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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사전 - 361. 하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361. 하

건방진방랑자 2020. 6. 4.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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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

 

 

하가찬(何家饌)

() 나라 하증(何曾)이 호사(豪奢)를 좋아하여 날마다 먹는 음식에 만전(萬錢)을 쓰고도, “젓가락 댈 데가 없다.”고 하였다 한다.

 

하거서(河渠書)

사마천의 사기(史記)의 편명으로서 천하의 강과 도랑에 대하여 그 하공(河工)과 수리(水利) 등의 일을 기록한 것임. / 인용: 梁四龍傳(이기발)

 

하간(河間)

하간헌왕(河間獻王)의 약칭으로 한 경제(韓景帝)의 셋째 아들 유덕(劉德)인데, 민간의 선본(善本)을 많이 수집하고 학문에 뜻을 두었으므로 산동(山東)의 제유(諸儒)들이 많이 종유(從遊)했다.

 

하간유객성(河間有客星)

어떤 사람이 떼를 타고 은하에 올라 직녀(織女)와 견우(牽牛)를 보고 여기가 어디냐고 물으니, 촉중(蜀中)의 엄군평(嚴君平)을 찾아가 물으라 하였다. 돌아와서 엄군평을 찾아가 그곳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군평이 대답하기를, “모 연월일에 객성이 견우성을 범했다.”고 하였다. 박물지(博物志)

 

하간전(河間傳)

하간의 지역에 대대로 전해오는 정악(正樂)을 이른다.

 

하간전(河間錢)

후한 환제(後漢桓帝) 때 경도(京都)의 동요(童謠)하간의 미녀가 돈을 세는 데 능하여, 돈으로 집을 만들고 금으로 당을 만들도다[河間姹 女工數錢 以錢爲室金爲堂].” 한 데서 온 말인데, 하간의 미녀란 곧 하간으로부터 궁중(宮中)에 들어온 영제(靈帝)의 모후(母后)인 영락태후(永樂太后)를 가리킨 말이다. 후한서(後漢書)』 「오행지(五行志)

 

하감(賀監)

당 나라의 풍류객 하지장(賀知章)을 말한다. 그가 비서감(秘書監) 벼슬을 지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만년에 현종(玄宗)에게 도사(道士)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청하자 현종황제(玄宗皇帝)는 특별히 그에게 경호(鏡湖) 한 굽이를 하사하여 그 곳에서 지내게 하였다. 86세 때 죽었다. 신당서(新唐書)卷一百九十六 하지장전(賀知章傳)

 

하감청유(賀監淸遊)

하감은 당 현종(唐玄宗) 때의 고사로 일찍이 비서감(祕書監)을 지낸 하지장(賀知章)을 이르는데, 그는 만년에 벼슬을 그만두고 임금으로부터 경호(鏡湖) 한 굽이를 하사받아 그 곳에서 은거하였다. 당서(唐書)卷一百九十六

 

하감호(賀鑑湖)

하 감호는 당() 나라 하지장(賀知章)의 별칭으로, 현종(玄宗)이 그에게 감호 섬계(鑑湖剡溪) 일곡(一曲)을 하사한 데서 온 말이다.

 

하개(荷蓋)

연꽃으로 만든 덮개.

 

하거(河車)

도사(道士)가 연단(鍊丹)하는 원료인 연()을 가리키는데, ()을 수련하는 뜻으로도 쓰인다.

 

하거(遐擧)

송나라 태평흥국(太平興國) 연간에 승지(承旨) 이수충(李守忠)이 남방으로 사신을 가다가 경주(瓊州)에서 81세의 양하거(楊遐擧)란 노인을 길에서 만나 그의 집을 방문하였다. 그의 집에 가서 보니, 그의 아버지인 양숙련(楊叔連)122세였고, 그의 할아버지인 양송경(楊宋卿)195세였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닭 둥지에서 어린 아이가 머리를 내밀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양송경이 그를 가리키며 우리 집안의 선대 조상님입니다. 말씀도 하지 않고 먹지도 않으며 나이가 몇 살인지도 모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하거가 되는 상상이란 장수를 꿈꾼다’,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살길 꿈꾼다는 뜻이다. 설부(說郛)() 39 통미지(洞微志)/ 인용: 自撰墓誌銘(정약용)

 

하거불각양풍비(下車不覺攘馮臂)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옛날의 습관이 나왔다는 뜻이다. 춘추시대(春秋時代) 때 진() 나라에 풍부(馮婦)라는 자가 있어서 범을 잘 잡다가 착한 선비가 되었는데, 들판을 지날 적에 여러 사람이 범을 쫓고 있는 것을 보고는 팔뚝을 걷어붙이고 수레에서 내려오자 선비들이 비웃었다고 한다. 맹자(孟子)』 「진심(盡心)

 

하걸축조구(夏桀築糟丘)

조구(糟丘)는 술지게미가 산처럼 쌓인 것을 말한 것으로, 하 나라걸왕(桀王)이 무도하여 음주(飮酒)에 탐닉했던 것을 가리킨 말이다. 한시외전(韓詩外傳)卷四

 

하결산조지(河決酸棗地)

사기(史記)』 「하거서(河渠書)() 나라가 일어난 지 39년 만에 하수(河水)가 산조(酸棗)에서 터졌고, 그 뒤 40여 년이 지나 원광(元光) 연간에 호자(瓠子)에서 터져 설상(齧桑)을 휩쓸고 회수와 사수에까지 범람했다.” 하였다.

 

하계(霞溪)

권유(權愈)의 호인데 숙종 때 대사간과 예문관 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하계구가(夏啓謳歌)

() 나라의 우()가 죽은 뒤에, 백성들이 우의 아들 계()에게 칭송(謳歌)하고 따랐다.

 

하계진(賀季眞)

당 나라 초기의 시인인 하지장(賀知章)을 말하는데, 계진은 곧 그의 자이고, 호는 사명광객(四明狂客)이다.

 

하곡(荷谷)

허봉(許篈)의 호이다.

 

하공(何公)

진 무제(晉武帝) 떄 벼슬이 태위(太尉)에 이른 하증(何曾)을 말한다

 

하과(夏課)

고려 때 선비들의 학습 관례. 5~6월이 되면 선비들이 절의 승방(僧房)을 빌려 약 50일 간 함께 모여 글을 읽는 것을 말하는데, 십이도(十二徒) 초창기에 성행하였다. 특히 최충(崔冲)의 문도는 귀법사(歸法寺)의 승방을 빌려 하과를 닦았는데, 그들 중 학업이 우수한 자들을 뽑아 각촉부시(刻燭賦詩)를 시험하여 우수한 자를 술로 표창하였다.

 

하과(夏課)

옛날에 공부하는데 가을과 겨울에는 글을 읽고, 여름에는 글짓기를 일과(日課)로 하였다.

 

하관(荷冠)

비를 막으려고 연잎으로 만든 고깔.

 

하괴(荷蕢)

세상에 나가지 않고 은거(隱居)한 현인을 말한다. 하궤는 삼태기를 진 사람으로 은거한 현인이다. 논어(論語)』 「헌문(憲問)공자(孔子)가 위() 나라에서 경()을 치고 있었는데 삼태기를 지고 공자의 집앞을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였는데, 주자(朱子)의 주에 이 역시 은거한 현인이다[此荷蕢者, 亦隱士也].”라고 하였다.

