는 방식을 사용했다. 작가가 시나리오를 쓰거나 연출자가 연극을 연출할 때 줄거리를 일목요연하게 구성하는 작업이 어렵다는 것은 이해하겠지만, 그렇다고 ‘해결사’를 고용해버리면 앞과 뒤의 연결에 필연성이 없어진다. 더구나 갈등이 가장 고조되었을 때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관객은 맥이 탁 풀릴 수밖에 없다. 주인공이 막다른 궁지에 ..
담론 Discourse 담론(談論)이란 담화(談話)와 논의(論議)를 줄인 말이다. 학문적 이론이나 정치적 발언은 물론이고 일상적인 대화나 토론도 모두 담론이다. 사전적인 어의 이외에 고유한 의미가 없으므로 실은 개념이라고 할 것도 없는 용어인데, 마치 특별한 개념처럼 자리 잡은 데는 프랑스 현대 철학자인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의 영향이 크다【프랑스어에서는 discours라고 쓰고 ‘디스쿠르’라고 읽는다】. 담화와 논의라면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즉 담론은 특정한 대상을 설명한다. 그렇다면 담론은 대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푸코는 담론이 대상과 따로 노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분석한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등장하기 전까지 태양계라는 대..
달력 Calendar 해마다 1월이 되면 한동안은 새 연도에 익숙하지 않아 헤매게 마련이다. 사실 계절이 바뀌고 나이를 먹는 것은 자연현상이지만, 단 하루 차이로 연도가 바뀐다는 것은 사람이 만든 인위적인 제도일 뿐이다. 작년 12월 31일보다 올해 1월 1일이 훨씬 더 추운 것도 아니고, 그 사이에 내 몸이 팍 늙어 버린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기분은 그렇게도 다를까? 그저 달력을 바꾸어 걸었을 뿐인데…… 기록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달력을 전해 준 것은 중국이다. 최초의 황제로 알려진 진 시황제(秦 始皇帝, BC 259~210)는 이미 기원전 200년경에 달력을 만들어 사용했다. 이 달력은 1년의 길이를 365.25일로 하는 것이었는데, 이 점에서 오늘날의 양력과 상당히 비슷하다. 중국의 달력이 한반도..
노동 Labor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철학자자라면 지성을 지닌 존재로 볼 것이고, 역사가라면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체로 볼 것이며, 과학자라면 두뇌가 발달한 영장류의 하나로 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로 보았고 파스칼(Blaiss Pascal, 1623~1662)은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했다. 더 통속적인 관점도 있다. 교회에서는 인간을 신도(信徒)로 볼 테고, 법정에서는 피의자로, 병원에서는 환자로, 장의사는 잠재적 시신으로 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을 어떻게 보든 간에 인간을 인간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속성에는 공통적인 면이 있다. 우선 인간은 언어를 사용한다. 인간 이외에 언어를..
농업혁명Agricultural Revolution 인류 문명의 초기부터 노예가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문명이 생기기 이전에도 인간이 노예를 부렸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노예는 인류가 도시 문명을 일구기 시작할 때부터 있었다. 도시를 건설하게 된 것도 실은 노예 덕분이었다. 노예가 도시보다 먼저라니 가능한 일일까? 하지만 그 노예는 인간이 아니었다. 노예를 인간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인간 중심적인 사고다. 노예의 사전적인 정의는 “자신의 권리를 빼앗기고 남의 부림을 받는 사람”이지만, 더 넓게 인류학적인 시각에서 보면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재산처럼 소유하는 다른 생물 종도 노예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인간이 사육하고 재배하는 동물과 식물도 모두 노예다. 인간이 최초로..
기호 Sign 아침에 일어나면 신문을 보고, 출근길에는 라디오나 MP3로 음악을 듣고, 직장에 가서는 서류를 읽는다. 점심시간이 되면 거리의 횡단보도를 건너 식당을 찾고, 오후에는 회사 차를 타고 수많은 도로 표지판을 지나 거래처로 간다. 저녁에 퇴근하면 친구들과 영화를 한 편 보고, 집에 와서는 책을 읽다가 잠자리에 든다. 이 과정에서 접하는 것들은 모두 기호(記號)다. 현대 생활은 기호로 가득하다. 신문, 서류, 책 같은 문자와 언어의 기호, 음악 기호, 도로 표지판, 영화와 TV의 영상 기호 등등 우리는 무수한 기호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기호의 일차적인 목적은 소통(疏通)이다. 사회가 단순하면 소통의 과정도 단순하다. 원시사회는 집단의 규모가 작고 삶의 과정이 단순했기 때문에 그다지 많은 기호가 ..
