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1/08/25 (59)
건빵이랑 놀자
땔나무 채취하는 노래 채신행(採薪行) 신광수(申光洙) 貧家女奴兩脚赤 가난한 집 계집종 두 다리 드러내고 上山採薪多白石 산에 올라 땔나무 캐는데 흰 돌멩이가 많다네. 白石傷脚脚見血 흰 돌멩이가 다리를 상하게 하니 다리에 피가 보이고, 木根入地鎌子折 나무뿌리 땅에 박혀 낫 부러진다네. 脚傷見血不足苦 다리 상해 피 보이는 건 괴롭기엔 부족하고 但恐鎌折主人怒 단지 낫 부러져 주인 화낼까 걱정이네. 日暮戴新一束歸 저물녘 땔나무 지고 한 번 묶어 돌아오니, 三合粟飯不䭜飢 세 홉 조밥이 굶주림 요기하질 못한다네. 但見主人怒 出門潛啼悲 다만 주인의 화를 보고 문에 나가 몰래 우니 男子怒一時 女子怒多端 주인의 화냄은 일시적이지만 마나님 화는 여러 번이구나. 男子猶可女子難 사내라면 낫겠지만 계집이라 어렵기만 해.『石北集』..
베 짜는 아낙 직부(織婦) 윤계선(尹繼善) 隣燈伴作繅車歸 이웃 등잔불 벗 삼아 물레에서 돌아오자마자 纔綴晨炊卽上機 겨우 새벽밥을 짓고서 곧바로 베틀에 오르네. 刷盡門前官吏督 문 앞 관리가 독촉하며 싹 쓸어가니 未曾尺寸補寒衣 일찍이 한 척 한 치도 겨울옷에 보태질 못하지. 인용 목차 09년 2차 2번
해설. 누에 쳐서 힘들게 만든 비단을 빼앗기네 노동의 결과가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는 현실에 대해 비판한 시이다. 성안에는 누에를 치는 집이 많아서 언제나 뽕잎이 적다고 말들을 한다. 하지만 누에가 굶주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것은 뽕잎이 무성한 것도 있지만, 누에를 치는 부인들이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일을 하기 때문이다. 누에가 어릴 때는 뽕잎을 적게 먹기 때문에 일이 조금 줄어들 수 있으나 누에가 커지면 뽕잎을 먹는 양이 많아지기 때문에 뽕잎도 줄어들 뿐만 아니라 부인들은 더 분주히 땀을 흘려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여 만든 것이 비단이지만, 정작 누에를 키운 부인은 그 비단옷을 입을 수 없다. 원주용, 『고려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09년, 312쪽 인용 본문
누에 치는 아낙잠부(蠶婦) 이색(李穡) 城中蠶婦多 桑葉何其肥성중잠부다 상엽하기비雖云桑葉少 不見蠶苦饑수운상엽소 불견잠고기蠶生桑葉足 蠶大桑葉稀잠생상엽족 잠대상엽희流汗走朝夕 非緣身上衣류한주조석 비연신상의 『牧隱詩藁』 卷之二十二 해석城中蠶婦多 桑葉何其肥성 안엔 잠부가 많은데 뽕잎은 어째서 커다란가?雖云桑葉少 不見蠶苦饑비록 뽕잎이 작다고 하나 누에가 괴롭고 주린 것 보지 못했네.蠶生桑葉足 蠶大桑葉稀누에 생길 땐 뽕잎 풍족하나 누에 크면 뽕잎 적어지지. 流汗走朝夕 非緣身上衣흐르는 땀으로 아침저녁으로 애쓰지만 몸 위에 옷은 인연 없다지. 『牧隱詩藁』 卷之二十二 인용목차작가 이력 및 작품09년 2차 2번해설
주계의 노래 주계요(朱溪謠) 황상(黃裳) 朱溪僻險絶相似 주계의 험벽함과 매우 닮아서 赤裳高城藏國史 적상산 고성에 역사서를 저장했더니 國之喉舌喬木臣 나라의 승정원과 중추가 되는 신하들이 爭入此山宅於是 다투어 이 산에 들어와 여기에 집 지었네. 勒奪民家如鳶取雀巢 민가를 약탈하고 빼앗은 것이 솔개가 참새둥지 빼앗듯했고 次第田地應亦爾 다음엔 전지까지 응당 또한 그러했네. 居民兩失無所依 거주민이 민가와 전지를 잃어 의지할 곳이 없어 窺林號野出圈豕 숲을 살피고 들판에서 부르짖으니 우리를 나온 돼지 같았지. 且起甲第高摩雲 또한 호화로운 저택 일으켜 높이 구름에 닿게 하니 延壤延石幾許里 흙 끌어오고 바위 끌어온 게 몇 리나 되었던가. 判書戶對翰林閭 판서 집이 한림의 집을 대하니 列郡爭送名花蘂 여러 고을에서 다투어 이름..
여인이 짚신 짜네(본 걸 기록하다) 여직구(女織屦) (紀所見) 황상(黃裳) 女能織屦其何似 여인이 짚신 짠다는 게 어떠한가? 萬中無似惟屦已 온갖 것 중에 보잘 것 없는 것이 이 짚신 짜기네. 引針刺繡乃女工 바느질하고 수놓는 게 곧 여인의 일인데 紉草經緯豈汝美 새끼 가로로 세로로 꼬는 게 어찌 너의 미덕이겠는가. 妙年守宮紅不渝 젊은 나이에 바른 수궁사은 붉기가 달라지지 않았고 風雨不赴魯男子 비바람 불 때 노남자에게 달려가지 않았지. 席門深掩畏人知 석문 깊이 닫고 남들이 알까 두려워했지만 能無無聲涙不止 소리 없는 눈물 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十字橫木所謂屋 십자모양으로 나무를 비껴놓은 게 집이고 左右榱椽自枯竹 좌우 서까래는 마른 대나무라네. 此中猶當郞伯軍 여기 가운데서 오히려 남편을 맞을 것인데 牛衣代裙如不..
도성 저자 전도의 응제시 성시전도응(城市全圖應) 박제가(朴齊家) 或試其重擧一鷄 혹은 한 닭을 들어 무게를 시험하고 或壓其嘶負雙豕 혹은 두 마리 돼지 울음소리를 억누르며 或買牛柴自牽轡 혹은 스스로 고삐를 끌고 소에 실은 섶나무 팔고 或相馬齒旁揷箠 혹은 곁에 채찍 놓고 말의 이빨로 관상보네. 『貞蕤閣』 인용 목차 작가 이력 및 작품 11년 1차 30번
농가의 탄식 농가탄(農家歎) 정래교(鄭來僑) 赤日鋤禾霜天穫 땡볕에 벼 김매고 서리 내릴 때 수확했지만 水旱之餘能幾獲 홍수와 가뭄이 지난 뒤라 얼마나 수확할 수 있나. 燈下繅絲鷄鳴織 등불 아래에서 실켜고 닭 울 때 베 짰지만 戛戛終日纔數尺 종일토록 애써봤자 겨우 두어 자라네. 稅布輸來身無褐 면포로 거둬가서 몸엔 옷조차 없고 官糴畢後缾無粟 환곡 다 갚은 뒤라서 항아리엔 곡식조차 없네. 惡風捲茆山雪深 사나운 바람이 초가집 말아 올리고 산엔 눈 수북한데 糟糠不飽牛衣宿 지게미도 못 먹고서 소 거적 덮고 잔다네. 白骨之徵何慘毒 백골징포 어찌나 참혹하고 표독한지 同鄰一族橫罹厄 이웃하던 한 집안이 횡액에 걸렸네. 鞭撻朝暮嚴科督 아침저녁으로 매질하며 엄한 세금을 독촉하니 前村走匿後村哭 앞마을에선 달아나 숨었고 뒷마을에선..
