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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 薄滋味 所以養氣 去嗔恚 所以養性
1. 養生之士 先寶其精 精滿則氣壯 氣壯則神王
46. 竹榻石枕蒲花褥 隱囊蘆花被紙帳 欹床藤墩蒲石盆 如意竹鉢鍾磬道服 文履道扇拂麈 雲舃竹杖 癭杯韻牌 酒罇詩筒禪燈 皆山居之不可闕者也 인용 야언1 작가 이력 및 작품 한시미학산책
44. 凡山具設經籍子史 備藥餌方書 儲佳筆名繭 留淸醪雜蔬 畜古書名畫 製絮枕蘆被 足以遣老
42. 人生唯寒食重九愼不可虛擲 四時之變 無如此節者
41. 荊楚歲時記 小寒三信梅花山茶水仙 大寒三信瑞香蘭花山礬 立春三信迎春櫻桃望春 雨水三信菜花杏花李花 驚蟄三信桃花棣棠薔薇 春分三信海棠梨花木蘭 淸明三信桐花菱花柳花 穀雨三信牡丹荼蘼楝花
38. 須一小舟 短帆輕棹 舟中雜置圖書鼎彝酒漿荈脯 風利道便 或訪故人 或訪名刹 且畜一歌娃一笛童一琴奚 與兒小隨意往來煙波間 以弭寥靜 最勝致 顧我國無此境 亦難辦此具爾
35. 杏花疏雨 楊柳輕風 興到忻然獨往
34. 鼓琴偏宜于桐風澗響之間 自然之聲正合類應
30. 마음 맞는 벗과 산에 올라 同會心友登山, 趺坐, 浪談. 談倦仰臥巖際, 見靑天白雲飛繞半空中, 便欣然自適. 해석 同會心友登山, 趺坐, 浪談. 마음 맞는 벗과 함께 산에 올라 가부좌 틀고 여유롭게 말 나누네. 談倦仰臥巖際, 말이 끊기면 바위 사이에 벌러덩 누워 見靑天白雲飛繞半空中, 푸른 하늘의 흰 구름이 반쯤 공중을 에워싸듯 흐르는 걸 보니 便欣然自適. 곧바로 유쾌해져 절로 유유자적하다네. 인용 목차 작가 이력 및 작품 한시미학산책
29. 與衲子坐松林石上 談因果說公案 久之松際月來 踏樹影而歸
28. 桑林麥壟 高下競秀 雉雊春陽 鳩呼朝雨 卽村居眞景物也
26. 君子不辱人以不堪 不愧人以不知 卽寡怨
25. 靜處煉氣 動處煉神
24. 鹿養精 龜養氣 鶴養神 故能壽
23. 有可有不可是爲世法 無可無不可是爲出世法 有是有不是是爲世法 無是無不是是爲出世法
22. 長廊廣榭 曲水回磴 叢花深竹 野鳥江鷗 瓦罏爇香 玉麈談禪 是爲眞境界 亦爲淡生活
20. 看中人 要在大處不走作 看豪傑 要在小處不滲漏 濃於聲色生虛怯病 濃於貨利生貪饕病 濃於功業生走作病 濃於名譽生矯激病 濃於學古生畫葫蘆病
19. 盛名必有重責 大巧必有奇窮
18. 仁厚刻薄 是修短關 謙抑盈滿 是禍福關 勤儉奢惰 是貧富關 保養縱欲 是人鬼關
17. 俗語近于市 纖語近于娼 諢語近于優 士夫一涉乎此 損威重
16. 才俊人宜學恭謹 聰明人宜學沈厚
14. 爲文而欲一世之皆好之 非至文也 爲人而欲一世之皆好之 非正人也
12. 風流得意之事 一過輒生悲涼 淸眞寂寞之鄕 愈久轉增意味
11. 詩堪適性 過則刻苦 酒取怡情 過則顚佚
10. 人生一日 或聞一善言 見一善行 行一善事 此日方不虛生
9. 意盡而言止者 天下之至言也 然言止而意不盡 尤爲至言
5. 破綻處 從周旋處見 指摘處 從愛護處見 艱難處 從貪戀處見
4. 事當快意處能轉 言當快意處能住 不特尤悔自少 且覺趣味無窮
3. 名心未化 對妻孥亦自矜莊 隱衷釋然 卽夢寐亦成淸楚
2. 友之疏狂者 足啓庸俗 通達者足破拘攣 博學者足開孤陋 高曠者足振頹墮 鎭靜者足制躁妄 恬淡者足消濃艶
1. 逸客高蹤 幽人妙韻 與會心友談之 亦自神王
시 하나로 신분의 한계를 초극한 이달 스승님 蓀谷山人傳 손곡의 기본 정보와 과거 蓀谷山人李達字益之, 雙梅堂李詹之後. 其母賤, 不能用於世, 居于原州蓀谷, 以自號也. 達少時, 於書無所不讀, 綴文甚富. 爲漢吏學官, 有不合, 棄去之, 삼당시인의 만남 從崔孤竹慶昌ㆍ白玉峯光勳遊, 相得懽甚, 結詩社. 達方法蘇長公, 得其髓, 一操筆輒寫數百篇, 皆穠贍可詠. 박순의 도움으로 당풍을 섭렵하다 一日, 思菴相謂達曰: “詩道當以爲唐爲正, 子瞻雖豪放, 已落第二義也.” 遂抽架上太白樂府歌吟ㆍ王孟近體以示之, 達矍然知正法之在是. 遂盡捐故學, 歸舊所隱蓀谷之莊, 取『文選』太白及盛唐十二家ㆍ劉隨州ㆍ韋左史曁伯謙『唐音』, 伏而誦之. 夜以繼晷, 膝不離坐席. 凡五年, 悅然若有悟, 試發之詩, 則語甚淸切, 一洗舊日熊. 卽倣諸家體, 而作長短篇及律絶句, 鍛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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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애정전기소설의 성격과 그 의의 이상구(Lee, Sang- Gu) 임진왜란 직후인 17세기 초에 애정을 주제로 한 일군의 작품들이 창작되었다. 「주생전」 「위경천전」 「운영전」 「상사동기」 「최척전」이 바로 이들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모두 권필이나 조위한 등 비판적 지식인들에 의해 한문 문어체로 씌어져 있으며, 『금오신화』 가운데 「이생규장전」이나 「만복사저포기」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그러나 『금오신화』가 산 사람과 죽은 여귀(女鬼)와의 사랑 등 비현실적 내용을 위주로 하고 있다면, 이들 작품은 사건과 갈등을 현실적인 토대 위에서 형상화함으로써 중세적 질곡을 보다 사실적으로 묘파하고 있다. 「주생전」 「위경천전」 「운영전」은 비극적인 결말을 통해 중세적 이념과 체제 하에서 애정에 따른 질곡..
金弘淵傳 金弘淵字大深 本熊川人 爲人奇豪 力能挾二妓 超越數仞墻 少時家富 父勸作儒 多購書籍及古書畫以居之 弘淵讀書之餘 竊出游妓舘 父曰 兒好背繩墨如此 惟科名可以箝勒之 然登文科難 其武科乎 乃令改就武業 弘淵旣操弓矢 技藝絶倫 及就試 忽自笑曰 噫無可爲鄕里兒登武科 誰肯以大將軍印繫之肘 乃以長紬套接之袖口 俗語曰汗衫 幡幡然掉臂入試場 見者曰 去套袖 將病射 弘淵曰 射寧病是幡幡者 若之何去之 及射 套袖果罥弦矢不行見罷 父知而怒讓 是後弘淵赴試 着套袖如故 射訖恐得罪於父 卽從試場策馬 東走楓岳 至東海壯觀而歸 已乃折節自責曰 自古來焉有不孝者烈士哉 遂去套袖射 登武科焉 比老患惡疾形毁 歎曰 大丈夫頭白 無有建奇功大業 而徒令父母遺體殘破 更何面居人世 間以家事付子 往居四方名山之僧舍 自號曰髮僧菴 往往手自刻名於山石之上曰 願後世君子覽此 知今日有所謂金弘淵者而哀之也..