 

하괴(河魁)

문곡성(文曲星)을 말한 것인데, 이백(李白) 사마장군가(司馬將軍歌)몸이 옥장에 거하매 하괴(河魁)가 임하고 붉은 수염 창 같은데, 머리에 쓴 관 산처럼 높아라.” 한 시가 있다.

 

하교(河橋)

이별하는 장소로 곧잘 등장하는 시어(詩語)이다. 보통 하교 양류(河橋楊柳)로 많이 쓴다.

 

하교일자다(河橋一字多)

이별할 때에는 한마디의 말도 오히려 많다는 뜻이다. 하교는 교량(橋梁)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별을 읊은 시에 주로 등장한다.

 

하군(何窘)

어찌나 군색한지라는 뜻이다.

 

하궤(荷簣)

혼란한 세상을 피해 숨어사는 사람을 말한다. 논어(論語)』 「헌문(憲問), 삼태기를 메고 가던 사람(荷簣人)공자(孔子)의 경쇠 소리를 듣고는 경쇠 두들김이여, 마음이 세상에 있구나[有心哉 擊磬乎].”라고 비평한 내용이 나온다.

 

하규(夏畦)

증자(曾子)가 이르기를 어깨를 으쓱이면서 아첨하여 웃는 짓이 무더운 여름날에 김매기보다 괴로운 일이다[脅肩諂笑, 病于夏畦].”고 한 데서 온 말인데, 하규(夏畦)는 곧 여름날 논밭에 나가 김매는 것을 말한다.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

 

하낙도서(河洛圖書)

주역(周易)』 『계사(繫辭)하도는 중국 고대 복희씨(伏犧氏)가 왕 노릇 할 때 하수(河水)에서 용마(龍馬)가 그림을 가지고 나왔는데, 복희씨가 그 그림을 본떠 8()를 그렸으며, 낙서 역시 () 임금 때 낙수(洛水)에서 거북이 그림을 가지고 나와 우 임금이 그것으로 홍범(洪範)을 지었다.” 하였는데 여기서는 별을 가리킨 것이다.

 

하남(河南)

하남 정씨(河南程氏), 송 나라 때의 유학자인 정자(程子)를 가리킨다.

 

하남백숙(河南伯叔)하남은 중국 낙양(洛陽)의 별칭이다. 하남의 형제는 그 곳에서 이학(理學)을 천명한 정호(程顥)와 정이(程顥) 형제를 말한다.

 

하남시(河南詩)

하남(河南)은 호가 명도(明道)인 정호(程顥).”부귀하여도 음하지 않고 빈천하여도 즐기니, 남아가 이 경지에 이르면 바야흐로 호웅일세[富貴不淫貧賤樂 男兒到此方豪雄]”라는 시를 말한다. 이정전서(二程全書)卷三十八 추일우성(秋日偶成)

 

하내(河內)

한나라 구순(寇恂)이라는 사람이 하내(河內)태수로 정치를 잘하여서 백성들이 임금께 구순이 임기가 끝났으니 한 임기만 더 있게 해주기를 바란다고 탄원하였다 한다.

 

하내구공(河內寇公)

하내 태수로 있던 구순(寇恂)을 말한다. 후한서(後漢書)』 「구순전(寇恂傳)광무황제(光武皇帝) 건무(建武) 3년에 영천(潁川)에 도둑이 크게 일어나자, 하내 태수로 있는 구순을 불러 도둑을 치게 하였더니, 순이 이르러 도둑을 모두 평정하였다. 그 뒤 광무제의 남정(南征)에 종군하여 영천을 지날 때 영천 백성들이 거가(車駕)를 막고 원컨대 폐하께서는 1년간만 더 구공을 머물게 하여 주십시오.’ 하였다.” 한다.

 

하내절(河內節)

일찍이 하내(河內) 지방에 화재가 나서 천여 가호가 불탔으므로, 경제(景帝)급암(汲黯)을 시켜 그 곳을 순시하게 하였는데, 그가 하내에 갔다가 하남(河南) 지역을 둘러본 결과, 그 곳에는 수한(水旱)으로 인해 가난한 백성이 만여 가호나 되었는바, 그 중에 혹은 부자(父子)가 서로 잡아먹기까지 하는 지경이었으므로, 그가 편의에 따라 부절(符節)을 가지고 하남의 창고 곡식을 흩어서 빈민들을 구제했던 데서 온 말이다. 사기(史記)卷一百二十 급정열전(汲鄭列傳)

 

하내학(河內學)

하내(河內)는 중국 황하(黃河) 이북 지방으로 하남성(河南省) 일대를 말하는데, 송 나라 이학(理學)의 태두(泰斗)인 정이(程顥)의 출생지로서 정이를 가리킨다. 곧 정이의 학통을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하담(荷潭)

충청북도 충주(忠州) 가차산면(加次山面)에 있는 지명이다.

 

하담이립(荷擔而立)

외적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짐으로써 백성들이 모두 가재도구 등을 등에 지고 어깨에 메고서 피난길을 떠나게 됨을 이른 말이다.

 

하당경북두(何當傾北斗)

실권 없는 관직 생활은 아무 쓸모 없다는 뜻이다. 시경(詩經)소아(小雅) 대동(大東), “북에는 국자 모양의 북두성이 있지만 국이나 술을 뜰 수는 없네.” 하여, 관직에 있는 것이 허울일 뿐 별로 쓰임새가 없음을 비유하였다.

 

하당지질(下堂之疾)

증자(曾子)의 제자인 악정자춘(樂正子春)이 당을 내려가다가 발을 다쳤다[下堂而傷其足]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예기(禮記)』 「제의(祭義)

 

하대(夏臺)

() 나라의 감옥 이름인데, 하 나라 걸왕(桀王)() 임금을 이 감옥에 가두었었다. 사기(史記)』 「하본기(夏本紀)

 

하대(河垈)

황하와 태산 사이의 지역, 즉 산동(山東) 지방을 가리키는 말이나, 여기서는 중국의 대명사로 쓰였다.

 

하대관룡방(夏臺關龍逄)

하대(夏臺)는 하() 나라의 감옥 이른다. 관룡방은 하 나라의 현신(賢臣)이었는데, 하왕(夏王) ()의 무도함을 간하다가 감옥에 갇혀 죽임을 당하였다.

 

하대명년(何待明年)

기다리기가 매우 지루한다.

 

하덕지쇠(何德之衰)

()의 접여(接輿)가 노래하면서 공자(孔子) 앞을 지나며 말하되, 봉이여, 봉이여, 왜 덕이 쇠한고[鳳兮鳳兮 何德之衰].” 하였다. 사기(史記)卷四十七 공자세가(孔子世家), 논어(論語)』 「미자(微子)

 

하도(河圖)

중국 고대 복희씨(伏犧氏), 용마(龍馬)가 도()를 등에 지고 하()에서 나온 것을 보고 그 무늬를 법받아 팔괘(八卦)를 그었다 한다.

 

하도낙서(河圖洛書)

주역(周易)』 「계사(繫辭)河出圖 洛出書 聖人則之라 하였다.

