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책/한시(漢詩) (379)
건빵이랑 놀자
4. 하늘은 재주 있는 자를 시기한다 나식(羅湜)은 시사(時事)가 어지러운 것을 보고 과거를 보지 않고 스스로 자취를 감추는데 힘썼다. 그러나 정미년에 벽서(壁書)의 화가 일어나자 그의 형 나숙(羅淑)과 함께 화를 당했다. 일찍이 역귀를 쫓는 소리를 듣고 시를 지었다. 儺鼓鼕鼕動四閭 역귀 쫓는 북소리 온 마을에 울리니 東驅西逐勢紛如 이리저리 쫓는 소리 그 형세 어지럽다. 年年聞汝徒添白 해마다 들었어도 흰 머리만 늘었구나 海內何曾一鬼除 나라 안의 한 귀신을 제거함 있었던가. 구나(驅儺)의 의식을 묘사했는데, 해마다 그렇듯 열심히 역귀를 쫓았건만 정작 없애야 마땅할 나라 안의 한 귀신을 몰아내지 못해, 그 근심으로 흰 머리만 날로 늘었을 뿐이라고 하였다. 4구에서 말한 ‘나라 안의 한 귀신’은 구체적으로 가..
3. 대궐 버들 푸르른데 還笑遊人心大躁 우습다 벗님네들 마음 너무 조급해 一來欲上最高峰 단번에 최고봉에 오르려 하는 도다. 望欲遠時愁更遠 멀리 바라보자 하면 근심 더욱 멀어지니 登高莫上最高峰 올라도 최고봉엔 오르지 말지니라. 앞의 것은 진화(陳澕)의 시이고, 뒤의 것은 정도전(鄭道傳)의 시이다. 같은 운으로 함께 ‘최고봉(最高峰)’을 노래하였다. 정상에 오르려고 기를 쓰고 산을 오른다. 그렇게 정상에 오르면 다시 내려와야 할 것이 아닌가. 왜들 저리 조급하단 말인가. 이것이 진화 시가 말하고 있는 뜻이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고 했던가. 그러나 높이 올라 멀리 볼수록 자신의 왜소를 더 깨달을 뿐이니, 굳이 끝장을 보려 하지 말라. 최고봉은 아껴 두라. 이것은 정도전의 말이다. 이 두 사람의 시를 두..
2. 형님! 그 자 갔습니까? 흔히 ‘문여기인(文如其人)’이라 하여 그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대개 시에는 그 사람의 기상이 절로 스며들게 되니, 한 구절의 시만 가지고도 그 사람의 궁달(窮達)을 점칠 수가 있다. 양파(陽坡) 정태화(鄭泰和)가 일찍이 평안도 관찰사가 되어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지은 춘첩(春帖)의 끝 구절에 이런 것이 있다. 關西老伯閑無事 관서 땅 늙은 수령 한가해 일 없는데 醉倚春風點粉紅 봄바람에 취해 눕자 분홍 꽃잎 점을 찍네. 늙은 수령이 일이 없어 한가로우니 태평시절(태평성대를 나타낸 시: 소화시평 상권34, 상권51)이 아니고 무엇인가?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 취흥이 도도하여 슬쩍 기대니 꽃잎은 날려와 옷깃 위에 분홍의 수를 놓는다. 세상에 전하기를 이..
13. 씨가 되는 말, 시참론(詩讖論) 1. 머피의 법칙, 되는 일이 없다 人間細事亦參差 인간의 잗단 일들 언제나 들쭉날쭉 動輒違心莫適宜 일마다 어그러져 마땅한 구석 없네. 盛世家貧妻常侮 젊을 땐 집 가난해 아내 늘 구박하고 殘年祿厚妓將追 늙어 녹이 후해지자 기생이 따르누나. 雨陰多是出遊日 주룩주룩 비오는 날 놀러 갈 약속 있고 天霽皆吾閑坐時 개었을 땐 언제나 할 일 없어 앉아 있다. 腹飽輟飡逢美肉 배불러 상 물리면 좋은 고기 생기고 喉瘡忌飮遇深巵 목 헐어 못 마실 때 술자리 벌어지네. 儲珍賤末市高價 귀한 물건 싸게 팔자 물건 값이 올라가고 宿疾方痊隣有醫 묵은 병 낫고 나니 이웃집이 의원이라. 碎小不諧猶類此 자질구레 맞지 않음 오히려 이 같으니 楊州駕鶴況堪期 양주 땅 학 탄 신선 어이 기약하리오. 이규보..
6. 자족(自足)의 경계(境界), 탈속(脫俗)의 경지(境地) 다음에 소개하려는 시는 조선 중기의 유명한 학자 귀봉(龜峯) 송익필(宋翼弼)의 「족부족(足不足)」이란 작품이다. 모두 40구 280자에 달하는 장편으로 ‘족(足)’자만을 운자로 사용한, 중국에서도 달리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작품이다. 그 형식 뿐 아니라 내용 또한 참으로 삶의 귀감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송익필(宋翼弼)의 일생 학문이 이 한 수의 시에 무르녹아 있다 해도 조금의 지나침이 없다. 君子如何長自足 군자는 어찌하여 늘 스스로 족하며 小人如何長不足 소인은 어찌하여 늘 족하지 아니한가. 不足之足每有餘 부족하나 만족하면 늘 남음이 있고 足而不足常不足 족한데도 부족타 하면 언제나 부족하네. 樂在有餘無不足 즐거움이 넉넉함에 있으면 ..
5.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시에 「불역쾌재행(不亦快哉行)」이라는 제목의 20수로 이루어진 연작시가 있다. 답답한 세상에 가슴을 후련하게 적셔주는 작품이다. 그 가운데 몇 수를 소개한다. 跨月蒸淋積穢雰 한 달 남짓 찌는 장마, 퀴퀴한 기운 쌓여 四肢無力度朝曛 사지(四肢)도 나른하게 아침저녁 보냈는데, 新秋碧落澄廖廓 초가을 푸른 하늘 툭 터져 해맑더니 端軸都無一點雲 끝까지 바라봐도 구름 한 점 없어라. 不亦快哉 또한 통쾌치 아니한가. 초가을에 꼭 맞는 시이다. 특히 금년 여름처럼 잔혹한 더위 끝에 맞이하는 초가을 하늘빛은 자못 경이적이다. 지루한 여름 장마와 끈적끈적하고 후덥지근한 공기, 사지는 나른하기만 하고 일할 의욕은 아예 나지 않는다. 그러나 섭리는 어김없어, 어느덧 ..
4. 강아지만 반기고 득의(得意)와 실의(失意)를 담은 시 『패관잡기(稗官雜記)』에 보면 중국 사람이 지었다는 「득의시(得意詩)」란 것이 있다. 久旱逢甘雨 他鄕遇故知 오랜 가뭄 끝에 단비를 만났을 때 타향에서 옛 친구를 만났을 때. 洞房花燭夜 金榜掛名時 동방(洞房)에 화촉을 밝힌 첫날 밤 과거에 급제하여 이름이 걸렸을 때. 땅이 쩍쩍 갈라지는 긴 가뭄 끝에 한 줄기 시원한 소나기가 내려 거북 등 같은 논바닥을 적실 때, 모든 것이 어리둥절한 낯선 타관 땅에서 옛 친구와 약속도 없이 만났을 때, 그 기쁨이야 어찌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 수줍기만 한 신부(新婦)와의 첫날 밤, 과거 급제의 방(榜)에서 내 이름을 확인하였을 때의 설레임은 어떨까. 인간 세상의 유쾌한 득의사(得意事)를 노래한 것이다. 그러자 ..
3.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三年竄逐病相仍 세 해의 귀양살이 병마저 들어 一室生涯轉似僧 한칸 집의 살림이 중인 양 호젓해라. 雪滿四山人不到 눈 덮힌 깊은 산엔 찾는 이 없고 海濤聲裏坐挑燈 파도 소리 속에 앉아 등불 돋운다. 고려 때 시인 최해(崔瀣)의 「현재설야(縣齋雪夜)」이다. 호방불매(豪放不羈)의 기상과 재주를 지녀 오만했던 그는 그 재주로 인하여 당시 장사감무(長沙監務)라는 한직으로 쫓겨나 있었다. 장사(長沙)는 전라도 무장(茂長)의 옛 이름이다. 궁벽한 산 속에서 지낸 세 해 동안의 삶은 젊은 날의 자부와 기개 때문에도 말할 수 없이 괴로웠을 것이다. 세상에서 완전히 버려진 느낌, 더 이상 아무 쓸모없이 잊혀져버린 듯한 생각에 그는 잠 못 이루고 있다. 육신의 병이야 약으로 고친다지만 마음의 병..
2. 시로 쓴 자기 소개서 ‘문여기인(文如其人)’, 즉 글은 그 사람과 같다는 말이 있다. 무심히 내뱉는 말속에는 이미 그의 인생관이나 처세의 방식이 드러나 있어,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가 있다. 遠客坐長夜 雨聲孤寺秋 나그네는 긴 밤을 앉아 새우고 외로운 절, 빗소리 듣는 가을 밤. 請量東海水 看取淺深愁 동해물의 깊이를 재어 봅시다 내 근심과 어느 것이 깊고 얕은지. 당나라 때 시인 이군옥(李群玉)의 시이다. ‘원객(遠客)’은 그가 고향을 떠나 먼 타관 땅을 전전하는 고단한 신세임을 말해 주고, ‘긴 밤을 앉아 있다’는 말은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어 아예 잠자리를 차고 나와 앉아 있음을 뜻한다. 2구는 우성(雨聲)과 고사(孤寺), 추(秋)라는 세 개의 명사를 서술어 없이 그저 잇대어 놓았다. 가을..
