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797)
건빵이랑 놀자
우리네 아버지들의 서글픈 자화상 두 시간 여를 기다리며 반가운 여행자를 만나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눴다. 나와는 180도 다른 여행을 하던 친구와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시간도 잘 가고 여러 감상을 낳게 하더라. 그렇게 시간을 보냈고 마침내 버스가 와서 다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어제 여행을 멈췄던 제천 수산면으로 가기 위해서다. 사람여행 최초의 히치하이킹 버스를 타고 수산에 도착하고 보니 11시가 넘었더라. 어제의 허탈한 기분 탓인지 걷기도 싫었다. 그래서 충주방향으로 가는 차를 잡아 중간지점까지 가기로 했다. 아마도 아침부터 걸었다고 생각하면 점심쯤 거기에 도착할 거 같았기 때문이다. 차를 히치하이킹 해보기로 한 것은 국토종단까지 합하면 두 번째다. 국토종단 때는 고성으로 향하는 길에서 얻어 타고 고성 ..
멀리 살면 친구, 가까이 살면 원수 수산에서 제천으로 가는 길에 청풍호가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제천시내로 나오게 되었지만, 그 덕에 청풍호를 보게 된 셈이다. 불행과 행복은 이처럼 한 끗 차이로 교차한다. 청풍호? 충주호? 버스를 타고 지나며 보는 청풍호의 야경은 정말 멋졌다. 이곳을 보지 않고 제천을 지나쳤다면 꽤나 후회 했을 것이다. 물론 그 장관(壯觀)을 봤기 때문에 어리는 감정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제천 시내로 버스를 타고 나가는 그 상황이 전혀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이런 기회가 아니었으면 어찌 청풍호의 가슴 벅찬 야경을 볼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찜질방에서 TV를 보며 내가 얼마나 무식한지 알게 됐다. 그건 다름 아닌 청풍호에 대한 얘기 때문이다. 방송을 보기 전엔 충추호와 청풍호가 다른 호수..
도보여행과 관광여행 8시가 못 되어 찜질방에서 나왔다. 정류장에 도착하니 35분이다. 어제 제천으로 나올 때 앞에 탄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7시 40분에 버스가 있고 한 시간마다 버스가 온다고 하셨다. 곧 오겠거니 기다리고 있는데 오지 않더라. 그래서 다른 버스 기사님에게 물어보니 9시 40분에 온다고 하시더라. 어젯밤 경황이 없어 잘못 들었나 보다. 이로써 두 시간 정도를 무작정 기다려야 했다. 사람여행⑭: 관광여행자에게서 본 관광여행의 한계 정류장에서 여행자 한 명을 만났다. 이런 만남이야말로 예기치 않은 사건이 끼어든 경우다. 여행의 묘미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엇나간 곳에서 새로운 인연과 엮이는 법이니 말이다. 행색으로 봐서는 사무실 직원 같았다. 파리도 미끄러질 정도로 잘 닦여진 구두를 ..
여행 중 신세를 지려는 이유와 사람에 대한 예의 그런데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어제 교회에서 거부당하자 화를 냈는데, ‘몸이 안 좋아 과민반응한 게 아닌가?’라는 의문도 들 수 있다. 물론 그런 의문은 합당하다. 몸이 안 좋으면 신경은 날카로워지는 법이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엔 다른 이야기가 숨어있기 때문에 지금부터 하도록 하겠다. 왜 부담을 주면서까지 신세지려 하는가? 잘 것을 부탁한다고 해서 모두 다 받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찌 모르는 사람을 이야기 몇 마디 듣고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더욱이 지금처럼 ‘사람이 가장 무서운 세상’에선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 현실을 알기 때문에 부탁을 할 때 망설여지고 혹 받아준다 해도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신세를 지려 하는 건 ..
여행의 룰을 깬 것에 대한 비겁한 변명 어제 저녁에 제천 수산면에서 잠자리 구하기에 실패했다. 사람여행을 떠난 지 보름 정도가 지났는데 보름 정도만에 처음으로 잠자리 얻기에 실패한 것이고, 2009년에 한 달간 진행했던 국토종단까지 합하여 생각해보면 도보여행 45일 만에 최초로 잠자리를 얻지 못한 것이다. 더욱이 수산면의 경우엔 교회가 두 군데나 있었고 마을 규모도 큰 편이었기에 당연히 얻게 될 거라 기대를 했었는데 그 기대가 부질없이 무너져 내리자 모든 의욕은 감쪽 같이 사라졌다. 아침만 해도 그렇게 신나고 행복할 수가 없었는데 반나절 만에 감정은 180도 바뀌고 말았다. 이래서 인생이 재밌는 거고, 여행이 재밌는 거겠지. 룰을 깨다 그나마 다행히도 바로 제천 시내로 나오는 버스가 있었고 어렵지 않게 ..
사람여행 중에 닥친 최대의 위기 징그럽게 온갖 잠금장치들이 달려 있는 문을 보고 기가 막혔다. 하지만 어쩔 텐가? 이 교회도 이 교회만의 사정이 있는 것이고 나는 어떻게든 잘 곳을 구해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도 다행히 이곳엔 교회가 두 군데 있지 않은가. 아직 실망하기엔 많이 이르다. 그래서 실망할 겨를도 없이 다른 교회로 가니 아까 전의 교회에 비하면 작지만 오히려 이 마을의 분위기엔 잘 어울리는 듯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실컷 비웃어 주리라 교회문도 열려 있다. 사택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그때, 문을 열고 사모님으로 추정되는 젊은 분이 나오신다. 정중하게 인사드리고 목사님 좀 뵐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런 경우 반응은 두 가지다. 사모의 권위가 세거나 자신이 나서도 된다고 생각하면 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오지 말거라 시간이 겨우 오전밖에 되지 않았기에 단양에서 잠자리를 구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물론 애초부터 이곳에서 하룻밤 묵을 생각이었다면 여관을 미리 잡고 남한강의 고적(孤寂)한 분위기를 만끽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테지만, 그럴 생각이 아니었기에 수산면까지 가려 맘먹었다. 맘이 바뀌니 구불구불한 도로가 불편해지다 먼 거리이고 산등성이를 넘어야 하는 길이기에 속력을 높여야 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에 몸이 정말 무거웠다. 이런 컨디션으로 제대로 걸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경치는 정말 빼어났다. 남한강을 따라 걸으니, 어디를 보든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것만 같다. 하지만 오전과는 달리 맘이 급해지니 산등성이에 건설된 구불구불한 도로가 불편하게 느껴지더라. 구불구불..
최고의 도보여행 코스, 단양 가는 길 가곡면에서 단양군내까지는 8㎞의 거리다. 이 길이 좋은 이유는 남한강을 옆에 두고 걷는 길이라 운치가 좋다는 점이다. 단양까지 걷는 길 상쾌도 하다 그렇지 않아도 7번 국도를 걸을 때도 동해를 실컷 보며 걸을 생각에 엄청 기대를 하며 그곳으로 갔던 것인데 막상 그곳에 가선 어떻게든 빨리 벗어나려 애를 썼었다. 한적한 바닷길을 상상했는데 고속도로를 방불케 할 정도로 차량통행도 많은 데다 엄청 빨리 달렸고 곳곳엔 물고기의 사체만이 넘쳐났으니 말이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가곡면에서 단양군으로 가는 59번 국도길은 그때 상상했던 바로 그 길이었다. 남한강을 굽이굽이를 따라 도로가 만들어져 있다. 그러니 최근에 만들어진 쭉쭉 뻗은 도로만을 달리는 사람이라면 답답하게 느껴질지..
가곡교회 목사님과의 맛난 대화와 아쉬운 작별 목사님은 새벽 예배 후에 주무시고 계셨고 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택으로 와서 아침을 먹으라는 사모님의 전화를 받고 혼자 올라갔다. 목사님의 아버님과 함께 밥을 먹었다. 밥을 먹으며 오전 중에 소나무를 마당에 심을 거라고 하시더라. 아이들은 일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목사님과 단둘이 심어야 한단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오늘 목사님이 바쁘시겠구나 하는 생각만 했다. 밥을 다 먹고 사모님과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사택으로 내려왔다. 사람여행⑬: 소나무를 같이 심었어야 했는데 목사님은 일어나 계시더라. 목사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짐을 챙겨 길을 떠났다. 그런데 한참 걷고 있으니, 그제야 왜 이렇게 급하게 떠났는지 후회되더라. 소나무를 심고 오후쯤 ..
형님이라 부르고 싶은 목사님을 만나다 4시쯤 되어서야 남한강변에 도착하게 되었다. 국토종단 때 양수리까지 걸어가며 남한강의 경치를 만끽했는데 2년 만에 다시 보니 반갑더라. 이 강줄기가 흐르고 흘러 서해로 간다고 생각하니 참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서서히 저무는 햇빛이 남한강에 비치니, 남한강을 둘러싼 산들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고즈넉하게 보이더라. 이런 광경을 눈으로 보며 걸을 수 있다니, 참 행복하다. 가곡면에 둥지를 틀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마음은 여유로웠다. 그 이유는 수요예배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보통 7시나 7시 30분에 시작되니, 그 시간까지만 교회에 도착하면 된다. 물론 빨리 도착하면 좋겠지만 시골은 몇 시간을 걸어야 겨우 마을이 나오며, 교회가 없는 경우도 많으니 안심할 수 없다. 그..
돈이 사람을 왕따시키는 세상아! 단양으로 경로를 바꾸길 정말 잘했다. 차량통행도 별로 없는 한적한 길이라 신나게 걸을 수 있었다. 날씨도 어찌나 화창한지 이런 날 집에 있거나, 사무실에 박혀 있었다면 얼마나 억울했을까? 자본의 하수인 일이라는 거, 당연히 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건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자아실현과 자본증식과 인정욕 등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한다는 걸 사람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당연히 일을 하고 싶지만, 지금은 뜻대로 되지 않아 쉼표처럼 여행을 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당연함에 의문을 던진 사람들도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은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이다. 시골생활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과 접..
Young World, 영월의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다 원래는 영월에서 제천, 충주를 거쳐 서해안으로 가려 했다. 그런데 충주에서 버스를 타고 영월로 오는 길을 보니, 차들이 어찌나 많이 다니던지 도무지 걸어갈 만한 길은 아닌 것 같더라. 그래서 지도를 보며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적극적으로 부딪히리라 한참 보고 있으니, 단양을 경유해서 가는 길이 괜찮아 보이더라. 지방도라는 점이 특히 맘에 들었다. 물론 지도를 통해서만 본 것이기에 얼마나 험한지, 얼마나 차량통행이 많은 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그런 걸 일일이 알아야만 출발할 수 있다면, 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어떤 길이든 떠나기로 한 이상 앞서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부딪혀 보면, 별 것 아닐뿐더러 새로운 길이 열..
꿈을 통해 나 자신을 엿보다 방이 어찌나 추운지 덜덜 떨면서 잤다. 벽에 온도조절기 같은 게 붙어 있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스위치가 안 보인다. 아마도 중앙에서 일괄적으로 통제하나 보다. 이불 반쪽을 깔고 반쪽을 덮고 자야 하니,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잘 수밖에 없었다. 몸이 오므라드는 느낌마저 든다. 그나마 새벽이 되어 보일러가 켜져서 다행이지 그러지 않았으면 오늘 여행을 망칠 뻔했다. 보일러가 켜져 바닥이 따끈해지고 나서야 푹 잘 수 있었다. 꿈까지 꾸며 말이다. 꿈, 의식으로 눌러버린 진실의 한 단면 그때 꾼 꿈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아침에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때에 맞춰 버스가 왔으나 정류장에 다 와서 엔진 과열로 멈춘 것이다. 신속하게 상황이 처리되어 다른 버스가 왔고 멈춘 버스에 타고..
