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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생각함으로 자신을 향기롭게 윤택하게 하라 수윤당기(漱潤堂記) 김택영(金澤榮) 깨우침의 세계, 신비하고 놀라워 天下之所謂道術文章者, 莫不由勤而精, 由悟而成. 苟能悟之, 則向之聞一而不知一者, 可以知十百矣; 向之遠在千萬里之外者, 可以逢諸左右矣; 向之戛戛乎難者, 可以油油然化爲易矣; 向之求之於千萬卷之書者, 一二卷而足矣; 向之言法言訣者, 無所謂法訣者矣. 瓦礫可使爲金玉, 而升斗可使爲釜鍾. 入之無窮, 出之不竭, 何其快矣. 요령 피우지 말고 생각하는 것부터 해나가라 雖然悟之之道, 無方無體, 不可以握, 不可以定. 昔者成連見海波之洶湧而悟琴之道, 成連固如此矣. 假令復有人慕成連之事, 而抱琴更立於海波洶湧之際, 則當何如哉? 夫成連之悟, 乃屢年深思之力之所爲, 而非一朝之間無故而致者. 故與其勸人以悟, 毋寧勸人以思; 臨淵羡魚, 不如退而結..
문을 미는 것과 두드리는 것의 차이 推敲 島初赴擧京師. 一日於驢上得句云: “鳥宿池邊樹, 僧敲月下門.” 始欲着‘推’字, 又欲作‘敲’字, 煉之未定, 遂於驢上吟哦, 時時引手作推敲之勢, 觀者訝之. 時韓愈吏部權京兆, 島不覺衝至第三節. 左右擁至尹前, 島具對所得詩句云云. 韓立馬良久, 謂島曰: “作敲字佳矣.” 遂與幷轡而歸, 共論詩, 道留連累日, 與爲布衣之交. -『湘素雜記』 해석 島初赴擧京師. 賈島가 처음으로 장안으로 과거 시험을 갈 때였다. 一日於驢上得句云: “鳥宿池邊樹, 僧敲月下門.” 하루는 말 위에서 시구를 얻었으니, 다음과 같다. 鳥宿池邊樹 僧推月下門 새는 연못 가 나무에서 잠들고 스님은 달빛 아래 문을 미누나. 始欲着‘推’字, 又欲作‘敲’字, 처음엔 ‘밀다推’로 쓸까 하다가, 또 ‘두드리다敲’로 쓸까 하다가 煉..
큰 세계를 문장으로 담아올 도은의 문집을 기대하며도은문집서(陶隱文集序) 정도전(鄭道傳) 문장이 지향해야 하는 경지日月星辰, 天之文也; 山川草木, 地之文也; 詩書禮樂, 人之文也. 然天以氣, 地以形, 而人則以道, 故曰: “文者, 載道之器.” 言人文也得其道, 詩書禮樂之敎, 明於天下, 順三光之行, 理萬物之宜, 文之盛至此極矣. 문장을 올바르게 사용한 중국 문인의 예士生天地間, 鍾其秀氣, 發爲文章. 或揚于天子之庭, 或仕于諸侯之國. 如尹吉甫在周, 賦穆如之雅; 史克在魯, 亦能陳無邪之頌, 至於春秋列國大夫, 朝聘往來, 能賦稱詩, 感物喩志. 若晉之叔向, 鄭之子產, 亦可尙已, 及漢盛時, 董仲舒ㆍ賈誼之徒出, 對策獻書, 明天人之蘊, 論治安之要, 而枚乘ㆍ相如, 遊於諸侯, 咸能振英摛藻, 吟詠性情, 以懿文德. 문장이 우리나라에 전파된..
도산십이곡을 지은 이유도산십이곡발(陶山十二曲跋) 이황(李滉) 세상에 유행하는 노래들은 음란하고 불공하기만 하다右『陶山十二曲』者, 陶山老人之所作也. 老人之作此, 何爲也哉? 吾東方歌曲, 大抵多淫哇不足言. 如翰林別曲之類, 出於文人之口, 而矜豪放蕩, 兼以褻慢戲狎, 尤非君子所宜尙. 惟近世有李鼈六歌者, 世所盛傳, 猶爲彼善於此. 亦惜乎其有玩世不恭之意, 而少溫柔敦厚之實也 도산십이곡이 유행해야 하는 이유老人素不解音律, 而猶知厭聞世俗之樂. 閒居養疾之餘, 凡有感於情性者, 每發於詩. 然今之詩異於古之詩, 可詠而不可歌也. 如欲歌之, 必綴以俚俗之語, 蓋國俗音節, 所不得不然也. 故嘗略倣李歌, 而作爲陶山六曲者二焉, 其一言志, 其二言學. 欲使兒輩朝夕習而歌之, 憑几而聽之, 亦令兒輩自歌而自舞蹈之, 庶幾可以蕩滌鄙吝, 感發融通, 而歌者與聽者,..
기녀가 부르는 스승의 ‘사미인곡’을 듣고 감정에 사무친 이안눌 (龍山月夜 聞歌姬唱故寅城鄭相公思美人曲 率爾口占 示趙持世昆季) 권필에 대한 얘기를 할 때 말했던 것처럼, 시를 평가할 때 권필과 이안눌은 곧잘 비교대상이 되곤 했다. 아마도 송강이란 같은 스승 밑에서 동문수학한 사이인 데다가, 돌아가신 스승을 느꺼워하며 시를 지었기 때문에 비교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허균을 위시한 주위 사람들의 평판에 오르내릴 정도였다면, 둘 사이는 매우 돈독했으리란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권필과 이안눌의 지음 같은 관계 권필은 「宮柳詩」 로 인해 곤장을 맞게 됐고, 어찌나 심하게 맞았던지 귀양을 가던 도중에 죽었다는 얘기는 권필에 대해 얘기했던 그대로다. 권필로서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고 참 가슴 아픈 얘기지만, ..
용산의 달밤에 기녀가 故 인성 정철의 사미인곡을 부르는 걸 듣고 바로 읊어 조지세 형제에게 준 시용산월야 문가희창고인성정상공사미인곡 솔이구점 시조지세곤계(龍山月夜 聞歌姬唱故寅城鄭相公思美人曲 率爾口占 示趙持世昆季) 이안눌(李安訥) 江頭誰唱美人詞 正是孤舟月落時惆悵戀君無限意 世間惟有女郞知 『東岳先生續集』 해석江頭誰唱美人詞강두수창미인사강가에서 누가 「사미인곡」을 부르나, 正是孤舟月落時정시고주월락시바로 이때는 외로운 배에 달이 질 때라네.惆悵戀君無限意추창련군무한의애달프다, 그대를 그리워하는 무한한 뜻을世間惟有女郞知세간유유녀낭지세상에서 오직 기녀만이 알아주는 구려. 『東岳先生續集』 해설이 시는 용산 달밤에 가기(歌妓)가 고 인성 정철(鄭澈)의 사미인곡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바로 시를 읊어 조지세 형제에게 준 시이다..
스승 정철의 ‘將進酒辭’를 듣고서 마음 아파한 권필(過松江墓有感) 권필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당연히 「宮柳詩」다. 광해군의 외척인 柳希奮이 국정을 농단하는 것을 보며 권필은 시를 지었다. 宮柳靑靑花亂飛궁궐의 버드나무 하늘하늘 어지러이 날리니滿城冠蓋媚春暉온 도성 내의 고관대작들이 임금님의 은혜라 아첨하는 구나.朝家共賀升平樂조정에선 태평성세의 즐거움이라 함께 치하하나,誰遣危言出布衣누가 지조 있는 말을 포의에게서 나오게 했나[각주:1]? 『石洲集』 시가 사람을 죽이게 할 수도 있다 1구에 나오는 ‘柳’를 보며 사람들은 모두 임숙영을 생각했지만, 임숙영 자신은 그건 중전을 가리킨다고 말했고, 광해군도 이에 크게 화를 내며 신문을 하게 된다. 이때 권필은 “임숙영이 과거 시험 중 대책..
임무숙이 삭과됐다는 걸 듣고문임무숙삭과(聞任茂叔削科) 권필(權韠) 宮柳靑靑花亂飛 滿城冠蓋媚春暉朝家共賀升平樂 誰遣危言出布衣 『石洲集』 卷之七 해석宮柳靑靑花亂飛궁류청청화난비궁궐의 버드나무 하늘하늘 어지러이 날리니滿城冠蓋媚春暉만성관개미춘휘온 도성 내의 고관대작【관개(冠蓋): 높은 벼슬아치가 타는 수레.】들이 임금님의 은혜【춘휘(春暉): 봄철의 따뜻한 볕을 들어 부모의 은혜에 비유한 것. 맹교(孟郊)의 「유자음(遊子吟)」에, “어느 뉘라 촌초(寸草)만한 정성으로 봄볕 같은 은혜를 갚는다 하리[誰言寸草心 報得三春暉].” 하였다.】라 아첨하는 구나.朝家共賀升平樂조가공하승평악조정에선 태평성세의 즐거움이라 함께 치하하나,誰遣危言出布衣수견위언출포의누가 지조 있는 말을 포의에게서 나오게 했나【광해군의 비(妃) 유씨(柳氏)..
송강 정철 스승의 무덤을 지나며 느꺼움이 있어과정송강묘유감(過鄭松江墓有感) 권필(權韠) 空山木落雨蕭蕭 相國風流此寂寥惆悵一杯難更進 昔年歌曲卽今朝 公嘗有短歌, 道死後誰勸一杯酒之意. 『石洲集』 卷之七 해석空山木落雨蕭蕭공산목락우소소빈 산 나뭇잎 지고 비는 부슬부슬相國風流此寂寥상국풍류차적요재상의 풍류 이로부터 적막하여졌네. 惆悵一杯難更進추창일배난갱진슬프구나, 한 잔 다시 올리기 어려우나昔年歌曲卽今朝석년가곡즉금조옛 노랫가락은 곧 지금의 노랫가락이구나. 『石洲集』 卷之七 公嘗有短歌, 정철 공께서 일찍이 「장진주사(將進酒辭)」라는 단가를 지었으니, 道死後誰勸一杯酒之意. ‘사후에 누가 한 잔 술 권할까?’라는 뜻을 말했었다. 해설이 시는 스승인 정철(鄭澈)의 무덤을 지나면서 지난날 그의 풍류를 회고하며 노래한 것이다. ..

‘비 갠 후의 달’로 당명을 지은 이유 제월당기(霽月堂記) 김창협(金昌協) 보통 사람이 자연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 晝夜之相代, 而日月互爲光明; 四時之運行, 而風雲變化, 草木彙榮, 此有目者之所共覩也. 而世之高賢逸士, 乃或專之以爲己樂, 若人不得與焉者, 何哉? 勢利誘乎外, 則志意分; 嗜欲炎於中, 則視聽昏. 若是者, 眩瞀勃亂, 尙不知其身之所在, 又何暇於玩物而得其樂哉? 자연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려면 夫惟身超乎榮辱之境, 心游乎事爲之表, 虛明靜一, 耳目無所蔽, 則其於物也, 有以觀其深, 而吾之心, 固泯然與天機會矣. 此其樂, 豈夫人之所得與哉? 是以, 必其爲「歸去來賦」者, 然後可以涼北窻之風矣; 必其爲「擊壤吟」者, 然後可以看洛陽之花矣. 此我後谷宋先生之所以有霽月堂者歟. ‘제월(霽月)’이라 이름을 지은 이유..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대해사물잠(四勿箴) 정이(程頤) 其視箴曰: ‘心兮本虛, 應物無迹. 操之有要, 視爲之則. 蔽交於前, 其中則遷. 制之於外, 以安其內. 克己復禮, 久而誠矣.’ 其聽箴曰: ‘人有秉彝, 本乎天性. 知誘物化, 遂亡其正. 卓彼先覺, 知止有定. 閑邪存誠, 非禮勿聽.’ 其言箴曰: ‘人心之動, 因言以宣. 發禁躁妄, 內斯靜專. 矧是樞機, 興戎出好, 吉凶榮辱, 惟其所召. 傷易則誕, 傷煩則支, 己肆物忤, 出悖來違. 非法不道, 欽哉訓辭!’ 其動箴曰: ‘哲人知幾, 誠之於思; 志士勵行, 守之於爲. 順理則裕, 從欲惟危; 造次克念, 戰兢自持. 習與性成, 聖賢同歸.’” 『논어(論語)』 「안연(顔淵)」 해석 시잠(視箴) 心兮本虛, 應物無迹. 마음은 본래 비어 있어 사물에 응함에 자취가 없다. 心之體, ..
