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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사전 - 277. 주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277. 주

건방진방랑자 2020. 5. 31.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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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

 

 

()

괴수(魁首)라는 뜻이다. 사기(史記)평준서(平準書), “富人 或鬪鷄走狗馬……株送徒라 하고, 사마정(司馬貞)의 색은(索隱), ‘先至者 爲魁株라 하였다.

 

()

고라니의 꼬리털로서 먼지털이나 지휘봉으로 사용된다.

 

()

제 나라 고을 이름으로 지금 산동성임치현(臨淄縣)의 서북쪽에 있다. (의 음을 유희(劉熙)의 주에는 이라 하였다)

 

주가(朱家)

한 고조(漢高祖) 때 의협가로 이름난 노현(魯縣) 사람으로, 곤경에 처한 사람을 숨겨 살린 수효가 백여 명에 이르렀지만, 평생에 그것을 전혀 생색내지 않았고, 특히 자신의 생활은 매우 검소했다고 한다. 유방이 천하를 통일한 뒤에 쫓겨다니는 계포(季布)를 자기 집에 숨겨주었고 그의 계책으로 계포가 사면을 받아 존귀해진 뒤로는 단 한 번도 그를 만나지 않았다 한다. 사기(史記)卷一百二十四 유협열전(游俠列傳)

 

주가(註家)

주해(注解)하는 사람. 여기서는 두시(杜詩)를 주해한 원()의 우집(虞集), ()의 양덕주(楊德周), ()의 장원(張遠) 같은 사람들을 말한다.

 

주가(朱柯)

줄기가 붉은 지초(芝草)를 말한다.

 

주가도부도(周家陶復陶)

주 문왕(周文王)의 조부(祖父)인 고공단보(古公亶父) 즉 태왕(太王)이 맨 처음 빈() 땅에 살 적에 집도 없어 토굴을 파서 움집을 만들어 살았던 것을 말한다. 시경(詩經)대아(大雅) (綿)

 

주가동도(周家東都)

현 하남성(河南省) 낙양현(洛陽縣)이다. 주 나라가 호경(鎬京)을 서도(西都)라 하기 때문에 왕성(王城)을 동도라 했는데, 왕성은 바로 낙읍(洛邑)이다. 시경(詩經)왕풍(王風)

 

주각우금한호씨(注脚于今恨胡氏)

호씨(胡氏)의 주석이란 곧 송() 나라 호안국(胡安國)의 춘추전(春秋傳)을 말하는데, 호안국의 춘추전에서는 특히 난신적자(亂臣賊子)에 대하여 매우 엄격히 처벌할 것을 강조하였으므로, 여기서는 곧 그 이론이 당시에 시행되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긴 말이다.

 

주객(珠客)

연객(淵客), 즉 수중(水中)에 사는 교인(鮫人)이 인가(人家)에 와서 같이 살다가 주인과 헤어질 적에 슬피 울어 구슬 눈물을 흘려서 주인에게 주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고기잡이하는 사람들을 비유하기도 한다.

 

주객도(主客圖)

당시기사(唐詩紀事)장위(張爲)가 시인주객도(詩人主客圖)를 만들었는데 그 서()以白居易爲廣大敎化主 孟雲卿爲高古奧逸主 李益爲淸奇雅正主 孟郊爲淸奇僻苦主 鮑溶爲博解宏拔主 武元衡爲瑰奇美麗主 客附以上入室 入室升堂及門若而人焉이라 하였다.

 

주객전도(主客顚倒)

주인과 손님의 입장이 뒤바뀐 것을 말한다. 주인은 손님처럼 손님은 주인처럼 각각 행동을 바꾸어한다는 것으로 입장이 뒤바뀐 것을 나타냄. , 주가 되는 것과 부차적인 것이 뒤바뀌었다는 뜻으로, 사물의 선후(先後), 완급(緩急), 경중(輕重)이 서로 뒤바뀜, 또는 일의 일반적인 경우가 뒤바뀜을 이른다.

 

주거(邾莒)

춘추시대(春秋時代) 때의 두 나라로, 아주 작은 나라를 말한다.

 

주거양자택(酒車楊子宅)

양웅(揚雄)이 현정에서 글을 저술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가끔 술을 싣고 찾아와 기자(奇字)를 물었음.

 

주거제로(邾莒齊魯)

물고기는 싫다 하고 양고기를 찾는다는 뜻이다.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 「성남정각사(城南正覺寺)왕숙(王肅)이 고조(高祖)와 함께 대궐에서의 연회에 참석하였는데, 왕숙이 양고기를 많이 먹으므로 괴이하게 여겨 양고기와 물고기 중 어느 것이 맛있는가?’하니, 왕숙이 양을 큰 제() 나라와 노() 나라에 비긴다면 물고기는 작은 주() 나라와 거() 나라에 비길 수 있는데, 저는 양고기를 좋아합니다.’ 했다.” 하였다.

 

주검(舟劍)

처신이 융통성 없이 고지식한 것을 말한다. 옛날에 배를 타고 가다가 칼을 물속에 떨어뜨린 사람이 칼이 떨어진 뱃전에 표시를 해 두고는 배가 정박한 뒤에 칼을 찾으려 했다는 각주구검(刻舟求劍)의 고사가 전한다. 여씨춘추(呂氏春秋)』 「찰금(察今)

 

주경(周京)

주 나라 서울.

 

주경(酒經)

술 만드는 법과 예로부터 술을 잘 만든 사람 등을 기록한 책으로, 당 나라 때 왕적(王績)이 지었다.

 

주경야독(晝耕夜讀)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책을 읽는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주경유(周景遊)

경유는 주세붕(周世鵬)의 자이다.

 

주경투암(珠驚投暗)

추양(鄒陽)의 글에, “야광주(夜光珠)를 밤에 갑작스레 남의 앞에 던지면 보배인 줄 모르고 놀래어 칼을 뺀다.” 하였다. 사기(史記)』 「노중연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주계군(朱溪君)

조선 태종(太宗)의 둘째 아들인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증손으로 이름은 심원(深源)인데, 성품이 본디 엄정 충직하여 임사홍(任士洪)은 바로 그의 고모부(姑母夫)였으나 그의 간사함을 알고, 성종(成宗)을 면대하여, 사홍은 후일에 반드시 나라를 그르칠 사람이니 중용하지 말라고 간곡하게 청하여 그를 귀양보내게 했었다. 이로 인하여 연산군 10년 임사홍이 갑자사화(甲子士禍)를 일으킬 때 그의 모함을 받아 아들 형제와 함께 피살되었다.

 

주고(酒誥)

주왕(紂王)에게 물이 들어 술을 좋아하는 은() 나라 백성들을 경계시키기 위해 주() 나라 성왕(成王)이 주공(周公)에게 명하여 반포토록 한 글로, 서경(書經)속에 들어 있다.

 

주공몽견(周公夢見)

공자는 주공처럼 도를 펴고자 하여 비록 시대는 근 천년의 차이가 있었지만, 꿈속에 보고 하여 반려(伴侶)가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공자는 심하다 나의 쇠함이여, 내가 다시 꿈에 주공을 보지 못한 지 오래다[甚矣吾衰也 久矣吾不復夢見周公]” 하였다. 공자가 장년기에는 주공의 도를 행하고자 하였으므로 가끔 꿈에 주공을 보았었는데, 이제는 늙어서 뜻도 꿈도 모두 없어졌음을 말한다. 논어(論語)』 「술이(述而)/ 유의어: 주공몽(周公夢), 주공하재(周公遐哉)

 

주공삼태(周公三笞)

자식들을 엄하게 교육시킨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주공지곡(朱公之哭)

양주(楊朱)는 기로(岐路)를 보고는 사람의 마음도 이 길처럼 선악으로 갈라지지만 다시는 되돌리기 어렵다고 생각하여 통곡했다. / 인용: 北山移文(공치규)

 

주공지부(周公之富)

논어(論語)』 「선진(先進), “계씨(季氏) 노국(魯國)의 권신(權臣)이 주공보다도 부()하다[季氏富於周公].”는 말이 있다.

 

주공질유술(周孔迭有術)

주역(周易)의 상()은 주공(周公)이 짓고, 계사(繫辭)는 공자(孔子)가 지었다고 한다.

 

주관(周官)

주례(周禮)의 별칭

 

주관육익(周官六翼)

고려(高麗) 말년에 김구용(金九容)이 지은 글의 이름이다. 전리(典理)ㆍ군부(軍簿)ㆍ판도(版圖)ㆍ전법(典法)ㆍ의례(儀禮)ㆍ전공(典工)의 육전(六典)을 기술하였다. 고려사(高麗史)

 

주괴리(朱槐里)

주운이 괴리 영(槐里令)을 지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주교년(朱喬年)

주자(朱子)의 아버지. 이름은 송(), 교년은 그의 자이다. 그는 사훈이부랑(司勳吏部郞)을 지냈음. 학자들이 위재 선생(韋齋先生)이라 칭했다. 저서에는 위재집(韋齋集)이 있다.

 

주구(誅求)

가렴주구(苛斂誅求)의 준말로, 조세 따위를 가혹하게 거두어 들여 백성을 못살게 들볶는 것을 말한다.

 

주구(周耈)

주 나라의 늙은이란 바로 태공 망(太公望)을 가리킨 것이다.

 

주구(珠丘)

왕릉을 가리키는 말로 순() 임금을 창오(蒼梧)에 장사 지냈을 때에 참새와 같은 빙소(憑霄)라는 새들이 입에 청사주(靑砂珠)를 물고 와 떨어뜨려 구슬 언덕(珠丘)을 만들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습유기(拾遺記)』 「우순(虞舜)

 

주구(州鳩)

주 경왕(周景王)의 악관(樂官) 이른다.

