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 포
포(圃)
습지(濕地)를 말한다.
포객(逋客)
도망간 은자(隱者)를 뜻한 말로, 남제(南齊) 때의 은사 주옹(周顒)이 처음 북산(北山)에 은거하다가 뒤에 벼슬길에 나가자, 그의 친구인 공치규(孔稚圭)가 그 변절(變節)을 풍자한 「북산이문(北山移文)」에서 “청컨대 속사의 수레를 돌리어라, 신령을 위하여 포객을 사절하노라[請廻俗士駕 爲君謝逋客].” 한 데서 온 말이다.
포견(袍繭)
제복(祭服)의 일종. 『송사(宋史)』 「여복지(輿服志)」
포계(匏繫)
한 곳에 매달린 뒤웅박이라는 말로, 벼슬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골에 내려가 한가하게 지내는 것을 말한다. 『논어(論語)』 「양화(陽貨)」에 “내가 어찌 뒤웅박처럼 한 곳에 매달린 채 먹기를 구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吾豈匏瓜也哉 焉能繫而不食].”라고 탄식한 공자(孔子)의 말이 실려 있다.
포고(布鼓)
포목으로 만들어 아예 소리도 나지 않는 북을 말한다.
포고뇌문(布鼓雷門)
한(漢) 나라 왕존(王尊)이 동평왕(東平王)의 상(相)이 되었을 때, 왕 앞에서 태부(太傅)가 상서(相鼠)라는 시를 강론하는 것을 보고는, “소리도 안 나는 베 북을 가지고, 천지를 진동시키는 큰북이 걸려 있는 뇌문 앞을 지나가지 말라[毋持布鼓過雷門].”면서, 변변찮은 재주로 자기 앞에서 뽐내지 말라는 뜻으로 힐난했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한서(漢書)』 卷76 「왕존전(王尊傳)」
포곡(布穀)
뻐꾸기. 백성에게 은덕을 펴는 교서(敎書)나 명령을 말한다. / 인용: 偶吟(최승로), 書江城縣舍(정윤의), 뻐꾹새 울음 속에 담긴 사회학①ㆍ②
포곤(褒袞)
춘추(春秋)의 필법(筆法)에 있어, “한 글자의 포양이 화곤보다 영광되다[一字之褒 榮於華袞].”는 데서 온 말이다.
포과탄(匏瓜嘆)
활동을 자유로이 하지 못함을 비유한 말이다. 포과는 박을 가리키는데,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내가 어찌 박이겠느냐, 어찌 한 군데 매여 있어 밥을 먹지 못하겠느냐.” 한 데서 온 말이다. 『논어(論語)』 「양화(陽貨)」
포관(抱關)
포관격탁(抱關擊柝)의 준말로, 미관말직(微官末職)을 뜻하는 말이다. 현자(賢者)가 밤에 성문(城門)을 돌면서 딱따기를 치고는, 그 대가를 받아 가난한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맹자(孟子)』 「만장(萬章)」 下
포관격탁(抱關擊柝)
포관은 문지기이고 격탁은 나무를 두드리면서 야경(夜警)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전하여 비천(卑賤)한 관리(官吏)의 뜻으로 쓰인다. 『맹자(孟子)』 「만장(萬章)」 下에 “높은 자리를 사양하고 낮은 자리에 처하며 부(富)를 사양하고 가난한 데 처하려면 어떤 자리가 마땅한가? 포관과 격탁이 좋으니라[辭尊居卑, 辭富居貧, 惡乎宜乎? 抱關擊柝].” 한 데서 온 말로, 현인(賢人)ㆍ달사(達士)가, 집은 가난한데 늙은 부모가 계신다면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본의 아니게 벼슬을 할 경우, 이런 벼슬이 알맞다는 말이다.
포궁정(抱弓情)
황제(黃帝)가 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갈 때, 용이 황제의 활을 떨어뜨렸는데, 이에 백성들이 활을 부여안고(抱弓) 호곡하며 앙모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
포규선(蒲葵扇)
부들 잎으로 만든 부채
포금기원(布金祗園)
신앙심 깊은 불교 신도의 시주(施主)에 의해서 세워지는 사찰이란 뜻이다. 진(晉) 나라 법현(法顯)의 불국기(佛國記)에, 인도(印度)의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가 석가모니에게 사찰을 지어 기증하려고 기타태자(祗陀太子)에게 찾아가 그 정원을 팔도록 종용하자, 태자가 농담삼아 “그 땅에다 황금을 깔아 놓아야만 팔 수 있다.[金遍乃賣]”고 하였는데, 이에 『장자(莊子)』가 전 재산을 기울여 그곳에 황금을 깔아 놓자[卽出藏金 隨言布地], 태자가 감동하여 그곳에 절을 짓게 하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이 절이 바로 기원 정사로서, 기타태자의 수목과 급고독 장자의 땅이란 뜻을 취해서 기수급고독원(祗樹給孤獨園)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포금작랄(鋪金作埒)
진(晉) 나라 왕제(王濟)가 말달리며 활을 쏘는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낙양(洛陽) 교외 북망산(北邙山) 아래의 금싸라기 땅을 대거 사들인 뒤에, 돌이나 흙 대신에 동전(銅錢)을 꿰어 엮어서 울타리를 둘렀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황금 울타리(金埒)’라고 불렀다는 고사가 전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태치(汰侈)」
포기(包杞)
아름다운 보배를 뜻하는 것으로 『역경(易經)』 구괘(姤卦)에 “기나무로 외를 싼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주에 외는 잘 썩지만 기나무에 매달아 놓으면 잘 보관된다 하였다.
