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건빵/일상의 삶 (195)
건빵이랑 놀자
마치다 보면 새 길이 열린다 2019년 올 한 해를 회고해볼 때 공부의 방향을 설정하는 문제, 그리고 사람과 예기치 않게 부딪히는 두 가지 사건(A, B)과 같은 여러 상황들이 있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힘들긴 했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건 티스토리로 블로그를 이전하며 한문공부에 대한 진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는 부분을 빼놓으면 안 될 것 같다. ▲ 공부와 커피 한 잔은 통한다. 심신을 안정 시킨다는 의미에서. 블로그를 이전하며 체계를 확실히 잡다 1월 중순부터 티스토리를 시작했다. 이유는 딱 하나 티스토리는 광고를 달 수 있어 돈벌이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티스토리로 정리를 하다 보니 다음블로그에 비해 확실히 좋은 기능들도 많고 더 접근하기 편하기도 하더라. 처음엔 긴가민가했..
1년을 마무리 하는 스터디 뒷풀이 1. 재밌고 신나던 한시 스터디를 함께한 인연들 어색하지만 그럼에도 참여하는 이유 각별한 스터디 2. 언젠가 사라질 장미로 예술작품을 만든다고? 시끄럽지 않은 2차 장소를 찾아 언젠가는 사라질 장미로 작품을 만든다는 것 작품은 만들어진 시간과 함께 온다 3. 김지영과 크라잉넛 JOB, 또 하나의 김지영 크라잉넛이 전해준 충격 4. 첫 임용을 본 아이들과의 이야기 장범준의 여수밤바다가 좋은 노래인 이유 첫 임용을 본 아이들의 심정 임용을 위한 한문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인용 지도 목차 사진
4. 첫 임용을 본 아이들과의 이야기 크라잉넛을 통해 고정관념이 깨지며 지금처럼 학생들과도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교수가 될 수 있었다고 했다. 크라잉넛 한 뮤지션 때문에 그런 인식의 변화가 생겼겠는가. 그런 충격적인 만남이 있기까지 수많은 변곡점들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 의정이가 홍합탕의 홍합을 일일이 까줘서 편안하게 먹을 수 있었다. 장범준의 여수밤바다가 좋은 노래인 이유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자연스레 음악에 대한 이야기로 계속 이어졌다. 그 다음에 초대된 인물은 장범준이다. 버스커 버스커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솔로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에겐 ‘여수 밤바다’와 ‘벚꽃엔딩’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매년 4월이면, 그리고 여수에 내려가면 언제든 그의 노래를 들..
3. 김지영과 크라잉넛 교수님의 아내분이 만드신 패치워크란 작품을 보여주며 이야기해줬는데 이때 두 가지 부분에서 감상을 자아냈다. 이전 후기에서 하나는 얘기했으니 여기서 또 하나의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 맛있는 안주로 우리의 모임도 풍성해지고 있다. JOB, 또 하나의 김지영 또 하나의 작품을 보여줬는데 그건 보는 것만으로도 매우 강인한 인상을 받았다. JOB이라 쓰여져 있고 O 안엔 아이를 안은 여인이 힘겹게 손을 뻗어 매우 간절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작품이다. 이렇게 작품에 대한 간단하게 설명한 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무얼 표현한 것인지 알게 됐으리라. 그만큼 한 장면에 효과적으로 글씨를 비치하고 인물을 배치한 덕에 우린 현재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한복판으로 순식간에 초대될 수..
2. 언젠가 사라질 장미로 예술작품을 만든다고? 1차 모임은 삼겹살을 먹으며 시작됐다. 고기를 구워 맛있게 먹고 있으니 문수 선생과 함께 운호가 들어오더라. 문수는 작년 2차 수업실연을 준비할 때 형태형 팀에 같이 배정되었기에 알게 되었다. 지금은 임실에 있는 중학교에서 근무하며 네 군데 학교를 순회 다니고 있다고 하더라. 올해 첫 발령을 받은 초임교사로 정말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을 텐데 오늘은 교수님과 저번에 종강 모임을 하게 되면 꼭 인사드리러 오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 나온 것이라고 했다. 최근에 이 치료를 받고 있어 삼겹살은 일절 입에도 대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왔다는 말에 김형술 교수에 대한 의리 같은 게 느껴졌다. 문수는 삼겹살을 먹을 때만 함께 있다가 자리를 옮길..
1. 재밌고 신나던 한시 스터디를 함께한 인연들 임용고사 1차 시험이 끝나고 어느덧 일주일이 흘렀다. 작년 같으면 1주일 사이에 지금은 군대에 가있는 단재학교에서 근무할 때 인연을 맺은 건호가 전주에 찾아와 1박 2일 동안 시간을 보냈고 김형술 교수님과 중화요리집에서 공부에 대한 화끈한 대담을 나눈 회식이 있었으며 청주에 마련된 ‘The 앵두’란 공간을 방문하여 앵두님의 근황을 청취하기도 했었다. 오랜만에 자유의 시간이 남은 만큼 그간 하지 못했던 것들을 연거푸하며 자유롭게 시간을 보냈었는데 올핸 그렇게 활달하게 외부활동을 하진 않은 채 일주일이 흘렀다. ▲ 작년엔 시험이 끝나자마자 1주째엔 정말 바쁘게 지냈다. 어색하지만 그럼에도 참여하는 이유 김형술 교수님과의 만나는 일은 충분히 할 만한데도 하지 못..
2020학년도 한문임용 후기 목차 1. 김세정의 영상평가와 한문 임용고사 가능성을 확인하다 올해 임용이 역대급으로 희망적인 이유 준비된 사람이어라 2. 어려웠지만 그래도 여유로웠던 교육학 시험 작년보다 훨씬 많은 잠을 자서 몸 상태가 최상이다 초승달과 함께한 고사일의 아침 논술 교육학? 3.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버린 전공 A형 시험 작년과는 달리 왜 이리 걱정이 앞설까 안겨오지 않는, 남남 같던 A형 문제 할 수 있는 만큼은 최선을 다하다 4. 전공 B형 문제가 선사한 반전 작년 B형 문제에서 느낀 낭패감 잔뜩 긴장했던 B형 시험이 안겨준 반전 그래, 지금 내 실력으로 이 정도 풀었으면 그걸로 만족한다 1년 7개월 공부의 결실 5. 스캔 인용 지도 공고문 경쟁률 19년 글 임용 Life 역대 임용 기..
4. 전공 B형 문제가 선사한 반전 전공 A형 문제는 작년과는 너무도 판이하게 나왔다.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들이 앞에 배치되고 뒷 부분의 서술형으로 답안을 써야 하는 문제들은 난이도가 있는 법인데, 단답형으로 써야 하는 문제들도 복잡하게 꼬아놓아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에 따라 A형 문제를 풀면서 예전에 임용시험을 봤을 때 느꼈던 아찔한 느낌이 절로 들었다. ▲ 임용 시험을 봤던 내 자리. 의자도 책상도 맘에 들었다. 작년 B형 문제에서 느낀 낭패감 작년엔 B형 문제는 거의 손을 대지 못했다. A형 문제는 편안하게 볼 수 있었던 것과 완전히 반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문장의 해석도 쉽게 되지 않았을 뿐더러 답을 구성할 때에도 어떻게 써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니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는데 빈..
3.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버린 전공 A형 시험 교육학이 끝내고 2교시 전공을 준비할 땐 한문 교육과정의 내용 체계 부분을 열심히 봤다. 2주 전부터 세부사항까지 외우자 외우자 노래를 불렀지만 시간이 여유가 있을 땐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라고 안도하며 외우지 않았고 닥쳐서는 ‘볼 게 너무 많고 할 게 너무 많아’라는 생각으로 우왕좌왕하느라 외우질 못했다. 그러니 이 순간에라도 잠시 봐두면 도움이 되겠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 임용시험일에 날씨도 화창하고 이렇게 포근할 수가. 작년과는 달리 왜 이리 걱정이 앞설까 10시 26분: 아직 내지 않고 보고 있다. 작년 A형을 볼 땐 뭐가 나왔을까 궁금했는데 지금은 잘 보고 싶다, 작년처럼 안겨왔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만 하게 된다. 눌리지 않고 성심성의껏 해..
2. 어려웠지만 그래도 여유로웠던 교육학 시험 드디어 임용고사일이 밝았다. 어제 10시 30분에 침대에 누워 김세정의 영상을 보며 뒤척이다가 11시쯤 잠이 든 것 같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정신이 돌아왔을 때 ‘너무 늦게까지 잔 거 아냐?’라는 생각으로 잠에서 깼을 때가 4시 30분이었다. 지금 일어나 준비한다면 너무 이른 시간이기에 B형 시험문제를 풀땐 작년처럼 잠이 쏟아질 게 뻔했다. 그래서 1시간 정도 좀 더 자려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더라. 작년보다 훨씬 많은 잠을 자서 몸 상태가 최상이다 작년 임용시험 전날엔 경수 누나를 만나서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었다. 시험을 코앞에 두고 있었지만 전주에서 시험을 보는 것이고 오랜만에 보는 시험이니만치 그렇게 긴장하지는 말자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
1. 김세정의 영상평가와 한문 임용고사 드디어 두 번째 보는 임용고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다른 건 하지 않고 임용시험만을 준비하며 오롯이 보낸 한 해였다. 과연 올해 시험은 어땠을까? 가능성을 확인하다 작년엔 오랜만에 임용고사를 준비하며 3월 한 달 동안은 헤맸지만 4월부터 시화소평 스터디를 시작하며 서서히 공부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고 4월 내내 여러 공부방법을 시도하며 새롭게 공부하는 법을 정립할 수 있었다. ▲ 오랜만에 학교에 복귀했고 한문공부에도 도전하게 되어 걱정했는데 때마침 스터디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렇게 7개월 동안을 새로운 공부방법을 적용하며 공부를 했고 하나하나 기초부터 쌓아간다는 마음으로 정리하여 재밌게 임용시험을 볼 수 있었다. 임용고사 후기에서도 밝혔다..