 

주구무사설(州鳩無射說)

주 경왕이 무역종(無射鐘)을 만들면서 악관 주구에게 율려(律呂)에 대하여 물으니, 주구가 대답하기를 옛날 신고(神瞽)가 중화(中和)의 성음을 합하여 이를 헤아려서 음악을 만들어, 율려의 장단(長短)을 재서() 종소리를 화평하게 골라 백관(百官)의 법칙으로 삼고, (; 천신(天神)ㆍ지기(地祇)ㆍ인귀(人鬼))으로써 회합시키고 육(; 육률)으로써 균형있게 하였으며 십이율에서 완성하였으니[紀之以三 平之以六 成於十二] 이것이 곧 천도(天道)이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국어(國語)』 「주어(周語)

 

주국(酒國)

술에 취한 세계로 취향(醉鄕)과 같다.

 

주궁(珠宮)

바다에 수신(水神)이 산다는 궁정(宮殿)을 말한다.

 

주규(周圭)

주 나라 때 옥으로 만든, 해 그림자를 재는 기구이다.

 

주금(晝錦)

비단옷을 입고 낮에 다닌다는 뜻으로 출세하여 고향에 돌아옴을 말한다.

 

주금용약(鑄金踊躍)

()을 주조(鑄造)하려고 풀무에 넣었을 때에 그 안에서 금()이 뛰며, “나는 좋은 금이다 한다면 사람이 해괴히 여길 것이다.” 하는 옛말이 있는데, 이것은 제가 재주를 자랑하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

 

주금용약(鑄金踴躍)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지금 훌륭한 대장장이가 쇠()를 녹여 틀에 부어 기물(器物)을 만들려 할 때 쇠붙이가 뛰어 나오면서 나는 반드시 막야(鏌鎁)가 될 것이다[今大冶鑄金, 金踴躍曰 我且必爲鏌鎁!’].’ 하였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금혼(注金昏)

장자(莊子)』 「달생(達生)질그릇을 내기로 걸고서 활을 쏘면 잘 맞히고, 은갈고리를 내기로 걸고서 쏘면 마음이 두근거리고, 황금을 내기로 걸고서 쏘면 정신이 혼미하게 된다[以瓦注者巧, 以鉤注者憚, 以黃金注者殙].” 하였다.

 

주기(奏記)

문서(文書)를 기록해서 임금에게 상주(上奏)하는 일을 말한다.

 

주기(酒旗)

별 이름이다. 진서(晉書)』 「천문지(天文志)주관(酒官)의 기()이니, 5()이 와서 지키고 있으면 임금이 온 백성에게 주식(酒食)을 나누어주는 은전이 내린다.” 하였다.

술 파는 집에서는 푸른 깃발을 문 앞에 세워 둔다.

 

주기(珠璣)

주옥(珠玉)과 같은 시문. 좋은 시문(詩文)이나 그림, 글씨 등을 말한다.

 

주낙시찬구(周洛始鑽龜)

주 성왕(周成王)이 낙읍(洛邑)으로 천도하기 위하여 주공(周公)에게 명하여 동도(東都)를 만들도록 하였다. 이에 주공이 낙읍을 완성한 다음 낙고(洛誥)를 지어 바쳤는데, 여기에 나는 간수(澗水)의 동쪽과 전수(瀍水)의 서쪽에 대하여 거북점을 쳤더니 낙읍이 길하다.” 하였으므로 한 말이다.

 

주난우(朱蘭嵎

)난우(蘭嵎)는 명() 주지번(朱之蕃)의 호이다. 서화(書畫)에 능하고, ()은 이부 시랑(吏部侍郞)을 지냄. 조선에 사절로 옴.

 

주난학저장(舟難壑底藏)

배를 구렁에 감추고, 산을 못에 감추면 든든하다 이를 것이다. 그러나 밤중에 힘센 자가 지고 달아난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차마 옥체(玉體)를 묻기 어려움을 말한다.

 

주남(周南)

낙양(洛陽)을 가리키는데, 한 무제(漢武帝) 초기에 태사공(太史公) 사마담(司馬談)이 낙양에 유체(留滯)하여 봉선(封禪)의 일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데서 온 말로, 즉 지방에 있음을 의미한다. 사기(史記)130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太史公留滯周南 不得與從事라 하였다.

 

주남류체(周南留滯)

한 무제(漢武帝)가 태산(泰山)에 봉선(封禪)을 할 적에, 사마천(司馬遷)의 부친인 태사공(太史公) 사마담(司馬談)이 주남(周南)에 체류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일에 참여하지 못했던 것을 유감으로 여긴 고사가 있다. 사기(史記)130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

 

주남문사(周南文史)

태사공(太史公)과 같은 뛰어난 문학과 역사 실력을 말한다. 사마천(司馬遷)의 부친인 태사공 담()이 주남 땅에 유체(留滯)되어 조정의 정사에 참여하지 못했던 고사가 있으며, 사기(史記)130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사마천 자신이 부친에 대해 문사(文史)에 뛰어났다고 평한 기록이 또한 전한다.한서(漢書)』 「사마천전(司馬遷傳)

 

주남체(周南滯)

한무제(漢武帝) 때에 사마담(司馬談)이 주남(周南)에 유체(留滯)되어 봉선(封禪)하는 성전(成典)에 참예하지 못하였다.

 

주남태사(周南舊史)

중국 주남(周南) 지방에 유체(留滯)된 탓으로 황제를 수행하지 못해 끝내는 분기(憤氣)가 치솟아 죽었던 태사공(太史公) 사마담(史馬談)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옛날에 사관(史官)으로 있다가 지금은 불우한 처지에 놓여 있는 계곡 자신을 은연 중에 비유하고 있다. 사기(史記)130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

 

주남태사공(周南太史公)

주남은 낙양(洛陽)의 땅을 말하고, 태사공은 사마천(司馬遷)을 가리킨다. 사마천의 자서(自序)태사공이 주남에 유체(留滯)했다.” 하였다.

 

주노완생(朱老阮生)

두보(杜甫) 시에 梅熟許同朱老喫 松高擬對院生論이라는 글귀가 있는데 여기서는 고사를 빌려 주야운(朱野雲)과 완사경(阮賜卿)을 뜻한 것이다.

 

주담(麈談)

승려의 수준이 높아 훌륭한 법문을 펼친다는 말이다.

 

주덕송(酒德頌)

술을 찬미한 노래로 진() 나라 유영(劉伶)이 지음. 유영은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으로 노장학(老莊學)을 숭상했다.

 

주덕윤(朱德潤)

() 나라 사람으로 시()에 능하였으며, 산수화ㆍ인물화를 잘 그렸다. 사고제요(四庫提要)卷一百七十四

 

주도(周圖)

주돈이(周敦頤)태극도(太極圖)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기서는 공자의 학문을 공부하였다는 뜻이다.

 

주도(奏刀)

칼을 쓰다란 뜻이다.

 

주도기이동(周道旣已東)

주 나라의 도가 동으로 갔다는 것은 곧 주 나라가 쇠미해져서 평왕(平王)이 동쪽 낙읍(洛邑)으로 도읍을 옮긴 이후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주도면밀(周到綿密)

마음 씀이나 생각이 두루 미치고 자세하여 빈틈이 없음.

 

주도추(朱桃椎)

당 나라 때 거사(居士). 그는 천성이 담박하여 산 속 오막살이에 살면서 항상 미투리를 만들어 길가에 놓아두면, 지나는 사람들이 주 거사의 신이다.” 하고 쌀을 대신 그 자리에 갖다 놓고 신을 가져갔다 한다. 신당서(新唐書)卷一百九十六 주도추전(朱桃椎傳)

 

주독(酒禿)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에 술독으로 인해 머리털이 다 빠지는 것을 말한다.

 

주두(周豆)

() 나라 왕실의 기물(器物)로 대궐의 그릇을 말한다.

 

주등해(朱登蟹)

주등(朱登)은 한 선제(漢宣帝) 때 동해상(東海相)을 지낸 인물인데, 그가 동해상이 되자 그 지방의 특산물인 게장을 장창(張敞)에게 선물한 일이 있었다.

 

주랑(周郞)

() 나라 주유(周瑜)를 가리킨다.

 

주랑렬거분적벽(周郞列炬焚赤壁)

() 나라의 장수 주유(周瑜)가 화공법(火攻法)으로 조조(曹操)의 전선(戰船)을 적벽강(赤壁江)에서 모조리 태웠다.

 

주랑분위(周郞焚葦)

삼국시대 오() 나라 장수 주유가 조조(曹操)와 싸울 적에, 전함(戰艦) 수십 척에다 섶()을 가득 싣고 기름을 그 속에 간직한 다음, 조조에게 거짓 항복하겠다고 속이고는 조조의 진영(陣營)에 다가가서 그 섶을 실은 배에다 불을 지르자, 불길이 강풍(强風)을 타고 만연(蔓延)하여 조조의 군마(軍馬)가 물에 빠져 죽거나 불에 타죽은 자가 매우 많아, 조조를 대패시킨 일을 말한다. 삼국지(三國志)卷五十四 주유전(周瑜傳)

 

주량(周梁)

배로 만든 다리를 말한다. 문왕(文王)이 그의 비() 태사(太姒)를 맞이해 올 때 위수(渭水)에다가 배로 다리를 만들고서 맞이해 왔다. 시경(詩經)대아(大雅) 대명(大明)

 

주량(舟梁)

시경(詩經)대아(大雅) 대명(大明)편에, “친히 위수(渭水)에 나가 맞이하려고 배를 지어서 다리를 만든다네.” 하였는데, 문왕(文王)이 왕비를 맞이하기 위하여 만든 배다리로서, 친영 또는 혼인을 말한다.

 

주려(周廬)

진한(秦漢) 시대에 황궁의 사방 주위를 호위하기 위하여 설치한 군막(軍幕)이다.

 

주력(呪力)

기도할 때 주문(呪文)을 외우는 힘

 

주력(周曆)

주 나라는 38() 867년 만에 진() 나라에게 망하였다.

 

주련(朱輦)

임금의 수레를 말한다.

 

주련벽합(珠聯璧合)

뭇 아름다움이 한데 모인 것을 말한다. “해와 달이 옥을 합치듯 하고 다섯 별이 구슬을 꿰듯 한다.”한서(漢書)』 「율력지(律曆志)의 글에서 나온 것이다.

