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1/09/18 (30)
건빵이랑 놀자
18장 8. 문명 창조자들의 업적 武王纘太王ㆍ王季ㆍ文王之緖, 壹戎衣而有天下, 身不失天下之顯名. 尊爲天子, 富有四海之內, 宗廟饗之, 子孫保之. 무왕(武王)은 대왕(大王), 왕계(王季), 문왕(文王)의 서(緖), 즉 그 실마리, 그 내력을 이어서[纘] 융의(戎衣)를 한 번 착 걸치니 천하를 얻었다. 그래서 그 몸은 천하(天下)의 드러난 이름을 잃지 아니했다. 此言武王之事. 纘, 繼也. 大王, 王季之父也. 『書』云: ”大王肇基王迹.“ 『詩』云: ”至于大王, 實始翦商.“ 여기서는 무왕의 일을 말했다. 찬(纘)은 잇는다는 말이다. 태왕은 왕계의 아버지다. 『서경』에 “태왕이 왕의 자취를 마련했다.”라고 했다. 『시경』엔 “문왕에 이르러 실제로 처음으로 상나라를 쳤다.”라고 되어 있다. 緖, 業也. 戎衣, 甲冑之屬..
18장 7. 작자성인(作者聖人)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그것을 최초로 만든 놈이 있다 이겁니다. 그것이 누구냐? 그게 바로 ‘컬츄럴 히어로(Cultural Hero)’입니다. 불을 발명했다, 신농씨(神農氏)가 뭘 했다, 복희씨(伏羲氏)는 또 저걸 했다 등 이런 것이 다 문명을 최초로 만든 사람들에 대한 얘기입니다. 일본 유학(儒學)에서는 소라이(荻生徂來) 등이 ‘작자위성(作者謂聖)’이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은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있는 말인데, “문명을 최초로 만든 놈들이 바로 성인(聖人)이다”라는 것입니다. “They are makers of civilization”이라는 것이지요. 예악(禮樂)을 작(作)했다, 예악(禮樂)을 지었다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이 ‘작(作)’..
18장 6. 한순간의 불꽃 같은 인간문명 지난 시간에 공부한 17장은 ‘순기대효야(舜其大孝也)’라고 해서, 그 내용이 순(舜)임금을 찬양한 것이었는데, 이 18장은 ‘무우자기유문왕호(無憂者其惟文王乎)’라고 해서 문왕(文王)을 찬양한 글입니다. 그리고 19장을 보면, ‘무왕주공 기달효의호(武王周公, 其達孝矣乎)’라고 무왕(武王)과 주공(周公)을 찬양한 글임을 감안할 때, 17ㆍ18ㆍ19장이 순(舜)·문(文)·무(武)·주공(周公)에 대한 한 묶음의 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동일한 성격의 프라그먼트(fragment)로 볼 수 있어요. 이것은 유교의 정통적 파라곤(Paragon), 유교를 만들어간 네 인물(character)에 대한 품평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서 서로 비교해서 보시..
18장 5. 심미적 감수성 아! 그러니까 또 생각이 나는데, 서원을 청소할 때 학생들이 하는 걸 보면 참 문제가 많아요. 한 사람도 제대로 하는 걸 못 봤습니다. 청소란 게 알고 보면 공간 처리 기술이라서 공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서원의 이 넓은 공간을 빗자루로 다 쓸자면, 먼지도 날리고 시간도 꽤 걸리기 때문에 이런 대걸레를 마련해뒀는데 이걸 쓸 줄을 몰라. 이렇게 대걸레를 잡고 구석구석을 챙겨 가면서 쫙 밀고 나가서 코일처럼 왔다 갔다 하면 금방 끝나잖아? 단, 주의할 점은 코너를 돌 때 걸레를 번쩍 들지 말고 그대로 바닥에 붙인 채로 돌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야 흘려버리는 쓰레기 없이 깨끗이 청소가 되거든. 이것도 시조창이랑 마찬가지예요. 음을 쭉 늘여주잖아?..