D-1일, 기회가 왔다 ▲ 임고반 내 자리에서 만들어지는 하루 하루의 순간들. 작년 이맘때가 생각난다. 임고반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는데 그때 불연듯 ‘지금 내가 합격하는 게 가당키나 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5년 동안이나 임용공부를 했다손 치더라도 7년이나 한문공부를 하지 않았고 작년에서야 겨우 다시 임용을 볼 생각을 하며 공부를 시작했고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 정립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다가 4월에서야 방향을 잡고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고작 7개월 정도를 공부한 것을 통해 합격 운운하는 건 도가 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경수 누나를 만났을 때 “이번엔 합격은 바라지 않아요. 만약 내가 합격하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여러 한문임용생들에게 낭패감을 안겨주는 게 될 테고, 저 또한 그..
목차 1. 18년 스터디를 통해 한문공부의 방향을 잡다 7년 만에 하는 한문공부, 그리고 헤맴 블로그를 한문공부장으로 활용하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공부를 하니 한문이 재밌어지던 걸 2. 우리의 2019년 스터디는 뜨겁고도 벅찼다 우리들은 1월부터 맹렬하게 한문공부를 했다 올해 스터디의 마지막 장면 함께 스터디를 했던 그대들이여 인용 지도 임용 Life
2. 우리의 2019년 스터디는 뜨겁고도 벅찼다 올해는 1월 2일의 낙방소식을 들으며 시작됐다. 하지만 본격적인 시작은 그 소식 이후의 한 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들은 1월부터 맹렬하게 한문공부를 했다 떨어지긴 했지만 울적하진 않았다. 충분히 가능성을 엿보았기 때문이고, 오랜만의 첫 시험치곤 정말 재밌게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건 다름 아닌 김형술 교수님의 전화였다. ‘결과를 물어보려 전화를 주셨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전화를 받았고 결과를 알려드렸더니, 김형술 교수님은 잠깐의 위로 후에 전혀 다른 얘기를 꺼내시더라. 그건 다름 아닌 바로 다음 주 화요일부터 스터디가 재개된다는 얘기였다. 그것도 방학 기간임에도 지금처럼 일주일에 한 번 하는 게 아닌..
1. 18년 스터디를 통해 한문공부의 방향을 잡다 어느 곳에 가든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해나갈 수 있을 때, 우린 그걸 인연이라고 부른다. 이미 ‘인연론’이란 글에서 “人緣으로 한정지어 생각하던 인식의 관념을 넘어서 因緣으로 회귀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점점 죽음으로 다가가는 ‘운명론적인 인간’에서 벗어나 뭇 인연들과 마주치고 공명하여 나날이 새롭게 변해가는(日新又日新) ‘인연론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라고 썼듯이,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건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인식의 전복으로, 삶의 전환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지금부턴 스터디를 통해 만나게 됐던 한문공부란 공통분모를 지닌 우리들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려 한다. ▲ 인연과 어떻게 마주치느냐에 따..
일일공부장으로 공부하고 싶은 의미를 부여하다 작년에 다시 임용을 준비하면서부터 지금까지 했던 공부와는 다르게 ‘기출문제’를 분석하고 풀이하며 나만의 답안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 기출 문제를 정리하며 조금이나마 임용시험에 대한 자신감을 찾았다. 기출문제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며 새롭게 시작한 임용공부의 틀을 잡다 7년 만에 다시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만큼 뭘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에 ‘전공 한문 임용의 틀이나 잡아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고 그 당시에 지금 임용시험 체제로 바뀐 2014학년도~2018학년도까지 총 5개년 치를 풀어보는 데 만족했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도 무려 5년이나 임용시험을 준비했었지만 기출문제를 이렇게까지 성심성의껏 풀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새롭게..
기출문제 정리를 마치며 예전부터 한문 임용을 준비하며 들었던 말들 중에 가장 뜨거운 이슈는 뭐니 뭐니 해도 ‘전공한문 기출문제를 봐야 하나?’라는 거였다. ▲ 10년 10월 23일. 5년간 준비해왔던 임용시험을 마지막으로 봤던날이다. 전공한문 기출문제 이슈 봐야 한다는 쪽은 ‘어차피 기출문제를 낸 사람이 한문과 교수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낸 시험을 통해 보며 그들의 생각을 어느 정도 체계화할 수 있다면 임용시험을 볼 때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누군가는 기출문제를 아예 제대로 풀며 정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누군가는 그걸 문제유형에 따라 잘라 정리하고서 시간이 날 때마다 보는 사람도 있었다. 보지 않아도 된다는 쪽은 ‘한 번 나온 지문은 다시 나오지 않으니, 그걸로 시간을 죽이기보단 새로운 문..
비약적으로 낮춰진 경쟁률을 보다 경쟁률이 오늘에서야 공개됐다. 작년을 기준으로 보자면 화요일에 공개됐었다. 그래서 어제부터 여러 번 교육청에 접속하긴 했지만 나오지 않다가 오늘 나온 것이다. 올해 한문 선발 인원이 2.5배 정도 증가한 이상 과연 이게 경쟁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고 싶었다. 여기서 분명하게 밝히고 싶은 건 경쟁률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경쟁률이 높든, 낮든 그건 실제 임용의 합격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낮으면 뽑힐 확률이 늘어나고, 높으면 낮아지는 건 매우 당연한 일이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과연 그곳에 실력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왔느냐 하는 걸 거다. 그러니 월등한 실력자가 많다면 경쟁률이 낮더라도 떨어지게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운 좋게..
2010학년도 전공한문 1차 시험의 추억 내가 처음 임용시험을 봤던 2007학년도 전공한문 임용시험은 주관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25문제 정도를 150분 안에 풀면 된다. 이 시험은 그 다음 해인 2008학년도 전공한문 임용시험까지 이어졌고 바뀌었다. ▲ 처음으로 봤던 임용. 경기도까지 올라와서 봤다. 2009학년도 바뀐 시험 체제와 나름의 선방 2009학년도 임용시험부턴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다. 기존에 2차 시험으로 진행되던 게 3차 시험체제로 바뀌었으며 그에 따라 12월 첫째 주에 진행되던 시험이 10월 넷째 주에 진행되도록 일정조차 빨라진 것이다. 바뀐 임용시험 체제와 그에 따른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각 과목별로 공청회가 활발하게 개최되었고 한문과에서도 그에 따른 결과를 발표되어 배포되기 시작했다..
기출문제를 마치다 한문 임용공부를 다시 시작한 지 1년 6개월이 흘렀다. 오랜만에 공부를 하며, 다시 전태련쌤의 교육학 강의를 듣다보면 과거의 기억이 새록새록 나고,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들도 있다. 그 중 최근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단연 ‘하나하나 따지고 보자’라는 거다. 흔히 따진다는 말은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것이라 생각해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전쌤의 이 이야기는 ‘적어도 교사가 되려는 사람들은 그 말이 지닌 의미, 그리고 어느 맥락에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쓴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김형술 교수는 스터디를 하면서 『도곡집』의 한 문장을 해석하면서 “한문 문장을 볼 때 ‘此’와 ‘其所喪之大’와 같은 대명사가 가리키는 게 뭔지를 명확히 알아야 문맥 파악이 ..
한시 따라 산책을 하다 다시 임용고시에 도전한지 어느덧 1년 6개월 정도가 흘렀다. 다시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가장 어렵다고 생각한 부분은 역시나 한시였다. 그전에 공부를 할 때도 산문 부분이야 어떻게든 접근할 수 있었다손 치더라도 한시는 도무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그리고 해석을 하고 읽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 시험 문제에 출제된 한시 관련 문제는 풀기보단 감에 따라 찍는 경우가 태반이었고 그에 따라 틀리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한시라는 난공불락, 그 돌파구를 찾다 막상 임용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3월의 불안했던 심리상태가 지금 생각해봐도 생생할 정도로 떠오른다. 오랜만에 다시 보는 『논어』는 그래도 계속 책을 읽었기도 했고 여러 글을 쓰며 인용도 하긴 해서 해석..
서사한시 스터디를 마치고 드디어 6월 27일부터 시작된 서사 한시 스터디가 원래 계획보다 두 번 휴강하게 되며 한주가 미루어진 끝에 끝나게 되었다. 1월 방학 중에 있었던 치열한 스터디의 순간 이 얘기를 하기 전에 잠시 1월에 있었던 소화시평 스터디에 대한 얘기부터 해야 할 거 같다. 이번 스터디도 그 스터디의 일환으로 시작됐으며 작년 여름방학 때와는 확연히 다르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작년 7월에도 방학 중에 스터디가 있긴 했지만 원래처럼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정도였고 주기적으로 한다기보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한다는 인상이 강했다. 몇 번을 했는지 확실히 알 순 없지만 월간기록에 쓰여 있는 내용을 통해 보자면 하는 횟수(3번 정도)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러니 4월 달에 스터디에 참여한 이후 여름방학 때..
목차 1. 이가라시 코지, 블러드 스테인드로 자신을 증명하다 월하의 야상곡과 창월의 십자가 IGA와 메트로바니아 자신이 하는 일에 푹 빠진 사람들 2. 서사한시와 맥락, 그리고 활연관통 기습 시험으로 드러난 실력 없음 맥락을 간파하라 IGA와 한문공부 인용 지도 임용 Life
2. 서사한시와 맥락, 그리고 활연관통 소화시평이 끝나고 뭘 할까 하다가 김형술 교수님은 서사한시를 하기로 맘먹으셨다. 그래서 처음으로 보게 된 한시가 바로 석이버섯에 관련된 한시였다. 흔히 한시는 아름다움만을 묘사하거나 철학적인 내용만을 묘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회의 현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담아내는 시들이 있었다. 그 중 대표주자는 당연히 두보였으며 두보의 시 정신을 이어받아 통일신라시대의 최치원은 「江南女」란 작품으로 빈한한 집 딸이 밤새도록 길쌈을 하여 만든 비단옷이 부잣집 사람들의 전유물이 되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그려냈다. 기습 시험으로 드러난 실력 없음 바로 우리가 보려는 석이버섯에 관한 시도 이와 같은 비판적인 시선을 지니고 있는 시들도 있는 반면에 그저 석이버섯에 대한 효용만을 이야..
