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1/10/26 (68)
건빵이랑 놀자
과거 사람들의 평가도 눈여겨 볼 떄 한시는 훨씬 재밌다 『소화시평』 권상62번에 나머지 두 시도 전문(全文)으로 공개했고 그것으로 공부했지만, 사람들은 그러질 않았다. 프린터를 해오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심지어 교수님까지도. 그래서 다음부턴 전문을 함께 보고 싶을 땐 내가 프린터를 해서 나눠주는 방법 밖에는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쉽다 함께 보면 좀 더 얘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그것은 홍만종이 인용해둔 구절을 중심으로 살짝 봤기 때문에 별다른 감흥이 남지 않았다. 그래도 교수님이 신흠이 『청창연담』에 나오는 내용을 프린터해서 주셔서 함께 볼 수 있었고 내용이 꽤 흥미진진했다. 전혀 준비하지 않았기에 버벅였고, 때론 보는 순간 이게 무슨 글자지 하는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지..
김종직과 두보의 그림 같은 시 籬外紅桃竹數科 울타리 밖 붉은 복숭아꽃과 대나무 몇 그루 𩁺𩁺雨脚閒飛花 부슬부슬 빗발에 이따금 꽃이 날리네. 老翁荷耒兒騎犢 노인은 보습을 메고, 아이는 송아지 타니, 子美詩中西崦家 두자미의 시 중에 「적곡 서쪽 산의 인가[赤谷西崦人家]」라는 시에서 얘기한 풍경이로다.『東文選』 『소화시평』 권상62번에 두 번째로 소개된 「장현촌가(長峴村家)」라는 시는 ‘시중유화(詩中有畵)’라고 평한 정도전의 「방김거사(訪金居士)」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다. 이 시는 해석이 그리 어렵지 않았고 보는 순간 그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시는 느낌이 「도중(途中)」의 시와 매우 흡사하다. 마치 그 그림 속에 들어가 지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특이하게 4구에선 아예 두보..
한유와는 달리 고향 선산으로 의기양양하게 태수로 가는 김종직 津吏非瀧吏 官人卽邑人 나루의 아전은 농리는 아니고 관인인 나는 곧 이 고을 사람이네. 三章辭聖主 五馬慰慈親 세 차례 상소문은 성주께 사직했지만 태수가 되어 사랑하는 어머니를 위로하네. 白鳥如迎棹 靑山慣送賓 흰 새는 마치 노를 맞이하는 듯하고 푸른 산은 익숙히 손님을 보내는 듯. 澄江無點綴 持以律吾身 티 하나 없이 맑은 강을 지님으로 이 몸을 규율(단속) 하리라. 『소화시평』 권상62번엔 김종직의 시가 나열되어 있다. 「관수루제영시(觀水樓 題詠詩)」라는 시는 어렵게 느껴졌다. 여긴 나름의 스토리가 달려 있고 한유가 농리(瀧吏)와 나눴던 얘기라는 고사도 포함되어 있다. 더욱이 김종직이 왜 중앙관직을 마다하고 선산으로 가려 하는지에 대한 이해도 뒷받..
소화시평 스터디가 부딪힐 수 있는 용기를 주다 이 스터디는 4월 중순에 들어와 지금까지 6번의 스터디와 한 번의 맥주파티, 그리고 한 번의 교수님과의 내소사 탐방이 있었을 뿐이다. 어찌 보면 3개월이란 시간은 흘렀지만 소화시평을 공부한 시간보다 안 한 시간이 훨씬 많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그 기간 이상으로 나에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처음 스터디에 갈 때만 해도 머리는 완전히 백지상태였고 어떻게 공부해야하는 지도 몰라 헤매고 있었는데, 그새 공부하는 방법도 알게 됐고, 정리하는 기쁨도 알게 됐으며, 나만의 자료를 만들어가는 행복도 알게 됐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소화시평을 준비하는 마음도 바뀌었다. 예전엔 그냥 가서 따라가기에 바쁘기만 했다면 이젠 어느 ..
62. 김종직의 파란만장을 담은 시 佔畢齋金宗直, 善山人也. 嘗出宰善山, 有詩曰: ‘津吏非瀧吏, 官人卽邑人. 三章辭聖主, 五馬慰慈親. 白鳥如迎棹, 靑山慣送賓. 澄江無點綴, 持以律吾身.’ 詞極典雅. 「長峴村家」詩曰: ‘籬外紅桃竹數科, 零零雨脚閒飛花. 老翁荷耒兒騎犢, 子美詩中西崦家.’ 可謂詩中有畵. 且如 ‘霜後梧桐猶窣窣, 月明鳷鵲自飜飜.’ 其寒淡如此, ‘鳩鳴穀穀棣棠葉, 蝶飛款款蕪菁花.’ 則雅麗如此, 所謂冠冕國朝者, 豈虛言哉! 해석 佔畢齋金宗直, 善山人也. 점필재 김종직은 선산 사람이다. 嘗出宰善山, 有詩曰: ‘津吏非瀧吏, 官人卽邑人. 三章辭聖主, 五馬慰慈親. 白鳥如迎棹, 靑山慣送賓. 澄江無點綴, 持以律吾身.’ 일찍이 선산에 수령이 되어 가다가 「관수루에 제목을 붙여 지은 시[觀水樓 題詠詩] / 낙동역에서[洛..
61. 서거정의 표절 徐四佳久典文衡, 聲名最盛, 而不爲評家所重, 蓋以才止於華瞻而已. 其對皇華天使祁順也, 先唱‘風月不隨黃鶴去, 烟波長送白鷗來’之句, 有若挑戰者, 而卒困於‘五臺泉脈自天來’之句. 先輩只以先交脚後仆地爲譏, 而殊不覺剽窃古人全句也. 余見『東文選』, 前朝蔡中庵洪哲「月影臺」詩一聯, 與徐作無異同, 而只改相逐二字. 『東文選』卽四佳受命所撰者也, 其眼目宜慣, 豈欲竪天使降幡, 故用此句耶! 해석 徐四佳久典文衡, 聲名最盛, 而不爲評家所重, 蓋以才止於華瞻而已. 사가정 서거정은 오래도록 문형 담당하여 성명이 최고로 성대했지만 시평 하는 이들에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으니 대체로 재주가 화려하고 넉넉한 데에 그쳤을 따름이다. 其對皇華天使祁順也, 先唱‘風月不隨黃鶴去, 烟波長送白鷗來’之句, 有若挑戰者, 중국 사신인 기순(祁..
60. 서거정의 동몽시 徐居正號四佳亭, 權陽村外孫也. 六歲屬句, 人稱神童. 八歲時陪陽村坐, 四佳曰: “古人七步成詩, 尙似遲也, 請五步成詩.” 陽村大奇, 遂指天爲題, 因呼名行傾三字. 四佳應聲曰: ‘形圓至大蕩難名, 包地回旋自健行. 覆燾中間容萬物, 如何杞國恐頹傾.’ 陽村歎賞不已. 해석 徐居正號四佳亭, 權陽村外孫也. 서거정의 호는 사가정(四佳亭)으로 권양촌의 외손이다. 六歲屬句, 人稱神童, 6살에 시구를 이으니 사람들이 신동이라 칭찬했고 八歲時陪陽村坐, 四佳曰: “古人七步成詩, 尙似遲也, 請五步成詩.” 8살에 양촌을 모시고 앉아선 서거정이 “옛 사람은 일곱 걸음에 시를 지었다고 하는데 오히려 더딘 듯하니, 다섯 걸음에 시를 지어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陽村大奇, 遂指天爲題, 因呼名行傾三字. 양촌이 크게 기이하..
신종호의 시와 김영랑의 시에 담긴 상춘(傷春) 茶甌飮罷睡初驚 차 마시길 다하고 깜빡 졸다가 막 깨니, 隔屋聞吹紫玉笙 집 너머에서 자주빛 옥피리소리 들려. 燕子不來鶯又去 제비 오지 않고 꾀꼬리 가버린 채, 滿庭紅雨落無聲 뜰 가득 붉은 비가 뚝뚝 떨어지네. 『소화시평』 권상59번의 네 번째 인용된 신종호의 「상춘(傷春)」이라는 시도 재밌는 시였다. 우선 1구부터 문제가 됐다, 잠이 깼는데 그 이유는 당연히 차를 마셨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차 마시니, 잠이 깼다는 내용이 순차적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수님은 달리 생각해보라고 말씀해주셨다. 이 사람이 잠을 깨게 된 이유는 차와는 상관없이 바로 다음 구절에 나오는 것이라는 걸 암시한다. 즉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생황소리에 잠이 깬 거라는 거다. 그렇다..
시의 제목을 통해 시를 봐야 한다 江湖當日亦憂君 강호에서 있던 당시에 임금이 근심스럽고 白首無眠夜向分 하얀 머리인데도 잠 못 이루고 자정을 넘겼는데, 華省寂寥疎雨過 궁궐은 적막한데 가랑비 지나가자, 隔窓梧葉最先聞 창 너머 오동잎이 가장 먼저 빗소리를 들려주네. 『소화시평』 권상59번의 세 번째 인용된 「독직내조문야우(獨直內曺聞夜雨)」라는 시를 볼 땐 제목과 1구에 나오는 ‘강호(江湖)’에 집중하며 봐야 한다. 지금껏 시를 볼 땐 제목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대부분 ‘우연히 읊다[偶吟]’이나 ‘그 자리의 일을 읊다[卽事]’와 같은 전혀 시의 내용과 상관없는 제목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엔 아예 시 제목을 풀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고, 최근에 다시 공부하면서는 시 제목을 해석하긴 하지만, 여전..
