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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강가 여자의 노래 강상여자가(江上女子歌) 이광정(李光庭) 1. 원통한 죽음을 앙갚음하러 길을 떠나다 江上持瓢誰氏兒 玉貌蹣跚兩相隨 自言幼少不知家 三歲零丁逐寒鴉 阿爺南州責逋奴 歸舟正與商人俱 巨禍潛祟越中裝 寃魂夜泣吳天霜 兒齡八九尠兄弟 四顧茫茫無所抵 父死尸沒向誰叩 讎强身弱難容手 秪與兒婢兩結束 出家號呼竆山谷 變衣匿跡尋讎去 風行草宿靡處所 懷中的皪雙金刀 頭上髼鬆兩蓬毛 丹衷耿耿天日皎 秋岸三紅河上蓼 →해석보기 2. 열 살의 소녀가 아버지 원수를 갚다 商人逐利無東西 昨夜舟泊銅江堤 林烏啞啞霜月白 碧波碇沈囂語寂 江妃嗚泣助煩寃 約束睡魔噤一村 金刀跳出神獨知 一擲正中讎人脾 斬胷茹肝復歸路 曉霧瞳矓汀上樹 →해석보기 3. 복수할 수 있는 깡다구가 있던 조선 여자의 힘 天明客子爭奔走 死與尸者果誰某 是夜寄宿老婆女 隔牕暗聞兩兒語 爲言終始僅如..
해설. 연약한 여자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은 이야기를 형상하다 여자의 연약한 몸으로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갚았다는 이야기는 야담으로 전하는 것이다. 그 이야기가 원주 땅에 은거했던 학자 정시한(丁時翰)에 결부되어 꾸며진 것도 있고, 삼남(三南)에서 기사(奇士)로 알려졌던 소응천(蘇凝天)에 연결된 것도 있다. 후자는 안석경(安錫儆)의 손에서 「검녀(劍女)」라는 한문단편으로 빼어나게 작품화된 것이다. 이 시는 원수를 갚은 사건을 전하는 매개자를 주막의 할멈으로 설정하였다. 할멈이 작중화자다. 야담에서 명망가에 결부시켜 흥미를 끌게 한 방식과는 다르다. 시는 어린 소녀의 몸으로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다는 사실 자체를 중시하고, 그것의 의미를 드러내는 데 치력(致力)한다. 내용을 극히 단순화시키면서 작중화자를 평범..
3. 복수할 수 있는 깡다구가 있던 조선 여자의 힘 天明客子爭奔走 하늘이 밝아오니 나그네들 분주함을 다투지만 死與尸者果誰某 죽인 자와 죽은 자는 과연 누구인가? 是夜寄宿老婆女 이 밤에 기숙하던 할머니는 隔牕暗聞兩兒語 창 너머로 몰래 두 아이의 말을 듣고는 爲言終始僅如此 말했다. “시작과 끝이 겨우 이러하니, 不知何許小娘子 어떠한 어린 낭자인지는 알지 못한다네.” 聞者相傳但涕淚 듣는 사람들이 서로 전하며 다만 눈물 흘릴 뿐 肎料稚顔辦大事 어찌 생각했으랴. 어린 소녀가 대사를 해낼 줄을. 重男賤女世人情 아들을 중히 여기고 딸을 천히 여기는 세상의 인정이지만 十子何如一女英 열 명의 사내 어찌 한 명의 영리한 딸만 하겠는가. 君看千古復讎人 그대 보시오. 천고의 복수했던 사람 중에 未有年齡如此倫 나이가 이와 같은..
2. 열 살의 소녀가 아버지 원수를 갚다 商人逐利無東西 상인은 이끗을 따라 사방 다니다가 昨夜舟泊銅江堤 어젯밤 배를 銅雀津에 대었지요. 林烏啞啞霜月白 숲 까마귀 까악까악 울고 서리 맞은 달은 새하얘 碧波碇沈囂語寂 푸른 파도에 닻 내리자 떠들썩하던 말도 잔잔해졌죠. 江妃嗚泣助煩寃 강비가 오열하여 번뇌한 원혼을 도우니 約束睡魔噤一村 졸음귀신에 묶여 한 마을 적막해졌죠. 金刀跳出神獨知 금빛 칼 빼어 내니 귀신만이 홀로 알고 一擲正中讎人脾 한 번 던지니 바로 원수놈 가슴팍에 맞았죠. 斬胷茹肝復歸路 가슴을 베어 간을 씹고서 다시 길로 나왔더니, 曉霧瞳矓汀上樹 새벽안개만 강가의 나무에 희미했죠.” 인용 전문 1. 원통한 죽음을 앙갚음하러 길을 떠나다 2. 열 살의 소녀가 아버지 원수를 갚다 3. 복수할 수 있는 깡..
1. 원통한 죽음을 앙갚음하러 길을 떠나다 江上持瓢誰氏兒 강가에서 바가지 든 이는 누구의 아이인가? 玉貌蹣跚兩相隨 옥 같은 모습으로 비틀비틀 둘 서로 따르네. 自言幼少不知家 스스로 말하네. “어려서부터 집은 모르고 三歲零丁逐寒鴉 3년에나 외로이 찬 까마귀 쫓았죠. 阿爺南州責逋奴 아버지는 남쪽 땅에서 도망간 노비를 잭임 맡아 歸舟正與商人俱 돌아오는 배에서 바로 상인들과 함께 했답니다. 巨禍潛祟越中裝 큰 재앙과 남모를 재앙이 월나라 전대에서 일어나 寃魂夜泣吳天霜 원통한 아버지의 혼이 밤새 오나라 서리에서 울었답니다. 兒齡八九尠兄弟 제 나이 8~9세에 남자 형제가 없어 四顧茫茫無所抵 사방으로 막막하여 저항할 수 없었어요. 父死尸沒向誰叩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시신은 사라졌으니 누굴 향해 물으며 讎强身弱難容手 원수..
기생의 절개라 하여 하찮게 여기지 말라 단천절부시(端川節婦詩) 김만중(金萬重) 지은 이유. 미천한 신분 때문에 절개를 지켰음에도 정표되지 못하다 節婦名逸仙, 端川官妓也. 本郡報其節行, 禮官以素賤, 抑而不旌. 豫讓不死於范中行而死於智氏, 先儒奚取焉? 其言不曰: “士爲知己者死乎.” 余時爲儀部員外, 蓋嘗陳以此義, 退而綴其行實, 以爲歌詩. 庶幾樂府所錄「秦羅敷焦仲卿妻詩」遺意云. ⇒해석보기 1. 서울로 떠나야 하는 낭군과 단천에 남아야 하는 일선 皚皚黑山雪 鮮鮮濁水蓮 皎皎靑樓婦 自名爲逸仙 逸仙小家子 初不學詩禮 感郞一顧恩 本無衿帨誡 郞爲上舍生 家在京城裏 妾爲端州婢 去留不由己 ⇒해석보기 2. 헤어지던 날 피로 맹세하다 喔喔晨鳴鷄 燭燭晨明月 蕭蕭征馬嘶 行子侵晨發 逸仙送上舍 相送雲嶺頭 嶺頭有流水 各自東西流 流波日以遠 千里復..
해설. 시인의 감정은 담지 않고 계급적 억압을 담담이 담아내다 이 시는 한 기생 신분의 여성이 사랑과 절조를 지킨 이야기를 서술한 것이다. 시인은 자서(自序)에서 이 사적(事蹟)은 자신이 예조좌랑(禮曹佐郎)으로 있을 때 접수된 것으로 밝혔다. 「서포연보(西浦年譜)」에 김만중이 예조좌랑에 보임된 것은 을사년 5월인데 이 「단천절부시(端川節婦詩)」를 지은 것도 그해의 일로 기록하고 있다. 시의 창작연도는 그의 나이 29세 때인 현종 6년(1665)인 것이다. 함경도 『단천읍지(端川邑誌)』를 보면 열녀조(烈女條)에 ‘관비일선(官婢一仙)’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기(妓)는 신분적으로 비(婢)에 속하기 때문에 관비(官婢)라고 했을 것이며 이름은 한자로 표기되는 과정에서 각기 다르게 씌어졌을 것이다. “일선은 소시에..
7. 세상에 드문 절개이니 역사가들이여 소홀히 말라 春露何圑圑 秋霜被草莾 봄이슬은 어찌나 동글동글한가? 가을서리가 풀더미에 입히네. 嵽嵲北邙陂 纍纍四尺墓 우뚝한 북망의 언덕에 즐비한 4척의 무덤들. 朝挹澗中水 暮攀松柏樹 아침에 시내의 물 긷고 저녁엔 소나무 잣나무 어루 만지며 妾淚樹可枯 妾恨城可崩 첩의 눈물에 나무는 고사할 만하고 첩의 한에 성은 무너질 만하네. 慟哭流泉咽 哀響散靑冥 통곡은 샘에 흘러 오열하고 애통한 울림은 푸른 하늘에 흩어져 어둡네. 羈禽爲嘲哳 孤獸爲跼顧 새장 속 새 이 때문에 울고 외로운 짐승 이 때문에 머뭇거리며 돌아보네. 行人盡回首 駐馬不忍去 행인은 모두 고개를 돌리고 멈춘 말들 차마 떠나질 못하네. 苦節世所希 姬姜亦不如 괴로운 절개 세상에 드문 것이니 궁중의 아녀자라도 같이할 수..
