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十八史略 (74)
건빵이랑 놀자
중국사(中國史) 목차 개요: 중국역사개관 1) 고대시대(古代時代)중국역사십팔사략삼황(三皇) 시대천황씨 & 지황씨인황씨 & 유소씨 & 수인씨복희씨 & 신농씨오제(五帝)의 시대황제씨황제의 아들태평성대를 누린 요순시대‘격양가’와 요(堯) 임금효로 선양 받은 순임금하왕조와 상왕조의 흥망치수를 잘한 우왕 2) 은주시대(殷周時代)중국역사십팔사략상나라의 탕왕과 주왕은혜가 새에게도 미친 탕왕주나라의 고공단보와 문왕공평무사한 문왕은나라 정벌과 백이숙제은나라 폭군 주왕백이와 숙제태공망 여상의 이야기문왕, 여상을 만나다주공의 치세와 유왕과 포사의 폭정신중하게 행동한 주공 단포사에게 빠진 유왕 3) 춘추시대(春秋時代)중국역사십팔사략최초의 패자 제환공과 관중제환공의 등극관중과 포숙아고난을 겪고 등극한 진문공송양공초장왕오나라..
77. 제갈량의 선정과 읍참마속(泣斬馬謖) 諸葛亮病篤, 有大星, 赤而芒, 墜亮營中, 未幾亮卒. 楊儀整軍還, 百姓奔告司馬懿. 懿追之, 姜維令儀, 反旗鳴鼓若將向懿, 懿不敢逼. 百姓爲之諺曰: ‘死諸葛走生仲達’ 懿笑曰: “吾能料生, 不能料死” 亮嘗作八陣圖, 懿歎曰: “天下奇才也” 亮爲政無私. 馬謖素爲亮所知, 及敗軍, 流涕斬之, 而卹其後. 李平․ㆍ廖立, 皆爲亮所廢, 及聞亮之喪, 皆歎息流涕, 平至發病死. 해석 諸葛亮病篤, 有大星, 赤而芒, 제갈량의 병이 위독해졌을 때 붉으면서도 꼬리가 있는 별이 墜亮營中, 未幾亮卒. 제갈량의 병영 가운데로 떨어지니, 얼마 있지 않아 제갈량은 죽었다. 楊儀整軍還, 제갈량의 죽음으로 전의를 상실한 군대를 양의가 정돈하고 물러서니, 百姓奔告司馬懿. 백성들이 달려가 사마의에게 그 상황을 ..
76. 후황제 유선에게 올린 상주문(上奏文) 漢丞相諸葛亮, 率諸軍伐魏, 臨發上疏曰: “今天下三分, 益州疲弊, 此危急存亡之秋也. 宜開張聖聽, 不宜塞忠諫之路. 宮中府中俱爲一體, 陟罰臧否, 不宜異同. 若有作姦犯科, 及忠善者, 宜付有司, 論其刑賞, 以昭平明之治. 親賢臣遠小人, 此先漢所以興隆也, 親小人遠賢人, 此後漢所以傾頹也. 臣本布衣, 躬耕南陽, 苟全性命於亂世, 不求聞達於諸侯. 先帝不以臣卑鄙, 猥者枉屈, 三顧臣於草廬之中, 諮臣以當世之事. 由是感激, 許先帝, 以驅馳. 先帝知臣謹愼, 臨崩寄以大事. 受命以來, 夙夜憂懼, 恐付託不效以傷先帝之明. 故五月渡瀘, 深入不毛, 今南方已定, 兵甲已足. 當獎率三軍, 北定中原, 興復漢室, 還于舊都, 此臣所以報先帝, 而忠陛下之職分也.” 遂屯漢中. 해석 漢丞相諸葛亮, 率諸軍伐魏, 한나라..
75. 유비의 죽음과 제갈량의 정치 昭烈帝在位三年崩, 太子禪卽位, 年十七, 是爲後皇帝. 丞相諸葛亮, 受遺詔輔政, 昭烈臨終謂亮曰: “君才十倍曹丕, 必能安國家, 終定大事. 嗣子可輔, 輔之, 如其不可, 君可自取” 亮涕泣曰: “臣敢不竭股肱之力, 致忠貞之節, 繼之以死” 亮乃約官職, 修法制. 下敎曰: “夫參署者, 集衆思廣忠益也. 若遠小嫌, 難相違覆, 曠闕損矣” 해석 昭烈帝在位三年崩, 소열제 유비가 즉위한 지 3년 만에 돌아가셨고, 太子禪卽位, 年十七, 是爲後皇帝. 태자인 유선이 즉위하였으니, 17살이었고, 이가 바로 후황제다. 丞相諸葛亮, 受遺詔輔政, 승상 제갈량은 유비가 남긴 조칙을 받고서 정치를 도우니, 昭烈臨終謂亮曰: 소열제가 임종 때에 제갈량에게 말했다. “君才十倍曹丕, 必能安國家, “그대의 재주는 조비의 ..
74. 관우의 최후, 오나라 조자의 패기 魯肅已死, 呂蒙代之. 亦勸孫權圖關羽, 權將陸遜, 又襲羽後. 羽狼狽走還, 權軍獲羽斬之, 遂陷荊州. 昭烈帝恥羽之沒, 自將伐權, 權求和不許. 權遣使於魏, 魏封權爲吳王. 魏主問吳使趙咨曰: “吳王頗知學乎?” 咨曰: “吳王任賢使能, 志存經略. 雖有餘閑博覽書史, 不效書生尋章摘句” 魏主曰: “吳難魏乎?” 咨曰: “帶甲百萬, 江ㆍ漢爲池, 何難之有?” 魏主曰: “吳如大夫者, 幾人?” 咨曰: “聰明特達者, 八九十人, 如臣之比, 車載斗量, 不可勝數” 해석 魯肅已死, 呂蒙代之. 오나라의 노숙이 이미 죽자 여몽이 그걸 대신하였다. 亦勸孫權圖關羽, 또한 노숙은 손권에게 관우를 도모할 것을 권했고, 權將陸遜, 又襲羽後. 손권의 장군인 육손 또한 관우를 후방에서 기습했다. 羽狼狽走還, 權軍獲羽..
73. 주유의 통찰을 무시한 손권과 괄목상대인 여몽 劉備徇荊州ㆍ江南諸郡. 周瑜上疏於權曰: “備有梟雄之姿, 而有關羽ㆍ張飛熊虎之將. 聚此三人在彊場, 恐蛟龍得雲雨, 終非池中物也. 宜徙備置吳” 權不從. 瑜方議圖北方, 會病卒. 魯肅代領其兵, 肅勸權荊州借劉備, 權從之. 權將呂蒙, 初不學, 權勸蒙讀書. 魯肅後與蒙論議, 大驚曰: “卿非復吳下阿蒙” 蒙曰: “士別三日, 卽當刮目相對” 해석 劉備徇荊州ㆍ江南諸郡. 유비는 형주와 강남 여러 고을에 군대를 파견하여 점령했다. 周瑜上疏於權曰: 주유는 손권에서 상소하였다. “備有梟雄之姿, 而有關羽ㆍ張飛熊虎之將. “유비는 영웅의 자태가 있고 그에겐 관우와 장비라는 곰과 호랑이 같은 장수가 있습니다. 聚此三人在彊場, 恐蛟龍得雲雨, 이들 세 사람이 모아 변방에 있게 하면 교룡이 비구름을 ..
72. 적벽대전, 유종과 손권의 차이 曹操擊劉表, 表卒, 子琮擧荊州降操. 劉備奔江陵, 亮謂備曰: “請求救於孫將軍” 亮見權說之, 權大悅. 操遺權書曰: “今治水軍八十萬衆, 與將軍會獵於吳” 權以示群下, 莫不失色. 周瑜曰: “請得數萬精兵, 進往夏口, 保爲將軍破之.” 遂以瑜督三萬人, 與備幷力逆操, 進遇於赤壁. 瑜部將黃蓋曰: “操軍方連船艦, 首尾相接, 可燒而走也” 乃取蒙衝鬪艦十艘, 載燥荻枯柴, 灌油其中, 裹帷幔, 上建旌旗, 豫備走舸, 繫於其尾. 先以書遺操, 詐爲欲降. 時東南風急. 蓋以十艘, 最著前, 中江擧帆, 餘船以次俱進. 操軍皆指言 “蓋降” 去二里餘, 同時發火, 火烈風猛, 船往如箭, 燒盡北船. 烟焰漲天, 人馬溺燒, 死者甚衆. 瑜等率輕銳, 雷鼓大進, 北軍大懷, 操走還, 後屢加兵於權, 不得志. 操歎息曰: “生子當如孫..
70. 조조 간웅이란 자신의 평가에 만족해하다 曹操父嵩, 爲宦官曹騰養子, 或曰: “夏侯氏子也” 操少機警, 有權數, 任俠放蕩, 不治行業. 汝南․許劭, 與從兄靖, 有高名. 共覈論鄕黨人物, 每月輒更其題品. 故汝南俗, 有月旦評. 操往問劭曰: “我何如人?” 劭不答, 劫之, 乃曰: “子治世之能臣, 亂世之姦雄” 操喜而去. 해석 曹操父嵩, 爲宦官曹騰養子, 조조의 아버지는 숭으로 환관 조등의 양자가 되었는데, 或曰: “夏侯氏子也” 혹은 “하우씨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操少機警, 有權數, 조조는 어려서 기지가 있고 영민했으며【기경(機警): 기지가 있고 영민하여 정황의 변화에 따라 매우 잘 살필 수 있음[機智靈敏, 對情況的變化覺察得很快]】, 권력을 장악하는 술수와 요령【권수(權數): 권력을 장악하는 술수와 요령[謂掌握權力的..
69. 위기를 기회로 만든 우허의 기지 安帝淸河王慶之子, 章帝孫也. 未冠迎卽位, 鄧后仍臨朝, 鄧騭爲大將軍. 時邊軍多事, 騭欲棄涼州, 竝力北邊, 郞中虞詡以爲不可曰: “關西出將, 關東出相, 烈士武夫, 多出涼州” 衆皆從詡議. 騭惡詡, 欲陷之. 會朝歌賊攻殺長吏, 州郡不能禁. 以詡爲朝歌長. 故舊皆弔之, 詡曰: “不遇盤根錯節, 無以別利器” 及到官, 募壯士, 攻劫者爲上, 傷人偸盜者次之, 收得百餘人. 使入賊中, 誘令劫掠, 伏兵殺數百人. 又潛遣貧人能縫者, 傭作賊衣, 以綵線縫其裾. 有出市里者輒禽之, 賊駭散, 縣境皆平. 해석 安帝淸河王慶之子, 章帝孫也. 안제는 청하왕 경의 아들이자, 경제의 손자다. 未冠迎卽位, 鄧后仍臨朝, 어릴 때 영접되어 즉위하였고 등후가 이 때문에 조정에 들어왔고 鄧騭爲大將軍. 등즐은 대장군이 되었다...
