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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사전 - 255. 자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255. 자

건방진방랑자 2020. 5. 18.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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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

 

 

()

이름()을 중히 여겨 함부로 부르지 않는 관습에서 장가든 후에 부르기 위해 짓는 이름에 준하는 것이다.

 

()

자신의 아들을 일컬을 때: 가돈(家豚), 가아(家兒), 돈아(豚兒), 미돈(迷豚), 미식(迷息), 미아(迷兒).

 

자신의 아들

자신의 딸

가돈(家豚), 가아(家兒),

돈아(豚兒), 미돈(迷豚),

미식(迷息), 미아(迷兒)

女息(여식)

남의 아들 존칭

남의 딸 존칭

영랑(令郞), 영윤(令胤),

영식(令息),

영교(令嬌), 영녀(令女),

영애(令愛), 영양(令孃),

영원(令媛), 영천금(令千金)

 

 

자가(子家)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공자 귀생(公子歸生)의 자()이다. 자공(子公)과 함께 자기들만이 임금에게 자라고기를 얻어먹지 못한 것으로 해서 뒤에 정 영공(鄭靈公)을 시해했다. 좌전(左傳)公宣 四年

 

자가내사(自暇乃肆)

서경(書經)』 「주고(酒誥), “감히 스스로 한가함을 구하거나 스스로 평안하기를 구하지도 않았는데, 하물며 술 마시는 일을 감히 숭상했다 하겠는가[不敢自暇自逸 矧曰其敢崇飮].”라는 말이 나온다.

 

자가당착(自家撞着)

자가(自家)자기(자신)’를 말하고, 당착(撞着)서로 맞부딪히는 것을 말하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같은 사람의 문장이나 언행이 앞뒤가 서로 어그러져서 모순되는 일을 말한다.

 

자각(紫閣)

신선이나 은자(隱者)들이 사는 곳. 옛날 궁궐을 자색(紫色)으로 칠했으므로 궁궐을 말하기도 한다.

 

자각(雌閣)

한대(漢代)에 승상(丞相)이 나라 일을 보던 곳을 황각(雌閣)이라 불렀는데, 그곳 문을 누런 색으로 칠했었기 때문이다. 자각(雌閣)이라 쓴 것은 옛날엔 노란 칠을 흔히 자황(雌黃)으로써 했기 때문이다.

 

자각봉(紫閣峯)

서울의 남산을 가리킨 것이며, 전설에 신선은 놀로 밥을 지어 먹는다 한다.

 

자갑(雌甲)

갑자(甲子)가 짝수의 날을 만난 것을 이른다.

 

자강불식(自强不息)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 쉬지 않음. 스스로 힘써 노력하고 쉬지 않음. 주역(周易)』 「건괘(乾卦)하늘의 운행이 강건하니, 군자가 이것을 본받아 쉬지 않는다[天行健 君子以 自强不息].” 하였다.

 

자강주지충주(自江州至忠州) 백거이(白居易)가 강주 사마(江州司馬)에서 충주 자사(忠州刺史)로 부임하면서 자강주지충주(自江州至忠州)’ 등 고달픈 심정을 읊은 몇 수의 시를 지었다. 백락천시집(白樂天詩集)11

 

자개(者個)

약개(若個)’와 같은 말이다.

 

자개(者個)

저개(這箇)와 같은 말이다. 모황(毛晃)의 운략(韻略)무릇 차개(此箇)를 칭하여 자개(者個)라 한다.” 하였다.

 

자개축융(紫蓋祝融)

자개(紫蓋)와 축융(祝融)은 모두 산봉우리 이름으로, 형산(衡山)72() 가운데 축융봉이 가장 높고, 자개봉이 그 다음이라고 한 것을 이른 말인데, 일설에는 자개봉이 가장 높다고 하기도 한다.

 

자개황모(紫蓋黃旄)

하늘의 두우(斗牛) 사이에 떠도는 운기(雲氣), 옛날 술사(術士)들이 제왕의 부서(符瑞)로 여겼다. 황모는 보통 황기(黃旗)로 많이 쓰인다.

 

자거(刺擧)

간악한 자를 탄핵하여 배척하고 공이 있는 이를 거양(擧揚)하는 대간의 일을 말한다.

 

자건(子建)

삼국 시대 위() 나라의 문장가인 조식(曹植)의 자이다.

 

자검(紫劍)

웅검(雄劍)인 간장(干將)과 자검(雌劍)인 막야(莫邪)가 땅속에 묻혀 자기(紫氣)를 내뿜고 있던 중에 발굴되어 세상에 나온 뒤, 서로 오래도록 떨어져 있다가 나중에는 함께 합쳐져 두 마리의 용으로 변한 뒤 물속으로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습유기(拾遺記)10진서(晉書)』 「장화전(張華傳)

 

자검(紫劍)

옛날 용천검(龍泉劍)이 땅속에 묻혀 하늘 위로 자기(紫氣)를 발산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말이다.

 

자격지심(自激之心)

제가 한 일에 대하여 스스로 미흡한 생각을 가짐.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

 

자겸(子謙)

최명길(崔鳴吉)의 자()이다.

 

자경(子卿)

소무(蘇武)의 자()이다.

 

자경(子敬)

왕헌지(王獻之)의 자이다.

 

자경(蔗境)

() 나라 고개지(顧愷之)가 단수수를 먹을 때는 항상 꼬리에서부터 먹기 시작하여 밑둥으로 들어가면서 차츰 가경(佳境)으로 들어간다.’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고()로부터 낙()으로 가는 일을 들어 자경(蔗境)이라 하였다. 수숫대는 본디 밑둥이 더 달기 때문이다.

 

자경금(紫瓊琴)

붉은 구슬로 장식한 거문고. 이백(李白)의 의고시(擬古詩)선인이 나에게 녹옥배를 끼쳐주고 겸하여 자경금도 주었다오[仙人遺我綠玉杯 兼之紫瓊琴]”한데서 온 말이다.

 

자경누호아(子卿累胡娥)

자경(子卿)은 한() 나라 소무(蘇武)의 자()이며 호아(胡娥)는 흉노(匈奴)의 여자를 이른다. 소무는 일찍이 장군이 되어 흉노에 사신으로 갔는데, 양국 관계가 악화되어 그만 억류되었다. 그리하여 온갖 협박과 회유를 받았으나 끝내 항복하지 않고 충절을 지키다가 19년 만에 돌아왔는데, 억류되어 있는 동안 오랑캐 여자를 사귀어 한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통국(通國)이라 하였다. 한서(漢書)卷五十四 소무전(蘇建傳)

 

자경적노(子卿適虜)

() 나라 소무(蘇武)의 자이다. 소무는 한 나라 무제(武帝) 때 흉노(匈奴)에 사신으로 갔는데, 흉노의 선우(單于)가 갖은 협박을 하는데도 굴하지 않은 채 온갖 고생을 하면서 19년 동안 억류되어 있다가 소제(昭帝) 때 비로소 한 나라로 돌아왔다. 한서(漢書)54 소무전(蘇建傳)소무(蘇武)

 

자경절(子卿節)

자경은 한 나라 소무(蘇武)의 자이다. 소무가 한() 나라 무제(武帝) 때 중랑장(中郞將)으로 있다가 흉노(匈奴)에 사신으로 갔는데, 흉노의 선우(單于)가 갖은 협박을 하면서 항복하기를 강요하였다. 그런데도 굴하지 않다가 큰 구덩이 속에 갇혀서 눈을 먹고 가죽을 씹으면서 지냈다. 그러다가 다시 북해(北海)로 옮겨져서 양을 치며 지냈는데, 그때에도 한 나라의 절()을 그대로 잡고 있었다. 갖은 고생을 하면서 19년 동안 머물러 있다가 소제(昭帝) 때 흉노와 화친하게 되어 비로소 한 나라로 돌아왔다. 한서(漢書)54 소무전(蘇建傳)

 

자경청전(子敬靑氈)

자경은 진() 나라 때의 왕헌지(王獻之)를 이른다. 자경은 그의 자. 왕헌지가 어느 날 밤 재중(齋中)에 누웠을 때 도둑이 들어 모든 물건을 다 훔쳐가므로, 헌지가 도둑에게 말하기를, “청색 모전(毛氈)은 우리 집의 세전지물이니 그것만은 놓고 가거라.”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진서(晉書)卷八十

 

자고(紫詁)

금랑(錦囊)에 담아 자니(紫泥)로 입구를 봉한 뒤 인장(印章)을 찍어서 반포하는 임금의 조서(詔書)를 말한다.

 

자고(紫誥)임금의 조서는 비단주머니에 담고 풍화석(風化石)의 일종인 적석지(赤石脂)로 그 입구를 봉한 뒤에 그 위에다가 인장을 누르는 격식에서 나온 말로, 조서를 말한다.

 

자고(子羔)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제자인 고시(高柴)를 이른다. 자고는 그의 자이다.

 

자고(鷓鴣)

만당(晩唐)의 시인 정곡(鄭谷)의 자고(鷓鴣)를 읊은 시가 일세에 회자하여 마침내 자고의 별칭이 되었으므로 뒷 사람이 정씨를 만나면 으레 자고라 하였다.

우는 소리가 행부득야가가(行不得也哥哥)’처럼 들린다고 하여, 먼 길 떠날 사람이 고향을 그리워할 때 흔히 시문 속에 등장시켰다.

 

자고남천(鷓鴣南遷)

꿩과에 속하는 메추라기 비슷한 새로, 따뜻한 남쪽 지방에만 산다고 한다. () 나라 좌사(左思)오도부(吳都賦)자고새는 남쪽으로 날아가 그 속에 그냥 머물고, 공작새는 오색 날개 펼치고서 높이 날아 올라간다[鷓鴣南翥而中留 孔雀綷羽以翶翔].”는 말이 있는데, 그 주()자고새는 항상 남쪽으로 날지 북쪽으로는 날지 않는다.” 하였다.

 

자고반(鷓鴣班)

신하들이 어전(御前)에 반열을 지어 늘어서는 것이 자고와 같다는 말이다.

자고새 가슴 털처럼 흰 반점이 박혀 있는 흑갈색의 향() 이름이다.

 

자고불능시(子固不能詩)

송 나라 팽연재(彭淵材)가 말하기를, “오한(五恨)이 있는데, 첫째는 시어(鰣魚)가 뼈가 많은 것, 둘째는 금귤(金橘)이 너무 신() , 셋째는 순채(蓴鱸)가 성질이 냉()한 것, 넷째는 해당화(海棠花)가 향기가 없는 것, 다섯째는 증자고(曾子固)가 시()에 능하지 못한 것이다.” 하였다. 냉량야화(冷涼夜話)

 

자고이래(自古以來)

예로부터 지금까지까지라는 뜻이다.

 

자공(子貢)자공은 춘추 때 위() 나라 사람. 성은 단목(端木), 이름은 사(). 공자(孔子)의 제자로 말을 잘하였다. ()나라 출신으로 공문 십철(孔門十哲)의 한 사람. 정치에 뛰어난 후에 노()나라()나라의 재상을 역임한다. 제자 중에서 제일 부자였으므로, 경제적으로 공자를 도왔다고 한다.