18장 4. 서도로 버무려질 삶 서도(書道)는 기본적으로 내가 콘트롤할 수 있는 부분과 그것이 불가능한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붓이 나의 몸의 연장태, 즉 나의 심성을 전달하는 주관적 도구의 세계라면, 묵(墨)은 나의 통제를 벗어난 객관의 세계입니다. 붓은 내가 콘트롤하는 공부(工夫)의 세계, 묵(墨)은 정글에서 벌어지는 탄소 입자들의 춤의 세계, 즉 자연의 세계지요. 그곳은 내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재수(chance)의 오묘함이 깃든 세계입니다. 그러니까 종이 예술의 가장 위대한 점이자, 서구 예술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바로 일회성(一回性)! 개칠(改漆)이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서도(書道)란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거예요. 한번 잘못하면 그냥 가는 거라고. 회복이 안 돼. 인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
18장 3. 먹과 벼루와 종이 먹 먹은 서양의 잉크(Ink)에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에 먹의 영어로 번역도 역시 잉크라고 합니다. 먹은 탄소(carbon)입자를 아교로 굳힌 것인데, 옛날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검댕만큼 검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굴뚝 검댕이를 털어다가 먹 만드는 재료로 쓴 것입니다. 태우는 나무 종류에 따라 검댕이의 색깔이 조금씩 달라지는데, 요즘엔 나무를 태워 검댕이를 받질 않고 석유에서 나오는 카본 가루를 씁니다. 석유에서 나오는 카본 가루가 까맣긴 더 까맣지만, 고풍(古風)의 맛은 없어요. 중국에서 나오는 먹중에 아직 검댕이를 원료로 한 것이 있긴 하지만, 나무가 아니라 기름을 태워 얻은 검댕으로 만든 것입니다. 인간이 경험하는 색은 빛의 색과 염료의 색 두 가지가 있는데, ..
18장 2. 서도(書道)와 심미적 감수성 지난 시간에 17장까지 했죠? 오늘은 진도를 나가기 전에 여러분들이 배워야 할 중요한 기예를 하나 가르쳐 주겠어요. 현대 생활의 근본적 문제 중의 하나가 취미다운 취미가 없다는 점인데, 사실 컴퓨터 게임을 해본들 금방 식상해지고, 디즈니랜드를 가본들 몇 번 못가 시시해집니다. 도대체 이 세상에 가슴 뿌듯하게시리 놀꺼리가 없어요. 그러니 학생들이 방황을 하고, 쓸데없이 술이나 마시러 다니는데, 우리 도올서원 학생들은 최소한 붓 잡는 법 정도는 알아야겠어요. 저번에 작시(作詩)를 가르쳐 줬죠? 시(詩)를 알았으니, 이제 서도(書道)를 배워봅시다. 칼리그라피는 모든 문자문명에 존재 ‘칼리그라피(Calligraphy)’라 하면 중국문명에만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
18장 1. 도올서원의 미래 몸이 아프다는 건 정말 비극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몸의 건강을 유지한다는 게 정말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몸이 아프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 말이죠. 요 며칠 내가 좀 심하게 아팠는데 오늘은 갈래가 조금 잡힌 듯합니다. 사람이 역시 무리하면서 살 수는 없는 것이, 무리하고 살면 그게 축적돼서 반드시 몸의 이상으로 나타나거든요. 요번에 내가 아주 지독하게 고생을 했습니다. 밤낮으로 계속 잤는데도 혓바닥 밑이 꼭 암덩어리처럼 부어서는 회복이 안 되는 거예요. 계속 피곤하기만 하고. 아무튼 살아 있을 동안에는 건강해야지. 몸이 아픈 건 참 비극입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학생들이 많이 안 나왔는데,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지만 몸이 아파서 못 나온 학생들도 꽤 있을 거예요. 사실 이..
17장 7. 대덕자가 인정 받지 못하는 세상 詩曰: ‘嘉樂君子, 憲憲令德. 宜民宜人, 受祿于天. 保佑命之, 自天申之.’ 『시경(詩經)』에서 말하기를 ‘아, 아름다운 군자여, 영덕이 드러나고 드러나는 도다. 백성들에게 마땅하고 사람들에게 마땅하다. 하늘에게서 복을 받아, 하늘로부터 녹(祿)을 받아, 보우하여 명(命)하시고 하늘로부터 또다시 그것을 거듭한다.’ 詩, 「大雅假樂」之篇. 假, 當依此作嘉. 憲, 當依詩作顯. 申, 重也. 시는 「대아가락」의 편이다. 가(假)는 마땅히 『중용』에 의거하여 ‘가(嘉)’로 바꿔야 한다. 헌(憲)은 『시경』에 마땅히 의거하여 ‘현(顯)’으로 바꿔야 한다. 신(申)은 거듭한다는 뜻이다. “시왈 가락군자 헌헌령덕(詩曰 嘉樂君子 憲憲令德)” 주자 주를 보면, 여기의 시(詩)는 ..
