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2/07/01 (26)
건빵이랑 놀자
그대들로 행복했던 이 순간 02년 6월 25일(화) 맑음 오늘 대망의 4강 경기가 전차군단인 ‘독일’과 있다. 오늘은 축복이나 받은 날처럼 장마임에도 쾌창하고 맑고도 선선한 날씨다. 좋은 결과가 나올 것만 같아 기대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과연 우린 요코하마로 향할 수 있을까? 과연 이런 기대가 오늘은 무너지고 말 것인가?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기대는 꺾이고 말았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너무 아쉽고 덩달아 울적하며 분하다. 너무도 대등한 경기를 펼쳤기에 그 아쉬움은 더욱 큰 것이며 결승 문턱에서 떨어져서 좀 찝찝하기만 한다. 초반엔 한국팀이 밀어 붙였기에 헤딩슛에 강한 독일이 헤딩슛의 기회를 차단당하고 있었다. 그건 당연히 한국팀의 기회였다. 하지만 그것 또한 생각처럼 쉽게 되진 않았다. 그렇게 아쉬운..
승부차기까지 간 격전의 스페인전 02년 6월 22일(토) 역사적인 BIG 게임이 있던 토요일이다. 오후 3시 반에 8강전이 진행되기에 벌써부터 기대 반 두려움 반인 상황이다. 4강 진출을 위한 한국과 스페인의 숙명적인 경기가 무등벌 빛고을에서 열리는 것이다. 벌써부터 붉은 물결들은 여기저기 일렁이기 시작한다. 대한민국 5천만의 힘! 그건 절대적인 우위였으며 절대적인 승리의 열쇠였다. 아무래도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그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건 뭐니 뭐니 해도 혼자라는 고독감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자기에게 천만금이 있고 그에 따른 엄청난 힘이 있을지라도 자기 혼자라는 걸 알게 되면 그 삶은 무의미로 치닫게 된다. 그런 현실에선 결국 자기의 장점은 덮어두고 결점만을 확대시켜 자기 비하로 나가게 된..
ATT 대항군 중 두 가지 어려움 02년 6월 20일(목) 3BN ATT에 대항군을 우리 중대가 맡게 되었는데 분대장님의 휴가와 부분대장님은 분반 때문에 내가 분대장 입장으로 훈련을 뛰어야 한단다. 처음으로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니 부담이 되기만 한다. 그런데 ATT는 별로 힘들지 않았고 그만큼 후딱 지나갔다. 단지 화나는 게 있다면, 월요일 저녁에 밤을 새며 방어를 하고서 오는 도중에 공포탄 탄피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그에 따라 밤을 꼬박 새워가며 찾았는데 그렇게 지칠 대로 지친 우리들 따위는 상관도 없이 더 가혹한 명령이 아무렇지도 않게 떨어진 것이다. 그건 바로 동막리 사격장에 서부터 중대까지 3시간 거리를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그 짜증이 속에서부터 치밀어 올라왔고 비몽사몽인 상태..
대역전극을 연출한 이탈리아전 02년 6월 18일(화) 맑음 대망의 역사가 대전에서 이루어진 날이다. 16강에 진출한 일본은 터키에게 져서 탈락했고 이제 한국 경기만이 남아 있다. 하지만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그 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오늘 3BN ATT 때문에 우리 BN에 와서 축구 경기를 보느라 우리 BN원들은 취사장에 모여 축구 관전을 하라는 것이었고 그에 따라 통배식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투덜투덜대며 통배식을 가야만 했다. 그렇게 힘들게 갔다가 도착했는데, 갑자기 행보관님이 불러 이유도 없이 얼차려를 주는 바람에 땀을 뻘뻘 흘리며 오리걸음으로 두 바퀴를 돌아야 했다. 이유인즉은 빠르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밥을 먹고 온갖 짜증을 느끼며 경기 관람..