지나가는 가을의 강과 산을 싣고 돌아오는 경지 水國秋高木葉飛 물나라 가을 깊어 나뭇잎 흩날리고, 沙寒鷗鷺淨毛衣 모래 추워 기러기와 해오라기는 깃털을 고르는데, 西風日落吹遊艇 해가 지니 가을바람이 놀잇배를 불어줘서 醉後江山滿載歸 취한 뒤라 강산을 한 가득 싣고 돌아오는구나. 『소화시평』 권상59번의 두 번째 인용된 이요정의 시는 너무도 익숙히 알고 있는 ‘양화대교♬’를 배경으로 글을 썼다. 그 당시의 양화나루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한강의 직선화 공사 이전엔 자연하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잠실 같은 곳은 섬까지 있을 정도로 비좁은데 반해 양화나루쯤엔 하구로 좀 더 거대한 물줄기가 흘렀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직선화 공사 이전의 한강엔 모래톱도 자연스럽게 있고 해수욕장도 있어 사람들이 더욱 친근..
태평의 기상을 노래한 신숙주의 시 6월 27일에 마지막 소화시평 스터디를 했으니, 근 한 달 만에 다시 스터디를 하는 셈이다. 소화시평을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하다가 막상 한다니까 부담이 되긴 한다. 특히 이번엔 한 달 정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던 터라 미리 내가 할 분량을 올려놓긴 했는데, 다른 것들은 전혀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서당에 들어간 아이도 있고 각자 방학에 따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요일엔 갑자기 교수님에게 전화가 오기에 이르렀다. “잘 지내죠? 부탁이 있어서 전화했어요.”라고 시작한 통화는, 하나 더 준비해달라는 거였다. 더군다나 하루 전날에 온 전화이기에 부담이 될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지금의 내 마인드는 ‘내가 해갈 수 있는 만큼만 해가고, 나머지..
59. 신숙주와 손자 3인의 서정적인 시 保閒齋申叔舟·二樂堂用漑·企齋光漢祖孫三人, 皆以文章典文衡, 偉哉! 保閒嘗北遊, 「寄中書諸君」詩曰: ‘豆滿春江繞塞山, 客來歸夢五雲間. 中書醉後應無事, 明月梨花不怕寒.’ 二樂堂「楊花渡」詩曰: ‘水國秋高木葉飛, 沙寒鷗鷺淨毛衣. 西風日落吹遊艇, 醉後江山滿載歸.’ 企齋「獨直內曺聞夜雨」詩: ‘江湖當日亦憂君, 白首無眠夜向分. 華省寂寥疎雨過, 隔窓梧葉最先聞.’ 三魁堂從護, 亦保閒之孫, 能文章. 其「傷春」詩: ‘茶甌飮罷睡初驚, 隔屋聞吹紫玉笙. 燕子不來鶯又去, 滿庭紅雨落無聲.’ 諸詩何讓唐人. 해석 保閒齋申叔舟·二樂亭用漑·企齋光漢祖孫三人, 보한재 신숙주(1417)【보한재와 같은 경우는 말도 잘했고 행동도 잘했다고 할 만하다. 널리 섭렵한 재주로,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하는 문장을..
58. 사육신의 충절 朴彭年ㆍ成三問ㆍ李塏ㆍ河緯之ㆍ柳誠源, 世宗朝皆選入集賢殿, 最承恩遇. 乙亥光廟受禪, 魯山爲上王, 彭年等與武人兪應孚密謀欲復上王, 事發皆死. 其詩若文, 不能刊行於世, 今取傳誦者各一首, 錄之. 噫! 六先生精忠義烈, 炳炳烺烺, 片言隻字, 猶可與日月爭曜, 固不必多也. 蓋觀者卽此而求之, 亦足以得其人之大略矣. 朴彭年詩曰: ‘十年身在禁中天, 只有丹心魏闕懸. 西望白雲生眼底, 不堪歸興繞林泉.’ 時公雙親在全義故云. 成三問「夷齊廟」詩: ‘當年叩馬敢言非, 大義堂堂白日輝. 草木亦沾周雨露, 愧君猶食首陽薇.’ 李塏「善竹橋」詩: ‘繁華往事已成空, 舞館歌臺野草中. 惟有斷橋名善竹, 半千王業一文忠.’ 河緯之「答朴彭年借簑衣」詩: ‘男兒得失古猶今, 頭上分明白日臨. 持贈蓑衣應有意, 五湖烟雨好相尋.’ 柳誠源「送別」詩: ‘白山拱海..
악부시의 묘미와 시경 해석의 문제점 『소화시평』 권상57번엔 악부시에 대한 소개까지 하고 있다. 소개된 악부시는 민간에서 떠돌던 노래들을 한시로 변용하여 정착시킨 것이다. 지금으로 보면 유행가, 특히나 소속사에서 만든 노래보다 인디밴드의 노래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일 없이 산다’와 같은 노래들이 꼭 그런 꼴이다. 그래서 ‘관풍찰속(觀風察俗)’이라 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공공기관의 마인드이고 그저 자연스럽게 나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을 담아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관에선 왜 이런 노래들을 담으려 했을까 하는 점이다. 보통 사람은 누군가와 마주 앉아 있을 땐 좋은 얘기만 하게 되어 있다. 서로 불편한 이야기를 나눠 나쁜 감정을 가질 필요가 없으니 좋은..
신비로운 시를 쓴 성간 籬落依依半掩扃 마을 뵐 듯 말 듯 사립문을 닫혔는데 夕陽立馬問前程 석양에 말 세우고 앞길 물어야 해. 翛然細雨蒼烟外 갑자기 가랑비 내리고 푸른 안개 피어오르는 저 편에 時有田翁叱犢行 때마침 늙은이 ‘이랴!’ 소를 끌고 가네. 『소화시평』 권상57번에 소개된 「도중(途中)」라는 시는 머리로 상상하며 시를 그려야 한다. 말을 타고 어딘가를 찾아가는 선비가 있다. 처음 가는 길인데 날씨가 약간 흐린지 멀리 있을 땐 마을이 보일 듯 말 듯 흐릿하기만 하다. 말이 서서히 앞을 향해 나아가니 드디어 사립문이 보였지만 반쯤 닫혀 있다. 저물기 전에 빨리 도착했으면 하는데 도무지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길을 묻고 싶지만 사람은 보이질 않는다. 마음은 급한데 갑자기 비가 내리다가 그치니..
호쾌한 시를 쓴 성간 鉛槧年來病不堪 글 짓느라 근래에 병을 견디지 못했는데 春風引興到城南 봄바람이 흥 이끌어 성남에 도착했네. 陽坡草軟細如織 볕든 언덕의 풀은 연하고 가늘기가 실을 짠 듯 正是靑春三月三 바로 이때가 푸른 봄 3월 3일이네! 『소화시평』 권상57번에 소개된 「여옥당학사 유성남(與玉堂學士, 遊城南)」는 매끄럽게 해석되진 않아도 말하고자 하는 바는 크게 문제없이 전해진다. 공무에 시달리다 봄바람 따라 친구들이 이끌어서 야외에 나왔더니, 언덕 위에 연하고 가는 풀들이 보여 그제야 ‘아 맞다! 오늘이 3월 삼짇날이지’라고 알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우리에겐 이런 시들에서 전혀 감흥을 느낄 수 없다. 도대체 이런 류의 시를 통해 뭘 말하려 하는지 알지 못할 정도다. 하지만 이 시를 지었..
57. 호방한 시와 청우(靑牛), 민가의 생기발랄한 악부시 眞逸齋成侃, 嘗在集賢殿, 與同僚遊城南, 分韻賦詩. 侃詩先成, 詩曰: ‘鉛槧年來病不堪, 春風引興到城南. 陽坡草軟細如織, 正是靑春三月三.’ 諸公皆閣筆. 且如「途中」詩: ‘籬落依依半掩扃, 夕陽立馬問前程. 翛然細雨蒼烟外, 時有田翁叱犢行.’ 說景如畵. 許筠云: “東詩無效古者. 獨成和中侃擬顔陶鮑三詩, 深得其法, 諸小絶句得唐樂府體, 賴得此君, 殊免寥寂云. 「囉嗊」詩曰: ‘爲報郞君道, 今年歸不歸. 江頭春草綠, 是妾斷腸時.’ ‘郞如車下轂, 妾似路中塵. 相近仍相遠, 看看不得親.’ ‘綠竹條條勁, 浮萍箇箇輕. 願郞如綠竹, 不願似浮萍.’ 其此詩之謂乎! 해석 眞逸齋成侃, 嘗在集賢殿, 진일재 성간이 일찍이 집현전에 있을 적에 與同僚遊城南, 分韻賦詩. 동료와 함께 성남에 놀..
여유로움을 칭송하던 사회에서 지어진 한시 『소화시평』 권상56번의 주제인 나태함에 대해 얘기를 하다가 이와 관련된 시 두 번도 함께 소개해줬다. 김형술 교수님은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 1671~1751)은 3만 수의 시를 썼으며 이덕무가 영조 때의 제일 시는 사천을 꼽아야 한다고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시 중에 『직중기하동(直中寄巷東)』을 보면 다음과 같다. 官寺淸閒聽禁鍾 관청이 맑고 한가로워 통행금지 종소리 들으니, 此中那得一從容 이 가운데 한결같이 조용히 있을 수 있겠는가? (친구 불러 시를 짓겠네라는 뜻) 故人不起知非病 고인이 일어나질 않으니 병 때문이 아님을 아니, 兒女傍邊好得慵 지금 처자식 옆에서 실컷 늘어졌겠지. 이 시를 잘못 읽으면 불러도 오지 않고, 그저 아녀자의 치마폭에 싸여 ..
