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경
경(磬)
‘돌로 만든 악기’로, 경쇠로 불린다.
경(經)
육경(六經)을 말한다.
경(頃)
일경(一頃)은 백 무(畝)에 해당하고 춘추전국 시대 때 한 무(畝)는 55평(약 180a)이다. 즉 일경은 5,500평이므로 2경의 단위는 지금의 평수로 계산하면 만 평 정도를 말한다.
경(卿)
자네. 그대. 당신. 친구 사이에 친밀하게 부르는 호칭이다.
경(擎)
책을 손에 들다.
경각화(頃刻花)
도술로 갑자기 피게 한 꽃을 말한다. 당(唐) 나라 때의 대문장가 한퇴지(韓退之)의 조카로 한상(韓湘)이란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퇴지가 상에게 시를 지으라고 했더니, 그는 “준순주를 빚을 줄 알고, 경각화를 피울 수 있다[解造逡巡酒 能開頃刻花].”라 하고 이어 흙을 모아서 분(盆)으로 덮어 둔 지 얼마 안 되어 다시 그 분을 들어올리자, 어린 모란 두 송이가 피어 있었다 한다. 『태평광기(太平廣記)』 「시인옥설(詩人玉屑)」 卷二十 方外
경개(耿介)
광명정대. 덕(德)이 빛나고 큰 모양이다. / 인용: 歸去來辭(도연명), 北山移文(공치규)
경개(傾蓋)
개(蓋)는 수레 뚜껑이다. 길을 가다가 수레를 멈추고 가까이 접근하여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으로, 처음 만났지만 서로 뜻이 맞아 옛 친구 같다는 데에 쓰이는 말이다. 『사기(史記)』 권83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에 “속담에 흰머리가 되도록 사귀어도 새사람 같고 경개를 하여도 옛친구 같다는 말이 있는데 그 이유는 서로의 마음을 알고 모르는 차이때문이다.”라 하였다.
경개구(傾蓋舊)
잠시 동안 사귀고서도 옛 친구처럼 친하다는 뜻이다. 경개는 길을 가다가 서로 만나서 수레의 휘장을 걷고서 잠시 이야기한다는 뜻으로, 『공자가어(孔子家語)』 「치사(致思)」에 “공자(孔子)가 담(郯)에 가서 정자(程子)를 길에서 만나 수레의 휘장을 걷고 종일토록 이야기하고는 서로 몹시 친해졌다.”라 하였다.
경개상종(傾蓋相從)
공자(孔子)가 정자(程子)와 길에서 만나 일산을 기울이고 서로 말을 하였다는 데서 온 말이다. 『공총자(孔叢子)』 「잡훈(雜訓)」
경개여구(傾蓋如舊)
‘잠깐 만나도 구면과 같이 친함’을 이른다.
경거(瓊琚)
아름다운 옥인데, 남에게 보답하는 좋은 물건에 비유한 말이다. 『시경(詩經)』 위풍(衛風) 「모과(木瓜)」에 “내게 모과로 던져주면, 경거로 보답하리다[投我以木瓜 報之以瓊琚].”라 하였다. / 인용: 소화시평 하권50, 소화시평 하권90
경거망동(輕擧妄動)
가볍게 행동하고 망령되게 움직이다. 곧, 경솔하게 함부로 행동함을 말한다.
경경(庚庚)
가로놓인 모양, 곡식이나 열매 따위가 익는 모양, 굳세고 단단한 모양.
경경(儆儆)
경계하여 조심하는 모양.
경경(京京)
근심이 떠나지 않는 모양.
경경(惸惸)
근심하는 모양.
경경(冏冏)
눈부시게 빛나는 모양, 밝은 모양.
경경(扃扃)
밝게 살피는 모양.
경경(哽哽)
슬픈 나머지 띄엄띄엄 말하는 모양.
경경(檾檾)
왕래부정(往來不定)한 모양. 헤매는 모양.
경경(焭焭)
외로운 모양.
경경(耿耿)
잠 못 이루는 모양.
경경(卿卿)
처가 남편을 부르는 칭호이다. 진(晋) 나라 왕안풍(王安豊)의 아내가 남편을 보고 늘 자네(卿)라고 불렀다. 안풍이 아내에게 “자네가 어찌 나를 자네라 하는가”라고 하니, 아내는 대답하기를 “자네를 친애하고 자네를 사랑한다. 그러므로 자네를 보고 자네라 부른다. 내가 자네를 자네라 부르지 아니하면 누가 자네를 자네라 한단 말인가[親卿愛卿 是以卿卿 我不卿卿 誰當卿卿].”라 하였다. / 인용: 夜臥 誦曾來鳴字韻詩有感(박은)
경경(嬛嬛)
의지할 곳 없는 모양.
경경고침(耿耿孤枕)
‘근심에 젖어 있는 외로운 잠자리’를 이른다.
경경토청홍(耿耿吐晴虹)
전국시대(戰國時代)의 협사(俠士) 형가(荊軻)가 연(燕) 나라 태자 단(丹)의 의기에 감동되어 진시황(秦始皇)을 죽이기 위해 비분강개한 어조로 역수 한풍(易水寒風)의 시를 읊고 자객(刺客)으로 떠날 때, 하늘도 감동하여 흰 무지개가 해 주위에 가로 비껴 걸려 있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사기(史記)』 卷86 「자객열전(刺客列傳)」 註
경계(庚癸)
경(庚)은 서방(西方)으로 곡식을 상징하고, 계(癸)는 북방으로 물을 상징하기 때문에, 옛날 춘추시대(春秋時代)에 먹고 마실 것을 뜻하는 군대의 은어(隱語)로 경계(庚癸)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좌전(左傳)』 哀公 13年
경계(境界)
인식할 수 있고 판단할 수 있는 대상이 되는 것을 말한다.
경계상사심곡추(警戒常思深谷墜)
마음을 항시 경계하라는 뜻이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소완(小宛)」에 “두려워하는 소심으로 낭떠러지에 다다른 것과 같이 하다[惴惴小心 如臨于谷].”라 하였다.
경곡구(耕谷口)
한 성제(漢成帝) 때 정자진(鄭子眞)이 곡구(谷口)에서 농사지으면서 소명(召命)에 일체 응하지 않았던 고사가 유명하다. 『법언(法言)』 「문신(問神)」
경공천(耿恭泉)
후한 때 경공이 소륵성(疏勒城)을 지키고 있었는데, 흉노가 와서 포위하여 물길이 끊겼다. 경공이 성 안에 우물을 깊이 팠으나 물이 나오지 않았다. 이에 경공이 의관(衣冠)을 갖추고 우물을 향해 두 번 절하자, 우물물이 갑자기 솟아 나왔다. 그 물을 퍼서 흉노에게 보내자, 흉노들이 군사를 끌고 물러갔다. 『후한서(後漢書)』 卷49 「경공전(耿恭傳)」
경구(景駒)
반진군의 영수 진승(陳勝)이 싸움 중 전사하자 진가(秦嘉)에 의해 초왕으로 추대된 경구(景駒)는 팽성(彭城)에 주둔했다. 유방(劉邦)과 장량(張良)이 찾아와 경구를 섬겼다. 이때 하비(下邳)에 주둔하다가 북진하려던 항량과 그의 북상을 저지하려고 하던 경구와 진가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경구와 진가는 싸움에서 지고 달아나다 지금의 산동성 어대현(魚臺縣) 동남에서 싸움 중에 죽고 그 군사들은 모두 항량의 군대에 합쳐졌다. 유방과 장량도 같이 항량의 군대에 합류했다.
경구독(經溝瀆)
개천에서 목매어 자살한 자를 가리킨다. 공자(孔子)는 제(齊)의 공자(公子) 자규(子糾)가 죽었으나 그의 스승이었던 관중(管仲)이 죽지 않은 사실을 논하면서 “어찌 필부(匹夫)·필부(匹婦)의 조그만 신의를 지키듯 스스로 구독에 목매어 남들이 알아주지 않게 하겠는가.”라 하였다.:『논어(論語)』 「헌문(憲問)」
경구보(瓊玖報)
아름다운 구슬로 상대방의 호의에 보답한다는 뜻이다. 『시경(詩經)』 위풍(衛風) 「모과(木瓜)」에 “나에게 오얏을 주었으니 경구로 보답하리라投我以木瓜, 報之以瓊琚.”라 하였다.
