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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페르시아적 사유와 초기기독교 나 예수는 종말론의 종말을 선포하노라, 시작에 서라 ❝예수운동에서 초기기독교로의 전환에는 기독론과 종말론이라는 두 개의 트랜스포메이션의 틀이 있다. 기독론, 즉 메시아사상은 유대교 자체의 전통에 속하지만, 종말론이란 조로아스터교의 영향 속에서 시대의 요청에 따라 강조되어간 이방전통이다. 종말론이 성행하면서 기독론조차도 원래의 정치적 맥락을 상실하고 재림사상으로 변모되어갔다. 역사적 예수는 이런 틀 속에서 포착되지 않는 동방적 사유를 과시하고 있다.❞ 제18장 1따르는 자들이 예수께 가로되, “우리의 종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 우리에게 말하여 주옵소서.” 2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시작을 발견하였느뇨? 그러하기 때문에 너희가 지금 종말을 구하고 있느뇨? 보아라! 시작이 있는 ..
제18장 시작과 끝 종말은 끝에 있지 않고 시작에 있나니라 ❝개인의 종말은 죽음이다. 그러나 죽음이 시간의 종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흔히 종말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개체의 죽음이 아닌 세상의 종말 같은 것인데, 인간세상이 종말된다고 또 시간이 종료되는 것도 아니다. 종말은 반드시 또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역사적 예수는 종말론과는 거리가 먼 사상가였다. 종말론을 운운한다면 예수의 종말은 시간을 역행하는 종말이었다.❞ 제18장 1따르는 자들이 예수께 가로되, “우리의 종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 우리에게 말하여 주옵소서.” 2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시작을 발견하였느뇨? 그러하기 때문에 너희가 지금 종말을 구하고 있느뇨? 보아라! 시작이 있는 곳에 종말이 있을지니라. 3시작에 서 있..
제17장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나 예수는 황홀한 경지를 선사하노라 ❝한국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는 눈으로 보여지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손으로 만져지는 것에만 집착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황홀한 경지는 신비체험이 아니라 나의 욕망을 근원적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제17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너희에게 여태 눈이 보지 못한 것, 귀가 듣지 못한 것, 손이 만지지 못한 것,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지 아니 한 것을 주리라.” 1Jesus said, “I shall give you what no eye has seen, what no ear has heard, what no hand has touched, what has not ari..
제16장 평화와 충돌 가정사에 집착 말고 홀로 서라 ❝예수는 결코 ‘전쟁과 평화’라는 세속적 대립의 주제를 말하지 않았다. 여기 평화라는 개념의 대립적 짝을 이루는 불과 칼과 전쟁은, 모두 가족관계와의 분열, 세속적 가치와의 충돌을 말하는 상징적 표현일 뿐이다. 내 마음의 평화는 궁극적으로 가족관계에 집착하지 않을 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제16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마도 사람들은 내가 이 세상에 평화를 던지러 온 줄로 생각할 것이다. 2그들은 내가 이 땅위에 충돌을 던지러 온 줄을 알지 못한다. 불과 칼과 싸움을 선사하노라. 3한집에 다섯이 있게 될 때, 셋은 둘에, 둘은 셋에, 아비는 이들에게, 아들은 아비에게 대항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4그리고 그들은 모두 각기 홀로 서게 되리라.” 1Jes..
제15장 태어난 자와 태어나지 않은 자 나 예수는 여자가 낳았다 ❝예수는 자기를 경배의 대상으로 선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수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자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을 경배할 수 없다. 인간이 경배해야 할 것은 오직 ‘아버지’일 뿐이다. 아버지는 인간의 형상 속에 갇힐 수 없다. 우리는 아버지를 인간의 편협한 인식의 틀 속에 가두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제15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여자에게서 태어나지 않은 자를 볼 때에는 너희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그를 경배하라. 그 이가 곧 너희 아버지니라.” 1Jesus said, “When you see one who was not born of woman, prostrate yourself on your faces and worshi..
밥[食]과 말[言] 더러운 것은 똥이 아니라 너의 마음이다 ❝도마복음 제14장은 금식ㆍ기도ㆍ구제ㆍ음식금기, 이 4가지 종교적 행위에 대한 역사적 예수의 가장 오리지날한 담론이다. 이 담론에서 마태 마가ㆍ누가의 관련된 담론이 어떻게 변형되어 갔나를 우리는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제14장 1예수께서 그들에게 가라사대, “너희가 금식(禁食)한다면, 너희는 너희 자신에게 죄를 자초(自招)하리라. 2그리고 너희가 기도한다면, 너희는 정죄(定罪)되리라. 3그리고 너희가 구제(救濟)한다면, 너희는 너희 영혼에 해악(害惡)을 끼치리라. 4너희가 어느 땅에 가든지, 한 시골동네를 거닐게 될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영접하면, 그들이 대접하는 음식을 그대로 먹으라, 그리고 그들 가운데 있는 병자(病者)를 고쳐주어라. ..
제14장 기도와 구제 금식하지 말라, 기도하지 말라, 구제하지 말라 ❝모든 지고한 종교적 경지는 상식적 가치의 전도를 요구한다. 자선사업에 헌신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가난한 자에게 주는 돈 한 푼이 그 가난을 영속시키는 데만 공헌한다면 그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제14장 1예수께서 그들에게 가라사대, “너희가 금식(禁食)한다면, 너희는 너희 자신에게 죄를 자초(自招)하리라. 2그리고 너희가 기도한다면, 너희는 정죄(定罪)되리라. 3그리고 너희가 구제(救濟)한다면, 너희는 너희 영혼에 해악(害惡)을 끼치리라. 4너희가 어느 땅에 가든지, 한 시골동네를 거닐게 될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영접하면, 그들이 대접하는 음식을 그대로 먹으라, 그리고 그들 가운데 있는 병자(病者)를 고쳐주어..
도마와 노자 예수를 예수라 말하면 그것은 예수가 아니다 ❝도마복음서에는 모든 제자 중에서 도마가 베드로 대신 월등히 우위를 차지하는 제자로서 등장한다. 타제자들을 지도할 수 있는 예수사상의 정통성을 승계하고 있다. 그리고 그와 예수의 담론은 기독론이나 종말론과는 관련이 없다. 예수의 경지는 인간의 언어를 초월하는 절대적 타자로서 저켠에 있다. 그러기에 예수는 오히려 우리의 생명 속에 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제13장 1예수께서 그의 따르는 자들에게 가라사대, “나를 무엇엔가 비교해보아라. 그리고 내가 무엇과 같은지 말해 보라.” 2시몬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당신은 의로운 천사 같나이다.” 3마태가 예수께 말하였다: “당신은 현명한 철학자 같나이다.” 4도마가 예수께 말하였다: “스승님이시여! 제..
제13장 가이사랴의 철학자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천사? 철학자? ❝예수는 희랍의 목동의 신 판에게 봉헌된 신전 앞에서 제자들과 대화를 나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묻는다. 그런데 이 공관복음서의 질문과 대답은 기독론적으로 윤색되어 있다. 기독론적으로 윤색되기 이전의 한 원형적 모델을 우리는 도마복음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제13장 1예수께서 그의 따르는 자들에게 가라사대, “나를 무엇엔가 비교해보아라. 그리고 내가 무엇과 같은지 말해 보라.” 2시몬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당신은 의로운 천사 같나이다.” 3마태가 예수께 말하였다: “당신은 현명한 철학자 같나이다.” 4도마가 예수께 말하였다: “스승님이시여! 제 입은 지금 당신이 무엇과 같은지 전혀 언표(言表)할 수 없나이다.”..
제12장 의로운 자 야고보 예수의 말씀은 중간적 지도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 장의 메시지는 피상적으로 보면 초대교회에 있어서의 야고보의 예루살렘교회 리더십을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다. 예수의 말씀은 듣는 사람들이 직접 부딪히어 해석해야 할 과제상황이며 외재적 리더십을 요구하지 않는다. 야고보에게 가라는 이야기는 외재적 리더십을 요구하는 낮은 차원의 사람들에게 발한 부차적 명제이다.❞ 제12장 1따르는 자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당신이 언젠가 우리를 떠나리라는 것을 우리가 아나이다. 누가 우리의 지도자가 되오리이까?” 2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너희가 어느 곳에 있든지, 너희는 의로운 자 야고보에게 갈 것이니라. 그를 위하여 하늘과 땅이 생겨났느니라.” 1The..
하나와 둘 구원을 얻었다고 하자! 과연 너는 무엇을 할 것인가? ❝어둠만을 강조하고 그것에 반사적으로 빛을 제시하는 것은 하나의 기만일 수가 있다. 빛은 어디에나 있다. 그것은 발견의 문제일 뿐이다. 우리 인생의 문제는 빛 속에 거하게 될 때 과연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이냐에 있다. 구원 그 자체는 의미가 없다. 구원을 얻었을 때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 불교의 해탈도 그것이 하나의 실체로 이해되면 기만적 궁극주의에 불과한 것이다.❞ 제11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하늘도 사라지리라. 그리고 이 하늘 위에 있는 저 하늘도 사라지리라. 2죽은 자들은 살아있지 아니 하다. 그리고 살아있는 자들은 죽지 아니 하리라. 3너희가 죽은 것을 먹던 그 날에는 너희는 죽은 것을 살아있는 것으로 만들었도다. 너희가 ..
제11장 죽은 자와 살아있는 자 저 하늘도, 그 위의 하늘도 사라지리라 ❝도마복음의 언어는 암호와도 같다. 단절된 파편들의 미장센 같다는 느낌을 준다. 고대인들의 하늘은 중층적이었다. 그런데 하늘 위에 천국이 있다는 생각은 망상이다. 저 하늘은 끊임없이 사라지고 있다. 죽은 자들은 살아있지 아니 하다는 말은 우리 주변에 죽은 자들처럼 살고있는 자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제11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하늘도 사라지리라. 그리고 이 하늘 위에 있는 저 하늘도 사라지리라. 2죽은 자들은 살아있지 아니 하다. 그리고 살아있는 자들은 죽지 아니 하리라. 3너희가 죽은 것을 먹던 그 날에는 너희는 죽은 것을 살아있는 것으로 만들었도다. 너희가 빛 속에 거하게 되었을 때는 과연 너희는 무엇을 ..
제10장 불씨와 세상 불은 심판이 아니라 천국운동의 불씨였다 ❝누가복음과 도마복음에 불의 비유가 공통으로 나온다. 여태까지 신학자들은 복음서에 불만 나오면 최후의 심판으로 등식화시켜 해석했다. 그러나 그 도마복음에 나오는 불의 비유의 원형은 불이 세계를 일시에 불사르는 막강한 불이 아니라 천국운동의 작은 불씨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보호해야만 타오를 수 있는 연약한 불씨였던 것이다.❞ 제10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이 세상에 불을 던졌노라. 그리고 보라! 나는 그 불이 활활 타오를 때까지 그 불을 지키노라.” 1Jesus said, “I have cast fire upon the world, and look, I am guarding it until it blazes.” 시대를 앞서간 저항..