1. 이가라시 코지, 블러드 스테인드로 자신을 증명하다 지난 6월 18일에 블러드 스테인드라는 게임이 발매되었다. 이 게임은 ‘악마성(일본판 제목)’이나 ‘캐슬베니아(미국판 제목)’로 불리던 게임을 만든 이가라시 코지(이하 IGA)를 만들었던 개발자가 코나미를 사직하고 나와 만든 게임이다. 월하의 야상곡과 창월의 십자가 악마게임은 역사가 깊지만 내가 처음 이 게임을 알게 된 건 1997년 당시에 발매된 ‘월하의 야상곡’이란 게임을 통해서다. 그 전까진 그저 횡스크롤 액션게임으로 적의 패턴을 외워 진행해야 했던 게임이었는데 이때부터 맵을 하나씩 밝혀가며 성장을 해나가고 그에 따라 스킬이 늘며 전체맵을 정복해나가는 ‘메트로바니아’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게 됐다. 그러니 조작을 능숙하게 하느냐의 피지컬이 중..
한문이란 늪에 빠지다 1. 소화시평 스터디와 한문공부 소화시평 스터디, 한문공부의 방향을 잡게 하다 스터디로 배운 내용을 나만의 방식으로 정리하다 1월부터 생각지도 못하게 열공하게 되다 2. 30년을 해야 전문가가 된다 성재 덕에 만들어진 뒷풀이 자리 30년을 해야 진정한 전문가 3. 문학작품을 읽는 이유, 그리고 발분하는 심정 홍만종의 시평을 보며 발분하는 마음이 생기다 시에 대한 다양한 해석, 그게 시의 맛이다 한문공부가 하나의 변곡점이 되길 인용 지도 임용 Life
3. 문학작품을 읽는 이유, 그리고 발분하는 심정 이번엔 새로운 아이들도 함께 참석했다. 현종이와 지인이가 그들이다. 작년엔 오고 가며 얼핏얼핏 봤던 아이들인데 뒷풀이에 함께 하게 되면서 좀 더 말을 해볼 수 있었다. ▲ 보름에서 이틀이 지났지만 달은 휘영청 밝았다. 홍만종의 시평을 보며 발분하는 마음이 생기다 현종이는 오늘 스터디 준비를 하면서 특히 4번 글을 보며 “만약 홍만종의 시에 대한 평가가 없다면, 제가 홍만종처럼 저런 시평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라는 말을 했다. 그 말엔 한문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고 제대로 알고 싶어하는 마음이 충분히 읽혔다. 단순히 해석이 되느냐 정도로 보려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홍만종에게 충분히 이입하여..
2. 30년을 해야 전문가가 된다 『소화시평』 상권이 끝났지만 책걸이나 뒷풀이는 없었다. 『소화시평』 전체가 끝난 건 아니니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한 고비 고비 넘어가며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 수많은 것들을 담아낼 수 있고 어떤 의미냐 하는 것은 개인별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훌쩍 지나가는 게 아쉽게 느껴지던 찰나에 생각지도 못한 뒷풀이가 마련되었다. 1월 22일에도 여느 때처럼 스터디는 진행되고 있었다. 하권 3번과 4번이 원체 양이 방대하기 때문에 거기에 두 개 정도를 더 예습해서 갔는데, 이날 3번을 맡은 학생이 사정 때문에 나오지 못하는 바람에 무려 하권 15번까지 일사천리로 스터디가 진행되었다. 그건 곧 예습을 못한 ..
1. 소화시평 스터디와 한문공부 『소화시평』 스터디는 작년 4월부터 참가하게 됐다. 다시 한문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공부할 장소로 서울과 전주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전주로 정하고 나서 3월에야 전주 정착이 완료되었다. 최고의 공부장소라 생각한 임고반엔 어렵지 않게 입성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역시나 한문 공부였던 것이다. 임고반에만 들어가면 한문공부를 하는 후배들이 있어 그들과 잘 의기투합하면 어렵지 않게 스터디가 꾸려질 거라 생각했는데, 이게 웬 걸 임고반엔 한문임용을 준비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그렇게 3월 내둥 헤매며 시간을 보내게 됐던 것이다. 그렇게 한 달 보름 정도를 보내고 난 후에 소화시평 스터디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참여하게 된 것이니, 참 운이 좋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 왼쪽:..
19.01.02(수) 2019학년도 한문임용 1차 낙방기 결과 발표일 새벽의 심정 만감이 교차하던 순간을 기록하다 지금 시간은 1월 2일 새벽 1시 29분이다. 이제 8시간 30분 후면 임용 1차 결과가 온 세상에 공개된다. 그건 곧 시험이 끝난 지 한 달 10일 가량이 흘렀다는 말이고, 새해가 왔다는 말이기도 하다. 치열했던 한 달 11월 24일에 시험이 끝났다. 이미 그때의 기록은 세 편으로 나누어 세세히 풀어놨으니 다시 언급할 이유는 없지만, 중요한 건 그렇게 안 갈 것 같던 시간이 흘러서 결국 결과가 나오는 오늘에 이른 것이다. 하긴 그렇게 보자면 여느 때보다 1차 시험이 끝난 후 가장 치열하게 가장 알차게 시간을 보냈다고 감히 평가할 만하다. 지금껏 하지 않았던 2차 준비를 했고 수업실연을 본격..
3. 임용 낙방에 길이 있다 4월에 공부하는 방법을 바꾸고 그 내용들을 차곡차곡 블로그에 올리며 축적해가며 2018년 임용시험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비록 합격은 하지 못했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A형은 나에겐 자신감 뿜뿜이었다 하지만 결코 여기서 만족하고 멈춰선 안 된다. 어찌 되었든 결과는 낙방이고 다시 공부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려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작년 임용고시 문제를 다시 풀면서 분석을 하지 않아서 어느 부분에서 얼마나 많이 틀렸고 어떤 부분이 예상이 빗나갔는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분석은 기출문제를 다시 풀며 할 것이고 여기서는 피상적인 느낌을 토대로 실패의 원인을 얘기해보고 올해의 공부 방향을 설정해보려 한다. A형 시험지는 이미 말했다시피 문제들이 나를 향해 ..
2. 2018년 한문공부 과정 스케치 2018년 1월에 제주도로 무작정 떠나 생각지도 못한 자전거 일주를 했다. 아마도 그렇게 홀연히 떠날 수 있었던 데엔 내심 ‘뭔가 변해야 한다’는 긴박함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6년간 다녔던 단재학교를 그만두게 되었고 ‘이젠 뭐 하고 살지?’라는 실존적인 고민까지 안게 되었다. ▲ 오랜만에 임고반 자리에 앉아 공부를 했다. 좀더 쑤시고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몰라 헤맨다. 그럴 땐 여러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게 도움이 된다. ‘나의 삶’이라 규정하고 ‘내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착각하더라도, 내 맘대로 되는 것보다 되지 않는 일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럴 때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그때 준..
1. 임용시험을 대하는 방식이 변하다 시험이 끝나고 와서 임용고사 도전기를 썼다. 그리고 공개할까 말까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결국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그만큼 그 순간에 대해 제대로 즐기고 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고, 최선을 다하고 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러니 의식의 흐름에 맞춰서 쓴 글을 조금 다듬을 필요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공개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 정말 오랜만에 다시 임용고사를 봤던 그 장소. 낯설지만 익숙한 이 느낌. 과거 임용고시에서 답안을 작성하던 방식 2008년에 임용고사가 3차 체제로 바뀌기 전엔 지금처럼 주관식으로 써야 했었다. 뭐 그땐 지금처럼 ‘논술하시오’, ‘서술하시오’라는 식으로 나누어졌던 건 아니지만 어떤 것은 단답식이기도 했고, 어떤 것은 ‘몇 글자 내외로 약술하..
2019학년도 한문임용 후기 1. 합격 아니구요, 즐김 맞습니다 마침내 임용고시일이 밝았다. 아기다리 고기다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모든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이 날 하루를 위해 일 년 동안 애를 썼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기에 설렌다는 표현이 맞을 거다. 그리고 적어도 여느 때의 임용고시일에 비하면 부담은 적었다. ▲ 아침의 잔뜩 찌푸린 하늘. 그래도 내 기분은 절로 좋다. 졸업과 동시에 합격이란 꿈이 삶을 짓누르다 2006년 12월에 처음으로 임용을 봤을 땐 첫 임용시험임에도 허황된 꿈을 꾸고 있었다. ‘졸업과 동시에 합격’이란 꿈, 말이다. 그건 그 순간을 즐길 수 있게 만들기보다 그 상황에 매몰되어 힘겹게 싸우도록 만들었다. 그래도 경기도에서 시험을 본 덕에 오랜만에 군대 친구인 민호도 만날..
D-1일의 심정 내일이면 드디어 시험이다. 임용시험을 보겠다고 다시 선포하고 이 길로 들어선 지 어느 덧 10개월 정도가 흐른 것이다. 꿈 같은 시간들이었다. 다시 전주에 내려오고 임용고시반에 자리를 잡았으며 헤매던 한 달, 그리고 나만의 방식으로 온축하겠다며 블로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모두 한글문서로 작업하기 시작하며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그때 했던 소화시평은 그런 방향성을 잡는 데 한 몫 했던 게 분명하다. 간절히 원하면 뭐든 만들어지고 그로 인해 새로운 계기들이 마련된다. 실력발휘 그게 문제로다 이렇게 임용을 보기 전 기록을 남기던 습관은 예전부터 있었다. 단지 그때와 지금의 달라진 점이라면 그때는 일기장에 써나가는 식이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일기에 쓰지 않고 이렇게 컴퓨터에 기록을 남기고 블로그..
온고을중학교에 그린 꿈 인생 참 드라마틱하다. 각본도 없고 정해진 것도 없지만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마치 누군가 꽉 짜 놓은 것 같이 그렇게 흘러간다. 시험장 배정이 이렇게 늦게 되는지 몰랐는데 시험 보기 일주일 전인 어제 마침내 수험번호와 시험장소가 공개됐다. ▲ 시험 일주일전에 발표됐다. 온고을중학교와의 추억 좀 다른 곳으로 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역시나 온고을중학교였다. 예전에 임용시험을 볼 때 두 번을 전주에서 봤었는데 2009년도엔 서곡에서 봤었고 그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내가 풀 수 있는 문제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망의 2010년도에 바로 온고을중학교에서 시험을 봤고 그게 마지막 임용이자, 추억이 담긴 임용이기도 했다. 그렇게 온고을중학교에서 시..
