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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14-2. 세존이시여! 만약 여기 다시 한 사람이 있어 이 경을 얻어 듣고, 그 믿는 마음이 깨끗하면 곧 참된 모습을 깨달을 것입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제일의 희유한 공덕을 성취할 것임을 알겠나이다. 世尊, 若復有人得聞是經, 信心淸淨, 則生實相. 當知是人成就第一希有功德. 세존, 약복유인득문시경, 신심청정, 즉생실상. 당지시인성취제일희유공덕. 14-3. 세존이시여! 이 참된 모습이라고 하는 것은 곧 어떤 모습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 참된 모습이라 이름할 수 있다 말씀하셨습니다. 世尊! 是實相者, 則是非相, 是故如來說名實相. 세존! 시실상자, 즉시비상, 시고여래설명실상. 여기 ‘참된 모습’은 집역(什譯)의 실상(實相)인데, 이 실상(實相)이 산스크리트 원문에서 정확하게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명확하..
14. 상을 떠나 영원으로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14-1. 이 때에, 수보리가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그 의취를 깊게 깨달아 눈물 흘려 흐느끼며,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정말 드문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깊고 깊은 경전을 설하신다는 것은! 저는 예로부터 얻은 바의 혜안으로도 이와 같은 경을 얻어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爾時, 須菩堤聞說是經, 深解義趣, 涕淚悲泣而白佛言: ”希有世尊! 佛說如是甚深經典. 我從昔來所得慧眼, 未曾得聞如是之經. 이시, 수보리문설시경, 심해의취, 체루비읍이백불언: ”희유세존! 불설여시심심경전. 아종석래소득혜안, 미증득문여시지경. 이 제14분은 『금강경』 전체에서 가장 긴 분이다. 콘체의 말대로 주된 암송이 제13분에서 끝났다고 한다면,..
13-8.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겠느뇨?” “須菩堤! 於意云何? 可以三十二相見如來不?”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삼십이상견여래불?” 13-9. “볼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삼십이상으로는 여래를 볼 수가 없나이다. 어째서 그러하오니이까? 여래께서 말씀하신 삼십이상은 곧 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로소 삼십 이상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이오니이다.” “不也. 世尊! 不可以三十二相得見如來. 何以故? 如來說三十二相卽是非相, 是名三十二相.” “불야. 세존! 불가이삼십이상득견여래. 하이고? 여래설삼십이상즉시비상, 시명삼십이상.” 13-10. “수보리야! 만약 여기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갠지스강의 모래 수와 같은 많은 목숨을 다 바쳐 보시를 했다 하더라도, 또한 다..
13-4. 수보리는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말씀하신 바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須菩堤白佛言: “世尊! 如來無所說.” 수보리백불언: “세존! 여래무소설.” 13-5.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삼천대천 세계의 모든 티끌이 많다 하겠느뇨?” “須菩堤! 於意云何? 三千大千世界所有微塵, 是爲多不?” “수보리! 어의운하? 삼천대천세계소유미진, 시위다불?” 13-6. 수보리가 사뢰었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須菩堤言: “甚多. 世尊!” 수보리언: “심다. 세존!” 13-7. “수보리야! 그 모든 티끌을 여래는 설하기를, 티끌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비로소 티끌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여래는 이 세계가 세계가 아니라고 설파한다. 그래서 비로소 세계라 이름할 수 있는..
13-3. “그 까닭이 무엇이뇨? 수보리야! 부처가 설한 반야바라밀은 곧 반야바라밀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가 설한 법이 과연 있다고 생각하느냐?” “所以者何? 須菩堤! 佛說般若波羅蜜, 則非般若波羅蜜. 須菩堤! 於意云何? 如來有所說法不?” “소이자하? 수보리! 불설반야바라밀, 칙비반야바라밀.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소설법불?” ‘여당봉지(汝當奉持)’에서 멋있게 끝난 피날레를 억지로 논리를 붙여내어 끌어간 느낌이 역력하다. 그러나 퍽으나 자연스럽게 논지를 펼쳐가고 있다. 그런데 여기 중요한 판본의 문제가 하나 있다. 우리나라 시중에서 통용되고 있는 많은 『금강경』이 라집역본(羅什譯本)임을 표방하고 있으면서도 그 잘못된 의취(義趣)에 따라 제멋대로 가감(加減)한 비선본(非善本..
13. 법에 따라 받아지녀라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 13-1. 이 때에, 수보리는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이 경을 마땅히 무어라 이름하오며, 우리들은 어떻게 이 경을 받들어 지녀야 하오리까?” 爾時, 須菩堤白佛言: “世尊! 當何名此經, 我等云何奉持?” 이시, 수보리백불언: “세존! 당하명차경, 아등운하봉지?” 13-2.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이 경을 이름하여 금강반야바라밀이라 하라. 이 이름으로써 그대는 이를 마땅히 받들어 지닐지라.” 佛告須菩堤: “是經名爲金剛般若波羅蜜, 以是名字, 汝當奉持.” 불고수보리: “시경명위금강반야바라밀, 이시명자, 여당봉지.” 콘체는 『금강경』이 바로 여기서 끝난다고 보고 있다. 사실 콘체의 이와 같은 분석은 공부를 깊게 한 사람의 통찰력 있는 ..
12-2. 수보리야! 마땅히 알지니, 이 사람은 최상이며 제일인 희유의 법을 성취하리라는 것을, 그리고 이 경전이 있는 곳이 바로 부처님과 그의 존경스러운 제자들이 계신 곳이 된다는 것을.” 須菩堤! 當知是人, 成就最上第一希有之法. 若是經典所在之處, 則爲有佛若尊重弟子.” 수보리! 당지시인, 성취최상제일희유지법. 약시경전소재지처, 즉위유불약존중제자.” 이것은 ‘교회론’의 최종적 해석이다. 내가 이 『금강경』을 내 방에 꽂아두면(그 말씀을 내 방과 내 마음에 모시면) 곧 내 방이 부처님의 사리탑이 되고 법당이 되는 것이다. 『신약성경』을 내 책상에 꽂아두면 바로 그 책상이 베드로의 성전이 되는 것이요, 예수님이 살아계신 교회가 되는 것이다. 그 얼마나 참신하고 과격하고 진실한 사상인가? 동포들이여! 앞으로 ..
12. 존중해야 할 바른 가르침 존중정교분(尊重正敎分) 12-1. “이제 다음으로 수보리야! 어디서나 이 경을 설하되, 사구게 하나라도 설하는데 이른다면, 마땅히 알라, 바로 그곳이 일체세간의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가 모두 기꺼이 공양하는 부처님의 탑묘와도 같은 곳이 되리라는 것을, 하물며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경 전체를 수지하고 독송함에 있어서랴! “復次須菩堤! 隨說是經乃至四句偈等, 當知此處一切世間天人阿修羅, 皆應供養如佛塔廟. 何況有人盡能受持讀誦! “복차수보리! 수설시경내지사구게등, 당지차처일체세간천인아수라, 개응공양여불탑묘. 하황유인진능수지독송! 이 분 역시 대승불교운동의 역사적 상황을 간접적으로 시사해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 『금강경』의 성립이, 부처님의 탑묘와 같은 것이 많이 지어진 시대를 배경..
11-4. 수보리가 사뢰었다: “정말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須菩堤言: “甚多. 世尊!” 수보리언: “심다. 세존!” 11-5.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 가운데서, 사구게 등을 받아 지니게 되어, 그것을 딴 사람들에게 잘 설명해 준다면, 이 복덕은 앞서 칠보의 복덕보다 더 크리라.” 佛告須菩堤: “若善男子善女人, 於此經中, 乃至受持四句偈等, 爲他人說, 而此福德勝前福德.” 불고수보리: “약선남자선녀인, 어차경중, 내지수지사구게등, 위타인설, 이차복덕승전복덕.” 인도인들의 과장법의 표현과 그 진실한 내용이 잘 조화되어 있다. 과연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돈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금강경』은 칠보의 공덕을 결코 천시하거나 낮잡아보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그것도 ‘..
11-2. 수보리가 사뢰었다: “참으로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모든 갠지스강만이라도 너무 많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거늘, 하물며 그 모래 수이겠습니까?” 須菩堤言: “甚多. 世尊! 但諸恒河尙多無數, 何況其沙?” 수보리언: “심다. 세존! 단제항하상다무수, 하황기사?” 11-3. “수보리야! 내 지금 너에게 진실한 말로 이르노니,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여기 있어, 칠보로써 그 모든 갠지스강의 모래 수만큼의 삼천대천세계를 채워 보시한다고 한다면, 복을 얻음이 많겠느냐?” “須菩堤! 我今實言告汝. 若有善男子善女人, 以七寶滿爾所恒河沙數三千大千世界, 利用布施, 得福多不?” “수보리! 아금실언고여. 약유선남자선녀인, 이칠보만이소항하사수삼천대천세계, 이용보시, 득복다불?” ‘아금실언고여(我今實言告汝)’는 여태까..
11. 함이 없음의 복이여, 위대하여라! 무위복승분(無爲福勝分) 11-1. “수보리야! 갠지스강에 가득찬 모래알의 수만큼, 이 모래만큼의 갠지스강들이 또 있다고 하자! 네 뜻에 어떠하뇨? 이 모든 갠지강들에 가득찬 모래는 참으로 많다 하지 않겠느냐?” “須菩堤! 如恒河中所有沙數, 如是沙等恒河! 於意云何? 是諸恒河沙寧爲多不?” “수보리! 여항하중소유사수, 여시사등항하! 어의운하? 시제항하사녕위다불?”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분(分)이다. 인도인들의 프라이드와 시적 정취가 너무도 잘 표현된 아름다운 분이다. 인도의 고문명(古文明)은 하라파(Harappa), 모헨죠다로(Mohenjodaro) 등의 유적지에서 보여지는 하라판문명(Harappan Civilization)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이것을 포함하여 인더스강..
10-7. 수보리가 사뢰었다: “정말 큽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그러하오니이까? 부처님께서 그 몸은 몸이 아니라 말씀하시기 때문에 비로소 이를 큰 몸이라 이름할 수 있습니다.” 須菩堤言: “甚大. 世尊! 何以故? 佛說非身, 是名大身.” 수보리언: “심대. 세존! 하이고? 불설비신, 시명대신.” ‘비신(非身), 시명대신(是名大身)’과 ‘비장엄(非莊嚴), 시명장엄(是名莊嚴)’은 동일한 논리적 구조로 되어 있다. 부정이 아닌 대긍정의 논리다. 그러나 그 대긍정의 전제는 신(身)이 신(身)이 아니라고 하는 ‘무아(無我)’(실체의 부정)인 것이다. 『금강경』은 긍정의 논리이지, 부정의 논리가 아니라는 것을 특히 유념해주기 바란다. 인용 목차 금강경
10-6. 수보리야! 비유컨대, 그 몸이 수미산처럼 큰 사람이 여기 있다고 하자. 네 뜻에 어떠하뇨? 이 몸이 크다 할 것이냐? 크지 않다 할 것이냐?” 須菩堤! 譬如有人身如須彌山王. 於意云何? 是身爲大不?” 수보리! 비여유인신여수미산왕. 어의운하? 시신위대불?” 논의는 불국토(佛國土)의 정화행위로부터 법신(法身)의 인식문제로 옮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동일한 문제의식의 패턴 속에서 논구하고 있다. 여기 역시 수미산(須彌山)만큼 큰 법신의 부정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의 긍정인 것이다. ‘수미산왕(須彌山王)’이라는 표현은 수미산이 산 중의 왕이라 해서 붙인 이름일 수도 있지만(Suppose, Subhuti, there were a man endowed with a body, a huge bo..
10-5. “그러므로, 수보리야! 뭇 보살과 마하살은 반드시 이와 같이 맑고 깨끗한 마음을 내어야 한다. 마땅히 색에 머물러 그 마음을 내지 말 것이며, 또한 마땅히 성ㆍ향ㆍ미ㆍ촉ㆍ법에 머물러 그 마음을 내지 말 것이다. 반드시 머무는 곳이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是故須菩堤! 諸菩薩摩訶薩應如是生淸淨心.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無所住而生其心. “시고수보리! 제보살마하살응여시생청정심.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무소주이생기심. 앞의 ‘시명장엄(是名莊嚴)’의 인식론적 내용을 설파하고 있다. 나의 마음이 불토(佛土)를 구성하는 육경(六境)에 머물러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불토라고 하는 인식작용의 대상이 근원적으로 해소되어야 하는 것이다. 처음에 색을 말하고 나중에 성(..
