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어휘사전 - 22. 계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22. 계

건방진방랑자 2019. 11. 11. 04:08
728x90
반응형

22.

 

 

()

음력 33, 불상(不祥)을 제거하기 위하여 불제(祓祭)를 지내고 목욕하는 것을 말한다.

 

()

()나라 ()임금의 아들인데, 우가 죽은 뒤에 백성이 계()의 덕을 구가(謳歌)하고 따랐다. 예종(睿宗)을 우(), 세자(世子)를 계()에 비유하였다.

 

계가모불(笄加髦拂)

옛날에는 여자가 15세가 되면 요즘의 성인식처럼 계례(笄禮)를 치렀다. 이때 비녀를 꽂고 다비를 꾸미는데,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배 안의 머리를 잘라 만든 다비를 계례 후에 수식으로 삼아 생육해주신 부모의 은혜를 잊지 않는 신표로 삼는다. 예기(禮記)』 「내칙(內則)

 

계각(鷄角)

닭 머리에 뿔이 난 것이니, 국가가 망하려면 반드시 요얼(妖孼)이 나타난다는 뜻으로, 흉조(凶兆)를 말한다. 구당서(舊唐書) 오행지(五行志)함통(咸通) 67월에 서주(徐州)의 팽성(彭城) 민가에 뿔이 난 닭이 났으니, 뿔은 전쟁이 일어날 징조이다.”라 하였다.

 

계간(鷄竿)

옛날 조정에서 사면령(赦免令)을 내릴 적에는 칠척(七尺) 길이의 장대에 사척(四尺) 높이의 황금으로 장식한 닭 모양을 달고, 그 입에 척() 길이의 붉은 천을 물린 것을 내세웠었다. 당서(唐書)』 「백관지(百官志)

 

계강금수(桂江錦水)

계강(桂江)은 일명 상수(湘水), 계림(桂林)에서 발원하여 동정호(洞庭湖)로 흘러들며, 금수(錦水) 즉 민강(岷江)은 양자강(揚子江)으로 흘러들어 결국 계강과 합류한다.

 

계강자(季康子)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468년에 죽은 춘추 때 노나라의 정경(正卿)이다. () 성에 계손씨(季孫氏)에 이름은 비(). 노환공(魯桓公)으로부터 분가하여 노나라의 국정을 전단했던 삼환씨 중의 하나인 계손씨의 종주로 공자(孔子)와 동시대를 살면서 노나라의 정경을 지냈다. 노애공(魯哀公) 3년 기원전 492년 계환자(季桓子 ; 계손사季孫斯)가 죽을 때 자기의 뒤를 태어난지 얼마 안 되는 서출에게 잇도록 유언했으나 계강자가 사람을 보내 그의 서출 동생을 죽이고 스스로 환자의 후계자가 되어 노나라의 정경의 자리에 올라 정권을 잡았다. 일찍이 공자의 제자 염구(冉求)와 번지(樊遲)의 도움을 받아 제나라 군사를 물리친 바 있으며 후에 오나라와 제나라 사이에 벌어진 애릉(艾陵)의 전투에 오나라 편으로 참전하여 제나라 군사들을 크게 파하고 제나라의 상국 국서(國書)를 전사시켰다. 노애공 12년 기원전 483년 용전부(用田賦)라는 법령을 반포하여 노나라의 세제를 개혁했다. 노애공 27년 기원전 468년에 죽었다.

 

계견료운간(鷄犬鬧雲間)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신선이 되어 승천할 무렵에, 그 정중(庭中)에 남아 있는 단약(丹藥)을 닭과 개가 쪼아 먹고 핥아먹고 하여 닭과 개도 모두 승천함으로써 천상(天上)에서 닭이 울고 운중(雲中)에서 개가 짖어댔다는 고사이다.

 

계계(悸悸)

겁이 나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모양, 절도가 있는 모양이다.

 

계계승승(繼繼承承)

자손(子孫)이 대대로 대를 이어 감을 이른다. / 유의어: 계승(繼承).

 

계고직비(階高職卑)

품계는 높고 벼슬은 낮음을 이른다.

 

계과포(繫瓜匏)

공자(孔子)의 말에 내게 어찌 박[]이나 오이처럼 한 군데에 매어 있으란 말이냐.”라고 하였다. 논어(論語)』 「양화(陽貨)

 

계관화(鷄冠花)

속칭 맨드라미꽃을 말한다. 맨드라미꽃이 마치 닭볏처럼 생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본초(本草)』 「계관(鷄冠)

 

계교(鷄翹)

근시(近侍)들이 쓰는 관에 닭의 털(鷄翹)을 꽂는다.

 

계구(鷄毬)

식물(食物)의 이름이다. 당서(唐書)』 「예악지(禮樂志)천보(天寶) 2년에 비로소 9월 초하룻날에는 제릉(諸陵)에 의()를 천()하였고, 또 항상 한식일(寒食日)에는 당죽(餳粥계구·뇌거(雷車)를 천하였다.”라고 하였다.

 

계구(鷄狗)

전국(戰國) 시대 때 제() 나라 맹상군(孟嘗君)이 진()에 들어가니 진 소왕(昭王)이 가두어 죽이려 했다. 맹상군의 문객 중에 개도둑질 잘하는 자가 있어 흰 여우 갖옷(狐白裘)을 훔쳐 왕의 총희(寵姬)에게 바쳐서 그곳을 벗어나 밤중에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렀는데 관문이 닫혀있었다. 그러자 객중에 닭의 울음을 잘 흉내내는 자가 있어 닭울음소리를 내니 뭇 닭이 다 울어 관문이 열고 드디어 탈출하였다. 사기(史記)卷七十五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 인용: 맹상군처럼 사귀라, 맹상군을 통해 배운 관계론과 배움의 조건

 

계구우후(鷄口牛後)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않는다. 영위계구 물위우후(寧爲鷄口 勿爲牛後)차라리 닭의 주둥이가 될지언정 소의 궁둥이는 되지 말라로 해석되는 말의 준말로, 큰 단체의 졸개가 되기보다는 작은 단체의 우두머리가 되라는 뜻이다. 계구(鷄口)는 닭의 주둥이로, 작은 단체의 우두머리를 말하고, 우후(牛後)는 소의 궁둥이로, 큰 단체의 졸개를 말한다. 곧 작은 일이라도 책임자가 될지언정 큰 사람 밑에서 지배를 받기는 싫다는 뜻이다. 사기(史記)』 「소진열전(蘇秦列傳)/ 유의어: 계명구도(鷄鳴狗盜) / 인용: 십팔사략, 트위스트 교육학 후기

 

계군일학(鷄群一鶴)

닭의 무리 속에 한 마리의 학이라는 뜻으로, 여러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뛰어난 한 사람이 섞여 있음의 비유하는 말이다.

 

계궁(桂宮)

항아(姮娥)가 산다는 달 속의 궁전이다.

 

계궁역진(計窮力盡)

꾀와 힘이 다하여 더 이상 어찌할 방도가 없음을 말한다.

 

계귀국(鷄貴國)

신라(新羅)의 이칭(異稱) ()나라 말로는 계귀(鷄貴)’이니 곧 고려국(高麗國)이다. 모두 닭 신()을 섬기며, 머리에 닭의 깃을 이고 있으므로 그렇게 불렀다. 천축(天竺) 사람이 해동(海東)을 부르되 구구탁(矩吒) 반설라(磐說羅)라 이르니, 구구탁은 닭이란 말이요, 반설라는 귀하다는 말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4 歸竺諸師

 

계극(棨戟)

적흑색(赤黑色) 비단으로 싼 나무 창이다. 왕공(王公) 이하의 관리(官吏)가 나갈 때 전구자(前驅者)가 가진다. 관리가 지방에 돌아다닐 때 앞길을 인도하는 의장용으로 쓰인다. 곧 관리의 행차를 말한다.