경구여문세환경(磬口如聞細喚卿)
반쯤 핀 매화가 친절하게 말을 할 듯하다는 뜻이다. 경(卿)은 자네라는 뜻으로 부인이 남편을 대하여 다정하게 부르는 말이므로 친절한 어감을 말한다.
경구완대(輕裘緩帶)
군중(軍中)에서도 갑옷을 입지 않고 홀가분한 옷차림으로 있음을 이른 말로, 즉 전쟁을 하지 않음을 말한다. 진(晉) 나라 양호(羊祜)가 군중(軍中)에서 늘 가벼운 옷차림에 허리띠도 느슨하게 한 채(在軍常輕裘緩帶) 갑옷도 입지 않았으며, 영각(鈴閣)에서 시위하는 군사도 십여 인에 불과하였던 고사가 있다. 『진서(晉書)』 「양호전(羊祜傳)」
경국(傾國)
나라를 기울여 위태롭게 한다는 뜻이었으나, ‘경국지색(傾國之色)’과 함께 나라를 뒤집어엎을 만한 절세미인을 지칭하는 고사성어다.
경국제세(經國濟世)
국가사(國家事)를 잘 다스려 도탄에 빠진 세상을 구한다. ‘경제’는 이의 준말이다. 나라를 다스리고 어지러운 세상을 구제한다. 경제의 본말이다.
경국지대업(經國之大業)
나라를 다스리는 큰 사업. 문장(文章)을 말한다. ‘경국의 대업, 불후의 성사’라 하면 문학이나 문장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경국지색(傾國之色)
나라를 기울게 할 정도의 뛰어난 미모. 뛰어난 미모의 여인을 이른다. / 유의어: 경국지미(傾國之美), 경성지미(傾城之美), 절세미인(絶世美人), 월하미인(月下美人), 화용월태(花容月態), 절세가인(絶世佳人).
경군(慶君)
성종(成宗) 때의 효자(孝子)로서 자가 대유(大有)인 경연(慶延)을 이른다.
경궁주운선(瓊宮酒運船)
경궁(瓊宮)은 옥으로 만든 궁전으로, 극도로 사치스럽게 꾸민 궁전을 말한다. 하(夏) 나라의 걸왕(桀王)이 말희를 총애하여 그가 원하는 것이면 모두 들어주어 경궁(瓊宮)과 요대(瑤臺)를 만들고, 고기 산과 고기포 숲을 만들었으며, 배를 띄울 만큼 큰 술 연못을 만들어 놓고 말희와 즐겼다고 한다. 『사략(史略)』 卷一 「하후씨(夏后氏)」
경궁지조(驚弓之鳥)
화살에 맞은 경험이 있어 활을 두려워하는 새라는 뜻으로, 어떤 일로 한번 혼이 난 뒤에 그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짐을 이르는 말이다.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 / 유의어: 상궁지조(傷弓之鳥)
경권(經權)
상도(常道)와 권도(權道)를 적절히 구사하는 외교적 수완을 말한다.
경균(傾囷)
한유(韓愈)가 일찍이 무슨 일로 산양(山陽)에 나가 있을 때, 두 수재(竇秀才)가 편지를 올려 사사(師事)하기를 청해오자, 한유가 그에게 보낸 답서(答書)에서 “ …… 비록 도덕(道德)을 깊이 쌓고서 그 빛을 감추어 드러내지 않고, 그 입을 틀어막아 전하지 않는 옛날의 군자(君子)라 할지라도, 족하(足下)의 이처럼 간절한 청(請)을 받았을 경우에는 장차 자기의 곳집을 기울여서 있는 대로 다 바칠 것인데, 더구나 나 같은 불초한 사람이야 또 어찌 감히 좌우(左右)에게 아낄 것이 있겠는가.”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한유의 뜻은 바로 험난한 곳에 굳이 와서 고생할 것이 없다고 사절한 것이었다. 『한창려집(韓昌黎集)』 卷十五
경기(擎跽)
젊은이가 어른 앞에서 손으로 물건을 받들고 발을 꿇어앉는 등의 동작을 말한다.
경기자(鏡機子)
삼국 시대 위(魏) 나라의 조식(曹植)이 지은 ‘칠계(七啓)’에 나오는 가상의 인물이다. 경(鏡)은 비춘다는 뜻이고, 기(機)는 기미(機微)의 뜻이다.
경노치진염(京路緇塵染)
공명(功名)과 이록(利祿)을 좇느라 서울에서 분주히 돌아다니는 것을 말한다. 진(晉) 나라 육기(陸機)의 「위고언선증부(爲顧彦先贈婦)」에 “서울 땅 낙양에는 풍진이 많고 많아, 흰 옷이 물들어서 검고 또 검어지네[京城洛陽多風塵 白衣染得黑又黑].”라 하였다.
경단(景丹)
후한 역양(櫟陽) 사람. 자는 손경(孫卿)이다. 광무제 때 무공으로 역양후에 봉해졌다. 『후한서(後漢書)』 「경단전(景丹傳)」
경단급심(綆短汲深)
두레박의 줄이 짧으면 깊은 우물의 물을 길을 수 없음. 곧 재간이 없는 사람은 심오한 이론을 터득할 수 없고 큰 일을 이룰 수 없다는 뜻이다. 『장자(莊子)』 「지락(至樂)」
경당문노(耕當問奴)
농사(農事)는 마땅히 머슴에게 물어야 한다는 뜻으로, 모르는 일은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야 한다는 말이다.
경대(瓊臺)
천태산(天台山)의 서북쪽에 위치한 산봉우리의 이름이다.
경덕궁(慶德宮)
경희궁(慶熙宮)의 초명(初名). 영조 36년(1760)에 영조가 경덕궁의 이름이 원종(元宗)의 시호 경덕(敬德)과 음이 같다고 해서 고치기를 명하여 경희궁으로 되었다.
경도(徑度)
‘곧장 건너다’라는 뜻이다.
경도(驚濤)
① 거칠고 사나운 파도
② 매우 위험한 처지 / 인용: 賣魚翁行(홍성민)
경도일(競渡日)
음력 5월 5일을 말한다. 전국시대(戰國時代) 때 초(楚) 나라 굴원(屈原)이 5월 5일에 멱라강(汨羅江)에 빠져 죽었는데, 사람들이 이날에 용주(龍舟)를 타고 건너는 경주를 하여 굴원을 기념하였다고 한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일설에는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오자서(伍子胥)를 기념하기 위해서 시작하였다고도 한다.
경독(惸獨)
몸을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 홀몸인 사람. 獨은 아들이 없는 사람을 이른다.
경락운산외(京洛雲山外)
두보(杜甫)가 객지에서 고향을 그리며 지은 ‘운산(雲山)’이라는 시의 첫 구절이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卷9
경란(輕瀾)
‘가볍게 일렁이는 물결’을 이른다.
경략문슬(景略捫蝨)
자유분방함을 말한다. 경략은 진(晉) 나라 때 사람 왕맹(王猛)의 자이다. 그가 일찍이 환온(桓溫)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이(蝨)를 문질러 죽이는 등 옆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하였다 한다.
경렴(景濂)
김종직(金宗直)의 당명으로, 즉 호가 염계(濂溪)인 송(宋) 나라 주돈이(周敦頤)를 사모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인데, 주돈이는 연(蓮)을 매우 사랑하여 「애련설(愛蓮說)」까지 지었다.
경렴당(景濂堂)
송(宋) 나라의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를 사모하는 뜻에서 붙인 김종직(金宗直)의 서재(書齋) 이름인데, 주돈이는 특히 연을 매우 사랑하여 「애련설(愛蓮說)」을 지어서 연의 자태를 군자의 덕에 비유하였다.
경로(更老)
삼경 오로(三更五老)의 약칭으로, 조정에서 벼슬하다가 나이가 들어 물러난 자들을 천자가 예우하기 위해 설치한 주나라의 제도인데 한 나라 때에도 보존되었다. 경(更)은 세 사람, 노는 다섯 사람이다.