포루투갈과의 치열한 싸움 02년 6월 14일(금) 맑음 정신집체교육을 잘 마무리 하고 우린 분대별로 자연스럽게 침상에 모여 앉았다. 중요한 경기가 있는 만큼 우리 또한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다. 드디어 16강이 되기 위한 중요한 경기로 포루투갈 전이 있는 날이다. 인천경기장엔 이미 붉은 악마들이 엄청나게 운집해 있었다. 초반전 우리가 전략적으로 불리한 걸 알지만, 그래도 지금껏 잘했으니 더욱 잘하리라 보는 것이다. 전반적 우리가 너무 유리했다. 먼저 폴란드가 예상외의 결과로 미국을 2:0으로 누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더해 조금 더 경기하다가 포루투갈의 선수 한 명이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을 하므로 완전히 한국팀의 페이스가 되었다. 그래서 월등한 경기 주도율로 경기장을 휘젓고 다니긴 했지만 포루투갈의 ..
청성의 자부심 02년 6월 14일(금) 맑음 정신집체교육 D-1일의 날이다. 오늘 오후엔 ‘청성의 자부심’이란 이름 아래 역사스페셜 ‘북한군은 왜 3일간 서울에서 머물렀나?’라는 걸 보게 되었다. 한마디로 우리 6사단이 얼마나 한국전쟁 당시에 밀물처럼 내려오던 북한군의 다리를 묶으며 애썼는지를 보여주는 프로였다. 북한군이 3일간 지체하므로 결국 한국전쟁의 양상이 바뀔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들이 진격하지 못한 이유는 첫째 서울만 공격하려 했다는 것과 둘째 한강대교의 파괴로 그들의 도하(渡河)는 지연됐다는 것 두 가지로 나뉜다. 하지만 첫째의 경우, 서울만 장악하면 이남에 있던 빨치산 세력들이 서로 봉기하여 자연히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는 것으로 빨치산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그 이면에 두는 것이다..
미국전에서 아쉽게 비기다 02년 6월 10일(월) 비옴 오랫동안 기다렸던 미국과의 경기가 있는 날이다. 첫 경기에서 1승의 그 진지하고도 열광적인 기쁨이 아직도 채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경기가 더욱 기대되는 것이다. 이번 주 내내 정신집체교육으로 인해 시간이 많이 남았고 당연히 3시에 하는 월드컵 시청까지 일과에 포함되어 있었기에 못 볼 걸 걱정하지 않고 오후를 기다렸다. 교육 훈련이 끝나자마자 내무실에 다 함께 앉아 축구 경기를 관람하게 되었다. 저번 축구 경기는 근무 때문에 제대로 못 봤기에 이번 경기에 더 많은 기대가 쏠리던 차였는데, 이렇게 앉아서 보게 되니 왜 이리 행복하던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국팀이 주도권을 가지고 축구 경기를 펼쳐 갔지만, 초반에 황선홍 선수가 눈밑 부상을 입어 피..
2002 월드컵 개최와 감격의 폴란드전 첫 승리 02년 6월 4일(화) 맑음 오랜 염원의 월드컵이 드디어 우리 나라와 일본 공동개최로 시작되었다. 5월 31일에 화려한 개막 행사에 이어 개막경기를 ‘세네갈 : 프랑스’가 했다. 그 결과는 프랑스가 이길 줄 알았는데 예상에서 빗나가며 세네갈이 이겼다. 한국, 나의 조국, 내가 생활하는 이곳에서 그런 역사적인 각본 없는 드라마가 펼쳐진다는 게 무척이나 감명스럽게 느껴지긴 한다. 그래도 그런 월드컵의 열기가 어느 정도는 차단되는 군대에 있기에 좀 답답할 수밖에 없고 애석하지 않으려야 애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런 역사의 순간을 군대라고 해서 나 몰라라 할 것인가?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No다! 오늘은 한국의 첫 경기인 폴란드전이 있었다. 월드컵 전에 ..
스스로 벼랑으로 몰며 신경적인 내가 되다 02년 5월 24일(금) 맑음 전투지휘검열의 마지막 날이다. 이번 전투지휘검열은 어땠냐고? 한마디로 월을 때리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지뢰지대, 철조망 설치 훈련도 안 했고, 화학전 하의 준비태세도 안 했을뿐더러, 열심히 그 임무를 부여해주었던 전투력 복원 훈련까지 19R 2BN으로 넘어감에 따라 우린 별로 하는 일 없이 모처럼만에 흠뻑 자유를 만끽하며 지냈다. 더더욱이 오대기이긴 했는데 훈련 기간과 겹친 덕에 며칠동안은 상황조차 걸리지 않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역시 모든 훈련은 훈련기간보다 준비기간이 빡센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련 기간 동안은 간부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짐에 따라 이래저래 깨지는 상황들이 많다 보니, 우리들도 덩달아 ..