정원백이 안개 속에서 비로봉을 그리는 걸 보면서 관정원백무중화비로봉(觀鄭元伯霧中畫毗盧峯) 이병연(李秉淵) 吾友鄭元伯 囊中無畫筆 나의 벗 겸재 정선은 주머니 속에 붓이 없더라 時時畫興發 就我手中奪 이따금 그림의 흥이 일면 나에게 나와 손에서 붓을 뺏어갔다. 自入金剛來 揮灑太放恣 금강산에 들어온 이래로 붓을 휘두르는 게 더욱 방자해졌다. 白玉萬二千 一一遭點毁 백옥 같은 일만이천 봉이 점으로 만나 뭉그러지네. 驚動九淵龍 亂作風雨起 구연동 용을 놀래켰는지 어지러이 비바람이 일어 偃蹇毗盧峯 不肯下就紙 높이 솟은 비로봉은 기꺼이 아래로 화지 위로 나올 성 싶지 않다가 三日惜出頭 深深蒼霧裏 사흘째에도 머리 내기 아까워선지 짙디짙은 푸른 안개 속에 있을 뿐이었네. 元伯却一笑 用墨略和水 정선은 도리어 한바탕 웃더니 먹을..
신도비나 덕정비로 세워질 푸른 바위의 하소연 청석(靑石) 백거이(白居易) 靑石出自藍田山 푸른 바위는 남전산으로부터 나오는데 兼車運載來長安 아울러 수레로 운반하여 싣고 서울로 온다네. 工人磨琢欲何用 석수장이는 갈고 쪼며 무에 쓰려 하는가? 石不能言我代言 바위는 말할 수 없기에 내가 대신 말하겠네. 不願作人家墓前神道碣 “인가의 묘비 앞 신도비 되길 원하지 않소. 墳土未乾名已滅 봉분의 흙 마르기도 전에 이름이 이미 마멸(磨滅) 될 테니. 不願作官家道旁德政碑 관아 길 곁의 덕정비 되길 원하지 않소 不鐫實錄鐫虛辭 실제의 기록 새기지 않고 헛된 말만 새기니 願爲顔氏段氏碑 안씨나 단씨의 비석이 되어 雕鏤太尉與太師 태위와 태사의 일을 조각되고 새겨지길 원하오. 刻此兩片堅貞質 이 두 조각의 굳고 곧은 바탕에 새겨져 狀彼..
해설. 관습적인 신도비의 문체를 비판하다 이 시는 백락천의 시 「청석(靑石)」을 본떠 지은 것으로, 당시 사회의 허구적이고 의례적인 관습에 대한 것과 당시 거의 칭송 일변도의 내용으로 채워진 신도비명(神道碑銘)의 문체(文體)에 대해 비판한 작품이다. 신흠(申欽)은 『청창연담(晴窓軟談)』에 다음과 같이 권필의 성품과 삶의 여정(旅程)을 간략히 기록하고 있다. “한사(寒士) 권필(權韠)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자는 여장(汝章)으로 참의 권벽(權擘)의 아들이다. 권벽은 문장을 잘했는데 권필이 어려서부터 가정의 훈도를 받아 약관(弱冠)에 문예(文藝)가 이루어졌다. 소릉(少陵) 두보(杜甫)의 시풍을 배우려고 노력하였으며 지은 작품이 매우 맑고 아름다운데 뒤에 와서 시를 짓는 사람들이 그를 으뜸으로 쳤다. 그런데 그의..
백락천의 「청석(靑石)」을 본 떠 충추석을 읊다 충주석 효백락천(忠州石 效白樂天) 권필(權韠) 忠州美石如琉璃 충주의 아름다운 돌은 유리 같아 千人劚出萬牛移 천 사람이 조각하고 만 마리 소가 옮기네. 爲問移石向何處 물었다. “돌을 옮겨 어느 곳으로 가나?” 去作勢家神道碑 “가서 권세가의 신도비를 만들려고요.” 神道之碑誰所銘 “신도비는 누가 새기는가?” 筆力倔強文法奇 “필력이 굳세고 문법이 기이한 이가 새깁니다.” 皆言此公在世日 모두 말한다네. “이 공이 세상에 있을 때 天姿學業超等夷 천부적 자질과 학업이 무리 중에서 우뚝했죠. 事君忠且直 居家孝且慈 임금 섬김엔 충성스럽고 강직하며 집에 거함엔 효도하고 자애합니다. 門前絶賄賂 庫裏無財資 문 앞엔 뇌물을 끊어서 창고엔 재물이 없었습니다. 言能爲世法 行足爲人師 ..
보리타작 타맥행(打麥行) 정약용(丁若鏞) 新篘濁酒如湩白 새로 거른 막걸리는 뿌옇지만 희고 大碗麥飯高一尺 큰 사발의 보리밥 높이가 한 척이네. 飯罷取耞登場立 밥 다 먹고 도리깨 들고 타작마당에 서니, 雙肩漆澤翻日赤 두 어깨 까맣고 땀이 나서 도리어 해 비치니 울긋불긋. 呼邪作聲擧趾齊 “어야 디야!” 소리 지르며 두 발 나란히 하고, 須臾麥穗都狼藉 잠시 만에 보리 이삭 모두 낭자하네. 雜歌互答聲轉高 잡가를 서로 답하며 소리가 갈수록 높아져 但見屋角紛飛麥 다만 용마루에 어지러이 날리는 보리 보이네. 觀其氣色樂莫樂 보리타작하는 그 기색을 보니 무에 그리 즐거운지, 了不以心爲形役 전혀 마음으로 형체의 노예가 된 것이 아니로구나. 樂園樂郊不遠有 낙원과 낙교가 멀리 있지 않으니, 何苦去作風塵客 어찌 괴로이 이곳을 떠..
고양이 같은 관리들에게 리노행(貍奴行) 정약용(丁若鏞) 1. 쥐는 잡지 않고 온갖 패악질하던 고양이 南山村翁養貍奴 歲久妖兇學老狐 夜夜草堂盜宿肉 翻瓨覆瓿連觴壺 乘時陰黑逞狡獪 推戶大喝形影無 呼燈照見穢跡徧 汁滓狼藉齒入膚 老夫失睡筋力短 百慮皎皎徒長吁 →해석보기 2. 너에게 날카로운 손톱과 이빨 준 이유가 있지 念此貍奴罪惡極 直欲奮劍行天誅 皇天生汝本何用 令汝捕鼠除民痡 田鼠穴田蓄穉穧 家鼠百物靡不偸 民被鼠割日憔悴 膏焦血涸皮骨枯 是以遣汝爲鼠帥 賜汝權力恣磔刳 賜汝一雙熒煌黃金眼 漆夜撮蚤如梟雛 賜汝鐵爪如秋隼 賜汝鋸齒如於菟 賜汝飛騰搏擊驍勇氣 鼠一見之淩兢俯伏恭獻軀 →해석보기 3. 쥐는 잡지 않고 더 못된 짓을 하는 고양이 日殺百鼠誰禁止 但得觀者嘖嘖稱汝毛骨殊 所以八蜡之祭崇報汝 黃冠酌酒用大觚 汝今一鼠不曾捕 顧乃自犯爲穿窬 鼠本小盜其..
해설. 쥐와 고양이로 비유한 인간형 이 시는 1810년에 지은 고양이를 노래한 것으로, 다산의 대표적인 우화시(寓話詩)이며, 남산골 늙은이는 일반 백성, 쥐는 백성의 재물을 수탈하는 수령과 아전, 고양이는 감사(監司)에 각각 비유하여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를 가하고 있다. 표현상의 특징으로 보자면, 고양이를 묘사한 부분, 예컨대 밤에도 잘 보이는 눈, 날카로운 발톱, 톱날 같은 이빨 등 묘사의 사실성(寫實性)이 뛰어나다 하겠다. 다산은 「감사론(監司論)」에서, “토호와 간사한 아전들이 인장(印章)을 새겨 거짓 문서로 법을 농간하는 자가 있어도 ‘이것은 연못의 고기이니 살필 것이 못 된다. 하여 덮어두고, 효도하지 않고 우애하지 않으며 그 아내를 박대하고 음탕한 짓으로 인륜을 어지럽히는 자가 있어도 ‘..