나태함을 칭송하다 晝靜溪風自捲簾 낮 고요하고 시내엔 바람에 저절로 발이 걷혀 吟餘傍架檢書籤 시 읊은 뒤에 서가 옆에서 책갈피를 뒤적이네. 今年却勝前年懶 금년은 도리어 작년의 게으름보다 더하여 身世全敎付黑甛 몸 신세 온통 꿀잠에 부치네. 『소화시평』 권상56번에 소개된 「즉사(卽事)」를 읽으면서 지금과 확실히 다른 조선 지식인들의 사고방식, 생활방식을 볼 수가 있다. 지금은 ‘빨리 빨리’, ‘성과가 있어야 한다’, ‘하나라도 더 하지 않으면 낙오한다’와 같은 완벽한 경쟁주의 사회 속에 치열한 삶의 방식이 좋은 것처럼 회자되고, 티비에 성공한 사람들이 나와서 하는 얘기들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느림의 미학』,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과 같은 책들이 ..
56. 게으름, 낮잠에 대한 칭송 柳泰齋方善, 嘗被謫, 後廢科隱居. 有詩曰: ‘晝靜溪風自捲簾, 吟餘傍架檢書籤. 今年却勝前年懶, 身世全敎付黑甛.’ 懶睡比撿書更閑, 語自好. 해석 柳泰齋方善, 嘗被謫, 태재 유방선(柳方善)은 일찍이 귀양을 가게 되었고【1409년 아버지가 민무구의 옥사에 관련됨으로 연좌되어 유배됨. 1415년에 해배되었으나 모함에 걸려들어 19년 동안 귀양살이함】 後廢科隱居, 후에 과거시험을 더 이상 보지 않고 은둔하여 살았다. 有詩曰: ‘晝靜溪風自捲簾, 吟餘傍架檢書籤. 今年却勝前年懶, 身世全敎付黑甛.’ 「보이는 대로 읊다[卽事]」 시는 다음과 같다. 晝靜溪風自捲簾 낮 고요하고 시내엔 바람에 저절로 발이 걷혀 吟餘傍架檢書籤 시 읊은 뒤에 서가 옆에서 책갈피를 뒤적이네. 今年却勝前年懶 금년은 도..
자연이 약동하는 걸 시로 표현하다 舍後桑枝嫩 畦西薤葉抽 집 뒤 뽕나무 가지 새싹 뾱 돋고, 서쪽 밭의 부추잎이 쑥 자라네. 陂塘春水滿 稚子解撑舟 언덕엔 봄물 가득하여 어린 자식 메어놓은 배를 저을 줄 아네. 『소화시평』 권상55번에 두 번째로 인용된 「자적(自適)」이란 시는 봄의 정경을 읊고 있는 평범한 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재밌는 부분은 ‘눈(嫩)→추(抽)→만(滿)’으로 행위 자체가 확대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눈(嫩)은 여린 새싹 뾱 돋아나는 모습이라면, 추(抽)는 쏙 하고 약간 더 큰 모양새로 돋아나는 모습이고, 만(滿)은 이미 단어만으로도 가득 차 있는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이런 걸 점층법(漸層法)이라 할 수 있고, 해석을 할 때에도 그걸 반영하여 점차 거대해지는 모습으로 알맞게 해석하면..
이첨, 급암을 통해 사회를 풍자하다 諂諛從來易得親 아첨하는 무리들이 예로부터 쉽게 총애를 얻는다는 것을 君看大將與平津 그대는 대장인 위청과 평진후인 공손후에게서 볼 수 있네. 高才久屈淮陽郡 높은 재주임에도 회양군에서 오래도록 구부렸으니, 孰謂當時社稷臣 누가 당시 사직의 신하라 하였던가? 『소화시평』 권상55번에 첫 번째로 인용된 「영급암(詠汲黯)」이라는 시는 명재상인 급암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회풍자시다. 그런데 이 시에서 재밌는 점은 아양을 떠는 신하들만을 비판한 게 아니라, 그런 신하임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들에게 휘둘리는 임금까지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4구를 통해 임금에 대한 비판이 가열차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냐면, 급암을 ‘사직의 신하[社稷臣]’라 띄워준 게 바로..
55. 임금까지 비판한 시와 생명력 가득한 시 李雙梅詹「詠汲黯」詩曰: ‘諂諛從來易得親, 君看大將與平津. 高才久屈淮陽郡, 孰謂當時社稷臣.’ 痛惜之意, 令人悲慨. 且如‘舍後桑枝嫩, 畦西薤葉抽. 陂塘春水滿, 稚子解撑舟. 「自適」’ 何減唐人? 해석 李雙梅詹「詠汲黯」詩曰: ‘諂諛從來易得親, 君看大將與平津. 高才久屈淮陽郡, 孰謂當時社稷臣.’ 쌍매 이첨은 「급암【급암(汲黯): 진(漢) 나라 태수. 무제 때 동해군 태수로서 큰 치적을 쌓아 무제의 부름을 받았다. 무제의 면전에서 거리낌 없이 간언하는 그를 무제가 겉으로는 존경하였으나 속으로는 싫어하였다. 회양태수를 했기에, 급회양(汲淮陽)으로 불리며, ‘정치 잘하는 사또’의 대명사임.】을 읊다[詠汲黯]」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諂諛從來易得親 아첨하는 무리들이 예로부터 ..
54. 강회백 삼대 姜通亭淮伯, 玩易齋碩德, 仁齋希顏, 祖子孫三人, 皆以文章大鳴. 噫! 歷觀往古, 讀書能文章者爲難, 雖能文章而成一家傳後世爲難, 雖傳後世, 能奕世趾美, 不堕其業爲尤難. 求之於古, 僅得蘇ㆍ杜二家, 而我東方獨有通亭一家, 繼世箕裘, 豈不偉哉! 通亭「寄燈明師」詩: ‘人情蟬翼隨時變, 世事牛毛逐日新. 想得吾師禪榻上, 坐看東海碧粼粼.’ 玩易齋「題秀庵上人軸」詩曰: ‘占斷烟霞心自閒, 茅茨高架碧孱顔. 飢飱倦睡無餘事, 春鳥一聲花滿山.’ 仁齋「詠松」詩曰: ‘階前偃盖一孤松, 枝幹多年老作龍. 歲暮風高揩病目, 擬看千丈上靑空.’ 格調最高. 해석 姜通亭淮伯, 玩易齋碩德, 仁齋希顏, 祖子孫三人, 皆以文章大鳴. 통정(通亭) 강회백(姜淮伯)과 완역재(玩易齋) 강석덕(姜碩德)과 인재(仁齋) 강희안(姜)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손..
53. 권우의 가을날 權遇, 號梅軒, 陽村之弟也. 少遊圃隱門, 精於性理之學, 陽村每曰: “吾不如弟.” 其「秋日」詩曰: ‘竹分翠影侵書榻, 菊送淸香滿客矣. 落葉亦能生氣勢, 一庭風雨自飛飛.’ 末句極有音韻. 해석 權遇, 號梅軒, 陽村之弟也. 권우(權遇)의 호(號)는 매헌(梅軒)으로 양촌의 아우이다. 少遊圃隱門, 精於性理之學, 陽村每曰: “吾不如弟.” 젊었을 적에 포은의 문하에서 유학할 때 성리학에 정밀했지만 양촌은 매번 “내 아우만 못해.”라고 말하곤 했다. 其「秋日」詩曰: ‘竹分翠影侵書榻, 菊送淸香滿客矣. 落葉亦能生氣勢, 一庭風雨自飛飛.’ 「가을날」이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竹分翠影侵書榻 대나무가 비취빛 그림자를 나누어 책상에 파고들고 菊送淸香滿客衣 국화가 맑은 향기 보내 나그네 옷에 가득해. 落葉亦能生氣勢 ..
52. 권근의 금강산 시 權陽村近, 嘗奉使朝天, 太祖問朝鮮形勝, 仍命賦詩. 陽村卽應製, 太祖稱以老實秀才. 其「詠金剛山」詩曰: ‘雪立亭亭千萬峰, 海雲開出玉芙蓉. 神光蕩漾滄溟近, 淑氣蜿蜒造化鍾. 突兀岡巒臨鳥道, 淸幽洞壑秘仙蹤. 東遊便欲凌高頂, 俯視鴻蒙一盪胸.’ 鄭之升謂此詩起頭, 寫出金剛眞面目. 해석 權陽村近, 嘗奉使朝天, 太祖問朝鮮形勝, 仍命賦詩. 양촌 권근이 일찍이 사신의 명을 받아 천자를 뵐 적에 명 태조는 조선의 명승지를 물었고 따라서 시를 지으라 명했다. 陽村卽應製, 太祖稱以老實秀才. 양촌이 곧바로 지으니 명 태조는 노련하고 성실한 수재라 칭찬했다. 其「詠金剛山」詩曰: ‘雪立亭亭千萬峰, 海雲開出玉芙蓉. 神光蕩漾滄溟近, 淑氣蜿蜒造化鍾. 突兀岡巒臨鳥道, 淸幽洞壑秘仙蹤. 東遊便欲凌高頂, 俯視鴻蒙一盪胸.’ ..