영월 KBS 방송국을 굳이 찾아간 이유 영월읍내로 들어서니, KBS 방송국의 위치를 알려주는 팻말이 보인다. 여기야말로 『라디오스타』의 중심 촬영지다. 그 영화 때문에 영월을 찾아왔는데 어찌 이곳을 보지 않고 그냥 가랴. KBS 영월 방송국 방송국으로 올라가는 길의 오른쪽엔 유유히 동강이 흐르고 있다. 해질녘의 싸늘한 강바람을 맞으며 오르니, 꼭 영화 속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이 길을 따라 박민수(안성기 분)와 최곤(박중훈 분)이 오를 때면 어느샌가 이스트리버(노브레인)가 따라붙어 노래를 한 곡만 부르게 해달라느니, 홈페이지를 개설했다느니, 100일 기념 콘서트를 열겠다느니 하는 여러 제안을 해왔었다. 화면에 나타난 길은 꽤나 넓어 보였는데(차가 두 대 정도는 지나가는 길), 현실의 길은 차 한 대..
단종의 애환이 서린 청령포에 가다 단종(端宗)의 비운이 서린 고장, 『라디오스타』라는 영화의 중심무대인 영월에 왔다. 나의 후반기 여행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영월에 오고 싶었다 영월엔 언젠가 한 번 오고 싶었다. 그건 순전히 영화 탓이다. 밀양은 『밀양』이란 영화 때문에 가고 싶었던 것처럼, 이곳 또한 영화로 인해 친근감이 느껴져 오고 싶었다. 이곳에 오면 ‘최곤(영화 주인공)’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영화에 비해 영월읍은 꽤 컸다. 영양군, 봉화군 등 작은 고장들을 지나왔기에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영월에 간다고 하니 꼭 가보라고 추천해준 곳이 있다. 굽이치는 계곡의 절경을 볼 수 있는 청령포(淸冷浦)와 삼촌에 의해 권력의 희생양이 된 단종의 무덤이 있는 장릉(莊陵)이다. 이곳을 ..
국토종단과 사람여행의 세 가지 차별점 어느덧 여행이 중반기에 접어들었다. 이쯤 되면 여행이라기보다는 일상이라고 표현해도 될 듯하다. 그만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다. 더욱이 어느 정도 목표한 바는 이루었으니, 여기서 관둔다 해도 아쉬울 게 없다. 사람여행을 다시 떠나며 그렇다면 물어보자. 과연 이번 여행을 통해 무엇을 이루어 냈는가? 2009년에 했던 국토종단에 대한 관성으로 여기까지 온 건 아닌가? 막상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나니, 이번 여행의 한계가 보이는 듯도 하다. 아무래도 국토종단과 여행의 패턴이나 방향이 엇비슷하기 때문이리라. 꼭 차이가 나야 하는 건 아니지만 애초에 ‘사람여행’이라 명명한 이상,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국토종단 식(式)의 여행은 어떤 가시적인 성취감을..
처음으로 재림교회에서 자게 되다 봉화읍에 도착한 시간은 4시가 못 되어서였다. 처음 보이는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연하게도 여기도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더라. 어떻게 이런 일이 하루에 두 번이나 일어날 수 있을까. 참 신기한 순간이었다. 바로 이 교회 옆에 규모가 매우 큰 예수교 장로회 교회도 있었지만 두 번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여기에 잠자리를 정하기로 했다. 이 좋은 기회를 뭐 하러 코앞에서 놓치겠는가. 그래서 사택에 찾아가 보니 아쉽게도 목사님이 안 계시더라. 벌써 삼 일째 똑같은 경우가 반복되고 있다. 어쩌겠는가 결정한 이상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기다려봐야지. 무작정 기다렸더니 일곱 시가 약간 넘어서야 목사님이 오셨고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바로 오케이 하셨다. 사람여행⑫: 낯선 이를 낯설지..
감자밭에서 일을 하며 만난 인연 오후 2시의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천천히 걷는다. 느낌으론 봉화읍내가 멀지 않은 것 같다. 짧은 거리를 걷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절로 여유로워지며 모든 것에 말 걸고 싶어진다. 그러니 금방처럼 재림교회에도 들어가 한참이나 썰을 풀고 올 수 있었으며 물씬 내린 봄기운을 만끽하며 걸을 수 있는 것이다. 도움의 손길을 다시 내밀다 남은 시간을 주체할 길이 없어 둘러보며 가는데 노부부가 밭일을 하는 게 보인다. 무작정 그루터기에 배낭을 벗어놓고 그분들에게 다가가 도와줄 거 없냐고 물었다. 감자를 심는 모습이 보였기에,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으리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데도 환하게 웃으시면서 그럴 필요 없다고 하신다. 뭐 거부 또한 예의상 그런 것일 수도 있으니, 그냥 내가 할..
배선[船]이란 한자엔 성경 내용이 담겨 있다? 재림교회에서 점심을 먹을 때, 내가 한문을 전공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떤 분이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하셨다. ▲ 노아의 방주와 배주[船]의 상관관계. ‘배선[船]’엔 성경이 담겨 있다? 이야기인즉슨, 한자에 성경 내용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성경 말씀이 한자 형성에 관여하여 몇 개의 글자만 연구해봐도 성경 내용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야기가 맞다면 정말로 충격적인 이야기다. 내가 한참 진규와 성경에 관해 이야기할 때, ‘과연 하느님의 진리란 게 어디든 있고 자연히 알게 되는 것이라면 왜 동양 사람들은 서양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하느님이나 성경에 관한 내용을 알지 못하고 문물교류를 통해서 알게 됐던 걸까?’하는 문제제기를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
이단이란 낙인이 찍힌 재림교회와의 첫 인연 이 교회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란다. 예전에 기독교인이었을 때(나도 한 땐 열렬한 신자였다. 그때 열렬히 믿은 탓에 지금은 열렬히 돌아섰긴 하지만~) 목사님으로부터 이단이라는 수식어로 많이 듣곤 했던 곳이다. 그땐 목사님 말씀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했을 뿐, 왜 이단인지, 무엇이 다른지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맹신(盲信)으로 목사님 말이라면 쉽게 순종하고 의심하지 않던 때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지금에서야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인연이 되어 토요일에 예배드리는 이유도 듣고 사람들도 만나보게 되었으니, 인생 한번 재미지다. 여행하면서 ‘신천지’도 ‘여호와 증인’도 여타 기독교의 다른 종교기관도 모두 접해보고 싶었는데 지금에서야 그 소원이 이..
도움의 손길 내밀기와 도움의 손길 잡기 오늘도 길을 나선다. 좀 더울 거라지만 아침에는 약간 춥다. 오늘은 봉화읍까지만 갈 생각이다. 멀지 않다고 생각하니 마음도 한결 가볍다. 이제 즐기며 가기만 하면 된다. 일요일이니만치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점심도 거기서 해결해야지. 저번 주 일요일에도 이런 생각으로 걸었었는데 교회가 보이지 않아 그러지 못했다. 이번에는 부디 지나는 길에 교회가 있기를 간절히 희망해본다. 처음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다 봉화읍도 코앞이고 마음도 한결 여유롭다 보니 지나가는 풍경들이 새롭다. 어떤 광경이냐? 농사짓는 광경. 그동안은 내가 가야 할 길이 바빴기에 농사일하시는 분들에게 인사만 하고 지나쳤다. 하지만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한들 뭐할 텐가. 조금 일찍 도착했다는 것 외엔 아무 것도..
우리 모두, 수고했어 오늘도 어느덧 해는 저물어 석양빛이 짙게 물들어져 있었다. 아이들은 한 둘씩 집으로 들어가 공터는 썰렁해졌다. 다시 사택으로 가보니,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집에 불이 켜져 있지 뭔가. 그렇다면 아까부터 사람이 있었다는 얘긴데, 왜 초인종을 눌렀을 때 아무도 나오지 않았던 것일까. 쉽게 잠자리를 구하다 그런 의구심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그랬더니,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학생이 나오더라. 사정을 이야기하니, 목사님에게 전화해보겠다며 안으로 들어와 기다리란다. 켜져 있는 티비를 보며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목사님이 오셨고 바로 승낙해주셨다. 목사님은 지친 기색이 완연했다. 쇼파에 푹 파묻혀 귀찮은 말투로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신다. 왠지 ‘밥벌이의 지겨움’ 같은 게 ..
아이들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창 청량산 입구에 들어서니 공사중이란 팻말이 보이더라. 그 옆엔 입산금지라는 안내판도 보인다. 산불 나기 쉬운 계절이기에 입산을 통제한단다. 그 순간 많이 망설였다. ‘입산금지’ 기간에 무단으로 입산했다가는 벌금도 물고 다시 하산해야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렇다고 다시 되돌아가기도 싫었다. 이렇게 된 이상 무작정 가보는 거다. 까짓것 걸리면 “몰라서 그랬어요”라고 발뺌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청량산 코스를 놓쳤으면 어쩔? 초입길은 경사도 급한 데다 길까지 파헤쳐 있으니 걷기가 참 불편했다. 조금 오르니 포크레인이 보였다. 공사 중이라고 통행이 안 된다고 막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들 식사하러 가셨는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10분 정도 급경사의 오르막길을 올랐다. 끔찍하..
두 번째 걷다가 길 위에서 만난 만남 한 시간 정도를 걸었나. 길가에서 한 분이 쉬고 계신다. 행색으로 보아서는 도보여행을 하는 건 아니고 등산을 하시는 분 같았다. 목례를 하고 지나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곳을 지날 때쯤 그분도 짐을 챙기더니 일어서시는 거다. 같은 방향으로 걷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사람여행 중 청도군의 운문호를 거닐 때에 이어 두 번째 길에서의 만남이다. 사람여행⑩: 뜻밖의 만남, 그리고 여행 애찬론 그분의 나이는 56살로 이 근처에 별장이 있어서 한 번씩 쉬려고 오신단다. 근 한 달 동안 그곳에서 생활하며 이 근방을 하릴없이 돌아다니셨단다. 그렇다고 가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 나이 때가 되면 오히려 이렇게 한 번씩 떨어져 지내는 게 서로에게 더 좋..
귀농한 자식들을 달갑게 여기지 못하는 아버지의 사연 장로님의 두 아들들은 다른 일을 하다가 뜻대로 안 되어 최근에 귀농(歸農)했단다. 어쩐지 어제저녁에 보니 사람이 많다 했다. 대가족의 모습을 좀처럼 볼 수 없는 사회이기에, 그런 광경이 낯설면서도 좋아 보였다. 사람여행⑨: 농촌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그런 나의 느낌과는 달리 장로님은 자신의 맘만 같지 않은지 한숨만 푹푹 쉬시더라. 아들들이 자신의 일을 하기보다 농사일을 이어받는다는 게 못마땅하셨나 보다. 그건 농사엔 비전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은 “내가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야”라고들 말한다. 그러면서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절대 자식들에겐 농사지으라고 하진 않을 거야”라는 거였다. 농사..
