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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7. 함께 해서 행복한 사람들 펜션에 돌아와서 저녁엔 통닭을 시켜서 먹고 아이들은 일찍부터 놀 채비를 했다. 오늘은 노는 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았기에 아이들은 밤새도록 놀 수 있다. 그러니 나는 다른 방으로 와서 여행기도 정리하며 개인 시간을 보냈다. 그때 승빈이도 조금 놀다가 감기 기운 때문에 일찍 자야겠다며 방에 들어와 눕더라. 그래서 자연히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 음식은 사람을 모은다. 그래서 식구라는 말도 있다. 단재 식구들. 하지만 좋은 하는 부분이 같으니 먹을 때 싸우기도 한다. 나를 빗대어 너에게 말하다 그때 나눈 이야기는 ‘직면하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신에 대해 잘 알기 위해서는 자신을 좀 더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는데, 그걸 막는 게 ‘유리멘탈’이라 이야기 했다. 어떤 말에 쉽게 ..
6. 걷는 여행의 의미 펜션으로 돌아오는 길도 40분 정도를 걸어야 하는 길이다. 바람도 심하게 불고 무언가를 보고 난 다음에 걷는 것이라 힘이 제법 들었다. 다행히 비는 그쳤고 구름도 서서히 걷혀 가고 있다. ▲ 비는 그치고 서서히 해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민이와 태기와 함께 걸어오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걸을 땐 하나가 되고, 편함을 추구할 땐 혼자가 된다 이때 규빈이는 “학교 여행이 끝나자마자 연습을 하러 가야 하는 무리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니, 이쯤에서 택시를 타고 가는 게 어때요?”라고 제안해 온다. 규빈이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은 내일 집에 가면 바로 쉴 수 있지만, 규빈이는 예외였기에 충분히 이해되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몇 명의 아이들만 택시를 타고 갈 경우 다른..
5. 빗속여행의 낭만 밖에는 여전히 바람이 심하게 불고 비도 내리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할 때 아이들은 그냥 돌아가자고 하더라. 그래서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 아이들은 나름 최선을 다했으니 돌아가도 괜찮겠지’라고 정리하고 있었는데, 송라가 “채석강엔 꼭 가야 해요”라고 말했고, 초이쌤도 채석강은 5분 거리로 가까우니 가자고 말했다. 그래서 다시 우의를 입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었지만, 어차피 오늘은 비바람 속에서 여행할 각오로 나온 것이니 “채석강까지만 갔다 오자”고 했다. ▲ 바람에 모자가 자꾸 벗겨지기에 나름 안 벗겨지게 돌돌 말았는데 아이들이 보기에 웃겼나 보다. 왠지 구도자처럼 나왔다. 채석강은 돌 캐는 곳? 채석강彩石江은 지구가 어떤 식으로 형성되었는지 그 단초를 볼 수 있다. 켜켜이 쌓인..
4. 우의를 입고 칼국수 먹으러 왔어요 우의를 모두에게 주며 나간다고 하니, 모두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더욱이 국민안전처에서 ‘서해안 폭풍해일주의보 발표, 해안가 접근자제’라는 문자가 각자의 폰으로 온 후라 웅성거리는 소리는 더 커졌다. 아이들의 웅성거림을 들어보자. ▲ 세월호 사건 이후로 국민안전처가 신설되었다. 그곳에서 보내온 문자는 단재 아이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물론 나도~ 자신이 뜻이 어긋난 곳에 싹트는 여행의 묘미 “이런 날에 나갔다가 문제 생기는 거 아니 예요?” / “이런 날엔 그냥 안에 있어요.” / “비도 오고 바람도 장난 아닌데 뭐 하러 나가요?” / “전 비 오는 날엔 절대 나가지 않아요.” / “(여행 와서 비까지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돈 내고 와서 이게 뭐..
3. 함께 먹을 아침을 손수 만들다 오늘은 7시 30분에 기상했다. 계획을 세울 때 아침에 세 명으로 팀을 정해 아침을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다. A조는 준영, 규빈, 현세가 한 팀으로 볶음밥을, B팀은 승빈, 민석, 송라가 한 팀으로 계란말이와 김치찌개를, C팀은 지훈, 지민, 태기가 한 팀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최선을 다해 만들더라. ▲ 아침의 바닷가 풍경. 하늘이 잔뜩 흐려 있다. 비도 한 방울씩 내리고 있다. 손수 만든 음식을 남에게 대접한다는 것 8시부터 본격적으로 요리하기 시작했다. A팀은 재료를 모두 먹기에 편한 정도로 잘라야 했고 그걸 밥과 함께 볶아야 하니 당연히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규빈이가 진두지휘를 하고 야채를 칼로 잘랐으며 준영이와 현세는 가위로 야채를 자르고서 함께 볶..
2. 우린 트러블메이커가 아닌 이슈메이커 서울에서 격포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버스를 타고 부안 터미널에 와서 다시 시내버스나 시외버스를 이용해 격포로 가야 한다. 예전의 격포란 전주 가까운 곳에 있는 바다라는 의미가 있었지만, 지금의 격포는 서해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안도현 시인은 ‘모항母港을 아는 것은 변산의 똥구멍까지 속속들이 다 안다는 뜻이거든’이라고 시에 쓰기도 했을 정도다. 9시 20분 차를 타고 부안에 도착하니 12시 20분 정도 되었다. 3시간 만에 도착한 셈이다. 그곳에서 조금 걸어서 밥을 먹고 바로 격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40분 정도 달리니 격포 터미널에 도착하더라. 거기 있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 펜션에서 픽업을 온다고 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 부안에서 내..
1. 나의 역사가 스민 부안을 교사가 되어 다시 찾다 2학기가 시작되고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2학기부터 새롭게 합류한 학생은 두 명이다. 준영이와 태기가 바로 그들인데, 준영이는 단재학교에서 첫 번째 여행을 하는 셈이고 태기는 1학기 마무리 여행인 가평 여행을 함께 했기에 두 번째 여행을 하는 셈이다. 이번 여행엔 아쉽게도 이향이가 대입 수시 준비로 빠졌고, 상현이는 개인 사정으로 빠져 9명의 학생과 3명의 교사가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 고속터미널에서 출발한다. 1975년에 건설되었으니 40년이 흘렀다. 그 땐 어마어마한 규모였겠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하철을 타고 갈까, 자전거를 타고 갈까 8시 50분까지 고속터미널역 7번 출구 쪽에서 모이기로 했다. 지훈이와 지민이는 아직 지하철 타는 것이..
목차 1. 여는 글: 반복이 만든 여행, 반복이 만들 이야기 도화지에 어떤 그림을 그릴까? 그림을 그리려 하지만 막막하다 막막하지만 반복해서 선이라도 그어봐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은 선이라도 긋고자 하는 마음이다 2. 스펙터클한 시작과 기대 여러 도전에 성공했다고, 새로운 도전이 긴장되지 않는 건 아니다 걱정은 불안이 만든 신기루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과 애초 지킬 필요가 없는 무심함 늦는 이들이 항상 늦는 이유? 3. 시작부터 삐걱거리다 현세가 감쪽같이 사라지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가 제일 무섭다 4. 가까스로 달성군으로 출발하다 어그러진 상황이야말로 싱그러운 삶의 축복 특명: 자전거를 버스 짐칸에 실어라 5. 자전거 여행 시작도 하기 전에 문제가 발생하다 현풍터미널이 종점이 아닌게벼 준영이 ..
53. 닫는 글: 반복의 힘을 아는 그대, 사라지지 말아요 그런데 재밌는 점은 마음이 정해졌다 해도 무언가를 하기에 겁이 날 수도 있고, 버거울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공부가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 줄 모르겠어요’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반복적으로 선을 긋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아주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해 하는 것이다. 우린 그 때문에 낙동강에서 출발하여 서울까지 달리는 자전거 여행을 하게 되었다. 페달을 밟은 단순한 행위를 통해 ‘작은 행위를 반복하면 무엇이든 이루어진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니 말이다. ▲ 패달을 밟는 작은 행위가 대구에서 서울까지 달리게 만들었다. 반복적으로 페달을 굴려 완성한 여행으로, 삶을 살아내다 하지만 한 번..
52. 닫는 글: 반복할 수 있는 조건 2015년 10월 4일부터 10일까지 6박 7일간의 일정으로 떠났던 자전거 여행, 그리고 2015년 10월 24일에 쓰기 시작하여, 본격적으론 2016년 1월 3일부터 2월 18일까지 한 달 보름동안 썼던 자전거 여행기는 ‘반복적으로 선을 긋는 행위’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 애셔의 작품 [그림 그리는 손], 애셔의 작품은 기이한 형태를 띠고 있다. 기하학적인 순환인데, 이게 바로 반복의 느낌과 비슷하다. 반복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과연 낙동강을 따라 남한강까지 간다는 게 가능할까?’라는 걱정이 앞섰고, 여행기를 쓰기 전까지만 해도 ‘그 때의 기억을 어떻게 남길까?’라는 고민이 들었다. 그런데 자전거 여행도..
51. 개선장군처럼, 삶을 누린 사람처럼 살라 ▲ 양평 → 올림픽공원 세계평화의 문 / 35.27km 드디어 마지막 날 자전거 여행의 준비는 끝났다. 이제부턴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축하 팡파레를 들으며 우리의 최종목적지를 향해 신나게 달리면 된다. ▲ 비가 제법 많이 내리고 바람도 심상치 않다. 그럼에도 달려 간다. 고맙고도 듬직한 아이들! 빗 속 여행에 빠져들 각오가 되어 있나? 비든 눈이든, 제대로 즐길 각오로 떠나지 않으면 그런 것들은 방해물이 될 뿐이다. 어떻게 하면 비를 적게 맞을까, 어떻게 하면 바람을 피할까만 생각하다 보니, 오히려 정작 보아야 할 것 보지 못하고, 느껴야 할 것을 느끼지 못하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국토종단을 할 때 목포에서 무안까지 걸어가며 비를 쫄딱 맞고 갔는데, 오히려..
50. 후회하지 않기 위해 빗길 자전거 여행을 떠나다 ▲ 양평 → 올림픽공원 세계평화의 문 / 35.27km 쥐 죽은 듯 조용히 잠만 잤다. 오늘은 자전거 여행을 마무리 짓는 역사적인 날이지만, 어제 저녁의 일로 기쁨보단 깊은 어색한 침묵으로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새벽 5시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면서 가장 먼저 날씨가 어떤지가 궁금했다. 아침부터 비가 온다고 했는데 벌써 내리고 있는지, 라이딩 도중에 올 것인지, 그도 아니면 모두 끝난 다음에 올 것인지 그 순간만큼은 걱정과 기대가 교차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마지막 라이딩을 준비하다 그래서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열고 확인해 보니, 날씨가 잔뜩 찌푸려 있기만 할 뿐 아직 비는 내리지 않더라. 그러니 ‘서둘러 출발한다면, 비가 내리기 전에 도착할 지도 모..
49. 감정이 팔팔 끓기에 사람이다 ▲ 여주 → 양평 배로농원 / 58.04km 한참 달리다 보니 작년 도보여행 때 ‘남한강 홍보영상’을 찍었던 이포보를 지나서 달린다. 이미 시간은 3시가 넘었지만 아직 점심은 먹지 않았다. 그쯤 되니 아이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해진다. 점심을 먹고 가자니 펜션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지고, 펜션에 일찍 가서 저녁을 거하게 먹자니 지금 당장 배가 고프다. 그래서 결국 양평에서 점심을 먹고 가는 것으로 정했다. ▲ 도보여행의 추억이 있는 이포보를 지나서 달린다. 재욱이와 현세가 감정으로 엉키다 양평읍내로 들어가 식당을 찾아 헤맸다. 조금 헤매니 김밥천국처럼 많은 메뉴를 시킬 수 있는 음식점이 보여 그리로 들어갔다. 이미 시간은 4시 30분이 되었다. 점심치고는 늦은 점심이지만..