가지의 시에 화답하다봉화가지사인조조대명궁(奉和賈至舍人早朝大明宮) 두보(杜甫) 五夜漏聲催曉箭 九重春色醉仙桃旌旗日暖龍蛇動 宮殿風微燕雀高朝罷香煙攜滿袖 詩成珠玉在揮毫欲知世掌絲綸美 池上於今有鳳毛 해석五夜漏聲催曉箭오야루성최효전오경의 물시계소리 새벽을 재촉하니, 九重春色醉仙桃구중춘색취선도구중궁궐의 봄빛 복숭아꽃에 취하네. 旌旗日暖龍蛇動정기일난룡사동해가 따뜻해지자 용과 뱀이 꿈틀대는 것 같고, 宮殿風微燕雀高궁전풍미연작고궁전에 바람 살랑 부니 제비와 까치 높이 나네. 朝罷香煙攜滿袖조파향연휴만수조회 끝나자 향기로운 연기를 소매 가득 이끌고(소맹에 가득 찼고), 詩成珠玉在揮毫시성주옥재휘호시가 이루어지자 구슬과 옥이 휘두르는 봇에 있다(주옥같은 시가 이루어진다). 欲知世掌絲綸美욕지세장사륜미대대로 사륜을 관장해온 아름다움을 알..
아침에 대명궁에서 조회를 마치고 나서 문화성과 중서성의 친구들에게 주다조조대명궁정량성료우(早朝大明宮呈兩省僚友) 가지(賈至) 銀燭朝天紫陌長 禁城春色曉蒼蒼千條弱柳垂靑瑣 百囀流鶯遶建章劍佩聲隨玉墀步 衣冠身惹御爐香共沐恩波鳳池上 朝朝染翰侍君王 해석銀燭朝天紫陌長은촉조천자맥장은촛불 켜고 조회 가는 길은 길고, 禁城春色曉蒼蒼금성춘색효창창궁궐의 봄색 새벽이라 검푸르네.千條弱柳垂靑瑣천조약류수청쇄천 가닥 연약한 버들 궁궐문에 드리워졌고,百囀流鶯遶建章백전류앵요건장온갖 소리로 울면서 날아다니는 앵무새가 건장궁(漢의 궁전)에 가득하네.劍佩聲隨玉墀步검패성수옥지보검과 패의 소리는 옥계단의 걸음을 따르고,衣冠身惹御爐香의관신야어로향의관 갖춘 황제 화로의 향기에 물든다. 共沐恩波鳳池上공목은파봉지상함께 봉황지 안에서 은혜로운 물결로 목욕하고..
천수절에 신하 이색이 고려의 표문을 올리는 신하를 따라서 대명전에 들어가 뵈다천수절일 신색종본국진표배신 입근대명전(天壽節日 臣穡從本國進表陪臣 入覲大明殿) 이색(李穡) 大闢明堂曉色寒 旌旗高拂玉欄干雲開寶座聞天語 春滿霞觴奉聖懽六合一家堯日月 三呼萬歲漢衣冠不知身世今安在 恐是靑冥控紫鸞 『東文選』 卷之十六 해석大闢明堂曉色寒대벽명당효색한크게 열린 궁궐, 새벽 빛 차갑고旌旗高拂玉欄干정기고불옥난간깃발 높이 펄럭여 옥난간을 스친다. 雲開寶座聞天語운개보좌문천어구름 걷힌 보좌에선 황제의 말씀 들리고春滿霞觴奉聖懽춘만하상봉성환봄이 가득한 술잔【하상(霞觴): 구하상(九霞觴)으로, 신선주가 담긴 술잔을 가리킨다. 당(唐) 허작(許碏)의 「취음(醉吟)」에 “낭원의 꽃밭 앞이 바로 취향이라, 서왕모의 구하상을 밟아 엎었다오[閬苑花前是醉鄕..
범증은 사람을 알아보는 눈도 없었고 실력도 없었다 범증론(范增論) 이제현(李齊賢) 항우는 무뢰배임에도 범증은 제대로 볼 줄 몰랐다 或問: “漢用三傑而王, 楚不用范增而亡, 然則增孰與三傑賢?” 曰: “增方之陳平, 猶謂不足, 況於三傑乎? 高祖之寬仁, 項羽之禍賊, 增所知也. 莫不信於背約, 而羽背入關之約; 莫不仁於殺無罪, 而羽坑已降之卒; 莫不義於弑君, 而羽殺懷王. 其至五年而後亡, 亦幸也. 유방이 왕이 되리란 건 모두 가 알고 있었음에도 범증만 알지 못했다 高祖則初入關也, 五星聚于東井, 天與之也. 其王漢中也. 楚子諸侯人之慕從者數萬人, 而項氏爪牙之臣亦多歸漢. 人與之也. 王陵之母甘自殺, 而不忍其子之背漢與楚. 高祖之必王, 項羽之必亡, 匹婦之所明知也. 增從必亡之人, 不能從必王之主, 其爲不智明矣. 向使羽用增之策, 終亦未免於..

길 가에서 비를 피하며 느낀 게 있어서도중피우 유감(途中避雨 有感) 이곡(李穀) 甲第當街蔭綠槐 高門應爲子孫開年來易主無車馬 惟有行人避雨來 『稼亭先生文集』 卷之十六 해석甲第當街蔭綠槐 갑제당가음록괴 큰 집【갑제(甲第): 너르고 큰 잘 지은 집, 두보(杜甫)의 「취시가(醉時歌)」에 “즐비한 저택에선 좋은 음식과 고기가 싫증나나 광문선생은 먹을 밥도 부족하다네[甲第紛紛厭粱肉 廣文先生飯不足].”라고 쓰여 있다】 그 당시 거리엔 푸른 회화나무 우거졌겠고高門應爲子孫開고문응위자손개높은 문 응당 자손을 위해 문을 열었겠지.年來易主無車馬 년래역주무거마 근래에 주인이 바뀌어 거마가 끊겼고惟有行人避雨來유유행인피우래오직 나그네만이 비 피하러 들어오네. 『稼亭先生文集』 卷之十六 해설1ㆍ2구는, 우선 그 배경인 여러 고사를 알고서야..
회음을 지나다가 빨래터 아낙의 일에 느낌이 있어과회음 유감표모사(過淮陰 有感漂母事) 이숭인(李崇仁) 一飯王孫感慨多 不知葅醯竟如何孤墳千載精靈在 笑殺高皇猛士歌 「陶隱先生詩集」 卷之三 해석一飯王孫感慨多일반왕손감개다왕손에게 한 번 밥을 줌은 감개함이 많아서니,不知葅醯竟如何부지저혜경여하모르겠네, 젓갈 담아 죽인 것은 끝내 어째서인지孤墳千載精靈在고분천재정령재외로운 무덤 천년 뒤에도 정령이 남아 있어笑殺高皇猛士歌소살고황맹사가유방의 「맹사가」를 비웃었네【소살(笑殺): ① 웃어넘기고 문제 삼지 않음 ② 큰 소리로 비웃음】. 「陶隱先生詩集」 卷之三 해설이 시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을 당한 한신(韓信)의 운명을 슬퍼하면서 중용(重用)하지 못한 한(漢) 고조(高祖)를 풍자하고 있다. 빨래터 아주머니[漂母]가 한신(韓信)의 인물..
빨래터 아낙의 무덤을 지나며회음표모분(淮陰漂母墳) 이제현(李齊賢) 重士憐窮義自深 豈將一飯望千金歸來却責南昌長 未必王孫識母心 婦人猶解識英雄 一見慇懃慰困窮自棄爪牙資敵國 項王無賴目重瞳 『益齋亂稿』 卷第一 해석重士憐窮義自深중사련궁의자심선비를 중하게 여기고 곤궁함을 가련히 여긴 의가 스스로 깊으니, 豈將一飯望千金기장일반망천금어찌 한 밥을 가지고 천금을 바랐으랴?歸來却責南昌長귀래각책남창장한신은 돌아와 도리어 남창의 어르신【남창장(南昌長): 한신은 南昌亭長의 집에서도 밥을 빌어먹었으나 정장의 아내는 한신을 귀찮게 여겨 밥을 일찍 지어 먹고는 한신이 가면 밥이 없다고 거절했음. 한신이 초왕이 되어서 성공한 후 표모에게 금 천근을 주어 사례했고 남창 정장을 불러서는 “그대는 소인(小人)이라 은혜를 끝까지 베풀지 못하더구만..
별 볼일 없어진 나를 전처럼 생각해주는 제자 상적에게 세한도발문(歲寒圖跋文) 김정희(金正喜) 시들어 버린 스승을 예전처럼 대해주는 제자야 去年以『大雲』ㆍ『晩學』二書寄來, 今年又以藕耕『文編』寄來. 此皆非世之常有. 購之千萬里之遠, 積有年而得之, 非一時之事也. 且世之滔滔, 惟權利之是趍, 爲之費心費力如此. 而不以歸之權利, 乃歸之海外蕉萃枯槁之人, 如世之趨權利者. 太史公云 “以權利合者, 權利盡而交疏” 君亦世之滔滔中一人. 其有超然自拔於滔滔, 權利之外不以權利視我耶. 太史公之言非耶! 소나무와 잣나무 같은 제자의 마음에 감동하여 孔子曰: “歲寒, 然後知松栢之後凋” 松栢是毋四時而不凋者. 歲寒以前一松栢也, 歲寒以後一松栢也. 聖人特稱之於歲寒之後. 今君之於我, 由前而無可焉, 由後而無損焉. 然由前之君, 無可稱, 由後之君. 亦可見稱..
얼룩진 대나무의 원한반죽원(斑竹怨) 이달(李達) 二妃昔追帝 南奔湘水間이비석추제 남분상수간有淚寄湘竹 至今湘竹班유루기상죽 지금상죽반雲深九疑廟 日落蒼梧山운심구의묘 일락창오산餘恨在江水 滔滔去不還여한재강수 도도거불환 『蓀谷詩集』 卷之一 해석二妃昔追帝 南奔湘水間두 왕비 옛적에 순임금 따라, 남쪽 상수 사이를 달렸지.有淚寄湘竹 至今湘竹班눈물이 흘러 상수의 대나무를 적시니, 지금은 상수 대나무 얼룩져 있구나.雲深九疑廟 日落蒼梧山구의묘는 구름 깊은 곳에 있고, 창오산【창오지망(蒼梧之望): 임금의 죽음을 이르는 말. 중국의 순(舜) 임금이 창오에서 죽은 데에서 유래한다.】에선 해가 진다.餘恨在江水 滔滔去不還남은 한 강물에 있는데 도도히 흘러 돌아오질 않는구나. 『蓀谷詩集』 卷之一 인용작가 이력 및 작품우리 한시를 읽다遠別..
변산 소래사에서변산소래사(邊山蘇來寺) 정지상(鄭知常) 古徑寂寞縈松根 天近斗牛聯可捫浮雲流水客到寺 紅葉蒼苔僧閉門秋風微凉吹落日 山月漸白啼淸猿奇哉尨眉一老衲 長年不夢人間喧 『東文選』 卷之十二 해석古徑寂寞縈松根고경적막영송근옛길 적막하여 소나무뿌리 얽혀 있고 天近斗牛聯可捫천근두우련가문하늘은 가까워 북두칠성을 멋대로 만질 수 있을 듯하네.浮雲流水客到寺부운류수객도사뜬 구름과 흐르는 물 따라 손님이 사찰에 이르면紅葉蒼苔僧閉門홍엽창태승폐문붉은 잎사귀 푸른 이끼 낀 사찰의 스님은 문을 닫네.秋風微凉吹落日추풍미량취락일가을바람 미풍이고 스산한데 해를 불어 떨어뜨리고山月漸白啼淸猿산월점백제청원산의 달은 점점 밝아져 맑은 원숭이의 울음소리 들려오네. 奇哉尨眉一老衲기재방미일로납기이하구나! 눈썹 짙은 늙은 스님長年不夢人間喧장년불몽인간훤긴..
노니는 물고기유어(游魚) 이규보(李奎報) 圉圉紅鱗沒復浮 人言得意好優游細思片隙無閑睱 漁父方歸鷺又謀 『東國李相國全集』 卷第十三 해석圉圉紅鱗沒復浮어어홍린몰부부비리비리한 붉은 물고기 물에 빠졌다가 다시 나타나니,人言得意好優游인언득의호우유사람들은 ‘뜻을 얻어 잘 노닌다’고 말하네.細思片隙無閑睱세사편극무한하곰곰이 생각하면 조금도 한가하지 못하니,漁父方歸鷺又謀어부방귀로우모어부가 곧 돌아가면 해오라기가 또 도모하려 하겠지. 『東國李相國全集』 卷第十三 해설이 시는 겉으로는 유영(游泳)하고 있는 물고기의 생활을 읊고 있으나, 내면적으로는 인간세계의 생존경쟁의 문제를 빗대고 있는 시이다. 시내에 파닥거리는 붉은 비늘을 가진 물고기가 수면으로 올라왔다가 다시 물아래로 들어가고 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물고기가 아무런 걱..