악한 생각을 가진 심판자들의 집단 4시 20분쯤 눈이 떠졌다. 어둠이 짙게 깔려 있다. 새벽기도에 나갈 채비를 하고 조심조심 문을 열고 나갔다. 집 밖으로 나오니, 어제만 해도 무섭게 느껴졌던 개 세 마리가 오늘은 매우 반갑게 느껴진다. 대문 쪽을 바라보니, 장로님과 사모님, 그리고 큰 며느님이 나오신다. 가족 전체가 기도회에 참여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 깜짝 놀랐다. 장로님은 거동이 불편한 사모님을 부축하며 걷고 난 큰 며느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걸었다. 사람여행⑨: 장로님이 이끄는 새벽기도 교회에 도착하니, 사람이 별로 없다. 목사님에게 부탁을 받으셨는지, 장로님이 나가서 기도회를 이끈다. 전형적인 농사꾼으로 정식교육을 받은 것 같지 않은데도, 강단에 반듯하게 서서 정연하게 말씀을 전해주..
좋은 것도 고착되면 나쁜 것이 된다 아들이 쓰는 방에서 자게 됐다. 침대도 있고 안락하니 좋다. 따뜻한 물도 나와서 샤워까지 말끔히 할 수 있었다. 민가에서 자게 되면, 여행기를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다. 사람 사는 이야기, 경험담을 들으며 사람을 이해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여행⑨: 사람여행의 이유, 어우러지기 거실에서 TV를 같이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문을 열고 옆방으로 건너가니, 장로님 혼자서 TV를 보고 계시더라. 가족이 다 같이 있는데, 혼자만 TV를 보고 계시는 모습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이런 걸 ‘군중 속의 고독’이라 할 수 있으려나. 그래서 거실로 가지 않고 장로님 옆에 앉아 이것저것 물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로님은 77살이라고 하셨다. 젊었을..
잠자리를 구하기 위한 고군분투 점심은 과자와 음료수로 간단히 때웠다. 가는 길에 조지훈 생가가 있는 ‘주실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도로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갈 수 있는데도 그냥 지나쳤다. 여행기를 쓰고 있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왜 그랬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바쁜 것도 아니었고, 힘든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막상 걸어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그 당시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스산한 바람에 실린, 온갖 망상들 4시쯤 교회가 보여 가봤으나 목사님은 안 계셨다. 시간이 너무 이른 것 같아 조금 더 걷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부턴 더 첩첩산중이더라. 산으로 앞이 가로막혀 있고 계속 가봐야 언제 마을이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정확히 어제 정자에 올랐을 때의 기분과 같았다. 그때 버스정류장에 서 ..
산림욕과 기우(杞憂) 독경산을 따라 걷는다. 2차선 도로로 차 통행도 많지 않다. 산세를 관찰하며 걷는 데 열중하기만 하면 된다. 하늘엔 구름이 가득 껴있고 기온은 서늘한 듯했다. 삼림욕, 산행의 즐거움 이런 날이 걷기 좋은 날이다. 아직 이파리가 무성하게 자라지 않아 산록의 푸르름을 느낄 순 없지만 새싹들이 피어오르는 걸 보고 있노라니, 참 행복하더라. 천지가 생동하는 기운이 나에게도 전달된다. 내 몸도 천지자연의 일부이니, 자연의 약동(躍動)은 나에게 힘을 그대로 전해준다. 산바람은 시원하고 상쾌했다. 누군 삼림욕을 즐기러 비싼 돈을 내고 찾아간다는데 나는 일상 속에서 이렇게 즐기고 있다. 점심때쯤 영양읍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음도 가볍고 발걸음도 가볍다. 어제 일정을 정할 땐 영양읍까지만 가려고 ..
빨리 가는 인생보다 한 걸음씩 걸어가는 인생을 잠자기 전에 우의도 입고 잠바까지 껴입었다. 그것으로도 안심이 안 되어 두꺼운 이불을 두 겹이나 덮었고 바닥엔 교회 의자용 포를 세 겹이나 깔았다. 잘 채비를 마치고 이불 속에 들어가니, 잠시 몸에 한기가 돌았다. 체온으로 이불 속이 데워지면 금세 따뜻해질 것이다. 한기에 뒤척이다 곧 잠이 들었다. 잠자리의 한기를 막기 위한 방법 자는 내내 몸을 더욱 움츠렸던 것 같다. 따뜻해지긴 커녕 한기가 온몸을 감싸 안았기 때문이다.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며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급기야 새벽 3시에 눈이 떠지고 말았다. 방 안의 차가운 공기는 이불이 잘 막아주고 있었지만, 방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는 그러지 못했다. 의자포가 얇은 탓에, 세 겹 깐 것으론 아무..
넘어져봤기에 낮은 자의 자세로 다가가다 목사님이야말로 삶의 다종다양한 아픔이나 슬픔을 맛들인 분이셨다. 그렇게 자유로운 영혼이 되기까지 다양한 일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사람여행⑧: 넘어선 자의 여유 교통사고가 크게 나서 뼈가 으스러지고 반신불수가 되었단다. 몸도 아프셨겠지만 그런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마음은 얼마나 더 아프셨을까. 목사님은 종교인이기에 보통 종교인처럼 기도와 말씀에 의지한 채 살았어도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무기력한 삶(신앙심 가득한 삶)을 택하진 않으셨다.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재활치료에 집중했고 몸이 조금씩 낫자, 아예 훌훌 털고 여행을 다니셨다. 그 결과 지금은 언제 아팠냐는 듯 멀쩡해 보인다. 운동도 하시고 여행도 다니시면서 보통 사람보다도 더 건강하게 사신다. 고통을 회피하..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목사님과의 만남 열심히 걸어 교회에 도착해 주위를 살폈다. 교회문은 열려 있고 교회 바로 옆엔 목사님 사택이 있다. 하지만 목사님은 사택에 계시지 않나 보다. 아무리 불러봐도 대답 없는 공허함만 감도니 말이다. 그래서 교회 근처를 둘러보고 있는데 목사님 같은 분이 나오시더라. 다짜고짜 인사부터 하고 공손하게 이야기했다. 이럴 때일수록 부드러운 듯 힘 있게, 그러면서도 건방져 보이지 않게 이야기하는 게 핵심이다. 내 얘기를 다 듣고 목사님은 교회 사정이 좋지 않아 숙박시설이 있는 인근 교회로 데려다주겠다고 하신다. 거부하는 게 아니었기에 왠지 잘 이야기하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불편해도 좋으니 여기서 자게 해달라고 했던 것이다. 그랬더니 목사님도 결국은 승낙해주시더라. 사람여행⑧: ..
7번 국도를 벗어났지만 잘곳을 부탁할 곳이 없네 비가 오락가락한다. 피곤했기에 많이 걸을 생각은 없었다. 그저 7번 국도를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귀가 먹먹할 정도의 소음, 까딱 잘못하면 저 세상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거기에 그 길이 그 길 같다는 지루함까지 겹치니 한적한 길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동해를 볼 수 있다는 점 외엔 불편한 것투성이니 말이다. 7번 국도를 벗어나기 위해 걷다 그래서 7번 국도만 벗어나자는 생각으로 쉴 때 안 쉬고, 먹을 때 안 먹고 걸었다. 얼핏 아침에 지도를 본 감으로는 빨리만 걸으면 오전 중에 918 지방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멀었다. 더욱이 아침엔 잠시 해까지 비치며 비가 갠 듯했는데 오후로 접어들면서 먹구름이 하늘에 가득 찼..
비 오는 아침인데도 바다길을 따라 가다 방사능비가 내린다던 날이다. 비를 맞으며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앞선다. 이미 비가 온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제 걸으면서 ‘내일은 비가 온다는데 어쩌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아침에 비 오는 양을 봐서 하루 더 묵던지, 오후까지 쉬다가 영덕까지만 가던지 해야겠다고 정한 것이다. 하루 더 묵으려면 당연히 좋은 목회자를 만나야 한다. 과연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국토종단 때는 비 오는 날 걷는 게 제일 좋았는데, 지금은 어떻게든 피할 궁리만 하고 있으니 격세지감이랄까? 방사능비라고 생각하니 무서움이 앞서기 때문이랄까? 작심(作心) 하루 ‘하루 더 머물던지, 비 그친 다음에 영덕까지 가던지 해야지’라고 맘먹은 지 하루 만에 계획..
영덕 삼사면에서 두 사람을 만나다 장로님이 교회에서 자겠다는 나를 데리고 청년을 소개해주겠다며 데려갔다. 청년에게 한참을 얘기했고 그 청년은 장로님의 말씀은 잘 듣는지 바로 승낙하여 그곳에서 하룻밤 묵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교회에 묵겠다는 사람을 자신이 아는 사람에게 소개해주고 묵을 수 있게 해주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한 교회에서 매몰차게 거부당한 후이고, 어둠까지 짙게 깔린 후였기에 매우 행복했다. 사람여행⑥: 집사가 되기 위해 사는 삶 형은 사십대 중반쯤 되시는데, 뭔가가 좀 부족해보였다. 부모님이 남겨주신 집에서 홀로 살고 있다. 집은 흉가를 방불케 했다. 집을 꾸밀 능력이 없으니, 부모님이 남겨주신 것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다. 일을 하지는 않는 것 같고,..
해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말어 5시 정도에 번듯한 교회가 보여 그곳으로 들어갔다. 교회 근처에 도착하니 사모님 같은 분이 보이기에 “목사님 좀 뵐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자기에게 이야기하라신다. ‘이해하는 척’이란 폭력!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난처해하시며 “교회에 화장실이 없어서 많이 불편할 거예요”라고 대답해주시더라. 핑계인 게 분명했기에 나도 물러서지 않았고 “옆에 야산이 있으니 저기서 볼일을 해결할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라고 말을 하며 자게 해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그랬더니 예의 선한 미소를 띠셨지만 안 된다고 한큐에 거절하셨다. 바로 이게 본론이자 결론이고, 교회에 화장실이 없다는 얘긴 거짓말이거나 단순히 둘러대는 말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교회에 화장실이 없을 수 있겠는가?..
동해를 보러 7번 국도를 걷다가 물고기 사체만 본 사연 신기하게도 지방도가 끝나고 7번 국도에 들어서자마자 저 멀찍이 바다가 보였다. 지금은 비록 저 멀리 있지만 이 길을 따라 가다보면 바다를 옆에 두고 걸을 때도 있을 것이다. 현실과 이상, 그 사이에서 드디어 최종 경로를 정하다 그런데 하나 간과한 게 있었다. 국도의 살벌함이랄까. 차들이 많기도 했지만 속도도 장난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나마 여긴 인도가 넓어 차를 피해 다닐 필요는 없지만 뻥뻥 뚫린 4차선 도로에는 차가 전속력으로 달려 온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아침까지만 해도 7번 국도를 빨리 걷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빨리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이래서 사람 마음은 간사하다고 하는 거겠지. 이 길을 따라 속초까지 갔다가는 스트레스 때문에 제..
행복한 식사의 조건 아침에 사모님이 밥을 가져다주셨다. 역시나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신다. 밥을 먹고 설거지하고 커피 한 잔 마시고 나왔다. 목사님께 인사하고 가려 했으나 도저히 문을 열고 잘 가겠다고 인사할 수가 없더라. 그래서 주보에 적혀 있는 목사님 핸드폰 번호로 ‘감사하다고 전주에 오시거든 꼭 연락 주시라’고 문자를 보냈다. 역시나 감감무소식이다.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가는 게 예의 없는 건 맞지만, 이런 식으로 마지막까지 모른 채 하는 것도 좀 그렇더라. 2년 만에 동해와 재회한다 오늘은 드디어 7번 국도를 타게 되는 날이다. 7번 국도는 동해의 해안선을 따라 만들어졌기에 동해를 보며 걸을 수 있을 거라 잔뜩 기대했다. 경치도 당연히 좋을 뿐만 아니라, 시원한 바닷바람까지 불어와 걷..