 

주령(酒令)

술을 마실 때에 즐겁게 놀기 위하여 규칙을 만들어서 이를 어기면 벌주(罰酒)를 마시게 한 것을 말한다.

 

주례(周禮)

주공 단(周公旦)이 찬한 책으로, 모든 관직을 육관(六官)으로 나누고 그에 따른 직장(職掌)을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주로(朱鷺)

홍학(紅鶴)이라고 하는 새 이름인데, 즉 이 새의 형상을 그려서 북()에 장식하고 이로써 곡명(曲名)을 삼은 것이라 한다. 그러나 고악부가사(古樂府歌辭)에는 朱鷺魚以鳥路訾邪鷺何食食茄下不之食不以吐將以問誅者라 하였는데, 그 뜻을 알 수가 없다

 

주류(肘柳)

늙어서 쇠퇴되었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지락(至樂)

 

주륜(朱輪)

바퀴에 붉은 칠을 한 수레로 한() 나라 때에 2천 석() 이상의 관원은 양쪽의 두 바퀴를 모두 붉게 칠한 수레(朱輪)을 타고 다녔다고 한다. 한서(漢書)』 「이심전(李尋傳)장군(將軍)의 한 가문에서만 후()20대의 주륜을 보유했으니, 한 나라가 일어난 이래로 이렇게 귀했던 신자(臣子)는 일찍이 없었다.” 하였다.

 

주륜취개(朱輪翠蓋)

붉은 칠을 한 수레바퀴와 아름답게 꾸민 양산으로, 왕이나 귀족들이 사용하는 것이다.

 

주륜화불(朱輪華紱)

붉은 칠을 바른 수레바퀴와 화려한 인끈으로, 고관의 영화로움을 말한다.

 

주리(侏離)

방언(方言)을 뜻하는 말로, 소수민족 혹은 외국의 언어나 문자를 말한다. / 인용: 北學議序(박지원)

 

주리(珠履)

전국(戰國) 시대에 조() 나라 평원군(平原君)이 초() 나라 춘신군(春申君)에게 객()을 보내면서 화려하게 꾸며서 자랑하려고 대모(玳瑁)로 잠()을 만들어 꽂고 칼집을 주옥(珠玉)으로 꾸몄더니 춘신군의 상객(上客)들은 구슬()로 만든 신을 신고 있었으므로 평원군의 객()이 크게 부끄러워하였다. 사기(史記)』 「춘신군열전(春申君列傳)

 

주리삼천객(珠履三千客)

주리(珠履)는 구슬로 꾸민 신. 사기(史記)』 「춘신군열전(春申君列傳)문객(門客)3천 명이었는데 상객(上客)은 모두 구슬로 꾸민 신을 신었다.” 했으므로 호화로운 집의 문객을 말한다.

 

주마가편(走馬加鞭)

달리는 말에 채찍을 더한다. 잘하는 사람에게 더 잘하도록 질책하는 것을 일컬는 말이다.

 

주마간산(走馬看山)

말을 달리면서 산을 본다는 말로 바빠서 자세히 보지 못하고 건성으로 지나침을 말한다.

 

주마등(走馬燈)

사물이 덧없이 빨리 돌아간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주마백령주(走馬白翎洲)

백령(白翎)은 화살 말미의 깃털인 만큼 활을 쏘아야 할 텐데 말을 치달렸다는 말이다.

 

주맹(主孟)

() 나라 대부 이극(里克)의 처인 맹()주맹(主孟)’이라고 부른 고사에서 기인하여, 주인의 처를 뜻하는 말로 쓰게 되었다. 국어(國語)晉語二

 

주명(朱明)

여름의 별칭이다. 여름을 맡은 신(). 여름은 불()에 해당하며 빛깔은 붉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참고로 봄은 청양(靑陽), 가을은 백장(白藏), 겨울은 현영(玄英)이라고 한다.

 

여름 가을 겨울
청양(靑陽) 주명(朱明) 백장(白藏) 현영(玄英)

 

 

주명절(朱明節)

하절기를 말한다. () 나라 황제가 입하일(立夏日)에 남교(南郊)에서 여름 귀신을 맞이하면서 주명가(朱明歌)를 불렀던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주몽(朱蒙)

고구려왕을 말한다.

 

주무(周武)

() 나라 무왕(武王)의 풍악이다.

 

주무경지주옥(走無脛之珠玉)

보통 어진 인재는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어진 이를 사랑하는 사람의 문 앞으로 모여든다는 뜻으로 쓰인다.

 

주무릉(周武陵)

무릉(武陵)은 주세붕(周世鵬)의 호이다.

 

주무비음우(綢繆備陰雨)

왜적이 또다시 침략해 올 것에 대비해서 미리 계책을 세워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시경(詩經)빈풍(豳風) 치효(鴟鴞)하늘에서 아직 장맛비가 내리기 전에, 저 뽕나무 뿌리를 거두어다가 출입구를 단단히 얽어 놓는다면, 지금 이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어찌 혹시라도 감히 우리 새들을 업신여길 수 있겠는가[迨天之未陰雨 徹彼桑土 綢繆牖戶 今此下民 或敢侮予]”라는 구절에서 나온 것이다.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

 

주무종(珠無踵)

좋은 구슬을 발이 없어도 사람들이 가지고 멀리 돌아다닐 수 있다는 뜻이다.

 

주묵(朱墨)

붉은 먹과 검은 먹으로, 서책에 비점(批點)을 찍거나 혹은 첨삭을 하는 데 사용하는데, 여기서는 실록을 편찬하면서 사초(史草)의 문장을 첨삭하고 다듬는다는 뜻이다.

주필(朱筆)과 묵필(墨筆)을 가지고 장부를 정리하는 것으로서, 보통 관청의 사무를 집행하는 것을 말한다.

 

주묵사(朱墨史)

송 나라 때 범충(范沖)이 찬한 신종실록(神宗實錄)을 말한다. 처음에 범조우(范祖禹)가 신종실록을 찬수하면서 왕안석(王安石)의 잘못에 대해 극론하였는데, 왕안석의 사위 채변(蔡卞)이 이를 미워해서 신종실록을 중수하여 뜯어고치고는 범조우를 유배 보내어 죽게 하였다. 그 뒤 범조우의 아들인 범충이 고종(高宗)의 명을 받아 신종실록을 찬수하면서는 왕안석이 법도를 뜯어고친 잘못과 채경(蔡京)이 나라를 망친 죄를 극론하였다, 그리고 별도로 고이(考異)란 책을 만들어서 거취(去取)를 분명하게 밝혔는데, 구문(舊文)은 묵서(墨書)하고, 삭제한 것은 황서(黃書)하고, 새로 찬수한 글은 주서(朱書)하였으므로, 세상에서는 이를 주묵사라고 한다. 송사(宋史)435 유림열전(儒林列傳)范沖

 

주묵필(朱墨筆)

공문을 처리할 때 쓰는 주필(朱筆)과 묵필(墨筆)을 가리킨다.

 

주문(籒文)

고대(古代)에 사주(史籒)가 만들어낸 자체(字體)이다.

종정(鐘鼎) 문자로서 대전(大篆)이라고도 한다.

 

주문(朱文)

주자(朱子)의 글을 말한다.

 

주문(朱門)

왕공(王公) 귀족의 대문으로, 고관 대작의 집을 말한다. 상고 때에 왕공 귀족은 그 존귀함을 표시하기 위해 대문을 붉게 칠하였다 한다. 영번로(演繁露)후세의 후왕(侯王)과 달관(達官)들이 사는 집은 다 붉게 꾸몄으므로 주문 또는 주저(朱邸)라고 한다.” 했다. / 인용: 靑麥行(위백규)

주자(朱子)를 가리킨다.

 

주문객(朱門客)

대문을 붉게 칠한 귀족과 부호의 집을 드나들며 친교를 맺는 사람을 말한다.

 

주문연(主文硏)

문장을 주관하는 문형(文衡), 즉 홍문관 대제학이 쓰는 벼루이다. 이 벼루는 문형이 옥당(玉堂) 과차(科次)에 들어가서 학사(學士)의 글을 시험 보일 때에만 사용하였는데, 문형을 사임할 때에는 이 벼루와 함께 시를 지어 후임자에게 전하는 관례가 있었다.

 

주문욱욱(周文郁郁)

공자의 말에, “() 나라는 2(夏商)의 예()를 보고 만들었으니, 욱욱(郁郁)히 문채롭다[周監於二代, 郁郁乎文哉! 吾從周].” 하였다. 논어(論語)』 「팔일(八佾)

 

주미(酒謎)

술에 대한 은어(隱語)이다.

 

주미(麈尾)

고라니 꼬리로 만든 불자(拂子), 위진(魏晉) 시대 때 청담을 즐기던 사람들이 많이 가지고 다녔으며, 육조(六朝) 시대에 명사들이 청담(淸談)을 나눌 적에는 주미를 손에 들고 휘두르며 이야기를 하였고 나중에는 선종(禪宗)의 승려들도 애용하였다.

 

주방(肘方)

시해(尸解)의 현상을 보이며 신선이 되어 떠났다는 진() 나라 갈홍(葛洪)이 지은 의서(醫書) 주후요급방(肘後要急方)의 준말로, 선방(仙方) 혹은 선도(仙道)를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진서(晉書)72 갈홍전(葛洪傳)

 

주번(朱轓)

중국 고대에는 군수(郡守)가 수레에 붉은 깃발을 달았던 것이다.

 

주보언(主父偃)

한 무제(漢武帝) 때 제국(齊國) 사람.(暮召偃)

 

주복(疇福)

홍범구주(洪範九疇)에 나오는 다섯 가지 복, 즉 오래 사는 것(), 부유함(), 안락함(康寧), 미덕을 닦는 것(攸好德), 늙어서 죽는 것(考終命)을 말한다.

 

주복문자(拄腹文字)

소식(蘇軾)의 시원전다시(試院煎茶詩)창자와 배를 채울 만한 문자 오천권은 필요없고 항상 충분히 자고 해 높이 올랐을 때 차 한잔만을 바라노라[不用撑腸拄腹文字五千卷 但願一甌常及睡足日高時].”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부공(主簿公)

자는 요수(堯叟), 정지상(丁志尙)의 아들로 음직으로 벼슬하여 예산 현감(禮山縣監)까지 지냈다.