17장 6. 자연의 상반된 덕성 故天之生物, 必因其材而篤焉. 故栽者培之, 傾者覆之. 고로 하늘이 물건을 낼 적에는 반드시 그 재질로 인하여 돈독하게 하나니, 고로 심은 것은 북돋워주고, 기울어진 것은 아예 없애버린다. 才, 質也. 篤, 厚也. 栽, 植也. 氣至而滋息爲培, 氛反而遊散則覆. 재(才)는 돈독하다는 것이다. 독(篤)은 두텁다는 것이다. 재(栽)는 심는다는 것이다. 기가 지극하여 자라나는 것을 배(培)라 하고, 기가 되돌아가 흘러가 흩어지는 것을 복(覆)이라 한다. “고천지생물 필인기재이독언(故天之生物 必因其材而篤焉)” ‘하늘이 물건을 낼 적에는’에서 나오는 생물(生物)은 어떤 물(物)을 새로 창조한다, 크리에이트(Create)한다는 말입니다. 생물(生物)은 ‘창조의 뜻이다’고 생각하고 뒷부분을 ..
17장 5. 악한 이들이 더 잘 사는 세상 故大德必得其位, 必得其祿, 必得其名, 必得其壽. 고로 큰 덕은 반드시 그 위를 얻으며 반드시 그 녹(祿)을 얻으며 반드시 그 이름을 얻으며 반드시 그 수(壽)를 얻는다. 고로 하늘이 물건을 낼 적에는 반드시 그 재질을 따라서 돈독히 한다. 舜, 年百有十歲. 순임금은 110세까지 살았다. “고대덕 필득기위 필득기녹 필득기명 필득기수(故大德 必得其位 必得其祿 必得其名 必得其壽)” 고로 큰 덕은 반드시 그 위(位)를 얻으며 반드시 그 녹(祿)을 얻으며. 자, 여기서 필득기수(必得其壽)까지 보면 위(位)·녹(祿)·명(名)·수(壽), 지위도 높고, 봉록도 많고, 이름도 날렸고, 오래 살았고 하는 이런 걸 딱딱 나눠서 쓰고 있죠? 이런 문장이 쓰여졌다는 것은 이 글을 쓸 ..
17장 4. 효를 통해 유지된 질서 子曰: “舜其大孝也與! 德爲聖人, 尊爲天子, 富有四海之內, 宗廟饗之, 子孫保之. 공자가 말하기를, 순임금은 대효이실 것이다. 덕으로서는 성인이 되었고 지위로서는 천자가 되었고 부는 사해의 안을 소유하시어, 종묘가 舜을 흠향하고 자손이 舜을 보존했다. 子孫, 謂虞思ㆍ陳胡公之屬. 자손이란 우사와 진나라 호공과 같은 순임금의 자손들을 말한다. ‘자왈 순 기대효야여(子曰 舜其大孝也與).’ 바로 이 부분에서 나오는 효(孝)라는 것이 내가 전번에 얘기한 교육이라는 문제와 함께 얘기됩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유교의 가장 중요한 파라곤(Paragon, 표본)으로 규정되는 순임금을 보면, 이 순임금이 순임금다울 수 있도록 하는 덕성의 내용이 바로 대효(大孝)입니다. 그런데 유의할 것은..