6. 서울에 들어와 결국 한 가족으로 인정받다 朝越咸州關 暮渡城川江 아침에 함주의 관문을 넘고 저녁에 성천의 강을 건너니 肌裂朔野風 足瘃鐵嶺霜 살갗이 북녘 매서운 바람에 찢어지고 발이 철령의 서리에 동상 걸리네. 望見東郭門 痛哭穿衢街 동대문을 바라 보고 통곡하며 길거리 지나니 京洛百萬戶 何處是君家 서울의 많고 많은 집들 어느 곳이 낭군의 집인가? 路從相識問 君家誠易知 길을 가며 서로 아는가 물어보니 낭군의 집 진실로 알기 쉽네. 外庭設柳車 內庭設素帷 바깥 뜰에 유거 설치되어 있고 안쪽 뜰엔 흰 장막 설치되어 있네. 遠行已有日 親賓紛雜沓 낭군 멀리 떠난 지 이미 여러 날이라 친지와 빈객이 분주하게 어지러이 섞이네. 上堂拜尊姑 慈顏忽不睪 당에 올라 시어머니께 절하니 자상한 얼굴이 갑자기 즐거워하지 않더니 咄..
5. 색이 변한 동심결과 낭군의 비보 朝朝啓箱篋 珠淚雙雙結 아침마다 상자를 열고 구슬같은 눈방울 쌍쌍이 맺히니 篋中亦何有 有郞頭上髮 상자 속엔 또한 무엇 있는가? 낭군 머리 위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동심결 있네. 如何九秋霜 染此綠雲鬒 어째서 9월 가을 서리에 이 푸른 머리카락이 오염되었는가? 見此心內痛 心知人事變 이걸 보니 마음이 내심 아프니 마음으로 사람 일의 변화 알겠구나. 客從京洛至 遺我一書札 손님이 서울로부터 와서 나에게 한 편지를 주네. 開緘讀未竟 長慟肝腸絶 편지를 열어 다 읽지 못했는데 길이 애통스러워 애간장 끊어지네. 上堂辭阿母 下堂理行裝 당에 올라가 기생어미에게 사직인사 하고 당에서 내려와 행장 꾸리네. 東市賣金釵 西市賣羅裳 동쪽 저자에서 금 팔찌 팔고 서쪽 저자에서 비단 치마 팔아 南市買苴..
4. 수청을 거부한 일선, 죽기를 결심하다 逸仙謝差人 不幸惡疾纏 일선은 관리에게 말했다. “불행히 나쁜 질병에 얽매여 衆人所厭避 況可侍貴人 뭇 사람이 싫어하며 피하는데 하물며 귀한 사람을 모시는 것에는 오죽하겠습니까.” 差人還致辭 一如逸仙言 관리가 돌아와 말을 마치길 한결같이 일선의 말대로 했지만 未回太守意 反觸太守嗔 태수는 뜻을 바꾸지 않고 도리어 태수의 성냄에 저촉되었네. 阿母心煩惱 曰兒一何愚 기생어미가 내심 번뇌하다가 말했네. “요년아 한결같이 뭐에 걱정하누? 生爲娼婦身 悅己人盡夫 나서 기생의 몸이 되었으니 자기 좋아해주는 사람이 모두 남편인 걸. 雖爲人所賤 亦爲人所憐 비록 남들이 일천하게 여기지만 또한 사람들이 가련하게도 여기기도 하지. 何況侍按使 平地登神仙 더군다나 안찰사를 모시는 것은 평지에서..
3. 단천에 들른 안찰사 일선에게 맘을 품다 按使從西來 玉節何煌煌 안찰사(按察使)가 서쪽으로부터 오는데 옥절이 어찌나 번쩍이던지. 璽書在馬頭 道路自生光 옥새 찍힌 공문서 말머리에 있으니 길에 절로 빛이 나네. 按使飭無驅 襜帷暫踟躕 안찰사가 몰지 말도록 주의 주니 귀인의 수레가 잠시 머뭇거리네. 將爲問謠俗 抑爲戒畏途 장차 소문과 풍속 물으려는지 아니면 위험한 길 경계하려는지? 按使無所問 按使無所戒 안찰사는 묻는 게 없고 안찰사는 경계하는 게 없지만 怳然若有覩 中心自歡喜 황홀한 듯 보게 있는지 내심 스스로 기뻐하네. 太守敬按使 飾妓侍中房 태수는 안찰사를 공경해 기녀를 꾸며 중방에서 시중들게 하니 北方出傾城 東隣進名倡 북방의 경성지색 나오게 하고 동쪽 이웃의 이름난 창기 나오게 하네. 室內贈羅襦 小衙脫明璫 집..
2. 헤어지던 날 피로 맹세하다 喔喔晨鳴鷄 燭燭晨明月 꼬끼오 새벽닭이 울고 환하디 환한 새벽달이 밝아 蕭蕭征馬嘶 行子侵晨發 쓸쓸히 정벌하러 가는 말 울어대고 떠나는 이 새벽에 이르러 출발하네. 逸仙送上舍 相送雲嶺頭 일선은 유생을 전송하러 서로 마운령(摩雲嶺) 정상에서 전송하네. 嶺頭有流水 各自東西流 마운령 정상에서 흐르는 물 각각 절로 동쪽으로 서쪽으로 흘러 流波日以遠 千里復千里 흐르는 물결은 날로 멀어지니 천 리에 더하여 천 리라네. 上舍謂逸仙 此別如此水 유생이 일선에게 말하네. “이 이별은 이 물과 같으니 盛年不可棄 空床難獨守 융성한 나이 버릴 순 없고 빈 침상은 독수공방하기 어렵우며 宛宛楊柳枝 一一行人手 구불구불 버들개지의 가지 하나하나 떠나는 이의 손에 있네. 善事新夫壻 時時懷故人 잘 새로운 남편..
1. 서울로 떠나야 하는 낭군과 단천에 남아야 하는 일선 皚皚黑山雪 鮮鮮濁水蓮 검은 산의 희디 흰 눈처럼 흐린 물에 신선하디 신선한 연꽃처럼 皎皎靑樓婦 自名爲逸仙 푸른 누각의 순백의 아낙은 스스로 일선이라 이름한다네. 逸仙小家子 初不學詩禮 일선은 없는 집 자식으로 처음엔 시와 예를 배우지 않았고 感郞一顧恩 本無衿帨誡 “낭군의 한 번 돌아본 은혜 감격한 것이지 본래 금세계를 할 사이는 아니었어요. 郞爲上舍生 家在京城裏 낭군은 성균관 유생이 되어 집은 서울 속에 있으니 妾爲端州婢 去留不由己 저는 단천의 노비가 되어 떠나고 머묾을 나의 맘대로 못하죠.” 인용 전문 해설
지은 이유. 미천한 신분 때문에 절개를 지켰음에도 정표되지 못하다 節婦名逸仙, 端川官妓也. 本郡報其節行, 禮官以素賤, 抑而不旌. 豫讓不死於范中行而死於智氏, 先儒奚取焉? 其言不曰: “士爲知己者死乎.” 余時爲儀部員外, 蓋嘗陳以此義, 退而綴其行實, 以爲歌詩. 庶幾樂府所錄「秦羅敷焦仲卿妻詩」遺意云. 해석 節婦名逸仙, 端川官妓也. 절개를 지닌 아낙의 이름은 일선으로 단천의 관기다. 本郡報其節行, 단천 고을에서 절개를 지킨 행실을 보고하자 禮官以素賤, 抑而不旌. 예조에선 소박하고 빈천함 때문에 억누르고 정표(旌表)하지 않았다. 豫讓不死於范中行而死於智氏, 예양이 범중항을 위해 죽지 않고 지백(智伯)을 위해 죽었는데 先儒奚取焉? 앞선 유학자들은 어째서 취한 것인가? 其言不曰: “士爲知己者死乎.” 예양은 “선비란 자기를 ..
해설. 남녀의 애정을 담은 민요를 한시로 쓰다 이 시는 민요에서 취재한 것이다. 모두 8수인데 일관된 줄거리로 엮인 것이 아니다. 서사적 연락(連絡)은 단속적이고 다만 남녀 사이에 얽힌 애정사라는 점에서 내용상 통일성이 있다. 남편이 멀리 장사를 떠나 외로운 여자의 하소연이 들리고, 젊은 남녀들의 밀회와 미묘한 사랑의 갈등이 있는가 하면 중국 비단을 무역하는 상인이 기생에게 탕진하는 장면도 나온다. 5언절구의 단형시 속에 이런저런 사연을 담아 서사적 전개는 펼 수 없었으나 서사성은 각기 함축한 것이다. 이 「황주염곡(黃州艶曲)」의 형식적 특징 또한 민요에서 온 것으로 생각된다. 황주지방과 관련된 민요가 있었던바, 그 내용 형식을 그대로 살린 것 같다.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 2권, 창비, 2020..