사람 간에 보이지 않는 선을 확인하다 오늘 걸은 길은 구(舊) 68번 지방도였다. 한적한 시골 풍경을 만끽하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하지만 생각지도 않았는데 여긴 인도가 없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더라. 그래서 차가 올 땐 가던 길을 멈추고 길 가에 다소곳이 서 있어야 했다. 활개 치고 다닐 수 없으니, 이건 도보여행을 온 건지 차를 피하는 연습을 하러 온 건지 헛갈릴 정도였다. 구 68번 지방도엔 인도가 없어라 큰 차의 사이드 밀러에 치일 뻔한 뒤로, 차가 올 때마다 길가에 바짝 붙어 있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길 가는 풀밭이다. 그것도 도로보다 2Cm 정도 솟아 있다. 차가 올 때는 그곳으로 올라가 피하고 안 오면 내려와 걷고, 그렇게 반복하며 걸으니 어찌나 힘들던지. 보통 때보다 두 세배 체력소모가..
운명과 같이 살아가는 법 하루 쉬고 여행하기 때문인지 몸도 가볍고 마음도 가볍다. 이런 기분을 느끼며 다시 여행을 할 수 있으니, 행복하기까지 하다. 역시 ‘쉼’은 ‘함’을 위한 것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도 들지만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면모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 하루 쉬어서인지 ‘호랑이 기운이 솟아’난다. 더욱이 방바닥에 널어놓은 빨래들이 뽀송뽀송 잘 말라서 기분까지 좋다. 이런 걸 ‘순조로운 하루의 시작’이라고 한다. 하루 일진이 안 좋다? 하루의 시작에 따라 하루 전체의 색깔이 달라지는 건 운명이라기보다는 심리적인 문제인 것 같다. 아침부터 일이 꼬이면 ‘하루 일진이 안 좋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은 자신을 더욱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심지어 자진해서 안 좋은 일을 불러들이기도 한다...
방폐장과 콩나물국밥의 경주 구름은 잔뜩 껴있었지만, 어느덧 봄이 무르익어 걷기에 좋았다. 봄은 오고 나는 봄 위를 걷는다. 경주에 도착한 시간은 3시 30분 정도였다. 작년에 두 번이나 왔던 곳이기 때문인지 꼭 고향에 온 듯 맘이 편하다. 오랜만에 찜질방에 가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편하게 쉬고 싶었다. 경주, 천년의 도시와 경제적 가치 사이에 터미널 근처의 안내소에 가서 찜질방 위치를 물어보니, 글쎄 황성동(터미널에서 4Km 쯤 떨어진 곳)에 있단다. 당연히 터미널 근처에 있을 줄 알았는데 한 시간이 더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좀 짜증이 났다. 생각 같아선 버스로 가고 싶었지만 어차피 찜질방에 들어가선 할 일이 없었기에 구경도 할 겸 걸어가기로 했다. 경주엔 방사능 폐기물 관리 공사의 본사가 들어오..
처음으로 절에서 자며 불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절에서 처음 자봤다. 길가에 보이던 절, 혹 점을 쳐주는 점집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지만 절이 맞았다. 보살님이 자신의 돈을 털어 창건한 절이고 법진 스님을 주지 스님 자격으로 초빙한 절이다. 이런 시골에서 이만한 절을 유지할 수 있는 돈이 들어오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사람여행⑤: 『금강경』의 맛과 닮은 선덕사와의 인연 나중에 알게 된 내용이지만 이 절을 찾는 사람들은 지역 사람들이 아니라 외지 사람들이라고 하더라. 어떠한 인연으로 이곳까지 찾아와 예불을 드리고 시주를 하는지 궁금하다. 선덕화(善德華)라는 법명을 가진 83살의 보살님이 이곳의 주인인 셈이다. 따뜻한 방에서 혼자 뒹굴며 자고 일어나니 어제저녁에 내린 결단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더라. 그 교회에..
길은 사람을 만나 특별해진다 도보여행을 하다 보면 감흥이 없어질 때가 있다. 모든 일이 그럴 테지만 여행이 일상이 되어 마지못해 참고 걸어야 할 때가 그렇다. 힘겨울 땐 시체마냥 푹 쉬어야 한다 걸어서 목적지까지 가려는 이유는 걸어가는 도중에 나를 성찰하고 사건을 만들고 싶어서다. 성찰하거나 사건을 만들고자 하지 않았다면, 굳이 힘들 게 걸어야 할 이유가 없고 아예 버스나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여행을 했을 것이다. 더욱이 이걸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돈이 없어서, 처음에 세운 계획이기에 무조건 따르기 위해서 걷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좋아서 한 일임에도 그게 발목을 잡는다. 그만큼 내 마음에 여유가 없어졌다는 이야기이리라. 이럴 땐 어찌해야 되는 것일까? 어떤 이는 ‘삶이 팍팍하다고 ..
선덕사에서 하룻밤 묵으며 맺은 인연 이 절은 보살님이 창건하신 곳이란다. 보살님은 남편을 한국전쟁에서 잃고 딸과 살다가 부처님과의 연으로 이곳에 절을 창건하신 거란다. 보살님은 80세가 넘으셨는데도 정정하셨다. 매주 법회가 있는데 음식 장만을 그 연세에도 혼자서 하신단다. 밥 하랴, 음식 하랴, 설거지 하랴, 손님들 대접하랴, 힘들다고 하시더라. 사람여행⑤: 잘 수 없던 곳, 그곳에서 자게 된 사연? 도로 바로 옆에 있는 소규모 절치고는 규모가 꽤 커 보인다. 법당도 있고 불상들도 많이 있다. 가정집 같은 곳 옆에는 채마밭도 있어 분위기가 좋다. 이곳에 계신 주지스님은 법진(法眞)스님인데 이 스님이 보살님을 설득하셔서 내가 잘 수 있었던 것이다. 보살님도 “그대 같은 사람들이 지나가다 쟤워 달라고 하면 ..
잘 수 있는 배려를 뿌리친 이의 최후 4시쯤 교회가 보였다. 잘 곳을 정하기엔 이른 시간이긴 했지만, 한 번 의사를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들어갔다. 처음 허락받은 교회에 만족 못하다 젊은 목사님이 계셔서 물어봤더니, “좀 추울낀데...”라고 하실 뿐 거절하시진 않았다. 여느 때처럼 난 그저 자게 해주신다면 감사하다고 말했다. 결국 교회에서 자는 걸 승낙받긴 했는데 예배당에 안내만 해주셨을 뿐, 사택으로 가시더니 감감 무소식이다. 어디서 씻어야 하고 어디서 쉬어야 하는지 물어보려 했는데 오시질 않는다. 교회 옆에 사택은 있긴 하지만, 방 한 칸 있는 신혼집이라 목사님을 또 불러 귀찮게 할 수는 없어서 무작정 기다렸다. 50분 정도 기다렸지만 오실 것 같지 않더라. 썰렁한 교회 의자에 혼자 앉..
걷다가 길 위에서 만난 인연 국토종단을 할 땐 고창, 정읍, 고성에서 도보여행자와 마주쳤다. 그 경우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마주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연하게도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으면 아무래도 마주칠 확률은 현저히 줄어든다. 배낭을 메고 걷는 걸음의 속도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에 앞서 가던 사람이 오랜 시간 휴식하지 않는 이상 스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런 상식이 깨지고 말았다. 운문저수지를 오르고 있을 때, 이상하게도 자꾸 뒤에서 발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이런 경우가 없었기에 ‘설마 내가 잘못 들었겠지’하는 마음에 다시 집중하며 들어보니 역시나 들린다. 거긴 사람이 다니는 길은 아니었기에 순간 겁이 덜컥 났다. 여행자를 갈취하는 현대판 산적일 수도 있겠다..
멋진 여행을 꿈꾸며 떠났으나 지루하게 걷고만 있다 상쾌하게 일어났다. 사람여행 중에 집에서 자는 것처럼 편안하게 자보긴 처음이다. 아침밥도 함께 먹으니, 꼭 한 가족 같은 느낌이다. 사람여행③: 시골 할머니 집에서 하룻밤 묵은 것 같은 편안함 짐을 챙기고 나서려 하니, 사모님이 쇼핑백 같은 걸 내미신다. 무언가 하고 봤더니 음료수 몇 병과 물, 그리고 점심밥과 돈이 들어있다. 아침밥을 먹을 때, 사모님이 분주하게 부엌을 왔다 갔다 했는데, 이걸 만들려 그러셨던 거였다. 이렇게까지 마음을 써주시니,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 그러면서 어디쯤 걷고 있는지, 간혹 연락도 하고 그러라고 신신당부를 하신다. 실제로 여행이 끝날 때까지 간혹 어디쯤 가느냐고, 몸은 어떠냐고 연락 주시며 걱정을 많이 해주셨다. 사..
사람여행 중 최초로 느낀 사람의 향기 매전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어서 쉬엄쉬엄 왔더니, 5시 정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면사무소가 있는 곳이기에 규모가 꽤 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크지 않다. 교회도 하나밖에 없고. 지나가는 길에 보니 경찰서가 눈에 띈다. 정 안 되면 경찰서에 가서 하룻밤 재워 달라고 통사정 해봐야지. 매전에서 잠자리를 구하다 청도 매전의 동산교회는 다행히도 문이 열려 있고 사택도 옆에 붙어 있더라. 그런데 아무도 안 계신다. 교회 계단에 앉아 여행기를 쓰며 기다렸다. 서서히 해는 저물어 가고 바람도 꽤나 세게 분다. 아직도 밤엔 싸늘하다. 어떻게 될 줄도 모르는데 처량하게 앉아 있는 기분은 해본 사람만이 안다. 세상에 혼자 남은 듯한 쓸쓸함과 불안들, 그리고 과거의 안 좋았던 기억..
증여는 연결하고 교환은 분리한다 아침이 되어 소파도 원래 자리로 놓고 난로도 옮겼다. 불청객이라 스스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빨리 출발하려 했다. 씻고 돌아와 보니, 글쎄 테이블에 아침 식사가 놓여 있는 게 아닌가. 바로 그분이 손수 차려 주신 것이다. 그리고 떠날 때는 배웅까지 해주시며, 경주까지 가는 길을 자세하게 알려주시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라며 겸손해하시더라. 사람여행②: 증여의 삶 그때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주셨다. 무언가를 받은 만큼 그걸 준 사람에게 되갚아 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주라는 것이다. 서양식의 얄팍한 논리인 ‘받은 만큼 준다(Give & Take)’의 ‘교환논리’가 아닌, ‘모든 것들은 소유되지..
성당 신부님의 냉담함에 대비되는 관리인의 인자함 성당에서 자 보기도 처음이고 난방이 안 되는 곳에서 자보는 것도 처음이다. 신부님도 마지못해 승낙해 주신 셈이다. 저녁에 무슨 교육이 있는지 사람들이 꽤 많이 오간다. 그래서 씻지도 못하고 짐도 그래도 둔 채 하릴없이 한 켠에 놓인 신문을 읽고 있어야 했다. 성당의 불청객이 되어 그때 음식 배달부가 들어오더니 테이블에 자장면 세 개를 내려놓는다. 두 분의 관리인에 나까지 합하면 딱 세 사람이었기에 은근히 기대했다. 그런데 그때 관리인 한 분과 양복을 입은 한 사람이 들어오더니, 말 한마디 없이 배달 음식을 가지고 옆방으로 들어가더라. 완전 생무시를 당하는 상황이었기에, ‘이거 내가 사람들 눈에 안 보이는 건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며 썩소를 짓게 되었다. ..