짜증 나는 훈련준비와 군장검사 02년 5월 19일(일) 화창 내일이면 전투지휘검열의 시작이다. 요즘 같아선 차라리 빨리 전투지휘 검열을 했으면 하고 바랄 정도다. 훈련은 차라리 정식훈련을 할 때가 아닌 준비기간 때가 오히려 빡세다고 했는데, 진짜 그 말처럼 훈련 준비 때문에 매일 같이 철조망과 지뢰를 설치하고 임무카드 수정하고 국지도발, 준비태세(화학전 하), 대량전사상자 처리 훈련, 전투력 복원 훈련 등 이런 것들을 한꺼번에 쉴새 없이 하다 보니 기가 질릴 지경이다. 더더욱이 금요일 저녁엔 토요일에 있을 대대장님 군장 검사 때문에 중대장님 예비 군장 검사가 있었는데, 약식이 아닌 FM으로 하다 보니 모든 걸 다 깔아 놓으라고 하고서 10시 넘도록까지 했다. 짜증 나서 죽는 줄 알았다. 날 차라리 죽이쇼..
중간일을 열심히 하는 세 가지 이유 02년 5월 13일(일) 더움 오늘은 전투지휘 검열 일주일 전이다. 그래서 아침부터 준비태세가 걸린단다. 뭐 준비태세야 하루 이틀 해보는 게 아니기에(사실 FEBA에 나와서 한 화학전하 준비태세만 열댓 번은 한 것 같다) 그다지 문제 될 건 없었지만 누가 뭐래도 제일 짜증 나는 건 그걸 다 치워야 하는 괴로움이 아닐까 싶다(목사님 말씀처럼). 6시에 기상하자마자 생각할 겨를도 없이 화학전 하 준비태세가 걸렸다. 부랴부랴 그렇게 신물 나도록 입기 싫던 보호의와 방독면을 착용했다. 그리고 열심히 가쁜 숨을 쉬어가며 물자분류를 했다. 그렇게 다하고 나선 소산지(疏散地)에 가서 앉아 있었는데 처음엔 편했지만 어디 그게 맘처럼 계속 편하기만 할까. 거의 한 시간 정도를 앉아 있..
이틀 간의 대민지원 02년 5월 9일(목)~10(금) 맑다가 구름낌 이틀 간 그렇게 나가고 싶던 대민지원을 나섰다. 사실 어제(8일) 나갈 기회가 충분히 되었고 분대장님까지 나를 찍어서 나가라고 했지만 어제까지 했던 화생방 물자 분류가 끝나지 않은 터라 오늘까지 그걸 하리라 생각하고 거절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물자 분류 작업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무척이나 아쉬워서 나가고 싶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나가게 되니 기분이 무지 좋더라. 더더욱이 신난 좋은 까닭은, 3소대에서 훈련을 뛰기에 우리 소대는 대항군 역할을 해야 하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분대장님 외 한 명씩 분대에서 빠져야 하는데, 우리 분대에선 광화가 뽑혔기에 나는 대민지원을 나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훈련까지 하지 않으며 간다는 게 얼마나 ..
바쁜 소대일과 교회일 02년 5월 5일(일) 맑음 벌써 가정의 달인 5월이 왔다. 어느덧 이렇게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올해도 중순으로 접어든다는 게, 여름이 서서히 다가온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이번 달이면 성민이 형은 드디어 전역을 할 것이고 우리도 가족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열심히 생활해 나가겠지. 이렇게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껴지는 까닭은 페바의 하루하루가 눈코 뜰 새 없이 빡쎄며 바쁘게 돌아간다는 얘기겠지. 빡세고 힘들다는 건, 그 순간순간 참을 수 없을 만큼 짜증이 몰려오긴 하지만, 결국 시간을 빠르게 흘러가게 하기에 좋은 점도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눈코 뜰 새 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도 나쁜 건 아니다. 저번 주 내내 5월 말에 있을 ‘군단 전투 지휘 검열’ 때문에, 국지도..