48. 사람이 꽃이 되는 순간과 저주가 되는 순간 ▲ 여주 → 양평 배로농원 / 58.04km 날씨가 정말 좋다. 청명한 가을 날씨는 왠지 나들이를 가고 싶게 하는데, 오늘이 정말 그랬다. 이런 날 맘껏 달릴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 완연한 가을 속으로 달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토요일 서울 하늘은 아침부터 흐림 그런데 여행 기간 중에 안 좋은 소식이 들렸다. 분명히 여행을 떠나기 전날에 날씨를 확인할 때만 해도 비 예보는 없었다. 그래서 안도하며 기뻐했던 것이다. 일기예보를 계속 확인한 이유는 비가 올 경우 무엇보다 아이들의 안전이 걱정이었고, 하루 동안 달려야 할 계획에도 차질이 생겨 전체 일정이 어긋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준규쌤이 계시는 지지학교는 8월에 자전거 여행을 갔었는데 태풍 고니로 많은 ..
47. 신륵사와 역사교육 ▲ 여주 → 양평 배로농원 / 58.04km 신륵사는 남한강변에 만들어진 고찰이다. 강 바로 옆에 있어서 산 속 깊은 곳에 있는 사찰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 절이 바로 남한강 옆에 있어서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절의 탑과 초고층 빌딩은 같다? 삼국시대에 들어오기 시작한 불교는 국교로 채택되어 백성들을 정신적으로 하나로 묶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사찰하면 불국사의 석가탑, 다보탑과 같이 높이 솟은 탑이 떠오른다. 탑stupa은 부처님의 사리를 넣은 무덤으로 사찰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탑은 사람이 살기 위한 건축물은 아니지만, 부처님의 사리를 안치하여 정신을 그대로 계승하고자 하는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삼국시대엔 이러한 탑의 의미가 더 클 수..
46. 선으로 이어지는 여행을 해야 한다 ▲ 여주 → 양평 배로농원 / 58.04km 이제 6일째 자전거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아침도 맛있게 먹었겠다, 재욱이 자전거도 고쳤겠다, 펑크패치용 본드도 샀겠다,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는 완벽한 출발이다. 여기에 날씨까지 화창하여 하늘이 더욱 높게 느껴지는 맑디맑은 가을날씨다. 예전에 임용시험을 준비할 때만 해도 드높아진 하늘을 보며 ‘언젠가 나도 가을을 만끽하며 즐길 날이 오겠지?’라는 생각으로 도서관에 있어야만 하는 나를 위로했었는데, 모르는 사이에 이미 그 꿈은 현실로 이루어져 있었다. ▲ 신륵사를 향해 여주 한복판을 달린다. ‘점과 점의 여행’과 ‘선의 여행’, 그 중에 ‘선의 여행’으로 여행을 할 때 목적지에 빨리 가기 위해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
45. 언어엔 정신이 담겨 있다 ▲ 여주 → 양평 배로농원 / 58.04km 오늘은 익숙한 길을 달리기도 하고 아무리 천천히 가도 5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라 여유 있게 시작하기로 했다. 아이들에겐 9시 30분까지 나오라고 했다. 어제 아침에 재욱이가 건의했던 것처럼 오늘부턴 선착순으로 점수를 주지 않고, 시간대별로 점수를 주기로 했다. 시간대별로 체크하니 민석이, 재욱이, 현세는 30분이 되기 전에 내려와서 출발할 준비를 하는데 준영이는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더라. 준영이는 20분 늦게 9시 50분이 되어서야 내려왔다. ▲ 준영이가 내려올 때까지 시간이 있어서 각자의 일을 하다가, 용돈기입장을 쓰기 시작했다. 용돈 미션, 잘 하는 사람은 여전히 잘하고 정작 해야 할 사람은 하지 않는다 자전거 ..
44. 사람이 자랄 때 필요한 것 ▲ 여주 → 양평 배로농원 / 58.04km 우리가 자라면서 ‘나는 비록 이렇게 살지만, 자식에게만은 그런 환경을 물러주지 말아야지’라는 바람을 갖게 마련이다. 그게 권위주의적인 가정환경일 수도 있고, 원하는 걸 맘껏 못하는 가난한 환경일 수도 있으며, 부부싸움이 연일 일어나는 전쟁터 같은 환경일 수도 있다. 어떤 것이든 현실적인 문제라고 느껴지면 그걸 가슴 속에 담아뒀다가 그와 같은 환경을 자식에겐 물려주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아이가 자랄 때 필요한 건, 넉넉함이 아닌 적당함이다 우리집도 예전엔 정말 가난해서 원하는 것을 하며 살 수는 없었다. 그러니 무언가를 욕망할 수도 없었으며,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엔 ‘내가 원하는 게 뭐지?’라며 헛갈릴 정도였다. 그런 환경을 ..
43. 누구나 자신만의 여행을 떠나야 한다 ▲ 여주 → 양평 배로농원 / 58.04km 6박7일 일정으로 떠난 여행이 어느덧 6일차에 접어들었다. 내일이면 목적지인 올림픽공원에 도착하고 때론 걱정으로, 때론 즐거움으로 달렸던 낙동강-한강 자전거여행은 끝이 난다. ▲ 어제 뜻하지 않게 야간 라이딩을 해야 했다. 이게 바로 여행의 묘미다. 여행이 일상이 된 시대에 여행을 떠나야 한다 흔히 여행은 배부른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곤 한다. 물론 예전처럼 한 마을에서 나서 거기서 쭉 자라다 옆 마을 처녀와 결혼하여 자식 낳고 살다가 그곳에서 생을 마치는 세상이 아닌, 공부를 위해서건 취직을 위해서건 어쩔 수 없이 마을을 떠나 타지로 나가야 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여행에 대한 이미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
42.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의 속뜻 ▲ 충주 → 여주 / 64.69km 민석이가 옆에서 바람을 넣어주며 달리니 그래도 꽤 오래 버틸 줄 알았다. 여러 군데 펑크가 나긴 했지만, 패치를 붙이긴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얼마 달리지 않아 멈추더라. 그러자 민석이가 바로 펌프를 꺼내 바람을 넣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달렸다, 멈췄다를 반복했는데 갈수록 바람 빠지는 시간이 단축되고 있었다. 처음엔 100m 정도 달렸는데, 80m, 50m로 줄어들더니, 급기야 바람이 아예 들어가지 않는 상황이 되더라. ▲ 민석이가 바람을 넣어주며 가지만, 결국 들어가지 않더라. 정말 난감하다. 마지막 방법까지 해보았으나 실패! 최악의 상황에 이르러서야 월요일 저녁에 갈았던 튜브가 생각나더라. 아무래도 지금 튜브는 여기저기 펑..
41. 위험이 닥칠 때 우린 하나가 된다 ▲ 충주 → 여주 / 64.69km 재욱이 자전거에 펑크가 났다는 얘기를 듣고 깊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바로 떠오른 대로 반창고를 붙이며 때우려 했던 것이다. 그도 그럴 듯이 시간적으로 여유도 있었고 부론면에만 가면 금방 해결될 거라 생각했기에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 펑크를 본드가 아닌 반창고로 때우고 있다. 이건 개그인가요? 현실인가요? 동병상련이란 따뜻한 마음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건 바보 같은 대처법이었다. 반창고를 붙인다는 게 바보 같다는 게 아니라, 자전거 도로 한 가운데서 본드가 없다고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는 게 바보 같다는 얘기다. 한강자전거길처럼 많은 사람들이 라이딩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여기도 틈틈이 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을 볼 ..
40. 섰다 생각할 때 넘어질까 두려워하라 ▲ 충주 → 여주 / 64.69km 부론면으로 향하는 길은 너무도 익숙한 길이다. 여긴 남한강의 절경을 감상하면서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도보여행 땐 아침 안개까지 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으며, 우린 꿈 속 세계를 탐험하는 듯 걸었기에 기억에 많이 남았다. ▲ 같은 길을 다닌다. 비포장도로에서 로드 자전거를 끌고 간 사내와 타고 간 사내의 이야기 작년엔 도로공사가 한참 진행되고 있어서 지나가지 못하는 곳이 많았는데, 그새 공사가 완료되었더라. 그래서 우리는 포장까지 완벽하게 된 도로를 거침없이 달렸다. 하지만 끝부분은 여전히 공사 중이었다. 아스팔트로 포장되지 않은 건 당연하고 심지어 콘크리트를 잘게 쪼갠 돌까지 쌓여 있었다. 준영이와 나는 바퀴가 ..
39. 추억이 현실이 되는 순간 ▲ 충주 → 여주 / 64.69km 도보여행 때 편지미션을 했던 곳에서 잠시 쉬었다. 시간이 넉넉하니 서둘러야 할 이유도, 마음을 조급하게 먹어야 할 이유도 없어서 좋다. 자전거 여행 중 처음으로 완벽한 여유로움을 누려본다. ▲ 자전거 여행 촬영은 이렇게 캠코더를 연결하고 진행했다. 짐받이의 안부를 묻다. “왜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아무 말도 안 했던 거니?” 그때 민석이가 짐받이가 많이 풀어졌다며, 수리공구를 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수리공구를 줬더니 아무리 조여도 조여지지 않는다며, 나를 찾는다. 가서 보니, 짐받이가 이상할 정도로 밑으로 많이 쏠려 있는 상태였다. 아래로 쏠린 상태에서 계속 달렸기 때문인지, 볼트가 조여지는 구멍의 홈들이 패여서 더 이상 조여지지 않더라..
38. 자전거 여행 중에 생명존중사상을 발휘하다 ▲ 충주 → 여주 / 64.69km 조금만 달리면 익숙한 길이 나올 거라 기대하며 달리는데 꽤 달렸음에도 낯선 길만 계속 나오고 있었다. 사마귀 한 마리에 멈춰선 네 명의 인간들 그제야 생각해보니, 작년 도보여행 땐 충주에 들어선 이후엔 남한강을 따라 걸어간 것이 아니라, 찜질방에 가기 위해 산척면으로 빠졌으며 거기서 충주댐까지는 531번 지방도를 타고 걸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당연히 지금 달리는 남한강 길이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여긴 강변을 따라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평지를 달리는 기분으로 편하게 달리면 된다. 2시간 30분 동안 달렸는데, 아이들이 갑자기 멈춰 섰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달리다가 사마귀를 밟을 뻔해서 멈춘..
37. 두 가지 앎에 대해 ▲ 충주 → 여주 / 64.69km 아무래도 처음 하는 일은 어설프게 마련이다. 현세가 리더이기에 호기롭게 스마트폰을 빼서 지도 검색을 하고 지시해준 경로를 따라 간다. 그런데 일반적인 자전거 도로와는 다르게 충북선 기찻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아무리 처음 지도를 보는 것이라도 해도 시작부터 헤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전거 도로를 찾지 못했고, 급기야 다른 사람의 농장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자 현세도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고 팀원들도 어이없어 하는 표정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이미 리더를 해보며 누군가를 이끈다는 어려움을 경험했던 지라, 팀원 누구 하나 섣불리 화를 내거나 불쾌한 표정을 짓진 않았다. 이에 현세도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 지도를 보..