경로사상(敬老思想)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이다.
경로성(警露聲)
백로(白露)가 내리면 학들이 몸을 다칠까 서로 경계하면서 다른 곳으로 살 곳을 옮기며 우는 소리라고 한다. 『예문유취(藝文類聚)』 卷90
경로시첨천일양(更老時沾千日釀)
경로는 삼경 오로(三更五老)의 약칭으로, 조정에서 벼슬하다가 나이가 들어 물러난 자들을 천자가 예우하기 위해 설치한 주나라의 제도인데 한 나라 때에도 보존되었다. 경(更)은 세 사람, 노는 다섯 사람이다. 천일주는 한번 마시면 천일 동안 취한다는 좋은 술이다. 곧 조정의 늙은 대신들이 천자의 대우를 극진히 받는다는 것이다.
경뢰(瓊雷)
해협(海峽) 이름이다. 중국 광동성 뇌주반도(雷州半島)와 남해도(南海島) 사이에 위치한 경주해협(瓊州海峽). 일명 뇌주해협(雷州海峽)이라고도 하는데 홍콩(香港) 등지나 원남해협을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다.
경루(瓊樓)
경루옥우(瓊樓玉宇) 혹은 경루금궐(瓊樓金闕)의 준말로, 달 속의 선궁(仙宮)을 가리킨다. 삼천 세계는 삼천 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라는 불가의 용어로, 온 천하를 말한다.
경루자(更漏子)
옛 사패(詞牌) 이름이다. 46자 또는 49자 혹은 104자로 되어 있다. 『사율(詞律)』
경류(涇流)
강물의 흐름을 가리킨다. 『장자(莊子)』 「추수(秋水)」에 “강물이 엄청나게 불어나자[涇流之大] 이 세상에서 자기가 최고라고 하백이 뻐기다가 바다를 보고는 자신의 왜소함을 깨달은 나머지 북해의 신인 약(若)을 보고 탄식을 했다[望洋向若而歎].”는 이야기가 나온다.
경릉(竟陵)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잠강(潛江) 서쪽, 초나라 도성인 영성(郢城) 동쪽에 있었던 고을로 진나라는 이곳에 경릉현(竟陵縣)을 설치하고 한나라가 따랐다.
경림석연(瓊林錫宴)
과거 급제자들에게 내린 잔치를 이른다. 송(宋) 나라 때에 과거 급제자들에게 경림이란 곳에서 잔치를 베풀어 준 데서 온 말이다.
경림연(瓊林宴)
송(宋) 나라 때에 경림원(瓊林苑)에서 새로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에게 베풀던 잔치를 말한다.
경명(景命)
하늘의 큰 명. 『시경(詩經)』 대아(大雅) 「기취(旣醉)」에 “군자 만년토록 큰 명이 계속 따르리로다[君子萬年 景命有僕].”라 하였다.
경묘탈쇄(經妙脫灑)
경쾌 미묘하여 범속의 기풍을 벗어난 용모를 이른다.
경문망진(鏡問亡陳)
남북조(南北朝) 때에 진(陳) 나라 후주(後主)가 정치를 어지럽혀 북조(北朝)인 수(隋) 나라가 엿보고 있었다. 낙창공주(樂昌公主)의 남편 서덕언(徐德言)이 나라가 망할 것을 알고 공주에게 “나라가 망하면 당신은 귀인의 집에 들어갈 것이나 나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 거울 반쪽씩 가졌다가 매년 정월 보름에 수도(首都)의 시장(市場)에 반쪽 거울을 내어다 팔아서 서로 맞추어 인연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서로 만납시다.”라 하더니, 과연 진나라는 망하고, 공주는 양소(楊素)의 집에 들어가 이듬해 정월 보름에 서덕언이 반쪽 거울을 가지고 시장에 갔더니, 공주 역시 종을 시켜 반쪽 거울을 찾고 있으므로, 공주의 거울에다 시(詩)를 써서 보냈다. 그것을 잡고 우는 것을 양소가 보고 그 애처로운 사정을 들어 서덕언을 불러 공주와 만나게 하고 돌려보냈다.
경물윤주동(景物潤州同)
동국여지승람 제4권 개성부 상(開城府上)에 “고려의 이자연(李子淵)이 원나라에 들어가 조회하면서 윤주(潤州)의 감로사(甘露寺)에 올라갔다가 강산(江山)의 아름다운 경치를 좋아하여 그를 따라간 뱃사공에게 말하기를, ‘네가 이곳의 형세를 자세히 살펴보고서 가슴속에 기억해 두라.’고 하였다. 그 뒤 본국으로 돌아와서는 뱃사공과 더불어 약속하기를, ‘천지간에 무릇 형상이 있는 물건은 서로 같지 않은 것이 없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산천의 경개가 청명하고도 수려하니 어찌 윤주(潤州)와 서로 비슷한 곳이 없겠는가. 너는 작은 배의 짧은 삿대로 아무리 먼 곳이라도 다 찾아다니되, 10년을 기한으로 하고 찾아보라.’고 하자, 뱃사공이 ‘그렇게 하겠습니다.’라 하고 떠났다. 무릇 여섯 번의 추위와 더위를 지나서 비로소 개성부의 서호(西湖)에서 윤주와 비슷한 곳을 찾았는데, 윤주의 감로사가 아름답기는 하지만 그것은 구조와 장식의 기교가 특히 좋은 것일 뿐이요, 하늘이 짓고 땅이 만든 자연적인 형세에 이르러서는 아마도 이곳이 더 나을 것이다. 그곳의 누각(樓閣)과 지대(池臺)의 모양새는 모두 윤주의 감로사를 모방하였다.”라 하였다.
경방(京房)
한(漢)나라 동군(東郡)사람으로 초연수(焦延壽)에게 역학(易學)을 배웠는데 자연의 현상을 보고 미래를 점치는 것으로 원제(元帝)의 총애를 받다가, 조정을 비방하며 천자에게 악을 뒤집어씌운다고 권신(權臣) 석현(石顯)이 모함하여 41세 때 처형되었다. 그의 저서로는 경씨역전(京氏易傳) 3권만 세상에 전할 뿐, 나머지는 유실되어 그의 전체적인 학문은 알 수가 없다. 『한서(漢書)』 卷七十五 「경방전(京房傳)」
경방계칩뢰(京房戒蟄雷)
경방(京房)은 전한(前漢) 때 사람으로 『역(易)』에 정통하였던바, 일찍이 임금에게 상언(上言)하여 하상(夏霜)·동뢰(冬雷) 등의 재이(災異)에 대한 경계가 있었다. 『한서(漢書)』 卷七十五
경배곡(傾杯曲)
당현종이 말 백필에게 춤을 가리켜서 근정루(勤政樓) 아래에서 춤추게 하였는데 그 악곡 이름이 경배곡(傾杯曲)이다.
경벽(瓊璧)
옥벽(玉璧)과 같은 뜻인데, 원(元) 나라 진초(陳樵)의 「자암부(蔗菴賦)」에 “뭇 신선이 거주함이여 경벽이 기둥에 연하였네[群仙之居兮 瓊璧連楹].”라 하였다.
경변(瓊弁)
구슬로 장식한 관. 곧 귀빈을 말한다.
경병(競病)
두 험운(險韻)을 달아 지은 시를 말한다. 남조 양(南朝 梁)의 장군 조경종(曹景宗)이 북위(北魏) 군대를 대파하고 개선한 뒤 열린 연회에서, 운자(韻字)를 서로 나누어 연구(聯句)로 시를 지을 적에, 마지막 남은 운자인 ‘경(競)’과 ‘병(病)’ 두 글자를 가지고 한번 지어보겠다고 자청하면서 “떠날 때는 아녀자들 슬퍼했는데, 돌아오니 풍악 소리 다투어 울리누나. 길손이여 어디 한번 그대에게 물어보세, 나의 공이 곽거병과 비교해서 어떠한지[去時兒女悲 歸來笳鼓競 借問行路人 何如霍去病].”라고 하자, 황제 이하 조신(朝臣)들이 찬탄을 금치 못했다는 ‘장군경병(將軍競病)’의 고사가 전한다. 『남사(南史)』 「曹景宗傳」 / 인용: 競病韻(조경종), 老人一快事(정약용)
경복(徑復)
‘갔다가 돌아온다’는 말이다. / 유의어: 왕반(往返)
경복편(景福篇)
『시경(詩經)』의 대아(大雅) 「소명(小明)」 편을 가리킨다. 이 시에 “큰 복을 크게 하리다[介爾景福].”라고 한 데서 나온 것으로 복을 비는 내용이다.