 

자공(子公)

한 성제(漢成帝) 때의 권신(權臣) 진탕(陳湯)의 자(), 권세가를 뜻하는 말이다. 진함(陳咸)이 누차 그에게 뇌물을 바치면서 자공 덕택에 도성으로 들어가 벼슬할 수만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卽蒙子公力 得入帝城 死不恨].”고 하였는데, 결국에는 그 덕분에 지방에서 부름을 받고 들어와 소부(少府)가 되었다는 고사가 있다. 한서(漢書)66 진만년전(陳萬年傳)

 

자공서(子公書)

() 나라 때 진함(陳咸)이 남양태수(南陽太守)로 있으면서 자주 진탕(陳湯)에게 뇌물을 주고 편지를 보내어 말하기를 자공(子公; 진탕의 자임)의 힘만 입으면 제성(帝城)을 들어갈 수 있겠는데, 그렇게만 되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 하였는데, 뒤에 끝내 들어가 소부(少府)가 되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한서(漢書)卷六十六

 

자과(炙輠)

지혜와 언사가 유창하고 무궁함을 이른 말로, 이는 곧 전국시대(戰國時代) 순경(荀卿)을 가리킨 말이다. 사기(史記)』 「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

 

자괴주언륜(自愧周彦倫)

시골에 숨어살지 못하고 서울 가서 벼슬살이한 것이 부끄럽다는 뜻이다. 언륜(彦倫)은 주옹(周顒)의 자이다.

 

자괴지심(自愧之心)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

 

자구(自救)

스스로 수심을 풀다.

 

자궁(紫宮)

자미궁(紫微宮)의 약칭이다.

전설 속에 나오는 천제(天帝)가 사는 궁전을 말한다.

 

자규란(赭虯卵)

홍시(紅柹)의 모양. 한유(韓愈)의 영시시(詠柹詩)붉은 용의 알을 까마귀가 쪼아먹네[金烏下啄赭虯卵].” 하였다.

 

자규사(子規詞)

수양대군(首陽大君)에 의하여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降封), 영월(寧越)에 유배된 단종(端宗)은 왕실을 떠나온 설움을 달랠 길이 없어 자규사(子規詞)를 지어 자기 신세를 두견새에 비유하면서 피맺힌 절규를 하였다.

 

자극(紫極)

별 이름으로, 임금이 거처하는 곳을 가리킨다.

자미원(紫微垣) 성좌(星座)는 황극(皇極)의 지점이 된다 하여 제왕의 궁전을 말한다.

 

자극궁(紫極宮)

당대(唐代)에 도교(道敎)를 중히 여긴 나머지 노자(老子)를 현원황제(玄元皇帝)로 받들고 각처에 사당을 세웠는데, 서울의 사당은 현원궁(玄元宮)이라 하고 각 지방의 사당은 자극궁이라고 불렀다. 이태백집(李太白集) 23심양의 자극궁에서 가을의 감회를 읊다[尋陽紫極宮感秋作]’라는 시가 있다.

 

자극궁(紫極宮)

황제가 사는 곳을 말한다. 진서(晉書)』 「원충전(阮种傳)지금 해내(海內)의 선비들이 모두 아름다운 빛에 희망을 걸고 자극(紫極)에 마음을 기울인다.” 하였다.

 

자금(紫禁)

자미원(紫微垣)에 속하는 궁금(宮禁), 즉 천자(天子)의 거소(居所)를 가리킨다.

 

자금단(紫金丹)

옛날에 방사(方士)들이 복용하면 장생불사한다는 단약(丹藥)이다.

 

자기(子綦)

남곽자기(南郭子綦)의 준말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사람으로 성은 남백(南伯) 또는 남곽(南郭)이다. 그는 책상에 기대고 앉아 집중된 정신과 고원(高遠)한 이상(理想)으로 고개 쳐들고 탄식하다가 자연(自然)의 묘()를 깨달아 형()과 지()를 여의고 멍청한 몰골이 되어 신()과 심()을 빠뜨렸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

 

자기(紫氣)

서기(瑞氣)인데, 성덕(聖德)이 있는 사람을 비유한 것으로, 옛날에 함곡관령(函谷關令) 윤희(尹喜)가 누()에 올라, 자기가 서쪽으로 뻗친 것을 보고는 성인(聖人)이 그 곳을 경과할 줄 알고 있었는데, 과연 예측한 날짜에 노자(老子)가 그곳을 경과했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열선전(列山傳)산해관에서 윤희(尹喜)가 바라보니 자기(紫氣)가 관 위에 어려 있었는데 과연 노자(老子)가 청우(靑牛)를 타고 그 곳을 지나갔다.”동래자기(東來紫氣)’의 고사가 실려 있다.

 

자기(子期)

종자기(鍾子期). 백아(伯牙)의 지음(知音). 자기가 죽자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자기두우간(紫氣斗牛間)

() 나라 때 붉은 기운이 우수(牛宿)와 두수(斗宿) 사이로 뻗치는 것을 보고 장화(張華)가 용천검(龍泉劍)을 얻었다고 한다.

 

자기릉두우(紫氣凌斗牛)

()나라 때에 장화(張華)와 뇌환(雷煥)이 천문을 본즉, 두성(斗星)과 우성(牛星) 사이에 붉은 기운이 뻗치었다. 뇌환이 말하기를, “이것은 보검(寶劒)의 기운이 땅에서 올라간 것인데 풍성(豊城) 땅에 있을 것이요.” 하였다. 장화는 곧 뇌환을 풍성령(豊城令)으로 보내었더니 과연 땅속에서 보검 두 자루를 파내었다.

 

자기멱(紫氣羃)

옛날 하늘의 두우(斗牛) 사이에 늘 보랏빛 기운이 서려 있었는데, 마침내는 이를 탐지하여 용천(龍泉)과 태아(太阿)의 보검을 얻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진서(晉書)36

 

자기서(紫氣書)

노자(老子)도덕경(道德經)를 말한다. 함곡관(函谷關)의 관령(關令) 윤희(尹喜)가 누대에 올라 사방을 바라봄에 자기(紫氣)가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었으므로 성인(聖人)이 도래하리라고 예언했었는데, 과연 예상한 대로 노자가 이르렀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관영내전(關令內傳), 사기(史記)卷六十三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자기야상우두고(紫氣夜上牛斗高)

진 무제(晉武帝) 때 천상(天象)을 잘 관찰하던 뇌환(雷煥) 이 두성(斗星)과 우성(牛星) 사이에 자기(紫氣)가 있음을 보고 이를 보검(寶劍)의 정기가 하늘에 뻗친 것이라 하고는 그 보검이 묻혀있는 풍성현(豊城縣)에 가서 용천(龍泉)ㆍ태아(太阿) 두 보검을 찾아낸 고사에서 온 말이다. 진서(晉書)卷三十六

 

자기출서관(紫氣出西關)

자기는 자줏빛의 서기(瑞氣)를 말한다. 춘추시대(春秋時代) 노자(老子)가 서쪽으로 함곡관(函谷關)을 나가려고 할 적에, 앞서 함곡관령(函谷關令) 윤희(尹喜)가 천기(天氣)를 관찰한 결과 함곡관 머리에 자기가 떠있음을 보고 성인이 그곳을 지나갈 것을 예측했는데, 과연 노자가 그곳에 왔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사기(史記)卷六十三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자기편면(慈屺便面)

자기(慈屺)는 강위(姜瑋)의 호인데 일호는 추금(秋琴)이다. 완당의 제자이고 시에 능하였다. 편면은 부채를 말한다.

 

자기회(子綦灰)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 남곽자기(南郭子綦)가 의자에 앉아 명상하고 있는데, 안성 자유(顔成子游)가 모시고 있다가 말하기를, “어떻습니까. 몸을 진실로 고목(枯木)같이 하고 마음을 진실로 식은 재같이 할 수 있습니까.” 하였다.

 

자니(紫泥)

고대에 진흙으로 서신(書信)을 봉하고 인장을 찍었는데 황제의 조서(詔書)는 무도(武都)의 붉은 진흙으로 봉했던 데서 온 말이다.

 

자달(紫闥)

황제의 궁궐을 말한다. 천제(天帝)는 자색(紫色)의 궁궐에 거처한다 하여 궁궐을 자미궁(紫微宮), 자궁(紫宮) 등으로 표시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 인용: 奉旨廉察到積城村舍作(정약용)

 

자당(慈堂)

살아 계신 남의 어머니를 말한다.

 

자도(子都)

뛰어난 미남자(美男者)를 이르는데, 시경(詩經)정풍(鄭風) 산유부소(山有扶蘇)자도는 보이지 않고 미친 놈만 보이는구나[不見子都 乃見狂且].”라 하였고, 맹자(孟子)』 「고자(告子)에서 자도의 아리따움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눈이 없는 사람이다[不知子都之姣者, 無目者也]”라 하였다.

 

자두연두기(煮豆燃豆萁)

콩을 삶는 데 콩깍지로 불을 때다라는 뜻으로, ‘골육인 형제가 서로 다투어 괴롭히고 죽이려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자라낭(紫羅囊)

귀족 자제(貴族子弟)들이 지니는 사치품으로서, 즉 자주색 비단으로 만든 향낭(香囊)을 이르는데, () 나라 때 사현(謝玄)이 어려서 자라낭을 좋아하여 차고 다니므로, 그의 숙부(叔父) 사안(謝安)이 그를 걱정하면서도 그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짐짓 장난으로 내기를 하여 그것을 따내서 즉시 불태워 버렸다 한다.

 

자란생(紫鸞笙)

신선이 부는 피리인데, 진자앙(陳子昻)이백(李白)의 시()에 있다.

 

자로공(子路拱)

공경하는 예를 올리겠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미자(微子), “자로(子路)가 공자를 따라가다가 뒤에 처졌는데, 지팡이를 짚고 대바구니를 멘 장인(丈人)을 만났다. 자로(子路)노인께서는 우리 부자(夫子)를 보셨습니까?’ 하고 묻자, 장인이 말하기를, ‘사지(四肢)를 부지런히 하지 않고 오곡(五穀)을 분별하지도 못하는데, 누구를 부자라고 하는가?’ 하고, 지팡이를 꽂아 놓고 김을 매었다. 이에 자로(子路)가 공수한 채 서 있었다.” 하였다.

 

자로부미(子路負米)

자로가 일찍이 공자(孔子)를 뵙고 말하기를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자면 땅을 가리지 않고 쉬는 것이요, 집이 가난하고 어버이가 늙었으면 녹봉을 가리지 않고 벼슬을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두 어버이를 섬길 때에는 항상 명아주와 콩잎만 먹는 형편이었으므로, 어버이를 위하여 100리 밖에서 쌀을 등에 지고 와 봉양하곤 했었는데, 어버이가 돌아가신 뒤로는 남쪽으로 초나라에 노닐 적에는 따르는 수레가 100여 대요, 만종의 곡식을 쌓아 두고, 요를 여러 겹으로 깔고 앉아서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먹으면서, 다시 명아주 콩잎을 먹으며 어버이를 위해 쌀을 등에 지고 오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負重涉遠 不擇地而休 家貧親老 不擇祿而仕 昔者由也事二親之時 常食藜藿之實 爲親負米百里之外 親沒之後 南遊於楚 從車百乘 積粟萬鍾 累茵而坐 列鼎而食 願欲食藜藿 爲親負米 不可復得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공자가어(孔子家語)2 치사(致思)

 

자료(自聊)

스스로를 생각하다또는 자신을 돌보다라는 뜻이다.

 

자릉(子陵)

동한(東漢) 때 사람 엄광(嚴光). 자릉은 그의 자이다. 소년 시절 광무(光武)와 함께 자라며 공부했었는데, 그후 광무가 황제의 위에 오르자 변성명을 하고 숨어 지내다가 광무의 끈질긴 물색 끝에 발각되어 광무로부터 간의대부(諫議大夫)를 제수받았으나 끝내 사양하고 부춘산(富春山)에 숨어 밭 갈고 고기 낚다가 일생을 마쳤다. 후한서(後漢書)113 / 유의어: 漁村記(권근)

 

자릉대(子陵臺)

()나라 엄자릉(嚴子陵)은 광무제(光武帝)의 고인(故人)으로 벼슬 주는 것을 받지 않고 칠리탄(七里灘)에 돌아가 낚시질을 하였다. 지금도 그의 조대(釣臺)가 있다.