36. 리더가 되어보면 자신이 보인다 ▲ 충주 → 여주 / 64.69km 이제 리더 미션도 마지막 대상만을 남겨두고 있다. 영화팀의 장시간 막내인 오현세가 오늘 리더 미션을 수행한다. 리더 오현세, 자신이 직접 일을 하며 현실감각을 되찾다 현세는 단재학교에 들어온 지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영화팀에선 막내로 남아 있다. 물론 중간에 상현이가 들어오면서 막내 딱지를 떼긴 했지만, 그렇다고 현세가 형 노릇을 한 것은 아니었다. 현세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지도 않았고, 바로 위로 민석이와 재욱이 같은 든든한 형들이 있어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되었으니 말이다. 더욱이 이번 여행엔 상현이가 빠지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막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현세는 어찌 보면 이제 막 세상에 첫 발을 내디딘 어린이..
35. 리더의 자질과 역지사지 ▲ 충주 → 여주 / 64.69km 이제 5일째 여행을 시작한다. 리더라는 과중한 임무를 아이들에게 부여함으로 어떤 부분이 나아졌는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민석이를 시작으로, 재욱이를 거쳐 어젠 준영이가 리더역할을 맡아 아이들을 데리고 이화령과 소조령을 넘으며 충주까지 무사히 왔다. 그 바통을 이어받아 오늘은 현세가 리더를 맡게 된다. 양준영의 리더십, 이끄는 능력은 충분 준영이는 단재학교에 온지 2달 밖에 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1년 이상을 함께 하여 이미 친한 상태이니, 새로 온 사람은 아무래도 끼기엔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특유의 붙임성과 친구들이 말하면 잘 웃는 성격으로 금방 친해졌으며 자전거 여행 예행연습을 할 때도 굳은 일..
34. 경쟁을 비판하면서도 경쟁을 부추기다 ▲ 충주 → 여주 / 64.69km 기상미션은 9시까지 하기로 했다. 오늘 달려야 할 거리도 그렇게 많지 않고, 더욱이 작년에 왔던 길을 달리는지라 걱정보단 반가운 마음이 앞서기에 여유 있게 출발하기로 했다. 그래서 기상미션 시간을 최대한 뒤로 미뤘고 8시 30분부터 체크를 하겠다고 한 것이다. 거실에서 눈을 떠 보니 7시쯤 되었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여유를 만끽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7시 20분에 우르르 일어나더니 목욕탕으로 가더라. 평소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찜질방은 아무래도 푹 잘 수 있는 환경은 아니기에 그랬을 거다. 그래서 나도 목욕탕에 가서 살짝 샤워를 하고 출발할 준비를 마친 후 입구 쪽에서 기다렸다. 일찍 일어났기 때문에 긴 시간동안 목욕..
33. 찜질방과 여행 ▲ 충주 → 여주 / 64.69km 어느덧 자전거 여행을 떠난 지 4일이 지나고 5일째에 접어들었다. 6박7일의 계획으로 여행을 떠났으니, 이제 후반부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오늘부터는 작년 도보여행 때 걸었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익숙한 길을 간다는 안도감이 든다. 그러고 보면 새로운 길은 설렘을 주기도 하지만 그 설렘은 여차하는 순간 두려움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그에 반해 아는 길은 자칫 지루할 수 있지만 그건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여행은 어떤 설렘으로 시작하여 점차 익숙해져 가는 과정으로, 두려움에서 시작하여 안정감으로 변해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찜질방의 두 가지 형태 충주의 찜질방은 우리가 흔히 아는 그런 찜질방이다. 빌딩의 한 층은 목욕..
32. 작년 도보여행의 종착지인 충주에 도착하다 ▲ 10월 7일(수) 문경새재게스트하우스 → 충주시 소조령에 오른 지 20분 만에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이화령처럼 정상에 휴게실이 있고 전망대가 있진 않지만, 정상이라고 적힌 팻말이 보이자 절로 탄성이 흘러 나왔다. 이렇게 순식간에 어려운 고비들이 끝나니 기분이 좋았다. 지금 시간은 12시 53분밖에 되지 않았다. 이젠 거의 평지만 달리면 되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페달을 밟아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이화령의 내리막길을 달릴 때 캠코더로 찍고 싶었는데,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가 날 거 같아 찍지 못했다. 하지만 이곳에선 찍어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다운힐의 짜릿한 순간을 남기지 못하면 후회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캠코더를 끈으로 동여 매 바람 저..
31. 교육이란 자기를 표현하도록 하는 것 ▲ 10월 7일(수) 문경새재게스트하우스 → 충주시 소조령은 이화령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 할만하다. 이화령을 넘으며 ‘그렇게까지 힘들진 않은데’라는 것을 느꼈으니, 소조령을 오를 땐 마음이 가벼웠다. 보통은 한강을 따라 낙동강까지 달리는 코스를 많이 가니, 소조령을 먼저 넘고 이화령을 넘게 된다. 소조령을 넘으며 ‘역시 힘들구나’라는 것을 느낀 후에 더 높은 이화령을 올라야 하니 절로 기운이 팽길 테지만, 우린 반대 코스로 소조령을 가는 것이니 기운이 샘솟았다. 이때는 아이들도 이화령을 넘을 때와 다르게 한결 여유로워진 듯 하더라. 이화령을 오를 때 민석이와 준영이는 잘 달리는 편이었지만, 재욱이와 현세는 많이 힘들어 했다. 하지만 소조령을 넘을 땐 재욱이의 장..
30. 이화령에서 붙인 ‘부모님께 쓰는 영상편지’ ▲ 10월 7일(수) 문경새재게스트하우스 → 충주시 나에게 만약 이런 미션이 주어졌다면, 카메라 구도는 어떻게 할지, 어떤 말을 할지 고민을 할 것이다. 그만큼 자연스럽게 해도 되는 이야기도 어떻게든 생각을 다듬어야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바로 달려들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그 영상은 한결 긴장되고 무거운 영상이 될 것은 뻔하다. 그건 그냥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지 못하는 나의 심리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꾸미지 않음에, 과장되지 않음에, 진실이 담겨진 영상편지 하지만 아이들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놀이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솔직히 진지하지 않다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렇게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그걸 그대로 보..
29. 미션명: 부모님께 영상편지 쓰기 ▲ 10월 7일(수) 문경새재게스트하우스 → 충주시 이화령 정상에서 미션을 하고 싶었다. 이화령은 한민족의 대줄기인 백두대간 중 한 곳이기 때문에, 그 영험한 기운을 받아 할 수 있는 미션을 구상하고 있었다. ▲ 미션을 하기 위해 표지석에 모였다. ‘교통의 요지=소통=편지’의 연쇄작용 문경새재는 영남과 한양을 잇는 주요 길목으로 영남선비들이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선 이 고개를 넘어야 했었다. 그런데 근대 이후 도로가 발달할 때 그나마 낮은 산이었던 이화령에 길을 만들어 문경새재보다 더 사람들이 자주 다니게 되었다고 하더라. 그런 내용을 알고 보니, 소통이라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 전에 어머님들에게 “이번 여행 중 아이들이 했으면 하..
28. 불안을 투사하는 사람들을 멀리하라 ▲ 10월 7일(수) 문경새재게스트하우스 → 충주시 드디어 남한강으로 건너가는 날이다. 민족의 젓줄인 낙동강을 지나 한강의 기적을 만든 남한강으로 들어서는 기념비적인 날이다. 그런데 남한강으로 가기 위해서는 백두대간 중 하나인 이화령을 넘어가야 한다. 그래서 마음을 단디 먹고 출발했다. 문경온천, 낮과 밤의 분위기가 180도 다른 곳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이화령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제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불야성을 연출했던 문경온천 부근을 지나가야 한다. 어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갑자기 환한 불빛이 비춰서 별세계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아침에 그곳을 지나니 전혀 다른 곳인 줄 알았다. 화려한 무대의 앞과 어둡고 초라한 뒤의 차이처럼 쇠락한 마을의 분위기가 물씬..
27. 리더십에도 성실함이 필요하다 ▲ 10월 7일(수) 문경새재게스트하우스 → 충주시 리더미션은 선배와 통화하며 갑자기 하게 되었는데, 이 미션이야말로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는 생각이 든다. 한 개인에게 전체를 이끌어야 할 임무를 주면서 얼마나 책임감이 있는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미션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미션이지만, 이 미션만큼은 철저히 한 개인에게 책임이 집중되기에 당사자도 긴장할 수밖에 없고, 팀원들도 노력할 수밖에 없다. ▲ 저 앞에 문경새재가 보인다. 황금들녘을 지나 산으로 간다. 리더 재욱이의 리더십, 생색내지 않는 자연스러움 어제의 리더는 재욱이였다. 아무래도 처음으로 리더를 해본 것이기에 완벽할 수도, 만족스러울 수도 없다. 그런 활동들이 계기가 되어 점차 리더로서의..
26. ‘없음’으로써 ‘쓰임’으로 삼는 지혜 ▲ 10월 7일(수) 문경새재게스트하우스 → 충주시 일요일에 낙동강 자전거 길에 도착했을 때,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 규칙을 정했다. 사용할 수 있는 건 음악을 듣거나, 지도를 찾는 것뿐이며 한 명이라도 다른 용도로 사용할 경우 스마트폰을 압수하겠다고 한 것이다. 원래는 여행 시작부터 스마트폰을 압수할 생각이었는데, 민석이가 “지도도 봐야 하고, 쓸 데가 많은데 그건 너무한 거 같아요”라고 이의제기를 해서 그와 같이 규칙을 정한 것이다. ▲ 게스트하우스 마당에서 보면 문경새재가 보인다. 스마트폰이 끊임없이 눈과 의식을 지배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전화도 하고, 인터넷도 하게 되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게 더 이상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게..
25. 삶이 여행이 되는 흐름 속에서 ▲ 10월 7일(수) 문경새재게스트하우스 → 충주시 총 7일간의 여행 중 어느덧 4일째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이화령을 넘어 충주로 넘어간다. 남한강은 작년에 도보여행을 했던 곳이기에 마음이 절로 편해진다. 기상미션의 변화 오늘은 오랜만에 기상미션을 한다. 월요일엔 모두 늦게 나오는 바람에 하는 의미가 없었고 어젠 캠코더를 찾으러 가느라 하지 못했다. 어제 저녁에 아이들에게 “내일은 7시 40분부터 8시까지 순차적으로 기상미션을 할 거야. 그리고 8시가 넘어서 나오면 5분 당 -20점씩의 벌점도 받게 되니, 아침에 신경 써서 나와야 해”라고 말하며 기상미션을 한다는 것을 알렸다. 7시 20분부터 거실 쇼파에 앉아 기다린다. 그랬더니 현세는 7시 30분에 나왔고 민석이..
24. 자전거 여행을 하는 이유 ▲ 10월 6일(화) 상주시 → 문경새재 / 62.04KM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다. 아직도 29.21km나 남아 있다. 문경새재 근처에는 오르막길이 여러 군데 있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그 길을 달려야 하니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 걱정이 된다. 그런데 막상 달려보니 한 번 경사가 급한 오르막길이 있었을 뿐 그렇게까지 힘든 길은 아니더라. 그게 정말 다행이었다. ▲ 어둠이 서서히 깔리고 있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함께 간 동지들 여기 자전거 길은 민가를 관통하여 가기도 하고 국군체육부대 앞을 질러가기도 했다. 국군체육부대에선 ‘세계군인체육’ 대회를 하고 있는 중이라 경비가 나름 삼엄하더라. 완벽하게 어둠이 대지에 내려앉았다. 자전거 플래시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안 ..