경부(梗浮)
물 위에 떠내려가는 장승이라는 말로, 정처없이 떠도는 생활을 가리킨다. 옛날 토우인(土偶人)이 복숭아나무로 만든 장승[桃梗]에게 “비가 내려 탁류가 밀려오면 자네야말로 휩쓸려 떠내려가서 장차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우화(寓話)에서 나온 것이다.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
경비묘피현(鯨飛杳彼玄)
죽는 것을 말한다. 『고문진보(古文眞寶)』 전집(前集) 제5권 「연사정(燕思亭)」에 “이백(李白)이 고래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李白騎鯨飛上天]”라고 하였는데, 전설에, 이백이 채석기(采石磯)에서 배를 타고 놀다가 물에 비친 달을 건지려고 취중에 물로 뛰어들었다가 익사했는데, 그 뒤에 고래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경사(更事)
① 경험을 쌓다
② 평범한 일
③ 원래 있었던 일(번갈아가며 으레 일어나는 일) / 인용: 評史(신정하)
경사유월(卿士惟月)
『서경(書經)』 「홍범(洪範)」의 “왕은 해를 살피고, 고급 관원은 달을 살피고, 하급 관리는 날을 살핀다[王省惟歲 卿士惟月 師尹惟日].”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경사투수(驚蛇透水)
위(魏) 나라 명필(名筆) 종요(鍾繇)의 제자 송익(宋翼)의 글씨가 놀랜 뱀이 물을 통과하는 것(驚蛇透水) 같았다 한다.
경산자(徑山子)
선종(禪宗)의 참선(參禪)에 심취했던 소동파(蘇東坡)를 가리킨다. 그의 시를 보면 유독 경산(徑山)을 소재로 한 것이 많이 눈에 띄는데, 그중에서도 ‘경산에 돌아가는 연사를 전송한 시(送淵師歸徑山)’를 보면 “나도 옛날에 경산의 객이 되었나니, 지금껏 그 산 빛 우려먹으며 시 쓴다오[我昔嘗爲徑山客 至今詩筆餘山色]”라는 구절이 나온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 卷19
경산조수(耕山釣水)
산에 가 밭을 갈고 물에 가 낚시질을 한다. 곧, 속세를 떠나 자연을 벗해 한가로운 생활을 말한다.
경상(庚桑)
춘추시대(春秋時代) 노자(老子)의 제자라고 전하는 경상초(庚桑楚)를 이른다. 경상초는 노자에게서 도를 터득하고, 북쪽의 외루(畏壘)라는 산에 들어가 살면서 첩이나 하인 중에 지혜로운 자는 멀리하고 어리석은 자들만을 데리고 살았는데, 그곳에 산 지 3년 만에 그곳에 큰 풍년이 듦으로써 백성들이 그를 성인에 가까운 분이라고 존경하여 그를 임금으로 모시려고까지 했다고 한다. 『장자(莊子)』 「경상초(庚桑楚)」
경상사공(庚桑司空)
도교(道敎)와 불교(佛敎)를 가리킨다. 경상은 경상초(庚桑楚)의 준말이고, 사공은 중국 불교 선종(禪宗)의 제2조(祖) 혜가(慧可)가 제3조 승찬(僧瓚)에게 의발(衣鉢)을 전해 준 산 이름이다. 『일통지(一統志)』
경서(經書)
『서경(書經)』를 가리킨 것으로 『서경(書經)』의 맨 앞에 우서(虞書)가 있는데 여기에는 「요전(堯典)」·「순전(舜典)」가 있어 요와 순의 기사가 실려 있다.
경석(鯨石)
고래를 새긴 돌. 『서경잡기(西京雜記)』에 “昆明池刻石爲鯨魚 每雷雨 徃徃有驗 至昭帝幼冲不復習戰於中 養魚以給諸陵祠……”라고 보인다.
경성(傾城)
① 경도(傾倒)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으로 진성(盡城)과 같은 말이다. 『문선(文選)』의 손초(孫楚) 시에 “傾城遠追送”의 구가 있다.
② 경성 미인(傾城美人). 모란 같은 화려한 꽃을 이른다.
경성(景星)
덕성(德星)으로서 항상 유도(有道)한 나라에 나타난다고 하는데, 한 무제(漢武帝) 원정(元鼎) 5년에 분음(汾陰)에서 보정(寶鼎)을 얻고 나서, 일명 보정가(寶鼎歌)라고도 하는 이 경성가를 지었다고 한다.
경세제민(經世濟民)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한다. / 유의어: 경제(經濟).
경세치용(經世致用)
학문은 세상을 다스리는 데 쓰임에 이르러야 한다. 즉, 학문은 세상을 다스리는 데 실질적인 이익과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학문은 세상을 다스리는 데 실익(實益)을 증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경송(徑松)
진(晉) 나라 때 은사(隱士)인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세 길은 묵었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그대로 있네[三徑就荒 松菊猶存]”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은자의 처소를 뜻한 말이다.
경수(耕叟)
‘밭가는 늙은이’란 뜻이다.
경수(涇水)
섬서성(陝西省)에 있는 강으로, 하류(下流)에서 위수(渭水)와 합하는데 위수(渭水)가 맑은 데 비해 탁한 물의 대명사로 곧잘 쓰인다. / 유의어: 경탁위청(涇濁渭淸)
경수(經首)
요(堯)임금 때의 함지(咸池) 악장(樂章)을 말한다.
경수(瓊樹)
① 옥과 같이 아름다운 나무라는 뜻으로, 고상하고 결백한 인품을 비유한 말이다. 『진서(晋書)』 「왕융전(王戎傳)」에 “왕 연의 모습이 고매하여 마치 경수 요림(瑤林)과 같다[王衍神姿高徹如瑤林瓊樹]”라고 하였다.
② 흰 눈으로 덮인 나무를 미화한 말이다.
경수엄구허(瓊樹掩丘墟)
영재(英才)의 죽음을 비유한 말이다. 진(晉) 나라 유량(庾亮)이 죽자, 하충(何充)이 “옥수를 땅속에 묻는구나[埋玉樹].”라고 탄식했던 고사가 전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상서(傷逝)」
경숙(敬叔)
공자의 제자 남궁괄(南宮适)로 남용(南容)이라 하기도 하는데, 매우 침착하고 언행을 조심하였으므로 공자(孔子)는 그를 질서(姪壻)로 삼았다.
경숙(京叔)
정 장공(鄭莊公)의 아우로 이름은 단(段)이다. 어머니 무강(武姜)의 사랑을 받아 경읍(京邑)에 거했기 때문에 경성 태숙(京城太叔)이라 호했는데, 뒤에 고을의 큼을 믿고 반란을 꾀하다가 형 장공에게 패함을 당하여 공(共) 땅으로 망명했기 때문에 공숙(共叔)이라고도 불렀다. 이 뒤로 정 나라에는 형제간의 불화가 잦았으며 자리다툼이 심하였다. 『좌전(左傳)』 隱公 元年』
경순(景純)
진(晉) 나라 곽박(郭璞)의 자(字)이다. 음양 점술(陰陽占術)의 대가였다.
경신(經申)
도가(道家)에서 장생불사(長生不死)하기 위해 수련하는 도인법(導引法)의 한 가지인 웅경(熊經)·조신(鳥申)의 준말로, 웅경이란 마치 곰이 앞발로 나무를 부여잡고 매달리는 것같이 하여 기(氣)를 단련하는 것이요, 조신이란 마치 새가 목을 쭉 빼고 있는 것같이 하여 호흡을 단련하는 것이다. 『장자(莊子)』 「각의(刻意)」
경신(耕莘)
평민으로 있으면서 농사짓는 것을 말한다. 『맹자(孟子)』 「만장(萬章)」 上에 “이윤은 유신의 들판에서 밭 갈면서도 요순의 도를 즐겼다[伊尹耕於有莘之野 而樂堯舜之道焉].”고 하였다.
