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1/08/19 (14)
건빵이랑 놀자
해설. 임란으로 사라진 늘그막 협객을 만나다 이 시는 16세기 말 서울의 임협(任俠)을 그린 내용으로, 당시의 시정세태의 일면을 엿보게 한다. 시는 협객 중의 한 사람이었던 나수양(羅守讓)에게 지어준 형식이다. 시의 현재는 임진왜란 직후의 어느날, 시를 쓴 장소는 전라도 임실이다. 그런데 서사의 화폭이 펼쳐진 시공은 임진왜란 직전의 서울 성중이다. 작품은 서두에서부터 무사안일로 사치 향락에 젖은 분위기를 소개하면서 특히 협객들의 소식과 활동상을 들려준다. 이른바 삼정오라(三鄭五羅)의 명성이라든지, 시정에서 호기를 다투고 우쭐거리며 노는 정경이라든지 모두 진기하고 재미난 사실로 엮인다. 그러나 작품은 한낱 지난 세월을 회상하며 흥미로운 세태를 펼쳐 보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협객들의 활동상을 서술한 ..
서울의 협객인 나수양을 만나고서 한양협소행 주증라수양(漢陽俠少行 走贈羅守讓) 조찬한(趙纘韓) 羅公五兄弟皆平時俠客, 나공의 5 형제가 모두 평상시의 협객인데 而守讓氏獨落湖南, 見我於任實. 수양씨만 홀로 호남에 낙척(落拓)하여 나를 임실에서 보았다. 燈下把筆走贈. 등불 아래에서 붓을 잡고 달리듯 써서 주다. 漢陽昇平二百祀 서울 태평성대 200년이라 都人士女殷且美 도읍의 남녀는 풍요롭고도 훤칠하네. 家家鍾鼎食如螘 집집마다 부유해 밥이 고봉밥이네. 明粧耀日喧歌吹 밝게 치장하여 환하고 시끄러운 노랫소리 불러오네. 三門之外稱俠窟 대궐문 밖에 협객의 소굴을 헤아리니 三鄭五羅唯其最 정씨 세 명과 나씨 다섯 명이 최고라네. 吐氣如虹聲若雷 날숨은 무지개 같고 소리는 우레 같으며 大袴緩帶相徘徊 큰 바지에 느슨한 띠로 서로 ..
해배되어 떠난 당신을 그리며 다산초당으로 왔어라 남당사(南塘詞) 정약용(丁若鏞) 산문. 다산의 소실을 안타깝게 여겨 시를 짓다 茶山小室, 遭逐, 順付楊根朴生行, 歸南塘本家. 朴生到湖南之長城府, 與富金陰議奪志, 覺之大發哭. 遂與朴決絶, 直走金陵. 不之南塘本家, 之茶山舊住, 日盤桓池臺花木, 以寓愁思怨慕, 金陵惡少, 不敢窺茶山一步地. 聞甚悲惻, 遂作南塘詞十六絶, 詞皆道得女心出, 無一羨語. 覽者詳之. ⇒해석보기 1. 무슨 죄를 지었기에 다산으로 다시 왔는가? 南塘江上是儂家 底事歸依舊住茶 欲識郞君行坐處 池邊猶有手裁花 南塘兒女解舟歌 夜上江樓弄素波 縱道商人輕遠別 商人猶見往來多 思歸公子我心悲 每夜心香上格之 那知擧室歡迎日 反作兒家薄命時 幼女聰明乃父如 喚爺嚌問盍歸歟 漢家猶贖蘇通國 何罪兒今又謫居 ⇒해석보기 2. 두 번의..