 

계극빈상(啓棘賓商)

하우(夏禹)의 아들 계()가 빈려(賓旅상고(商賈)의 어려움을 겪다.

 

계금등(啓金縢)

쇠줄로 묶은 궤 속의 글[金縢]을 연다는 말로, 천둥과 바람 같은 천변(天變)에 대해 점을 치기 위해 궤 속의 글을 열었던 것이다. / 인용: 詰楊吏(허격)

 

계기삼락(啓期三樂)

공자(孔子)가 태산(泰山)에서 영계기(榮啓期)가 녹구(鹿裘)를 입고 새끼 두르고 거문고를 타며 노래하는 것을 보고 무엇이 그리 즐거우냐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하늘이 만물을 내매 사람이 가장 귀한데 내가 사람이 되었으니 한 가지 낙이고, 남자는 귀하고 여자는 천한데 내가 남자가 되었으니 두 가지 낙이고, 사람이 나서 일월을 보지 못하고 강보에서 죽는 자가 많은데 내 나이 90이니 이것이 세 가지 낙이다.” 하였다. 열자(列子)』 「천서(天端)

 

계녀(季女)

계녀는 젊은 부인을 이른 말로, 시경(詩經)소남(召南) 채빈(采蘋)맛좋은 나물을 사당에 차리는데 이 일을 누가 주관하는고 공경스러운 계녀로다[于以奠之 宗室牖下 誰其尸之 有齊季女].”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막내 딸, 아리따운 신혼의(婚儀)아내를 가리키는 말이다. 시경(詩經)소아(小雅) 거할(車舝)수레의 굴대 빗장 빙글빙글 돌림이여, 예쁜 막내딸을 생각하여 감이로다[間關車之舝兮 思變季女浙逝兮].”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시는 신혼 부부의 즐거움을 노래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계년(笄年)

여자가 비녀를 꽂을 수 있는 나이. 옛날에 남자는 15세에 태학(太學)에 입학하였고, 여자는 15살만 먹으면 쪽을 올리고 비녀를 꽂았다. 그래서 계년(笄年)이라면 곧 15세 정도의 소녀를 말하는 것으로 시집갈 나이가 되었음을 말한다. / 유의어: 가계(加笄). 관례(冠禮).

 

계당수불계(溪堂修祓禊)

계당(溪堂)은 시냇가에 있는 정자를 말한다. 계제사는 3월 삼짇날 물가에 가서 흐르는 물에 목욕하고 신께 빌어 재앙을 없애고 복을 기원하는 풍속인데, 흔히 문인들이 3월 삼짇날 물가에 모여 시를 짓고 술을 마시며 즐기는 일을 가리킨다.

 

계도(桂櫂)

계수나무로 만든 노로서 고상한 은자(隱者)의 상징이다. 초사(楚辭)』 「구가(九歌)상군(湘君)계목의 노와 난목의 갑판으로 얼음으로 깨고 저어가도 눈이 곧 쌓이누나[桂櫂兮蘭枻 斲氷兮續雪]”라고 하였다.

 

계도(計都)

성명가(星命家)에서 말하는 십일요(十一曜)의 하나로, 18년 만에 하늘을 일주(一週)한다고 한다.

 

계돈사(雞豚社)

한 마을 사람들이 계()를 결성하여 친목을 도모하는 것을 이른다. 당 나라 한유(韓愈)남계시범(南溪始泛)원컨대 같은 계원이 되어서 닭과 돼지로 봄가을에 잔치를 하고 싶네[願爲同社人 鷄豚燕春秋]”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계등(溪藤)

중국 절강성(浙江省) 섬계(剡溪)의 등나무 껍질로 만든 종이이다. 그 물이 종이를 만들기에 적합하고, 그 부근에서 나는 등나무 껍질로 만든 종이가 유명하므로 나온 이름이다. 예로부터 최고의 품질로 각광을 받았다.

 

계락산(稽落山)

후한 화제(後漢和帝) 때에 장군 두헌(竇憲)이 북선우(北單于)의 군대를 계락산에서 크게 격파했었다.

 

계란유골(鷄卵有骨)

달걀이 곯았다는 뜻이다. 뜻밖의 장애()로 인해 공교롭게 일이 방해됨을 이른다. 늘 일이 잘 안 되는 사람이 모처럼 좋은 기회를 만났으나 역시 잘 안됨을 비유하는 말이다. / 유의어: 강철지추(强鐵之秋)

 

계란투석(鷄卵投石)

계란으로 바위 치기. 보잘 것 없는 힘으로 대들어 보아야 별수가 없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계로(啓路)

길을 열다라는 뜻이다.

 

계로여금각희문(季路如今卻喜聞)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자로(子路)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허물을 말해 주면 기뻐하였다.”라고 하였다.

 

계루고(鷄婁鼓)

악기(樂器) 일종으로 작은 북을 가리킨다. 당서(唐書)』 「예악지(禮樂志)

 

계륜(季倫)

() 나라 석숭(石崇)의 자()이다. 왕개(王愷)가 산호(珊瑚) 지팡이를 석숭에게 보여주니, 숭이 다 보고 나서 쇠지팡이로 쳐서 당장 산산조각을 내버렸다. 진서(晉書)卷三十三

 

계륜지첩(季倫之妾)

계륜(季倫)은 진() 나라 석숭(石崇)의 자이다. 석숭이 굉장한 부자로 호화를 누릴 때 녹주라는 애첩을 두었다. 손수(孫秀)가 달라 했으나 숭이 허하지 않자, 수가 숭을 체포하려 오니 녹주가 누각에서 떨어져 죽었다.

 

계륵(鷄肋)

닭의 갈비, 곧 취하기도 버리기도 아까움. 중국의 삼국시대에 조조(曹操)가 한중(漢中)을 치러갔다가 하룻밤은 군호(軍號)를 계륵(鷄肋)이라 하였다. 양수(楊修)는 곧 돌아갈 행장을 꾸렸다. 그 까닭을 물으니, 그는 말하기를 닭의 늑골(肋骨)은 맛이 있어 씹다가 버리기도 아까우나 삼킬 수도 없으니 지금 한중(漢中)은 아깝지마는 버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 아닌가.”라 하였다.

 

계릉(桂陵)

일명 계양(桂陽)이라고도 하며 그 위치는 두 가지 설이 있다. ① 『죽서기년양혜왕(梁惠王) 17(기원전 354) 조의 齊田期伐我東鄙, 戰于桂陽, 我師敗蒲, 亦曰桂陵. 濮渠又東逕蒲城포성(蒲城)은 지금의 하남성 장원현(長垣縣)을 말한다. ② 『사기(史記)정의산동성 하택현(荷澤縣) 동북. 지금은 죽서기년의 설을 따른다.

 

계리(計吏)

회계(會計)를 맡아 다스리는 아전을 가리킨다.

 

계림(鷄林)

경주(慶州)의 별호이다.

 

계림군공(鷄林君公)

왕후(王煦)의 봉호(封號)이다.

 

계림사(鷄林事)

우리나라의 풍속과 방언을 기록한 계림유사(鷄林遺事)를 말하는데, 거기에 저()의 방언은 모시라 하였다

 

계림선백(桂林仙伯)

글 잘하는 선비를 말한다. 진서(晉書)』 「극선전(郤詵傳)무제(武帝)가 극선(郤詵)에게 ()은 스스로 자신을 어떻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묻자 신이 현량대책(賢良對策)에서 천하제일이 되었으니 계림일지(桂林一枝)와 곤산편옥(崑山片玉)입니다.’라고 대답했다.”라 하였다.