68. 서역에서 지내며 일생을 지낸 반초의 이야기 和帝徵班超, 還京師卒. 超起自書生, 投筆, 有封侯萬里外之志. 有相者謂曰: “生, 燕頷虎頭, 飛而食肉, 萬里侯相也” 自假司馬入西域, 章帝時爲西域, 將兵長史, 至上以超, 爲西域都護騎都尉, 平定諸國. 在西域三十年, 以功封定遠侯, 至是以年老乞歸, “願生入玉門關” 上許之. 任尙代爲都護, 請敎, 超曰: “君性嚴急. 水淸無大魚, 宜蕩佚簡易” 尙私謂人曰: “我以班君, 當有奇策. 今所言, 平平耳” 尙後果失邊和, 如超言. 해석 和帝徵班超, 還京師卒. 화제가 반초를 부르니 돌아와 낙양에서 생을 마쳤다. 超起自書生, 投筆, 반초는 서생으로부터 시작하여 붓을 던지고 有封侯萬里外之志. 만 리 밖에서 제후에 봉해지는 것에 뜻이 있었다. 有相者謂曰: “生, 燕頷虎頭, 관상가가 반초에..
67. 서역을 평정한 반초 永平十七年, 復置西域都護ㆍ戊ㆍ已校尉. 初耿秉請伐匈奴, 謂“宜如武帝通西域, 斷匈奴右臂” 上從之, 以秉與竇固爲都尉, 屯涼州. 固使假司馬班超使西域. 超至鄯善, 其王禮之甚備, 匈奴使來, 頓疎懈. 超會吏士三十六人曰: “不入虎穴不得虎子” 奔虜營斬其使及從士三十餘級, 鄯善一國震怖. 超告以威德, 使勿復與虜通. 超復使于寘, 其王亦斬虜使以降. 於是諸國皆遣子入侍, 西域復通. 至是竇固等擊車師而還, 以陳睦爲都護, 及以耿恭爲戊校尉, 關龕爲己校尉, 分屯西域. 해석 永平十七年, 復置西域都護ㆍ戊ㆍ已校尉. 영평(후한 2대 황제 명제의 연호) 17년에 다시 서역도호와 무와 기의 교위를 설치했다. 初耿秉請伐匈奴, 처음으로 경병이 흉노족을 정벌하길 청하며 말했다. 謂“宜如武帝通西域, 斷匈奴右臂” “마땅히 한무제 때에..
66. 뇌물을 받으면 하늘도, 너도, 나도 다 안다던 의로운 선비 양진 太尉楊震關西人, 時人稱之曰: “關西夫子楊伯起” 敎授生徒, 堂下得三鱣, 都講以爲, 有三公之象, 取以進曰: “先生自此升矣.” 後嘗爲郡守, 屬邑令有懷金遺之者曰: “暮夜無知者” 震曰: “天知神知我知子知, 何謂無知?” 令慚而退. 及爲三公時, 宦者及上乳母王聖, 用事, 皆有請託, 震不從, 共搆陷之. 飮酖而死, 葬之日名士皆來會, 有大鳥高丈餘, 至墓前俯仰流涕而去. 해석 太尉楊震關西人, 時人稱之曰: “關西夫子楊伯起” 태위 양진은 관서 사람으로, 당시 사람들은 “관자의 부자는 백기 양진이다.”라고 일컬어질 정도였다. 敎授生徒, 堂下得三鱣, 생도를 교수할 적에 당 아래에서 세 마리의 전어를 얻으니, 都講以爲, 有三公之象, 取以進曰: 수제자【도강(都講): ..
64. 영토를 넓혀가는 광무제(光武帝) 득롱망촉(得隴望蜀) 十二年, 公孫述亡. 述茂陵人, 自更始時, 據蜀稱帝, 國號成. 上旣平隴右曰: “人苦不自足. 旣得隴復望蜀.” 遣大司馬吳漢等, 將兵, 會征南大將軍岑彭, 伐蜀. 彭戰船竝進, 所向無前. 述使盜刺殺彭. 吳漢繼進, 至成都, 擊殺述, 蜀地悉平. 漢在軍或戰不利, 意氣自若, 上歎曰: “吳公差强人意, 隱若一敵國矣.” 해석 十二年, 公孫述亡. 건무 12년에 공손술이 죽었다. 述茂陵人, 自更始時, 공손술은 무릉 사람으로 경시제의 시기로부터 據蜀稱帝, 國號成. 촉(蜀) 땅에 살며 황제를 자칭했고, 국호는 성(成)이라 했다. 上旣平隴右曰: 광무제가 이미 농우를 평정했고 말했다. “人苦不自足. “사람의 괴로움이란 자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旣得隴復望蜀.” 이미 농땅을 얻고서..
63. 외효가 마원을 공손술에게 보내다. 建武初, 隗囂據天水, 自稱西州上將軍. 嘗遣馬援往成都, 觀公孫述. 援與述舊, 謂當握手歡如平生, 時述已稱帝四年矣. 援旣至, 盛陳陛衛, 以迎援. 援謂其屬曰: “天下雌雄未定, 公孫不吐哺迎國士. 反修飾邊幅, 如偶人形. 此何足久稽天下士乎?” 因辭歸謂囂曰: “述井底蛙耳. 而妄自尊大.” 해석 建武初, 隗囂據天水, 건무(광무제의 연호) 초에 외효가 천수에 의거하여 自稱西州上將軍. 스스로 ‘서주상장군’이라 일컬었다. 嘗遣馬援往成都, 觀公孫述. 일찍이 마원을 파견하여 성도로 보내어 공손술을 살펴보도록 했다. 援與述舊, 謂當握手歡如平生, 마원과 공손술을 옛 친구로 마땅히 손을 잡고 환대하기를 평생의 지기(知己)처럼 할 것이라 했는데, 時述已稱帝四年矣. 이때가 공손술이 이미 황제로 칭한..
61. 초왕(楚王) 한신(韓信),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하다 高祖六年, 人有上書告楚王韓信反. 諸將曰: “發兵坑孺子耳.” 上問陳平, 平危之曰: “古有巡狩會諸侯. 陛下第出僞遊雲夢, 會諸侯於陳, 因禽之, 一力士之事耳.” 上從之. 告諸侯會陳, “吾將遊雲夢” 至陳ㆍ信上謁, 命武士縛信, 載後車. 信曰: “果若人言, ‘狡兎死, 走狗烹, 飛鳥盡, 良弓藏, 敵國破謀臣亡.’ 天下已定, 臣固當烹.” 遂械繫以歸, 赦爲淮陰侯. ▲ 한신과 토사구팽. 한신의 인생은 정말 드라마틱하다. 해석 高祖六年, 人有上書告楚王韓信反. 한고조 6년에 사람들이 한고조에게 초왕 한신이 반란을 꾸미고 있다고 글을 올려 알렸다. 諸將曰: “發兵坑孺子耳.” 모든 장수들이 말했다. “병사들을 출동시켜 그 어린 놈인 한신을 묻어버리면 그만입니다.” 上問陳平..
60. 포로 19년을 버티고 버틴 소무(蘇武) 天漢元年, 遣中郞將蘇武, 使匈奴. 單于欲降之, 幽武置大窖中, 絶不飮食. 武齧雪與旃毛幷咽之, 數日不死, 匈奴以爲神. 徙武北海, 上無人處, 使牧羝曰: “羝乳乃得歸.” 二年遣李廣利, 擊匈奴, 別將李陵, 敗降虜. 始元六年, 蘇武還自匈奴. 武始徙北海上, 掘野鼠去草實而食之, 臥起持漢節. 漢使者至匈奴, 匈奴詭言武已死. 漢使知之言, “天子射上林, 中得雁, 足有帛書云 ‘武在大澤中.’” 匈奴不能隱, 乃遣武還. 武留匈奴十九年, 始以强壯出, 及還須髮盡白. 拜爲典屬國. 해석 天漢元年, 遣中郞將蘇武, 使匈奴. 천한(天漢) 원년에 중서 소무를 파견하여 흉노족에 보냈다. 單于欲降之, 幽武置大窖中, 선우는 소무를 투항하게 하고자 하여 소무를 가두어 큰 움 속에 두고서는 絶不飮食. 아무런 ..
59. 장량(張良)을 가르친 기이한 스승 留侯張良少時, 於下邳圯上, 遇老人. 墮履圯下, 謂良曰: “孺子下取履.” 良欲歐之, 憫其老. 乃下取履, 老人以足受之曰: “孺子可敎, 後五日, 與我期於此.” 良如期往, 老人已先在. 怒曰: “與長者期, 後何也?” 復約五日. 及往, 老人又先在, 怒復約五日. 良半夜往, 老人至乃喜授以一編書曰: “讀此可謂帝者師. 異日見濟北穀城山下黃石, 卽我也.” 旦視之, 乃『太公兵法』. 良異之, 晝夜習讀. 旣佐上定天下, 封於留, 後經穀城, 果得黃石焉, 奉祠之. 해석 留侯張良少時, 於下邳圯上, 유후 장량이 어릴 적에 하비(下邳)의 흙다리 위에서 遇老人. 어떤 노인을 만났다. 墮履圯下, 謂良曰: 그 노인은 다짜고짜 자신의 신발을 흙다리 밑으로 떨어뜨리며 장량에게 말했다. “孺子下取履.” “어린놈..
58. 한신(韓信)과 한고조(漢古祖)의 문답(問答) 上嘗從容問韓信, 諸將能將兵多少. 上曰: “如我能將幾何?” 信曰: “陛下不過將十萬.” 上曰: “於君何如?” 信曰: “臣多多益辨” 上笑曰: “多多益辨, 何以爲我禽?” 曰: “陛下不能將兵而善將將. 此信所以爲陛下禽. 且陛下所謂天授, 非人力也.” 해석 上嘗從容問韓信, 한고조가 조용히 한신에게 諸將能將兵多少. 모든 장수가 거느릴 수 있는 병사의 많고 적음에 대해 물었었다. 上曰: “如我能將幾何?” 한고조가 말했다. “나와 같은 경우는 어느 정도를 거느릴 수 있겠는가?” 信曰: “陛下不過將十萬.” 한신이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10만 거느리는 것을 넘어서질 못합니다.” 上曰: “於君何如?” 한고조가 말했다. “그대라면 어느 정도요?” 信曰: “臣多多益辨” 한신이 대..
57. 한고조와 삼걸(張良ㆍ蕭何ㆍ韓信)의 문답 漢王卽皇帝位, 置酒洛陽南宮. 上曰: “徹侯諸將, 皆言. 吾所以得天下者何, 項氏所以失天下者何?” 高起ㆍ王陵對曰: “陛下使人攻城掠地, 因而與之, 與天下同其利, 項羽不然. 有功者害之, 賢者疑之, 戰勝而不豫人功, 得地而不與人利.” 上曰: “公知其一未知其二. 夫運籌帷幄之中, 決勝千里之外, 吾不如子房, 鎭國家撫百姓給饋餉, 不絶糧道, 吾不如蕭何, 連百萬之衆, 戰必勝攻必取, 吾不如韓信. 此三者, 皆人傑也, 吾能用之, 此吾所以取天下, 項羽有一范增而不能用, 此其所以爲我擒也.” 群臣悅服. 해석 漢王卽皇帝位, 置酒洛陽南宮. 한고조가 황제로 즉위하여 낙양 남쪽 궁궐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上曰: “徹侯諸將, 皆言. 한고조가 말했다. “나열지어선 제후들과 모든 장수들은 다 말하라. 吾..