23. 자전거 여행을 영화팀의 집단지성 ▲ 10월 6일(화) 상주시 → 문경새재 / 62.04KM 상주박물관에서 자전거 도로로 가기 위해서는 낮은 언덕을 넘어야 한다. 경사가 급하기 때문에 오를 때 꽤나 애를 먹었다. 그래도 조금만 끌고 올라가니 바로 정상에 도착하더라. 경천대 내리막길에서의 사고 곧바로 펼쳐지는 내리막길은 자전거 길을 위해 만들어졌다기보다 산책길을 자전거 도로로 포장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경사가 매우 급하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여기까지 온 우리들은 당연히 브레이크가 잘 들 거라 생각하며 그냥 타고 내려간다. 나도 처음엔 뭣도 모르고 타고 내려가다가 가속도가 순식간에 붙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내려서 끌고 갔다. 조금 내려가니 모래가 쌓인 곳에 재욱이가 앉아 있더라. 무슨 일인가..
22. 표 안에 갇힌 교사가 학생을 표 안에 가둔다 ▲ 10월 6일(화) 상주시 → 문경새재 / 62.04KM 한 시간 정도를 달리니 상주박물관이 보인다. 이미 박물관 안엔 초등학생들이 단체 견학을 하고 있었고, 박물관 앞산엔 어떤 공사를 하는지 포크레인이 브레이커로 돌을 뚫고 있어서 시끄러웠다. 상주박물관 스피드 퀴즈대회의 룰 이번엔 ‘준영&현세’가 한 팀, ‘재욱&민석’이가 한 팀이다. 이곳에서 해야 할 미션은 퀴즈 대회다. 작년 명성황후 생가에서 이미 퀴즈대회를 했었는데, 그 때는 함께 공부를 한 후 내가 낸 문제를 팀을 정해 맞히는 식이었다. 그건 이미 해본 방식이기에, 이번에는 좀 다르게 진행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엔 ‘1. 두 명씩 한 팀을 구성한다. / 2. 박물관에 들어가 20분 동안 공..
21. 여행의 이유와 안 하려는 심리에 대해 ▲ 10월 6일(화) 상주시 → 문경새재 / 62.04KM 캠코더를 찾고, 자전거를 고치고, 아침밥까지 먹고 출발하려다 보니, 시간이 무한정 지체되었다. 벌써 11시 30분이 훌쩍 지나버렸다. 오늘은 상주박물관에 들러 미션을 하고 문경새재게스트하우스까지 63km를 달려야 한다. 어제의 일이 없었다면 한결 여유로웠을 텐데, 맘이 바쁘다. ▲ 문경새재로 바로 가면 빠른데, 우린 박물관에 들러야 하기에 10km를 더 달려야 한다. ‘계획대로 된다’는 착각을 깨는 게, 여행의 이유 그래서 후회하느냐고?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행이란 어찌 보면 동섭쌤의 “배움이란 것은 배우려 생각했던 것 이외의 것을 배우는 것, 또는 그 이상의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라는 말..
20. 해결책이 아닌 문제에 머물라 ▲ 10월 6일(화) 상주시 → 문경새재 / 62.04KM 오늘의 리더는 방재욱이다. 2014년 2학기부터 연을 맺어 함께 생활하고 있다. 학교에 열심히 다니던 녀석은, 어떤 바람이 불었는지 하루 이틀 빠지게 되더니, 급기야 나가는 날보다 나가지 않는 날이 더 많아졌다. 재욱이 마음에서 어떤 심적인 변화가 생긴 것이지만, 이게 어른들의 시각으로 보기엔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만 판독되었을 뿐이다. 리더 방재욱, 한 땐 무언지 모를 상황에 갇혀 있던 아이로 그래서 단재학교에 왔음에도, 마음을 잡지 못하고 나오는 둥 마는 둥 하며 그렇게 2학기를 보냈다. 그때 그나마 남한강 도보여행에 함께 간 것이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였던 셈이다. 남한강 도보여행에서 재욱이가 보여준 모..
18. 보고 싶은 걸 보고, 믿고 싶은 걸 믿는다 ▲ 어제 왔던 길을 그대로 달려 간다. 이렇게 경사가 급한 길이었나? 전혀 다른 길 같다. 잃어버린 캠코더를 찾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다. 열심히 페달을 밟기에 더워질 만 한데도, 오히려 춥기만 하다. 안개가 껴서 앞도 잘 보이지 않는다. 만약을 위한 대책을 생각하다 캠코더를 찾으러 가지만 당연히 걱정부터 앞선다. 어제 캠코더가 사라졌을 때만 해도 아예 못 찾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땐 떨어질 때 세게 부딪혀 캠코더가 고장 나면 어쩌나 걱정했을 뿐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두 번이나 찾아봤는데도 찾질 못했고 그래서 내가 다시 찾아봤는데도 찾을 수가 없자, 걱정이 물밀 듯 밀려왔다. 그러니 아침에 간다 해도 꼭 찾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캠코더를 ..
17. ‘아는 게 힘’이란 말이 지닌 함정 ▲ 10월 6일(화) 상주시 → 문경새재 / 62.04KM 도시에 있는 찜질방은 늘 24시간을 하지만, 이런 외진 곳에 있는 찜질방은 거의 10시가 되면 문을 닫는다. 그래서 계획을 짤 때 묵을 수 있는 곳인지 물어보니, “사람이 온다고 하면 잘 수는 있는데, 전날에 다시 한 번 전화주세요”라고 하더라. 황토찜질방, 24시 찜질방보다 환경이 열악하다 그래서 어제 전화를 해보니, “잠을 잘 수는 있는데, 화요일은 찜질방 휴무일이라 7시에는 나가야 합니다”라고 말해주시더라. 너무 이른 시간이긴 해도, 다른 선택지도 없었고 차라리 일찍 출발하여 게스트하우스에 빨리 도착하여 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거기에서 자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어제 뜻밖의 일로 지칠 대..
16. 예상치 못한 일을 만나거든, 아즘찮다고 전해라 ▲ 10월 5일(월) 대구 달성군 하빈면 → 상주시 / 88.06KM 얼마나 달렸을까? 현세가 옆으로 오더니 말하더라. “건빵쌤 앞바퀴까지 펑크가 났어요” 다섯 번째 불행이다. 거기에 덧붙여 민석이도 옆에 오더니, “쌤 제 자전거도 서서히 바람이 빠지는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드는 데요”라고 말한다. 그래서 확인해 보니, 조금 바람이 빠지긴 했지만 충분히 숙소까지는 달릴 수 있을 정도였다. 현세 앞바퀴의 펑크를 때우기 위해 이미 늦은 시간임에도 모두 멈춰야만 했다. 그쯤 되니 모두 넋이 나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스마트폰 플래시 불빛에 의존하여 어떻게든 때워보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쉽지가 않았다. 그때 진짜 문제가 뭔지를 알게 됐다. 바로 도로변에 있던..
15. 이쯤 되면 신이 우리를 시험하는 거라고 해야지요 ▲ 10월 5일(월) 대구 달성군 하빈면 → 상주시 / 88.06KM 불행은 겹쳐서 찾아온다고, 그게 시작일 뿐이었다. 그저 현세 자전거 뒷바퀴의 펑크만 잘 때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자리를 옮기고 나니 여러 군데서 동시다발적으로 문제가 발생했으니 말이다. ‘너희들이 어느 정도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보자꾸나?’라고 신이 놀리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그만큼 그땐 되게 민감해져 있었고, 그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겨웠다. ▲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영상의 한 장면. 어느덧 해가 저물어 플래시 불빛에 의존해야 한다. 전염된 펑크와 사라진 캠코더 분황1교 쪽에서 갓길로 내려와 일반도로에 진입하니 가로등이 켜져 있더라. 그곳이라면 수리하기 편할..
14. 돌발 상황조차 즐길 수 있는 아이들의 넉넉함 ▲ 10월 5일(월) 대구 달성군 하빈면 → 상주시 / 88.06KM 한치 앞도 모르지만, 나아갈 때가 있다. 아마도 삶이란 바로 그런 걸 거다. 하지만 사람인 이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측하고 싶어 하고 예상하고 싶어 한다. 확률학을 발달시키고, 심리학을 발달시키는 기저에는 바로 미지未知의 영역을 지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인간의 문명이란 것은 자연 상태로 있을 때보다 예측 가능하도록 바꾸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천재天災를 통제하고 인재人災를 최소화하는 노력이 바로 문명 발달의 척도인 것이다. 여행은 모르는 상황 속을 받아들이게 한다 하지만 아무리 상황을 확률에 의해 예측할 수 있고 대처할 수 ..
13. 갈등상황에 대응하는 방식 ▲ 10월 5일(월) 대구 달성군 하빈면 → 상주시 / 88.06KM 10시가 넘어 본격적인 출발했다. 아직도 81.53km를 달려야 하니, 부지런히 서둘러야 한다. 가는 길에 인증센터가 나올 때마다 아이들은 자전거수첩에 인증도장을 찍었고, 칠곡보와 구미공단을 거치며 맹렬히 달렸다. ▲ 칠곡보에서 인증을 하고 잠시 쉬었다. 자전거 여행 중 첫 갈등상황 발생 그런데 그 때 감정이 부딪치는 상황이 발생했다. 나름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리더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던 민석이와 웃음도 많고 아이들과 금세 친해진 준영이가 부딪힌 것이다. 갑자기 민석이 목소리가 높아지더니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며 소리치기 시작했고, 이에 질세라 준영이도 맞받아 화를 내기 시작했다. 육박전까지는 가지..
12. 부담스런 상황에 대응하는 방식 ▲ 10월 5일(월) 대구 달성군 하빈면 → 상주시 / 88.06KM 퀴즈를 통해 ‘사육신’에 대한 역사적인 내용을 살펴봤다. 물론 퀴즈라는 것이 토막지식을 묻는 것이기에, 아이들이 토막지식을 어떤 내용으로 스토리텔링하느냐가 ‘영화제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 아이들이 함꼐 모여 속닥속닥 얘기를 하고 있다. 사육신 영화 만들기, 사실물 & 창작물 드디어 본래 하려던 미션인 ‘사육신 소재로 영화 만들기’를 하게 되었다. 조건은 첫째 15초~30초 분량의 영화, 둘째 찍어 놓은 영상 소스를 나중에 학교에서 편집할 수 있는 시간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영화를 직접 만들어본 경험이 많지 않으니 황당한 미션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창작품이라는 것..
11. 급조된 사육신 퀴즈와 아이들의 명답 ▲ 10월 5일(월) 대구 달성군 하빈면 → 상주시 / 88.06KM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미션이 시작된다. 미션을 하기 위해 들려야 할 곳은 ‘육신사’다. 사육신묘는 서울 노량진에 있지만, 대구엔 그들을 기리는 사당이 마련되어 있다. ▲ 육신사를 향해 간다. 미션 장소를 정하는 기준 2009년에 홀로 국토종단을 했었다. 그땐 목포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걸어가는 것이 목표였다. 4주 정도를 걸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고 좋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끝나고 나니 한 가지가 아쉽더라. 그건 다름 아닌, 시작점과 끝점만 정해져 있다 보니, 중간에 들르는 곳들은 그저 끝점으로 가기 위해 거쳐 가는 길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간 중간 거치는 곳 중 가볼만한 곳이 있었..