꾀꼬리소리를 듣고 문앵(聞鶯) 이규보(李奎報) 公子王孫擁綺羅 공자와 왕손이 기생을 끼니 要憑嬌唱助歡多 요컨대 교태로움과 노래가 즐거움을 도와줌이 많기 때문이라네. 東君亦解人間樂 동군 또한 인간의 즐거움을 이해하는지, 開了千花遣爾歌 온 꽃이 피길 마치자 너의 노래(鶯聲) 보내주네. 斂去藏何處 啼來必此時 갈 때는 어느 곳에 숨었다가 올 때는 반드시 이 때에 우는가. 有期還有信 爲鳥頗靈奇 시기도 있고 믿음도 있으니 새가 되었음에도 매우 신령하고 기이하구나. 鵶鳶不堪見 朝夕尙䎀䎀 까마귀와 솔개 보길 싫은데도 아침저녁으로 오히려 훨훨 나는구나. 將爾色音好 其來何苦遲 너의 모습과 소리 좋아하는데 오는 건 왜 무르고 더딘가? 『東國李相國全集』 卷第十四 인용 작가 이력 및 작품 보한집 소화시평 상권30 19년 A형 8번
20. 한시에 특출났던 임종비의 자신감청우(靑牛) 毅王初, 靑郊驛吏養一靑牛, 狀貌特異, 獻諸朝. 上命近署詞臣賦詩占韻, 而韻險峭, 莫不有難色. 東館金孝純爲第一, 玉堂愼應龍次之. 金云‘鳳慚覽德來巢閣, 馬愧儲精上應房.’ 愼云‘叩角昔嗟逢寗子, 釁鍾今免過齊堂’ 上讀之數四曰: “使事雖工, 而語頗涉不恭, 故以爲亞.” 因賜上尊酒, 疋帛各有差. 而西河林宗庇亦才士也, 聞之歎曰: “使我得預其席 當曰: ‘桃林春放踏紅房’” 竟未得其對, 今追續之, ‘銀河水渚隨仙女, 黑牧丹花到雪堂. 函谷曉歸浮紫氣, 桃林春放踏紅房’ 해석毅王初, 靑郊驛吏養一靑牛, 의종 초에 청교역리가 한 마리 푸른 소를 길렀는데, 狀貌特異, 獻諸朝. 모양이 매우 특이하여, 조정에 바쳤다. 上命近署詞臣賦詩占韻, 임금께서 근서사신(近署詞臣)에게 운을 달아 시를 짓게 했..
세모에 남산을 돌아가다세모귀남산(歲暮歸南山) 맹호연(孟浩然) 北闕休上書 南山歸敝廬북궐휴상서 남산귀폐려不才明主棄 多病故人疏부재명주기 다병고인소白發催年老 靑陽逼歲除백발최년로 청양핍세제永懷愁不寐 松月夜窗墟영회수불매 송월야창허 해석北闕休上書 南山歸敝廬조정에 글 올릴 일이 없어 남산 해진 집으로 돌아왔네. 不才明主棄 多病故人疏재능이 없어 현명한 군주가 버렸고, 병이 많아 옛 벗도 멀어졌구나.白發催年老 靑陽逼歲除흰 머리 나와 늙음 재촉하고 봄철 섣달 그믐밤 다가와永懷愁不寐 松月夜窗墟길이 근심을 품어 자질 못하니, 밤 창의 산 기슭으로 소나무 달 떴네. 인용작가 이력 및 비평소화시평 상권28
정약용丁若鏞: 1762(영조 38)~1836(헌종 2)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미용(美庸)ㆍ귀농(歸農), 호는 다산(茶山)ㆍ사암(俟菴)ㆍ자하도인(紫霞道人)ㆍ철마산인(鐵馬山人). 여유당(與猶堂)임. 1762년 경기도 양주군 마현리에서 정재원(丁載遠)과 해남윤씨 윤두서(尹斗緖)의 손녀 사이에서 4남으로 태어남. 1770년 9세 어머니인 해남윤씨 사망. 1776년 15세 2월 풍산(豐山) 홍화보(洪和輔)의 따님과 결혼함. 부친이 호조좌랑으로 서울에 부임하자, 이가환(李家煥)ㆍ이승훈(李承薰) 등에게 수학함. 1777년 16세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유고를 읽고 학문의 좌표를 정함. 1783년 22세 2월 감시(監試) 경의과(經義科) 초시(初試)에 합격하고, 4월에 회시(會試) 생원(生員)에 합격하여 성균..
최승태의 시집에 쓴 문설초시집서(雪蕉詩集序) 홍세태(洪世泰) 시는 천기로 짓기에 작은 기술이 아니다詩者一小技也. 然非脫略名利, 無所累於心者, 不能也. 蒙莊氏有言曰: “嗜欲深者其天機淺.” 歷觀自古以來工詩之士, 多出於山林草澤之下, 而富貴勢利者未必有焉. 以此觀之, 詩固不可小, 而其人亦可以知之矣. 최승태와의 인연과 그의 시적 기상雪蕉崔子紹氏, 家傳詩學, 擩染旣深, 而其天才實奇逸絶塵. 初師太白, 晩好雪樓七子, 歌行長篇, 才格翩然, 有俊發騰踔之氣. 余少時甞從公遊三角山之香林寺, 寺在嶽頂, 峭壁千仞, 瀑布倒懸. 公披髮鶴立于其上, 臨風高詠, 聲徹雲際, 詠罷引筆大書巖石之上. 此時見公之襟抱飄洒, 氣調淸越, 風塵外物也. 盖其心泊然, 於世間事, 無一掛意, 而所嗜者詩耳. 此其詩之所以工, 而余之所取於公者, 不特以詩也. 凡山水琴酒之..
긴 세월을 통해 궁달을 봐야 한다시능궁인변(詩能窮人辯) 장유(張維) ‘시능궁인(詩能窮人)’이란 말은 잘못됐다古人以窮者多工詩, 工詩者多窮, 乃曰“詩能窮人” 余獨以爲不然. 夫天之所以窮達人者, 與人異趣. 達於人者, 未必達於天, 則人之所窮者, 安知非天之所達乎? 請試辨之. 세상의 궁달(窮達)과 하늘의 궁달(窮達)은 다르다人有恒言曰 “仁者必壽, 有德者必得其位” 有位而壽, 斯乃世所謂達者也. 然而顏回之仁而三十而夭, 孔子之大聖而終身爲匹夫, 似可謂之窮矣. 雖然, 孰知夫二子乃有大達者存焉? 顏子不得其壽, 而死而不亡者, 亘宇宙而彌光; 仲尼無其位, 以萬世爲土, 則謂孔ㆍ顏不達而窮者, 不知窮達者也. 蓋貴賤豐約之及其身者, 人之妄謂窮達者也. 而名聲芳臭之垂于後者, 乃天之所以眞窮達人者也, 乖於人而合於天, 失其妄而得其眞, 此固吾所謂達者也. ..
시작 재능은 하늘이 부여한다시능궁인변(詩能窮人辯) 차천로(車天輅) 구양수의 ‘시능궁인’에 대한 글은 격분하여 쓴 글이다昔歐陽永叔論梅聖兪之詩曰: “世謂詩少達而多窮. 盖非詩能窮人, 殆窮者而後工也.” 夫聖兪以能詩大鳴於世, 而位不先人. 故永叔以此爲之辭而解之, 是乃有激而云爾. 시 쓰는 재주는 선천적으로 타고 난다夫詩者, 隨其才之高下, 發於性情. 非可以智力求, 非可以勉强得. 或有阨窮而能之者, 或有顯達而能之者, 又有窮者達者而不能者. 盖受之天者才分, 成於人者學力. 學力或可强, 才分不可求. 是故, 古人有以挽弓, 譬其力量. ‘시능궁인(詩能窮人)’이란 말이 시인들의 ‘전가의 보도’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然自古詩人, 例多寒餓, 此所以有‘詩能窮人’之說也. 或以無主知窮, 或以明主棄窮, 或以感寓窮, 或以玄都窮, 或以月蝕窮, 孟郊..
매성유의 시집에 쓴 서문 매성유시집서(梅聖兪詩集序) 구양수(歐陽脩) 영달한 시인보다 곤궁한 시인이 많다고 느껴지는 이유 予聞‘世謂詩人少達而多窮’, 夫豈然哉? 蓋世所傳詩者, 多出於古窮人之辭也. 凡士之蘊其所有而不得施於世者, 多喜自放於山巓水涯之外, 見蟲魚草木風雲鳥獸之狀類, 往往探其奇怪. 內有憂思感憤之鬱積, 其興於怨刺, 以道羈臣寡婦之所歎, 而寫人情之難言. 蓋愈窮則愈工. 然則非詩之能窮人, 殆窮者而後工也. 매성유가 시작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予友梅聖兪, 少以蔭補爲吏. 累擧進士, 輒抑於有司, 困於州縣, 凡十餘年, 年今五十. 猶從辟書, 爲人之佐, 鬱其所畜, 不得奮見於事業. 其家宛陵, 幼習於詩, 自爲童子, 出語已驚其長老. 旣長, 學乎六經仁義之說, 其爲文章, 簡古純粹, 不求苟說於世. 世之人徒知其詩而已. 然時無賢..
산에 살며산거(山居) 이인로(李仁老) 春去花猶在 天晴谷自陰 춘거화유재 천청곡자음 杜鵑啼白晝 始覺卜居深두견제백주 시각복거심 『東文選』 卷之十九 해석春去花猶在 天晴谷自陰 봄은 갔으나 꽃은 여전히 있고 날씨 맑아도 골짜기 더욱 그늘졌네杜鵑啼白晝 始覺卜居深두견새 대낮에 울어대니, 그제야 사는 곳 깊은 곳임을 깨달았네. 『東文選』 卷之十九 해설봄도 지각하는 후미진 곳, 산 높고 숲 짙어, 갠 날에도 그늘지는 어둑한 골짜기, 대낮에 울어 쌓는 두견새 소리를 들으면서야 비로소 자신의 살고 있는 곳이 무던히도 깊은 두메 산골임을 사무치게 느꺼워하고 있는 작자이다. 그러면서도 이 시의 표면상의 표정은, 일체의 감정이 배제되어 있어, 그저 대범스럽고 덤덤할 뿐이다. 그러나 보라. ‘심(深)’의 여운에는 ‘골의 깊이’ 만큼..
이산해李山海: 1539(중종 34)~1609(광해군 1)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여수(汝受), 호는 아계(鵝溪)·죽피옹(竹皮翁)ㆍ시촌거사(枾村居士)ㆍ종남수옹(終南睡翁), 시호는 문충(文忠)임. 1. 한산 이씨 명문가 출신으로 북인의 영수이자, 이색(李穡)의 7대손으로 영의정까지 지낸 고위 관료. 2. 1545년 을사사화(乙巳士禍) 때 친지들이 연루되자 보령으로 이주함. 3. 1567년 이조좌랑으로 임명한 기록에는 “이산해는 이색의 후예로, 여섯 살에 능히 대문자(大文字)를 짓고 여러 차례 향시에 장원하였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천선(天仙)처럼 바라보았으니, 참으로 기사(奇士)이다”라고 적혀 있어 그가 글씨에 있어 자질을 인정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음. 4. 1578년엔 대사간으로 서인(西人) 윤두수(尹斗..
신씨의 정자에서 동생 무회를 그리며신씨정 회무회보제(愼氏亭 懷無悔甫弟) 노수신(盧守愼) 路盡平丘驛 江深判事亭 로진평구역 강심판사정 登臨萬古豁 枕席五更淸등림만고활 침석오갱청露渚翻魚鳥 金波動月星로저번어조 금파동월성南鄕雙淚盡 北闕寸心明남향쌍루진 북궐촌심명 『穌齋先生文集』 卷之五 해석路盡平丘驛 江深判事亭 길은 평구역에서 끝나고 강은 판사정에서 깊어진다.登臨萬古豁 枕席五更淸오르니 만고가 확 트여 잠자리는 한 밤 중에도 맑구나. 露渚翻魚鳥 金波動月星이슬 내린 강에서 물고기와 새가 노닐고 금빛 물결에 달과 별이 일렁이네.南鄕雙淚盡 北闕寸心明남쪽 고향 생각에 두 눈물은 말랐지만 북쪽 궁궐의 일편단심은 분명쿠나. 『穌齋先生文集』 卷之五 해설이 작품은 신씨의 정자에 올라 아우 무회를 그리워하며 지은 시이다. 말을 타고 평..