 

자린고비(玼吝考妣)

자린(玼吝)’기름에 절인 종이에서 절인의 소리만 취한 한자어이고 고비(考妣)’는 돌아가신 부모님을 가리키는 말인데 여기서는 부모님의 지방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즉 자린고비는 부모님 기제사 때마다 쓰는 지방(紙榜)을 매년 새 종이에 쓰는 것이 아까워 한 번 쓴 지방을 기름에 절여 두었다가 매년 같은 지방을 쓴 충주의 부자 이야기에서 유래. 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꼭 써야 할 때 쓰지 않고 지내는 구두쇠와 같은 단작스러울 정도로 인색한 사람을 가리킨다.

 

자림유(紫琳腴)

선약(仙藥)의 이름인데, 노자의 도덕경(道德經)를 가리키기도 한다.

 

자마구(紫摩軀)

인도의 염부수(閻浮樹) 아래를 흐르는 강물 속에서 나는 자색(紫色)의 황금(黃金)으로 만든 불상(佛像).

 

자마불구(紫摩佛軀)

자색(紫色)을 띤 자마금(紫摩金)으로 만든 불상(佛像). 자마금은 인도(印度)의 염부수(閻浮樹) 밑을 흐르는 강물 속에서 난다고 한다.

 

자막집중(子膜執中)

자막(子膜)은 자막(子莫)과 같은 말로, ‘자막이 가운데만을 잡다라는 뜻으로, ‘융통성이 없고 임기응변 할 줄 모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맹자(孟子)』 「진심(盡心)

 

자매(自媒)

자신이 직접 나서서 좋은 혼처(婚處)를 구하는 것을 말한다.

 

자맥(紫陌)

자맥홍진(紫陌紅塵)의 준말이다. 도회지 주변의 도로로, 번잡한 속세를 말한다. / 인용: 靑麥行(위백규)

 

자면(刺面)

얼굴에 입묵(入墨)하는 형벌을 말한다.

 

자면(紫綿)

해당화(海棠花)의 별칭인데, 소식(蘇軾)정혜원해당(定惠院海棠)날 다습고 바람 가벼워 봄 잠이 만족하네[日暖風輕春睡足]”하였다.

 

자명(紫冥)

구중(九重)의 하늘을 말한다. 소식(蘇軾)의 시 부용성(芙蓉城), “왔다 갔다 삼세 동안 공연히 육신을 단련하며, 결국은 황정경 잘못 읽고 신선이 되고 말았어라. 하늘문 밤에 열리면 영혼을 통째 날리나니, 백일에 구름 수레 다시 탈 게 뭐 있으랴. 천 겁을 간다 한들 세상 인연 없어질까, 떨어져 내리는 비취 우의(羽衣) 처연히 남는 향기로다[往來三世空鍊形 竟坐誤讀黃庭經 天門夜開飛爽靈 無復白日乘雲輧 俗緣千劫磨不盡 翠被冷落凄餘馨].”라는 구절이 있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16

 

자명(煮茗)

차를 끓여 내는 등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것을 말한다. () 나라 왕휴(王休)가 겨울에 얼어붙은 태백산(太白山)의 시냇물을 길어 와 건명차(建茗茶)를 끓여서 빈객을 대접하였던 고사가 있다. 서언고사(書言故事)』 「천문류(天文類)

 

자명급회(自明及晦)

아침부터 저녁까지라는 말이다.

 

자모교(慈母敎)

맹자(孟子)가 어려서 어머니의 삼천지교(三遷之敎)를 입어 자사(子思)의 문인으로 공자의 전통을 이어 받았음을 말한다. 맹자가 어렸을 때에 공동 묘지와 가까운 곳에 살았는데, 이것을 본 맹자는 묘 쓰는 장난을 하였다. 맹자의 어머니 장씨(仉氏)이곳에서는 아들을 가르칠 수 없다.” 하고, 시장으로 이사하였더니, 맹자는 다시 장사치 놀이를 하였다. 장씨는 다시 자사(子思)의 학궁(學宮) 곁으로 이사하였더니, 맹자는 제기(祭器)를 벌여 놓고 읍양진퇴(揖讓進退)의 예를 하므로, 장씨는 이곳이야말로 내 아들을 키울 만하다.” 하였다. 이것을 맹모(孟母)의 삼천지교라 한다. 뒤에 맹자는 자사에게서 배워 훌륭한 학자가 되었다. 맹자제사(孟子題辭), 열녀전(列女傳), 소학(小學)』 「계고(稽古)

 

자모련(子牟戀)

춘추시대(春秋時代) 위 공자 모(魏公子牟)가 첨자(瞻子)에게 이르기를 몸은 강해(江海) 가에 있으나, 마음은 대궐 아래 있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장자(莊子)』 「양왕(讓王)

 

자모일언(慈母一言)

한왕(漢王)항우(項羽)를 공격할 때 왕능(王陵)이 한왕의 편이 되자, 항우가 왕능의 어머니를 잡아다가 왕능을 오게 하라고 협박하니, 왕능의 어머니가 왕능의 사자(使者)에게 한왕은 위대한 분이니 두 마음 갖지 말고 섬기라 하더라고 전하라.” 하고 자살한 것을 말한다. 한서(漢書)卷四十 장진왕주전(張陳王周傳)

 

자목(字牧)

고을 백성을 사랑으로 다스리는 것을 말하며, 자목지임(字牧之任)은 목사 이하 군수, 현감, 현령 등을 통칭하는 말로 쓰인다. / 인용: 豆江鼠(정범조)

 

자묵객경(子墨客卿)

자묵 객경(子墨客卿)은 먹()을 의인(擬人)화한 것인데, 양웅(揚雄)우렵부(羽獵賦)에서 나왔다.

 

자문자답(自問自答)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한다는 말로, 자신이 한 질문에 답할 겨를도 없이 스스로 대답하는 것이다.

 

자문지(咨文紙)

자문(咨文)은 우리나라와 중국 간의 외교문서인데, 그때 쓰이던 종이이다.

 

자미(子美)

() 나라 두보(杜甫)의 자이다.

 

자미(紫微)

자미원(紫微垣)은 별자리 이름인데 제왕의 궁전 또는 당대(唐代) 중서성(中書省)의 별칭으로 쓰인다.

 

자미가경(蔗味佳境)

()나라 고개지(顧愷之), “감자(甘蔗)를 먹을 때에 꼬리에서부터 먹기를 시작하면서 점점 아름다운 경지(佳境)로 들어간다.” 하였다. 감자는 사탕수수로, 여기서는 아름다운 취미를 말한다.

 

자미객(紫薇客)

중서성(中書省)의 관원(官員)을 말하는데, 서성의 당대(唐代) 아칭(雅稱)이 자미성(紫薇省)이다. 성 안에 자미를 많이 심었었다 한다.

 

자미궁(紫微宮)

삼원궁(三垣宮)의 하나로 천제(天帝)가 거처한다는, 북두성(北斗星) 북쪽에 있는 성좌(星座)를 가리킨 것으로 전하여 천자의 대궐을 이른다.

 

자미랑(紫微郞)

관명인 중서사인(中書舍人)을 말한다.

 

자미랑(紫微郞)

() 나라 때의 벼슬로 임금의 제고(制誥) 등을 맡았으므로 고려의 지제고(知制誥)를 지칭한 것이다.

 

자미선관(子美善寬)

두자미(杜子美)인 두보는 너그럽게 스스로를 위로했다는 뜻이다.

 

자미성(紫薇省)

당 나라 때에 중서성(中書省)이라 했으며, () 안에 자미화가 있었다. 천자의 정령(政令)을 돕는 비서관서(秘書官署)였다.

 

자미원(紫微垣)

임금이 있는 곳을 말한다. 자궁원(紫宮垣)이라고도 한다. 진서(晉書)』 「천문지(天文志)북극(北極)의 다섯 별과 구진(句陳)의 여섯 별이 모두 자궁(紫宮) 속에 있다.” 했고, “자궁원 열 다섯 별 중에서 서번(西蕃)이 일곱이고 동번(東蕃)이 여덟인데, 북두(北斗)의 북쪽에 있으며 그 첫째가 자미이니 대제(大帝)의 자리로서, 천자(天子)가 거처하는 곳이다.” 하였다.

 

자미칠가(子美七歌)

두보(杜甫)의 건원중우거동곡현작가칠수시(乾元中寓居同谷縣作歌七首詩)를 가리킨다. 두소릉집(杜小陵集)卷八

 

자미호(紫微壺)

당 나라 시인 두목지(杜牧之)를 두자미(杜紫微)라 하는데, 그의 시에 술병을 가지고 논다[携壺]는 말이 있다.

 

자미화(紫薇花)

백일홍(百日紅)의 이칭이다. 당나라 때 중서성(中書省)을 자미성(紫微省)이라 하고, 그 안에 자미화(紫微花) 두 그루가 백락천(白樂天)이 심은 것이라 한다.

 

자미화하객(紫微花下客)

자미(紫微)는 곧 임금이 있는 대궐을 이르는 말로, 즉 조정에 있는 벼슬아치들을 비유한 말이다.

 

자방(咨訪)

시경(詩經)소아(小雅) 황황자화(皇皇者華)두루 자방한다[周爰諮訪].”는 구절이 있는데, 그것은 사신(使臣)이 길에서 모든 것을 묻고 알아서 임금에게 보고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자방(子房)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의 명신 장량(張良)의 자이다. 장량은 한고조를 도와 진 나라와 초 나라를 멸망시켰는데 그 공로로 유후(留侯)에 봉해졌다. 그 뒤에 장량이 말하기를, “일개 서민이 극도로 부귀를 누렸으니 적송자(赤松子)를 따라가 노닐겠다.” 하고 세상과 관계를 끊음으로써 한신(韓信)을 위시하여 당시 함께 공을 세운 수많은 공신들이 역적으로 몰려 끝내 사형을 당했던 경우와는 달리 공명을 보전하였다. 사기(史記)55 유후세가(留侯世家)

 

자방료채(子房了債)

장량(張良)은 원래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의 벼슬하던 가문인데, 조국을 멸망시킨 복수를 위해 창해 역사(滄海力士)를 시켜 진시황(秦始皇)이 탄 수레를 공격한 일을 말한다.

 

자배(炙背)

햇볕에 등을 쬐는 것으로 곧 임금을 생각하는 성의에 비유한 말이다.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의 한 야인(野人)이 떨어진 옷으로 겨울을 지내다가 따뜻한 봄날을 맞이하여 하루는 그의 등을 햇볕에 쪼이니 매우 즐거운 마음이 들어, 자기 아내에게 이렇게 좋은 것을 아는 사람이 없으니, 이 법을 우리 임금에게 아뢰면 큰 상을 받지 않겠는가.” 하였다. 열자(列子)』 「양주(楊朱)

 

자배미근(炙背美芹)

자배와 미근은 미세(微細)한 정성이라는 뜻으로 열자(列子)』 「양주(楊朱)편에, “송 나라 어느 가난한 농부가 봄날 등에 쬐이는 햇볕의 따스함을 임금에게 드려서 후한 상을 받으려 했다. 그를 들은 마을 사람은, ‘예전 어느 사람이 콩과 미나리가 맛이 좋다고 마을 호족(鄕豪)에게 바쳤다. 그것을 먹은 호족은 배가 아파서 못 배겼다더니, 그대도 이와 같구려.’ 하였다.”라는 고사에 보인다.