4. 쥐떼 같은 사람들, 고양이 같은 사람들 好事往往亦貌汝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호사가(好事家) 중에 이따금 또한 너와 모습이 비슷하다지 群鼠擁護如騶徒 뭇 쥐 같은 이들이 호위하길 달려들 듯하고 吹螺擊鼓爲法部 나팔 불고 북 두드리며 법부대로 하고 樹纛立旗爲先驅 대장기 세우고 깃발 세워 놓고 선두로 하니 汝乘大轎色夭矯 너는 큰 가마 타고 요사한 교태 부리며 但喜群鼠爭奔趨 다만 뭇 쥐떼 같은 이들 분주히 달려드는 것 좋아할 테지. 我今彤弓大箭手 나는 이제 동궁에 큰 화살을 손수 잡고서 너를 쏴서 射汝若鼠橫行寧嗾盧 횡행하는 쥐 같은 경우는 차리라 사냥개를 부르리.『與猶堂全書』 인용 전문 해설
3. 쥐는 잡지 않고 더 못된 짓을 하는 고양이 日殺百鼠誰禁止 날마다 백 마리 쥐 죽인다 해도 누가 금지하리오? 但得觀者嘖嘖稱汝毛骨殊 다만 보는 사람들은 칭찬 자자하게 너의 털과 뼈 남다름을 말해대겠고 所以八蜡之祭崇報汝 납제 제사에서 높여 너에게 보답하려 黃冠酌酒用大觚 누런 관2에 술을 따를 땐 큰 술잔 사용하는 이유이지. 汝今一鼠不曾捕 너는 이제 한 마리 쥐로 일찍이 잡질 않고 顧乃自犯爲穿窬 도리어 스스로 벽을 뚫어대고 넘어다니는 짓을 하네. 鼠本小盜其害小 쥐는 본디 작은 도적으로 그 해는 작지만 汝今力雄勢高心計麤 너는 이제 힘도 웅혼하고 기세도 높으며 마음의 계책도 거칠어 鼠所不能汝唯意 쥐는 할 수 없는 짓을 너는 오직 멋대로 해서 攀檐撤蓋頹墍塗 처마에 오르고 덮개를 치우며 흙손질한 곳 무너뜨리니 自..
2. 너에게 날카로운 손톱과 이빨 준 이유가 있지 念此貍奴罪惡極 이 고양이의 죄악이 극심함을 생각자니 直欲奮劍行天誅 곧바로 칼을 빼어 천벌을 해하려 해도 皇天生汝本何用 하늘이 너를 태어나게 한 것은 본디 무슨 용도던가? 令汝捕鼠除民痡 너에게 쥐 잡아 백성의 아픔 덜어내려는 것인데 田鼠穴田蓄穉穧 들쥐 밭 구멍에 벼를 비축하고 家鼠百物靡不偸 집쥐 온갖 물건에 박하지 아니함 없으니, 民被鼠割日憔悴 백성들이 쥐의 빼앗음으로 날마다 초췌하고 膏焦血涸皮骨枯 기름 마르고 피가 말라 피골이 말라가네. 是以遣汝爲鼠帥 이 때문에 너를 보내 쥐의 원수가 되게 하여 賜汝權力恣磔刳 너의 권력으로 찢어발기게 하사했고 賜汝一雙熒煌黃金眼 너에게 한 쌍의 빛나는 황금 눈 하사했으며 漆夜撮蚤如梟雛 칠흑 같은 밤에 낚아챌 손톱은 같고 賜..
1. 쥐는 잡지 않고 온갖 패악질하던 고양이 南山村翁養貍奴 남산 마을의 노인네 고양이 기르니 歲久妖兇學老狐 나이 들자 간요해져 늙은 여우를 배워 夜夜草堂盜宿肉 밤마다 초당의 집 고기 훔쳐 먹으니 翻瓨覆瓿連觴壺 항아리와 장독대 술병까지 다한다네. 乘時陰黑逞狡獪 때에 어둠 타고 교활함을 드리우다가 推戶大喝形影無 문 밀치고 큰소리치면 모습 감추니 呼燈照見穢跡徧 호령하며 등불로 비추면 자취 남아 있고 汁滓狼藉齒入膚 이빨이 살갗에 들어간 듯 즙과 찌꺼기 낭자해. 老夫失睡筋力短 늙은이 잠 못 들고 근력도 다해서 百慮皎皎徒長吁 백가지 생각이 번뜩 드나 부질없이 긴 한숨. 인용 전문 해설
조세 징수 소리 하늘을 진동하네 경전사(經田司) 정약용(丁若鏞) 徵鄰徵里 徵族徵姻 이웃에 징수하고 마을에 징수하며 종족에 징수하고 혼인함에 징수하여 搜房掘地 懸首縛臂 방을 수색하고 땅을 파며 머리를 매달고 팔을 묶어 摘其錡釜 攘其犢豚 솥을 뒤적이며 송아지와 돼지를 가져간다. 一村騷然 哭聲震天 한 마을이 시끄러운데 곡소리가 하늘에 진동하네. 傷天地之和氣 천지의 화한 기운이 상하고 慘人煙之蕭瑟 인가의 쓸쓸함에 처참하다네. 此行所過 十室九空 이런 행위가 지나간 곳은 10집 중 9집이 비고 崩檐敗壁 牕戶欹傾 처마가 무너지고 담이 쓰러져 창문과 문이 기울어진다네. 인용 목차 작가 이력 및 작품 12년 2차 4번
교지를 받들어 순찰하다가 적성촌을 지나다가 짓다 봉지염찰도적성촌사작(奉旨廉察到積城村舍作) 정약용(丁若鏞) 1. 없는 살림에 아이들은 군적에 올라 공납해야 하네 臨溪破屋如瓷鉢 北風捲茅榱齾齾 舊灰和雪竈口冷 壞壁透星篩眼谿 室中所有太蕭條 變賣不抵錢七八 尨尾三條山粟穎 雞心一串番椒辣 破甖布糊𢾖穿漏 庋架索縛防墜脫 銅匙舊遭里正攘 鐵鍋新被鄰豪奪 靑綿敝衾只一領 夫婦有別論非達 兒穉穿襦露肩肘 生來不著袴與襪 大兒五歲騎兵簽 小兒三歲軍官括 兩兒歲貢錢五百 願渠速死況衣褐 →해석보기 2. 갚아야 할 곡식도 많은데 이런 사정 궁궐에 전할 길 없어라 狗生三子兒共宿 豹虎夜夜籬邊喝 郞去山樵婦傭舂 白晝掩門氣慘怛 晝闕再食夜還炊 夏每一裘冬必葛 野薺苗沈待地融 村篘糟出須酒醱 餉米前春食五斗 此事今年定未活 只怕邏卒到門扉 不愁縣閣受笞撻 嗚呼此屋滿天地 九重如..
2. 갚아야 할 곡식도 많은데 이런 사정 궁궐에 전할 길 없어라 狗生三子兒共宿 개가 세 마리 새끼를 낳아 아이들과 함께 자고, 豹虎夜夜籬邊喝 승냥이와 범은 밤마다 울타리 곁에서 울어대네. 郞去山樵婦傭舂 남편은 산에 나무하러 가고 아내는 방아질로 품 팔러 가니, 白晝掩門氣慘怛 대낮인데도 문 닫혀 있어 스산하다네. 晝闕再食夜還炊 낮에 두 번의 밥을 거르고 밤에 도리어 밥하러 불 때고 夏每一裘冬必葛 여름엔 매일 하나의 가죽옷으로, 겨울엔 반드시 갈포옷 입는구나. 野薺苗沈待地融 들판의 나물 싹은 잠겨 있어 땅 녹길 기다려야 하고, 村篘糟出須酒醱 마을에 술 나오려면 발효되길 기다려야 해. 餉米前春食五斗 지난 봄에 관아에서 꾼 쌀 다섯 말을 먹었으니 此事今年定未活 이 일로 금년엔 정히 살기 어렵겠구나. 只怕邏卒到門..
1. 없는 살림에 아이들은 군적에 올라 공납해야 하네 臨溪破屋如瓷鉢 시냇가 부서진 초가집 사기그릇 같고 北風捲茅榱齾齾 북풍에 이엉 밀려 서까래만 앙상해. 舊灰和雪竈口冷 묵은 재에 눈 내려 아궁이는 차갑고, 壞壁透星篩眼谿 무너진 벽에 별이 비치니 훤하다. 室中所有太蕭條 집에 있는 것들 크게 쓸쓸하여 變賣不抵錢七八 팔아도 돈 7~8푼도 안 되네. 尨尾三條山粟穎 개꼬리 같은 세 가닥 조 이삭 만 있고 雞心一串番椒辣 닭 심장 같은 한 꼬치의 고추는 맵기만 해. 破甖布糊𢾖穿漏 깨진 술 단지를 펴서 풀칠하여 뚫기고 샌 곳에 바르고, 庋架索縛防墜脫 시렁을 꽁꽁 동여매 떨어지는 것 막았네. 銅匙舊遭里正攘 동 수저는 예전에 이장에게 빼앗겼고, 鐵鍋新被鄰豪奪 철가마는 이번에 이웃 부자에게 빼앗겼지. 靑綿敝衾只一領 푸른 비..