기시감 Déjà-vu 처음 만나는 사람, 처음 가본 풍경이라도 문득 언젠가, 어디선가 보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 섬뜩한 느낌을 기시감(旣視感, 데자뷔)이라고 부른다. ‘이미(Déjà)’ ‘보았다(vu)’는 뜻의 프랑스어다. 때로는 젓가락을 집어드는 것과 같이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에서도 순간적으로 기시감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기시감은 심리학의 용어라기보다는 기억의 속성을 말해주는 개념인데, 대부분은 착각에 기인한다. 어떤 풍경을 보거나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의 두뇌는 풍경이나 얼굴 전체가 아니라 특징적인 일부분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나머지는 배경으로 기억한다. 따라서 분명히 처음 겪는 경험이라 해도 경험의 부분적 특징이 같을 경우 두뇌 속에 저장된 과거의 경험이 되살아나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
근친상간 Incest 그리스의 도시 테베(Thebes)의 왕은 아들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리라는 신탁을 받고 고민하다가 갓난 아들을 산에 버린다. 그 아들은 농부에게 구출되어 다른 도시에서 자란다. 청년으로 성장한 그 역시 장차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리라는 비극적인 신탁을 알게 된다. 그는 이 비극적 운명을 피하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결국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다. 자살로도 자신의 죄를 씻을 수 없다고 여긴 그는 스스로 눈을 멀게 하고 딸이자 동생인 안티고네와 함께 참회의 여행을 떠난다. 잘 알려진 오이디푸스의 신화인데, 이와 같은 근친상간(近親相姦)에 관한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된다. 오늘날에는 근친상간..
근본주의 Fundamentalism 2001년 9월 11일 아침 미국의 심장부 뉴욕에 위치한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비행기 두 대가 충돌하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테러가 일어났다. 이 사태로 400미터가 넘는 두 건물이 붕괴했고 3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테러의 주체는 알카에다(al-Qaeda)라는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로 알려졌으며, 전 세계 사람들은 테러의 당위성을 떠나 근본주의의 위험성을 새삼 실감했다. 원리주의라고도 불리는 근본주의는 어느 종교에나 있고, 나타나는 양상도 거의 비슷하다. 우선 종교의 경전(經典)을 자구(字句)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엄정한 입장을 취하며(순결성), 금욕에 가까운 엄격한 윤리를 내세우고(도덕성), 다른 종교는 물론 같은 종교의 다른 종파에 대해서까지도 적대적이거나 배..
그리스도교 Christianity 원래 원시 종교는 모두 다신교(多神敎)였다. 로고스(이성)가 발달하지 못한 미토스(신화)의 세계에서는 불가해한 자연 현상을 종교로써 설명했다. 따라서 그런 현상의 가짓수만큼 많은 신들이 필요했다. 비의 신, 번개의 신, 폭풍의 신, 숲의 신 등 두려운 미지의 대상에 대해서는 모조리 신을 갖다 붙였다. 그런 상황에서 기원전 2000년 무렵 히브리인들이 유일신앙을 가지게 된 것은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다. 좁은 지역의 한정된 인구였기 때문일까? 주변 민족들과 다툼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차별성을 가지게 된 탓일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히브리인들은 일찍부터 야회(YHWH)라는 유일신을 섬겼고, 이들의 신앙은 이스라엘 왕국 시대를 거치면서 유대교로 계승되었다. 그..
귀납 & 연역 Induction & Deduction 어느 동사무소 직원이 한 마을에 사는 주민들의 성(姓)을 조사하는 임무를 맡았다. 몇몇 사람에게 물어보았는데 모두 성이 최 씨라고 대답했다. 그 마을은 집성촌(集姓村)이었다. 직원은 서류에 마을 주민들의 성이 모두 최 씨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아뿔싸, 마을에는 박 씨가 단 한 사람 있었다. 16세기 영국의 철학자인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이 귀납과 연역의 함정을 설명하기 위해 든 예다. 지식을 얻는 방법, 그리고 그 지식을 검증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아래로부터 진행하는 것, 즉 귀납(歸納)이고 다른 하나는 위로부터 진행하는 것, 즉 연역(演繹)이다. 동사무소 직원이 만나는 주민마다 성을 물어본 것은 귀납적 ..