5 夜登太虛樓 潛邀好門子 밤에 태허루에 올래 몰래 좋은 집안 사내 만나려니 却有上尊來 誰人敎至此 도리어 상존이란 아전이 오니 누가 시켜 여기에 이르게 했는가? 許穎陽使本國, 改廣遠樓. 名曰太虛樓也. 허영양은 우리나라에 사신 와서 광원루(廣遠樓)를 개칭하여 태허루(太虛樓)를 이름 붙였다. 上尊, 卽戶長吏名也. 상존이란 곧 아전 우두머리의 이름이다. 6 璀璨成都錦 花間蛺蝶飛 찬란하디 찬란한 성도의 비단, 그리고 꽃 사이로 나비 나네. 與儂償一宿 裁作舞時衣 나와의 하룻밤 보상으로 준 것이니, 춤출 당시의 옷 제작했네. 7 節使年年返 逢郞意更長 사신은 해마다 돌아오지만 낭군 만난 뜻은 더욱 길기만 하네. 若無平壤妓 紈素可盈箱 만약 평양의 기생이 없었다면 흰 비단이 상자에 가득했을 텐데. 8 半夜踰窓入 黃紬濃宿香..
1 上有正方山 下有簇錦溪 위쪽엔 정방산이 있고 아래쪽엔 족금계가 있어 寧作倡家婦 莫作商人妻 차라리 노래 부르는 아낙이 되었지 상인의 아내는 되지 말게. 2 商人江上去 八月以爲期 상인은 강 거슬러 가 8월에 기약 삼았네. 重陽今已過 酒熟爾何遲 중양절은 이제 이미 지나 술 익어가건만 당신은 어째 늦소? 3 花娥耽晝睡 鶴娥耽夜行 꽃 아가씨는 낮잠을 탐하고 학 아가씨는 밤 다니는 걸 탐하니 相逢連晝夜 何處見儂情 서로 만나 낮과 밤을 연이으니 어느 곳에서 나의 정 보리오? 4 儂愛雙頭蓮 郞愛相思子 나는 두 꽃잎의 연꽃을 사랑하고 낭군은 상사자를 사랑하네. 不如去浣紗 行人在溪水 빨래터에 가는 것만 못하니 행인들 시냇가에 있겠지. 인용 전문 해설
해설. 그네터는 조선의 헌팅포차? 이 시는 그네터에서 젊은 남녀들의 만남을 소묘한 민요적 단가(短歌)다. 처녀들이 몰려와서 그네타기 시합을 벌이는데 지나던 총각이 눈이 팔려 발걸음을 멈추고 섰다. 이것이 1연이며 2연에서 그네 타는 동작을 신선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 조그만 사건이 발생한다. 한 처녀가 그네를 타다가 비녀를 떨어뜨리는데 그 비녀를 총각이 주워서 두 남녀 사이가 통하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 『춘향전』에서도 춘향이 그네 타는 모습을 이도령이 보고 연애감정을 느껴 마침내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게 되었거니와, 여기 설정된 화폭은 서사적 단면이다. 인간성이 고식되었던 분위기에서 젊은 남녀의 그네터 사랑은 대서사로의 발전을 예비한 것도 같다.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 2권, 창비,..
그네타기 노래추천곡(鞦韆曲) 임제(林悌) 白苧衣裳茜裙帶 相携女伴競鞦韆 堤邊白馬誰家子 橫駐金鞭故不前 粉汗微生雙臉紅 數聲嬌笑落煙空 指柔易著䲶鴦索 腰細不堪楊柳風 誤落雲鬟金鳳釵 游郞拾取笑相誇 含羞暗問郞居住 綠柳珠簾第幾家 『林白湖集』卷之二 해석白苧衣裳茜裙帶 백저의상천군대 흰 모시 적삼에 진홍띠 두른 아가씨가相携女伴競鞦韆 상휴녀반경추천 동무 서로 이끌고 그네타기 시합하네.堤邊白馬誰家子 제변백마수가자 둑 근처 백마 탄 이는 누구 집 아들인고,橫駐金鞭故不前 횡주금편고불전 황금채찍 들고 선 채 일부러 나아가지 않네. 粉汗微生雙臉紅 분한미생쌍검홍 송골송골 땀【분한(粉汗): 여자들 얼굴에 분이 많아서 여인의 땀을 의미함】 조금 나니 처녀 두 뺨이 붉어져數聲嬌笑落煙空 수성교소낙연공 여러 번 예쁜 웃음소리 공중【연공(煙空): ..
해설. 출세하러 떠난 남편을 무작정 기다리는 아낙의 이야기 이 시 역시 봉건적 질곡 속에서 고달픈 여성의 처지를, 한 여자가 자기 신세를 술회하는 형식으로 엮은 것이다. 1인칭의 여성 진술에 의해 작품은 여성의 삶의 갈등이 여성적 언어 정감으로 표출되고 있다. 주인공(진술자)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떠날 때 태중에 있었던 아기가 “지금은 대막대 타고 다닌답니다[去時在腹兒未生 卽今解語騎竹行].”라고 하여 생이별이 7, 8년이나 경과했음을 짐작게 한다. “이웃집 아이에게 배워서 ‘아부지’하고 부르는 데 만리 밖에 계시는 아버지 네가 부르는 소리 행여 들리겠느냐[便從人兒學呼爺 汝爺萬里那聞聲].”라는 대목은, 특히 인정에 절실하면서 그속에 무심한 남편을 탓하는 뜻도 담긴 것 같다. 남편 ..
용강의 노래 용강사(龍江詞) 백광훈(白光勳) 妾家住在龍江頭 첩의 집은 용강 어귀에 있어 日日門前江水流 날마다 문 앞에 강물이 흐르죠. 江水東流不曾歇 강물이 동쪽으로 흘러 일찍이 쉬질 않으니, 妾心憶君何日休 첩은 내심 그대 생각을 어느 때나 그칠까요? 江邊九月霜露寒 강가 9월이라 서리와 이슬은 차가워 岸葦花白楓葉丹 강의 갈대꽃 희고 단풍잎은 붉어졌어요. 行行新雁自北來 줄지어 새로운 기러기 북쪽에서 오지만 君在京河書未廻 그대 한양에 있음에도 편지 보내오질 않네요. 秦樓望月幾苦顔 그대는 한양 누각에서 달 바라보며 얼마나 얼굴 찡그리셨을까요? 使妾長登江上山 첩은 늘 강가 산에 오른답니다. 去時在腹兒未生 떠난 때 배에 있던 아이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었는데 卽今解語騎竹行 지금은 말을 하고 대나무 말 타고 다녀요. ..
해설. 조선시기 여성이 감내해야 했던 비운을 담아내다 이 시는 자결한 젊은 여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중세기 여성의 비극적 운명을 보여준 것이다. 주인공 여자는 지체 높은 가문에서 태어나 역시 양반집으로 출가하였다. 그런데 그의 남편이 멀리 벼슬을 살러 간 부친을 뵈러 갔다가 중도에서 객사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꽃다운 나이의 여자가 죽어야 하는가? 거기에 당시 여성 일반이 벗어날 수 없는 엄중한 질곡이 있었던 것이다. 여성에게는 자주적 삶이 주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불경이부(不更二夫, 두 명의 남편을 바꾸지 않는다)’라는 윤리 규정 때문에 한번 배우자를 정했으면 어쨌거나 개가를 용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양반 가정일수록 여성에게 가해진 윤리적 굴레는 더욱 완고했다. 작품은 주제 사상을 낭만적ㆍ정감..
부모님께 인사 드리러 떠난 낭군을 그리며 저물어간 아낙이여 이소부사(李少婦詞) 최경창(崔慶昌) 相公之孫鐵城李 이씨는 상공의 손녀인 철성 이씨로 養得幽閨天質美 규방에서 길러져 천부적인 자질이 예쁘네. 幽閨不出十七年 규방을 17년간 나가지 않았는데 一朝嫁與梁氏子 하루 아침에 양씨의 아들에게 시집 갔네. 梁氏之子鳳鸞雛 양씨의 아들은 봉새와 난새의 새끼처럼 길러져 珊瑚玉樹交枝株 산호와 옥수처럼 가지가 서로 얽히였네. 池上鴛鴦本作雙 연못 위 원망은 본래 짝을 지으니 園中蛺蝶何曾孤 동산 속 나비라해서 어찌 일찍이 외로우리오? 梁家嚴君仕遠方 양씨의 아버지 먼 지방에 벼슬살이 해서 千里將行拜高堂 천리를 장차 가서 어버이 계신 곳에서 절하려 했네. 出門恩愛從此辭(隔) 문을 나서면 은혜와 사랑은 이로부터 헤어지게 되니 山..
이순신 장군이 한없이 그리워지는 지금 이충무공귀선가(李忠武公龜船歌) 황현(黃玹) 1. 원균이 막지 못해 왜구가 코앞에 와 있다 天狗蝕月滄溟竭 罡風萬里扶桑折 主屹雄關已倒地 舟師十萬仍豕突 元家老將一肉袋 孤甲棲島蚍蜉絶 封疆重寄無爾我 葦杭詎可秦視越 ⇒해석보기 2. 거북선으로 왜구를 물리친 충무공 左水營南門大開 淵淵伐鼓龜船出 似龜非龜船非船 板屋穹然碾鯨沫 四足環轉爲車輪 兩肋鱗張作槍穴 二十四棹波底舞 棹夫坐卧陽侯窟 鼻射黑烟眼抹丹 伸如遊龍縮如鼈 蠻子喁喁哭且愁 露梁閒山漲紅血 赤壁少年逢時幸 采石書生誇膽决 孰能橫海經百戰 截鯨斬鰐鋩不缺 ⇒해석보기 3. 200년이 지난 지금도 충무공이 있었다면 二百年來地毬綻 輪舶東行焰韜日 熨平震土虎入羊 火器掀天殺機發 九原可作忠武公 囊底恢奇應有術 創智制勝如龜船 倭人乞死洋人滅 ⇒해석보기 인용 목차 ..