나를 알아주는 유일한 친구 유백아는 춘추시기 촉나라의 저명한 음악가이다. 유백아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천부성이 아주 높았으며 음악을 남달리 좋아하였다. 그는 당시의 유명한 연주가 成連을 스승으로 모시고 음악을 공부하였다. 3년이 지난 뒤 유백아는 당지에서 명성 높은 연주가가 되였지만 예술적으로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없는 것으로 인하여 고민하였다. 그의 속마음을 꿰뚫어 본 스승 성연은 그에게, “나는 이미 나의 전부의 기예를 자네에게 가르쳤고 자네 또한 잘 소화시켰다. 음악의 감수성과 이해에 있어서는 나 자신도 아직 터득하지 못하고 있다. 나의 스승 方子春은 뛰어난 연주가로서 음악에 대해 독특한 감수성을 지닌 분이다. 그 분은 지금 동해의 한 섬에 살고 있는데 자네를 그 분한테 데리고 가서 계속 가르..
나를 알아주는 유일한 친구 ‘伯牙絕弦’, 是講述‘知音難求’的一個故事, 伯牙與鍾子期是一對千古傳誦的至交典範. 伯牙善於演奏, 鍾子期善於欣賞. 這就是‘知音’一詞的由來. 後鍾子期因病亡故, 伯牙悲痛萬分, 認為世上再無知音, 天下再不會有人像鍾子期一樣能體會他演奏的意境. 所以就‘破琴絕弦’ 把自己最心愛的琴摔碎, 終生不再彈琴了. (特此聲明: 經考證, 伯牙原本就姓伯. 說他“姓俞名瑞, 字伯牙”) -『漢語詞彙』 해석 ‘伯牙絕弦’, 是講述‘知音難求’的一個故事, ‘伯牙絕弦’이란 ‘지음은 구하기가 어렵다’라고 강론한 하나의 고사로 伯牙與鍾子期是一對千古傳誦的至交典範. 백아와 종자기는 오래도록 구전되어 오던 ‘지극한 사귐의 표본’이다. 伯牙善於演奏, 鍾子期善於欣賞. 백아는 잘 연주했고, 종자기는 잘 기쁘게 감상했다. 這就是‘知音’一詞的由來..
영달을 위한 의술이 아닌 살리기 위한 의술을 펼친 조광일 湖右趙生名光一 嘗寓居洪州合湖之面 足未嘗跡朱門 亦無顯者跡 其人踈坦易直 與物無忤 惟自喜爲醫 其術不治古方用湯藥 常以一小革囊自隨 中有銅鐵針數十餘 長短圓稜異制 以是決癰疽 治瘡疣 通瘀隔 踈風氣 起疲癃 無不立效 自號曰針隱 盖精於針而得其解者也 嘗淸晨早起 有老嫗 襤褸匍匐 而扣其門曰: “某也 某村百姓某之母也 某之子病 某病殊死 敢丏其命” 生卽應曰: “諾 第先去 吾當趂往矣” 立起踵其後 徒行無難色 如是者 盖無虛日矣 一日 天雨路泥 生頂篛笠 着木履 忙而行 或有問之者曰 何之 生曰 某鄕百姓某之父病 嚮吾一針而未效 期是日將再往針之 或曰 何利於子 而躬勞苦若是乎 生笑不應而去 其爲人 大畧如此 或問曰 醫者 賤技也 閭巷 卑賤也 以子之能 何不交貴顯取功名 乃從閭巷小民遊乎 何其不自重也 生笑曰 丈..
한 걸음의 철학, 꾸준함의 위대함 조익(趙翼) 爲學工夫如行路, 所期雖遠, 若行之不已, 則自當至於其處, 若止而不行, 則雖至近之地, 何能至乎? 『浦渚先生集』 卷之二十四 해석爲學工夫如行路, 所期雖遠, 배워 공부하는 방법은 길을 걷는 것 같으니, 기약한 목적지가 비록 멀더라도 若行之不已, 則自當至於其處, 만약 걷기를 그치지 않는다면 스스로 마땅히 목적한 곳에 이를 테지만, 若止而不行, 則雖至近之地, 만약 멈추고서 걷질 않는다면 비록 매우 가까운 거리라도 何能至乎?어찌 이를 수 있으리오. 인용목차수능한문 19학년도 14~15번국토종단말없이 벽을 오르는 담쟁이처럼5년 후에 나갈 생각으로 일하라하나를 마치면 다른 길이 열린다
재상의 꾸지람에도 강직했던 주열 유한준(兪漢雋) 朱悅性剛直, 不與世俯仰, 常勵聲罵座, 伸脚捫虱而談, 旁若無人. 貌醜, 鼻如爛橘. 甞與宰相言, 悅坐聽貌甚倨, 宰相使吏責曰: “宰相語, 宜伏地聽.” 悅曰: “宰相語伏地聽, 君上語, 將掘地聽乎?” 王常曰: “此老貌雖如鬼, 心則如水.” 『自著』 ▲ 그림 출처 - 낚수엉아의 그림창고 해석朱悅性剛直, 不與世俯仰, 주열의 성품은 강직해 세상과 더불어 굽히거나 우러르지 않았으며 常勵聲罵座, 伸脚捫虱而談, 항상 사나운 소리로 좌중에 욕했고 다리를 펴고 이를 잡으며 말했으니 旁若無人. 곁에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貌醜, 鼻如爛橘. 얼굴은 못 생겼고 코는 문드러진 귤 같았다. 甞與宰相言, 悅坐聽貌甚倨, 항상 재상과 말할 적에 주열이 앉아 듣는 모습이 심히 거만하니 宰相使吏責..
호의적인 감정으로 보는 것과 악의적인 감정으로 보는 것 靑眼視 & 白眼視 阮籍不拘禮敎, 能爲靑白眼. 見俗禮之士, 以白眼對之. 及嵆喜來, 卽籍爲白眼, 喜不懌而退. 喜弟康聞之, 乃齊酒挾琴造焉, 籍大悅, 乃見靑眼. 由是禮法之士疾之若讐. -『晉書』 「阮籍傳」 해석 阮籍不拘禮敎, 能爲靑白眼. 완적은 예교에 구애받지 않고 靑眼을 하거나 白眼(흰 눈동자)를 만들 수 있었다. 見俗禮之士, 以白眼對之. 세속 예의에 갇힌 선비를 보면 흰 눈동자로 그들을 대했다. 及嵆喜來, 卽籍爲白眼, 喜不懌而退. 혜희가 찾아오자 곧 완적은 백안을 하니 혜희는 기뻐하지 않고서 물러갔다. 喜弟康聞之, 乃齊酒挾琴造焉, 혜희의 아우 혜강이 그걸 듣고 곧 술을 마련하고 거문고를 끼고 찾아오니, 籍大悅, 乃見靑眼. 완적이 크게 기뻐하며 곧 청안을 ..