씨 뿌리는 자의 비유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 씨처럼 자라나고 있다 ❝마가복음에는 예수가 자신의 비유를 직접 해석하는데, 그 해석은 기독론적, 종말론적 상황에 이미 오염되어 있다. 그러나 도마복음에는 그러한 선ㆍ악의 이원론적 전제가 없다. 길에 떨어진 씨를 새가 쪼아먹는다고 새가 악마일 수는 없다. 그것은 자연이다. 그것도 우리의 천국체험의 중요한 요소이다. 천국은 자연의 과정에서 우리가 체험할 수밖에 없는 기다림 속에 내재하는 것이다.❞ 제9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보라! 씨 뿌리는 자는 나갔다. 한 줌의 씨를 손에 가득 쥐고 그것을 뿌렸다. 2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쪼아 먹어 버렸고, 3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땅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해 이삭을 내지 못했고, 4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
제9장 마가복음과 도마복음 예수의 비유가 과연 천국의 비밀일까?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공관복음서의 대표적인 비유이다. 마태·누가의 비유는 마가의 비유를 원자료로 하고 있다. 그런데 마가의 비유보다 더 오리지날한 한 조형이 도마복음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라는 사실이 밝혀져 신학계에 충격을 던져주었다. 예수의 비유에 예수가 직접 주석을 달 수는 없는 것이다.❞ 제9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보라! 씨 뿌리는 자는 나갔다. 한 줌의 씨를 손에 가득 쥐고 그것을 뿌렸다. 2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쪼아 먹어 버렸고, 3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땅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해 이삭을 내지 못했고, 4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기운을 막았고 벌레가 삼켜버렸다. 5그리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그..
제8장 큰 고기와 작은 고기 긁어모으는 자가 되지 말고 버리는 자가 되라 ❝도마복음의 언어는 직유로 가득차 있다. 인간다운 인간을 슬기로운 어부에 비유한다. 슬기로운 어부는 그물에 가득찬 고기를 다 버린다. 그 속에 번뜩이는 단 하나의 큰 물고기를 얻기 위해.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중요한 것을 얻을 줄 아는 사람은 잔 것들을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사람이다.❞ 제8장 1그리고 그께서 가라사대, “사람된 자는 슬기로운 어부와도 같도다. 그는 그의 그물을 바다에 던져 작은 고기가 가득찬 채로 바다로부터 끌어올리는도다. 2그 가득한 고기 가운데서 슬기로운 어부는 잘생긴 큰 고기 한 마리를 발견하는도다. 3그는 모든 작은 고기를 다시 바다 속으로 던져 버린다. 그리고 어려움 없이 그 큰 고기 한 마리를 가려 얻는다..
이드와 사자 덮치는 사자를 먹어라! ❝내 몸속에 있는 사람이 달려드는 사자를 먹으면 나라는 인간은 그만큼 승화된다. 내 몸속의 사자가 내 몸속의 사람으로 화했기 때문이다. 마태, 누가는 예수가 탐식가요, 술주정뱅이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는 금욕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사자를 항상 삼켜먹을 수 있는 강렬한 자제력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제7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복되도다 사자여! 사람이 그대를 먹어삼키기에 그대는 사람이 되는 도다. 2저주 있을진저 사람이여! 사자가 그대를 먹어삼킬 것이니, 사자가 사람이 될 것이로다.” 1Jesus said, “Blessed is the lion that the human will eat, so that the lion becomes human. 2And cursed ..
제7장 플라톤의 국가와 예수의 천국 이 세계는 지배자가 철인이 될 때만 정의롭다 ❝도마복음은 상징언어로 가득차 있다. 그러기에 그것은 해석의 대상이다. 해석의 과정이 곧 추구와 발견의 과정이다. 그러나 발견은 번민을 낳는다. 그러나 번민이 있어야만 우리는 경이를 체험한다. 경이를 체험한다는 것은 내가 나의 왕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사자를 먹는다는 것은 결국 이 왕됨에 관한 이야기이다.❞ 제7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복되도다 사자여! 사람이 그대를 먹어삼키기에 그대는 사람이 되는 도다. 2저주 있을진저 사람이여! 사자가 그대를 먹어삼킬 것이니, 사자가 사람이 될 것이로다.” 1Jesus said, “Blessed is the lion that the human will eat, so that the ..
하늘과 알레테이아 숨겨진 것은 하늘 앞에 반드시 드러난다 ❝도마복음의 언어는 매우 진솔하고 직설적이다. 종교적 경건을 표방하는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도 없는 금식, 기도, 구제, 금기를 행하는 외식적 행위들을 예수는 가증스러운 위선으로 규정하고 일말의 가치도 부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말한다: ‘너희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말라.’❞ 제6장 1그의 따르는 자들이 그에게 여쭈어 가로되, “우리가 금식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오리이까? 구제는 해야 하오리이까? 음식 금기는 무엇을 지켜야 하오리이까?” 2예수께서 가라사대,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하지말라. 3그리고 너희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말라. 4모든 것은 하늘 앞에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5감추인 것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고, 6덮힌 것은 벗..
제6장 히포크리테스(위선자)의 경건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하게 기도하라 ❝예수는 매우 솔직한 사람이었다. 그가 일상적으로 가장 혐오했던 것은 종교인들의 위선이었다. 예수는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이 종교적이 되는 것을 가장 혐오했다. 종교는 본시 사람들의 의로운 행위로 구성되는 것인데, 그 의로움이란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시고, 보시고, 갚으시는 하나님과의 은밀한 소통에서만 성립하는 것이다. 인간세의 상찬과 무관한 것이다. 구제할 때에도,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 예수는 인류역사에 고매한 도덕기준을 제시했다.❞ 제6장 1그의 따르는 자들이 그에게 여쭈어 가로되, “우리가 금식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오리이까? 구제는 해야 하오리이까? 음식 금기는 무엇을 지켜야 하오..
제5장 그노시스와 아포칼립스 천당도 없고 지옥도 없다. 머리 위로 푸른 하늘만 ❝도마복음 속의 살아있는 예수는 천국을 철저히 현재화시킨다. 그리고 천국에 대한 모든 신비나 초월이나 은폐를 거부한다. 천국은 명명백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천국은 사기술이다. 예수는 명료히 말한다. 신비의 계시보다 네 눈앞에 보이는 명명백백한 사실들의 앎이 더 본질적인 것이다. 예수는 오직 ‘지금 여기’를 말한다.❞ 제5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눈앞에 있는 것을 먼저 알라. 그리하면 너로 부터 감추어져 있는 것이 다 너에게 드러나리라. 2감추인 것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1Jesus said, “Know what is in your(sg.) sight, and what is hidden from y..
첫째와 꼴찌 어린이는 도덕적 순결의 상징 아닌 웅혼한 원초성 ❝큐복음서나 공관복음서의 공통자료들은 이미 기독론이나 종말론의 필터를 거치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 큐에서 도마로 거슬러 올라가 볼 때만이 우리는 비로소 거대하고 웅혼한 역사적 예수의 실상을 접하게 된다. 그것은 동·서가 회통된 원초적 혼돈이었다.❞ 제4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나이 먹은 어른이 칠일 갓난 작은 아이에게 삶의 자리에 관해 묻는 것을 주저치 아니한다면, 그 사람은 생명의 길을 걸을 것이다. 2첫찌의 많은 자들이 꼴찌가 될 것이요, 3또 하나된 자가 될 것이니라.” 1Jesus said, “The man old in days will not hesitate to ask a small child seven days old about..
시간의 반역 봄비에 솟아오르는 연두잎 같은 노인이 되라 ❝어른과 아이는 객체화된 개체들의 모습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Self)의 측면들이다. 나 속에 내재하는 아키타입들인 것이다. 어른이란 노자가 말하는 죽음의 무리며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하향(下向)이다. 아이란 삶의 무리며 상향(上向)이다. 아이가 어른을 따를수록 죽음의 무리는 죽음을 향해 질주하며, 어른이 아이를 따를수록 삶의 무리가 생명을 향해 상향의 길을 더듬는다. 천국이란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길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아이로 역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세계다. 천국은 가치의 전도이며 시간의 반역이다.❞ 제4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나이 먹은 어른이 칠일 갓난 작은 아이에게 삶의 자리에 관해 묻는 것을 주저치 아니한다면, ..
어른과 아이 아기는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질 않는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였다. 그리고 이렛날에는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었다. 여기 ‘칠일 갓난 작은 아이’는 안식일의 아이다. 그 아이는 창조된 천지의 모든 것을 구유(具有)한 생명이지만 어른의 탐욕과 권세와 강성에 물들지 않은 순결한 원초성이다. ‘어른’과 ‘아이’는 객관화되는 개체들이 아니라 우리 자신(Self)에 내재하는 일종의 아키타입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자리를 어른쪽으로 가져가면 안 된다. 항상 아이쪽으로 가져가야 한다. 그래야 생명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제4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나이 먹은 어른이 칠일 갓난 작은 아이에게 삶의 자리에 관해 묻는 것을 주저치 아니한다면, 그 사람은 생명의 길을 걸을 것이다...
자웅동체의 시간관 묵시를 완성치 말고 낙원을 회복하라 ❝도마복음서의 상징체계는 난해하다. 그러나 그 상징체계가 소기하고 있는 가치관을 이해하면 쉽게 풀려나간다. 놀라웁게도 그 상징언어들은 하나로 다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이 자웅동체일 수는 없다. 그러나 도마복음서는 자웅동체라는 상징을 인간이 지향해야 할 웅혼한 이상으로서 계속 제시한다. 그 상징성은 우리의 통념적 시간관을 역전시킬 때만이 료해(了解)된다. 그것은 기묘한 신화가 아니라 우리 삶에 전혀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하는 것이다.❞ 제4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나이 먹은 어른이 칠일 갓난 작은 아이에게 삶의 자리에 관해 묻는 것을 주저치 아니한다면, 그 사람은 생명의 길을 걸을 것이다. 2첫찌의 많은 자들이 꼴찌가 될 것이요, 3또 하나된 자가..
제4장 아니마와 아니무스 남자 속에 여자가 있고, 여자 속에 남자가 있다 ❝도마복음은 상징적 언어로 가득차 있다. 이 상징체계를 푸는 데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우리가 알고있는 기독교라는 가치체계의 상념의 탈을 여지없이 벗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사고는 대중화되면 될수록 다면적인 데서 일면적으로, 포섭적인 데서 단선적으로 흐르기 쉽다. 오늘의 기독교는 그 원래의 원융적이고 자각적인 고차원의 세계관을 획일적이고 의타적인 세계관으로 저급화시킨 결과의 산물이다.❞ 제4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나이 먹은 어른이 칠일 갓난 작은 아이에게 삶의 자리에 관해 묻는 것을 주저치 아니한다면, 그 사람은 생명의 길을 걸을 것이다. 2첫찌의 많은 자들이 꼴찌가 될 것이요, 3또 하나된 자가 될 것이니라.” 1Je..