해설. 서세동점의 시기에 위기감을 충무공의 기억으로 풀어내다 이 시는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앞세우고 왜적을 통쾌하게 격파한 역사 사실을 그린 노래다. 전체를 세 단락으로 구성하였는데, 거북선이 등장하는 대목까지가 서장이다. 이 제1부는 객관적인 서술인데도 상징성ㆍ형상성이 높은 언어를 적절히 구사하여 분위기와 함께 의미망이 뚜렷이 잡힌다. 제2부는 물론 작품의 중핵이다. 거북선의 괴걸ㆍ신출한 용자, 거북선이 적을 격파하는 통쾌한 장관이 굳세고 날카롭고 생생한 필치로 묘사되고 있다. 3부는 시인의 현재다. “충무공 돌아가신 지 이 백년 오늘에 지구가 트이니 / 화륜선 동쪽으로 돌아오자 불꽃이 해를 가리는도다.”라고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세계사적 진운이 제국주의 침략으로 현실화된 문제적 사태를 제기한다. 시..
3. 200년이 지난 지금도 충무공이 있었다면 二百年來地毬綻 200년 이래에 지구가 트이니 輪舶東行焰韜日 증기선이 동쪽으로 오자 불꽃이 해를 가리네. 熨平震土虎入羊 평화를 누르고 땅을 진동시키며 범이 양떼로 들어와 火器掀天殺機發 화기가 하늘을 치켜들어 헤치는 기미가 발산되네. 九原可作忠武公 무덤에서 충무공을 일으킬 수 있다면 囊底恢奇應有術 주머니 속의 넓은 기이함엔 응당 나라 구할 기술이 있을 테지. 創智制勝如龜船 지혜를 창조하고 이김을 제어함이 거북선 같으리니 倭人乞死洋人滅 왜구가 목숨을 구걸할 것이고 서양놈들 싹쓸어버릴 것이다.「梅泉集」 卷一 인용 전문 해설
2. 거북선으로 왜구를 물리친 충무공 左水營南門大開 좌수영 남쪽 문이 크게 열리니 淵淵伐鼓龜船出 둥둥 북을 치며 거북선이 나가네. 似龜非龜船非船 거북인 듯 아닌 듯 배인 듯 아닌 듯 板屋穹然碾鯨沫 철판의 하늘 같은 지붕은 고래의 포말을 가네. 四足環轉爲車輪 네 발은 동그랗게 돌으니 수레의 바퀴가 되고 兩肋鱗張作槍穴 두쪽 갈비엔 비닐 펴져 창의 구멍을 만들었네. 二十四棹波底舞 24개의 노가 파도 밑에서 춤추니 棹夫坐卧陽侯窟 노 젓는 군사는 파도의 굴에서 앉았다가 누웠다 하네. 鼻射黑烟眼抹丹 코로는 검은 연기 쏘고 눈엔 붉은 것 발라 伸如遊龍縮如鼈 펴면 용이 노니는 듯, 움츠리면 자라인 듯하지. 蠻子喁喁哭且愁 왜구들 웅웅거리며 통곡하고 근심하니 露梁閒山漲紅血 노량과 한산에 붉은 피 넘쳐나지. 赤壁少年逢時幸 ..
1. 원균이 막지 못해 왜구가 코앞에 와 있다 天狗蝕月滄溟竭 천구가 달을 좀먹으니 바닷물 마르고 罡風萬里扶桑折 만 리에 세차게 부는 바람은 부상을 꺾어버렸으며 主屹雄關已倒地 주흘산(主屹山)의 웅장하던 관문도 이미 뒤집혔고 舟師十萬仍豕突 배의 군사 10만도 연이어 멧돼지처럼 닥쳐왔네. 元家老將一肉袋 원균(元均)의 노쇠한 장군은 하나의 고기 자루 孤甲棲島蚍蜉絶 외론 갑옷으로 섬에 서식하니 하루살이도 끊어졌네. 封疆重寄無爾我 영토의 막중한 임무를 맡겨졌으니 너나 없구나. 葦杭詎可秦視越 곧 들이닥치리니 어찌 진나라 사람이 월나라 사람 보듯 할 수 있겠는가? 인용 전문 해설
해설. 임전무퇴의 정신을 표출한 어재연 장군의 모습을 그리다 이는 신미양요(辛未洋擾) 당시 어재연 장군이 분투하다가 전사한 사실을 기려서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19세기 중후반의 개항 직전에 발발한 사건이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다. 두 사건 모두 강화도에서 일어났는데 강화도는 한반도의 심장부인 서울로 들어오는 해로 상의 길목이었기 때문이다. 로저스 제독(J.Ridgers)이 이끄는 미 해군함대가 침입을 하자 조선정부는 앞서 병인양요 때도 실전 경험이 있었던 어재연을 진무중군(鎭撫中軍)으로 급파, 광성보(廣城堡)를 방어하도록 한다. 1871년 6월 10일 미 해군은 강화도 상륙작전을 개시, 초지진(草芝鎭)을 점거하고 다음날 덕진진(德津鎭)을 함락한 다음, 광성진(廣城鎭)을 수륙 양면으로..
신미양요 때 강화도에서 산화한 어재연(魚在淵) 장군을 애도하며 애어장군(哀魚將軍) 이희풍(李喜豊) 奕世簪纓族 燀爀著乘史 어장군은 여러 세대의 고관대작의 겨레로 밝디 밝게 저술하여 역사서에 실려 있네. 跗注通仕籍 華膴與終始 전쟁복으로 벼슬자리에 통하여 청직(淸職)과 함께 시작하여 마쳤네. 歲暮思休退 藍田有故里 말년에 휴식하며 은퇴할 것 생각하여 남전의 옛 마을에 있다가 惶恐復承詔 金門聽進止 황공하게 다시 임금의 명령 받자옵고 대궐에서 임금님 뜻을 들었으니, 江都關防地 往佐鎭撫使 “강화도는 관문 방어의 땅이니 가서 진무사로 도우라.” 旗幟變精彩 號令嚴巡視 어장군 깃발의 변하는 정미로운 색채와 호령하며 엄히 순시하네. 四月獰風至 蕩潏飜海水 4월에 매서운 바람 불어 찰싹찰싹 바닷물 뒤집으니 西來黑帆船 盤桓如有俟..
해설. 그림을 시로 표현했기에 묘사가 생생하다 이는 운암에서 왜적을 쳐부순 그림에 붙인 노래다. 운암전투를 이끈 청계 양대박은 원래 이름난 시인이다. 그런 그가 민족적 위기를 당해서 직접 의병을 일으키고 진두지휘하는 영용한 모습을 부각시키는 데 시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런데 초장의 배경 묘사에서부터 시각적 인상을 뚜렷이 보이는데, 특히 왜군들의 생김새나 전투의 장면은 마치 영화의 화면을 대하는 듯 극적이고 동적이다. 이런 측면은 이 시가 본래 회화와 결부된 것이기 때문에 회화의 예술적 특징을 시에서도 적절히 살린 결과로 생각된다.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 2권, 창비, 2020년, 145쪽 인용 전문
1000명도 안 되는 의병으로 운암에서 왜놈을 격파한 양대박 장군 雲巖樹色蓊若雲 운암의 나무색 우거져 구름 같으니 石棧縈紆路微分 바위에 잔도(棧道)는 휘돌아 길이 희미하게 나눠지네. 谷口長川流渙渙 골짜기 입구에 긴 천의 흐름은 세차고 亂石疑是鳧雁羣 어지런 돌들은 의심컨대 오리와 기러기 무리인 듯하네. 倭燐爍爍飛艸末 왜놈들 혼은 반짝반짝 풀 끝에 날고 倭鬼咿嚘山日曛 왜놈들 귀신은 흐느끼며 황혼녘 산에 있네. 破倭者誰梁將軍 왜놈 격파한 양장군은 누구인가? 將軍帶方之烈士 장군은 대방의 충정을 다해 싸운 사람이네. 寶刀千金馬千里 천금의 보검으로 천리를 말 타고 灑泣艸檄風雨生 눈물을 뿌리며 격문을 지으니 비바람이 일어나네. 破家養士熊虎似 집을 파산하면서 길러낸 군사는 곰과 범인 듯하지. 倭子午爨幽箐間 왜놈들 낮에..