17장 3. 도덕주의화 되기 전의 성(聖) 현재의 교육 목표, 시민 양성 자, 그렇다면 오늘날 인류문명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모습이 과연 뭐냐? 현대 문명이 지향하는 모습에 걸맞는 인간상이란 도대체가 뭡니까? 선빈가요? 한마디로 말하면, ‘시민(citizen)’입니다. 현대사회, 근세국가에서는 시민이라는 이 시티즌을 기르자는 것이 교육의 목표예요. 때문에 교육의 목적이라든가 방법은 시티즌이 어떠한 덕성을 함유하는 인간이 되어야 하는가에 따라서 결정되어야 하겠죠. 그러나 다시 강의 내용으로 돌아가자면, 여기서 말한 바대로 효, 이 효라는 개념은 과거에 조선조가 기르려고 했던 인간의 모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성이었습니다. “순 기대효야여 덕위성인 존위천자(舜 其大孝也與 德爲聖人 尊爲天子)” 야(也)는 아..
17장 2. 지향점과 교육 교육이란 판단의 체계 교육이라는 문제도 마찬가지로 옛날과 오늘이 다르죠. 많은 사람들이 교육이란 게 뭔지 몰라요. 교육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새끼를 훈련시키는 것이지만, 역시 인간사회의 교육은 동물의 세계와는 다릅니다. 즉, 교육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판단(judgement)의 체계입니다. 사실 교육이라는 것은 순간순간 내 자식이 이러이러한 행동을 할 적에 내가 그 상황에 맞춰 어떠한 판단을 내리느냐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근데 상황에 맞춘 판단이라는 것은 상당히 감성적이고 즉각적이예요. 부모가 자식을 가르친다는 것은 순간순간 닥치는 상황에 대해 감성적 체계에 의해 매순간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지배적입니다. 이성적으로 따지고 하는 것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느릴 때가..
17장 1. 고베 대지진 애도사(哀悼辭) 강의에 들어가기 전에 여러분들에게 꼭 해야 할 말이 있어요. 여러분들이 신문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다시피 지금 일본에 대지진이 발생해서 많은 사람들이 아주 어려운 상황에 처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내가 일본에서 유학하는 동안 지진을 직접 겪어봐서 잘 아는데 그 지진이라는 것은 아주 끔찍한 일이죠. 우리가 서있는 땅을 믿을 수 없다는 것, 땅이 흔들린다는 것은 참. 여러분들은 실제로 경험을 한 번 해봐야 이해할 거예요. 그렇지 않고서는 그 지진이라는 것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일본 문화, 그리고 일본사람들의 국민성이라는 것은 지진을 빼놓구선 이해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그렇게 지진이 자주 일어나도 일본이 경제적으로 크게 흔들리거나 망할 지경에 이르지는 않습니다..
16장 6. 신유학의 틀로 본 귀신 子曰: “鬼神之爲德, 其盛矣乎!”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귀신의 덕 됨이 성대하구나!” 程子曰: “鬼神, 天地之功用, 而造化之迹也.” 정자가 “귀신은 천지의 공용(功用)이고 조화의 자취다.”라고 말했다. 張子曰: “鬼神者, 二氣之良能也.” 장자가 “귀신은 음양 두 기운의 훌륭한 기능이다.”라고 말했다. 愚謂以二氣言, 則鬼者陰之靈也, 神者陽之靈也. 내가 생각하기로 두 기운으로 말한다면 귀(鬼)라는 것은 음(陰)의 신령함이고 신(神)이라는 것은 양(陽)의 신령함이다. 以一氣言, 則至而伸者爲神, 反而歸者爲鬼, 其實一物而已. 爲德, 猶言性情功效. 하나의 기운으로 말하면 지극하며 펴진 것을 신(神)이라 하고 거두어 되돌아가는 것을 귀(鬼)라 하니, 실제론 하나의 사물일 뿐이다...
16장 5. 통하는 혈기론과 귀신론 혈관은 파이프가 아니라 관개수로이다 한 마디만 더 하지요. 전번에 동맥이니 정맥이니 그런 이야기를 했지요? 우리 몸은 어디나 실핏줄, 모세혈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면 심(心)이라는 것은 가운데 심장만 심(心)이 아니라 모세혈관들도 다 심(心)이라고 했지요? 결국은 심(心)이라는 건 일종의 저수지로 생각하라는 것이고 혈관들은 다 관개수로입니다. 저수지가 있고 댐이 있고 그 주위의 대평원에 관개된 논들이 펼쳐져 있는 것을 인체에 비교해 봅시다. 인체는 혈(血)의 체계입니다. 이 혈이라는 것은 천지론으로 보면 땅이예요. 우리의 혈(血)을 구성하는 것은 모든 것이 다 땅으로부터 왔습니다. 혈(血)은 곧 땅이에요. 땅을 흘러가는 관개용 수로가 곧 피인 것입니다. 땅에 대..