아가페와 그노시스 네가 곧 하나님의 아들이다 ❝인간이 하나님인가 아닌가? 이러한 문제에 관한 대답은, 인간을 하나님과 동차원에서 바라볼 수 없는 비열한 존재로 파악하거나, 인간에게 부분적인 신성의 족보를 허락하거나, 인간에게 완벽한 신성을 부여하거나, 이 세 가지로 요약될 것이다. 과연 어느 것이 정답일까? 물론 정답은 없다. 시·공의 다양한 가치관에 따라 끊임없는 해석이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논의를 끊임없이 개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제3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를 이끈다 하는 자들이 너희에게 이르기를, ‘보라! 나라(천국)가 하늘에 있도다’ 한다면, 하늘의 새들이 너희보다 먼저 나라에 이를 것이다. 2그들이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라는 바다 속에 있도다’ 한다면, 물고기들이 너희보..
소크라테스와 예수 너 자신을 알라 ❝예수와 그리스도는 별개의 관념이다. 그러나 초기기독교의 역사는 예수를 그리스도로서 당대의 민중들에게 설득시켜 간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만드는 과정에는 반드시 부활이라는 신화가 개입된다. 그 신화는 기독교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의 죄의 대속(代贖)이라는 의미를 반드시 지녀야 했다. 이런 초기 그리스도 운동의 대표적인 리더가 바울이었다. 그러나 도마복음서는 동시대에 이미 그러한 그리스도운동과는 전혀 종류가 다른, 순결한 예수운동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우리에게 웅변하고 있다.❞ 제3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를 이끈다 하는 자들이 너희에게 이르기를, ‘보라! 나라(천국)가 하늘에 있도다’ 한다면, 하늘의 새들이 너희보다 먼저 나라에 이를 것이다. 2..
안과 밖 천국은 네 안에 있고, 네 밖에 있다 ❝도마복음서가 몇백 년 전에만 발견되었더라도 그것은 이단의 불경한 서물로 몰려 불태워졌을 것이다. 기독교 정통주의의 역사는 은폐의 역사였다. 그러나 양식사학으로부터, 나그함마디문서의 발견으로 촉발된 현대신학에 이르는 찬란한 20세기 신학의 성과는 기독교를 2천 년 동안 한번도 경험할 수 없었던 본질적 해부의 시험대로 올라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기독교는 이미 되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제3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를 이끈다 하는 자들이 너희에게 이르기를, ‘보라! 나라(천국)가 하늘에 있도다’ 한다면, 하늘의 새들이 너희보다 먼저 나라에 이를 것이다. 2그들이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라는 바다 속에 있도다’ 한다면, 물고기들이 너희보다..
제3장 주체의 혁명 천국(나라)은 천당이 아니요, 주체의 개벽이다 ❝예수는 나라(천국)를 선포한 이 땅의 지혜였다. 예수가 선포한 나라를 우리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만드는 최대의 방해꾼들은 바로 우리를 바르게 인도한다고 말하는 자들이다. 예수는 모든 조직과 전도주의를 거부한다. 우리의 인도자들은 항상 말한다. 천국은 저 하늘에 있도다! 그렇게 말하는 모든 인도자들은 사기꾼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 본인의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제3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를 이끈다 하는 자들이 너희에게 이르기를, ‘보라! 나라(천국)가 하늘에 있도다’ 한다면, 하늘의 새들이 너희보다 먼저 나라에 이를 것이다. 2그들이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라는 바다 속에 있도다’ 한다면, 물고기들이 너희..
지혜와 왕(王) 구하는 자여! 그대 ‘몸의 왕국’의 왕이 되라 ❝도마복음의 언어는 고도의 상징적 체계이다. 그 은밀함을 푸는 열쇠 중의 하나가 지혜문학전통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많은 신학도들이 암암리 기독교를 서양 종교로 규정하고 동양적 가치관으로 접근하는 것을 경계한다. 그러나 AD 1세기의 기독교는 동·서양이 완전히 융합된 가치관의 산물이었다.❞ 제2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구하는 자는 찾을 때까지 구함을 그치지 말지어다. 2찾았을 때 그는 고통스러우리라. 3고통스러울 때 그는 경이로우리라. 4그리하면 그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되리라.” 1Jesus said, “He who seeks should not stop seeking until he finds? 2When he finds, ..
쉬움과 어려움 찾았을 때 너는 고통스러우리라 ❝모든 종교가 지향하는 목표는 같다. 그 목표가 인간의 구원이라고 한다고 하면 제종교간에도 별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종교는 인간의 구원이 쉽게 얻어진다고 생각하는가 하면, 어떤 종교는 매우 어렵다고 판단한다. 한 종교 내에서도 쉬움(易)과 어려움(難)의 견해 차이는 종단이나 분파간에 다양한 교리를 형성시킨다. 대체로 대승은 쉬운 길을 택한다. 물론 쉬움의 위대성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쉬움의 교리는 의타적 기만성을 조장할 수도 있다. 살아 있는 예수는 우리에게 인간의 구원이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제2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구하는 자는 찾을 때까지 구함을 그치지 말지어다. 2찾았을 때 그는 고통스러우리라. 3고통스러울..
제2장 소승과 대승 구하라! 그러나 쉽게 얻을 것을 기대치 말라 ❝모든 종교는 소승에서 대승으로 발전경로를 거치게 마련이다. 작은 숫자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신봉을 하던 시대에서 거대 숫자의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신봉되는 시대로 확대되는 것이다. 이때 반드시 철학의 변화가 일어난다. 소승의 내면적이고 심오한 가르침은 보다 쉽고 보편적이고 즉각적인 성격으로 변화한다. 그 단적인 변화가 우리의 ‘구함’에 대한 도마의 기술과 마태의 기술에서 예시되고 있음을 본다.❞ 제2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구하는 자는 찾을 때까지 구함을 그치지 말지어다. 2찾았을 때 그는 고통스러우리라. 3고통스러울 때 그는 경이로우리라. 4그리하면 그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되리라.” 1Jesus said, “He who seeks sh..
죽음의 해석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인간은 죽는 순간까지 살아있을 뿐이다. 인간에게 죽음은 물리적으로 체험되는 사태는 아니다. ‘맛본다’는 것은 삶의 행위일 뿐이다. 그 맛보는 삶의 감각적 행위 속에 죽음이라는 메뉴가 들어있지 않다는 것은, 인간이 죽지 않는다는 사실판단의 명제는 아닌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의 고귀함을 드러내기 위한 심볼리즘일 뿐이다. 그 심볼리즘은 예수가 선포하는 천국의 해석과 관련되어 있다. 도마복음은 영생(永生)을 신앙의 미끼로서 실체화하지 않는다.❞ 제1장 그리고 그가 말하였다: “이 말씀들의 해석을 발견하는 자는 누구든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And he said, “Whoever discovers the interpretation of these sayings ..
해석의 발견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우리는 기독교를 공관복음이 되었든 요한복음이 되었든 신약 4복음서의 틀 속에서만 규정하려고 한다. 이것은 기독교 정통주의의 너무도 당연한 입장이기 때문에, 나는 그 정당성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최소한 제1세기의 기독교형성사를 생각할 때 이러한 정통주의는 사소한 편견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기독교는 4복음서 이외로도 수없는 복음서를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기독교운동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가치관의 스펙트럼 속에 있었다. 도마복음서 그 다양한 물줄기의 주류를 형성하는 은밀한 연원이었다.❞ 제1장 그리고 그가 말하였다: “이 말씀들의 해석을 발견하는 자는 누구든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And he said, “Whoever disco..
제1장 요한복음과 도마복음 로고스기독론은 도마의 자각성에 대한 극단적 반동이다 ❝4복음서 중에서 유독 요한복음에만 ‘쌍둥이라 불리는 도마’가 출현한다. 이 도마는 예수가 부활한 몸으로 처음 제자들에게 나타나는 바로 그 결정적인 시각에 제자들과 함께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기 손을 예수의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예수는 후에 나타나 도마에게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한다. 요한은 여기서 도마기독교인들의 자각적이고 실험적인 정신을 평범한 굴종의 믿음으로 변질시키고 있는 것이다.❞ 제1장 그리고 그가 말하였다: “이 말씀들의 해석을 발견하는 자는 누구든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And he said, “Whoever discovers the interpret..
은밀한 말씀과 나레이터 살아있는 독자들이여! 살아있는 예수를 만나라 ❝기록자 도마는 1인칭이 아닌 3인칭으로 서술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도마의 기록 그 자체를 연출하고 있는 내레이터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도마복음서는 도마에 의한 복음서가 아니라 도마가 기록자로 등장하는 내레이터에 의한 복음서이다. 그 내레이터는 과연 누구일까? 그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가?❞ 우리는 이미 이 서장의 언어에서 4개의 해석학적 함수를 끄집어 내었다. 1) 화자(Speaker): 예수 2) 청자(Listener): 예수의 청중 3) 기록자(Recorder): 도마 4) 독자(Reader): 도마공동체. 그러나 서장의 언어는 이 4개의 함수로써 완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 4개의 함수를 모두 지배하는 가장 결정..
성서와 해석학 예수는 어느 나라 말을 했을까? ❝도마복음의 서장은 우리에게 매우 중층적인 해석학적 함수들을 제시하고 있다. 성서는 고문헌이다. 해석학적 인식론의 반성을 거칠 때만 우리에게 료해될 수 있는 것이다. 신앙은 맹목과 맹종을 벗어날 때만이 신앙이다.❞ 이는 살아있는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쌍둥이 유다 도마가 기록한 은밀한 말씀들이니라. These are the secret sayings that the living Jesus spoke and Judas Thomas the Twin recorded. 이 서장의 언어로부터 읽어낼 수 있는 해석학적 함수로서 우리는 다음의 4기둥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화자(Speaker)인 예수가 있다. 둘째는 청자(Listener)인 예수의 청중이 있다. 셋째는 ..
예수의 죽음 예수는 기묘한 과일이었다 ❝예수는 과연 어떻게 죽었을까? 그의 죽음에 관하여 우리가 알고있는 이야기는 모두 마가복음을 원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마태, 누가, 요한은 마가의 기술을 자기 나름대로 특색있게 각색하고 있다. 마가복음의 기술은 애초부터 예수의 생애에 관한 사실적 보고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그리스도됨의 선포가 목적이었기에, 예수의 죽음은 오직 부활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예수의 죽음은 현대신학에서는 불가지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앞 편에서 우리는 브레데와 슈바이처, 두 위대한 사상가의 역사적 예수의 삶에 관한 상반된 견해를 살펴보았다. 슈바이처의 논의는 매우 웅장하고 웅변적이다. 그리고 예수라는 실존했던 인간의 모습을 파악하는 데 매우 구체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그러..