논어와 맹자 업로드를 마치다 임용 시험은 이제 10일 정도 밖에 남지 않았고, 임고반은 후끈 후끈 달아오른다. 마지막 스퍼트를 위해 그리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나 또한 마음이 떨리고 불안이 가중된다. 그건 마치 지하철을 타러 갈 때와 같다. 별로 시간이 급하지도 않고 늦지도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뛰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맘이 급해져서 발은 뛰고 있으니 말이다. 조급증, 그건 어찌 보면 사회화된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두려움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럴 때일수록 휩쓸리지 말고 내가 가던 그 길을 꾸준히 갈 수 있는 정신이 필요하다. 물론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기록에 남겨 놓는 거지만 말이다. 어쨌든 꼬박꼬박 임용고시일은 다가오고 있었..
우리 한시를 읽다와 기출문제 편집을 마치며 한문 공부를 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뭐니 뭐니 해도 한시였다. 예전을 돌아보면 한시 관련 문제가 나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줄도 모르고 속절없이 틀리고 헤매었기 때문이다. 한시는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하는지 그리고 이 문제에선 뭘 묻고 있는지 전혀 알지도 못할 정도로 두 손 두 발 들고 가만히 있어야만 했다. 막상 함께 스터디도 해보고 정리도 해보니 한시가 좋아졌어요 그러던 차에 스터디에선 이종묵 교수의 『우리 한시를 읽다』라는 책을 보게 되었고, 그 전에 갑작스레 김형술 교수의 ‘소화시평’ 스터디에도 참석하게 됐다.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일어난 일대 사건이지만, 그 개별의 사건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흐름 속에 섞여 있는 양 나에겐 똑같은 의미를 ..
원서접수와 금오신화 정리를 마치고 이번 주는 원서 접수하는 날이다. 첫 임용을 봤을 때가 2006년이었는데 그 당시엔 현장 접수만 받을 때였다. 경기도에서 시험을 봤었는데 수원까지 직접 가서 학교 강당에서 원서접수를 했던 것이다. 그곳은 이미 인산인해였고 작성해야할 항목도 많고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안 되기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운 채 작성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나서 2008년인가 2009년인가부터 온라인 접수로 바뀌었다. ▲ 영광인가 치욕인가? 지금 생각해보면 소중한 나의 과거일 뿐이다. 이혼과 다시 임용공부를 하는 것의 공통점 교육청별 정식 공고문은 저번 주 금요일에 나왔다. 예전에 임용을 볼 땐 늘 하던 일이고 늘 닥쳐오던 일이었기에 그다지 감흥은 없었다. 물론 그 때에도 공고문이 나오던 날..
정식공고문을 보고서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임용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이쯤엔 정식공고가 나온다는 것을 아니 말이다. 하지만 엊그제 다겸이와의 대화가 어찌 보면 매우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은 6시에 내려가면서 나눴던 얘기다. 다겸: 지금쯤이면 정식 티오가 나올 때가 된 거 같은데.... 건빵: 그러게 아마 이번 주 금요일에 나오지 않을까? 그리고 다음 주부턴 원서접수를 할 거고.. 다겸: 그렇진 않을 거야. 공고가 나오고 조금 있다가 조금 시간을 둔 다음에 원서접수 하거든. 뭐 이런 식의 이야기를 나눴는데 어제 알고 보니 이미 그 당시엔 공고가 나온 상황이라는 거였다. 이걸 통해 알 수 있는 건 크게 두 가지 정도라 할 수 있다.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싶은 마음과 어차피 시..
‘우리 한시를 읽다’를 끝내다 막상 한문공부를 하고 싶긴 했다. 5년간 임용시험을 보면서 거의 10년 가까이 한문만을 공부했는데 막상 현직으로 나가 일도 하고 글도 쓰고 싶긴 한데,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더라. 말끔히 누군가 지워버린 것처럼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그래서 올해 1월에 일을 관두고 나선 좀 한문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법으론 대학원에 들어가거나, 고전번역원에 들어가는 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틀에 박힌 것 말고 정말 내가 좋아하는 데로 밀고 나가고 싶은 마음도 한 가득이었다. 그런 고민 끝에 여러 사람과 얘기한 끝에 임용시험 공부를 하겠다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포석은 예전보다 상황이 훨씬 나아졌으니 시험공부, 또는 ..
교육학 기출문제 정리를 끝내고 10월 1일부터 교육학 기출문제를 작업하기 시작해서 10일인 어제 드디어 마쳤다. ‘해야 한다’, ‘해야 한다’ 계속 생각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는데 토요일 스터디에서 교육학 기출 문제도 함께 보자고 의기투합하게 되며 시작할 수 있었고 10일 만에 7개의 기출문제를 어떻게든 한 번 훑어봤다. 과거 객관식 문제의 문제와 시험체제의 변동 이걸 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교육학 시험 방법이 바뀐 만큼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한참 임용을 준비하던 시기엔 교육학이 객관식으로 출제됐다. 그러니 구체적으로 알고 있지 않아도 피상적으로 알거나 대충은 찍어서도 맞출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높은 점수가 나온 적은 없고 11점 정도의 매우 평범한 점수만을 맞던..
대박 TO 솔직히 임용을 보겠다고 공부하곤 있지만, 지금은 임용을 본다는 사실보다 그냥 한문공부를 하는 게 재밌어서 그 맛으로 공부하고 있다. 그러니 티오가 나오던 말던, 시험 체제가 바뀌던 말던 그다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공부가 하고 싶고, 그걸 하나 하나 쌓아가는 재미로 하다 보면 어떻게든 결과는 이르러 올 것이라 생각한다. 티오에 속상해 하는 아이들 그래서 별로 신경도 쓰지 않고 있지만, 아무래도 같은 임용을 준비하는 아이들과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듣게 된다. 이래서 전주대로 오고 싶기도 했다. 자연스레 정보도 접하고 그들의 호학에 대한 열정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번엔 예비 티오에서 22명을 뽑는다고 나왔다. 더욱이 매년 전북에서 한문교사를 뽑았기에 올핸 뽑지 않으면 어쩔까 했는데 무려..
건빵의 죽오기, 건빵재를 열다 드디어 55번 자리에 ‘건빵재’를 열었다. 요즘 나의 카카오톡 프로필은 ‘삶을 건빵하라’다. 이리 봐도 건빵, 저리 봐도 건빵, 건빵 천지다^^. ▲ 건빵재를 드디어 열었다. 대나무에 미친 사내의 이야기 박지원의 「죽오기竹塢記」란 글엔 매우 흥미로운 얘기가 나온다. 그의 친구 양호맹梁浩孟은 대나무를 엄청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오죽했으면 자신의 호를 대나무 한 뭉텅이라는 뜻을 지닌 ‘죽오竹塢’라고 짓고는, 연암에게 거실에 내걸 편액에 기문을 써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런데 연암은 그게 맘에 들지 않았다. 이미 예전부터 대나무의 덕성에 대해 무수히 많은 글들이 지어졌는데, 거기에 편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걸 보면 연암의 시류에 편승하고 싶지 않아하는 마음도 얼핏 엿..
한문 공부란 트라우마에 직면하다 지금까지 시화집을 볼 때의 방점은 ‘해석이 되느냐?’, ‘서로 무언가를 비교한다면, 어떤 부분을 비교하는지 캐취할 수 있느냐?’에 중점을 두고 봤다. 시 자체도 하나도 와 닿지 않는데, 거기에 이론적인 분석까지 덧붙여서 하려니,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한문’이 그 당시 나에게 어떤 느낌의 학문이었는지 명확히 알려주는 한 예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깜도 되지 않으면서 버거워하고 하나하나 풀어가고 이해하려 하기보다 그냥 맞닥뜨리고 무작정 막고 품으려고만 했다는 사실 말이다. 버거워하던 것들을 직면하다 최근에 어찌나 심심하던지 유튜브에 떠 있는 ‘용호의 권2’의 플레이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용호의 권2’를 생각하면 1994년에 버추어 파이터와 함께 가동되..
한문공부와 한어대사전 목차 1. 한문 홀릭 글쓰기가 한문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공부에도 관성이 작용한다 좌충우돌이 바꾼 한문공부의 풍경 스마트폰을 통해 한문과 더 편하게 데이트할 수 있게 되다 2. 사서 공부법과 한어대사전 공부방법이 바뀌니 한문이 겁나 재밌더라 호시절을 만나 한문공부의 재미에 흠뻑 빠지다 한문공부의 신세계를 알려주마 인용 목차 18년 글 19년 글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문 공부법으로 한문공부에 재미를 붙이다 보니 사서를 보는 데도 변화가 따랐다. 그 전까지만 해도 그냥 순서대로 쭉 보았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만 생각했고, 그렇게 늘 공부해왔으니 그 방법 밖에 몰랐다. 공부방법이 바뀌니 한문이 겁나 재밌더라 하지만 그렇게 보면 어떤 재미도 없이, 그냥 봐야만 하는 의무만 남는다. 스토리를 가지고 쭉 이어지는 게 아닌, 한 편 한 편이 그냥 독립된 글처럼 인식되니 말이다. 그러니 수많은 글을 읽은 것 같지만, 어떤 것도 기억나지 않는 미묘하고도 오묘한 혼란에 빠져들고,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자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사서의 길이 이토록 멀고도 험하단 말인가, 그게 아니라면 내 실력이 이따구란 말인가? 하지만 위에서 얘기한 ..
2010년까지 임용시험을 준비했다. 그 당시의 공부라는 건 거의 책을 보고 공부하고 잘 모르는 게 나올 땐 도서관에 가서 그와 관련된 자료가 있나 찾아보고, 인터넷으론 ‘고전번역원’에 들어가 보는 정도였다. 각 학교마다 특성이 있겠지만, 더욱이 전주대 한문교육과의 경우는 서당식의 공부법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어 다양한 방법을 고안하여 공부하기보다 경서와 같은 책들을 진득하게 읽으며 문리가 나서 한문이 쉽게 이해되길 바라는 공부를 했다. ▲ 사범대 학생회가 아주 귀여운 게시판을 만들었다. 올라가면서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글쓰기가 한문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물론 여기엔 내 과거의 경험이 기인하는 측면도 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집 바로 밑에 있는 서당을 다니며 『사자소학』부터 차근차근 공부해서 『소학』..