아버지 군번의 전역을 축하하며 02년 4월 26일(금) 서늘하지만 맑음 오늘 아버지 군번이었던 이규희씨와 임대호 씨가 집에 갔다. 두 분 다 나의 군생일에 있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었기에 왠지 섭섭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이규희 씨는 우리 부대 선임으로서 분대장을 거의 10개월 정도 잡았기에 그런 면에서 좋은 모습, 그렇지 않은 모습을 다 마주하며 군 생활의 모범을 제시하는 아버지였고, 임대호씨는 우리 소대 출신이지만 대대군종이었기에 신앙적인 면에서 모범을 제시하는 아버지였다. 특히 이규희씨에게 미안한 게 많은데, 이등병 시절에 갑자기 아파서 근무를 설 수 없을 때, 비번임에도 그걸 포기하면서 근무를 서줬고, 백일휴가 즈음해선 일개복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옷을 다려줬으며, 무엇보다도 가장 미안..
19연대 근무지원이 끝나는 마당에 02년 4월 26일(금) 서늘하지만 맑음 군에 와서 벌써 1년 2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이제 1년이란 시간을 남겨둔 시기에 이르렀다. 예전에 생각할 땐 군 생활이 1년만 남아도 되게 행복하고 생활은 엄청 편해질 줄만 알았는데, 막상 이렇게 그 시기에 도달하고 나니깐 그다지 아니올시다 라는 거다. 역시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가 보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과연 병장이 되고 전역을 한다 해도 기쁠지 미지수일 정도이다. 그럼에도 확실한 건 군 생활을 1년 2개월이나 했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는 거다. 거기에 덧붙여 아직도 1년이나 남은 것을 되짚어 보노라면 여전히 막막하고 답답하여 미칠 것 같다는 점이다. 과연 이 긍부정이 교차하는 혼란의 시기를 또 어떻게 보낼 것인가? 지금..
진지공사를 끝내며 02년 4월 13일(토) 진지공사가 이주째에 접어 들었다. 몸 쓰는 일을 이주째 하고 있으니 이제는 힘이 팽긴다. 역시 몸을 써야 하는 일은 생각 이상으로 힘든 것 같다. 진지 공사가 이렇게 힘이 들 줄은 여러 얘길 통해 익히 듣긴 했지만 실제로 대하고 보니 무엇을 생각했든 그 이상이긴 하더라. 이럴 때만은 GOP가 너무나 그립다. 하지만 나름대로 이 생활에 적응되다 보니, 할 만하고 나름대로 재밌긴 했다(물론 끝났기에 이런 소리를 해보는 거겠지만^^). 그러고 보니 군종이 된 지가 어언 한 달째가 되어간다. 하지만 그동안 교회에 나가지 못하는 바람에 신고식 한 번 못해봤으며 군종으로서의 역할도 못해봤다. 그동안 오대기와 진지공사와 이것저것으로 바쁘다 보니 당연히 교회에 나갈 시간도 없..
진지화와 군인의 땀방울 02년 4월 7일(일) 흐림 오늘은 흐린 주일이었다. 그런데도 평일과 같은 느낌이 들었던 건 아마도 어젠 토요일임에도 비가 온 덕에 쉬었기 때문이었겠지. 하지만 오늘은 별로 힘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날조였기 때문에 재밌기만 하고 별로 힘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은 주일이기에 네 시가 조금 넘어서 끝났다. 어찌 보면 쉬어야 할 날에 일한 것이라 짜증이 날 만도 하지만 이처럼 조그만 기쁨의 요소라도 있다면 행복이 느껴지는 게 또 군대의 묘미이기도 하다. 예전에 ‘철원의 모든 산이 진지화되어 있구나’하고 생각했는데, 진지 공사 기간에 ‘모든 산이 진지화 되어 있다면 그 모든 산엔 군인들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베여 있다’라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끝나는 그 순간까지 너무 짜증 ..