10. ‘돼지엄마’와 비즈니스식 교육, 그 너머 ▲ 10월 5일(월) 대구 달성군 하빈면 → 상주시 / 88.06KM 어찌 보면 그 말은 곧 가장 기본적인 얘기라 할 수 있는 ‘배움(교육)은 시간상의 흐름으로 보아야 한다’를 다시 확인 시켜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교육을 비즈니스의 논리로 바라보다 하지만 이런 아주 당연한 이야기를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아래에 인용한 글을 읽어보면 왜 그러한지 명확해진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 곧바로 판정을 내려주기 때문에 비즈니스는 재미있습니다. 즉, 옳은 일을 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 성공했기 때문에 옳은 것이죠. 그래서 비즈니스 세계에서 투자부터 그 성패 판정까지의 시간은 가능한 한 짧을 필요가 있습니다. 어쨌든 ‘시간은 돈’이니까. 시간은 돈이라는..
9. 사람의 성장은 긴 안목으로 봐야한다 ▲ 10월 5일(월) 대구 달성군 하빈면 → 상주시 / 88.06KM 어제 숙소에 들어와 인터뷰를 끝내고 나니 9시 30분쯤 되었다. 아이들은 대충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티비를 보며 장난을 치면서 놀고 있다. 어찌나 시끄럽게 떠들며 놀던지, 내가 다 긴장될 정도였다. 그나마 여긴 한적한 곳이라 숙박객이 별로 없어서 다행이다. 아이들에겐 11시엔 모두 다 잠을 자야 한다고 말했다. ▲ 현세는 어제 너무 지친 나머지, 대충 로프를 풀다가 자전거를 놓는 바람에 로프가 뒷바퀴에 돌돌 감겼다. 푸는 데 한참 걸렸다. 전체 지각이 만든 힘 빠짐 아침마다 기상미션을 하고 있다. 시간을 정해두고 그 시간이 되기 전에 나오는 순서에 따라 점수를 주는 것이다. 남한강 도보여행 땐..
8. 심하게 다치지만 않는다면 괜찮다 ▲ 10월 4일(일) 현풍터미널 → 대구 달성군 하빈면 / 36.05KM 오늘은 36Km만 달리면 되지만, 아무래도 늦게 출발한 만큼 서둘러야 한다. 그런데 현세는 자꾸 뒤처지더라. 엄청 힘이 드는 지 말수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오늘은 별도의 리더가 정해져 있지 않음에도 민석이가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찾으며 길을 안내해줘서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찜질방으로 가기 위해서는 자전거 도로를 타다가 국도를 달려야 한다. 문제는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다는 것과, 국도엔 차량 통행량이 많을뿐더러 차들의 속도도 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곳에서 여차하면 쥐포가 되기 십상이겠더라. 하지만 국도를 6.3Km를 달려야 찜질방에 갈 수 있기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안전에..
7. 가을볕을 한껏 흡입하며 낙동강 자전거 길을 달리다 ▲ 10월 4일(일) 현풍터미널 → 대구 달성군 하빈면 / 36.05KM 이제 본격적으로 출발하면 된다. 그래도 무분별하게 속도 경쟁을 하거나, 대열을 이탈하여 달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순서를 정했다. ‘현세-민석-준영-재욱’이의 순서로 정한 것이다. ▲ 하늘은 높고도 파랗다. 자전거 타기 좋은 날씨다. 현세를 맨 앞에서 달리게 한 이유 민석이와 준영이, 재욱이는 기초 체력이 되기 때문에 달리는 데에 문제는 없다. 하지만 현세는 체력이 좋지 않아 연습으로 달렸던 3번 내내 뒤처졌다. 근데 솔직히 체력이 안 좋다기보다 자전거 타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에 뒤처진다고 보아야 맞다. 왜냐하면 작년 도보여행 때는 그 누구보다도 잘 걸었고, 한 번도 뒤처진 적..
6. 미션 공지, 그리고 아이들의 재치 드디어 우여곡절 끝에 모두 낙동강 자전거 길에 도착했다. 이제야 본격적으로 달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나 또한 한시름 놓여진다. 그곳에서 본격적인 출발을 알리고, 자전거 여행 동안에 아이들이 진행하게 될 미션을 고지했다. ▲ 드디어 낙동강 자전거 길에 도착했다. 이제 시작일 뿐인데, 맘이 놓이는 느낌이다. 개인 돈을 관리하라 첫째는 ‘용돈 미션’이다. 7일간의 여행 중에 쓸 수 있는 돈(2만1천원)을 주고 7일 동안 그 돈을 0원에 가깝게 써야 한다. 0원에 가장 가까운 사람 순으로 등수가 정해지고 상점을 받으며, 2만 1천원 이상을 써서 -원이 되면 벌점을 받게 된다. 이 미션에서 상점을 받기 위해서는 첫째 자신이 얼마의 돈을 쓰고 있는지 체크할 수 있어야 하며,..
5. 자전거 여행 시작도 하기 전에 문제가 발생하다 ▲ 10월 4일(일) 현풍터미널 → 대구 달성군 하빈면 / 36.05KM 3시간 30분을 달려 현풍터미널에 도착했다. 그곳이 종점인 줄 알았는데 버스는 그곳을 거쳐 의령까지 가는 것이더라. 그래서 내려 줄 사람만 내려주고 바로 출발하는 형식이었다. 현풍터미널이 종점이 아닌게벼 터미널까지 들어가지 않고 정류장 같은 곳에서 “현풍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라는 기사님의 말을 들으니 우리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전혀 준비하고 있지 않다가 그 말을 듣고서야 헐레벌떡 내릴 준비를 하게 되었으니 ‘준비태세’라도 걸린 양 정신이 없었다. 어찌 되었든 아이들은 피난 가듯 갑작스레 짐을 챙겨 내렸고 곧 바로 자전거를 꺼내기 시작했다. 과연 자전거는 무사할까? 자전거가 ..
4. 가까스로 달성군으로 출발하다 ▲ 10월 4일(일) 현풍터미널 → 대구 달성군 하빈면 / 36.05KM 현세와 길이 엇갈렸기에 나 또한 속수무책으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9시 버스를 타지 못할 경우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9시 이후의 버스는 몇 시 차(1시에 있음)가 있는지 재빠르게 손재간을 부리며 검색하고 있었다. ▲ 현풍까지 가는 버스의 시간표다. 하루에 세 대만 다니더라. 어그러진 상황이야말로 싱그러운 삶의 축복 예전 같았으면 뭔가 계획대로 되어야 한다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계획이 어그러진 상황에선 화가 많이 났었다. 2013년에 18회 부산영화제를 보러 갈 때도 주원이와 민석이가 버스 시간에 늦게 오는 바람에, 남부터미널에서 강남터미널로 옮겨가서 버스를 탔던 ..
3. 시작부터 삐걱거리다 ▲ 10월 4일(일) 현풍터미널 → 대구 달성군 하빈면 / 36.05KM 단재학교에서 동서울터미널까지 자전거로 17분이면 주파할 수 있는 거리다. 버스 출발 시간은 9시이기 때문에 지금 간다 해도 늦진 않는다. 하지만 제 시간(동서울터미널에 8시 20분까지 모이기로 함)에 와서 기다리는 민석이와 준영이에게 미안했기에 최대한 빨리 달렸다. 재욱이와 현세는 동서울터미널로 가는 길을 모른다고 하기에 내가 앞장서서 달렸다. 중간 중간 뒤를 돌아보니 재욱이는 잘 따라오지만, 현세는 벌써부터 뒤처지고 있더라. 그나마 지금은 장거리를 달리는 게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잠실철교를 건너 강변역에 도착하여 뒤를 돌아보니, 재욱이만 보이고 현세는 보이지 않는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앞에서 ..
2. 스펙터클한 시작과 기대 ▲ 10월 4일(일) 현풍터미널 → 대구 달성군 하빈면 / 36.05KM 2학기 전체여행으로 변산반도에 3일간 다녀온 이후 기온이 급속도로 떨어졌다. 그 전까지만 해도 굳이 이불을 덮지 않아도 자는 데는 문제가 없었는데, 지금은 바닥이 어찌나 차가운지 약간 두꺼운 보를 깔았음에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다. 어느덧 매서운 여름은 그렇게 지나가고 이젠 장판을 깔아야지만 잠을 푸근히 잘 수 있는 시기가 온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좀 이른 감이 있기에 그냥 보만을 깔고 잠에 들었고 그 때문에 오들오들 떨다가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일어났다. 이쯤 되면 은근히 헛갈린다. 추워서 일찍 일어난 건지, 장기간 여행을 한다는 긴장으로 일찍 일어난 것인지 말이다. 여러 도전에 성공했다고, 새로운..
1. 여는 글: 반복이 만든 여행, 반복이 만들 이야기 삶이란 하나의 도화지에 자신의 색채로 그림을 그려가는 일이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부모가 ‘삶을 맘껏 누비며 살아봐라’라고 말하듯, 삶이란 백색의 도화지에 자신만이 지닌 채색 도구로 한 획 한 획 그려가는 일이다. 그게 어떤 그림이 될지는 주위 사람도 모르고, 자기 자신도 알 수 없다. 도화지에 어떤 그림을 그릴까? 물론 도화지는 채색 공간의 한계를, 채색도구는 색상의 한계를 가지고 있어 자신의 상상을 맘껏 펼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이걸 ‘생의 비극’이라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맘대로 그릴 수 있다’는 말 자체가 거짓은 아닐까? 누구도 현실을 벗어난, 한계를 넘어선 것을 표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건 ‘새로움’이라기보다 ‘..
목차 1. 제주 4.3항쟁 이야기 47년 3월의 이야기 잘못된 수습은 오히려 불씨를 남기고 48년 4월의 이야기 2. 토벌대와 포고령, 그리고 큰넓궤에 숨은 사람들 민간인을 폭도로 모는 포고령 모름이란 희망 최고의 은신처 & 최적의 사형터 3. 빨갱이란 낙인으로 계속해서 그들을 옥죄다 정방폭포엔 눈물이 흐른다 4.3은 현재진행형 4. 4.3항쟁을 영상으로 제대로 담아낸 지슬 영화로 제사를 지내다 연출이 살린 영화 자막이 필요한 국산영화 정길이란 인물에 집중하자 인용 여행기
4. 4.3항쟁을 영상으로 제대로 담아낸 지슬 역사적인 상황을 묘사한 영화이기 때문에 과연 시간 순으로 사건을 전개할지, 주제별로 사건을 전개할지 기대됐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러한 생각을 모두 깼다. ▲ 우린 4.3항쟁을 직접 대한 사람이 아니니 영화를 통해 간접 체험을 할 수밖에 없다. 영화로 제사를 지내다 제사형식을 빌어 사건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오멸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4.3항쟁으로 저물어간 무수한 인명들에게 씻김굿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신위神位(죽은 사람의 영혼이 의지하는 자리)’, ‘신묘神廟(조상의 신주를 모신 사당)’, ‘음복飮福(제사를 마치고 제사에 쓰인 술이나 음식을 나누어 먹음)’, ‘소지燒紙(지방을 태우는 일)’ 네 가지 제사 형식에 따라 영화를 편집했다...