 

자벌(慈筏)

자항(慈航)과 같은 불가의 용어인데 이를테면 부처의 자비의 마음으로써 사람으로 하여금 고해(苦海)를 벗어나 피안에 오르게 하는 것이 배로써 중생을 건지는 것과 같다 는 뜻이다.

 

자봉(紫鳳)

남편을 가리킨 말이다. 왕창령(王昌齡)의 소부마택화촉시(蕭駙馬宅花燭詩)푸른 난새가 합환궁으로 날아 들어가니 자색 봉황이 꽃을 머금고 금중을 나오누나[靑鸞飛入合歡宮 紫鳳銜花出禁中].”하였다.

 

자봉(赭峯)

민둥산이란 뜻이다. 진시황(秦始皇)이 형산(衡山)에 갈 때 배를 타고 상산사(湘山祠)에 이르렀는데, 큰 바람이 일어 건너지 못하게 되자, 진 시황이 상군(湘君)은 뉘 귀신이냐?” 물으니 ()의 딸 순()의 아내입니다.” 하므로, 크게 노하여 죄수 3천 명을 시켜 상산의 나무를 모두 베어버렸다.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자봉(紫鳳)

바다에 산다고 하는 신조(神鳥)의 이름이다.

 

자봉(紫峯)

최종주(崔宗周)의 호이다.

 

자부(紫府)

신선이 사는 곳이다. 해내십주기(海內十洲記)』 「장주(長洲)장주(長洲)의 일명은 청구(靑邱)인데 이곳에 자부궁(紫府宮)이 있으니 천진선녀(天眞仙女)가 이곳에 노닌다.” 하였다.

붉고 화려한 집으로 궁궐을 말한다.

 

자비어(子非魚)

장자(莊子)가 혜자(惠子)와 함께 호량(濠梁)에서 고기()의 노는 것을 구경하다가. “고기들이 즐겁겠구나.” 하니, 혜자는, “자네는 고기가 아닌데 어찌 고기의 즐거운 줄을 아는가.” 하였다. 장자(莊子), “자네는 내가 아니면서 어찌 내가 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할 줄을 아는가.” 하였다. 장자(莊子)』 「추수(秋水)

 

자비어아비자(子非魚我非子)

장자(莊子)는 혜자(惠子)와 함께 호수(濠水)의 다리 위에서 놀다가, 장자(莊子)가 말하기를 피라미가 나와 조용히 놀고 있으니 이것이 저 고기의 즐거움이네.” 하자, 혜자가 말하기를 자네가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단 말인가.” 하므로, 장자(莊子)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르리라고 보장하는가?” 하니, 혜자가 말하기를 나는 자네가 아니기에 진실로 자네를 모르네. 그러나 자네도 본디 물고기가 아니니, 자네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를 것이 분명하네.”라며 서로 논란한 데서 온 말이다. 장자(莊子)』 「추수(秋水)

 

자사(紫絲)

순채나물의 모양을 가리킨 말이다.

 

자사(子思)

공자(孔子)의 손자로 맹자(孟子)가 태어나기 전에 죽은 사람이다. 중용(中庸)를 지었다 한다.

 

자사영(刺史榮)

() 나라 때 불골표(佛骨表)를 올렸다가 조주 자사(潮州刺史)로 좌천된 한유(韓愈)처럼 곧은 말을 하다 수령으로 내려가게 된 것을 말한다.

 

자사자(子思子)

자사를 높여 이른 말이다.

 

자산수(子山愁)

전란을 만나 객지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말한다. 자산(子山)은 북주(北周)의 시인 유신(庾信)의 자(), 후경(侯景)의 난을 당해 강릉(江陵)으로 도망쳐 피신하였으며, 높은 관직에 오른 뒤에도 늘 고향을 생각하며 애강남부(哀江南賦)를 지어 노래하였다고 한다. 북사(北史)83

 

자산중석(煮山中石)

옛날 백석선생(白石先生)이라는 신선이 벽곡(辟穀)을 하기 위해 돌을 구워 먹은 고사에서 온 말이다.

 

자산출천(刺山出泉)

한서(漢書)이광리전(李廣利傳)에 이광리가 선마(善馬)를 빼앗으러 군사를 동원하여 이사성(貳師城)으로 갈 때 물이 없어 군사들의 목이 타자 광리가 패도(佩刀)로 산을 치니 물줄기가 솟아났다고 하였다.

 

자삼청철(紫蔘靑鐵)

모두 지방의 특산물을 뜻하는데, 황정견(黃庭堅)의 송고자돈부하남시(送顧子敦赴河南詩)자삼은 캘 만하니 진공하는데 옳거니와 청철은 많지 않으니 돈을 주조하지 말게나[紫蔘可掘宣包貢 靑鐵無多莫鑄錢].”한 데서 온 말이다.

 

자상(子桑)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의 우언(寓言)에 나오는 한사(寒士) 자상호(子桑戶)를 가리키는데, 그는 맹자반(孟子反) 자금장(子琴張)과 셋이 막역한 친구 사이였다고 한다. 10일 동안 내리는 장맛비 속에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고 있는데 친구인 자여(子輿)아무래도 자상이 고달프게 지내겠구나.’ 하고 밥을 싸들고는 자상을 먹여 주려고 찾아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자상과병(自象戈兵)

이괘(離卦)의 괘상(卦象)을 말한 것. 주역(周易)설괘전(說卦傳), “()는 불이요, 태양이며, 번개요, 중녀(中女), 갑주(甲冑), 과병(戈兵)이라.” 하였다.

 

자상빈(子桑貧)

자상(子桑)은 장자(莊子)가 꾸며낸 인물로, 10일 동안의 장맛비에 갇혀 자신의 가난한 운명을 한탄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

 

자상유가시(子桑有歌詩)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의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자상(子桑)이 자신의 빈궁한 처지를 슬퍼하며 그 원인을 아무리 따져 보아도 알 수가 없어 결국은 명()이라고 결론을 짓는 내용이다.

 

자새(紫塞)

북방 변경의 요새지를 말한다. () 나라가 쌓은 국경의 장성(長城) 흙빛이 붉으므로 자새(紫塞)라 한다. 또는 북방 국경인 안문(雁門)에는 풀빛이 붉으므로 자새(紫塞)라고도 한다.

 

자색(紫色)

바르지 못한 사설(邪說)을 말한다. 공자는 사이비(似而非)를 미워하여 자주색을 미워하는 것은 빨강색()을 혼란시킬까 해서이고, 향원(鄕原)을 미워하는 것은 덕()을 어지럽힐까 해서이다.” 하였다. 맹자(孟子)』 「진심(盡心)/ 자주색은 중간 색깔이며 빨강색은 바른 색깔인데, 자주색은 빨강색과 사이비하여 혼란을 일으키기 때문에 양주ㆍ 묵적(墨翟)의 사설(邪說)이 공맹(孔孟)의 정도(正道)를 어지럽힘을 비유한 말이다.

 

자서(字書)

옥편(玉篇) 따위를 이름인데 이 말은 강희자전(康熙字典)에 보인다. 자체(字軆)의 구성을 해석하고 성음(聲音)과 훈고(訓詁)를 자세히 풀이한 책.

 

자서(子胥)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의 오자서(伍子胥), 이름은 원()이다. 부친인 사()와 형인 상()이 초 나라 평왕(平王)에게 피살되자 오() 나라로 도망쳐 그 군대를 이끌고 초 나라를 쳐서 원수를 갚았다. 사기(史記)66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자서검결(子胥劍決)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의 충신 오자서(伍子胥)가 참신(讒臣) 태재(太宰) 백비(伯嚭)의 참소를 입어 오왕 부차(吳王夫差)로부터 촉루검(屬鏤劍)으로 자결하기를 강요받고, 마침내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사기(史記)66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자서결목(子胥抉目)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의 충신 오자서(伍子胥)가 오왕에게 월() 나라를 급히 쳐야 한다고 자주 간하였으나 듣지 않았고, 끝내는 태재 비(太宰嚭)의 참소에 의해 오왕으로부터 자결의 명이 내려지자, 오자서가 자기 가인(家人)에게 유언하기를 내 눈을 파내어 오 나라동문(東門) 밖에 걸어놓아서, 월 나라 군대가 쳐들어와 오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보게 해달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사기(史記)66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자서결안(子胥抉眼)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충신 오자서(伍子胥)가 오왕(吳王)부차(夫差)에게 월() 나라를 쳐야 한다고 극력 간하였으나 듣지 않고 도리어 참소하는 신하의 말을 믿고 오자서를 의심하여 그에게 자결하라는 명을 내리자, 오자서가 자기 가인에게 유언하기를 내 눈을 긁어내어 오나라 동문(東門) 위에 걸어놓아서, 월나라가 쳐들어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보게 하라.” 하고 자결하였는데, 뒤에 과연 오나라는 월나라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던 고사이다. 사기(史記)66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자서해검오강주(子胥解劍吳江舟)

자서(子胥)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오원(伍員)의 자. 초 평왕(楚平王)이 오원의 아버지 오사(伍奢), 형 오상(伍尙)을 죽였는데, 오원은 후일의 복수를 위하여 오()로 망명의 길을 가면서 소관(昭關)에 이르렀을 때, 이때 오원에게는 많은 현상금이 걸려 있었으므로 소관에서 오원을 잡으려 하였다. 오원은 재빠르게 도망을 쳤지만 앞에는 큰 강이 있고 추병은 뒤를 쫓고 있었다. 오원이 발을 구르는 순간 어부가 갑자기 나타나 오원을 건네주었는데, 기적으로 강을 건너게 된 오원은 자신이 차고 있던 보검을 풀어 어부에게 사례로 주었으나 어부는 그 칼을 받지 않았다. 사기(史記)66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자석(煮石)

선인(仙人) 백석선생(白石先生)벽곡(辟穀)을 하면서 항상 흰 돌을 구워 양식으로 삼은 데서 온 말이다.

 

자선(子善)

이기조(李基祚)의 자()이다.

 

자설(刺舌)

하약돈(賀若敦)이 송곳으로 그의 아들 필()의 혀를 찔러 말을 삼가라고 징계한 고사. 북사(北史)』 「하약필전(賀若弼傳)

 

자성(子聲)

바둑판에 바둑돌을 놓는 소리.

 

자성(子成)

본 성에 부속되어 있는 작은 성. ‘옹성(瓮城)’ 혹은 월성(月城)’이라고 한다

 

자성혜(自成蹊)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는 꽃과 열매가 다 좋아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바람에 그 밑에 절로 길이 생긴다는 뜻으로, 원래는 덕행 있는 사람이 무언 중에 남을 심복시키는 데에 비유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도리를 미인에 비유한 것이다. 사기(史記)』 「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

 

자소(紫綃)

붉은 명주로 된 머리띠를 말한다. 머리카락이 아래로 내려오지 않게 하기 위하여 머리를 동여매는 것.

 

자송(自訟)

공자가, “자신의 허물을 보고서도 마음속으로 자책하는 사람을 나는 보지 못하였다.[吾未見能見其過而內自訟者也]”라고 한 말에서 나온 것이다.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

 

자수금장(紫綬金章)

자수(紫綬)는 자색 인끈, 금장(金章)은 금인(金印)으로 모두 고관들이 차는 것들이다.