6. 마현으로 찾아온 강진 제자에게 써준 글 끝으로 다산의 친필로 전하는 산문 한편을 인용해둔다. 강진 다산초당의 제자 윤종삼(尹鐘參, 자 기숙旗叔, 1798~1878)과 윤종진(尹鐘軫, 자 금계琴季, 1803~79) 형제가 경기도 마현으로 선생을 찾아가 뵈었을 때 직접 써서 준 글이다. 다산초당의 제생(諸生, 제자를 이르는 말)이 열상(洌上, 한강가란 뜻으로 다산의 고향을 일컬음)으로 나를 찾아와서 인사말을 나눈 다음에 나는 물었다. “금년에 동암(東菴)은 이엉을 새로 했는가?” “이었습니다.” “홍도(紅桃)는 아울러 이울지 않았는가?” “생생하고 곱습디다.” “우물 축대의 돌들은 무너진 것이 없는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못 속의 잉어 두마리는 더 자랐는가?” “두자나 됩니다.” “백련사로 가..
5. 1820년 강진 문인의 작품 작품상에서 서정주체의 현재와 과거로 교차하는 상념은 기복이 일어난다. 자신은 처지가 임(정약용)과 너무도 달라서 “갈까마귀 봉황과 어울려 짝이 될 수 있으랴! / 미천한 몸 복이 넘쳐 재앙이 될 줄 알았지요[寒鴉配鳳元非偶, 菲薄心知過福災]”(제7수)라고 체념의 한숨을 쉬는 것이다. 이 대목에도 인간의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그리하여 자신과 임과의 사이를 “한번 깨진 거울은 다시 둥글게 될 가망 없다지만[破菱縱絶重圓望]” (제8수)이라고 이미 파경(破鏡)이 왔음을 인정하는데 그럼에도 끝내 승복할 수 없는 점이 있다. “부자간의 천륜마저 어찌 끊는단 말인가[忍斷君家父子親]?” 그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의 결실인 아이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작품은 제11수에서..
4. 서정주체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남당사」의 작자는 그 여자의 인생이 너무나도 슬프고 안타깝게 느껴져서 16수를 지었다고 밝혔다. “이 노래는 한결같이 여심을 파악해서 표출한 것이요, 하나도 부풀린 말은 없다[詞皆道得女心出, 無一羨語].” 그야말로 ‘연정(緣情)의 작(作)’이라 하겠는데 시인은 작중 인물을 정확히 대변했음을 특히 강조했다. 16수 모두 진술방식이 예외없이 ‘비극적 주인공’의 독백으로 되어 있다. 시인은 작중인물 속으로 잠적한 모양이다. 문예학에서 서정시는 대개 시인의 자설(自說)이기에 1인칭 화법을 쓰는 것으로 규정한다. 「남당사」의 경우 서정시의 일반적 진술방법과는 다른 형식이다. 그렇다고 서사시라 규정할 수 있을까. 자못 풍부한 서사성을 내포하고 있긴 하지만, 시인과 작중인물이 등..
3. 우여곡절 끝에 다산초당에 돌아온 여자 다른 한편은 필자가 우전(雨田) 신호열(辛鎬烈) 선생께 들은 에피소드다. 전라도 장성읍 월평리에 김좌랑(金左郞) 집이 있었다. 울산 김씨 하서(河西) 선생의 후예로 전라도에서 손꼽히는 명족이다. 다산의 소실이 있었는데 무슨 사정으로 월평 김좌랑 집에 맡겨지게 되었다 한다(그 경위는 모호하다), 김좌랑 집의 남자가 그녀를 탐내어 범하려 하자 그녀는 “내 비록 천한 몸이지만 조관을 지낸 분의 첩실이다. 어찌 감히 이럴 수 있느냐?”하고 준절히 항의를 했다는 것이다. 우전 선생님은 향리가 장성과 인근인 함평군 나산면 송암(松巖)마을이었기에 직접 전문(傳聞)하셨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에피소드에는 특히 불평등한 제도의 모순 때문에 성적 모독을 당하는 여성의 인격에 대한..