 

주부단참군장(主簿短參軍長)

주부(主簿)와 참군(參軍)은 진() 나라의 왕순(王珣)과 치초(郗超)를 가리킨다. 왕순이 주부(主簿)가 되고 치초가 기실참군(記室參軍)이 되었는데, 왕순은 키가 작고 치초는 수염이 길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말하기를, “수염이 긴 치초와 키가 작은 왕순은 능히 영공(令公)을 기쁘게도 하고 노하게도 한다.” 하였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주불도유령분상토(酒不到劉伶墳上土)

술을 매우 좋아한 유령(劉伶)이었지만 한번 죽은 후에는 술을 마실 수 없다는 뜻이다. 유영은 완적(阮籍)ㆍ혜강(嵇康) 등과 함께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하나였는데, () 나라 사람으로 술을 좋아하여 항시 술병을 휴대하고 다녔으며, 사람을 시켜 삽을 메고 따라다니게 하면서 내가 죽으면 묻어달라.” 하였다. 진서(晉書)卷四十九 유령전(劉伶傳)

 

주불차전(籌不借前)

당 현종(唐玄宗) 때의 재상 송경(宋璟)의 경륜이 장량(張良) 보다 훌륭하다는 뜻이다. 젓가락을 빌린다는 말은 한 고조(漢高祖)의 밥상에 놓인 젓가락을 빌려서 일의 가부를 주결(籌決)하겠다던 장량(張良)에게서 나온 말이다. 한서(漢書)卷四十 장량전(張良傳)

 

주사(主司)

장시관(掌試官)을 가리킨다.

 

주사(柱史)

주하사(柱下史)의 약칭으로 즉 주하사 벼슬을 지낸 노자(老子)를 가리킨다.

 

주사단조(柱史丹竈)

주사(柱史)는 주하사(柱下史)라는 벼슬 이름의 약칭으로 도교(道敎)의 원조(元祖)인 노자(老子)를 가리킨 말이고, 연단(鍊丹)은 도교에서 말하는 장생불사약(長生不死藥)인 단약(丹藥)을 굽는 것을 말하는데, 노자가 청우(靑牛)를 타고 파촉(巴蜀)에 가서 단약을 구웠다 한다.

 

주사소단조(柱史燒丹竈)

주사(柱史)는 주하사(柱下史)의 약칭으로 이 벼슬을 한 도교(道敎)의 원조(元祖) 노자(老子)를 가리킨다. 연단(煉丹)은 도교에서 말하는 장생 불사약(長生不死藥)인 단약(丹藥)을 굽는 것을 말하는데, 노자는 청우(靑牛)를 타고 파촉(巴蜀)에 이르러 단약을 구웠다 한다.

 

주사예(周史裔)

주사의 후예. 춘추시대(春秋時代) 때 주()나라 장서실(藏書室) 사관(史官)을 지낸 노자(老子)의 후예인 이응(李膺)을 가리킨다.

 

주사직(朱絲直)

아첨함이 없이 공명정대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남조 송() 포조(鮑照)백두음(白頭吟)’곧기는 붉은 가야금 줄과 같고, 맑기는 옥호의 얼음 같아라[直如朱絲繩 淸如玉壺氷].”라는 표현에서 나온 것이다. 문선(文選)28

 

주산자해(鑄山煮海)

소식(蘇軾)표충관비(表忠觀碑)산에서 채굴한 광석을 녹여 동을 만들고, 바다의 물을 끓여 소금을 만드는 등, …… 자원이 풍부하기가 천하에 으뜸이었다[鑄山煮海 …… 甲於天下].”라는 말이 나온다.

 

주산지측(周山之側)

시전(詩牋)우르릉 저 천둥 소리가 남산 옆에서 나네[殷其雷 在南山之側].”하는 시가 있다. 이 시는 출정한 남편이 고생함을 민망히 여겨 어서 돌아오기를 바라는 여인의 노래이나, 구설(舊說)은 뭇 선비들이 주 문왕(周文王)의 어진 정사를 천둥에 비겨 주() 나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시로 해석한다.

 

주생(周生)

() 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전하지 않는데, 도술(道術)이 있어 구름을 타고 달을 취했다[梯雲取月].’는 전설이 있으므로 한 말이다.

 

주서초모(誅鋤草茅)

띠풀을 호미질하여 없애다.

 

주선(周旋)

일이 잘되도록 여러 모로 힘씀

()는 원()의 법칙(法則)에 맞게 하는 행동, ()은 방()의 법칙에 맞게 하는 행동

 

주선왕(周宣王)

() 나라를 중흥한 왕으로 노() 나라의 난리를 평정하였다.

 

주성(酒聖)

술 가운데 성인(聖人)으로, 맑은 술(淸酒)을 말한다. 탁주(濁酒)는 현인(賢人)이라 한다.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서리전(徐摛傳), “평소에 술에 취한 사람이 술 가운데 맑은 것을 일러 성인이라고 하고, 탁한 것을 일러 현인(賢人)이라고 하였다.” 하였다.

 

주성(酒星)

술을 맡았다는 별, 곧 주기성(酒旗星)을 가리키며. 헌원성(軒轅星) 남쪽에 있는 별을 말한다. / 인용: 麴先生傳(이규보)

 

주성강(周成康)

주나라의 성왕(成王)과 그 아들 강왕(康王)은 선대에서 받은 왕업을 잘 계승하여 천하의 태평을 이룩하니 형벌을 쓸 일이 없어서 옥()40년이나 비어 있었다.

 

주성치백(周成褫魄)

주성왕(周成王) 때에 큰 바람이 불고 폭우(暴雨)가 쏟아지고 우레가 쳐서 큰 나무가 뿌리 채 뽑아지고 들에 벼가 모두 쓰러지니, 성왕이 놀래어 쫓겨나가 있던 주공(周公)을 도로 맞아 들였다 한다.

 

주송(朱松)

주희(朱熹)의 부친이다.

 

주송남양(主送南陽)

()는 남편이고 남양(南陽)은 남양천(南陽阡)으로 무덤을 말한다.

 

주송심(周宋鐔)

제왕의 칼, 즉 상방검(尙方劍)을 가리킨다. 천자의 칼로 말하면, 칼날과 손잡이 사이의 공간을 주 나라와 송 나라로 삼는다[天子之劍 周宋爲鐔]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장자(莊子)』 「설검(說劍)

 

주수(晝繡)

주금(晝錦)과 같은 뜻으로, 출세하여 고향에 가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주수명송(周受命頌)

() 나라의 수명송(受命頌). 당 고종(唐高宗)의 후비(后妃)인 측천 무후(則天武后)가 예종(睿宗)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제위(帝位)에 올라 국호를 주()라 참칭했는데, 이때 진자앙(陳子昻)이 주 나라가 천명(天命)을 받았다는 내용과 송()을 지었음.

 

주수수구(走獸首丘)

회남자(淮南子)』 「설림(說林)새는 날아 고향으로 돌아가고, 토끼는 뛰어 굴로 돌아가며, 여우는 죽을 때 언덕으로 머리 둔다[狐死首丘].” 하였다. 본래 고향을 지향하는 뜻이나, 여기서는 그저 죽다의 뜻이다.

 

주숙진(朱淑眞)

() 나라 때의 여류 시인으로서 학식이 뛰어났으나, 불행히 시정(市井)의 민가(民家)에 시집을 가서 뜻을 얻지 못해 우울함 속에서 특히 우원(憂怨)의 시를 많이 읊었다 한다.

 

주승(朱勝)

()은 수식(首飾)인데 맨드라미꽃이 붉으므로 한 말이다.

 

주시(周詩)시경(詩經)대아(大雅) 숭고(崧高)를 말한다.

 

주시응적(周詩膺狄)

시경(詩經)노송(魯頌) 비궁(閟宮)을 가리킨다. 비궁은 천자가 군대를 출동하여 융적을 정벌하는 것을 읊은 시로, 그 시에 융적을 이에 막으며, 형서를 이에 징계하도다[戎狄是膺 荊舒是懲].”하였다.

 

주시풍아(周詩風雅)

주시는 시경(詩經)이며, 풍은 국풍(國風)이고, 아는 소아(小雅)와 대아(大雅)를 말한다.

 

주신재(周愼齋)

신재(愼齋)는 주세붕(周世鵬)의 호()이다.

 

주실(朱實)

신목(神木)에 열린다는 붉은 색 열매.

 

주아(周雅)

주공(周公)이 대아(大雅)를 지어 선왕(先王)의 공덕을 칭송하였다.

 

주안(鑄顔)

양자(揚子) 법언(法言) 학행(學行)人可鑄歟 曰孔子鑄顔淵矣라 하였다.

 

주안(奏案)

상주문(上奏文)을 올려놓는 궤()를 이른다.

 

주애(朱崖)

애주(崖州)의 고친 이름이다. 선종(宣宗) 즉위 후 이덕유(李德裕)가 참소를 받아 애주사호참군사(崖州司戶參軍事)로 폄척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주애수결신(朱崖受玦辰)

() 나라의 명장이며 명재상인 이덕유(李德裕)가 참소를 받고 애주 사호참군사(崖州司戶參軍事)로 폄적(貶謫)되어 가서 죽은 고사가 있다. 신당서(新唐書)』 「이덕유전(李德裕傳) 주애는 이덕유의 별칭이다.

 

주야장천(晝夜長川)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흐르는 시냇물과 같이 늘 잇따름.

 

주언륜(周彦綸)

언륜(彦綸)은 언륜(彦倫)으로, 육조(六朝) 때 송() 나라 사람인 주옹(周顒)의 자이다. 주옹이 북산(北山)에 은거하다가 벼슬길에 나서자 공치규(孔穉圭)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북산이문(北山移文)란 글을 지어 다시는 북산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였다. 고문진보(古文眞寶)後集

 

주여(朱呂)

절친했던 송유(宋儒) 주희(朱熹)와 여조겸(呂祖謙)을 말한다. 둘이 한천정사(寒泉精舍)에 모여 주돈이(周敦頤)ㆍ장재(張載)ㆍ정자(程子) 형제의 글을 보며 근사록(近思錄)을 엮었다는 고사가 있다.