 

자수삭발(自手削髮)

제 손으로 머리를 깎음. 하기 어려운 일을 남의 힘을 빌지 않고 제 힘으로 처리한다는 뜻이다.

 

자수성가(自手成家)

자신의 손으로 집안을 이룬다는 뜻으로, ‘물려받은 재산 없이 제 힘으로 재산을 모아 한 살림을 이룩하는 것을 말한다.

 

자수추망(刺水抽芒)

바늘이 물을 찌르는 것처럼 싹이 물 위로 솟아 나온 것을 표현한 것이다. 소식(蘇軾)의 시에 이랑 나눈 푸른 물결 구름 진처럼 치달리고, 솟아 나온 벼 싹들 녹색 침이 물 찌르듯[分疇翠浪走雲陣 刺水綠鍼推稻芽].”이라는 구절이 있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11 無錫道中賦水車

 

자승자박(自繩自縛)

자기가 꼰 새끼줄로 스스로를 묶음. 자기가 한 말이나 행동 때문에 자기 자신이 구속되어 괴로움을 당하게 됨 또는 번뇌로 자기 자신을 괴롭힘을 비유

 

자시(自是)

이 절로, 이것이 바로, 이로부터의 뜻으로 쓰인다.

 

자시(子時)

이민구(李敏求)의 자()이다.

 

자시(自市)

자신을 비싼 값에 팔려고 안달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紫宸)

조정 백관과 외국 사신들을 접견하는 정전(正殿)의 이름이다.

 

자신(雌辰)

퇴장(退藏)의 때를 이른다. 노자(老子)28知其雄 守其雌가 있다.

 

자신지(子愼之)

논어(論語)』 「술이(述而)부자(夫子)가 조심하는 것은 재계(齋戒)ㆍ정전(征戰)ㆍ질병(疾病)이었다[子之所愼齊, , ].” 하였다.

 

자실(子實)

조문수(曺文秀)의 자()이다.

 

자씨(慈氏)

보살을 말한다.

 

자씨(子氏)

() 나라 성씨이다.

 

자아성찰(自我省察)

자기의 마음을 반성하여 살핀다는 뜻이다.

 

자악묘석(子惡苗碩)

제 자식 악함을 알지 못하고 자기 곡식 자람을 알지 못한다. 이 대문은 대학(大學)() 8, “諺有之曰 人莫知其子之惡 莫知其苗之碩이라 보인다.

 

자안(子安)

고려 말기의 문장가로 호가 도은(陶隱)이숭인(李崇仁)의 자이다.

 

자안(字眼)

시문(詩文) 가운데서 안목이 되는 가장 주요한 문자를 말한다. 창랑시화(滄浪詩話)시를 짓는 데 있어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 세 가지이니 기결(起結)ㆍ구법(句法)ㆍ자안이다.” 하였다.

 

자안(子安)

초당(初唐) 시대 문장가인 왕발(王勃)의 자인데, 그는 약관(弱冠)의 나이에 교지령(交趾令)으로 있던 부친 왕복치(王福畤)를 뵈러 가던 도중 홍주(洪州)의 등왕각(滕王閣) 중수 기념 잔치에 들렀다가, 명작(名作)으로 알려진 등왕각서(滕王閣序)를 일필휘지로 써 내어 문명(文名)을 천하여 날리었다.

 

자암(紫巖)

남송(南宋) 초기 금() 나라에 항거한 대표적 인물인 장준(張浚)의 별호(別號)이다. 그가 역전(易傳)을 지으면서 그 호를 지어 사용하였는데, 그 뒤로 세상에서 그를 존경하여 자암선생(紫巖先生)으로 일컬었다. 고종(高宗) 소흥(紹興) 5년에 양회(兩淮) 제로(諸路)의 군마(軍馬)를 총동원하여 대대적으로 북벌(北伐)을 행한 기록이 있다. 송사(宋史)361 장준전(張浚傳)

 

자앙(子昂後韓柳)

자앙(子昂)은 당() 나라 때 문장가인 진자앙(陳子昂)을 말하는데 일대 문호(文豪)로 유명했기 때문에 한 말이다.

 

자야(子夜)

악부 이름이자 이를 만든 () 나라 여자의 이름이다.

 

자야(子野)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악사(樂師)였던 사광(師曠)의 자. 그는 귀가 대단히 밝아 음률(音律)에 밝게 통했다 한다.

 

자야가(子夜歌)

() 시대 악곡 이른다. 당서(唐書)』 「악지(樂志)진 나라 여자 자야(子夜)가 이 곡을 지었는데 소리가 매우 애절하였다.” 하였다.

 

자약야(自若也)

스스로 같습니다라는 말로 예전의 자기와 같다는 뜻이다.

 

자양(紫陽)

() 나라의 거유(巨儒)인 주자(朱子)를 말한다.

 

자양벽파(紫陽劈破)

자양(紫陽)은 주희(朱熹)의 호인데, 벽파했다는 것은 곧 주희가 시경(詩經)의 옛 훈고전들을 모두 합하여 취사선택을 가해서 집전(集傳)을 만들어 놓은 것을 가리킨 말이다.

 

자양옹(紫陽翁)

호가 자양(紫陽)인 주자(朱子)를 높여 이른 말인데, 주자는 일찍이 무이구곡도가(武夷九曲櫂歌)를 지어 부르고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세웠다.

 

자업(貲業)

재산(財產) / 인용: 梁四龍傳(이기발)

 

자업자득(自業自得)

자기가 저지른 일의 果報(결과)를 자기 자신이 받음.

 

자여(子輿)

열흘이나 장맛비가 내리자 친구인 자상(子桑)을 걱정하여 자여(子輿)가 밥을 싸 들고 찾아간 이야기가 전한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

 

자여도(自如道)

창원(昌原)의 속역(屬驛)이다.

 

자여예리(子輿曳履)

자여는 증자(曾子)의 자()이다. 장자(莊子)증자가 가난하여 신발을 끌고 다니며 상송(商頌)을 노래하니……[曳縱而歌商頌……]”라고 하였다. 장자(莊子)』 「양왕(讓王)

 

자연(子淵)

공자(孔子)의 문인 안회(顔回)의 자()이다.

 

자연(子淵)

한 선제(漢宣帝) 때의 문장가인 왕포(王褒)의 자인데, 일찍이 중화송(中和頌), 성주득현신송(聖主得賢臣頌)등 다수의 글을 지었다.

 

자연도태(自然淘汰)

자연적으로 환경에 맞는 것은 살아남게 되고 그렇지 못한 것은 없어진다는 뜻이다.

 

자염장(紫髥將)

오왕(吳王) 손권(孫權)이 붉음 수염(紫髥)이었다.

 

자영(紫纓)

()의 종류인 완추(鵷雛)는 푸른 목털이며, 붉은 갓끈이 달렸다[翠鬣紫纓] 한다.

 

자예(自艾)

수신(修身)을 잘한다는 뜻이다. 맹자(孟子)』 「만장(萬章)“3년째에 태갑은 죄를 뉘우치고, 스스로 원망하고 스스로 다스려 동땅에서 인에 처하고 의를 옮기게 했다[三年, 太甲悔過, 自怨自艾, 於桐處仁遷義].”라는 말이 보인다.

 

자예(雌蜺)

암무지개. 엷은 무지개.

 

자예음(雌蜺飮)

무지개가 두 가지 색깔로 선명한 것을 수무지개()라 하며, 선명하지 못한 것을 암무지개()라 한다. 이아(爾雅)釋天 註 / 전설에 무지개가 시내에 들어가서 물을 마신다한다. 사문유츼(事文類聚)前集 卷四 天道部 虹蜺

 

자오(慈烏)

까마귀는 새끼가 어미에게 반포(反哺)한다 하여 효조(孝鳥)라 칭한다.

 

자오반포(慈烏反哺)

자식이 어머니의 은혜에 보답하여 봉양하는 일. 까마귀는 새끼가 자라서 어미를 먹여 살린다고 하여 까마귀를 자오(慈烏)라 한다.

 

자옥가(紫玉珂)

자옥(紫玉)으로 장식한 말의 굴레를 말한다.

 

자옥산인(紫玉山人)

조선조의 성리학자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을 지칭한 말이다.

 

자옥생(紫玉笙)

자주빛 옥으로 만든 피리. 좋은 피리를 말한다.

 

자옹(子雍)

삼국 시대 위() 나라의 경학자인 왕숙(王肅)의 자인데, 당시에 경학의 일인자로 손꼽혔다.

 

자용(子容)

정홍명(鄭弘溟)의 자()이다.

 

자용전(紫茸氈)

가늘고 부드러운 짐승의 털로 만든 침석(寢席)이라는 뜻이다.

 

자운(紫雲)

()의 사도(司徒) 이원(李愿)의 집에 있던 명기(名妓). 두목(杜牧)은 어사(御史)가 되어 낙양 분사(洛陽分司)로 있었는데, 이원의 연회석에 명사(名士)로 초대되어 자운이란 명기가 있단 말 들었는데 누구인가?” 하고 물었다. 이원이 가르쳐주자, 그는 한참 동안 응시하고는 과연 아름다우니 나에게 빌려달라.” 하였다. 당시(唐詩)紀事 杜牧

 

자운(子雲)

() 나라 때의 문장가 양웅(揚雄)의 자인데, 양웅은 자식이 없어 그가 죽었을 적에 제자인 후파(侯芭)가 장사를 치르고 삼년상(三年喪)을 치렀다. 태현(太玄)ㆍ법언(法言)ㆍ방언(方言) 등의 저서(著書)가 있다. 한서(漢書)卷八十七 양웅전(揚雄傳)

 

자운식자종하보(子雲識字終何補)

()나라 양자운(揚子雲)이 학문이 깊고 기이한 글자(奇字)를 잘 알았는데도 벼슬은 궁정(宮庭)에서 창을 잡는(執戟) 낭관(郞官)에 지나지 못하였다.

 

자운적막(子雲寂寞)

() 나라 양자운(揚子雲, 揚雄)태현경(太玄經)를 저술하며 숨어살면서, “적막(寂寞)으로 덕을 지킨다.”고 자칭하더니, 뒤에 역적(逆賊) 왕망(王莽)에게 벼슬하다가 죄에 걸려 체포를 당하게 되자 높은 누각에서 몸을 던져 떨어졌다. 사람들이, “적막(寂寞)은 투각(投閣)이로다.” 하였다.

 

자운정(子雲亭)

() 나라 때 서촉에 있었던 양웅(揚雄)의 독서(讀書)하던 곳을 이른다. 유우석(劉禹錫)의 누실명(陋室銘)남양 제갈공명(諸葛孔明)의 초려요, 서촉 양자운의 정자로다[南陽諸葛廬 西蜀子雲亭]”하였다.

 

자운조(子雲嘲)

자운은 한() 나라 양웅(揚雄)의 자. 한 손()이 양웅더러 너무 청백만을 고수하다가는 녹위(祿位)를 얻을 수 없다고 조롱하므로 양웅이 글을 지어 이를 해명하였다.

 

자웅(雌雄)

웅검(雄劍)과 자검(雌劍). ‘원앙검(鴛鴦劍)’이라고도 한다.

 

자웅검(雌雄劍)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사람 간장(干將)이 암수의 명검 두 자루를 만든 뒤, 웅검(雄劍)은 간장이라 하고 자검(雌劍)은 자신의 아내 이름을 붙여 막야(莫邪)라고 한 고사가 전한다.