 

하돈(河豚)

복어(鰒魚)의 이칭(異稱)이다.

 

하돈안본(河豚贋本)

죽파시화(竹坡詩話)미원장(米元章)이 다른 사람의 서화를 잘 바꾸는데 양차옹(楊次翁)이 국을 마련하여 밥을 대접하며 오늘은 그대를 위해서 하돈 생선을 준비하였다.’고 하였는데 사실은 다른 생선이었다. 원장은 의심하여 먹지 아니하니 차옹은 웃으며 공은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이는 안본이다.’했다.” 하였다.

 

하동(河東)

유씨(柳氏)를 두고 쓰는 별칭이다.

 

하동부(河東賦)

문장의 이름이다. () 나라 양웅(揚雄)이 지어서 임금에게 올린 것이다.

 

하동사자후(河東獅子吼)

중국 북송 진계상(陳季常)의 사나운 처 하동 유씨(河東柳氏)는 투기가 심하기로 유명했다. 소동파(蘇東坡)가 진계상(陳季常)을 기롱하며 하동사자의 울음소리에 손지팡이 땅에 떨굴 정도로 놀라네[河東獅子吼 手杖落地驚]”라는 시를 지었다. 그래서 여성의 질투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 인용: 懊惱曲(신국빈)

 

하득무송편시백(賀得茂松偏是柏)

훌륭한 사람에게는 훌륭한 친구가 많다는 뜻이다.

 

하락(河洛)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를 가리킨다.

 

하량(河梁)

하수를 건너지른 다리인데, ()이릉(李陵)소무(蘇武)와 작별하면서 하량별(河梁別)이란 시를 썼었다. 한서(漢書)』 「이릉전(李陵傳)

 

하량곡(河梁曲)

송별(送別)의 노래를 말한다. 하량은 강의 다리를 이르는데, 한 소제(漢昭帝)가 즉위하여 흉노(匈奴)와 화친을 함으로써, 흉노에 사신갔다 19년 동안이나 억류되었던 소무(蘇武)가 한 나라로 돌아올 적에 이릉(李陵)이 소무를 송별하는 시에서 서로 손 잡고 하량에 오르노니 나그네는 저문 날에 어디로 갈꼬[携手上何梁 游子暮何之].” 한 데서 온 말이다.

 

하로(賀老)

이태백(李太白)을 적선(謫仙)이라고 일컬었던 당() 나라의 하지장(賀知章)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비서감(祕書監)으로 있다가 그의 고향인 회계산 경호(鏡湖)의 도사(道士)로 나가게 해 줄 것을 청하자, 현종(玄宗)이 경호(鏡湖) 1()을 하사하였으므로, 경호를 하감호(賀監湖) 혹은 감호(鑑湖)로 부르게 되었는데, 이 시의 감호당이라는 당호(堂號) 역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참고로 이태백의 시에 강동을 향해서 가고 싶다만, 정작 누구와 술잔을 들꼬. 회계산에 이미 하로도 없지 않나, 술 실은 배 노 저어 돌아올밖에[欲向江東去 定將誰擧杯 稽山無賀老 却棹酒船回].”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태백집(李太白集)22 重憶 소동파(蘇東坡)의 시에 경호에 하감 같은 사람이 없어, 혜산의 길목에서 통곡하노라[鏡湖無賀監 慟哭嵆山道].”라는 구절이 보인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15 哭 景純

 

하로동선(夏爐冬扇)

여름의 화로와 겨울의 부채라는 말로, ‘쓸모 없는 재능을 말한다.

 

하로아오어(賀老雅吳語)

하로(賀老)는 당() 나라 때의 시인 하지장(賀知章)을 이른다. 그는 현종(玄宗) 때에 벼슬이 비서감(祕書監), 예부 시랑(禮部侍郞)에 이르러 그만두고 도사(道士)가 되기를 청하여 고향으로 돌아갔었다. 오어(吳語)는 남방(南方)의 방언을 가리키는데, 두보(杜甫)견흥시(遣興詩)하공은 본디 오어를 잘하여, 관직에 있어도 항상 맑고 미치광이 같았네[賀公雅吳語 在位常淸狂].”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두소릉집(杜少陵集)卷七

 

하루(何陋)

공자(孔子)가 구이(九夷)에 살고 싶어하자, 어떤이가 말하기를 고루해서 어떠하시겠습니까?” 하니, 공자가 군자가 사는데 무엇이 고루하겠는가[君子居之, 何陋之有].” 한 데서 온 말이다. 논어(論語)』 「자한(子罕)

 

하류신난처(下流信難處)

논어(論語)』 「자장(子張)군자는 하류에 처하는 것을 싫어하나니, 천하의 악이 모두 그곳으로 모여들기 때문이다[君子惡居下流 天下之惡皆歸焉].”라고 한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의 말이 실려 있다.

 

하륜(下淪)

낮게 깔리다.

 

하리(何李)

() 나라 때의 시인인 하경명(何景明)과 이몽양(李夢陽)을 병칭한 말이다.

 

하리가(下里歌)

장사를 치를 때 무덤 앞에서 부르는 노래란 뜻으로, 만가(挽歌)를 가리킨다.

 

하리백설(下里白雪)

하리곡과 백설곡은 전국시대(戰國時代) 초 나라의 곡명으로, 하리곡은 수준이 매우 낮고 백설곡은 매우 높다 하여 흔히 시 품격의 높낮이에 대한 대칭으로 쓰인다.

 

하막학부시(何莫學夫詩)

공자(孔子)가 제자들에게 왜 시경(詩經)을 배우지 않느냐고 질책하면서, 시는 일으킬 수 있으며 살필 수 있으며 무리를 지을 수 있으며 원망할 수 있으며, 가까이는 어버이를 섬기고 멀리는 임금을 섬길 수 있게 하며 조수와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고 하였다[, 可以興, 可以觀, 可以群, 可以怨. 邇之事父, 遠之事君. 多識於鳥獸草木之名]. 논어(論語)』 「양화(陽貨)

 

하만자(何滿子)

사곡(詞曲) 이름이다. 하만(何滿)은 사람 이름인데, 그가 형장(刑場)에 나아갔을 때 자신의 속죄(贖罪)를 위하여 이 사곡을 비로소 만들었다고 한다. 백거이(白居易) 하만자(何滿子)/ 유의어: 아만자(阿滿子) / 인용: 懊惱曲(신국빈)

 

하목(霞鶩)

낙하고목(落霞孤鶩)의 준말이다. 낙하는 지는 놀을 말하고 고목은 외로운 따오기. () 나라의 문장가 왕발(王勃)등왕각서(滕王閣序)지는 놀은 외로운 따오기와 나란히 날고, 가을 강물은 긴 하늘과 함께 한빛일세[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 한 말이 있는데, 이 구()는 가장 아름다운 표현으로 오늘날까지 일컬어진다.

 

하목융상(河目隆顙)

공자(孔子)의 얼굴을 묘사하여, 공자가어(孔子家語)』 「곤서(困誓)하목융상(河目隆顙)”이라 했는데, 주에, “하목(河目)은 반듯한 눈이라 했다.