해설. 유민탄을 평가한 허균과 이덕무 어무적의 「유민탄(流民歎)」은 당시 유민을 바라보고, 비통해하며 지은 시이다. 너희 가난한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이 고통스러운데, 나는 구제하고 싶지만 그럴 만한 힘이 없고, 저들 벼슬아치들은 너희를 구제할 힘은 있는데 마음이 없다. 못된 지방수령이나 왕명을 받들고 서울에서 나오는 무책임한 관인(官人)인 소인(小人)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군자다운 자세를 지니게 하여 백성들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 경청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조정에서 임금의 교지가 내려와 보아야 이것을 실천할 목민관이 없으니, 임금의 조서는 빈 종이나 다름없다. 특별히 암행어사를 보내 보아야 백성은 집 밖으로 나올 기력이 없으니, 어느 틈에 속사정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전설적인 목민관인을 ..
떠돌아다니는 백성들의 한탄유민탄(流民歎) 어무적(魚無迹) 蒼生難蒼生難 年貧爾無食我有濟爾心 而無濟爾力蒼生苦蒼生苦 天寒爾無衾彼有濟爾力 而無濟爾心願回小人腹 暫爲君子慮暫借君子耳 試聽小民語小民有語君不知 今歲蒼生皆失所北闕雖下憂民詔 州縣傳看一虛紙特遣京官問民瘼 馹騎日馳三百里吾民無力出門限 何暇面陳心內事縱使一郡一京官 京官無耳民無口不如喚起汲淮陽 未死孑遺猶可救 『續東文選』 卷之五 해석蒼生難蒼生難 창생난창생난 백성의 힘듦이여, 백성의 힘듦이여, 年貧爾無食년빈이무식흉년에 너흰 먹을 게 없구나. 我有濟爾心 아유제이심 나는 너흴 구제할 마음은 있지만, 而無濟爾力이무제이력너흴 구제할 권력은 없구나. 蒼生苦蒼生苦 창생고창생고 백성의 고통이여, 백성의 고통이여. 天寒爾無衾천한이무금추위에 너흰 이불이 없구나. 彼有濟爾力 피유제이력 저들은 ..
해설. 가렴주구에 우물세까지 이 시는 함경도 종성 지역의 문물과 풍속을 다룬 연작시(連作詩) 79수 중 일부분이다. 언 발에 오줌을 눈다고 따뜻해질 수 있을까? 잠시 따뜻해질 뿐 금방 더 추워진다. 올해 환곡(還穀)을 갚지 못했으니, 내년에는 얼마나 시련이 닥칠지 보지 않아도 알겠다. 살림이 어려워 환곡을 받아도 금방 먹어 버려 흔적도 없고, 환곡을 갚아도 형체가 없다. 백성에게 얼마나 가렴주구(苛斂誅求)를 하는지 우물까지 독점하여 물도 세금 내고 먹어야 한다. 세금 내라는 재촉에는 한마디도 못 하는데, 관리의 얼굴을 보면 마음부터 먼저 놀란다. 베를 열심히 짜서 관청에 세금으로 바치지만, 관청에서는 헐값으로 사들이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덕무는 『청비록(淸脾錄)』에서 박제가의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함경도 종성(鍾城)의 가렴주구를 읊다 수주객사(愁洲客詞) 박제가(朴齊家) 足凍姑撤尿 須臾必倍寒 언발에 일부러 오줌 놔도 잠깐이면 반드시 두배로 추워지는데 今䄵糴不了 明年知大難 올해 환곡 받질 못했으니 내년에 무척 어려울 테지. 曰糴亦無痕 曰糶亦無影 환곡 받아도 또한 흔적도 없고 환곡 갚아도 또한 그림자도 없구나. 賦民一桶水 官自榷官井 백성들의 한통 물에도 부세하니, 관리들은 관아의 우물을 독점하였네. 催租未發聲 見面心先駭 세금을 재촉하는 것엔 아무 소리 못하면서도 관리 얼굴 보면 마음이 먼저 놀라. 布直姑低昂 一任官門買 베 값의 오르내림은 한 번 관아에서 사는 것에 달려 있지. 인용 목차 작가 이력 및 작품 목민관이 시로 그린 유민도 해설
벌목의 노래 벌목행(伐木行) 성현(成俔) 寒風慘慘陰雲凝 찬 바람은 암담하고 음산한 구름 가득해, 千巖萬壑皆明氷 겹겹 바위와 골짜기 모두 얼음이 반짝이네. 嚴冬積雪高於陵 엄동에 쌓인 눈 언덕보다 높아 飛鳥欲過愁難乘 나는 새도 지나고자 하나 넘지 못할까 걱정하네. 山間籬落蝸縮殼 인간의 마을은 달팽이 껍질 같고 山人生理何蕭索 산 사람의 생활 어찌 스산한가. 行牽蘿蔓補牕牖 덩굴 가져다가 창가를 보수하고, 飢拾橡栗當大嚼 상수리와 밤을 주어 응당 크게 깨물며 겨울 나네. 里胥驅出星火催 아전은 쫓아 나와 성화처럼 재촉하니, 男扶女挽登崔嵬 남녀가 끌고 끌어주며 높은 산에 올랐으나, 懸鶉百結不掩脛 갈가리 기운 해진 옷은 정강이 가리지 못하고 手龜指落顏如灰 손은 텄고 손가락은 끊어졌으며 안색은 사색이네. 爭求大材不中用 다..
나라의 명령으로 농부에게 청주와 쌀밥을 금한다는 걸 듣고 문국령금농향청주백반(聞國令禁農餉淸酒白飯) 이규보(李奎報) 長安豪俠家 珠貝堆如阜 장안에 호화스런 집안엔 구슬과 돈이 언덕처럼 쌓였고, 舂粒瑩如珠 或飼馬與狗 찧어놓은 쌀이 영롱하기가 구슬 같으나, 혹 말과 개에게 먹이네. 碧醪湛若油 霑洽童僕咮 맑은 청주 담백하기가 기름 같아 하인 주둥이에도 적셔주네. 是皆出於農 非乃本所受 이것들은 모두 농부에게 나와 본래 받아야 할 것이 아니네. 假他手上勞 妄謂能自富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빌렸는데도 망령되이 “스스로 부를 이루었지.”라고 말한다. 力穡奉君子 是之謂田父 힘써 농사지어 군자를 봉양하니, 이런 이를 ‘농부’라 한다. 赤身掩短褐 一日耕幾畝 벌거숭이에 홑적삼으로 가리고 하루에 갈아봐야 몇 이랑이냐? 才及稻芽靑 ..
해설. 노년에 최씨정권의 한계를 보고 농부의 시선을 담다 이 시는 이규보(李奎報)가 직접 농부가 되어 서술하는 방식으로 기술되어 있다. 첫 번째 시에서는 사람의 몰골이 아닌 농부와 부귀호사(富貴豪奢)를 누리는 왕손공자(王孫公子)의 모습을 대비함으로써 대립적인 현실 관계를 매우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두 번째 시에서는 곡식을 가꾸는 농부와 아직 곡식이 익지도 않았는데 조세를 징수하는 관리를 역시 대조시키고 있다. 이규보(李奎報)는 젊은 시절 최씨 정권을 보다 새롭고 진취적인 세력으로 여겨 최씨 정권에 적극 가담하였다. 그러나 강화로 천도(遷都)한 후 지도층이 사치와 안락에 빠지고 농민은 전시과체제(田柴科體制)의 분해와 관리들의 대토지소유로 유민(流民)이 많아지는 것을 보고, 노년(老年)에 정권에 대한 ..