 

계림엽황(鷄林葉黃)

최치원(崔致遠)이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흥할 것을 알고, 고려태조에게 곡령에 솔이 푸르고 계림엔 잎이 누르다[鵠嶺靑松鷄林黃葉]”란 글을 올렸다. / 유의어: 雞林黃葉 / 인용: 우리 한시를 읽다

 

계립령(鷄立嶺)

하늘재(忠州 鷄立嶺路 하늘재),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명승. 경상북도 문경읍 관음리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 인용: 可興站(김종직)

 

계맹(季孟)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의 대부(大夫)였던 계손씨(季孫氏)와 맹손씨(孟孫氏)를 합칭한 말이다.

 

계맹간(季孟間)

계손씨(季孫氏)와 맹손씨(孟孫氏)의 중간이라는 말로, 중간 정도의 예우(禮遇)를 말한다. 예기(禮記)』 「미자(微子)제 경공(齊景公)공자(孔子)를 기다리며 공자를 대우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말하기를 계씨(季氏)와 같이는 대우하지 못하지만, 계씨와 맹씨의 중간 정도 대우는 하리라.’고 했다.”라고 하였다.

 

계명교교(雞鳴膠膠)

시경(詩經)정풍(鄭風) 풍우(風雨)바람 불고 비 오는데, 어디선가 닭 우는 꼬끼오 소리[風雨瀟瀟 雞鳴膠膠].”라는 구절이 있다.

 

계명구도(鷄鳴狗盜)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과 개로 변장하여 남의 물건을 훔치는 천한 사람. 변변치 못한 재주. 점잖은 사람이 배울 만한 것이 못 되는 천한 기능을 가진 사람. 천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때로는 쓸모가 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나라의 맹상군(孟嘗君)이 개 흉내를 내는 식객(食客)의 도움으로 여우 가죽옷을 훔쳐서 위기를 모면하고, 닭 우는 소리를 흉내내는 식객의 도움으로 관문(關門)을 무사히 통과한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사기(史記)卷七十五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 인용: 맹상군처럼 사귀라, 맹상군을 통해 배운 관계론과 배움의 조건

 

계명구폐(鷄鳴狗吠)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닭의 울음, 개짖는 소리가 사정에 사무친다.”라는 말이 있는데, 땅이 활짝 트여 있고, 이웃지방이 잘 보이며, 인가(人家)나 촌락(村落)이 잇대어 있어 인구가 번성하다는 뜻이다. / 인용: 계명구폐상문(鷄鳴狗吠相聞)

 

계명성(啓明星)

유성(流星)의 하나인 금성(金星)을 가리키는데, 이 별이 해가 뜨기 직전에 나타나므로 계명성이라 한다. / 유의어: 태백성(太白星).

 

계명유시(鷄鳴遺詩)

시경(詩經)제풍(齊風) 계명(鷄鳴)닭 이미 울었나이다, 조신(朝臣) 이미 모였나이다(鷄旣鳴矣 朝旣盈矣)”를 말한 것으로, 옛날의 현숙(賢淑)한 후비가 왕이 정사를 보는 시간이 늦지 않도록 새벽에 일찍 일어나 왕을 깨웠다고 한다.

 

계모(溪毛)

물에 있는 마름[]으로 제사에 쓰인다.

 

계모문서(雞毛文書)

급히 전달해야 하는 서신(書信)에다 닭의 깃을 꽂아서 보냄으로써 신속하게 전해야 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인데, 이것을 우격(羽檄)이라고도 한다. 후한서(後漢書)卷一 광무제기(光武帝紀)

 

계모행료(溪毛行潦)

좌전(左傳)은공(隱公) 3년에 참으로 밝은 신의만 있다면 도랑과 못가의 풀이나 행길의 흙탕물이라도 귀신에 드릴만하고 왕공에 아뢸 만하다.”라 하였다.

 

계목(鷄鶩)

다른 사람과 자기의 서법을 부질없이 비교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 나라 때 유익(庾翼)이 젊은 시절에는 왕희지(王羲之)와 나란히 서법(書法)으로 이름을 떨쳤는데, 그 후 왕희지의 서법이 크게 진전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남들이 왕희지를 칭찬하는 것을 싫어하여 형주(荊州)에 있을 때 도성에 있는 벗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린 자들이 집안의 닭은 경시하고 들오리를 좋아하여 왕희지의 서법을 배우니, 내가 그와 겨루어 보아야겠다.”라 하였다 한다. 남사(南史)』 「왕승건전(王僧虔傳)

닭과 오리. 간신들이 활개 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계몽(鷄夢)

죽을 조짐을 말한다. 진서(晉書)79사안전(謝安傳)사안이 병이 위독해지자 구슬프게 부모에게 말하기를 예전에 환온(桓溫)이 있었을 적에 내가 항상 온전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였는데, 홀연히 꿈에 환온의 가마를 타고 16리를 가다가 흰 닭 한 마리를 보고는 꿈을 깨었습니다. 환온의 가마를 탄 것은 그의 자리를 대신한 것이고, 16리를 간 것은 지금이 그의 자리를 대신한 지 16년째 되는 해입니다. 그리고 흰 닭은 유()를 주관하는데, 지금의 태세(太歲)가 유()입니다. 그러니 저의 병은 아마도 낫지 않을 듯합니다.’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계몽빈천(啓夢賓天)

()가 꿈에 하늘에 올라갔다는 뜻이다.

 

계무소출(計無所出)

계획(계책)이 나오는 바가 없음. 생각이 도무지 나지 않음을 말한다.

 

계문(薊門)

중국 북평(北平)에 있는 지명. 북평 팔경(北平八景) 중의 하나로 곧 계구(薊丘)인데 오늘날 북경시 덕승문(德勝門) 밖의 지역이다. 계문 연수(薊門煙樹)가 있다. 연경세시기(燕京歲時記)

 

계문(啓聞)

(관찰사-어사 등이) 글로 임금에게 아뢰는 것이다. / 유의어: 계품(啓稟) / 인용: 臨溟大捷歌(홍양호)

 

계방(桂榜)

대과(大科)에 급제한 사람을 적은 방목(榜目)이다.

 

계방(季方)

후한(後漢) 때의 명사인 진심(陳諶)의 자이다. 진심은 덕행(德行)가 자기 형인 진기(陳紀)와 똑같아서 매우 명망이 높았으므로, 전하여 타인(他人)의 아우를 높여 일컫기도 한다.

 

계방난제(季方難弟)

계방(季方)은 동한(東漢) 진식(陳寔)의 둘째 아들 심()의 자이다. 심이 그의 형 기()와 함께 재주와 덕을 겸비하여 당시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는데, 진식이 두 아들을 칭찬하기를 원방(元方; 의 자)은 형으로 삼기 어렵고 계방은 아우로 삼기 어렵다.”라 하여 서로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는 뜻으로 말하였다. 세설신어(世說新語)』 「덕행(德行)

 

계백(階伯)

백제의 장군이다. 나당 연합군이 쳐들어오자 처자가 적국의 노비가 되지 않도록 손수 죽이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한 뒤에 결사대 5천 명을 거느리고 황산벌에서 신라군과 용전분투하다가 장렬하게 죽었다.

 

계백기신자색한(係帛羈臣紫塞寒)

한 무제(漢武帝) 때 사람 소무(蘇武)가 흉노(匈奴)에 사신으로 가서 억류를 당하였다. 한 나라에서는 그의 소식을 모르고 있었는데, 소무가 기러기발에 매어 보낸 편지를 받아 보고, 송환 교섭을 하여 19년 만에 돌아왔다. 한서(漢書)卷五十四 이릉소건전(李廣蘇建傳)

 

계변주발룡응복(溪邊呪鉢龍應伏)

옛날에 어느 고승이 큰 못 속에서 장난하는 악룡(惡龍)을 주문을 외어서 잡아다가 바리때 안에 집어넣었다 한다.