 

자웅리(雌雄離)

짝들이란 옛적의 명검(名劍)으로 전해져 오는 양()의 검 간장(干將)과 음()의 검 막야(莫邪)를 말하는데, 도장(刀匠)3년만에 칼을 완성한 뒤 막야만 왕에게 바치고 간장은 남산(南山)에 파묻었다고 한다. 수신기(搜神記)11

 

자웅미변(雌雄未辨)

시경(詩經)소아(小雅) 정월(正月), “까마귀의 암컷 수컷을 뉘 알랴[誰知烏之雌雄].” 한 구절이 있다.

 

자원(紫垣)

자미원(紫微垣)의 약칭으로 천자(天子)가 거처하는 곳을 말한다. / 유의어: 자위(紫闈), 자위(紫緯)

 

자원앙(紫鴛鴦)

일종의 새 이름이다. 이백(李白)의 시에, “칠십의 자원앙이, 쌍쌍이서 그윽한 정자 좋아하네[七十紫鴛鴦 雙雙戲亭幽].”라고 하였는데, 한 번 지기(知己)가 되면 변하지 않아야 함을 말한다.

 

자원용무휼(子元用武譎)

자원(子元)은 한() 나라 주박(朱博)의 자()이다. 본래 무관 출신으로 자사(刺史)가 되어 관내를 순시할 때, 이민(吏民) 수백 인이 가득 몰려와 사정을 호소하였는데, 종사(從事)가 주박을 시험해 볼 목적으로 일을 처리해 주고 떠날 것을 청하자, 주박이 현령과 속리(屬吏) 등 해당되는 관원을 찾아가 처리토록 지시하여 모두 해산시킨 뒤, 간교한 꾀를 부린 종사를 주살(誅殺)함으로써 위엄있게 지방을 다스렸던 고사이다. 한서(漢書)83

 

자위(慈闈)

살아 계신 자신의 어머니를 말한다.

 

자위(紫緯)

임금의 궁전을 말한다. / 유의어: 자위(紫闈)

 

자위소(慈闈笑)

() 나라 때 준불의(雋不疑)가 경조윤(京兆尹)이 되어 매양 죄수들의 정상을 살피고 돌아오면 그때마다 그의 모친이 불의에게 평번(平反)을 하여 몇 사람이나 살렸느냐?”고 묻는데, 불의가 평번을 많이 시행했다고 대답하면 그의 모친이 기뻐하여 웃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한서(漢書)卷七十一

 

자유(子游)

() 나라 때 공자의 제자인 자유(子游)가 무성(武城)의 수령으로 있으면서 예악(禮樂)으로 가르쳤으므로 고을 사람들이 모두 현가(絃歌)하였다고 한다. 논어(論語)』 「양화(陽貨)

 

자유(子猷)

() 나라 왕희지(王羲之)의 아들인 왕휘지(王徽之)의 자()이다. 그가 회계(會稽)에 있을 때 밤에 눈이 내리자 친구인 대규(戴逵) 생각이 나서 섬계(剡溪)까지 배를 타고 갔다가 문 앞에서 그냥 돌아왔는데 그 이유를 묻자 흥이 일어나서 갔다가 흥이 다해서 돌아왔다[乘興而行 興盡而返].”고 대답한 고사가 전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임탄(任誕)

 

자유(子游)

춘추시대(春秋時代) ()나라 사람으로 성은 언(), 이름은 언()이고, 공자의 제자이다. 공자에게서 학문을 배운 뒤에 노 나라 무성 읍재(武城邑宰)가 되어 그 지방을 예악(禮樂)으로 다스렸고, 유약(有若)의 장례 때 상례를 맡았다. 사기(史記)卷六十七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

 

자유섬계(子猷剡溪)

자유(子猷)는 진() 나라 왕휘지(王徽之)의 자()로 산음(山陰)에 살고 있었다. 섬계는 절강성(浙江省)에 있는 조아강(曹娥江)의 상류인데, 이곳에 대규(戴逵)가 살고 있었으므로 대계(戴溪)라 하기도 한다. 한번은 왕휘지가 눈오는 밤에 친구 대규를 찾아 섬계에 배를 띄우고 갔다가 문 앞에 이르러 되돌아왔다. 사람이 이유를 묻자, 그는 흥이 있어 왔다가 흥이 다하므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였다. 진서(晉書)』 「왕휘지전(王徽之傳)

 

자유유섬계(子猷遊剡溪)

자유(子猷)는 왕휘지(王徽之)의 자()이다. 왕휘지가 설야(雪夜)에 섬계로 대규(戴逵)를 찾아간 것을 말한다.

 

자유홀(子猷笏)

자유(子猷)는 동진(東晉) 때 왕휘지(王徽之)의 자. 왕휘지는 성품이 매우 뇌락하여 얽매임이 없었는데, 그가 일찍이 환충(桓冲)의 기병참군(騎兵參軍)이 되었을 때 환충이 휘지에게 ()이 나의 막부(幕府)에 있은 지 오래니, 우리 서로 잘해보자.” 하였으나, 휘지가 처음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다가 환충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홀()로 턱을 괴고서 말하기를 서산(西山)에 아침이 오니 시원한 기운이 드는군.” 한 데서 온 말로, 어디에도 구애됨이 없이 세속을 초탈하는 것을 말한다.

 

자은사(慈恩寺)

중국 섬서(陝西)장안(長安)의 동남쪽에 있던 당 나라 때의 절인이다.

 

자은제탑(慈恩題塔)

자은사(慈恩寺) 중국 섬서(陝西)장안(長安)의 동남쪽에 있던 당 나라 때의 절인데, 그 곁에 안탑(雁塔)을 세워 인도에서 들여온 불경과 불상을 그곳에 수장하였다. 당 중종(唐中宗) 말기부터 진사에 급제한 사람에 대해 황제가 곡강(曲江)가에서 잔치를 베풀어 주고 안탑에 그 이름을 썼다고 한다.

 

자의(紫衣)

자줏빛 의복. 제왕이 입는 옷으로 임금을 가리킨다.

 

자의소대(紫衣小隊)

천자(天子) 좌우에서 천자를 모시고 있는 시자(侍者).

 

자임(自任)

천하로써 자기의 책임으로 삼는 것으로, 맹자(孟子)』 「만장(萬章), “백이(伯夷)는 성인 가운데 청()한 자이고, 이윤은 성인 가운데 자임한 자이며, 유하혜(柳下惠)는 성인 가운데 화()한 자이고, 공자는 성인 가운데 시중(時中)인 자이다.” 하였다.

 

자자(孶孶)

부지런히 힘써 일하는 모양

 

자자(姊姊)

유모, 생모, 적모, 손윗누이를 이름

 

자자(子子)

자식은 자식된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

 

자자(咨咨)

탄식하는 모양

 

자자어비자(刺刺語婢子)

계집종에게 당부한다는 것은 곧 집을 떠나는 사람이 집안일을 못 잊어서 계집종에게까지 여러 말을 당부하는 것을 이른 말로, 한유(韓愈)가 회골국(回鶻國)에 사신으로 가는 은유(殷侑)를 보내는 서()지금 사람들은 수백 리 밖에만 나가도 정녕스럽게 계집종을 돌아보고 끝없이 많은 말을 당부하는데, 지금 그대는 만리 타국에 사신을 가면서도 말과 표정에 아무런 기미도 나타내지 않으니, 어찌 대장부의 경중(輕重)을 참으로 아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 데서 온 말이다. 한창려집(韓昌黎集)卷二十一

 

자작지얼(自作之孼)

자기가 저지른 일로 인해 생기게 된 재앙을 말한다.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하늘이 지은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지은 재앙은 살아나갈 방도가 없다[天作孽, 猶可違; 自作孽, 不可活].”라는 말이 있다. / 유의어: 자승자박(自繩自縛).

 

자장(子長)

사기(史記)의 저자인 한() 나라 사마천(司馬遷)의 자이다. 사마천은 일찍이 20세부터 중국 천하를 두루 유람하여 식견을 넓히었다. 사기(史記)130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

 

자장(柘漿)

()는 감자(甘蔗)의 뜻으로, 자장은 감자의 즙()을 가리킨다.

 

자장(子將)

후한 때 인물(人物) 평론을 잘하기로 이름이 높았던 허소(許劭)의 자이다.

 

자장격지(自將擊之)

남을 시키지 않고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싸움을 말한다.

 

자장원유(子長遠遊)

자장은 사기(史記)를 지은 사마천(司馬遷)의 자이다. 사마천은 천성이 유람하기를 좋아하여 일찍이 남쪽으로 강수(江水), 회수(淮水)를 유람하고 회계(會稽)로 올라가서 우혈(禹穴)을 보고 구의산(九疑山)을 보았으며, 북쪽으로는 문수(汶水)와 사수(泗水)를 건너 제로(齊魯) 지방을 거쳐 양()과 초()지방까지 두루 유람하였다. 이때 얻은 산천에 대한 지식으로 인해 명문장가가 되었다고 한다. 사기(史記)130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

 

자장유(子長遊)

견문을 넓히기 위해 멀리 유람하는 것을 말한다. 자장은 사기(史記)를 지은 사마천(司馬遷)의 자()이다. 사마천은 천성이 유람하기를 좋아하여 일찍이 남쪽으로 강수(江水), 회수(淮水)를 유람하고 회계(會稽)로 올라가서 우혈(禹穴)을 보고 구의산(九疑山)을 보았으며, 북쪽으로는 문수(汶水)와 사수(泗水)를 건너 제()와 노() 지방을 거쳐 양()과 초() 지방까지 두루 유람하였다. 이때 얻은 산천에 대한 지식으로 인해 명문장가가 되었다고 한다. 사기(史記)130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

 

자장포궤(子張鋪几)

예기(禮記)』 「중니연거(仲尼燕居)(), 너는 꼭 궤연(几筵)을 준비하고 나서 수작(酬酌)해야만 예()가 된다고 여기느냐.” 한 말을 빗대어 인용한 것. ()는 자장(子張)의 이름이다.

 

자전광(武庫紫電光)

붉은 번갯빛이란 바로 곧은 절조를 비유한 것으로, () 나라 왕발(王勃)등왕각서(滕王閣序)자줏빛 번개와 맑은 서릿발 같은 절조는 왕 장군의 무고로다[紫電淸霜王將軍之武庫].” 한 데서 온 말이다.

 

자전무고(紫電武庫)

() 나라 왕발(王勃)등왕각서(滕王閣序)솟아오르는 교룡 같고 날아오르는 봉황과 같나니 그 글은 맹 학사(孟學士)와 같은 문장의 대가에 비길 만하고, 자줏빛 번개 같고 차가운 서릿발과 같나니 그 절조는 장군 왕승변(王僧辯)의 삼엄한 무기고에 비길 만하다[騰蛟起鳳 孟學士之訶宗 紫電淸霜 王將軍之武庫].”라는 말이 나온다.

 

자정(紫淸)

천상으로, ‘신선이 사는 곳을 말한다.

 

자주즙용(資舟楫用)

서경(書經)상서(商書) 열명(說命)큰 물을 건너게 되면 너를 큰 배로 쓰겠고 큰 가뭄이 들면 너를 써서 장마비를 내리게 하리라.”는 대목에서 인용된 것으로, 천자를 보좌하는 대신에 비유하여 쓰는 말이다.

 

자주지보(子州支父)

장자(莊子)』 「양왕(讓王)요 임금이 자주지보에게 천하를 물려주려고 하니, 자주지보가 나를 천자(天子)로 삼으려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내가 마침 우울병이 있어서 지금 막 그것을 치료하려 합니다. 그래서 천하를 다스릴 겨를이 없습니다.’ 하고 사양했다.” 하였다.