농부를 대신하여 노래하다대농부음(代農夫吟) 이규보(李奎報) 帶雨鋤禾伏畝中 形容醜黑豈人容王孫公子休輕侮 富貴豪奢出自儂 新穀靑靑猶在畝 縣胥官吏已徵租力耕富國關吾輩 何苦相侵剝及膚 『東國李相國後集』 卷第一 해석帶雨鋤禾伏畝中대우서화복무중비 맞으며 논 가운데 엎드려 김매니形容醜黑豈人容형용추흑기인용형용이 추하고 새카매 어찌 사람의 형상이리오. 王孫公子休輕侮왕손공자휴경모왕손과 공자들아 경시하거나 모욕하지 마라. 富貴豪奢出自儂부귀호사출자농부귀하고 호사스런 것이 우리들로부터 나오니. 新穀靑靑猶在畝신곡청청유재무새 곡식이 새파랗게 아직도 밭에 있는데 縣胥官吏已徵租현서관리이징조현의 아전과 관리는 이미 세금 징수하네. 力耕富國關吾輩력경부국관오배힘써 농사 지어 나라를 부강케 하는 건 우리 무리들과 관계가 있는데何苦相侵剝及膚하고상침박급..
해설. 세곡선 때문에 남쪽지방의 고통스러운 현실 고발 이 시는 세곡선(稅穀船)의 운반을 소재로 하여 북쪽에 비해 피해를 당하는 남쪽 지방의 고통스러운 삶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시격(詩格)』에 김종직(金宗直)의 문재(文才)에 대한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젊어서부터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이 높았고 시를 더욱 잘 지었는데, 정심하고 넉넉하며 세속의 구덩이에 빠지지 않아 근대의 시조(詩祖)로 추앙된다. 성종이 친서로 칭찬하기를, ‘문장과 경제(經濟)가 아울러 훌륭하다 말할 수 있겠다.’ 하였다[自少以文章名世 尤長於詩 精深醞藉 不落俗人窠臼中 推爲近代詩祖 我成廟御書褒之曰 文章經濟 可謂雙美].” 이 외에도 허균(許筠)의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는 김종직의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
가흥의 역참 가흥참(可興站) 김종직(金宗直) 嵯峨鷄立嶺 終古限北南 깎아지른 계립령은 예로부터 남북을 경계 지었네. 北人鬪豪華 南人脂血甘 북쪽 사람은 호화로움을 다투지만 남쪽 사람은 기름과 피를 빨리네. 牛車歷鳥道 農野無丁男 소수레는 새재 지나는데 농사짓는 들판엔 장정이 없구나. 江干夜枕籍 吏胥何婪婪 밤 강가에서 포개져 자는데 아전과 서리는 어째서 탐내는가? 小市魚欲縷 茅店酒如泔 작은 저자의 물고기는 실처럼 작고 주막의 술은 쌀뜨물 같은데 醵錢喚遊女 翠翹凝紅藍 돈을 갹출하여 기녀를 부르니 푸른 머리에 엉긴 붉고도 푸른 빛깔에 民苦剜心肉 吏恣喧醉談 백성은 괴로이 정신과 육체가 깎이지만 아전은 방자하게 시끄럽고 취한 채 말을 하네. 斗斛又討贏 漕司宜發慚 두와 말로 또한 남은 걸 계산하니 조사는 마땅히 부끄러워..
얼음을 쪼개는 노래 착빙행(鑿氷行) 김창협(金昌協) 季冬江漢氷始壯 음력 섣달 한강물 얼어 처음으로 꽝꽝한데 千人萬人出江上 천 사람, 만 사람 강가로 나오네. 丁丁斧斤亂相斲 쩌렁쩌렁 도끼들이 어지럽게 서로 쪼아내니 隱隱下侵馮夷國 은은하게 아래로 풍이국까지 침범한다네. 斲出層氷似雪山 깎아 나온 층층의 얼음은 설산 같고 積陰凜凜逼人寒 쌓인 얼음은 늠렬히 사람을 핍박하게 추위에 떨게 하네. 朝朝背負入凌陰 아침마다 등에 지고 음지를 얼음 저장고로 들어가고 夜夜椎鑿集江心 밤마다 망치와 끌 들고서 강 가운데에 모인다네. 晝短夜長夜未休 낮은 짧고 밤은 길지만 밤에도 쉬지 못하고 勞歌相應在中洲 노동요 서로 응하며 강 가운데 있는 다네. 短衣至骭足無屝 홑옷은 그저 정강이에만 이를 정도이고 발엔 짚신이 없어 江上嚴風欲墮指 ..
한씨네 개와 같은 지식인들을 바라먀 한구편 병술(韓狗篇 丙戌) 이건창(李建昌) 1. 역사가와는 다른 시인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이 시를 쓰다 季弟從西來 示我韓狗文 讀過再三歎 此事誠罕聞 史家重紀述 銘頌在詩人 二美不偏擧 吾今當復申 →해석보기 2. 사람만큼 영리하면서도 불의에 맞설 줄 알던 한씨네 개 狗也江西產 主人韓氏貧 所蓄惟此狗 神駿乃無倫 戀主而守盜 狗性固無論 如人忠孝士 智勇貴兼全 貧家無僮指 使狗適市廛 以包掛其耳 繫之書與錢 市人見狗來 不問知爲韓 發書予販物 其價不忍瞞 狗戴累累歸 掉尾喜且歡 邑豪欺主人 道遇與惡言 肆氣勢欲歐 狗見怒而奔 吽呀直逼前 如虎將噬豚 主人曰不可 麾之狗傍蹲 自後豪斂伏 畏韓如畏官 韓狗聞一邑 遠近爭來看 →해석보기 3. 옛 주인에 대한 의리를 지킨 한씨네 개 債家欲得狗 急來索錢還 無錢還不得 索狗手..
해설. 귀족벼슬아치들의 기회주의적 행태를 비판하다 「한구편」은 한씨네 개의 사적을 읊은 노래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제목이다. 작자 이건창의 아우가 그 사적을 기록한 글을 지었던바, 거기에 근거해서 이 「한구편」을 쓴 것이다. 서장에서 “사가(史家)는 기술을 중시하는데 / 새기고 기리는 일(원문은 명승銘頌) 시인에게 달렸[史家重紀述 銘頌在詩人]”다고 하였듯, 시양식이 갖는 특성을 인식하고 이 서사시를 지었다. 이 시는 이색적으로 개가 주인공이 되어 한 짐승의 형상화에 초점이 모아진 셈이다. 대략 네 단락으로 나누어지는데 시를 짓게 된 배경 설명이 1부 서장이다. 2, 3부에서는 개의 이러저러한 면모와 개를 중심으로 일어난 사건을 서술하여 그 형상을 부각시키며, 4부에서는 그를 인간 현실과 결부해서 끝맺는다...
4. 한씨네 개처럼 충성스런 신하가 그리운 이때 烏乎此狗義 可質於聖賢 아! 이 개의 의로움은 성현에게 질정할 만하다. 樂毅身在趙 終身不背燕 악의는 몸이 조나라에 있으면서도 끝내 연나라를 배반하지 않았고 徐庶心歸漢 居魏耻爲臣 서서는 마음으로 한나라로 귀의하자 위나라에 살면서도 신하되길 부끄러워했으며 王猛志中原 黽勉事苻秦 왕맹은 중원에 뜻을 뒀지만 부지런하게 부진을 섬겼으니 未若此狗事 義烈且忠純 이 개의 섬김이 의열하며 충순함만 못하다. 國家五百載 養士重縉紳 나라 500년에 선비를 기르고 진신들을 중히 여겼기 때문에 社稷如太山 環海無風塵 사직이 태산 같아 온 나라에 바람과 티끌이 없었지만 高官與厚祿 豢飫富以安 고관대작이 부유함과 편안함을 독차지 하고서 甘心附夷虜 賣國不少難 달갑게 오랑캐에 아부하며 나라를 팖..
3. 옛 주인에 대한 의리를 지킨 한씨네 개 債家欲得狗 急來索錢還 사채업자가 개를 갖고자 해서 급히 와 돈 돌려 달라 요구하는데 無錢還不得 索狗手將牽 돈이 없어 갚을 수 없자 개를 요구하고선 손으로 데려 가려 하자 主人抱狗語 垂淚落狗前 주인은 개를 안고 말하며 개 앞에 눈물만 흘리네. 何意汝與我 一朝相棄捐 “어찌 생각했겠니? 너와 내가 하루아침에 서로 떨어질 줄. 去貧入富家 賀汝得高遷 가난한 곳 떠나 부잣집으로 들어가니 네가 높은 곳으로 옮겨가게 되는 것 축하한다. 好去事新主 飽食以終年 좋아하며 가서 새로운 주인 섬기며 배불리 먹으며 한 평생 살으렴.” 別狗入屋中 思狗淚如泉 개를 보내고 방으로 들어와 개를 생각하니 눈물이 샘솟네. 出門視狗處 狗已中途旋 문을 나서 개가 있는 곳 보니 개는 이미 길 중간에서..