80살에 초시를 본 이진기 李知事震箕, 年七十五登增廣科, 誠稀世之事也. 初試赴洪川試所, 及篇成, 扶杖携卷呈於試所曰 : “八十老翁, 將向黃泉, 誤尋路, 到洪川, 呈卷而去.” 考官相與大笑曰 : “此人不可屈.” -『螢雪記聞』 해석 李知事震箕, 年七十五登增廣科, 誠稀世之事也. 지사 이진기는 나이 75살에 증광과에 급제했으니 진실로 세상에 드문 일이었다. 初試赴洪川試所, 及篇成, 초시는 홍천의 시험장에 가서 한 편을 지어 扶杖携卷呈於試所曰: 지팡이를 짚고 답안지를 가지고 시험장에 드리며 말했다. “八十老翁, 將向黃泉, “80의 노인네가 장차 황천으로 향하려다가 誤尋路, 到洪川, 呈卷而去.” 잘못 길을 들어 홍천에 와 답안지를 드리고 가려 합니다.” 考官相與大笑曰: “此人不可屈.” -『螢雪記聞』 고관들이 서로 함께..
Ⅰ. 한문과 선택 중심 교육과정 개정의 배경 교육과정은 국제화를 비롯한 사회 여건의 변화, 교육 이론이나 프로그램의 발전 등의 외적 조건, 그리고 교육 현장의 내적인 필요에 의하여 개정될 여지가 있다. 이러한 내적・외적인 요인에 따라 교육과정을 적절하게 개정하여 사회적・국가적 요구를 다양하게 수렴・반영하여야 할 것이다. 한문 선택 과목 교육과정 개정의 필요성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먼저, 교육과정을 개정하는 정책이 변화하였다. 교육과정 정책은 그동안의 일시적・전면적인 개정 체제에서 수시 개정 체제로 제도가 보완되었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교육과정 수시 개정 및 활성화 방안’은 급격한 사회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교육 내용을 지속적으로 개선하여 국민 각계각층의 교육 과정 개정의 요구를 탄력적・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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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이야기: 인생을 즐긴다는 것 양수리 지나 운길산 산마루, 하늘 가까이 종처럼 걸려있는 수종사(水鐘寺)에서는 북한강 일대가 다 굽어보인다. 이 작은 암자는 어린 다산이 책 상자를 메고 오르내리며 독서하던 절이다. 그는 훗날 경의로 진사가 되고 나서 여러 친구들과 함께 왁자지껄하게 금의환향하는 길에 이 절에 들르기도 한다. 다산으로선 아마 가장 티 없는 시절이었을 것이다. 다산이 형 약전에게 잔소리를 해대었으므로, 자신들의 모임에서 제외시켜버리고 끼워주지 않았다는 서울 시절은 다산의 전성기였다. 당시 서울은 지방과는 문화적 차이가 현격한, 말하자면 그때도 ‘특별시’였다. 이 ‘특별한 도시’ 서울의 사족층 사이에는 세련된 도시 취향의 문화가 형성되고 있었다. 그 하나가 서화와 골동품을 수집 감상하고, ..
4. 교수・학습 방법 가. 교수・학습 계획 한문 Ⅰ> 교수・학습 계획은 교육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준비 활동이며, 교수자가 교육 활동에 앞서 갖추어야 할 지적, 기능적인 과제이다. 한문 과목 교수・학습 계획을 세울 때에 고려해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⑴ 고등학교 ‘한문 Ⅰ’의 교육 목표를 충실히 반영하여 교수・학습 계획을 수립한다.고등학교 ‘한문 Ⅰ’ 교육과정의 ‘목표’에 제시된 전문과 하위 목표 5개항의 특징과 성격을 분명히 파악하고 이를 교수・학습 계획의 수립에 충실히 반영하여야 한다. ⑵ ‘한문’과 ‘한문 지식’ 영역의 학습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고, 반복 학습이 가능하도록 계획한다.한문 과목 교수・학습 계획을 수립할 때에는 ‘한문’ 영역과 ‘한문 지식’ 영역의 학습이 유기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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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이야기: 둘째 형 정약전 다산을 생각하면 그림자처럼 함께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둘째 형 정약전이다. 이 두 사람은 삶의 첫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함께 걸어서, 다산에게는 언제나 형의 그림자가 있다. 다산은 외증조인 공재 윤두서(尹斗緖)를 많이 닮았다고 했다. 지금 남아있는 공재의 자화상을 보면, 단정하고 정돈된 모습에 아름다운 수염을 가진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후에 그려진 다산의 초상에는 공재의 풍만한 볼에 비해 비교적 마른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에 비해 약전은 ‘무성한 수염에 풍채가 좋아 장비 같았다’고 한다. 정조가 두 형제를 두고 형의 씩씩한 모습이 아우의 아름다운 모습보다 낫다고 했다고 하니, 좀 더 남성적인 용모의 형과 깔끔한 외모의 동생이었나 보다. 모습만큼 성격도 달랐다. 다산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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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이야기: 유배지에서의 고투 다산 연보에는 다산의 임종장면이 장엄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날(1836년 2월 22일) 진시(辰時)에 큰바람이 땅을 쓸며 불고 햇빛이 엷어져 어둑어둑해지며 누렇게 토우(흙비)의 기운이 끼었다. 문인 이강회(李綱會)가 서울에 있었는데, 큰 집이 무너져내려 누르는 꿈을 꾸었다. 다산의 부고가 전해지자, 홍길주(洪吉周)는 ‘열수(冽水, 다산의 다른 호)가 죽었구나! 수만 권 서고가 무너졌구나!’라고 탄식했다. 500 권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저서를 남긴 거인의 죽음을 묘사한 언급들이다. 그러나 정작 장엄한 것은 이 거인의 죽음이 아니다. 이 거인이 500권에 이르는 저서를 저술해나가는 과정이야말로 장엄하다. 다산은 젊은 시절, 국왕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며 날아오르던 ‘장래 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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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이야기: 남을 돕고 세상을 건지려 태학생(太學生) 시절의 다산이 남긴 시 중에도 또 이런 엉뚱한 시가 있다. 「호박[南瓜歎]」이란 시다. 다산 시의 전체적인 특징대로 산문적인 사연을 뒤에 깔고 있는데, 그 사연이란 이렇다. 1784년 여름, 장마가 열흘 넘게 계속되던 어느 날이다. 장마로 온통 진창이 돼버린 서울 회현방 어느 골목을 23세의 다산이 들어서고 있었다. 대문을 들어서자 분위기가 여느 때와 다르다. 계집종 하나가 눈물을 찔끔거리며 서 있고, 아내 홍씨는 상기된 표정이다. 바지런하고 웬만해선 마음에 드는 것이 없는 깐깐한 성품의 홍씨지만, 그렇다고 아랫사람을 함부로 다루는 일도 없는 사람이다. 사연인즉 오랜 장마로 끼니가 끊긴 지 오래, 호박죽을 끓여서 연명했는데, 그나마 호박도 남은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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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이야기: 위대한 범부 『여유당전서』에는 사람을 킬킬거리게 하는 시가 하나 숨어 있다. ‘11월 6일, 다산 동암(東菴) 청(淸齋)에서 혼자 자는데, 꿈에 한 미녀가 나타나 유혹하였다. 나도 마음이 동하였으나 이윽고 사양하여 보내면서 지어주었다[十一月六日 於茶山東庵淸齋獨宿 夢遇一姝來而嬉之 余亦情動 少頃辭而遣之 贈以絶句 覺猶了了]’는 시다. 눈 깊은 산 속 꽃 한 가지 雪山深處一枝花 어찌 붉은 집을 두른 복사꽃 같으랴 爭似緋桃護絳紗 이 마음 이미 금강 철이 되었으니 此心已作金剛鐵 설령 풍로를 가졌단들 “너를 어이할꼬” 縱有風爐奈汝何 우리 시조 중에 뼈[骨], 풀무, 살[肉] 송곳으로 ‘녹여주고’ ‘뚫어보겠다’고 질펀한 육담을 늘어놓는 시조 한 쌍이 있다. 정철과 기녀 진옥이 주고받았다는 시조들이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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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길을 걸은 정약용 박무영 마재의 신혼부부들 벼르고 벼른 끝의 다산 생가 행이었다. 팔당댐과 다산 묘소로 갈라지는 갈림길, 뜻밖에 묘소 쪽으로 좌회전하는 차들이 많았다. ‘다산 묘소 들어가는 길목의 분위기 좋은 카페’ 운운하는 여성지의 기사를 보았던 기억이 있는 터였다. 슬그머니 불안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기억 속의 마재[馬峴] 다산 생가는 찔레꽃의 이미지와 결부되어 있었다. 