포단(蒲團)
부들로 짠 둥근 방석으로 승려가 좌선(坐禪)할 때나 배례(拜禮)할 때 사용하던 것이다. 허혼시(許渾詩)에 “오 나라 승려 독경을 마치고, 누더기 가사로 포단에 기대었네[吳僧誦經罷 敗衲依蒲團]”하였다. / 인용: 梨花庵老僧行(최성대)
포단취(蒲團趣)
부들 방석에 단정히 앉아 명상을 하는 선승(禪僧)과 같은 법락(法樂)을 말한다.
포도(逋逃)
죄를 짓고 도망쳐 온 자를 말한다.
포도(蒲萄)
한 무제(漢武帝) 때 장건(張騫)이 서역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면서 종자를 가져 왔다고 한다. 『한서(漢書)』 「서역전(西域傳)」上 「대원국(大宛國)」
포도궁(葡萄宮)
한(漢) 나라 궁전 이름으로, 애제(哀帝) 때 흉노의 선우(單于)가 중국에 오면 이 궁전에 거하게 하였다. 『한서(漢書)』 「흉노전(匈奴傳)」下
포도종한궁(葡萄種漢宮)
한 무제(漢武帝) 때에 장건(張騫)이 서역(西域)에 다녀오면서 포도(葡萄)의 종자를 가져 왔다.
포독수(飽毒手)
석륵(石勒)이 소시 적에 이웃에 사는 이양(李陽)과 땅을 다투어 서로 때리고 싸운 일이 있었는데, 석륵이 뒤에 임금이 되어 이양을 불러서 술을 마시며 농담하기를, “전일에 나도 자네의 억센 주먹에 욕보았고, 나의 독한 손에 지쳤느니.” 하였다.
포라(蒲蠃)
포(蒲)는 수초(水草)이고, 라(蠃)는 방합(蚌蛤)의 종류로서 모두 식용(食用)하는 것이다.
포락지형(炮烙之刑)
은(殷)나라 주왕(紂王)이 쓰던 형벌로 불에 달군 쇠기둥을 맨발로 걸어가게 하던 형별을 일컫는 고사성어다.
포로일소(包老一笑)
송(宋) 나라 때 아주 강직했던 법관(法官) 포증(包拯)을 가리키는데, 그는 부정한 자들을 검거하여 처벌하는 데에 대단히 엄격했으므로 당시에 염라 포로(閻羅包老)라 불리었고, 당시 사람들은 특히 그의 웃음을 황하(黃河)가 맑아지는 데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포뢰(蒲牢)
① 바다짐승 이른다. 포뢰는 평소 고래를 무서워하여 고래가 치고 덤비면 포뢰가 크게 운다고 한다. 따라서 종은 소리가 커야 하기 때문에 종을 주조할 때면 포뢰를 그 위에다 새기므로 전하여 종의 별명을 포뢰라고도 한다. 『후한서(後漢書)』 「반고전(班固傳)」
② 종의 용두(龍頭)를 이른다.
포루(布縷)
국가에 바치는 베와 실을 말한다.
포류(蒲柳)
부들과 버드나무 가지. 흔히 허약한 몸에 비유한다.
포류망추(蒲柳望秋)
체질이 쇠약함을 비유한 말이다. 진(晉) 나라 때 고열지(顧悅之)가 간문제(簡文帝)와 동년(同年)이었는데, 그의 머리가 일찍 희어졌으므로, 간문제가 이르기를 “어째서 경(卿)의 머리가 먼저 희어지는가?”하니, 고열지가 대답하기를 “포류(蒲柳; 냇버들)의 자질은 가을을 바라만 보고도 잎이 떨어지고, 송백(松柏)의 자질은 서리를 맞을수록 더욱 무성해지는 것입니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言語)」
포류지질(蒲柳之質)
물가에 서 있는 버드나무와 같이 허약한 체질, 혹은 머리가 일찍 희는 약한 체질.
포륜(蒲輪)
조정에서 나이 많은 현인을 부를 때 터덜거리지 않고 편안하게 모시기 위해 바퀴를 부들풀로 감싼 안락한 수레를 말한다.
포말청혜(布襪靑鞋)
평민의 복장으로, 보통은 은거하는 이의 옷차림을 말한다.
포망(捕亡)
종이 나루를 건너자면 그 주인이 써 준 글을 증명으로 삼아야 하는데, 이 글을 포망이라 칭한다. 이것이 없으면 잡아서 고발한다.