 

계북(薊北)

북경(北京) 덕승문(德勝門)의 서북쪽 지역으로, 춘추 전국 시대 연()나라 지역을 말한다. / 인용: 大賈(이조원)

 

계비(啓悱)비는 마음 속으로는 이해하면서도 말로 표현하지 못함을 말한다.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비하지 않으면 계발해 주지 않는다[不悱不發].”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논어(論語)』 「술이(述而)

 

계비(季備)

석숭(石崇)의 자이다.

 

계빈(罽賓)

서역(西域)에 있는 나라 이름이다. 한서(漢書)』 「서역전(西域傳)

 

계빈찬(戒賓贊)

()는 고()의 뜻으로, 관례(冠禮)를 치를 집의 주인이 자신의 요우(僚友)인 사람을 빈()으로 맞아 자기 집의 관례를 맡아보아 달라고 고하는 것을 말하고, 찬은 곧 빈의 집례(執禮)를 보좌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의례(儀禮)』 「사관례(士冠禮)

 

계사(禊事)

옛 풍속에, 33일에 물가에 가서 목욕하여 불상(不祥)한 것을 제거하는 것을 불계(祓禊)라 하였다.

 

계사전(繫辭傳)

주역(周易)64()의 각각에 붙여진 점사(占辭)를 말한다. 각 괘에 붙여진 점사를 단사(彖辭) 혹은 괘사(卦辭)라 하고 괘의 구성 단위인 각 효()에 붙여진 점사를 효사(爻辭)라 한다.

 

계산(稽山)

영동(永同)의 고호이다.

 

계산공견화(溪山空見畫)

직접 산수를 찾아가지 못하고 그림을 통해서나 볼 수 있을 뿐이라는 말이다. 소식(蘇軾)의 시에 자네도 늙어 가며 부질없이 산수를 그림 속에서 찾고 있네만, 나도 그저 꿈속에서나 한 번씩 놀고 온다네[老去君空見畫夢中我亦曾遊]”라는 표현이 있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33 次韻子由書王晉卿畫山水二首

 

계산이백주(溪山移白晝)

남곤의 정원에 있는 시내와 산이 손들의 차지가 되었다는 말이다.

 

계상(係桑)

반석처럼 견고함을 말한다. 주역(周易)』 「비괘(否卦) 구오(九五)그 망할까 망할까 하여야만 포상에 매놓은 듯 견고하리라[其亡其亡 繫于苞桑].”라고 하였는데, 포상은 곧 떨기로 난 뽕나무를 말한다.

 

계상(計相)

전한 때 승상의 별칭이다. 승상은 군국(郡國)이 올리는 회계와 지방정부 관리들의 고과를 관장하는 권한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생긴 명칭이다.

 

계상주(桂餳酒)

계수나무의 꽃과 누룩으로 빚은 술로 맛좋은 술을 말한다.

 

계서(雞書)

계모문서(雞毛文書)의 약어로, 급히 전달해야 하는 서신(書信)에다 닭의 깃을 꽂아서 보냄으로써 신속하게 전해야 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인데, 이것을 우격(羽檄)이라고도 한다. 후한서(後漢書)卷一 광무제기(光武帝紀)

 

계서(鷄黍)

논어(論語)』 「미자(微子)하조장인(荷蓧丈人)공자의 제자 자로(子路)를 자기 집에 초청하여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어 대접하였다[殺鷄爲黍而食之].”는 내용이 있다.

 

계석인위양(溪石認爲羊)

황초평(皇初平)이 나이 15세 때 양()을 치고 있었는데, 어느 도사(道士)가 그의 양근(良謹)한 태도를 보고 그를 데리고 금화산(金華山) 석실(石室) 속으로 들어갔다. 초평은 그곳에서 40여 년을 보내면서 집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를 찾아나선 그의 형이 몇 해를 두고도 못 찾다가 어느 날 시장에서 도사를 만나 그가 금화산 속에서 양을 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 길로 도사를 따라가서 그를 만났다. 형이 초평에게 양은 어디 있느냐고 묻자 그 산 동편에 있다고 하여, 가 보았으나 양은 없고 하얀 돌무더기뿐이었다. 그런데 초평이 와서 꾸짖자 그 돌들이 모두 일어나 수만 마리의 양떼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신선전(神仙傳)

 

계설(繫絏)

얽어맴이란 말이다.

 

계설향(雞舌香)

향명(香名)인데, () 나라 때에 상서랑들이 계설향을 입에 머금고 임금 앞에 엎드려 일을 아뢰었다 한다. 漢官儀보통 정향(丁香)이라고 한다. 초학기(初學記)』 「직관부(職官賦)상서랑(尙書郞)은 계설향을 머금고 엎드려 일을 아뢴다.”라 하였다.

 

계손유진이뇌면(季孫留晉以賂免)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 13년 조()진 나라 사람이 계손여의(季孫如意)를 체포하여 천막 안에 가두고 적인(狄人)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는데, 사탁석(謝鐸射)이 비단을 품 안에 품고 물과 얼음을 가지고 기어서 들어가자 지키는 자가 못 들어가게 막았다. 그러자 지키는 자에게 비단을 주고 들어갔다.”라 하였다.

 

계수(薊樹)

계문연수(薊門煙樹)의 준말로, 연경(燕京)의 팔경(八景) 가운데 하나이다.

 

계수(鷄樹)

중서성(中書省)을 말한다. 삼국 시대 위()의 유방(劉放손자(孫資) 두 사람이 오랫동안 기임(機任)을 맡고 있자, 하후헌(夏候獻조조(曹肇)가 여기에 불평심을 품고는 전중(殿中)에 있는 계수를 보고 말하기를 이 나무도 무척 오래된 것인데, 어찌 더 이상 오래가랴.”라 하였는데, 이때 마침 유방과 손자가 중서성에 있었으므로 후인들이 중서성을 가리켜 계수라고 했다.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劉放傳

 

계수관(界首官)

도경(道境) 안의 여러 고을들을 나누어 맡아 통관(統管)하는 큰 고을을 이른다.

 

계수난초(桂樹蘭草)

뛰어난 자손을 가리키는 말로, 보통 계자 난손(桂子蘭孫)이라는 말을 흔히 쓴다.

 

계수당(戒垂堂)

위험한 곳에 가지 말라는 경계를 말한다. 수당은 마루 끝, 처마 아래를 말하는데, 기와가 떨어져서 사람이 다치기 쉬운 곳이다. 중국 속담에 집의 재산이 천금이면 마루 끝에 발을 드리우고 앉지 않는다.” 하였는데 그것은 몸을 조심한다는 뜻이다.

 

계수유인택(桂樹幽人宅)

초사(楚辭)회남소산(淮南小山) 초은사(招隱士)계수나무 우거진 그윽한 산속[桂樹叢生兮山之幽]”이라는 표현이 있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계수총생(桂樹叢生)

() 나라 회남왕(淮南王)에게 초빙된 인사들이 지은 이른바 소산(小山대산(大山)의 사부(詞賦) 중에서, 소산에 속하는 초은사(招隱士)첫머리의 계수나무 무성한 곳 그윽한 산이로다[桂樹叢生兮 山之幽]”라는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군자가 세상을 피해 깊은 산속에 숨어 사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계수편(桂樹篇)

계수나무 우거진 그윽한 산속[桂樹叢生兮山之幽]”이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초사(楚辭)초은사(招隱士)편을 말하는데, 보통 은거 생활을 비유할 때 쓰는 표현이다.