처음 그곳을 찾던 날이 초여름 찔레꽃이 온통 희게 핀 날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코끝에 스치는 웬 꿀 향기 怪有蜜香來觸鼻 흰 꽃이 눈 같은 찔레꽃 白花如雪野薔薇 이라고 마재의 여름을 읊었던 다산의 시구(「夏日田園雜興 效范楊二家體 二十四首」)와 맞아떨어져 생겨난 이미지였다. 양수리 물가의 야트막한 고개를 넘어가면, 강 굽이에 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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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은거와 최후의 입절 1622년 유몽인은 64세 고령의 몸을 이끌고 금강산으로 들어간다. 남쪽 고흥땅에도 시골집이 있었는데, 굳이 금강산으로 향한 것을 보면 현실세계에 염증을 느끼고 이를 초탈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가족들과 작별하면서 남긴 다음의 시에는 이러한 심경이 잘 드러나 있다. 神仙富貴兩難諧 신선과 부귀, 둘 다 지니기는 어렵나니 流水人間計較乖 흐르는 세월, 인간 세상의 계책은 어긋났지. 金氣無端催歲暮 쌀쌀한 가을 기운 끊임없이 세모를 재촉하는데 白頭何事又天涯 흰머리로 무엇 하러 또 하늘가에 있는가? 금강산 유점사에 거처를 정한 그는 심한 병을 앓으며 그 해 겨울을 났다. 이듬해 봄 얼마간 기력을 회복하여 물외(物外)의 생활에 재미를 붙이고 있던 그에게 놀라운 소식이 들려 왔다. 인조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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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의 체험과 시화(詩禍)로 인한 파직 유몽인이 벼슬길에 들어선 지 3년만인 1592년, 동아시아의 기존질서를 뒤흔드는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당시 유몽인은 연경에 사행을 갔다가 귀국하지 못한 처지였다. 난중에 가족들은 어머니를 모시고 피난하던 중 왜구를 만나 셋째 형님은 왜구의 창칼로부터 어머니를 보호하다가 순절하고, 둘째 형님 또한 온 몸에 부상을 입고 겨우 살아나는 참변을 겪는다. 유몽인은 귀국하여 세자(광해군)를 모시고 전라·경상·충청의 삼도를 순무하고, 정유재란 때에는 함경도 순무어사·평안도 순무어사를 역임한다. 그의 나이 30대의 중후반을 전란의 현장 속에서 보낸 것이다. 이때 그는 국토의 대부분을 두루 다니며 백성의 참혹한 실정과 동요하는 민심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어우야담』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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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방한 문인적 기질과 장자의 영향 유몽인(1559~1623)은 한양 명례방(明禮坊)【지금의 명동·충무로 일대】에서 4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본관은 고흥으로 고려조에 시중을 지낸 유비(柳庇)가 시조다. 조선조에 들어와 그의 선대에는 그다지 현달한 인물이 없다가 조부 유충관(柳忠寬)이 대과에 급제, 사간을 지내며 장래가 촉망됐으나 43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떴다. 부친은 주부(主簿) 벼슬을 지낸 유당(柳樘)으로 유몽인의 나이 6세 때 일찍 돌아가셨으며, 모친은 여흥 민씨로 참봉 민위(閔褘)의 따님이다. 이렇게 볼 때 유몽인의 가세는 크게 내세울 만한 처지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몽인은 자가 응문(應文)이고, 호는 어우(於于)ㆍ간암(艮庵)·묵호자(默好子) 등을 썼다. 그의 호는 도가적 취향을 느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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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몽인론 분방한 기질의 탈속적 문인 신익철 네모난 마음을 지닌 이 말이란 성정에서 나와 사악함과 올바름이 분별되는 것이다. 어찌 차마 네모난 마음을 지니고서 말을 둥글게 하여 스스로 속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문장을 지을 때면 붓을 마음껏 휘둘러 두려워하거나 거리낌이 없었다. 금강산에 은거해 있던 유몽인이 자신의 사고를 부탁하면서 유점사(楡岾寺)의 영운(靈運)이란 스님에게 준 글의 한 대목이다. 이 말대로 유몽인은 차마 ‘네모난 마음을 지니고서 말을 둥글게 하지’ 못하여 산을 나와 비극적인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다. 글을 지을 때면 마음속에 품고 있는 바를 직서(直敍)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는 세상과 불화하는 일이 많았다. 그가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뛰어난 문장력 때문이었지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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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의 산문 이옥은 「이언(俚諺)」을 창작한 배경을 설명한 삼난 가운데 「이난(二 難)」에서, 정(情)의 진(眞)을 남녀의 정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남녀의 정을 시로 다룬다고 한 바 있다【『藝林雜佩』 俚諺引 「二難」, “夫地萬物之觀, 莫大乎觀於人, 人之觀, 莫妙乎情, 情之觀, 莫眞乎觀於男女之情.”】. 문학에서 정의 진실성을 중시 한 것이다. 「독초사에서 그는 문학 작품이 독자에게 미치 는 영향에 주목하고, 그 영향을 정서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사물과 현실을 바라보는 이옥의 시선은 애상적이고, 또 때로는 표층의 사실에 머문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기성의 관념으 로 사물과 현실을 재단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의 독특한 감각경험과 인식을 소중하게 생각한 결과였다. 이옥은 필기체 산문집 『본성문여』에서 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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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이란 인물 이옥의 자(字)는 기상(其相)이다. 호(號)는 문무자(文無子)·매사(梅史)· 매암(梅庵)·경금자(絅錦子)·화석자(花石子)·청화외사(靑華外史)·화서외사(花漵外史)·매화외사(梅花外史)·도화유수관주인(桃花流水館主人) 등을 사용하였다. 본관은 전주다. 조부 이동윤(李東胤)은 서울에서 살았으며 어모장군(禦侮將軍) 행용양위부사과(行龍驤衛副司果)를 지냈다. 부친 이상오(李常五)는 1754년(영조 30)에 진사에 급제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는 않았다. 이옥의 본가는 경기도 남양(南陽) 매화산(梅花山) 아래에 있었다. 15세에 최종(崔宗)의 딸과 결혼하였고, 뒷날 아들 우태(友泰)를 낳았다【김균태, 『이옥의 문학이론과 작품세계의 연구』, 창학사, 1986.】. 이옥은 젊어서부터 문인 기질이 많았다. 2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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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과 실험 심경호 새로운 문풍 산문(散文)이란 ‘흩어놓은 글’이다. 글자 수나 음악적 효과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돈되지 않고 흩어놓았다고 말한다. 그렇게 형식요건을 규범화하지 않는 것은 생각과 감정을 정해진 틀에 맞추지 않고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다. 그러나 산문에는 그 나름대로 글쓰기의 규칙이나 문체의 양식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비문의 문법이며, 서발의 문체며, 기록의 방식이며, 의론의 투라고 하는 문법, 문체, 방식, 투와 같은 것이 글쓰기에 앞서 존재하여, 그때그때의 글쓰기에서 그것들이 해체되어 새로 구축되고 새로운 ‘휴전’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흩어놓는다는 것은 결코 풀어버린다는 뜻이 아니다. 작가 스스로의 규율에 따라, 기왕의 글쓰기 규칙과 문체의 양식을 참고하고 또..