3. 빨갱이란 낙인으로 계속해서 그들을 옥죄다 큰넓궤에서 생활한 마을주민 120여명 중 상당수는 동굴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죽었고, 그 중 대다수는 볼레오름으로, 나머지는 미오름으로 갔다. ▲ 큰넓궤에서 긴 시간을 버티며 살아냈다. 이대로 더 이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방폭포엔 눈물이 흐른다 당연히 볼레오름에는 많은 사람들이 걸어왔기에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고, 그 발자국을 따라 토벌대가 들이닥쳐 동광리 주민들은 잡히고 만다. 그후 1월 22일에 정방폭포 부근에서 총살당한다.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쫓고 쫓기는 살육전이 계속된 것이다. 다음은 『한겨레신문』기사를 발췌한 것이다. 정방폭포에서 희생된 86명 가운데 동광리 주민은 40명으로 알려졌다. 바다와 이어진 정방폭포에서 사람들의..
2. 토벌대와 포고령, 그리고 큰넓궤에 숨은 사람들 영화 『지슬』의 배경은 바로 이전 편에서 바라본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제주도에 무장혁명이 일어난 줄 알고, 육지에서 경찰과 토벌대가 파견된 것이다. ▲ 4.3항쟁 사진. 공비와 내통했다는 죄명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갔다. 민간인을 폭도로 모는 포고령 토벌하러 온 9연대의 송요찬(내각수반, 인천제철 사장, 국정자문위원을 지낸 3,5공의 대표적인 인물) 연대장은 1948년 10월 17일에 “제주 해안에서 5km 이상 떨어진 곳을 통행금지 지역으로 정하고, 이 지역을 드나들 경우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총살에 처하겠다.”는 내용의 포고령을 내린다. 산간 지역 마을을 초토화할 수 있는, 그리고 양민을 학살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포고령이었다. 하지만 ..
1. 제주 4.3항쟁 이야기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면 어김없이 가는 곳이 있다. 들어는 보았는가? 정방폭포라고. 이곳에서 사람들은 사진 찍기에 바쁘다. 정방폭포는 수직절벽에서 폭포수가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곳으로 동양권에선 유일하다고 한다. 깎아지른 절벽에서 폭포수가 바다로 직접 떨어진다는 것이 놀라웠지만, 한 여름에도 한기가 느껴져 3분 정도 이 폭포수를 맞고 있을 수가 없다는 것도 놀라웠다. 이러한 의미 때문에 수학여행지로 정방폭포는 필수코스가 된 걸 거다. 하지만 정방폭포에 어떤 역사가 스며있는지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 정방폭포.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슬픈 역사가 담겨 있다. 벌교의 소화다리 같이 말이다. 47년 3월의 이야기 흔히 알고 있는 제주 4.3항쟁은 1947년 3월 1일에 시작..
목차 1. 역사를 찾아 떠나는 이유 사람의 이야기가 담길 때, 공간의 의미는 달라진다 똑같다고? 그럼 역사를 배워봐 옛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나의 이야기 2. 군산선엔 근대화의 비극이 담겨있다 식민지 근대화론 군산역과 도깨비 시장 3. 째보선창과 군산세관 째보선창과 군장대교 초라하고 작기만 한 걸 군산세관, 아는 만큼 보인다 군산세관과 제2롯데월드 4. 장미동에 역사가 남게 된 아이러니 장미동엔 장미가 없다? 장기18은행과 조선은행 군산지점의 흥망성쇠 쇠락한 융성 인용 여행기
4. 장미동에 역사가 남게 된 아이러니 구 군산세관에서 군산역사박물관쪽으로 길을 따라 걸어가면 연거푸 근대 건축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야말로 일제 강점기에 우리의 물자들이 일본으로 쏙쏙 빠져나가며 호황을 이루였던 곳이다. ▲ 군산은 걸어다니며 볼 수 있을 정도로 다 보여 있어 좋다. 장미동엔 장미가 없다? 그런데 하필 이곳의 이름이 ‘장미동’이다. 어랏? 일본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 있는 곳 이름이 하필 ‘사쿠라동’이나 ‘벚꽃동’이 아닌 ‘장미동’이라니 깜짝 놀랄 일이었다. 그래서 ‘일본과 관련된 곳이란 이미지를 지우려 이름을 바꿨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장미’라는 꽃 이름을 붙인 이유가 궁금했다. 예전엔 이 주변에서 장미를 집단적으로 키워냈던 곳이었을까? 서울의 잠실蠶室이 조선시대만 해도 ..
3. 째보선창과 군산세관 터미널에서 내려 30분 정도 걸어 째보선창에 도착했다.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둘러보고 있다. ▲ 그 때의 아픔이 스민 뜬다리와, 지금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뜬다리. 째보선창과 군장대교 『아리랑』을 보면 하대치가 피땀 흘려가며 째보선창을 간척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부잔교는 해수면의 높이에 따라 다리가 오르락내리락하도록 만든 장치인데, 아무래도 수심에 상관없이 쌀을 실어 나르기 편하도록 만든 것이다. 조수간만의 차와는 상관없이 수탈하기 편하도록 만든 시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랜 4기가 건설되었다던데 지금은 3기만 남아 있다. 해변을 따라 걷는다. 바다 건너편은 충남 장항읍이 보인다. 군산과 장항을 동시에 묶어 ‘군장국가산업단지’를 만들었다. 장항과 군산은 ..
2. 군산선엔 근대화의 비극이 담겨있다 전주(친구 결혼식이 11시에 있어서 예식을 마친 후 출발한다)에서 군산으로 가기 위해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버스는 15분 단위로 배차되어 있다. 1시 45분차는 이미 떠났기에 2시 차를 타야했다. 탈 때만 해도 ‘설마 얼마나 사람들이 타겠어?’라고 생각했는데, 출발할 때 80%가 탔고, 덕진 간이 터미널을 지나니 한 자리만 비었다. 여행객은 아닌 거 같고 일을 보러 오가는 사람들 같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이용하더라. 2008년 군산선과 장항선이 연결되기 전엔 전주에서 군산까지 꼬마열차가 출퇴근을 책임졌다고 한다. 그땐 그래도 열차와 버스로 교통량이 분산됐을 텐데, 지금은 꼬마기차가 다니지 않으니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게 아닐까. ▲ 2007년 12월 31..
1. 역사를 찾아 떠나는 이유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본다는 건, 단순히 공간적인 이미지로만 본다는 뜻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본다는 뜻이다. 도보여행을 하며 느꼈던 건, 그냥 걷기만 해서는 그 공간에 대한 어떠한 느낌도 남지 않는다는 거였다. 여기가 저기 같고, 저기가 여기 같기 때문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니 그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올 이유도, 무언가 색다른 것을 찾게 될 일도 없다. 하지만 그 장소에 사람이 더해지면 그 의미는 남달라진다. 산이 단순한 산이 아니라 특별한 나만의 산으로, 물이 그냥 물이 아니라 의미심장한 물로 느껴지는 것이다. ▲ 2012년도에 단재학교 영화팀과 찾은 전주. 전주는 고향이어서 특별할 게 없다 생각했는데, 아이들과 함께 오니 특별한 곳이 ..
목차 1. 광주와 인연 맺다 오월항쟁 없이 나를 사유하기 있기? 없기? 사람 찾아 떠난 광주에서 역사를 만나다 518번 버스를 타고 광주를 여행하다 2. 오월묘지, 그 이야기 같은 장소 속에 다른 느낌이 숨어 있다 오월묘지 상징탑에 의미 새기기 신이 되어야 들어갈 수 있는 곳 사연이 묻힌 오월묘지 감수성, 소통의 기본 조건 3.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안타까운 죽음, 그럼에도 묻히지도 못하는 현실 역사에 치여 사는 개인, 그들을 비판할 수 있을까? 4. 구오월묘지와 전두환 사연이 묻힌 구오월묘지 꾸며질 때, 과거는 사라진다 현재를 살려는 자, 이 비를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5. 공동의 경험, 32주년 5.18 역사의 공간이 개발이란 이름으로 사라지다 전야제, 들끓는 감정..
이 날 광주는 꽤 쌀쌀한 날씨였다. 하지만 금남로엔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도로 한가운데 수많은 인파가 있다고 생각하니, 08년 당시의 촛불집회가 생각났다. 도로를 점거하고 우리의 요구 사항을 외쳤던 가슴 벅찬 흥분이 똑같이 일었기 때문이다. 80년 광주의 역사적인 공간에서 전야제는 시작되었다. 도청은 문화전당이란 것을 세운다고 공사 중이어서 볼 수 없었다. 역사적인 공간을 볼 수 없다는 게 무척이나 아쉬웠다. ▲ 제법 날씨가 쌀쌀한데도 사람들이 금남로를 가득 메웠다. 역사의 공간이 개발이란 이름으로 사라지다 518민중항쟁에서 도청은 주요 장소였다. 5월 21일엔 도청앞에 모인 시민들을 향해 집단 발포가 있었다. 이 땐 저격수까지 투입되었다고 한다. 아무 무기도 들지 않은 자국민을 향해 국민을 지키..
구오월묘지엔 특별한 사람들의 묘지도 함께 있다. 6.10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한열 열사의 묘지가 바로 이곳에 있다. 1987년 6월 9일 연세대 정문에서 시위 도중 전경이 쏜 최류탄에 머리를 맞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식은 7월 9일에 ‘민주국민장民主國民葬’으로 진행되었는데, 추모 인파만 서울에서 100만, 광주 50만 등이었다. 이를 계기로 전 국민적인 분노를 이끌어 내었고 6월 항쟁의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 이한열 열사의 묘지가 이곳에 있을 줄은 몰랐다. 꾸며질 때, 과거는 사라진다 구오월묘지는 그나마 5.18 당시의 느낌을 전해주는 곳이었다. 신묘역은 너무 잘 꾸며져 삶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구묘역에선 슬픔과 통곡이 느껴졌으니 말이다. 난 잘 꾸며진 곳에선 어떤 역사성을 느낄 수가 없..
이야기를 듣고 구묘역으로 향했다. 해가 서서히 저물어 가는 오월묘역을 거닐고 있으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 시간 우리가 살 수 있다는 축복에 대해, 그리고 저물어가는 자연의 경이를 맛볼 수 있다는 행복에 대해 말이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결코 우연하게 주워진 게 아님을 알기 때문에, 그 순간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까지 했다. ▲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길을 해설사님을 따라 걷는다. 우린 구묘역으로 간다.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오월묘지에서 10분 정도를 걸으면 구오월묘지에 갈 수 있다. 가는 길에 본 오월항쟁 당시의 기자의 글은 최초의 언론노조인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의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기 위해’라는 문구에서 연상시키며 마음을 흔들었다.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
5.18민주묘지 입구에 도착하니, 예전의 흔적은 온데간데없다. 2000년에 찾아왔을 땐, 흐린 날씨 탓인지, 의도가 불순한 탓인지 이렇게 잘 꾸며진 묘역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막상 12년 만에 다시 찾은 묘역은 잘 꾸며져 있었다. 역시 한 번 가본 곳이라 해서 다시 찾아갈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기억의 속성이 그러하듯, 어느 환경, 어느 시기, 어떤 사람과 함께 했느냐에 따라 느낌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사람도 만나면 만날수록 전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듯이, 장소 또한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가본 곳이니, 다시 갈 필욘 없어요.”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한 번 본 것만으로 모든 것을 다 아는 양 이야기해서도 안 된다. ▲ 국립묘지로 들어가는 길이다. 이 길을 지나면 저 ..