 

계순(契順)

() 나라 정혜사(定慧寺) 수흠(守欽)의 문도(門徒) 탁계순(卓契順)이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39 차운정혜흠장로견기(次韻定慧欽長老見寄)의 서()소주(蘇州) 정혜사 장로 수흠이 그 문도 탁계순을 혜주(惠州)로 보내 나의 안부를 묻고운운하였다.

 

계술(繼述)

선왕(先王)의 뜻과 사업을 계승하여 수행하는 것이다. 효자가 선세(先世)의 업적을 잘 계승하는 것을 말한다. 중용(中庸)30중니께서는 요임금과 순임금의 도를 이어받으셨고, 문왕과 무왕의 법을 지키셨으며[仲尼, 祖述堯舜, 憲章文武].”라 하였다. / 인용: 嶺南歎(윤현)

 

계신공구(戒愼恐懼)

경계하고 삼가하며 두려워하다.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 중용장구서(中庸章句序)() 임금이 우() 임금에게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희미하니, 정밀히 살피고 한결같이 해야 진실로 중도(中道)를 잡으리라[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 하였다. 계신(戒愼) 공구(恐懼)는 정()할 때의 경() 공부로 중용(中庸)수장(首章)()란 잠시도 떠나서는 안 되니, 떠날 수 있는 것이라면 도가 아니다. 때문에 군자(君子)는 남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계신하며, 남이 듣지 않는 곳에서도 공구한다.”라 하였다.

 

계씨부주공(季氏富周公)

계씨는 노() 나라 대부(大夫) 계손씨(季孫氏)를 말하는데, 논어(論語)』 「선진(先進)계씨가 주공보다 부하거늘 염구(冉求)가 그를 위해 부세를 더욱 많이 거둬들여 그를 더 부하게 만들어준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계씨재(季氏宰)

공자(孔子) 제자였던 중유(仲由)와 염구(冉求), 이 둘이 노()의 국정을 제맘대로 요리했던 권신(權臣)계씨(季氏)의 가신(家臣) 노릇을 하였다. 논어(論語)』 「자로(子路)

 

계야(季野)

() 나라 때 명신(名臣)인 저부(褚裒)의 자()이다. 젊어서부터 고상(高尙)한 운치가 있어, 환이(桓彝)의 말에 계야는 가슴속에 춘추(春秋)의 의리가 있다.”라 하였다. 진서(晉書)卷九十三 저부전(褚裒傳)

 

계양(桂陽)

부평(富平)의 옛 이름이다.

 

계여포(繫如匏)

한 군데에 매어 있음을 말한다. 논어(論語)』 「양화(陽貨)내가 어찌 조롱박처럼 매달려만 있겠느냐? 먹지 못하는 쓸모없는 조롱박은 되지 않을 것이다.”라 한 데서 온 말이다.

 

계연(計然)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규구(葵丘) 사람으로 성은 신씨(辛氏), 자는 문자(文子)인데 범려(范蠡)의 스승이다. 월왕 구천(句踐)에게 재물을 축적하는 이재(理財)의 묘리를 가르쳐 줘 그대로 시행한 지 10년 만에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 5(五覇)의 하나가 되게 하였다. 치부(致富)의 술()이 뛰어나서, 범려(范蠡가 그의 계책을 이용하여 거만장자(巨萬長者)가 되었으므로, 전하여 치부의 방도를 의미한다. 사기(史記)卷一百二十九 화식열전(貨殖列傳)

 

계연가식재난피(桂緣可食災難避)

계심(桂心)은 계피(桂皮)의 겉껍질을 벗긴 속껍질인데 먹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으로부터 베임을 당한다는 말이다. 즉 사람도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남으로부터 시기를 받아 반드시 피해를 입게 되고, 재주는 적어도 덕이 있는 사람은 그런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뜻이다.

 

계영(桂影)

달 속에 들어있다는 전설상의 계수나무를 말한다.

 

계옥(桂玉)

계옥지지(桂玉之地)의 준말로 경성(京城)을 가리킨다.

② 『사기(史記)땔나무를 구하기는 계수나무보다 귀하고 쌀은 옥보다도 귀하다.”는 말이 있다.

 

계옥(啓沃)

온 정성을 다하여 임금을 보좌하는 것을 말한다. 서경(書經)』 「열명(說命)너의 마음을 열어서 짐의 마음을 적셔주라[啓乃心 沃朕心]”이라 하였다.

 

계옥불찬(桂玉不爨)

가난해서 땔감과 쌀이 몹시 귀하여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못함을 말한다.

 

계옥지탄(桂玉之歎)

몹시 가난하다는 말이다.

 

계온(季溫)

김종직(金宗直)의 자이다.

 

계요(薊遼)

계주(薊州)와 요주(遼州), 즉 지금의 요령(遙寧)과 하북성(河北省) 동북쪽 일대를 가리킨다.

 

계우포상(繫于苞桑)

주역(周易)』 「비괘(否卦)구오(九五)망하지 않을까 망하지 않을까 하고 경계해, 뽕나무 우거진 뿌리에 매어 둔 것처럼 견고해진다[其亡其亡 繫于苞桑].”라고 하였다. 망할듯하다가 다시 유지된다는 뜻이다.

 

계운궁(啓運宮)

인조(仁祖)의 생모이다. 좌찬성 구사맹(具思孟)의 딸로 선조(宣祖)의 다섯 째 아들인 정원군(定遠君)에게 출가하였는데, 뒤에 정원군이 원종(元宗)으로 추존됨에 따라 인헌왕후(仁獻王后)로 추봉(追封)되었다.

 

계원(桂苑)

계방(桂坊)과 같다. 계방은 당대(唐代)의 사경국(司經局)의 별칭이다.

 

계원(雞園)

본디 중인도(中印度)에 있던 고대의 사찰 이름으로, 전하여 사찰을 말한다.

 

계원필경(桂苑筆耕)

책 이름. 204. 신라 말기의 학자 최치원(崔致遠)의 시문집. 당나라에 있을 때 지은 작품을 간추려 28권으로 엮어서 헌강왕(憲康王)에게 바친 문집인데, 이중 사시금체부 2, 오언칠언금체시 1, 중산복궤집 5권은 전하지 않는다. 현존 최고의 한시문집으로 한문학사의 중요한 자료이다.

 

계월(係越)

() 나라 종군(終軍)의 약관(弱冠)이 무제(武帝)에게 글을 올려 갓끈 하나만 주시면 남월왕(南越王)의 목을 매어다 바치겠습니다.”라 하였다.

 

계유(䝟貐)

사람을 잡아먹는 맹수로서 용의 머리에 말의 꼬리, 범의 발톱을 지녔는데, 유도(有道)한 임금이 있는 세상에는 숨어서 나타나지 않고 무도한 임금이 있는 세상에는 나와서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한다.

 

계유군자불수관(季由君子不須冠)

계유(季由)공자(孔子) 제자 자로(子路)를 말한 듯하다. 사기(史記)卷六十七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 자로(子路)가 위() 나라 태자 괴외(蒯聵)의 난리에 갓끈이 떨어지자, 군자(君子)가 갓을 벗고 죽을 수는 없다고 하면서 갓끈을 손수 고쳐맸다고 한다[子路曰君子死而冠不免.” 遂結纓而死.].

 

계음(禊飮)

옛날의 풍속에 33일에 동류수(東流水) 위에 모여서 불상(不祥)한 것을 제거하며 술을 마시고 놀았는데, 이것을 계()라 한다.