56. 우미인과 이별하는 항우(項羽) 張良ㆍ陳平謂漢王曰: “漢有天下大半, 楚兵饑疲, 今釋不擊, 此養虎自遺患也.” 王從之. 五年, 王追羽至固陵, 韓信ㆍ彭越皆引兵來, 黥布亦會. 項羽至垓下, 兵少食盡. 信等乘之, 羽敗入壁, 圍之數重. 羽夜聞漢軍四面皆楚歌, 大驚曰: “漢已得楚乎? 何楚人多也.” 起飮帳中, 命虞美人起舞, 悲歌慷慨, 泣數行下. 其歌曰: “力拔山兮, 氣蓋世, 時不利兮, 騅不逝, 騅不逝兮, 可奈何, 虞兮虞兮, 奈若何” 騅者羽平日所乘駿馬也. 左右皆泣, 莫敢仰見. 羽乃夜從八百餘騎, 潰圍南出. 渡淮, 至東城, 乃有二十八騎. 羽謂其騎曰: “吾起兵八歲, 七十餘戰, 未嘗敗也. 今卒困此, 此天亡我, 非戰之罪. 今日固決死, 願爲諸君決戰, 必潰圍斬將, 令諸君知之, 皆如其言.” 於是, 欲東渡烏江, 亭長艤船待曰: “江東雖..
55. 정형구 전투와 배수진 漢三年, 韓信ㆍ張耳, 以兵擊趙, 聚兵井陘口, 趙王歇及成安君陳餘禦之. 夜半信傳發輕騎二千, 人人持赤幟, 從間道望趙軍. 戒曰: “趙見我走, 必空壁逐我. 若疾入趙壁, 拔趙幟立漢赤幟.” 乃使萬人先行背水陣, 平旦建大將旗鼓, 鼓行出井陘口, 趙開壁擊之. 戰良久, 信ㆍ耳佯棄旗鼓, 走水上軍, 趙果空壁逐之. 水上軍皆殊死戰. 趙軍已失信等歸壁, 見赤幟大驚, 遂亂遁走. 漢軍夾擊大破之, 斬陳餘禽趙歇. 諸將賀因問曰: “兵法右倍山陵, 前左水澤, 今背水而勝何也?” 信曰: “兵法不曰: ‘陷之死地而後生, 置之亡地而後存乎.’” 諸將皆服. 해석 漢三年, 韓信ㆍ張耳, 한나라 3년에 한신과 장이가 以兵擊趙, 聚兵井陘口, 병사들로 조나라를 치려 정형구(井陘口) 군사를 모으니, 趙王歇及成安君陳餘禦之. 조나라 임금인 헐(歇..
54. 항우에게 삶아 죽임을 당한 한생 沛公至軍, 立誅曹無傷. 居數日, 羽引兵西, 屠咸陽, 殺降王子嬰. 燒秦宮室, 火三月不絶. 掘始皇冢, 收寶貨婦女而東, 秦民大失望. 韓生說羽曰: “關中阻山帶河, 四塞之地肥饒, 可都以覇.” 羽見秦殘破, 且思東歸曰: “富貴不歸故鄕, 如衣繡夜行耳.” 韓生退曰: “人言, 楚人沐猴而冠, 果然.” 羽聞之, 烹韓生. 後羽自立爲西楚覇王, 立沛公爲漢王, 王巴ㆍ蜀ㆍ漢中, 是歲漢元年也. 해석 沛公至軍, 유방이 홍문회합에서 가까스로 도망 나와 군진에 이르자, 立誅曹無傷. 곧바로 이간질을 했던 좌사마 조무상을 죽였다. 居數日, 羽引兵西, 자리를 잡은 지 며칠 후에 항우는 병사들을 데리고 서쪽으로 가서 屠咸陽, 殺降王子嬰. 진나라의 수도인 함양을 도륙하고 이미 항복한 진나라의 왕자인 영(嬰)을 ..
53. 유방을 피신시킨 장량과 번쾌 張良出, 告樊噲以事急. 噲擁盾直入, 嗔目視羽, 頭髮上指, 目眥盡裂. 羽曰: “壯士, 賜之巵酒.” 則與斗巵酒, “賜之彘肩” 則生彘肩. 噲立飮, 拔劍切肉啗之. 羽曰: “能復飮乎?” 噲曰: “臣死且不避, 巵酒安足辭. 沛公先破秦入咸陽, 勞苦而功高如此. 未有封爵之賞, 而將軍聽細人說, 欲誅有功人, 此亡秦之續耳, 竊爲將軍不取也.” 羽曰: “坐!” 噲從良坐, 須臾沛公起如厠, 因招噲出, 間行趨覇上. 留良謝羽曰: “沛公不勝杯杓, 不能辭. 使臣良奉白璧一雙, 再拜獻將軍足下, 玉斗一雙, 再拜奉亞父足下.” 羽曰: “沛公安在?” 良曰: “聞將軍有意督過之, 脫身獨去, 已至軍矣.” 亞父拔劍, 撞玉斗而破之曰: “唉! 豎子不足謀. 奪將軍天下者, 必沛公也.” 해석 張良出, 告樊噲以事急. 장량이 밖으로 나..
52. 유방을 죽이려는 범증(范增) 沛公旦從百餘騎, 見羽鴻門. 謝曰: “臣與將軍戮力而攻秦, 將軍戰河北, 臣戰河南, 不自意, 先入關破秦. 得復見將軍於此, 今者有小人之言, 令將軍與臣有隙.” 羽曰: “此沛公左司馬曹無傷之言.” 羽留沛公與飮, 范增數目羽擧所佩玉玦者三, 羽不應. 增出使項莊入前, 爲壽請以劍舞, 因擊沛公. 項伯亦拔劍起舞以身, 翼蔽沛公, 莊不得擊. 해석 沛公旦從百餘騎, 見羽鴻門. 유방은 아침에 백여명의 기마병을 따라 항우를 홍문(鴻門)에서 뵈었다. 謝曰: “臣與將軍戮力而攻秦, 유방은 사죄드렸다. “신하와 장군은 힘을 모아 진나라를 공격했는데 將軍戰河北, 臣戰河南, 장군은 하북에서 싸웠고 저는 하남에서 싸워 不自意, 先入關破秦. 의도치 않게 먼저 함곡관에 들어와 진나라를 무너뜨렸습니다. 得復見將軍於此, 다..
51. 항우(項羽)와 범증(范增)의 이야기를 장량(張良)에게 고하다 項羽率諸侯兵, 欲西入關, 或說沛公, 守關門, 羽至門閉, 大怒攻破之. 進至戱西, 期旦擊沛公. 羽兵四十萬, 號百萬, 在鴻門, 沛公兵十萬, 在覇上. 范增說羽曰: “沛公居山東, 貪財好色. 今入關, 財物無所取, 此其志不在小, 急擊勿失.” 羽季父項伯, 素善張良, 夜馳至沛公軍, 告良. 해석 項羽率諸侯兵, 欲西入關, 항우가 모든 제후를 거느리고 서쪽 함곡관으로 들어가고자 하자, 或說沛公, 守關門, 羽至門閉, 혹자가 유방을 설득하여 관문을 지켜 항우가 도착하자 문을 닫아걸었는데 大怒攻破之. (항우)가 크게 성내며 공격해 부셔버렸다. 進至戱西, 期旦擊沛公. 진격하여 희서(戱西)에 이르러 아침에 유방을 공격하기로 했다. 羽兵四十萬, 號百萬, 在鴻門, 항우의..
50. 한신, 유방의 책략가로 활짝 피다 初淮陰人韓信, 家貧釣城下. 有漂母, 見信饑, 飯信. 信曰: “吾必厚報母.” 母怒曰: “大丈夫不能自食, 吾愛王孫而進食, 豈望報乎.” 淮陰屠中少年, 有侮信者. 因衆辱之曰: “若雖長大好帶劍, 中情怯耳. 能死刺我, 不能出我胯下.” 信熟視之, 俛出胯下蒲伏, 一市人皆笑信怯. 後項梁渡淮, 信從之. 又數以策干項羽不用. 亡歸漢, 爲治粟都尉. 數與漢王臣蕭何語, 何奇之. 謂王曰: “信國士無雙.” 王乃設壇場具體, 諸將皆喜, 人人自以爲得大將. 至拜乃韓信也, 一軍皆驚. 王遂用信計, 襲秦諸將, 章邯敗死, 司馬欣等皆降. 해석 初淮陰人韓信, 家貧釣城下. 초반에 회음인인 한신은 집이 가난하여 성 아래에서 낚시를 하며 소일하고 있었다. 有漂母, 見信饑, 飯信. 빨래터 아낙이 한신이 굶주린 걸 보고..
49. 범증의 회왕 옹립하기 居鄛人范增, 年七十, 好奇計, 往說項梁曰: “陳勝不立楚後而自立, 其勢不長. 今君起江東, 楚蜂起之將, 爭附君者. 以君世世楚將, 必能復立楚之後.” 於是項梁求得楚懷王孫心, 立爲楚懷王, 以從民望. 해석 居鄛人范增, 年七十, 好奇計, 거소(居鄛) 출신인 범증은 나이 70살이었는데 기이한 계책을 좋아하여 往說項梁曰: “陳勝不立楚後而自立, 가서 항량을 설득했다. “진승은 초나라 후계자를 세우지 않고 자립하고자 하였기에 其勢不長. 그 세력이 길게 유지되지 못했습니다. 今君起江東, 楚蜂起之將, 이제 그대는 강동에서 기병하여 초나라에서 봉기한 장수로, 爭附君者. (누구든) 다투어 그대에게 편입되려 할 것입니다. 以君世世楚將, 必能復立楚之後.” 그대가 대대로 초나라의 장수가 되고자 한다면, 반드..
48. 항우의 어린시절과 항우의 시작 項梁者, 楚將項燕之子也. 嘗殺人, 與兄子籍避仇吳中. 籍字羽, 少時學書, 不成去, 學劍, 又不成. 梁怒, 籍曰: “書足以記姓名而已, 劍一人敵也, 不足學, 學萬人敵.” 梁乃敎籍兵法. 會稽守殷通. 欲起兵應陳涉, 使梁爲將, 梁使籍斬通, 佩其印綬. 遂擧吳中兵, 得八千人. 籍爲裨將, 時年二十四. 해석 項梁者, 楚將項燕之子也. 항량은 초나라 장수 항연의 아들이다. 嘗殺人, 與兄子籍避仇吳中. 일찍이 사람을 죽여 형의 자식인 적과 함께 오중으로 원수를 피해 달아났다. 籍字羽, 少時學書, 不成去, 적의 자는 우인데 어려서 글을 배울 때 성취도 없이 그만뒀으며, 學劍, 又不成. 검을 배울 때도 성취를 내지 못했다. 梁怒, 籍曰: 항량이 성내니, 항우가 말씀드렸다. “書足以記姓名而已, 劍..