물아일체의 묘미를 한시로 담다 秋陰漠漠四山空 가을 그늘 어둑침침하고 온 산은 고요한데, 落葉無聲滿地紅 소리 없이 떨어지는 낙엽에 온 산 붉구나. 立馬橋頭問歸路 말 다리머리에 세워두고 돌아가는 길 묻자니, 不知身在畵圖中 알지 못했구나, 몸이 그림 속에 있었다는 것을. 『소화시평』 권상51번의 두 번째로 나온 「방김거사(訪金居士)」는 너무도 익숙히 읽어왔던 시다. 더욱이 마지막 구에 ‘그림 속에 있었다’라는 구절 때문에 나 자신이 외물과 융합된 경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고, 그 때문에 자연과 하나로 섞였다는 표현을 하려 할 때 편안히 쓰게 된다. 여기선 ‘공(空)’에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즉, 어둠이 깔렸기에 인적이 드물다라는 표현과 함께, 나뭇잎이 떨어져서 비어 있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 정도로만..
태평의 기상을 한시로 담다 『소화시평』 권상51번에서도 그렇듯이 시를 보고 나선 ‘작자는 이런 시를 왜 지었을까?’하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시를 오롯이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春隨細雨渡天津 봄은 가랑비 따라 천진교를 건너서 오고, 太液池邊柳色新 태액지 가의 버들빛 싱그럽다. 滿帽宮花霑錫宴 사모에 궁화를 가득 꽂고 내려주신 잔치에 참가했더니, 金吾不問醉歸人 호위도 취해서 돌아가는 사람을 검문하지 않네. 「봉천문(奉天門)」에서라는 시는 얼핏 보면 그저 궁궐의 풍경을 읊고 세금을 낭비하고 있는 관리들과 임금에 대한 이야기인 것만 같다. 더욱이 4구에 이르고 보면 자기 업무도 소홀히 하는 게 느껴지니 더욱 그런 생각을 강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관리를 노출시키고 게으르며, 때론 자기의 일도 제..
51. 태평성대와 그림이 있는 시 三峯「奉天門」詩云: ‘春隨細雨渡天津, 太液池邊柳色新. 滿帽宮花霑錫宴, 金吾不問醉歸人.’ 豪逸不羈. 「訪金居士」詩曰: ‘秋陰漠漠四山空, 落葉無聲滿地紅. 立馬橋頭問歸路, 不知身在畵圖中.’ 詩中有畵. 해석 三峯「奉天門」詩云: ‘春隨細雨渡天津, 太液池邊柳色新. 滿帽宮花霑錫宴, 金吾不問醉歸人.’ 삼봉의 「계유년 정조에 봉천전에서 읊조리며[癸酉正朝奉天殿口號] / 봉천문에서[奉天門【봉천문(奉天門): 『삼봉집(三峰集)』에는 「계유정조 봉천전구호(癸酉正朝, 奉天殿口號)」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이 해(1393. 태조 2년)에 삼봉은 문하시랑찬성사(門下侍郎贊成事)의 직함을 가지고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삼봉집(三峰集)』에는 결구(結句)에 대하여 “이 사행에는 황제가 특례로 대우하고 ..
50. 정도전의 오호도시 三峯鄭道傳「鳴呼島」詩曰: ‘曉日出海赤, 直照孤島中. 夫子一片心, 正如此日同. 相去曠千載, 嗚呼感余衷. 手髮竪如竹, 凜凜吹英風.’ 蓋欲壓倒陶隱, 而憤其不逮, 卒以此害之. 此與‘汝復作空梁落燕泥?’何異? 吁亦險矣! 해석 三峯鄭道傳「鳴呼島」詩曰: ‘曉日出海赤, 直照孤島中. 夫子一片心, 正如此日同. 相去曠千載, 嗚呼感余衷. 手髮竪如竹, 凜凜吹英風.’ 삼봉 정도전의 「오호도」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曉日出海赤 直照孤島中 새벽 해 바다에서 나와 붉어졌고, 곧바로 외로운 섬을 비춘다. 夫子一片心 正如此日同 부자의 일편단심은 바로 이 해와 같구나. 相去曠千載 嗚呼感余衷 서로의 거리가 천 년이지만 아! 나의 마음을 느껍게 하네. 毛髮竪如竹 凛凛吹英風 머리가 대처럼 쭈뼛 서고 서늘하게 영풍이 휙 ..
홍만종, 고려시보다 조선시를 높게 평가하다 幽居野興老彌淸 숨어사는 시골의 흥취는 늙을수록 더욱 맑아져 恰得新詩眼底生 새로운 시가 눈 밑에서 생겨나는 것을 흡족하게 얻네. 風定餘花猶自落 바람은 멈췄지만 남아 있던 꽃 오히려 스스로 지고 雲移小雨未全晴 구름은 사라졌지만 부슬비 아직 덜 개었네. 墻頭粉蝶別枝去 담장 위의 나비는 가지와 이별하여 떠나고 屋角錦鳩深樹鳴 처마 귀퉁이 비둘기는 깊은 숲에 숨어 울어대네. 齊物逍遙非我事 제물과 소요는 나의 일이 아니니, 鏡中形色甚分明 거울 속에 모든 사물이 이렇게도 분명한 것을. 『소화시평』 권상49번의 이색의 시에서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여기엔 『장자』의 편명인 「제물」과 「소유」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제물은 ‘절대 평등’이라 풀어냈고, 소유는 ‘초월의..
고려시의 시는 송풍의 시다 이번 글의 주제는 ‘고려시와 조선시 중 어느 시대의 시가 좋은가?’일 터다. 그래서 처음부터 두 시대의 시를 비교하며 두 사람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서거정의 대답을 들었을 땐 ‘두 시대의 시가 모두 우열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장점과 단점을 지니고 있다’는 뉘앙스로 읽혀지지만, 막상 홍만종은 그 말을 “서거정의 말로 그것을 보면 조선이 나은 것처럼 보인다”라고 결론을 지어 놨다. 분명 지금 다시 읽더라도 장단점이 특기되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홍만종이 왜 그렇게 평가했는지 알 길이 없다. 아마 저 문장만이 아닌 전체를 다 읽으면 다른 뉘앙스가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그렇게 보지 않더라도 홍만종이 조선인이기에 자신의 관점에서 저 말을 왜곡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49. 고려와 조선 시 중 어느 게 좋나요? 金頤叟嘗語徐四佳曰: “高麗諸子詞麗氣富, 而體格生疎; 我朝著述辭纖氣弱, 而義理精到, 孰優?” 四佳曰: “豪將悍卒, 抽戈擁盾, 談說仁義, 腐儒俗士, 冠冕章甫, 從容禮法, 君將何取?” 申玄翁云: “我朝文章非不蔚然輩出, 而比之麗朝, 則小遜, 李文順之宏肆, 李文靖之浩汗, 我朝未見.” 以四佳之論見之, 我朝似優, 而玄翁之言論之, 麗朝似優. 文順卽李白雲奎報, 文靖卽李牧隱穡, 今錄其七言近體各一首. 李文順「扶寧浦口」詩曰: ‘流水聲中暮復朝, 海村籬落苦蕭條. 湖淸巧印當心月, 浦闊貪呑入口潮. 古石浪舂平作礪, 壞船苔沒臥成橋. 江山萬景吟難狀, 須倩丹靑畵筆模.’ 李文靖「卽事」詩曰: ‘幽居野興老彌淸, 恰得新詩眼底生. 風定餘花猶自落, 雲移小雨未全晴. 墻頭粉蝶別枝去, 屋角錦鳩深樹鳴. 齊物逍遙非..
48. 고려의 뛰어난 연구 시들 麗朝之詩, 五字聯佳者, 如‘鶴添新歲子, 松老去年枝.’ 吳學麟「興福寺」詩也, ‘喚雨鳩飛屋, 啣泥燕入樑.’ 金克己「田家」詩也, ‘點雲欺落日, 狠石捍狂瀾.’ 李奎報「狗灘」詩也, ‘海空三萬里, 山屹二千峯.’ 陳澕「杆城途中」詩也, ‘蜃氣窓間日, 鷗聲砌下潮.’ 李齊賢「記行」詩也, ‘魚擲時驚夢, 鷗來或上欄.’ 韓宗愈「猪子島」詩也, ‘行雲猶雨意, 臥樹亦花心.’ 李牆「卽事」詩也, ‘草連千里綠, 月共兩鄕明.’ 鄭夢周「奉使日本」詩也. 七字聯佳者, 如‘門前客掉滄波急, 竹下僧棋白日閒.’ 朴寅亮「龜山寺」詩也, ‘少而寡合多疎放, 老不求名可退藏.’ 任奎「歸庄」詩, ‘西子眉嚬如有恨, 小蠻腰細不勝嬌.’ 崔均「詠柳」詩也, ‘花接蜂鬚紅半吐, 柳藏鸚翼綠初深.’ 鄭知常「分行驛」詩也, ‘魚跳落照銀猶閃, 鴉點平林墨..
삼봉도 전횡을 노래했지만 스승에게 비판을 듣다 嗚呼島在東溟中 오호도는 동쪽의 바다 한 가운데 있어 滄波渺然一點碧 푸른 물결에 아득히 하나의 점으로 푸르다. 夫何使我雙涕零 그런데 어찌 나의 두 눈에 눈물을 흐르게 하나? 祇爲哀此田橫客 다만 전횡의 식객들이 애처롭게 하는구나. 田橫氣槩橫素秋 전횡의 씩씩한 기상과 절개가 가을을 가로질렀으니 壯士歸心實五百 씩씩한 선비로 죽으리라 마음을 먹은 이가 실로 500명이나 되었다. 咸陽隆準眞天人 함양에서 콧날이 우뚝한 유방은 참으로 천상의 사람으로, 手注天潢洗秦虐 손으로 은하수를 부어 진나라의 학정을 씻어냈었는데 橫何爲哉不歸來 전횡은 어찌하여 귀의하려 하지 않고 寃血自汚蓮花鍔 원망의 피가 스스로 연꽃이 새겨진 칼날을 더럽혔던가? 客雖聞之爭柰何 식객이 비록 그 사실을 들은..