2. 사람만큼 영리하면서도 불의에 맞설 줄 알던 한씨네 개 狗也江西產 主人韓氏貧 개는 강서산이오 주인인 한씨는 가난해서 所蓄惟此狗 神駿乃無倫 기르는 건 오직 이 개뿐이었지만 신이한 준마인 듯 비할 게 없었다. 戀主而守盜 狗性固無論 주인을 사모하고 도둑을 지키는 건 개의 본성이라 진실로 말할 게 없고 如人忠孝士 智勇貴兼全 사람 가운데 충효한 선비가 지혜ㆍ용맹ㆍ귀함을 겸하여 다 갖춘 듯하네. 貧家無僮指 使狗適市廛 가난한 집이기에 일손이 없어 개에게 시장에 가게 했다. 以包掛其耳 繫之書與錢 싸서 개의 귀에 걸고 편지와 돈을 매달아 市人見狗來 不問知爲韓 시장 사람들이 개가 오는 걸 보면 묻지 않아도 한씨네 개임을 아니 發書予販物 其價不忍瞞 편지를 펼쳐 살 물건 줄 때엔 가격을 차마 속이질 못했다. 狗戴累累歸 掉..
1. 역사가와는 다른 시인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이 시를 쓰다 季弟從西來 示我韓狗文 막내가 서쪽을 따라 와서 나에게 「한씨네 개」라는 문장을 보여줬다. 讀過再三歎 此事誠罕聞 읽어 가다가 2~3번 탄식하게 되니 이 일은 정말로 드물게 들어본 것이었다. 史家重紀述 銘頌在詩人 역사가는 사실 쓰는 걸 중히 여기는데 새기고 기리는 건 시인에게 달려 있으니 二美不偏擧 吾今當復申 사가(史家)와 시인(詩人) 어느 하나만 치우치게 둘 수 없으니 내가 이제 마땅히 다시 말하겠다. 인용 작가의 이력 및 작품 전문 1. 역사가와는 다른 시인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이 시를 쓰다 2. 사람만큼 영리하면서도 불의에 맞설 줄 알던 한씨네 개 3. 옛 주인에 대한 의리를 지킨 한씨네 개 4. 한씨네 개처럼 충성스런 신하가 그리운 이때..
해설. 탐라기와 애절양 주인공인 김만덕은 제주도 출신으로 일찍이 여류 사업가로 성공한 인물이다. 『탐라기년록(耽羅紀年錄)』이란 제주도 역사를 기술한 책에서 그녀의 행적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행수(行首) 김만덕은 본 주(州)의 양가 여자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아로 어렵게 자라 고생하다가 교방(敎坊, 기방을 가리킴)에 의탁했는데, 근검절약하여 재산을 크게 이루었다. 이 해(을묘년, 1795) 봄에 온 섬에 큰 기근이 들자 만덕은 재산을 기울여 곡식을 무역해와서 많은 사람들을 살려냈다. 목사는 그녀를 훌륭하게 여겨서 나라에 보고했다. 임금이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자 ‘서울과 금강산을 한번 구경하고 싶을 뿐입니다’라고 하여, 특명으로 지나는 고을마다 치송, 서울로 오게 해서 내의원에 소속시켰다. 총애와 융..
제주민을 구휼한 김만덕 탐라기(耽羅妓) 황상(黃裳) 耽羅老妓女 小時佳冶人 탐라의 늙은 기녀는 소싯적 아리따운 사람이었지만 色衰鞍馬少 發憤殖萬緡 미모 쇠해 찾아오는 이 적자 화남을 발산하며 돈 불렸네. 門前八桅船 本自賣釵釧 문 앞에 돛대 배 있으니 본시 비녀와 팔찌 팔았네. 採螺送楸子 販米向棃津 소라 캐러 추자도로 보내고 쌀 팔러 이진으로 향하지. 遂令箱匳中 顆顆積珠玭 마침내 상자와 경대 속에 알알이 진주와 구슬 쌓였네. 鹽雨帶黑風 一島靡了民 소금비가 검은 바람 띠니 한 섬 백성이 쓰러지네. 九重旰其食 列郡疲恤鄰 조정에서 바빠졌지만 여러 고을 이웃을 구휼하느라 피폐해져 船粟嗟中絶 餓莩彌沙濵 배의 곡식이 아 중간에 끊겼구나! 굶주린 시체가 모래벌에 가득하네. 偉哉一兒女 仰助千乘仁 위대하구나! 한 아녀자가 우..
이무기 잡던 두 장수의 차이 금리가(擒螭歌) 이형보(李馨溥) 1. 이무기 잡으려는 사내를 만나다 達城禹生名不記 少以膂力出其類 適遊善山旗亭憇 偶如海西健兒値 健兒熟視亟起禮 挑燈因說心內事 去此近郊環大澤 巨螭攸伏窟宅邃 似龍無角是爲螭 照夜珍珠藏一二 常有寶氣罩水上 吾父往年望氣至 自恃强壯輕性命 凌波直入不少惴 手探螭頭絆大繩 重如巨巖力難試 鉅齒怒噴翻雪白 鐵䰇掀動劈山翠 忽見血色遍水面 其柰觸犯身爲餌 不除区醜誓不生 學得奇技經十燧 若竢技熟恐衰憊 今要一試來此地 且遇夫君壯健姿 吾事濟矣殆天賜 ⇒해석보기 2. 두 사람이 합심해 이무기를 잡다 喜見門外擧大石 二人同力何畏忌 綴連麻綯繞全腰 淬礪霜鋩繫左臂 趁朝共向澤畔立 正午獨自水中墜 生死便在綯動靜 煩君專心惟綯視 良久忽如釣絲搖 悉力牽挽庶可致 勵氣大呼引逾急 却恐少緩前功棄 始知幽物易縶紲 敢與猛士較..
해설. 해서 장사와 달성 장사의 차이 이 시는 앞의 「조령서 호랑이 때려잡은 사나이」와 유사한 작품이다. 역시 이야기 제보자가 작중에 등장하는바, 여기서는 작중 주인공과 일치하지 않는다. 길손 이야기꾼이 대구에서 우생이란 인물을 만나 들은 이야기를, 그 길손이 시인에게 들려주어 시인이 기록하는 식으로 되어 있다. 이 길손이 작중의 서술주체가 되어 그의 이야기를 듣는 모양이다. 그런데 후반의 결말 부분에서 서술시점이 옮겨져 당초 우생을 만나는 대구의 이야기 현장이 소개되며 이어서 “그 길손 정계 마을 들러 초가집 조촐한 방에서 / 재미난 이야기에 사람들 빨려드니 봄밤의 졸음도 달아났다네[客到淨溪茅齋靜 話酣渾忘春夜睡]”라고 시인이 이야기를 듣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작중의 주인공은 우생이다. 우생의 호쾌하..
4. 고기 먹은 후 헤어진 후 다신 만나지 못하다 年衰猶能飢寒耐 늙었지만 오히려 굶주림과 추위 견뎌내고 顔色敷膄行步利 안색은 펴지고 기름지며 걸음걸이 날쌔다네. 客過嶠南見禹生 손님이 영남을 지나다 우생을 보고 談屑淋漓直小醉 침 흥건히 자질구레 말하는데 다만 조금 취했다네. 健兒巧解擒螭者 “건강한 사람이 교묘히 이무기 풀어주는 이로 託言父死試我意 아비가 죽었다고 말하며 나의 뜻을 시험하려는 것이었죠. 我墮術中堪笑殺 내가 술수에 빠졌으니 비웃을 만하고 悔不曝肉弆篋笥 후회스러운 것은 고기 말려 상자에 저장하지 않은 거라오. 錢貨尙可買珍寶 돈은 오히려 보물 살 수 있지만 蔘朮猶難救衰悴 인삼은 오히려 쇠함을 구제하기 어렵네. 健兒一去不復見 건강한 사람이 한 번 떠나 다시 보지 못했으니 殲得幾螭幾人飼 몇 마리 이무..