포모(包茅)
옛날에 제사지낼 때 띠를 묶어 그릇에 놓고 술을 따르는 것. 『사기(史記)』 「제태공세가(齊太公世家)」에 “초(楚) 나라가 포모를 바치지 않았으므로 왕(王)의 제사를 제대로 지낼 수 없었다.” 하였다.
포무어(包無魚)
『주역(周易)』 구괘(姤卦) 상사(象辭)에 “부엌에 고기 한 마리가 있다는 것은 그것이 손님에게까지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包有魚義不及賓也].”하였다.
포박(抱朴)
호가 『포박자(抱朴子)』인 진(晉) 나라 때 신선으로 나부산(羅浮山)에 은거했던 갈홍(葛洪)을 가리킨다.
포박옹(抱朴翁)
동진(東晉)의 포박자 갈홍(葛洪)처럼 장생(長生)의 선술(仙術)을 닦는 사람을 말한다. 원래 『노자(老子)』 19장의 “소박함을 지니고 사욕을 줄인다[見素抱朴 少私寡欲].”라는 말에서 나왔다.
『포박자(抱朴子)』
갈홍(葛洪)의 호이다. 진대(晉代) 동진의 도사. 강소(江蘇) 사람. 자는 치천(雉川), 도적을 평정한 공으로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졌으나 신선의 도양술(導養術)을 좋아하여 교지(交趾)에 단사(丹沙)가 난단 말을 듣고, 그 영(令)이 되기를 자원하여 나부산(羅浮山)에 들어 연단(煉丹)하였다.
포박제(抱璞啼)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을 한탄한다’는 뜻이다.
포백숙속(布帛菽粟)
포백(布帛)은 삼베이고 숙속(菽粟)은 곡물이다. 비단과 고기에 비하면 수수하지만 일상생활의 필수품이므로 흔히 평범해도 극히 필요한 것에 비유한다. 여기서는 고봉의 말이 꾸밈이 없어 진솔하다는 뜻이다. 『송사(宋史)』 권427 「정신전(程頣傳)」에 “그 말씀의 아름다움이 포백과 숙속 같았다.[其言之旨 若布帛菽粟然]” 하였다.
포벽(蒲璧)
부들꽃 무늬를 새긴 옥그릇으로 주(周)나라 때 제후국의 등급을 구분하는 여섯 가지 옥그릇 가운데 하나이다.
포복절도(抱腹絶倒)
배를 안고 기절하여 넘어짐.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몹시 우스움을 나타낸 말이다.
포부(逋負)
조세(租稅)를 포탈(逋脫)하여 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청음집(淸陰集)』 / 인용: 母別子(김성일)
포비(飽飛)
배 고프면 사람을 따르고 배 부르면 날아가 버리는 매처럼, 실컷 자기 욕심을 채우고는 떠나가 버린 것을 말한다. 두보(杜甫)의 시에 “청해 지방 지금 누가 얻을까, 서융은 실로 배 부르면 날아가 버리나니[靑海今誰得 西戎實飽飛].”라는 구절이 있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卷12 「경급(警急)」
포사(鮑謝)
① 남조(南朝) 송(宋) 나라 포조(鮑照)와 사영운(謝靈運)을 말한다.
② 포조(鮑照)와 사현휘(謝玄暉)를 말한다.
포사(褒姒)
주유(周幽)왕후. 웃지 않았다는 미인 후궁. 봉화를 올려서 제후들이 허둥거리며 군사들을 끌고 오는 것을 보고 웃자 그에 왕은 자꾸 거짓으로 봉화를 올렸고 결국 실제로 외적이 쳐들어 왔을 때엔 아무도 오지 않아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
포사곡(褒斜谷)
중국 섬서성(陝西省) 종남산(終南山)의 골짜기 이름으로 교통의 요로(要路)이다.
「포사자설(捕蛇者說)」
유자후가 영주자사(永州刺史)로 있을 때에 독사(毒蛇)가 많으므로 포사자설(捕蛇者說)을 지었다.
포산(逋散)
백성이 부과된 세금을 내지 못해 다른 지방으로 도망가고 흩어지는 것을 말한다.
포상(苞桑)
떨기로 난 뽕나무를 말한다. 『주역(周易)』에, “나라가 망할까 염려하여 떨기로 된 뽕나무(苞桑)에 매라.” 하였다. 뽕나무는 뿌리가 깊이 들어가 튼튼하여 잘 뽑아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포새(蒲塞)
① 불교(佛敎) 용어인 이포새(伊蒲塞)의 준말로, 오계(五戒)를 받은 남자 중을 이른다.
② 중들에게 공양(供養)하는 식물(食物)인 이포찬(伊蒲饌)을 말한다.