천마록의 뒤에 쓰다제천마록후(題天磨錄後) 이행(李荇) 卷裏天磨色 依依尙眼開권리천마색 의의상안개斯人今已矣 古道日悠哉 사인금이의 고도일유재 細雨靈通寺 斜陽滿月臺 세우령통사 사양만월대 死生曾契闊 衰白獨徘徊사생증계활 쇠백독배회 『容齋先生集』 卷之二 해석卷裏天磨色 依依尙眼開책 속 천마의 산색 흐리나 오히려 눈앞에 펼쳐지네.斯人今已矣 古道日悠哉 이 사람 지금은 없어졌고 옛길 날로 아득해지리라. 細雨靈通寺 斜陽滿月臺 가랑비 영통사에 내리고, 비낀 해 만월대에 비치네.死生曾契闊 衰白獨徘徊죽고 살아 일찍이 보질 못하니【계활(契闊): ‘삶을 위하여 애쓰고 고생함’ 또는 ‘오래 만나지 않음’ 또는 ‘서로 연락이 끊어짐.’을 뜻한다.】, 쇠한 백발로 홀로 배회하네. 『容齋先生集』 卷之二 해설이 시는 박은(朴誾)이 죽고 난 후..
나그네유자(遊子) 두보(杜甫) 巴蜀愁誰語 吳門興杳然 파촉수수어 오문흥묘연 九江春草外 三峽暮帆前구강춘초외 삼협모범전厭就成都卜 休爲吏部眠염취성도복 휴위리부면蓬萊如可到 衰白問羣仙봉래여가도 쇠백문군선 해석巴蜀愁誰語 吳門興杳然 파촉의 근심 누구에게 말할꼬. 오문의 흥취는 아득하기만 하네.九江春草外 三峽暮帆前봄풀 바깥에서 구강이 흐르고, 저물녘 돛대 앞에 三峽이 놓여 있네.厭就成都卜 休爲吏部眠성도에 가서 점쳐주기도 싫지만 이부처럼 낮잠 자지도 말아야지.蓬萊如可到 衰白問羣仙봉래산에 만약 갈 수 있다면 쇠한 흰 머리를 뭇 신선에게 물으리라. 인용작가 이력 및 작품소화시평 상권90
초여름 관아에서 짓다초하성중작(初夏省中作) 허균(許筠) 田園蕪沒幾時歸 頭白人間官念微 寂寞上林春事盡 更看疎雨濕薔薇 懕懕晝睡雨來初 一枕薰風殿閣餘 小吏莫催嘗午飯 夢中方食武昌魚 『惺所覆瓿藁』 해석田園蕪沒幾時歸전원무몰기시귀전원이 거칠어졌으니, 어느 때에 돌아갈꼬?頭白人間官念微 두백인간관념미 머리 세니 인간세상 벼슬생각이 옅어지네.寂寞上林春事盡 적막상림춘사진 적막해라. 상림원에 봄 풍경 끝났지만,更看疎雨濕薔薇 갱간소우습장미 보슬비가 다시 장미를 적셨구나. 懕懕晝睡雨來初 염염주수우래초 나른한 낮잠은 비 오고 막一枕薰風殿閣餘 일침훈풍전각여 베개엔 향기로운 바람이 불어 전각엔 여운이 있구나. 小吏莫催嘗午飯 소리막최상오반 아전들아 일찍이 점심 먹으라 재촉하지 말게,夢中方食武昌魚 몽중방식무창어 꿈속에서 곧 무창의 물고기【무..
다시 신 원외랑을 전송하며우송(又送) 두보(杜甫) 雙峯寂寂對春臺 萬竹靑靑照客杯細草留連侵坐軟 殘花悵望近人開同舟昨日何由得 並馬今朝未擬回直到綿州始分手 江邊樹裏共誰來 해석雙峯寂寂對春臺쌍봉적적대춘대두 봉우리 적막하여 봄의 누대를 대하고萬竹靑靑照客杯만죽청청조객배온갖 대나무 푸르고 푸르러 손님의 잔을 비추네. 細草留連侵坐軟세초류연침좌연가는 풀에 감회 일어 자리 침범하니 유연해지고,殘花悵望近人開잔화창망근인개남은 꽃 쓸쓸하나 사람이 가까이 가니 피네.同舟昨日何由得동주작일하유득배 탔던 어제를 어찌해야 얻을 수 있을까?並馬今朝未擬回병마금조미의회말 머리 나란히 하는 걸 오늘 아침에 이루지 못하게 되었는데.直到綿州始分手직도면주시분수다만 면주에 이르러 비로소 악수하고 헤어지니,江邊樹裏共誰來강변수리공수래강가 나무 사이로 누구와 함..
왕랑을 보내며송왕랑(送王郞) 황정견(黃庭堅) 酌君以蒲城桑落之酒 泛君以湘纍秋菊之英 贈君以黟川點漆之墨 送君以陽關墮淚之聲酒澆胸次之磊塊 菊制短世之頹齡 墨以傳千古文章之印 歌以寫一家兄弟之情 江山萬里俱頭白 骨肉十年終眼靑連床夜語雞戒曉 書囊無底談未了有功翰墨乃如此 何恨遠別音書少 炊事作糜終不飽 鏤氷文章費工巧要須心地收汗馬 孔孟行世日杲杲有弟有弟力持家 婦能養姑供珍鮭 兒大詩書女絲麻 公但讀書煮春茶 해석酌君以蒲城桑落之酒작군이포성상락지주그대에게 포성의 특산품인 상락의 술을 따라 주고,泛君以湘纍秋菊之英 범군이상류추국지영 그대에게 상루의 가을 국화꽃을 띄워주네.贈君以黟川點漆之墨증군이이천점칠지묵그대에게 이천의 특산품인 새까만 먹을 주고送君以陽關墮淚之聲송군이양관타루지성그대에게 양관삼첩(陽關三疊) 노래를 보내주네.酒澆胸次之磊塊주요흉차지뢰괴술은 ..
봄날 형과 아우에 부치며춘일기곤계(春日寄昆季) 강회백(姜淮伯) 旅牕簷雨苦難聽 況復萊衣隔鯉庭心與暮雲歸不駐 愁隨春酒醉無醒 江山此日頭先白 骨肉何時眼更靑宦路險夷曾歷試 是身天地一浮萍 『東文選』 卷之十七 해석旅牕簷雨苦難聽여창첨우고난청여관 창과 처마의 빗소리 괴로워 듣기 어려운데況復萊衣隔鯉庭황부래의격리정하물며 다시 색동옷 입고 부모님 앞에 나갈 수 있으랴.心與暮雲歸不駐 심여모운귀부주 마음은 저녁 구름과 함께 돌아가 머물지 않으려 하고愁隨春酒醉無醒 수수춘주취무성근심은 봄 술 따라 취하여 깨지 않으려 한다네.江山此日頭先白강산차일두선백강산에 오늘 내 머리 먼저 백발 되었고,骨肉何時眼更靑골육하시안갱청골육은 어느 때 눈이 다시 푸르게 되리오?宦路險夷曾歷試환로험이증역시벼슬의 험하고 쉬움은 일찍이 시험으로 경험했으니,是身天地一浮..
한스러운 이별한별(恨別) 두보(杜甫) 洛城一別四千里 胡騎長驅五六年草木變衰行劒外 兵戈阻絶老江邊思家步月淸宵立 憶弟看雲白日眠聞道河陽近乘勝 司徒急爲破幽燕 해석洛城一別四千里락성일별사천리낙성에서 한 번 떠나 사천 리胡騎長驅五六年호기장구오육년오랑캐 말 길게 몰아댄 지 5~6년.草木變衰行劒外초목변쇠행검외초목이 시들어갈 때 검각성 밖을 다녔고兵戈阻絶老江邊병과조절로강변전쟁이 지지부진할 때 강가에서 늙어갔지.思家步月淸宵立사가보월청소립집 생각에 달빛 아래 거닐다 맑은 밤에 서 있었고,憶弟看雲白日眠억제간운백일면아우 생각에 구름 보다가 한낮에 잠들었지.聞道河陽近乘勝문도하양근승승하양에서 요즘 승기를 탔다고 들리던데,司徒急爲破幽燕사도급위파유연사도는 급히 유연에서 깨부수어주오. 인용작가 이력 및 작품소화시평 하권33

용만 행재소에서 하삼도의 의병들이 진출하여 한성을 공격한다는 걸 듣고서 용만행재 문하삼도병진공한성(龍灣行在 聞下三道兵進攻漢城) 이호민(李好閔) 干戈誰着老萊衣 萬事人間意漸微 地勢已從蘭子盡 行人不見漢陽歸 天心錯漠臨江水 廟筭凄凉對夕暉 聞道南兵近乘勝 幾時三捷復王畿 『五峯先生集』 卷之四 해석 干戈誰着老萊衣 간과수착노래의 전쟁에 누가 노래자의 색동옷을 입을 수 있겠는가? 萬事人間意漸微 만사인간의점미 만사 인간의 뜻이 점점 희미해져가네. 地勢已從蘭子盡 지세이종란자진 지세는 이미 난자도【의주(義州)에서 중국의 구연성(九連城)으로 건너가는 압록강의 수중에 검동도(黔同島)와 난자도(蘭子島)의 두 섬이 있다.】로부터 끝났고, 行人不見漢陽歸 행인불견한양귀 행인은 서울로 돌아가는 이 보이질 않네. 天心錯漠臨江水 천심착막림강수 ..
신의(新意)로 시를 쓰게 된 이유답전리지논문서(答全履之論文書) 이규보(李奎報) 고려 중기 이후엔 동파를 본받아 시를 짓는 게 유행이었다月日, 某頓首, 履之足下. 間闊未覿, 方深渴仰, 忽蒙辱損手敎累幅, 奉翫在手, 尙未釋去. 不惟文彩之曄然, 其論文利病, 可謂精簡激切. 直觸時病, 扶文之將墮者已, 甚善甚善! 但書中譽僕過當, 至況以李杜, 僕安敢受之. 足下以爲‘世之紛紛效東坡而未至者, 已不足導也. 雖詩鳴如某某輩數四君者, 皆未免效東坡, 非特盜其語, 兼攘取其意, 以自爲工. 獨吾子不襲蹈古人, 其造語皆出新意, 足以驚人耳目, 非今世人比.’ 以此見褒抗僕於九霄之上, 玆非過當之譽耶? 공부가 깊지 못해 부득이하게 신의(新意)를 쓰게 됐다獨其中所謂之創造語意者, 信然矣. 然此非欲自異於古人而爲之者也, 勢有不得已而然耳. 何則? 凡效古人之體..
권필(權韠)의 ‘궁유시(宮柳詩)’와 시화(詩禍) 宮柳靑靑花亂飛궁궐의 버드나무 하늘하늘 어지러이 날리니滿城冠蓋媚春暉온 도성 내의 고관대작들이 임금님의 은혜라 아첨하는 구나.朝家共賀升平樂조정에선 태평성세의 즐거움이라 함께 치하하나,誰遣危言出布衣누가 지조 있는 말을 포의에게서 나오게 했나? 『石洲集』 이미 이 시에 대한 내용은 이안눌이 쓴 「용산의 달밤에 기녀가 故 인성 정철의 사미인곡을 부르는 걸 듣고 바로 읊어 조지세 형제에게 준 시龍山月夜 聞歌姬唱故寅城鄭相公思美人曲 率爾口占 示趙持世昆季」의 감상 부분에서 짧게 다룬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부분에선 잠시 언급만 했기에, 이번엔 시가 재앙이 된다는 ‘詩禍’를 중심으로 다뤄보기로 하자. 거침없는 기상과 우락부락한 풍채를 지닌 권필 우선 권필..
안응휴에게 주다증안응휴(贈安應休) 성혼(成渾) 一區耕鑿水雲中 萬事無心白髮翁睡起數聲山鳥語 杖藜徐步繞花叢 『牛溪集』 卷之一 해석一區耕鑿水雲中일구경착수운중물가 구름 속의 한 구역에 밭 갈고 우물 파느라, 萬事無心白髮翁만사무심백발옹만사에 무심한 백발의 늙은이라네.睡起數聲山鳥語수기수성산조어두어마디 산새소리에 잠을 깨서는杖藜徐步繞花叢장려서보요화총명아주 지팡이로 천천히 걸으며 수풀 맴돈다네. 『牛溪集』 卷之一 해설이 시는 안응휴(천서)에게 준 시로, 안응휴에 대한 찬사(讚辭)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삶의 지향이기도 한 것이다. 「격양가(擊壤歌)」에서 노래한 것처럼 물과 구름 낀 가운데에서 한 패기의 밭을 갈고 우물을 파니(세속적인 관계로부터 벗어남을 의미함), 안응휴는 만사에 무심한 백발의 늙은이라 할 수 있다(작자 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기준에 대해 애오잠병서(愛惡箴幷序) 이달충(李達衷) 한 사람에 대한 상반된 평가 有非子造無是翁曰: “日有群議人物者, 人有人翁者, 人有不人翁者, 翁何或人於人, 或不人於人乎?” 타인의 평가가 아닌, 그 사람됨을 먼저 보라 翁聞而解之曰: “人人吾, 吾不喜; 人不人吾, 吾不懼. 不如其人人吾, 而其不人不人吾. 吾且未知人吾之人何人也, 不人吾之人何人也. 人而人吾, 則可喜也; 不人而不人吾, 則亦可喜也. 人而不人吾, 則可懼也; 不人而人吾, 則亦可懼也. 喜與懼, 當審其人吾不人吾之人之人不人如何耳. 故曰: ‘惟仁人, 爲能愛人能惡人.’ 其人吾之人, 仁人乎? 不人吾之人, 仁人乎?” 남의 평판에 좌우되지 말고 자기에게서 찾아라 有非子笑而退. 無是翁因作箴以自警. 箴曰: “子都之姣, 疇不爲美? 易牙所調, 疇不..