 

하목해구(河目海口)

공자(孔子)의 얼굴이 하목(河目)이요 해구(海口)라 한다.

 

하미미종(河糜微尰)

미종(微尰)은 각각 각기병(脚氣病)과 수종(水腫) 다리를 가리킨다. 하미(河麋)는 습한 저지대에 사는 사람으로 보통 참소하는 인간을 지칭한다. 시경(詩經)소아(小雅) 교언(巧言)도대체 저 사람 누구인고, 습지에 사는 사람일세. 힘도 없고 용기도 없지만, 난리 일으키는 덴 선수로세. 각기병에 수종 다리, 어떻게 용기를 발휘하리[彼何人斯 居河之麋 無拳無勇 職爲亂階 旣微且尰 爾勇伊何].”라고 하였다.

 

하방(下方)

상방(上方)은 주지승의 거처를, 하방은 일반 승려의 거처를 말한다.

 

하방회(賀方回)

() 나라 때 사람으로 자가 방회인 하주(賀鑄)를 이름

 

하백(河伯)

물을 맡은 신의 이름이다. 빙이(氷夷) 혹은 풍이(馮夷)라고도 한다. 어떤 전설에 의하면 그가 강을 건너다가 물에 빠져 죽어 수신이 되었다고 하고, 또는 그가 약을 먹고 물을 만나 신선이 된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풍류를 알고 흰 얼굴에 큰 키를 지닌 미남으로 하반신을 물고기의 형태라 한다.

 

하백과량애(河伯誇兩涯)

하백은 황하 귀신의 이름이고, 양애(兩涯)는 양쪽의 물가가 있는 강물을 가리킨다. 장자(莊子)』 「추수(秋水)첫머리에 가을 홍수가 밀어닥쳐 온갖 냇물이 황하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거대한 탁류를 형성하였다. 그리하여 양쪽의 물가에 있는 소와 말을 분별할 수가 없게 되자[兩涘渚崖之間 不辯牛馬], 이를 보고 하백이 혼자 기뻐하여 으스대면서 천하의 아름다움은 모두 자기에게 있는 것처럼 생각하였다.”라는 말이 나온다.

 

하백망양(河伯望洋)

하백은 황하의 수신(水神)인데, 그가 끝없이 광대한 바다를 바라보고는 멍하니 탄식을 했다는 데서, 즉 위대한 인품이나 높은 학문 앞에서 자신의 범용(凡庸)하고 천단(淺短)함을 느끼어 한탄함을 비유한 말이다. 장자(莊子)』 「추수(秋水)

 

하변영필(河邊靈匹)

신령한 배필이란 견우성(牽牛星)과 직녀성(織女星)을 말한다. 음력 7칠석(七夕)에는 은하수 동쪽에 있는 견우성과 서쪽에 있는 직녀성이 오작교(烏鵲橋)에서 서로 만난다고 한다.

 

하보릉파말(河步凌波襪)

조식(曹植)낙신부(洛神賦)」 『문선(文選)물결을 타는 가벼운 걸음에, 비단 버선에선 먼지 같은 물방울 튄다.”라고 한 데서 인용한 것이다.

 

하복(夏馥)

동한(東漢) 진류(陳留) 사람으로 자는 자치(子治)이다. 영제(靈帝)때 국정의 잘못을 거침없이 말했던 이유로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환관들의 미움을 사 범방(范滂) 장검(張儉)과 함께 사류 집단의 괴수로 지목을 받았다. 나중에 영제가 체포령을 내리자 임려(林慮) 산중으로 도망하여 이름을 숨기고 대장간에서 고용살이를 하다가 죽었다. 후한서(後漢書)卷六十七 하복전(夏馥傳)

 

하부자(賀夫子)

() 나라 사람인 하흠(賀欽)을 가리킨다.

 

하분(河汾)

황하(黃河)와 분수(汾水) 사이의 지역을 이른 말인데, () 나라의 대유(大儒)양웅(揚雄)과 수() 나라의 대유인 왕통(王通)이 모두 여기에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하분일초정(河汾一草亭)

호화와 사치를 극하다가 끝내 나라를 망친 수 양제(隋煬帝)로서는, 태평십이책(太平十二策)을 올렸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황하(黃河)와 분수(汾水) 사이로 돌아와서 초당을 짓고 1000여 명의 제자들을 가르친 왕통(王通)의 고사가 있다. 신당서(新唐書)196 王績傳 註

 

하비(下邳)

지명(地名)이다. () 나라 장량(張良)이 하비의 다리 위에 나갔더니, 한 노인(老人)이 량의 옆으로 다가와서 다리 밑으로 신을 떨어뜨려 놓고 량더러 주워 오라고 하자, 량은 공손히 주워다 신겨 주었다. 그 후 노인은 마침내 책 한권을 량에게 주어, 그는 그 책을 읽고 뒷날 한 고조(漢高祖)를 도와 공신이 되어 유후(留侯)에 봉해졌다. 사기(史記)』 「유후세가(留侯世家)

 

하사(河沙)

항하(恒河), 즉 인도 갠지스 강의 모래알. 헤일 수 없이 많다는 뜻으로 쓴다.

 

하사표(賀赦表)

왕명으로 죄수를 놓아줄 때 하례를 올리는 글.

 

하삭(河朔)

하북(河北). 황하(黃河)이북 지방.

 

하삭면(河朔面)

하삭(河朔)은 옛날 황하(黃河) 이북 지방을 가리키는 말로 보통 북방을 말한다. 소식(蘇軾)의 시에 君爲江南英 面作河朔偉라는 구절이 있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28, 諸公餞子敦 軾以病不能往 復次前韻

 

하삭백(河朔百)

후한 때 유송(劉松)이 하삭에서 피서(避暑)하면서 주야로 술을 마셨던 고사가 있다.

 

하삭원음(河朔袁飮)

여름철에 함께 피서를 하며 술을 마시고 시를 읊던 추억을 말한다. 삼국 시대 위() 나라 유송(劉松)과 원소(袁紹)의 자제가 황하(黃河) 북쪽 지방(河朔)에서 만나 삼복 더위를 피하려고 밤낮으로 곤드레만드레 술에 취해 보냈던 고사가 있다. 초학기(初學記)3

 

하삭음(河朔飮)

무더운 여름철에 피서(避暑)한다는 명분으로 마련한 술자리를 말한다. 하삭은 하북(河北) 지방을 가리키는데, 후한(後漢) 말에 광록대부(光祿大夫) 유송(劉松)이 하북(河北)의 군()을 진무하면서 원소(袁紹)의 자제들과 날마다 연음(宴飮)을 하고, 특히 삼복(三伏) 때에는 주야로 통음(痛飮)을 하여 일시적인 더위를 피했던 데서 온 말이다. 초학기(初學記)歲時部上 夏避暑飮

 

하삭주(河朔酒)

하삭(河朔)은 곧 하북(河北)인데, 후한(後漢) 때 유송(劉松)이 그곳에서 원소(袁紹)의 자제들과 함께 삼복(三伏) 때마다 주야로 술을 많이 마시어 일시적인 피서(避暑)를 했던 데서 온 말이다.