3. 내용 가. 내용 체계 한문 Ⅰ> 내용 체계는 교과의 학문적 특성과 핵심 내용을 간명하게 체계화・구조화하여 제시한 틀로, 교과의 학문적 구조와 교수・학습 내용 및 활동을 요약・강조하는 기능을 한다. 한문 과목의 내용 체계는 한문 과목의 성격과 목표를 구현하기 위한 한문 과목 교육 내용의 선정의 근거로, 영역별 학습 내용의 위계화・계열화에 따른 교육적 정당성 판단과 제시 기준으로, 또한 학습 내용의 상세화 및 진술 방식의 지침으로 기능한다. 고등학교 ‘한문 Ⅰ’ 교육과정의 내용 체계를 제시하면 표 1>과 같다. 표 1> 내용 체계영역내용한 문읽 기단문의 읽기와 풀이산문의 읽기와 풀이한시의 읽기와 풀이이 해단문의 이해와 감상산문의 이해와 감상한시의 이해와 감상문 화전통문화의 이해와 계승한자 문화권의 ..
- 한문 지식 - 한자> 한문 Ⅰ> [Ⅰ한자⑴] 한자의 형(形)・음(音)・의(義)를 안다. 이 학습 내용은 중학교 한문 [1한자⑴], [2한자⑴], [3한자⑴]과 연계된다. ‘한문 Ⅰ’에서는 한문 교육용 기초 한자 1,800자 범위의 한자가 활용된 한자의 모양[形]과 소리[音]와 뜻[義]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한자는 하나의 글자가 모양[形]・소리[音]・뜻[義]의 세 요소를 동시에 갖추고 있는 문자이다. 곧 한자는 하나의 글자가 단지 어떤 음(音)의 단위만을 나타내는 표음 문자(表音文字)와 달리, 하나의 글자가 어떤 뜻의 단위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 뜻에 해당하는 소리까지도 아울러 나타내는 표의 문자(表意文字)이다. 따라서, 한자를 학습할 때에는 해당 글자의 모양과 소리와 뜻을 동시에 익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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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과(漢文科)에서의 문제중심학습법(問題中心學習法) 연구(硏究) 백광호(白光鎬)전주대학교 한문교육과 부교수E-mail : khbaek@jj.ac.kr 【국문초록】 이 연구의 목적은 한문과에 적용 가능한 문제중심학습법을 살피고, 문제중심학습 법을 적용한 한문과 교수ㆍ학습 사례를 소개하는 것이다. 이 연구는 필자의 선행 연구(「한문과에 적용가능한 웹기반수업과 문제중심학습」)에 이어지는 것으로, 선행 연구가 가진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2015 개정 한문과 교육과정에 등장한 ‘핵심역량’을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문제중심학습법의 특징과 한문과 교육과정과의 관련성을 개관한 후, 문제중심학습법을 적용한 한 문 수업 사례를 소개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한문과 교육과정 내용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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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과(漢文科) 문제중심학습법(問題中心學習法)의 이론(理論)과 실천(實踐)이 글은 2019년 1월 5일(토) 공주대학교에서 「한문과 수업 정교화를 위한 이론과 실천」이라는 주제로 열린 한국한자한문 교육학회 동계학술대회에서 기획주제로 발표한 글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백 광 호전주대학교 한문교육과, 부교수(제1저자) / khbaek@jj.ac.kr 공 민 정두루중학교, 교사(제2저자) / rhdalswjd02@hanmail.net 국문초록 이 연구는 타 교과에서의 문제중심학습법을 이론적으로 탐색하여 한문과에서의 문제중심학습법 이론화를 모색하고, 중학교 한문과에서의 문제중심학습 실천 사례를 소개함으로써, 한문과에서의 문제중심학습법을 일반화할 수 있는 방안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 연구는 중등학교 한문과 ..
4. 或者來問曰: “山中聽何如?” 曰: “吾耳但聞水聲僧踏落葉聲.” 詞如疊山層巒, 氣如鰲濤怒浪. 序如盤珠板丸, 而無躐登之高, 加謂賢人君子之性靈, 詞人之氣象, 於此可見矣. 妙香山記, 如幽人之尋谷, 可見遺世獨立. 若劍舞記, 如貫珠之有序. 令後人讀此文者, 可取其性情之神奇. 楚山潘生.
2. 僧輩餞我, 出至洞口而去, 沙明日白, 頓覺晝永. 委身于驉, 寄夢于鞍. 時聞路旁鷄聲, 輒樂而望之, 羡彼邨墟. 午到鐵壅東門, 二士憩其樓, 數童從焉, 特酒待我. 同遊之尹生明生也. 敍吾行色 謝彼勤意, 並巒而入.
1. 戊戌, 別山, 歸向鐵甕. 楓色憔悴, 巳非來時. 顧謂僧曰: “安知異日不再來也. 雖來, 又安知必相逢也. 林泉雖在, 如不見爾, 則異日之懷, 吾又何堪? 高秋九月, 水落石出, 此山此地, 萬樹之中, 吾別爾也.”
4. 下山之路. 歷二三菴, 頹橡敗瓦, 階不掃塵, 穴窓窺之, 有猫眼焉. 比丘羸甚, 啜水於廚, 云是老尼米去也. 無柯之樹, 兀兀凝白, 疑有銀色鍍之. 無葉之林, 遠遠微紫, 常歟霞氣蘸焉. 日晡不可歸, 信宿于龍門. 僧舍之敞, 甲於關外. 令舞劍于室中, 有記.
3. 田問之石, 其聚如鍾, 尸以牛腿者, 農夫也. 路旁之石, 其積如壘, 祝以幣履者行人也. 如白森者, 吾不知其唯也. 彌一壑而亙數里者, 豈人乎. 或曰愈見愈奇, 雖崩赤然. 從白森前出, 望數十步, 雲雪繞之內, 上冬下秋. 高處之樹, 小無一葉, 甚奇之. 將趁雪蹴踏而歸, 風生咫尺, 重裘如葛, 一驚一悵, 酒始廻走, 只看僧指云: “以雪爲界者. 其後爲陽德懸際也.”
2. 白森者, 出觀海菴. 東北望亂石隤然, 擁蔽山腹. 有若土袋之幩, 而積塔之禿焉. 圓者尖者, 長如肘者, 廣如掌者, 倒拔菁根者, 折豎春杆者, 惑丈惑尺, 隊隊相聚. 屹而尖者, 冒一圓, 架而疊者, 揷一長. 時有互承而立者, 其一頭半斫, 其一根半斫. 或有相對如礎, 以支一橫. 始臨也, 懼其兀兀而崩也. 稍稍覆之, 卒無憂焉. 乃敢搖之蹋之. 然其根深歮, 窸窣有聲而猶自技梧. 苔性如蠟, 津津善粘. 庋以他石, 易相襯也. 其旁近之石, 亦有忽然如鼎足者, 如紫門者, 白森者. 以其白積而森立也.
1. 丁酉, 早盥促飱, 從廢佛殿北隅. 輿行, 登觀海庵. 庵住山椒, 逈瞰淸北. 凡城郭林藪, 流者峙者, 若几前然. 鐵壅全局, 獨凸而起, 如四棋子打出一白. 西海之色, 入地一片, 際天數寸. 僧云可以觀日之沒焉, 有霾不得候.