 

계응(季鷹)

() 나라 때 장한(張翰)의 자이다. 장한이 일찍이 낙양(洛陽)에 들어가 대사마동조연(大司馬東曹掾)을 지내다가, 가을 바람이 일어나자, 자기 고향 오중(吳中)의 고채(菰菜)와 농어(鱸魚)를 생각하면서 인생은 자기 뜻에 맞게 사는 것이 귀중한데, 어찌 수천리 밖에서 벼슬에 얽매일 수 있겠느냐.”라 하고는, 즉시 고향으로 돌아갔던 데서 온 말이다. 진서(晉書)卷九十二, 세설신어(世說新語)』 「식감(識鑑)

 

계응구유사순흥(季鷹久有思蓴鱸)

계응(季鷹)은 진() 나라 때 장한(張翰)의 자인데, 그가 낙양(洛陽)에 들어가 벼슬을 하다가 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자기 고향 오중(吳中)의 순채국(蓴鱸)과 농어회(鱸魚膾)를 생각하면서 인생은 뜻에 맞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라 하고는, 즉시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갔던 데서 온 말이다. 진서(晉書)卷九二

 

계응노오강(季鷹老吳江)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서 만년을 보내고 싶다는 말이다. 계응(季鷹)은 진() 나라 장한(張翰)의 자()이다. 낙양(洛陽)에 들어와서 동조연(東曹掾)의 벼슬을 하다가 가을바람이 이는 것을 보고 고향인 오중(吳中)의 순채국과 농어회가 생각나자 곧바로 돌아갔던 고사가 있다. 진서(晉書)92

 

계응애순로(季鷹愛蓴鱸)

계응(季鷹)은 장한(張韓)의 자()이다. ()나라 사람으로 진()나라에 와서 벼슬하다가 세상에 난리가 날 것을 보고는 내 고향인 강동(江東)에 순채(蓴鱸)와 노어(鱸魚)가 맛이 좋은데 하필 천 리 밖에 벼슬할 필요가 있는가.”라 하고, 곧 고향인 강동으로 돌아갔다.

 

계응어(季鷹魚)

계응(季鷹)은 진() 나라 때 깨끗한 지조로 이름 높았던 장한(張翰)의 자이며, 노어는 농어(鱸魚)이다. 장한이 가을바람이 부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고향인 오중(吳中)의 순채국과 농어회가 생각나서 말하기를 인생살이에 있어서는 뜻에 맞게 사는 것이 귀한 법인데, 어찌 벼슬에 얽매여서 수천 리 밖을 떠돌면서 명예와 관작을 노리겠는가.”라 하고는, 드디어 수레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서(晉書)92 문원열전(文苑列傳)」 「장한(張翰)

 

계응주(季鷹舟)

계응(季鷹)은 진() 나라 장한(張翰)의 자인데, 대사마 동조연(大司馬東曹掾)으로 있다가 고향 강동(江東)의 순채나물과 농어회가 그립다는 구실로 벼슬을 그만두고 배를 타고 돌아갔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계응지기(季鷹知幾)

계응(季鷹)은 진() 나라 오군(吳郡) 사람 장한(張翰)의 자이다. 그가 일찍이 대사마 동조연(大司馬東曹掾)에 임명되었으나, 당시 세상이 혼란하여 화란이 곧 일어날 기미가 보이자 자기 고향 오군의 순채와 농어회 등을 생각하면서 말하기를 인생이란 뜻에 맞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인데, 내 어찌 고향 떠나 수천 리 밖에 와서 부질없이 명예와 작위를 구하겠는가.”라 하고는 재촉하여 수레를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서(晉書)卷九十二 문원열전(文苑列傳)」 「장한(張翰)

 

계응추(季鷹秋)

계응(季鷹)은 진() 나라 때 깨끗한 지조로 이름 높았던 장한(張翰)의 자이다. 장한이 가을바람이 부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고향인 오중(吳中)의 순채국과 농어회가 생각나서 말하기를 인생살이에 있어서는 뜻에 맞게 사는 것이 귀한 법인데, 어찌 벼슬에 얽매여서 수천 리 밖을 떠돌면서 명예와 관작을 노리겠는가.”라 하고는, 드디어 수레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서(晉書)92 문원열전(文苑列傳)」 「장한(張翰)

 

계응환(季鷹還)

계응(季鷹)은 진() 나라 장한(張翰)의 자()이다. 그가 낙양(洛陽)에서 벼슬살이를 하던 중에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고는 고향인 오() 땅의 고채와 순채와 농어회 생각이 불현듯 일어나서 그 길로 벼슬을 그만두고 곧장 돌아왔던 고사가 전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식감(識鑑)

 

계의(稽疑)

시초와 영구는 상고 시대의 길흉을 점치는 도구이고, 계의는 의심나는 것을 알아본다는 뜻이다.

 

계인(鷄人)

벼슬 이름이다. 춘관의 소속인데, 새벽이 되면 백관을 일깨워 일어나게 하는 직을 맡았다. 왕유(王維)의 시에 붉은 관 쓴 계인이 새벽을 알린다[絳幘鷄人報曉籌]”라 하였다.

옛날 새벽을 알리는 벼슬아치이다. 계인은 닭을 관장하여 고기를 제공하고 대제사(大祭祀) 때에는 새벽을 알려 백관(百官)을 깨운다. 주례(周禮)春官 鷄人

 

계인보효(鷄人報曉)

당 나라 제도에 붉은 수건을 쓰고 닭의 모양을 한 사람이 새벽이 되면 크게 외쳐서 새벽을 알렸다.

 

계자(鷄子)

계란. 달걀.

 

계자(谿子)

고대 중국의 남방에 거주하던 이민족 이름으로 산뽕나무로 만든 쇠뇌로 유명하였다.

 

계자(季子)

() 나라 왕충(王充)을 가리킨다. 매우 가난한 속에서도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저서에만 몰두하여 논형(論衡) 등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춘추시대(春秋時代) 때 오() 나라의 계찰(季札)을 가리킨다. 계찰은 오왕(吳王) 수몽(壽夢)의 작은 아들로 어질다는 명성이 있어서 수몽이 왕으로 세우고자 하였으나, 사양한 채 받지 않자 연릉(延陵)에다가 봉하였으므로 연릉계자(延陵季子)라 불리운다. 상국에 두루 조빙하면서 당시의 어진 사대부들과 사귀었으며, () 나라에 조빙하면서 주() 나라의 음악을 보고는 열국(列國)의 치란 흥망을 알았다. 사기(史記)31 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

전국시대(戰國時代) 유세가(遊說家) 소진(蘇秦)을 가리킨다. (((((()등 여섯 나라에게 서로 동맹을 맺고 진()나라를 대항하도록 유세하여 여섯 나라의 상인(相印)을 차고 종약(縱約)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계자검(季子劍)

계자는 춘추시대(春秋時代) 때 오() 나라의 계찰(季札)로 연릉(延陵)에 봉해졌으므로 연릉계자(延陵季子)라고도 불리는데, 상국(上國)에 두루 조빙하면서 당시의 어진 사대부들과 사귀었다. 일찍이 진() 나라에 사신으로 가다가 서() 나라를 지나게 되었는데, 서 나라의 임금이 계자가 차고 있는 칼을 보고는 갖고 싶어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런데 마침 그 자리에 진 나라의 사신이 함께 있었으므로 계자가 즉시 칼을 풀어 주지 못하였으나, 마음속으로는 이미 주기로 마음먹었다. 계자가 진 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서 나라를 다시 지나게 되었는데, 그때는 이미 서 나라의 임금이 죽은 뒤였다. 이에 계자는 서 나라 임금의 무덤 앞에 있는 나무에다가 칼을 걸어 놓고 떠나갔다. 신서(新書)』 「절사(節士)

 

계자관악(季子觀樂)

연릉(延陵)의 계자(季子)로 불렸던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계찰(季札)이다. 사신으로 상국(上國)을 역방하며 현사대부(賢士大夫)들과 교유하였는데, () 나라에 가서 주() 나라의 음악을 듣고는 열국(列國)의 치란(治亂)과 흥망(興亡)을 정확히 알아맞히었다고 한다. 사기(史記)31