16장 4. 귀신은 어디에도 있다 존재를 나누고 죽음을 함께 해결한다 그리고 이 죽음의 해결방식에서 인간존재라는 ‘절대적 개체’를 설정하게 되면, 자꾸만 개인적 문제해결(indivisual solution)을 하게 됩니다. 개인적인 해결, 중동문명의 경우에 그런 것이 있는데, 만약 존재 자체가 개인이 아니라 ‘관계된 존재’면 죽음 자체를 집단적인 해결(collected solution)을 합니다. 죽음을 같이 해결한다는 거지요. 가족 단위로 해결하거나 마을단위나 국가단위, 인류단위 등 죽음의 문제를 나 개인에게만 국한될 것이 아니라 집안의 문제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존재 자체가 여러 사람에게 공유(share)되면서 죽음을 같이 해결해 나가는 것입니다. 장례라는 것이 다 그런 의미예요. 죽음이 있으..
16장 3. 서양과 동양의 죽음 해소방식 시간 안에서 죽음을 해결 하는가? 시간 밖에서 위로를 찾는가? 결국 ‘귀신’이라는 것은 ‘인간의 죽음의 해결방식’입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인간존재의 유한성인데,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인간존재의 유한성을 어떻게 무한화시키느냐 하는 것이죠. 자기의 존재성을 영속시키고 싶은 욕망이 인간에게는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 인간은 상당한 위로를 얻으니까요. 해탈한 사람들은 인생이란 게, 잠깐 왔다 가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것 가지고는 마음이 불안하단 말입니다. ‘내가 이렇게 잠깐 초개처럼 왔다가 끝나고 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거든요. 그런데 이 죽음의 해결방식에는 기본적으로 시간 밖에서 해결하는 방식이 있고 시간 안에서 해결..
16장 2. 합리적 귀신론 명당과 우리가 모시는 제사 유교에서 죽은 후에 혼백이 흩어진다고 보기 때문에, 묘자리 쓰는 진정한 이유는 혼백이 잘 흩어지는 자리를 고르는 것입니다. 명당이라는 것은 죽은 사람의 영속성을 구하는 곳이 아닙니다. 만약 흩어질 적에 자연스럽게 시간을 두고 흩어지지 못하고 갑자기 탁 흩어지게 되면, 이 혼이 어디서 괴이하게 뭉치거나 잘못될 수도 있고 그렇습니다. 동양인들은 죽는 순간에 사람의 혼백이 탁 하고 한꺼번에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을 때의 형태로 혼이 있으면 그 형태로 어느 정도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려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죽고 난 바로 다음은 혼이 명료하게 있다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흩어지는 겁니다. 그 흩어지는 기간 동안에 제사를 지내는데, 한 ..
16장 1. 정약용과 주희의 귀신론 합리적으로 해석한 귀신 중요한 것은 16장입니다. 오늘은 이것 하나만 끝내면 될 것 같은데, 이 16장이 유명한 장이예요. 정약용 선생이 정조(正祖)에게 진강(進講)을 했는데, 임금에게 중용(中庸)을 강의한 강의록이 「중용강의(中庸講義)」라고 해서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그 양반은 자꾸 이 귀신을 초월적인 어떤 상제(上帝)로 해석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중용(中庸)』에서의 귀신이라는 의미는 그런 게 아니예요. 주자 주를 보면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귀신이라는 것은 천지의 공용이고 조화의 흔적이다[程子曰: “鬼神, 天地之功用, 而造化之迹也.”]”라고 말한 것이 있지요. 그러니까 귀신이라는 것은 이미 정명도 시대에만 해도 천지라는 코스몰로지의..