슈바이처와 도마복음 그대들은 내가 꿈꾸는 사람이라 말하겠지 ❝슈바이처를 우리는 노벨평화상을 받은 의사로서만 알고 있지만, 그는 의사가 되기 전에 이미 세계적인 신학자로서 명성을 휘날린 사람이었다. 그의 명저 『역사적 예수의 탐구』는 서구신학사의 진보적 흐름을 총망라하여 일별하고 역사적 예수에 관한 논의를 종결지었다. 슈바이처는 역사적 예수 본인이 종말론적 의식 속에서 산 사람이었고, 또 그러한 신념에 따라 소신껏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분석한다. 종말론에 관한 한 그는 불트만의 선구였다.❞ 브레데는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가 결코 메시아라는 의식을 가진 인물일 수가 없다는 것을 ‘메시아비밀(the Messianic Secret)’ 이라는 절묘한 마가복음서 기술상의 개념을 활용하여 입증한..
메시아 비밀 내가 메시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마가복음이 공관복음서 중에서 가장 오리지날한 성격의 문헌이라는 것은 20세기 성서학자는 거개(擧皆)가 다 인정한다. 그런데 마가복음의 기술 중에 아주 이상한 장면이 계속 반복해서 나타난다. 예수가 이적을 행하거나 귀신을 내쫓을 때나 변방을 다닐 때 항상 구차스럽게 자기본색을 감추게 해달라고 당부하는 것이다. 예수 자신의 이러한 메시아 감춤을 브레데는 ‘메시아 비밀’이라고 불렀다. 이 비밀을 캐는 브레데의 학구적 노력이 양식사학이라는 거대한 물줄기를 개척하였던 것이다.❞ 20세기 신학계에 여러 측면에서 가장 심원한 영향을 끼친 거목 불트만(Rudolf Karl Bultmann, 1884~1976)의 거대한 연구에 선행하여, 양식비평(form cri..
화자와 기록자 예수의 말을 예수의 쌍둥이가 기록하다 ❝화자와 기록자, 그리고 독자, 이 삼자의 해석학적 일체감은 도마복음서를 포함한 나그함마디 문서 전체를 일관하는 정조(情調)였다. 화자, 기록자, 독자가 모두 예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초기 예수운동의 당연시되었던 모티프였다.❞ 이 서장은 콥트어 판본뿐만 아니라 옥시린쿠스사본(POxy) 654번에도 동일한 내용과 형식의 문장이 실려있다. 따라서 114개의 로기온자료를 관(冠)하는 것으로 정확한 의도를 가지고 편집된 총론(總論)임이 분명하다. 후대의 첨가가 아닌 것이다. 이 서장은 도마복음서 전체의 성격을 규탐케 만드는 창(窓)인 것이다. 우리는 지난 주까지 ‘살아있는 예수’가 과연 어떠한 함의를 지니는 지를 살펴 보았다. 죽은 예수가 아닌 살아있는 예수..
메시아니즘과 도마복음 교회는 종말론적 회중이었다 ❝바울은 죽은 예수를 만났다. 바울은 살아있는 예수를 만난 적이 없다. 죽은 예수를 만났기에 그가 만난 예수는 부활한 예수였다. 따라서 그의 선포의 주제는 예수가 말하는 생생한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부활이었다. 예수의 부활을 우리의 다시 태어남의 한 모델로 생각했다. 그러니까 바울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해석했다. 그에게는 살아있는 예수의 말씀이 존재치 아니했다.❞ 도마복음서를 만든 사람들에게는 목사나 신부나, 사도신경이나, 신약정경 27서와도 같은 오늘날 교회조직이 강요하는 일체의 권위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그러한 문제가 스트레스를 주는 실체로서 형상화되기 이전의 시대였다. 그러나 이미 예수 사후 직후부터 예수운동은 다양한 발전경로를 걷기 시작했다..
서장(序章, Prologue) 영지주의와 도마복음 교회 밖에는 구원이 있을 수 없나? ❝초대교회사에서 교회라는 조직이나 정경(正經)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모든 종교운동을 영지주의라고 부르는 경향성이 있었다. 영지주의는 선ㆍ악 이원론적 신관이나 우주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규정하지만 실상 하나의 세계관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조류였다. 궁극적으로 영지주의는 기독교에 대항하는 어떤 운동으로서 실체화될 수 없다. 기독교도 거시적으로 보면 영지주의적 세계관 속에서 진행된 하나의 특수한 운동형태였을 뿐이다.❞ 서장(序章, Prologue) 이는 살아있는 예수께서 이르시고 쌍둥이 유다 도마가 기록한 은밀한 말씀들이라. These are the secret sayings that the living Jesus ..
콥트어와 성각문자 인간의 언어는 문자라기보다는 소리의 체계 ❝도마복음서는 콥트어로 쓰여졌다. 콥트어는 고대 이집트 언어 발달사의 최후단계에 해당되는데 희랍문자를 차용한 알파벳언어이다.❞ 도마복음서 텍스트는 콥트어(Coptic)로 되어있다. 물론 도마복음서가 최초로 콥트어로 집필되었다고 간주되지는 않는다. 앞서 우리가 논의했듯이, 옥시린쿠스 사본(POxy)을 통하여 콥트어 텍스트에 선행하는 희랍어 텍스트의 존재가 입증되기 때문이다(『도올의 도마복음한글역주』 1, 325~328). 그러나 희랍어 텍스트는 부분 편린(片鱗)만 남아있는 데 반하여 콥트어 텍스트는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기 때문에 우리는 콥트어를 통하여 도마복음서의 전모를 파악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콥트어는 비록 외견상으로는 희랍어의 자모를 빌리고..
에데사의 도마행전 예수가 편지를 쓰다 ❝4세기 초의 기독교 교회사가 유세비우스는 에데사의 왕실문서 보존창고에서 아브가르왕과 예수 사이에서 오간 편지가 실려있는 시리아어 문헌을 찾아냈다고 떠벌인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오간 편지내용을 정확한 역사적 사실인 양 공개하고 있다. 이와 같이 4세기 초만 해도 초대교회사람들이 인식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해도 왕과 편지를 주고받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예수가 마약이나 약초를 쓰지 않고 사람을 잘 고친다는 표현은 매우 재미있는 사가의 기술이다.❞ 오스로외네왕국 에데사를 중심으로 일찍이 도마기독교(Thomas Christianity)의 전통이 성립했다는 사실에 관하여 많은 학자들의 견해가 일치하고 있다. 후대에 대중적 인기를 얻은 마태기독교나 베드로기독교와는 다..
지브란과 견유(犬儒) 예수 샌달과 속옷, 지팡이도 지니지 말라 ❝20세기의 예언자로 불리는 칼릴 지브란은 수로보니게여인의 아들이었다. 페니키아 전통을 이은 그의 사유 속에는 헬라적, 히브리적, 아시아적 가치가 자유롭게 왕래한다. 헬레니즘의 바탕에 깔린 아시아적 사유를 깊게 이해하면 역사적 예수는 갈릴리지역의 견유학파적 실천운동가였다는 통찰에 도달하게 된다.❞ 사랑은 소유하지도, 소유되어지지도 않는 것. 사랑은 다만 사랑으로 충분할 뿐. 사랑할 때 그대들은 이렇게 말해서는 안되리라, “신이 나의 마음속에 계시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라. “나는 신의 마음속에 있노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에 속박되지는 말라. 차라리 사랑하는 그대들 영혼의 기슭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 가슴을 주라, ..
예수 자신의 이방선교 상 아래 개들도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가 이방의 나라 페니키아에 직접 갔다는 사실을 마가복음이 보고하고 있다. 게네사렛에서 두로로 갔다가, 시돈을 거쳐 다시 골란고원을 넘어 데카폴리스로 에둘러 갈릴리바다 가버나움으로 되돌아오는 여정이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이미 이방선교를 몸소 실천한 국제적 사상가였다. 이방선교는 바울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예수는 페니키아문명권에 직접 갔는가? 두로(Tyre)와 시돈(Sidon)에 간 적이 있는가? 이러한 나의 질문, 그 자체를 많은 독자들이 낯설게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예수의 삶을 기록한 복음서(福音書)에 명료하게 주어져 있다. 자아! 마가복음 제7장을 펼쳐보라. 개역한글판을 정정함이 없이 그대로 여기 인용하..
예수와 페니키아 문명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서구문명을 우리는 기껏해야 그레코ㆍ로만문명 중심으로 생각하기 쉽다. 서구문명의 뿌리는 희랍문명에 선행하는 페니키아문명에 있다. 페니키아인들이 BC 15세기에 발명한 문자가 희랍문자의 모태가 되었고 오늘 영어 알파벳의 조형이 되었다. 예수는 율법에 쩔은 유대인들보다 개방적 페니키아(시리아)인들을 더 사랑했다. 에데사왕국은 시리아문명의 한 중심이었고, 예수의 제자들이 그곳에 갔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독자들은 누구든지 예수의 산상수훈(the Sermon on the Mount)을 기억할 것이다. 그 산은 갈릴리바다(호수) 북단에 있는 가버나움 부근 타브가(Tabga) 지역에 있다. 이 자그만 동산에서 예수는 “가난한 그대들이여! 복이 있나니,..
마르코 폴로와 도마의 최후 기독교는 원래 서양종교가 아니다 ❝20세기 세계문화사가 서구중심으로 기술되었기 때문에 기독교를 맹목적으로 서양종교라고 생각하지만, 초기기독교운동은 서양과 관련이 없다. 우리는 기독교에 아시아적 사유를 회복시켜야 한다.❞ 기독교를 생각할 때 검토되지 않은 우리의 일반관념 중에서 가장 거대한 오류가 기독교를 그냥 맹목적으로 서양종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양코배기 서양사람들에 의하여 만들어졌으며 그들에 의하여 팽창되었으며 그들에 의하여 최근에 동방에 전도되었다고 믿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나라 거개(擧皆)의 기독교인들은 예수는 서양사람이며, 기독교신학은 서양사람들이 만든 교리체계이며, 따라서 기독교에 관한 한 서양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하여 말하는 모든 것이 정통이고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예수 생전에 예수를 초청한 에데사의 왕(王) 그런데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아브라함이 살았던 비옥한 하란평야 위로 유프라테스 상류지역, 지금은 터키에 속해 있지만 우르파(Urfa)라는 매력적인 도시가 있다. 이 도시는 예로부터 아나톨리아(Anatolia, 터키 지역)와 북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를 연결하는 교통요지로서, BC 14세기 히타이트에 멸망되기 이전에는 후리안 왕조(a Hurrian state)의 수도로서 독자적인 고문명의 정체성이 있었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어느 정도 자치권을 지니는 오스로외네왕국(Osrhoëne)이 되었고 그 수도가 에데사(Edessa)였는데, 현재의 우르파가 바로 에데사인 것이다. 기원전 4년부터 기원후 50년까지 에데사를 다스린 왕이 아브가르 우카마(A..