한문공부의 방향잡기 『소화시평』 권상39번엔 한신이 빨래터 아낙에게 밥을 빌어먹은 이야기를 주제로 발표를 했었는데, 이번에도 권상47번에선 우연하게 유방과 전횡에 대한 이야기를 맡게 됐다. 초한쟁패 시기의 이야기로 우연하게 두 번이나 맡게 된 셈이다. 어찌 되었든 나에겐 축복이라 생각했다. 지금의 내 공부 패턴은 무언가를 진득하게 잡고 가는 방법이기보다 이것 하다가 저게 보고 싶으면, 저걸 보고, 그러다 또 다른 게 보고 싶으면 그것으로 건너 뛰어가는 이름하야 ‘메뚜기식 공부법’,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공부법’으로 하고 있다. 바로 이 공부법은 4월 11일에 첫 스터디를 했고 바로 그 다음 주에 발표를 맡게 되면서 고민 끝에 결정된 것이다. 솔직히 말해 4월 11일만 해도 머릿속은 새하얀 상황이었고 무식..
47. 역사적 인물을 드러내는 두 가지 방식 李陶隱崇仁, 與鄭三峰道傳同師牧隱, 才名相將. 然牧老每當題評, 先李而後鄭, 嘗稱陶隱曰: “此子文章, 求之中國, 不多得也.” 一日牧隱見陶隱「嗚呼島」詩, 極口稱譽. 間數日, 三峰亦作「嗚呼島」詩, 謁牧老曰: “偶得此詩於古人集中.” 牧隱曰: “此眞佳作, 然君輩亦裕爲之, 至於陶隱詩, 不易得也.” 三峰自此積不平, 後爲柄臣, 令其私臣出宰陶隱所配邑, 杖殺之, 「嗚呼島」之詩, 蓋爲禍崇. 其詩曰: ‘嗚呼島在東溟中, 滄波渺然一點碧. 夫何使我雙涕零, 祇爲哀此田橫客. 田橫氣槪橫素秋, 義士歸心實五百. 咸陽隆準眞天人, 手注天潢洗秦虐. 橫何爲哉不歸來, 怨血自汚蓮花鍔. 客雖聞之爭柰何, 飛鳥依依無處托. 寧從地下共追隨, 軀命如絲安足惜. 同將一刎寄孤嶼, 山哀浦思日色薄. 嗚呼千載與萬古, 此心菀結誰能..
홍만종의 평가가 시를 깊이 있게 보도록 한다 『소화시평』 권상46번에선 화운한 시를 보며 어느 작품이 더 낫냐를 생각해보게 한다. 영천에 있는 명원루(지금의 조양각)를 보고서 정몽주가 먼저 시를 지었고, 그 시에 탄복한 이안눌도 차운을 하며 시를 짓고자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그렇게 몇 시간 끙끙 앓다가 결국 시를 쓰긴 했는데, 이에 대한 홍만종의 평가는 “청신한 시구를 만들어냈지만, 그럼에도 마침내 정몽주의 굉장하고 원대한 기상에는 미치지 못했다[李詩雖淸絶, 然終不逮鄭詩宏遠底氣像].”라는 평가를 내린다. 교수님은 “그러면 전문을 한 번 해석해보면 그때서야 홍만종이 왜 저런 평가를 했는지 느낌이 올 거예요”라고 알려준다. 난 그 순간 ‘어디서 약을 파시려고?’라는 마음으로 반신반의했다. 靑谿石壁抱州回 맑..
46. 화운한 시를 통해 굉원(宏遠)한 기상을 보여주마 鄭圃隱題「永川明遠樓」詩一聯曰: ‘風流太守二千石, 邂逅故人三百盃.’ 李東岳嘗到此見此句, 歎賞欲和, 意甚難之, 終日沈吟, 得‘二年南國身千里, 萬事西風酒一盃.’之句. 李詩雖淸絶, 然終不逮鄭詩宏遠底氣像. 해석 鄭圃隱題「永川明遠樓」詩一聯曰: ‘風流太守二千石, 邂逅故人三百盃.’ 포은 정몽주가 「영천 명원루에서[永川明遠樓]」【「중양절에 익양 태수 이용이 새로 지은 명원루에서 쓰다[重九日題益陽守李容明遠樓]」】라고 지은 시는 다음과 같다. 風流太守二千石 풍류스런 태수는 2천석 자리인데, 邂逅故人三百杯 친구(정몽주 자신)를 만나 3백 잔을 기울이네. 李東岳嘗到此見此句, 동악 이안눌은 일찍이 명원루에 이르러 이 시구를 보고 歎賞欲和. 감탄하며 화운하려 했다. 意甚難之,..
45. 정몽주의 남경 시 鄭圃隱奉使南京, 有詩曰: ‘江南形勝地, 千古石頭城. 綠樹環金闕, 靑山繞玉京. 一人中建極, 萬國此朝正. 余亦乘槎至, 宛如天上行.’ 非徒理學爲東方之祖, 其文章亦唐詩中高品. 해석 鄭圃隱奉使南京, 有詩曰: ‘江南形勝地, 千古石頭城. 綠樹環金闕, 靑山繞玉京. 一人中建極, 萬國此朝正. 余亦乘槎至, 宛如天上行.’ 정포은이 남경에 사신의 명을 받들고 시를 지었으니 다음과 같다. 江南形勝地 千古石頭城 강남은 명승지로 천고토록 석두성이라네. 綠水環金闕 靑山繞玉京 푸른 진회(秦淮)가 금빛 궁궐을 에워쌌고 푸른 산이 옥빛 수도 에둘렀지. 一人中建極 萬國此朝正 한 명의 황제께서 건극함에 적중하시니 온 나라가 이 나라에 조정하네. 我亦乘槎至 宛如天上行 나는 또한 뗏목을 타고 왔으니 물씬 천상을 가는 것 ..
친숙한 것을 낯설게 표현하는 한시의 저력 平生南與北 心事轉蹉跎 평생 남북으로 떠돌았지만, 마음 둔 일이 갈수록 어긋났네. 故國海西岸 孤舟天一涯 고국의 바다는 서해안 쪽에 있고, 외로운 배만 하늘 한 끝에 매어 있구나. 梅窓春色早 板屋雨聲多 매화 핀 창이라서 봄빛이 빠르고, 판잣집이라서 빗소리 많이 들리네. 獨坐消長日 那堪苦憶家 홀로 앉아 긴 하루 보내려 하니, 자꾸 생각나는 집 생각을 어이 견디랴. 『소화시평』 권상44번에서 이 시를 스터디할 땐 정말 넋이라도 있고 없고 했다. 거의 두 시간을 꽉 채우며 수업이 진행되어 너무 머리를 많이 쓰다 보니 지끈지끈해지며, 거의 마지막에 이르고 보면 분명 시를 배우고 있긴 한데, 뇌는 작동은 멈춘 듯, 나는 이 자리에 없는 듯 소리와 교실 안의 공기는 심연 속으로..
44. 10자의 시구로 일본을 담아내다 鄭圃隱夢周嘗使日本, 留詩甚多, 五律一首曰: ‘平生南與北, 心事轉蹉跎. 故國海西岸, 孤舟天一涯. 梅窓春色早, 板屋雨聲多. 獨坐消長日, 那堪苦憶家.’ 頃歲倭僧能詩者, 語我國使臣曰: “圃隱‘梅窓春色早, 板屋雨聲多’之句, 爲日本絶唱”云. 해석 鄭圃隱夢周嘗使日本, 留詩甚多. 포은 정몽주이 일찍이 일본으로 사신을 가서 남긴 시들이 매우 많다. 五律一首曰: ‘平生南與北, 心事轉蹉跎. 故國海西岸, 孤舟天一涯. 梅窓春色早, 板屋雨聲多. 獨坐消長日, 那堪苦憶家.’ 오언율시 한 수인 「홍무 정사년 일본으로 사신 가서 지은 작품[洪武丁巳奉使日本作]」【「홍무정사봉사일본작」은 바르게 바꿔야 한다. 이하 12수는 대개 봄날 지어진 것이다. 제목이 ‘정사’로 달려 있으니, 온당치 못하다. 마땅..
인생무상과 부벽루의 정감 昨過永明寺 暫登浮碧樓어제 영명사를 지나다 잠시 부벽루에 올랐네.城空月一片 石老雲千秋성은 텅 빈 채 달 한 조각 있고, 바위(조천석)는 천년 두고 구름뿐인데,麟馬去不返 天孫何處遊기린 말 타고 떠나 돌아오지 않으니, 천손이여 어디서 노시는가?長嘯倚風磴 山靑江自流 길게 바람 부는 돌계단에 기대어 읊조리니, 산을 절로 푸르고, 강은 절로 흐르는구나. 『東文選』 卷之十 『소화시평』 권상43번에 나오는 「부벽루」라는 시는 읽은 적이 여러 번 있었을 테지만, 기억에 그다지 남아 있지 않았다. 어려운 글자가 없어 수월하게 변역되었다는 정도로 만족했었지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지 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은 이 시는 주몽의 설화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주몽=선군의 이미..