 

하삭피서(河朔避暑)

하삭(河朔)은 황하(黃河) 이북의 땅인 하북(河北)을 말한다. 후한(後漢) 말엽에 유송(劉松)이 하삭에 있으면서 삼복(三伏) 무렵이면 항상 원소(袁紹)의 자제(子弟)와 함께 연일 주야로 술을 마시면서 피서했다 한다.

 

하산(夏山)

성희안의 본관인 창녕(昌寧)의 옛이름이다.

 

하삼(荷衫)

연잎으로 지은 옷으로, 고결한 선비의 조촐한 행색을 말한다.

 

하삽유령(荷鍤劉伶)

() 나라 죽림칠현의 한 사람으로 주덕송(酒德頌)을 지은 유령이 늘 술병을 들고 나가면서 삽을 메고 따라오게 하다가[使人荷鍤而隨之] 자기가 죽으면 그 자리에 파묻도록 한 고사가 있다. 몽구(蒙求)유령해정(劉伶解酲)

 

하상(遐想)

멀리 내다보는 생각

멀리 있는 사람을 그리워하다

사색하다

높고 먼 이상(理想) / 유의어: 漁村記(권근)

 

하상(下殤)

죽었을 때의 나이가 19세에서 16세까지를 장상(長殤), 15세에서 12세까지를 중상(中殤), 11세에서 8세까지를 하상(下殤)이라고 하는데, 8세 미만에 대해서는 모두 입어 주는 상복이 없다. 의례(儀禮)』 「상복(喪服)

 

하상곡(河上曲)

같은 처지의 사람을 애처로워하는 뜻이 담긴 옛날 노래 이름이다.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대부 피리(被離)가 자서(子胥)에게 무얼 보고서 희()를 신임하느냐.”고 묻자, 자서가 나의 원수는 희의 원수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하상가(河上歌)를 듣지 못했는가. 동병상련(同病相憐)이요 동우상구(同憂相救)의 뜻이 담겨 있다.”고 대답한 고사가 있다. 오월춘추(吳越春秋)』 「합려내전(闔閭內傳)

 

하상공(河上公)

한 문제(漢文帝) 때 하빈(河濱)에 은거했던 선인(仙人)을 말한다.

 

하상기맹롱(遐想起盲聾)

하상(遐想)은 세속을 초월하는 원대한 생각을 말한 것으로, 즉 원대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세상 일을 전혀 간섭하지 않음을 말한다.

 

하서(河西)

문정공(文正公) 김인후(金麟厚)의 호이다.

 

하서과복(河鼠過腹)

장자(莊子)』 「소요유(消遙遊)초료(鷦鷯)는 깊은 숲에 깃들어도 나뭇가지 하나를 넘기지 못하고 두더쥐는 하수에서 물을 마셔도 제 배 차면 그친다[鷦鷯巢於深林 不過一枝].”는 데서 나온 말이다.

 

하서지목책(下西知木柵)

경주(慶州)에 있는 진보(鎭堡)의 하나.

 

하석(霞石)

박정(朴炡)의 호이다.

 

하석상대(下石上臺)

아랫돌을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굄. 즉 임시 변통으로 이리 저리 둘러맞춤을 말한다.

 

하선동력(夏扇冬曆)

여름의 부채와 겨울의 새해 책력. 곧 선사하는 물건이 철에 맞음을 이른다. / 인용: 부채의 도시, 전주,

 

하선호지(河先惡池)

큰 일을 하려면 적은 일부터 먼저 한다는 말이다. 예기(禮記)』 「예기(禮器)() 나라 사람은 하()에 제사하려면 먼저 호지(惡池)에 제사한다[晉人有事於河 必先有事於惡池].” 하였다.

 

하성(夏城)

창녕(昌寧)의 고호이다.

 

하손(何遜)

남조(南朝) () 나라 섬인(剡人)인데 8세에 능히 시를 지었으며 벼슬은 상서수부랑(尙書水部郞)을 지냈다. 문장이 유효작(劉孝綽)과 더불어 제명(齊名)하여 세상이 하유(何劉)라 불렀음. 하수부집(何水部集)이 있다. 양서(梁書)卷六百九十三

 

하손동각시(何遜東閣詩)

남조(南朝) ()의 시인. 그의 설중매화(雪中梅花)를 읊은, 동각(東閣)시가 유명하다.

 

하수(下壽)

60세를 말한다.

 

하수(蝦鬚)

주렴의 이명(異名)이다.

 

하수(夏首)

하수의 어구로, 장강과 갈라진 곳이다.

 

하수부(何水部)

() 나라 때의 문장가 하손(何遜)이 상서 수부랑(尙書水部郞)을 지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

 

하수조(何水曹)

두보(杜甫)의 시에서는 양() 나라의 뛰어난 시인으로 수부 원외랑(水府員外郞)을 지낸 하손(何遜)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하삼성(何三省)을 가리킨다.

 

하수황서어랍경(夏授黃書圄臘更)

() 나라 황패(黃霸)가 하후승(夏侯勝)과 함께 3년 동안 감옥살이를 할 적에,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간곡히 요청한 결과 그로부터 상서(尙書)를 배워 뒤에 현달했던 고사가 전한다. 한서(漢書)75 夏侯勝傳 卷89 循吏列傳 黃霸傳

 

하승(下乘)

열등마(劣等馬)와 같은 말이다. 한유(韓愈)가 지은 위인구천서(爲人求薦書)에서 나무는 산에 있고 말은 시장에 있으니 지나치며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 비록 날마다 수천만의 사람이 누적되더라도 재목이 아니라거나 못난 말이 되지는 않는다[木在山, 馬在肆, 過之而不顧者, 雖日累千萬人, 未爲不材與下乘也].”라고 했다.

 

하시(夏時)

인월(寅月)을 세수(歲首)로 삼은 하() 나라의 역()을 말한다.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에 안연이 나라를 다시리는 방법에 대해 묻자, 공자는 하나라의 월력을 행하고 은나라의 수레를 타며 주나라의 면류관을 쓰고 음악은 韶舞를 하며 정나라 음악을 추방하고 말 잘하는 이를 멀리해야 하니, 정나라 음악은 음탕하고 말 잘하는 이는 위태롭다[行夏之時, 乘殷之輅, 服周之冕, 樂則韶舞. 放鄭聲, 遠佞人. 鄭聲淫, 佞人殆].”라고 말했다.

 

하시소천하(下視小天下)

공자(孔子)는 동산(東山)에 올라 노() 나라를 작게 여기고, 태산(泰山)에 올라 천하를 작게 여겼다. 맹자(孟子)』 「진심(盡心)

 

하심(何沈)

심약(沈約)과 하손(何遜)은 남북조 시대 남조의 시인인데, 심약은 박학하여 사성보(四聲譜)를 지었으며 하손의 시는 사조(謝脁)에 비교되었다.

 

하심주(荷心酒)

정공각(鄭公慤)이 연잎(蓮葉)에다 술을 담아 두고 잠()으로 찔러서 줄기와 통하게 하여 그 술을 마시니 맑고 서늘하였다.

 

하악(河嶽)

황하(黃河)오악(五嶽)을 말한다.