47. 진나라의 멸망을 알린 진승과 오광의 반란 陽城人陳勝, 字涉. 少與人傭耕, 輟耕之隴上, 悵然久之曰: “苟富貴無相忘.” 傭者笑曰: “若爲傭耕, 何富貴也?” 勝太息曰: “嗟呼! 燕雀安知鴻鵠之志哉?” 至是與吳廣起兵于蘄, 時發閭左, 戌漁陽, 勝ㆍ廣爲屯長. 會大雨道不通, 乃召徒屬曰: “公等失期, 法當斬, 壯士不死則已, 死則擧大名. 王侯將相, 寧有種乎?” 衆皆從之. 乃詐稱公子扶蘇項燕, 稱大楚, 勝自立爲將軍. 廣爲都尉. 해석 陽城人陳勝, 字涉. 함양 사람 진승의 자는 섭이다. 少與人傭耕, 輟耕之隴上, 어려서 어떤 이와 함께 농사일에 고용되어 언덕 위에서 밭 갈다 그만두고 悵然久之曰: “苟富貴無相忘.” 쓸쓸히 “진실로 (훗날) 부귀해지면 서로 잊지 말자.”라고 말했다. 傭者笑曰: “若爲傭耕, 何富貴也?” 그랬더니..
46. 장남(長男) 부소(扶蘇)를 북방(北方)으로 쫓아내다 三十五年, 侯生盧生, 相與譏議始皇, 因亡去. 始皇大怒曰: “盧生等, 吾尊賜之甚厚, 今乃誹謗我. 諸生在咸陽者, 吾使人廉問, 或爲妖言, 以亂黔首.” 於是使御史悉按問諸生, 傳相告, 引乃自除, 犯禁者, 四百六十餘人. 皆坑之咸陽. 長子扶蘇諫曰: “諸生皆誦法孔子, 今上皆重法繩之, 臣恐天下不安.” 始皇怒. 使扶蘇, 北監蒙括軍於上郡. 해석 三十五年, 侯生盧生, 相與譏議始皇, 35년에 후생과 노생이 서로 함께 시황제를 기롱하며 의론을 하였고, 因亡去. 처벌될까 두려워하며 도망가 버린 사건이 있었다. 始皇大怒曰: 시황제는 매우 화내며 말했다. “盧生等, 吾尊賜之甚厚, “노생 등의 무리는 내가 존중하며 하사하길 심히 후하게 했음에도 今乃誹謗我. 이제 나를 비방하고 ..
45.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위한 이사(李斯)의 변 三十四年, 丞相李斯, 上書曰: “異時諸侯竝爭, 厚招遊學. 今天下已定, 法令出一, 百姓當家則力農工, 士則學習法令. 今諸生不師今而學古, 以非當世, 惑亂黔首. 聞令下, 則各以其學議之, 入則心非, 出則巷議, 率群下以造謗. 臣請. 史官非秦記, 皆燒之, 非博士官所職, 天下有藏詩書百家語者, 皆詣守尉雜燒之. 有偶語詩書者, 棄市, 以古非今者族. 所不去者, 醫藥卜筮種樹之書, 若有欲學法令, 以吏爲師.” 制曰: “可” 해석 三十四年, 丞相李斯, 上書曰: 34년 승상 이사가 글을 올려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다. “異時諸侯竝爭, 厚招遊學. “다른 때엔 제후들이 함께 싸워, 후하게 유학하는 이들을 초빙했습니다. 今天下已定, 法令出一, 이제 천하는 이미 정해져 법령이 한 군데서 나오..
44. 통일제국을 위해 진시황의 명령 秦王政初幷天下, 自以‘德兼三皇, 功過五帝’ 更號曰皇帝. 命爲制, 令爲詔, 自稱曰朕. 制曰: “死而以行爲諡, 則是子議父, 臣議君也, 甚無謂, 自今以來, 除諡法. 朕爲始皇帝, 後世以計數, 二世三世, 至于萬世, 傳之無窮.” 收天下兵, 聚咸陽, 銷以爲鍾鐻金人十二, 重各千石. 徙天下豪富於咸陽, 十二萬戶. 해석 秦王政初幷天下, 진나라 왕 정은 초반에 천하를 병합하고 自以‘德兼三皇, 功過五帝’ 스스로 ‘덕으론 삼황을 겸했고, 공으론 오제를 뛰어넘었다’고 여겼기에 更號曰皇帝. 호칭을 고쳐 ‘황제’로 부르게 했다. 命爲制, 이때까지 써온 ‘명(命)’이란 호칭을 ‘제(制)’로, 令爲詔, 自稱曰朕. 이때까지 써온 ‘령(令)’이란 호칭을 ‘소(詔)’로, 임금 자신을 일컫는 말은 ‘짐(朕)..
43. 모수, 자신감으로 초나라 임금과 한판 떠서 동맹을 성사시키다 秦攻趙邯鄲, 趙平原君求救於楚. 擇門下文武備具者二十人, 與之俱得十九人. 毛遂自薦, 平原君曰: “士處世若錐處囊中, 其末立見. 今先生處門下三年, 未有聞.” 遂曰: “使遂得處囊中乃脫穎而出, 非特末見而已.” 平原君乃以備數, 十九人目笑之. 至楚定從不決. 毛遂按劍歷階升曰: “從之利害, 兩言而決耳. 今日出而言, 日中不決何也?” 楚王怒叱曰: “胡不下, 吾與而君言, 汝何爲者?” 毛遂按劍, 而前曰: “王所以叱遂, 以楚國之衆也. 今十步之內, 不得恃楚國之衆也. 王之命, 懸於遂手. 合從爲楚, 非爲趙也.” 王曰: “唯唯, 誠若先生之言, 謹奉社稷以後.” 遂曰: “取鷄狗馬之血來.” 捧銅盤, 跪進曰: “王當歃血而定從, 次者吾君, 次者遂.” 左手持盤右手招十九人, 歃血於堂..
42. 맹상군을 존경받는 군주로 만든 풍환 齊襄王旣立, 而孟嘗君中立爲諸侯, 無所屬, 王畏之, 與連和. 初馮驩聞孟嘗君好客, 而來見, 置傳舍十日. 彈劍作歌曰: “長鋏歸來乎! 食無魚.” 遷之幸舍, 食有魚矣. 又歌曰: “長鋏歸來乎! 出無輿.” 遷之代舍, 出有輿矣. 又歌曰: “長鋏歸來乎, 無以爲家.” 孟嘗君聞不悅. 時邑入不足以奉客, 使人出錢於薛貸者, 多不能與息. 孟嘗君乃進驩, 請責之. 驩往不能與者, 取其券燒之. 孟嘗君怒, 驩曰: “令薛民親君.” 孟嘗君竟爲薛公, 終於薛. 해석 齊襄王旣立, 而孟嘗君中立爲諸侯, 제양왕(齊襄王)이 즉위했고, 맹상군(孟嘗君)은 중립에 서서 제후가 되어 無所屬, 王畏之, 與連和. 속한 지위가 없었음에도 왕은 맹상군을 두려워하여 함께 동맹을 맺었다. 初馮驩聞孟嘗君好客, 而來見, 초반에 풍환(..
41. 계명구도의 식객이 맹상군을 살리다 田嬰封於薛, 有子曰文, 食客數千人, 名聲聞於諸侯, 號爲孟嘗君, 秦昭王聞其賢, 乃先納質於齊以求見, 至則止囚, 欲殺之. 孟嘗君使人, 扺昭王幸姬求解. 姬曰: “願得君狐白裘.” 蓋孟嘗君嘗以獻昭王, 無他裘. 客有能爲狗盜者, 入秦藏中, 取裘以獻姬, 姬爲言得釋. 卽馳去變姓名, 夜半至函谷關. 關法, 鷄鳴方出客, 恐秦王後悔追之 客有能爲鷄鳴者, 鷄盡鳴, 遂發傳. 出食頃追者果至, 而不及. 孟嘗君歸怨秦, 與韓ㆍ魏伐之, 入函谷關, 秦割城以和. 해석 田嬰封於薛, 有子曰文, 전영(田嬰)은 설(薛)땅을 봉분 받았으며, 아들의 이름은 전문(田文)으로 食客數千人, 名聲聞於諸侯, 식객이 수천 명이나 되어 명성이 제후들에게 소문이 나 號爲孟嘗君, 맹상군(孟嘗君)이라 불렸다고 한다. 秦昭王聞其賢, 진..
40. 진시황을 죽이지 못한 형가 燕王喜太子丹, 質於秦. 秦王政不禮焉, 怒而亡歸, 怨秦欲報之. 丹聞衛人荊軻賢, 卑辭厚禮請之, 奉養無不至. 乃裝遣軻, 軻行至易水, 歌曰: “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 于時白虹貫日, 燕人畏之. 軻至咸陽, 秦王政大喜見之. 軻奉圖進. 圖窮而匕首見, 把王袖椹之未及身, 王驚起絶袖. 軻逐之, 環柱走. 秦法群臣侍殿上者, 不得操尺寸兵, 左右以手搏之. 且曰: “王負劍” 遂拔劍斷其左股. 軻引匕首, 擿王不中. 遂體解以徇. 秦王大怒, 益發兵伐燕, 喜斬丹以獻. 後三年, 秦兵虜喜, 遂滅燕爲郡. 해석 燕王喜太子丹, 質於秦. 연나라 왕 희의 태자인 단(丹)은 진나라에 인질로 잡혀 있었다. 秦王政不禮焉, 怒而亡歸, 그런데 진나라 왕인 정(政)은 예우하지 않아 단은 화를 내며 도망하여 귀국하였고, ..
39. 소꼬리에 불을 붙여 싸운 전단 時齊城, 惟莒ㆍ卽墨不下, 卽墨人推田單爲將軍, 身操版鍤, 與士卒分功. 妻妾編於行伍. 收城中得牛千餘, 爲絳繪衣, 畵五彩龍文, 束兵刃其角, 灌脂束葦於尾, 燒其端. 鑿城數十穴, 夜縱牛, 壯士隨其後. 牛尾熱, 怒奔燕軍, 所觸盡死傷. 而城中鼓譟從之 聲振天地. 燕軍敗走, 七十餘城皆復爲齊. 迎襄王於莒, 封單爲安平君. 해석 時齊城, 惟莒ㆍ卽墨不下, 그때에 제나라 성 중에, 오직 거와 즉묵만이 항복하지 않았고 卽墨人推田單爲將軍, 즉묵의 백성들은 전단을 추천하여 장군이 되도록 했다. 身操版鍤, 與士卒分功. 전단은 몸으로 판과 삽을 가지고 병사들과 함께 생활하며 공적을 같이 분배했고, 妻妾編於行伍. 아내와 첩을 군대에 편입시켰다. 收城中得牛千餘, 성에서 수거하여 얻은 소가 천여 마리였는데..