17. 오산 차천로의 시작 재능을 비판하다 五山之詩, 滔滔不渴, 一夜或作百餘篇, 成一集. 或入屛中, 袒裼跳踴, 作詩投屛外, 則俄頃紙與屛齊. 嘗使日本, 倭人例設白紋障蚊之帳, 廣可數間. 而一宿之間, 製各體, 揮洒遍帳. 倭人易之, 則又如之, 至三而止. 翌日取觀之, 頗有悔語, 盖其疵纇之多故也. 自言. “貼紙於萬里長城, 使我走筆, 則城有盡而我詩不窮”云. 盖五山自是宇宙間氣, 有如項王喑啞叱咜, 獨當萬人, 夫誰與敵. 但蛟螭少而螻蚓多, 傅後則實難. 如‘愁來徙倚仲宣樓’一篇, 人所膾炙. 而疵病亦多, 瑕瑜不相掩, 他皆類此. 해석 오산의 거침없는 시 창작 능력 五山之詩, 滔滔不渴, 오산 차천로의 시는 도도하게 흘러 마르지 않아 一夜或作百餘篇, 成一集. 하룻밤에 혹 백여 편을 지어 한 문집이 완성된다. 或入屛中, 袒裼跳踴, 간혹..
간성 영월루에서간성영월루(杆城詠月樓) 차천로(車天輅) 愁來徙倚仲宣樓 碧樹凉生暮色遒鼇背島空風萬里 鶴邊雲散月千秋天連魯叟乘桴海 地接秦童採藥洲長嘯一聲凌灝氣 夕陽西下水東流 『五山先生續集』 卷之二 해석愁來徙倚仲宣樓수래사의중선루근심 오면 배회하며【사의(徙倚): 배회하다.】 중선루【중선(仲宣): 삼국 시대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인 왕찬(王粲)의 자이다. 동탁(董卓)의 난리를 피하여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게 가서 몸을 의탁하고 있을 적에, 유표에게 그다지 중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가운데 고향 생각이 절실해지자 성루(城樓) 위에 올라가 울울한 마음으로 고향을 생각하며 지은 「등루부(登樓賦)」에, “참으로 아름답지만 내 땅이 아니니, 어찌 잠시인들 머물 수 있으리오.[雖信美而非吾土兮 曾何足以少留]” 하였다.】에..
명비 왕소군의 서러운 노래명비곡(明妃曲) 왕안석(王安石) 明妃初出漢宮時 淚濕春風鬢腳垂低徊顧影無顏色 尙得君王不自持歸來卻怪丹靑手 入眼平生幾曾有意態由來畫不成 當時枉殺毛延壽一去心知更不歸 可憐著盡漢宮衣寄聲欲問塞南事 只有年年鴻雁飛家人萬里傳消息 好在氈城莫相憶君不見咫尺長門閉阿嬌 人生失意無南北 明妃初嫁與胡兒 氈車百輛皆胡姬含情欲語獨無處 傳與琵琶心自知黃金桿撥春風手 彈看飛鴻勸胡酒漢宮侍女暗垂淚 沙上行人卻回首漢恩自淺胡恩深 人生樂在相知心可憐靑冢已蕪沒 尙有哀弦留至今 해석明妃初出漢宮時명비초출한궁시명비가 처음 한나라 궁궐 나갈 때,淚濕春風鬢腳垂루습춘풍빈각수눈물이 봄바람 적셔 귀밑머리 축 처졌네.低徊顧影無顏色저회고영무안색숙이고 배회하며 그림자 돌아보니 안색은 없지만尙得君王不自持상득군왕부자지오히려 군왕은 설렘을 자제할 수 없었다지.歸來卻怪..
왕소군을 읊다 영소군(詠昭君) & 왕소군(王昭君) 이산해(李山海) 毛生見殺太無端 모연수가 죽임을 당한 것은 매우 바르지 못한 것으로 絶色由來畫最難 절색 예로부터 그리기 가장 어렵다네. 自是和戎元失策 이때로부터 오랑캐와 화친한 것이 본래 실책이니 非關萬里駄紅顔 만 리에 아리따운 소군을 보낼 필요 없었네. 三千粉黛鎖金門 삼천 궁녀들이 금문에 갇혀 咫尺無因拜至尊 지척인데도 지존 뵐 길 전혀 없었으니, 不是當年投異域 당시에 이역땅에 버려지지 않았다면, 漢宮誰識有昭君 한나라 궁궐에서 누가 왕소군을 알았겠는가. 世間恩愛元無情 세간에 은혜와 사랑은 원래 무정해서, 未必氊城是異鄕 흉노의 궁궐이 이향이라고 기필할 수 없으니, 何似深宮伴孤月 깊은 궁궐에서 외로운 달과 벗하며, 一生難得近君王 한 평생 임금을 가까이 하기 어..
10월 보름 후 비오는 날에시월망후우(十月望後雨) 최립(崔岦) 一年霖雨後西成 休說玄冥太不情正叶朝家荒政晩 飢時料理死時行 『簡易文集』 卷之六 해석一年霖雨後西成일년림우후서성한 해의 장마비가 추수【서성(西成): 가을 추수. 『서경(書經)』 「요전(堯典)」에 “平秩西成.” 孔穎達疏:“秋位在西,於時萬物成熟.” *平秩: 고르게 다스리다. 『서경』 「堯典」에 나오는 平秩東作, 平秩南訛, 平秩西成 등을 가리킨다. 東作은 봄농사를 가리키고, 南訛란 여름에 만물이 장성하여 변화하는 일을 말하고, 西成은 가을의 추수를 말한다.】 뒤에 내렸지만休說玄冥太不情휴설현명태부정물의 신【현명(玄冥): 1.神名. 水神. 『左傳‧昭公十八年』:“禳火於玄冥、回祿.” 杜預注:“玄冥,水神.” / 2. 겨울 귀신의 이름. 『예기』 「월령(月令)」에 ..
기러기를 놓아주며방안(放鴈) 권사복(權思復) 雲漢猶堪任意飛 稻田胡自蹈危機從今去向冥冥外 只要全身勿要肥 『東文選』 卷之二十一 해석雲漢猶堪任意飛운한유감임의비하늘【운한(雲漢): ① 은하수[銀河], 천하(天河). ②하늘[雲霄, 高空].】은 오히려 니 뜻대로 날 수 있는데,稻田胡自蹈危機도전호자도위기어쩌자고 논을 밟아 위기에 처했나?從今去向冥冥外종금거향명명외이제부터 까마득한 저 하늘 밖으로 날아가서只要全身勿要肥지요전신물요비다만 몸을 보전하길 구하고 살찌길 구하지 말렴. 『東文選』 卷之二十一 인용감상하기소화시평성호전서
안락함을 박차고 떠나간 거위순일이체경 릉공이거(旬日而體輕, 凌空而去) 이익(李瀷) 人有畜野鵝者. 多與煙火之食, 鵝便體重, 不能飛. 後忽不食, 人以爲病. 益與之食而不食. 旬日而體輕, 凌空而去. 翁聞之曰: “智哉! 善自保也.” 『星湖全書』 해석人有畜野鵝者. 사람 중에 야생거위를 기르는 사람이 있었다. 多與煙火之食, 자주 불에 익힌 음식을 주자 鵝便體重, 不能飛. 거위는 곧 체중이 불더니 날지 못하게 됐다. 後忽不食, 人以爲病. 그 후 갑자기 먹질 않으니 사람들은 병 걸렸다고 생각하여 益與之食而不食. 더욱 먹일 주었지만 먹질 않았다. 旬日而體輕, 凌空而去. 열흘 만에 몸이 가벼워지더니, 창공을 날아올라 가버렸다. 翁聞之曰: “智哉! 善自保也.” 『星湖全書』노인이 그 얘기를 듣고 말했다. “지혜롭구나! 잘 스스..
2월 6일 10월 15일
4. 달팽이 뿔 위의 전쟁와각지쟁(蝸角之爭) 魏瑩與田侯牟約, 田侯牟背之. 魏瑩怒, 將使人刺之.犀首公孫衍聞而恥之曰: “君爲萬乘之君也, 而以匹夫從讐! 衍請受甲二十萬, 爲君攻之. 虜其人民, 係其牛馬, 使其君內熱發於背. 然後拔其國. 忌也出走, 然後抶其背, 折其脊.”季子聞而恥之曰: “築十仞之城, 城者旣十仞矣, 則又壞之, 此胥靡之所苦也. 今兵不起七年矣, 此王之基也. 衍亂人, 不可聽也.”華子聞而醜之曰: “善言伐齊者, 亂人也. 善言勿伐者, 亦亂人也. 謂伐之與不伐亂人也者, 又亂人也.” 君曰: “然則若何?” 曰: “君求其道而已矣!”惠子聞之而見戴晉人. 戴晉人曰: “有所謂蝸者, 君知之乎?” 曰“然.”, “有國於蝸之左角者曰‘觸氏’, 有國於蝸之右角者曰‘蠻氏’, 時相與爭地而戰, 伏尸數萬, 逐北旬有五日而後反.” 君曰: “噫! 其虛言..

농촌의 시 전가시(田家詩) 섭이중(聶夷中) 二月賣新絲 五月糶新穀 이월매신사 오월조신곡 醫得眼前瘡 剜却心頭肉 의득안전창 완각심두육 我願君王心 化作光明燭 아원군왕심 화작광명촉 不照綺羅筵 徧照逃亡屋 부조기라연 편조도망옥 해석 二月賣新絲 五月糶新穀 2월에 새 실을 팔았고 5월에 새 곡식을 팔았지. 醫得眼前瘡 剜却心頭肉 눈앞 부스럼은 고칠 수 있지만 심장의 살은 잘라내야 한다네. 我願君王心 化作光明燭 나는 바라네. 임금의 마음이 환한 촛불로 변하여 不照綺羅筵 徧照逃亡屋 화려한 잔치만 비추질 말고, 두루 후미진 집에도 비추어주길. 인용 지봉유설 소화시평 兎山村舍 錄田父語
스님이 금강산으로 가는 길을 전송하며송승지풍악(送僧之楓岳) 성석린(成石璘) 一萬二千峰 高低自不同일만이천봉 고저자부동君看日輪上 高處最先紅군간일륜상 고처최선홍 『東文選』 卷之十九 해석一萬二千峰 高低自不同일만이천봉의 높낮이가 절로 다르니, 君看日輪上 高處最先紅 그대 보게나, 해가 떠오를 때 높은 곳이 가장 먼저 붉어지는 걸【해석의 차이: 看日輪上(그대 보게나, 해가 떠오를 때 높은 곳이 가장 먼저 붉어지는 걸.) → 看初日出(그대 처음 해가 솟는 곳을 보시게, 어느 곳에 가장 먼저 붉어지나?)】. 『東文選』 卷之十九 해설이 시는 금강산으로 가는 스님을 전송하면서 지은 시로, 평이(平易)한 시어(詩語)로 금강산의 일출 장면을 회화적(繪畵的)으로 선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금강산을 가 본 적이 없는 성석린이 금강산..
체직한 후에 체직후(遆職後) & 기유 삼월 체직한 후에 짓다 기유삼월체관후작(己酉三月褫官後作) 최해(崔瀣) 塞翁雖失馬 莊叟詎知魚 변방 늙은이 비록 말을 잃었다 해도 장자인들 어찌 물고기를 알리오. 倚伏人如問 當須質子虛 화복에 대해 사람이 묻는다면 마땅히 자허에게 질정하라고 하라. 『東文選』 卷之十九 인용 작가 이력 및 작품 소화시평 이해와 감상
시의 육의에 대해 말하다 시설(詩說) 성해응(成海應) 시의 육의(六義)란 周官太師所掌六詩, 曰‘風’ 曰‘賦’ 曰‘比’ 曰‘興’ 曰‘雅’ 曰‘頌’ 此言詩之爲義止於六. 盖以賦比興, 綜其法; 風雅頌, 定其軆. 法之不一, 而賦比興各爲之標, 然其實則三者合而後; 爲詩軆之不同, 而風雅頌互爲之名, 然其實則三者亦合而爲詩. 시체 중 부(賦)ㆍ비(比)ㆍ흥(興)의 구별에 대해 盖始起以興而終之以賦, 始起以比而終之以興者有之. 又其所解賦比興者, 諸說錯陳, 而賦則雖無異辭, 至於興比, 則往往相錯. 以集傳觀之, 則先言他物, 引起所詠之謂興, 以彼物比,此物之謂比, 然舊說則關雎之興, 言后妃悅樂君子之德, 若關雎之有別, 則是興帶比義也; 螽斯之比, 言其生子衆多, 后妃之德能如是則宜然, 是比帶興義也. 是故曰: “三者畢擧而後, 可以爲詩也.” 시체 중 ..