 

하안(何晏)

삼국(三國) 때의 위() 나라 사람. 미남인 데다가 늘 얼굴에 흰 분을 바르고 다녀, 한때 유행이 되기도 하였다. 흔히 하랑(何郞)이라 부른다. 삼국지(三國志)卷九

 

하안거(夏安居)

여름 장마 때 중들이 선방(禪房)에 들어앉아 수도하는 기간을 말한다.

 

하액(霞液)

이슬을 말한다. 오균(吳筠)유선시(游仙詩)이슬은 아침에 먹을 수 있고 홍지(虹芝)는 저녁에 먹을 만하다.” 하였다.

 

하약(賀若)

거문고 곡조에 하약(賀若)이 가장 담고(淡古)하다 하였다. 소식(蘇軾)의 시에 琴裏若能知賀若 詩中定合愛陶潛이라 하였다.

 

하약필(賀若弼)

() 나라 대장 하약필(賀若弼)이 진() 나라를 쳐서 멸망시킨 일이 있었다.

 

하양(河陽)

일찍이 하양 현령(河陽縣令)을 지냈던 진() 나라의 문장가 반악(潘岳)을 가리킨다. 그가 현령으로 부임한 뒤에 그 고을에 온통 도리화(桃李花)를 심어 놓고 즐겼다는 하양일현화(河陽一縣花)’의 고사가 전한다. 백씨육첩(白氏六帖)』 「현령(縣令)

중국 황하(黃河)의 북쪽 기슭으로, 오늘날 하남성(河南省) 맹현(孟縣)의 서쪽에 있던 고을 이름이다.

 

하양만도리(河陽滿桃李)

하양(河陽)은 하남성(河南省) 맹현(孟縣)의 서쪽에 있는 고을. ()의 반악(潘岳)은 일찍이 이 고을의 원이 되어 곳곳에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를 심었으므로 뒤에 전하여 미담(美談)이 되었다.

 

하양부(河陽賦)

() 나라의 반악(潘岳)처럼 멋들어진 솜씨를 발휘하여 지은 시라는 말이다. 반악이 일찍이 하양 현령(河陽縣令)을 지냈으므로, 하양을 그의 별칭으로 쓰게 되었다.

 

하양수(河陽樹)

하양(河陽)은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맹현(孟縣)의 동쪽에 있는 지명인데, () 나라 때 반악(潘岳)이 이곳의 현령으로 부임하여서 온 고을 안에 복사나무와 오얏나무를 심어 온 고을이 꽃 천지가 되었다.

 

하양일현홍(河陽一縣紅)

백낙천(白樂天)의 백씨육첩(白氏六帖) 20() 나라 반악(潘岳)이 하양(河陽)의 수령으로 나가서, 온 경내에 복사꽃과 오얏꽃을 두루 심자, 사람들이 이를 일컬어 하양 일현화(河陽一縣花)’라고 하였다.”는 말이 있다.

 

하양일현화(河陽一縣花)

() 나라 때 반악(潘岳)이 하양 현령(河陽縣令)이 되었을 때 하양현 안에 도리(桃李)를 많이 심었으므로, 그때 사람들이 하양은 온 고을이 꽃이다.” 하였다.

 

하연(賀燕)

경사 있는 집에 제비가 날아드는 것을 치하하는 손님에 비한다.

 

하염각소양락추(下鹽却笑羊酪麤)

육기(陸機)가 왕무자(王武子)에게 가니 무자가 마침 양락(羊酪) 수곡(數斛)을 앞에 놓고 있다가 육기에게 묻기를, “강동(江東)에는 무슨 식물이 이것과 적대(敵對)할 만한가.” 하니, 육기가 답하기를, “순채국(蓴鱸)인데 다만 소금콩(鹽豉)을 넣지 않소.” 하였다.

 

하엽배(荷葉杯)

연잎의 한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줄기를 통해서 술을 빨아 마시는 것을 말한다.

 

하예경사(何預卿事)

당신의 일과 무슨 상관인가?’라는 말로 ()’()’와 통하며 관여하다’, ‘상관하다의 뜻이다.

 

하오(夏五)

궐문(闕文)을 뜻하는 말로, 춘추(春秋)의 환공(桓公) 14년 조()하오월(夏五月)’하오로만 기재하여 ()’ 자를 빠뜨린 데서 온 말이다.

 

하옥(夏屋)

문간의 행랑인데 넓으면서 낮은 집

 

하옥(瑕玉)

티가 있는 구슬. 흠이 없으면 완전한 것인데, 아깝게도 흠이 있어 결점이 된다는 뜻이다. 옥에 티.

 

하원(河源)

황하(黃河)의 근원을 말한다.

 

하위(河渭)

황하(黃河)와 위수(渭水)를 가리킨다.

 

하유(下帷)

서한(西漢)의 학자 동중서(董仲舒)가 강송(講誦)할 때 장막을 내리곤 하였으므로[下帷], 사람들이 그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사기(史記)121 유림열전(儒林列傳)」 「동중서(董仲舒)

 

하유(瑕瑜)

옥의 티와 광택으로, 전하여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나타낸다.

 

하유(何有)

하난지유(何難之有)의 준말로,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라는 말이다. / 인용: 梁四龍傳(이기발)

 

하유동생(下帷董生)

동생(董生)은 동중서(董仲舒)이다. 동중서가 장막을 내리고 외인과 떨어져 글만 읽었으므로 동중서를 하유노인(下帷老人)이라고도 한다. 환혼기(還魂記) 숙원(肅苑)하유노인이 동산도 구경하지 못했다[下帷老子不窺園].” 하였다.

 

하유불잠출(下帷不蹔出)

방에 발을 치고 깊이 들어앉아 독서(讀書)에만 전념함을 말한다. 한서(漢書)』 「동중서전(董仲舒傳)

 

하유선생어육경(下帷先生飫六經)

서한(西漢)의 학자 동중서(董仲舒)가 장막을 드리운 채 강론을 하였으므로 제자들 중에서도 그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자가 있었으며, 독서에 심취한 나머지 3년 동안 집의 뜨락을 내다보지도 않았다는 고사가 전한다. 사기(史記)』 「유림열전(儒林列傳)」 「동중서전(董仲舒傳)

 

하육(夏育)

()나라 때 위()의 용사(勇士)를 말한다.

 

하육(何肉)

하씨(何氏)의 고기. 남제(南齊) 때 불교佛敎)를 매우 신봉(信奉)하였던 하윤(何胤)이 육식(肉食)을 끊지 못했기 때문에 한 말이다.

 

하음(何陰)

() 나라 때 시()를 잘 하기로 명성이 높았던 하손(何遜)과 음갱(陰鏗)을 병칭한 말이다.

 

하의(荷衣)

()잎으로 엮어 만든 은사(隱士)의 옷을 말한다. 초사(楚辭)』 「이소경(離騷經), “연잎을 재단하여 옷을 만듦이여, 연꽃으로는 치마를 짓도다[製芰荷而爲衣兮 集芙蓉而爲裳]” 하였다.

연잎으로 만든 옷으로, 신선이나 도사, 은자가 입는 옷을 가리킨다. 초사(楚辭)』 「구가(九歌)소사명(少司命)연잎 옷에 혜초의 띠를 띠고 금방 왔다가 훌쩍 떠나네[荷衣兮帶 儵而來兮忽而逝].”에서 나온 것으로 역시 은사의 생활을 말한 것이다.