권력 Power 다소 무관해 보일지 모르지만 권력의 개념을 말하려면 먼저 번역의 문제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trade union을 ‘무역연합’으로 번역한 사례가 있었다. trade에는 ‘무역’이라는 뜻이 있고 union은 ‘연합’이니까 번역자는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옮겼을 테지만 올바른 뜻은 노동조합이다. 그 무신경과 대담함이라니! 또 New Age는 대문자로 표기되었는데도 번역자가 굳이 ‘신시대’라고 옮긴 사례도 있다. 그냥 뉴에이지라고 읽어주면 될 것을, 번역자의 과잉 친절이 오히려 의미를 훼손한 경우다. 권력의 경우는 그 정도의 터무니없는 오역은 아니지만 일상어인 원어를 뭔가 전문 용어처럼 번역했다는 점에서 광의의 오역이다. 영어의 power, 프랑스어의 pouvoir, 독일어의 Macht는 ..
국가 State 1917년 러시아 임시정부의 탄압을 피해 잠시 핀란드로 도피하고 있던 시기에 레닌(Vladimir Il'ich Lenin, 1870~1924)은 『국가와 혁명』이라는 책을 썼다. 그리고 1963년 군복을 벗고 대통령이 될 차비를 갖추던 시기에 박정희(朴正熙, 1917~1979)는 『국가와 혁명과 나』라는 책을 썼다. 레닌이 말하는 국가는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하기 전 일시적으로 존재하게 될 프롤레타리아 국가이며, 박정희가 말하는 국가는 오랜 왕조 시대를 거쳐 공화국으로 갓 태어난 대한민국이다. 레닌이 말하는 혁명은 프롤레타리아 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사회주의 혁명을 가리키며, 박정희가 말하는 혁명은 군부독재 체제를 수립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1961년의 5·16 군사 쿠데타를 가리킨다. ..
구조주의 Structuralism “하나님이 그들(인간)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8” 이 성서의 구절에 가장 알맞은 시대는 천지창조의 시기보다 19세기 후반일 것이다. 인간은 세상 만물의 주인이었고 자유로웠다. 과학적·철학적 이성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고 모든 이치를 이해할 수 있었다. 세계는 한없이 투명했다. 비록 당시의 현실은 폭풍 전야였으나 지성의 영역은 더없이 안정적이었다. 이 휴머니즘의 절정기, 이성 만능시대에 휴머니즘과 이성에 반대하는 구조주의가 탄생한 것은 아이러니다. “물질적 존재 조건이 낡은 사회 자체의 태내에서 충분히 성숙하기 전까지는 새롭고 고도한 생산..
교양 Education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의 학부모들이 생각하는 가장 쓸모 있는 공부는 영어와 컴퓨터일 것이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영어에 능숙하고 컴퓨터를 잘 다루면 학교 성적은 물론이고 장차 취업과 승진에도 훨씬 유리하리라고 굳게 믿는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자. 영어와 컴퓨터를 잘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공부의 목적이 아니라 다른 공부를 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영어를 배우는 목적은 외국어로 된 문헌을 읽거나 외국인과 소통하기 위해서이며, 컴퓨터를 배우는 목적은 정보화 시대를 맞아 필요한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영어와 컴퓨터를 공부의 목적으로 삼는 것은 수단을 목적으로 여기는 전도적 가치관이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본말이 전도(顚倒)되어 있는지는 교육에서부터 드러난..
관음증 Voyeurism 정신질환 가운데 가장 많은 종류가 성(性)에 관계된 것을 보면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가 리비도를 중심으로 정신분석을 진행한 게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나마 사디즘(sadism, 성적 상대방을 학대하는 데서 쾌감을 얻는 것), 마조히즘(masochism, 성적 상대방에게 학대를 당하는 데서 쾌감을 얻는 것), 트랜스베스티즘(Transvestism, 이성의 옷을 입고 성적 만족을 얻는 것) 같은 증세보다는 경증인 게 관음증(觀淫症)이다. 관음증이란 다른 사람의 나체나 성행위를 보는 데서 성적 만족을 얻는 증세인데, 성적 욕구를 정상적인 방식으로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에 나타난다. 그런데 마음에 둔 상대방과 성관계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상대방의 성행..