경신옥사(庚申獄事)
조선조 숙종 6년에 서인(西人) 김석주(金錫冑)·김만기(金萬基) 등이 당시 영상(領相)인 허적(許積)의 서자 허견(許堅)이 복선군(福善君)을 추대하고 역모한다고 고발, 남인 일파를 몰아낸 사건이다.
경신일(庚申日)
사람 몸속에 들어 있는 삼팽(三彭)이라는 시귀(尸鬼)가 그 사람의 선악(善惡)을 상제(上帝)에게 일러바친다는 날이다. 그래서 이날에는 심신(心身)을 정결히 하고 단정히 앉아 날을 새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를 수경신(守庚申)이라고 하였다.
경실(京室)
왕실을 말한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사제(思齊)」에 “공경을 다하는 태임이 문왕의 어머니이시니 시모 주강께 효도하사 경실의 효부가 되시다[思齊太任 文王之母 思媚周姜 京室之婦].”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경실(瓊實)
복숭아. ‘경(瓊)’은 아름다운 옥으로 ‘선도(仙桃)’를 비유한다.
경알(傾軋)
‘남을 함정에 빠뜨린다’는 뜻이다. / 인용: 朝鮮詩文變遷(정만조)
경액(瓊液)
술의 미칭(美稱)이다.
경액청련(瓊液靑蓮)
술을 미칭(美稱)이다.
경양(涇陽)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평량현(平涼縣) 서쪽에 있었던 현(縣)의 이름으로, 곽자의가 이곳에 주둔하고 있었다.
경양(景陽)
전라도 광산현(光山縣)의 동쪽 8리에 있던 지명으로, 그곳에 역참(驛站)이 있었다.
경양종(景陽鐘)
종 이름으로, 제(齊) 나라 무제(武帝)가 이 종을 만들어 경양루(景陽樓)에 걸어놓고 시간에 맞추어 이 종을 치면 궁녀(宮女)들이 일찍 잠에서 깨어 단장을 하곤 했다는 고사이다. 『남제서(南齊書)』 「후비전(后妃傳)」
경어(鯨魚)
고래 모양을 새겨서 절에서 종을 치는 공이이다. 일과를 알리는 절의 종소리를 이른다.
경연(慶延)
성종(成宗) 때의 효자(孝子)로서 자가 대유(大有)였는데, 그의 효성이 성종에게 알려져 특별히 4품 벼슬이 제수되었고, 뒤에 이산 현감(尼山縣監)으로 나가서는 백성들에게 많은 자애(慈愛)를 남기었다.
경연(瓊筵)
옥구슬처럼 아름다운 돗자리를 이른다.
경연(景淵)
이길(李洁)의 자이다.
경연(罄然)
텅빈 모양이다.
경예종취륙(鯨鯢終就戮)
괴수(魁首)를 복주(伏誅)시켰다는 말이다. 『좌전(左傳)』 선공(宣公) 12년에 “어진 임금이 발칙한 무리를 정벌하여, 그 흉악한 자들의 우두머리(鯨鯢)를 잡아 죽여 큰 무덤을 만들고는 큰 살육을 행했다고 하였다.”라 하였다.
경오(傾寤)
(슬픈생각) ‘순식간에 느끼다’는 뜻이다.
경요(瓊瑤)
아름다운 옥. 전하여 주고받은 예물(禮物) 또는 시문(詩文)들을 말한다.
경운(慶雲)
5색 구름을 말한다. 3색 구름은 율운(矞雲)이라 하는데 모두 상서이다. 『서경잡기(西京雜記)』
경운(卿雲)
상서로운 구름을 말하는데 순(舜) 임금이 일찍이 군신(群臣)들과 함께 태평(太平)의 기상을 즐거워하며 노래한 「경운가(卿雲歌)」에 “상서로운 구름 찬란함이여 서로 얽히어 광원하도다[卿雲爛兮 糾縵縵兮].”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경운산(慶雲山)
경운산은 청평산(淸平山)의 이명(異名)이고, 그 산속에 있는 문수사(文殊寺)를 가리킨다.
경원(敬遠)
존경하되 멀리한다. 공경하되 가까이하지 않음. 오늘날에는 ‘꺼리어 피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논어(論語)』 「옹야(雍也)」
경월(卿月)
재신급(宰臣級)의 고위 관료를 말한다. 『서경(書經)』 「홍범(洪範)」에 “임금은 해를 살펴야 하고, 귀족과 관리들은 달을 살펴야 하며, 낮은 관리들은 날을 살펴야 합니다[王省惟歲 卿士惟月 師尹惟日]”라고 하였다.
경월금장(卿月金掌)
고관(高官)의 지위에 올랐음을 비유한 말이다. 경월은 『서경(書經)』 「홍범(洪範)」의 “경사의 득실에 대한 조짐은 한 달에 나타난다(卿士惟月)”라고 한 데서 온 말이고, 금장(金掌)은 한 무제(漢武帝) 때 건조한 동(銅)으로 만든 선인장(仙人掌), 즉 승로반(承露盤)을 이른 말이다.
경위(經緯)
날실과 씨실. 직물의 직선을 ‘경’이라 하고, 가로선을 ‘위’라 한다. 일이 되어온 내력. 우주의 경도(經度)와 위도(緯度)를 말한다.
경위(涇渭)
탁한 경수(涇水)와 맑은 위수(渭水)라는 말로, 경수(涇水)는 흐리고 위수(渭水)는 맑으므로 인물의 우열(優劣)과 청탁(淸濁)이나 사물의 진위(眞僞)와 시비(是非)를 가리킨다. / 인용: 酒吃翁夢記(허균)
경위교류판청탁(涇渭交流判淸濁)
중국 섬서성(陝西省)에 있는 흐린 경수(涇水)와 맑은 위수(渭水)가 함께 흐르고 있으면 그 청탁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경위팔극(經緯八極)
팔극(八極)은 팔방(八方)의 아주 먼 곳으로 천하의 끝을 가리키고, 경위는 우주의 경도(經度)와 위도(緯度)를 가리킨다.
경위혼(涇渭混)
맑은 성품의 소유자가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이 별의별 사람들과 어울려 지낼 것이라는 말이다. 경위는 경수(涇水)와 위수(渭水)의 준말로, 경수는 탁하고 위수는 맑다는 고사에서 기인하여 인물이나 사물의 청탁(淸濁)과 우열(優劣)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경유(徑游)
‘곧장 가서 만나다’는 뜻이다.
경유고난영(鏡有孤鸞影)
배우자가 없이 혼자라는 뜻이다. 옛날에 계빈왕(罽賓王)이 난새 한 마리를 얻었는데, 왕이 우는 소리를 몹시 듣고 싶어 했으나 울게 할 방도가 없었다. 그러자 그의 부인이 말하기를 “새는 자기 무리를 본 뒤에 운다고 하는데, 어찌하여 거울을 걸어서 비치게 하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왕이 그 말에 따라 거울을 걸어 주었더니, 난새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는 슬피 울다가 죽었다.
경율(經律)
경장(經藏)과 율장(律藏). 불교의 경전을 세 가지로 나눈 삼장(三藏) 중에 두 가지이다. 경장은 부처가 말한 불법이며, 율장은 불법을 수행하는 자들이 지켜야 할 계율(戒律)이다.
경음(鯨音)
목어. 절에 나무로 고기 형상을 만들어 단 것인데, 그것을 쳐서 소리나게 한다.
경의비마(輕衣肥馬)
가벼운 비단옷과 살진 말이라는 뜻으로, 호사스러운 차림새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경의는 가벼운 비단옷으로 호화스런 차림새를 가리키는 말이다. 『논어(論語)』 「옹야(雍也)」에 “적이 제나라에 갈 때에 갈 때에 비싼 말을 타고 가벼운 가죽을 입었다[赤之適齊也, 乘肥馬, 衣輕裘].”라는 말이 있다.