37. 진나라의 반간계에 걸려 위험에 처한 조나라 趙惠文王子, 孝成王立. 秦伐韓, 韓上黨, 降於趙. 秦攻趙, 廉頗軍長平, 堅壁不出. 秦人行千金, 爲反間曰: “秦獨畏馬服君趙奢之子括爲將耳.” 王使括代頗, 相如曰: “王以名使括, 若膠柱鼓瑟耳. 括徒能讀其父書, 不知合變也.” 王不聽. 括少學兵法, 以天下莫能當, 與父奢言, 不能難. 然不以爲然. 括母問故, 奢曰: “兵死地也, 而括易言之 趙若將括, 必破趙軍.” 及括將行, 其母上書言 “括不可使” 括至軍, 果爲秦將白起所射殺, 卒四十萬皆降, 抗於長平. 해석 趙惠文王子, 孝成王立. 조혜문 왕의 자식인 효성왕이 즉위했다. 秦伐韓, 韓上黨, 降於趙. 진나라가 한나라를 정벌하니, 한나라 상당은 조나라에 투항했다. 秦攻趙, 廉頗軍長平, 진나라는 조나라를 공격했는데 염파가 장평에 진..
36. 대의를 위해 수모를 무릎 쓰며 참아낸 인상여와, 그걸 알아봐서 문경지교가 된 염파 趙王以藺相如爲上卿, 在廉頗右. 頗曰: “我爲趙將, 有攻城野戰之功, 相如素賤人, 徒以口舌居我上. 吾羞爲之下, 我見相如必辱之.” 相如聞之, 每朝常稱病, 不欲與爭列, 出望見輒引車避匿, 其舍人皆以爲恥. 相如曰: “夫以秦之威, 相與廷叱之, 辱其群臣. 相如雖駑, 獨畏廉將軍哉. 顧念, 强秦不敢加兵於趙者, 徒以吾兩人在也. 今兩虎共鬪, 其勢不俱生, 吾所以爲此者, 先國家之急而後私讐也.” 頗聞肉袒負荊, 詣門謝罪, 遂爲刎頸之交. 해석 趙王以藺相如爲上卿, 在廉頗右. 조나라 혜문왕이 인상여를 상경으로 임명하여 염파의 상관이 되도록 했다. 頗曰: “我爲趙將, 有攻城野戰之功, 염파가 말했다. “나는 조나라 장군으로 성을 공격하여 야전에서 공이 ..
35. 진 소양왕과 한바탕 기싸움을 하며 ‘완벽’이란 성어를 만들어낸 인상여 趙惠文王, 嘗得楚和氏璧. 秦昭王, 請以十五城易之. 欲不與畏秦强, 欲與恐見欺. 藺相如願奉璧往, 城不入則臣請完璧而歸. 旣至秦, 王無意償城. 相如乃欺取璧, 怒髮指冠, 卻立柱下曰: “臣頭與璧俱碎.” 遣從者, 懷璧間行先歸. 身待命於秦, 秦昭王賢而歸之 해석 趙惠文王, 嘗得楚和氏璧. 조나라 혜문왕은 일찍이 초나라 화씨의 구슬을 얻었다. 秦昭王, 請以十五城易之. 진나라 소양왕이 15개 성으로 구슬을 바꾸자고 청했다. 欲不與畏秦强, 欲與恐見欺. 15개의 성을 주지 않자니 진나라가 강한 게 두렵고, 주자니 속임을 당할까 두려웠다. 藺相如願奉璧往, 이때 인상여가 구슬을 가지고 진나라에 가길 원하며 말했다. 城不入則臣請完璧而歸. “15개의 성을 주지..
34. 원교근공의 정책으로 성공한 범수 秦昭襄王立. 有魏人范睢者, 嘗從須賈使齊, 齊王聞其辯口, 乃賜之金及牛酒. 賈疑睢以國陰事告齊, 歸告魏相魏齊. 魏齊怒笞擊睢, 折脅拉齒. 睢佯死. 秦使者至魏, 潛載, 睢與歸. 薦于昭襄王, 以爲客卿, 敎以遠交近政之策, 爲丞相, 號應侯. 睢旣得志于秦, 一飯之德必償, 睚眦之怨必報. 해석 秦昭襄王立. 진나라에서 소양왕이 즉위하였다. 有魏人范睢者, 嘗從須賈使齊, 위나라 사람인 범수는 일찍이 수가를 따르며 제나라에 사신으로 갔는데 齊王聞其辯口, 乃賜之金及牛酒. 제나라 왕은 범수의 말 잘하는 것을 듣고 기뻐하며 곧 금과 소고기와 술을 하사했다. 賈疑睢以國陰事告齊, 歸告魏相魏齊. 그러자 수가는 범수가 국가 기밀을 제나라에 알렸다고 의심하여 위나라 재상인 위제에게 알렸다. 魏齊怒笞擊睢, ..
33. 수모 속에 연형책을 완성시킨 장의 魏人有張儀者, 與蘇秦同師. 嘗遊楚, 爲楚相所辱. 妻慍有語, 儀曰: “視吾舌, 尙在否?” 蘇秦約從時, 激儀使入秦, 儀曰: “蘇君之時, 儀何敢言.” 蘇秦去趙而從解, 儀專爲橫, 連六國以事秦. 해석 魏人有張儀者, 與蘇秦同師. 위나라 사람인 장의는 소진과 같은 스승을 섬겼다. 嘗遊楚, 爲楚相所辱. 일찍이 초나라에 유세를 갔으나, 초나라 재상에게 수모를 당했다. 妻慍有語, 儀曰: “視吾舌, 尙在否?” 아내가 화를 내며 말하니, 장의는 “내 혀를 좀 봐주시오. 아직 건재하오?”라고 말했다. 蘇秦約從時, 激儀使入秦, 소진이 합종책을 맺을 때에 장의를 화나게 하여 진나라에 입국하도록 하니, 儀曰: “蘇君之時, 儀何敢言.” 장의는 “지금은 소진이 득의한 시기인데, 내가 어찌 감히 ..
32. 소진의 가족에 대한 탄식과 합종책의 해체 蘇秦者師鬼谷先生. 初出游, 困而歸, 妻不下機, 嫂不爲炊. 至是爲從約長, 幷相六國. 行過洛陽, 車騎輜重, 擬於王者. 昆弟妻嫂, 側目不敢仰視, 俯伏侍取食, 蘇秦笑曰: “何前倨而後恭也?” 嫂曰: “見季子位高金多也.” 秦喟然嘆曰: “此一人身, 富貴則親戚畏懼之, 貧賤則輕易之, 況衆人乎? 使我有洛陽負郭田二頃, 豈能佩六國相印乎?” 於是散千金, 以賜宗族朋友. 旣定從約歸趙, 肅侯封爲武安君. 其後, 秦使犀首欺趙, 欲敗從約, 齊魏伐趙. 蘇秦恐去趙, 而從約解. 해석 蘇秦者師鬼谷先生. 소진은 귀곡선생을 스승으로 삼았다. 初出游, 困而歸, 초반에 유세를 떠났지만, 등용되지 않아 곤궁한 상태로 돌아오니, 妻不下機, 嫂不爲炊. 아내는 베틀에서 내려오지도 않았고, 형수는 불 때어 밥을 ..
31. 합종책으로 6국의 재상이 된 소진 秦人恐喝諸侯, 求割地. 有洛陽人蘇秦, 游說秦惠王不用, 乃往說燕文侯與趙從親, 燕資之以至趙. 說趙肅侯曰: “諸侯之卒十倍於秦, 竝力四向, 秦必破矣. 爲大王計, 莫若六國從親, 以擯秦.” 肅侯乃資之以約諸侯. 蘇秦以鄙諺, 說諸侯曰: “寧爲雞口, 無爲牛後.” 於是六國從合. 해석 秦人恐喝諸侯, 求割地. 진나라 사람이 제후들을 위협하며 땅을 떼어줄 것을 요구했다. 有洛陽人蘇秦, 游說秦惠王不用, 낙양 사람 소진은 진혜왕에게 유세하였지만 등용되지 않았고, 乃往說燕文侯與趙從親, 그래서 연문후에게 가서 유세하여 조나라와 동맹을 맺도록 했고 燕資之以至趙. 연문후는 소진에게 자금을 대어 조나라에 가게 했다. 說趙肅侯曰: “諸侯之卒十倍於秦, 조숙후에게 말씀드렸다. “제후들의 군사가 모이면 진..
30. 방연과 손빈의 악연 그리고 위나라의 쇠퇴 魏伐韓, 韓請救於齊. 齊使田忌爲將以救韓. 魏將龐涓, 嘗與孫臏同學兵法. 涓爲魏將軍, 自以所能不及, 以法斷其兩足而黥之. 齊使至魏, 竊載以歸. 至是臏爲齊軍師, 直走魏都, 涓去韓而歸. 臏使齊軍入魏地者爲十萬竈, 明日爲五萬竈, 又明日爲二萬竈. 涓大喜曰: “我固知齊軍怯. 入吾地三日, 士卒亡者過半矣.” 乃倍日幷行逐之. 臏度其行, 暮當至馬陵. 道狹而旁多阻, 可伏兵. 乃斫大樹, 白而書曰:‘龐涓死此樹下.’ 令齊師善射者, 萬弩夾道而伏, 期暮見火擧而發. 涓果夜至斫木下, 見白書, 以火燭之, 萬弩俱發, 魏師大亂相失. 涓自剄曰: “遂成豎子之名.” 齊大斫魏師, 虜太子申. 해석 魏伐韓, 韓請救於齊. 조나라가 한나라를 정벌하려 하니, 한나라는 제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齊使田忌爲將以救韓...
29. 안자의 검소함과 마부의 거만함 自齊桓公八世, 至景公, 有晏子者, 事之. 名嬰, 字平仲, 以節儉力行重於齊. 一狐裘三十年, 豚肩不掩豆. 齊國之士, 待以擧火者, 七十餘家. 晏子出, 其御之妻, 從門間窺其夫, 擁大蓋, 策駟馬, 意氣揚揚自得. 旣而歸, 妻請去曰: “晏子身相齊國, 名顯諸侯, 觀其志, 嘗有以自下. 子爲人僕御, 自以爲足, 妾是以求去也.” 御者乃自抑損. 晏子怪而問之, 以實對, 薦爲大夫. 해석 自齊桓公八世, 至景公, 제환공에서 8대가 지나 경공에 이르러 有晏子者, 事之. 안자라는 사람이 왕을 섬겼다. 名嬰, 字平仲, 안자의 이름은 영이고 자는 평중으로, 以節儉力行重於齊. 근검을 힘써 실행하여 제나라에 중용되었다. 一狐裘三十年, 豚肩不掩豆. 한 번 여우가죽옷을 입으면 30년을 입고, 돼지 어깨살을 제기..