 

하의치(荷衣緇)

하의(荷衣)는 연잎으로 지은 은자(隱者)의 옷을 뜻한 것으로, 전하여 풍진(風塵) 속에 분주하다가 세속의 더럽힘을 받은 것을 비유한 말이다.

 

하이(蝦夷)

고대 일본 북단에 거주하던 미개 종족. 지금 일본의 북해도(北海道)를 이른다.

 

하이가위(何以假爲)

다른 나라에 사신으로 가면서 거짓 직함을 띠고 갈 경우, 자신이 먼저 바르지 않기 때문에 바른 말을 할 수 없어서, 거짓 직함을 띠고는 갈 수 없다는 뜻이다.

 

하일진현(夏日晉賢)

춘추 때 진()나라의 어진 대부(大夫) 조순(趙盾)이 위엄 있기로 유명했다. 진 나라의 가계(賈季)가 조최(趙衰)를 겨울날의 해로, 조순을 여름날의 해로 비유했으니 겨울 해는 사랑스럽고 여름 해는 두려울 만하기 때문이다.

 

하자성혜(下自成蹊)

사람들이 자연히 사모하여 찾아왔다. 사마천(司馬遷)이 한() 나라 장군 이광(李廣)의 인품을 극찬하면서 복사꽃과 오얏꽃이 스스로 말하지는 못해도, 사람들이 좋아하여 찾아오기 때문에 그 나무 밑에는 절로 길이 이루어지게 마련이다[桃李不言 下自成蹊]”라고 평한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기(史記)』 「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

 

하잔여기산(霞殘餘綺散)

사조(謝眺)의 시에, “여하산성기(餘霞散成綺)”라는 구절이 있다.

 

하장(霞漿)

신선이 먹는다는 선약(仙藥)이다.

 

하장군(賀將軍)

명 나라의 총병관(摠兵官) 하세현(賀世賢)으로, 심양이 함락되면서 전사하였다. 명사(明史)271

 

하절(下節)

채찍을 당기다.

 

하정주황(夏鼎周璜)

하우씨(夏禹氏)구정(九鼎)과 주 나라의 패옥처럼 시문이나 품격이 지금 세상과 달리 고풍(古風)스럽다는 말이다.

 

하조대(河趙臺)

하씨(河氏) 집안의 총각과 조씨(趙氏) 집안의 처녀 사이의 사랑에 얽힌 일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고려 말엽 하륜(河崙)과 조준(趙浚)이 숨어 살았기 때문에 그 명칭이 유래되었다는 등의 설이 있다.

 

하주(荷裯)

연꽃으로 만든 홑옷을 말한다.

 

하주(賀鑄)

성격이 강직하고 당세의 일을 논하기 좋아하여 조금만 뜻에 맞지 않는 자가 있으면 그가 아무리 당세의 권귀(權貴)일지라도 조금도 가차없이 마구 폄론(貶論)하였다 한다. 송사(宋史)卷四百四十三

 

하중묵(何仲黙)

명대(明代)의 시인(詩人) 하경명(何景明)을 가리키는데 중묵은 그의 자이다.

 

하증(何曾)

진 무제(晉武帝) 떄 정치가. 자는 영효(穎孝). 벼슬이 태위(太尉)에 이르렀음. 하증은 본디 의식(衣食)의 사치를 극도로 하여 하루에 1만 전 상당의 성찬을 먹고 지냈는데, 그러면서도 그는 항상 젓가락을 댈 데가 없다.”고 말했다 한다. 진서(晉書)卷三十三 / 인용: 大賈(이조원)

 

하지장(賀知章)

()나라 때의 산음(山陰)사람. 자는 계진(季眞)으로 성격이 활달하고 문장에 능했으며 글씨 잘 쓰고 술도 좋아했다. 중년에 벼슬길에 올라 태자빈객(太子賓客)ㆍ비서감(祕書監)등을 제수받았으나 늘그막에 그를 다 버리고 자호를 사명광객(四明狂客)이라고 하고서 전리(田里)로 돌아와 자기 집을 천추관(千秋觀)으로 꾸미고, 또 방생지(放生池)를 만들기 위해 호수를 구하다가 천자의 명으로 경호(鏡湖)의 섬계(剡溪)한 굽이를 하사받기도 하였다. 당서(唐書)列傳 隱逸

 

하진(下陳)

궁녀들을 말한다.

 

하징구곡(河澄九曲)

황하수(黃河水)는 백 리()에 작은 구비, 천 리에 큰 구비, 이렇게 구곡으로 바다에 들어간다. 황하수가 천 년만에 한 번씩 맑으면 성인(聖人)이 날 큰 상서(祥瑞)라 한다.

 

하채(下蔡)

고을 이름이다. 안휘성(安徽省) 봉대현(鳳臺縣)에 있다. 호색(好色)하기로 이름난 등도자(登徒子)가 부인을 하채에 두고 미색에 도취되어 헤어날 줄을 몰랐다. 그리하여 호색하는 사람을 하채에 미혹한다고 한다. 문선(文選)卷十九 登徒子好色賦

 

하천(下泉)

시경(詩經)조풍(曹風) 하천(下泉)()을 말한다. 진후(晉侯)가 조()에 들어와 그 임금을 잡아가매, 조의 신하들이 주실(周室)에 왕이 있어 패자(霸者)를 제어하지 못함을 슬퍼한 시편이다. 그 첫 구는 다음과 같다. “冽彼下泉 浸彼苞稂 愾我寤嘆 念彼周京

 

하청(河淸)

성인이 태어날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황하의 물은 본디 탁하여서 맑을 때가 없으나, 1천 년마다 한 차례씩 맑아지는데, 이는 성인이 태어날 조짐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천하의 태평을 말할 때는 흔히 해안하청(海晏河淸)”을 대명사로 써 왔음.

 

하충(夏蟲)

견문이 좁아서 사리에 어두움을 비유한 말, 장자(莊子)』 「추수(秋水)여름 벌레는 얼음에 대하여 말할 수 없다.” 한 데서 온 말이다.

 

하충남견(夏蟲南犬)

식견이나 지혜가 모자란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하충(夏蟲)은 여름 벌레란 뜻으로 장자(莊子)』 「추수(秋水)여름 벌레와는 얼음에 대해 말할 수 없으니 이는 계절에 구애받기 때문이다[夏蟲 不可以語於氷者 篤於時也].” 하였고, 남월(南越) 지방의 개는 눈()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눈이 오는 것을 보면 이상하게 여겨 짖는다 한다.

 

하침(下枕)

취침(就枕)’과 같은 뜻이다.

 

하침대무(河沈大巫)

전국(戰國) 시대 위()서문표(西門豹)가 업현(鄴縣)의 영()으로 있을 때, 그 지방 습관으로 하백(河伯 수신(水神))을 위하여 부녀(婦女)에게 장가들게 한다 칭하고 부녀를 물에 빠뜨리는 일이 있으므로, 서문표가 그 폐단을 고치려고 무당을 강물에 빠뜨렸던 고사이다. 사기(史記)』 「골계열전(滑稽列傳)

 

하탁(荷橐)

띠에 차는 붓주머니. 하포(荷包)와 같은 것으로 조그마한 주머니를 말한다. 통속편(通俗編)구양수(歐陽修)의 글에 자하가 주머니에 드리워졌다[紫荷垂橐].’는 말을 인용하여 아마 후세의 하포와 같은 것인가보다.” 하였다.