10-3.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보살이 불토를 장엄하게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아니 되느냐?” “須菩堤! 於意云何? 菩薩莊嚴佛土不?” “수보리! 어의운하? 보살장엄불토불?” 10-4. “아니 되옵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이오니이까? 불토를 장엄하게 한다 하는 것은 장엄하게 함이 없기 때문에, 비로소 장엄하다 이름하는 것이오니이다.” “不也. 世尊! 何以故? 莊嚴佛土者, 則非莊嚴, 是名莊嚴.” “불야. 세존! 하이고? 장엄불토자, 즉비장엄, 시명장엄.” 여기에 나오는 ‘장엄(莊嚴)’이라는 말은 ‘vyūha’에 해당되는 말인데 그 원의는 ‘건립(formation)’, ‘보기 좋은 배열, 배치(distribution, arrangement)’, ‘수식, 장식’, ‘구조물(structure)’, ..
10-2.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연등부처님의 곳에서 법에 얻은 바가 실로 아무것도 없습니다.” “世尊! 如來在然燈佛所, 於法實无所得.” “세존! 여래재연등불소, 어법실무소득.” 산스크리트 원문에는 앞의 질문이 ‘여래가 연등불(디빵까라따타가따) 아래서 얻은 그 무엇이 있단 말인가?’의 뉴앙스로 되어 있다. 여기 ‘소득(所得)’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즉 ‘얻은 그 무엇’, 바로 그 무엇이 실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수보리의 대답은 실로 그 무엇을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무화(無化)시키고 공화(空化)시켜 버리는 것이다. 여래가 전생에서 샤캬의 성자(샤캬무니=석가모니)가 됨을 확약 받았기에 성자가 되었다면, 그것은 참으로 소승적(小乘的) 발상이요, 대승적 발상이 아니다. 예수가 오직 다윗왕의 자손이..
10. 깨끗한 땅을 장엄케 하라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 10-1.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가 옛날에 연등부처님의 곳에서, 법에 얻은 바가 있느냐? 있지 아니하냐?” 佛告須菩堤: “於意云何? 如來昔在然燈佛所, 於法有所得不?” 불고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석재연등불소, 어법유소득불?” 여기 ‘정토(淨土)’란 이름이 분명(分名)으로 나오고 있는데 본문(本文) 속의 ‘불토(佛土)’와 동일한 뜻이다. 정토(淨土)란 말은 한역(漢譯) 『무량수경(無量壽經)』에 나오는 ‘청정국토(淸淨國土)’라는 말을 두 글자로 압축시킨 것이다. 정토(淨土)란 ‘부처님의 나라’ 즉 깨달은 자들의 나라며 정복(淨福)의 영원한 이상향이다. 불계(佛界), 불국(佛國), 불찰(佛刹)로도 쓰이는데, 이는 우리가..
9-10. 세존이시여! 제가 만약 ‘나는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라는 생각을 했다면, 세존께서는 수보리야말로 아란나의 행을 즐기는 자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수보리는 실제로 행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곧 수보리야말로 아란나의 행을 즐긴다고 이르신 것입니다.” 世尊! 我若作是念我得阿羅漢道, 世尊則佛說須菩堤是樂阿蘭那行者. 以須菩堤實無所行, 而名須菩堤是樂阿蘭那行.” 세존! 아약작시념아득아라한도, 세존즉불설수보리시낙아란나행자. 이수보리실무소행, 이명수보리시낙아란나행.” 여기 ‘아란나(阿蘭那)의 행(行)을 즐기는 자’(araṇā-vihārin)라는 표현은 앞의 ‘무쟁삼매(無諍三昧)를 얻은 사람’과 같은 표현이다. ‘득무쟁삼매인(得無諍三昧人)’이라는 것은 의역이고 ‘낙아란나행자(樂阿蘭那行者)’는 음역이다. ..
9-9.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제가 무쟁삼매의 사람 중에서 가장 으뜸됨을 얻었다고 말씀하시니, 이는 욕심을 떠난 제일의 아라한이라는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욕심을 떠난 아라한이다라는 이 같은 생각을 짓지 않습니다. 世尊! 佛說我得無諍三昧人中最爲第一, 是第一離欲阿羅漢. 我不作是念, 我是離欲阿羅漢. 세존! 불설아득무쟁삼매인중최위제일, 시제일리욕아라한. 아불작시념, 아시리욕아라한. ‘무쟁삼매인중최위제일(無靜三昧人中最爲第一)’의 원문은 ‘araṇā-vihāriṇām agryaḥ’이며 그 뜻을 직역하면, ‘다툼이 없는 상태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최고의 사람’이다. ‘다툼이 없다’는 것은 나 이외의 인간들로부터의 온갖 모욕과 박해와 비난, 그리고 외도(外道)로부터의 비판에 대해 더불어 싸우지 않는..
9-8. 수보리가 사뢰었다: “아니 되옵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이오니이까? 실제로 아라한이라고 이름할 수 있는 법이 도무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아라한이 ‘나는 아라한의 도를 얻었노라’하는 이런 생각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곧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須菩堤言: “不也. 世尊! 何以故? 實無有法名阿羅漢. 世尊! 阿羅漢作是念, 我得阿羅漢道, 卽爲著我人衆生壽者. 수보리언: “불야. 세존! 하이고? 실무유법명아라한. 세존! 아라한작시념, 아득아라한도, 즉위착아인중생수자. 번역이 실제적 의미에 따라 조금씩 변주되면서 읽기 쉽게 되어 있으므로 그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 의미는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 나는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 되었다라고 ..
9-7.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아라한이 ‘나는 아라한의 도를 얻었노라’하는 생각을 해서 되겠느냐? 아니 되겠느냐?” “須菩堤! 於意云何? 阿羅漢能作是念, 我得阿羅漢道不?” “수보리! 어의운하? 아라한능작시념, 아득아라한도불?” 제1위(第一位)로부터 제4위(第四位)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같은 패턴으로 나열되어 있다. 그런데 앞의 3위는 모두 ‘과(果)’로 되어있었는데 최후의 제4위는 그것이 ‘도(道)’로 되어 있다. 아라한의 증득(證得)의 상태가 이전의 3단계의 상태와는 다르다고 하는 차별성을 살리는 표현으로, 범문(梵文)에 그렇게 되어있기 때문에 라집(羅什)이 그에 맞추어 번역한 것이다. 앞의 세 경우는 ‘phalaṃ’이라하여 ‘열매(fruit)’라는 표현을 썼지만, 아라한의 경우는 ‘arhat..
9-5.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아나함이 ‘나는 아나함의 경지를 얻었노라’하는 이런 생각을 해서 되겠느냐? 아니 되겠느냐?” “須菩堤! 於意云何? 阿那含能作是念, 我得阿那含果不?” “수보리! 어의운하? 아나함능작시념, 아득아나함과불?” 9-6. 수보리가 사뢰었다: “아니 되옵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이오니이까? 아나함을 이름하여 ‘이제 다시 아니 올 자’라 하지만, 실제로 온다 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에만 아나함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입니다.” 須菩堤言: “不也. 世尊! 何以故? 阿那含名爲不來, 而實无來. 是故名阿那含.” 수보리언: “불야. 세존! 하이고? 아나함명위불래, 이실무래. 시고명아나함.” 우리 해인사본(本)에 ‘실무래(實无來)’로 되어 있는 부분이 명본(明本)에는 ‘실무불래(..
9-3.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사다함이 ‘나는 사다함의 경지를 얻었노라’하는 이런 생각을 해서 되겠느냐? 아니 되겠느냐?” “須菩堤! 於意云何? 斯陀含能作是念, 我得斯陀含果不?” “수보리! 어의운하? 사디함능작시념, 아득사다함과불?” 9-4. 수보리가 사뢰었다: “아니 되옵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이오니이까? 사다함을 이름하여 ‘한 번 왔다갔다 할 자’라 하지만, 그는 실제로 왔다갔다 함이 없기 때문에 바로 사다함이라 이름하는 것입니다.” 須菩堤言: “不也. 世尊! 何以故? 斯陀含名一往來, 是名斯陀含.” 수보리언: “불야. 세존! 하이고? 사다함명일왕래, 시명사다함.” 라집(羅什)이 음역과 의역을 이용하여 기나긴 산스크리트 원문을 간결하게 처리해버리는 한역방식이 참으로 돋보인다. 사다함? 하늘..
9-2. 수보리가 사뢰었다: “아니 되옵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이오니이까? 수다원을 이름하여 ‘들어간 자’라 하지만, 그는 들어감이 없습니다. 그는 형체에도, 소리에도, 내음새에도, 맛에도, 만져지는 것에도, 마음의 대상에도 들어간 적이 없기 때문에만 수다원이라 이름할 수 있습니다.” 須菩堤言: “不也. 世尊! 何以故? 須陀洹名爲入流, 而無所入. 不入色聲香味觸法. 是名須陀洹.” 수보리언: “불야. 세존! 하이고? 수다원명위입류, 이무소입. 불입색성향미촉법. 시명수다원.” 수다원이 수다원일 수 있는 것은 평화로운 수도의 생활에 들어갔기 때문에가 아니다. 어느 곳에도 들어감이 없기 때문에 수다원인 것이다. 이 분(分)에서 깨고자 하는 것은 모든 수도인들의 자의식이다. 수행의 모든 단계에서 생겨나는 자의식..
9. 어느 한 상도 상이 아니어라 일상무상분(一相無相分) 9-1.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수다원이 ‘나는 수다원의 경지를 얻었노라’하는 이런 생각을 해서 되겠느냐? 아니 되겠느냐?” “須菩堤! 於意云何? 須陀洹能作是念, 我得須陀洹果不?” “수보리! 어의운하? 수다원능작시념, 아득수다원과불?” 이 제9분은 역사적으로 『금강경』의 위치를 확인하는데 매우 중요한 분이다. 『금강경』은 소승과 대승이라는 구분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당대에 성립한 부파불교에 대한 통렬한 반성 위에서 출발하고 있다. 바로 이 분(分)은 『금강경』이 쓰여진 당대의 부파불교의 통념에 대한 매우 통렬한 비판의 어조를 깔고 있다. 불교의 언어는 매우 밋밋하고 두리뭉실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배면에 숨어..
8-5. 수보리야! 이른바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곧 불법이 아닌 것이다.” 須菩堤! 所謂佛法者, 卽非佛法.” 수보리! 소위불법자, 즉비불법.” 참으로 충격적인 최후의 일언(一言)이다. 불법은 곧 불법이 아니다. 여기서의 불(佛)은 곧 ‘깨달음’이다. 불법(佛法)은 곧 깨달음의 법이다. 이 최후의 충격적 일언(一言)은 바로 대승불교의 마지막 선포인 것이다. 그것은 바로 ‘깨달음’ 그 자체의 부정인 것이다. 번뇌가 곧 보리다! 최후의 만찬에서의 대승예수의 최후의 일언은 이런 것이었다: “나 예수의 말은 예수의 말이 아니다.” 인용 목차 금강경
8-4. 어째서 그러한가? 수보리야! 일체의 모든 부처님, 그리고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이, 모두 이 경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何以故? 須菩堤! 一切諸佛及諸佛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 皆從此經出. 하이고? 수보리! 일체제불급제불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 개종차경출. 바로 이 『금강경』이 설(說)하고 있는 대승의 지혜야말로 일체의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의 깨달음의 원천인 것이다. 이 『금강경』의 설법을 떠나서 우리는 반야를 논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 붓다의 최후의 도약이 이루어진다. 어느 누구도 말할 수 없는 최후의 심판, 그것은 무엇이었는가? 다음을 보라! 인용 목차 금강경
8-3. “만약 또한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경을 받아 지니고 곧 이 경 중에서 사구게라도 하나 타인을 위하여 설파하는데 이른다면, 이 사람의 복이 칠보공덕의 사람의 복을 뛰어 넘으리라. “若復有人, 於此經中, 受持乃至四句偈等爲他人說, 其福勝彼. “약복유인, 어차경중, 수지내지사구게등위타인설, 기복승피. 혹자가 나에게 묻기를, 문 중에 경(經)이라 하니 이는 불타의 한나절 설법인데 어찌 경(經)이라 할손가? 이미 『금강경』이라는 책이 설법자의 손에 쥐어져 있기라도 하단 말가? 재미있는 지적이기는 하나,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질문이다. 인도문화는 본시 오디오문화다. 입에서 귀로 전달되는 것이 일차적인 중요성을 갖는 문화다. 그런데 이 질문은 비디오를 중시하는 중국문화전통의 사람에게서 나온 질문일 뿐이다..