공자의 유랑도 (孔子 流浪圖) ▲ 춘추시대(BC 770~403) ① 기원전 505년, 양호(陽虎)가 세력을 잡자 제(齊)로 망명함. (48세) ② 기원전 502년, 양호(陽虎)가 실각해서 제(齊)로 망명하고 공자(孔子)는 노(魯)로 귀국함. (51세) ※ 협곡(夾谷)의 만남을 통해 제(齊)와 노(魯)가 우호 맺음, 양호(陽虎)는 제(齊)⇒송(宋)⇒진(晉)으로 망명함. ※ 삼환(三桓)을 약화시키려는 공자(孔子)의 계책은 실패함. ③ 기원전 498년, 공자(孔子)는 위(衛)로 망명함. 강대국인 진(晉)으로 가려 했으나 양호(陽虎)가 그 곳에 있어 단념함. (55세) ※ 영공(靈公)이 공자(孔子)에게 호의적이었으므로 그 곳에서 6년간 체류함. ④ 영공(靈公)이 죽은 후 후계 계승 문제가 발생하자 양호(陽虎)의..
이지李贄(1527~1602) 원래 이름은 재지(載贄), 호는 탁오(卓吾). 1. 복건성 천주 출신으로 조상 중 이슬람 문화와 긴밀하게 교류한 이도 있지만 본인은 전통문화 안에서 성장함. 2. 훗날 주자학과 양명학은 물론 老莊과 선종 등을 두루 섭렵하며 중국 근대 남방문화의 결정체를 이룸. 3. 26세에 급제하여 하급관료 생활을 하다가 54세 되던 해에 퇴직하였고 40세 전후로 심학(心學)에 몰두했으며 62세엔 정식으로 출가하여 절에 기거함. 4. 유가의 정통사관에 도전하는 책들을 서술하며 유가의 말기적 폐단을 공격하다가 혹세무민의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혔다가 76세에 자살함. 동심설童心說제공자상어지불원題孔子像於芝佛院웃음과 역설비슷한 것은 인용 안내도
진사도陳師道: 1053~1101 자는 무기(無己), 또는 이상(履常). 1. 증공(曾鞏)에게서 문장을 배웠고, 황정견의 시를 으뜸으로 삼았다. 2. 소식 문하의 글 잘하는 여섯 사람으로 불리는 소문육군자(蘇門六君子) 중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진다. 3. 『후산집』 30권이 있다. 왕평보문집후서王平甫文集後序진소유자서秦少游字敍 인용 안내도
우연히 읊다우음(偶吟) 송한필(宋翰弼) 花開昨夜雨 花落今朝風화개작야우 화락금조풍可惜一春事 往來風雨中가석일춘사 왕래풍우중 『惺所覆瓿藁』 해석花開昨夜雨 花落今朝風꽃은 지난 밤 비에 폈고 꽃은 오늘 아침 바람에 졌다네.可惜一春事 往來風雨中가련쿠나, 한철 봄 일이 바람과 비속에 오고 가니. 『惺所覆瓿藁』 해설이 시는 우연히 읊은 것으로, 인간의 무상함을 절감하는 시이다. 어젯밤 비에 꽃이 피더니, 오늘 아침 바람이 불자 금방 그 꽃이 지고 말았다. 애달프게도 봄의 온갖 보람이 비바람 치는 속에서 잠시 왔다가 간다. 여기서의 꽃은 청춘이나 목적을 이루었을 때요, 바람은 그 달성한 것을 잃게 하는 요소, 즉 귀양살이나 가문에서 오는 한계일 것이다. 어제 얻은 목적이 오늘 아침 바로 잃게 되었으니, 인간의 삶이란 이..
지천 황정욱의 시권에 쓴 서문제황지천시권서(題黃芝川詩卷序) 허균(許筠) 蓋余少日及見芝川翁, 其持論甚倨, 談古今文藝, 少所許, 而至我國詩則尤不齒論. 如容齋而目爲太腴, 李達而指爲模擬, 其下槪可知矣. 唯推朴訥齋祥, 爲不可及, 而湖陰ㆍ蘇齋稍合作家. 余聞而心駭, 浩如睇河漢, 不可測其深涯也. 然私竊記之, 公歿, 遺文不可槪見, 每置恨也, 而疑其所述果合於所論否. 余友趙持世裒其近律百餘篇, 余始寓目, 則其矜持勁悍, 森邃泬寥, 寔千年以來絶響. 覈所變化, 蓋出於訥齋, 而出入乎盧ㆍ鄭之間, 殆同其派而尤傑然者. 余得此, 始知其所論果合於所著述, 而不爲空言也. 噫! 其异哉. 嗚呼! 使數公生於海內, 則其所造詣, 豈在於北地ㆍ濟南ㆍ太倉之下. 而不幸生於下國, 不克充其才, 又不能名於天下後世, 湮沒不傳, 惜哉! 公諱廷彧, 字景文, 事穆陵, 以光..
소식蘇軾(1036~1101) 자(字)는 첨(瞻)이며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이다. 1. 애칭(愛稱)은 파공(坡公)·파선(坡仙) “독서가 만 권에 달하여도 율(律)은 읽지 않는다.”고 해 초유의 필화사건을 일으켰다. 2. 당시(唐詩)가 서정적인 데 대하여 그의 시는 철학적 요소가 짙었고 새로운 시경(詩境)을 개척하였다. 3. 대표작인 「적벽부(赤壁賦)」는 불후의 명작으로 널리 애창되고 있다. 4. 왕안석의 신법을 반대하다 지방관으로 좌천되어 여러 지방을 두루 돌아다녔다. 시문뿐만 아니라, 詞와 글씨의 그림, 음악에도 정통하여, 중국 최고의 예술가, 대문호라는 평을 받기도 하였다. 제구양공문祭歐陽公文범증론范增論전적벽부前赤壁賦후적벽부後赤壁賦능허대기凌虛臺記이군산방기李君山房記초연대기超然臺記 목가산기木假山記(소순)..
구양수歐陽脩: 1007~1072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 시호는 문충(文忠)임. 1. 북송(北宋)의 시인ㆍ사학자ㆍ정치가 2. 송대 문학에 고문을 재도입함. 3. 유교원리를 통해 당시 정계를 비판하며 유능한 인재를 적극적으로 추천함. 상범사간서上范司諫書붕당론朋黨論추성부秋聲賦명선부鳴蟬賦증창승부憎蒼蠅賦매성유시집서梅聖兪詩集序설간숙공문집서薛簡肅公文集序풍낙정기豐樂亭記상주주금당기相州晝錦堂記취옹정기醉翁亭記종수론縱囚論 인용 안내도
유종원柳宗元: 773~819 이명은 유하동(柳河東)이고 자는 자후(子厚)이다. 1. 일찍이 유우석(劉禹錫) 등과 함께 왕숙문(王叔文)의 혁신단체에 참가했으나, 실패하여 영주사마(永州司馬)로 좌천되었다. 후에 유주자사(柳州刺史)를 지내 유유주(柳柳州)라고도 한다. 2. 한유(韓愈)와 함께 고문운동(古文運動)을 제창하여 거의 1,000년 동안 귀족 출신의 문인들에게 애용된 변려문(騈儷文)에서 작가들을 해방시키려고 했다. 한유와 함께 당송8대가에 속하여 ‘한(韓)·유(柳)’라고 병칭된다. 3. 「포사자설(捕蛇者說)」·「종수곽탁타전(種樹郭橐駝傳)」·「영주철로보지(永州鐵爐步誌)」·「삼계(三戒)」·「부판전(蝜蝂傳)」, 「유하동집(柳河東集)」이 있다. 연주군부유혈기連州郡復乳穴記비설羆說포사자설捕蛇者說종수곽탁타전種樹郭槖..
백거이白居易(772~846) 자(字)는 락천(樂天)이고, 호는 취음선생(醉吟先生)ㆍ향산거사(香山居士) 1. 당나라 때 낙양(洛陽) 부근의 신정(新鄭)에서 태어남. 2. 민중을 위한 문학과 정치를 지향한 최고의 민중파 시인. 3. 현존하는 작품이 약 2.800여수로, 당나라 시인 가운데 가장 많은 작품 남김. 양죽기養竹記여원구서與元九書백화정百花亭청석靑石 인용 안내도
한유韓愈: 768~824 자는 퇴지(退之). 스스로 군망창려(郡望昌黎)라 부름. 한문공(韓文公) 1. 어려서 고아였으며, 처음 과거에 응시할 때 인습에 얽매이지 않은 문체로 낙방함. 2. 네 번째 시험으로 25세 급제하여 이부시랑(吏部侍郞)까지 지냄. 3. 헌종(憲宗)이 불사리(佛舍利)에 참배한 일에 간하여 1년 동안 조주(潮州)에 자사로 밀려났고 목종(穆宗)이 즉위하여선 국자좨주(國子祭酒)가 되는 등 승승장구함. ㄱ ㄴ남전현승청벽기藍田縣丞廳壁記남해신묘비南海神廟碑ㄷ답진상서答陳商書대장적여이절동서代張籍與李浙東書ㅁ모영전毛穎傳 ㅂ백이송伯夷頌 ㅅ사설師說상장복야서上張僕射書상재상제이서上宰相第二書상재상제삼서上宰相第三書송고한상인서送高閑上人序송동소남서送董邵南序송궁문送窮文송육흡주참참시서送陸歙州僭參詩序송이원귀반곡서送李愿歸盤谷..
두보杜甫: 712~770 자는 자미(子美). 호북성(湖北省) 양양(襄陽) 사람이나 장안 근처의 두릉(杜陵)에 살았으므로 두릉포의(杜陵布衣) 또는 소릉야노(少陵野老)라고 불림. 1. 안사(安史)의 난이 일어나자 사천(四川)의 성도(成都)로 피난 가 절도사인 엄무(嚴武) 밑에서 막료로 근무하면서 검교공부원외랑(檢校工部員外郞)이란 중앙 정부의 관직을 명예로 받았기 때문에 후세에는 두공부(杜工部)라고도 부른다. 2. 이백과 이름을 나란히 하는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인정받아 이백은 시선(詩仙), 두보는 시성(詩聖)이라 칭해지고 있다. 3. 안사의 난을 거치면서 우국충정이 넘치고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친 사회시를 많이 남겨 그의 시를 시사(詩史)라고도 한다. 특히 율시를 잘 지어 율성(律聖) 또는 두율(杜律)이라고 ..
이백李白: 701~761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 취선옹(醉仙翁) 1. 당(唐)나라 시선(詩仙)으로 불림. 시성(詩聖) 두보(杜甫)와 더불어 시의 양대 산맥(山脈)을 이룸. 2. 그의 시는 서정성이 뛰어나 논리성(論理性), 체계성(體系性)보다는 감각(感覺), 직관(直觀)에서 독보적(獨步的)임. 술, 달을 소재(素材)로 많이 썼으며, 낭만적(浪漫的)이고 귀족적(貴族的)인 시풍을 지녔음. 하지장(賀知章)은 이백(李白)을 적선(謫仙)이라고도 하였다. 3. 『이태백시집(李太白詩集)』 30권 등금릉봉황대登金陵鳳凰臺월하독작月下獨酌남헌송南軒松자야오가子夜吳歌원별이遠別離산중문답山中問答산중여유인대작山中與幽人對酌독좌경정산獨坐敬亭山행로난行路難전성남戰城南야사夜思야하정로정夜下征虜亭춘야낙성문적春夜洛城聞笛 춘야..