 

계자관주동상국(季子관주(觀周)動上國)

계자(季子)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의 계찰(季札)을 말한다. 상국을 역빙(歷聘)하여 현사대부(賢士大夫)들과 교유하였는데, 특히 노() 나라에 사신으로 가서는 주() 나라 음악을 직접 보고서 열국(列國)의 치란과 흥망을 알고 주 나라가 왕이 된 소이연을 설파해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사기(史記)31

 

계자구(季子裘)

전국시대(戰國時代) 소진(蘇秦)의 자이다. 소진이 처음 연횡설(連橫說)을 가지고 수차 진왕(秦王)을 설득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음으로써, 검은 갖옷은 다 해지고 노자인 황금 백 근()도 다 떨어졌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

청렴결백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춘추(春秋) 시대 오()계찰(季札)이 나가 놀다가 길가에 금이 흘려져 있는 것을 보고는, 오월(五月)에도 갖옷을 입고 다니는 피구공(被裘公)이라는 자를 보고 그 금을 주워가지라고 하자, 그가 버럭 화를 내며 말하기를 왜 자기 자신은 처신을 고상하게 하면서 남은 그리 얕잡아보는가. 오월에 갖옷 입고 나뭇짐 지고 다니는 자가 금은 주워 무엇에 쓸 것인가.”라고 했다고 한다. 고사전(高士傳)

 

계자구폐(季子裘敝)

계자는 전국(戰國) 시대 변사(辯士) 소진(蘇秦)의 자()이다. 그는 진왕(秦王)을 설득하려고 진 나라에 갔으나 뜻을 얻지 못하고 돌아올 적에 검은 초피(貂皮) 갖옷이 모두 해졌다. 사기(史記)卷六十九 소진열전(蘇秦列傳)

 

계자귀래(季子歸來)

계자는 전국시대(戰國時代)의 변사(辯士) 소진(蘇秦)의 자()이다. 그가 소싯적에 가사는 돌보지 않고 놀러만 다니자, 가족들로부터 괄시를 받았다. 그 후 6국의 제후를 설득하여 합종책(合從策)에 성공, 6국의 재상이 되어 금의환향하였다. 사기(史記)卷六十九 소진열전(蘇秦列傳)

 

계자십자비(季子十字碑)

() 나라 공자(公子) 계찰(季札)이 죽어서 연릉(延陵)에 장사하였는데, 공자(孔子)가 그 비()에 제()鳴呼有吳延陵季子之墓를 두고 이른 것이다. 남총지(南畿志)

 

계자의(季子衣)

나그네 길을 떠돌면서 곤경에 처하였다는 뜻이다. 계자는 전국시대(戰國時代) 때 유세객(遊說客)소진(蘇秦)을 가리킨다. 소진이 진() 나라에 가서 벼슬을 구하면서 진왕에게 글을 열 번 올렸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이에 진 나라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입고 있는 갖옷은 다 떨어졌고, 얼굴빛은 검어 모습이 몹시 초췌하였다.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

 

계자인추(季子引錐)

이 말은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乃發書 陳篋數十 得太公陰符之謀 伏而誦之 簡練以爲揣摩 讀書欲睡 引錐自刺其股 血流至踵이라고 보인다.

 

계자전(季子田)

전국시대(戰國時代) 동주(東周) 낙양(洛陽) 사람으로 여섯 나라의 상인(相印)을 찼던 소진(蘇秦)나에게 만약 낙양의 성곽 근처에 밭 두 뙈기만이라도 있었다면 어찌 여섯 나라의 상인을 찰 수 있었겠느냐.”라고 한 말에서 나온 것이다. 계자는 소진의 자이다. 사기(史記)卷六十九 소진열전(蘇秦列傳)

 

계자초구폐(季子貂裘敝)

계자는 전국(戰國) 시대의 유세객(游說客) 소진(蘇秦)의 자이다. 소진이 맨 처음 연횡설(連橫說)을 가지고 진혜왕(秦惠王)을 설득하였는데, 열 번이나 상서(上書)를 했지만 진 혜왕이 끝내 그 말을 써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때 소진은 객지에 나온 지 오래되어 검은 담비 갖옷이 다 해지고 여비인 황금 1백 근도 다 떨어졌었다고 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

 

계자한(季子恨)

계자는 전국시대(戰國時代) 때 유세객(遊說客)소진(蘇秦)을 가리킨다. 소진이 진() 나라에 가서 벼슬을 구하면서 진왕에게 글을 열 번 올렸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이에 진 나라를 떠나 초췌한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오자 사람들이 모두 괄시하였다. 그 뒤에 다시 제(), () 7국에 유세하여 합종(合從)하게 하고는 6국의 재상이 되자 진 나라 군사들이 15년 동안 함곡관(函谷關)을 넘어오지 못하였다.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

 

계장(桂漿)

계수로 담근 술이다.

 

계적(桂籍)

계방(桂坊)의 명부이다. 동궁(彤弓)이 있던 곳이 계방인데, 여기서 말하는 계적은 급제방목(及第榜目)을 가리킨다.

 

계전화(繫錢靴)

당 무후(唐武后) 때 정음(鄭愔)이 선거(選擧)를 관장하여 뇌물을 워낙 받아들였으므로, 당시에 한 선인(選人)이 가죽신 위에다 백전(百錢)을 매어 달고 말하기를 지금의 선거는 돈이 아니면 할 수 없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계절(戒節)

가을이 되면 찬바람이 불고 서리가 내리고 초목에 낙엽이 지곤 하므로, 즉 추위에 대비해야 하는 계절(季節)이란 뜻으로 쓰인 말이다.

 

계정(戒定)

몸을 절제하는 것을 계(),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을 정()이라 한다.

 

계제관(階除官)

계제직(階梯職). 어떤 자급(資級관직(官職)에 오를 차례가 된 벼슬아치·벼슬을 말한다. (()는 섬돌. ()는 사닥다리. 계제(階除계제(階梯)는 다 어떤 일이 되어 가거나 어디로 나가서는 차례, 실마리, 기틀 따위를 뜻하는 말이다.

 

계제사(禊祭祀)

삼월 삼짇날 흐르는 물에 몸을 씻어 액을 막고 복을 비는 풍속이다.

 

계주(桂酒)

계화(桂花)로 빚은 술이다.

 

계주(季主)

() 나라 때의 은사(隱士), 초인(楚人)이며 장안(長安)의 동시(東市)에서 복서(卜筮)를 업으로 삼고 은거했던 사마계주(司馬季主)를 말한다. 사기(史記)』 「일자전(日者傳)

계주는 한() 나라 때 장안(長安) 동쪽 저잣거리에서 점()을 치며 살았던 사마계주(司馬季主)를 말한다. 사기(史記)』 「일자전(日者傳)

 

계주(鷄酒)

삶은 닭고기 속에 술을 머금은 솜을 넣은 것으로 먼 길을 갈 때 가지고 가기 간편하도록 한 것이다.

척계두주(隻鷄斗酒) 혹은 적계서주(炙鷄絮酒)의 준말로, 변변찮은 제사 음식을 말한다.

 

계주색검(鍥舟索劍)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융통성이 없음을 이른다. () 나라 어떤 이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칼을 물에 빠뜨렸는데, 그는 칼이 빠진 부분의 뱃전에다 표를 해두었다가 배가 나루에 닿아 멈추자 표 해놓은 뱃전 밑의 물 속으로 들어가 칼을 찾았다고 한다. 여씨춘추(呂氏春秋)』 「찰금(察今)

 

계주생면(契酒生面)

계모임에서 먹는 술로 얼굴을 내민다는 뜻으로 남의 물건을 가지고 자신이 생색을 낸다는 의미의 우리나라 성어. 남의 물건으로 자기가 생색을 냄을 말한다.