28. 자연에 순응한 노자 老子者, 楚苦縣之人也, 姓李, 名耳, 字伯陽, 又曰, 字聃. 爲周守藏吏. 孔子問焉, 老子告之曰: “良賈深藏若虛, 君子盛德容貌若愚.” 孔子去謂弟子曰: “今見老子, 其猶龍乎.” 老子見周衰, 去至關. 關令尹喜曰: “子將隱矣, 爲我著書.” 乃著『道德』五千餘言而去, 莫知其所終. 해석 老子者, 楚苦縣之人也, 姓李, 노자는 초나라 고현(苦縣)의 사람으로 성은 이고, 名耳, 字伯陽, 又曰, 字聃. 이름은 이이며, 자는 백양 또는 담이다. 爲周守藏吏. 주나라의 창고를 지키는 벼슬을 맡았다. 孔子問焉, 老子告之曰: 공자가 물으니, 노자가 대답했다. “良賈深藏若虛, 君子盛德容貌若愚.” “좋은 장사치는 깊은 곳에 숨겨 마치 빈 듯이 하며, 군자의 성스런 덕과 용모는 마치 어리석은 듯하네.” 孔子去謂..
27. 공자를 사숙한 맹자 孔子之子鯉, 字伯魚, 早死. 孫伋, 字子思, 作『中庸』. 孟子其門人也, 名軻, 魯孟孫之後. 生於鄒. 幼被慈母三遷之敎, 長受業子思之門. 道旣通, 游齊ㆍ梁不用. 退與萬章之徒, 難疑答問作七篇. 해석 孔子之子鯉, 字伯魚, 早死. 공자의 아들 리(鯉)는 자가 백어(伯魚)로 일찍 죽었다. 孫伋, 字子思, 作『中庸』. 손자인 급은 자가 자사로 『중용』을 지었다. 孟子其門人也, 名軻, 魯孟孫之後. 生於鄒. 맹자는 자사의 문인으로 이름은 가(軻)이며 노나라 맹손씨의 후예이고 추나라에서 태어났다. 幼被慈母三遷之敎, 어려선 자모의 ‘세 번 이사하는 가르침’을 받았고, 長受業子思之門. 장성하여선 자사의 문인에게 수업을 받았다. 道旣通, 游齊ㆍ梁不用. 도가 이미 통하자 제나라와 양나라에서 유세하였으나..
26. 시․서․역․춘추를 정리한 공자 孔子乃序『書』, 上自唐虞, 下至秦穆. 刪古詩三千, 爲三百五編, 皆絃歌之禮樂, 自此可述. 晩而喜『易』, 讀『易』韋編三絶. 因『魯史記』, 作『春秋』. 自隱至哀十二公, 絶筆於獲麟. 筆則筆, 削則削, 子夏之徒, 不能贊一辭. 弟子三千人, 身通六藝者, 七十有二人. 年七十三而卒. 해석 孔子乃序『書』, 공자는 이에 『서경』을 지었으니, 上自唐虞, 下至秦穆. 위로는 요순의 얘기로부터 아래로는 진목공의 얘기까지 담았다. 刪古詩三千, 爲三百五編, 옛 시를 3000편을 편집하여 305편으로 하고 皆絃歌之禮樂, 自此可述. 다 거문고 가락과 노랫가락에 맞는 예악으로 이로부터 저술할 수 있었다. 晩而喜『易』, 讀『易』韋編三絶. 늦은 나이에 『주역』을 좋아하여, 『주역』을 읽어 가죽으로 엮은 끈..
25. 살해위협에 처한 공자 楚使人聘孔子, 陳蔡大夫謀曰: “孔子用於楚, 則陳蔡危矣.” 相與發徒圍之於野, 孔子曰: “『詩』云 ‘匪兕匪虎, 率彼曠野’ 吾道非邪? 吾何爲於是?” 子貢曰: “夫子道至大, 天下莫能容.” 顔回曰: “不容何病? 然後見君子.” 楚昭王, 興師迎之, 乃得至楚. 해석 楚使人聘孔子, 초나라가 사람을 시켜 공자를 초빙하자, 陳蔡大夫謀曰: “孔子用於楚, 則陳蔡危矣.” 진채의 대부가 “공자를 초나라가 등용한다면 진채는 위험에 빠집니다.”라고 모의하여, 相與發徒圍之於野, 서로 군사를 내어 들판에서 공자의 무리를 에워쌌다. 孔子曰: “『詩』云 ‘匪兕匪虎, 率彼曠野’ 공자가 말했다. “『시경』에 ‘코뿔소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닌 것이 저 광야에서 헤맨다’라고 했으니, 吾道非邪? 吾何爲於是?” 나의 도가 잘..
24. 공자의 공직생활 이야기 魯定公立, 以孔子爲中都宰. 一年四方皆則之. 由中都爲司空, 進爲大司寇. 相定公, 會諸侯于夾谷, 孔子曰: “有文事者必有武備, 請具左右司馬以從.” 旣會, 齊有司, 請奏四方樂, 於是旗旄劍戟鼓譟而至. 孔子趨而進曰: “吾兩君爲好, 夷狄之樂, 何爲於此?” 齊景公心怍麾之. 해석 魯定公立, 以孔子爲中都宰. 노정공이 왕으로 직위하자 공자를 중도(中都)의 재상으로 임명했다. 一年四方皆則之. 1년 만에 사방이 모두 공자를 본받았다. 由中都爲司空, 進爲大司寇. 중도에서 사공(司空)이 되었고, 진출하여 대사구(大司寇)가 되었다. 相定公, 會諸侯于夾谷, 정공을 도와 제후를 협곡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孔子曰: “有文事者必有武備, 공자가 말씀드렸다. “문사의 일이 있을 때엔 반드시 무인들의 도움이 필요합니..
23. 공자의 일생 孔子名丘, 字仲尼. 其先宋人也, 孔氏滅於宋, 其後適魯. 有叔梁紇者. 與顔氏女, 禱於尼山而生孔子. 爲兒嬉戱常陳俎豆, 設禮容. 長爲季氏吏, 料量平. 嘗爲司樴吏, 畜蕃息. 適周問禮於老子, 反而弟子, 稍益進. 해석 孔子名丘, 字仲尼. 공자는 이름이 구(丘)요, 자는 중니(仲尼)다. 其先宋人也, 孔氏滅於宋, 그 선조는 송나라 사람으로, 공씨는 송나라가 멸망하자, 其後適魯. 그 후에 노나라로 갔다. 有叔梁紇者. 與顔氏女, 숙량흘(叔梁紇)은 안씨의 딸과 함께 禱於尼山而生孔子. 니구(尼山)의 산에서 기도하여 공자를 낳았다. 爲兒嬉戱常陳俎豆, 設禮容. 어려서 항상 제기를 진설하여 놀며 예의 있는 태도를 갖췄다. 長爲季氏吏, 料量平. 장성하여서는 계씨의 관리가 되어 일처리를 할 때 공정하게 했다. 嘗爲..
22. 앞을 내다본 범려 越旣滅吳, 范蠡去之. 遺大夫種書曰: “越王爲人, 長頸烏喙, 可與共患難, 不可與共安樂, 子何不去?” 種稱疾不朝, 或讒種且作亂. 賜劍死. 范蠡裝其輕寶珠玉, 與私從乘舟江湖, 浮海出齊, 變姓名, 自謂‘鴟夷子皮.’ 父子治産至數十萬, 齊人聞其賢, 以爲相. 蠡喟然曰: “居家致千金, 居官致卿相, 此布衣之極也. 久受尊名不祥.” 乃歸相印, 盡散其財, 懷重寶間行. 止於陶, 自謂‘陶朱公.’ 貲累鉅萬, 魯人猗頓, 往問術焉, 蠡曰: “畜五牸.” 乃大畜牛羊於猗氏, 十年間貲擬王公, 故天下言富者, 稱陶朱ㆍ猗頓. 해석 越旣滅吳, 范蠡去之.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키자 범려는 월나라를 떠났다. 遺大夫種書曰: 대부 종(種)에게 글을 남겼는데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越王爲人, 長頸烏喙, 可與共患難, “월왕의 사..
21. 오나라를 멸망시킨 월왕 구천 越王勾踐反國, 懸膽於坐臥, 卽仰膽嘗之曰: “女忘會稽之恥邪?” 擧國政屬大夫種, 而與范蠡, 治兵事謀吳. 太宰嚭, 譖子胥恥謀不用怨望, 夫差乃賜子胥屬鏤之劍. 子胥告其家人曰: “必樹吾墓檟, 檟可材也. 抉吾目懸東門, 以觀越兵之滅吳.” 乃自剄. 夫差取其尸, 盛以鴟夷, 投之江. 吳人憐之, 立祠江上命曰‘胥山.’ 越十年生聚, 十年敎訓. 周元王四年, 越伐吳, 吳三戰三北. 夫差上姑蘇, 亦請成於越, 范蠡不可. 夫差曰: “吾無以見子胥.” 爲幎冒乃死. 해석 越王勾踐反國, 懸膽於坐臥, 월왕 구천은 돌아와 쓸개를 자신의 자리에 달아놓고 卽仰膽嘗之曰: “女忘會稽之恥邪?” 고개를 치켜들고 그것을 맛보며 “너는 회계의 치욕을 잊었느냐?”고 의기를 북돋웠다. 擧國政屬大夫種, 而與范蠡, 나라의 정치를 대부 ..
20. 아버지의 원수를 갚은 오왕 부차 壽夢後, 四君而至闔廬, 擧伍員謀國事. 員字子胥, 楚人伍奢之子, 奢誅而奔吳. 以吳兵入郢, 吳伐楚. 闔廬傷而死.子夫差立, 子胥復事之. 夫差志復讐, 朝夕臥薪中, 出入使人呼曰: “夫差而忘越人之殺而父邪?” 周敬王二十六年, 夫差敗越于夫椒, 越王勾踐, 以餘兵棲會稽山, 請爲臣妻爲妾. 子胥言: “不可” 太宰伯嚭, 受越賂說夫差, “赦越” 해석 壽夢後, 四君而至闔廬, 수몽(합려의 父)이 죽자, (왕위가) 네 명의 아들을 거쳐 합려에 이르렀으며 擧伍員謀國事. 오원(伍員)을 천거하여 국사를 도모했다. 員字子胥, 楚人伍奢之子, 원의 자는 자서(子胥)로 초나라 오사의 아들로 奢誅而奔吳. 오사가 죽임을 당하자 오나라로 망명한 것이다. 以吳兵入郢, 吳伐楚. 오나라 병사가 영으로 들어와 오나라가 ..