 

하탐적수강(下探赤水强)

장자(莊子)』 「천지(天地)황제(黃帝)가 적수에 노닐다가 구슬을 잃어버리고 지()를 시켜 찾게 하였는데 찾지 못했다.” 하였다.

 

하탑(下榻)

()나라 진번(陳蕃)이 예장태수(豫章太守)로 있을 때에, 서치(徐穉)가 오면 탑()을 내려서 앉게 하고, 그가 가고 나면 다시 그 탑을 달아두며 서치가 또 오기를 기다렸다.

 

하탑빈붕지(下榻賓朋至)

빈객(賓客)을 맞아 머물게 한 데 비유한 말이다. 후한(後漢) 때 진번(陳蕃)이 예장 태수(豫章太守)로 있으면서, 다른 빈객은 잘 접견하지 않았는데, 유독 서치(徐穉)가 오면 특별히 한 탑()을 내려 깔아주고 그가 돌아가면 다시 그 탑을 매달았으므로 이른 말이다. 후한서(後漢書)』 「서리전(徐摛傳)

 

하택거(下澤車)

마원(馬援)이 향리(鄕里)로 돌아온 후에 항상 타고 다니던 수레로서, 전간(田間)의 진펄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가벼운 수레이다.

 

하택지거관단마(下澤之車款段馬)

고향 시골의 편안한 생활을 뜻하는 말이다. 후한(後漢)마원(馬援)이 고생스럽게 남방을 정벌하면서 하택거(下澤車)에 조랑말을 매어 타고서 향리에서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며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라는 말을 한 고사가 있다.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

 

하토사방(下土四方)

천하를 말한다.

 

하통(荷筩)

연잎의 한가운데 오목한 곳에 술을 담아 마시면서 이를 술통에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하퇴(夏頧)

하 나라 때의 모자 이름이다.

 

하패(霞佩)

신선(神仙)이 차는 옥을 말하는데, 전하여 패옥을 고상하게 이르는 말이다.

 

하평(河平)

한 성제(漢成帝)의 연호이다.

 

하포(夏浦)

하구. 지금의 한구를 말한다.

 

하표(霞標)

손작(孫綽)의 유천태산부(遊天台山賦), “적성의 노을을 들어서 표지를 세운다[赤城霞擧而建標].”고 한 데서 나온 말로, 붉은 노을을 가리킨다. 문선(文選)6

 

하풍죽로(荷風竹露)

하풍 죽로(荷風竹露)는 연꽃 바람과 대나무의 이슬을 말하니, 당 나라 맹호연(孟浩然)의 시구(詩句)를 말한다. 그의 하일남정회신대(夏日南亭懷辛大)시에 연꽃에서 바람 부니 향기 그윽하고, 대잎에서 이슬 떨어지니 소리 맑아라[荷風送香氣 竹露滴淸響].” 하였다.

 

하피(霞帔)

도사(道士)의 옷, 또는 부인(婦人)의 예복(禮服)을 말한다.

 

하필성장(下筆成章)

붓을 들어 쓰면 그대로 문장이 된다는 말로, ‘아주 뛰어난 문장가를 말한다.

 

하필약유신(下筆若有神)

두보(杜甫)의 시 봉증위좌승장이십이운(奉贈韋左丞丈二十二韻), “만권의 책을 독파하고 나니 붓을 들어 글을 짓는 것이 신들린 듯하더라하여, 자신의 공부를 술회하였다.

 

하하(下下)

맨아래, 하지하(下之下)

 

하하(呀呀)

입을 벌리는 모양, 맹수가 입을 벌리고 이를 드러내는 모양, 웃음소리

 

하학상달(下學上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공부보다도 실천을 통한 수양이 참다운 배움이고 모두가 생활을 통한 향상을 배움이라는 뜻의 고사성어다. 논어(論語)』 「헌문(憲問)

 

하해지택(河海之澤)

강이나 바다처럼 넓고 큰 혜택을 말한다.

 

하혜관비(下惠官卑)

유하혜(柳下惠)는 노() 나라 현인인데, 맹자(孟子)가 그를 작은 벼슬을 수치로 알지 않았다고 칭찬하였다.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 만장(萬章)

 

하황(河隍)

하황(河湟)으로, 휘종이 잡혀갔던 오국성(五國城)을 가리킨다.

 

하황(蝦荒)

하황해란(蝦荒蟹亂)의 준말로, () 지방 풍속에 전하는 말인데, 즉 새우나 게는 마치 갑옷을 입고 창을 비껴든 것처럼 생겼기 때문에 그것들이 많이 나타나면 이를 병란(兵亂)의 조짐으로 여긴 데서 온 말이다.

 

하회고택(河回故宅)

하회 마을은 경상북도 안동군 풍천면에 있는 마을로, 풍산유씨(豐山柳氏)의 세거지(世居地)인데 선조 때의 명상 유성룡(柳成龍)이 거처했던 옥연정사(玉淵精舍)ㆍ원지정사(遠志精舍)등 다수의 고택이 있다.

 

하후기의(夏侯妓衣)

()의 다른 말이다.

 

하후씨이송(夏后氏以松)

논어(論語)』 「팔일(八佾)하후씨는 소나무를, 은 나라는 잣나무를, 주 나라는 밤나무를 심어서 사()의 신주(神主)로 삼았다[夏后氏以松 殷人以柏 周人以栗].” 하였다. 여기서의 신주는 상고시대에 사(士地)의 신에게 제사지낼 때 신주의 표지(標識)로 삼았던 것을 말한다.

 

하후탄주(夏后呑珠)

() 나라의 왕 우()의 어머니가 꿈에 구슬을 삼키고 우를 배었다 한다.

 

하휴(何休)

후한(後漢)의 학자. 자는 소공(邵公). 그는 육경(六經)에 정통했으며 특히 공양춘추(公羊春秋)를 좋아했다. 저서에는 공양해고(公羊解詁)ㆍ공양묵수(公羊墨守) 등이 있다.

 

하휴간(夏畦艱)

태평 시대 사람처럼 초연하게 숨어살며 세상에 아첨하지 않음을 말한다. 격양가(擊壤歌)밭을 갈아먹고 우물 파서 물 마시니 임금의 힘이 우리에게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였고,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어깨를 움츠리며 아첨하는 웃음은 여름 이랑에 일하는 것보다 힘들다[脅肩諂笑, 病于夏畦].” 하였다.

 

하흠(賀欽)

() 나라 때의 사람으로, 자가 요공(堯恭)이며, 요동 광녕(廣寧) 사람이다. 일찍이 진백사(陳白沙)가 강론하는 것을 듣고는 그날 즉시 벼슬자리를 내던지고 가서 스승으로 섬기면서 학문을 배웠다. 그 뒤에 의무려산으로 들어가서 이학(理學)에 전념하면서 마을 사람들을 감화시키니, 사람들이 의려 선생(醫閭先生)이라고 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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