 

계죽사난사(繫竹事難事)

초와 월(모두 대나무 산지)의 대나무를 모두 사용하여도 그 악행을 다 쓸 수가 없을 정도로 악행이 많았다.

 

계지은(桂枝隱)

은거하는 것을 말한다. 초사(楚辭)』 「초은사(招隱士)계지를 부여잡고서 애오라지 오래 머무노라[攀援桂枝兮 聊淹留]”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계지일곡(桂枝一曲)

속세를 초월한 고아(高雅)한 노래를 말한다. 초사(楚辭)회남소산(淮南小山) 초은사(招隱士)그윽한 산속에 떨기진 계수나무[桂樹叢生兮山之幽]”라는 시구에서 유래한 것이다.

 

계지향만(桂枝香慢)

가사의 이름으로 계수나무 가지에 향기가 풍긴다.”는 뜻이다.

 

계진(季眞)

청연(靑蓮) 이후백(李後白)의 자이다.

 

계찰(季札)

춘추(春秋) 시대 오() 나라 왕자로서 왕위도 마다하고 중원의 각국을 돌며 당대의 어진 자들을 많이 사귀고 노()나라에 와서 주악(周樂)을 구경하고는 여러 나라의 치란성쇠에 관해 알았다고 한다. 사기(史記)31

 

계찰관악(季札觀樂)

계찰은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임금 수몽(壽夢)의 넷째 아들이다. 상국(上國) 즉 큰 나라를 역방(歷訪)하여 당시의 어진 사대부들과 사귀며, () 나라에 가서 주() 나라 음악 연주를 보고 주 나라가 천자 노릇하게 된 까닭과 열국들의 치란·흥망을 알았다 한다. 좌씨전(左氏傳)襄公 十四年·三十一年, 사기(史記)卷三十一

 

계찰괘검(季札掛劍)

신의를 중히 여긴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심허(心許). ()나라의 계찰이 상국(上國)으로 사신(使臣) 가는 도중(途中)에 서국(徐國)을 지나는데 그 나라의 임금이 계찰의 칼을 보고 갖고 싶어 하므로 그는 마음속으로 주겠다고 생각하였는데, 돌아가는 길에 서국에 들르니 그 나라 임금이 이미 죽었으므로 칼을 그 임금의 무덤 옆의 나무에 걸고 갔다 한다. 사기(史記)』 「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 유의어: 계자검(季子劍), 계찰계검(季札繫劍)

 

계처(啓處)

왕사를 견고히 하지 않을 수 없는지라, 편안히 거처할 겨를이 없도다[王事靡盬, 不遑啓處].”는 말에서 유래하여, 쉴 틈도 없이 바쁘게 공무를 하는 것을 말한다. / 인용: 安亭記(이행)

 

계첩(稧帖)

왕희지의 난정계첩(蘭亭禊帖)이다.

 

계총(桂叢)

계수나무 숲으로, 은거하여 사는 곳을 이른다. / 유의어: 총계(叢桂)

 

계추(鷄雛)

병아리를 말한다.

 

계출(繼出)

경상도 영천(永川) 등지에서 생산되는 최상등의 황마포(黃麻布)를 일컫는 말이다.

 

계충(鷄虫)

작은 이해와 득실을 이르는 말로 닭이 벌레를 쪼아 먹고 사람이 그 닭을 잡아먹는 일을 말한다.

 

계통(季通)

홍명형(洪命亨)의 자()이다.

 

계통별부제(季通別不啼)

계통은 송 나라 학자 채원정(蔡元定)의 자이다. 그는 일찍이 주희(朱熹)와 교의(交誼)가 두터운 사이였는데, 그 역시 위학(僞學)으로 몰려 도주(道州)로 귀양가는 길에, 주희와 종유(從遊)하던 사람 수백 명이 소사(蕭寺)에서 전별할 적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슬퍼서 눈물을 흘렸으나 원정은 평시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주희가 그에게 탄복하여 붕우 사이에 서로 사랑하는 정과 계통의 굳은 지조가 양득(兩得)이라 할 만하다.”라 하자, 채원정이 시를 읊어 손잡고 서로 웃으며 헤어질 것이요, 아녀자의 슬픔은 짓지 말아야지[執手笑相別 無爲兒女悲].”라 하였다. 송사(宋史)卷四百三十四 채원정전(蔡元定傳)

 

계포과(繫匏瓜)

공자(孔子)가 일찍이 진() 나라 중모재(中牟宰) 필힐(肹肹)의 부름을 받고 그곳을 가려고 할 적에, 자로(子路)가 불선한 사람에겐 왜 가시려 하느냐고 묻자, 공자가 내가 어찌 박이더냐. 어찌 한 곳에 매달려 있어 음식도 먹지 못하겠느냐.”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논어(論語)』 「양화(陽貨)

 

계포무이락(季布無二諾)

() 나라 계포가 한 번 승락하면 반드시 지켰다는 고사로서 초() 나라 속담에 황금 1백 근을 얻기보다는 차라리 계포의 승락을 한 번 얻는 것이 낫다.”고 하였다 한다. 사기(史記)』 「계포난포열전布傳(季布欒布列傳)

 

계포상(繫苞桑)

주역(周易)나라가 망할까 염려하여 떨기로 된 뽕나무[苞桑]에 매라.”라 하였다. 뽕나무는 뿌리가 깊이 들어가 튼튼하여 잘 뽑아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계포일락(季布一諾)

계포(季布)의 한 번 약속. 확실한 약속 또는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킴을 이른다.

 

계피학발(鷄皮鶴髮)

사람이 늙어서 피부는 닭의 살갗과 같이 되고 머리는 세어 학 날개처럼 희어졌다는 말이다.

 

계학(谿壑)

큰 골짜기란 뜻으로 끝없이 먹으려고 하는 욕심을 비유한 말이다.

시내와 구렁(溪壑)은 채우기 쉬울지언정 탐한 자의 욕심은 채우기 어렵다[何欲乎溪壑]는 옛글이 있다.

 

계할(鷄割)

닭을 벤다고 함은 작은 일에 큰 인재를 썼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양화(陽貨)공자(孔子)가 무성에 이르러 글 읽고 거문고 타는 소리를 듣고 이르기를 닭을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리오.” 하였다 한다.

 

계함(季涵)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자()이다.

 

계해반정(癸亥反正)

인조반정을 말한다. 인조반정은 광해군 15년에 있었고, 15년은 바로 계해년이었다.

 

계행죽엽성(鷄行竹葉成)

닭이 자나가니 댓잎이 그려진다는 뜻이다. 닭이 지나간 발자국을 묘사 한 시구로 개가 달려가니 매화꽃이 뚝뚝 떨어진다.”는 시구와 대구이다.

 

계향(戒香)

불경에 계향(戒香정향(定香혜향(慧香)이란 말이 있는데, 불에 태우는 향()이 아니라 주색·육미 등을 끊어 계()를 지키는 것이 곧 계향이다.

 

계화개(桂花開)

과거에 급제한 자에게 월계화를 꽂아 주므로 계화가 피었다고 한 것이다.

 

계화상(戒和尙)

불교의 용어로서, 불문(佛門)에 들어간 사람들에게 계법(戒法)을 수여하는 사승(師僧)을 말한다.

 

계환(髻鬟)

상투머리. 산의 별칭이다.

 

계활(契濶)

만나고 헤어짐.

 

 

인용

목차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어휘놀이터 > 어휘사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휘사전 - 24. 곡  (0) 2019.11.11
어휘사전 - 23. 고  (0) 2019.11.11
어휘사전 - 21. 경  (0) 2019.11.11
어휘사전 - 20. 겸  (0) 2019.11.10
어휘사전 - 19. 결  (0) 2019.11.09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