포석(蒲席)
부들잎으로 엮은 자리, 한(漢) 나라 원제(元帝) 때에 태자로 있던 성제(成帝)를 폐위하려는 계획이 은밀히 진행되고 있었는데, 원제가 위독하자, 부마시중 도위(駙馬侍中都尉)로 있던 사단(史丹)이 한가한 틈을 타 곧바로 들어가서 푸른 포석 위에 엎드려 『장자(莊子)』인 태자를 아무런 이유 없이 폐위하는 것은 지극히 부당하다고 직간(直諫)하여 결국 성제가 즉위하게 되었다. 『한서(漢書)』 卷八十二 「사단전(史丹傳)」
포석정(鮑石亭)
금오산 서쪽 기슭에 있는데, 돌을 다듬어 포어(鮑魚)의 형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여기에는 지금까지도 유상곡수(流觴曲水)의 유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고려 태조 10년에 후백제(後百濟)의 견훤(甄萱)이 신라의 고울부(高鬱府)를 습격하고, 점차로 신라의 도성(都城)까지 쳐들어갔는데, 그때 신라 경애왕(景哀王)은 비빈(妃嬪)ㆍ종척(宗戚)들과 함께 포석정에서 잔치를 열고 즐기다가, 갑자기 적병이 왔다는 말을 듣고는, 왕비와 함께 성남(城南)의 이궁(離宮)으로 가 숨었었다. 그러나 곧바로 견훤의 군사에 의해 경애왕은 왕궁으로 잡혀가 핍박에 의해서 자살하였고, 왕비는 그들에게 능욕을 당하였다.
포선(逋仙)
송(宋) 나라의 은일(隱逸) 임포(林逋)를 가리킨다. 자는 군복(君復), 호는 화정처사(和靖處士). 그는 벼슬을 하지 않고 은둔하였으며, 뒤에는 항주(杭州)에 돌아와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집을 짓고 사니, 사람들은 고산처사(孤山處士)라 호했는데, 이곳에는 특히 매화가 많았으며 산수가 아름다웠다. 매화를 아주 좋아하여 “매화로 아내를 삼고 학(鶴)으로 자식을 삼았다[梅妻鶴子].”는 말이 있는데, 그의 매화시(梅花詩)에 “疏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이란 글귀가 매우 유명하다.
포선망작규(捕蟬忘雀窺)
남 해칠 줄만 알고 저 죽을 줄은 모른다는 뜻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초 장왕(楚莊王)이 진(晉)을 치려면서 포고하기를 “진을 못 치게 간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으리라.” 하자, 손숙오(孫叔敖)가 간하기를 “신의 정원에 서 있는 느티나무에 매미 한 마리가 있는데, 그 매미는 이슬을 받아먹으려 하여 뒤에 있는 버미재비가 저 잡아먹으러 오는 줄을 모르고, 그 버마재비는 매미를 잡아먹으려 하여 뒤에 있는 새가 저 쪼아먹으러 오는 줄을 모르더이다.” 하였다. 『한시외전(韓詩外傳)』
포성(蒲城)
포읍(蒲邑)과 같은 뜻으로,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공경(恭敬)ㆍ충신(忠信)ㆍ명찰(明察) 이 세 가지 선(善)으로 포읍을 잘 다스렸다 한다. 『공자가어(孔子家語)』 「변정(辯政)」
포손(抱孫)
장차 죽어서 제사를 받을 때 자신의 시동(尸童)이 될 손자에 대한 애틋한 정을 말한다. 『예기(禮記)』 「곡례(曲禮)」 上에 “군자는 손자를 안을 뿐(抱孫) 아들은 안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곧 조부의 시동은 손자가 되지 아들은 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증자문(曾子問)에 “시동은 반드시 손자를 세우는데, 손자가 너무 어리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손자를 안고 있게 한다[尸必以孫 孫幼則使人抱之].”하였다.
포숙(鮑叔)
춘추(春秋) 시대 때 제(齊) 나라의 대부(大夫)로 관중(管仲)과 친하여 가난한 그에게 재물을 나누어주고 그가 갇히었을 때 환공(桓公)에게 천거하여 석방되게 하고, 환공을 도와 패업을 이루게 했다. 관중이 술회한 말에, “나를 낳은 이는 부모이며, 나를 알아준 자는 포숙이다.” 하였다. 『사기(史記)』 卷 62 「관안열전(管晏列傳)」, 『열자(列子)』 「역명(力命)」 / 유의어: 포숙아(鮑叔牙)
포시(晡時)
신시(申時). 저녁 무렵. / 인용: 昆侖奴(신광하)
포식난의(飽食暖衣)
배부르게(飽) 먹고(食) 따뜻하게(暖) 입음(衣) 아주 편안한 생활이란 뜻이다. 근심없이 편안한 삶. 지나치게 편안한 것은 패륜을 낳는다는 경계의 뜻으로도 쓰인다.
포씨편련아(鮑氏偏憐我)
관포지교(管鮑之交)를 말한 것이다. 『사기(史記)』 卷 62 「관안열전(管晏列傳)」
포야위처(逋也爲妻)
임포는 처자를 거느리지 않고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은거하여 매화를 심고 학을 길렀으므로 사람들이 매처학자(梅妻鶴子)라 불렀다.