15장 6.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시작하다 전번에 14장까지 했나요? 저번 12장의 ‘연비려천 어약우연(鳶飛戾天 魚躍于淵)’이란 말에서 ‘비(飛)’자하고 ‘약(躍)‘자를 합치면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비약(飛躍)’이란 말이 됩니다. 여기가 그 출전이지요. 비약이란 말이 거기서 나왔다는 걸 아시고, 14장의 맨 마지막에 ‘실저정곡 반구저기신(失諸正鵠 反求諸其身)’이란 말을 존 듀이의 교육론과 관련지어 해설한 부분도 다시 한 번 잘 생각해서 깊이 새겨두기 바랍니다. 존 듀이는 목적이라는 게 저기 어디엔가 있는(end in view) 것이 아니다 이 말이죠? 행위 그 자체가 바로 목적(end in action)이라 할까, 프로세스라 할까, 목적(end)은 정곡 그 자체는 아니죠. 끝까지 계속적으로 내 몸의 행..
15장 5. 한시의 맛 花間一壺酒 獨酌無相親 꽃 속에서 한 호리병 술, 서로 친구 없이 독작한다. 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 잔 들어 밝은 달맞이하고, 그림자 마주하니 세 사람이 되었구나. 月旣不解飮 影徒隨我伴 달은 술을 아예 마시지 못하니, 그림자만 하릴없이 나를 따라 짝하네. 暫伴月將影 行樂須交春 잠시 달과 그림자와 친구 되어, 즐거움을 누리는 이 일 봄에만 가득하지. 我歌月徘徊 我舞影零亂 내가 노래하면 달도 배회하고, 내가 춤추면 그림자도 춤을 추지. 醒時同交歡 醉後各分散 깨어서는 함께 서로 기뻐하고, 취한 뒤엔 각자 나누어 헤어지니 永結無情遊 相期邈雲漢 정에 얽매임 없이 길이 결의하여 은하수에서 만나길 서로 기약하네. 이건 오언고시(五言古詩)입니다. 고시(古詩)는 길기 때문에 한 운(韻)으로 다 깔 필..
15장 4. 이발과 감기 이제마는 보편적인 증상을 장부구조에 환원해서 보았다 이 상한론(傷寒論)은 기본적으로 증상을 중심으로 해서 만든 것입니다. 병의 증세 중심입니다. 그런데 이제마는 이것이 심프텀(symptom, 증세) 중심인 것이 아니라, 분석을 해보니까 이 심프텀을 인체의 ‘장부적인 구조’로 환원시킬 수가 있겠다는 것입니다. 상한이라는 것은 체질 구조와 무관한 보편적인 인체의 증상단계를 말한 것인데, 이제마는 ‘이 증상단계는 인간의 체질구조에 따른 특유한 형태일 뿐인데, 오히려 이 사람들이 보편적인 증상단계로 잘못 본 것이다’하고 바꾼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태음·소음·궐음은 이렇게 단계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6단계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대개 이제마가 말하는 장부구조 상의 소음인(小陰..
15장 3. 증상과 위치에 따른 작전 위장도 체외이다 내가 항상 인체를 그리는 유명한 그림이 있어요. 인체를 동그랗게 그려서 반을 자르면 그림처럼 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입구에서 출구까지 뚫려 있습니다. 몸 안의 위장은 체내입니까? 체외입니까? 이것도 체외예요. 여러분들은 겉의 피부만 체외인 줄 아는데, 이 안도 역시 체외입니다. 양자가 모두 상피세포로 이루어져 있어요. 밥 먹을 때에 식탁 위에서 마늘 냄새가 소록소록 납니다. 이건 체외에서 나는 거지요? 밥 먹고 나니까 입에서 마늘 냄새가 꼬락꼬락 납니다. 이건 뭡니까? 이것도 똑같은 체외의 사건이죠? 그래서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마늘이 식탁이라는 공간에서 내 위라는 공간으로 옮겨졌을 뿐이지 똑같이 체외에 있다는 거예요. 음식이 이 위..
15장 2. 감기와 면역기능 병균들이 ‘한(寒)’이나 ‘풍(風)’으로 표현하다 기본적으로 『황제내경(皇帝內經)』에는 인체를 파악하는 시각에 있어서 ‘음양오행’이라던가 ‘장부론’, ‘천지론’ 등에 입각한 인체에 대한 구조적인 이해가 많아요. 그리고 그 시절에 해부학이란 말은 있을 수가 없어도, 오늘날로 치면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에 대한 동양인들의 기초적인 생각이 다 들어있다고 봐야 합니다. 상당히 방대한 동양의학의 기초나 근간을 이루는 지식의 체계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지요. 그러므로 『황제내경(皇帝內經)』은 기본적으로 일종의 이론서입니다. ‘의학철학서’라고 할까, ‘philosophy of medicine’이라 할까, 그런 쪽으로 본다면 구체적으로 원리에 대한 이야기는 있어도 증상에 대한 치료나 ..