맹호연孟浩然: 689~740 당(唐) 대의 시인. 이름은 호(浩)이며, 자는 호연(浩然), 호(號)는 녹문처사(鹿門處士) 1. 녹문산에 숨어 살며 시 짓는 것을 즐김. 2. 양양(襄陽) 사람으로 절개와 의리를 존중하였고, 이 때문에 맹양양(孟襄陽)으로 불림. 숙업사산방대정대부지宿業師山房待丁大不至하일남정회신대夏日南亭懷辛大세모귀남산歲暮歸南山춘효春曉림동정臨洞庭 인용 안내도
황현黃玹: 1855(철종 6)~1910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운경(雲卿), 호는 매천(梅泉). 1. 전라도 광양에서 태어나 뒤에 구례로 이사했으며 기정진의 문하에서 수학함. 2. 31세에 생원이 되었지만 시국을 개탄하고 시골로 돌아와 시대상황을 증언하는 『매천야록(梅泉野錄)』을 저술함 3. 강위ㆍ이건창ㆍ김택영과 함께 한말(韓末) 사대가로 불림. 4. 『매천집(梅泉集)』, 『매천시집(梅泉詩集)』, 『매천야록(梅泉野錄)』 절명시絶命詩신묘춘 압강도중辛卯春 鴨江途中종어요種菸謠이충무공귀선가李忠武公龜船歌발학포 지당산진發鶴浦 至糖山津촌거모춘村居暮春연와설然窩說 한시사 인용 안내도
김택영金澤榮: 1850(철종 1)~1927) 본관은 화개(花開). 자는 우림(于霖), 호는 창강(滄江). 당호는 소호당주인(韶護堂主人). 1. 이건창과 함께 근세 강화 고문학파의 중심인물. 2. 『창강고(滄江稿)』, 『한사계(韓史棨)』 등이 있고, 편서로는 『여한십가문초(麗韓十家文鈔)』가 있다. 문의병장안보국수사聞義兵將安報國讎事문황매천순신작聞黃梅泉殉信作답장생서答張生書유학경위서儒學經緯序중편연암집서重編燕巖集序장계자시록서張季子詩錄序람폭정기攬瀑亭記방산서요기方山書寮記사양서실기泗陽書室記천왕수하양설天王狩河陽說신자하시집서申紫霞詩集序전처사행장錢處士行狀수윤당기漱潤堂記김홍연전金弘淵傳잡언雜言여한십가문초서麗韓十家文鈔序남원양공묘갈명南原梁公墓碣銘왕모김숙부인묘지명王母金淑夫人墓誌銘주처황안인묘지명周妻黃安人墓誌銘양진산처사묘갈명梁眞山處士墓..
이건창李建昌: 1852(철종 3)~1898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봉조(鳳朝ㆍ鳳澡), 호는 영재(寧齋)ㆍ명미당(明美堂) 1. 가학인 양명학을 계승. 병인양요 때 외국군의 침략에 비분해서 자결했던 이시원(李是遠)의 손자로 강화도에서 태어남. 2. 15세에 문과에 급제함, 충청도 지방의 어사로 나가 부패한 관료들을 숙청함. 3. 제국주의 침략과 거기에 대응한 정부의 태도에 통탄해하며 강화도로 은퇴함. 4. 김택영(金澤榮)과 황현(黃玹)과 문학적 교유를 밀접히 가짐. 5. 『명미당집(明美堂集)』, 『독역수기(讀易隨記)』, 『당의통략(黨議通略)』 등이 있다. 전가추석田家秋夕한구편 병술韓狗篇 丙戌아산과이충무공묘牙山過李忠武公墓협촌기사峽村記事숙광성진宿廣城津연평행延平行즉사卽事홍류동희제紅流洞戲題유수묘지명兪叟墓誌銘송박..
김정희金正喜: 1786(정조 10)~1856(철종 7) 본관은 경주. 자는 추사(秋史)·원춘(元春), 호는 완당(阮堂)·예당(禮堂)·시암(詩庵)·과노(果老)·농장인(農丈人)·천축고선생(天竺古先生) 1. 1819년(순조 19년) 문과에 급제하여 암행어사·예조 참의·설서·검교·대교·시강원 보덕을 지냄 2. 1830년 생부 김노경이 윤상도(尹商度)의 옥사에 배후 조종 혐의로 고금도(古今島)에 유배됨. 3. 순조의 특별 배려로 귀양에서 풀려나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로 복직되고, 그도 1836년에 병조참판·성균관 대사성 등을 역임함. 4. 1834년 순원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이때 그는 다시 10년 전 윤상도의 옥사에 연루되어 1840년부터 1848년까지 9년간 제주도로 유배되었고 헌종 말년에 귀양이 풀..
김매순金邁淳: 1776(영조 52)~1840(헌종 6) 후기 문신. 자는 덕수(德叟), 호는 대산(臺山). 1. 2. 『대산집(臺山集)』, 『대산공이점록(臺山公移占錄)』, 『주자대전차목문표보(朱子大全箚目問標補)』, 『궐여산필(闕餘散筆)』,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차군헌기此君軒記답정승지약용서答丁承旨若鏞書삼한의열녀전서三韓義烈女傳序풍서기風棲記논한음백사이공사論漢陰白沙二公事응객應客송두신문送痘神文답사심答士心작치설鵲鴟說 문학통사한시사 인용 안내도
홍석주洪奭周: 1774(영조 50)~1842(헌종 8)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성백(成伯), 호는 연천(淵泉). 1. 1795년(정조 19) 전강(殿講)에서 수석을 해 직부전시(直赴殿試)의 특전을 받고, 그 해 춘당대문과에 갑과로 급제해 사옹원직장을 제수받음. 2. 안동김씨 세력의 주변적 신료로서 세도정국에 참여했고 순조가 죽은 후 풍양조씨와 세력을 다투어 안동김씨 세도정권의 일익을 담당했음. 3. 1836년(헌종 2) 남응중의 모반에 연루되어 김로(金路)의 탄핵을 받고 삭직되었다가 1839년 복직하여 영중추부사에 이름. 4. 고증학에서 의리를 뒤로 미루는 것은 폐단이라고 비판하면서 주자학의 원칙을 지켜야 함을 주장함. 5. 『연천집(淵泉集)』, 『예기집설지의(禮記集說志疑)』, 『학강산필(鶴岡散筆)』..
이양연李亮淵: 1771(영조 47)~1853(철종 4) 자 진숙(晋叔), 호 임연(臨淵) 1. 광평대군의 후손으로 문학과 학문이 뛰어났음. 촌노부村老婦아막제兒莫啼야설野雪 문학통사미학산책 인용 안내도
김려金鑢: 1766(영조 42)~1822(순조 22) 본관은 연안(延安). 후기 학자. 자는 사정(士精), 호는 담정(藫庭). 1766년 김재칠(金載七)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남 1780년 15세 성균관에 들어감. 1792년 27세 성균관 진사시에 급제. 1797년 32세 11월에 강이천(姜彝天)의 비어옥사(蜚語獄事)에 연루되어 함경도 경원(慶源)에 유배되었지만 배소(配所)에 도착하기 전 왕명으로 다시 부령(富嶺)으로 이배(移配)됨. 12월에 부령에 도착. 『감담일기(坎萏日記)』 저술. 1799년 34세 부친 김재칠 사망. 「정안전(貞雁傳)」을 지음. 이 글로 인해 김종원(金鍾遠)의 옥사가 일어남. 1801년 36세 4월 신유사옥(辛酉邪獄)으로 다시 추국(推鞫)을 받고 진해로 유배됨. 이때 『사유..
이옥李鈺: 1760(영조 36)~1812(순조 12) 자는 기상(其相), 호는 문무자(文無子)ㆍ매사(梅史)ㆍ매암(梅庵)ㆍ경금자(絅錦子)ㆍ화석자(花石子)ㆍ청화외사(靑華外史)ㆍ매화외사(梅花外史)ㆍ도화류수관주인(桃花流水館主人). 1. 무반의 벼슬을 주로 한 서족(庶族)이다. 2. 성균관 유생 때 지은 글이 순정하지 못한 소품체란 견책을 받고 평생 불우하게 지냄. 3. 조선 후기 문학의 새로움을 대변한 시와 문장으로 높이 평가됨. 4. 그의 글은 『담정총서』에 수록되어 있음. 소비창극래小婢窓隙來조습궁체서早習宮體書낭집목조안郞執木雕雁 심생전沈生傳 이언인 일난俚諺引 一難이언인 이난俚諺引 二難이언인 삼난俚諺引 三難 태학산문선문학통사 인용 안내도
이서구李書九: 1754(영조 30)~1825(순조 25)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낙서(洛瑞), 호는 척재(惕齋)·강산(薑山)·소완정(素玩亭)·석모산인(席帽山人). 1. 10대 때부터 연암에게 수학함. 2. 『과정록』에선 재주가 몹시 빼어난 데다 침착하고 조용했으며 식견과 도량이 있어 연암이 매우 사랑했다고 했음. 3. 1774년(영조 50)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간ㆍ이조판서ㆍ우의정 등을 지냄. 4. 『척재집(惕齋集)』16권 7책과 『강산초집(薑山初集)』4권 1책이 전함. 만자백운계 부지서강구 소와송음하작晩自白雲溪 復至西岡口 少臥松陰下作산행山行춘일우중소집春日雨中小集 하야방연암장인기夏夜訪燕巖丈人記 한시사문학통사 인용 안내도
정조正租: 1752(영조 28)~1800(정조 24) 조선의 22대 왕으로 호(號)는 홍재(弘齋)다. 1. 1794년에 문체반정(文體反正)이란 문풍(文風) 개혁론을 일으킴. 2. 학문적으로 육경(六經) 중심의 남인학파와 친밀하였음. 3. 예론(禮論)에 있어 ‘임금의 예는 선비와 평민과는 다르다[王者禮不同士庶]’를 주장해 왕권 우위의 사고를 지님. 4. 남인에 뿌리를 둔 실학파(實學派)와 노론에 기반을 둔 북학파(北學派) 등 여러 학파의 장점을 수용하여 문풍을 진작시켜 나감. 5. 문학의 저변 확대를 위해 중인(中人), 중심의 위항문학(委巷文學)도 적극적으로 지원함. 패관잡기와 소품체에 대해열하일기에 대한 비판패관잡기에 대해 내린 하교동악ㆍ읍취헌ㆍ석주ㆍ눌재ㆍ삼연의 시 평가박은과 박상의 시 평가어제제증정읍취..
박제가朴齊家: 1750(영조 26)~1805(순조 5)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차수(次修)·재선(在先)·수기(修其), 호는 초정(楚亭)·정유(貞蕤)·위항도인(葦杭道人). 1. 이덕무(李德懋), 유득공(柳得恭) 등과 함께 서얼이지만 당대 최고의 시인이자, 학자로 평가됨. 2. 1778년 사은사 체제공을 따라 이덕무와 함께 중국을 다녀와서 실학의 정수를 담은 『북학의(北學議)』를 저술함. 3. 문학적 재능이 있었지만 서얼 출신인 까닭에 등용되지 못함. 4. 정조 3년(1779) 규장각 검서관이 됨. 5. 저서로는 『북학의(北學議)』·『정유집(貞蕤集)』·『정유시고(貞蕤詩稿)』·『명농초고(明農草藁)』 선연동嬋娟洞수주객사愁洲客詞효좌서회曉坐書懷춘사春詞성시전도응城市全圖應하연암작율시賀燕岩作律詩월뢰잡절月瀨襍絶등백운대..
유득공柳得恭: 1748(영조 24)~1807(순조 7) 본관은 문화(文化). 후기 실학자. 자는 혜풍(惠風)ㆍ혜보(惠甫), 호는 냉재(泠齋)ㆍ냉암(泠庵)ㆍ고운당(古芸堂)ㆍ고운거사(古芸居士). 1. 박지원(朴趾源)의 문하에서 수학함. 박제가(朴齊家) 등과 함께 ‘사가(四家)’로 호칭됨. 2. 서족(庶族) 출신임에도 정조의 배려로 규장각 검서(檢書)의 직책을 맡음. 3. 『냉재집(泠齋集)』, 『발해고(渤海考)』, 『사군지(四郡志)』, 『경도잡지(京都雜誌)』, 『앙엽기(盎葉記)』,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 발해고서渤海考序 송경잡절松京雜絶서경잡절西京雜絶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운암파왜도가雲巖破倭圖歌관어觀魚제중성주인벽상題中城主人壁上세모음歲暮吟남강요南江謠한시사문학통사 인용 안내도
이덕무李德懋: 1741(영조 17)~1793(정조 17) 후기 실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무관(懋官), 호는 형암(炯庵)·아정(雅亭)·청장관(靑莊館)·영처(嬰處)·동방일사(東方一士)·신천옹(信天翁). 1. 서얼 신분으로 크게 뜻을 펼칠 수 없었지만 학문과 시에 뛰어남. 2. 규장각 검서관으로 정조를 보필하여 많은 책의 편찬에 관여했고, 18세기 감각적인 시풍을 주도함. 3. 홍대용ㆍ박지원ㆍ박제가ㆍ유득공과 함께 북학의 학풍의 정립. 4. 저서로는 『관독일기(觀讀日記)』·『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영처시고(嬰處詩稿)』·『영처문고(嬰處文稿)』·『예기고(禮記考)』·『편찬잡고(編纂雜稿)』·『기년아람(紀年兒覽)』·『사소절(士小節)』·『청비록(淸脾錄)』·『뇌뢰낙락서(磊磊落落書)』·『앙엽기(盎葉記)』·『입연..