81년에 태어난 나에게 80년의 이야기는 아득한 ‘고조선의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만큼 현실이 아닌, ‘역사’라는 학문적인 이미지로 먼저 다가오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다닌 대학교엔 광주에서 온 친구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에게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는, 광주민중항쟁의 이야기가 아닌 ‘신산한 바람이 가득 부는’ 현실적인 고민과 미래에 대한 불안에 관한 이야기였을 뿐이었다. 광주항쟁이 끝난 후 태어난 세대, 그래서 광주항쟁과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세대, 하지만 그럼에도 광주항쟁의 부채를 껴안고 태어난 세대, 그게 바로 ‘80년 이후 세대’다. ▲ 518을 찾아 이곳에 왔다. 사랑 찾아 떠난 광주에서 역사를 만나다 내가 광주에 처음 간 것은 대학교 동아리인 ‘말뚝이’라는 민중놀이패 때문이었다. ..
목차 1. 전주와 영화제, 그리고 여행 고향 전주로 여행을 떠나다 영화는 책이다 2. 전주에서 ‘아무 것도 안 할 자유’를 느끼다 아무 것도 안 할 자유! 남천교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자유를 얻다’ 3. 경기전과 전동성당 동양의 역사와 서양의 역사가 한 곳에 있게 된 배경 전동성당과 경기전의 특징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본다 4. 부채의 도시, 전주 단오와 부채의 관계 부채에 자신을 남기다 5. 오목대와 풍남문을 둘러보며 발전에 대해 생각하다 오목대: 이성계의 흥취를 공유하다 풍남문: 오래된 미래를 지키려는 노력 전주와 완주의 통합에 대한 견해: 見小利則大事不成 6. 전주의 맛을 먹다 콩나물국밥(현대옥) 콩국수(진미집) 비빔밥(고궁) 육개장(복자식당) 냉면(함흥냉면) 7. 전주의 맛을 먹다Ⅱ Cafe..
10. 떠나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 흔히 듣는 말. 그게 뭐냐 하면, ‘파랑새는 가까이에 있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듣다보면, 참 허무해질 때가 있다. ▲ 사람은 습관적으로 행복이나 희망은 지금의 현실이 아닌 저 멀리 있다고 생각한다. 파랑새는 가까이에 있다? 그렇게 가까이에 있는 행복을 왜 알지 못한 채 살았냐는 것이며, 그렇다면 늘 가까운 곳만 예의주시하면 된다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은 자칫, ‘파랑새는 가까이에 있으니, 멀리 나갈 생각은 하지도 마라’라는 말로 비약되어 ‘라푼젤’처럼 방안퉁수로 만들 소지도 있다. 그런데 이쯤에서 「행복한 시한부 인생」에서 했던 ‘자신을 바꾸고 싶은 자, 현실의 반복에 지겨움을 느끼는 자 미련 없이 떠나라.’라는 얘기로 결론을 맺어도 될..
9. 전주비빔밥 이야기 전주하면 비빔밥, 비빔밥하면 전주가 떠오른다. 왜 ‘전주비빔밥’이 유명해진지는 알 수 없다. 그냥 내 생각을 덧붙이자면, 전주는 거대한 호남평야를 끼고 있는 곳이라 먹을거리가 풍부했다. 그러다 보면, 당연히 많은 음식들이 남을 것이고 그걸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비빔밥이 아닐까 싶다. 비빔밥의 유래와 철학 비빔밥은 네 가지 유래설이 있다고 있다. 첫째는 농경문화 유래설이다. 새참을 내갈 때 각 반찬 그릇을 모두 가져갈 수 없기 때문에 한 그릇에 반찬들을 담아 내갔고 그때 고추장에 비벼 먹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제사유래설이다. 야외제사를 지낼 때 음복하기 위해 하나의 그릇에 음식을 모조리 담아 먹었다는 것이다. 셋째는 세시풍속 유래설이다. 겨울을 이겨낸 식물들엔 강인한 기운이 담..
8. 풍년제과 이야기 대기업 빵집 속의 명맥을 잇는 빵집 각 지역을 대표하는 빵집이 하나씩은 있게 마련이다. 전북에는 최초의 빵집으로 유명한 군산의 ‘이성당’과 초코파이와 센베 과자로 유명한 전주의 ‘풍년제과’가 있다. 솔직히 고백하지만, 전주에 있을 때엔 풍년제과에 와서 빵을 사먹지 않았다. 그냥 시내 한 복판에 있던 오래된 빵집이라 지나다니며 보는 정도였지, 왜 인기가 있는지, 왜 사람들이 많은지 관심이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시내에 있는 ‘풍년제과’로만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두 대기업 빵집이 골목골목을 휩쓸면서 지역을 대표하는 빵집들도 서서히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동일한 메이커의 빵집이 많아져 적립도 할 수 있고 표준화된 맛을 볼 수 있어 좋다고 생각했지만..
7. 전주의 맛을 먹다Ⅱ 한옥마을의 은행나무길을 걷다보면, 낯선 모양의 건물이 나온다. Cafe 76-11 분명히 지붕은 한옥인데, 건물은 나무를 덧대어 전원주택 같은 분위기가 난다. 그런데 더욱 특이한 것은 이곳의 이름이다. 한옥마을이라는 정체성에 맞게 한국적인 이름을 지을 수도 있었을 텐데, 버젓이 영어로 이름을 지었으며 의미 또한 알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예전에 이곳을 지나다닐 때 가게 이름이나 건물의 모습을 보고 ‘한옥마을의 정체성과 맞지 않다’며 못마땅해 하기도 했었다. 그랬던 이곳에서 밥을 먹게 될 줄이야. 이건 전혀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다. 아마 누군가가 초대하지 않았다면 이곳을 들어올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외지 학생들이 영화제에 참석하겠다고 하자 ‘전주시 영화영상산업과’에서 ..
6. 전주의 맛을 먹다 콩나물국밥(현대옥) 콩나물국밥은 어디서 먹어도 크게 맛이 차이나진 않는다. 속이 확 풀리는 맛 때문에 콩나물국밥을 먹는다. 특히 밤늦게까지 술 마신 다음날에 콩나물국밥이 제격이다. 시원한 맛이 숙취해소엔 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긴 ‘왱이콩나물’집과는 달리 다진 오징어가 하나도 들어있지 않더라. 다진 오징어를 추가하려면 천원을 더 내야 한단다. 그런 꼼수가 왠지 모르게 야박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콩나물국밥집에선 밥과 콩나물이 무한리필 되기 때문에, 맘껏 배불리 먹고 나갈 수 있다. 단재친구들도 추가로 밥을 시켜서 배불리 먹었다. 콩국수(진미집) 둘째 날 점심으론 콩국수와 칼국수 중에서 고르게 했다. 성심여고 앞에 있는 ‘베테랑 칼국수’집은 칼국수가 맛있기로 유명한 집이고 남부시장..
5. 오목대와 풍남문을 둘러보며 발전에 대해 생각하다 전주에는 누각들이 많다. 그냥 하릴 없이 있고 싶을 때 이런 곳에 가서 바람을 쐬어도 좋다. ▲ 전주의 누각인 한벽당과 전주천을 거닐며 운동 중인 사람들. 오목대: 이성계의 흥취를 공유하다 오목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려말 무신이며 조선의 태조인 이성계를 알아야 한다. 조선이란 나라가 만들어지기 전인 고려말에 이성계는 남원 일대에서 왜구인 아지발도阿只拔道의 무리를 정벌하고 전주로 돌아와 바로 이곳, 오목대에서 잔치를 열며 대풍가大風歌를 불러 재꼈다고 한다. 대풍가는 시골출신인 유방劉邦이 명문가출신인 항우項羽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세워 영포의 반란까지 진압한 후에 고향인 풍패(전주객사의 현판에 쓰여 있는 ‘풍패지관豊沛之館’이란 말도 ‘한나라 태조인 유방의..
4. 부채의 도시, 전주 전주가 비빔밥으로 유명한 것이야 지나가는 개도 알 테지만, 부채로 유명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물론 전주에서 30년을 살아온 나로서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 이번 기회를 통해 전주가 부채의 도시였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단오와 부채의 관계 전주에서 부채가 유명해진 이유는 대나무가 많이 나며, 질 좋은 한지가 생산되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전라감영(전라도와 제주의 행정을 총괄하던 관청)에 선자청扇子廳을 두어 부채를 만들었고 이렇게 만들어진 부채들은 단오날에 임금에게 진상되었다고 한다. ▲ 전라감영 안에 있는 선자청이란 곳이 보인다. 그런데 ‘단오날에 하필 부채를 진상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당연히 뒤따른다. 여기엔 조상들의 생활상이 숨어있..
3. 경기전과 전동성당 전주한옥마을은 몇 년 사이에 엄청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먹자골목이 대부분이어서 한옥마을을 다니다 보면 ‘기억나는 건 비싼 먹을거리와 구석구석 넘쳐나는 사람’만 기억에 남는 묘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에 왔다면 당연히 경기전과 전동성당은 둘러봐야 한다. 그리고 우린 두 곳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 경기전과 전동성당이란 조합이 이색적이다. 동양의 역사와 서양의 역사가 한 곳에 있게 된 배경 경기전慶基殿은 조선이란 나라의 상징성을 지닌 건물이고 전동성당은 서양문물이 유입되었음을 나타내주는 상징성이 있는 건물이다. 그러니 당연히 두 건축물이 바로 옆에 있는 건 어색한 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일까? 조선은 유교만을 ..
2. 전주에서 ‘아무 것도 안 할 자유’를 느끼다 전주국제영화제에 와서 첫 영화를 보고 우린 하릴 없이 전주를 거닐기로 했다.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객사에 앉아 있으니 봄기운이 완연했다. 난 이런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길 원했는데, 아이들은 이런 시간에 익숙지 않나 보다. ▲ 아이들과 객사에서 쉬었다. 그런데 조금 쉬었다 싶었는데 가자고 하더라. 아무 것도 안 할 자유! 이럴 땐 어릴 적 내 모습이 떠오른다. 학교가 끝난 후 집에 들어오면 방은 고요했다. 어머니는 일을 나가셨기에 방엔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다. 냉장고에서 깻잎을 꺼내어 밥을 먹고 배를 깔고 방에 눕는다. 숙제를 하기 위해서다. 슥삭슥삭 숙제를 하다 보면, 어느새 방안 가득 햇살이 들어온다. 몸을 고이 감싸는 햇살의 포근함에 ..
1. 전주와 영화제, 그리고 여행 삶은 아이러니다. 막상 그곳에 살 땐, 그곳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떠나고 난 후에야 그곳의 가치를 알게 되고 그제야 부랴부랴 찾아가게 된다. 그건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막상 곁에 있을 땐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떠난 후엔 빈자리에 몸서리치며 맘 아파한다. 하지만 그 순간엔 이미 늦는다. 후회는 언제나 때늦은 깨달음일 수밖에 없다. ▲ 떠난 다음에야 전주를 다시 보게 됐고, 이렇게 여행처럼 다시 오게 됐다. 고향 전주로 여행을 떠나다 이처럼 전주에 살 땐 전주영화제에 가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건 제주도에 사는 사람이 제주도를 둘러보지 않는 것과 같다. 4월에 단재친구들과 제주도를 여행할 때, 성산리 일대에서 자전거 바퀴를 때우느라 민가에 신세를 져야..