경이원지(敬而遠之)
겉으로는 공경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멀리한다. 또는 존경하기는 하되 가까이 하지는 아니한다. 경원(敬遠)의 원말이다. 『논어(論語)』 「옹야(雍也)」
경인어(驚人語)
『한비자(韓非子)』 「유로(喩老)」에 “날지 않는다면 몰라도 날기만 하면 하늘에 솟구치고, 울지 않는다면 몰라도 울기만 하면 사람을 깜짝 놀래킨다[雖無飛 飛必冲天 雖無鳴 鳴必驚人].”라는 말이 있고, 두보(杜甫)의 「강상치수여해세료단술(江上値水如海勢聊短述)」이라는 시에 “멋진 시구 탐닉하는 성벽이 있는지라, 깜짝 놀랄 말 못 되면 죽어도 쉬지 않네[爲人性僻耽佳句 語不驚人死不休]”라는 표현이 있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卷10 江上値水如海勢聊短述
경인자인항경지(敬人者人恒敬之)
다른 사람들을 공경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늘 그를 공경해준다.
경임(耕紝)
밭갈이와 길쌈. 곧 농사를 짓는 것을 말한다.
경자유전(耕者有田)
경작하는 사람이 밭을 소유한다.
경자장군(慶子將軍)
당시 초나라가 거록에 갇힌 조군을 구원하기 출동시킨 군사들의 대장 송의(宋義)의 별호다.
경작몽(驚鵲夢)
「전적벽부(前赤壁賦)」에 “달 밝고 별은 드문데, 오작이 남으로 날아간다[月明星稀 烏鵲南飛]”라고 하였다.
경장(瓊漿)
매우 좋은 음식을 말한다. 『초사(楚辭)』 송옥(宋玉) 「초혼(招魂)」에 “아름다운 술자리를 베풀었는데, 경장이 적구나.”라고 하였다.
경장(經藏)
불교의 경전 삼장(三藏) 중 한 가지로 부처가 말한 불법을 이른다.
경장(瓊漿)
선인들이 마시는 음료이다. 옥즙(玉汁)이란 뜻으로, 전하여 진귀한 음료(飮料)를 가리킨다. 맛좋은 술의 별칭이다.
경저(耿著)
밝고 떳떳하다.
저리(邸吏)
경주인(京主人) 참고
경적필패(輕敵必敗)
적을 가벼이 업신여기면 반드시 패한다.
경전사(經田司)
토지제도를 전담하는 국가기구를 말한다. / 인용: 經田司(정약용)
경전착정(耕田鑿井)
요가 천하를 다스린 지 50년 만에 민정(民情)을 살피기 위하여 미복(微服)으로 큰 거리에 나갔더니, 한 노인이 배부르게 먹고 흙덩이를 치며 노래하기를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쉬고, 밭갈아 먹고 우물 파서 마시니 임금의 힘이 나에게 없다[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何有於我哉].”라고 하였다.
경전하사(鯨戰蝦死)
고래싸움에 새우가 죽는다는 뜻으로 강자들 싸움 틈에 끼여 약자가 아무 상관없이 화를 당하는 것을 말한다. 『맹자(孟子)』 「梁惠王(양혜왕)」 / 유의어: 간어제초(間於齊楚).
경절(磬折)
경쇠는 악기(樂器) 이름인데 굽게 생겼으므로 경쇠 모양처럼 허리를 굽히는 것을 말한다.
경정(逕庭)
경(徑)은 문 밖의 길이요, 정(庭)은 방 아래의 뜰로서 그 거리가 먼 것을 말한다.
경제(經濟)
경세제민(經世濟民)의 훌륭한 도량. 경제는 경국제세(經國濟世)의 준말로,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건지는 역량을 말한다.
경제산림지불비(經濟山林志不卑)
비록 산림(山林)에 은거하더라도 천하를 평치(平治)할 수 있는 도량과 경륜이 있으면 역시 지취가 높다는 뜻이다. 경제(經濟)는 즉 경세제민(經世濟民)을 말한다.
경제여(景題輿)
후한 때 태위(太尉) 주경(周景)이 진번(陳蕃)을 불러 별가(別駕)로 삼았으나 취임하지 않자, 주경이 별가의 수레에 쓰기를(題輿) “이 자리는 진중거(陳仲擧; 중거는 진번의 자임)가 앉을 자리이다.”라 하고, 다시 부르지 않았으나 진번이 마지못해 취임하여 직무를 보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경조(京兆)
① 경조윤(京兆尹)으로 수도(首都)를 맡은 관직을 말한다.
② 기전(畿甸)을 다스리는 장관을 가리킨다.
경조미(京兆媚)
한 선제(漢宣帝) 때 경조윤(京兆尹) 장창(張敝)은 도둑은 잘 다스렸으나 위의(威儀)가 없어 아내에게 잘 보이려고 아내의 눈썹까지 그려 주었다.
경조부박(輕佻浮薄)
사람이 진중하지 못하고 경솔하고 천박하며 마음이 들뜨고 경박한다. 즉, 마음이 침착하지 못하고 행동이 신중하지 못함을 이른다.
경조소(京兆笑)
한(漢) 나라 준불의(雋不疑)가 경조 윤(京兆尹)이 되었을 때, 그가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면 그의 모친이 “오늘은 얼마나 죽을 목숨을 살려 주었느냐?”고 묻곤 하였는데, 억울한 사람들을 많이 구해 주었다고 하면 모친이 기뻐하며 웃고, 반대의 대답이 돌아오면 모친이 노여워하며 밥을 먹지도 않았다는 고사를 말한다.:『한서(漢書)』 卷71 「준불의전(雋不疑傳)」
경종(景鍾)
춘추시대(春秋時代) 진(晉) 나라의 종(鍾) 이름인데, 『국어(國語)』 「진어(晋語)」에 “위과(魏顆)가 진(秦) 나라 군사를 물리쳤으므로 그 공훈을 경종에 새기라[魏顆以其身郤退秦師 其勳銘於景鍾]”고 하였다. 또 그 해(解)에 “경종은 경공(景公)의 종”이라 하였다.
경종신릉분(耕種信陵墳)
신릉군의 무덤에서 농사를 짓는다. 세상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신릉군은 위 소왕(魏昭王)의 아들로서 항상 식객(食客)이 3천 인이나 되었고 위엄과 명망이 천하에 떨쳤었다. 『사기(史記)』 卷七十七
경주(更籌)
① 고대에 야간에 경(更)을 알리는 패(牌)로서 흔히 야간의 시간을 가리킨다.
② 주로 밤의 시각을 재는 데 쓰이는 시계의 일종으로, 대나무가지를 이용하여 시간을 잰다.
③ 하룻밤을 오경(五更)으로 나누었는데, 매경(每更)마다 숫자대로 표시한다는 말이다.
경주(涇州)
지금의 감숙성 경천현(涇川縣)으로 주목왕(周穆王)이 서왕모(西王母)와 만나 잔치했다는 요지(瑤池)이다.
경주인(京主人)
고려·조선시대 중앙과 지방 관청의 연락 사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지방 수령이 서울에 파견해둔 아전, 또는 향리. 일명 ‘경저리(京邸吏)·저인(邸人)·경저인’이라고도 하며, 사주인(私主人)에 대칭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들이 일을 보는 처소를 경저·경재소·경소(京所)라 했으며, 고려 중기 이후 조선시대 후기까지 계속되었다.
경주인의 임무는 ① 선상노(選上奴지방에서 차출하여 중앙으로 보내는 노비)의 입역과 도망한 선상노의 보충, ② 대동법(大同法) 실시 이전의 공물 상납과 그 읍의 부세(賦稅) 상납에 관한 주선, ③ 자기 고장 지방민에게 잠자리와 식사 제공, ④ 공무나 번상으로 서울에 올라오는 관리나 군인들이 각 관청에 배치되어 종사할 때도 그들의 신변을 보호, ⑤ 입역자의 도망 및 상번(上番)하지 않는 자에 대한 보상, ⑥ 중앙과 지방과의 문서 전달, ⑦ 지방에서의 각종 상납물이 기일 내에 도착하지 못한 것에 대한 대납(代納)의 책임도 졌다. ⑧ 그 외 신임 수령이 부임지 고을에 가기 전에 미리 통지문을 띄워 알리기도 하였다. 이처럼 잡다한 일을 주선하여 경향간의 연락을 꾀하는 동시에 향청(鄕廳)과 같이 지방관을 견제하기도 하였다.