8-2. 수보리가 사뢰었다: “정말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그러하오니이까?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이 복덕은 곧 복덕의 본성을 지니지 않기 때문이오이다. 그러한 까닭에 여래께서는 복덕이 많다고 말씀하신 것이오니이다.” 須菩堤言: “甚多. 世尊! 何以故? 是福德卽非福德性, 是故如來說 福德多.” 수보리언: “심다. 세존! 하이고? 시복덕즉비복덕성, 시고여래설복덕다.” 보화를 하늘에 쌓아둔다는 것은 곧 대승적 마음가짐을 말하는 것이다. 대승적 마음가짐이란, 곧 복덕에 복덕이라는 실체성을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복덕을 복덕으로 생각하지 않을 때만 복덕은 복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노자(老子)는 말한다: “함이 없음을 행하면 되지 않음이 없다”(위무위爲無爲, 즉무불치則無不治. 제3장). ‘즉비복덕성(卽非福德..
8. 법에 의해 다시 태어나라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 8-1.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만약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칠보로써 보시한다면, 이 사람이 얻을 복덕이 많다 하겠느냐? 그렇지 않다 하겠느냐?” “須菩堤! 於意云何? 若人滿三千大千世界七寶, 以用布施. 是人所得福德寧爲多不?” “수보리! 어의운하? 약인만삼천대천세계칠보, 이용보시. 시인소득복덕녕위다불?” 이 장에서 우리의 ‘악취공(惡取空)’의 가능성을 경계한다. 법(法)을 버리고 비법(非法)을 떠난다 해서 그럼 우리 인간은 아무 것도 하지 말란 말인가? 무위(無爲)란 정말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의 현실적 도덕적 행위는 결코 의미 없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것을 행하는 자세가 보살승에 올라타 있어야 한다는 것..
7-3. 어째서 그러하오니이까? 여래께서 설하신 바의 법은 모두 취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법도 아니며 법이 아닌 것도 아니기 때문이오이다. 何以故? 如來所說法, 皆不可取不可說, 非法非非法. 하이고? 여래소설법, 개불가취불가설, 비법비비법. 7-4. 그 까닭은 무엇이오니이까? 일체의 성현들은 모두 함이 없는 법으로 이루어져 범인들과는 차별이 있기 때문이오이다.” 所以者何? 一切賢聖, 皆以無爲法, 而有差別.” 소이자하? 일체현성, 개이무위법, 이유차별.” 라집(羅什)은 ‘하이고(何以故)’, ‘소이자하(所以者何)’와 같이, 문의의 다양성을 위해 표현을 약간씩 달리하는 구문을 썼다. 같은 문장 안에서도 동일한 주어의 표현을 바꾸는 것도 그러하다. 나도 번역에 있어 그에 맞추어 변주하였다. 마지막 문장의..
7-2. 수보리가 사뢰었다: “제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의 뜻을 이해하기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이름할 정해진 법이 없으며, 여래께서 설하실 만한 정해진 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須菩堤言: “如我解佛所說義, 無有定法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 亦无有定法如來可說. 수보리언: “여아해불소설의, 무유정법명아뇩다라삼먁삼보제, 역무유정법여래가설. 실재(實在)에 대한 언어적 규정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실재는 무상(無常)하여 찰나찰나 변해가고 있는데 그것을 규정하는 언어는 그것과 무관하게 대상세계를 고정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로 구성한 세계는 무상의 세계가 아니라 상(常)의 세계다. 상의 세계는 망상(妄想)인 것이다. 천당의 불변적 삶을 추구하는 소승적 기독교인의 망상이 어떠한 오류에 속하는 것인지 이제 좀 깊게 이해..
7. 얻을 것도 없고 말할 것도 없다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7-1.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가 과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인가? 여래가 설한 바의 법이 과연 있는 것인가?” “須菩堤! 於意云何? 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耶? 如來有所說法耶?”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야? 여래유소설법야?” ‘과연’은 내가 문의를 살리기 위해 첨가한 것이다. 이제 『금강경』이 바로 『금강경』을 설할 것이다. 인용 목차 금강경
6-8. 이러한 뜻의 까닭으로, 여래는 항상 말하였다: ‘너희들 비구들아, 나의 설법이 뗏목의 비유와 같음을 아는 자들은, 법조차 마땅히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이 아님에 있어서랴!’” 以是義故, 如來常說: ‘汝等比丘, 知我說法如筏喩者, 法尙應捨. 何況非法!’” 이시의고, 여래상설: ‘여등비구, 지아설법여벌유자, 법상응사. 하황비법!’” 여기 비교적 길었던 제6분(第六分)의 총결론이 제출되고 있다. 앞서 이 책의 모두에서 내가 말했듯이 종교는 교설(敎說)이 아니다. 부처님의 설법 그 자체가 종교가 아니요, 그 설법조차도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방편에 불과한 것이다. 아무리 귀한 휴지라도 밑을 담으면 버려야지, 그것이 귀하다고 주머니에 넣어 보관하면 쿠린내만 계속 날 것이다. 기독교 목사님들의 설교가 이런 ..
6-7. 어째서 그러한가? 만약 법이 아니라고 하는 상을 취해도 곧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법을 취하지 말 것이며, 마땅히 법이 아님도 취하지 말 것이다. 何以故? 若取非法相, 卽著我人衆生壽者. 是故不應取法, 不應取非法. 하이고? 약취비법상, 즉착아인중생수자. 시고불응취법, 불응취비법. 비트겐슈타인의 후기철학이 표방하는 대로 우리 인간의 언어체계는 실재(實在)의 정확한 그림이 될 수가 없다. 실재세계(實在世界)를 긍정적으로 표현해도 부정적으로 표현해도 다 부족한 데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논리의 구사는 논리 그 자체의 법칙을 따를 수밖에 없지만, 그 논리의 법칙은 실재세계의 모습과는 무관한 또 다른 께임일 뿐이다. 이 양자의 정합성에서 세계를 규명하려는 모든 노..
6-6. 어째서 그러한가? 이 무릇 중생들이 만약 그 마음에 상을 취하면 곧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에 달라붙게 되는 것이다. 만약 법의 상을 취해도 곧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다. 何以故? 是諸衆生, 若心取相, 則爲著我人衆生壽者. 若取法相, 則著我人衆生壽者. 하이고? 시제중생, 약심취상, 즉위착아인중생수자. 약취법상, 즉착아인중생수자. ‘약심취상(若心取相)’은 ‘그 마음에 존재의 상을 갖는다’는 의미인데, 이는 곧 마음의 상을 바로 밖에 있는 대상의 실체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것은 후대 유식(唯識)에서 많이 다루게 되는 문제에 속한다. ‘약취법상(若取法相)’은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가 마치 ‘약법취상(若法取相)’인 것처럼, ‘약심취상(若心取相)’과 대비하여 번역했는데(이기영도 나카무라..
6-5. 어째서 그러한가? 이 뭇 중생들은 다시는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이 없을 것이며, 법의 상이 없을 뿐 아니라, 법의 상이 없다는 생각조차 없기 때문이다. 何以故? 是諸衆生, 無復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無法相亦无非法相. 하이고? 시제중생, 무복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무법상역무비법상. 이 글귀의 핵심은 ‘무법상역무비법상(無法相亦無非法相)’에 있다. 박테리아를 쳐부시는데 항생제만큼 좋은 것이 없다. 그렇다고 항생제를 좋아해서 항생제를 계속 먹으면 그것이 더 큰 병을 불러 일으킨다. 공(空) 사상은 존재(存在)를 실체의 존속으로 파악하는 우리의 유병(有病)을 치료하는 데는 더 없는 좋은 약이다. 그러나 공 그 자체에 집착하면 더 큰 병이 생겨난다. 악취공(惡取空, dur-gṛhītā śūnyatā: 공의 ..
6-4. 수보리야! 여래는 다 알고 다 보나니, 이 뭇 중생들은 이와 같이 한량없는 복덕을 얻을 수밖에 없으리라. 須菩堤! 如來悉知悉見, 是諸衆生得如是無量福德. 수보리! 여래실지실견, 시제중생득여시무량복덕. 여래는 각자(覺者)이다. 각자는 전체를 보는 사람이다. 여기 ‘실지실견(悉知悉見)’이라 함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막연한 ‘전지전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는 근본을 꿰뚫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비극적 상황에도 훌륭한 중생들이 한량없는 복덕을 얻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동학에서 ‘만사지(萬事知)’라 한 것과도 상통한다. 인용 목차 금강경 반야심경
6-3. 마땅히 알지어다. 이 사람은 한 부처, 두 부처, 서너다섯 부처님께 선근을 심었을 뿐 아니라, 이미 한량없는 천만 부처님 자리에 온갖 선근을 심었으므로, 이 글귀를 듣는 즉시 오직 일념으로 깨끗한 믿음을 내는 자라는 것을, 當知是人, 不於一佛二佛三四五佛而種善根, 已於無量千萬佛所種諸善根, 聞是章句乃至一念生淨信者. 당지시인, 불어일불이불삼사오불이종선근, 이어무량천만불소종제선근, 문시장구내지일념생정신자. 산스크리트 원본과 비교해 보면 라집역은 매우 간결하게 축약되어 있다. 여기 ‘부처’는 ‘깨달음’을 상징하며 역사적인 싯달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께 선근을 심었다’는 표현은 이미 오랜 윤회(saṃsāra)의 시간 속에서 훌륭한 행동(good conduct)과 덕성(virtuous quali..
6-2.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그런 말 하지말라. 여래가 멸한 뒤 후오백세에도 계율을 지키며 복을 닦는 사람이 있어, 이 글귀에 잘 믿는 마음을 낼 것이며, 이를 진실한 것으로 삼으리라.” 佛告須菩堤: “莫作是說. 如來滅後後五百歲, 有持戒修福者, 於此 章句能生信心, 以此爲實.” 수보리의 비관론에 대하여 불타의 낙관론이 설파되고 있다. 여기의 핵심되는 구절은 ‘후오백세(後五百歲)’인데, 사실 이 말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범문(梵文) 원본에도 한역본에도 완벽하게 명료하지는 않다. 범문에는 ‘후(後)의 오백년대(五百年代)에’라고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이것은 삼시(三時)사상 중에서 가운데 시대인 ‘상법(像法)’ 의 시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삼시(三時)란 불타의 멸적 후의..
6. 바른 믿음은 드물다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6-1.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퍽으나 많은 중생들이 이와 같은 말씀이나 글귀를 듣고 진실한 믿음을 낼 수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須菩堤白佛言: “世尊! 頗有衆生得聞如是言說章句, 生實信不?” 수보리백불언: “세존! 파유중생득문여시언설장구, 생실신불?” ‘정신(正信)’은 ‘바른 믿음’이다. 문중(文中)의 ‘실신(實信)’과 상통한다. 선진문헌(先秦文獻)에서는 ‘신(信)’이란 글자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종교적 의미에서의 ‘믿음(faith)’이라는 용례에로 쓰인 적이 없다. 그것은 ‘실증한다’라는 ‘verification’의 의미에 가까운 내포를 지녔을 뿐이다. 이미 라집(羅什)의 시대에는 신(信)이라는 글자가 종교적 ‘믿음’의 ..
5-3.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무릇 있는 바의 형상이 모두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형상이 형상이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佛告須菩堤: “凡所有相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 불고수보리: “범소유상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무아론(無我論)’이 강한 어조로 노출되어 있다. 여기 처음 ‘허망(虛妄)’ 하다는 말이 나오는데, 허망이라는 말은 곧 인간의 인식과 관련된 말이다. 존재 그 자체의 허망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존재를 인식하는 방법ㆍ수단이 모두 허망하다는 뜻이다. 콘체는 이 허망을 ‘fraud’라고 번역했는데, 이것은 우리 인식의 기만성을 내포한 말이다. ‘견제상비상(見諸相非相)’의 ‘견(見)’은 ‘깨닫다’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즉 제상(諸相)이 비상(非相)임을..