7. 丁酉, 早盥促飱, 從廢佛殿北隅. 輿行, 登觀海庵. 庵住山椒, 逈瞰淸北. 凡城郭林藪, 流者峙者, 若几前然. 鐵壅全局, 獨凸而起, 如四棋子打出一白. 西海之色, 入地一片, 際天數寸. 僧云可以觀日之沒焉, 有霾不得候.
6. 帶夕陽, 抵龍門前洞. 乘籃輿, 緇徒羅立. 納光逈白, 溪聲楓色, 步步處迎, 比之香山, 無深巨之氣. 然石土之品, 與彼一般, 此香山之小支也. 宿龍門寺, 是夜高處有雪.
5. 餘雨旣遠, 駁雲中陷, 日光踰來, 如石竇之瀑. 須臾而變作磔裂, 勢如水田靑泥, 犁痕翻履. 巳而又變作深淺, 勢如水墨牡丹, 倒暈正暈. 又少焉作皺皴勢, 於是有島嶼縈回之狀, 有鳧鷖出沒之形, 乃旁溢橫瀉. 下爍人衣, 焂忽之問, 善作意想不到之境. 夫此者孰爲而孰使之邪?
4. 午發, 背江東折, 道上之色, 石潤陂明, 馬粘於泥, 股不得拔. 尻春於鞍, 如騎眼牛. 伴人言, 此行數里, 用十里之力. 崩雲一隊, 曳雨而過. 風又隨之, 忙穿雨衣, 猛然加鞭, 驢亦竦耳聽令. 昻然前進, 尾入兩股, 水滴於端, 踉蹌可笑. 俓人路旁舍, 小醉.
3. 油衣吸冷, 酒顔欲醒. 入店喫巳飯, 命僕燎衣, 催馬喂豆. 僕擧手云: “鞭梢有雲, 此龍門也.” 距此只三十里云. 日有晴意, 冷自如也. 行故遲之, 奏樂於庭. 彈者吹者擊者, 以次而坐. 各抱其器鼓之, 口黙腰鼓之首, 俯而時睨旁人, 大笛之頰, 掘而怒, 小笛之目 瞠而驚, 嵇琴者悽然倚其滕焉. 酒進而起. [俗樂合五爲一部, 名曰三絃]
2. 馬走鞭疾, 雨隨而飄. 步步泥陷, 蹏蹏水盈. 有雲擁熙川郡界, 陰凝密布, 香山洞口之風, 迎之以來, 回旋鬱邑, 冷然相感, 江無細波, 野無細烟, 悍石爲之黑, 禿木爲之昏, 此雪風也. 來江之路, 非沙則石, 有麓齒齒, 到江而止. 老槎之根, 多出石罅, 拏如鬼瓜. 小蘿綿綿, 時設其丹, 行色參差, 列在石間. 巡壁而出, 吾之行, 於是作半月形. 路俠, 馬啣尾而過.
1. 丙申自香山轉入龍門山, 出洞, 僧賀曰: “此山之遊, 不風不雨, 福力甚重.” 合掌而禮之曰: “一行珍重.” 子擧扇謝云: “汝家佛力.” 雨氣猶濕, 朝陰曳地, 徑潤而白, 虛映樹根. 送僧輿, 騎驢于潤水之頭崩橋之西, 亂石上, 奔煙遇樹, 如燕尾之裂, 流波罥葉, 似魚吻之喋. 右帶香山川, 行三十里, 飛雨吹額, 猛風趁頂. 笠爲之塾, 幾欲纓絶, 僕之脚如鬼, 驢之尾如鼠, 油衣滴滴, 作露梧聲. 縮首如繭, 內視其乳. 閃顧後人, 其眼則足以相笑, 其口則不暇言其所以笑也.
8. 午鍾, 歷歇祖院菴自性菴, 在佛影東, 輿上俯視, 樹葉平密, 庶幾踏而不陷. 下山數十步, 巳仰而見, 葉葉烘於日, 只隔一重凈紅明, 自喜自誇, 欲行之不速, 恨人之不見. 驀過烟中, 聞人語聲甚慣, 問是何處, 僧曰普賢也. 再轉眼時, 哦然而笑, 如誤見家人, 意以謂賓, 忽復一驚, 乃是平生見平生知之, 耳目口鼻也. 所以者何? 去時以西, 而來時以東也. 然則上院之路, 以其東, 則不必鐵索之危也. 到寺題詩云: “跋涉關河路, 終年博一遊. 鳴鐘孤寺夕, 繡石細楓秋. 淡境初生悅, 遐情忽爾愁. 山中諸漏盡, 跌坐聽泉流.” 曉小雨.
7. 丹樹白道之縫, 遠人依之, 無目無皴, 具體而微, 以樹爲準, 俄然而沒. 始覺其行也, 東穿樹林, 出佛影臺, 庭莎如剪, 遠可而射, 豁然平衍, 受日最凈. 岟口西坼, 以見藥山之靑. 菴供西山像淸虛虛白諸師像. 然數像皆相肖, 知一像猶不足微. 樵徑夾石, 而互如絲之緡. 溪水抱岸, 而圓如弓之弨.
6. 瀑之巓東北數十武, 大石如角者, 曰龍角石. 疎松載額, 香然鬖사, 立于其根, 如蟻附瓜. 凡遊香山者, 必刻名于此而返, 故黥之瘡之, 石無完膚. 袁石公以佛典無鑱刻靑山之律爲闕典, 信乎.
5. 一說龍淵古在山上, 有僧呪之. 有龍裂山而下, 垂胡而跪, 僧呪不止. 又數十武而跪, 僧頷之, 龍之居今之瀑也. 上院之僧, 五月五日, 烝餠洗[置]之澗石, 自菴而歸, 求之不得. 僧驚曰: “不能供佛, 生何爲?” 自投于潭, 潭中洞然有宮室, 衣靑皓首者, 問曰: “客何至?” 僧告以故, 皓首者厲聲呼童曰: “取俄者甑來.” 童子以一甑二騈, 跪還之. 僧袖餠負甑而出, 甑在肩而餠化石, 菴前團石, 至今有雙云.
4. 水在峯曰天紳瀑, 在壑曰散珠瀑, 指此也. 在壑之右而爲瀑而渟者曰龍淵. 以人言之, 龍淵瀑出右肩, 滀於右乳之旁. 望瀑之時, 吾在右手之曲, 嬲立石隙, 石沒人頭, 蓋瀑底如臼, 圓黑無聲, 溢而出者, 爲俄之所渡之溪之一也.
3. 望法王峯, 山石淨明, 盡脫肉氣. 峰根爲庵, 庵前爲壑. 水從峯出而注于壑, 壑勢如畚. 後踞前箕, 䲭泛于壑, 視其背甚低也. 有瀑跳於石屛之嶺, 流不著壁, 適適相續, 如雨如霰. 勻播細濾, 素掛蔥蔥, 搖曳于中, 水底之石, 落落如碎墨, 而琤沸之音, 杳不明也.
2. 萬瀑洞之路, 有牛足臺. 吾未見其似馬足也. 安心寺之後, 有匜瀑焉. 謂之缸瀑可也. 故凡洗頭盆, [在金剛山], 據手痕. 龍馬石 [在驪江] 之鞭血, 皆泛稱耳. 傳之者以爲逼眞, 聽之者以爲必然, 不亦癡哉. 引虎臺之路, 石之半脊也. 如鰒附甲, 人行其孔穿處, 如禽刷頸. 路掛其趐兀處, 左足以下, 窿然無際. 木之仰攢者, 僅俯其杪. 凡握連環鐵, 三十餘握. 路峽而鐵索分焉, 而登畢矣. 有枯棗依石, 攀根抱株然後, 上岸. 舊因徵雪虎蹤, 遂通此逕而名之云.