영남 신공항 백지화와 도시 발전의 비전 성당을 관리하시는 분들과 저녁을 먹으며 공항 백지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백지화 되어 시끄러울 줄만 알았는데 막상 시내에 들어서니 조용하네요.”라는 말로 말문을 연 것이다. 세 분 중 두 분은 꽤 격앙된 목소리로 “수도권 의원들의 제지로 어느 쪽에도 손들어주지 못했던 거야. 이것이야말로 영남을 깔보는 처사라니까”라며 MB정권을 성토했다. 신공항 백지화는 밀양이 어떤 도시로 발전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계기 그래서 “밀양에 공항이 들어서면 어떤 것들이 좋아지는 거예요?”라고 물으니, 정확한 내용은 모르는 듯했다. 단지 지역 경제가 침체되어 있기에 무엇이든 하길 바라는 심리가 느껴졌을 뿐이다. 진영에서 밀양까지 걸어오면서 피부로 느껴졌던 건, 밀양이 진영에 ..
비밀스런 햇볕을 담은 밀양의 성당에서 묵게 되다 밀양을 알게 된 건 전도연, 송강호 주연의 ‘밀양’이란 영화를 보고 나서였다. 그 영화에서 묘사된 밀양은 좀 비밀스러우며 한적한 마을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었기에 친근감이 있었던 것이다. 비밀의 햇볕을 담은 고장, 밀양 영화에서 송강호는 “밀양이 어떤 곳이냐꼬요, 아~뭐라케야 되노. 경기가 엉망이고, 여론은 한나라당 도시고, 부산 가깝고… 말씨도 부산말씨고, 인구는 많이 줄었꼬….”라며 밀양을 소개하고. 전도연은 ‘밀양’이란 이름을 풀이하며 “비밀밀[密], 볕양[陽], 비밀의 햇볕(Secret Sunshine)… 좋죠?(실제로는 密‘은 ‘비밀’이 아닌 ‘빽빽하다’라는 뜻으로 풀어야 한단다. ‘볕 잘 드는 고장’이 원래 뜻임)”라고 말한다. 비밀의 햇볕이 ..
괜한 짓을 해볼 용기가 필요하다 무엇에 대한 평가는 경험의 횟수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양적으로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질적인 차이가 있는 경험을 여러 번 해봐야 한다는 얘기다. 이게 웬 뜬금없는 소리일까.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국토종단 중 영광에서 고창으로 향할 때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최악의 여행’ ‘차만을 위한 도로’ 등 도보여행지에겐 최악이었다는 이야기가 한 가득 쓰여 있다. 그땐 정말 그랬다. 쭉 뻗은 길, 아스팔트로 잘 포장된 길은 차에게 맞춰 설계된 것일 뿐, 그곳을 걸어갈 인간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도로가 허허벌판에 건설되어 있어 사람과 마주칠 수도 없었고 간혹 외벽으로 가로막혀 주변 경관을 볼 수도 없었다. 이런 상황이니 최악이..
봉하마을과 영남 신공항 백지화 결정 각 지역 번호판을 단 관광버스에서 내리신 분들은 대부분 나이 드신 분들이었다. 아마도 마을 야유회로 이곳에 온 것인가 보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하 그) 묘소에 가서 ‘잘 계셨나요? 그곳은 행복한가요? 그곳에서 이 곳 걱정 없이 편하게 지내셨으면 좋겠네요.’라는 말로 인사를 건넸다. 봉하마을, 드디어 내가 왔노라 국토종단 중 연기군 양화감리교회에서 묵을 때 그가 검찰 조사를 받으러 봉하마을에서 서울까지 상경하는 장면이 실시간으로 보도되었다. 어떻게 언론이 한 사람을 생매장시키는 지를 여실히 볼 수 있던 순간이었다. 그는 피의자 신분이었지만, 그와 같은 실시간 생방송은 그를 이미 범죄자로 몰았고, 그 방송을 보는 모든 사람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으니 말..
‘그럴 것 같았다’와 ‘내가 해봐서 아는데’의 공통점 봉하마을은 진영읍에서 떨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30분 정도 걸어 들어가 구경을 마친 후엔 다시 나와야만 한다. 봉하마을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봉하마을 주변에 마을이 조성되어 있어 잠자리를 구하기 쉬울 것만 같았다. 봉하마을엔 잘 곳이 있겠지 그래서 그곳에 도착하여 잠자리부터 구하고 봉하마을도 천천히 구경하고 부엉이 바위에도 올라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더욱이 봉하마을이라는 이름답게 마을 주변도 ‘시골마을 같은 분위기가 날 것만’ 같았다. 즉, 그곳에 이르기만 하면 오늘의 힘듦은 위로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게 한낱 이상일 뿐이었다. 봉하마을로 들어서는 길은 한적한 시골길이 아닌 철강 제품을 만드는 공장이 가득한 길이었다...
두 번의 예측이 빗나가다 몇 번 깨어 시간을 확인했을 뿐 자는 줄도 모르게 잤다. 역시 이어플러그를 꽂고 자니, 잠이 잘 온다. 나에게 이어플러그는 ‘수면제’다. 부산 찜질방에서 잘 때, 준비물을 철저히 점검했는데도 이어플러그를 빼놓고 와서 식겁했다. 낯선 곳이란 불편함과 수면제 같은 이어플러그를 놓고 왔다는 걱정 때문에 잠까지 설쳤다. 그래서 편의점이 보이자마자 바로 산 것이다. 김해에서 부산에서와 마찬가지로 찜질방에서 잤기에 잠자는 환경이 변한 건 없지만, 이어플러그를 꼽았다는 것만으로도 집에서 자는 것처럼 편하게 잘 수 있었다. 내 도보여행의 필수품은 뭐니 뭐니 해도 ‘이어플러그’다 상황①: 설마 가면 나오겠지 8시에 길을 나섰다. 영남 최대의 현안은 신공항 문제인데, 김해에선 별반응이 없어 보였다..
힘듦이란 통과의례를 지나가며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하시려나?’라는 기대로 교회로 돌아왔다. 롯데리아를 지나치는데 새우버거를 할인해서 2천원에 먹을 수 있다는 광고판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교회에 들어가면 저녁을 주실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사진 않았지만, 배가 고팠기에 자연히 눈이 그리로 간 것이다. ‘저녁을 주지 않으실 수도 있으니, 저걸 사가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유혹을 뿌리치고 교회로 왔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교회 복도에 놓인 커피 한 잔을 타서 마시며 목사님께 잘 다녀왔노라고 인사했다. 목사님은 으레적인 온화한 미소로 맞아주신다. 그때만 해도 모든 게 잘 되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섰다 생각 되는 순간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듯이, 상황은 언제고 유동적인 법이다. 애초에 우연에..
세 번째 부탁 만에 잠자리를 얻다 오늘은 무리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첫날부터 무리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에 몸을 푼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걸었다. 낙동강을 건너자 거짓말처럼 한적한 풍경이 이어진다. 여전히 공업사, 공장이 계속 되고, 차량 통행 대수도 많았지만 부산 시내처럼 높은 건물도,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도 없었다. 연이은 거부로 시작된 잠자리 얻기 김해 근방에 도착하자마자 잘 곳을 알아보러 눈에 띄는 교회를 무작정 찾아갔다. 첫 교회는 꽤 큰 교회였는데 사무실에 이야기했을 때만 해도 꽤 우호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장로님에게 전화하고 나선 태도가 돌변하며 허락해주지 않아 실패했다. 두 번째 교회도 사무실에 들어가니 전도사님으로 추정되는 분이 업무를 보고 계시더라. 그래서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목회자분..
낙동강과 한국전쟁 버스를 타고 터널을 지나자마자 바로 내렸다. 고작 한 정거장 가는 것이지만 큰 배낭을 메고 버스에 타니, 꼭 내가 부산시민이 된 듯한 느낌이 들더라. 도심 한복판의 공장 지대를 지나 어제 버스에서 내렸던 사상구를 지나간다. 부산은 역시 대한민국의 제2의 도시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닷가에선 조선, 중공업 등의 대규모 산업이 활발하게 진행되며, 내륙에선 작은 여러 공장들이 큰 공장들을 뒷받침한다. 활기차게 살아 움직이는 도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래 있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라. 걷는 사람에게 매연과 소음은 고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고통을 감내하며 여행할 마음은 전혀 없었기에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공장지대를 헤쳐나갔다. 한국전쟁 당시의 두 가지 ..
사람이 걸어서 지나갈 수 없는 터널이 있다 영주터널은 쉽게 찾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부산터널’이라고 쓰여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잘못 찾아왔나 싶어 들어갈까 말까 고민했다. 하지만 위치상으로 봤을 때, 맞겠다 싶어 그냥 그곳으로 갔다. 영주터널과 부산터널 그 간격에 대해 나중에 알고 보니, 정식 명칭은 ‘부산터널’이었고, 영주동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정식 명칭과 관습 명칭이 다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전주에도 이런 경우가 있다. 평화동과 남부시장을 잇는 다리를 사람들은 ‘전주교’라고 하지만 정식 명칭은 ‘싸전다리’이며 중앙시장에서부터 오거리를 지나 남부시장까지 잇는 길을 사람들은 ‘관통로’라 부르지만 정식 명칭은 ‘팔달로’인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정식 명..
부산 싸나이가 알려준 지름길 자는 내내 뒤척였다. 귀마개가 없다는 게 큰 이유였다. 분명히 챙긴다고 챙겼는데 여행의 필수품인 귀마개를 놓고 올 줄이야. 여행의 필수품, 귀마개 그런데 귀마개가 없다고 해서 못 잘 이유는 없다. 그건 어디까지나 심리적인 이유가 컸을 것이다. 늘 귀마개를 하고 자던 버릇이 있었다. 귀마개를 하면 소음도 어느 정도 걸러질 뿐만 아니라, 귓속이 따뜻해져 잠도 잘 온다. 차음(遮音)의 효과는 이미 국토종단을 하며 화천에서 양구로 가는 길에 연거푸 터널을 6개나 지나가며 충분히 느꼈었다. 그 이후론 이렇게 습관적으로 집중을 할 때건, 잠을 잘 때건 끼게 되었다. 이게 습관화되다 보니, 귀마개가 없으면 왠지 무언가 빠진 마냥 찝찝하고 소음도 더 잘 들리는 것만 같고, 그렇게 신경 쓰다..
나가수 정신으로 그려갈 사람여행 태종대를 다 둘러보고 김밥으로 요기하고 나니 시간은 4시 30분밖에 되지 않았다. 이제부턴 찜질방을 찾기 위해 걸어야 한다. 첫날이라 무리할 생각은 없었는데 영도 쪽에서 사람들에게 찜질방의 위치를 물어보니 모른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계속 걸어야 했다. 찜질방 찾아 영도를 지나며, 한진중공업을 지나며 걷다 보니, 공장만 연이어 나온다. 이 좁은 공간에 공장이 밀집되어 있으니,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조금 걸으니, 한진 중공업이 나오더라. 파업 중이라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역사의 한복판을 걷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를 동지가 아닌, 소모품 정도로 간주하는 사장에 대해 노동자들은 단결하여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내가 지날 땐 시위를 하진 ..