5-2.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몸의 형상으로는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어째서 그러하오니이까? 여래께서 이르신 몸의 형상이 곧 몸의 형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不也. 世尊! 不可以身相得見如來. 何以故? 如來所說身相, 卽非身相.” “불야. 세존! 불가이신상득견여래. 하이고? 여래소설신상, 즉비신상.” ‘신상(身相)’을 나는 ‘몸의 형상’으로 번역하였는데 이는 붓다의 색신(色身)을 구성하는 특징에 관한 것이다. 상에 해당되는 산스크리트어는 ‘lakṣaṇa’인데 ‘nimitta’와 대응하여 물체의 외면적 특징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것은 표시(mark), 싸인(sign), 심볼(symbol), 증거(token), 성격(characteristic), 속성(attribute), 성질(quality) 등의 의..
5. 진리대로 참 모습을 보라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5-1.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몸의 형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須菩堤! 於意云何? 可以身相見如來不?”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신상견여래불?” ‘여리(如理)’는 ‘리와 같이’ ‘리대로’라는 뜻이다. 그런데 불교에서, 그리고 물론 이것은 한역불교에서 더 뚜렷이 발전된 개념이지만, ‘리(理)’라고 하는 것은 ‘사(事)’와 대비되어 나타난다. 사(事)는 인연의 사실들이다. 리(理)는 그 인연의 사실들을 일으키고 있는 연기 그 자체를 말하는 것으로 그것은 서양철학의 본체론과는 다르지만 본체론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리(理)는 진여(眞如)의 세계며 그것은 생멸(生滅)의 세계가 아닌 생멸을 일으키고 있는 그 자체의 세계다. 엄밀..
4-7. 수보리야! 보살은 오직 가르친 바 대로 머물지니라.” 須菩堤! 菩薩但應如所敎住.” 수보리! 보살단응여소교주.” ‘단(但)’을 ‘오직’으로 한 것은 세조본의 우리말을 따랐다. 여기서 ‘가르친 바 대로’라는 것은 본분(本分)에서 말한 내용을 가리킨다. 보살은 부처님의 이와 같은 가르침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노자(老子)』 제2장에 ‘공성이불거(功成而弗居)’란 말이 있다. ‘공이 이루어져도 그 이루어진 공에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다. 노자(老子)의 ‘불거(弗居)’는 여기서 말하는 ‘불주어상(不住於相)’과 크게 차이가 없다. 중국인들은 오히려 불교의 ‘불주(不住)’의 논리를 노자적(老子的)인 불거(弗居)로서 이해했음에 틀림이 없다. 중국인들에게서는 『노자(老子)」가 분명 선행되었던 지혜의 경전이다...
4-6. “수보리야!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는 것의 복덕도, 또한 이와 같이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느니라. “須菩堤! 菩薩無住相布施福德, 亦復如是不可思量. “수보리! 보살무주상보시복덕, 역부여시불가사량. 『반야심경』의 ‘수상행식(受想行識), 역부여시(亦復如是)’를 연상하면 같은 패턴의 문장구성방법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인용 목차 금강경
4-5. “수보리야! 남ㆍ서ㆍ북방과 사유ㆍ상ㆍ하의 허공을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須菩堤! 南西北方四維上下虛空可思量不?” “不也. 世尊!” “수보리! 남서북방사유상하허공가사량불?” “불야. 세존!” 우리가 보통 시방(十方)이라고 하는 것은 가능한 온갖 방위를 가리키는 인도인의 개념화방식에서 비롯된 말이다. 우리 동방인들은 주로 4방ㆍ8방은 잘 말해도 ‘시방’을 말하지는 않았다. ‘시방’에는 상(上)과 하(下)의 2방이 더 들어가는데 이것은 인도인들의 공간감각이 중국인들보다 훨씬 입체적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사방(四方)은 동서남북(東西南北)의 네 방위다. 사유(四維)라는 것은 그 사이 사이에 끼어들어 가는, 동북ㆍ동남ㆍ서남ㆍ서북을 말한다. 여기에 상(..
4-4.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동쪽의 허공을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須菩堤! 於意云何? 東方虛空可思量不?” “不也, 世尊!” 수보리! 어의운하? 동방허공가사량불?” “불야, 세존!” ‘어의운하(於意云何)’는 계속 나오는 관용구다. ‘뜻에 있어서 어떠한가?’인데, 세조본의 아름다운 우리말에 따라 ‘네 뜻에 어떠하뇨?’로 일관되게 번역하겠다. 우리가 동쪽하늘의 양이나 크기를 개념적으로 수량화해서 잴 수가 없는 것이다. 무아(無我)의 보시가 결과적으로 가져오는 무량(無量)한 복덕(福德)이 이와 같이 엄청난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무아(無我)의 도덕을 실천한다 하는 것은 외면적으로 도덕을 초월하는 것(trans-ethical)처럼 보인다. 그러나 초도덕성..
4-3. 어째서 그러한가? 만약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한다면, 그 복덕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으리라. 何以故? 若菩薩不住相布施, 其福德不可思量. 하이고? 약보살불주상포시, 기복덕불가사량.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기 전, 이미 선진시대(先秦時代)에 불교와 무관하게 성립한 중국의 지혜의 서(書)인 『노자(老子)』 제7장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그러하므로 성스러운 사람은 몸을 뒤로 하기에 그 몸이 앞서고 是以聖人後其身而身先 시이성인후기신이신선 몸을 내던지기에 그 몸이 존한다. 外其身而身存 외기신이신존 이것은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非以其無私邪? 비이기무사야 그러므로 능히 그 사사로움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니. 故能成其私 고능성기사 여기서 말하는 ‘무사(無私)’는 곧 불교의 ‘무아(無我)’로..
4-2. 이른바 색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고, 성ㆍ향ㆍ미ㆍ촉ㆍ법에 머물지 않고 보시한다는 것이다. 수보리야! 보살은 반드시 이와 같이 보시할 것이며, 상에 머물러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所謂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堤! 菩薩應如是布施, 不住於相. 소위불주색보시, 불주성향미촉법보시. 수보리! 보살응여시보시, 불주어상. 종교의 사회적 기능으로서 우리는 반드시 ‘구제’, ‘보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교가 실제적으로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측면이 심하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세에서 끊임없이 그 조직이 유지되는 이유는 아마도 이 보시의 기능 때문일 것이다. 보시는 ‘dāna’의 번역인데 ‘준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보시는 크게 ‘삼시(三施)’로 나뉜다. 그 첫째가 ‘재시(財施)’인데, 의식(衣食..
4. 아름다운 행동은 집착이 없다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4-1. 이제 다음으로 수보리야! 보살은 법에 머무는 바 없이 보시를 행하여야 한다. 復次須菩堤! 菩薩於法應無所住, 行於布施. 복차수보리! 보살어법응무소주, 행어포시. ‘묘행(妙行)’이란 ‘아름다운 행동’이라 번역했지만, 실제로 여기서의 ‘행(行)’은 ‘보시’를 가리킨다. 대승불교에서의 ‘묘(妙)’라는 글자는 ‘진공묘유(眞空妙有)’라 할 때의 묘와 항상 의미적으로 상통해 있는 글자며, 그것은 통속적 인식을 벗어난, 즉 지혜의 인식을 거친 후에 획득되는 상식의 세계를 의미한다. ‘무주(無住)’라는 말은 ‘부주열반(不住涅槃)’ 혹은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이라는 대승의 개념에서 도출되는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생사(生死)가 곧 열반(涅槃, nirv..
3-4. 어째서 그러한가?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아상이나 인상이나 중생상이나 수자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何以故? 須菩堤! 若菩薩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卽非菩薩. 하이고? 수보리! 약보살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즉비보살. 바로 이 절에서 정종분(正宗分)은 피크를 이룬다. 이것은 불타의 무아론(無我論)의 본의로 회귀하자는 보살운동의 캣치프레이즈이기도 한 것이다. ‘Return to Buddha!’ 역사적으로 보살의 의미규정은 이 한 절에 완료되고 완성된다. 바로 보살됨의 내용이 이 한 절을 벗어남이 없다. 역사적으로 대승의 규정은 이 한 절을 떠나서 따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승의 종지(宗旨)인 것이다. 이 사상(四相)이라고 하는 ‘아(我)ㆍ인(人)ㆍ중생(衆生)ㆍ수자(壽者..
붓다와 예수의 최후의 말 제법무아(諸法無我)란 무엇인가? 불교에서 말하는 제법(諸法)이란, ‘법(法)’이라 해서 무슨 대단한 ‘달마’나 ‘진체(眞諦)’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나 유식(唯識)에서 칠십오법(七十五法), 백법(百法) 운운했듯이 그냥 ‘모든 존재(存在)’를 말하는 것이다. 법(法)은 존재요, 있을 수 있는 모든 것이다. 그런데 인도인들은 법을 크게 두 카테고리로 나눈다. 하나는 인간이 작위적으로 만든 유위적 법(法, 존재)이요, 하나는 인간이 조작한 것이 아닌 스스로 그러한 무위적 존재다. 전자를 유위법(有爲法)이라 하고 후자를 무위법(無爲法)이라 하는데, 유위법 속에는 또다시 크게 색법(色法), 심법(心法), 심소유법(心所有法), 불상응행법(不相應行法)의 4카테고리가 있..
3-3.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고, 셀 수 없고, 가 없는 중생들을 내 멸도한다 하였으나, 실로 멸도를 얻은 중생은 아무도 없었어라.’ 如是滅度無量无數無邊衆生, 實无衆生得滅度者.’ 윤회의 공포 바로 여기까지가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을지어다’의 ‘이와 같이’의 내용을 부연설명한 것이다. 즉 보살의 마음가짐의 내용을 설한 것이다. 바로 이 3절의 내용이야말로 대승정신의 출발이며, 바로 『금강경』」이 『벼락경』이 될 수밖에 없는 전율의 출발인 것이다. 벼락같이 내려친 대승(大乘)의 종지(宗旨)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무엇인가? 사실 여기 붓다의 결론이 너무 쉽게, 너무 퉁명스럽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당혹감을 느끼기에 앞서 별 느낌이 없는 무감각 상태로 서 있을 수도 있다. 여기서 과연 붓..
3-2. ‘존재하는 일체의 중생의 종류인, 알에서 태어난 것, 모태에서 태어난 것, 물에서 태어난 것, 갑자기 태어난 것, 형태가 있는 것, 형태가 없는 것, 지각이 있는 것, 지각이 없는 것, 지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것, 이것들을 내가 다 남김 없는 온전한 열반으로 들게 하여 멸도하리라. ‘其心所有一切衆生之類, 若卵生若胎生, 若濕生若化生, 若有色若無色, 若有想若無想, 若非有想非無想, 我皆令入無餘涅槃而滅度之. ‘기심소유일체중생지류, 약난생약태생, 약습생약화생, 약유색약무색, 약유상약무상, 약비유상비무상, 아개령입무여열반이멸도지. ‘소유(所有)’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는 ‘있는 바’의 뜻인데, 백화문에서는 이 자체로 ‘일체’라는 뜻이 된다. 다음에 ‘일체(一切)’라는 것이 다시 나오..
3. 대승의 바른 종지 대승정중분(大乘正宗分) 3-1.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뭇 보살 마하살들이 반드시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을지어다: 佛告須菩堤: ”諸菩薩摩訶薩, 應如是降伏其心. 불고수보리: ”제보살마하살, 응여시항복기심. 소명태자의 분의 이름은 적합치 못하다. 왜냐하면 『금강경』의 본경에 해당되는 부분(13분 2절까지)에서 이 ‘대승(大乘)’이라는 표현은 나타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최초의 혁명적 보살운동이 아직 ‘대승’이라는 규합개념(organizing concept)으로 ‘소승’과 대비되기 이전의 소박한 진리를 이 경(經)은 설(說)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강경』에서의 대승은 오직 ‘보살’일 뿐이요, ‘선남선녀’일 뿐이요, ‘더 이상 없는 수레(agrayāna)..
2-5.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즐겁게 듣고자 원하오니이다.” “唯然世尊! 願樂欲聞.” “유연세존! 원락욕문.” 이 짧은 한마디 속에는 무수한 명제가 중첩되어 있다. ‘유연(唯然)’은 단순한 ‘예(唯)’라는 대답의 음사(音寫)에 ‘연(然)’을 붙인 것이다. 그러나 이 ‘예’는 붓다의 선포(케리그마)에 대한 보살들의 긍정이다. ‘그러하옵니다!’ 즉 ‘이와 같이’란 내용이 설파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의 ‘열음’이다. 받아들이고 나면 우리의 마음이 편해진다. 긴장이 사라진다. 갈등구조들이 해소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진리를 즐겁게 들을 수 있게 된다. 진리는 즐기는 것이다. 그것은 향유(Enjoyment)의 대상이다. 존재는 곧 향유, 즐김인 것이다. 즐길 수 있을 ..