예수의 본거지는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 ❝터키 하란평야에 우르파라는 매력적 도시가 있다. 예수시대에 이 도시는 오스로외네왕국의 수도였으며 에데사라고 불렸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대에 활약한 카이사레아의 주교 유세비우스는 최초의 기독교 교회사를 썼는데, 그 속에서 그는 에데사의 왕이 당대의 살아있었던 예수에게 편지를 보낸 사실을 말하고 있다. 에데사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기독교국가였다. 이 사실은 도마복음서와 어떻게 관련되는가?❞ 지도를 펼쳐놓고 메소포타미아로 우리의 시선을 옮겨보자!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라는 말은 희랍어로 ‘강 사이의 땅’이라는 뜻인데 그 두 강은 아시다시피 티그리스강(Tigris)과 유프라테스강(Euphrates)을 지칭한다. 바그다드는 이 두 강이 가장 가깝게 오는 지역..
문명의 여로는 오늘 우리 모습에 대한 끝없는 반문 크리스챤이라는 이름이 생겨난 바울의 선교활동의 중심지 안티옥(Antioch, Antakya, Hatay)의 다양한 모습, 헬레니즘 시대의 또 하나의 알렉산드리아인 이스켄데룬(Iskenderun)【『후한서』를 쓴 반고(班固)의 동생 반초(班超)가 여기까지 왔다】, 알렉산더대왕이 다리우스 3세를 굴복시킨 잇수스전투(the Battle of Issus, BC 333)의 현장, 길리기아의 중심지 아다나(Adana)를 탐색하고, 바울의 생가가 있는 다소(Tarsus)에서 사도 바울의 체취를 더듬었다. 그리고 카파도키아(Cappadocia)로 가서 너무도 영적인 산하와 1세기부터 내려오는 동굴교회들의 지금도 생동하는 벽화를 보았다. 초대교인들이 핍박을 피해 판 데린..
도마복음 고대문명 제2차 탐방 보고서 예수의 기적과 참혹한 현대사 공존하는 땅, 인류문명 새 패러다임은 어디쯤 있는 걸까? 나는 2008년 4월 10일, 인천공항을 떠나 28일 오후 다시 고국 땅을 밟을 때까지 근 스무 날동안 내 생애에서 두 번 다시 하기 어려운 버거운 여행을 했다. 무사히 귀국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너무도 짙은 감회에 사로잡혀 붓을 옮기기 어렵다. ‘영적 소요(a spiritual journey)’라 해야 할까, 일말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적진 속의 행군이었다고 할까, 사막의 모래바람 속의 신기루를 헤매는 인디아나 존스의 문명 탐험이었다고 해야 할까, 도무지 형언하기 어려운 인간 삶의 다양한 양태에 묻어나는 태고의 영상들이 일천 척 폭포수의 비단결처럼 눈앞을 가린다. 4월 10일 두바이..
제33장 등불은 등경 위에 제33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너의 귀로 네가 듣는 것을, 너희 집 지붕 위에서 타인의 귀로 전파하라. 2그 어느 누구도 등불을 켜서 됫박 아래 감추거나, 숨겨진 장소에 두거나 하지 않는다. 3오히려 그것을 등경 위에 올려놓나니, 이는 집안에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 빛을 보게하려 함이니라.” 1Jesus said, “What you(sg.) will hear in your(sg.) ear, in the other ear proclaim from your(pl.) rooftops. 2For no one lights a lamp and puts it under a bushel, nor does he put it in a hidden place, 3but rath..
토마스에 의한 복음 The Gospel Secording to Thomas 이 로기온 모음집 끝에 ‘프유앙겔리온 프카타 토마스(πευαγγελιον πκατα θωμας)’라는 글씨가 쓰여져 있기 때문에 이 로기온 모음집이 ‘도마복음서’라고 불리우게된 것이다. 전통적으로 마가복음(유앙겔리온 카타 마르콘) 이전에 ‘복음서’라는 문학장르가 존재했다고 간주되지는 않았다. 불트만만 해도 마가복음 이전에 또 다른 복음서가 있었을 수도 있었다는 가능성을 완벽하게 배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수난드라마로서의 복음서, 즉 설화복음서(narrative gospel)는 아마도 마가복음이 최초의 사건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존재했던 어록집을 유앙겔리온이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이 도마복음서를 통하여 구체화되었다. 물론 이 ..
도마복음, 토마스에 의한 복음 The Gospel According of Thomas The Nag Hammadi Text 서론 이는 살아있는 예수께서 이르시고 쌍둥이 유다 도마가 기록한 은밀한 말씀들이라 제1장 1 그리고 그가 말하였다: “말씀들의 해석을 발견하는 자는 누구든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제2장 1 예수께서 가라사대 “구하는 자는 찾을 때까지 구함을 그치지 말지어다. 2 찾았을 때 그는 고통스러우리라. 3 고통스러울 때 그는 경이로우리라. 4 그리하면 그는 모든 것을 다스리라.” 제3장 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를 이끈다 하는 자들이 너희에게 이르기를 ‘보라! 나라(천국)가 하늘에 있도다’ 한다면 하늘의 새들이 너희보다 먼저 나라에 이를 것이다. 2 그들이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라..
기독교 성서의 이해 목차 제1장 예수의 이적 아니 땐 굴뚝에 나는 연기 그대로의 성서 수용 과학적 세계관의 고뇌 예수 이적 행함의 특징 이적의 여섯 가지 의미맥락 제2장 신화와 철학 희랍인들의 신화적 세계관 기독교사상에 스민 윤회론 오르페우스와 바카스 피타고라스와 싯달타 알렉산더 세계정복의 의미 제3장 헬레니즘의 사유 아타락시아 견유학파의 가치관 스토아학파의 사상 에피큐로스학파 회의학파 사도 바울의 도전 헬레니즘의 로고스를 격파한 기독교 제4장 성서고고학의 양대 사건: 쿰란과 나그 함마디 세례요한과 쿰란공동체 쿰란과 엣세네 쿰란 발굴의 역사적 의미 알렉산드리아 예수의 현대사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셉츄아진트와 쿰란텍스트 초대교회와 네로 박해의 실상 순교의 자원(自願) 황제교화된 기독교 밀라노칙령 황제교와 ..
시온성의 처녀 우리 어머니는 평생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교회를 다니셨다. 천안 대흥동 231번지에서 중앙장로교회에 이르는 길의 사람들은 우리 어머니가 새벽에 콧소리로 조용히 찬송가를 부르시고 가는 소리를 듣고 이부자리를 거두었고 쌀뜨물을 버렸다. 그것은 임마누엘 칸트의 산보 시간보다도 더 정확했다. 당시 천안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다. 겨울철 눈이 소복이 쌓인 신작로에 엄마의 고무신이 꼬드득 꼬드득 소리를 낼 때도 나는 꼭 따라나섰다. 여섯일곱 살 때부터 나는 엄마와 함께 새벽기도를 다녔다. 그때 우리 엄마가 제일 많이 부른 찬송이 64장(당시 찬송가)이었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쉰 마음뿐일세 내가 가장 아름답게 기억하는 것은 제4절이다...
나의 부모 나는 독실한 기독교집안에서 태어났다. 우리 아버지ㆍ어머니 모두 개화기 때 기독교에 헌신한 청년ㆍ처녀로서 짝지어졌다. 한국기독교의 오늘의 모습이 있기까지 일각에서 혼신의 기여를 다하신 분들이다. 그리고 나 역시 모태신앙을 거쳐 유아세례를 받았고 목사가 되기 위해 한국신학대학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나를 동양철학자, 한문고전의 학자로만 알고있지만 나는 1967년 한국신학대학 전교수석 입학생이다. 수석 발표를 보고 나는 천안 부모님께 ‘신대톱금일하천’이라는 전보를 쳤다. 그때는 전보의 글자수가 10자 이내라야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에 가까운 수유리 우체국에서 그렇게 쓴 것이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은 앞의 세 글자를 해독하지 못했다. 아마도 성은 신씨고 이름은 대톱인 사람이 오늘 천안에 내려온다고 고개를..
이 책은 『요한복음강해』의 서문 본서 『기독교 성서의 이해』는 본래 『요한복음강해』라는 나의 책의 서문으로 기획되었다. 한국교육방송공사(EBS)에서 인터넷방송을 나에게 의뢰했는데, 그것은 도올이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아니 영어뿐만 아니라, 도올 선생의 어학실력이 좋으니까, 영어, 중국어, 일본어 이런 것의 강독시간을 만들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발상이 매우 참신하다고 생각했다. 어학은 결코 어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학을 통해 우리는 인간과 문명에 관한 모든 것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교재가 영 마땅하질 않았다. 그래서 내가 이런 말을 불쑥 했다. “영어성경을 강독하면 어떨까? 우리 어려서부터 영어는 바이블로부터 시작한다..
도마복음서의 중요성 상기 나열한 52서 중에서 가장 소중한 문헌을 나보고 하나 뽑으라고 한다면 도마복음서 1서를 주저없이 선택할 것이다. 도마복음서는 현 우리가 알고있는 4복음서의 형성과정을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는 많은 생각의 실마리와 기준을 제공하는 순수한 예수의 말씀집이다. 그것은 114개의 내러티브가 없는 로기온(logion)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마복음서 속의 상당 부분의 자료는 Q자료보다도 더 오리지날한 성격이 있다. 현재,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의 신학계에서는 도마복음서와 Q자료와 4복음서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수백 편의 논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리고 Q자료의 연구를 보다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도마복음서는 기독교나 예수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잡스러운 언어가 하나도 없다. 도..
제18장 에필로그 절차탁마 대기만성: 쿰란과 나그 함마디의 연속성 나는 사실 1982년 귀국 후 얼마 안 있어 『절차탁마대기만성』이라는 책을 통해 이 나그 함마디 도서관 문헌을 소개했다. 그때 나의 이 작은 책자는 이미 우리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수십만 부가 팔렸다. 그런데도 20년이 넘도록 우리나라의 신학계는 상기의 체노보스키온 문서에 관한 연구성과를 내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아마도 단순한 느낌에서 출발하고 있을 것이다. ‘영지주의 이단의 서’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마치 상기의 책을 깊게 연구하면 2천 년을 버티어온 기독교 교회의 정통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부지불식간에 깔려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매우 단순한 무지의 소산이다. 체노보스키온 문서는 결코 영..