관용 Tolerance 차이와 차별은 분명히 다른 말이지만 현실에서는 자주 뒤섞이며, 때로는 의도적으로 혼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기업에서 신입사원을 모집할 때 학력 차이를 학력 차별과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학력에 따른 편차가 비상식적일 정도로 심할 경우다). 또 우리 사회처럼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주의가 여전히 우세한 사회에서는 남녀의 성적 차이를 성적 차별로 몰아가려는 불순한 의도가 자주 포착된다.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은 거부하라! 이것이 관용의 기본 모토다. 관용을 흔히 ‘톨레랑스(tolérance)’라는 프랑스어로 말하는 관행은 역사적이고 종교적인 데 연원이 있다. 16세기 초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불을 지핀 종교개혁의 불길은 순식간에 전 유럽을 휩쓸었..
관료제 Bureaucracy 상명하복(上命下服). 위에서 명령하면 아래에서는 무조건 복종한다. 복지부동(伏地不動).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고 바닥에 엎드려 몸을 사린다. 공무원의 소극적인 업무 자세를 비난할 때 흔히 사용하는 어구다. 모든 공무원이 그렇다면 나라가 제 꼴이 날 리 없겠지만, 일부 공무원은 실제로 그런 자세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런 말이 나왔을 터이다. 그런데 그런 현상은 공무원 사회에만 있는 게 아니라 관료제 특유의 병폐다. 관료제는 현대 국가가 국민을 통치하기 위한 주요 수단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국가가 탄생한 이래 관료(고위 관리)와 관료의 지배는 늘 존재했으나 관료제는 현대의 산물이다. 과거에 있었던 관료의 지배와 현대 국가의 관료제는 무엇이 다를까? 과거의 국가나 현대 국가나 ..
관념론 Idealism 탁상공론(卓上空論)이라고 해서 반드시 탁상에서만 하는 것은 아니듯이 관념론도 그 말처럼 좋은 아이디어(idea)와 관련된 개념은 아니다. 오히려 상식적으로 말하는 관념적 사고란 탁상공론처럼 현실적 조건과 무관하고 별로 실효성이 없는 생각을 가리킨다. 하지만 관념론의 의미와 역사를 보면 그런 오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관념론은 말 그대로 관념(idea)을 중시하는 철학적 사유의 방식을 가리키는데, 그 반대의 개념을 보면 의미를 더 확연하게 이해할 수 있다. 관념론의 반대는 두 가지로, 존재론적으로는 유물론(materialism)이고 인식론적으로는 실재론(realism)이다. 유물론은 물질이 세계의 근본이라고 보는 관점이며, 실재론은 인식 대상이 우리의 의식과는 독립적으로 실재한..
공리주의 Utilitarianism 한계효용(限界效用)이라는 말이 있다. 1만 원으로 자장면 세 그릇을 사 먹는다면 한계효용이 점차 체감하게 되므로 그 대신 탕수육을 시켜 먹든가, 영화를 보고 햄버거를 사 먹든가, 음반을 사든가 하는 등의 소비 방식으로 최대 효용을 추구한다는 뜻을 담은 개념이다. 19세기 경제학자들이 만들어낸 용어로, 그 근저에는 만족도를 지수화해서 비교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쾌락을 계량화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자신감은 18세기 영국의 철학자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이 먼저다. 그가 주창한 공리주의는 모든 인간이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추구한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러니까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공동체 Community 인간이 사회를 이루어 살게 된 이유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각 개인이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야만적인 자연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를 구성했다고 말한다. 그 반면에 다음 세대의 철학자인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는 자연 상태를 문화적인 상태로 본다. “인간이 이성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지상에 인간을 재판할 권리를 지닌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태가 바로 자연 상태다. -로크, 『정부론』” 서로 정반대로 주장했으나 두 사람의 해법은 똑같다. 홉스는 야만적인 자연 상태를 바로잡기 위해, 로크는 이성적인 자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프랑스 혁명의 이념을 ..