시를 짓게 된 연유 梁靑溪大樸, 萬曆壬辰, 以義兵將破倭於雲巖之野. 後孫參議周翊作圖請歌. 해석 梁靑溪大樸, 萬曆壬辰, 청계 양대박은 만력 임진(1592)년에 以義兵將破倭於雲巖之野. 의병의 장수로 운암의 들판에서 왜적을 격파했다. 後孫參議周翊作圖請歌. 그의 후손인 참의 양주익이 「운암파왜도(雲巖破倭圖)」를 짓고 나에게 노래를 청하였다. 인용 전문 해설
해설. 장독을 지켜낸 노인과 나라도 지켜내지 못한 지배층 이 시는 장독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의 애국적 형상을 제시한 것이다. 시인 신광하는 1783년(정조 7년)에 함경도 지방을 유람하여 백두산까지 등반을 한다. 이 여행의 도중에 조술창이라는 곳에서 한 노인을 만나는데, 그 노인으로부터 그의 6대조 할아버지가 병자호란 당시 장독을 때려 부수려고 덤비는 되놈을 활을 쏘아 격퇴시킨 이야기를 듣는다. 지금 노인은 작중의 화자이며 서사의 진정한 주인공은 용감한 6대조 할아버지다. 작품은 노인의 이야기가 끝나면서 문제의 장독을 직접 보여준다. 옛이야기를 실제 사실로 확인시킨 셈이다. 우리 민족의 생활에서 독은 거기 담는 장이 그렇듯 별것 아니지만 한때도 없어서 안 되는 긴요하고 친숙한 물건이다. 작중의 서..
병자호란에 오랑캐를 물리치고 장독을 지킨 이의 이야기 조술창옹 장옹가(助述倉翁 醬瓮歌) 신광하(申光河) 我行助述萬山中 나는 조술창의 뭇 산 속을 가다가 野宿村家逢老翁 야외의 시골집에서 묵었는데 할배를 만났네. 翁言家有老醬瓮 할배가 말하네. “집에 묵은 장독이 있는데 六世相傳安屋東 6대에 서로 전해져 곧 집의 동쪽에 있지요. 憶昔丙子國大亂 생각건대 옛날 병자년에 나라가 크게 어지러워 咸關北南迷犬戎 함관령(咸關嶺)의 북쪽과 남쪽이 오랑캐에 당하여 夜蹋鐵嶺三丈雪 밤에 철령 세 길이의 눈을 밟아 넘어오니 千村萬落人烟空 온 마을과 여러 촌락에 사람과 밥짓는 연기 사라졌죠. 走入翁家先擊瓮 할배집에 달려 들어가 먼저 장독을 치니 翁祖八十鳴桑弓 할배 여든 살에 뽕나무 활을 당겼어라. 一箭中胡胡走哭 한 화살이 오랑캐에 ..
임진왜란에서 유거사가 안동을 지키다 유거사(柳居士) 홍신유(洪愼猷) 1. 유거사와 유성룡 居士出安東 西厓之叔父 藏名名不傳 世但知姓柳 容貌望若愚 默無言出口 平生不出戶 似學節無咎 惟有酒戶寬 一吸數三斗 且愛一寶刀 匣裏深深貯 西厓時入相 才氣大自負 黃扉事業盛 遭遇聖明主 ⇒해석보기 2. 유성룡을 찾아간 유거사는 그림자처럼 처신하다 居士謂家人 相國不見久 我欲一往見 懷緖舒窈紏 家人聞此言 驚喜便相許 即騎一健牛 五日京城走 粗粗山人衣 潭潭丞相府 相國望見之 下階拜傴僂 居士問無恙 癡然更無語 但願居同室 暫不離左右 今日車馬至 明日冠紳聚 朝廷論得失 軍務談細巨 居士坐在傍 若不聞不睹 ⇒해석보기 3. 유거사와 유성룡의 바둑 한 판 내기와 유거사의 이상한 제안 一日謂相國 與我圍棋否 相國斂容對 小子誠國手 叔父棋不妙 未可論勝負 居士再三請 華堂..
해설. 체제 밖 인물을 끌어들여 정치권력의 환멸을 담아내다 이 시는 야담으로 널리 전하는 ‘유거사 이야기’를 재료로 삼아 엮은 것이다. 유거사라는 인물은 초야에 묻힌 존재인데 유성룡의 숙부로 설정되어 있다. 유성룡은 임진왜란 때 탁월하게 능력을 발휘했던 재상으로 유명하지만, 그의 숙부는 일개 무명의 인사다. 그래서 ‘바보 아재[癡叔]’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런 유거사가 실은 앞날을 내다보는 눈을 가진 이인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유능한 정승을 제거하고자 잠입한 왜놈 첩자를 물리치고 미구에 큰 전란이 있을 것을 예언했다는 것이 작품의 대략이다. 유거사 이야기는 『동패낙송(東稗洛誦)』과 『청구야담(靑邱野談)』 등 야담집에 두루 실려 있다. 줄거리는 모두 대동소이하지만 문학적인 면에서 서사시 「유거사(柳居士)」..
4. 스님과의 거나한 술자리, 그리고 스님의 비밀 翌日果有僧 謁公洸洸武 다음날 과연 스님이 있어 공을 뵈는데 용감한 무사였으니, 公言方有事 無暇可接汝 상공이 말했네. “시방 일이 있어 당신을 접대할 겨를 없습니다. 家有一居士 室淸汝可去 집에 한 거사가 있으니 집이 깨끗해 당신이 가볼 만합니다.” 僧拜昂然退 幽窓來相叩 스님은 절하고 의연하게 물러나 깊은 창으로 와 서로 두드리니 居士倒屣迎 慇懃若親友 거사는 짚신을 거꾸로 신고 맞으며 은근히 챙기는 게 친구 같았고 云余無佳味 山肴與薄酒 말했네. “나에게 맛난 음식은 없고 산채소 안주와 묽은 술이 있소.” 自飮復勸僧 夜闌盡十卣 스스로 마시고 다시 스님에게 권하며 밤이 다하도록 열통을 마셨네. 僧醉席上倒 喉中酒半歐 스님이 곤드레만드레 자리 위에서 쓰러져 목구멍 ..
3. 유거사와 유성룡의 바둑 한 판 내기와 유거사의 이상한 제안 一日謂相國 與我圍棋否 하루는 승상에게 “나와 바둑 두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相國斂容對 小子誠國手 승상은 용모를 단정히 하고 대답했다. “소자는 국수를 정성스레 모시고 있고 叔父棋不妙 未可論勝負 숙부께선 바둑솜씨가 절묘하지 못하니 승부를 논할 없습니다.” 居士再三請 華堂日正午 거사가 두세번 청했는데 화려한 당에 해는 정오였다네. 相國謾應諾 陣勢按法譜 승상은 어쩌지 못하고 응낙하니 바둑 진의 기세가 기보를 참고한 듯했네. 政似謝東山 山陰賭別墅 바로 사동산이 동산의 별장에서 내기하는 것 같았으니 忽如楚漢戰 兵入濰水渚 홀연히 초나라와 한나라의 싸움에 병사들이 유수로 들어간 듯 했네. 居士嬴全局 推平掌一拊 거사는 전판을 이기고 승패를 정하고서 ..
2. 유성룡을 찾아간 유거사는 그림자처럼 처신하다 居士謂家人 相國不見久 거사가 집사람들에게 말했다. “정승을 오래도록 보지 못했으니 我欲一往見 懷緖舒窈紏 내가 한번 가서 보고 마음을 품고 깊은 근심을 고하려네.” 家人聞此言 驚喜便相許 집사람이 이 말을 듣고 놀라 기뻐하며 곧 서로 허락했네. 即騎一健牛 五日京城走 곧바로 한 마리 건강한 소를 타고 5일동안 서울로 달려갔네. 粗粗山人衣 潭潭丞相府 거칠디 거친 산 사람의 옷으로 깊고 넓은 승상의 집에 도착하니 相國望見之 下階拜傴僂 승상은 우두커니 보다가 계단을 내려와 바짝 엎드려 절하네. 居士問無恙 癡然更無語 거사는 ‘무탈하시오?’라고 묻고선 바보처럼 다시는 말하지 않고 但願居同室 暫不離左右 다만 같은 방에 있으며 잠시도 좌우로 떨어지지 않으려 했네. 今日車馬..
1. 유거사와 유성룡 居士出安東 西厓之叔父 거사는 안동에서 나와 서애의 숙부지. 藏名名不傳 世但知姓柳 이름을 감춰 이름이 전하지 않아 세상에선 단지 유(柳)씨 성만 알려졌네. 容貌望若愚 默無言出口 용모 바라보면 어리석은 듯하고 묵묵히 말을 입에서 내질 않네. 平生不出戶 似學節無咎 평생 문에 문을 나가지 않았으니 절제를 배워 허물이 없는 것처럼 하려 함이다. 惟有酒戶寬 一吸數三斗 오직 주량만이 넉넉하여 한 번 두세 말을 마시고 且愛一寶刀 匣裏深深貯 또한 한 보검을 아껴 갑 속에 깊이 깊이 숨겨두었네. 西厓時入相 才氣大自負 서애는 이때에 승상이 되어 재기가 커 절로 자부하였고 黃扉事業盛 遭遇聖明主 승상의 사업 성대하니 성스럽고 현명한 군주 만나서라네. 인용 전문 해설
100년이 지나 임명대첩의 역사가 바로잡히다 임명대첩가(臨溟大捷歌) 홍양호(洪良浩) 함경도의 왜구를 대파한 정문부의 억울함을 풀어주다 臨溟驛, 在城津ㆍ吉州之間, 鄭評事文孚, 壬辰大破倭奴於此, 有勝戰碑. 鄭公與鄕人李鵬壽等, 擧義於鏡城武溪漁郞里. 首斬叛奴鞠世必, 進擊倭, 屢立奇功, 北方遂平. 監司尹卓然誣奏抑其功, 只加通政階, 官遂不顯. 仁廟朝死於詩案. 逮至顯廟朝, 李畏齋端夏爲評事陳疏, 閔老峰鼎重, 以監司啓聞, 伸雪褒贈. 鄕人立祠於武溪, 賜額曰彰烈. ⇒해석보기 1. 임진왜란의 발발로 관북까지 무너지다 鄭評事奇男子 微爾盡黔北人齒 時有長鯨 怒鬣閃㸌若火熾 滄海爲沸東天紫 三京焚燒八路崩 翠華遙遙鴨水沚 其酋淸正最黠驚 萬隊橫行遂北指 快劒如霜彗日芒 毒丸如雷洞人髓 元戎旆折鐵嶺上 三軍潮退未敢發一矢 鳥言卉服滿朔野 腥氛慘憺興王里 ..