2-4.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좋다! 좋다! 수보리야! 네가 말한 바대로, 여래는 뭇 보살들을 잘 호념하며, 뭇 보살들을 잘 부촉해준다. 너 이제 자세히 들으라! 반드시 너를 위하여 이르리라,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냈으면, 마땅히 이와 같이 살 것이며,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하리라.” 佛言: “善哉! 善哉! 須菩堤! 如汝所說, 如來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汝今諦聽! 當爲如說. 善男子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應如是住, 如是降伏其心.” 얼마나 강력하고 단호한 붓다의 말씀인가? 좋다! 좋다! 나는 네 말대로 못 보살들을 잘 호념하고 잘 부촉한다. 너 이제 자세히 들으라! ‘여금체청(汝今諦聽)’에서 ‘여(汝)’는 ‘너’이다. 그런데 이 여자는 중국고어에서 매우 친..
2-3.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냈으면, 마땅히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하오리까?” 世尊! 善男子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應云何住? 云何降伏其心?” 세존! 선남자선녀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응운하주? 운하항복기심?” 지혜는 마음의 문제다! 2-2절에서의 질문의 내용을 보다 구체화시키고 있다. 물론 여기의 라집역도 산스크리트 원문과는 크게 차이가 있다. 그러나 산스크리트 원문의 맛보다 라집본의 맛이 더 명료하고 그 의취가 깊다. ‘선남자선여인(善男子善女人)’이란 불전에서 매우 관용구적인 표현으로 쓰인다. 특별히 선택된 승가의 멤버가 아니라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보통사람들’의 뜻이고, 여기서는 ‘보살’(구도자求道者)의 다른 표현..
2-2. “희유하신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뭇 보살들을 잘 호념하시며, 뭇 보살들을 잘 부촉하여 주십니다. 希有世尊! 如來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희유세존! 여래선호념제보살, 선부촉제보살. 산스크리트 원문을 무시하고 집본(什本)을 그대로 볼 때에 ‘희유(希有)’는 세존(世尊)을 수식하는 형용구로 볼 수밖에 없다. ‘참으로 드물게 있는 세상의 존귀하신 분이시여!’의 뜻이 될 것이다. 세존(世尊)은 이미 상설(詳說)하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호칭으로 부를 때는 ‘세존(世尊)’이라는 말을 쓰고, 구체적인 문장의 주어로 쓰일 때는 ‘여래(如來)’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라집(羅什)이라는 탁월한 번역자의 숙달된 맛에서 생겨난 것으로 산스크리트 원문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불(佛), 세존(世尊..
2. 선현이 일어나 법을 청함 선현계청분(善現啓請分) 2-1. 이 때, 장로 수보리가 대중 가운데 있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웃옷을 한편으로 걸쳐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손을 모아 공경하며,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時, 長老須菩堤在大衆中, 卽從座起, 偏袒右肩, 右膝著地, 合掌恭敬而白佛言: 시, 장로수보제재대중중, 즉종좌기, 편단우견, 우슬착지, 합장공경이백불언: 소명태자의 분의 이름은 4자의 제약 때문에, 수보리(須菩提)라는 3글자 이름을 쓸 수 없으므로, 그것을 줄여 표현한 것이다. ‘선현(善現)’은 바로 ‘수보리(須菩提, Subbūti)를 의역한 데서 생겨난 말이다. 후에 현장(玄奘)은 바로 이 의역을 채택하였다. ‘세존(世尊)’과 같은 것은 ‘박가범(薄伽梵)’이라..
통석(痛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는 이유 나는 매우 엄격하고도 신실한 기독교신앙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우리어머니는 기독교를 통하지 아니하고서는 우리민족의 구원의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개화(開化)의 세기를 사셨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성경』 구절을 외워야 했다. 그리고 학교 가기 전에 안방윗목 문턱에서 『성경』구절을 외우면 한 구절당 10원을 탔다. 그리고 못 외우면 종아리를 맞았다. 그렇게 해서 『신약성경』을 몽땅 외우다시피 했다. 나의 고전에 대한 소양은 이렇게 해서 길러진 것이다. 동양고전에 대한 기초 소양도 우리 모친이 이렇게 해서 길러준 것이다. 그런데 내가 가장 신나게 외운 것으로 ‘산상수훈(Sermo in monte)’이라는 것이 있다. 이 산상수훈은 「마태복음」에 가장 완정한 형태..
앉아서 들어야 들린다 제일 마지막 표현인 ‘부좌이좌(敷座而坐)’는 라집(羅什)의 위대성을 잘 드러내주는 명번역 중의 명번역이다. 그 산스크리트 원문을 보면, ‘이미 마련된 자리에 앉아, 양다리를 꼬고, 몸을 꼿꼿히 세우고, 정신을 앞으로 집중하였다.’로 되어 있다. 이미 설정된 자리에 쌍가부좌를 틀고 등을 세우고 입정(入定)하였다는 뜻인데, 현장(玄奘)은 이러한 원문에 충실하여 ‘어식후시(於食後時), 부여상좌(敷如常座), 결가부좌(結跏趺坐), 단신정원(端身正願), 주대면념(住對面念)’이라고 구구한 문자를 늘어놓았다. 집(什)【앞으로 꾸마라지바(鳩摩羅什)를 약(略)하여 집(什)으로 쓰기도 한다】의 위대성은 바로 문자의 간결함과 상황적 융통성이다. 특정의 자리에 앉는다는 것보다는 불특정의 장소에 방석이나 자..
1-4. 옷과 바리를 거두시고, 발을 씻으심을 마치시고, 자리를 펴서 앉으시거늘. 收衣鉢. 洗足已, 敷座而坐. 수의발. 세족이, 부좌이좌. 설법에 동참하려면 발을 씻어라 그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인가? 잔잔한 영화 속에 클로즈엎 되어 나타나는 컷들이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하나둘씩 스러져간다. 이 장면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번뜩이는 금강의 지혜가, 너무도 일상적이고 평범한 하루의 일과 속에서 설파(說破)되었다고 하는 사실의 파라독스다. 가장 일상적인데 가장 벼락 같은 진리가 숨어있다고 하는 긴장감을 이 붓다의 행동은 보여 준다. 의발을 거두어들이고, 발을 씻고 자리를 깔고 앉는 이 모든 평범한 의례가 바로 금강의 지혜에 번뜩이는 자가 바로 금강의 지혜를 설(說)하려는 그 순간에 묵묵히 진행되고 있었다..
1-3. 그 성 안에서 차례로 빌으심을 마치시고, 본래의 곳으로 돌아오시어, 밥 자심을 마치시었다. 於其城中, 次第乞已, 環至本處, 飯食訖. 어기성중, 차제걸이, 환지본처, 반식글. 우리말은 세조언해본을 많이 따랐다. 고전을 읽을 때, 우리는 그 문의(文義)를 해석하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한편의 영화를 보듯이, 그 실제로 일어난 상황을 머릿속에 이미지로 그려보는 것이 중요하다. 1분 3절은 바로 그러한 이미지가 명료하게 그려지는 대목이다. 새벽에 먼동이 틀 무렵, 잠에서 깨어난 비구승들이 가사를 챙겨입고 바리를 들고 1km 떨어진 대성(大城) 안으로 묵묵히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그 성안에서 차례로 밥을 빌고, 다시 기원(祇園)의 숲으로 돌아오는 평화롭고 웅장한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차제(..
1-2. 이 때에, 세존께서는 밥 때가 되니 옷을 입으시고 바리를 지니시고 사위 큰 성으로 들어가시어 밥 빌으셨다. 爾時, 世尊食時, 著衣持鉢, 入舍衛大城乞食. 이시, 세존식시, 착의지발, 입사위대성걸식. 나의 국역은 세조본 언해의 아름다운 표현들을 참조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수양대군 세조께서는 마지막 ‘걸식(乞食)’을 1~3절의 첫머리에 붙도록 끊어 읽었다. ‘입사위대성(入舍衛大城), 걸식어기성중(乞食於其城中)’ 어떻게 끊어 읽든지 그 의미상에 대차는 없으나 나는 ‘입성(入城)’과 ‘어기성중(於其城中)’이 너무 뜻이 반복되므로, ‘어기성중(於其城中)’이 뒤로 붙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우선 주어의 표현이 달라졌다. 앞에서는 ‘불(佛)’이란 표현을 쓰고, 여기서는 ‘세존(世尊)’이란 표현을 썼다..
라집과 산스크리트원본 금세기 일본의 대불교학자라 할 수 있는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 1912~1999)【동경대학 인도철학과 중심으로 활약】는 역으로 의정(義淨) 외의 타5본(他五本)에 보살ㆍ마하살이 없으므로 범본의 ‘보살ㆍ마하살’ 부분이 후대의 첨가라고 못박았다. 나카무라의 이와 같은 생각은 『금강경』 전체 텍스트와 그 전체 의미를 고려하지 못하고 부분만을 천착한 데서 생겨난 명백한 단견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이기영은 이 단견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한국불교연구원(韓國佛敎硏究院)에서 나온 이기영(李箕永) 번역(飜譯)ㆍ해설(解說)의 『반야심경』ㆍ『금강경』(1978 초판, 1997 개정판)은 일본 불교학계의 거장,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ㆍ키노 카즈요시(紀野一義) 역주(譯註)의 『반야심경(般若心經)』ㆍ『금..
1,250명에 대해 우선 큰 비구들 1,250명이라는 숫자부터 문제다. 왜 하필 1,250명인가? 그런데 이런 질문에 대해 역대주석가들의 신통한 논의가 별로 없다. 원시불교 교단의 구성멤버의 수로서 관념적으로 그 숫자를 구성해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의 상식으로 비추어, 해인사나 송광사 같은 대찰의 규모에 비견해보아도, 큰 비구스님들 1,250명이라는 숫자는 좀 과장된 표현으로 보인다. 기원정사의 규모로 볼 때 도저히 1,250명의 스님들을 한자리에 수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초기승가의 규모가 큰 스님 1,250명 정도가 한자리에 모일 만큼의 체제를 갖춘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일설에 의하면 기원정사 본당이 7층짜리 건물이었고, 또 오늘 발굴된 기단의 주춧돌의 규..
방편설법과 대비구(大比丘) ‘여대비구중천이백오십인구(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俱)’에서 앞의 ‘여(與)’는 우리말의 ‘~과’에 해당되는 전치사이다. ‘대비구중천이백오십인(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은 그 전치사의 목적이며, 맨 끝의 ‘구(俱)’가 본동사이다. ‘구(俱)’는 ‘더불어 계시었다.’ ‘같이 생활하였다’는 의미이다. ‘중(衆)’은 여기서는 우리말의 ‘들’에 해당되는 복수격일 뿐이다. ‘대(大)’는 산스크리트 원전의 문맥으로 비추어볼 때, ‘아주 훌륭한 인격을 갖춘’, ‘득도(得道)의 깊이가 있는’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 ‘대비구중천이백오십인(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 훌륭한 비구들 1,250인)’이라는 말은 좀 깊은 통찰을 요구한다. 『금강경』의 설법의 내용은 불교적 진리의 최고봉의 간략한 통찰이..
기원정사(祇園精舍) 붓다 당대의 코살라왕국의 군주는 파사익왕(波斯匿王), 즉 쁘라세나지뜨(Prasenajit)였다. 설화적인 이야기겠지만, 파사익왕은 싯달타와 생년월일이 같다 하고, 또 싯달타가 성불한 해에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성불한 싯달타를 만나는 순간 그에게 감화를 입어 독실한 신도가 되었다고 한다. 이념적으로 보나, 정치적 관계로 보나 이 두 사람은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복자가 피정복자에게 정신적으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붓다의 인격의 위대성과 함께, 그 위대함을 위대함으로 인지할 줄 아는 당대의 통치자들의 큰마음을 엿볼 수 있다. 파사익왕은 초기승가의 절대적인 외호자(外護者)였다. 바로 파사익왕은 국도(國都)인 슈라바스띠(사위성)에서 살고 있었다. 파사익왕에게..