2. 다산에게 매년 차를 보낸 여인 필자는 이 자료를 접하기 전에 진작 다산의 여자에 관해 이야기 두편을 들었다. 하나는 벽사(碧史) 이우성(李佑成) 선생으로부터 전해들었는데, 이 이야기는 당초 강진의 귤동(橋洞) 윤재찬(尹在瓚) 옹에게서 나온 것이다. 귤동은 다산초당이 있는 만덕산 산자락의 바다에 면해 있는 윤씨 마을이다. 다산초당은 원래 귤동의 윤단(尹慱, 귤림처사橘林處士)이란 분의 산장이었다. 다산은 윤씨의 특별한 배려로 유배의 처소를 강진읍내에서 이곳으로 옮겼던 것이다. 다산이 이곳 초당에서 거주했던 기간은 1808~18년 귀양살이가 풀려 경기도 마현(馬峴) 본가로 돌아갈 때까지다. 강진읍에서 썰물 때면 갯벌이 되는 바다 옆길을 따라가다가 귤동에서 버스를 내린다. 동백ㆍ차나무 동청수 등 남방의 상..
신발굴자료 「남당사」에 대하여 - 다산초당으로 돌아온 여자를 위한 노래 1. 인간 정약용의 진솔함이 담긴 자료 지금 소개하는 「남당사」는 절구 16수로 엮인 한시 작품이다. 한문학의 분류 개념으로 말하면 노래 형식의 소악부(小樂府) 계열 내지 죽지사(竹枝詞) 류에 속하는 것이라 하겠다. 전편에 걸쳐 한 여성화자가 자신의 고독하고 애절한 사연을 서정적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테마 자체는 서사성이 풍부한데 서정화해서 특이한 감명을 주는 것이다. 이 신자료는 특히 서사와 서정의 결합양상에서, 그리고 여성성의 문제에서 주목할 작품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작중의 주인공은 ‘다산 소실(小室)’로 밝혀져 있다. 다름 아닌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 강진 유배지에서 만난 여자다. 이 자료는 정약용이라는 한 위대..
4. 생이별 가슴 아파 崦嵫日色爲君悲 서산의 햇빛은 그대를 위한 슬픔인지 恨不相逢未老時 늙지도 않았는데 서로 만나지 못함이 한스럽네. 縱乏膠舔烏兎術 가령 오토를 붙잡고 핥을 재주 없다해도 忍將餘景做生離 차마 남은 여생 생이별하리오? 孤館無人抱影眠 외로운 집에 사람 없어 그림자 안고 자고 燈前月下舊因緣 달빛 아래 등불 앞에 옛 인연 있어라. 書樓粧閣依俙夢 서재나 누각 장각의 어렴풋한 꿈으로 留作啼痕半枕邊 베개 반절에 눈물 흔적 남았죠. 南塘春水自生煙 남당의 봄물엔 절로 이내 생기니 渚柳汀花覆客船 못가 버들개지와 물가 꽃이 나룻배 덮을 지경이죠. 直到天涯通一路 곧장 하늘가에 이르러 한 길로 통하니 載兒行便達牛川 아이 태우고 다니면 곧장 쇠내에 도달하리. 南塘歌曲止於斯 남당의 노래 여기에서 끝나니 歌曲聲聲絶命..
3. 사무친 그리움에 망부석이라도 되길 殘粧堕髻畏人窺 지워진 화장과 떨어진 비녀 남이 엿볼까 두려워 宜笑宜顰只自知 마땅히 웃고 마땅히 찡그리며 다만 스스로 알죠. 莫是郞心猶綣戀 낭군은 오히려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半床時有夢來時 반절 평상에 걸쳐 누워 꿈 속에 있을 때 오지 않으려나요? 水阻山遮雁亦疎 물이 막고 산이 가려 기러기 또한 드문데 經年不得廣州書 해가 지나도록 광주의 편지 받지 못하네. 將兒此日千般苦 아이 데리고 이 날에 여러 가지로 괴로우니 思得阿郞未放初 낭군이 해배되기 전으로 갈 수 있었으면. 幷刀三尺決心胸 잘 드는 가위 삼척으로 가슴을 잘라내면 胸裡分明見主公 가슴 속엔 분명히 낭군 보이리. 縱有龍眠摹畵筆 가령 용면이 화필을 본뜬다면 精誠自是奪天工 정성이 스스로 하느님의 기교로움을 빼앗으리. 紅..