해설. 정문부의 공적에 일어난 논공행상을 비분감으로 담아내다 이 시는 함경도 땅에서 왜군을 몰아낸 의병대장 정문부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원래 『삭방풍요(朔方風謠)』 속에 들어 있는 작품인데, 『삭방풍요(朔方風謠)』는 시인이 정조 1년(1777) 겨울에 함경도 경흥부사(慶興府使)로 좌천되어 갔던바, 이때 견문한 사실들을 잡아서 쓴 것이다. 시는 첫 머리에 “정평사는 기남자로다 / 당신 아니런들 함경도 백성들 흑치(黑齒) 면치 못했으리[鄭評事奇男子 微爾盡黔北人齒]”라고 주인공의 성격을 먼저 규정하고 들어간다. 요컨대 그 인물은 ‘기남자(奇男子)’요 그 업적은 함경도를 적군의 수중에서 회복한 것이다. 이런 규정이 진실임을 증언한 것이 시의 내용인 셈이다. 그런데 임명대첩이 함경도 전역의 전세를 뒤집는 데 결정..
5. 100년 만에 제자리를 찾은 정문부의 평가 公議百年竟得伸 공적인 의론이 100년에 마침내 펼쳐져 贈誄輝煌邦人祀 조문을 드리니 지방 사람들의 사당에 빛나는 구나. 武溪之上漁郞里 무계 가 어랑리의 山川欝欝環古壘 산천은 울창하고 옛 보루 둘러있네. 昔日金尹拓疆土 옛적에 김종서(金宗瑞)와 윤관(尹瓘) 두 장군은 강토를 개척하였으니 國威兵力是憑倚 나라의 위세(威勢)와 군사의 위력(威力) 두 장군에게 의지했네. 公遭板蕩奮空拳 정문부 공은 나라가 어지러운 상황을 만나 빈 주먹을 떨치며 屹若狂瀾障一砥 우뚝하게 미친 물결을 숫돌로 막아냈네. 不然不惟豆江以內非吾有 그렇지 않았더라면 두만강 이내는 우리의 국토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荐食上國從此始 중국에 덤벼드는 것도 이 땅으로부터 시작됐으리라. 如公樹立更卓然 공이 수..
4. 승승장구의 미담을 가려버린 함경도 감사 可憐堂堂二壯士 가련쿠가 당당하던 이붕수와 이희당(李希唐) 두 장사여 功成身殞馬前墜 공 이루어졌지만 몸은 말의 앞 부대에서 운명했구나. 蠟紙遙飛奏行在 밀랍 입힌 밀서(密書)가 멀리 날려져 행재소에 알려지자 至尊動容悲且喜 지존의 행동거지와 용모는 슬프고도 기쁘셨다네. 壐書寵嘉進官秩 임금은 친서로 총애하고 가엾이 여겨 관직 올려주고 賜賚便蕃及衣履 먼 변방에까지 하사하고 옷과 신에 미쳤지만 藩臣擁兵但自衛 변방 함경감사 윤탁연(尹卓然)은 병사만을 옹위한 채 다만 스스로만 지켜 君父蒙塵越人視 임금의 피난 보길, 월나라 사람 보듯 했네. 奈何耻己無功嫌人有 어째서 자기의 공 없음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공 있음을 미워하여 媒孽其短反揜美 흠집으로 죄에 빠뜨려 도리어 미담(美談)을..
3. 혼비백산하는 왜구들 驕虜膽破若無骨 교만하던 왜구 담이 찢어졌으니 뼈가 없는 것 같고 蝸縮蛇蟠土窟裏 달팽이 움츠러들고 뱀이 토굴 속에서 서린 듯하네. 端川大兵自來迎 단천의 대병력이 스스로 맞이하여 와서 半夜銜枚將南徙 야밤에 재갈 물고서 장차 남쪽으로 이동하여 萆山偃旗截歸路 산에 숨고 기를 눕힌 채 귀로를 끊으니 前有角兮後有掎 앞은 뿔 잡히고 뒤는 다리 끌어 당겨지는 꼴이구나. 白塔之原臨溟野 백탑의 언덕과 임명의 들에 健兒賈勇如虎兕 건장한 사내가 용맹을 뽐낸 것이 범이나 외뿔소 같네. 紛紛鼠竄與兎脫 왜구들은 바쁘게 쉬가 숨는 것처럼 토끼가 달아나는 것처럼 하여 往往裂腦而折臂 이따금 뇌가 찢어지고 팔이 골절되네. 髧頭裸足化京觀 늘어진 머리에 헐벗은 발의 왜구는 경관으로 변해 長繩簇簇貫左耳 긴 끈으로 빽빽..
2. 정문부가 의병을 일으켜 전세를 역전하다 維時蓮幕隻身跳 이때 막부에 홑못으로 뛰어나와 山行草伏形容毁 산으로 가서 풀에 숨었으니 형용은 야위었네. 彷徨歧路誰與歸 갈림길에서 방황하며 누구와 함께 귀의(歸意)하려는가? 邂逅同志崔姜李 해후한 동지는 최배천(崔配天)ㆍ강문우(姜文佑)ㆍ이붕수(李鵬洙)라네. 揮涕飮血仰天誓 눈물 떨구고 피를 마시며 하늘 우러러 맹세하니 一百義旅投袂起 백 명의 의병들이 소메 떨치며 일어났네. 裂裳爲旂鋤爲兵 치마 찢어 기를 만들고 호미로 병기 삼았으며 白面將軍杖尺箠 백면서생(白面書生)의 장군은 한 자의 채찍 잡고 鳴皷徐行入鏡城 북 울리며 천천히 경성(鏡城)에 들어가니 士女歡迎惟命侯 남녀는 환영하며 오직 자신들의 제후이길 명하네. 南樓嶪嶪建牙纛 남쪽 누대 우뚝하니 아기(牙旗)을 세우고 磔..
1. 임진왜란의 발발로 관북까지 무너지다 鄭評事奇男子 평사 정문부(鄭文孚)는 기이한 사내로 微爾盡黔北人齒 그대 아니었다면 모두 북쪽 사람들의 이는 검어졌으리. 時有長鯨 이때에 큰 고래가 있어 怒鬣閃㸌若火熾 화난 지느러미 반짝반짝 불 타오르는 듯했네. 滄海爲沸東天紫 푸른바다 들끓어 동쪽 하늘 붉었고 三京焚燒八路崩 삼경(三京)은 불타오르고 팔도(八路)는 무너져 翠華遙遙鴨水沚 임금께서 아득하고 아득한 압록강에 이르렀네. 其酋淸正最黠驚 우두머리 가등청정(加藤淸正 )은 가장 악랄하고 두려워 萬隊橫行遂北指 만 명의 부대 멋대로 가서 마침내 북쪽 가리키니 快劒如霜彗日芒 날카로운 검은 서리 같으니 혜성의 불꽃 같고 毒丸如雷洞人髓 독한 탄환은 우레 같으니 마을 사람의 골수 같네. 元戎旆折鐵嶺上 장군의 기는 철령의 위에서..
함경도의 왜구를 대파한 정문부의 억울함을 풀어주다 臨溟驛, 在城津ㆍ吉州之間, 鄭評事文孚, 壬辰大破倭奴於此, 有勝戰碑. 鄭公與鄕人李鵬壽等, 擧義於鏡城武溪漁郞里. 首斬叛奴鞠世必, 進擊倭, 屢立奇功, 北方遂平. 監司尹卓然誣奏抑其功, 只加通政階, 官遂不顯. 仁廟朝死於詩案. 逮至顯廟朝, 李畏齋端夏爲評事陳疏, 閔老峰鼎重, 以監司啓聞, 伸雪褒贈. 鄕人立祠於武溪, 賜額曰彰烈. 해석 臨溟驛, 在城津ㆍ吉州之間, 임명역은 성진과 길주 사이에 있어 鄭評事文孚, 壬辰大破倭奴於此, 평사 정문부는 임진왜란 때에 여기서 왜구들을 대파했으니, 有勝戰碑. 승전비가 있다. 鄭公與鄕人李鵬壽等, 정공은 고향 사람 이봉수 등과 擧義於鏡城武溪漁郞里. 함경도 경성의 무계 어랑리에서 의병을 거병했다. 首斬叛奴鞠世必, 進擊倭, 먼저 배반한 관노 국세..