작가 비평의 문제점과 한계 솔직히 이런 식으로 작가를 나열하고 평가하는 무수한 글을 볼 수 있지만, 『소화시평』 권상43번은 전혀 와 닿지 않는다. 그래도 허균의 평가는 느낌적인 표현보다 한문학사에서의 영향력에 대한 평가가 덧붙여져 있기에 이해가 되는 부분이 충분히 있고 참고해볼 만한 부분이 있었지만, 여기선 도무지 그런 건덕지를 찾아볼 수가 없다. 고려의 문인 중 조운흘이 명명한 12명의 시인을 그대로 반영하여 각 문인마다 두 글자로 인상비평을 가하고 있다. 분명히 우리가 그 당시의 학자였다면 이런 인상비평을 듣는 순간 ‘아 맞다!’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의 글을 한 번 읽어보면, 더욱 분명해질 거다. 보수파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을 썼지만, 좌우를 떠나 가..
43. 중국 사신도 인정한 「부벽루」시 麗朝作者, 各自成家, 不可枚擧. 趙石澗云仡稱麗朝詩十二家, 盖金侍中之典雅. 鄭學士之婉麗, 金老峯之巧妙, 李雙明之淸麗, 梅湖之濃艶, 洪厓之淸邵, 益齋之精纈, 惕若之淸贍, 圃隱之豪放, 陶隱之醞藉, 各擅其名, 而白雲之雄贍, 牧隱之雅健, 尤傑然者也. 至若牧隱之「浮碧樓」詩一律, 宮商自諧, 天分絶倫, 非學可到. 頃歲朱太史之藩之來, 西坰柳根爲遠接使, 許筠爲從事官. 太史問曰: “道上館驛壁板, 何無貴國人作乎?” 筠曰: “詔使所經, 不敢以陋詩塵覽, 故例去之.” 太史笑曰: “國雖分華夷, 詩豈有內外? 況今天下一家, 四海皆兄弟, 俺與君俱落地爲天子臣庶, 詎可以生於中國自誇乎?” 到平壤, 見牧隱. ‘長嘯倚風磴, 山靑江自流.’之詩, 終日吟咀, 不能作詩. 太史笑曰: “日日得如此詩以進, 則吾輩可息肩矣..
문인들의 한바탕 구강액션 『소화시평』 권상42번에선 구양현과 목은은 칼만 들지 않았지, 서로의 기를 짓누르려는 언어의 칼이 사정없이 번뜩인다. 『공작』이란 영화를 한 마디로 ‘구강액션’이라 표현했었는데, 딱 이 글이 그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과 비슷했다. 자칫 잘못하면 상대방을 넉다운 시킬 수 있고, 다시는 공부의 공자도 꺼내지 못하게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나름 긴장감 넘치는 상황을 아주 기묘하게 다룬 이 글이 그래서 사랑스럽다. 근데 나는 이번에도 생각이 많이 짧았다. 좀 더 문장으로 들어가 이해하려 하기보다 피상적인 느낌만으로 이해하려 했기 때문이다. 獸蹄鳥跡之道, 交於中國 鷄鳴狗吠之聲, 達于四境 해석 들짐승의 발굽과 날짐승의 발자국이 만든 길이 중국에서 어지럽다. 닭 울음소리와 개 짓는 소..
엽등하려 하지 말고 기본부터 충실히 한문공부를 해야 한다 『소화시평』 권상42번은 교수님이 준비해왔고 교수님이 대부분 해석을 해줬다. 더욱이 가지의 시와 두보의 시와 함께 가져왔고, 그걸 함께 해석하는 것을 보여줌으로 준비해온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명확히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한문 공부의 저력은 하나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거기에 관련된 다른 작품을 찾아보는 걸 ‘시간이 아깝다’, ‘너무 곁다리로 가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계속 횡적으로 네트워킹을 해야만 하나의 해석을 제대로 할 수 있고, 그 당시의 사람들이 어떤 감각에 의해 그런 평가를 했는지 제대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까지 듣고 나면 ‘좀 더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나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고 생각할지 모..
42. 아부시의 전형을 보여주마 李牧隱穡, 稼亭之子也. 繼其父, 登第於中朝, 名動天下. 授翰林知制誥, 歐陽玄見而輕之, 作一句嘲曰: ‘獸蹄鳥跡之道, 交於中國.’ 牧隱應聲曰: ‘鷄鳴狗吠之聲, 達于四境.’ 歐頗奇之. 又吟一句曰: ‘持盃入海知多海.’ 牧隱卽對曰: ‘坐井觀天曰小天.’ 歐大驚曰: “君天下奇才也.” 其「入覲大明殿」詩: ‘大闢明堂曉色寒, 旌旗高拂玉欄干. 雲開寶座聞天語, 春滿霞觴奉聖歡. 六合一家堯日月, 三呼萬歲漢衣冠. 不知身世今安在, 恐是靑冥控紫鸞.’ 詞極典麗, 可爲唐人「早朝」之亞. 해석 李牧隱穡, 稼亭之子也. 목은 이색은 가정(稼亭)의 아들이다. 繼其父, 登第於中朝, 名動天下. 그 아버지를 이어 중국에서 과거에 합격하여, 명성이 천하를 울렸다. 授翰林知制誥, 歐陽玄見而輕之, 한림지제고(翰林知制誥)에 제..
세상을 피하려는 뜻을 시에 담은 이유 『소화시평』 권상41번은 역사적인 상황을 담고 있다. 공민왕은 친원파(親元派)들이 정권을 장악한 상황에서 친원파들을 축출하여 자신의 입지를 넓히고자 했다. 그래서 기용한 것이 스님의 신분이었던 신돈(辛旽)이었고 그의 활약으로 고려 말의 조정은 나름 활기를 찾게 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신돈의 영향력이 커지게 되면서 의구심이 싹트기 시작했고, 결국 그를 제거하기에 이른다. 마치 이런 일련의 상황이 항우와 범증의 이야기와 매우 유사하다. 그리고 「기무열사(寄無悅師)」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공민왕만이 신돈을 눈엣가시로 봤던 게 아니라, 권문세족 중에서도 신돈을 제거하려는 논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世事紛紛是與非 세상 일에 시비가 분분하여 十年塵土汚人衣..
41. 세상을 피하고자 하는 뜻 金齊顔, 九容之弟也. 謀誅辛旽, 事泄見殺. 嘗有「寄無悅師」詩曰: ‘世事紛紛是與非, 十年塵土汚人衣. 落花啼鳥春風裏, 何處靑山獨掩扉.’ 有遁世之意, 而竟不自謀, 惜哉! 해석 金齊顔, 九容之弟也. 김제안은 구용의 아우다. 謀誅辛旽, 事泄見殺. 신돈을 죽이려 도모했으나 일이 세어나가 도리어 죽임을 당했다. 嘗有「寄無悅師」詩曰: ‘世事紛紛是與非, 十年塵土汚人衣. 落花啼鳥春風裏, 何處靑山獨掩扉.’ 일찍이 「무열 스님에게 부치며[寄無悅師]」라는 시를 지었으니, 다음과 같다. 世事紛紛是與非 세상 일에 시비가 분분하여 十年塵土汚人衣 10년 동안 먼지로 나의 옷을 더럽혔네. 落花啼鳥春風裏 봄바람 속에 꽃 지고 새 우니 何處靑山獨掩扉 어찌 청산에 살며 홀로 사립문을 닫으신 게요. 有遁世之意,..
교수님의 단서만으로도 술술 해석되던 한시 甲第當時蔭綠槐 큰 집 그 당시엔 푸른 회화나무 우거졌겠고 高門應爲子孫開 높은 문 응당 자손을 위해 문을 열었겠지. 年來易主無車馬 근래에 주인이 바뀌어 거마가 끊겼고 惟有行人避雨來 오직 나그네만이 비 피하러 들어오네. 『소화시평』 권상40번에 나온 이곡의 「도중피우(道中避雨)」라는 시를 처음에 할 때만 해도 1, 2구가 잘 해석되지 않았다. 3, 4구야 너무도 명확했으니 괜찮은데 1, 2구는 뭘 말하고 싶은지 몰랐다. 그래서 ‘큰 집 푸른 회화나무 그늘 진 때에, 귀한 집 응당 자손을 위해 문을 열었겠지’라고 풀이했었다. 그만큼 글자만 따라 내용은 전혀 이해를 못한 채 해석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오늘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수업을 진행하셨는데, “좀..
40. 인생무상의 시 李稼亭穀, 入中國, 捷制科第二甲, 名聲籍甚. 嘗有「道中避雨」詩曰: ‘甲第當時蔭綠槐, 高門應爲子孫開. 年來易主無車馬, 惟有行人避雨來.’ 人之侈大宮室爲後世計者, 可以爲戒. 해석 李稼亭穀, 入中國, 가정 이곡은 중국에 들어가 捷制科第二甲, 名聲籍甚. 과제(科第)【과제(科第): 황제가 직접 관장하는 과거제도의 명칭】에 2등으로 뽑히어 명성이 자자했다. 嘗有「道中避雨」詩曰: ‘甲第當時蔭綠槐, 高門應爲子孫開. 年來易主無車馬, 惟有行人避雨來.’ 일찍이 「길 가에서 비를 피하며[道中避雨]」라는 시를 지었으니, 다음과 같다. 甲第當時蔭綠槐 큰 집 그 당시엔 푸른 회화나무 우거졌겠고 高門應爲子孫開 높은 문 응당 자손을 위해 문을 열었겠지. 年來易主無車馬 근래에 주인이 바뀌어 거마가 끊겼고 惟有行人避雨..