사위국(舍衛國)과 서라벌(徐羅伐) ‘불재사위국기수급고독원(佛在舍衛國孤樹給孤獨園)’이란 문장은 정확한 사실적 고증과 역사적 상황에 대한 상상을 요구하는 대목이다. 내가 생각키에는 여기서 말하는 ‘사위국(舍衛國)’은 곧이어 뒤에 나오는 ‘사위대성(舍衛大城)’과 구분되어 이해되어야 한다. 분명 국(國)과 성(城)은 다른 개념이기 때문이다. 성(城)은 국(國) 속에 있는 성곽도시의 개념이다. 사위국(舍衛國)은 여기서는 바로 코살라왕국을 가리킨다. 역사적 붓다가 소속해 있던 샤캬종족의 카필라바쯔는 작은 종족(tribe) 단위의 종족집단정치체제였고, 그것은 보다 거대한 집단인 부족(部族, clan)에 속해 있었다. 당대의 부족은 큰 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전제군주체제인 왕국(王國)과 ‘상가’ 혹은 ‘가나’라고 ..
금강경(金剛般若波羅蜜多經, Vajracchedikā-Prajñāpāramitā-Sūtra) 요진 천축삼장 구마라집역(姚秦 天竺三藏 鳩摩羅什譯)무술세고려국대장도감봉칙조조(戊戌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법회의 말미암음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 1-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 고독원에 계셨는데, 큰 비구들 천이백오십인과 더불어 계시었다. 如是我聞. 一時, 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俱. 여시아문. 일시, 불재사위국기수급고독원, 여대비구중천이백오십인구. 여시아문(如是我聞)과 일시(一時) 제일 먼저 소명태자가 나눈 분(分)의 이름을 설(說)하겠다. 소명태자의 분명(分名)은 글자수를 모두 네 글자로 맞추었다. 따라서 문법적으로 약간의 무리가 있는 상황도 있다...
신우(辛禑) #高麗史133卷-列傳46-辛禑1-00-00-0000 辛禑一. #高麗史133卷-列傳46-辛禑1-00-01-0000 ○辛禑小字牟尼奴旽婢妾般若之出也. 或云: “初般若有身滿月旽令就友僧能祐母家産*能佑{能祐}母養之未期年兒死能祐恐旽讓旁求貌類者竊取隣家隊卒兒置諸他所告旽曰: ‘兒有疾請移養.’ 旽諾. 居一年旽取養于家以同知密直金鋐所賂婢金莊爲乳媼般若亦未知爲非其兒也.” 恭愍王常憂無嗣一日微行至旽家旽指其兒曰: “願殿下爲養子以立後.” 王睨而笑不*荅然心許之旽密令其黨吳一鶚爲書祈洛山觀音云: “願令弟子分身牟尼奴福壽住國.” 及旽流水原王語近臣曰: “予嘗至旽家幸其婢生子毋令驚動善保護之!” 旽旣誅王召牟尼奴納明德太后殿謂守侍中李仁任曰: “元子在吾無憂矣.” 因言: “有美婦在旽家聞其宜子遂幸之乃有此兒.” 後王欲以牟尼奴爲嗣請就學太后不欲曰: “稍長就..
열전 양리 #高麗史121卷-列傳34-良吏-00-000 良吏. #高麗史121卷-列傳34-良吏-00-001 ○高麗太祖初定三韓事尙草創未遑置州縣官. 成宗始分十道定郡縣置守令. 自是厥後遣廉問黜陟之使屢下勸農蠲租之詔宜若良吏輩出而今見於史者惟庾碩以下數人豈史逸而不傳耶? 此數人者或以淸愼律己或以仁厚撫民俱有遺愛可謂不愧於古之良吏矣. 作良吏傳. 인용 목차
검은 새끼 고양이를 얻고서 득흑묘아(得黑貓兒) 이규보(李奎報) 細細毛淺靑 團團眼深綠 세세모천청 단단안심록 形堪比虎兒 聲已懾家鹿 형감비호아 성이섭가록 承以紅絲纓 餌之黃雀肉 승이홍사영 이지황작육 奮爪初騰蹂 搖尾漸馴服 분조초등유 요미점순복 我昔恃家貧 中年不汝畜 아석시가빈 중년불여축 衆鼠恣橫行 利吻工穴屋 중서자횡행 리문공혈옥 齩齧箱中衣 離離作短幅 교설상중의 리리작단폭 白日鬬几案 使我硯池覆 백일두궤안 사아연지복 我甚疾其狂 欲具張湯獄 아심질기광 욕구장탕옥 捷走不可捉 遶壁空追逐 첩주불가착 요벽공추축 自汝在吾家 鼠輩已收縮 자여재오가 서배이수축 豈唯垣墉完 亦保升斗蓄 기유원용완 역보승두축 勸爾勿素餐 努力殲此族 권이물소찬 노력섬차족 『東國李相國後集』 卷第十 해석 細細毛淺靑 團團眼深綠 形堪比虎兒 聲已懾家鹿 承以紅絲纓 餌之黃雀..
60. 삼왕세가(三王世家) ‘大司馬臣去病昧死再拜上疏皇帝陛下: 陛下過聽, 使臣去病待罪行閒. 宜專邊塞之思慮, 暴骸中野無以報, 乃敢惟他議以干用事者, 誠見陛下憂勞天下, 哀憐百姓以自忘, 虧膳貶樂, 損郞員. 皇子賴天, 能勝衣趨拜, 至今無號位師傅官. 陛下恭讓不恤, 群臣私望, 不敢越職而言. 臣竊不勝犬馬心, 昧死願陛下詔有司, 因盛夏吉時定皇子位. 唯陛下幸察. 臣去病昧死再拜以聞皇帝陛下. 三月乙亥, 御史臣光守尙書令奏未央宮. 制曰: ‘下御史. 六年三月戊申朔, 乙亥, 御史臣光守尙書令ㆍ丞非, 下御史書到, 言: 丞相臣靑翟ㆍ御史大夫臣湯ㆍ太常臣充ㆍ大行令臣息ㆍ太子少傅臣安行宗正事昧死上言: 大司馬去病上疏曰: “陛下過聽, 使臣去病待罪行閒. 宜專邊塞之思慮, 暴骸中野無以報, 乃敢惟他議以干用事者, 誠見陛下憂勞天下, 哀憐百姓以自忘, 虧膳貶樂, 損郞員..
59. 오종세가(五宗世家) 孝景皇帝子凡十三人爲王, 而母五人, 同母者爲宗親. 栗姬子曰榮ㆍ德ㆍ閼于. 程姬子曰餘ㆍ非ㆍ端. 賈夫人子曰彭祖ㆍ勝. 唐姬子曰發. 王夫人兒姁子曰越ㆍ寄ㆍ乘ㆍ舜. 河閒獻王德, 以孝景帝前二年用皇子爲河閒王. 好儒學, 被服造次必於儒者. 山東諸儒多從之游. 二十六年卒, 子共王不害立. 四年卒, 子剛王基代立. 十二年卒, 子頃王授代立. 臨江哀王閼于, 以孝景帝前二年用皇子爲臨江王. 三年卒, 無後, 國除爲郡. 臨江閔王榮, 以孝景前四年爲皇太子, 四歲廢, 用故太子爲臨江王. 四年, 坐侵廟壖垣爲宮, 上徵榮. 榮行, 祖於江陵北門. 旣已上車, 軸折車廢. 江陵父老流涕竊言曰: ‘吾王不反矣! 榮至, 詣中尉府簿. 中尉郅都責訊王, 王恐, 自殺. 葬藍田. 燕數萬銜土置冢上, 百姓憐之. 榮最長, 死無後, 國除, 地入于漢, 爲南郡. 右..
58. 양효왕세가(梁孝王世家) 梁孝王武者, 孝文皇帝子也, 而與孝景帝同母. 母, 竇太后也. 孝文帝凡四男: 長子曰太子, 是爲孝景帝; 次子武; 次子參; 次子勝. 孝文帝卽位二年, 以武爲代王, 以參爲太原王, 以勝爲梁王. 二歲, 徙代王爲淮陽王. 以代盡與太原王, 號曰代王. 參立十七年, 孝文後二年卒, 謚爲孝王. 子登嗣立, 是爲代共王. 立二十九年, 元光二年卒. 子義立, 是爲代王. 十九年, 漢廣關, 以常山爲限, 而徙代王王淸河. 淸河王徙以元鼎三年也. 初, 武爲淮陽王十年, 而梁王勝卒, 謚爲梁懷王. 懷王最少子, 愛幸異於他子. 其明年, 徙淮陽王武爲梁王. 梁王之初王梁, 孝文帝之十二年也. 梁王自初王通歷已十一年矣. 梁王十四年, 入朝. 十七年, 十八年, 比年入朝, 留, 其明年, 乃之國. 二十一年, 入朝. 二十二年, 孝文帝崩. 二十四年,..
57. 강후주발세가(絳侯周勃世家) 絳侯周勃者, 沛人也. 其先卷人, 徙沛. 勃以織薄曲爲生, 常爲人吹簫給喪事, 材官引彊. 高祖之爲沛公初起, 勃以中涓從攻胡陵, 下方與. 方與反, 與戰, 卻適. 攻豐. 擊秦軍碭東. 還軍留及蕭. 復攻碭, 破之. 下下邑, 先登. 賜爵五大夫. 攻蒙ㆍ虞, 取之. 擊章邯車騎, 殿. 定魏地. 攻爰戚ㆍ東緡, 以往至栗, 取之. 攻齧桑, 先登. 擊秦軍阿下, 破之. 追至濮陽, 下甄城. 攻都關ㆍ定陶, 襲取宛朐, 得單父令. 夜襲取臨濟, 攻張, 以前至卷, 破之. 擊李由軍雍丘下. 攻開封, 先至城下爲多. 後章邯破殺項梁, 沛公與項羽引兵東如碭. 自初起沛還至碭, 一歲二月. 楚懷王封沛公號安武侯, 爲碭郡長. 沛公拜勃爲虎賁令, 以令從沛公定魏地. 攻東郡尉於城武, 破之. 擊王離軍, 破之. 攻長社, 先登. 攻潁陽ㆍ緱氏, ..
56.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 陳丞相平者, 陽武戶牖鄕人也. 少時家貧, 好讀書, 有田三十畝, 獨與兄伯居. 伯常耕田, 縱平使游學. 平爲人長[大]美色. 人或謂陳平曰: ‘貧何食而肥若是? 其嫂嫉平之不視家生產, 曰: ‘亦食糠覈耳. 有叔如此, 不如無有. 伯聞之, 逐其婦而棄之. 及平長, 可娶妻, 富人莫肯與者, 貧者平亦恥之. 久之, 戶牖富人有張負, 張負女孫五嫁而夫輒死, 人莫敢娶. 平欲得之. 邑中有喪, 平貧, 侍喪, 以先往後罷爲助. 張負旣見之喪所, 獨視偉平, 平亦以故後去. 負隨平至其家, 家乃負郭窮巷, 以獘席爲門, 然門外多有長者車轍. 張負歸, 謂其子仲曰: ‘吾欲以女孫予陳平. 張仲曰: ‘平貧不事事, 一縣中盡笑其所爲, 獨柰何予女乎? 負曰: ‘人固有好美如陳平而長貧賤者乎? 卒與女. 爲平貧, 乃假貸幣以聘, 予酒肉之資以內婦. 負誡其孫..
54. 조상국세가(曹相國世家) 平陽侯曹參者, 沛人也. 秦時爲沛獄掾, 而蕭何爲主吏, 居縣爲豪吏矣. 高祖爲沛公而初起也, 參以中涓從. 將擊胡陵ㆍ方與, 攻秦監公軍, 大破之. 東下薛, 擊泗水守軍薛郭西. 復攻胡陵, 取之. 徙守方與. 方與反爲魏, 擊之. 豐反爲魏, 攻之. 賜爵七大夫. 擊秦司馬夷軍碭東, 破之, 取碭ㆍ狐父ㆍ祁善置. 又攻下邑以西, 至虞, 擊章邯車騎. 攻爰戚及亢父, 先登. 遷爲五大夫. 北救阿, 擊章邯軍, 陷陳, 追至濮陽. 攻定陶, 取臨濟. 南救雍丘. 擊李由軍, 破之, 殺李由, 虜秦候一人. 秦將章邯破殺項梁也, 沛公與項羽引而東. 楚懷王以沛公爲碭郡長, 將碭郡兵. 於是乃封參爲執帛, 號曰建成君. 遷爲戚公, 屬碭郡. 其後從攻東郡尉軍, 破之成武南. 擊王離軍成陽南, 復攻之杠裏, 大破之. 追北, 西至開封, 擊趙賁軍, 破之,..