착각 속 태종대와 현실 속 태종대 중부지방에선 비가 온단다. 다행히도 전주는 맑고 포근하다. 오늘 도착지인 부산도 날씨가 좋을 거라고 하더라. 버스는 3시간을 달려 서부산에 도착했다. 낙동강을 건너니 바로 부산이더라. 영화로도 나왔고 여름이면 늘 TV에 나오는 곳이라 ‘해운대’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서부산 터미널에서 지하철을 타면 한 번에 해운대까지 갈 수 있기 때문에 더 끌리는지도 모르겠다. 여행 첫날이기에 좀 느슨하게 즐기며 여행할 생각이다. 부산 지하철 노선도를 보다 보니, 해운대는 서쪽 끝인데 반해 태종대는 남쪽 끝이더라. 더욱이 중학생 때 수학여행으로 와본 경험이 있는지라 급하게 노선을 변경하여 태종대로 가기로 했다. 전철에서 내려 버스를 타니 바로 태종대에 올 수 있었다. 좀 헤맨 탓에 한 ..
부산에서 여행을 시작하는 두 가지 이유 떠남은 언제나 현실을 낯설게 보게 한다. 어제도 그제도 다녔던 길이고 예전부터 만났던 사람이다. 그래서 아무 감각, 감정이 없다고 하면 섭섭할진 몰라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일상이 된다는 건 이런 것이다. 떠나면 비로소 알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자주 갔던 장소, 자주 만나던 사람이라 해서 너무도 잘 안다고 착각하진 말자. 오히려 가장 가깝다고 느끼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으며 다른 곳엔 여행 다닐지언정 자신이 사는 곳은 구석구석 다녀보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잘 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일 뿐 사실일 수 없는 것이다. 다시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봐야 할 때가 오면 그제야 잘 몰랐다는 사실을 알며 울고불고 할 지도 모른다. 전주를 떠..
걸음걸이에 삶은 영글어간다 살아있음이란, 그 자체로 생생한 기쁨이다. -『개밥바라기별』, 황석영, 문학동네, 2008 09년에 했던 국토종단 여행기 5번째 글에 인용해 놓은 글이다. 부제 형식의 글로 국토종단이 지향하는 바를 담고 있다. 진즉부터 원하던 여행을 드디어 떠나며 ‘생생한 기쁨’을 담고자 했던 것인데, 그걸 반대로 생각해보면 일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반증이었던 것이다. 09년에 떠난 도보여행은 살기 위한 발악이었다 ‘생생한 기쁨’이기보다 ‘축축 처지는 지루함’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 한 번 ‘빡시게’ 해본 적도 없이 운명처럼 주어진 그대로만 살아왔을 뿐이다. 그런데 그럴수록 내 자신이 텅텅 비어가는 느낌이 들었고 진절머리가 나도록 흥미는 급속도..
현실은 ‘No!’라 외칠 때 난 ‘Yes!’라 외치다 28일에 가는 것으로 기정사실화되었다. 더 이상 후쿠시마 원전 방송이 큰 문제가 되지 않고 다른 장애물도 없다. 어머니도 지레 포기하신 듯하다. 그렇다면 이젠 떠날 준비만 하면 된다. ‘나 좋으려 여행 떠난다’에 대한 항변 그런데 이쯤에서 밝혀야 할 것이 있다. 누군 ‘자기만 좋으려, 현실을 회피하려 여행을 떠난다’고 말을 하며 한껏 힐난한다. 뭐 여행의 정의 중에 그런 속성이 있으니 꼭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건 심각한 오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돈을 한 아름 안고 가 정해진 코스를 따라 즐기면서 돈을 뿌리고 가는 여행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난 돈도 많지 않을뿐더러 모든 걸 내걸고 가는 것이다. 도보여행의 속성상, 무계획적..
문제해결의 과정, 그게 여행의 목적 3월 21일에 떠나기로 한 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단지 그때쯤이 적당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떠나지 못할 이유가 없기에 떠난다 그런데 상황이 그렇게 좋진 않다. 솔직히 원전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어떤 이유를 대시며 만류하실지 궁금하긴 하다. 아마도 나이에 대해, 국내 물가가 치솟고 구제역으로 시끄러운 것에 대해 이야기하시며 만류하시지 않으셨을까. 어찌 되었든 원전 사고를 끄집어 낸 것도 어머니의 탐탁지 않은 마음인 줄은 알겠다. 어머니에게 중요한 건 원전 사고의 영향이 정말 있느냐, 없느냐 따위가 아니다. 단지 원전 사고가 있었다는 것뿐이다. 아무리 방송에서 무해하다고 해도 어디 그러느냐고 되물을 수 있는 것이고 ‘그걸 곧이곧대로 믿냐’고..
불통 속에 소통 상상하기 어떤 일이든 고비는 있게 마련이다. 그게 삶을 구렁텅이로 밀어 넣기도, 더 풍요롭게 하기도 한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무작정 정면돌파를 하느냐, 백기투항 하느냐 하는 게 아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꼼꼼히 물어야 하며 내 마음을 요소요소 들여다보고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상황은 유동적이고 사람은 늘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 순간을 어떻게 포착하여 조금이나마 이해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맘과 같지 않은 상황은 자신의 생각에 집중케 하며 여행의 의미를 정립케 한다. 이와 같은 과정을 겪다 보니 당연히 삶이 풍요로워진다고 하는 것이다. 그냥 떠나는 여행과 충분히 의미를 부여하고 떠나는 여행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지금처..
바람 불고, 우박이 떨어져도 날기 위해선 날갯짓을 해야 한다 어떤 엄마는 딸이 시내에 나간다고 하니, 그것을 만류하며 “밖에 나가면 얼마나 나쁜 사람들이 많은 줄 알아.”라고 말했고, 어떤 엄마는 아들이 두 번째 도보여행을 간다 하니, 그것을 만류하며 “이렇게 시국이 어수선한데(구제역, 고물가, 일본 쓰나미로 인한 방사선 유출) 어딜 가려고! 내년에 안정되면 가!”라고 말했다. 부리를 꺾고 날개를 꺾고 손발을 묶다 『라푼젤』이란 애니메이션을 봤다. 공주는 높은 탑에서 엄마와 함께 산다. 바깥세상이라곤 창문을 통해 보는 게 전부다. 잘 때마다 천정에 도배된 별 부스러기 벽지를 보며 바깥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키워간다. 그래서 숙녀가 된 어느 날 엄마에게 바깥세상에 나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데 엄마가 하는 ..
생각대로 살기 위해 떠나다 ‘생각대로 살아라. 그렇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어디선가 들었는데, 평소에 하던 생각을 잘 표현한 말이기에 기억하고 있는 말이다. 듣기 좋은 말이, 실천하긴 어렵다 상황에 휩쓸리고 주위 환경에 휩쓸려서 왜 사는지도 모르고 마지못해 사는 것보다 한 평생 즐기며 사는 게 나을 것 같다. 인생 길게 봐야 100년일 테지만, 그중에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 수 있는 시간은 30년도 채 되지 않는다. 열정이 있을 땐 돈이 없어서 하지 못하고, 돈이 있을 땐 열정이 사그라지던지, 체력이 뒷받침 되어주지 못해 하지 못한다. 그러니 열정이 들끓을 때 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문장의 성격으로 봐도 그건 바..
두 번째 떠나는 도보여행의 비판에 대한 해명 어제 가족 모임이 있었다. 술을 마셔야만 나사를 반쯤 풀게 되고, 그제야 겨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스스로의 약함이 있다. 진실해진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가까이 있는 것의 소중함을 모르기에 떠나는가? 우리는 ‘가족’이란 정의를 곱씹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희생하길 강요하고 있었다. 가족 공동체와 비슷한 말은 ‘가족 이기주의’다. 모든 걸 안으로 삼키는 블랙홀. 가족 공동체가 서로의 희생을 강요하는 배치 하에서는 가족 이기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있지 않는 ‘가족’이란 정의를 위해 개인의 행동, 개인의 사고를 가로막고 통제하려 하니 말이다. 가족 공동체가 실질적인 공동체가 되기 위해선 이와 같은 의식구조가 바뀌어야 한..
사람여행에 대해 정의하기 2009년에 국토종단을 떠난 후 2년이나 지나 도보여행을 다시 떠나겠다고 생각한 일은 갑작스런 일임에 틀림없다. 어느 계기가 있었던 것 같지도 않다. 갑작스럽되 예정된 사람여행 다만 무언가 새롭게 시작할 만한 걸 찾고 싶었다. 여기서 있자니,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건 이미 정해진 한계 내에서 현실 순응하는 일일 뿐, 좌충우돌하는 게 아니었으니 성에 찰 리 없었다. ‘지금 겪어야 할 일이라면 미루거나 겪지 않도록 할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겪자’라는 생각을 평소부터 하고 있었다. 한참 다양하게 경험해볼 수 있을 때 경험해보자는 취지로 말이다. 물론 좌충우돌하지 않는 편안한 길을 찾지 않은 건 아니다. 아마도 임용에 합격했다면 이런 고민 따위는 당연히 하지 않았을 것이고 만약..
여는 글, 길 선언문 길, 그건 내가 태어난 곳이자 내가 살아갈 곳이다. 더불어 나의 꿈이 만들어진 길이면서 동시에 자라고 영글어갈 곳이다. 길을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나만의 길이 만들어진다. 길의 가능성 그곳에서 태어나 자랐으니 그곳으로 돌아간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길에 서고자 한다. 즉, 길을 통해 다시 한번 나 자신을 대면하고 싶고 제대로 알고 싶다. 길은 외부ㆍ타인을 지향하지만 결국 내부ㆍ자신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열렸기에 닫힌 공간이며 그렇기에 타인과 자신을 통합하는 공간이다. 교사의 꿈이 사라진 지금, 여태껏 걸어왔던 길을 무작정 갈 순 없다. 어떠한 인연의 장이 열리길 바라는 수동적인 자세에서 인연의 장을 열어젖히는 능동적인 자세로 바꿔야한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내 자신이 가벼워..
국토종단 목차 전남 목포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국토를 가르는 여행기 1. 떠나기까지 도보여행 준비법 2.28(토) 프롤로그① 변화에 대한 열망으로 국토종단을 맘먹다 천천히 의식을 붕괴시키다 의지대로 모든 건 재구성된다 2.28(토) 프롤로그② 나만의 색채로, 나만의 계획으로 여행은 세상과 나를 알아가는 공부 지리산 등반과 도전정신 없음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란 꿈을 품고 3.07(토) 모든 해답은 네 안에 있어 3.12(목) 난관에 부딪히다Ⅰ 이사가 국토종단의 발목을 잡다 3.16(월) 국토종단을 위한 준비물을 갖추다 삶의 쉼표를 찍을 때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반응 생에 슬픔이 없다면 기쁨도 없고 기쁨이 없다면 슬픔도 없다 배낭과 트래킹화를 구입하며 느끼는 행복 3.17(화) 살아 있음..
재편집기④ 흥미진진하고 가슴 뛰게 한 재편집작업 이런 식으로 편집된 ‘국토종단기’를 보니, 여러모로 읽기 편해져서 맘에 든다. 물론 자화자찬이지만 추억이 되어 서서히 묻힐 뻔 했는데 이렇게 다시 꺼내 읽어보고 싶은 글이 되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편집을 위해 글을 읽으며 수정하다 보니, 거의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쉽게 끝날거라 생각하고 시작한 일인데, 막상 편집하기 시작하니 할 일이 꽤 많았다. 하지만 재밌는 것은 예전 글을 읽고, 당시의 느낌을 떠올리며 작업을 하니,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는 거다. 최근에 GTA5라는 게임을 하며 간만에 밤을 새는 열정을 발휘했었는데, 편집한 이후에는 게임보다 이게 더 재밌어서 게임도 하지 않게 되었다나 뭐라나. 그만큼 예전의 경험을 되돌아보며 꾸미는 작업은 ..