한신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주제를 드러내다 『소화시평』 권상39번은 소화시평 스터디에 참여한 후 처음으로 발표했던 편이었다. 번역서가 있기 때문에 참고하며 준비할까도 생각했지만 지금 있는 그대로의 실력 그대로 노출하기 위해 보지 않고 준비하기로 했다. 7년 만에 다시 한문을 공부하게 되어 실력은 쥐뿔 없지만 지금은 뭔가 있어 보이게 꾸미는 것보다 솔직하게 인정하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해나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발표를 준비한 덕에 십팔사략도 정리하고 블로그도 공부장으로 사용하게 됐다. 그런 변곡점을 통해 공부방법도 많은 부분이 바뀐 것이다. 이숭인의 시에서 ‘맹사가(猛士歌)’를 고민 끝에 찾아낸 건 정말 대박이었다. 아래 부분은 제대로 찾질 못해 수업을 듣고 새롭게 알게 된 내용들을 정리해..
39. 빨래터 할머니에 대한 두 시 李益齋過漂母墳詩曰: ‘婦人猶解識英雄, 一見慇懃慰困窮. 自棄爪牙資敵國, 項王無賴目重瞳.’ 李陶隱過淮陰, 感漂母, 有詩曰: ‘一飯王孫感慨多, 不知葅醯竟如何. 孤墳千載精靈在, 笑殺高皇猛士歌.’ 項王之不能用, 漢王不終用, 皆不及一女之知, 兩詩諷意俱深. 해석 李益齋過漂母墳詩曰: ‘婦人猶解識英雄, 一見慇懃慰困窮. 自棄爪牙資敵國, 項王無賴目重瞳.’ 이제현이 빨래터 아낙의 무덤을 지나며 쓴 시는 다음과 같다. 婦人猶解識英雄 아낙 오히려 영웅을 이해하고 알아 一見慇懃慰困窮 한 번 봄에 은근히 곤궁함을 위로하였네. 自棄爪牙資敵國 스스로 용맹한 장수임을 버리고 적국을 도왔으니, 項王無賴目重瞳 항우, 쓸데없이 눈만 겹눈동자였네. 李陶隱過淮陰, 感漂母, 有詩曰: ‘一飯王孫感慨多, 不知葅醯竟如..
38. 이제현과 악부 我東人不解音律, 自古不能作樂府歌詞. 世傳李益齋齊賢隨王在燕邸, 與學士姚燧諸人遊, 其「菩薩蠻」諸作爲華人所賞云, 豈北學中國, 深有所得而然耶! 余見其「舟中夜宿」詞: ‘西風吹雨鳴江樹, 一邊殘照靑山暮. 繫纜近漁家, 船頭人語譁. 白魚兼白酒, 徑到無何有. 自喜臥滄洲, 那知是宦遊.’ 其「舟次靑神」曰: ‘長江日落烟波綠, 移舟漸近靑山曲. 隔竹一燈明, 隨風百丈輕. 夜深篷底宿, 暗浪鳴琴筇. 夢與白鷗盟, 朝來莫謾驚.’ 詞極典雅, 華人所讚, 其指此歟! 해석 我東人不解音律, 自古不能作樂府歌詞. 우리나라 사람들은 음률을 이해하지 못해 예로부터 악부가사를 지을 수 없었다. 世傳李益齋齊賢隨王在燕邸, 與學士姚燧諸人遊, 其「菩薩蠻」諸作爲華人所賞云, 세상에 전하기로 익재 이제현이 임금을 따라 연경의 저택에 머물 적에 학사..
핍진하게 자연을 담아낸 한시 『소화시평』 권상37번의 핵심은 얼마나 보이는 사물을 그대로 담아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핍진하다는 말을 쓴 것이다. 滿空山翠滴人衣 허공 가득한 산의 푸르름이 사람의 옷에 물들고 草綠池塘白鳥飛 초록 연못가에 흰 새가 날아든다. 宿霧夜栖深樹在 간밤에 깃든 밤안개가 깊은 숲에 남아 있다가 午風吹作雨霏霏 낮 바람 불자 비가 되어 주룩주룩. 동암의 「산거우제(山居偶題)」라는 시는 자기 주변의 풍경을 감각적으로 그리고 있다. 2구의 대비는 두보가 지은 「절구(絶句)」란 시의 ‘강벽조유백 산청화욕연(江碧鳥逾白 山靑花欲燃)’라는 구절처럼 색조의 대비가 뛰어나고 3, 4구의 밤안개가 바람으로 비로 변해 내렸다는 구절은 상상력을 자아낸다. 이런 류들의 시는 지은이가 별 것 아닌 자..
37. 핍진한 시를 보여주마 詩貴逼眞. 李東菴瑱詩曰: ‘滿空山翠滴人衣, 草綠池塘白鳥飛. 宿霧夜棲深樹在, 午風吹作雨霏霏.’ 梁霽湖慶遇詩曰: ‘枳殼花邊掩短扉, 餉田邨婦到來遲. 蒲茵晒穀茅檐靜 兩兩鷄孫出壞籬.’ 李模出山家景致而格高, 梁寫出田家卽事而語妙. 해석 詩貴逼眞. 시는 핍진(진실에 가깝도록 표현하는 것)을 귀히 여긴다. 李東菴瑱詩曰: ‘滿空山翠滴人衣, 草綠池塘白鳥飛. 宿霧夜棲深樹在, 午風吹作雨霏霏.’ 동암 이진【이진은 『고려사(高麗史)』 권 109 에 전기가 실려 있다. 자는 온고(溫古)로 이제현의 부친이고, 시를 잘 지었다】의 「산에 살며 우연히 짓다[山居偶題]」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滿空山翠滴人衣 허공 가득한 산의 푸르름이 사람의 옷에 물들고 草綠池塘白鳥飛 초록 연못가에 흰 새가 날아든다. 宿霧夜栖深..
36. 홍간의 기러기 시 洪崖「孤雁行」, 極淸楚流麗, 詩曰: ‘五侯池館春風裏, 微波鱗鱗鴨頭水. 欄干十二繡戶深, 中有蓬萊三萬里. 彷徨杜若紫鴛鴦, 倚拍芙蓉金翡翠. 雙飛雙浴復雙棲, 綷羽雲衣恣遊戱. 君不見, 十年江海有孤雁, 舊侶微茫隔雲漢. 顧影低仰時一呼, 蘆花索莫風霜晩.’ 佔畢齋選入『靑丘風雅』, 評以爲似是自況, 許筠亦嘗稱似盛唐人作. 해석 洪崖「孤雁行」, 極淸楚流麗, 詩曰: ‘五侯池館春風裏, 微波鱗鱗鴨頭水. 欄干十二繡戶深, 中有蓬萊三萬里. 彷徨杜若紫鴛鴦, 倚拍芙蓉金翡翠. 雙飛雙浴復雙棲, 綷羽雲衣恣遊戱. 君不見, 十年江海有孤雁, 舊侶微茫隔雲漢. 顧影低仰時一呼, 蘆花索莫風霜晩.’ 홍애의 「외로운 기러기의 노래」는 매우 맑고 산뜻하며 유창하고 고우니 시는 다음과 같다. 五侯池館春風裏 현달한 관원의 연못가 집은 봄바람 ..
가을이 왔는데도 일하러 가야 하다니 『소화시평』 권상 35번은 홍만종이 자신의 12대 선조인 홍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紫氣橫空澗水流 상서로운 기운 하늘을 비끼고 시냇물 흐르니, 風烟千里似滄洲 천리의 좋은 경치 마치 창주(滄洲)인 듯. 石橋西畔南臺路 돌다리 서쪽 가 남대길 柱笏看山又一秋 홀든 채 산을 보니 또한 온통 가을이네. 「조조마상(早朝馬上)」이란 시는 출근길에 본 풍경과 마음을 꾸미지 않고 그대로 표현한 시다. 출근하는 길에 주변을 둘러보니 상서로운 기운이 하늘까지 닿고 곁의 시냇물은 졸졸 흐르며 안개까지 가득 끼어 이곳이 마치 신선들의 세상인 것만 같다. 그런데 자연은 어느덧 가을로 물들어 나를 하염없이 잡아끌지만 나는 공무를 보러 출근을 해야만 한다. 아~ 내 맘과 현실은 어찌 이다지도 어긋..
35. 가을이 왔는데 출근해야 하는 내 마음 어쩌랴 按許筠『四部藁』 「丙午紀行」曰: “天使朱太史之藩謂筠曰: ‘本國自新羅以至今詩歌最好者, 可逐一書來,’ 筠遂選四卷以呈, 太史覽畢, 招筠語曰: ‘子所選詩, 吾達夜燃燭看之, 孤雲詩似粗弱, 李仁老·洪侃最好.”云. 諱侃號洪崖, 於余十二代祖也. 麗朝皆尙東坡, 至於大比有三十三東坡之語. 獨洪崖先祖深得唐調, 擺脫宋人氣習, 其「早朝馬上」詩曰: ‘紫氣橫空澗水流, 風烟千里似滄洲. 石橋西畔南臺路, 柱笏看山又一秋.’ 格韻淸越, 不雜塵累. 해석 按許筠『四部藁』 「丙午紀行」曰: 허균의 『사부고』의 「병오기행」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天使朱太史之藩謂筠曰: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주지번(朱之蕃, 1546~1626): 서화에 뛰어났으며 만력 33년(1605)에 조선에 사신으로 ..