목차 1. 한문공부의 길로 초대되다 한 달을 보내며 방향을 잡다 김하라 교수의 수업, 한문의 매력과 친근감을 알려주다 욕심내지 말고 그렇게 한시를 맛들이듯 2. 생각지 못한 생맥파티로의 초대, 그리고 어우러진 사람들 생각지도 못한 생맥 파티로의 초대 한문만이 있는 게 아니라 삶 속에 한문이 있다 할 만큼 하고 강제하진 말라 3. 한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뜨거운 밤 한문의 현재, 그리고 미래 2학년임에도 한문의 열기에 불타는 아이들 한문은 폐쇄가 아닌 개방, 그렇게 연계되어야 한다 한문이 좋았어라 인용 목차 18년 글 19년 글
3. 한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뜨거운 밤 한문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을 많은 부분에서 참고할 수 있었다. 첫째 한문은 진입장벽이 무척이나 높다는 얘기다. 이 말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문자는 모두 암기해야 할 것 투성이고 그것을 다 외운다고 문장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경서를 봤다고 모든 문장이 술술 해석되는 것도 아니다. 각 문장마다 다시 새로운 해석 방법이 필요하고 여러 문체까지 겹치고 나면 난공불락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 오늘의 안주 술맛이 더욱 조옷타 한문의 현재, 그리고 미래 하지만 그럼에도 교수님은 한문을 공부하면 분명히 어딘 가엔 쓸 수 있다는 확신이 느껴졌다. 자신이 요즘 꽂혀 있는 건 인성학당이라는 것도 표명했다. 세월호 여파이든 교과교육의 폐단 때문이든 언제나 만능키처럼 ..
2. 생각지 못한 생맥파티로의 초대, 그리고 어우러진 사람들 스터디는 9시 50분쯤 끝이 났다. 짐을 챙기려 부스럭거리던 그때 교수님이 오시더니 “어디서 공부하세요?”라고 물으신다. 그래서 임고반에서 하고 있다고 했더니, 지금 시간 되냐고 다시 물으신다. ▲ 형태형이 줬다고 한다. 소현성 교수의 추천으로 둘이 만났고 형태형은 대학원에 올 생각이 있다고 한다. 생각지도 못한 생맥 파티로의 초대 순간 ‘무슨 이유 때문에 그러시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혼불의 메아리 심사 위원이셨던데 거기서 나를 봤다는 걸 인지하신 건가? 그게 아니면 무언가 부탁이 있으신 건가?’하는 오만잡생각이 들었지만, 교수님에게 어렵게 대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 ‘교수방에서 차 한 잔 하자’는 정도의 얘기..
1. 한문공부의 길로 초대되다 4월 11일에, 5월 2일에, 그리고 5월 16일 어제 교수님들이 진행하는 스터디가 있었다. 김하라 교수가 진행하는 산문 스터디는 2번에 걸쳐 진행됐고(5월 2일에 빠짐), 김형술 교수가 진행하는 스터디는 그 기간 동안에 모두 하여 3번을 하게 된 셈이다. 그런데 솔직히 중간고사 기간이라 2주가 빠진 것(4월 18일, 25일)은 이해가 되지만, 저번 주인 5월 9일에 빠진 건 이해할 수가 없다. 그건 어쨌든 이 스터디 자체가 교수들에겐 버겁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 4월 11일의 첫 스터디. 가슴 뭉클한 사진이다. 한 달을 보내며 방향을 잡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첫 스터디 참여 후에 공부 방법에 대해 고민했고 블로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됐던 게 공부에 대한 ..
힘들지만 달콤한 한문 공부 목차 1. 한문공부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헤맸고 심적 부담으로 맘만 무겁던 3월 움직여야 무엇이든 벌어진다 2. 한문공부가 꿀처럼 달콤해지다 한문이 꿀처럼 달콤한 순간 예전에 한문 공부했던 것들은 꿈처럼 사라졌다 공부한 내용을 문서로 정리해두기로 하다 함께 보며 함께 다듬어가는 것 움직여봐 그것만으로도 된 거야 인용 지도 18년 글 19년 글
한문공부가 꿀처럼 달콤해지다 그 계기는 새롭게 부임한 두 분의 교수들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과 스터디를 진행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다. 매주 수요일 저녁에 열리는 스터디는, 일반 강의와는 다른 매우 알싸한 충격을 안겨줬다. 하긴 뭐 나처럼 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훌쩍 지난 이에겐 이런 식의 수업 자체가 재밌는 경험이며 신나는 시간이긴 하니 말이다. 한문이 꿀처럼 달콤한 순간 김하라 교수에겐 한문산문이 지닌 내용의 함축성과 전개방식의 탁월함을, 김형술 교수에겐 그토록 어렵고 난삽하게만 보이던 한시의 핍진逼眞하면서도 생각의 정수를 담는 치밀함을 맛볼 수 있었다. 그건 마치 『죽은 시인의 사회』란 영화에 나오는 ‘시가 꿀처럼 흘러나왔던 거였어. 영혼이 흘러나왔고 여자들은 황홀했고 신들이 창조되었지.’라는..
한문공부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2018년 3월 15일에 임고반에 입성했고 오늘은 5월 8일이니 어느덧 두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난 셈이다. 두 달 사이에 참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기에 오늘은 그 변화과정을 기록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혀보도록 하겠다. ▲ 임고반에 입성하던 날 하늘에선 축하의 비가 내렸다. 헤맸고 심적 부담으로 맘만 무겁던 3월 한 달째가 되었던 4월 17일엔 “그러니 막상 다시 공부를 하겠다고 앉아 있으니 좀이 쑤시고, 임용을 관둔 이후 한문문장을 진득하게 본 일이 없으니 이해되지 않는 것투성이로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역시나 현실의 중압감, 미래의 불투명함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가 않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뭐 이 글엔 ‘한문문장’을 운운했지만 실제로 ..
나만의 방식으로 한문의 정수를 온축하다 임용공부를 시작하려 할 때만 해도 호기로웠다. ‘그토록 원하던 공부만 할 수 있는 시간’이 기어코 왔다고 생각했으니, 그리고 글을 쓸 때에도 집에선 잘 써지지 않아 커피숍을 찾아 전전하던 것에 비해 지금은 아예 나만의 책상이 있고 맘껏 참고해볼 책들이 있는 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니 제때를 만난 양 훨훨 날아다닐 줄만 알았다. 지난 한 달 동안 헤맸다 하지만 그런 환상과는 달리 공부를 시작하고 전태련 쌤의 교육학을 들으면서 깨달았다. 막상 공부만 해야 하는 그 시간이 나에게 얼마나 지옥 같던 시간이었는지에 대한 기억이 돌아왔던 것. 한문이 좋다고 공부를 시작했지만 6년간의 공부는 어떠한 결실도 맺지 못하고 끝이 났다. 그래서 매순간 답답함과 우울한 기분을 안은 채 ..
스마트폰이 바꾼 임고반 풍경 2010년까지 임용공부를 하고 마쳤으니, 정확히 7년 만에 다시 도전하는 셈이다. 시간이 꽤 흐른 만큼 시험 체제도 3차 시험(1차: 교육학과 전공 객관식 시험⇒2차: 전공 논술⇒3차: 현행 2차와 동일)으로 진행되던 게 2차 시험으로 바뀌었다는 극적인 변화가 있지만 나에겐 그것 이상의 다른 변화가 더 크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듯이 2006년에 첫 시험을 봤을 때의 시험 체계가 지금과 꽤나 유사하다가 2년 후에 3차 시험 체제로 바뀌었으니, 이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 마지막 임용고사는 중앙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 스마트폰이 바꾼 임고반의 풍경 그렇다면 무엇이 크게 느껴지는 걸까? 그걸 알기 위해선 임고반에 온 첫 날의 풍경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2007년의 임고..
공부할 수 있어 좋다 3월 14일에 임고반에 됐다는 문자가 왔고 15일에 마침내 7년 만에 다시 이곳에 들어왔다. 그렇게 새 집, 새 공부공간에 적응하는 시간을 보내고 오늘 갑자기 날짜를 보니, 벌써 한 달이 후다닥 지나 있는 게 아닌가. 꿈만 같아서 그랬던지, 늘 그리던 그 시간이 마침내 현실이 되어 그랬던지 더욱 빨리 지나간 느낌이다. ▲ 임고반 오리엔테이션, 오랜만에 가슴 뛰는 순간이었다. 과거의 미화, 그걸 느끼다 막상 머릿속으로 그릴 때의 포근히 안겨오고 마냥 좋았던 것 같고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도, 현실이 되면 퇴색되거나 나의 만용인지도 모를 것에 기가 질리게 마련이다. 기억 속의, 추억 속의 그때는 들끓던 온갖 감정, 앞날이 기가 막히게 아무 것도 없어 보였던 불안, 격정, ..
웃지 않으려 했으나 웃긴 걸 어떡해 서문 여러 해 동안 매료된 학자가 있다. 특히 나의 전공인 한문에 있어서 단순히 해석을 하는 정도가 아닌 그 문헌의 정밀도를 텍스트 크리틱(text critique)으로 분석하여 좀 더 오리지날한 판본을 규정한 후에 중국과 한국과 일본의 제 학자들의 견해를 통섭하여 해설을 하는 연구자세가 일품이다. 지금까지 『사서』는 모두 역주했지만 그 중 단연 백미는 주희가 도통을 중시하며 맘대로 변형하고 왜곡한 『대학』의 본모습을 찾아 주희의 시선으로 난도질당한 『대학』이 아닌 『禮記』 속에 고이 잠들어 있던 『고본대학』을 역주한 『대학학기역주』다. 바로 그와 같은 정밀성과 깊이, 진득함을 지닌 학자가 도올 김용옥 선생님이시다. ▲ 대학의 성립시기를 [여씨춘추]와 같은 시기로 보며..
이 노트 갖고 싶다 서문 지금 시간 오전 9시 3분. 여긴 501호 임용고시반 55번 자리. 지금은 한 사람이 왔지만 금방 전까진 나 혼자만 있어서 흡사 이곳을 내가 다 차지한 양 노트도 북북 찢고 줄도 쫙쫙 긋고 짐도 쾅쾅 내려놨다. 그렇게 해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지 않는 자유를 누리고 나니 얹힌 가슴이 풀어진 것 같고 막힌 속이 뚫린 것 같아 마구 대장부의 기운이 샘솟아 지구를 돌파하여 우주까지도 닿을 수 있을 것만 같더라. 난 인복에 겨운 사람 임고반에 들어온 지 어느덧 3주가 지났고 이렇게 1학기부터 임고반에서 공부를 하는 건 2007년 이후 처음이니 11년 만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지금 이 순간이 축복 가득한 시간이고 다신 없을 수도 있는 복에 겨운 시간이란 사실. 지난 삶을 되돌아볼 때,..