 

주여장천(晝夜長川)

밤낮으로 쉬지 않고 늘 잇달음

 

주연(胄筵)

왕세자(王世子)가 공부하는 서연(書筵)의 이칭.

 

주염계(周濂溪)

염계는 송() 나라의 유학자 주돈이(周敦頤)의 호이다.

 

주옥(珠玉)

남의 시문(詩文)을 높여 일컫는 말이다.

 

주옥기무경(珠玉豈無脛)

시문(詩文) 등이 일시(一時)를 풍미하는 것을 비유한 말로 발()이 없이도 잘 유행한다는 뜻이다. 열자(列子)()는 다리가 없어도 다니고, ()은 날개가 없어도 난다.” 하였다.

 

주옹주금유(朱翁晝錦遊)

주옹(朱翁)은 한() 나라 주매신(朱買臣)의 자()가 옹자(翁子)였으므로 그를 가리키며, 주금(晝錦)은 비단옷을 입고 낮에 다닌다는 뜻으로 출세하여 고향에 돌아옴을 말한다. 매신은 집이 무척 가난했으나 책 읽기를 좋아했었는데 뒤에 엄조(嚴助)의 추천으로 태중대부(太中大夫)가 되었다. 무제(武帝)는 그를 그의 고향인 회계 태수(會稽太守)에 임명하고는 부귀하고 고향에 돌아가지 않으면 비단 옷을 입고 밤에 다니는 것과 같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옛말을 인용한 데서 나온 것이다. 한서(漢書)』 「주매신전(朱買臣傳)

 

주왕(周王)

팔준마(八駿馬)를 타고 천하를 유력했던 주목왕(周穆王)을 말한다.

 

주왕부결(周王俯結)

주 나라 문왕(文王)무왕(武王)이 각각 전쟁을 하던 중 대님이 풀렸을 때에 모두 다른 사람을 시키지 않고 자신이 친히 몸을 구부리고 대님을 맸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왕수(周王不復狩)

주왕(周王)은 주() 나라 문왕(文王)을 말한다. 문왕은 사냥을 나가는데 점을 쳐보니 짐승을 얻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보필(輔弼)을 얻는다.” 하였다. 이때 태공 망(太公望)은 나이가 80이 넘어 위수(渭水)에서 낚시질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는데, 마침내 만나 스승으로 삼고 통일 천하의 꿈을 이룩하였다. 사기(史記)卷四 주본기(周本紀), 卷三十二 태공세가(太公世家)

 

주왕연호(周王宴鎬)

()는 주() 나라의 서울이다. 주 나라 선왕(宣王) 때에 흉노(匈奴)족을 정벌하여 성공하고 돌아온 장병들에게 큰 잔치를 베풀어 위로하였다.

 

주왕팔준구(周王八駿驅)

팔준마는 춘추시대(春秋時代) 주목왕(周穆王)이 타던 여덟 필의 준마. 주 목왕이 이 팔준마를 어거하고 서쪽으로 순수(巡狩)하여 곤륜산(崑崙山)에 올라가 선녀(仙女)인 서왕모(西王母)를 보고는 즐거워서 돌아갈 것을 잊었다는 고사가 있다. 사기(史記)卷五 진본기(秦本紀)

 

주우(周牛)

전쟁이 그쳐서 방목하는 소를 말한다. () 나라 무왕(武王)이 상() 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와 군마(軍馬)를 화산(華山)의 남쪽으로 돌려보내고 소를 도림(桃林)의 들판에 방목하였다. 서경(書經)』 「무성(武成)

 

주운(朱雲)

한 성제(漢成帝) 때의 직신(直臣). 그가 한 성제에게 아첨한 장우(張禹)의 머리를 잘라야만 백성이 편히 살 수 있다고 하자, 성제가 어사(御史)에게 주운을 끌어내어 하옥(下獄)시키도록 하였다. 그러자 그가 마루 난간을 부여잡고 버티며 간하다 그만 난간이 부러지기까지 했는데 성제가 그 부러진 난간을 그대로 보수하여 직신의 자취를 남겨 두었다 한다. 한서(漢書)』 「주운전(朱雲傳)

 

주운선(酒運船)

() 나라 주왕이 달기(妲己)를 총애하여 술로 연못을 만들고 고기를 걸어서 숲을 만들어 놓고는 밤새도록 잔치를 벌이면서 즐겼으며, 이를 비방하는 자에 대해서는 구리 기둥에다 기름을 바르고 이를 숯불로 달군 다음 거기를 기어올라가게 하고는 달기와 함께 이를 보면서 즐겼다고 한다. 사략(史略)卷一 은성탕(殷成湯)

 

주운참녕(朱雲斬佞)

() 나라 성제(成帝) 때 주운이 괴리 영(槐里令)이 되었는데, 상방검(尙方劍)을 빌려 주어 간사한 자인 장우(張禹)의 목을 칠 수 있게 해 달라고 상서하였다. 그러자 황제가 노하여 주운을 끌어내리게 하니, 주운이 어전의 난간을 잡고 버티어 난간이 부러지고 말았다. 한서(漢書)67 주운전(朱雲傳)

 

주위(周衛)

주밀(周密)하게 숙위(宿衛)하는 곳으로, 즉 한림(翰林) 등 시종신(侍從臣)을 의미한다.

 

주유(珠襦)

옛날 제왕과 후비(后妃)가 입었던 염복(殮服)이다.

 

주유(朱鮪)

후한 광무제(光武帝) 때 사람이다.

 

주유(侏儒)

초요(僬僥)’와 같은 뜻으로 난장이를 말한다. 중국에서 동족으로 40만리 떨어진 곳에 있다는 난장이 나라로, 그 나라 사람들은 키가 15치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得僬僥國, 人長一尺五寸]. 열자(列子)』 「탕문(湯問)/ “난장이에게 물건을 높이 들도록 시킬 수 없고 난장이에게 높은 곳의 물건을 내리도록 시킬 수 없다[僬僥不可使擧, 侏儒不可使援].” 국어(國語)』 「진어(晉語)/ 인용: 昆侖奴(신광하)

 

주유갑(珠襦匣)

황금실로 구슬을 꿰어서 만든 단의(短衣)를 말하는데, () 나라 때 황제 및 제후왕의 장례(葬禮)에 쓰이던 물품이다.

 

주유하호맹가기(酒有何好孟嘉嗜)

() 나라 맹가(孟嘉)가 환온(桓溫)의 참군(參軍)이 되었을 때, 어찌 그리 술을 좋아하는지 환온이 묻자, 대답하기를 공이 술 속에 담긴 멋을 아직 몰라서 그런 것일 따름이다.”고 하였다 한다. 진서(晉書)98 맹가전(孟嘉傳)

 

주읍동향(朱邑桐鄕)

주읍(朱邑)이 동향의 향관(鄕官)인 색부(嗇夫)로 재직하면서 은혜를 많이 베풀었으므로, 백성들이 그를 사랑하고 공경하였는데, 동향에 묻어 달라는 그의 유언에 따라 그곳에 장사를 지내자, 백성들이 그를 위해 사당을 세우고 대대로 제향(祭享)을 올렸다는 기록이 전한다. 한서(漢書)89 순리전(循吏傳)주읍전(朱邑傳)

 

주응(注擬)

관원(官員)을 임명할 때 문관(文官)은 이조(吏曹)에서, 무관(武官)은 병조(兵曹)에서 후보자 세 사람을 정하여 임금에게 올리는 것을 말한다. / 인용: 五學論(정약용)

 

주의목언(周疑木偃)

무왕(武王)이 죽은 뒤에 성왕(成王)이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그의 숙부인 주공(周公)이 섭정하였는데, 성왕을 위시한 주위 사람들이 주공이 혹시 왕위를 탐내고 있지 않나 의심하자 가을에 폭풍이 불어 다 익은 곡식과 거목들이 쓰러졌다 한다. 서경(書經)』 「금등(金縢)

 

주의투약(朱衣投藥)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의 어머니 진씨(陳氏)가 막 임신하였을 때 꿈 속에서 붉은 옷을 입은 신인(神人)이 나타나 약 한 알을 주자 이를 삼키고서 꿈을 깼는데, 깬 뒤에도 입 속에는 향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으며, 태어날 때 붉은 광채가 온 방 안에 가득하였다고 한다. 명사(明史)卷一

 

주이불비(周而不比)

두루 포용하고 편당하지 않는다. 논어(論語)』 「위정(爲政)

 

주이존(朱彝尊)

청대의 시문가. 자는 석창(錫鬯), 호는 죽타(竹坨). 당시 문단을 대표하였다.

 

주이학(舟移壑)

임금의 죽음을 애석히 여겨 비유한 것이다.

 

주익공(周益公)

() 나라 학자 주필대(周必大)를 말한다.

 

주인옹(主人翁)

사람의 몸을 총지휘하는 주인 어른이라는 뜻이다.

주인공과 같은 말이다.

 

주일삼접(晝日三接)

하루에 3번이나 접견할 정도로 임금의 극진한 총애를 받는 것을 표현한 말로, 주역(周易)진괘(晉卦) 단사(彖辭)에 나온다.

 

주자(朱紫)

주는 정색(正色)으로 정(), 자는 간색(間色)으로 사()를 표현한다. 맹자(孟子)』 「진심(盡心)자가 주를 혼동시키는 것을 미워한다[惡紫, 恐其亂朱也].” 하였다.

 

주자(冑子)

주자는 맏아들을 말한다.

옛날에는 천자(天子)ㆍ경()ㆍ대부(大夫)의 적자(適子)를 다 주자(冑子)라 했는데, 뒤에는 국자학생(國子學生)의 범칭으로 쓰이게 되었다.