나그 함마디 라이브러리 전체목록 더 이상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으나 이 체노보스키온 문서라고 하기도 하고 나그 함마디 라이브러리라고 하기도 하는 이 문서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많은 이야기들이 있으나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불행하게 죽었다.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문헌을 둘러싼 인간들은 지혜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기와 탐욕과 영예가 그들을 지배했다. 결국 다타리-타노 컬렉션은 낫세르 대통령에 의하여 국유화되었고 융 코우덱스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래서 대부분의 코우덱스가 카이로의 콥틱 박물관에 안치되었다. 그리고 유네스코와 많은 뜻 있는 기관의 협력으로 1977년에는 나그 함마디 라이브러리 전체가 영역되어 출판되었다. 지금은 누구든지 쉽게 볼 수가 있다. 이 나그함마디 도서관을 인간세의 공적인 자산으..
제1 코우덱스의 경우 이 제1 코우덱스는 어떻게 돌고 돌아 카이로에 있는 벨기에 출신의 골동상인 알버트 에이드(Albert Eid)에게로 굴러들어 갔다. 그런데 이 에이드는 내가 생각키에 유능한 골동상인지는 모르겠으나 너무 돈을 밝히는 질 좋지 않은 인물이었다. 에이드는 박물관장 토고 미나가 국외로 반출하면 안 된다고 그렇게 당부했어도, 그것을 밀반출하는 데 성공했다. 공항에서 세관원들에게 동전 몇 개와 구부러진 쇳조각 몇 개하고 같이 보여주면서 국외 나가 팔 생각이라고 했어도 아무 말 않고 통과시키더라는 것이다. 물론 세관원들을 몇 푼 주고 매수했을 것이다. 에이드는 제1 코우덱스를 가지고 미국시장으로 갔다. 처음에 미시간대학 도서관에 가서 2만 불을 요구했다. 미시간대학 도서관은 너무 비싸다고 구입을..
타노와 다타리 카이로에는 우리나라 인사동이나 장안동의 대표적인 골동상과도 같은 유명한 가게로서 사이프러스섬 출신의 타노(Phocion J. Tano)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골동품가게가 있었다. 그런데 카이로 부근의 기자(Giza)라는 곳에서 일하고 있던 알 카스르의 농부 하나가 자기네 동네에서 옛 코우덱스 사본들이 발견되어 돌아다니고 있다는 정보를 타노에게 귀뜸해주었다. 그래서 타노는 나그 함마디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 키나(Qinā) 지역의 지방골동상인 자키 바스타(Zaki Basta)에게 전화를 걸어, 이러한 정보가 있으니 한번 조사해보라고 일러주었다. 타노는 자키 바스타와 이런 식으로 계속 거래를 해온 터이었다. 자키 바스타는 알 카스르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깡패두목을 수배했다. 바히즈 알리(Ba..
제3 코우덱스의 경우 알리 집안 사람들이 이 코우덱스가 골동이라는 것은 알았는지라, 사람들에게 팔려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우리나라 돈으로 한 코우덱스에 만 원 정도만 달라고 했는데 만 원은커녕 천 원을 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담배와 귤과 바꿔치기로 몇 개가 빠져나갔다. 왜냐하면 복수극 때문에 경찰이 알리집을 수색하기 시작했고 또 코우덱스를 뺏기기는 싫었기 때문이었다. 제3 코우덱스(Codex Ⅲ)의 경우, 알리는 그것을 자기네 알 카스르 동네에 있는 콥틱 크리스챤교회로 가지고 갔다. 코우덱스를 어떤 사람에게 보여주었는데 그 사람이 그 책이 아랍어가 아니라 콥틱어로 쓰여있다는 것을 아르켜 주었고 콥틱교회에 가져가면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귀뜸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엘리야의 야만 이슬람(Islam)이라는 말 자체가 제아무리 순종과 평화를 의미한다 해도 하여튼 중동지역은 피의 복수가 너무 심하다. 엘리야 선지자도 분단시대의 이스라엘 왕 아합의 바알숭배를 징벌하기 위해, 황소의 번제 제단을 하나는 바알을 위한 것, 하나는 야훼를 위한 것, 두 개를 만들어놓고 시험을 한다. 불을 안 붙이고도 저절로 타오르는 제단이 진정한 하나님의 제단이라는 것을 증명하자는 것이다. 바알의 예언자는 450명이나 되었고 야훼의 예언자는 엘리야 선지자 단 한 명이었다. 바알의 예언자 450명은 아침부터 한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도 아무 소식도 응답도 기척도 없었다. 그런데 엘리야의 제단에는 기름을 붓고 기도하자 야훼의 불길이 내려와 장작과 돌과 흙, 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모조리 태워버린..
불쏘시개 알리는 집에 돌아오자 등에 메고 있던 파피루스더미를 소죽 쑤는 곳간방 지푸라기 더미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이것은 너무도 끔찍한 참극이었다. 그 고귀한 문헌을, 이제 1578년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공기변동이 없는 암흑 속에서 보낸 이 고고학적 유물은 함부로 다루면 변색되고 퇴색되고 바스러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런대로 파피루스 위에 쓰여진 카본입자물감은 용케 새환경을 견디었던 모양이다. 진시황릉의 토용들이 열자마자 색깔이 날아가버린 것에 비하면 그래도 파피루스 위에 쓰여진 잉크물감의 강력성은 대단한 것 같다. 그런데 비극은 그런데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날 밤 무지막지한 알리의 엄마가 화덕 오븐에 불을 때려고 나갔다가 헛간에 파피루스가 보이니까 죽죽 찢어서 지푸라기와 함께 불쏘시개로 썼다..
패밀리 퓨드 그의 아버지는 알 카스르 동네의 수리조합에서 경비원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독일에서 수입해온 비싼 관개시설(기껏해야 좋은 모터 수준이었을 것이다)의 밤경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알 카스르 동네와 바로 문서가 발견된 절벽에서 멀지 않은 함라 둠(Hamrah Dum) 동네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카퓨렛 집안과 몽테그 집안의 패밀리 퓨드처럼 누대로 반목하는 관계였다. 함라 둠의 하우와리스 집안(The Hawwaris of Hamrah Dum)은 선지자 무함마드의 직계손이라는 자부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밤 함라 둠 마을에서 그 관개시설을 훔치려는 침입자가 발생했다. 알리의 아버지는 그 침입자를 죽여버렸다. 그런데 다음날 그 마을에서 사람들이 와서 알리의 아버지 머..
터번을 풀어 둘둘 말다 알리는 순간 진(jinn)에 대한 공포감도 있었지만 또 들은 바가 있었거니, 이런 항아리 속에는 금이 가득 들어있을 수도 있다는 탐욕스러운 생각이 갑자기 엄습해온 것이다. 순간 이 무지스러운 인간은 곡괭이를 번쩍들어 항아리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1578년만에 로마가톨릭의 정경화작업으로 억눌려 암흑 속으로 사라져버린 인류의 지혜가 다시 한번 빛을 보게 되는 그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 순간 그 항아리에는 정말 금이 가득차있었다. 아마도 코우덱스에 입힌 금박이 햇빛에 반사되었거나 그 금가루가 하늘로 날아가는 몇 조각의 환상적 찬란함이 확대되어 느껴졌을 것이다. 모두가 너무 실망하고 말았다. 그 항아리 속에는 13개의 코우덱스가 들어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코우덱스(codex)라는 것은 ..
제17장 사바크의 저주와 축복 나그 함마디 문서의 발견 사바크 헌팅 1945년 12월이었다. 나일강 상류 유역에서 12월은 사바크(sabakh)를 캐기 좋은 시절이다. 사바크란 질소가 풍부히 들은 천연비료로서 땅에서 캐는 것이다. 여름에는 땅이 너무 딱딱해서 캐기 어렵지만 12월이 되면 땅이 연해져서 캐기 좋기 때문에 농한기에 많은 농부들이 캐러 나간다. 낙타를 타고 사바크헌팅을 나가는 것이다. 체노보스키온의 한 동네 알 카스르(al-Qasr)에 사는 일곱 아이들이 사바크를 캐기 위해 자기 동네에서 약 20리 떨어져 있는(5마일) 자발 알 타리프지역으로 원정을 나갔다. 때는 아직 이스라엘 국가가 성립(1948. 5.16.)하기 전이었고 2차세계대전이 끝난 넉 달 후였으니까 모처럼만의 평화로운 휴식기였다...
라이브러리의 은폐 그들의 도움을 받고 살아난 이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c. 293~373) 대주교의 서한에 이들은 배신감을 느꼈을까? 아타나시우스의 생명의 은인인 이 수도승들에게는 아타나시우스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될 수 있었다. 서한이 도착한 후 이들은 계속해서 회의를 열었다. 혹자는 이제 외경이 되어 버린 서적들은 불살라버리자고 했다. 그러나 누군가 신중한 결정을 내렸다. 매우 현명한 결정이었다. 우리가 이 서물들을 보관할 수는 없으되 태워버릴 수는 없다. 따라서 이 서물들은 후대를 위하여 항아리에 밀봉되어 저 바위절벽 동굴 속에 은폐되는 것이 마땅하다. 성스러운 문헌들은 인간이 처리하는 것보다는 신의 의지에 맡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그들은 분명 바미얀 대불을 폭파시키..
외경을 없애버려라 혹자는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c. 293~373)에 협력하는 파코미우스와 파코미우스 승려들 사이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이단적인 영지주의 문서들이 유포될 수 있었는가 하고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질문이다. 그것은 후대의 역사적 가치관을 가지고 초기전승사의 실상을 왜곡하는 매우 기초적인 오류에 속하는 것이다. 사실 당시에 이미 누누이 강조했듯이 영지주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영지주의에 관하여 깊은 연구를 한 하바드 신학대학의 여류신학자 카렌 킹(Karen L. King)의 말대로 ‘영지주의’라는 것은 결코 실체화될 수 있는 하나의 물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수사학적 구성물이었을 뿐이다. 영지주의라는 술어 자체가 ‘이단’을 규정하기 위하여 만든 수..
파코미우스의 보호 바로 그를 보호해준 것은 체노보스키온 근처에 산재해있던 파코미우스의 수도원과 그 수도승집단이었다. 이때 이미 파코미우스는 저승으로 떠나가고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스승 파코미우스와 젊은 날에 우정을 맺은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c. 293~373)를 그들의 헤구멘 이상으로 보호하고 성심껏 섬겼다. 성스러운 뿔피리로 나팔을 불면 수천 명의 건장하고 신념에 찬 수도승들이 모여 아타나시우스를 보호했다. 그들의 대부분이 이 근처의 순박한 농민출신들이었으며 자기들이 존경하는 스승을 위해 기꺼이 목을 내밀면서 사형집행인의 팔만 아프게 했다. 어떠한 고문을 통해서도 이 훈련된 수도승들의 자백을 받아낼 수는 없었다. 아타나시우스는 그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신속히 여기저기로 몸을 숨겨 다닐 ..