15장 1. 황제내경의 성립시기 동양의 의서(醫書)에는 대표적인 것이 『상한론(傷寒論)』이란 것이 있고 『황제내경(皇帝內經)』이란 것이 있습니다. 둘 다 한나라 때 성립한 것으로 보는데 상한론(傷寒論)에는 앞에 유명한 서문이 있지요. 그걸 보면 상한론(傷寒論)의 성립시대를 추정할 수 있는데 동한말(東漢末)정도로, 즉 AD 200년쯤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내경의 의미 『황제내경(皇帝內經)』이라는 것은 황제가 지었다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내(內)’라는 것을 내과적인 것으로 보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보면 『외경(外經)』이라는 것도 있는데, 이때의 내경이란 것은 내과. 외과의 ‘내’의 의미가 아니고 ‘아주 은밀하게 전수한 중요한 책’이라는 의미입니다. 영어..
14장 5. 존 듀이와 중용 子曰: “射, 有似乎君子. 失諸正鵠, 反求諸其身.”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활쏘기는 군자의 자세와 같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것을 자기 몸에서 구한다. 畫布曰正; 棲皮曰鵠, 皆侯之中, 射之的也. 子思, 引此孔子之言, 以結上文之意. 右第十四章, 子思之言也. 凡章首, 無子曰字者, 放此. 비단에 과녁의 원이 그려져 있는 것을 정(正)이라하고, 가죽에 과녁의 원이 그려져 있는 것을 곡(鵠)이라고 하니, 모두 과녁의 중앙이며, 활쏘기의 목표점을 말한다. 자사는 여기서 공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윗문장의 뜻을 결론지었다. 오른쪽은 제14장이니, 자사의 말이다. 장이 시작될 때 ‘자왈(子曰)’이 없으면, 자사의 말이라고 보면 된다. 이 구절은 군자의 도(道)를 활쏘기에 비유한..
14장 4. 평이한 일에서 故君子, 居易以俟命; 小人, 行險以徼幸. 그러므로 군자는 항상 평범한 데 거하면서 천명(天命)을 기다리고, 소인은 위험한 것을 범하고 요행을 바란다. 易, 平地也, 居易, 素位而行也. 俟命, 不願乎外也. 徼, 求也. 幸, 謂所不當得而得者. 이(易)는 평상시에 사는 곳을 말한다. 거이(居易)는 그 지위에 처하여 행동한다는 뜻이다. 사명(俟命)은 그 바깥의 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요(徼)는 구한다는 뜻이다. 행(幸)은 마땅히 얻지 말아야 할 것을 얻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대비되고 있는 것은 이(易)와 험(險)입니다. 이것은 또다시 앞서 분수나 위(位)의 사상과 관련이 있는 것이지만 『주역(周易)』 「계사(繫辭)」에 나오는 ‘간이(簡易)의 사상’과도 상통하는 말입니다. 군자는..
14장 3. 기자의 시건방 본인이 있는 앞에서 이런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잘 모르겠는데, 내가 오구라씨를 만난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오구라씨가 『世界(せかい)』라는 잡지의 기자와 함께 이리 원광대학교에 한 번 왔었어요. 그 『세계(世界)』라는 잡지의 경향은 우리나라의 『신동아』보다는 『사상계』에 가까운 잡진데, 1945년에 창간되어서 50년 동안 일본 사상계를 지켜온 잡지입니다. 참 아이러니칼한 게, 일본의 역사는 극우의 역사인데 반하여, 일본 근세 지성인들은 모두 극좌의 세계라는 거예요. 그 사람의 경향이 ‘좌’가 아니면 아예 지식인 축에 끼지도 못했습니다. 아주 대체적으로(roughly) 하는 말이지만 우리나라 7.80년대도 다 그랬어요. 『세계(世界)』 편집장의 부탁으로 오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