Carpe Diem의 참 의미 Carpe Diem 서문 9년 전에 이 노트에 단어, 기초적으로 암기하고 있어야 할 것들을 써놓았다. 아마도 가지고 다니며 편안하게 볼 요량으로 그랬던 거겠지. 그러다 보니 여기엔 세 가지 형태의 서문이 써지게 되었다. (2008년 해피니스노트 서, 2009년 카르페디엠 서) 회피하지 말고 이 순간을 받아들이란 뜻의 카르페디엠 ‘Carpe Diem’은 『죽은 시인의 사회』를 통해 알게 되었고, 이미 그 영화는 10편의 글로 풀어내기도 했기에 9년 전보다 훨씬 더 친근해졌다고 할 수 있다. 이 단어는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두려움으로 현재를 짓누르지 않도록, 과거의 회한과 후회로 현재가 짓이겨지지 않도록 지금 이 순간(Now&Here)에 충실하라는 말이다.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지금 당장 만나자 ‘우리 지금 만나’ 머리말 인간관계에 있어 성격이 소심하든 대범하든, 가릴 것 없이 때론 ‘용기 백배’하고 “우리 지금 만나! 당장 만나!”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한다. 미치도록 보고 싶거나, 싸우고 나서는 더욱 그렇다. 절절하되 강요하지 않도록 물론 이렇게 외치기 위해선 두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상대방에 대한 확신이다. 그저 곶감 찔러 보듯이, 강태공이 낚시 바늘 던지듯이 ‘걸려도 그만, 안 걸려도 그만’이란 자세로 해서는 안 된다. 하긴 그런 마음으로 외친다면 이미 진심이 없으니 결과야 뻔하겠지. 외치려면 ‘진심을 담아 절실한 마음’으로 해야 하고 ‘절실하되 강요하지 않으려는 빈 마음’으로 해야 한다. 내 마음을 다 보여주되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는 거다. 그럴 때 진심..
시작하니 점차 짜임새가 생기다 掘井錄卷之二跋 열심히 우물을 팠다. 물론 물을 구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물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노트에 서문을 쓰고 나서 2년이 흐른 어느 날의 넋두리다. 굴정록 1권의 고민 솔직히 이 노트의 존재 자체가 아리송했다. 원문을 옮겨 적고 그걸 해석하며 하나의 문자라도 충실히 보자는 게 존재 이유였는데 쓰면 쓸수록 의심이 되었다. ‘뭐 하러 금방 뽑아서 볼 수 있는 원문들을 사서 고생하면서 쓰고 있나?’ 괜한 고생이란 생각이 들고 너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고민에 빠질 때부터 여기에 적는 횟수는 줄었을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봤다. 원문을 적는 게 그렇게 곤욕스런 일이었던가? 그리고 애초에 이 노트를 만든 저의는 무엇이었던가? ..
삶은 꽤 정확하다 掘井錄卷之二序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이젠 더 이상 긴 팔이 어색하지 않은 날씨다(낮엔 무겁긴 하지만 그래도 햇살은 따사하게 느껴짐). 이렇게 불현듯 가을이 찾아올 줄 알고 있었을까? 반 팔티를 입고 내리쬐는 태양을 보며 땀을 뻘뻘 흘린 사람이라면 아마 더욱 더 생각하지 못했을 거다. 시나브로 진행되는 변화에 몸을 싣고 자연은 서서히 변해가고 있었을 테지만 우린 하나의 시점에 머물러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우리에게 이렇게 찾아온 가을은 무엇을 뜻할까? ‘무의미’이거나 ‘당연한 것’ 쯤이지 않을까? 결국 자기의식에 갇히게 되는 순간 세상은 정형화된 어떤 틀로만 인식될 뿐 아무 의미도 없는 게 되는 것이다. 고로 상황ㆍ환경의 변화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내가 그걸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냐..
흩어진 조각들을 모아라 서문 임용이란 시험에 연거푸 세 번 떨어졌다. 속도 쓰리고 기도 꺾이고. 솔직히 이렇게 계속 떨어질 바에야 다른 걸 해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 떨어진 이유도 뭘까 생각도 해본다. 맞다, 문장해석능력이 부족해서다. 그런데 타도시에라면 합격했을 점수가 나왔다. 맞다, 괜히 눈만 높아 경기도로 지원해서 그렇다. 그런데 작년엔 광주를 썼는데도 떨어졌다. 즉, 사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 편하자고 어떤 하나의 이유 때문이라 몰아 분석을 할 순 있지만 그건 어찌 보면 또 하나의 왜곡일 뿐이다. 작품집 이름이 ‘조각모음집’인 이유 그렇기 때문에 뭔가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선 조각난 것들을 신경 써야 한다. 그 하나하나의 조각들은 별 내용을 담고 있진 않겠지만 그런 것들을 ..
변화를 맛들여야 할 때 ‘無謀한 熱情’序 일상적이고 평온한 삶은 그 누구나 원하는 것이다. 그건 변화가 없는, 그래서 내일도, 모레도, 1년 후도, 10년 후도 그대로일거라고 바라는 심리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선 발전이 없다. 제자리라도 유지하면 다행이겠지만 유지는커녕 어느 순간 뒤처져 있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발견하게 될 뿐이다. 공부는 재밌고 즐겁게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에 대해선 무리수를 던져가면서 정면 돌파를 해야 하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이 혀를 끌끌 차며 ‘미쳤어’라고 비아냥거릴지라도 자신이 진정 하고자 하는 일에는 그와 같은 막무가내의 무모한 열정이 필요하다. 그럴 때에야 나 자신을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고 진정 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알 수 있으리라. 공부에 대해선 내 ..
오지 않은 과거로의 신나는 여행 기출문제 모음집 서문 오늘을 살면서 어제를 사는 사람이 있고 오늘을 살면서 미래를 사는 사람이 있다. 오늘을 살지만 오늘을 살진 못한다. 이게 웬 말장난인가 싶을 것이다. 꼭 ‘물을 보고 이건 물이 아니다’라고 하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오늘을 살아가되, 오늘을 살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정의는 언제나 실제적인 것, 현상적인 것에만 유효할 뿐 관념적인 것에는 그다지 쓸모가 없다. 분명히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과연 지금, 현재에 충실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 과거의 추억에 사로잡혀 늘 잘 나가던 당시만을 회상하는 사람, 미래에 이루어질 꿈을 그리며 지금을 그때의 과정쯤으로 생각하는 사람, 이 사람들에겐 오늘이 오늘일 수 없다. 그건 곧 오늘의 불만족..
生而不有의 공부법 한적한 옛 길을 거닐며 발문 눈을 감았다가 눈을 뜨고 ‘습관적으로’ 아침밥을 먹고 ‘늘 오가던’ 길을 달려 학교에 온다. 쭉 둘러보다가 기둥으로 가려지는 자리에 철썩 앉고 ‘지금껏 해왔던 공부’를 이어서 한다. 공부할수록 실력이 저하되다 생각하고 말 것도 없다. 그렇게 시간을 ‘때우다가’ 시간이 되면 평생교육원에 가서 ‘시간을 죽인다.’(쓸데없이 컴퓨터만 하니까.) 일이 끝나면 7시 30분이다. 더 공부하려는 맘만 있다면 2시간가량 더 공부할 수 있다. 그런데도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나오기 일쑤다. 중도에 올라가는 게 귀찮아서만은 아니다. 평생교육원 행정실도 공부할만한 곳이기에 올라가는 게 귀찮다면 그곳에서 해도 되니까. 하지만 하지 않고 그냥 간다. 그렇다면 집에 급한 일이라도 있단 ..
모든 것엔 기본기에 달려 있다 한적한 옛 길을 거닐며 서문 武人이 있다. 그가 많은 초식을 익혔다 할지라도 그걸 잘 활용할 정신력이 갖춰지지 않으면 도리어 해가 될 수도 있다. 정신을 닦다 그렇기 때문에 무예를 배워야 하는 사람들이 먼저 정신을 수양한다. 정신이 잘 갈고 닦아진 자가 무예의 초식을 익힐 때, 그 무예는 빛을 발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생각할 때, 무인은 무예만 열심히 익히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건 겉만 보고 속은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일 뿐이다. 모든 겉으로 표현된 행위ㆍ활동은 치밀한 정신력이 표출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무인들은 육체적인 기술 익히기에 더 많은 시간을 소모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강함은 정신의 강함임을 알기에 정신 수양을 빼놓지 않고 ..
경서를 통해 나를 외치다 經書集編跋 2월이 되면서 기획하고 편집하기 시작했던 책이 드디어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이 뿌듯한 마음과 행복한 마음을 어디에 비할까? 무엇이든 자기의 힘으로 완성해낸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시작이 주는 부담감에서부터 순간순간 닥쳐오는 ‘괜한 일에 시간 소모하는 건 아닐까?’하는 갈등까지 겹치면, 완성은커녕 도중하차하는 일까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 부담과 갈등을 극복해야지만 결국 ‘완성’이란 선물이 주어진다. 그러한 의미에서 ‘완성은 자기 극복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한문학 박사’의 꿈 ‘나는 한문학 박사가 될 것이다.’를 꿈으로 정하고 이렇게 첫 책을 내기까지 ‘과연 지금 내가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이 나의 길이 맞을까?’하는 생각도 많이 해봤다. 하지만 결국 이 ..
해봐야 알지 經書集編序 요즘은 행복의 요소를 멀지 않은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아니 무슨 일을 해도 그 안에서 의미가 찾아지고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만 같아 어찌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때론 자살을 생각할 때도 있었다. 어떤 일을 하다가 실패하게 되면 ‘그것만이 내 삶의 전부였는데, 그걸 이루어내지 못했으니 난 살 필요도 없어’라는 자기비하로 날 깎아내리기 바빴다. 하지만 과연 그 하나의 실패로 나의 모든 가능성을 덮어버리는 게 옳은 일일까? 그런 실패로 인해 잘할 수 있는 것까지 할 수 없다고 포기하는 게 옳은 일일까? 이런 반문에 대한 답변은 한결 같았다. 바로 내가 행복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그 답변 가운데 있으니까. 해보지 않고 어떻게 알아?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이것저것 쟤다 보..