12. 시인(詩人)과 시(詩): 기상론(氣象論) 1. 이런 맛을 아는가? 정약용(丁若鏞)이 쓴 「불역쾌재행(不亦快哉行)」 중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雲牋闊展醉吟遲 활짝 펼친 운전지(雲箋紙)에 취중시(醉中詩)가 더디더니 草樹陰濃雨滴時 수풀도 잔뜩 흐려 빗방울이 후두둑. 起把如椽盈握筆 서가래 같은 붓을 손에 가득 쥐어 들고 沛然揮洒墨淋漓 낚아채듯 휘두르니 먹물이 뚝뚝. 不亦快哉 또한 유쾌하지 아니한가. 호탕한 임형수 산에 눈이 하얗게 쌓일 때, 검은 돈피 갖옷을 입고 흰 깃이 달린 기다란 화살을 허리에 차고, 팔뚝에는 백 근짜리 센 활을 걸고, 철총마를 타고 채찍을 휘두르며 골짜기로 들어가면, 긴 바람이 골짜기에서 일어나 초목이 진동하는데, 느닷없이 큰 멧돼지가 놀라서 길을 헤매고 있을 때, 곧 활을 ..
7. 탄탈로스의 갈증 고전문학사(古典詩學史)를 통해 볼 때,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의 논의는 뚜렷한 하나의 시론이라기보다는 시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각기 자기의 입장에 따른 찬반이 덧붙어 그 논의의 양상은 자못 흥미롭다.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의 논의는 서정이라는 문학 본래의 기능에 대한 다른 측면에서의 접근이다. 시는 궁한 뒤에 좋다는 명제는 예외를 인정치 않는 사실 명제도 아니고, 의당 그래야만 할 당위명제도 아니다. 이것의 진리값을 놓고 역대로 많은 논란이 있어 온 것은 당연하다. 불평즉명(不平則鳴)ㆍ발분서정(發憤抒情)ㆍ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 등의 논의는 궁극적으로 동일성(Identity)의 문제를 환기시킨다. 동일성은 ‘자기 자신을 자기자신이라고 느끼는 감정’이다. 즉..
6. 시(詩)는 사람을 궁하게 만든다 당나라 때 현종(玄宗)이 맹호연(孟浩然)을 불러 접견하고, 예전에 지은 시를 읊게 하였다. 이에 맹호연(孟浩然)이 다음 시를 외웠다. 不才明主棄 多病故人疎 재주 없어 밝은 임금 이 몸 버리고 병 많아 옛 벗도 멀어지누나. 이에 불쾌해진 왕은 “그대가 스스로 짐(朕)을 구하지 않은 것이지, 짐은 그대를 버린 적이 없노라.”하고는 고향에 돌아가게 하였다. 사려 깊지 못한 경박한 붓놀림 때문에 궁하게 된 경우이다. 『소화시평(小華詩評)』에 전한다. 장상례(張尙禮)가 「궁원(宮怨)」시를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庭院沈沈晝漏淸 정원은 깊고 깊어 낮 물시계 소리 맑은데 閉門春草共愁生 닫아건 문엔 봄풀이 시름처럼 자라누나. 夢中正得君王寵 꿈속에서 한창 임금의 총애 얻고 있는데 却被..
5. 시(詩)는 궁달(窮達)과는 무관하다는 주장 시인은 궁(窮)의 상태에서 사물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가슴 속의 불평이나 울분이 날카로운 촉수가 되어 이전보다 그의 시를 더욱 우수하게 만들어준다. 그런데 여기서 궁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훌륭한 시를 쓸 수 없는 것인가 하는 논의가 있을 수 있다. 실제 궁한 이의 시가 모두 좋은 것은 아니고, 달하였으면서도 시가 좋은 경우 또한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달한 처지에 있으면서 문필에 종사하는 이들의 경우, 가만히 앉아서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의 논의에 승복할 때 그들은 자신들의 노력이나 재분(才分)과는 관계없이 결코 공해질 수는 없다는 한계를 인정하는 셈이 되므로, 여기서 필연적으로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의 논의에 대한 이들의 반격이 예견된다...
4. 궁한 사람의 시가 좋은 이유 궁한 상황과 추위로 알게 되는 것 군자의 배움은 혹은 일에 베풀어지고 혹은 문장으로 나타나니 항상 아우르기 어려움을 근심한다. 대개 때를 만난 선비는 공렬(功烈)을 조정에 드러내어 명예가 죽백(竹帛)에 빛나는 까닭에 그 항상 문장을 보기를 말사(末事)로 하며 또 하기에 겨를하지 못하거나 능하지 못함이 있는 것이다. 뜻을 잃은 사람에 이르러서는 궁벽한 곳에 숨어 마음을 괴롭게 하고 생각을 위태롭게 하여 정밀한 생각에 지극하니 감격하여 분(憤)을 펴는 바가 있으므로 더불어 오직 세상에 펼 바가 없는 것을 모두 한결같이 문사(文辭)에 맡기는 까닭에 궁한 사람의 말이 공교하기 쉽다고 말한다. 君子之學, 或施之事業, 或見於文章, 而常患於難兼也. 蓋遭時之士, 功烈顯於朝廷, 名譽光於..
3.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과 시능궁인(詩能窮人) 궁해져야만 시가 좋아진다 예전 시화서(詩話書)를 들추다 보면 유난히 시인과 궁곤(窮困)의 관계에 대한 예화를 많이 접하게 된다. 그 이야기는 크게 간추려 보면,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 즉 시는 궁해진 뒤에 더 좋아진다는 논의와, ‘시능궁인(詩能窮人)’ 즉 시가 능히 사람을 궁하게 한다는 관념으로 대별된다. 엄밀히 말해 이 두 가지 생각은 서로 상반되는 명제이다.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은 궁핍한 환경이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잘 쓰게 한다는 말이고, 시능궁인(詩能窮人)은 시를 쓰는 행위가 시인을 궁핍한 환경으로 몰아넣는다는 말이다. 대개 이러한 생각은 연원이 오랜 것이지만, 처음으로 이 말을 한 사람은 구양수(歐陽修)이다. 그가 「매성유시집서(梅聖兪詩集序..
2. 나비를 놓친 소년, 발분서정(發憤抒情)의 정신 나비 잡는 아이의 심정으로 사기를 읽다 그대가 태사공(太史公)의 『사기(史記)』를 읽었다 하나, 그 글만 읽었지 그 마음은 읽지 못했구료. 왜냐구요? 「항우본기」를 읽으면 제후들이 성벽 위에서 싸움 구경하던 것이 생각나고, 「자객열전」을 읽으면 악사 고점리(高漸離)가 축(筑)이란 악기를 치던 일이 떠오른다 했으니 말입니다. 이것은 늙은 서생의 진부한 이야기일 뿐이니, 또한 부뚜막 아래에서 숟가락 주었다는 것과 무에 다르겠습니까. 足下讀太史公, 讀其書, 未嘗讀其心耳. 何也? 讀項羽, 思壁上觀戰; 讀刺客, 思漸離擊筑, 此老生陳談, 亦何異於廚下拾匙? 아이가 나비 잡는 것을 보면 사마천의 마음을 얻을 수 있지요. 앞발은 반쯤 꿇고 뒷발은 비스듬히 들고 손가락을..
11. 시인과 궁핍: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론(論) 1. 불평즉명(不平則鳴), 불평(不平)이 있어야 운다 시름이 나를 울게 한다 노래 삼긴 사람 시름도 하도할샤 닐러 못다 닐러 불러나 푸돗던가 진실로 풀릴 것이면 나도 불러보리라 신흠(申欽)의 시조이다. 시는 왜 쓰는가? 말로 해서는 아무리 해도 풀리지 않을 시름이 있기 때문이다. 말로 해서는 도무지 풀리지 않던 시름도 노래 앞에서는 눈 녹듯 사라진다. 대저 무릇 물건은 그 평(平)을 얻지 못하면 운다. 초목(草木)이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흔들면 운다. 물이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이를 움직이면 운다. 그 솟구치는 것은 혹 부딪치기 때문이요, 그 달리는 것은 혹 막기 때문이며, 그 끓는 것은 혹 불에 데우는 까닭이다. 금석이 소리가 없으나 혹 이를 치면..
6.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 시를 향한 열정과 사물의 비밀을 꿰뚫으려는 시인의 집착 지금까지 시마(詩魔)와 시귀(詩鬼), 그리고 귀시(鬼詩)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 모두 시가 폐부에 깊이 박힌 고질(痼疾)이 되어, 시를 떠나서는 잠시도 살 수 없었던 옛 시인들의 시정신이 빚어낸 소화(笑話)들이다. 그러나 그저 웃고 넘기기에는 석연치 않은 그 무엇이 이들 이야기 속에는 깃들어 있다. 시마(詩魔)는 한 마디로 옛 사람의 시를 향한 열정의 다른 말이다. 시귀(詩鬼)는 달리 말해 사물의 비밀을 끝까지 꿰뚫으려는 시인의 집착일 뿐이다. 사조제(謝肇淛)란 이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생각이 많으면 심화(心火)가 타오르고 심화가 타면 신수(腎水)가 고갈되어 심장과 신(腎)이 교통이 안 되므로 사람의 생리가 끊어진다..
5. 귀신(鬼神)의 조화와 시인(詩人)의 궁달(窮達) 정지상(鄭知常)이 일찍이 산사(山寺)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밤에 달이 휘영청 밝아 홀로 범각(梵閣)에 앉아 있는데, 홀연히 허공에서 시 읊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 僧看疑有刹 鶴見恨無松 스님이 보면 절 있을까 의심하고 학이 보곤 소나무 없음 아쉬워 하네. 정지상은 혼자 생각에 귀신이 알려주는 것이려니 하였으나, 무엇을 노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뒤에 과거 시험을 보러 갔는데, 고시관(考試官)이 ‘하운다기봉(夏雲多奇峯)’, 즉 “여름 구름엔 기이한 봉우리 많네.”란 도연명의 시구를 시제(詩題)로 하여 ‘봉(峯)’자를 압운으로 내거는 것이었다. 퍼뜩 산사(山寺)에서 귀신이 들려준 시구가 생각난 그는 이를 이어 시로..