콘스탄티우스의 아타나시우스 탄압 여러분들은 기억할 것이다.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c. 293~373)를 지원하는 로마의 콘스탄스 황제가 암살되고(350), 그의 형 콘스탄티우스가 독존의 황제가 되면서 아타나시우스에 대한 보복이 시작된다는 역사적 사실을! 콘스탄티우스는 선제가 내렸던 니케아 종교회의의 삼위일체에 관한 결정을 취소해버리고 동방교회의 대다수 주류파인 아리우스의 이념에 따라 새로운 가톨릭 통일정책을 세우려 했다. 다시 말해서 그는 동방교회의 일반정서를 존중하여 동방교회를 주축으로 가톨릭의 서방로마중심축을 전환시키려 하였던 것이다. 이때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바로 아리아니즘을 이단으로 휘몰면서 목숨걸고 투쟁해온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우스였다. 그러나 민중의 영웅으로 추앙받던 ..
헤구멘 타벤니스의 높은 담 안에 사는 사람들은 매우 엄격한 공동생활을 했기 때문에, 공동(koinos) 생활(bios)이라는 희랍어원에 따라 영어로는 세노비티즘(cenobitism, coenobitism)이라고 부르고 이러한 공동생활 수도승을 세노바이트(cenobite)라고 부르며 앞서 말한 안토니(Anthony, c.251~356) 계열의 개별적 은둔수도승 앵코라이트(anchorite)와 대별된다. 앵코라이트는 혼자 자유롭게 스스로의 규율에 따라 생활하는 반면, 세노바이트는 완벽하게 규정된 공동규율 속에서 평생을 보낸다. 일어나는 시간, 낮에 사는 생활 스케쥴, 자는 시간이 모두 결정되어 있으며, 공동기도, 공동식사, 공동경작, 공동복장, 공동다이어트규칙, 공동사용이 결정되어 있다. 이 모두에 엄격한 ..
인류사상 최초의 기독교 수도원 우리는 앞에서 잠깐 파코미우스를 언급한 적이 있다.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c. 293~373)가 알렉산더 주교의 뒤를 이어 주교직을 승계했을 때(328), 그는 이집트와 리비아 전역을 샅샅이 심방했다. 이때 그는 체노보스 키온 부근의 콥틱 승려들을 방문하였고 당시 그들의 리더이며 수도원을 운영하고 있었던 파코미우스를 만나 깊은 우정을 맺는다. 파코미우스는 아타나시우스 주교보다 약간 연상이었다(8세 혹은 3세 위). 파코미우스는 바로 우리가 논의해야 할 체노보스키온 문서가 대량 발견된 바로 그 지역, 체노보스키온(Chenoboskion, 콥틱어로는 슈네세트, Schneset)의 콥틱어를 쓰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콘스탄티누스의 북아프리카 로마군대의 병정으로 징..
안토니의 생애 이러한 모든 움직임의 원조(元祖)라 할 수 있는 안토니(Anthony, c.251~356)는 중부 이집트 헤프타노미스 코마(Koma)의 콥틱어를 쓰는 유족한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예수님께서 마태복음에서 부자 청년에게 하신 말씀을 듣고 감명을 받아 그대로 실천했다. 나이 20세 때 부모에게서 받은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은 동네의 가장 편벽한 곳에 움막을 짓고 수도에 전념했다. 테베의 바울(Paul of Thebes)이라고 하는 노승의 지도를 받으며 금욕생활을 실천했다. 그렇게 15년을 하다가 더 완벽한 고독을 찾기 위해 사막으로 사막으로 들어갔고 나중에는 피스피르(Pispir, 현재 Dayr al-Maymūn)라고 불리는 나일강변의 산에서 절해고도의 절대고독과 싸..
세속적 가치의 부정: 불교와 기독교 천국의 강림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구질구질하게 결혼하여 몸을 더럽히는 것보다는 아름답게 살며 딴 생각없이 오직 주님만을 섬기는 것(고전 7:35)이 더 낫다는 바울의 권장이다. 초대교회의 이러한 분위기는 오늘날의 시중 기독교를 생각나게 하기보다는, 비하라(석굴 승방)를 찾아다니는 초기불교교단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기실 부귀와 같은 세속적 가치의 거부, 그리고 초세간적(超世間的)ㆍ이세간적(離世間的) 해탈이라는 측면에서 기독교와 불교는 동시대의 동 언어권의 인도유러피안 문화권의 패러다임에 속해 있다. 기독교는 그 해탈을 하나님과의 만남(Encounter)으로 완성하려 했고 불교는 그 해탈을 자기 마음의 각성(Enlightenment)으로 달성하려 했다. 그런데 기독교는 ..
예수의 식색관 인간의 욕망 중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곤혹스럽고 가장 제어하기가 어려운 것이 맹자(孟子)의 말대로 식(食)ㆍ색(色)이다. 식에 대해서는 부자에 대한 거부가 예수의 모든 메시지에 깔려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마 19:23), 그런데 색(色)의 문제에 대해서도 예수는 비슷한 입장이 있었다. 역사적 예수를 말하는 사람들은 예수가 결혼했던 사람이라고도 말한다.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포도주 이적의 가나 혼인잔치가 예수 자신의 결혼식 설화가 변형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는 최소한 공생애를 통하여 독신이었다. 그리고 독신생활의 고귀함에 대해 긍정적 가치관을 내비쳤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로 아내를 내쳐..
착취당하는 팔레스타인 농부와 예수 예수의 가르침을 잘 살펴보면 그에게도 세속적 가치에 대한 부정이 있다. 요즈음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현세종교로서만 생각하고 교회를 현세적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친교의 장, 그러니까 일종의 소셜클럽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초기기독교의 분위기는 매우 달랐다. 마태복음 19장에 실려있는 유대 계명을 잘 지키는 어느 청년과 예수의 유명한 대화를 대부분의 독자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여 가니라. (마 19:21~22) 지금 이러한 성경구절을 놓고 교회에서는 추상적인 해석..
제16장 나일강 유역의 수도원 문화 안토니와 파코미우스 모나스티시즘의 발생동기 이 나일강 주변으로 소위 모나스티시즘(monasticism), 즉 수도사 생활이라든가 수도원 제도가 성행케 된 그 원조가 되는 인물이 하나 있다. 이집트의 안토니(Anthony, c.251~356)라는 인물이다. 바로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c. 293~373)가 이 안토니라는 인물의 전기를 썼다. 『성 안토니의 생애(Life of St. Anthony)』가 그것이다. 수도원제도가 반드시 고독이나 명상을 즐기는 제한된 극소수의 상층민이나 지식인들에 의하여 선호된 운동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AD 313년에 기독교가 공인이 되자 기독교는 갑자기 허전해졌다. 즉 순교의 명분이 사라진 것이다. 순교..
야훼교의 창시자 모세는 이집트종교전통속에서 성장 한마디로 유대교전통은 이집트종교전통과의 교섭 속에서 탄생하고 성장한 것이다. 모세는 어떤 의미에서 이집트인이었다. 이방의 사도인 바울이 이방에서 성장한 것이나, 애굽(이집트)으로부터 이스라엘민족을 구원하기 위한 지도자가 애굽인으로서 성장한 것이나 다 그 나름대로 필연적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민족의 유일신앙은 오로지 모세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모세는 야훼교의 창시자라 해도 매우 적확한 표현이다. 모세 이전에는 야훼에게만 예배해야 한다는 관념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근원적으로 결여되어 있었다(대한기독교서회, 『그리스도교大事典』, 323). 모세의 야훼교 창시는 어떤 의미에서 이집트종교전통에 대한 반동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다양한 이집트종교사상의 뿌..
아크 이집트인들에게는 종교의 존재이유가 바로 혼돈으로부터 우주의 질서를 보호하는 데 있었다. 모든 종교적 행위는 우주에 내재하는 마아트(Maat, 질서, 진리)를 지키는 것이다. 이 마아트는 우주의 창조신화와 직결되어 있으며 종교적 행위는 의료적 행위와 거의 구분되질 않았다. 인간의 모든 질병이야말로 혼돈의 침입이었으며 그것은 인간의 악한 행동의 결과라고 보았다. 이집트인들에게는 아크(akh)라는 관념이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 동아시아문화권의 기(氣, ch'i)와 거의 동일한 개념이었다. 어떻게 사기(邪氣)의 침범으로부터 정기(正氣)를 지키는가 하는 것이 그들의 의학이었고, 마술(magic)이었고, 종교적 제식이었다. 이 3자는 전혀 구분되지 않는다. 예수의 선교행위의 대부분이 병든 자를 고친 것이다. 예..
콥틱말 쓰는 크리스챤들 사후세계의 진실성과 마아트 7. 사후세계의 진실성 이집트인들의 종교적 관념에 있어서는 인도인들에게 나타나는 ‘윤회’(transmigration)의 사상은 없다. 오시리스 신앙을 잘 살펴보아도 그것은 오시리스가 살아있는 우리와 같은 몸으로 부활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부활은 ‘죽음의 세계에로의 부활’이었다. 피라미드의 위용도 사후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이지 그 미이라가 우리와 같은 삶의 세계로 돌아온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사후의 세계의 진실성을 믿었으며 죽은 후에도 삶의 영화를 계속 지속할 수 있다는 매우 소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사후의 세계를 공포스러운 긴장감을 가지고 바라보지 않았다. 그들은 삶이라는 것 자체를 죽음에 대한 준비라고 생각했고, 삶의 모든 윤리 자체..
콥틱말 쓰는 크리스챤들 혼돈과 질서 6. 혼돈과 질서 이집트의 우주론에 있어서는 ‘무로부터의 창조’는 존재하지 않았다. 혼돈과 질서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하다. 이 세계는 무로부터 창조된 것이 아니라, 혼돈을 자료로 하여 그것을 분화시키면서 질서로 만들어간 것이다. 헬리오폴리스의 위대한 아홉 신(the Great Ennead of Heliopolis)이 여기에 관여하는데 그중 으뜸가는 신이 ‘완전’(completeness)을 의미하는 아툼(Atum)이다. 그리고 눈(Nun)이라는 원초적 물의 신으로부터 태양신 라(Ra)가 태어난다. 그리고 이 태양신 라(Ra)는 지하의 오시리스(Osiris)와 항상 동일시되곤 했는데 결국 이집트의 태양신은 만물 위에서 군림하고 주재하는 빛나는 이미지라기보다는, 항상 밤이면..
콥틱말 쓰는 크리스챤들 오시리스 신앙 5. 오시리스 신앙 죽음과 부활이라는 주제는 이집트 종교문화의 매우 보편적인 믿음 형태였으며, 그것은 또 농경사회의 토양의 퍼틸리티 컬트(fertility cult, 생산성 예찬)와 결부되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유례가 오시리스(Osiris) 신앙이다. 오시리스의 유래는 매우 모호하지만, 나일강 하류의 부시리스(Busiris) 지역의 지역신이 격상된 것이라 하기도 하고, 땅속의 생산성이 의인화된 것일 수도 있고, BC 3000년경의 역사적 실존인물이며 영웅이었던 한 인간, 오시리스가 신격화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오시리스는 지상의 훌륭하고 영특한 군주였으며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그에게는 질투심이 강한 사악한 동생, 세트(Seth)가 있었다. 이 세트는 ..