박지원朴趾源: 1737(영조 13)~1805(순조 5) 조선 후기의 실학자ㆍ문인.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미중(美仲), 호는 연암(燕巖)ㆍ열상외사(洌上外史). 1737년 서울 반송방(盤松坊) 야동(冶洞)에서 출생. 장인 이보천(李輔天)의 아우인 이양천(李亮天)에게서 『사기(史記)』를 시작으로 역사서적을 통해 문장 쓰는 법을 습득함. 1752년 16세 전주 이씨 보천(輔天)의 딸과 결혼. 1754년 18세 10대 후반에 우울증에 시달려 세상에 대한 관심으로 영역을 확대하여 18세 무렵에 「광문자전(廣文子傳)」을 지었다. 지음. 1757년 21세 「민옹전(閔翁傳)」 지음. 1759년 23세 모친 함평 이씨 별세. 1760년 24세 조부 박필균(朴弼均) 별세로 생활이 곤궁해짐. 1765년 29세 시 「총석..
이규상李圭象: 1727(영조 3)~1799(정조 23) 자(字)는 상지(像之), 호(號)는 유유재(悠悠齋)ㆍ일몽(一夢) 1. 쉰 살에 부인을 잃고 곤궁하게 오직 시와 문에 마음을 붙이면서 살았음. 2. 『병세재언록(幷世才彦錄)』으로 조선 후기 문학사를 증언하며 주목을 받았지만, 이규상은 스스로를 ‘시인’으로 여김. 홍세태와 이병연이 자타가 공인하는 시인이었고, 이규상 역시 시인이었다. 3. 시의 성과는 조선적인 당풍(이종묵 교수가 만든 말)이었음. 한 폭의 아름다운 산수화를 보는 듯한 흥감이 있음. 전가행田家行촌요村謠인주요仁州謠 우리 한시백악시단 인용 안내도
신광수申光洙: 1712(숙종38)~1775(영조 15)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성연(聖淵), 호는 석북(石北)ㆍ오악산인(五嶽山人). 1. 체제공, 이헌경 등과 함께 남인을 대표하는 문인임. 2. 충청도 한산에서 태어나 유명한 화가인 윤두서(尹斗緖)의 사위가 됨. 3. 과시(科詩)에 능했으며, 제주에 40여 일간 머물며 『탐라록(耽羅錄)』을 짓기도 함. 4. 38세에 진사급제, 53세에 음직으로 의금부도사가 되어 제주에 다녀왔으며 61세에 고령자에게 보이는 과거에 합격하여 승지 벼슬을 지냄. 5. 『석북집(石北集)』, 『석북과시집(石北科詩集)』 조천구사석응지朝天舊事石應知양피배자압신경羊皮褙子壓身輕협구소견峽口所見채신행採薪行동대東臺납월구일행臘月九日行숙미륵당宿彌勒堂잠녀가潛女歌제주걸자가濟州乞者歌송권국진가送權國珍..
이용휴李用休: 1708(숙종 34)~1782(정조 6) 자는 경명(景命), 호는 혜환재(惠寰齋) 방산가訪山家전가田家송신사군지임연천送申使君之任漣川송김탁경조윤지임문주送金擢卿朝潤之任文州이우상만李虞裳挽송정사군지임연강送鄭使君之任淵康송홍광국 영공지임서하送洪光國 令公之任西河 증정재중贈鄭在中차거기此居記한시사 인용 안내도
이익李瀷: 1681(숙종 7)~1763(영조 39)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자신(子新), 호는 성호(星湖) 1. 유형원(柳馨遠)의 학문을 계승하여 조선후기의 실학을 대성함. 2. 항상 세무실용(世務實用)의 학문에 주력함. 3. 당시 폐단을 개혁하기 위하여 사색과 연구를 거듭함. 4. 그의 실학사상은 정약용(丁若鏞)을 비롯한 후대 실학자들에 영향을 끼침. 백언해발百諺解跋선희학善戱謔예양론豫讓論향악鄕樂육두六蠹전론錢論고금문장古今文章빈소선생전顰笑先生傳팔방풍八方風 해거방축海居防築 문학통사 인용 안내도
이병연李秉淵: 1671(현종12)~1751(영조27)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일원(一源), 호는 사천(槎川) 1. 백악 아래 세거하면서 가까운 곳에 살던 김창흡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같은 동네에 살던 정선과도 친했음. 2. 금강산을 소재로 한 시가 뛰어나 이병연의 시와 정선의 그림을 나란히 보면 금강산 여행을 대신할 수 있다고 할 정도임. 3. 문인 김익겸(金益兼)이 그의 시집을 가지고 중국에 갔을 때 강남의 문사들이 명나라 이후의 시와 비교할 수 없다고 극찬한 바도 있음. 4. 김창흡과 함께 조선 후기 새로운 시풍을 개척함. 5. 시인으로 이름이 알려져 아이들까지도 ‘이삼척시(李三陟詩)’라고 일컬어질 정도였는데 그가 음직으로 삼척부사를 지냈기에 붙여진 것이다. 6. 시창작을 풍부하게 하여 무려 1..
홍세태洪世泰: 1653(효종 4)~1725(영조 1)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도장(道長), 호는 창랑(滄浪)ㆍ유하(柳下). 1. 무관집안으로 역과에 응시하여 통역하는 일을 맡은 이문학관(吏文學官)의 벼슬을 지냄. 2. 양반이 아니어서 신분의 제약이 있었지만, 시로 일세를 풍미했고 중국 사신이 우리나라의 시를 보고자 했을 때 최석정(崔錫鼎)이 숙종에게 그의 시를 추천함. 3. 김창협(金昌協) 같은 사대부 문인에게 “그대는 입에서 나오면 곧 문장을 이루는 구나”라는 칭찬을 받음. 4. 『유하집(柳下集)』이 있고, 편서로는 『해동유주(海東遺珠)』가 있다. 설초시집서雪蕉詩集序해동유주서海東遺珠序대간待姦 이숙장만李叔章挽문안聞雁염곡칠가鹽谷七歌철거우행鐵車牛行지상만흥 계유池上漫興 癸酉만흥漫興눈죽嫩竹만월대가滿月臺歌문학..
김창흡金昌翕: 1653(효종 4)~1722(경종 2) 본관은 안동(安東). 후기 학자. 자는 자익(子益), 호는 삼연(三淵). 1. 영의정을 지낸 김수항(金壽恒)의 아들로, 성리학에 일가를 이루었지만 한시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을 받음. 2. 형제들과는 달리 당쟁의 과정에서 희생 당한 부친의 영향으로 벼슬길에 들어서지 않고 산림처사로 살며 시를 지음. 3. 정약용은 『산행일기(山行日記)』에서 김창흡의 초상화를 보고 온화하면서도 단정하고 엄숙하며 복건에 띠를 두르고 산림처사의 기상이 있다고 함. 4. 정조는 『홍재전서(弘齋全書)』에서 “삼연 김창흡의 시는 예스러움에 가까워 이러한 격조가 아님이 없어 비록 중국의 명문장가와 섞어놓아도, 생각건대 혹 부끄러울 게 없다. 그러나 오히려 동악 이안눌과 읍취헌 ..
김창협金昌協: 1651(효종 2)~1708(숙종 34)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農巖)·삼주(三洲). 1. 김상헌의 증손이며 김수항의 아들. 이단상의 사위. 송시열을 종학하여 학문을 강론함. 2. 청풍부사로 있을 때 기사환국으로 아버지가 진도에서 사사되자, 사직하고 영평(永平,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에 은거함. 3. 1694년 갑술옥사 이후 아버지가 신원됨에 따라 호조참의·예조참판·홍문관제학·이조참판·대제학·예조판서·세자우부빈객·지돈녕부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직하고 학문에만 전념함. 4. 저서로는 『농암집(農巖集)』·『주자대전차의문목(朱子大全箚疑問目)』·『논어상설(論語詳說)』·『오자수언(五子粹言)』·『이가시선(二家詩選)』 등이 있고, 편저로는 『강도충렬록(江都忠烈錄)』·..
홍만종洪萬宗: 1637(인조 15)∼1688(숙종 14) 자는 우해(宇海), 호는 현묵자(玄默子)·몽헌(夢軒)·장주(長洲). 1. 문재(文才)가 있었기에 벼슬을 버리고 학문과 문장에 뜻을 두어 역사·지리·설화·가요·시 등의 저술. 2. 『해동이적(海東異蹟)』·『소화시평(小華詩評)』·『순오지(旬五志)』·『시평보유(詩評補遺)』·『동국역대총목』·『증보역대총목』·『시화총림(詩話叢林)』·『동국악보(東國樂譜)』·『명엽지해(蓂葉志諧)』·『동국지지략(東國地志略)』 순오지자서旬五志自序명엽지해蓂葉志諧소화시평小華詩評시화총림詩話叢林채련곡採蓮曲차동주관어대운次東州觀魚臺韻서회書懷(홍주세)견창송근입수중見蒼松根入水中(홍만식)월야문비파月夜聞琵琶(홍석기) 문학통사 인용 안내도
김만중金萬重: 1637(인조 15)~1692(숙종 18)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중숙(重淑), 호는 서포(西浦). 1637년 김장생(金長生)의 증손자인데, 부친 익겸(益兼)이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자결해 죽은 뒤 2월 10일 강화(江華)에서 서울로 가던 중 나루의 배 안에서 태어남. 1639년 3세 모부인 윤씨에게서 글을 배우기 시작함. 1650년 14세 진사(進士) 초시(初試)에 합격함. 1652년 16세 진사(進士) 초시(初試)에 시로 다시 합격함. 연안 이씨와 결혼. 1656년 20세 별시(別試)의 초시(初試)에 부(賦)로 합격함. 1662년 26세 증광(增廣) 초시(初試)에 표(表)로 합격. 1665년 29세 정시(庭試)에 장원급제. 성균관(成均館) 전적(典籍)ㆍ예조좌랑(禮曹佐郞)에 차례로 ..
김석주金錫冑: 1634(인조 12)~1684(숙종 10) 후기 학자. 자는 사백(斯百), 호는 식암(息庵). 1. 김육의 손자. 2. 『식암집(息庵集)』, 『해동사부(海東辭賦)』 기문홍조백寄問洪朝伯 고문백선서古文百選序곽장군전郭將軍傳해동사부서海東辭賦序 문학통사 인용 안내도

송익필宋翼弼: 1534(중종 29)~1599(선조 32) 중기 성리학자.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운장(雲長), 호는 귀봉(龜峰). 시호는 문경(文敬)임. 1. 신사무옥(辛巳誣獄)을 일으킨 송사련(宋祀連)의 아들. 송한필의 형 2. 신분이 서얼이며 아버지의 죄로 인해 과거를 볼 수 없어 이이(李珥)ㆍ성혼(成渾)과 교유함. 3. 무이시단(武夷詩壇)을 주도하여 당대 8문장의 한사람으로 문명(文名)을 날림. 4. 1586년에 동인(東人)들의 미움이 그에게 향했고 동인의 사주를 받은 안씨 일가는 환천(還賤)시켜 줄 것을 제소했으며 그의 형제를 비롯한 일족 70여 인이 환천됨. 5. 이후에 김장생ㆍ정철(鄭澈)ㆍ이산해(李山海)의 집을 전전하며 숨어지냄. 6. 이름을 바꿔 황해도에 이거하며 기축옥사(己丑獄事)를 일..
송시열宋時烈: 1607(선조 40)~1689(숙종 15) 후기 학자. 본관은 은진(恩津). 아명은 송성뢰(宋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菴) 또는 우재(尤齋). 시호는 문정(文正). 1. 김장생과 김집의 문인으로 이이(李珥)의 학통을 계승. 2. 27세 때 생원시(生員試)에서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를 논술하여 장원으로 합격함. 3. 병자호란으로 왕이 치욕을 당하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인질로 잡혀가자, 좌절감 속에서 낙향하여 10여 년 간 일체의 벼슬을 사양하고 전야에 묻혀 학문에만 몰두함. 4. 이때 송시열이 올린 「기축봉사(己丑封事)」는 정치적 소신을 장문으로 서술하여 효종의 북벌 의지와 부합함으로 장차 북벌 계획의 핵심 인물로 발탁되는 계기가 됨. 5. 1658년 7월 효종의..
김득신金得臣: 1604(선조 37)~1684(숙종 10)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공(子公), 호는 백곡(柏谷). 1.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노둔한 편이었으나, 아버지의 가르침과 훈도를 받아 서서히 문명을 떨친 인물임. 2. 아둔한 편으로 「백이전(伯夷傳)」을 1억 번이나 읽었고 자신의 서재를 억만재(億萬齋)란 이름으로 지음. 3. 시가 문집의 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시 재능이 뛰어났고 『종남총지(終南叢志)』와 같은 시화집을 엮을 정도로 안목도 갖춰졌음. 4. 『백곡집』 용호 / 용산龍湖/ 龍山소상야우瀟湘夜雨전가田家귀정문적龜亭聞笛시벽詩癖마상음馬上吟독수기讀數記증귀곡시서贈龜谷詩序와설猧說의설醫說한시사 연구한시사 인용 안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