포양(蒲楊)
포류(蒲柳)와 같은 말로, 허약한 체질이라서 일찍 늙고 쇠해진 몸이라는 뜻이다. 진(晉) 나라 고열지(顧悅之)가 간문제(簡文帝)와 동갑이었는데도 일찍 백발이 되자 그 이유를 물으니, “포류와 같은 체질이라서 가을만 바라보면 벌써 떨어지고 만다[蒲柳之資 望秋而落].”고 대답한 고사가 전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諺語)」
포어불구조룡취(鮑魚不救祖龍臭)
조룡의 조(祖)는 시(始), 용(龍)은 인군(人君)의 상으로서 즉 진(秦) 나라 시황제(始皇帝)를 가리키는데,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36년 가을, 사자(使者)가 관동(關東)에서 밤에 화음(華陰) 땅 평서(平舒)의 길을 지나가는데, 어떤 사람이 구슬을 쥐고 길을 막으며 말하기를 ‘내 대신 호지군(滈池君)에게 전해 주어라[爲吾遺滈池君].’ 하고 이어 말하기를 ‘올해 조룡이 죽는다[今年祖龍死].’ 하였다.” 하였다. 진시황(秦始皇)이 사구(沙丘) 평대(平臺)에서 죽었는데, 마침 무더위가 한창이라서 온량거(轀涼車) 안에 있던 진시황의 시체에서 악취가 풍겨 나오자 시황의 죽음을 눈치채지 못하게 건어물을 잔뜩 실었다고 한다.
포어사(鮑魚肆)
소인배들이나 악인들이 모이는 곳을 비유한 말이다.
포어석(鮑魚石)
경주(慶州)의 남쪽, 금오산(金烏山)의 서쪽에 위치한 포석정(鮑石亭)을 이르는데, 돌을 다듬어 마치 포어(鮑魚) 같은 형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아직도 그 곳에는 신라(新羅) 때에 유상곡수(流觴曲水)하던 유적이 완연하게 남아 있다고 한다.
포역동귀(抱易東歸)
한(漢) 나라 때 역학자(易學者)인 정관(丁寬)이 전하(田何)에게서 주역을 배워 학문이 성취된 후에 동(東)으로 돌아가자, 이때 전하가 “『주역(周易)』이 동으로 가버렸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한서(漢書)』 卷八十八
포연(酺宴)
한 문제(漢文帝)가 즉위하여 온 천하에 사면령을 내리고, 세 사람 이상이 모여 마시면 벌금으로 넉 냥씩을 받던 제도를 폐하고서 백성들에게 큰 잔치를 내려 5일 간은 계속 모여 마시게 하였던 일. 『한서(漢書)』 「문제기(文帝紀)」
포엽(蒲葉)
‘부들 잎’을 말한다.
포오호(哺烏呼)
까마귀가 다 크면 어미의 먹을 것을 물어다 준다는 반포(反哺)의 고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비통해하는 효자의 심정을 가리킨다.
포옥삼련월(抱玉三連刖)
옛날 변화(卞和)란 자가 형산에서 옥돌을 얻어 임금에게 바쳤으나, 돌이라 하여 발꿈치를 베는 형벌을 당했다. 이러기를 세 번이나 한 후에야 비로소 옥돌임이 밝혀졌다. 이것이 이른바 화씨벽(和氏璧)이다. 『한비자(韓非子)』 「화씨(和氏)」
포옹(逋翁)
① 은둔해 있는 노인으로 상산사호(商山四皓)를 가리킨다.
② 임포(林逋)를 말한다.
포옹(浦翁)
호가 추포(秋浦)인 황신(黃愼)을 말한다.
포옹고(抱甕苦)
『장자(莊子)』 「천지(天地)」에 “자공(子貢)이 초(楚) 지방을 지나다가 단지로 물을 퍼서 밭에 물을 주느라고 애쓰는 농부를 보고 ‘두레박으로 퍼올리면 힘도 안 들고 물도 많이 풀 수 있는데, 왜 그 고생을 하는가?’ 하니, ‘기계를 사용하려는 마음이 생기면 순백(純白)한 마음을 가질 수 없고 따라서 도심(道心)을 지킬 수 없으므로 알면서도 쓰지 않는다.’ 했다.” 하였다.
포옹관신정(抱甕灌新井)
졸루(拙陋)한 것을 편안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자공(子貢)이 한음(漢陰)을 지나다가 보니, 한 늙은이가 밭이랑을 만드는데 우물에 내려가서 항아리에 물을 길어다가 물을 주고 있어 능률이 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자공이 물 푸는 기구를 주었으나 그 노인은 순백(純白)한 일이 아니라 하여 거절하였다. 『장자(莊子)』 「천지(天地)」
포옹구망구(抱瓮久忘劬)
편리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일부러 마다하고 자신의 소신대로 질박한 생활을 고집하며 사는 것을 말한다. 두레박을 사용하면 훨씬 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 꾀를 부리려는 마음(機心)이 싹틀까 봐 굳이 물단지를 안고(抱甕) 들어가서 물을 퍼 담아 밭에 물을 주는 노인의 이야기가 있다. 『장자(莊子)』 「천지(天地)」
포옹장인(抱甕丈人)
『장자(莊子)』 「천지(天地)」에 “자공(子貢)이 길을 가다 보니 어떤 사람이 논에 물을 대는데, 단지를 안고 우물로 들어가 길어다가 대니 힘만 들고 효과가 없었다. 자공이 ‘힘 안 들고 효과 많은 기계가 있는데 왜 안 쓰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기계를 쓰면 요령 부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요령을 부리면 순수한 마음을 보전하여 도를 완전하게 할 수 없다. 기계가 있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수치스럽게 여겨 쓰지 않는 것이다.’ 했다.” 하였다.