고독한 군중 Lonely Crowd “남들과 똑같이 사는 것은 죽기보다도 싫다.” 어느 청바지 회사의 텔레비전 광고 문구다. 개성을 생명처럼 여기는 젊은 세대에게는 상당한 호소력이 있을 법하다. 그러나 그 회사에서 만드는 청바지가 실은 윤전기(輪轉機)로 신문을 찍듯이 대량생산되는 것이라면 어떨까? 그 회사의 목적, 그 광고의 목적은 개성을 빌미삼아 똑같은(따라서 개성 없는) 제품을 될수록 많이 판매하려는 데 있다. ‘개성 있는’ 청바지를 ‘대량으로’ 판매하려는 회사 측의 모순, 남들과 똑같이 사는 게 죽기보다 싫어 대량 복제품을 사서 입는 소비자의 모순 - 개성의 상품화란 이렇듯 자체 모순에 불과하다. 1950년대의 저작인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에서 미국의 사회학자인 리스먼(Da..
계몽주의 Enlightenment ‘enlighten’이란 말은 ‘뭔가를 밝힌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계몽주의라는 개념에는 광원(光源)과 밝혀야 할 대상, 즉 어둠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무엇이 무엇을 밝힌다는 걸까? 계몽주의가 태동한 시기가 17세기라면 그 답을 알기 어렵지 않다. 계몽주의는 근대 이성의 빛으로 중세의 어둠을 밝히려는 지적 운동이다. 서양의 중세는 신이 모든 것의 원인이자 목적이었고 신학이 철학을 비롯한 모든 학문의 왕으로 군림하던 시대였다. 이런 중세를 어둠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곧 종교의 통제력이 그만큼 약화되었다는 의미다. 1517년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비텐베르크(Wittenburger) 교회의 대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면서 시작된 종교개혁..
계급의식 Class Consciousness 계급은 경제적인 개념이므로 계급 구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적 이해관계다. 하지만 경제적 이해관계가 같다고 해서 사고방식도 같은 것은 아니다. 같은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한다면 세상은 삭막하고 재미가 없을 것이다. 노동자라고 해서 누구나 해방을 꿈꾸지는 않으며, 자본가라고 해서 모두가 착취적인 성향을 가진 것은 아니다. 헝가리 태생의 사회주의 철학자인 루카치(György Lukács, 1885~1971)는 『역사와 계급의식』에서 한 계급의 구성원들이 반드시 행동을 함께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런데 계급의 공동 행동이 불가능하다면 착취 구조를 근절하기 위한 혁명은 어떻게 가능할까? 루카치에 의하면 그것은 계급의식이 동반되어야 가..
계급 Class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되어 있다.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이와 같은 평등의 이념이 법으로 규정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조항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현실적으로 불평등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법 앞에’라는 문구다. 모든 국민은 무조건 평등한 게 아니라 법 앞에 평등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법적ㆍ정치적 평등권을 가진다. 대통령이나 노숙자나 남의 물건을 훔치면 똑같이 절도죄가 적용된다는 게 법적 평등이고, 대통령도 노숙자도 선거에서 똑같이 1표만 행사한다는 게 정치적 평등이다. 그러나 법과 정치의 범위를 벗어나면 평등을 보장해주는 제도적 장치는 없다..
경험 Experience 한자 성어와 영어 숙어의 뜻과 형태가 비슷한 드문 사례가 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과 믿는 대로 보는 것(Seeing is believing). 둘 다 경험만큼 좋은 스승은 없다는 뜻이다. 경험이 앎을 얻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과정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소금이 짜다는 것은 맛을 봐야 알고 승리가 얼마나 달콤한지는 이겨봐야 안다. 경험하지 않고 아는 것은 올바른 앎이 아니며 기껏해야 관념적인 앎일 뿐이다. 그런데 경험을 통한 앞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맛보는 사람에 따라 소금이 짠 정도가 다를 수 있고 승리를 얻기까지 치른 고통에 따라 승리의 쾌감이 달라진다. 즉 경험은 근본적으로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나의 경험을 고스란히 남에게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할뿐..
개념 Concept “내용 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Gedanken ohne Inhalt sind leer, Anschauungen ohne Begriffee sind blind). -칸트,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이 유명한 문구는 당시 인식론 철학의 주요한 두 가지 조류였던 합리론(合理論)과 경험론(經驗論)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륙을 무대로 전개된 합리론은 인식 주체를 강조했고, 영국에서 발달한 경험론은 인식 대상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따라서 합리론은 사물에 대한 인식을 주로 정신 활동의 결과라고 본 반면에 경험론은 사물에서 전해진 감각자료에 대한 경험이 인식이라고 여겼..