 

주작(朱雀)

남방에 있는 일곱 별로서 여름에 해당하는데, 여름은 불 기운이 성하고 또 불은 붉은 것이다.

육조(六朝)의 도성인 건강(建康)의 남쪽 성문 이름으로, 도성을 가리킨다.

 

주작항(朱雀桁)

도성의 화려한 저택을 말한다. 주작항은 동진(東晉)의 도성 건강(建康)의 남쪽 성문인 주작문(朱雀門) 밖의 부교(浮橋)를 말하는데, 이 근처에 왕도(王導)와 사안(謝安) 등 호귀(豪貴)한 이들의 저택이 많았다.

 

주잠(州箴)

() 나라 때 양웅(揚雄)이 중국 구주(九州) 지방의 특성을 술()하여 각각 잠()을 지었다.

 

주잠원출초현양(酒箴元出草玄揚)

양웅(揚雄)이 지은 주잠(酒箴)의 내용이 한서(漢書)93 진준전(陳遵傳)에 나오는데, 소식(蘇軾)의 시에도 忽然載酒從陋巷 爲愛揚雄作酒箴이라는 표현이 있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20 陳季常自岐亭見訪 …… 戲作陳孟公之詩

 

주장산(晝長山)

남한산(南漢山)의 고호인데, 신라 문무왕(文武王)이 백제를 내쫓고 이곳에 맨 처음 산성(山城)을 쌓았던 것이다.

 

주장함하양잠려(珠藏頷下養潛驪)

숨어서 덕을 닦으며 때를 기다림을 비유한 말이다. 흑룡(黑龍)은 턱 밑에 여의주(如意珠)를 기른다 한다. 장자(莊子)』 「열어구(列御寇)천금의 여의주는 반드시 깊은 못 긴 여룡(驪龍)의 턱 밑에 있다.” 하였다.

 

주저(躊躇)

머뭇대며 떠나지 않는 모양.

 

주저(洲渚)

물섬가.

 

주저(朱邸)

주문(朱門)과 같다. 대문을 붉게 칠한 집으로, 황족이나 귀관(貴官)의 저택을 가리킨다. () 나라 때 그 집의 대문을 주홍색으로 칠했던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주전(廚傳)

음식(飮食)과 역사(驛舍)를 이르는데, 한 선제(漢宣帝) 원강(元康) 2년의 조서(詔書)간혹 지방 관리가 제멋대로 요역(繇役)을 일으켜 주전을 잘 꾸며서 과객(過客)들을 후히 대접하고 있는데, 이것은 직무를 초월하고 국법을 벗어나서 명예를 취하는 일이다.”고 경계한 데서 온 말이다. 한서(漢書)卷八

 

주전경명(周典冏命)

경명(冏命)서경(書經)』 『주서(周書)의 편명으로, () 나라 목왕(穆王)이 백경(伯冏)을 태복정(太僕正)에 임명하면서 내린 조서(詔書)이다.

 

주전학(州錢鶴)

() 나라 은운(殷芸)이 지은 소설에 나온 이야기로, 함께 어울려 노는 자들이 각자 소원을 말하기로 했는데, 한 사람은 양주(揚州) 자사가 되고 싶다 하고, 한 사람은 돈이 많으면 좋겠다 하고, 한 사람은 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고 싶다고 하자, 다른 사람이 나는 허리에 돈 10만 냥을 차고 학을 타고 양주로 가고 싶다.” 하였다 한다. 인간 욕심의 지나침과 그것을 다 채울 수는 없음을 말한다.

 

주접(周蝶)

옛날에 장주(莊周)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는데, 자신이 장주인 줄도 알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얼마 뒤에 깨어나니 바로 장주였다. 이에 장주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호접이 꿈속에서 장주가 된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

 

주접접위주(周蝶蝶爲周)

옛날에 장주(莊周)가 꿈 속에서 나비가 되었는데, 자신이 장주인 줄도 알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얼마 뒤에 깨어나니 바로 장주였다. 이에 장주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 속에서 장주가 된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

 

주정(周程)

()의 성리학자(性理學者) 주돈이(周敦頤)ㆍ정호(程顥)ㆍ정이(程顥)를 말한다.

 

주정(主靜)

육구연(陸九淵) 자정(子靜)의 주정설을 말한다.

 

주정(周鼎)

전국(傳國)의 상징인 구정(九鼎). ()가 수토(水土)를 평정한 후 구주(九州)에서 바쳐 온 쇠붙이를 한 데 모아 주조한 하나의 큰 솥으로 삼대(三代)시절 그것을 전국의 보물로 삼았었는데, 무왕(武王)이 상()나라와 싸워 이긴 후 그 솥을 낙읍(洛邑)으로 옮겨 왔기 때문에 주 나라 솥(周鼎)이 된 것이다. 사기(史記) 12 효문본기(孝文本紀)/ 춘추 시대 초()나라 장왕(莊王)이 주나라 천왕(天王)의 자리에 뜻이 있었는데, 육혼(陸渾)의 부족을 공격하는 길에 주나라 국경에 이르러, 정왕(定王)의 사신에게 주정(周鼎)의 크기와 무게를 물어보았던 고사가 전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宣公 3 / 인용: 檄黃巢書(최치원)

 

주정공사(周情孔思)

주공(周公)의 뜻과 공자(孔子)의 사상이란 말로, 성현의 고상한 정조(情操)를 말한다.

 

주정상물(鑄鼎象物)

고대(古代)의 하우씨(夏禹氏)구주(九州)의 금붙이를 수합하여 구정(九鼎)을 만들고서 거기에다 온갖 물건을 상징한 것을 이른다. 좌전(左傳)선공(宣公) 3년 조(), “夏禹之方有德也 鑄鼎 象百物而爲之備 使民知神姦이라 하였다.

 

주제(主第)

공주의 저택. 보통 왕가(王家)의 귀족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제(朱提)

질이 좋은 은()의 이명(異名)이다. 좋은 은이 주제현(朱提縣)에서 나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주조(朱鳥)

남방(南方)을 맡은 신인 적제(赤帝)를 말한다.

이십팔 수(二十八宿) 가운데 남방(南方)의 일곱 별. 즉 정()ㆍ귀()ㆍ유()ㆍ성()ㆍ장()ㆍ익()ㆍ진()의 총칭으로 남방을 지키는 신()이다. 일명 주작(朱雀).

 

주조(鴸鳥)

새 이름이다. 솔개처럼 생긴 새로 얼굴이 사람 모양이고 발도 사람 손같이 생겼다고 한다. 산해경(山海經)』 「남산경(南山經)

 

주졸지(走卒知)

소동파(蘇東坡)가 사마광(司馬光)을 두고 지은 시에, “심부름하는 군사도 사마(司馬)를 알고, 아동들도 군실(君實 광의 자)을 외운다.” 하였다.

 

주주(朱朱)

닭을 부르는 소리, 또는 닭의 별명이다. 풍속통(風俗通)닭을 부를 때 주주하는데, 속설(俗說)옛날 주공(朱公)이란 사람이 변하여 닭이 되었기 때문에 주주하고 부른다.’ 한다.” 하였다.

 

주주(姝姝)

아름다움, 순순히 뒤따르는 모양, 유약한 모양

 

주주함우(周周銜羽)

주주(周周)는 새의 이름인데, 이 새는 머리가 무겁기 때문에 하수(河水)에서 물을 마시려면 반드시 넘어지므로, 언제나 깃을 입에 물고 물을 마신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죽타(朱竹垞)

죽타(竹垞)는 청초(淸初)의 학자 주이준(朱彝尊)의 호이다. 경사(經史)를 널리 읽어 통하였고 고문(古文)과 시사(詩詞)에 능하여, 신성(新城)의 왕사진(王士禛)과 함께 남북(南北)의 두 대가(大家)로 칭해졌다. 저서로는 폭서정집(曝書亭集)ㆍ경의고(經義考)ㆍ사종(詞宗) 등이 있다. 청사고(淸史稿)卷四百八十九

 

주준(廚俊)

팔주(八廚)와 팔준(八俊)으로 후한 때의 명사들을 말한다. 걸출하고 의협심이 강한 사람을 가리킨다.

 

주중선(酒中仙)

주성(酒聖)으로 일컬어지는 이태백(李太白)을 가리킨다. 두보(杜甫)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여양(汝陽王 李璡)은 서 말 술 마시고야 조정에 나갔는데 주천현령에 옮겨지지 않은 걸 한하였네 종지(崔宗之)는 소쇄한 기상에 아름다운 소년인데 술잔 들고 백안으로 푸른 하늘 바라보았지 이백(李白)은 술 한 말에 시 백편을 쓰면서 장안의 시장 술집에서 잠을 자기도 하는데 천자가 불러도 배에 오르지 못하고 신은 바로 술 가운데 신선이라 자칭을 하네[汝陽三斗始朝天 恨不移封向酒泉 宗之瀟灑美少年 擧觴白眼望靑天 李白一斗詩百篇 長安市上酒家眠 天子呼來不上船 自稱臣是酒中仙]” 한 데서 온 말이다. 두소릉집(杜少陵集)卷二

 

주중인지개적(舟中人之皆敵)

사기(史記)65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무후(武侯)가 서하(西河)에서 배를 타고 내려가다가 중간에서 오기(吳起)를 돌아보면서 이르기를, ‘아름답구나, 산하의 튼튼함이여. 이는 우리 위() 나라의 보배이다[美哉乎山河之固, 此魏國之寶也].’ 하니, 오기가 대답하기를, ‘나라가 튼튼한 것은 덕()에 있지 험함에 있지 않습니다. 임금께서 만약 덕을 닦지 않는다면 이 배 안에 탄 사람이 모두 적국 사람일 것입니다[在德不在險. 若君不修德, 舟中之人盡爲敵國也].’ 하였다.” 하였다.

 

주즙(舟楫)

배와 노로서 세상을 건지는 재상과 대신을 비유한 것이다. 서경(書經)』 「열명(說命)큰 냇물을 건널 때는 너로써 주즙을 삼겠다[若濟巨川 用汝作舟楫]” 하였다.