4. 시귀(詩鬼)와 귀시(鬼詩) 김덕령의 시인가, 권필의 시인가 시마(詩魔) 이야기를 꺼낸 김에 시와 귀신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겠다. 시화(詩話)를 보면 또 시귀(詩鬼)와 귀시(鬼詩)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시마(詩魔)가 보통 지속적으로 시인에게 들러붙어 있는 것이라면, 시귀(詩鬼)는 일회적으로 시인의 입을 빌어 대신 노래하게 하거나, 그 자신이 홀연히 나타나 시를 읊조리기도 하는 귀신이다. 또 이 시귀(詩鬼)가 지은 시를 귀시(鬼詩)라 한다. 광주 교외에는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의 명장 김덕령(金德齡)을 모신 사당 충장사(忠壯祠)와 취가정(醉歌亭)이란 정자가 있다. 그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조직하여 위국진충(爲國盡忠)하였으나 간신배의 모함을 입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와 한 시대..
3. 시마(詩魔)의 죄상(罪狀) 이제 「구시마문(驅詩魔文)」에서 이규보(李奎報)가 적시하고 있는 시마(詩魔)의 다섯 가지 죄상에 대해서 알아볼 차례이다. 첫째,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는데 시인으로 하여금 붓만 믿고 찧고 까불게 만드는 죄이다. 사람이 세상에 나서 바탕이 소박할 때에는 화려하지 않은 꽃떨기 같고, 총명함이 가리워져 있음은 마치 눈이나 귀가 열리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다가 허술한 틈을 타서 시마(詩魔)란 놈이 들어와 붙게 되면 여기에 의탁하여 세상을 어지럽게 하고 남을 현혹시켜 아름다움을 꾸미고, 요술을 부리고 온갖 괴상한 짓을 하며, 아양을 떨면 살과 뼈가 녹는 듯하고, 떨쳐 소리 지르면 바람이 일고 물결이 출렁이게 한다. 세상에서는 아무도 너를 장하다 하지 않는데 어찌 이다지 날뛰며..
2. 시마(詩魔)와의 논쟁과 시마(詩魔) 증후군 가난과의 한 판 승부를 청한 양웅 한나라 때 양웅(揚雄)은 「축빈부(逐貧賦)」를 지어, 자기를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는 ‘가난’이란 놈의 축출을 시도한 적이 있다. 글을 보면, 먼저 ‘가난’을 불러내어 내 인생을 이렇듯 고달프게 만드는 연유를 따져 묻고, 이어 잠시도 나를 가만두지 않고 따라다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은 뒤, 지체치 말고 썩 물러가라고 호통을 친다. 자못 등등한 기세다. 그러자 ‘가난’이란 녀석이 나타나 물러가는 것은 좋으나 나도 할 말이 있다며 반발한다. 추위를 견디고 더위를 참아내는 법을 어려서부터 가르쳐 주었고, 걸(桀)이나 도병(盜甁) 같은 탐학의 무리를 거들떠보지 않는 기상을 길러 주었으며, 사람들은 모두 겹겹이 둘러싸인 곳에서 지내..
10. 시마(詩魔) 이야기 1. 즐거운 손님, 시마(詩魔) 시를 짓지 않고 배길 수 없게 하는 시마 앞에서 이규보(李奎報)의 「시벽(詩癖)」이란 작품을 소개하면서, 시마(詩魔)에 대해 잠시 말한 바 있다. 여기서는 이 시마(詩魔)의 정체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시마(詩魔)란 말 그대로 ‘시 귀신’이다. 이 시마(詩魔)는 어느 순간 시인의 속으로 들어와 시인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시만 생각하고 시만 짓게 하는 귀신이다. 이 귀신이 한 번 붙고 나면 그 사람은 다른 일에는 하등 관심이 없고, 오로지 시에만 몰두하게 되며, 짓는 시마다 절창이 아닌 것이 없게 된다. 실제로 예전 시화(詩話)를 보면 이 시마(詩魔)에 관한 삽화를 자주 접할 수 있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선조 때 사람 이현욱(李顯郁)이란..
6. 개미와 이 일찍이 높은 산에 올라 성시(城市)를 굽어보니 마치 개미굴 같았다.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 알 수 없으나, 높은 데서 바라보니 참으로 한 번 웃을 만했다. 산이 성시(城市)보다 높다한들 능히 얼마나 되랴마는, 그런데도 이미 이와 같으니, 하물며 진짜 신선이 허공 속에 있으면서 티끌세상을 굽어본다면 또 어찌 다만 개미굴이겠는가? 허균(許筠)의 『한정록(閒情錄)』에 나오는 말이다. 실제로 옛 사람이 보허등공(步虛登空)하여 하계(下界)를 조감하는 유선시(遊仙詩)에는 이러한 광경을 노래한 구절이 있다. 김시습(金時習)은 「능허사(凌虛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下視塊蘇嗟渺渺 굽어보니 땅 덩어리 너무도 아득한데 大鵬飛少蠛蠓多 대붕은 잘 안 뵈고 하루살이만 우글대네. 임제(林悌)..
5. 참을 수 없는 가려움, 기양(技癢) 구양수(歐陽修)는 글을 지으면 벽에다 붙여놓고 볼 때마다 이를 고쳤는데, 마지막 완성되고 나면 처음의 것은 한 글자도 남지 않은 적이 많았다고 한다. 소동파(蘇東坡)가 「적벽부(赤壁賦)」를 지었을 때, 사람들은 그가 단숨에 이를 지은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이를 짓느라 버린 초고가 수레 석 대에 가득하였다 했으니 그간의 고초를 헤아려 무엇하랴. 『사문유취(事文類聚)』에 나온다. 송자경(宋子京)이란 이가 “나는 번번이 예전에 지은 문장을 볼 때마다 그것을 미워하여 반드시 불태워 버리고 싶어진다”고 말하였다. 그 말을 들은 매요신(梅堯臣)이 기뻐하며 말하였다. “그대의 글이 진보하는 것입니다. 나의 시 또한 그러합니다.” 매요신(梅堯臣)은 앞서 여러 시인이 그랬듯 시..
4. 가슴 속에 서리가 든 듯 『섭석림기(葉石林記)』란 책에는 송나라 때 진사도(陳師道)의 일화가 실려 전한다. 그는 산수를 노닐다가 시상이 떠오르면 곧 돌아와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푹 뒤집어쓰고 침상에 누워 버린다. 가족들이 이 사실을 알면, 즉시 고양이나 개는 멀리 쫓고 애기는 안고 어린애는 데리고 가서 이웃집에 맡긴다. 그리고는 그가 시를 완성하기를 기다린다. 시가 완성된 뒤라야 감히 다시 애도 데려오고 고양이와 개도 불러올 수 있었다. 어떤 때는 사흘씩 방에 처박혀 나오지 않는 때도 있었다. 사람들은 시인이 고심참담한 결과만을 놓고 좋으니 나쁘니, 잘 되었네 못 되었네 말들 하지만, 정작 그 갈피 갈피에 서린 고초는 간과해 버리기 일쑤이다. 고인(古人)이 작시(作詩)의 괴로움을 읊은 시 몇 구를 살..
3. 눈을 상처 내고 가슴을 찌르듯 한유(韓愈)는 「정요선생묘지명(貞曜先生墓誌銘)」에서 맹교(孟郊)의 시에 대해, “그 시를 지음에 미쳐서는, 눈을 상처 내고 가슴을 찌르듯 하였다[及其爲詩, 墫目鉥心].”고 하여, 준열한 시정신을 기린 바 있다. 실제 맹교(孟郊)는 한 편의 좋은 시를 짓기 위해, 칼로 자기 눈을 찌르고 가슴을 도려내는 것 이상의 고통을 달게 여겼던 시인이다. 「야감자견(夜感自遣)」이라는 다음과 같다. 夜吟曉不休 苦吟鬼神愁 밤새 읊조려 새벽까지 쉬잖으니 괴로이 읊조림, 귀신조차 근심하리. 如何不自閑 心與身爲仇 어찌하여 제 스스로 한가치 못하는가 마음이 몸과는 원수 되었네. 오죽하면 몸이 마음을 원수로 알 지경에 이르렀겠는가마는, 시를 향한 마음이 골수에 깊이 박힌 고질(痼疾)이 되고 보니..
2. 늙음이 오는 것도 모르고 한 구절의 시구도 목숨처럼 고려 때 김황원(金黃元)이란 이가 평양 감사가 되어 부벽루(浮碧樓)에 올랐는데, 누각에 걸린 고금의 제영(題詠)이 성에 차는 것이 없는지라 시판(詩板)을 다 떼어 불사르게 하고는 하루 종일 난간에 기대 괴로이 읊조렸으나 다만 다음의 두 구절만 얻었다. 長城一面溶溶水 장성 한 면에는 넘실대는 강물이요 大野東頭點點山 넓은 벌 동편에는 점점이 산일래라. 그러고선 뜻이 고갈되어 마침내 통곡하고 돌아왔다는 일화가 역대 시화에 두루 전한다. 역시 고려 때 유명한 시인 강일용(康日用)은 백로를 가지고 시를 지으려고, 비만 오면 짧은 도롱이를 입고 성문 밖 천수사(天水寺) 남쪽 시내 위로 가서 황소 등에 걸터앉아 이를 관찰하였다. 날마다 수염을 꼬며 고심하기 백..
9. 작시(作詩), 즐거운 괴로움 1. 예술(藝術)과 광기(狂氣) 대상을 향한 미친 듯한 몰두 없이 위대한 예술은 이룩되지 않는다. 그것이 비록 하찮은 기교라 할지라도 자신을 온전히 잊는 몰두가 있어야 만이 성취를 이룰 수 있다. 예로부터 예술의 천재들에게는 스스로도 주체하기 힘든 광기(狂氣)가 있다. 인간의 열정(熱情)이 뿜어내는 거친 호흡과, 다른 사람을 빨아들이는 흡인력이 그들 안에서는 느껴진다. 최흥효(崔興孝)는 조선 초의 유명한 명필(名筆)이다. 일찍이 과거를 보러 갔는데, 답안을 쓰다 보니 우연히 한 글자가 왕희지(王羲之)의 글씨와 같게 되었다. 넋을 잃고 하루 종일 가만히 앉아 뚫어지게 그 글자만을 바라보던 그는, 답안지를 차마 제출하지 못하고 그냥 품에 넣고 돌아오고 말았다. 우연히 같게 ..