재편집기③ 편집의 원칙 지금 보기에 내용이 이상할지라도 바꾸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그 당시의 절실했던 감정이고, 무엇과 마주쳐 공명한 감정이기에 그걸 살리는 게 ‘국토종단기’의 핵심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바꾸지 마라 어설프니까 내용이다 예를 들면, 연기군을 지날 땐 ‘행정도시 이전’과 같은 사안에 집중하며 그 정당성을 이야기하기보다, 자연을 훼손하는 공사판이라며 울분을 토로했던 부분은 분명 현실인식이 부족했던 부분이다. 지금 보면 여러모로 단순한 생각이라 창피하긴 한데, 그 당시엔 정치적 사안보다 환경의 중요성이 더 크게 느껴져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이기에 그대로 남겨두었다. 어설프고, 설익고, 부족한 부분이라 하여 모두 제거해버린다면, 지금 내 모습도 퇴색해버리며, 편집이 아닌 악의적 창작이 되기 때문..
재편집기② 5년 만에 다시 국토종단기를 편집하는 이유 흐름이나 마주침을 통해 글이 된다는 생각은 위에서도 잠시 얘기했듯이 글뿐만 아니라, 모든 작품에 대해서도 똑같다고 생각한다. 미술작품, 영상작품, 그 외의 모든 작품도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다. 과거 찾아 삼만리 진규는 그림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친구다. 어느 날 이 친구에게 예전에 그렸던 작품을 보여주라고 얘기했던 적이 있다. 그랬더니 “막상 그리고 보면 이것저것 부족하다 싶어서 창피하고 그렇더라구. 예전에 그린 것을 지금 보면 ‘겨우 이렇게 그렸나’하는 생각에 버리고 싶기도 한다니까”라고 대답했다. 그런 말에 대해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나 또한 예전에 쓴 글을 보면 내용에 손발이 오그라들고, 무얼 말하고 싶은지 모를 정도로 문맥이 맞지 않는 부..
재편집기① 나와 공명한 흐름이 글로 담기다 국토종단은 2009년 4월 19일에 시작되어 5월 23일까지 거의 한 달간 떠났던 여행이다. 그 당시에 여행을 하면서, 그리고 돌아와 국토종단기로 정리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었다. 그렇게 과거의 추억으로 묻혀가고 있는 이때, 그것도 무려 6년이나 지난 지금 국토종단기를 재편집하게 되었다. 왜 갑자기 과거의 아련한 추억을 현재의 기억으로 덧칠하려는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무엇을 알게 됐는지 지금부터 썰을 풀어보도록 하겠다.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당신은 ‘글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어떤 정의를 내리는가? 나에게 글이란 인연과의 마주침, 천지자연과의 뒤섞임이 발산(發散)된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의식이 글을 쓴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
에필로그③ 인생의 셈법으로 살아갈 삶을 기대하며 여행이 다 끝난 지금, 목포에서 떠나던 때가 생각난다. 식상한 표현을 덧붙이자면 그때가 꼭 ‘엊그제’ 같다.^^ 배낭을 메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고 신발도 길이 들지 않았다. 더욱이 이런 여행(평소에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도 아니다)은 처음이었기에 모든 게 생소하고 두려웠다. 그나마 믿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마음과 우연마저 긍정할 수 있도록 변한 생각,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 자신이었던 셈이다. 낯선 인연들과 함께 만들어간 국토종단기 ‘이제부턴 내 자신만 믿고 뚜벅뚜벅 길을 걸어야 한다. 어떤 상황이 닥치건 피하지 말고 직면해 보자.’ 이런 생각으로 길을 떠났다. 그렇게 시작한 여행이 어느덧 한 달이란 시간이 흘러 끝을 맺었다. 지금은..
에필로그② 불안을 극복하는 두 가지 자세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런 두 가지 불안이 지닌 ‘근시안적인 삶의 태도’가 ‘이해타산적인 경제관념’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 순간, 한 순간에만 집중한다. 내가 이 사람에게 얼마를 베풀었으니 이 사람도 나에게 얼마를 되갚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 푼, 한 푼 돈을 쓰는 것에 극도로 민감해지고 관계도 피상적이게 된다. 하지만 그런 관계가 과연 좋은 관계인가? 누구도 그런 관계가 좋다고 말하진 못할 것이다. 생이불유(生而不有)의 삶의 자세 그렇다면 이런 관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또한 ‘근시안적인 관점’을 벗어나 ‘원시안적인 관점’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베풀어 얼마를 손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로 됐다...
에필로그① 두 가지 불안 “한 평생이란 시각으로 인생을 보면 지금의 이런 여행도 좋은 추억이고 계기겠죠”라고 원통에서 진부령을 넘어 간성으로 가기 위해 차를 얻어 탔을 때, 운전하던 분이 해주셨던 말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라 임용고시를 코앞에 두고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공부하기도 벅찬 시기에 딴짓만 한다고 걱정했었다. 시간은 자꾸 흘러가는데, 이런 식으로 여유를 부리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라는 우려였던 것이다. 나 또한 누군가 인생의 쉼표를 찍고 싶다고 할 땐 이 일을 잠시 멈추는 것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고 우려를 표현할 것이기 때문에 그 마음들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리고 그런 말을 통해 제풀에 지치지 말고 하던 일에 지겨워하지 말고 어떤 식으로든 좋은 결론..
국토종단이 끝나던 순간에 들은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소식 차를 타고 통일 전망대로 가는 길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차를 타고 가니 편하긴 했지만 걸어서 갈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통일전망대에서 남과 북이 하나임을 느끼다 꽤 긴 시간을 달려 통일전망대에 도착했다. 언젠가 수학여행으로 와본 적이 있는 것 같긴 한데 낯선 이 기분은 뭘까? 군생활을 월정리 전망대에서 했던 터라 그런 분위기일 줄 알았는데 여긴 경계 근무를 서는 군인은 보이지 않고 일반인들만 있더라. 여기저기 상점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비가 내리는 날씨여서 멀리까지 선명하게 보이진 않더라. 그런 대로 분위기는 좋았다. 그래도 금강산 관광버스가 이곳을 거쳐 가는 곳이라 그런지 도로도 잘 뚫려 있고 마치 지금이라도 차를 타고 그대로 북쪽으로 ..
철조망과 출입신고소 고성 대진에서 전망대로 향하는 길은 바닷가를 따라가는 길을 택했다. 동해안에 철조망이 많이 철거되었다곤 하지만 아직도 곳곳엔 철조망이 남아 있다. 철조망 건너편엔 우리의 영해인 동해가 있다. 그런데 ‘우리의 바다’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곳에 자유롭게 갈 수 없다. 동해에 설치된 철조망에 숨겨진 이야기 그렇다면 철조망은 무엇 때문에 설치되어 있는지도 알 만하다. 단순히 생각하면, 북한군의 침투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 설치되었을 것이다. 그래 맞다. 그래서 그 방어선에 따라 경계병들이 배치되었던 것이고 우린 그것 때문에 한때 두 발 뻗고 편하게 잘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걸 뒤집어 생각해보면 철조망은 우리를 가두고 행동을 제약하는 것이기도 하다. 바다를 보고도 해수욕을 하거나, 해변..
한 판 신나게 놀다 가면 그뿐! 바닥에 이불을 세 개 깔고 이불을 두 개 덮고 잤더니 엄청 포근하더라. 오랜만에 집에서 자는 듯한 안락함을 느끼며 푹 잤다. 교회에선 금요심야 예배가 진행되고 있었다. 찬송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긴 했지만 지금 내 몸이 천근만근이니 그 시끄러움마저도 자장가처럼 들리더라. 그때 바다로 뛰어드는 꿈을 꿨었던 듯한데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일어나 보니 다행히도 비는 그쳤더라. 새벽 내내 비가 왔었는데 아침에 그친 것이다. 난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서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징한 놈의 이 세상! 한 판 신나게 놀다 가면 그뿐! 오늘이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여기서 통일 전망대까진 12Km다. 여행을 떠난 지 한 달 만에 목적지에 올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만만찮은 거..
마지막 밤에 동해의 파도 소릴 들으며 교회 심방에 참여하다 씻으러 나오니 하늘에선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만약 잘 곳을 구하지 못했다면 이 비를 맞으며 또 한참이나 헤매고 있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만큼 승낙해주신 목사님께는 감사할만한 일이지만 말이다. 얼떨결에 교회 심방에 참석하다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고 계신 분은 집사님이었는데, 나 먹으라며 빵이랑 수박을 가져다주셨다. 그러면서 오늘 심방(尋訪)을 가니까 같이 가자고 하신다. 그 순간 난 만세를 부를 뻔했다^^ 내가 이런 자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를 거다. 연기군 양화면에서 사모님이 결혼식에 함께 가자고 초대했었는데 그걸 거부한 후론 그와 같은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더더욱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자동반사적으로 이런 기..
삼박자가 다 갖춰진 최고의 여행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새 간성을 지났고 드디어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동해의 장관을 볼 수 있었다. 수평선이 보이고 청명한 파란빛을 띤 동해의 장관이란 지금껏 상상해왔던 그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이런 동해의 장관을 보기 위해 걸어왔다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풍경이었다. 바람은 어찌나 시원하던지 햇볕을 받으며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진 몸이 금세 식어서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으며 한 걸음씩 걸었다. 서해는 광활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고 저 멀리 수평선이 보인다고 할지라도 규모가 좀 큰 호수 같은 느낌에다가 바닷물도 깨끗하지 않아 실망이 컸었다. 그런데 동해는 서해와는 180도 달랐고 거기에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힘껏 밀려오는 파도의 힘도 장난 아니더라. ..
일찍 끝내지 않기 & 음미하며 걷기 어제 지나쳤던 군부대가 보이는 것으로 봐서는 한참이나 거슬러왔나보다. 어제 봤던 낯익은 광경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지만 모든 게 달랐다. 어젠 비 오는 우중충한 날씨였고 오늘은 햇살이 반갑게 인사하는 날씨다. 어제 내린 비로 세상의 온갖 티끌이 깨끗이 씻기기라도 한 듯 세상은 한결 또렷하고 선명하게 보인다. 세상이 달라 보이는 건 날씨 탓만은 아니다. 바로 내 기분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어제 이 길을 걸을 땐 온갖 불안과 두려움에 몸서리치며 삶의 비극을 온몸으로 맛보았지만 지금은 기쁨ㆍ행복을 만끽하며 삶이 주는 위안을 맛보고 있다. 날씨와 마음이 상승작용을 일으켜서 지금 이 순간 꿈속을 거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난 그렇게 ‘같지만 다른 길’을 걷고 있었던..
막바지에 이른 여행의 아쉬움과 상쾌함 아침에 일어나니 기분이 상쾌하다. 눈을 떠서 방 안을 둘러본다. 방 안엔 어제 널어놓은 빨래가 있고 욕실엔 우의가 있다. 방안은 어지러웠는데도 기분만은 상쾌하다니^^ 비 온 후에 갠 날씨 탓일까? 그게 아니면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렀기 때문일까? 어느 이유 때문이라 꼭 집어 말할 순 없었지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만큼이나 내 마음도 환했다. 그리고 오늘은 마치 새로운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도 한껏 들고 말이다. 상쾌함과 아쉬움 그 사이 여행을 떠난 지 오늘로 딱 한 달 되는 날이다(예비군 훈련 때문에 집에서 머문 날을 빼고서 계산할 때). 한 달 동안 한곳에 머물지 않고 정처없이 떠돌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한곳에 머물던 예전이 그리워지던걸. 그건 지금 이 순간이 ..