목차 1. 백제 최후의 수도 부여에 가다 부여가 나를 부르네 아는 만큼 보이는가, 아는 만큼만 보려 하는가 앎에 대한 강요가 아닌, 존재에 대한 관심으로 백제에 대한 간단한 사전조사 2. 정림사지와 금동대향로로 본 백제 정림사지, 중흥의 찬가와 절망의 애가 석불좌상, 겉이 아닌 속으로 부여박물관과 금동대향로 구드래 돌쌈밥 그린피아찜질방, 잘 수 없는 찜질방 3. ‘삼천궁녀’ 이야기의 진실, 부소산성은 알고 있다 부소산성, 백제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공간 삼충사 낙화암, 만들어진 이야기가 과거를 재구성한다 장원 막국수 인용 여행기
3. ‘삼천궁녀’ 이야기의 진실, 부소산성은 알고 있다 부소산성은 산책하듯 걸으면 되는 곳이다. 어젠 둘러볼 곳이 많아 바쁘게 돌아다녀야 했다면, 오늘은 산책하듯 부여의 역사 속을 거닐기만 하면 된다. 누군 아무 것도 안 할 자유를 외쳤다는데, 우린 여행 와서 산책할 자유를 외치고 있다. 부소산성은 사비왕궁의 후원이다. 백제의 왕이 된 듯한 기분으로 산책길을 따라 올라 간다. ▲ 또 다른 하루의 시작. 오늘은 산책하러 가자. 삼충사 삼충사에는 세 분의 백제 충신이 모셔져 있다. 성충과 흥수라는 분은 잘 모르지만, 계백장군의 초상화가 있어서 반가웠다. 오천 결사대와 계백장군의 이미지는 ‘황산벌’이란 영화에서 나오는 계백장군의 카리스마가 연상되기에 우락부락할 줄 알았는데, 그러진 않았다. 하긴 이순신 장군이..
2. 정림사지와 금동대향로로 본 백제 정림사지는 사비로 수도를 옮기고 나서 처음으로 지은 절이라고 한다. 그런 역사적 의미에 걸맞게 절의 규모는 상당히 컸다. 물론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절터와 오층석탑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 경주의 황룡사에 비하면 뭘까 싶겠지만, 여기엔 백제의 마음이 스며 있다. 정림사지, 중흥의 찬가와 절망의 애가 박물관에 복원된 모형이 있었는데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정림사의 크기를 알만 했다. 무엇보다도 긴 회랑이 눈에 쏙 들어왔다. 백제의 절 건축술은 당대에 알아줬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의 호류사도 지어줬단다. 호류사는 지금도 볼 수 있으나, 정림사는 절터만 볼 수 있으니 씁쓸하다. ▲ 또렷하게 볼 수 있는 소정방이 백제를 멸망시키고 새긴 글씨. 정림사라는 절 자체가 새 희망을 ..
1. 아는 것과 보이는 것의 관계 왜 부여로 가고 싶었던 것일까? 아마도 경주와 같은 고대도시의 풍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리라. ▲ 학생들과 처음으로 떠난 여행지를 부여로 잡았다. 부여가 나를 부르네 2010년에 내 발로 직접 경주를 찾아가 보곤 깜짝 놀랐다. 이미 초등학교 수학여행으로 와본 곳인데도 말이다. 수학여행엔 나의 의지, 관심과는 상관없이 큰 손의 힘에 이끌려 강제적으로 봐야만 하니, 어떤 거대한, 엄청난 것을 보더라도 감흥이 없다. 초등학생 시절에 본 경주는 음습한 기운이 감도는 곳이었다.(내 기억 속의 경주는 안개가 자욱이 끼어 있었는데, 과연 그게 실제상황인지, 의식이 만들어 낸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막상 내가 원해서 찾아간 경주는 모든 게 남달랐다. 더운 여름에 찾아가서인지 음습하..
목차 1. 경주,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다 정처 없이 경주로 떠나다 가봤던 경주가 아닌, 가보고 싶었던 경주로 길 가에 우뚝 솟은 고분들을 보며, 죽음 속의 삶을 생각하다 대릉원에서 보게 된 역사논쟁의 실마리 2. 불국토의 이상향을 재현한 경주박물관 잠시 걷는 것만으로도 신라의 주요 건축물들을 볼 수 있다 경주박물관과 전주박물관의 비교 경주박물관에서 신라왕국의 불국토 이상향을 보다 경주에서의 로맨스?? 역사가 묻어 있는 곳, 그래서 우린 그곳에 가야 한다 인용 여행기
2. 불국토의 이상향을 재현한 경주박물관 대릉원에서 나와 한적한 들길을 따라 걷는다. 잘 꾸며 있기에 사람들도 많더라. 작년에 함양에 있는 상림숲에 갔었는데 그때 느꼈던 운치와 거의 흡사했다. 풀내음이 코끝을 자극하니, 여기야말로 ‘천국’, ‘극락’이 아닐까하는 착각마저 들더라. 정말 두고두고 다시 오고 싶은 길이었고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오고 싶은 길이었다. 잠시 걷는 것만으로도 신라의 주요 건축물들을 볼 수 있다 조금 가다보니 첨성대가 보이더라. 들길 한복판에 솟아 있는 첨성대가 특이해 보이는 건 그 때문이었다. 가까이 가서 보기 위해서는 500원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멀리서도 충분히 볼 수 있었고 들어간다 해도 첨성대에 올라갈 수는 없었기에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돌로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1.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다 이번엔 경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러면 대뜸 ‘경주로 굳이 여행을 간 이유라도 있나요?’라고 물을 것이다. 정처 없이 경주로 떠나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묻는 것만큼이나 이 질문도 쓸데없는 것이다. ‘경주로 왜 갔는지?’를 알기 위해선 ‘왜 부산으로 가지 않았는지?’, ‘왜 공주로 가지 않았는지?’ 이런 계속 되는 질문에 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이유가 있었을까? 꼭 가야할 이유가 있었을까? 그건 나조차도 잘 모르겠다는 것. 단지 식으로 말하면 ‘고스트가 그렇게 속삭였다(ep 1)’는 게 될 것이고, 식으로 말하면 ‘여자의 감(물론 난 남자니까 남자의 감이 될 거다^^)’이 될 게다. 뚜렷한 이유는 없고 내 맘이 이끄는 대로 목적지를 정하고 움직인 것에 불과하다...
목차 1. 떠난 후에야 빈자리가 보인다 봄에서 여름으로, 그리고 또 봄으로 떠난 후에야 빈자리의 큼을 안다 2.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 한 사람이 죽음을 대하는 갖가지 자세 헐뜯으려는 현 권력의 공격 실패 역사는 과거의 일이 아닌 현재의 부단한 싸움 3. 미안한 마음에 조문행렬에 참여하다 맘은 원이로되 행동은 굼뜨니 끝없는 조문 행렬은 미안함의 표시다 4. 영결식과 노제 참여기 그가 공공의 적이 된 이유는 인간의 이중성 때문이다 폴리스라인, 안전=통제 영결식 현장의 열기 의지를 이어나가려는 사람들 인용 여행기
4. 영결식과 노제 참여기 오늘은 영결식이 있는 날이다. 6시 45분 차를 타기 위해 5시 반에 일어났다. 차가 많이 막힐 것만 같아서 15분 차를 탈까도 생각했었는데 몸이 너무 고될 거 같아서 그냥 이 차를 타기로 한 것이다. 내 예상과는 달리 버스는 밀리지 않았다. TV에선 계속해서 발인식 장면과 영구차 이동 장면을 중계하고 있었다. 그를 떠나보내기 싫은 사람들은 영구차가 봉하마을 입구를 지날 때 노란색 비행기를 접어서 영구차에 날리기도 하고 차를 부둥켜안고 울기도 했다. 그 장면들은 보면서 내 마음도 그네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다. 왜 그가 재임 중일 땐 모두 그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했던 걸까? 물론 그의 정책 중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기도 했지만 꼭 그 이유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 긴 행..
3. 미안한 마음에 조문행렬에 참여하다 지난 토요일에 도보여행을 끝마치면서 전혀 믿기지 않는 소식을 듣고 일요일엔 서울에 온 김에 조문을 하러 대한문에 찾아갔다가 사람들도 너무 많고 경찰이 여기 통제를 하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그냥 돌아왔다. 어차피 전주에서도 분향소는 있으니 거기서 해도 된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물론 그건 합리화였고 핑계의 일종이었다. 애도하려는 마음보다 현재 하고 싶은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으니 말이다. ▲ 노무현(1946년 9월 1일 ~ 2009년 5월 23일) 맘은 원이로되 행동은 굼뜨니 그렇게 25일 월요일에 전주행 버스를 타고 내려왔다. 한 달을 넘게 했던 여행이 끝났기에 마무리 짓고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먹은 순간부터 노무현 전 대통..
2.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 그가 스스로 몸을 던져 죽음을 택했다고 했을 때, 웬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 돌아다니냐고 되묻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먼지털이식 수사로 도덕성에 타격을 입은 그는 여느 때처럼 정면 승부를 하지 않고 스스로 몸을 던졌다. ▲ 끊이지 않는 발걸음. 무엇을 위해 이들은 그의 죽음을 기리려 하는 걸까? 한 사람이 죽음을 대하는 갖가지 자세 그런 소식을 듣고 두려웠던 것은 거대 언론들의 횡포였다. ‘얼마나 구린 게 많았으면 자살까지 했을까(한 언론은 그의 죽음을 ‘서거’가 부당하다며, ‘사거’라고 표현하기도 했다)?’라고 비아냥거릴 것만 같고 걔 중에 어떤 사람들은 ‘무책임하다’라거나 ‘잘 죽었다’라는 말로 온갖 비방을 퍼부을 것만 같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후 상황은 ..
1. 떠난 후에야 빈자리가 보인다 벚꽃 잎이 흩날리고 있다. 이 사진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스크랩한 것이다. 어느새 봄이 오는가 싶었는데 지금은 점차 무더워지는 것이 느껴지며 여름이 오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 벚꽃이 만개했다. 하지만 곧 질 것이고, 이런 장사진은 떠날 것이다. 몰려듦과 떠남, 하지만 내년에 다시 이런 장사진을 이룰 것이다. 봄에서 여름으로, 그리고 또 봄으로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그건 곧 우리의 인생도 흐르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리라. 노 전대통령은 ‘삶과 죽음은 인생의 한 조각生死如一’이라고 말했듯이 여름이 온다고 봄이 완전히 죽는 건 아니다. 언어습관 상 봄과 여름은 전혀 다른 것처럼 인식될 뿐이지 실상은 두 계절이 아니라 하나의 자연스런 흐름일 뿐이다. 그렇게 변해가는 과..
목차 1. 갑작스레 벌교에 가다 도보여행 그리고 1년 후 벌교에 가기까지 전라선을 따라 가며 일본이 남긴 아픔을 곱씹다 순천, 편안한 분위기가 나던 도시 2. 벌교를 거닐면, 소설은 현실이 된다 태백산맥의 인물들이 활약한 벌교역과 시장 벌교에서 태백산맥의 발자취를 따라 가다 실재하는 염상구의 무대, 청년단 사무실을 발견하다 벌교를 볼 수 있던, 김사용 영감의 고택 일제의 그늘이 담긴, 소화다리 소화네 집과 정하섭의 집을 보다 3. 문학관을 둘러보면, 태백산맥은 현실이 된다 태백산맥의 이적성 시비와 고뇌의 시간 태백산맥 문학관의 숨겨진 건축미 문학관에서 본 10권의 소설을 쓸 수 있는 비결 벌교엔 『태백산맥』이 살아 숨쉰다 인용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