5. 시안(詩眼)과 티눈 시안(詩眼)과 일자사(一字師) 이야기는 고인(古人)이 한편 시를 창작함에 있어 한 글자가 바뀌면서 발생하는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까지 십분 고려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렇게 언어 형식을 묘하게 변화시키는 것은 어디까지나 예술성의 추구일 뿐, 문자의 유희와는 구분된다. 문자의 유희와 시는 조금도 관계가 없다. 이수광(李晬光)이 “대체로 글을 일러 조화라고 말한다. 마음속에서 이루어진 문장은 반드시 예술적이지만 손끝으로 이루어진 것은 결코 예술적이지 못하다”고 한 것은 까닭이 있는 말이다. 최자(崔滋)는 『보한집(補閑集)』에서 다시 이렇게 말한다. 무릇 시를 탁련(琢鍊)함은 두보(杜甫)와 같이 한다면 묘하기는 묘하다. 그러나 저 솜씨가 생경한 자는 조탁하고자 애쓰면 애쓸수록..
4. 일자사(一字師)의 미감(美感) 원리(原理) 중복된 의미를 피하라 이상 살펴본 일자사(一字師)의 예화를 찬찬히 음미해보면 한 글자를 놓고 무게를 되는 미묘한 저울질이 있다. 글자가 바뀌면서 미감의 차이가 발생한다. 그 차이를 범주화할 수 있다면 여기서 한시의 미감 원리를 발견할 수 있을 법하다. 일자사(一字師)가 환기시키는 첫 번째 미감 원리는 의미의 중복을 피하라는 것이다. 서거정(徐居正)은 『동인시화(東人詩話)』에서 진관(秦觀)의 소사(小詞) 가운데, “두견새 울음 속에 봄날 해가 저물고[杜鵑聲裏斜陽暮].”라 한 구절을 들고, 이미 ‘서양(斜陽)’을 말해 놓고 ‘모(暮)’자를 다시 썼으니 뜻이 중첩되었다고 지적하였고, 또 이인로(李仁老)의 「어양(漁陽)」시의 첫 구절에서 “무궁화 꽃 나직히 푸른 ..
3. 한 글자의 스승 일자사(一字師) 제기(齊己)의 세 가지 일화 당나라 때 시승(詩僧) 제기(齊己)가 사방을 유력타가 당시 자고시(鷓鴣詩) 한편으로 정자고(鄭鷓鴣)의 별명을 얻었던 시인 정곡(鄭谷)을 찾아가 5언율시 한 수를 지어 헌정하였다. 대문간에서 명함 대신 시를 들여 놓고 한참을 기다렸으나 안쪽의 기별은 좀체 없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더니 하인의 전언은 시 가운데 한 글자를 고쳐 가지고 오면 그때 만나 주겠다는 것이었다. 며칠을 고심한 뒤 제기(齊己)는 한 글자를 수정하여 다시 정곡(鄭谷)에게 보냈다. 정곡(鄭谷)은 이를 보고 기뻐하며 그를 기꺼이 맞이하였을 뿐 아니라 평생 시우(詩友)로 교유하였다. 뒤에 제기(齊己)가 다시 「조매(早梅)」시를 지어 정곡(鄭谷)에게 보였다. 萬木凍欲折 孤根暖獨回..
2. 뼈대와 힘줄 시안(詩眼), 시의 핵심처 정진규의 「몸詩 26」에는 ‘자안(字眼)’이란 부제가 붙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입술이든 자궁(子宮)이든/ 사랑하는 사람아/ 나는 다른 곳으론 들지 않겠고/ 오직 네 눈으로만 들겠으며/ 세상의 모든 빗장도 그렇게 열겠다/ 술도 익으면 또록또록 눈을 뜨거니/ 달팽이의 더듬이가 바로 눈이거니/ 너와 함께 꺾은 찔레순이/ 바로 찔레의 눈이거니/ 아, 자안(字眼)이란 말씀도 있거니/ 글자에도 살아 있는 눈이 있거니/ 모든 것엔 눈이 있거니/ 나는 오직 그리로만 들겠다 정말이지 시에도 눈이 있다. 시의 빗장을 옳게 열려면 시의 눈, 즉 시안(詩眼)을 찾아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시안(詩眼)이란 말은 소동파(蘇東坡)가 「승청순신작수운정(僧淸順新作垂雲亭)」의 5..
8. 시안론(詩眼論): 일자사(一字師) 이야기 1. 한 글자를 찾아서 서거정(徐居正)은 『동인시화(東人詩話)』에서, “무릇 시는 묘(妙)가 한 글자에 달려 있다. 옛 사람은 한 글자를 가지고 스승으로 삼았다[凡詩妙在一字, 古人以一字爲師].”고 하였고, 호자(胡仔)는 『초계어은총화(苕溪漁隱叢話)』에서 “시구는 한 글자가 공교로우면 자연히 빼어나게 되니, 마치 한 낱의 영단(靈丹)으로 돌을 두드려 금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했다. 원매(袁枚)가 『수원시화(隨園詩話)』에서, “시는 한 글자만 고쳐도 경계가 하늘과 땅 차이로 판이한데, 겪어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한 것도 다 한 뜻이다. 한 글자가 시를 죽이고 살린다. 그렇다면 시인은 어딘가에 있을 꼭 맞는 딱 한 글자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 아..
6. 즉정견경 정의핍진(卽情見景, 情意逼眞) 시경(詩經) 이래로 전통적인 인식은 ‘시언지(詩言志)’를 시의 본령으로 삼아왔다. 시란 무엇인가? 뜻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뜻이란 무엇인가? 말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에 이르면 다소 복잡해지지만 고대 위진(魏晉) 이전의 시들은 영물(詠物)보다는 영회(詠懷)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 서거정(徐居正)은 『동인시화(東人詩話)』에서 “시는 뜻을 말하는 것이다. 뜻이란 마음이 가는 바이다. 이런 까닭에 그 시를 읽으면 그 사람을 알 수가 있다[詩者, 心之發氣之充, 古人以謂讀其詩, 可以知其人].”고 하였다. 장계(張戒)가 『세한당시화(歲寒堂詩話)』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려는 것이 시인의 본의(本意)이니, 물건을 읊조리는 것은 다만 시인의 여사(餘事)일 뿐이..
5. 지수술경 정의자출(只須述景, 情意自出) 이어(李漁)는 『한정우기(閑情偶寄)』에서 “정(情)을 버려두고 경(景)을 말하는 것은 노력을 줄이려는 시도에 불과하다”고 하였고, 하상(賀裳)은 『추수헌사전(皺水軒詞筌)』에서 “시는 함축을 귀히 여기고 천직(淺直)에서 병이 든다. 시인은 마땅히 다만 경상(景象)을 묘사할 뿐이나 정의(情意)가 절로 드러나야 한다”고 하였다. 왜 경(景)만으로 보여주는가? 꼬집어 무언지도 모를 감정을 언어로 설명하기란 큰 인내가 필요한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물만을 묘사했는데 어찌 정의(情意)가 드러나는 법이 있는가. 滿空山翠滴人衣 초록의 연못에는 백조가 난다. 艸綠池塘白鳥飛 푸른 이내 허공 가득 옷을 적시고 宿霧夜棲深樹在 깊은 숲 밤을 새운 묵은 안개가 午風吹作雨霏霏 낮바람 불어..
4. 정경교융 물아위일(情景交融, 物我爲一) 마음을 드러내려할 땐 오히려 감춘다 육시옹(陸時雍)은 『시경총론(詩鏡總論)』에서 “정(情)을 잘 말하는 자는 삼키고 토해냄이 깊은 듯 얕아 드러날 듯 다시금 감추어져 문득 그 마음의 무한함을 깨닫게 하고, 경(景)을 잘 말하는 자는 형용함을 끊어버리고 약간의 보탬만을 더하였는데도 참 모습이 또렷하고 생기가 또한 흘러넘친다”고 했다. ‘욕로환장(欲露還藏)’, 즉 말할 듯 침묵하는 데서 정(情)의 맛은 더 깊어지고, ‘절거형용(絶去形容)’ 곧 시시콜콜히 묘사함을 거부하는 데서 경(景)의 상(相)은 한결 살아난다. 사실 서로 녹아 들어간 정(情)과 경(景)의 경계를 시 속에서 구분해내기란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니다. 박은(朴誾)만큼 역대 시화에서 자주 거론되는 시인도..
3. 이정입경 경종정출(移情入景, 景從情出) 술 취해 수창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담는 방식 심웅(沈雄)은 『고금사화(古今詞話)』에서 “정(情)은 경(景) 때문에 그윽해지니 정(情)이 두드러지면 의경이 노출되고, 경(景)은 정(情)으로 인해 아름다운데 경(景)만 있게 되면 엉기어 막히고 만다”고 하였고, 왕창령(王昌齡)은 『시격(詩格)』에서 “시가 뜻만 말해 버린다면 맑지 않아 맛이 없고, 경(景)만 말해도 또한 맛이 없다. 일이란 모름지기 경(景)과 의(意)가 서로 어우러질 때 비로소 좋다.”고 하였다. 昨日南山飮 君詩醉未酬 간밤 남산서 술 마시다가 술 취해 그대 시에 화답 못했네. 覺來花在手 蛺蝶伴人愁 깨고 보니 손에는 꽃이 있구나 나비만이 나마냥 근심 겹구나. 다시 백광훈(白光勳)의 시 「기량천유(..