19. 3년 간 놀며 뜻을 키운 초장왕 楚之先出自顓頊, 至春秋, 有曰武王, 益强大, 至文王, 始都郢. 成王與齊桓公, 盟召陵. 尋與宋襄公爭覇, 後與晉文公, 戰城濮. 歷穆王, 至莊王. 卽位三年不出令. 日夜爲樂, 令國中, 敢諫者死. 伍擧曰: “有鳥在阜, 三年不蜚不鳴, 是何鳥也?” 王曰: “三年不飛, 飛將衝天, 三年不鳴, 鳴將驚人.” 蘇從亦入諫, 王乃左執從手, 右抽刀, 以斷鐘鼓之懸. 明日聽政, 任伍擧蘇從, 國人大悅. 又得孫叔敖爲相, 遂覇諸侯. 해석 楚之先出自顓頊, 至春秋, 초나라의 선조는 전욱(顓頊)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춘추시대에 이르러 有曰武王, 益强大, 무왕 때에 더욱 강대해졌고 至文王, 始都郢. 문왕 때에 이르러 처음으로 영(郢)에 도읍했다. 成王與齊桓公, 盟召陵. 성왕과 제환공은 소릉(召陵)에서 맹약을 ..
18. 송양공의 괜한 어진 마음 宋子姓, 商紂庶兄微子啓之所封也. 後世至春秋, 有襄公玆父者, 欲覇諸侯, 與楚戰. 公子目夷請及其未陳擊之, 公曰: “君子不困人於阨.” 遂爲楚所敗, 世笑以爲‘宋襄之仁’. 해석 宋子姓, 商紂庶兄微子啓之所封也. 송나라는 자(子)씨 성으로, 상나라 주임금의 서형인 미자계(微子啓)가 봉분 받은 곳이다. 後世至春秋, 후세에 춘추시대에 이르러 有襄公玆父者, 欲覇諸侯, 양공 자보(玆父)는 제후의 패자가 되고 싶어 與楚戰. 초나라와 싸웠다. 公子目夷請及其未陳擊之, 공자 목이(目夷)는 초나라가 진을 다 치지 않았을 때 그들을 공격하자고 청하였다. 公曰: “君子不困人於阨.” 이에 양공은 “군자는 상대방이 곤란할 땐 괴롭히지 않는 법이다.”라고 말하며 공격하지 않았다가 遂爲楚所敗, 마침내 초나라에게..
17. 관중과 포숙아의 사귐 管仲字夷吾. 嘗與鮑叔賈, 分利多自與, 鮑叔不以爲貪, 知仲貧也. 嘗謀事窮困, 鮑叔不以愚, 知時有利不利也. 嘗三戰三走, 鮑叔不以爲怯, 知仲有老母也. 仲曰: “生我者, 父母, 知我者, 鮑子也.” 桓公九合諸侯, 一匡天下, 皆仲之謀. “一則仲父, 二則仲父” 해석 管仲字夷吾. 관중의 자는 이오다. 嘗與鮑叔賈, 分利多自與, 일찍이 포숙아와 장사를 했는데 이윤을 나눌 때 스스로 많이 가져갔음에도 鮑叔不以爲貪, 知仲貧也. 포숙아는 (관중을) 탐욕스럽다 여기지 않았는데, 그건 관중의 가난함을 알기 때문이다. 嘗謀事窮困, 일찍이 일을 도모할 때도 잘 되지 않았음에도 鮑叔不以愚, 知時有利不利也. 포숙아는 (관중을) 어리석다 여기지 않았는데 시기엔 유리할 때와 불리할 때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
16. 춘추오패 중 첫 패자가 된 제환공 齊姜姓, 太公望呂尙之所封也. 後世至桓公覇諸侯, 五覇桓公爲始, 名小白. 兄襄公無道, 群弟恐禍及, 子糾奔魯, 管仲傅之; 小白奔莒, 鮑叔傅之. 襄公爲弟無知所弑, 無知亦爲人所殺. 齊人召小白於莒. 而魯亦發兵送糾. 管仲嘗遮莒道, 射小白中帶鉤, 小白先至齊而立, 鮑叔牙薦管仲爲政, 公置怨而用之. 해석 齊姜姓, 太公望呂尙之所封也. 제나라는 강(姜)씨 성이니 태공망 여상(呂尙)이 봉분 받은 나라다. 後世至桓公覇諸侯, 후세에 환공 때에 제후들의 패자가 되어 五覇桓公爲始, 名小白. 오패(五覇) 환공(桓公)을 시작으로 여겼고 그의 이름은 소백이다. 兄襄公無道, 群弟恐禍及, 형 양공(襄公)이 실정을 하여 모든 아우들이 화가 미칠까 두려워 子糾奔魯, 管仲傅之; 자규(子糾)는 노나라로 망명하니..
15. 포사에게 빠진 유왕 幽王之時, 褒人有罪, 入女於王, 是爲褒姒. 王嬖之, 褒姒不好笑, 王欲其笑萬方, 不笑. 故王與諸侯約, 有寇至則擧烽火, 召其兵來援. 乃無故擧火, 諸侯悉至而無寇, 褒姒大笑. 王乃廢申后及太子宜臼, 以褒姒爲后, 其子伯服爲太子. 宜臼奔申, 王求殺之弗得, 伐申. 申侯召犬戎攻王, 王擧烽火徵兵不至, 犬戎殺王. 해석 幽王之時, 褒人有罪, 유왕이 다스리던 때에 포나라 사람이 죄를 지어 入女於王, (처벌하려 하자) 딸을 왕에게 주었으니, 是爲褒姒. 이 사람이 바로 포사(褒姒)라는 사람이다. 王嬖之, 褒姒不好笑, 왕이 그녀를 끔찍이 사랑했지만, 포사는 잘 웃질 않았기에 王欲其笑萬方, 不笑. 왕은 여러 방법으로 웃기려 했음에도 전혀 웃질 않았다. 故王與諸侯約, 有寇至則擧烽火, 오래 전부터 왕은 제후들과..
14. 행동을 삼간 주공 단 魯周公子伯禽之所封也. 周公誨成王, 王有過則撻伯禽. 伯禽就封, 公戒之曰: “我文王之子, 武王之弟, 今王之叔父. 然我一沐三握髮, 一飯三吐哺, 起以待士, 猶恐失天下賢人. 汝之魯, 愼無以國驕人.” 해석 魯周公子伯禽之所封也. 노나라는 주공의 큰 아들인 백금(伯禽)이 봉해진 땅이다. 周公誨成王, 王有過則撻伯禽. 주공이 성왕을 가르칠 때, 성왕이 잘못을 저지르면 백금을 회초리로 때렸다. 伯禽就封, 公戒之曰: 백금이 (제후로) 임명되어 떠나려 하니, 주공이 경계하며 말했다. “我文王之子, 武王之弟, “나는 문왕의 아들이고, 무왕의 아우이며, 今王之叔父. 지금 왕인 성왕(成王)의 작은 아버지다. 然我一沐三握髮, (그럼에도) 한 번 목욕하더라도 머리카락을 세 번 움켜잡아 머리의 물기를 뺐으며,..
13. 문왕이 여상을 만나다 有呂尙者, 東海上人, 窮困年老. 漁釣至周. 西伯將獵, 卜之, 曰: ‘非龍 ,非彲, 非熊, 非羆, 非虎, 非貔, 所獲覇王之輔.’ 果遇呂尙於渭水之陽, 與語大悅曰: “自吾先君太公曰: ‘當有聖人適周, 周因以興.’ 子眞是耶. 吾太公望子久矣.” 故號曰‘太公望’ 載與俱歸, 立爲師, 謂之師尙父. 해석 有呂尙者, 東海上人, 여상(呂尙)은 동해 가에 살던 이로 窮困年老. 가난했고 나이가 많았다. 漁釣至周. 낚시질을 하며 주나라에 이르렀다. 西伯將獵, 卜之, 曰: 서백은 사냥을 나가려 점을 치니 점괘가 나왔다. ‘非龍 ,非彲, 非熊, 非羆, ‘용도, 이도, 곰도, 말곰도, 非虎, 非貔, 所獲覇王之輔.’ 호랑이도, 비도 아닌 패왕을 도울 이를 잡는다.’ 果遇呂尙於渭水之陽, 與語大悅曰: 과연 여상을..
12. 수양산으로 들어간 백이와 숙제 西伯卒, 子發立, 是爲武王. 東觀兵至於盟津, 是時諸侯不期而會者八百, 皆曰: “紂可伐矣.” 王不可引歸, 紂不悛. 王乃伐紂, 載西伯木主以行. 伯夷ㆍ叔齊叩馬, 諫曰: “父死不葬, 爰及干戈, 可謂孝乎? 以臣弑君, 可謂仁乎?” 左右欲兵之, 太公曰: “義士也.” 扶而去之. 王旣滅殷爲天子, 天下宗周. 伯夷ㆍ叔齊恥之不食周粟, 隱於首陽山, 作歌曰: “登彼西山兮, 採其薇矣. 以暴易暴兮, 不知其非矣. 神農虞夏, 忽焉沒兮, 我安適歸矣. 于嗟徂兮, 命之衰矣.” 遂餓而死. 해석 西伯卒, 子發立, 서백이 죽고 그의 아들인 발(發)이 왕위를 이어 是爲武王. 무왕이 되었다. 東觀兵至於盟津, 동쪽(紂가 있는 곳)으로 무력을 보이려 맹진(盟津)에 이르렀는데, 是時諸侯不期而會者八百, 이때 제후 중에 기..
11. 포락(炮烙)의 형벌을 행한 은나라 폭군 주왕 後至帝辛, 號爲紂. 資辯捷疾, 手格猛獸. 智足以拒諫, 言足以飾非. 紂伐有蘇氏, 有蘇以妲己女焉. 有寵. 厚賦稅以實鹿臺之財, 盈鋸橋之粟. 廣沙丘苑臺, 以酒爲池, 懸肉爲林, 爲長夜之飮, 百姓怨望, 諸侯有畔者. 紂乃重刑辟, 爲銅柱, 以膏塗之, 加於炭火之上. 使有罪者緣之, 足滑跌墜火中, 與妲己觀之大樂. 名曰: ‘炮烙之刑’ 庶兄微子, 數諫不從, 去之, 比干諫三日, 不去. 紂怒曰: “吾聞, 聖人之心有七竅, 剖而觀其心.” 箕子佯狂爲奴, 紂囚之, 周發率諸侯伐紂. 紂敗于牧野, 衣寶玉自焚死, 殷亡. 해석 後至帝辛, 號爲紂. 뒤에 제신 때에 이르러 호를 주(紂)라 했다. 資辯捷疾, 手格猛獸. 그의 품성은 말 잘하는 이를 이겨 먹을 만했고, 맨손으로 맹수를 거침없이 잡을 만했..