콥틱말 쓰는 크리스챤들 절충주의적 격의와 태양신 숭배의 관용성 3. 절충주의적 격의 이 절충주의(syncretism)란 말은 이집트 본래의 전통 속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이집트에서는 신들이 시간과 공간을 무시하고 결합된다. 시대에 따라 다른 신들이 발생해도 하나의 컬트의 대상으로 융합되는 것이 보통이고, 공간에 따라 지역의 신이 국가의 신과 연합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제우스와 같은 우두머리신 아문(Amun)과 태양신 라(Ra)가 결합하여 아문라(Amun-Ra)가 된다. 프타(Ptha), 소카르(Sokar), 오시리스(Osiris)가 프타소카르오시리스가 되기도 하고, 태양신 라(Ra)가 지하의 신 오시리스(Osiris)와 하나로 동일시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집트에서는 옛 전통과 새 전통이 항..
콥틱말 쓰는 크리스챤들 수도사 중심과 문화전통의 혼합 마르시온정경 성립(150년경) 이후부터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c. 293~373) 27서정경 성립(367년)까지 이 나일강지역에는 콥틱말을 쓰는 크리스챤이 많았는데, 이 크리스챤들에게는 대체적으로 몇 가지 리버럴한 경향성이 있었다. 1. 수도사 중심 모세도 이 지역에서 멀지 않은 시내(시나이) 광야에서 살다가 호렙산 떨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엘리야 선지자도 광야에서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예수도 광야에서 시험을 거쳤고, 바울도 아라비아의 광야에서 이방전도여행을 할 수 있는 영감을 얻었다. 광야는 사막이다. 로스앤젤레스지역의 데쓰밸리에 며칠을 가 있어도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사막은 ‘버림’이다. 사막에서는 돈도 명예도 권..
제15장 이집트인들의 종교관념 주혈흡충 나는 1990년 12월부터 그 이듬해 1월에 걸쳐 아프리카대륙을 대우 김우중 회장단과 여행한 적이 있다. 화이트 나일과 블루 나일이 카르툼에서 만나 낫세르 호수로 들어가고 그곳 아스완 댐에서 신 아문의 도시 룩소르, 왕들의 계곡, 나그 함마디를 거쳐 카이로, 알렉산드리아까지 뻗쳐있는 나일강 상공을 김회장의 전세기를 타고 유유히 날아가 본 적이 있다. 어여쁜 불란서 스튜어디스가 시중을 드는 가운데 라면을 끓여먹으며 머리를 맞대고 인류문명의 대세를 논했다. 그런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김우중 회장님은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 한기(寒氣)에도 일신(一身)의 편안함조차도 구할 수 없는 처지이고 보니 내 가슴이 쓰리고 송구스러울 뿐이다. 이 나일강 지역을 생각하면 ..
명제와 말씀 성서에 관한 우리의 논의를 한번 정리하고 넘어가자! 다음의 문장을 보라! 1) 나는 학교에 간다. (한국말) 2) I go to school. (영어) 3) 私は学校へ行きます. (일본어) 4) 我去學校. (중국어) 아주 간단한 예이지만, 동일한 의미구조라 할까, 하여튼 통사론적 결구도 다르고 선택한 어휘도 다르지만, 같은 말을 나라의 사람들이 쓰고 있는 표현에 따라 병렬시켜 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 4개의 문장 속에는 동일한 하나의 명제(proposition)가 들어있다. 그런데 이 명제라는 것은 한국말도 아니고, 영어도 아니고, 일본어도 아니고, 중국어도 아니다. 그 명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말씀(Logos) 그 자체이며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만, 지금 여기 쓰여져 있는..
성서 대중보급은 주자의 『사서집주』보다도 후대 그리고 성서라는 것이 실제로 일반에게 유포된 것은 인쇄술발달 이후의 사건이며, 인쇄라는 대량출판의 방식이 나오기 전에는 획일적인 성서의 개념은 근본적으로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킹 제임스 바이블(KJV) 이후부터나 영어문화권에서 성서가 보편화되면서 오늘 우리가 말하는 성서대중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서양은 우리 동양에 비해 종이와 인쇄술의 발달이 늦다. 그러니까 송대(宋代)에 이미 출판문화가 고도화되고 또 대중화되었던 동양의 사정에 비교해본다면 기독교성서의 보급은 주자(朱子)의 사서(四書) 보급보다도 뒤늦은 사태라는 세계사적 안목도 다시 한번 상기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367년 부활절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7서정경목록 발표 384년 제롬..
트렌트 공의회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 성서의 출현 이후에도 라틴번역판의 우열에 관하여 끊임없이 논쟁은 계속되었다. 그것이 하나의 정본으로 고착된 것은 루터의 독일말 성서번역 등에 충격을 받고 시작된 카운터 종교개혁(Counter-Reformation)시대의 트렌트 공의회(the Council of Trent)에서였다. 신성로마제국의 티롤지방의 도시 트렌트에서 바울 3세에 의하여 소집된 이 공의회는 1546년 4월 8일 4번째 회의에서 제롬의 번역을 토대로 한 신ㆍ구약성경 전체의 라틴 벌게이트판(the Latin Vulgate version)을 로마가톨릭교회의 유일한 권위로서 선포하였다. 그리고 현재의 판본에 대한 약간의 수정을 가하여 출판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드디어 1592년 교황 클레멘트 8세(..
제롬과 아우구스티누스 내가 제롬과 같은 사람들의 생애를 간략하나마 소개하는 뜻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있는 성서의 모습이 거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려 함이다. 그 황량했던 시절에 이미 팔레스타인 각지를 순례하면서 역사적 상황과 분위기를 익히고 히브리어와 희랍어에 정통한 지식을 가지고 유려한 라틴어로 번역을 감행했던 사막의 수도승 제롬과 같은 이들의 피눈물 나는 삶의 헌신과 천로 역정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성서는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서를 성령의 계시라고만 주장하는 성령파들은 이러한 기나긴 인간의 노력, 성경으로 인도된 위대한 문명의 축적을 망각하고 성서에 대해 모독적 발언만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무지가 성서를 파괴하고, 성서를 마치 무당ㆍ점쟁이들의 예언서나 부적 수준으로..
제롬의 바이블 클라스 교황 다마수스는 그를 비서로 부르면서 기존의 라틴역 성서들이 충돌을 일으키므로 가장 온전한 라틴어 정본을 만들라고 요청했다. 382년에 로마 시노드에서 다마수스 교황이 발표한 칙령은 다음과 같다. ‘보편적 가톨릭교회가 받아들여야 할 것과 피해야 할 것을 구분하여 우리는 성경을 취급해야 한다.’ 라틴어 번역이란 원래 희랍어 성경들이 희랍어를 모르는 당대의 로마사람들에게 구어로 번역되어 구전으로 내려오던 것들인데 2세기 후반부터는 그것이 기록되기 시작했다. 북아프리카지역, 스페인 지역, 현재 프랑스지역에서부터 다양하게 라틴사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롬도 이 사본들이 얼마나 내용이 제각기 달랐는지 사본의 개수만큼 성서의 개수가 있다고 불평했다. 이 시대의 수고 텍스트가 92종이나 현존..
꿈의 계시로 위대한 번역자의 생애 친구 루피누스는 그따위 꿈 같은 환상에 빠지는 것은 어리석은 미신이라고 제롬을 질책했지만, 이 꿈의 계시는 제롬의 생애를 지배했다. 그는 그 후로 한가롭게 그레코ㆍ로망의 고전을 손에 잡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오로지 성서의 연구와 주석에만 전념했다. 그는 그 후 375년에 칼키스(Chalcis)의 사막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홀로 2년 동안 생활한다. 그는 로마말만 잘했고 시리아말과 희랍어를 몰랐다. 그는 부유한 집에서 컸기 때문에 식욕이 까다로웠고 위장이 약했다. 사막에서 사는 것은 심한 고통이었다. 그리고 그는 육체의 정욕에 시달렸다. 거친 음식은 그의 고해성사였다. 그러나 그는 행복했다. 사막의 고적과 미풍 속에서 그는 마음의 평화를 얻었으며 기도와 단식에 매..
유세비우스 히에로니무스 제롬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c. 293~373)의 27서정경목록 선포와 더불어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동시대의 인물이 제롬(Jerome, c.347~419/420, 라틴 풀네임은 Eusebius Hieronymus)이라는 당대까지 가장 유식하고, 수도원의 리더로서 성자적 삶을 영위한 탁월한 성서번역가이다. 그는 아타나시우스의 27서정경의 권위를 수용하고 그것이 기독교세계에 전파되도록 그 체제에 따라 라틴어성서번역을 시도했다. 그는 한때 교황 다마수스(Pope Damasus)의 비서(요새로 말하면 추기경 이상의 지위였다. 382~385) 생활을 했기 때문에 자신의 학식과 신념에 따라 새로운 개념의 기독교성서를 보편화시킬 수 있었다. 오늘 우리가 알고있는 성서의 모습이나 ..
킹 제임스 바이블의 경우 스튜어트왕조의 시조인 영국왕 제임스1세가 명령하여 54인으로 구성된 학자그룹에 의하여 7년 동안 고생 끝에 1611년에 출판된 소위 흠정역 킹 제임스 바이블(King James Version)도 에라스무스의 희랍어성경을 조금 발전시킨 테오도르 베짜(Theodore Beza)의 1588~1589년 판본과 1598년 판본을 저본으로 사용한 것이다. 따라서 매우 불완전한 것이었다. 따라서 킹 제임스 바이블도 1611년판을 우리가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뒤로 수차례의 개정을 거쳐 내려온 것이다. 우리가 보통 ‘흠정판’(the Authorized Version)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옥스퍼드대학의 벤자민 블레이니(Benjamin Blayney) 박사가 4년간의 노고 끝에 176..
희랍어성경도 하나의 정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현존하는 희랍어성경 고사본은 약 5천 개 정도나 되는데, 이 5천 개의 사본이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또다시 무슨 말을 할 것인가? 현존하는 최고의 사본은 4세기의 것인데 양피지에 흘림체로 쓴 것이다. 1844년, 1859년, 두 차례에 걸쳐 시내산에 있는 성 캐더린수도원에서 콘스탄틴 폰 티엔도르프(Konstantin von Tischendorf)에 의하여 발견되었는데 신ㆍ구약의 완정한 형태를 보존하고 있었다. 이것을 코우덱스 시나이티쿠스(Codex Sinaiticus)라고 한다. 이것을 성서판본학에서는 알레프(aleph)라고 부른다. 히브리 알파벳의 첫글자를 따서 그렇게 부르고 또 그 글자로 표기한다. 이 판본을 효시로 하여, 14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