2. 정수경생 촉경생정(情隨景生, 觸景生情) 기다리는 그대 오지 않는 봄날에 양재(楊載)는 『시법가수(詩法家數)』에서 “경(景)을 묘사함은 경(景) 가운데 뜻을 머금고, 일 가운데 경(景)을 보여주어야 한다. 세밀하고 청담(淸淡)해야지, 진부하거나 교묘함을 꺼린다. 뜻을 묘사함은 뜻 가운데 경(景)을 담고, 의론함을 밝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또 비경우(費經虞)는 『아론(雅論)』에서 “시는 정(情)을 일으킴을 귀히 여기나, 편편마다 정(情)을 마구 늘어놓으면 마침내 방탄(放誕)하게 된다. 시는 경(景)이 핍진함을 귀히 여기나, 작품마다 경(景)만을 펼쳐 놓으면 문득 조잡하고 천박해진다”고 했다. 岸有垂楊山有花 산에는 꽃 피고 언덕엔 수양버들 離懷悄悄獨長嗟 이별의 정 안타까워 홀로 한숨 내쉰다. 强扶藜杖..
7. 정경론(情景論) 1. 가장자리가 없다 山沓水迎 樹雜雲合 산은 첩첩 물은 감돌고 나무들 섞여 있고 구름은 합해지네. 目旣往還 心亦吐納 눈길이 갔다가 돌아오면은 마음도 따라서 움직인다네. 春日遲遲 秋風颯颯 봄날 해는 느릿느릿 가을바람 스산해라. 情往似贈 興來如答 정을 줌은 건네듯이 흥이 읾은 답하는 듯. 유협(劉勰)의 『문심조룡(文心雕龍)』 「물색(物色)」의 한 절이다. 산첩첩(山疊疊) 수중중(水重重), 강산은 고운데 제각금의 나무들을 구름이 감싸 안는다. 어디가 산이고 어디가 물인가. 저 나무는 무슨 나무며, 어디까지가 구름인가. 그저 눈앞의 경물이건만 눈길이 한 번 갔다가 돌아오는 사이에 어느새 마음에는 느낌이 자리 잡는다. 사실 하루의 물리적 시간이야 봄가을이 다를 바 없고, 부는 바람 또한 차이..
7. 문에 기댄 사람은 이러한 외에 고사(故事)를 모르고 축자역(逐字譯)을 하는 데서 오는 오역(誤譯)은 연구자들 사이에 흔히 발견되는 오류이다. 권필(權韠)이 중국 사신을 접빈(接賓)하러 의주(義州)에 갔다가 겨울을 나며 몇 달을 머물 때에 형 권겹(權韐)이 멀리 그곳까지 아우를 찾아 왔다. 감격의 상봉을 한 형제가 겨우 감정을 추스린 뒤 아우는 이렇게 그 심경을 읊었다. 京口分離後 音書久杳茫 서울서 손 나누고 헤어진 뒤로 오래도록 소식도 아득했었네. 相思今幾月 玆會却殊方 서로를 그리기 몇 달이던가 더욱이 낯선 땅서 이리 만났네. 雪裡生春色 天涯似故鄕 눈 속에도 봄 빛은 피어나거니 하늘 가도 고향인양 포근하구나. 仍懷倚門望 喜極輒悲傷 인하여 문 기대어 바라보자니 기쁨은 스러지고 구슬퍼지네. 필자의 번역..
6. 뱃속 아이의 정체 위와 같은 오독은 감상자의 착각, 즉 상식의 허(虛)에서 말미암은 경우지만, 시구 해석상의 오독일 경우는 그 문제가 자못 심각하다. 그 대표적인 한 예로 정몽주(鄭夢周)의 「정부원(征婦怨)」이란 작품을 들 수 있다. 一別年多消息稀 한 번 떠난 뒤로 여러 해 소식 없어 寒垣存沒有誰知 수자리의 삶과 죽음 그 누가 알랴. 今朝始寄寒衣去 오늘 처음 솜옷을 지어서 보내나니 泣送歸時在腹兒 울며 보내고 돌아올 때 뱃속에 아기 있었네. 위 풀이는 『한국 한시(漢詩)』(민음사, 1991)에 수록된 김달진(金達鎭, 1907~1989) 선생의 번역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한 번 헤어진 뒤 여러 해가 되도록 님은 생사조차 알 길이 없다. 3구에서 오늘 아침에야 비로소 님께 겨울옷을 보낸다고 했다. 이 ..
5. 백발삼천장 白髮三千丈 緣愁似箇長 흰머리 풀어 헤쳐 삼천 장 됨은 근심으로 이다지 길어진 걸세. 不知明鏡裏 何處得秋霜 해맑은 거울 속 그 어디메서 가을 서리 얻었는가 아지 못게라. 첫 구로 너무나도 유명한 이백(李白)의 「추포가(秋浦歌)」 중 한 수이다. 추포(秋浦)는 가을날의 물가가 아니라 양자강 연안 안휘성(安徽省) 귀지현(貴池縣)의 옛 지명이다. 황숙찬(黃叔燦)은 『당시전주(唐詩箋注)』에서 “거울에 얼굴을 비추다가 백발을 보자 갑자기 느낌이 일어 차례도 없이 곧장 말하여 이처럼 돌올하게 되었다.”고 하여, 어느 날 우연히 거울을 비쳐보다가 문득 희어진 머리털을 발견하고, 그 놀란 마음을 삼천장의 길이로 환치하여 다짜고짜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의 돌연한 표현으로 말문을 열었다고 하였다. 흔히 ..
4. 무지개가 뜬 까닭 한시에서 모호성은 흔히 문장 성분이 생략되어 그 여백을 채우는 과정에서 많이 발생한다. 다음은 이달(李達)의 「제김양송화첩(題金養松畵帖)」이란 작품이다. 一行二行雁 萬點千點山 한 줄 두 줄 기러기 만 점 천 점 산. 三江七澤外 洞庭瀟湘間 삼강(三江) 칠택(七澤) 밖 동정(洞庭) 소상(瀟湘) 사이. 한마디로 번역을 거부하는 시다. 말이 번역이지 글자를 그대로 옮기고 보면 아무런 서술어 없이 그저 명사를 토막토막 이어 놓았을 뿐이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독자를 당혹하게 한다. 화면에는 아득한 점으로 한 줄인지 두 줄인지도 분명치 않게 기러기 떼가 날고 있고, 그 너머로 만점인지 천점인지 이루 헤일 수도 없는 산들이 연이어 있다. 그들이 날아가는 곳은 어디인가? 삼강(三江)과 칠택..
3. 개가 짖는 이유 해 그림자와 달 그림자 老身倦馬河堤永 늙은 몸 지친 말 방죽은 길어 踏盡黃楡綠槐影 느릅나무 지나가자 회나무 그림자라. 늙은 몸으로 지친 말을 끌고 가던 나그네는 끝없이 방죽으로 이어진 길이 고단하기만 했다. 한동안 길옆으로 느릅나무 행렬이 줄을 잇더니, 느릅나무 길이 끝나자 이번에는 짙푸른 회나무 그림자가 나그네 위로 드리운다. 가도 가도 방죽 길은 끝이 보이질 않는 것이다. 송나라 때 유송(劉憽)이 소동파(蘇東坡)에게 물었다. “이것이 그대의 시가 아닌가?” “그렇네만은.” “그렇다면 이것은 해의 그림자인가, 달의 그림자인가?” “한퇴지(韓退之)가 「성남연구(城南聯句)」의 첫 구에 쓴 ‘대 그림자에 금가루 부서지고[竹影金朠碎]’에서도 언제 해의 그림자니 달의 그림자니 말하였던가?”..
2. 오랑캐 땅의 화초 이렇듯 일상의 언어에서 의미는 어느 하나가 옳으면 나머지는 그른 것이 되지만, 시의 언어에서는 꼭 그렇지가 않다. 이 대목에서 모호성(Ambiguity)의 문제가 발생한다. 어떤 면에서 시인은 이러한 언어의 모호성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시 속에서 이러한 의미들은 애매와 모호가 아니라 오히려 풍부와 함축이 된다. 모호성의 문제가 시학(詩學)의 관심사가 된 것은 영국의 언어학자 윌리엄 엠슨(William Empson, 1906~1984)이 「모호성의 일곱 가지 유형」이란 논문에서 시에서 모호성이 발생하는 7가지 유형을 소개하면서부터다. ‘ambiguity’라는 말은 ‘두 길로 몰고 간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시의 어휘나 구절들은 대개 어느 하나로 규정짓기 어려운 포용력과 융통성을 지..
6. 즐거운 오독(誤讀), 모호성에 대하여 1. 그리고 사람을 그리다 꿈보다 해몽 언어는 가끔씩 오해를 일으킨다.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의 화장실 면전(面前)에 이런 스티커가 붙은 적이 있다. “이단은 당신의 영혼을 노리고 있다.” 그리고는 그 아래 이른바 이단 종파에서 주장하는 상투적 주장을 환기시킨 뒤, 이에 동조하는 여러 교파의 이름을 나열하고, 끝에 가서 ‘김○○ 이단집단대책위원회’라고 써 놓았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이 단체가 이단을 집단으로 대책하는 위원회인지, 이단집단을 대책하는 위원회인지 알 수가 없어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었다. “할머니가죽을드신다”는 “할머니가 죽을 드신다”이냐, 아니면 “할머니, 가죽을 드신다”이냐. “예수가마귀를쫓는다”고 할 때, 예수가 쫓는 것이 마귀인가 까마귀인가?..
6. 이해 못할 「국화 옆에서」 특정 어휘의 속뜻을 알아야 시를 맛볼 수 있다 앞서 어떤 시인이 부른 노래가 사람들의 정서를 파고들어 깊은 공감을 일으키면, 이것이 자주 여러 시인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어떤 특정 단어 위에 사전적 의미를 넘어선 정운(情韻)이 얹히게 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남포(南浦)’나 ‘절류(折柳)’, 그리고 ‘추선(秋扇)’과 ‘의루(倚樓)’ 등이 다 그런 예들이다. 한시에는 이런 정운(情韻)이 풍부한 어휘들이 유난히 많다. 한시의 언어 특성 상 이러한 어휘들은 시가(詩歌) 언어의 함축을 더욱 유장하고 깊이 있게 해주는 효과를 발휘한다. 한시 감상에 있어 이러한 어휘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수반되지 않으면, 전혀 엉뚱하게 읽어 시의 의미를 곡해할 염려가 크다. 대개 ..