 

자죽(慈竹)

대나무 이름으로, 의죽(義竹)ㆍ자효죽(慈孝竹)ㆍ자모죽(子母竹)이라고도 한다. 사계절 죽순이 나오고 새대와 묵은대가 빽빽하게 어우러져 노소(老少)가 서로 의지한 것 같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자중지란(自中之亂)

자기 안에서의 어지러움이란 뜻으로, ‘같은 패 안에서 일어나는 싸움이나 제 편끼리 하는 다툼을 말한다.

 

자지(紫芝)

사호(四皓)가 상산(商山)에 숨어 있을 때에, “빛나는 붉은 지초는 가히 요기할 만하도다[燁燁紫芝 可以療飢].”라는 노래를 지어서 불렀다.

 

자지(紫芝)

탁행(卓行)으로 뛰어난 당 나라 사람 원덕수(元德秀)의 자이다.

 

자지(刺紙)

지금의 명함(名啣)과 같다.

 

자지가(紫芝歌)

상산(商山)의 사호(四皓)가 진()의 난을 피하여 남전산(藍田山)에 들어가 은거하면서, 한 고조(漢高祖)의 초빙에도 응하지 않고 이 자지가(紫芝歌)를 불렀다고 한다. ‘채지조(採芝操)’라고도 한다. 그 가사에 막막한 상락(商洛) 땅에 깊은 골짜기 완만하니, 밝고 환한 자지(紫芝)로 주림을 달랠 만하도다. 황제(黃帝)와 신농씨(神農氏)의 시대 아득하니, 내 장차 어디로 돌아갈거나. 사마(駟馬)가 끄는 높은 수레는 그 근심 매우 크나니, 부귀를 누리며 남을 두려워하느니 차라리 빈천하더라도 세상을 깔보며 살리라.” 하였다.

 

자지곡(紫芝曲)

옛날 노래의 이름이다. () 나라 말엽에 상산사호(商山四皓)인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甪里先生)이 세상이 어지러워진 것을 보고 물러나 은거(隱居)하다가, 한 고조가 초빙하자 사호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빛나고 빛난 영지여, 주림을 면할 수 있네. 당우 세상 가버렸으니, 나는 어디로 간단말가[曄曄靈芝 可以療飢 唐虞往矣 吾當安歸].”라고 노래를 지어 불렀다 한다.

 

자지미(紫芝眉)

미목(眉目)이 청수하고 아름다움을 말한다. 방관(房琯)이 원덕수(元德秀)를 볼 때마다 감탄하며 이르기를, “저 보랏빛 영지같이 청수한 미목(眉目)을 대하면 그때마다 사람으로 하여금 명리(名利)에 관한 마음이 싹 가시게 만든다네.” 하였다고 한다. 당서(唐書)』 「원덕수전(元德秀傳)

 

자지엽엽(紫芝曄曄)

하 황공(夏黃公) 등 네 사람이 진()나라를 피하여 상산(商山)에 숨어살면서 노래를 짓기를, “빛나는 붉은 지초(芝草)는 요기할 만하도다[燁燁紫芝可以療飢].” 하였는데, 그들을 곧 상산사호(商山四皓)라 부른다. / 인용: 感秋(이민구)

 

자지전(柘枝顚)

자지무(柘枝舞)라는 춤을 말하는데, ()의 구준(寇準)이 이 춤을 무척 좋아했으므로 회객(會客)들도 으레 이 춤을 추되, 하루가 다 지나야 그치곤 하였기 때문에 그 당시에 자지전이라 일컬었다. 몽계필담(夢溪筆談)卷五

 

자진(子晉)

왕자교(王子喬). 주 영왕(周靈王) 태자 진()이 신선의 도를 닦아서 후산(緱山)에 피리()를 불며 학을 타고 갔다 한다.

 

자진(子眞)

한 나라 매복(梅福)의 자. 왕망(王莽)이 정권을 제멋대로 하자, 하루 아침에 처자도 가정도 버리고 구강(九江)으로 떠나 오시문졸(吳市門卒)이라고 변성명을 하고 지내다가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한서(漢書)卷六十七

 

자진곡(子眞谷)

정자진(鄭子眞)의 곡구(谷口). 자진은 정박(鄭朴)의 자이고, 곡구는 섬서성(陝西省)에 있는 지명이다. 정자진이 곡구에 살면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암석 아래에서 농사지으면서 살았는데, 이름이 경사(京師)에 진동하였다. 법언(法言)』 「문신(問神)

 

자진곡구(子眞谷口)

정자진(鄭子眞)은 한() 나라 때의 은사로서 평생을 곡구에서 농사를 손수 지으며 은거하였다. 한서(漢書)卷七十二

 

자진귀(子晉歸)

자진(子晉)은 주 영왕(周靈王)의 태자인데 그는 생()을 잘 불어 봉명곡(鳳鳴曲)을 지었다. 그 후 신선을 따라 숭고산(嵩高山)으로 들어가 소식이 없었다. 30년 후 환량(桓良)이란 사람이 만났더니 우리 집에 가서 ‘77일 후씨산(緱氏山) 꼭대기에서 내가 기다리겠다고 전하라.” 하였다. 그날이 되자 과연 학()을 타고 나타났다 한다. 열산전(列仙傳)

 

자진농옥겸소사(子晉弄玉兼簫史)

모두 신선이 되어 날아간 사람인데, 자진(子晉)은 생황을 잘 불었고, 농옥(弄玉)과 소사(簫史)는 퉁소를 잘 불었다고 한다.

 

자천(慈天)

불교에서 말하는 제천(諸天)의 하나이다.

 

자천소오인(自薦笑吾人)

전국시대(戰國時代) 때 진() 나라가 조() 나라를 침입하자, 조 나라의 평원군(平原君)이 초() 나라와 합종(合縱)을 맺기 위해 가면서 식객(食客)들 가운데 재주가 뛰어난 자 20명을 뽑아 데리고 가려 했는데, 19명을 뽑고 한 명은 뽑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모수(毛遂)가 자신을 스스로 천거하니, 평원군이 현사(賢士)가 이 세상에 처하는 것은 송곳이 주머니 속에 있는 것과 같다. 그 끝이 드러나지 않으면 남들이 재주를 알 수가 없다.” 하자, 모수가 저로 하여금 일찌감치 주머니 속에 있게 하였더라면 송곳 끝이 주머니를 뚫고 나왔을 것입니다.” 하였다. 이에 평원군이 모수를 뽑아서 데리고 가자 나머지 19명이 모두 모수를 비웃었다. 평원군이 초왕을 만나서 합종의 이해(利害)에 대해 말하였으나 한나절이 다 되도록 결말이 나지 않았다. 그러자 모수가 칼을 빼들고 단상으로 뛰어올라가 눈을 부릅뜬 채 초왕에게 칼을 겨누어서 합종에 대한 약속을 받아내니, 평원군이 조 나라를 구정(九鼎)이나 대려(大呂)보다도 중하게 만들었다.” 하였다. 사기(史記)76평원군열전(平原君列傳)

 

자철(磁鐵)

자석과 쇠 두 가지를 말함이니, ‘자석이 쇠를 끌어당기듯 서로 끌리고 끄는 사이라는 말이다.

 

자첨(子瞻)

() 나라 때의 문장가인 소식(蘇軾)의 자. 소식은 일찍이 예부랑(禮部郞)을 지냈었다.

 

자첨반룡구(子瞻蟠龍句)

소식(蘇軾)이 반룡사(蟠龍寺)에 가서 자면서 읊은 고금체(古今體). ‘이십칠일 양평(陽平)을 출발, 사곡(斜谷)에 이르러 남산(南山)반룡사에서 자다.’ 하는 시제(詩題)인데 20()로 되어 있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卷四

 

자청(紫淸)

신선이 사는 천상 세계를 말한다.

 

자초지종(自初至終)

처음부터 끝까지의 동안이나 일을 말한다.

 

자추(咨諏)

두루 묻고 의논해야 하는 사신의 일을 말한다. 사신을 전송하는 노래인 시경(詩經)소아(小雅) 황황자화(皇皇者華)달리고 또 달리며 두루 묻고 의논하네[載馳載驅 周爰咨諏].”라는 말이 있다.

 

자추사(子推事)

자추(子推)는 춘추(春秋) 때 진() 나라 개자추(介子推)를 말한다. 그는 일찍이 진 문공(晉文公)에게 허벅지살을 베어 봉양할 정도로 충성을 다했었다. 그 뒤 문 공이 위()에 오른 다음 문공을 수행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녹(祿)을 받았으나 그에게는 녹상(祿賞)이 없었으므로 면산(綿山)에 숨어버렸다. 문공이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그를 불렀으나 응하지 않으므로 산에 불을 놓아 그를 오게 했으나 끝내 타죽고 말았다. 후에 그가 죽은 날을 한식일(寒食日)이라 하여 불을 지피지 않고 그의 덕을 추모하였다. 좌전(左傳)喜公二十四年

 

자춘지우(子春之憂)

증자(曾子)의 제자 악정자춘(樂正子春)이 계단을 내려가다가 발을 다쳤는데, 상처가 다 나은 뒤에도 불효했다는 근심 속에서 몇 달 동안이나 바깥 출입을 삼갔던 고사가 있다. 대대례(大戴禮)』 「증자대효(曾子大孝)

 

자취(紫翠)

자줏빛과 푸른빛. ()하여 산의 경치를 형용한 말이다.

 

자치삼알(雌雉三戛)

논어(論語)』 「향당(鄕黨)공자가 징검다리 위의 산꿩을 보고는 제때를 얻어서 흥겹게 놀고 있다고 탄식을 하자, 자로(子路)가 잡으려 하니 세 번 울고는 하늘로 날아올랐다[曰 山梁雌雉 時哉時哉 子路共之 三戛而作].”는 구절이 있다.

 

자친(慈親)

살아 계신 자신의 어머니를 말한다.

 

자타갱(紫駝羹)

밤색 털을 지닌 낙타의 고기로 끊인 국. 이 고기가 대단히 맛이 좋다고 한다.

 

자타봉(紫駝峯)

낙타의 등살을 말하는 것으로, 진미이다.

 

자패궁(紫貝宮)

초사(楚辭)』 「구가(九歌)하백(河伯)물고기 비늘 집 용의 저택이요, 붉은 조개 누각 붉은 궁궐이로다[魚鱗屋兮龍堂 紫貝闕兮朱宮].”라는 표현이 있다.

 

자패궐(紫貝闕)

자색 조개로 꾸민 문을 말한다.

 

자평(子平)

옛날 성명학(星命學)에 정통했다는 서자평(徐子平)을 말한다.

 

자포자기(自暴自棄)

절망 상태에 빠져서,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여 돌아보지 아니한다. 맹자는, “예의(禮義)가 아닌 말만을 하는 것을 자포(自暴)라 하고, 내 몸이 인의(仁義)를 행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자기(自棄)라 한다.” 하였다. 스스로에게 난폭하게 하고(스스로를 학대하고) 스스로를 버리며 절망 상태에 빠져서 자신을 포기하고 돌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아무런 기대도 걸지 않고 자신이나 일을 되는 대로 방치하는 태도를 말한다. 맹자(孟子)』 「이루(離婁)/ 인용: 여행의 이유와 안 하려는 심리에 대해 상현이의 포기 선언과 자포자기

 

자포파(紫袍把)

() 나라 개원(開元) 연간에 현종(玄宗)이 침향정(沈香亭)에서 양귀비(楊貴妃)와 모란꽃을 완상하다가 이백(李白)을 불러들여 새 악장(樂章)을 짓게 하면서, 짐승 무늬의 비단 도포(錦袍)를 상으로 주기로 했었다. 그런데 악장이 완성되자 현종은 장난삼아 그 비단 도포를 주지 않으므로 이백이 이를 빼앗으려고 하니, 현종이 웃으면서 그대로 주었다는 고사(故事)가 있다.