곽예, 태평성대와 나이듦을 시로 담다 『소화시평』 권상 34번엔 곽예(郭預)가 지은 두 편의 시가 소개되어 있다. 半鉤踈箔向層巓 엉성한 발을 반쯤 걷어 산꼭대기를 바라보니 萬壑松風動翠烟 수많은 골짜기의 솔바람이 푸른 이내를 일으키네. 午漏正閑公事少 정오라 참으로 한가하여 공무가 거의 없으니, 倚窓和睡聽鈞天 창에 기대어 평화롭게 졸며 천상의 음악을 듣누나. 「제직려(題直廬)」라는 시는 태평성대의 모습을 ‘균천(鈞天)’와 ‘공사소(公事少)’란 시어로 잘 드러냈다. ‘균천(鈞天)’을 통해 상제와 임금을 동일시하고 ‘공사소(公事少)’를 통해 자신의 게으른 모습을 등장시킴으로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묘사는 ‘일출이작 일입이식 경전이식 착정이음 제력하유우아재(日出而作 日入而息 耕田而食 鑿井而飮..
34. 태평성대를 시로 묘사하는 방법 郭密直預「題直廬」詩曰: ‘半鉤疎箔向層巓, 萬壑松風動翠烟. 午漏正閒公事少, 倚窓和睡聽鈞天.’ 富艶之中有閒曠意. 密直每遇雨, 持傘, 獨至龍化院池上賞蓮, 其詩曰: ‘賞蓮三度到三池, 翠盖紅粧似舊時. 惟有看花玉堂老, 風情不減鬢如絲.’ 其氣像疎蕩, 至今可想. 해석 郭密直預「題直廬」詩曰: ‘半鉤疎箔向層巓, 萬壑松風動翠烟. 午漏正閒公事少, 倚窓和睡聽鈞天.’ 밀직부사 곽예의 「숙직하는 관서에서 쓰다[題直廬]」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半鉤踈箔向層巓 엉성한 발을 반쯤 걷어 산꼭대기를 바라보니 萬壑松風動翠烟 수많은 골짜기의 솔바람이 푸른 이내를 일으키네. 午漏正閑公事少 정오라 참으로 한가하여 공무가 거의 없으니, 倚窓和睡聽鈞天 창에 기대어 평화롭게 졸며 천상의 음악을 듣누나. 富艶之中有閒..
요체시의 묘미가 담겨 있는 김지대의 한시 『소화시평』 권상 33번에 나온 「제유가사(題瑜伽寺)」라는 시는 요체시(拗體詩)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요체시란 시의 수사미를 위해 평측 자리를 뒤바꾸는 등 조탁에 대단히 신경을 쓴 시를 말한다. 寺在煙霞無事中 절은 짙은 안개 낀 텅빈 곳에 있고, 亂山滴翠秋光濃 어지러운 산에 푸른빛이 떨궈져 가을빛이 짙구나. 雲間絶磴六七里 구름 사이로 난 끊어진 돌 비탈 예닐곱 리오, 天末遙岑千萬峰 하늘 끝까지 닿을 듯한 아득한 봉우리는 천만 봉우리로구나. 茶罷松檐掛微月 차를 다 마시니 솔 처마엔 초승달 걸려 있고, 講闌風榻搖殘鐘 강 끝나니 바람 품은 책상엔 잔잔한 종소리 들려오네. 溪深應笑玉腰客 시내 깊어 응당 옥대 찬 나그네 비웃으리라. 欲洗未洗紅塵蹤 속세의 자취 씻으려 하나 ..
33. 사찰시로 세속의 욕망을 비웃은 김지대 金英憲之岱「題瑜伽寺」云: ‘寺在烟霞無事中, 亂山滴翠秋光濃. 雲間絶磴六七里, 天末遙岑千萬峰. 茶罷松檐掛微月, 講闌風榻搖殘鍾. 溪深應笑玉腰客, 欲洗未洗紅塵蹤.’ 與鄭學士「來蘇寺」詩同一句律. 해석 金英憲之岱「題瑜伽寺」云: ‘寺在烟霞無事中, 亂山滴翠秋光濃. 雲間絶磴六七里, 天末遙岑千萬峰. 茶罷松檐掛微月, 講闌風榻搖殘鍾. 溪深應笑玉腰客, 欲洗未洗紅塵蹤.’ 영헌 김지대의 「유가사에서 짓다[題瑜伽寺]」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寺在煙霞無事中 절은 짙은 안개 낀 텅빈 곳에 있고, 亂山滴翠秋光濃 어지러운 산에 푸른빛이 떨궈져 가을빛이 짙구나. 雲間絶磴六七里 구름 사이로 난 끊어진 돌 비탈 예닐곱 리오, 天末遙岑千萬峰 하늘 끝까지 닿을 듯한 아득한 봉우리는 천만 봉우리로구나. 茶..
32. 진화와 진온 형제의 시 陳梅湖澕, 賦詩敏速, 與李白雲齊名. 「詠柳」詩曰: ‘鳳城西畔萬條金, 勾引春愁作暝陰. 無限狂風吹不斷, 惹烟和雨到秋深.’ 流麗可詠. 其弟溫亦能詩, 「詠秋」詩曰: ‘銀砌微微着淡霜, 裌衣新護玉膚凉. 王孫不解悲秋賦, 只喜深閨夜漸長.’ 寫出富家豪意. 해석 陳梅湖澕, 賦詩敏速, 與李白雲齊名. 매호(梅湖) 진화(陳澕)는 시를 짓길 매우 빨리 했으니 이백운과 명성을 나란히 했다. 「詠柳」詩曰: ‘鳳城西畔萬條金, 勾引春愁作暝陰. 無限狂風吹不斷, 惹烟和雨到秋深.’ 「버들개지를 노래하며」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鳳城西畔萬條金 서울 서쪽 언덕의 뭇 가지들 勾引春愁作瞑陰 봄의 근심을 끌어들여[句引] 그늘 만들었네. 無限狂風吹不斷 무한한 미친 바람이 끊이지 않고 불어대 惹烟和雨到秋深 낀 안개와 온화한..
31. 이규보의 진정이 담긴 시 李白雲「宿峰城縣」詩一聯: ‘階竹困陰孫未長, 庭梅飽雨子初肥.’ 僧眞靜「次李居士」詩曰: ‘夜壑風寒松落子, 春庭雨過竹生孫.’ 蓋效李詩, 而猶類鶩也. 해석 李白雲「宿峰城縣」詩一聯: ‘階竹困陰孫未長, 庭梅飽雨子初肥.’ 이백운의 「봉성현에서 묵으며」라는 시의 한 연은 다음과 같다. 階竹困陰孫未長 계단의 대나무는 그늘에 휩싸여 죽순은 자라질 못하지만 庭梅飽雨子初肥 정원의 매화는 비에 푹 젖어 열매가 막 통통해졌지. 僧眞靜「次李居士」詩曰: ‘夜壑風寒松落子, 春庭雨過竹生孫.’ 스님 진정(眞靜)의 「이거사 시에 차운하며」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夜壑風寒松落子 밤 골짜기에 바람 차가우니 소나무는 자식을 떨구고 春庭雨過竹生孫 봄 뜰에 비 지나니 대나무는 손자를 낳았네. 蓋效李詩, 而猶類鶩也. ..
이규보의 ‘유어(游魚)’와 ‘문앵(聞鶯)’ 시의 이해 圉圉紅鱗沒復浮 비리비리한 붉은 물고기 물에 빠졌다가 다시 나타나니, 人言得意好優游 사람들은 ‘뜻을 얻어 잘 노닌다’고 말하네. 細思片隙無閑睱 곰곰이 생각하면 조금도 한가하지 못하니, 漁父方歸鷺又謀 어부가 곧 돌아가면 해오라기가 또 도모하려 하겠지. 『소화시평』 권상 30번의 첫 번째 시인 「유어(游魚)」는 물고기가 노니는 걸 보고 ‘한가하다[閒]’고 느끼던 당시의 통념을 깨는 ‘변안법(飜案法, 기존의 관념을 180도 뒤집음)’을 썼다. 그래서 작자는 물고기를 통해 자신을 투영함으로 제대로 된 본질은 모른 채 자기 식대로 재단하고 평가하여 ‘득의호유우(得意好優游)’라 말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公子王孫擁綺羅 공자와 왕손이 기생을 끼니 要憑嬌唱助歡多 ..
30. 시로 세태를 풍자한 이규보 白雲居士「游魚」詩曰: ‘圉圉紅鱗沒復浮, 人言得意好優游 細思片隙無閑睱, 漁父方歸鷺又謀.’ 「聞鶯」詩曰: ‘公子王孫擁綺羅, 要憑嬌唱助歡多. 東君亦解人間樂, 開了千花遣爾歌.’ 崔滋『補閒集』載此兩詩, 而評之曰: ‘鶯詩淺近, 魚詩雄深, 且有比興之趣, 此爲絶勝.’云. 余則以爲魚詩造理精深, 鶯詩運思纖巧, 各臻其體, 無甚上下, 而但格皆墮宋矣. 해석 白雲居士「游魚」詩曰: ‘圉圉紅鱗沒復浮, 人言得意好優游 細思片隙無閑睱, 漁父方歸鷺又謀.’ 백운거사의 「노니는 물고기[游魚]」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圉圉紅鱗沒復浮 비리비리한 붉은 물고기 물에 빠졌다가 다시 나타나니, 人言得意好優游 사람들은 ‘뜻을 얻어 잘 노닌다’고 말하네. 細思片隙無閑睱 곰곰이 생각하면 조금도 한가하지 못하니, 漁父方歸鷺又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