5. 저물녘의 피리 소리 예전 진(晉) 나라 때 향수(向秀)는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이었다. 뒤에 칠현(七賢)이 죽거나 뿔뿔이 흩어진 후 예전 함께 노닐던 산양(山陽) 땅 옛 벗의 집을 지나다가 이웃에서 들려오는 피리 소리를 듣고 옛 생각에 사무쳐 「사구부(思舊賦)」를 지었다. 이후 석양 무렵의 피리 소리는 지나간 옛날을 그리워함, 또는 가고 없는 벗을 그리워함의 의미가 되었다. 當時逐客幾人存 그때에 쫓겨간 이 몇 이나 남았던고 立馬東風獨斷魂 봄바람에 말 세우니 홀로 애가 끊는다. 烟雨介山寒食路 안개 비 자욱한 개산 한식 길에서 不堪聞笛夕陽村 저물녘 피리 소리 차마 듣지 못하겠네. 신광한(申光漢)이 참판 김세필(金世弼)의 옛 집을 지나며 지었다는 「과개현김공석구 유감(過介峴金公碩舊 有感)」라는 시..
4. 난간에 기대어 그리워 난간에 기댔죠 한시에서 자주 보이는 표현 중에 하나가 누각에 올라 난간에 기댄다는 표현이다. 누각 위에는 왜 오르는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때문이다. 난간에는 왜 기대는가? 기다림에 지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루(登樓)’, ‘의루(倚樓)’, ‘의란(倚欄)’ 혹은 ‘빙란(憑欄)’ 등의 표현 속에는 ‘그리움’의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난간은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으므로, 그곳에 올라보면 먼 곳에서 오는 사람을 잘 알아볼 수 있는 까닭이다. 이경(李璟)이 「탄파완계사(攤破浣溪沙)」에서 “보슬비에 꿈을 깨니 닭울음소리 아득하고, 작은 누대 위에서 부는 젓대 소리 서늘해라. 구슬처럼 지는 눈물에 한(恨)은 끝이 없어, 난간에 기대이네[細雨夢回鷄塞遠, 小樓吹徹玉笙寒. 多少淚珠無限恨, 倚..
3. 가을 부채에 담긴 사연 가을부채로 자신의 신세를 대변하다 이왕 사랑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시에서 사랑과 연관되어 상징적 의미로 쓰이는 어휘를 더 살펴보자. ‘추선(秋扇)’ 즉 가을 부채가 그것이다. 예전에도 한 번 소개한 바 있지만, 여기서 다시 한 번 감상해 보기로 한다. 銀燭秋光冷畵屛 은 촛불 가을빛은 병풍에 찬데 輕羅小扇搏流螢 가벼운 비단 부채로 반디불을 치누나. 天際夜色凉如水 하늘 가 밤빛은 물처럼 싸늘한데 坐看牽牛織女星 견우와 직녀성을 오두마니 바라보네. 두목(杜牧)의 「추석(秋夕)」이란 시이다. 가을밤의 애상적 분위기가 물씬한 작품이다. 방 안에는 은촉불이 타고 있고, 방에는 화사한 그림 병풍이 둘려 있다. 그녀의 손에는 가벼운 비단 부채가 쥐어져 있다. 한 눈에도 매우 넉넉한 귀족풍의 ..
2. 버들을 꺾는 마음 송원이사안서(送元二使安西) 감상하기 김만중(金萬重)도 『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정지상(鄭知常)의 위 작품을 두고 우리나라의 ‘양관삼첩(陽關三疊)’이라 하였다. ‘양관삼첩(陽關三疊)’이란 저 유명한 왕유(王維)의 「송원이사지안서(送元二使之安西)」가 널리 훤전(喧傳)되어 악곡(樂曲)으로 편입된 뒤의 이름이니, 결국 이에 버금가는 이별 노래의 절창이란 뜻이다. 渭城朝雨湎輕塵 위성(渭城) 아침 비가 가벼운 먼지 적시니 客舍靑靑柳色新 객사엔 파릇파릇 버들빛이 새롭고야. 勸君更進一杯酒 그대에게 다시금 한 잔 술 권하노라 西出陽關無故人 양관(陽關)을 나서면 아는 이 없을지니. 땅으로 사신 가는 벗 원이(元二)를 송별하며 지은 시이다. 위성(渭城)은 당나라 때 수도인 장안(長安)의 서쪽, 지금..
5. 버들을 꺾는 뜻은, 한시(漢詩)의 정운미(情韻味) 1. 남포(南浦)의 비밀 사신에게 보여줘도 부끄럽지 않던 송인(送人) 雨歇長堤草色多 비 개인 긴 둑에 풀빛 고운데 送君南浦動悲歌 남포에서 님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 물이야 언제 마르리 別淚年年添綠波 해마다 이별 눈물 푸른 물을 보태나니. 너무나도 유명한 정지상(鄭知常)의 「송인(送人)」이란 작품이다. 필자는 이 시만 보면 고등학교 1학년 국어 첫 시간에 배웠던 이수복 시인의 시,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오것다. 푸르른 보리밭 길 맑은 하늘엔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를 외우던 시절이 아련히 떠오른다. 대동강 가 연광정(練光亭)에는 고금의 시인들이 지은 제영시(題詠詩)가 수없이 많이 ..
5. 배 속에 넣은 먹물 문학의 기능: 거울과 등불 에이브럼즈(M.H.Abrams, 1912~2015)는 『거울과 등불(The Mirror and Lamp)』이란 책에서 문학의 기능을 거울과 등불의 두 가지로 나누고 있다. 시인은 캄캄한 밤에 등불을 들고 어둠 속을 헤매이는 영혼들의 갈 길을 일깨워주는 선지자(先知者)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시인은 그 시대를 물끄러미 비춰주는 거울이어야 하는가. 보기에 따라서는 당시와 송시도 거울과 등불이라는 문학의 두 기능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다만 ‘나는 당시풍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괜찮지만, ‘송시풍의 시는 시가 아니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내가 빨간색을 좋아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파란색을 좋아하면 안 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
4. 송조(宋調), 머리로 쓴 시(詩) 김시습의 이지적인 무제시 당시풍에 대비되는 송시풍의 특징을 일괄하여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체로 송시는 이 시기 발달한 선종(禪宗)과 성리학(性理學)의 영향으로 인생에 대한 철학적 음미를 내용으로 하는 철리적 성향이 강하고, 쓸데없는 수식을 배제하고 섬세한 관찰과 개성적 표현을 중시하였으며, 제재 상에 있어서는 일상생활에의 관심과 밀착이 두드러짐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에 따라 시의 공용성은 더욱 강조되었고, 표현은 다분히 산문적이고 서술적이 되어, 정감이 풍부하고 유려한 당시에 비해 송시는 이지적이고 심원한 풍격을 갖추게 되었다. 또 송대(宋代)에 발달한 사문학(詞文學)은 시(詩)에 비해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세계를 노래하여, 송대(宋代)에는 시(詩)와 사(詞)..
3. 당음(唐音), 가슴으로 쓴 시 이달의 낭만적 느낌이 담긴 시 당시(唐詩)는 가슴으로 쓴 시이다. 여기에는 시인의 웃음과 눈물이 있어, 마음으로 전해오는 인간의 체취가 물씬하다. 이에 반해 송시(宋詩)는 머리로 쓴 시이다. 그래서 인생에 대한 깊고 담담한 관조(觀照)와 거리를 두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조망(眺望)이 있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 앉혀 주는 위안과 인간의 정신을 고원(高遠)한 곳으로 이끌어주는 깊이가 있다. 그래서 예전부터 시에서 서정함축을 중시하고 의흥(意興)이 뛰어난 시를 ‘당음(唐音)’이라 하고, 생각에 잠기고 이치를 따지며 유현(幽玄)한 맛을 풍기는 시를 ‘송조(宋調)’라고 일컬어 왔다. 그렇다면 이러한 두 풍격은 실제 작품 상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를 보여주는가. 먼저 당시풍의 시를 ..
2. 작약의 화려와 국화의 은은함 당시와 송시의 차이 송대의 유명한 화가 곽희(郭熙)는 그의 『임천고치(林泉高致)』에서 이렇게 말한다. 진짜 산수(山水)의 안개와 이내는 네 계절이 같지 않다. 봄산은 담박하고 아름다와 마치 웃는 듯하고, 여름산은 자욱이 푸르러 마치 물방울이 듣는 듯하며, 가을산은 맑고 깨끗하여 단장한 듯하고, 겨울산은 어두침침하고 엷어 마치 잠자는 듯하다. 산은 늘 그 자리에 서 있지만,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면 날마다 그 모습을 바꾼다. 봄산이 좋기는 하지만 여름산의 짙푸름은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가을산의 조촐함과 겨울 산의 담박함은 또 그것대로의 매력이 있다. 사람마다 기호가 같지 않으므로, 꼬집어 어느 산이 더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시 또한 이와 다를 것이 없다. 당시(唐詩)..
4. 보여주는 시(詩)인 당시(唐詩)와 말하는 시(詩)인 송시(宋詩) 1. 꿈에 세운 시(詩)의 나라 대관재몽유록(大觀齋夢遊錄)을 통해 시 나라에 초대된 심의 시인은 캄캄한 밤에 등불을 들고 어둠 속을 헤매이는 영혼들의 갈 길을 일깨워주는 선지자(先知者)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시인은 그 시대를 물끄러미 비춰주는 거울이어야 하는가. 조선 전기의 문인 심의(沈義)가 지은 「기몽(記夢)」은 「대관재몽유록(大觀齋夢遊錄)」이란 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지은이가 얼풋 잠이 들었다가 홀연 한 곳에 이르렀는데, 금빛으로 번쩍이는 화려한 궁궐에는 천성전(天聖殿)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다. 그곳은 천상(天上) 선계(仙界)에 자리 잡은 시(詩)의 왕국(王國)이었다. 이 나라의 왕은 최치원(崔致遠)이고 수상은 을지문덕(..