이화암 노승의 기이한 삶을 노래하다 이화암노승행(梨花庵老僧行) 최성대(崔成大) 1. 이화암에서 기이한 사연을 지닌 노승을 만나다 梨花古庵一老釋 九十五歲猶矍鑠 我昔南遊客湖中 偶過此寺曾一識 黃髮髼鬆剪復生 碧眼閃睒光如射 不念菩薩不燒香 深居但調龜鶴息 有時發喉作商調 不似山歌與村曲 大漠陰風吹颯颯 滿寺紅葉驚摵摵 寺中苾蒭向余言 異哉此僧平生跡 悄悄山鐘初歇後 熒熒佛燈微翳夕 斂手就坐坐近師 願聞一語談宿昔 良久愀然若有思 欲說未說顔綽虐 →해석보기 2. 병자호란에 참화에 휩쓸려 포로가 되다 家本歡州世爲吏 少小名屬歡州籍 却憶丙子胡亂時 年纔十七遭百六 京都已陷南漢圍 銕騎彌滿搜山谷 死者枕藉塗草莾 生者束縛驅向北 累累相隨渡鴨水 回頭却望東天哭 歡州遠別舊鄕里 瀋陽來添新部落 饑食黃羊渴駱漿 習性移人久漸熟 →해석보기 3. 군대에서 인정받으며 남부러울..
참고. 이화암노승전의 논찬 정범조(鄭範祖)의 문집 『해좌집(海左集)』에는 「이화암노승전」이 실려 있다. 바로 「이화암의 늙은 중」을 읽고 그 인물에 대단히 흥미를 느껴 전의 형식에 담아본 것이다. 사실의 서술은 시를 자료로 삼았기 때문에 다른 내용이 있을 수 없지만 그 인물 성격에 대한 해석 역시 서로 통하고 있다. 참고로 「이화암노승전」의 논찬(論贊) 부분을 소개해둔다. 노승은 기남자다. 그는 바야흐로 어린 나이에 묶이어 강로强虜(여진족을 가리키는 말) 속으로 들어가 능히 자신의 용력으로 대열 사이에서 자취를 떨치게 하였으니 기회를 잡아 진출을 하였다면 부귀를 쉽사리 이룰 수 있었을 터이다. 그럼에도 부모의 나라를 저버리고 되놈 속에 몸을 빠뜨리는 짓을 차마 하지 못하여 발을 빼내 동쪽으로 돌아왔으니 ..
해설. 전환기 시대의 자유로운 영혼 이 시는 17세기 동북아의 전환기적 상황에서 한 파란의 인생역정을 장편으로 엮은 내용이다. 시인이 작중 서술자로서 주인공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형식인데,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곧 시의 현재다. 따라서 주인공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작품의 중심부를 이루는데, 앞에 서장이 붙고 뒤에 시인의 말로 마무리 지었다. 주인공은 지금 95세의 늙은 중이다. 첫 구절에서 대뜸 “이화암 옛 절에 스님 한분/아흔다섯 나이에도 눈에 정기가 번쩍[梨花古庵一老釋 九十五歲猶矍鑠]”이라 하여 그 인물에 관심을 비상히 끌도록 하는데, 게다가 “부처님 앞에 향불도 피우는 법 없이 나무아미타불 외우지도 않고[不念菩薩不燒香]”라고 하여 더욱 기묘한 느낌을 준다. “이상도 하지요, 우리 스님의 행적[異哉此僧..
7. 스님에게 바치는 시인의 말 我觀師貌心已奇 내가 스님의 모습을 보고 내심 기이하다 생각했는데 復聞此語駭心魄 다시 이 말을 들으니 마음이 놀랐다. 萬化紛綸天地間 온갖 변화가 분분한 천지간에서 造物於師偏戲劇 조물주가 스님에게만 편파적으로 짓궂었구나. 紅兜纔脫着白衲 붉은 두건를 겨우 벗자마자 백납을 입었고 一軀變態誰能測 한 몸뚱이 이런 변화 누군들 예측하랴. 霜顱學士寄空門 상로학사는 불문에 의탁했고 草衣王子逃巖屋 마의태자는 바위집으로 도망쳤네. 古往今來盡如此 예로부터 지금까지 모두 이와 같았으니, 世上可歎非師獨 세상에서 탄식할 만한 이는 스님 혼자만이 아니라네. 神州消息師未聞 중국 소식을 스님은 듣지 못했을 텐데 萬國衣冠染臊羯 만국의 의관은 오랑캐에게 오염됐네. 吳王看戲泣魋髻 오왕은 연극을 보다가 상투를 ..
6. 스님이 되어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다 自此浮雲無繫絆 이로부터 뜬 구름처럼 얽매이는 게 없이 桑下不曾三過宿 뽕나무 아래에서 일찍이 사흘 지나도록 묵지 않았네. 南浮漲海上漢挐 남쪽으로 너른 바다에 떠서 한라산에 올랐고 北窮玄菟登長白 북쪽으로 현도에 다다라 장백산에 올랐으며 妙香頭流視跬步 묘향산과 두류산은 지척쯤으로 여기고 金剛俗離如踐閾 금강산과 속리산은 문지방 넘듯 다녔지. 甓寺苔深懶翁碑 신륵사 이끼 깊은 나옹 화상 비문 보았고 鳩林石古詵公塔 계림의 오래 묵은 도선국사 탑도 보았지. 携持甁錫遍域內 바리때와 지팡이 들고 방방곡곡 다녔으니, 萬水千山幾回踏 수만 수천 산과 강을 얼마나 다녔던지. 老病如今筋力盡 지금은 늙어 근력이 소진되어 住着平地思休脚 평지에 가서 다리 쉴 것을 생각했소. 此庵多應過數臘 이 암자..
5. 아전일을 하다 스님이 된 사연 春風領漕受郡牒 봄바람 불 적에 조운선을 통솔하란 군의 공문을 받아 白粲連檣京口泊 흰쌀 실은 잇단 배를 한강 어귀에 정박했지. 津頭遊女蕩人心 나루머리의 유녀들이 인심을 방탕하게 해서 一曲嬌歌散千斛 한 곡조의 교태스런 노래에 천 섬을 날려버렸네. 自知作孽落坑穽 스스로 죄를 지어 함정에 떨어진 줄 알았으니, 何處藏身免金木 어느 곳에 몸을 숨어야 형벌을 면할꼬? 窮猿避禍入山深 궁한 원숭이도 화를 피해 깊은 산으로 들어가듯이 懶龍逃誅畏電迫 나태한 용도 벌 피하려고 번개를 두려워하듯이 夜叩伽倻絶頂庵 밤에 가야산 정상의 암자를 두드려 劫以利匕求髡削 날카로운 칼로 겁을 주고 머리털 깎아 달라 요구했지. 斯須化作一和尙 금세 일개 화상으로 변해 項掛串珠身緇服 목에 염주를 걸고 몸엔 장삼..
4. 설레던 귀향길과 도착하여 맞닥뜨린 씁쓸한 현실 順治單于帝中原 순치제 선우가 중원의 제왕이 되자 鳳林大君歸故國 봉림대군께서 고국으로 귀향하셨지. 傳聞被擄男與婦 듣자하니 포로로 잡힌 남과 여는 許令贖還輸金帛 돈과 비단을 바치면 속환을 허락해준다더군. 十載居夷縱自豪 10년 동안 오랑캐 땅에 거처하며 萬里離家那禁憶 만리 이역 떠나올 집 어찌 그리움 막을 수 있겠는가. 覊禽出籠魚返淵 잡힌 새도 새장을 떠나고 물고기도 연못으로 돌아가듯이 翠眉啼挽揮手却 고운 아내가 울면서 붙잡아도 손을 저어 뿌리쳤다네. 行近龍灣眼漸明 걸어 의주에 가까워질수록 눈이 점점 환해지니 九連城畔三江碧 구연성 곁으론 삼강이 푸르기만 하더군. 去來人情悲喜異 갈 때 마음 올 때 마음 기쁨과 슬픔이 사뭇 달라 跋履道里山川逖 길을 걷고 또 걸으..
3. 군대에서 인정받으며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하다 一日軍中闘角觝 하루는 진중에서 각저 시합을 하는데 蒙㺚圍立如堵壁 몽달들이 에워싼 것이 담벽인 듯했네. 賈勇跳踉直趨前 내가 용기를 내서 재빨리 곧장 그 앞으로 달려가 隻手連仆三長狄 한 손으로 연이어 장성 3명을 쓰러뜨렸지. 帳裏戎酋撫掌喜 휘장 속 오랑캐 지휘관이 박수치고 좋아하면서 親賜追風大宛足 바람도 따라잡는 대완마를 친히 하사했다네. 巫閭暮獵十丈雪 의무려산에서 저녁에 열길 눈속 사냥을 나갔는데 猛虎猝騰聲霹靂 사나운 호랑이가 갑자기 튀어올라 벼락처럼 울어댔네. 據鞍彎弓一箭殪 안장에 기대 활을 당겨 단 발로 죽이니, 怒血色漬邊草赤 새빨간 피가 근처 풀을 적셔 붉어졌지. 羣胡吐舌氣爲奪 오랑캐 무리들이 혀를 내두르며 기가 꺾여 皆曰夫夫勇無敵 다들 “저 장..