1. 乙未從引, 處臺西上院菴. 西浮屠[一名安心寺] 探密之初建也. 懶翁古碑, 閣而庇之. 文字剝坼, 如破瓷, 綠冬天火搨也, [古碑本牧隱撰權鑄書, 新碑用本文, 立于普賢.] 衆碑累累, 遍于閣後. 石刑多訛, 字隨而違. 臥龜盲而蹲螭刖, 讀而摩挲, 指爲古蹟. 吾嘗疑古之一字, 無處可覓, 今迺在於秋山片石荒艸白露中邪? 又不知古與我無關, 胡爲凄然黯然躑躅徊徨, 久而不去也. 空山落日, 斷橋流水, 此自古撫古處也.
21. 是夜望月如素. 繞塔三匝, 酒盃一巡. 遠籟在葉, 如瀉如掃. 從萬歲樓, 入大雄殿, 紙燈曠素, 金身燦映. 閣侈而野, 畵詭而襍. 老僧侍佛而立, 袈裟曳足. 白衲覆頂. 觀之, 皴紋仰接垂眉願鬢之間, 剃痕輕輕有水墨色, 諦視之, 木像也. 左右金剛, 齒根若堞, 舌葉有燄, 衣剝如鱗. 蛇鬼迸出, 威則威矣. 望之, 輒有詼諧之氣, 是知禦悔者在德, 不在貌也.
19. 過極樂殿, 暝燈邃靑, 藏經古閣, 瓦稜陰陰, 田徑麻竿, 白立依依. 老釋迦拜, 各致殷動, 朝見其人, 夕返其寺. 一日之面, 若故人然. 極樂殿屬普賢.
18. 並騎不欲後, 前馬之蹄下, 難免飛塵. 下山不須先, 後人之履頭, 易蹴危石, 天柱石屹如巨僧, 遙立西峰. 朝往路上, 見僧之指, 夕過其處, 雙眼先迎. 擔輿之僧, 皆一擧首, 以爲遠途之堠人也.
17. 風浮樹抄, 技舞婆裟, 滿座旣醉, 凝絃方促, 遠氣忽夕, 相視以寒, 催笻呼屐, 略無第次. 望寺而起, 趁烟而下, 人之半膝, 暝色巳沒. 而薄暉猶在臺頂一寸也.
16. 檀君窟石坼可四丈, 立如剖甕, 腹穹而首銳. 窺天於隙, 避雨於根. 世傳檀君降處. 史云檀木下者, 是也. 檀木叢鬱于上云. 而四尋皆弗見, 只毘盧香爐矗矗遠攢者香木云. 頹菴依窟, 小齊于肩如鴿籠. 石風嚧冷, 僧不得居. 檀君臺窟之西嶺也. 一麓類蝌蚪, 四顯有大海孤之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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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개정 교육과정한문과 교육과정 목차 교육부 고시 제2022-33호 [별책 17] 한자와 어휘한문(중)한문(고)[9한01-01]한자의 모양⋅음⋅뜻을 구별한다.[12한문01-01] 한자의 모양⋅음⋅뜻을 구별한다.[9한01-02] 한자가 만들어진 원리를 구별한다.[12한문01-02]한자가 만들어진 원리를 구별한다.[9한01-03]단어의 짜임을 구별한다.[12한문01-03]단어의 짜임을 구별한다. [12한문01-04]실사와 허사를 구별한다.[9한01-04]단어와 성어를 읽고 풀이한다.[12한문01-05]단어와 성어를 읽고 풀이한다.[9한01-05]단어와 성어를 맥락에 맞게 활용하여 소통하는 태도를 기른다.[12한문01-06]단어와 성어를 맥락에 맞게 활용하여 소통하는 태도를 기른다. [12한문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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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진시(眞詩)의 시사적(詩史的) 의의 백악시단의 ‘진시’는 조선후기 한시사의 전개 속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성취를 일구어냈다. 먼저, 백악시단은 성리철학의 천기(天機) 개념을 시론으로 변용시킴으로써 복고 일색의 시단에 신시(新詩) 창작의 길을 개척하였다. 백악시단의 천기론은 대상에 오묘하게 발현되는 천기와 조우하여 천리를 체인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런 까닭에 시적 대상은 흥취나 비애와 같은 주관적 감정을 드러내기 위한 종속물이 아니라 물(物) 자체로서 중요한 의의를 지니게 되었다. 그들에게 대상[物]은 완물상지(玩物喪志)의 경계 대상이 아니라 격물치지(格物致知)의 탐구대상으로 심화되었다. 시적 대상[物]의 위상이 이렇게 설정되면서 백악시단의 문인들은 대상을 통해 발현되는 천기와 조우하고 그것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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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진시(眞詩)의 정신적 깊이와 미학(美學) 이하곤은 조선중기 이후로 진행된 시단의 변화상을 폐단 극복의 연쇄관계로 개괄하면서 백악시단의 ‘진시’가 출현하게 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國朝之詩, 自明宣以後, 盖累變焉. 蘇齋、芝川才具宏蓄, 氣力昌大, 然雅俗兼陳, 體裁未純, 故其弊也雜; 孤竹、玉峰以淸新秀警矯之, 然神寒骨薄, 氣象急促, 故其弊也隘; 東岳、石洲又以渾圓和平矯之, 然思冗語膚, 格調不高, 故其弊也腐; 東溟又以悲壯整麗矯之, 然叫呶紛拏, 情境不眞, 故其弊也虗. 於是乎金三淵、洪滄浪之詩出焉. -李夏坤, 『頭陀草』책16 「洪滄浪詩集序」】. “동명(東溟, 鄭斗卿)이 또 ‘비장(悲壯)’과 ‘정려(整麗)’로써 저들의 폐단을 교정하였으나 요란하고 혼란하여 정(情)과 경(景)이 참되지 않았기 때문에 허황된 ..
기이하고도 대단한 예술가, 최북 최북(崔北) 조희룡(趙熙龍) 崔北, 字七七, 字亦奇矣. 善畵山水屋木, 筆意蒼鬱, 辦香大癡, 終以己意, 成一家者也, 自號毫生館. 爲人, 激仰排兀, 不以小節自束. 嘗於某家逢達官, 達官指北向主人曰: “彼坐者姓誰?” 北仰面向達官曰: “先問君姓誰何?” 其傲慢如是也. 遊金剛至九龍淵, 忽大叫曰: “天下名士, 死於天下名山, 足矣.” 墜淵幾至不救. 一貴人, 要畵於北, 而不能致, 將脅之. 北怒曰: “人不負吾, 吾目負吾.” 乃刺一目而眇, 老挂靉靆一圈而已. 年四十九而卒, 人以爲七七之讖. 壺山居士曰: “北風烈也, 不作王門伶人, 足矣. 何乃自苦如此.” 『壺山外記』 ▲ 영화 [취화선]은 장승업의 이야기지만 마치 최북의 얘기인 것도 같다. 해석 崔北, 字七七, 字亦奇矣. 최복의 자는 칠칠이니 자 또한..