여정을 떠나듯 일기를 쓰다 새로운 일기의 첫 장을 쓸 때면 언제나 약간 긴장이 된다. 늘 쓰던 일기임에도, 그래서 지극히 익숙해졌음에도 왜 긴장이 되는 걸까? 어찌 보면 이 질문 자체가 우문인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봐도 처음이란 관념엔 언제나 긴장과 기대가 따르게 마련이니 말이다. 새로움에 대한 설렘이 있고 어떤 식으로 변화를 줘야하는지에 대한 기대가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긴장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렇다면 다시 물어야 할 것 같다. 과연 무엇 때문에 긴장하는 것인가? 바로 이 무엇이란 것에 이 서문을 쓰는 이유가 담겨 있다. 언제나 첫 장을 쓰는 건 떨린다 벌써 9권 째 일기를 쓰고 있다. 그 중 7권과 8권은 진짜로 두꺼운 일기장으로 바꾸어 썼으니, 이미 그 일기장에 담긴 양은..
비 맞고 집에 가서 차를 음미하며 마실 때 Happiness Note 여기에 ‘꿈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얼핏 보면 암기장 같기도 하고, 단편적인 지식들을 나열해 놓은 단어장처럼도 보인다. 그래서 대충 보고서 지나간 사람에겐 이 이야기가 일상적이고 진부한 것으로 들리는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제대로 쳐다보자. 그리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자. 그럴 때에야 비로소 이 이야기의 본래 모습이 보일 것이고 본래 음성이 들릴 것이다. 꿈을 현실로 만드는 노트 왜 ‘꿈에 관한 이야기’인가? 어쩌면 이 노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일기장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표리를 이루는지도 모른다. 왜 그러냐면, 일기는 ‘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뿐 ‘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진 않기 때문이다. 바로 현실성이나 직접성이 이 노트에..
讀書百遍義自見序 천하에 책을 읽는다는 건 있지만 사람이 독서할 곳은 없다. 만약 독서하려 한다면 쑥대 집이나 흙벽 집의 망가진 책상과 해진 자리도 모두 알맞은 독서처다. 만약 독서하지 않으려 한다면 상쾌한 누각이나 큰 방과 동그런 연못과 네모진 우물이 있고 사귐이 드물고 자물쇠 채워져 시원한 대자리와 무늬 있는 자리도 이따금 투전판과 술판이 된다. 天下有讀書, 人無讀書處. 苟欲讀書, 蓬屋土★缶+坐, 壞床敗薦, 悉書林也; 苟不欲讀書, 快閣穾廈, 圓淵方井, 交疏屈戌, 冰簟紋茵, 往往爲博奕酒肉之場. -李家煥 「讀書處記」 독서해야 할 때가 따로 있는 것도, 독서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어느 한 곳으로 정해두려는 심리 속에는 독서는 ‘특별한 것’이라는 관념이 숨어 있다. 특별한 때, 특..
우물물이 나올 때까지 파야하는 이유 掘井錄序 이 노트를 산 이유는 「讀書百遍義自見」 卷之二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1권과의 통일성을 생각하다보니, 결국 이 노트는 애물단지 신세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觚不觚觚哉觚哉 -「雍也 23」’라는 공자의 말씀처럼 노트도 더 이상 노트의 노릇을 할 수 없을 땐, 없음만 못한 것이다. 그렇게 책장 구석에 쓸쓸히 박혀 있다가 이제야 자기의 쓰임새를 알아서 세상에 나왔다. 공부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작아진다 책의 이름을 「掘井錄」이라 했다. 이름은 ‘有爲者 辟若掘井 掘井九仞而不及泉 猶爲棄井也 -「盡心」 上 29’에서 따왔다. 어떤 일을 새로이 시작한다는 건 ‘우물 파기’와 같다. 처음엔 열정과 자신감이 충만해 있어서 못할 일이 없을 것처럼 덤벼든다. 하지만 서서히 시..
讀書百遍義自見序 책읽기는 글쓰기 다음으로 나의 오랜 벗이자 연인이다. 무수히 많은 책을 읽진 않았으나 한 권, 한 권을 정복해나갈 때면 신대륙을 발견한 것 마냥 행복함을 느낀다. 어떻게 보면 가장 얻기 쉬운 행복이면서도 마음의 여유 운운해야 겨우 얻을 수 있는 얻기 힘든 행복이기도 하다. 하지만 난 책을 읽을 때의 내 모습이 결단력 있어 보이고 지적 여 보이며, 열정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좋다. 그런 책읽기의 희열을 글줄기로 남겨 놓기로 했다. 주위에 권하긴 했어도 내 스스로 실행하지 못했던 것을 왜 갑자기 시작한 것일까? 그건 정민 선생님의 ‘책읽는 소리’라는 책을 읽으면서 감화 받았기 때문이다. 그 분의 독서력과 좋은 구절을 만나면 정리해 놓고 읽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 느꼈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예전부터 가지고 싶었지만 처음으로 갖게 된 건 군대에서 제대하고 나서 헬쓰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었고 가장 접근성이 좋다고 생각한 V3라는 카메라였다. 확실하게 기억에 나진 않지만 2003년에 사서 2005년까지 거의 2년 정도를 사용한 것 같다. 그 카메라의 마지막은 사범대 독서실에 놔뒀었는데 감쪽 같이 사라지며 나와의 인연은 끝이 났다. 그 다음엔 V3와 비슷하지만 회전 액정을 달고 나와 여러 각도에서 촬영할 수 있도록 바뀐 알파7이었다. 이 카메라로 많은 일상을 담을 수 있었고 2007년에 떠났던 실학기행이나, 2009년에 떠났던 국토종단, 그리고 2011년에 떠났던 사람여행까지 임용을 치열하게 준비하던 순간과 임용시험을 그만두고 방황할 때, 그리고 단재학교에 교사가 된 초기의 순..
38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중급 도전기 1. 모처럼 시험을 보려 하니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너무나 편해져 시간을 낭비하게 된 단재학교의 시간들 고사장 매진사태에 따른 우여곡절 닥쳐서야 문제지를 사고 공부하다 2. 시험을 보며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다 시험은 날 설레게 만든다 시험 시작 전 고사장에서 느껴보는 두근거림 정답 맞추기 식 시험의 한계와, 그럼에도 적당한 긴장감을 주는 시험의 장점 인용 사진 지도 18년 글 임용 Life
2. 시험을 보며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다 드디어 2월 3일이 왔다. 잘 때만 해도 잠이 안 올 거 같은 느낌이었다. 적당한 긴장감과 새로운 것을 한다는 기대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뒤척이다 가까스로 잠이 들었고 5시 30분에 일어나 데스티니 차일드도 돌리고 밥도 챙겨 먹으며 시험 날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시험은 날 설레게 만든다 기온은 또 다시 영하로 떨어져 한파가 밀려온 날이다. 올겨울은 유난히 한파가 자주 찾아오고 있다. 저번에 생일잔치 때문에 전주에 갔을 때도 일주일 내내 한파가 찾아와서 서울에 돌아왔을 땐 동파로 인해 수도가 나오지 않는 지경이기까지 했는데, 날이 풀린 지 채 일주일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추위가 찾아온 거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갈까 하다가 맘을 접고 오..
1. 모처럼 시험을 보려 하니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적어도 한 달 전만 해도 내가 ‘한국사능력시험’을 볼 거란 건 꿈조차 꾸지 못했다. 그땐 당연히 이 생활이 반복될 줄만 알았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 학교에 가서 별다른 일 없이 시간이 보낸 후 집에 와서 한숨 자고 저녁엔 밥을 먹고 편안하게 지내다 잠을 잔다. 너무나 편해져 시간을 낭비하게 된 단재학교의 시간들 단재학교를 떠나기로 정하고 맘이 싱숭생숭하긴 했지만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단재학교는 나에게 새로운 걸 꿈꾸고 맘껏 실행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너무나 편해진 나머지 더 이상 그런 걸 할 필요도, 고군분투할 필요도 없는 공간으로 남았고, 나는 그에 따라 그저 하루하..
한문임용 낙방기 목차07년도~11년도까지 5년 간의 임용시험 낙방 역사를 기록하다 1. 06년 임용: 첫 시험의 불안감을 안고 경기도에 가다어느덧 오수생이 되다첫 시험에 스민 자신감, 언뜻 보이는 불안감 2. 06년 임용: 내가 된다는 확신을 갖게 하다초심자의 행운이 따르다첫 시험이라 떨렸을까, 너무 큰 기대가 있던 시험이라 떨렸을까초심자의 행운, 그렇게 떠나다 3. 07년 임용: 한바탕 노닐 듯 시험 볼 수 있을까?2007년은 변화의 때시험으로 한바탕 노닐어 보자 4. 07년 임용: 광주에 시험 보러 와서 한계를 느끼다광주에서의 인연, 그리고 악연축제가 한 순간에 저주로 5. 08년 임용: 시린 어둠과 찬란할 빛암울하게 시작된 2008년어둠은 사라지고 찬란한 빛이 찾아오다2008년에 바뀐 임용제도 6...
13. 때 지난 임용 낙방기를 쓰는 이유 임용시험을 처음으로 봤던 게 2006년이고 마지막으로 봤던 게 2010년이다. 한문교육과에서 들어오면서부터 모든 임고생들의 목표가 그러하듯 나의 목표도 ‘졸업과 동시에 합격’이었다. 그건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이기도 했지만, ‘꼭 그래야만 한다’는 당위이기도 했다. 집에 별로 돈이 없어서 사립대학교에 다니는 것도 부담이 컸기에, 대학교를 다니는 내내 열심히 공부하여 장학금을 받고, 졸업함과 동시에 취업을 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맘과 같지 않아 연거푸 떨어졌고, 그렇게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 임용 합격의 꿈을 키웠던 곳. 하지만 그 꿈은 이루지 못했다. 사람은 밤하늘과 같다 2010년에 마지막 임용시험을 봤으니, 그 후로 어느새 ..