특히, 대납의 과정에서 이들 경주인은 중앙과 지방의 각종 세력과 결탁, 먼저 공물을 대납하고 나중에 몇 배의 이자를 붙여 지방 관청에 요구하여 많은 이득을 보았다. 때문에 공납의무자인 농민을 더욱 괴롭히는 폐단을 발생시켰는데, 이를 ‘방납(防納)의 폐단’이라 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고려 후기에도 나타나며, 조선시대에는 더욱 성하였다. ① 세종·성종 연간에는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하여 종래 지방민을 경주인으로 삼던 제도를 폐지하고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을 경주인으로 고용하고, ② 역가(役價)라는 보수를 지급하여 지방 관청과의 연락 사무를 담당하게 하기도 하였다. ③ 또 선상노 대립자가 부득이한 사유로 기일 내에 도착하지 못하거나 대립하고자 하는 자는 종래 경주인을 통하던 것을 수령이 직접 해당 관청에 보고하도록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폐단은 시정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동법 실시 이후에는 공물 청부업자의 구실도 아울러 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들 저역(邸役)의 담당이 일종의 이권화하여 역가를 바치고 경주인으로서 공납 청부에 종사하기도 하였다. 특히, 서울의 관리와 양반들은 경주인의 자리를 사들여 자기들 하인에게 그 일을 맡기고 이익을 볼 수 있었으므로, 역가는 더욱 올라가서 대읍의 경우는 1만 냥이 넘고 소읍에서는 5,000냥에 이르기도 하였다.
또한, 지방관을 비롯하여 이속(吏屬)들이 경주인으로부터 빌려 쓴 돈이나 경저에 숙박한 비용은 빠른 시일 내에 갚아야 했는데도, 그것을 갚지 못하면 경저의 부채, 즉 저채(邸債)를 지게 되었다. 게다가 여기에 또 이자를 붙여 청구하게 되어 자연히 그 액수도 증가, 조선 후기에는 각 지방 관청마다 4,000∼5,000냥의 저채를 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를 갚기 위해서는 농민을 수탈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세도정치 때 백성들에게 각종의 부과세를 징수하는 등, 이서(吏胥)들의 부정·협잡이 자행되었다.
이에 대해 정약용(丁若鏞)은 영주인(營主人)과 함께 경주인을 나라 안의 큰 폐단으로 규정하고 이와 함께 경주인역가 폐지를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논하였다. “저리(邸吏)의 폐단은 향리보다 심하다. 내가 어릴 적에 경주인이라는 자를 보았는데, 모두 노예나 하천(下賤)으로서 무뢰하고 비천한 자였다. 그런데 수십 년 이래로 이 기풍이 크게 무너져, 경주인 자리를 매매하는 값이 혹 8,000냥이나 되며 영주인의 자리는 1만냥에 이르기도 한다. 대개 그 역가가 날로 증가되어 전보다 100배나 되었는데, 이것은 이익이 100배요, 백성을 벗겨낸 물건이 100배임을 알 수 있다. 이리하여 경저와 영저는 모두 포악하고 간사한 자가 차지하고, 기름진 관청의 아전과 권세 있는 가문의 청지기로서, 비단옷에 얼굴이 깎은 옥 같은 자가 곧 저리가 되었다.”:네이버지식백과사전 / 인용: 虎狼(이학규)
경죽서난(罄竹書難)
고대(古代)엔 대나무가 종이 역할을 했다. 초(楚)나라와 월(越)나라에서 생산되는 모든 대나무 잎을 사용해 그 나쁜 행실을 기록하는데, 악행이 너무 많아 다 쓰기 어렵다는 뜻이다.
경중미인(鏡中美人)
거울 속의 미인이란 뜻으로, 실속이 없는 일을 가리킨다. 이는 경우 바르고 얌전한 서울·경기도(京畿道) 사람의 성격을 평하는 말이기도 하다.
경중인(鏡中人)
이백(李白)의 거울을 보며 회포를 적은 시인 남경서회(覽鏡書懷)에 “스스로 웃나니 거울 속 사람이여. 백발이 마치 서리 맞은 풀 같구나.”라고 하였다.
경지(瓊枝)
① 옥 같은 가지와 잎(瓊枝玉葉)이라는 말의 준말로, 즉 왕족(王族)을 가리킨 것이다.
② 옥수경지(玉樹瓊枝)의 준말로 귀가(貴家)의 현재(賢才)를 가리키는 말이다.
경진(京塵)
진(晉) 나라 육기(陸機)의 시 「위고언선증부(爲顧彦先贈婦)」에 “집 떠나 멀리 노닐러 나갔나니, 유유하여라 삼천 리 길이었네. 서울 거리 돌아오니 어찌 먼지 많은지, 흰 옷이 금방 새카맣게 변하누나[謝家遠行游 悠悠三千里 京洛多風塵 素衣化爲緇]”라는 표현이 있다. 『문선(文選)』 卷24』
경진년무과(庚辰年武科)
세조 때에 보인 무과(武科)를 말한다. 조선조의 제7대왕인 세조(世祖)는 즉위한 지 6년 만인 즉 경진년(庚辰年)에 사방을 순행하면서 이르는 곳마다 무과를 실시, 초시(初試)를 보이지도, 또는 규구(規矩)를 한정치도 않은 채 다과(多寡)에 따라 마구 시취(試取)하여, 1년의 통계는 자그만치 1천 8백여인이나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후세에 말 잘못타고 활 잘 못 쏘는 무사를 ‘경진년무과’라고 불러 조롱하였으니, 무자격자를 함부로 쓰는 것을 조롱하는 말이다.
경진수평(庚辰水平)
『고악독경(古岳讀經)』에 “우(禹)가 치수(治水)할 때에 세 번이나 동백산(桐柏山)에 이르러 무지기(無支祈)란 물귀신을 만났는데, 변화무쌍하므로 우가 경진에게 맡기니 경진이 무지기를 제압하여 구산(龜山) 밑에 가두어 치수를 순조롭게 했다.”라고 하였다.
경진염소의(京塵染素衣)
위(魏) 나라 조식(曹植)의 시에 “서울에 풍진이 많으니 흰 옷이 변하여 검어지네[京洛多塵素衣化爲緇].”라는 구절이 있다.
경착비제력(耕鑿非帝力)
이는 정치를 잘 하여 백성들이 황제의 덕을 의식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고도의 태평성대를 말한 것이다. 요(堯) 임금 때 어떤 노인이 음식을 실컷 먹고 배를 두드리면서 노래하기를 “해가 뜨면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쉬도다. 우물을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 먹고 사는데 나에게 황제의 힘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라고 하였다. 『사략(史略)』 卷 1
경찬(慶讚)
불상(佛像)·사탑(寺塔) 등의 준공(竣工)을 경축하는 불사(佛事)를 이른다.
경책(警策)
따끔하게 일깨워 주는 일종의 충고이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에 “아직도 내 시 속의 경책의 말 아껴 주고, 술 먹으면 정신없는 내 버릇 기억하네[尙憐詩警策 猶記酒顚狂].”라는 구절이 있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卷11 「戱題寄上漢中王」
경천(景倩)
남조 송(南朝宋) 원찬(袁粲)의 자(字)로, 맑은 재질(淸才)이 있다고 칭송을 받았다.:『송서(宋書)』 卷89 「원찬전(袁粲傳)」
경천근민(敬天勤民)
하느님을 공경하고 백성을 다스리기에 부지런함을 이른다.
경천동지(驚天動地)
세상을 몹시 놀라게 한다.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린다는 뜻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함을 이른다.
경천애인(敬天愛人)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한다.
경천옥주(擎天玉柱)
금천교의 다리 앞 좌우에 세워져 있는 높이가 7, 8장(丈)이나 되는 석주(石柱)로, 용의 형상을 새겨 그 위까지 틀어 올렸다. / 유의어: 경천백옥주(擎天白玉柱).