 

주즙재(舟楫才)

()나라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을 정승으로 삼으면, “큰 내를 건넌다면 너로써 배와 돛대를 삼으리라.” 하였다.

 

주지육림(酒池肉林)

술로 못()을 이루고 고기로 숲을 이룬다는 뜻으로, 극히 호사스럽고 방탕한 주연(酒宴)을 일컫는 고사성어, 걸왕, 주왕에서 유래.

 

주진(朱陳)

옛날 중국 서주(徐州)의 주진촌에는 주씨와 진씨만이 살면서 대대로 통혼(通婚)을 하며 서로 의좋게 살았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진가취(朱陳嫁娶)

옛날 서주(徐州)의 주진촌(朱陳村)에는 주씨와 진씨(陳氏)만이 살면서 대대로 자기들끼리 혼인을 하였던 데서 온 말이다.

 

주진지호(朱陳之好)

주씨(朱氏)와 진씨(陳氏) 두 성만 살아서 마을 이름이 되었는데, 이들은 대대로 서로 혼인했다 한다. 한편 무릉도원에도 진씨와 주씨 두 성이 피난 가서 살았다고 하는데, 두 집안의 연인(聯姻)의 정분을 주진지호(朱陳之好)라 한다.

 

주진촌(朱陳村)

주씨 진씨는 당 나라 때 서주(徐州) 풍현(豐縣)의 한 마을에 대대로 통혼(通婚)을 하며 함께 살았던 두 종족으로, 그들이 사는 마을을 주진촌(朱陳村)이라 하였다. 장경집(長慶集)卷十 주진촌(朱陳村)

 

주진풍물(朱陳風物)

당 나라 백락천(白樂天)이 주진촌(朱陳村)을 두고 지은 시()가 있는데, ‘깊숙한 산중에서 세상과 통하지 않고 안락하게 살아가는 마을이 있는데, 그 촌에는 주씨(朱氏)와 진씨(陳氏) 두 성만이 살고 있어 대대로 서로 혼인하고 살아간다.’ 하였다.

 

주진혼(朱陳婚)

두 성씨가 계속해서 혼인하는 것. 중국 강소성(江蘇省) 풍현(豐縣) 동남쪽에 주진(朱陳)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은 주()와 진() 두 성만이 살고 있으면서 계속 자기들끼리만 혼인을 하였다고 한다.

 

주착(鑄錯)

착오를 저지른다는 말이다.

 

주창(周昌)

한 고조의 공신으로 고조가 태자를 폐하지 못하게 어사대부(御史大夫)로서 간쟁하였다.

 

주처(周妻)

남제(南齊) 때 노()ㆍ불()의 학문에 밝았던 고사(高士) 주옹(周顒)의 아내를 가리킨다. 주옹은 자신이 도교와 불교를 좋아하였지만 끝내 아내를 거느리고 살았다는 뜻이다.

 

주천(酒泉)

샘물 맛이 술맛과 같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 나라 때 그 샘이 있는 고을을 주천군(酒泉郡)이라 하였다. 한서(漢書)地理志 下

 

주천(朱川)

시내 이름이다.

 

주천리(珠千履)

전국시대(戰國時代) 춘신군(春申君)의 문객들 중에 상객(上客)들은 모두 구슬로 장식한 신을 신었다.

 

주천초산수(周遷楚山隧)

() 나라 문왕(文王)의 아버지 왕계(王季)의 무덤을 옮긴 것을 말한다. 와수(渦水) 가에 있던 왕계의 무덤이 홍수로 인해 관() 머리가 보이자, 신하와 백성들을 보고 싶어하는 뜻이라고 여겨 문왕이 옮겨왔던 고사를 말한다. 여씨춘추(呂氏春秋)21 개춘(開春)

 

주체(湊砌)

()는 취()의 뜻이고 체()는 첩()의 뜻으로 첩첩이 모인 것을 이른다.

 

주초(朱艸)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상서로운 풀.

 

주초(朱草)

서초(瑞草)의 이름인데, 마치 명협(蓂莢)과 같이 매월 초하루부터 15일까지는 매일 한 잎씩 나오고, 16일부터 그믐까지는 매일 한 잎씩 떨어졌다고 한다.

지초(芝草)인데, 그것을 영초(靈草)ㆍ서초(瑞草)라고도 한다.

 

주초림(朱艸林)

나양봉을 말한다.

 

주촉(晝燭)

대낮에 촛불을 켜도 그 불빛이 희미하듯 인생의 의미가 전혀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주충어(註蟲魚)

미세한 동식물의 주해(註解)를 낸다는 뜻으로 번쇄(繁琑)한 훈고(訓詁)의 작업을 가리킨다. 참고로 한유(韓愈)의 시 독황보식공안원지시서기후(讀皇甫湜公安園池詩書其後)’爾雅注蟲魚 定非磊落人이라는 표현이 있다.

 

주충어(註蟲魚)

벌레 이름이나 새 이름 같은 자잘구레한 것을 주석한다는 뜻이다. 본디 이아(爾雅)에서 충어에 대하여 주석한 것을 이른 말인데, 전하여 학문을 연구하고 고증하는 일을 비유한 것이다.

 

주취(珠翠)

구슬과 비취(翡翠). 이것은 모두 여인(女人)의 발식(髮飾)에 쓰이는 것이기 때문에 전하여 여인의 머리 꾸미개를 말하는데, 여인을 가리키기도 한다.

 

주취유(珠翠襦)

비취옥으로 장식한 단의(短衣)를 말한다.

 

주타(珠唾)

아름다운 시구(詩句) 등을 형용한 말이다. 진서(晋書), “기침과 침은 주옥(珠玉)을 이룬다.”는 말이 있다. 말이나 글이 입만 떼면 아름다운 주옥이 된다는 뜻이다.

 

주태(珠胎)

합중(蛤中)에 들어 있는 진주를 가리킨 말로, 전하여 임신(妊娠)의 뜻으로 쓰인다.

 

주태사(周太史)

천문(天文)을 맡은 태사관(太史官)이 역서(曆書)를 만들어 올려서 백성에게 시절을 알리게 한다.

 

주태상(周太常)

후한(後漢) 사람 주택(周澤)으로 태상은 벼슬이다.

 

주택(周澤)

후한(後漢) 사람. 어려서 공양춘추(公羊春秋)와 엄씨춘추(嚴氏春秋)를 익혔다. 벼슬이 태상(太常)이 되자 직언(直言)을 잘하고 종묘(宗廟)를 극진히 공경하였다.

 

주토(州土)

향읍을 말한다.

 

주팔(周八)

옛날 주목왕(周穆王)이 사랑하던 여덟 마리의 준마(駿馬)를 이른 말이다.

 

주평만(朱泙漫)

() 나라 사람. 천금 가산을 탕진해가면서 지리익(支離益)에게서 도룡(屠龍) 솜씨를 배워 3년 만에 기법을 다 익혔으나 결국 그 기술을 써먹을 곳이 없었음. 장자(莊子)』 「열어구(列禦寇)

 

주평학재룡(朱泙學宰龍)

쓸데없는 기예를 배운 것을 비유한 말이다. 옛날 주평만(朱泙漫)이란 사람이 천금의 가산(家産)을 기울여 지리익(支離益)이란 사람에게서 용() 잡는 기술을 배운 결과, 3년 만에 그 기술을 습득하였으나 그 기술을 쓸 데가 없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장자(莊子)』 「열어구(列禦寇)

 

주포(珠浦)

구슬이 생산되던 합포(合浦)를 가리킨 말로, 후한 때 맹상(孟嘗)이 합포 태수(合浦太守)로 나가서, 앞서 그 고을에서 생산되던 진주(眞珠)가 탐오한 전 태수들이 마구 캐냄으로써 모두 다른 고을로 옮겨가 버려서 백성들이 모두 생업을 잃게 되었던 폐단을 이내 바로잡음으로써 그 옮겨갔던 진주가 되돌아와 백성들이 다시 잘 살게 되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필(周弼)

송 나라 시인. 자는 백강(伯强). 시화에 능했으며, 저서에 문양단평시준(汶陽端平詩雋)ㆍ삼체당시(三體唐詩)가 있다.

 

주필간시재(籌筆幹時材)

붓을 잡고 어려운 시대의 계책을 세우는 등 뛰어난 경륜(經綸)을 선보였다는 말이다.

 

주하사(柱下史)

노자(老子)를 가리킨다. 노자는 일찍이 주() 나라의 주하사 벼슬을 하다가 주 나라가 쇠망함을 보고 은둔하였는데, 공자가 그를 만나고는 용과 같다[其猶龍邪].” 칭찬하였다. 사기(史記)卷六十三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주하수(柱下叟)

주하사(柱下史) 늙은이란 곧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주하사 벼슬을 지낸 노자(老子)를 말한다.

 

주해추(朱亥椎)

주해(朱亥)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의 용사(勇士)로서 공자(公子) 무기(無忌)를 위해, 공자의 말을 듣지 않던 위장(魏將) 진비(晉鄙)40근 되는 철퇴로 격살하고 그의 군대를 탈취하여 마침내 진() 나라 군대를 물리치고 조() 나라를 구하는 데 크게 기여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사기(史記)卷七十七 위공자열전(魏公子列傳)

 

주헌(朱軒)

붉은 칠을 한 수레라는 뜻으로, 고관대작이 탔다고 하여 높은 벼슬을 비유한다. / 인용: 有客行(성해응)

 

주현(朱弦)

붉은 색의 현(). 또는 물에 빨아서 부드럽게 된 주사(朱絲)로 만든 현. 예기(禮記)』 「악기(樂記), “청묘를 노래할 때의 큰 거문고는 붉은 연사를 드린 줄에다 밑에 구멍을 드문드문 뚫는다[淸廟之瑟 朱弦而疏越]”하였다. 왕업을 도울 기량이 있는 훌륭한 신하를 말한다. / 인용: 端川節婦詩(김만중)

 

주현백설(朱絃白雪)

주현(朱絃)은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을 가리키고, 백설은 양춘곡(陽春曲)과 함께 따라 부르기 힘든 고아(高雅)한 가곡을 말한다. 예기(禮記)악기(樂記)종묘의 제사에 청묘에 시가 연주될 때 그 악기의 현은 붉은색이요 바닥에 실 구멍이 있어 기()를 서로 통하게 한다[淸廟之瑟 朱絃而疏越].”라는 말이 나온다.