53. 소상국세가(蕭相國世家) 蕭相國何者, 沛豐人也. 以文無害爲沛主吏掾. 高祖爲布衣時, 何數以吏事護高祖. 高祖爲亭長, 常左右之. 高祖以吏繇咸陽, 吏皆送奉錢三, 何獨以五. 秦御史監郡者與從事, 常辨之. 何乃給泗水卒史事, 第一. 秦御史欲入言徵何, 何固請, 得毋行. 及高祖起爲沛公, 何常爲丞督事. 沛公至咸陽, 諸將皆爭走金帛財物之府分之, 何獨先入收秦丞相御史律令圖書藏之. 沛公爲漢王, 以何爲丞相. 項王與諸侯屠燒咸陽而去. 漢王所以具知天下阸塞, 戶口多少, 彊弱之處, 民所疾苦者, 以何具得秦圖書也. 何進言韓信, 漢王以信爲大將軍. 語在淮陰侯事中. 漢王引兵東定三秦, 何以丞相留收巴蜀, 填撫諭告, 使給軍食. 漢二年, 漢王與諸侯擊楚, 何守關中, 侍太子, 治櫟陽. 爲法令約束, 立宗廟社稷宮室縣邑, 輒奏上, 可, 許以從事; 卽不及奏上, 輒..
52. 제도혜왕세가(齊悼惠王世家) 齊悼惠王劉肥者, 高祖長庶男也. 其母外婦也, 曰曹氏. 高祖六年, 立肥爲齊王, 食七十城, 諸民能齊言者皆予齊王. 齊王, 孝惠帝兄也. 孝惠帝二年, 齊王入朝. 惠帝與齊王燕飮, 亢禮如家人. 呂太后怒, 且誅齊王. 齊王懼不得脫, 乃用其內史勳計, 獻城陽郡, 以爲魯元公主湯沐邑. 呂太后喜, 乃得辭就國. 悼惠王卽位十三年, 以惠帝六年卒. 子襄立, 是爲哀王. 哀王元年, 孝惠帝崩, 呂太后稱制, 天下事皆決於高后. 二年, 高后立其兄子酈侯呂臺爲呂王, 割齊之濟南郡爲呂王奉邑. 哀王三年, 其弟章入宿衛於漢, 呂太后封爲朱虛侯, 以呂祿女妻之. 後四年, 封章弟興居爲東牟侯, 皆宿衛長安中. 哀王八年, 高后割齊瑯邪郡立營陵侯劉澤爲瑯邪王. 其明年, 趙王友入朝, 幽死于邸. 三趙王皆廢. 高后立諸呂諸呂爲三王, 擅權用事. 朱虛侯年..
51. 형연세가(荊燕世家) 荊王劉賈者, 諸劉, 不知其何屬初起時. 漢王元年, 還定三秦, 劉賈爲將軍, 定塞地, 從東擊項籍. 漢四年, 漢王之敗成皋, 北渡河, 得張耳ㆍ韓信軍, 軍修武, 深溝高壘, 使劉賈將二萬人, 騎數百, 渡白馬津入楚地, 燒其積聚, 以破其業, 無以給項王軍食. 已而楚兵擊劉賈, 賈輒壁不肯與戰, 而與彭越相保. 漢五年, 漢王追項籍至固陵, 使劉賈南渡淮圍壽春. 還至, 使人閒招楚大司馬周殷. 周殷反楚, 佐劉賈舉九江, 迎武王黥布兵, 皆會垓下, 共擊項籍. 漢王因使劉賈將九江兵, 與太尉盧綰西南擊臨江王共尉. 共尉已死, 以臨江爲南郡. 漢六年春, 會諸侯於陳, 廢楚王信, 囚之, 分其地爲二國. 當是時也, 高祖子幼, 昆弟少, 又不賢, 欲王同姓以鎭天下, 乃詔曰: ‘將軍劉賈有功, 及擇子弟可以爲王者. 群臣皆曰: ‘立劉賈爲荊王, 王淮東..
50. 초원왕세가(楚元王世家) 楚元王劉交者, 高祖之同母少弟也, 字游. 高祖兄弟四人, 長兄伯, 伯蚤卒. 始高祖微時, 嘗辟事, 時時與賓客過巨嫂食. 嫂厭叔, 叔與客來, 嫂詳爲羹盡, 櫟釜, 賓客以故去. 已而視釜中尙有羹, 高祖由此怨其嫂. 及高祖爲帝, 封昆弟, 而伯子獨不得封. 太上皇以爲言, 高祖曰: ‘某非忘封之也, 爲其母不長者耳. 於是乃封其子信爲羹頡侯. 而王次兄仲於代. 高祖六年, 已禽楚王韓信於陳, 乃以弟交爲楚王, 都彭城. 卽位二十三年卒, 子夷王郢立. 夷王四年卒, 子王戊立. 王戊立二十年, 冬, 坐爲薄太后服私姦, 削東海郡. 春, 戊與吳王合謀反, 其相張尙ㆍ太傅趙夷吾諫, 不聽. 戊則殺尙ㆍ夷吾, 起兵與吳西攻梁, 破棘壁. 至昌邑南, 與漢將周亞夫戰. 漢絕吳楚糧道, 士卒饑, 吳王走, 楚王戊自殺, 軍遂降漢. 漢已平吳楚, 孝景帝欲以..
49. 외척세가(外戚世家) 自古受命帝王及繼體守文之君, 非獨內德茂也, 蓋亦有外戚之助焉. 夏之興也以涂山, 而桀之放也以末喜. 殷之興也以有娀, 紂之殺也嬖妲己. 周之興也以姜原及大任, 而幽王之禽也淫於褒姒. 故易基乾坤, 詩始關雎, 書美釐降, 春秋譏不親迎. 夫婦之際, 人道之大倫也. 禮之用, 唯婚姻爲兢兢. 夫樂調而四時和, 陰陽之變, 萬物之統也. 可不愼與? 人能弘道, 無如命何. 甚哉, 妃匹之愛, 君不能得之於臣, 父不能得之於子, 況卑下乎! 旣驩合矣, 或不能成子姓; 能成子姓矣, 或不能要其終: 豈非命也哉? 孔子罕稱命, 蓋難言之也. 非通幽明之變, 惡能識乎性命哉? 太史公曰: 秦以前尙略矣, 其詳靡得而記焉. 漢興, 呂娥姁爲高祖正后, 男爲太子. 及晚節色衰愛弛, 而戚夫人有寵, 其子如意幾代太子者數矣. 及高祖崩, 呂后夷戚氏, 誅趙王, 而高祖..
48. 진섭세가(陳涉世家) 陳勝者, 陽城人也, 字涉. 吳廣者, 陽夏人也, 字叔. 陳涉少時, 嘗與人傭耕, 輟耕之壟上, 悵恨久之, 曰: ‘茍富貴, 無相忘. 庸者笑而應曰: ‘若爲庸耕, 何富貴也? 陳涉太息曰: ‘嗟乎, 燕雀安知鴻鵠之志哉! 二世元年七月, 發閭左適戍漁陽, 九百人屯大澤鄕. 陳勝ㆍ吳廣皆次當行, 爲屯長. 會天大雨, 道不通, 度已失期. 失期, 法皆斬. 陳勝ㆍ吳廣乃謀曰: ‘今亡亦死, 舉大計亦死, 等死, 死國可乎? 陳勝曰: ‘天下苦秦久矣. 吾聞二世少子也, 不當立, 當立者乃公子扶蘇. 扶蘇以數諫故, 上使外將兵. 今或聞無罪, 二世殺之. 百姓多聞其賢, 未知其死也. 項燕爲楚將, 數有功, 愛士卒, 楚人憐之. 或以爲死, 或以爲亡. 今誠以吾衆詐自稱公子扶蘇ㆍ項燕, 爲天下唱, 宜多應者. 吳廣以爲然. 乃行卜. 卜者知其指意, 曰:..
55. 유후세가(留侯世家) 留侯張良者, 其先韓人也. 大父開地, 相韓昭侯ㆍ宣惠王ㆍ襄哀王. 父平, 相釐王ㆍ悼惠王. 悼惠王二十三年, 平卒. 卒二十歲, 秦滅韓. 良年少, 未宦事韓. 韓破, 良家僮三百人, 弟死不葬, 悉以家財求客刺秦王, 爲韓報仇, 以大父ㆍ父五世相韓故. 良嘗學禮淮陽. 東見倉海君. 得力士, 爲鐵椎重百二十斤. 秦皇帝東游, 良與客狙擊秦皇帝博浪沙中, 誤中副車. 秦皇帝大怒, 大索天下, 求賊甚急, 爲張良故也. 良乃更名姓, 亡匿下邳. 良嘗閒從容步游下邳圯上, 有一老父, 衣褐, 至良所, 直墮其履圯下, 顧謂良曰: ‘孺子, 下取履! 良鄂然, 欲毆之. 爲其老, 彊忍, 下取履. 父曰: ‘履我! 良業爲取履, 因長跪履之. 父以足受, 笑而去. 良殊大驚, 隨目之. 父去里所, 復還, 曰: ‘孺子可教矣. 後五日平明, 與我會此. 良因怪..
46. 전경중완세가(田敬仲完世家) 陳完者, 陳厲公他之子也. 完生, 周太史過陳, 陳厲公使卜完, 卦得觀之否: ‘是爲觀國之光, 利用賓于王. 此其代陳有國乎? 不在此而在異國乎? 非此其身也, 在其子孫. 若在異國, 必姜姓. 姜姓, 四嶽之後. 物莫能兩大, 陳衰, 此其昌乎? 厲公者, 陳文公少子也, 其母蔡女. 文公卒, 厲公兄鮑立, 是爲桓公. 桓公與他異母. 及桓公病, 蔡人爲他殺桓公鮑及太子免而立他, 爲厲公. 厲公旣立, 娶蔡女. 蔡女淫於蔡人, 數歸, 厲公亦數如蔡. 桓公之少子林怨厲公殺其父與兄, 乃令蔡人誘厲公而殺之. 林自立, 是爲莊公. 故陳完不得立, 爲陳大夫. 厲公之殺, 以淫出國, 故“春秋”曰: ‘蔡人殺陳他’, 罪之也. 莊公卒, 立弟杵臼, 是爲宣公. 宣公[二]十一年, 殺其太子御寇. 御寇與完相愛, 恐禍及己, 完故奔齊. 齊桓公欲使爲卿..
45. 한세가(韓世家) 韓之先與周同姓, 姓姬氏. 其後苗裔事晉, 得封於韓原, 曰韓武子. 武子後三世有韓厥, 從封姓爲韓氏. 韓厥, 晉景公之三年, 晉司寇屠岸賈將作亂, 誅靈公之賊趙盾. 趙盾已死矣, 欲誅其子趙朔. 韓厥止賈, 賈不聽. 厥告趙朔令亡. 朔曰: ‘子必能不絕趙祀, 死不恨矣. 韓厥許之. 及賈誅趙氏, 厥稱疾不出. 程嬰ㆍ公孫杵臼之藏趙孤趙武也, 厥知之. 景公十一年, 厥與郤克將兵八百乘伐齊, 敗齊頃公于鞍, 獲逢丑父. 於是晉作六卿, 而韓厥在一卿之位, 號爲獻子. 晉景公十七年, 病, 卜大業之不遂者爲祟. 韓厥稱趙成季之功, 今後無祀, 以感景公. 景公問曰: ‘尙有世乎? 厥於是言趙武, 而復與故趙氏田邑, 續趙氏祀. 晉悼公之(十)[七]年, 韓獻子老. 獻子卒, 子宣子代. 宣字徙居州. 晉平公十四年, 吳季札使晉, 曰: ‘晉國之政卒歸於韓ㆍ魏..