경천위지(經天緯地)
날줄과 씨줄을 교차하여 옷감을 짜듯, 하늘을 날줄로 삼고 땅을 씨줄로 삼아 천하를 다스림. 예로부터 뛰어난 사람을 경천위지(經天緯地)할 만한 재주를 지닌 사람이라고 하였으니, 그런 재주를 일컬어 경천지재(經天之才)라고 한다.
경추(競錐)
송곳이나 칼의 끝처럼 ‘아주 작은 이익이나 재물’을 말한다.
경타(瓊唾)
타인의 빼어난 시문을 일컫는 말이다. 『장자(莊子)』 「추수(秋水)」의 “그대는 저 튀어나오는 침들을 보지 못하는가. 한번 재채기라도 하면 큰 것은 마치 구슬과 같고 작은 것은 안개처럼 부서져 내리는걸[子不見夫唾者乎 噴則大者如珠 小者如霧].”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경탁위청(涇濁渭淸)
경수(涇水)는 하류(下流)에서 위수(渭水)와 합하는데 경수는 흐리고, 위수는 맑다.
경탄겁현(經彈雁怯弦)
전국시대(戰國時代)에 화살도 없이 빈 활을 당겨서 기러기를 떨어뜨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 비결을 묻자 그가 대답하기를 “그 기러기가 천천히 날면서 슬피 울고 있었는데, 천천히 난 것은 그 전에 주살을 맞은 상처 때문이요, 슬피 운 것은 오랫동안 무리를 떠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활 소리를 듣게 되자, 겁이 덜컥 난 나머지 높이 하늘로 날아오르려 하다가 상처가 도져서 땅에 떨어지게 된 것이다[其飛徐而鳴悲. 飛徐者, 故瘡痛也; 鳴悲者, 久失羣也. 故瘡未息而驚心未至也, 聞弦音引而高飛, 故瘡隕也].”라고 한 고사가 있다.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 四 / 유의어: 경궁지조(驚弓之鳥), 상궁지조(傷弓之鳥)
경통(敬通)
한(漢)나라 풍연(馮衍)이라는 사람의 자가 경통(敬通)이다. 그는 훌륭한 재주를 가지고도 세상에 출세를 못하고 집에서 문을 닫고 들어앉았을 뿐이었다.
경통삼동(敬通三同)
경통(敬通)은 후한(後漢) 때의 고사 풍연(馮衍)의 자이고, 삼동(三同)은 양(梁) 나라 때의 고사 유준(劉峻)의 말에 “나는 풍경통(馮敬通)과 세 가지 같은 점이 있으니, 불우함이 한 가지이고, 강직함이 두 가지이며, 그와 내가 똑같이 투기하는 아내를 둔 것이 세 가지이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남사(南史)』 卷四十九
경파(鯨波)
고래등처럼 사납게 일어나는 거친 물결, 즉 왜구(倭寇)의 침입을 비유한 말이다.
경판관(京判官)
중앙 각사(各司)의 판관. 외판관(外判官)의 대칭이다.
경패(庚牌)
조정(朝廷)에서 내린 소명패(召命牌)나 또는 관원(官員)이 궁문(宮門)을 출입하는 패(牌) 등을 가리키는 듯하다.
경편(駉篇)
『시경(詩經)』 노송(魯頌)의 편명. 경야(坰野)에서 먹이는 말들이 크고 살찐 것을 노래한 것이다.
경표환범(梗漂還泛)
정처없이 떠도는 인생을 말한 것이다. 복숭아나무의 막대기를 조각하여 장승을 만들었는데 비가 와서 치수(淄水)로 떠내려가 어디로 가버렸는지 알 수 없었다고 한 우언(寓言)에서 나온 말이다.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
경필(警蹕)
천자(天子)가 나갈 때에는 경(警)이라 외치고, 들어올 때에는 필(蹕)이라고 외쳐서 길을 맑히고 행인(行人)을 금(禁)한다. / 유의어: 벽제(辟除) / 인용: 檄黃巢書(최치원)
경하부진누(傾河不盡淚)
진(晉) 나라 고개지(顧愷之)가 극진하게 아껴 주던 환온(桓溫)이 죽자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마르니 물고기와 새는 장차 어디에 의탁해야하나[山崩溟海竭 魚鳥將何依]”라고 읊었는데, 어떤 이가 곡(哭)하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소리는 우레가 산을 부수는 것 같고, 눈물은 강물을 기울여 바다에 붇는 것 같다[聲如震雷破山 淚如傾河注海]”라고 하였다. 『진서(晉書)』 卷92 「고개지전(顧愷之傳)」
경해(瓊咳)
옥처럼 진귀한 것을 말한다.
경행(經行)
선승(禪僧)들이 좌선(坐禪)의 피곤함을 덜기 위하여 잠시 동안 걸어 다니며 몸을 푸는 것을 뜻하는 불교 용어이다.
경향(景響)
사람의 그림자와 메아리. 사람의 그림자와 소리가 없는 곳에 들다.
경현록(景賢錄)
선조(宣祖) 16년(1583)에 나주(羅州)의 지방 유림(儒林)이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 이언적(李彦迪), 이황(李滉) 등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금성산(錦城山) 아래에다 경현서원(景賢書院)을 세웠으며, 이중에서 특히 김굉필의 사적(事迹)만을 취해서 『경현록』으로 간행한 고사가 있다.
경호(鏡湖)
① 감호(鑑湖)의 별칭이다. 또 장호(長湖)·태호(太湖)·하감호(賀監湖) 등의 이름이 있다. 절강성(淅江省) 소흥현(紹興縣)에 남아 있다.
② 경포대(鏡浦臺)의 별칭이다.
③ 강릉(江陵) 또는 명주(溟州)를 지칭한다.
경화(瓊花)
꽃나무의 이름인데 잎은 부드럽고 윤택이 나며 꽃은 옅은 황색을 띠고 향기롭다. 옛날 양주(揚州) 후토사(后土祠)에 경화 한 그루가 있었는데 당 나라 사람이 심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송나라 순희(淳熙) 이후로 팔선화(八仙花)와 접목하여 이식하였는데 희귀하고 진귀한 식물이다. 『가경일통지(嘉慶一統志)』 卷 97 揚州府二 古蹟 無雙亭
경화(京華)
섬서(陝西)의 화산(華山) 근처에 있는 지명이다.
경화수월(鏡花水月)
거울에 비친 꽃과 물에 비친 달. 볼 수만 있고 가질 수 없는 것을 말한다.
경화원(瓊花院)
양주(揚州)에 있는 도관(道觀) 즉 경화관(瓊花觀)을 가리킨다. 거기에는 천하에 둘도 없는 명화(名花)인 경화(瓊花)가 있다 한다.
경화작비(鏡化鵲飛)
거울조각이 갑자기 까치로 변하다. 옛 중국의 한 부부가 이별할 때 거울을 나누어 가졌는데 부인이 남편을 배반하자 거울이 까치로 변해 남편에게 날아갔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경환죽(鯨喚粥)
사찰에서 공양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린다는 말이다. 해도(海島)에 사는 포뢰(蒲牢)라는 대수(大獸)가 고래(鯨魚)를 무서워하여 크게 운다는 전설에 기인하여 사찰의 범종(梵鐘)에 이를 새겨 넣게 되었다고 한다. 소식(蘇軾)의 시에 “빨리 공양하라고 고래가 밤중에 울어대네[催粥華鯨吼夜闌].”라는 구절이 있다.:『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 卷48 「題淨因院」
경황(硬黃)
당지(唐紙)의 이름이다. 법첩(法帖)을 모사하는 데 쓰는 종이이다. 종이에 황랍(黃蠟)을 발라서 투명(透明)하게 만든 종이이다. / 유의어: 경황지(硬黃紙).
경효왕(敬孝王)
공민왕(恭愍王)을 말한다.
경흥지(慶興池)
적지(赤池)를 가리킨다. 이성계(李成桂)가 등극하기 전에 백룡(白龍)을 도와 흑룡(黑龍)을 활로 쏘아 죽여 그 못의 물이 붉게 변했는데, 이로 인하여 명사수라는 이름이 퍼져 여진족이 감히 덤벼들지를 못했으며, 백룡의 보은(報恩)에 힘입어 임금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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