2. 병자호란에 참화에 휩쓸려 포로가 되다 家本歡州世爲吏 “집안은 본래 환주에서 대대로 아전이 되었고 少小名屬歡州籍 어릴 적부터 이름이 환주의 관적에 올랐네. 却憶丙子胡亂時 문득 생각나니 병자호란 때에 年纔十七遭百六 내 나이 겨우 17살에 액운을 겪었네. 京都已陷南漢圍 한양은 이미 함락되었고 남한산성 포위되니 銕騎彌滿搜山谷 철갑 기병 쫙 깔려 산과 골짜기를 뒤져대자 死者枕藉塗草莾 죽은 자들은 포개진 채 수풀에 널려 있고 生者束縛驅向北 산 자들은 포박되어 북쪽으로 쫓겨났네. 累累相隨渡鴨水 줄줄이 꼬리를 물고 압록강을 건너 回頭却望東天哭 머리를 돌려 도리어 동쪽 하늘 바라보며 통곡했네. 歡州遠別舊鄕里 환주를 멀리 떠나니 옛 고향이 되었고 瀋陽來添新部落 심양은 더해 오니 새 부락이 되었지. 饑食黃羊渴駱漿 굶주..
1. 이화암에서 기이한 사연을 지닌 노승을 만나다 梨花古庵一老釋 이화 오랜 암자의 한 노승이 九十五歲猶矍鑠 95세인데도 아직도 눈빛이 또렷했다. 我昔南遊客湖中 내가 옛적에 남쪽으로 충청도를 유람할 적에 偶過此寺曾一識 우연히 이 사찰에 들러 일찍이 한 번 알게 됐다. 黃髮髼鬆剪復生 누런 빛 머리털은 쑥대머리로 잘라도 다시 나고, 碧眼閃睒光如射 푸른 눈은 반짝반짝하여 빛을 쏘는 듯했다. 不念菩薩不燒香 보살에 염불하지도 향불을 사르지 않으며 深居但調龜鶴息 깊은 곳에 거처하며 다만 장생을 위한 귀학의 숨만 골랐다. 有時發喉作商調 이따금 목청을 열어 구슬픈 노래를 지었는데 不似山歌與村曲 「산가(山歌)」와 「촌곡(村曲)」과는 같지 않았다. 大漠陰風吹颯颯 광막한 땅에 음풍이 쏴아 불어대니 滿寺紅葉驚摵摵 절 가득 붉은..
해설. 참영웅 정금남을 기리며 이 시는 명장 정충신을 노래한 것이다. 길마재 싸움으로 이괄 반란을 진압한 사적은 그의 가장 큰 무훈이기 때문에 제목을 「길마제 노래」로 붙인 것이다. 내용 구성 역시 이 길마재 싸움을 중심으로 엮여 있다. 시의 서두에서 먼저 작중 주인공의 성격을 ‘정금남 참영웅[鄭錦南眞英雄]’이라고 규정짓고 들어간다. 그가 과연 어찌하여 ‘참영웅’인가를 증언하는 것이 시의 내용인 셈이다. 서장에서 그 인물 됨됨이를 전체적으로 평가한 다음 “한때 장옥성(張玉城) 밑에 있게 되었다네”라고 생애적 사실을 끌어와서 본장으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길마재의 일전으로 반군을 궤멸하게 되는 과정, 이어 공신들이 회맹(會盟)하기까지 일련의 상황이 시간의 순차에 따라 서술된다. 정충신의 ‘참영웅’으로서의 면..
길마재에서 이괄의 난을 제압한 정충신을 그리며 안현가(鞍峴歌) 김창흡(金昌翕) 鄭錦南眞英雄 금남 정충신(鄭忠信)은 참 영웅이니 骨聳精緊萬人中 뼈가 솟고 정기가 만 사람 중에서 휘 감았으며 氣候分明朱義封 기후가 분명한 건 의봉 주연(朱然)이고 胸襟沈靜王司空 흉금이 잠잠하고 고요한 건 왕사공이네. 亦有春秋癖經緯 또한 세월 동안 역사에 관심이 있어 六韜三略通平生 육도와 삼략을 평생동안에 통하였지. 知遇李鰲城 오성 이항복(李恒福)과 친했으며 一時服事張玉城 한 때에 옥성부원군 장옥성[張晩]을 심복하며 섬겼네. 關西督府載草草 관서의 도독부는 임무가 어설퍼 半繕營壘未鍊兵 반쯤 보루를 보수하고 경영하며 병사들 훈련을 마치지 못했는데 蜂目將軍擧事速 봉목장군 이괄(李适)은 거사를 신속히 하였으니 卒銳久已輕朝廷 마침내 정예..
해설. 신출했지만 끝내 은둔했던 곽재우 이 시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용명을 떨친 홍의장군 곽재우를 노래한 것이다. 시인의 발길이 장군의 유적지에 닿아 그의 무훈을 기리고 기품을 추모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전반부에서는 장군의 빛나고 빼어난 형상을 그려낸다. 그런데 그의 행적의 전말을 서술하는 방식보다는 최초 기의(起義)를 해서 신출한 전법으로 승리한 사실을 주로 부각시켜 인상을 선명히 하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전쟁이 끝난 이후 장군의 처신을 다룬다. 그는 공훈을 세웠을 뿐 아니라, 세상을 구제할 재목임에도 은거하는 쪽을 택하였다. 그리 된 사정을 개탄하며 “강물에 낚싯대 드리웠으되 강태공(姜太公)의 때 기다림이 아닌데 / 솔잎 먹은 뜻인들 적송자(赤松子) 따라 신선되려 함이랴[持竿不是太公釣 食松寧慕..
홍의장군 곽재우의 혁혁한 공로와 쓸쓸한 말년 홍의장군가(紅衣將軍歌) 김창흡(金昌翕) 壬辰討倭義士多 임진년 왜구 토벌한 의사가 많지만 紅衣將軍孰能過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를 누가 넘어설 수 있으랴? 將軍初自宜寧起 장군은 초반에 의령에서부터 일어나 請誅逗撓奮天戈 관망만 하는 이들 베라 청하며 하늘의 창을 떨쳤네. 登陣白馬以橫行 진에 올라 흰 말로 비껴 달리니 一望紅衣衆倭驚 한 번 홍의장군 볼 적에 뭇 왜구들 놀라네. 逡廵不敢與交鋒 뒷걸음칠 뿐 감히 교전하지 못하고 及至相薄風火生 서로 싸우게 되면 바람과 불꽃이 생기네. 砲丸雨落雪鬣騰 포환이 비처럼 떨어지나 눈 같은 갈기로 달리니 鐵甲潮退霞袍輕 철갑옷 입은이 썰물처럼 물러나고 노을빛 겉옷 가벼웠지. 將軍跳宕蓋有神 장군은 뛰어다니며 호탕하니 대체로 귀신 들린 ..
해설. 명나라 멸망 시에 표류하던 중국인들 이 시는 명나라가 멸망한 이후 우리 땅으로 표류해왔던 중국인들의 말을 듣고 감회를 표현한 내용이다. 그네들은 배를 타고 일본으로 몰래 무역을 하러 나섰다가 표류한 것이다. 그들의 말인즉 단순한 생업이 아니고 조국의 회복을 위한 자금 마련이 목적이라 한다. 그런데 이조 정부는 이들을 청국으로 강제 송환하는 것이다. 작중의 현재가 곧 그들이 억지로 끌려가는 상황이다. 지금 그들은 “진작 바다에 빠져나 죽을 것을 / 구차히 살아서 되놈 세상에 치욕을 당하게 되다니[蹈海悔不死 苟活恥帝秦]”라고 하며 바다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을 오히려 통한하는 것이다. 『설초집』에서 「표류한 상인들의 노래」은 정미, 즉 1667년(현종 8년, 중국은 강희 6년)에 쓴 것으로 밝혀져..
청나라에 잡혔다가 조선에 표류한 바다 상인들의 이야기 표상행(漂商行) 최승태(崔承太) 可憐漂海商 九十有五人 가련쿠나. 바다에 표류하는 상인 95명. 自言泉漳客 生少居海濱 스스로 말하네. “천주와 장주의 나그네로 어려서부터 바닷가에 살았죠. 每憤中土裂 天步方艱屯 매번 중국의 찢어짐 분개하였고 한 나라의 운명이 곧 고난에 시달렸지요. 販貨充軍儲 徇國不爲貧 재화를 벌어 군인의 창고 채우니 나라에 다한 것이지 가난을 위한 건 아니었죠. 五月辭鄕土 遙向日東垠 5월에 고향에서 인사하고 아득히 일본의 가장자리로 향했어요. 張帆拂烟瘴 捩柁淩波臣 펼쳐진 돛은 장기(瘴氣)를 떨쳐버리고 휘두른 키에 파신을 두렵게 하죠. 層飈激陽侯 驚濤噴嶙峋 겹겹이 쌓인 태풍이 양후를 격동시키니 놀란 파도가 드높이 내뿜어지네. 日月蕩洶湧 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