포옹한음(抱甕漢陰)
자공(子貢)이 초(楚) 나라에서 진(晉) 나라로 돌아갈 때 한음(漢陰)을 지나다가 보니, 한 노인(丈人)이 독을 들고 물을 운반하여 언덕에 오르내리며 밭에 물을 주고 있었다. 자공이 그에게 말하기를, “두릿대(桔橰)를 만들어 물을 푸면 수월하고 일이 쉬울 터인데, 왜 이다지 독을 안고 수고하십니까.” 하니, 노인이 말하기를, “기계(機械)를 쓰는 자가 기사(機事)가 있고, 기사가 있으면 기심(機心)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기계를 쓰지 않는다[有機械者必有機事, 有機事者必有機心].” 하였다. 『장자(莊子)』 「천지(天地)」
포용도(包龍圖)
송(宋) 나라 때 용도각 대제(龍圖閣待制)를 지낸 포증(包拯)을 가리키는데, 성품이 워낙 강직하여 그가 조정에서 벼슬하는 동안에는 귀척(貴戚)이나 환관(宦官)들도 감히 발호하지 못하고 그를 무서워하였으며 그가 하도 근엄(謹嚴)하여 웃는 일이 없으므로, 심지어는 사람들이 일컫기를 “그가 웃으면 황하수(黃河水)가 맑아질 것이다.”고까지 하였다. 당시 포대제(包待制) 또는 염라포로(閻羅包老) 등으로 불렸다.
포유경혜천상(抱遺經兮穿床)
한(漢) 나라 관녕(管寧)의 자(字)가 유안(幼安)인데, 조조(曹操) 때에 난을 피하여 요동(遼東)에 가서 살면서, 수십 년 동안 한 목탑(木榻)에 앉아 있었으므로, 그의 무릎이 닿은 곳은 목탑(木榻)이 뚫어졌다 한다.
포육천교(飽肉天驕)
평생 고기만 실컷 먹어 비린내나는 교만한 북방 오랑캐라는 뜻이다. 『한서(漢書)』 「흉노전(匈奴傳)」에 “胡者 天之驕子也”라는 말이 있으며, 두보(杜甫)의 시에 “화문 땅 건방진 놈들, 고기 먹고 호기 부리네[花門天驕子 飽肉氣勇決].”이라는 구절이 있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卷7 「유화문(留花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호이다.
포의(布衣)
벼슬하지 않고 지내는 평민을 가리키는 말이다.
포의(褒衣)
품이 넓은 옷으로 유자(儒者)가 입는 것이다.
포의제왕사(布衣帝王師)
장량(張良)이 공을 이룬 뒤에 말하기를, “포의(布衣)로서 제왕의 스승이 되었으니 소원에 만족하다.” 하였다.
포의지교(布衣之交)
베옷을 입고 지낼 때 사귄 친구. 가난하고 어려울 때 사귄 친구 또는 벼슬길에 오르기 전에 사귄 벗.
포의한사(布衣寒士)
‘벼슬길에 오르지 못한 선비’를 말한다.
포이덕취이주(飽以德醉以酒)
『시경(詩經)』 대아(大雅) 「기취(旣醉)」에 “이미 술로 취하게 하고 이내 덕으로 배불리니[旣醉明證 旣飽以德].” 하였는데, 천자가 제후(諸侯)에게 연회를 베푼 데 대한 시다.
포인계육(庖人繼肉)
임금이 계속해서 음식물을 하사하였다는 뜻이다. 포인(庖人)은 푸줏간 사람을 말한다. 만장(萬章)이 맹자(孟子)에게 임금이 군자를 봉양하는 도리를 묻자, 맹자가 “임금의 명에 따라 물건을 가져오거든 신하는 재배하고서 받는다. 그 뒤에는 창고지기는 계속해서 곡식을 대주고, 푸줏간 사람은 계속해서 고기를 대준다[以君命將之, 再拜稽首而受. 其後廩人繼粟, 庖人繼肉].” 하였다. 『맹자(孟子)』 「만장(萬章)」 下
포장박뢰풍(鋪張薄雷風)
바람과 우레 같은 문장으로써 임금의 공덕을 포장(鋪張)한다는 뜻이다.
포저(苞苴)
‘물건을 싸는 것과 물건 밑에 까는 것’이란 뜻으로, ‘뇌물로 보내는 물건을 이르는 말’을 말한다. / 인용: 民心篇(신흠)
포정안저흠전우(庖丁眼底欠全牛)
소를 가르는 신기(神技)를 가진 포정(庖丁)이 위(魏) 나라 문혜군(文惠君) 앞에서 그의 기술 연마(鍊磨)의 과정을 술회한 말이다. “처음 신이 소를 기를 때엔 보는 바가 소 아닌 것이 없었지요. 그러다가 3년 뒤에는 일찍이 ‘온전한 소’를 본 적이 없나이다.” 하였다. 식견이나 기예가 높은 경지에 이름을 비유한 말이다. 『장자(莊子)』 「양생주(養生主)」 / 유의어: 포정전우(庖丁全牛), 포정해우(庖丁解牛)
포조(餔糟)
굴자(屈子)는 굴원(屈原)을 가리킨다. 그의 「어부사(漁父辭)」를 보면 “사람들이 모두 취했다면, 어찌하여 술지게미라도 먹지 않는 것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한 뒤, 세속의 티끌을 뒤집어 쓸 수는 없다는 신념을 피력하고 있다.