진지 공사와 진심 없는 말 02년 4월 6일(토) 폭우 이번 주부터 다음 주까진 진지 공사 기간이다. 폐바 첫 진지 공사이기에 대단히 걱정했던 게 사실이다. 여기 FEBA는 GOP와는 달리 빡세다는 진지 공사였기에 걱정이 절로 들더라. 지금에서야 느끼는 거지만 GOP 진지 공사는 진지 개척이 아니라 진지 청소 정도의 작업이니 그만큼 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FEBA의 진지공사는 진지를 새롭게 만들어야 하고 밤까지 진행되기에 그만큼 힘들 수밖에 없다. 역시 우리들의 예상대로 빡센 일주일이었다. 5시에 일어나 8시정도부터 작업에 들어가서 저녁 6시에 접어 들어서야 끝나는 일정이다. 내리쬐는 뜨뜻한 햇살을 등지고서, 또는 앞대고서 그 무수한 땀방울들을 흘려가며 대지의 끊임 없는 생명력에 맞서 새로운 방벽을 ..
등산과 군 생활의 공통점 02년 3월 28일(목) 맑음 뻗대기를 통해 인체샤워를 하지 않는 경상자 역할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잘 마무리 되어지는 듯했는데, 이번엔 ‘아무 것도 아닌 환자’가 문제였다. ‘아무 것도 아닌 환자’라는 이유만으로 거기서도 쫓겨나 최초의 상황을 하는 데로 가야 했던 것이다. 도대체 몇 번을 옮겨다녀야 하는 거야? 아무리 군대라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실을 감내하고 있는 내 성격도 참 많이 좋아졌다. 역시 환자역을 하면서 그곳이 제일 월 때리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가서 해보니 정말 월중의 월인 곳이었다. 나는 하헌태 상병을 업고서 내려와 배수구로 짱박히면 되는 일이었기에 처음만 빡시게 하면 그 다음부터 쭉 쉬어도 되는 그런 역할이었다. 이쯤 되니 돌고 돌아 이 역할을 맡게..
군에서 배운 한 가지, 뻗대기 02년 3월 28일(목) 맑음 수요일엔 역시 환자역을 했는데 최대한 첫 60에 안 타려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이 타서 인체제독소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군수 장교님이 어제 연습 안 한 놈이 누구냐며 그 인원들은 빠지랬다. 그런데 최초 환자들은 인체 샤워를 다 하는 쪽으로 몰아가더라. 그래서 최대한 버티며 아닌 척을 했다. 군에서 하나 배운 게 있다면, 어떤 일도 그런 척만 할 수 있다면 충분히 무산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정의만이 옳은 것인 양 취급되어지고 그것만이 떳떳한 일인 양 취급되어져야 한다고 말해지곤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최대의 선(善)이며 최대의 의(義)라고 생각되어지는 법률이 정말로 제대로 작동하는가? 떳떳함 위에 서서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그..
화생방 전사상자 처리 훈련 중 K-3로 인한 고초 02년 3월 28일(목) 맑음 이번 일주일 내내 M.O.P.P 4단계를 다 적용한 상태로 하루하루의 나날을 보냈다. 무슨 말이냐면, 금요일에 사단장님 앞에서 화생방 전사상자 처리 훈련이 아니라 시범식 교육이 있었기 때문에 보호의ㆍ전투화 덮개ㆍ방독면ㆍ보호수갑을 하고서 짜여져 있는 각본대로 움직여야만 했던 것이야. 말이 쉽지 방독면을 쓰고서 움직여야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대는 감히 알라나? 상황이라면 화생방 탄이 떨어져 진지에 투입되어 있던 대다수 병력들이 부상 당했고 그로 인해 그 인원들을 처리하는 과정을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어쩐지 갑자기 주일에 방독면 쓰는 연습을 시키고 월요일엔 하루종일 화생방 물자를 착용하는 연습을 시키더니, 화요일부턴 ..
우여곡절 끝에 군종이 되다 02년 3월 24일(일) 맑고도 바람 붐 소대의 군종이 되던 때가 생각난다. 작년 8월 9일에 소대의 군종이었던 한솔씨가 나가면서 “네가 이제부터 소대 군종이다”라고 했기에 그게 진실인 걸 알면서도 내심 믿지 못했다. 너무 갑작스럽기도 했고 의사를 묻는다거나 투표를 했다거나 하는 게 없었기에 믿을 수 없었던 거다. 몇 주간 소대 군종 현황을 보니 빈칸으로 계속 비어 있을 뿐, 내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그러나 몇 주 더 지나니 기어코 내 이름이 소대 군종란에 당당히 올라가 기입되어 있더라. 그걸 보고 있으니 되게 흡족하기까지 하더라. 단순히 생각해보면 쉽게 군종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생각 이상으로 힘든 부분이 있었다. 그 몇 주의 시간이 긴가민가하는 얼렁뚱땅함을 안겨 ..