6. 청산 위로 학이 날아간 자취 인종의 물음에 한시로 대답한 관사복 송나라 때 ‘관사복(管師復)’은 스스로 와운선생(臥雲先生)이라 자호(自號)하며 전원에 묻혀 살았던 사람이다. 인종(仁宗)이 그를 불러, “경이 전원에 살며 얻은 것은 어떤 것인가?”하니, 그가 대답했다. 滿塢白雲耕不盡 둔덕 가득 흰 구름은 갈아도 끝이 없고 一潭明月釣無痕 못 속의 밝은 달은 낚아도 자취 없네. 언제나 흰 구름 자옥한 둔덕, 그 구름을 밭 삼아 다 갈아볼 날은 과연 언제이겠는가. 못 위에 둥두렷이 떠오는 밝은 달은 제 아무리 낚아채도 한량없는 무진장이다. 그러니 어떻다는 말인가? 竹影掃階塵不動 섬돌 쓰는 대 그림자, 먼지는 그대로요 月光穿沼水無痕 못을 뚫는 달빛에도 물에는 흔적 없네. 대나무 그림자는 바람에 일렁이며 섬돌..
5. 어부가 도롱이를 걸친다 다시 그림을 가지고 설명해 보겠다. 산수화에서 비가 오는 광경은 어떻게 그리는가? 화면 위에 빗금을 그어 빗줄기를 그리지는 않는다. 눈이 오는 것을 어떻게 그리는가? 학생들이 크리스마스카드를 그릴 때처럼 칫솔에 흰 물감을 묻혀 뿌리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바람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불 때는? 바람은 없고 비만 올 때는? 비를 그리지 않고, 눈을 그리지 않고, 바람을 그리지 않으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부는 것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비와 바람을 시로 담는 법 왕유(王維)의 저술로 전해지는 「산수결(山水訣)」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비가 오면 천지가 구분되지 않고 동서를 알 수가 없다. 바람만 불고 비는 오지 않으면, 단지 나무의 가지만 보인다. ..
4. 내 혀가 있느냐? 언어가 이처럼 불완전한 도구라면 우리는 언어를 통해 자신의 뜻을 전달하려는 노력을 포기해야 할 것인가? 불완전하게 남겨둬 많은 얘기를 담긴다 서진(西晋)의 구양건(歐陽建)은 「언진의론(言盡意論)」에서 이렇게 말한다. “고금에 이름을 바로잡으려 힘쓰고, 성현이 말을 능히 떠나지 못한 것은 그 까닭이 무엇인가? 진실로 이치를 마음에서 얻어도 말이 아니면 펼 수가 없고, 사물을 말에 고정시켜도 이름이 아니면 구분할 수 없다.” 언어가 제 아무리 불완전한 존재라 해도, 인간은 언어를 떠나서는 결코 살 수 없다. 그렇다면 옛 성인의 뜻은 어떻게 전달되는가? 『주역(周易)』 「계사(繫辭)」는 다시 이렇게 말한다. “성인은 상(象)을 세워서 그 뜻을 다하고, 괘(卦)를 세워서 참과 거짓을 다하..
3. 언덕에 오르려면 뗏목을 버려라 언어로 전할 수 없는 것 『장자(莊子)』 「천도(天道)」편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제나라 ‘환공’이 누각 위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아래서 수레바퀴의 굴대를 끼우던 ‘윤편(輪扁)’이 다짜고짜 계단을 올라와 임금에게 물었다. “전하! 지금 읽고 계신 것이 무엇입니까?” “옛 성인의 책이니라.” “그 분은 지금 살아 계신가요?” “죽었지.” “그렇다면 전하께선 옛 사람의 껍데기를 읽고 계신 거로군요.” 제 환공은 화가 났다. 윤편의 수작이 방자하기 그지 없었던 것이다. “네 이놈! 무엄하구나. 그 말이 무슨 뜻인가. 까닭이 있으면 살려 주려니와, 그렇지 않다면 살려두지 않으리라.” 윤편은 대답한다. “저는 저의 일을 가지고 판단할 뿐입니다. 제가 바퀴를 끼운 것..
2. 왜 사냐건 웃지요 백지 편지에 보내온 센스 가득한 아내의 답장 옛 사람의 글에는 야단스러움이 없다. 간결하게 할 말만 하고, 때로 아무 말도 않기도 한다. 그래도 마음은 글자 사이로 흘러, 행간에 고여 넘친다. 예전 중국의 곽휘원(郭暉遠)이란 이가 먼 데로 벼슬 나가 있다가 집에 편지를 보냈는데, 착각하여 백지를 넣고 봉하였다. 그 아내가 오랜만에 온 남편의 편지를 꺼내 보니 달랑 백지 한 장뿐이었다. 답시를 보냈다. 碧紗窓下啓緘封 푸른 깁창 아래서 봉함을 뜯어보니 尺紙終頭徹尾空 편지지엔 아무 것도 써 있질 않더이다. 應是仙郞懷別恨 아하! 우리 님 이별의 한 품으시고 憶人全在不言中 말 없는 가운데 그리는 맘 담으셨네. 청나라 원매(袁枚)의 『수원시화(隨園詩話)』 「기부(寄夫)」에 나오는 이야기다. ..
3. 언어의 감옥, 입상진의론(立象盡意論) 1. 싱거운 편지 열 두자로 보낸 편지 함경도 안변(安邊) 땅에 벼슬 살러 가 있던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이 서울에 있던 백광훈(白光勳)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반가운 마음에 겉봉을 뜯어보니, 딱 열 두 자 한 줄의 사연이 있었다. 삼천리 밖에서 한 조각구름 사이 밝은 달과 마음으로 친히 지내고 있소. 三千里外, 心親一片雲間明月 이만한 사연 전하자고 천리 길에 편지를 띄웠더란 말인가. 그러나 음미할수록 새록새록 정감이 넘나는 뭉클한 사연이다. 한 조각구름 속에 밝은 달이라 했으니, 달은 달이로되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달이다. ‘심친(心親)’이라 하여 그밖에 다른 것에는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있음을 보였다. ‘월인천강(月印千江)’이랬거니, 달은 나 있는..
5. 마음에서 얻어 뜻으로 깨달으니 10자의 글자에 형상화하기 구양수(歐陽修)의 『육일시화(六一詩話)』에 보면, 매요신(梅堯臣)과 시에 대해 논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매요신은 “반드시 능히 묘사하기 어려운 경치를 형상화하여 마치 눈앞에 있는 것 같이 하고, 다하지 않는 뜻을 머금어 말 밖에 드러나게 한 뒤라야 시가 지극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자 구양수는 묘사하기 어려운 경물을 형상화 하여 다하지 않는 뜻을 머금는다는 것은 어떤 시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매요신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짓는 사람은 마음에서 얻고, 보는 이는 뜻으로 깨달으니, 말로써 무어라고 꼬집어 진술하기는 어렵다. 비록 그렇기는 해도 또한 그 방불함을 대략 말할 수는 있다. 온정균(溫庭筠)의 “주막집 달빛에 ..
4. 정오의 고양이 눈 마음을 놓치면 졸작이 된다 옛날에 절묘하다고 세상에 전하는 그림이 있었다. 장송(長松) 아래 한 사람이 고개를 들어 소나무를 보는 모습을 그렸는데 신채(神采)가 마치 살아 있는 듯하여, 천하의 명화로 일컬어졌다. 처사(處士) 안견(安堅)이 말하기를, “이 그림이 비록 묘하기는 하지만, 사람이 고개를 올려 보면 목 뒤에 반드시 주름이 잡히는 법인데, 이것은 없으니 그 뜻을 크게 잃었다”고 하였다. 이로부터 마침내 버린 물건이 되었다. 古有買妙畵於中國者. 畵長松下, 有人仰面看松, 神采如生, 世以爲天下奇畵也. 處士安堅曰: “是畵雖妙, 人之仰面也, 項後必有皺紋, 此則無之, 大失其旨.” 自此終爲棄物. 또 옛날 그림으로 묘필(妙筆)을 일컬은 것이 있었다. 늙은이가 손주를 안고 숟가락으로 밥을..
3. 장수는 목이 없고, 미인은 어깨가 없다 과장과 왜곡으로 본질을 강조하다 이왕 그림 이야기가 나왔으니, 몇 가지 더 보기로 하자. 형호(荊浩)의 「화론(畵論)」을 보면 “장수는 목이 없고, 여인은 어깨가 없다[將無項, 女無肩].”이란 말이 나온다. 무슨 말일까? 목이 없는 장수가 어디 있는가. 여인은 어째 어깨가 없을까. 없어서 없는 것이 아니다. 그림을 그릴 때, 장수의 기상은 목을 없는 듯 짧게 그리는 데서 드러나고, 미인의 가녀린 모습은 어깨 없이 부드럽게 흘러내린 곡선을 통해 강조된다는 말이다. 또 왕유(王維)가 「원안와설도(袁安臥雪圖)」를 그렸는데, 고사(高士) 원안(袁安)이 눈 쌓인 파초 아래 누워 있는 모습이었다. 실제 파초는 남국(南國)의 식물이므로, 눈 내리는 추위 속에서는 시들고 만..
2. 말하지 않고 말하기 화가가 달을 그리지 않고 달을 그리는 방법과, 시인이 말하지 않고 말하는 수법 사이에는 공통으로 관류하는 정신이 있다. 가렸기에 보여진다 구름 속을 지나가는 신룡(神龍)은 머리만 보일 뿐 꼬리는 보이지 않는 법이다. “한 글자도 나타내지 않았으나 풍류를 다 얻었다[不著一字, 盡得風流].”는 말이 있다. 또 “단지 경물을 묘사할 뿐이나 정의(情意)가 저절로 드러난다[只須述景, 情意自出].”고도 한다. 요컨대 훌륭한 한 편의 시는 시인의 독백으로써가 아니라 대상을 통한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iative)의 원리로써 독자에게 전달된다. 즉 시인은 자신의 정서를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 대상 속에 응축시켜 표달해야 한다. 그래서 “산은 끊어져도 봉우리는 이어진다[山斷..