포조(鮑照)
자(字)는 명원(明遠)이다. 언어 구사력이 풍부하고 문장력이 탁월한 그는 일찍이 고악부(古樂府)를 지어 명성을 드날린 바 있고, 하청송(河淸頌)이란 글도 지었는데, 특히 그 서문(序文)이 매우 돋보인다 하여 세조(世祖)가 중서사인(中書舍人)을 제수하였다. 『송서(宋書)』 卷五十一 「유의경열전(劉義慶列傳)」
포조계(匏爪繫)
공자(孔子)의 말에, “내가 어찌 박(瓠)이나 오이(瓜)처럼 덩굴에 매어서 다니지 아니하랴.” 하였다. 『논어(論語)』 「양화(陽貨)」
포좌(蒲坐)
부들로 짜서 만든 둥근 방석으로, 주로 중이 좌선하거나 무릎을 꿇고 절을 할 때 사용하는 것이다.
포주(抱州)
의주(義州)의 옛 이름이다.
포주(蒲酒)
창포(菖蒲)로 빚은 술을 말한다.
포주녀(抱裯女)
홑이불 안고 자기 처소로 가는 중첩(衆妾)을 말한다. 『시경(詩經)』 소남(召南) 「소성(小星)」에 “희미한 저 작은 별이여 삼성과 묘성이로세. 공경히 밤에 감이여, 이불과 홑이불 안고 가니 운명이 같지 않아서네[嘒彼小星, 維參與昴. 肅肅宵征, 抱衾與裯. 寔命不猶].” 하였는데 이는 신분이 낮은 중첩은 임금을 모실 수 없으므로 저녁이 되자 이불과 홑이불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자기의 운명을 읊은 것이라 한다.
포즉거(飽則去)
연(鳶)은 원래 하늘 높이 나는 솔개와 같다 해서 연(鳶) 자를 쓴 것인데, 솔개는 매와 비슷하다. 매는 성질이 “배가 고프면 사람을 따르고 배가 부르면 날아간다[飢則附人 飽則颺去].” 한 말을 들어 연은 매처럼 배가 불러 날아가는 것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포즉양(飽則颺)
매는 본디 배가 고프면 사람을 따르고, 배가 부르면 날아가 버린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후한서(後漢書)』 「여포전(呂布傳)」
포직(儤直)
관리(官吏)가 연일(連日) 숙직함을 가리킨 말이다.
포참(抱槧)
연분(鉛粉)과 목간(木簡)을 손에 쥔다는 ‘악연포참(握鉛抱槧)’의 준말로, 열심히 베껴 쓰고 교감(校勘)하는 일에 종사한다는 말이다.
포참군(鮑參軍)
포 참군은 남조 송(南朝宋) 때에 형주 참군(荊州參軍)을 지낸 시인 포조(鮑照)를 이르는데, 두보(杜甫)의 「억이백시(憶李白詩)」에 “시문이 청신하기는 유 개부 같고 뛰어나기는 포 참군 같았네[淸新庾開府 俊逸鮑參軍].”하였다.