3. 사냥 후에 거짓말이 들통나다 背立少項頻回眄 등으로 서서 잠깐 동안에 자주 고개 돌려 보며 有若摘物鞘中置 물을 뒤적이듯 하다가 칼집 속에 넣네. 豈將快事遮却眼 장차 장쾌한 일에 도리어 눈을 차단시키는 건 무엇인가? 是必珍珠藏之秘 이것은 반드시 진주 감추길 비밀스레 하는 거겠지. 爲防吾心猜克萠 달성 장사의 마음에 시기가 싹트는 데 막을 수 없으니 重利人情便忘義 이익을 중히 여기는 것이 인정이라지만 곧 의를 잃게 되지. 俄然擲刀前致辭 갑자기 칼을 던지고 앞에 나가 말하네. 感君臨危不巧避 “그대가 위험함에 임해 교묘하게 피하지 않음에 감격했소. 曾聞螭肉却人老 일찍이 들으니 이무기 고기는 사람의 늙음을 물리치다 하대요. 歧黃何無一說備 의서(醫書)에 한 마디 말도 갖춰져 있지 않겠으리오. 但願哺啜隨意足 다만 ..
2. 두 사람이 합심해 이무기를 잡다 喜見門外擧大石 기쁘게 문 밖에 보고 큰 바위 드니 二人同力何畏忌 두 사람이 힘을 합하면 무에 두렵고 꺼려지리오? 綴連麻綯繞全腰 삼을 연이어 묶고 온 허리에 둘렀고 淬礪霜鋩繫左臂 서리발 칼을 갈아 왼쪽 팔에 맸네. 趁朝共向澤畔立 아침에 함께 가서 연못에 섰고 正午獨自水中墜 정오에 홀로 물 속으로 떨어졌네. 生死便在綯動靜 “생사가 곧 끈의 동정에 달렸으니 煩君專心惟綯視 그대 마음을 온전히 해 오직 끈만 보게.” 良久忽如釣絲搖 진실로 오래되어 문득 낚시줄처럼 흔들려서 悉力牽挽庶可致 힘을 다해 끌어 당겨 겨우 이를 만했네. 勵氣大呼引逾急 기운을 북돋고 크게 소리내며 급히 끌어대는데 却恐少緩前功棄 도리어 조금이라도 느리면 전의 공이 버려질까 두렵네. 始知幽物易縶紲 처음엔 숨은..
1. 이무기 잡으려는 사내를 만나다 達城禹生名不記 달성군의 우생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少以膂力出其類 어렸을 적 완력이 무리 중에서 출중했네. 適遊善山旗亭憇 선산에 놀러 가서 주막에서 쉬는데 偶如海西健兒値 우연히 황해도의 건강한 사내 만났네. 健兒熟視亟起禮 건강한 사내 뚫어져라 보다가 재빨리 예를 차리며 挑燈因說心內事 등불 심지 돋우고 심사의 일을 말하네. 去此近郊環大澤 “거리가 가까운 근교에 큰 연못이 에워싸 있는데 巨螭攸伏窟宅邃 큰 이무기가 굴 깊은 곳에 엎드려 있소. 似龍無角是爲螭 용과 같지만 뿔이 없어 이무기가 되니 照夜珍珠藏一二 진주 1~2개를 감춘 것이 밤에 비춰 常有寶氣罩水上 항상 보물이 기운이 있어 수면을 덮죠. 吾父往年望氣至 우리 아버지 예전에 기운의 왕성함만을 기대하고 自恃强壯輕性命 ..
세재에서 범에게 물린 새색시 구해낸 이야기 조령박호행(鳥嶺搏虎行) 이형보(李馨溥) 산문. 익산 사내가 새벽에 들려준 이야기 壬寅五月下澣, 同州金某, 偕一客而至, 客林氏也. 家益山, 年六十三, 顔髮不凋皺. 少以膂力稱, 常自晦不衒云. 夜闌風欞, 話鳥嶺事, 氣義甚壯, 乃其少日事也. 客去, 作長句. ⇒해석보기 1. 범에게 물린 새색시를 구하다 我聞鳥嶺自童髫 嶺是關防設城譙 一路上下三十里 松檜晝陰虎豹驕 朝日征客羸馬遲 嚴瀑怒吼風蕭蕭 忽見傍道石壁下 行人相聚生喧囂 停驂問之不肯道 齊向石壁手指遙 仰看石壁幾百尺 上有婦人衣綺綃 始知遇虎被攫去 但料其死生不料 客乃換戴僕夫笠 翻身騰上何健趫 草樹如織虎安在 只見紅粧倚叢條 少焉虎至恣咆哮 手挺鐵鞭搏頭腰 倒僵石上血淋漓 猛獸易如殲一貓 禮防逾嚴蒼黃裏 俯視僕御不可招 上下嚴嵁如旋風 指揮女奴共一轎 步..
해설. 민중의 영웅과 이야기꾼 이 시는 호랑이를 때려죽인 장사 이야기를 엮어서 한 민중영웅의 형상을 표출한 것이다. 작품은 앞의 산문으로 쓴 머리말, 다음에 호랑이를 잡은 전말을 서술한 전반부와 그 이야기를 구연(口演)하는 현장을 묘사한 후반부로 이루어져 있다. 후반부에서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직접 출연하는바, 전반부의 경이로운 이야기는 바로 그 자신의 경험담인 것이다. 이 작품에서 민중 기질의 호협한 인간을 만나게 되는 것이 무엇보다 흥미롭다. 호랑이는 실로 옛날 옛적부터 인간의 무서운 적이었으니, 호랑이 말만 들어도 우는 아기 울음을 그친다 할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호랑이의 웅장한 이미지 앞에서 인간은 약소했던 셈이다. 그런데 지금 작중 주인공이 남의 위급함에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나서는 태도..
2. 밤새 들었던 이야기 吾州金君携一客 우리 고을 김군이 한 손님을 데려와 穿到柳陰慰寂寥 버들 녹음을 뚫고 이르러 적막함을 위로하네. 客有絕技常自晦 손님은 뛰어난 기예가 있음에도 항상 스스로 감춰 南紀益山時蹔僑 남쪽 익산에서 잠시 산다고 하네. 曾吾聞觀多駭怵 일찍이 내가 듣고 본 것이 많이 기이하고 두려운 것인데 誰憐邇來壯心凋 누가 근래엔 장엄한 마음 시듦을 애석해 하는가? 年踰六旬氣貌旺 나이 60을 넘었지만 기는 왕성해 髮如塗澤齒不搖 머리는 염색한 듯 윤기나고 이는 흔들리지 않는다네. 佳話縷長解我㶊 재밌는 이야기 실처럼 기니 나의 턱이 풀어지고 松露竹風作淸宵 소나무의 이슬과 대나무의 바람으로 맑은 새벽이었네. 少時一日食一牛 “젊었을 땐 하루에 한 마리 소를 먹어 性喜生聶雜薑椒 성품상 육회에 생강과 산초..
1. 범에게 물린 새색시를 구하다 我聞鳥嶺自童髫 내가 듣기로 새제는 어렸을 때부터 嶺是關防設城譙 제엔 관문방어하는 곳으로 성과 망루 설치되어 있고 一路上下三十里 한 길 오르내리는 30리 길로 松檜晝陰虎豹驕 소나무와 노송나무로 낮에도 그늘져 범과 표범이 교만 떤다네. 朝日征客羸馬遲 아침에 먼 길 떠나는 나그네와 여윈 말 느리니 嚴瀑怒吼風蕭蕭 우렁찬 폭포소리 성낸 듯 울리고 바람은 쓸쓸히 부네. 忽見傍道石壁下 문득 길가 돌벽 아래를 보니 行人相聚生喧囂 행인들이 서로 모여 시끄러운 소리 낸다네. 停驂問之不肯道 준마 멈추고 물었지만 기꺼이 말해주질 않고 齊向石壁手指遙 일제히 돌벽 향해 손가락으로 멀리 가리키네. 仰看石壁幾百尺 돌바위 올려 보니 몇 백척인지? 上有婦人衣綺綃 위에 아낙의 비단 옷 있네. 始知遇虎被攫..