2. 그림과 시 1. 그리지 않고 그리기 ‘대교약졸(大巧若拙)’, 정말 큰 기교는 겉으로 보기에는 언제나 졸렬해 보이는 법이다. 시인의 덤덤한 듯, 툭 내뱉듯이 던지는 한 마디가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예리한 비수가 되어 독자의 의식을 헤집는다. 사의전신(寫意傳神)과 입상진의(立象盡意) 전통적으로 시와 그림은 서로 깊은 연관을 맺어 왔다. 옛말에 ‘시는 소리 있는 그림이요, 그림은 소리 없는 시’라 하였다. 특히 한시는 경물의 묘사를 통한 정의(情意)의 포착을 중시하는데, 이는 마치 화가가 화폭 위에 경물을 그리면서 그 속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표현하는 것과 같다. 경물은 객관적 물상에 지나지 않는데, 여기에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얹을 수 있는가. 화가는 말을 할 수 없으므로 경물이 직접 말하게 해야 한다..
5. 이명(耳鳴)과 코골기 내가 아는 걸 남이 몰라도, 내가 모르는 걸 남이 알아도 화가 난다 다시 연암에게로 돌아가자. 「공작관문고자서(孔雀館文稿自序)」의 한 도막이다. 어린 아이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그 귀가 갑자기 우는지라 놀라 기뻐하며 가만히 옆에 아이에게 말하였다. ‘얘! 너 이 소리를 들어보아라. 내 귀가 우는구나. 피리를 부는 듯, 생황을 부는 듯, 마치 별처럼 동그랗게 들려!’ 옆에 아이가 서로 맞대고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마침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이명(耳鳴)이 난 아이는 답답해 소리 지르며 남이 알아주지 않음을 한하였다. 일찍이 시골 사람과 함께 자는데,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고는 것이 게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고, 탄식하거나 한숨 쉬는 소리 같..
4. 눈과 귀가 있다 말하지 말라 이미지의 구성이 이렇게 탄탄하고, 언외의 함축이 이렇듯 유장하다 보니, 한시의 감상은 매우 지적이고 감성적인 바탕이 요구된다. 그 비밀은 아무에게나 알려줄 수도 없고, 아무나 알 수도 없다. 껍데기가 아닌 실상을 보고 들을 수 있는 눈과 귀 조선 후기의 문인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 1724~1802)는 「질뇌(疾雷)」란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레 소리에 산이 무너져도 귀머거리는 듣지 못하고, 해가 중천에 솟아도 소경은 보지 못한다. 도덕과 문장의 아름다움을 어리석은 자는 알지 못하며, 왕도와 패도, 의(義)와 리(理)의 구분을 속인은 변별하지 못한다. 아아! 세상의 남아들이여. 눈과 귀가 있다고 말하지 말라. 총명은 눈과 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조각 영각..
3. 허공 속으로 난 길 시는 시인이 짓는 것이 아니다. 천지만물이 시인으로 하여금 짓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시에서는 사물이 직접 말을 건넨다. 시에서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이유 조선 후기의 문인 이옥(李鈺)은 「이언인(俚言引)」이란 글에서 “시는 만물이 사람에게 가탁하여 짓게 하는 것이다. 물 흐르듯 귀와 눈으로 들어와서 단전(丹田) 위를 맴돌다가 끊임없이 입과 손을 따라 나오니, 시인과는 상관하지 않는다[故其假於人, 而將爲詩也, 溜溜然從耳孔眼孔中入去, 徘徊乎丹田之上, 續續然從口頭手頭上出來, 而其不干於人也].”고 말했다. 사물은 제 스스로 성색정경(聲色情境)을 갖추고 있어, 단지 시인의 입과 손을 빌어 시가(詩歌) 언어(言語)로 형상화 된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이때 시인은 사물의 몸짓..
2. 영양(羚羊)이 뿔을 걸듯 대저 시인은 천기(天機)를 누설하는 자이다. 시를 쓰는 능력은 누구나 타고나는 것이 아니고,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언어의 그물에 걸려들지 않는 시인의 정신처럼 송나라의 유명한 평론가 엄우(嚴羽, 약 1290~1364)는 그의 『창랑시화(滄浪詩話)』에서 이렇게 말한다. 대저 시에는 별도의 재주가 있으니, 책과는 관계하지 않는다. 시에는 별도의 지취(旨趣)가 있으니 이치와는 관계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많이 읽고 이치를 많이 궁구하지 않으면 지극한 경지에는 도달할 수가 없으니, 이른바 이치의 길에 빠지지 않고, 말의 통발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 윗길이 된다. 夫詩, 有别材, 非關書也; 詩有别趣, 非關理也. 然非多讀書多窮理,..
1. 허공 속으로 난 길 1. 푸른 하늘과 까마귀의 날개빛 표면적 진술에만 집착하는 독자는 시를 읽을 자격이 없다. 행간에 감춰진 함축, 언어와 언어가 만나 부딪치며 속삭이는 순간순간의 스파크, 그런 충전된 에너지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생취(生趣)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고정관념이 아닌 열린 가슴으로 세상을 대하라 조선 후기의 문호 연암 박지원의 「답창애(答蒼厓)」란 글에는 마을의 꼬마가 천자문(千字文)을 배우는 데 게으름을 부리자, 선생이 이를 야단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자 꼬마가 대답하는 말이 걸작이다. “하늘을 보면 푸르기만 한데, 하늘 ‘천(天)’ 자(字)는 푸르지가 않으니 그래서 읽기 싫어요[視天蒼蒼, 天字不碧, 是以厭耳]!” 천자문(千字文)을 펼치면 처음 나오는 말이 천지현황(天地玄黃)이..
지은이의 말 한시는 전달의 특수성 때문에 오늘날 그 효용가치를 상실했다. 한시는 전문 연구자들의 학술적 관심사가 되고 있을 뿐, 이미 가시덤불로 막혀버린 낡은 길이다. 그렇다고 한시가 추구한 정신의 깊이나 미학의 너비마저 덤불 속에 버려둘 수는 없다. 먼지 쌓인 역사의 뒤편에 방치된 채 날로 그 빛이 바래가고 있는 한시에다 신선한 숨결을 불어넣고, 막힌 길을 새로 뚫어 현대적 의미를 밝히는 일은 우리에게 맡겨진 책무다. 이 책은 시 전문지 『현대시학』에 1994년 2월부터 1996년 5월에 걸쳐 연재한 글을 보태어 손질하고 차례를 가다듬어 정리한 것이다. 고전 시학의 정수를 오늘의 시인과 독자들이 좀 더 가깝게 느끼고 접근하게 할 수는 없을까? 한시는 정말로 골동적 가치만을 지닌 퇴영적 문화유산에 지나지..
책 머리에 우리 한문학 유산의 국문학에로의 계승 문제는, 그동안의 거듭된 논란 끝에, 이제는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거의 긍정쪽으로 정착이 되어 가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 너무나 호한(浩汗)하고도 난삽(難澁)함으로 해서, 아직도 많은 국문학도들로부터 은근히 경원(敬遠) 내지 소외되어 오고 있음이 오늘의 실상이다. 유일무이한 표기수단이었던 한자 우리는 그 옛날 우리 선인들의, 그 다정다감한 가슴속에 무시로 피어오르던 문학적 정서와, 무엇에 의해서든 이를 표현하지 않고는 못 견딜, 강한 욕구와 충동으로 애타하던 정황을 상상해 본다. 당시 만일 우리 주변에 보다 편리한 표기 수단이 달리 있기라도 했었더라면, 사정은 사뭇 달라졌으리라만, 그러나 그 당시로서는 한자야말로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수단이었던 만큼, ..
조선시대 한시읽기 머리말 한문학(漢文學)의 백미(白眉)는 한시(漢詩)이다. 조선시대의 한시사(漢詩史)에 대해 김만중(金萬重)은 『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본조의 시체(詩體)는 네다섯 번 변했을 뿐만 아니다. 국초에는 고려의 남은 기풍을 이어 오로지 소동파(蘇東坡)를 배워 성종, 중종조에 이르렀으니, 오직 이행(李荇)이 대성하였다. 중간에 황산곡(黃山谷)의 시를 참작하여 시를 지었으니, 나의 재능은 실로 삼백 년 시사(詩史)에서 최고이다. 또 변하여 황산곡과 진사도(陳師道)를 오로지 배웠는데, 정사룡(鄭士龍)ㆍ노수신(盧守愼)ㆍ황정욱(黃廷彧)이 솥발처럼 우뚝 일어났다. 또 변하여 당풍(唐風)의 바름으로 돌아갔으니, 최경창(崔慶昌)ㆍ백광훈(白光勳)ㆍ이달(李達)이 순정한 이들이다 本朝詩體,..
고려시대 한시 읽기 머리말 한문학(漢文學)의 백미(白眉)는 한시(漢詩)이다. 고려시대 역시 용재(慵齋) 성현(成俔)이 『용재총화(慵齋叢話)』 권1에서 “고려시대의 문사들은 대부분 사(詩)를 업으로 삼았다[高麗文士, 皆以詩騷爲業].”라고 언급했듯이, 산문(散文)보다는 시(詩)에 경도(傾倒)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서거정(徐居正)은 「목은시정선서(牧隱詩精選序)」에서 조선(朝鮮) 이전의 대표적인 시인(詩人)들을 거론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동방은 예로부터 시서(詩書)의 나라라고 일컬어질 만큼 문장으로 한 세상을 풍미한 이들이 각 시대마다 끊이지 않고 배출되었으니, 을지문덕은 고구려에서 이름을 날렸고, 설총과 최치원은 신라에서 이름을 드날렸다. 그러다가 고려가 새로 나라를 열면서 문치가 크게 일어난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