 

자피(子皮)

치이자피(鴟夷子皮)를 말하는데 춘추(春秋) 시대 범려(范蠡)를 이른다. 범려가 월왕(越王) 구천(句踐)을 도와 오()를 멸한 후 서시(西施)를 데리고 오호(五湖)에서 뱃놀이를 즐기다가 변성명을 하고 치이자피로 자호하면서 세상에 숨었음. 사기(史記)』 「월세가(越世家)

 

자하(紫霞)

선경(仙境)에 떠돈다는 자줏빗의 운기(雲氣)를 말한 것으로, 전하여 신선을 말한다.

 

자하(子夏)

성은 복(), 이름은 상(). 공문 십철(十哲)의 한 사람으로, 시문(詩文)에 뛰어난 후에 위()나라 문후(文侯)의 스승이 됨. 공문 중에서 후세에까지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제자로, 공자가 산정(刪定)시경(詩經)역경(易經)춘추(春秋)를 전했다고 한다.

 

자하(紫霞)

지치빛 운하(雲霞). 발그레한 빛깔의 술을 말한다.

 

자하거(紫河車)

도가(道家)에서 장생약(長生藥)으로 꼽는 선액(仙液)이다.

 

자하거(紫霞車)

신선이 타는 수레.

 

자하곡(紫霞曲)

고려 때에 채홍철(蔡洪哲)이 송악산(松岳山) 아래에 중화당(中和堂)을 짓고 늙은 친구들을 모아 놀면서 자하곡(紫霞曲)을 불렀다. 집이 자하동(紫霞洞)에 있기 때문이다.

 

자하낭(紫荷囊)

육조(六朝) 시대에 상서(尙書)의 어깨 위에 부착한 자주색 주머니를 말하는데, 이는 곧 붓을 꽂아 놓고 항상 임금의 고문(顧問)에 대비했던 것이라 한다.

 

자하동(紫霞洞)

중국의 장산(長山) 양모동(楊謨洞)에 있는 골짜기로 신선이 살고 있다 한다.

 

자하배(紫霞盃)

옛날 항만도(項曼都)라는 사람이 선인(仙人)에게 한 번 얻어 마시고는 몇 개월 동안 배가 고프지 않았다고 하는 술 이름으로, 맛좋은 미주(美酒)를 뜻하는데, 보통 유하주(流霞酒)로 많이 쓴다. 포박자(抱朴子)

 

자하배(紫霞杯)

한 번 마시면 몇 달 동안 배가 고픈 줄을 알지 못한다는 신선의 술 이름이다. 논형(論衡)』 「도허(道虛)

 

자하비(子夏悲)

아들의 죽음을 당한 것을 말한다. 춘추시대(春秋時代) 공자의 제자 자하는 아들의 죽음에 너무 상심하여 실명(失明)까지 하였다. 사기(史記)』 「중니제자전(仲尼弟子傳)

 

자하상(紫霞觴)

하상(霞觴)과 같은 말로 선인(仙人)이 마시는 잔을 이른다.

 

자하선인(紫霞仙人)

고려 때 채홍철(蔡洪哲)이 송악산(崧岳山) 아래 자하동(紫霞洞)에 중화당(中和堂)을 짓고 국가의 원로들을 초청하여 기영회(耆英會)를 베풀었고, 스스로 자하동곡(紫霞洞曲)을 지어 부르면서 자하선인이 와서 헌수(獻壽)하는 의미를 붙였던 데서 온 말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卷四

 

자하성(紫霞城)

주왕산(周王山)에 있는 산성으로 일명 주방산성(周房山城)이라고도 하는데, 신라의 왕자인 김주원(金周元)이 고려의 군사를 막기 위하여 쌓은 성이라고 한다.

 

자하장(紫霞漿)

하장(霞漿). 곧 선약(仙藥)의 이른다. 습유기(拾遺記)구름에서 흘러나오는 진액이 있는데, 이것을 하장이라 한다.” 하였다.

 

자하준(紫霞尊)

신선이 마신다는 유하주(流霞酒) 술잔을 말한다. 어떤 사람이 신선에게 이끌려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 술을 한 잔씩 얻어 마실 때마다 몇 개월씩 배가 고프지 않았다는 전설이 전한다. 논형(論衡)』 「도허(道虛)

 

자학(字學)

글자의 근원ㆍ원리ㆍ음()ㆍ뜻 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자합(子合)

주희(朱熹)의 문인인 왕우(王遇)의 자.

 

자항(慈航)

불교에서 쓰는 용어로, 부처와 보살이 자비스런 마음으로 대중을 제도하여 생사의 고해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 마치 배로 사람들을 태워 물을 건너게 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자허(子虛)

가공의 인물이다. 사마상여(司馬相如)자허부(子虛賦)는 자허와 망시공(亡是公)과 오유선생(烏有先生) 세 사람의 문답으로 되었는데, “헛 것[子虛]이 이런 것이 없다[亡是公]. 어디 있었으냐[烏有].”라는 뜻이다.

 

자허보경(紫虛寶經)

도교(道敎)의 경전(經典).

 

자허부(子虛賦)

() 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작품으로, 제후의 수렵에 관한 일을 서술하며 풍간(諷諫)의 뜻을 담았다.

 

자허오유(子虛烏有)

한 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자허부(子虛賦)에서 자허와 오유선생(烏有先生)과 무시공(亡是公) 세 사람을 빙자해서 말을 했는데, 자허는 빈 말이라는 뜻이고 오유 선생은 무엇이 있느냐는 뜻이고 무시공은 이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후세 사람들이 허무한 일을 말할 때는 흔히 자허ㆍ오유라 하였다.

 

자허자(子虛子)

실제로 없는 공상적(空想的)인 인물로 쓰는 것이다.

 

자형(子荊)

() 나라 손초(孫楚)의 자(), 석포(石苞)의 휘하에서 군사(軍事)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두보(杜甫)의 시에 記室得何遜 韜鈐延子荊이라는 구절이 있다.

 

자형수(紫荊樹)

형제들끼리 서로 우애함을 이른다. 옛날 전진(田眞)이란 사람의 형제 세 사람이 재산을 똑같이 나누고 나니, 당전(堂前)에 자형수(紫荊樹) 한 그루만이 남았으므로, 세 사람이 이를 세 조각으로 나누어 갖기로 합의를 하고, 다음날 그 나무를 자르려고 가보니, 나무가 마치 불에 탄 것처럼 말라 있었다. 그러자 전진이 크게 놀라 아우들에게 말하기를 나무가 본디 한 그루인데 장차 쪼갠다는 말을 듣고 이때문에 말라 버린 것이니, 우리는 나무만도 못하다.” 하고, 다시 그 나무를 베지 않기로 하니 나무가 그 즉시 잎이 무성해졌다. 형제들이 거기에 감동하여 다시 재산을 합해서 삶으로써 마침내 효우(孝友)의 가문이 되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속제해기(績齊諧記)』 「자형수(紫荊樹)

 

자형절(紫荊折)

자형(紫荊)의 아픔은, 전씨(田氏) 형제 세 사람이 재산을 분배하면서 뜰에 서 있는 자형(紫荊) 한 그루까지도 삼등분(三等分)하려 하자 나무가 말라죽는 것을 보고는 크게 깨달아 다시 형제의 우애를 되찾았다는 고사이다.

 

자형화(紫荊花)

상체화(常棣花)인데, 꽃이 서로 뭉쳐 피므로 형제에게 비유된다. 남조(南朝) () 나라 경조(京兆) 사람인 전진(田眞) 삼 형제가 각기 재산을 나누어 가지고 마지막으로 뜰에 심어놓은 자형화(紫荊花)를 갈라서 나누어 가지려 하니 자형화가 곧 시들었다. 삼 형제가 이에 뉘우치고 다시 재산을 합하니, 자형화가 다시 무성하게 자랐다 한다. 속제해기(績齊諧記)』 「자형수(紫荊樹)

 

자호(紫狐)

들에 사는 여우를 말한다. 유양잡조(酉陽雜俎), “구설(舊說)에 들여우를 자호(紫狐)라고 하였는데, 한밤중에 꼬리를 쳐서 불을 일으킨다.” 하였다.

 

자호필(紫毫筆)

신하들이 자신의 직분에 충실치 않은 것을 기롱한 시의 제목으로 풍유(諷諭)에 보인다.

 

자화경(子華輕)

좋은 갖옷을 입고 간다는 뜻이다. 자화(子華)공자의 제자 공서적(公西赤)의 자()이다. 논어(論語)』 「옹야(雍也)에 공자는 공서적이 제() 나라에 갈 적에 살찐 말을 타고 가벼운 갖옷을 입었다[赤之適齊也, 乘肥馬, 衣輕裘].” 한 말이 있으므로 인용한 것이다.

 

자화자찬(自畵自讚)

자기가 그린 그림에 자기가 찬()을 쓰는 일을 말한다. ()이란 그림에 써 넣는 시나 글로서 주로 칭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찬은 본래 스승, 선배, 동문 등 다른 사람이 써주는 것이다.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스스로 칭찬을 하거나 추켜 올리는 것을 가리킨다.

 

자황(紫皇)

도교의 전설 속에 나오는 최고의 신선 이름이다. 태평어람(太平御覽)도부(道部) ()비요경(祕要經)태청(太淸)의 아홉 궁()에는 모두 요속(僚屬)이 있는데 그 중 가장 높은 자를 천황(天皇), 또는 자황이라 부른다.’하였다.” 한다.

 

자황(訾黃)

용의 날개에 말의 몸을 지녔다는 옛날 신마(神馬)의 이른다.

 

자황(雌黃)

유황과 비소의 혼합물. 노란색의 채료(彩料)로서 옛날에 이를 시문(詩文)의 첨삭(添削)에 썼으므로, 전하여 시문을 짓고 첨삭하는 뜻으로 쓰인다.

계관석(鷄冠石)이라고도 부르는 일종의 광물이며, 이를 재료로 여러 가지 안료(顔料)를 만들었다. 한구의(한구의(漢舊儀))

 

자황론(雌黃論)

옛날 누른 종이에 글을 쓰고 잘못된 글이 있으면 자황을 칠하여 지우고 다시 그 위에 썼으므로 전하여 자구(字句)의 첨삭(添削)’에 비유한 말이다.

 

자황어(雌黃語)

조정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며 비평하는 말을 말한다.

 

자황포(柘黃袍)

수 문제(隋文帝)가 처음 입었다는 적황색의 황제 복장이다.

 

자회감(蔗回甘)

진 나라 고개지(顧愷之)가 사탕수수를 씹을 때 항상 꼬리에서부터 씹으면서 차츰 가경(佳境)으로 들어간다.” 하였다. ()로부터 차츰 낙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자효(慈孝)

모자(母子)를 가리킨다.

 

자후(子厚)

정재물(鄭載物)의 호()이다.

 

자후우(子厚愚)

자후는 당 나라 때의 문인인 유종원(柳宗元)의 자이다. 유종원이 칠석날걸교문(乞巧文)을 지으면서 나는 교()보다 우()를 취하겠다.” 하였다.

 

자휘(字彙)

자전(字典)ㆍ사전(辭典)과 같은 것이다. () 나라 매응조(梅膺祚)가 편찬했다.

 

자휴(恣睢)

자득하는 모양. 여유있고 방자하다.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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