홍도(紅桃) 이원명(李源命) 鄭生者, 失其名, 南原人也. 少時善吹簫善歌詞, 意氣豪宕不羈, (懶)於學問, 求婚於同邑良家女, 名紅桃, 兩家議結親. 吉日已迫, 紅桃父, 以鄭生不學辭之. 紅桃聞而言於父母曰: “婚者天定也. 業已定日, 當行於初定之人, 中背之可乎?” 其父感其言, 遂與鄭結婚. 第二年, 生子名夢錫. 萬曆壬辰之變, 鄭生以射軍防倭于順天. 丁酉, 倭寇再逞, 楊總兵元, 守南原, 生名係軍官在城中, 紅桃男服隨夫, 軍中莫之知也. 其子夢錫隨祖父, 入智異山避禍. 及城陷, 生隨總兵得出, 而與紅桃相失. 意謂其妻隨天兵而去, 遂跟天兵, 轉入中國, 行乞遍求不得. 乃黃河揚子江, 歷齊韓之坰, 而達于江南, 過蘇杭州, 覽錢塘金陵之勝, 轉而繇閩入楚, 如洞庭, 瀟湘, 岳陽樓, 黃陵廟, 皆歷覽焉. 其間奇觀壯遊雖博望子長無以過之, 而生一念紅桃期..
孟思誠 新昌人 漢城尹希道之子 辛耦朝擢壯元 英廟朝拜左議政 平生不治產業 淸白一節 在相府得大軆 謚文貞 文貞爲大憲 朴安世爲持平 鞫平壤君趙大臨 不啓而栲訊之 上大怒 載二人于車 將戮之 孟失色無言 朴意氣安閑 略無懼色 擧名呼孟曰 汝是上官我是下官 今共作死囚 豈有尊卑 我常謂汝有志操 何恇㥘如是 汝不聞車聲之轔轔乎 遂取瓦片作詩畫地而書奏 上赦而不誅 粹語 性淸簡 不事生產 飮食當以祿米 一日家人以新米飯進之 公曰 何處得新米 家人曰 祿米甚陳不可食故借於隣家耳 公怒曰 旣受祿 當食其祿 何事於借 同上 爲相 常關門不接賓客 夏則坐松陰 冬則坐蒲茵 左右無他物 淸簡端重 筆苑 性解音律 嘗執笛 日弄三四聲 人到洞門聞笛聲 則知公之必在 同上 公年庚子 嘗因戲托癸卯契 一日在上前 上問公年有幾 文貞對以庚子 朝退 契中以非同庚黜之 一時傳笑 同上 讓寧大君褆 以罪謫利川 英廟駕幸..
金時習 江陵人 字悅卿 稍長 口吃猶不能言 以筆墨與之 則皆書其意 我光廟朝 玩世不仕 佯狂出家 號雪岑自號東峯 一曰淸寒子 一曰碧山淸隱 晩年還俗而卒 有梅月堂歷代年紀 金鰲新話行于世 ○悅卿離胞八月 能知讀書 語遲而神警 口不能讀 而意則皆通 本傳 東峯三歲 口吃猶不能言 其外祖敎抄句曰 花笑檻前聲未聽 卽指屛間畫花而哂哂 又敎曰 鳥啼林下淚難看 又指屛間畫鳥而哂之 蓋不言而能通也 ○三歲乳母碾麥 朗然吟之曰 無雨雷聲何處動 黃雲片片四方分 人神之 ○三歲謂其祖曰 何以作詩 祖曰聯七字謂之詩 答曰 如此則可聯七字 呼首字可也 祖呼春字 卽應曰 春雨新幕氣運開 人嘆服 ○五歲能作詩 我英廟聞之 召致于政院 命知申事朴以昌 傳旨問虛實能否 以抱置膝 上呼名曰 汝能作句乎 卽應曰 來時襁褓金時習 又指壁上山水圖曰 汝又可作 卽應曰 小亭舟宅何人在 所作詩文不少 卽入啓 傳曰 待年長學成 ..
趙靜庵傳 趙光祖壬寅生 字孝直 庚午進士壯元 以薦特拜參上職 爲造紙署司紙 乙亥及第 官至大司憲 被謫于綾城 尋賜死 己卯八月丁亥晝講 右副承旨朴世熹啓曰 趙光祖之爲人 少師金宏弼 及其長也 自悟憤發 潛心道學 不事章句 窮探義理 一時之人 頗多毀謗 或稱狂者 或稱禍胎 朋友絶交 當此之時 立志甚篤 不少撓屈 至於反正之初 始以其學 倡導後生 隨而感發者甚多 雖是匹夫 而陶成士類之功 及於朝廷 廢朝板蕩之後 扶持士氣鼓動之 如臣之發開 皆由於此人 今世豈有如此之人乎 陰崖日錄 趙公孝直受君命而死 嗚呼人之云亡 豈無可謂乎 公性至孝 自少慷慨有大志 博學力行 連捷高科 躡盡淸顯 凡所施設 不撓於人 不離於道 士林咸推重焉 當國家中興之運 朝野望其維新之治 故公獨凝然建白 請復先王之法度 知無不言 言無不從 自以爲不世之遇 修明敎條 庶幾更張 天眷日隆 擢用不次 特除公大司憲 以副群望 把..
文益漸 丁巳/前左司議大夫文益漸卒. 益漸, 晋州 江城縣人. 父淑宣登第不仕, 益漸承家業讀書. 恭愍庚子, 登科, 調金海府司錄. 癸卯, 以諄諭博士, 陞左正言, 爲計稟使左侍中李公遂書狀官, 赴元朝. 將還, 見路傍木緜樹, 取其實十許枚, 盛囊以來. 甲辰, 至晋州, 以其半與鄕人典客令致仕鄭天益, 種而培養, 唯一枚得生. 天益至秋取實至百許枚, 年年加種, 至丁未春, 分其種以給鄕里, 勸令種養. 益漸自種, 皆不榮. 胡僧弘願到天益家, 見木緜感泣曰: “不圖今日, 復見本土之物.” 天益留飯數日, 因問繰織之術, 弘願備說其詳, 且作具與之. 天益敎其家婢, 織成一匹. 隣里傳相學得, 以遍一鄕, 不十年, 又遍一國. 事聞, 洪武乙卯, 召益漸爲典儀注簿, 積官至左司議大夫. 卒年七十. 至國朝, 以議者之言, 贈參知議政府事ㆍ藝文館提學ㆍ同知春秋館事ㆍ江城君. 子..
安龍福 安龍福者東萊府人也隷水軍善倭語肅廟乙亥漂海入鬱陵島遇倭被拘於日本之五浪島時對馬島主欲占鬱陵與邊臣爭不已而倭酋實不知也龍福謂五浪島主曰自鬱陵距我國一日距日本五日非屬我國者乎朝鮮人自往朝鮮地何拘爲島主知不可屈解送伯耆州州太守厚遇饋銀幣龍福不受曰願日本勿復以鬱陵島爲辭銀幣非吾志也太守遂稟關白作書契授之言鬱陵非日本界時館倭若將生釁國人憂之而不知爲馬島所瞞也龍福憤甚走蔚山海邊有商僧雷憲艤舟龍福誘之曰鬱陵島多海萊吾當爲汝指其路僧欣然從之遂擧帆三夜泊鬱陵島時倭舶自東至龍福目諸人縛之舟中人怯不發龍福獨前憤罵曰何故犯我境龍福追至松島又罵曰松島卽芋山島爾不聞芋山亦我境乎麾杖碎其釜倭大驚走龍福轉至伯耆州言其狀太守悉捕治之龍福乃詭稱鬱陵監稅官升堂與太守抗禮大言曰馬島之居間矯誣豈獨鬱陵一事我國所送幣貨馬島轉賣日本多設機詐米十五斗爲一斛馬島以七斗爲斛布三十尺爲一疋馬島以二十尺爲疋紙一束甚長馬島截爲三束關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