감정 Emotion “더 좋은 말은 등이 곧고, 사지가 말끔하고, 목이 길고, 매부리코에다, 털이 희고, 눈이 검다. 성공하려는 결의를 지녔으나 자제력과 남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조절할 줄 안다. 한마디로 정말 멋진 말이다. 이 말에게는 채찍질이 필요 없고 소리로 전하는 명령만으로 족하다. 다른 말은 등이 구부러졌고, 몸집이 지나치게 큰 데다 사지가 못났고, 목이 짧고 굵으며, 얼굴이 넓적하다. 털은 회색이 섞인 검은색이고, 눈은 충혈되어 있다. 과잉과 허식을 대표하는 말이다. 귀 주변에 털이 나 있어 소리를 잘 듣지 못하며, 채찍과 당근을 함께 사용해도 다스리기가 어렵다 –플라톤(Platon), 『파이드로스(Phèdre Φαῖδρος)』” 자제력을 가지고 통제에 잘 따르는 말은 이성을 상징하며, 탐욕스럽..
감각 Sense 보통 지식이라고 하면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을 연상한다. 경제학 지식은 경제 현상에 관한 다양한 정보가 특정한 계통에 따라 배열된 것을 가리키며, 생물학 지식은 유기체의 구조와 특성에 관한 정보가 총체적으로 집적된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 방대한 지식 체계도 처음에는 아주 단순한 정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럼 그 단순한 정보는 어떻게 얻었을까? 정보의 가장 기본적인 원천은 감각이다. 돌이 단단하고 물이 부드럽다는 것은 감각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러나 감각이 체계적인 지식으로 발전하는 데는 하나의 걸림돌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감각이 주관적이라는 사실이다. 사람마다, 때마다 다른 게 감각이다. 이러니 감각에서 어떻게 올바른 지식이 나오겠는가? 그래서 고대로부터 철학자들은 감각을 중..
가치 Value 모든 단어가 다의적이지만 가치(價値)라는 단어만큼 여러 가지 층위에서 두루 사용되는 말도 드물다. 우선 일상생활에서 가치는 ‘중요하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일례로 가장 가치가 큰 선수, 즉 MVP(most valuable player)는 팀에 반드시 필요한 기둥 선수다. 선수 생활 내내 한 번도 트레이드되지 않았던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 1963~)이나 선동열(宣銅烈, 1963~)이 그렇다. 프로 선수라면 가치를 몸값과 거의 동일시할 수 있다. 학문에서 가치라는 말을 쓸 때는 단순히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평가의 의미가 포함된다. 주로 도덕철학에서 가치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도덕 역시 여러 가지 기준들 가운데 하나일뿐이므로 그다지 객관적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사..
가상현실 Virtual Reality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조선의 왕인 선조는 가까운 신하들과 식솔들을 거느리고 북쪽의 의주까지 야반도주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대통령인 이승만(李承晩, 1875~1965)은 수도 서울을 사수하겠다던 대국민 약속을 헌신짝처럼 팽개친 채 한강 인도교를 끊고 남쪽으로 도망쳤다. 우리나라의 위정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하지만 앞으로는 설사 전쟁이 터진다 해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굳이 보따리 싸서 피난 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쿠웨이트를 무력으로 점령한 이라크를 응징하기 위해 1991년 미국의 주도 하에 벌어진 걸프전쟁은 현대전의 양상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것은 ‘가상 전쟁(假想 戰爭)’이다. 불과 42일..
책머리에 개념어의 이미지를 내 멋대로 그리다 한 개인이 ‘사전(辭典)’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면 둘 중 하나다. 알래스카에 냉장고를 팔려 할 만큼 무모하거나, 아니면 알래스카에 냉장고를 팔 수 있을 만큼 뻥이 세거나. 하지만 이 책의 제목 앞에 생략된 문구를 밝히면 면죄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내 멋대로 순전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쓴 개념어 사전’ 이것이 이 책의 원제목이다. 사전을 쓰는 일은 저술이 아니라 편찬이다. 한마디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수십 명의 전문가가 달라붙거나, 적어도 위원회가 구성되어야 가능한 작업이다. 18세기에 프랑스의 계몽주의자들이 만든 『백과전서 (L'Encyclopédie)』는 160명의 학자와 21년의 세월이 필요했고,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서 황제의 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