 

주현성(酒賢聖)

청주(淸酒)를 성인(聖人)이라 하고, 탁주(濁酒)를 현인(賢人)이라고 하며,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서리전(徐摛傳)

 

주현위군절(朱絃爲君絶)

친구를 만날 수 없음을 탄식한 말이다. 주현(朱絃)은 거문고 줄을 말하는데, 옛날 백아(伯牙)가 자기가 타는 거문고 소리를 잘 알아주던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죽자, 자기의 거문고 소리를 들을 만한 사람이 없다 하여 거문고 줄을 끊어버리고 다시 타지 않았다 한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주협홀(拄頰笏)

() 나라 때 왕휘지(王徽之)가 환충(桓沖)의 기병 참군(騎兵參軍)으로 있을 적에 환충이 왕휘지에게 요즘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느냐고 묻자, 그는 애당초 대답은 하지 않고 곧바로 산을 쳐다보면서 홀()로 뺨을 고이면서 말하기를, “서산(西山)에 아침이 되면 상쾌한 기운이 있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진서(晉書)卷八十

 

주호(珠戶)

진주(眞珠)를 채취하는 백성들을 말한다.

 

주호(酒戶)

마시고 견디어 낼 정도의 술의 양을 말한다. / 인용: 柳居士(홍신유)

 

주호은악(周灝殷噩)

법언(法言)』 「문신(問神)상서는 넓고 평탄하며, 주서는 명백하고 곧다[商書爾 周書爾].” 한 데서 온 말이다.

 

주홀(拄笏)

() 나라 왕휘지(王徽之)가 환충(桓沖)의 참군(參軍)으로 있을 때 환충이 그에게 요즘 무슨 직무를 보았느냐고 묻자, ()을 턱에 괴고 말하기를 서산(西山)에 아침이 찾아오면 상쾌한 기운이 감돈다.”고 대답하였다는 데서 나온 말로 관직에 있는 몸으로서 여유롭고 청아한 정취가 있는 것을 말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간오(簡傲)

청고(淸高)한 관리의 기풍을 말한다. 진서(晉書)왕희지전(王徽之傳)환충(桓沖)이 왕휘지에게 경이 오래 부중(府中)에 있더니 요즈음에는 일을 잘한다.’하니 왕휘지가 처음에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올려다보기만 하다가 홀()로 턱을 괴며 아침에 서산(西山)에서 오니 시원한 기운이 있더라.’고 하였다.” 하였으니, 이는 관사(官事)에 구애되지 않고 자연을 즐길 줄 아는 청고한 관리의 한가한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주홀간서산(拄笏看西山)

() 나라 왕자유(王子猷)가 환온(桓溫)의 참군(參軍)이 되었을 때, 환온이 경은 부()에 오래도록 있었으니 일을 잘 처리할 줄로 믿는다.”고 하니, 자유가 업무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판(手板) 즉 홀()을 턱에 괴고는 서산의 아침 기운이 삽상하다[西山朝來 致有爽氣].”고 응대한 고사가 있다. 세설신어(世說新語)』 「간오(簡傲)

 

주홀의(柱笏意)

() 나라 때 왕휘지(王徽之)는 성품이 몹시 호방하여 구애되는 바가 없었다. 일찍이 거기장군(車騎將軍) 환충(桓沖)의 참군(參軍)이 되었을 적에 정무를 처리하지 않고 있었는데, 환충이 이에 대해 말하자, 왕휘지는 그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은 채 두 눈을 들어 먼 곳을 바라보다가, 턱에 홀을 괴고 말하기를, “서산(西山)에 새벽이 오니 기운이 맑고 상쾌하다.” 하였다. 세설신어(世說新語)』 「간오(簡傲)

 

주홍구석(呪虹驅石)

무지개를 부르고 돌을 몰아온다는 뜻이다.

 

주홍양(周弘讓)

() 나라 사람. 후경(侯景)에게 벼슬하였다.

 

주화(疇華)

남방의 수택(水澤) 이른다.

 

주화모록지(朱華冒綠池)

조식의 공연시(公宴詩)가을 난초는 긴 비탈 뒤덮었고, 붉은 꽃은 초록 못 위를 떠다니네[秋蘭被長坂 朱華冒綠池].”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붉은 꽃 즉 주화는 바로 연꽃을 가리킨다. 일설에 의하면, 조식이 형인 조비에게 화를 당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평범한 표현을 써서 이 시를 지었다고도 한다. 문선(文選)20

 

주환(珠還)

청렴한 데 대한 반응이 있다는 말이다. 후한서(後漢書)순이(循吏) 맹상전(孟嘗傳)합포(合浦)의 바다에는 구슬이 많았는데 태수(太守)가 너무 탐욕이 많으므로 이웃 고을 교지(交趾)로 옮겨 갔다. 그 후 맹상(孟嘗)이 부임해서 폐단을 없애니 구슬이 다시 돌아왔다.” 하였다.

 

주환용호(珠還龍戶)

용호(龍戶)는 곧 고기잡이를 업으로 하는 어민(漁民)들의 집을 이른다. 후한(後漢) 때 맹상(孟嘗)이 합포태수(合浦太守)가 되었는데, 합포는 본디 곡식이 나지 않아 백성들이 바다에서 주보(珠寶)를 캐서 생활을 영위했던 바, 앞서의 태수들이 모두 탐오한 까닭으로 그 구슬들이 합포를 떠나 이웃 교지(交趾)의 군계(郡界)로 옮겨 가버림으로써 백성들이 모두 굶어죽는 지경에 이르렀다가, 맹상이 태수가 되고부터는 이전의 폐단을 개혁하고 선정을 베풀자, 그 구슬들이 합포로 다시 돌아왔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즉 지방관의 훌륭한 정사를 칭찬한 말이다. 후한서(後漢書)卷七十六

 

주회(晝晦)

낮에도 어둡다는 뜻이다.

 

주회암(朱晦菴)

회암(晦菴)은 주희(朱熹)의 호이다. 본래는 강학(講學)하던 서실 이른다.

 

주후(肘後)

의서(醫書)의 이름인 주후방(肘後方)의 약칭으로, 명의(名醫)인 편작(扁鵲)의 주후방 3권과, 갈홍(葛洪)의 주후방 6, 유항(劉貥)의 주후방 등이 있다.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 당서(唐書)』 「예문지(藝文志)

 

주후(柱後)

법관(法官)이 쓰는 주후혜문관(柱後惠文冠)의 약칭이다.

 

주후(肘後)

()나라의 갈홍(葛洪)이 찬한 의서(醫書)인 주후비급방(肘後備急方)으로, 권질(卷帙)이 많지 않아서 겨드랑이에 끼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간편하게 가지고 다닐 수 있어서 이런 이름으로 불리워졌다. 후대에는 간편하게 가지고 다니는 의서나 몸을 보양하는 약을 지칭하는 뜻으로 쓰였다.

 

주후결(肘後訣)

() 나라의 갈홍(葛洪)이 찬한 의서(醫書)인 주후비급방(肘後備急方)으로, 권질(卷帙)이 많지 않아서 간편하게 가지고 다닐 수 있어서 이런 이름으로 불리워졌다. 후대에는 간편하게 가지고 다니는 의서나 몸을 보양하는 약을 지칭하는 뜻으로 쓰였다.

 

주후관(柱後冠)

옛날에 법관이 쓰던 주후혜문관(柱後惠文冠)의 준말로, 즉 법관을 말한다. 보통 해치관(獬豸冠)으로 많이 쓴다.

 

주후방(肘後方)

의서(醫書)의 이른다. 수서(隋書)경적지(經籍志)에는 편작(扁鵲)의 주후방 권과 갈홍(葛洪)의 주후방 6권을 실었고, 당서(唐書)』 「예문지(藝文志)에는 유황(劉貺)의 주후방 3권을 기록하였는데, 모두 신선이 되는 비방(祕方)이라 한다.

 

주후방(肘後方)

주후비급방(肘後備急方)의 준말로, () 나라 갈홍(葛洪)이 지은 의서(醫書)이다.

 

주후혜문(柱後惠文)

법관(法官)과 무관(武官)이 쓰는 모자이다. 장창(張敞)의 동생 장무(張武)가 양국(梁國)의 상()으로 나가면서 양국은 대도(大都)로서 이민(吏民)이 조폐(凋敝)한 상태이니, 마땅히 주후혜문(柱後惠文)으로 탄치(彈治)해야 한다.”고 말하자, 장창이 이를 듣고서 웃으며 안심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한서(漢書)』 「장창전(張敞傳)

 

주후혜문관(柱後惠文冠)

옛날 법관(法官)이 쓰던 관이다.

 

주휘(麈麾)

일명 주미(麈尾)라고도 하는데, 가늘고 기다란 나무 끝에 사슴의 꼬리털을 달아 부채 비슷하게 만든 것. 처음에는 먼지떨이ㆍ파리채로 썼으나 뒤에는 불도(佛徒)들의 위의를 정돈하는 기구가 되었다.

 

주휘(朱暉)

후한 명제(後漢明帝) 때 남양(南陽) 원현(宛縣) 사람으로 자는 문계(文季)이다. 임회 태수(臨淮太守)로 있으면서 정사를 잘하여 그곳 관리와 백성들이 존경하고 사랑한 나머지 노래를 지어 부르기를 강직으로 이룬 사람 남양 땅의 주계로세, 관리 위엄 존경하고 백성 은혜 기린다네[彊直自遂 南陽朱季 吏畏其威 人懷其惠]”하였다 한다. 주계라고 한 것은 그의 자가 문계이기 때문이다. 후한서(後漢書)卷四十三 주휘전(朱暉傳)

 

주흘산(主屹山)

문경(聞慶) 북쪽에 있는 진산(鎭山)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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