헐었던 잇몸이 나으며 깨달은 것 02년 3월 24일(일) 맑고도 바람 붐 며칠 전만 해도 입속의 잇몸이 헐었기에 좀 자극적인 음식을 먹게 되면 쓰리고 예리고 아팠다. 그땐 그게 영겁의 짐을 계속하여 짊어지고 있었던 것마냥 힘들고 빨리 낫기만 바랐었는데, 어느 순간엔가 전혀 아프지 않았다. 왜 갑자기 그렇게 낫기를 바라다가 낫게 되었을 땐 전혀 아무런 감흥이 없게 되었을까? 이런 게 바로 인간의 ‘똥 싸러 들어갈 때 맘 다르고, 나올 때 맘 다르다’와 비슷한 심리인가? 이와 비슷한 경험을 많이 했었다. 왜 그렇게 달라지는지 새삼 부끄럽기까지 하다. 그런 감사할 줄 모르는 존재이기에 어쩜 인간은 영원히 죄악성을 지녀야만 하는 존재인지도 모르고 이 세계는 영원히 이기와 자만이 넘치는 사회인지도 모른다. 단지 ..
5분대기조 02년 3월 24일(일) 맑고도 바람 붐 3월도 이제 끝을 항해 치닫고 있어. 이제 얼마 안 있으면 4월이라는 전혀 다른 시간으로 접어든다. 분명 그다지 시기 상으로 다를 게 없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 좀 다른 시간에 치닫게 된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의미를 부여하기에 충분하고 내 꿈을 새롭게 모으기에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른다는 건 언제나 이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되어지는데, 그렇게 시간마다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그 시간에 나의 희망과 꿈을 투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반가울 뿐이다. 시간이란 걸 만들어 놓고 그 절기 절기로 나누어 놓은 최초의 아무개에게 경의를 표할 뿐이다. 지금은 5대기(5분대기조) 기간이다. 그래서 오늘은 주일인데도 교회에 가지도 못하고 계속 내무실에 대기..
군종 투표에서 뽑히다 02년 3월 17일(일) 어제 중대 군종인 박영헌 병장님이 분대장에게 와서 이야기를 나눴고 그건 나를 중대 군종으로 추천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분대장은 수긍하지 않으며 급마무리 되었다. 오늘은 주일이기에 교회에 갔다. 평상시와 같이 주일답게 예배가 끝나고 『상실의 시대』를 읽고 있는데 박영헌 병장님이 우리 중대원들을 다 모으더니 “오늘 중대 군중을 뽑을 테니 하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어봐.”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손을 들까 말까 고민하다가 지금 안 들면 후회할 것만 같아 손을 번쩍 들었다. 민호와 나 단둘이 손을 든 것이다. 그래서 투표를 하게 되었는데 운이 좋기라도 한 것인지, 하나님이 선택해주신 덕인지 내가 선출되게 되었다. 한번 할 기회가 있으면 너무나도 하고 ..
중대 군종으로 추천되다 02년 3월 16일(토) 토요일엔 중대장님, 사단장님 정신교육이 있었다. 사단장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역시 걸걸하시고 위엄이 있으시다. 그런 목소리 속에서도 가끔씩 위트가 넘치는 말들이 나온다. 저번 설날에 동석하고서 떡국을 먹을 때 여름이면 새까맣다가 겨울이면 새하얘지는 우리들을 보고서 “카멜레온이구만, 카멜레온이야!”라고 농을 치셨고 이번에 8사단 마크를 보면서 “발바닥 달고 다니면 쪽팔려서 살겠어”라고 농담을 거셨으며 자신의 전역한 자식을 보면서 “어느 순간 갑자기 군에 간다고 울상이더만 한두 번씩 백일휴가다 뭐다 나오더니만 어느 날은 집에 갔더니 개골이 친 군모를 딱 걸어 놓고 전역했다고 하더라고”라며 말씀하셨는데 그 어감이 하도 특이해서 무지 재밌었다. 최장섭 소장님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