포철(餔歠)
술지게미를 먹고 밑바닥에 남은 묽은 술까지 마신다는 뜻이다. 굴원(屈原)이 소인의 참소에 의해 쫓겨나서 초췌한 몰골로 강담(江潭)에서 읊조리며 노닐 적에 한 어부(漁父)가 굴원에게 그 까닭을 물으니, 굴원이 말하기를 “모든 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혼자만 깨어 있기 때문에 내침을 받은 것이다.”고 하자, 어부가 말하기를 “성인은 세상을 따라 변하여 가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취했으면, 어찌 그 술지게미를 먹고 남은 묽은 술까지 마시지 않고서 어찌하여 깊이 생각하고 고결하게 처신하여 내침을 받는단 말인가?”하였다. 그러자 굴원이 다시 말하기를 “어찌 결백한 몸으로 더러운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쓸 수 있겠는가.” 하니, 그 어부가 빙그레 웃고, 뱃전을 두드리며 창랑가(滄浪歌)를 부르면서 가버렸다는 데서 온 말이다. 『초사(楚辭)』 「어부사(漁父辭)」, 『맹자(孟子)』 「이루(離婁)」 上
포초고하상(鮑焦槁河上)
포초(鮑焦)는 주(周) 나라의 은사(隱士)이다. 직접 농사를 지어먹고 살면서 아내가 지어 준 옷이 아니면 입지를 않았는데, 언젠가 산속에서 배가 고파 대추를 따먹었을 때 어떤 사람이 ‘이 대추도 그대가 심은 것인가?’ 하고 힐문을 하자 마침내 구토를 하며 먹지 않고 말라죽었다 한다. 『풍속통(風俗通)』 愆禮ㆍ『장자(莊子)』 「도척(盜跖)」
포초래(蒲梢來)
처음에 무제가 점을 치니 신마(神馬)가 서북쪽에서 온다 하였는데, 뒤에 대완국(大宛國)을 쳐서 천리마인 포초천마(蒲梢天馬)를 얻고는 노래를 지어 “서극에서 천마가 옴이여 만리 먼 길을 거쳐 덕이 있는 이에게 돌아왔네[天馬來兮從西極 經萬里兮歸有德].” 하였다. 『사기(史記)』 「대원열전(大宛列傳)」
포취만거(鮑臭滿車)
진시황(秦始皇)이 동순(東巡) 하다가 중도에 사구평대(沙丘平臺)에서 죽었는데, 따라갔던 그의 작은 아들 호해(胡亥)가 음모(陰謀)를 꾸미느라고 서울에 가기까지 상사(喪事)를 비밀에 붙였는데, 시체의 썩는 냄새가 나므로 감추기 위하여 수레에 냄새 많이 나는 포어(鮑魚)를 실어서 시체 냄새 나는 줄을 모르도록 하였다.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포취만거중(鮑臭滿車中)
진시황(秦始皇)은 방사(方士)의 말을 듣고 불사약(不死藥)을 구하기 위하여 동남(童男)ㆍ동녀(童女)를 삼신산(三神山)에 보냈으나, 즉위한 지 37년 7월 외유(外遊) 길에 죽었다. 이때 수행한 간신 이사(李斯)와 조고(趙高)는 상(喪)을 발표하지 않고 거짓 조칙(詔勅)을 꾸며 장자(長子) 부소(扶蘇)를 죽이고 차자 호해(胡亥)를 태자(太子)로 세운 다음 돌아왔는데, 시체 썩는 냄새를 막기 위하여 정어리(鮑魚) 한 섬을 수레에 실어 그 냄새인 것처럼 꾸몄다.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포토(布土)
땅의 구획을 정한다. 구주(九州)에 관해서는 여와(女媧)에 나타나 있다.
포편(蒲鞭)
부들로 만든 채찍으로 너그러운 형벌을 말한 것이다. 후한(後漢) 때 유관(劉寬)이 남양태수(南陽太守)가 되었을 때, 그는 본성이 온화하고 인자한 관계로 혹 아전들이 과실을 범했을 적에는 부들 채찍(蒲鞭)으로 때려서 모욕만 줄뿐이었고, 끝내 아프게 때리지 않았던 데서 온 말이다. 『후한서(後漢書)』 「유관전(劉寬傳)」
포해(蒲海)
포류해(蒲類海)의 준말로 신강성(新疆省)에 있는 호수 이름이다.
포호빙하(暴虎憑河)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고 걸어서 강을 건넘. 무모하고 어리석은 용기를 말한다. 『논어(論語)』 「술이(述而)」
포호심장(包虎深藏)
전란이 평정되어 무기를 창고에 넣는 것을 말한다.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무왕(武王)이 목야(牧野)에서 주(紂)를 이기고 은나라 서울로 들어가서는……간과(干戈) 등을 칼날을 뒤로 뒤집어서 수레에 실었는데, 모두 호피로 쌌다.” 하였다.
포홀(袍笏)
도포(道袍)와 홀을 이르는 말로, 즉 조복(朝服)을 의미한다.
포황(包黃)
예전에 중국에서 처음으로 짐승을 기르기 시작한 이를 복희씨(伏犧氏)라 하는데, 역시 포희씨(包犧氏)라고 한다. 또 처음으로 배(舟)ㆍ수레(車)ㆍ창(槍)과 방패(干)를 만들어서 전 중국에 처음으로 군림한 사람을 황제헌원씨(黃帝軒轅氏)라 한다. 여기에는 그 두 사람을 말한 것이다.
포효(狍鴞)
양(羊)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범과 같은 이빨로 사람을 잡아먹고 산다는 괴수(怪獸)의 이름이다.
포휴(炰烋)
『시경(詩經)』 대아(大雅) 「탕(蕩)」에 “문왕이 말씀하시기를 ‘아, 너희 은상 사람아! 너희는 수도에서 포효하여 백성이 원망하는 일을 거두어 덕으로 여긴다[文王曰咨 咨女殷商 女炰烋于中國 斂怨以爲德].” 하였는데, 주자의 주에 “포효는 기세가 건장한 모습이다.” 하였다. / 인용: 北風(이학규)
포희팔괘(包羲八卦)
『주역(周易)』의 팔괘(八卦)는 상고(上古)에 포희씨(包羲氏)가 처음 그었다 한다.
포흠(逋欠)
포(逋)는 조세포탈을 말하고 흠(欠) 관물을 사사로이 축내어 부족을 초래한 것을 말한다. 즉 조세(租稅)를 포탈하거나 관물(官物)을 축내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 인용: 寺奴婢(권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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