히치하이킹으로 만난 사람 정상에서 하룻밤 신세질 수 있을 거라는 계획이 그렇게 어이없이 무너지니 맘이 급해지더라.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다. 내려가다가도 교회가 있다고 하셨으니까. 그 말을 믿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살기 위한 발악, 히치하이킹 내려가는 길은 전형적인 산길 도로더라. 빙글빙글 꼬이고 꼬였다. 하지만 경치 하나는 예술이었는데 비는 오고 날은 점차 어두워지고 잘 곳을 못 구할 수도 있기에 마음이 급해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내려가다보니 민박집만 많더라. 어느덧 시간은 7시 1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산 속이고 비 오는 날인지라 해도 빨리 져서 벌써부터 어둑어둑하다. 나는 아까부터 차 진행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다. ‘차와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라’는 ‘여행의 제1규칙’을 깬 것이다...
빗길을 걸어 태백산맥 진부령을 넘다 이번 여행 중 최고의 여행 코스를 뽑으라면 단연 목포ㆍ무안 코스였다. 사실 그 코스는 별 볼게 없었다. 그저 4차선 1번 국도를 따라 가는 지겨운 길이기에 볼거리도, 걷는 즐거움도 없었다. 빗속 국토종단의 낭만 그런데도 최고로 꼽는 이유는 나의 첫 국토종단이었을 뿐만 아니라 빗길 여행의 낭만을 알았기 때문이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나오면 대부분 ‘비가 많이 오니까 오늘 하루는 쉬는 게 어때?’라는 문자를 보내온다. 이런 식의 국토종단을 해보지 않았다면 그런 말에 두말할 필요도 없이 따랐을 것이다. 그런데 처음으로 걷던 그 길이 빗길이었던 덕에 그런 생각이 확 바뀌었다. 오히려 햇볕 쨍쨍한 날의 여행보다 비를 맞으며 시원하게 걸을 수 있는 빗길 여행이 더 좋다. 빗속의 ..
제대로 비 오는 날에 제대로 준비를 하고 출발하다 잘 때만 해도 후텁지근한 날씨 때문에 ‘설마 춥겠어’라는 생각으로 우의를 껴입지 않고 그냥 잤더니, 역시나 좀 추웠다. 그래서 새벽기도 후엔 우의를 껴입었더니 어찌나 따뜻하던지^^ 정말 그때부턴 정신을 잃고 잠들었나 보다. 그후에 포크레인의 시끄러운 바닥 긁는 소리에 잠을 깼다. 오늘은 전국에 많은 비가 온다고 했었다. 전주는 이미 어제 비가 오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어머니로부터 들었었는데 강원도는 새벽부터 내린 모양이다. 새벽기도 때 밖에 나가보니 보슬보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단단히 챙겨 입었고 배낭 속의 모든 물건은 비닐로 감쌌다. 마음 굳게 먹고 아침밥을 먹다 오늘의 목적지는 고성까지다. 지도가 없어 정확한 거리는 알지 못하지만 40Km 정도..
원통장로교회에선 원통면이 내려다 보인다 그 가게에서 나와 열심히 걸었다. 디카에 저장된 지도로는 자세한 거리를 측정할 수 없다. 지도 이미지만을 봐서는 짧게 느껴져서 천천히 걷고 있다. 그런데 그런 예상과는 달리 길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거다. 예측 실패로, 부리나케 걷다 디카 액정에 비친 사진만으로 예측해 봤을 땐 ‘면’ 소재지에 도착하는 시간이 3~4시쯤이면 충분할 것 같았는데 그 시간이 지났는데도 마을은 보이지 않는다. 또 엄청난 판단미스를 한 것이다. 그것 지도가 접혀지는 부분을 간과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얼마나 더 걸어야 도착할지 예상조차 할 수 없게 되니 마음이 급해지더라. 그래서 그때부턴 쉬지 않고 경보 수준으로 걷기 시작했다. 어두워지기 전에 마을 입구 근처라도 도착해야 마음이 놓..
걸어서 여행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 춘천에서 친구와 헤어지고 양구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10분이었다. 지도가 없으니 디카를 보면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걷고 있다. 처음엔 ‘그냥 돌아갈까?’하는 갈등을 하며 마지못해 걸었다. 어제 푹 쉬지 못한 탓인지 몸도 무겁고 마음마저 싱숭생숭하다. 목적마저 잃어버리고 마음은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 없으니 하긴 해야겠는데, 하긴 싫다. 때론 쉬는 게 오히려 역효과를 낼 때도 있다. 허무하고, 지치고, 의욕 없는 그대에게 전해주는 비법 이런 위기에 특효약이란 게 있을까? 마음을 다잡을 수 있도록 날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조언을 구해볼까? 흔히 생각하는 이런 방법은 잠시동안의 힘듦을 줄여 줄지는 몰라도 내가 목표한 것에 이르도록 할 순 없다. 이..
걸을 수 있다는 축복과 끝맺음의 힘듦 확실히 더워진 게 느껴진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난다. 거기에 모자까지 썼으니 머리는 더욱 뜨겁게 느껴진다. 이런 날씨엔 왠지 쉬고 싶다. 하지만 덥다고 쉴 순 없다. 앞으로 더 더워질 것이기에 그나마 조금이라도 선선할 때 빨리 걸어서 끝내는 게 낫다. 어느덧 여행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고 내일은 비도 온단다. 얼마 남지 않은 국토종단,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지. 일상이 특별하게 느껴지던 순간 어제 쉬어서인지 오늘은 걷는 게 왠지 새롭게 느껴진다. ‘근 한 달째 걸었으면 이미 익숙해질 만도 할 텐데 이제야 웬 새로운 느낌이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걷는 것 자체가 남다르게 느껴졌다. 한 걸음씩 걸으며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
열린 공간에서 닫힌 공간으로 바뀐 교회들 이렇게 터널을 통과하며 왔더니 2시에 양구가 4Km 남았다는 팻말이 보이더라. 생각보다 너무 일찍 왔다. 맘의 여유가 있으니 국토종단의 운치를 한껏 만끽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길거리에 신문지를 펴놓고 누웠다. 나무 그늘에 누웠는데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간간이 비친다. 한숨 자고 일어나도 될 정도로 춥지도 덥지도 않았다. 국토종단을 하면서 한적한 곳에 누워 세상의 바쁨과는 반대로 여유를 즐기고 싶었는데 그걸 이제야 하게 됐다. 여행을 떠난다는 건 잃어버렸던 나만의 가치를 찾기 위해서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그 순간이다. 세상의 바쁨에 휩쓸리지 않고 난 나만의 흐름을 만들고 있다. 교회를 보는 씁쓸한 시선 그때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내일 양구에 놀러 오..
뜻밖의 터널 여행담 오늘은 양구 남면 소재지까지 걸을 예정이다. 이미 터널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다. 같은 방에서 잤던 아저씨와 이야기하면서 “오늘은 양구까지 갈 거예요.”라고 했더니, “거긴 요즘에 터널이 잘 뚫려서 쉽게 갈 수 있어.”라고 하신다. 터널로만 다녀서는 재미없을 거 같아서 “터널이 뚫리기 전에 만든 길도 그대로 있나요?”라고 물으니, “그대로 있지.”라고 말씀해주셨다. 오늘은 삥삥 돌더라도 양구로 가는 한적한 길로 갈 거다. 그래야 풍광을 제대로 느끼며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뜻하지 않게 터널로만 걷다 그런데 도로를 따라가다 보니 쭉 뻗은 길만 계속 되는 거다. 다른 데로 빠지는 길은 없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조금 걷다 보니 처음으로 터널이 나왔다. ‘그래 이것만 통과하면 예..
기독교를 떠난 이유 아침을 먹고 떠나려하니 원장님은 안수기도를 해주시더라. 그때 기도원에 중책을 맡고 계시던 분이 내가 예수를 안 믿는다는 걸 알고 “젊을 때는 뭐든 자기 힘으로 다할 수 있을 것만 같아 그렇게 많이들 떠나지. 하지만 삶이란 그런 게 아니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덧붙여 말씀하시길 “어떻든 예수를 믿으세요!”라고 하시더라. ‘폐 끼치지 않는다’라는 관념으로 믿다 나의 힘을 과신하였기에 종교를 떠났다고 생각하셨나 보다. 물론 한때는 타오르는 열정으로, 나의 의지로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예수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땐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그렇게 어색하고 자신이 그렇게 무능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에게 의지하기보다 신에게 의지했던 거다. 그때 내가 주로 쓰던 말은..
공동으로 생활할 땐 나의 생활리듬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방 하나를 차지하고서 자고 있었다(원래는 3인 1실). 그런데 잠이 들려 하는 순간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라. 난 그냥 이불과 베개만 가져가려는 줄 알았는데 이 방에서 취침하시려는 분이었다. 갑자기 환하게 불이 켜져 잠을 깼다. 피곤한 데도 자지 못하게 하니 이건 완전 극기훈련 같은 느낌이다. 그 후로 계속 뒤척였다. 그러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잤다. 6년 만에 다시 하는 군대체험? 무슨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 꿈에서 갑자기 사위(四圍)가 환해지는 거다. 혹 짙은 어둠 속에 있다가 갑자기 스포트라이트가 터지며 환해지듯이 말이다. 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라도 됐나~ 너무 환해서 무의식중에 눈을 가렸다. 그런데 그 ..
기도원에서 하룻밤 묵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휴게소가 보이더라. 산길이 어느새 끝난 거다. 내려와서 ‘오음’과 ‘양구’가 갈라지던 길에 교회와 같이 붙어 있는 기도원이 보인다. 기도원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있기에 지나칠까도 했지만 얼마나 더 걸어야 할지 모르기(나중에 확인해보니, 거기서 무작정 갔으면 밤새도록 걸을 뻔했다. 교회는커녕 면소재지 마을도 근처에는 없었기 때문)에 부탁은 해보기로 했다. 첫 기도원 체험기, 다행히도 광신은 아니었다 쭈뼛쭈뼛 들어서니 남성분들이 모여 있더라. 그곳에 가서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식당 안에 원장님이 있으니 그리로 가보라고 하시더라. 식당 조리실엔 여성분들이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원장님으로 추정되는 분(다른 분들과 이야기 하면서 혼자 반말을 하고 계셨기에 그렇게..
다다르기 전까지는 끝을 알 수 없다 시간은 어느덧 4시가 넘어가고 있는데 난 여전히 오봉산을 오르고 있다. ‘오늘 이러다 산 한 가운데서 노숙하게 되는 게 아닐까?’하는 걱정이 들더라. 만약 정말 그런 상황이 된다면 ‘오는 차를 잡아서 마을까지만 데려다주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다르기 전까지는 끝을 알 수 없다 서서히 시간은 흐르고 끝은 보이지 않고 불안이 엄습해 온다. 비도 거의 그친 분위기라 비옷을 벗고 배낭의 방수커버도 벗겼다. 그제야 시원한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우의는 방풍효과 때문에 걸으면 걸을수록 습해지고 체온은 올라갈 수밖에 없는데, 그때 시원한 공기를 온몸으로 맞으니 생기가 돌더라.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게 있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강원도이고 여긴 산 중턱이란 거다. 그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