산문. 익산 사내가 새벽에 들려준 이야기 壬寅五月下澣, 同州金某, 偕一客而至, 客林氏也. 家益山, 年六十三, 顔髮不凋皺. 少以膂力稱, 常自晦不衒云. 夜闌風欞, 話鳥嶺事, 氣義甚壯, 乃其少日事也. 客去, 作長句. 해석 壬寅五月下澣, 同州金某, 임인(1842)년 5월 하순에 같은 고을 김 아무개가 偕一客而至, 客林氏也. 한 손님과 함께 이르렀는데 손님은 임씨였다. 家益山, 年六十三, 집은 익산이고 나이 63세인데도 顔髮不凋皺. 얼굴과 머리가 주름 잡히거나 세지 않았다. 少以膂力稱, 常自晦不衒云. 젊어 완력으로 칭송되었지만 항상 스스로 숨기고서 자랑치 않았다 한다. 夜闌風欞, 話鳥嶺事, 새벽에 바람이 격자창에 불 때 새제의 일을 이야기 하는데 氣義甚壯, 乃其少日事也. 의기가 매우 씩씩했고 젊을 적 일이라 했다..
명나라 궁녀 굴씨가 조선에 온 사연 숭정궁인굴씨 비파가(崇禎宮人屈氏 琵琶歌) 신위(申緯) 산문. 조선으로 들어온 비파 명인 굴씨의 파란만장한 삶을 남기게 된 사연 屈氏蘓州良家子, 幼選侍長秋殿, 崇禎末, 李自成陷京師, 屈氏逃匿民間, 及自成敗, 屈氏爲淸九王所獲, 常置軍中. 我昭顯世子質于瀋, 以屈氏隷焉, 竟從至國, 屬萬壽殿, 事莊烈王妃. 屈氏善琵琶, 又能擾禽獸指使, 無不如意. 有弟子進春者幷傳法. 孝廟甞詢䯻制於屈氏, 今士大夫家䯻制自屈氏, 則屈氏固多識也. 屈氏旣東來, 常泫然北望, 年七十餘將死, 語其人曰: “幸埋我西郊路.” 不忘首邱也. 肅廟命廣平田氏主屈氏祀, 歲給祭需, 至今不絶. 田氏亦明朝尙書應揚之後云. 余聞老梨園言, 屈氏隨世子出, 居鄕校坊邸, 往往召梨園數輩, 隔簾授琵琶指法, 今尙有姜典樂者私淑焉. 其甞所御琵琶, 紫..
해설. 예인으로서의 굴씨를 형상화하다 이 시는 명의 마지막 황제의 궁녀로 유락하여 마침내 우리나라에 와서 죽은 굴씨를, 그의 유물인 비파에 얽힌 이야기로 엮은 것이다. 굴씨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정재륜(鄭載崙)이 『한거만록(閒居漫錄)』에서 기록을 남긴바, 이로부터 그의 사적이 차츰 드러나게 되었다. 『한거만록』에 임창군(臨昌君) 이혼(李焜)이 굴씨를 위해 지은 묘지(墓誌)가 인용되어 있으므로 그 일부를 여기에 소개한다. 저(姐)는 성이 굴씨로 중국 소주부(蘇州府) 소천현(蘇川縣) 사람이다. 7세에 뽑혀서 궁중으로 들어와 효순(孝純) 유태후(劉太后)를 모셨으니 태후는 곧 회종(懷宗)황제의 생모다. 숭정 갑신년(1644) 3월에 유적(流賊)이 황성을 함락하더니 이윽고 청인이 유적을..
3. 후대에 되살아난 굴씨의 악기 弟子進春學新飜 제자 진춘이 새로운 악보와 幷擾禽獸傳糟粕 아울러 동물 길들이는 법의 어설픔을 배웠네. 而來二百年無聞 그러나 이백년 흘러 전해지지 않아 惆悵人琴兩冥漠 슬프구나. 사람과 비파 두 가지가 어둡고 막막함이. 逤邏檀槽蹙鳳紋 라사의 자단목의 좁아지는 곳엔 봉황무늬 잇고 金縷玉質光灼爍 금색 실에 옥빛 바탕이라 광택이 반짝반짝이네. 豈知屈氏琵琶尙人間 어찌 굴씨의 비파가 아직도 인간세상에 있다는 걸 알았으리오? 鵾絃鉄撥隨風蘀 곤으로 만든 비파줄과 연주하는 철발이 바람 따라 끊어져 宮商附木木不言 궁상의 음계 나무에 붙었지만 나무는 말이 없고 庸奴淘井事可愕 하찮은 종놈의 우물 뜨개가 되었으니 이 일 경악할 만하네. 姜君歎息爲重裝 강군은 탄식하며 거듭 고치니 翠鳳昂首靈龜旁礴 비..
2. 고향을 떠나 조선에 온 비파의 달인 굴씨 崇禎宮女搊琵琶 명나라 숭정제의 궁녀가 비파 타는데 鼎革身羇九王幕 왕조가 바뀔 때 몸이 청나라 구왕의 막사에 매였네. 蒼黃步趨壽皇亭 경황 없이 수황정에서 달려 도망쳐 恨不以殉命之薄 따라 죽지 못한 운명의 박함이 한스럽네. 思歸公子幸相隨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소현세자를 다행스레 서로 따라 東流之水花漂泊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표류하는 꽃 같았네. 莊烈閤裏第一人 장렬왕후 모신 이들 중 제일 뛰어난 이로 萬壽殿中春綽約 만수전 속 봄의 작약 같네. 破撥聲繁恩怨長 소리 번거롭게 튕김에 은혜와 원한이 길어 風沙猶覺繞簾閣 모래바람이 오히려 발 친 누각을 에워싸는 것처럼 들리는 걸 깨닫네. 性靈屢伏善才曹 성령이 자주 장악원 예인들들이 감복했고 汎瀾相對供奉駱 줄줄 흘리는 ..
1. 비파란 악기에 대해 琵琶本是馬上絃索 비파는 본래 말 위에서 줄 타는 것으로 釋名以爲蕃中所作 『석명(釋名)』에선 ‘변방에서 만든 것이다’라고 하고 順手曰秕逆手把 손을 순조롭게 하면 ‘비(秕)’라 했고 손을 거슬리면 ‘파(把)’가 나서 一絃一聲推又郤 밀고 또 당김에 한 줄에 한 소리라네. 不知何時此器入漢宮 모르겠구나. 어느 때 이 악기가 한나라 궁궐에 들어왔다가 復隨烏孫公主傷流落 다시 오손공주 따라가 고향을 떠남에 속상해 했던가? 杜摯則云長城築時 두지는 만리장성을 쌓을 적에 絃𪔛而鼓苦秦虐 현도로 진나라 학정의 괴로움을 두드렸네. 漢樂蕃樂不一名 한나라 악기와 변방의 악기 이름 통일되지 않았고 拗項直項無定矱 목이 꺽인 것, 목이 곧은 것으로 정해진 표준도 없었네. 인용 전문 작가 소개 ① ② ③ ④ ⑤ ⑥..
산문. 조선으로 들어온 비파 명인 굴씨의 파란만장한 삶을 남기게 된 사연 屈氏蘓州良家子, 幼選侍長秋殿, 崇禎末, 李自成陷京師, 屈氏逃匿民間, 及自成敗, 屈氏爲淸九王所獲, 常置軍中. 我昭顯世子質于瀋, 以屈氏隷焉, 竟從至國, 屬萬壽殿, 事莊烈王妃. 屈氏善琵琶, 又能擾禽獸指使, 無不如意. 有弟子進春者幷傳法. 孝廟甞詢䯻制於屈氏, 今士大夫家䯻制自屈氏, 則屈氏固多識也. 屈氏旣東來, 常泫然北望, 年七十餘將死, 語其人曰: “幸埋我西郊路.” 不忘首邱也. 肅廟命廣平田氏主屈氏祀, 歲給祭需, 至今不絶. 田氏亦明朝尙書應揚之後云. 余聞老梨園言, 屈氏隨世子出, 居鄕校坊邸, 往往召梨園數輩, 隔簾授琵琶指法, 今尙有姜典樂者私淑焉. 其甞所御琵琶, 紫檀槽, 文理盤蹙, 光鑒毛髮. 後人不知其樂器, 用爲陶井之具, 甚至屈辱廠中. 姜若山偶得於天潢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