12. 10년 임용: 10년지기 친구들과 만나 즐기다 세훈이는 피곤했는지 계속 자고 난 일찍 일어나 미국판 ‘응원단’이란 게임을 했다. 가혜가 정성껏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동물농장이란 티비 프로그램을 같이 보며 한 바탕 웃고 놀다가 집을 나섰다. 10년 지기 친구와 맛난 점심을 강남으로 간다. 일전에 서울에 올라오면 진규네 집에서 자려고 이야기를 해본 적이 있는데, 상황이 있어서 안 된다는 대답을 들었기에 이번엔 별도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너무 폐를 끼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 전화가 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오늘 점심을 같이 먹기로 한 것이다. 만나기로 한 시간은 있지만 이른 시간임에도 거리로 나섰다. 정훈이 형, 충원이와는 강남역에서 헤어지고 무작정 걸었다. 완..
11. 10년 임용: 시험이 끝나자 찾아온 활기 작년엔 시험을 보고 절망을 맛봤다면, 이번엔 시험을 보고 희열을 느꼈다. 마지막 시험이기에 좀 더 느긋하게 이 순간을 즐기잔 생각으로 교실에서 맨 마지막에 나왔다. ▲ 온고을 중학교는 나와 징한 인연이 있다. 시험 끝나자 활기가 찾아오다 복도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는데 경수 누나와 미연이가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 다들 오랜만에 만났기에 반가운 마음에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기다리던 시험이 끝난 것이기에 한껏 들뜬 모습이 스민다. 미연이의 남자친구는 미연이의 시험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더라. 처음 보지만 훈훈한 모습이 맘에 든다. 신기하게도 고등학생 때부터 사귀기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사귀고 있다던 남자친구다. 시험이 끝나길 ..
10. 10년 임용: 오수생 마지막 임용시험을 보다 마지막 시험이다. 임용 공부를 시작하면서 끝을 기약한 적은 없다. 처음 시험 볼 땐 곧바로 합격할 줄 알았고, 그게 재수, 삼수로 이어지자 ‘끝없는 싸움을 한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달려들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사수까지 시험을 봤고, 급기야 오수를 하게 됐다. ▲ 공고문이 변경된 경우는 처음이다. 그 덕에 한문교사는 한 명이 늘었다. 마지막 시험이라 외치다 어느 해건 심간 편하게 임용공부를 한 적은 없다. 가장 결정적인 문제점은 언제나 돈이었다. 집에서 임용공부를 한다고 해서 돈을 보태주거나 지지해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래서 단순히 ‘돈이 없다’는 정도가 아니라, ‘막상 돈을 벌어야 할 나이에 한 목숨 부지하기도 힘들다’는 실존적인 고민에 빠져야..
9. 10년 임용: 마지막 시험에 임하는 자세 09년 임용은 나의 무능을 폭로한 것이자, 어리석음을 까발린 것이었다. 무엇 하나 제대로 풀지도 못했으며,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치기에 바빴으니 말이다. ▲ 작년엔 시험을 다 본 후에 무작정 모악산을 올랐었다. 그러지 않으면 미처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임용시험 3일 전, 마지막 시험을 코앞에 둔 심정 그러나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임용 공부만 해오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아니, 다른 것을 할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그건 ‘포기할 수 있는 용기’,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깡’이 필요한 일이니 말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시 공부를 하게 됐고 지금은 2010년 임용을 3일 앞두게 된 것이다. 어제 모의고사를 보고 느낀 건 ‘참 형편없..
8. 09년 임용: 반란은커녕 뒤꽁무니 치다 올해는 처음으로 임용을 전북에서 본다. 여태껏 경기, 광주, 경기 총 3번의 시험을 보면서 전북에선 절대 볼 생각이 없었다. 29년간 살아왔던 전북이란 홈그라운드를 떠나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 전북에서 3명의 한문교사를 뽑는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에서 교사를 하기 위한 도전이 시작된다. 전북에서 시험을 보게 된 이유 그런데 작년에 경기도에서 떨어지면서 ‘전북에서라면 붙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실제로 전북이 커트라인이 좀 더 낮아 붙을 수 있었던 점수였는데 경기도였기에 떨어졌으니 말이다. 만약이란 건 언제나 아쉬움을 토로할 때나 쓰는 것이기에, 그게 어리숙한 사람의 변명이라는 건 충분히 안다. 그러나 좀 더 ..
7. 09년 임용: 국토종단으로 반란의 꿈을 키우다 아~ 2009년을 어찌 잊으랴? 너무도 가슴 벅찬 일 년이었고, 나의 가능성을 실제로 알게 된 가슴 뭉클한 일 년이었다. 그만큼 나의 삶 중에서 가장 밀도가 높았노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다. ▲ 2009년에도 운 좋게 임고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임고반에 공부하며 한 컷. 미래를 현재로 만들러 국토종단을 떠나다 2009년엔 새해가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용산 참사’라는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났다. 돈이 사람을 짓누르다 못해 살해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권력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기보다 돈의 흐름에 따라 생명체를 짓밟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생각을 바로 잡아야 했고, 그저 예전에 하던 대로 ‘세상은 원래 그런 거야’라며 성공을 위한 경주마가 될..
6. 08년 임용: 기분 좋은 떨어짐 더욱이 예년 임용과는 달리 경기도에서 충원이가 함께 시험을 보기에 잘 곳을 따로 구하지 않아도 됐다. 충원이가 서울에서 집을 구해 살고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함께 잠을 자고 다음 날 수원으로 함께 출발하면 됐으니 말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토요일엔 맹렬히 공부를 했고 서울로 출발했다. 내가 올라온다는 사실을 알고 세훈이도 나와 맞이해줬다. 내 생각 같아선 좀 쉬고 싶었는데,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친구들을 따라 쉬지도 못하고 돌아다녀야 했다. 첫 임용 때에 비하면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니 마음은 편하고 어색함도 덜했지만, 또한 그게 안 좋기도 했다. 저녁으로 고기까지 구워 먹고 세훈이가 가는 것을 보고 들어와 조금이라도 책을 보겠다고 펼친 ..
5. 08년 임용: 시린 어둠과 찬란할 빛 2008년도는 파란만장한 해였다. 거시적으론 한국이란 나라도 혼란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갔고, 미시적으론 한 개체에 불과한 나도 어둠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 2008년에도 경기도에서 한문교사를 선발하니 다행이다. 암울하게 시작된 2008년 대통령이 바뀌며 보란 듯이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대통령 부시를 위해 카트를 손수 운전해주며 굴욕적인 쇠고기 졸속 협상으로 30개월 이상 소의 뇌나 부산물까지 수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이건 미국에서 잘 먹지 않기에 미국은 한국에게 덤터기를 씌운 것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이니 굳이 ‘광우병’ 운운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우리 세대 먹을거리의 안전망이 무너졌다고 생각했고 광장으로 몰려나와 재협상을 외치며 촛불집회를 하게 된 것..
4. 07년 임용: 광주에 시험 보러 와서 한계를 느끼다 07년도 임용은 광주에서 봤는데, 06년에도 군대 동기에게 부탁하여 하룻밤 잠을 잘 수 있었던 것처럼 이때도 광주에 살고 있는 군대 동기에게 부탁을 하여 하룻밤 머물 수 있었다. ▲ 군대인연으로 하룻밤 묵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목사가 되어 열심히 사는 친구. 광주에서의 인연, 그리고 악연 그러고 보면 예전의 나라면 ‘민폐 끼치기 싫다’라는 마인드로 절대 하지 않을 일들을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다. 꾸준히 연락하며 지냈던 것도 아님에도 무작정 연락을 하여 잠자리 부탁을 하는 것이니 ‘이기적이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보다는 이젠 어떻게든 어우러져 돕고 도우며 살아갈 수 있는 상황을 그리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3. 07년 임용: 한바탕 노닐 듯 시험 볼 수 있을까? 2007년은 전반적으로 모든 것에 변화가 있었던 시기였다. 섶나무를 베고 의기를 다졌던 부차처럼, 쓸개를 잘게 잘게 씹으며 의지를 불태우던 구천처럼, 천하를 주유해야 했던 공자처럼 깊게 침잠해야 했던 시기였다. ▲ 학교도 졸업했고 이젠 완전한 사회인이 되었다. 곤지중학교에서 한자급수 강사를 하던 때. 2007년은 변화의 때 생각의 밑바닥에서부터 하나하나 재검토를 해야 했다. 그 결과 26년 간 별다른 고민 없이, 어떤 의문도 없이 절대적으로 믿어왔던 기독교란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건 필연적으로 불변의 진리를 좇아 완전한 것만을 추구하던 생각을 버리고 변화무쌍한 세상을, 감정이 들쭉날쭉하는 사람을 긍정하게 만들었다. 변화야말로 삶이 주는 선물..
2. 06년 임용: 내가 된다는 확신을 갖게 하다 시흥에 사는 민호는 군 시절 후임으로 들어와 나에게 엄청난 갈굼을 당했었다. 군이란 시스템이 멀쩡한 사람도 이상한 사람으로, 잘 하려는 의욕적인 사람도 어설픈 사람으로 만든다. 나도 그 피해자고 민호도 그 피해자지만, 더욱 웃긴 점은 내가 민호보다 선임이란 이유로 짓누르고 바보로 만들었단 사실이다. 제대한 이후로 그랬던 과거들이 무척이나 후회가 됐지만, 그래서 민호도 내가 미울 법 한 데도 자기 집에 기꺼이 초대해주고 하룻밤 잘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무척이나 고맙고 미안했던 순간이었다. ▲ 민호를 만나기 전에 시흥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 초심자의 행운이 따르다 밤엔 자는 둥 마는 둥 시간을 보냈고 아침이 밝자 차려준 밥을 먹고 수원으로 향하는 버스에..
1. 06년 임용: 첫 시험의 불안감을 안고 경기도에 가다 어느덧 나도 오수생이 되었다. 장수생이라 할 수 있는데 나도 이렇게 긴 시간동안 공부를 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고 솔직히 이런 느낌이 매우 생소하기까지 하다. 어느덧 오수생이 되다 처음 임용을 볼 때만 해도 동기 여학생들은 사수생이었다. 그땐 동기들을 보며 ‘무척 길게도 공부한다’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그렇게 막연히만 생각했던 상황에 닥치게 된 것이니 놀랍다고 하는 말 밖에, 다른 말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무신경한 만큼이나 시간은 흐르고 흘러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간아 제발 돌아와줘’라고 외칠 건 아니다. 흘러버린 시간이 ‘임용합격’이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5년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
2월 6일 10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