2. 두 번의 질곡이 닥쳐올 줄이야 刖足丁家斷臂金 정씨 집안에 발목 잘리고 김씨에게 팔 잘려 敎人强暴怨何深 사람으로 하여금 강포하게 하니 원한이 어찌나 깊은고? 那知再遇化兒戱 어찌 다시 조화옹의 장난 만날 줄 알았을꼬? 楊朴歸來表此心 양근 박씨로 돌아와 이 마음을 표시하네. 機梭刀尺不關心 베틀 칼날 마음에 관계치 않고 無事挑燈夜已深 일 없이 등불 돋우니 밤 이미 깊었네. 直到五更鷄唱罷 다만 오경에 이르러 닭 울음 그치니 和衣投壁自呻吟 옷 입고 벽에 기댄 채 스스로 신음하네. 絶代文章間世才 절세의 문장과 보기 드문 재주는 千金一接尙難哉 천금으로도 한 번 접하기 오히려 어렵구나. 寒鴉配鳳元非偶 찬 까마귀가 봉황에 짝함에 원래 짝이 아니니 菲薄心知過福災 변변찮은 마음으로도 복이 넘쳐 재앙될 줄 알았죠. 土..
1. 무슨 죄를 지었기에 다산으로 다시 왔는가? 南塘江上是儂家 남당의 강가는 우리 집인데 底事歸依舊住茶 무슨 일로 옛 거주지 다산으로 돌아왔나? 欲識郞君行坐處 낭군이 다니고 앉던 곳 알고 싶어서고 池邊猶有手裁花 연못가엔 아직도 손수 가꾼 꽃 있네요. 南塘兒女解舟歌 남당의 아녀자는 뱃노래 이해하니 夜上江樓弄素波 밤에 강루에 올라 흰 물을 희롱하네. 縱道商人輕遠別 가령 상인은 멀리 떠나는 걸 가벼히 여긴다 말들 하지만 商人猶見往來多 상인은 오히려 많이들 오고 가고 하네요. 思歸公子我心悲 돌아가길 생각하는 공자로 내 마음 슬퍼 每夜心香上格之 매일 밤 마음의 향불이 올라 이르죠. 那知擧室歡迎日 어찌 알았겠어요? 온 집이 기뻐할 날이 反作兒家薄命時 도리어 아이 집이 박명한 때를 짓게 될 줄을. 幼女聰明乃父如 ..
산문. 다산의 소실을 안타깝게 여겨 시를 짓다 茶山小室, 遭逐, 順付楊根朴生行, 歸南塘本家. 朴生到湖南之長城府, 與富金陰議奪志, 覺之大發哭. 遂與朴決絶, 直走金陵. 不之南塘本家, 之茶山舊住, 日盤桓池臺花木, 以寓愁思怨慕, 金陵惡少, 不敢窺茶山一步地. 聞甚悲惻, 遂作南塘詞十六絶, 詞皆道得女心出, 無一羨語. 覽者詳之. 해설 茶山小室, 遭逐, 다산의 소실이 쫓겨남을 당해 順付楊根朴生行, 歸南塘本家. 양근의 박생이 돌아오는 인편에 부쳐 남당의 본가로 돌아왔다. 朴生到湖南之長城府, 與富金陰議奪志, 박생이 호남의 장성부에 도착해 부잣집 김씨와 음모를 꾸며 정절을 빼앗으려했는데 覺之大發哭. 소실은 그걸 알고 대성통곡했다. 遂與朴決絶, 直走金陵. 마침내 박생과는 관계를 끊고 곧장 금릉(강진)으로 달려갔다. 不之南塘本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