44. 위세가(魏世家) 魏之先, 畢公高之後也. 畢公高與周同姓. 武王之伐紂, 而高封於畢, 於是爲畢姓. 其後絕封, 爲庶人, 或在中國, 或在夷狄. 其苗裔曰畢萬, 事晉獻公. 獻公之十六年, 趙夙爲御, 畢萬爲右, 以伐霍ㆍ耿ㆍ魏, 滅之. 以耿封趙夙, 以魏封畢萬, 爲大夫. 卜偃曰: ‘畢萬之後必大矣, 萬, 滿數也; 魏, 大名也. 以是始賞, 天開之矣, 天子曰兆民, 諸侯曰萬民. 今命之大, 以從滿數, 其必有衆. 初, 畢萬卜事晉, 遇屯之比. 辛廖占之, 曰: ‘吉. 屯固比入, 吉孰大焉, 其必蕃昌. 畢萬封十一年, 晉獻公卒, 四子爭更立, 晉亂. 而畢萬之世彌大, 從其國名爲魏氏. 生武子. 魏武子以魏諸子事晉公子重耳. 晉獻公之二十一年, 武子從重耳出亡. 十九年反, 重耳立爲晉文公, 而令魏武子襲魏氏之後封, 列爲大夫, 治於魏. 生悼子. 魏悼子徙治..
43. 조세가(趙世家) 趙氏之先, 與秦共祖. 至中衍, 爲帝大戊御. 其後世蜚廉有子二人, 而命其一子曰惡來, 事紂, 爲周所殺, 其後爲秦. 惡來弟曰季勝, 其後爲趙. 季勝生孟增. 孟增幸於周成王, 是爲宅皋狼. 皋狼生衡父, 衡父生造父. 造父幸於周繆王. 造父取驥之乘匹, 與桃林盜驪ㆍ驊騮ㆍ綠耳, 獻之繆王. 繆王使造父御, 西巡狩, 見西王母, 樂之忘歸. 而徐偃王反, 繆王日馳千里馬, 攻徐偃王, 大破之. 乃賜造父以趙城, 由此爲趙氏. 自造父已下六世至奄父, 曰公仲, 周宣王時伐戎, 爲御. 及千畝戰, 奄父脫宣王. 奄父生叔帶. 叔帶之時, 周幽王無道, 去周如晉, 事晉文侯, 始建趙氏于晉國. 自叔帶以下, 趙宗益興, 五世而(生)[至]趙夙. 趙夙, 晉獻公之十六年伐霍ㆍ魏ㆍ耿, 而趙夙爲將伐霍. 霍公求奔齊. 晉大旱, 卜之, 曰: ‘霍太山爲祟’. 使趙夙..
42. 정세가(鄭世家) 鄭桓公友者, 周厲王少子而宣王庶弟也. 宣王立二十二年, 友初封于鄭. 封三十三歲, 百姓皆便愛之. 幽王以爲司徒. 和集周民, 周民皆說, 河雒之閒, 人便思之. 爲司徒一歲, 幽王以褒后故, 王室治多邪, 諸侯或畔之. 於是桓公問太史伯曰: ‘王室多故, 予安逃死乎? 太史伯對曰: ‘獨雒之東土, 河濟之南可居. 公曰: ‘何以? 對曰: ‘地近虢ㆍ鄶, 虢ㆍ鄶之君貪而好利, 百姓不附. 今公爲司徒, 民皆愛公, 公誠請居之, 虢ㆍ鄶之君見公方用事, 輕分公地. 公誠居之, 虢ㆍ鄶之民皆公之民也. 公曰: ‘吾欲南之江上, 何如? 對曰: ‘昔祝融爲高辛氏火正, 其功大矣, 而其於周未有興者, 楚其後也. 周衰, 楚必興. 興, 非鄭之利也. 公曰: ‘吾欲居西方, 何如? 對曰: ‘其民貪而好利, 難久居. 公曰: ‘周衰, 何國興者? 對曰: ‘齊ㆍ秦..
41.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 越王句踐, 其先禹之苗裔, 而夏后帝少康之庶子也. 封於會稽, 以奉守禹之祀. 文身斷發, 披草萊而邑焉. 後二十餘世, 至於允常. 允常之時, 與吳王闔廬戰而相怨伐. 允常卒, 子句踐立, 是爲越王. 元年, 吳王闔廬聞允常死, 乃興師伐越. 越王句踐使死士挑戰, 三行, 至吳陳, 呼而自剄. 吳師觀之, 越因襲擊吳師, 吳師敗於檇李, 射傷吳王闔廬. 闔廬且死, 告其子夫差曰: ‘必毋忘越. 三年, 句踐聞吳王夫差日夜勒兵, 且以報越, 越欲先吳未發往伐之. 范蠡諫曰: ‘不可. 臣聞兵者凶器也, 戰者逆德也, 爭者事之末也. 陰謀逆德, 好用凶器, 試身於所末, 上帝禁之, 行者不利. 越王曰: ‘吾已決之矣. 遂興師. 吳王聞之, 悉發精兵擊越, 敗之夫椒. 越王乃以餘兵五千人保棲於會稽. 吳王追而圍之. 越王謂范蠡曰: ‘以不聽子故至於此..
40. 초세가(楚世家) 楚之先祖出自帝顓頊高陽. 高陽者, 黃帝之孫, 昌意之子也. 高陽生稱, 稱生卷章, 卷章生重黎. 重黎爲帝嚳高辛居火正, 甚有功, 能光融天下, 帝嚳命曰祝融. 共工氏作亂, 帝嚳使重黎誅之而不盡. 帝乃以庚寅日誅重黎, 而以其弟吳回爲重黎後, 復居火正, 爲祝融. 吳回生陸終. 陸終生子六人, 坼剖而產焉. 其長一曰昆吾; 二曰參胡; 三曰彭祖; 四曰會人; 五曰曹姓; 六曰季連, 羋姓, 楚其後也. 昆吾氏, 夏之時嘗爲侯伯, 桀之時湯滅之. 彭祖氏, 殷之時嘗爲侯伯, 殷之末世滅彭祖氏. 季連生附沮, 附沮生穴熊. 其後中微, 或在中國, 或在蠻夷, 弗能紀其世. 周文王之時, 季連之苗裔曰鬻熊. 鬻熊子事文王, 蚤卒. 其子曰熊麗. 熊麗生熊狂, 熊狂生熊繹. 熊繹當周成王之時, 舉文ㆍ武勤勞之後嗣, 而封熊繹於楚蠻, 封以子男之田, 姓羋氏, 居丹..
39. 진세가(晉世家) 晉唐叔虞者, 周武王子而成王弟. 初, 武王與叔虞母會時, 夢天謂武王曰: ‘余命女生子, 名虞, 余與之唐. 及生子, 文在其手曰: ‘虞’, 故遂因命之曰虞. 武王崩, 成王立, 唐有亂, 周公誅滅唐. 成王與叔虞戲, 削桐葉爲珪以與叔虞, 曰: ‘以此封若. 史佚因請擇日立叔虞. 成王曰: ‘吾與之戲耳. 史佚曰: ‘天子無戲言. 言則史書之, 禮成之, 樂歌之. 於是遂封叔虞於唐. 唐在河ㆍ汾之東, 方百里, 故曰唐叔虞. 姓姬氏, 字子于. 唐叔子燮, 是爲晉侯. 晉侯子寧族, 是爲武侯. 武侯之子服人, 是爲成侯. 成侯子福, 是爲厲侯. 厲侯之子宜臼, 是爲靖侯. 靖侯已來, 年紀可推. 自唐叔至靖侯五世, 無其年數. 靖侯十七年, 周厲王迷惑暴虐, 國人作亂, 厲王出奔于彘, 大臣行政, 故曰: ‘共和’. 十八年, 靖侯卒, 子釐侯司徒立. ..
38.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 微子開者, 殷帝乙之首子而帝紂之庶兄也. 紂旣立, 不明, 淫亂於政, 微子數諫, 紂不聽. 及祖伊以周西伯昌之修德, 滅黎國, 懼禍至, 以告紂. 紂曰: ‘我生不有命在天乎? 是何能爲! 於是微子度紂終不可諫, 欲死之, 及去, 未能自決, 乃問於太師ㆍ少師曰: ‘殷不有治政, 不治四方. 我祖遂陳於上, 紂沈湎於酒, 婦人是用, 亂敗湯德於下. 殷旣小大好草竊姦宄, 卿士師師非度, 皆有罪辜, 乃無維獲, 小民乃并興, 相爲敵讎. 今殷其典喪! 若涉水無津涯. 殷遂喪, 越至于今. 曰: ‘太師, 少師, 我其發出往? 吾家保于喪? 今女無故告予, 顛躋, 如之何其? 太師若曰: ‘王子, 天篤下菑亡殷國, 乃毋畏畏, 不用老長. 今殷民乃陋淫神祇之祀. 今誠得治國, 國治身死不恨. 爲死, 終不得治, 不如去. 遂亡. 箕子者, 紂親戚也. 紂..
37. 위강숙세가(衛康叔世家) 衛康叔名封, 周武王同母少弟也. 其次尙有冉季, 冉季最少. 武王已克殷紂, 復以殷餘民封紂子武庚祿父, 比諸侯, 以奉其先祀勿絕. 爲武庚未集, 恐其有賊心, 武王乃令其弟管叔ㆍ蔡叔傅相武庚祿父, 以和其民. 武王旣崩, 成王少. 周公旦代成王治, 當國. 管叔ㆍ蔡叔疑周公, 乃與武庚祿父作亂, 欲攻成周. 周公旦以成王命興師伐殷, 殺武庚祿父ㆍ管叔, 放蔡叔, 以武庚殷餘民封康叔爲衛君, 居河ㆍ淇閒故商墟. 周公旦懼康叔齒少, 乃申告康叔曰: ‘必求殷之賢人君子長者, 問其先殷所以興, 所以亡, 而務愛民. 告以紂所以亡者以淫於酒, 酒之失, 婦人是用, 故紂之亂自此始. 爲梓材, 示君子可法則. 故謂之“康誥”ㆍ“酒誥”ㆍ“梓材”以命之. 康叔之國, 旣以此命, 能和集其民, 民大說. 成王長, 用事, 舉康叔爲周司寇, 賜衛寶祭器, 以章有德...
36. 진기세가(陳杞世家) 陳胡公滿者, 虞帝舜之後也. 昔舜爲庶人時, 堯妻之二女, 居于媯汭, 其後因爲氏姓, 姓媯氏. 舜已崩, 傳禹天下, 而舜子商均爲封國. 夏后之時, 或失或續. 至于周武王克殷紂, 乃復求舜後, 得媯滿, 封之於陳, 以奉帝舜祀, 是爲胡公. 胡公卒, 子申公犀侯立. 申公卒, 弟相公皋羊立. 相公卒, 立申公子突, 是爲孝公. 孝公卒, 子愼公圉戎立. 愼公當周厲王時. 愼公卒, 子幽公寧立. 幽公十二年, 周厲王奔于彘. 二十三年, 幽公卒, 子釐公孝立. 釐公六年, 周宣王卽位. 三十六年, 釐公卒, 子武公靈立. 武公十五年卒, 子夷公說立. 是歲, 周幽王卽位. 夷公三年卒, 弟平公燮立. 平公七年, 周幽王爲犬戎所殺, 周東徙. 秦始列爲諸侯. 二十三年, 平公卒, 子文公圉立. 文公元年, 取蔡女, 生子佗. 十年, 文公卒, 長子桓公鮑立..
35. 관채세가(管蔡世家) 管叔鮮ㆍ蔡叔度者, 周文王子而武王弟也. 武王同母兄弟十人. 母曰太姒, 文王正妃也. 其長子曰伯邑考, 次曰武王發, 次曰管叔鮮, 次曰周公旦, 次曰蔡叔度, 次曰曹叔振鐸, 次曰成叔武, 次曰霍叔處, 次曰康叔封, 次曰冉季載. 冉季載最少. 同母昆弟十人, 唯發ㆍ旦賢, 左右輔文王, 故文王舍伯邑考而以發爲太子. 及文王崩而發立, 是爲武王. 伯邑考旣已前卒矣. 武王已克殷紂, 平天下, 封功臣昆弟. 於是封叔鮮於管, 封叔度於蔡: 二人相紂子武庚祿父, 治殷遺民. 封叔旦於魯而相周, 爲周公. 封叔振鐸於曹, 封叔武於成, 封叔處於霍. 康叔封ㆍ冉季載皆少, 未得封. 武王旣崩, 成王少, 周公旦專王室. 管叔ㆍ蔡叔疑周公之爲不利於成王, 乃挾武庚以作亂. 周公旦承成王命伐誅武庚, 殺管叔, 而放蔡叔, 遷之, 與車十乘, 徒七十人從. 而分殷餘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