10. 너무도 공평한 주나라 문왕 至古公亶父, 邑於岐山之下居焉. 古公, 長子太白, 次虞仲, 少子季歷. 季歷娶太任生昌, 有聖德. 太白虞仲, 知古公欲立季歷以傳昌, 乃如荊蠻, 斷髮文身, 以讓季歷. 古公卒, 公季立, 公季卒, 其子昌立, 爲西伯. 西伯修德, 諸侯歸之. 虞ㆍ芮爭田不能決, 乃如周. 入界見耕者, 皆遜畔, 民俗皆讓長. 二人慙相謂曰: “吾所爭, 周人所恥.” 乃不見西伯而還, 俱讓其田不取. 漢南歸西伯者四十國, 皆以爲受命之君. 三分天下有其二. 해석 至古公亶父, 邑於岐山之下居焉. 주나라는 고공단보 때에 이르러 기산(岐山)의 아래에 도읍했다. 古公, 長子太白, 次虞仲, 少子季歷. 고공에겐 첫째 아들 태백(太白)과 둘째 아들 우중(虞仲)과 셋째 아들 계력(季歷)이 있었다. 季歷娶太任生昌, 有聖德. 계력은 태임(太任)..
9. 은혜가 새와 짐승에도 미친 은나라 탕왕 殷王成湯, 子姓, 名履. 其先曰‘契’, 帝嚳子也. 母簡狄見玄鳥墜卵, 呑之生契, 爲唐虞司徒, 封於商. 湯始都亳. 湯出見有張網四面, 而祝之曰: “從天降從地出, 從四方來者, 皆罹吾網.” 湯曰: “噫盡之矣.” 乃解其三面, 改祝曰: “欲左左, 欲右右, 不用命者, 入吾網.” 諸侯聞之曰: “湯德至矣, 及禽獸.” 伊尹, 相湯伐桀, 放之南巢, 諸侯尊湯爲天子. 해석 殷王成湯, 子姓, 名履. 은왕인 성탕은 자(子)씨 성으로 이름은 리(履)다. 其先曰‘契’, 帝嚳子也. 그의 선조인 설(契)은 제곡(帝嚳)의 아들이다. 母簡狄見玄鳥墜卵, 呑之生契, 어머니 간적(簡狄)이 검은 새가 알을 떨어뜨리는 걸 보고 그것을 삼켜 설을 낳았으니, 爲唐虞司徒, 封於商. 그는 요와 순의 사도로 일했으며..
8. 치수를 잘한 하나라 우왕 夏后氏禹, 姒姓, 鯀之子也. 鯀湮洪水, 舜擧禹代鯀. 勞身焦思, 居外十三年, 過家門不入. 陸行乘車, 水行乘船, 泥行乘橇, 山行乘輦, 開九州, 通九道, 陂九澤, 度九山. 告厥成功, 舜嘉之, 使率百官行天子事. 舜崩, 乃踐位. 聲爲律身爲度, 一饋十起, 以勞天下之民. 收九牧之金, 鑄九鼎. 會諸侯於塗山, 執玉帛者萬國, 南巡至會稽山而崩, 子啓賢, 能繼禹. 해석 夏后氏禹, 姒姓, 鯀之子也. 하후씨 우(禹)는 사(姒)씨 성으로 곤(鯀)의 아들이다. 鯀湮洪水, 舜擧禹代鯀. 곤이 홍수를 다스렸으나 (실패했기에) 순임금은 우를 천거하여 곤을 대신하도록 했다. 勞身焦思, 居外十三年, 몸을 수고롭게 하고 생각을 하얗게 불태워 외근을 한 13년 동안 過家門不入. 집 앞을 지날 때도 들어갈 시간적인 여..
7. 효로 나라를 선양 받은 순임금 帝舜有虞氏, 名重華, 瞽瞍之子也. 父惑於後妻, 愛小子象. 常欲殺舜, 舜盡孝悌之道. 所居成聚, 二年成邑, 三年成都. 堯聞之聰明, 擧於畎畝, 妻以二女, 曰: ‘娥皇女英.’ 彈五絃之琴, 歌南風之詩, 而天下治. 其詩曰: ‘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慍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 時景星出, 卿雲興, 百工相和而歌曰: ‘卿雲爛兮, 禮漫漫兮, 日月光華, 旦復旦兮.’ 舜子商均不肖, 乃遷禹於天. 舜南巡狩, 崩於蒼梧之野, 禹卽位. 해석 帝舜有虞氏, 名重華, 제순유우씨는 이름이 중화(重華)로 瞽瞍之子也. 고수(瞽瞍)의 아들이다. 父惑於後妻, 愛小子象. 아비는 계모에 빠져, 둘 사이에서 낳은 상(象)만을 사랑하였다. 常欲殺舜, 舜盡孝悌之道. 그래서 항상 순을 죽이려고 했지만, 순은 효제..
6. ‘격양가’의 왕인 요(堯)임금 帝堯陶唐氏, 帝嚳子也. 其仁如天, 其知如神, 就之如日, 望之如雲. 都平陽, 茅茨不剪, 土階三等. 治天下五十年. 不知天下治歟, 不治歟. 乃微服游於康衢. 有老人, 含哺鼓腹, 擊壤而歌曰: “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何有於我哉?” 해석 帝堯陶唐氏, 帝嚳子也. 제요도당씨(帝堯陶唐氏)는 제곡(帝嚳)의 아들이다. 其仁如天, 其知如神, 어질기가 하늘과 같고 지혜롭기가 신과 같았으며, 就之如日, 望之如雲. 나아감은 해와 같고 바라봄은 구름과 같았다. 都平陽, 茅茨不剪, 평양(平陽)에 도읍하여 (궁전은) 띠풀로 지붕을 엮되 끝을 다듬지 않았고 土階三等. 흙 계단은 3칸으로 만들 정도로 검소했고 治天下五十年. 천하를 50년 간 통치했다. 不知天下治歟, 不治歟. (요임..
5. 태평성대를 구가한 황제의 아들 小昊金天氏, 名玄囂, 黃帝子也. 亦曰‘靑陽.’ 其立也, 鳳鳥適至, 以鳥紀官. 해석 小昊金天氏, 名玄囂, 黃帝子也. 소호금천씨는 이름이 현효(玄囂)로 황제의 아들이며, 亦曰‘靑陽.’ 또한 ‘청양(靑陽)’이라고도 불린다. 其立也, 鳳鳥適至, 그가 재위할 때 봉황이 마침 이르러 왔기에, 以鳥紀官. 새 이름으로 관직명을 기록했다. 인용 개관 사기 목차 오제 시대
4. 최초의 천자가 된 황제씨 皇帝軒轅氏, 公孫姓. 母見大電, 繞北斗樞星, 感而生帝. 炎帝世衰, 諸侯相侵伐, 軒轅乃習用干戈, 以征不享, 諸侯咸歸之. 與炎帝戰于阪泉之野克之. 蚩尤作亂, 其人銅鐵額. 能作大霧, 軒轅作指南車. 與蚩尤戰於涿鹿之野禽之, 遂代炎帝, 爲天子. 造律呂爲文章, 以表貴賤. 作舟車以濟不通, 遠夷之國, 莫不入貢. 帝崩, 有子二十五人, 其得姓者十四. 해석 皇帝軒轅氏, 公孫姓. 황제헌원씨는 성이 공손(公孫)이다. 母見大電, 繞北斗樞星, 그의 어머니가 큰 번개가 북두칠성을 감싸 안고 있는 걸 보고 感而生帝. 감응하여 황제를 낳았다. 炎帝世衰, 諸侯相侵伐, 염제의 정치가 쇠하여 제후들이 서로 침범하여 정벌했다. 軒轅乃習用干戈, 以征不享, 헌원은 이에 방패와 창의 사용법을 익혀 공손하지 않은 제후를 치..
3. 수렵을 알려준 복희씨와 농사를 알려준 수인씨 太昊伏羲氏, 蛇身人首, 代燧人氏以王. 始畵八卦, 造書契, 以代結繩之政. 制嫁娶, 以儷皮爲禮, 結綱罟, 敎佃漁, 養犧牲, 以充庖廚故曰‘庖犧.’ 炎帝神農氏 姜姓, 人身牛首, 繼太昊伏羲氏而立. 斲木爲耜, 揉木爲耒, 始敎耕. 嘗百草, 始有醫藥. 敎人日中爲市, 交易而退. 都於陳, 徙曲阜, 傳姓凡八世, 五百二十年. 해석 太昊伏羲氏, 蛇身人首, 태호복희씨는 몸은 뱀이지만, 머리는 사람 머리로 代燧人氏以王. 수인씨를 이어 왕이 되었다. 始畵八卦, 造書契, 비로소 팔괘를 그렸고 서계(최초의 문자)를 만들어 以代結繩之政. 결승【결승(結繩): 새끼의 매듭 모양과 숫자로, 매듭에 따른 약속을 정해 소통하게 하는 방식】의 정치를 대신했다. 制嫁娶, 以儷皮爲禮, 시집가고 장가가는..
2. 땅을 나눠 다스린 인황씨와 집 짓는 법을 알려준 유소씨, 불 다루는 법을 알려준 수인씨 人皇氏, 兄弟九人, 分長九州. 凡一百五十世, 合四萬五千六百年. 人皇氏以後, 有曰有巢氏, 構木爲巢, 食木實. 至燧人氏, 始鑽鐩, 敎人火食. 在書契以前, 年代國都不可攷. 해석 人皇氏, 兄弟九人, 인황씨는 형제가 9명이어서 分長九州. 나누어 9주의 장이 되었다. 凡一百五十世, 合四萬五千六百年. 그래서 150대가 되니, 모두 합하면 4만 5천 6백 년을 다스렸다. 人皇氏以後, 有曰有巢氏, 인황씨 이후엔 유소씨가 있어 構木爲巢, 食木實. 나무를 엮어 집을 만들었고 나무 열매를 먹었으며 재위했다. 至燧人氏, 始鑽鐩, 수인씨에 이르러 처음으로 불을 사용할 수 있게 되어 敎人火食. 사람들에게 익혀 먹는 법을 가르쳤다. 在書契以..
1. 달력을 만든 천황씨와 목덕으로 다스린 지황씨 天皇氏, 以木德王. 歲起攝提, 無爲而化. 兄弟十二人, 各一萬八千歲. 地皇氏, 以火德王. 兄弟十一人, 亦各一萬八千歲. 해석 天皇氏, 以木德王. 천황씨는 목덕으로 왕이 되었다. 歲起攝提, 無爲而化. 정월을 인(寅)월【섭제(攝提): 고갑자에서, 천간(天幹)의 열셋째. 인(寅)과 같다】로 정했으며 무위의 다스림으로 교화했다. 兄弟十二人, 各一萬八千歲. 형제가 12명이 있었는데, 각각 돌아가며 왕이 되어 1만 8천년 동안 다스렸다. 地皇氏, 以火德王. 지황씨는 화덕(火德)으로 왕이 되었다. 兄弟十一人, 亦各一萬八千歲. 형제는 11명이 있어 또한 각각 돌아가며 왕이 되어 1만 8천년 동안 다스렸다. 인용 개관 사기 목차 삼황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