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연재 (1605)
건빵이랑 놀자
1. 학교에서 효율을 중시하면 생기는 문제 2015년 1월엔 우치다쌤이 문을 연 ‘개풍관’에 ‘참여소통교사모임’이 찾아가서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이 자리에 나는 함께 하지 않아 ‘노검파일(’녹음파일‘의 부산사투리 버전)’을 들으며 분위기를 유추할 뿐이지만, 자유분방한 느낌이었다. 더욱이 이때는 일방적인 강의를 듣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하고 거기에 따른 대답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강연장의 딱딱한 분위기보다 무도관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이다보니, 더 귀에 쏙쏙 들어왔고 더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때론 이처럼 진지하게 얘기하는 것보다 가볍게 훅훅 던지는 말에서 더 많은 의미를 얻게 되는 것 같았다. 과연 우치다쌤은 어떤 얘기를 하셨을까? ▲ 이런 식으로 다다미에 둘러앉아 정담을 나누는 분위기다..
1. 소비자마인드가 망친 교육을 개풍관에서 살리다 Q 개풍관凱風館이란 무도관을 만든 이유? A 개풍관을 만들기 전에 공립 체육관을 빌려 합기도를 했다. 체육관은 시설이 좋지만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공기가 별로 좋지 않았고,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합기도는 전신감각을 사용하는 운동으로, 공기의 청결정도가 무척이나 중요하다. 왜냐 하면 합기도는 불교명상과 비슷하여, 오감을 민감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보는 것, 듣는 것, 만지는 것, 맡는 것, 들리는 것이 자극적이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합기도의 기본 원리이며 학교나 절, 도장 같은 곳은 저자극적인 공간이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합기도는 서서하는 운동이라 다다미의 촉감이 대단히 중요하다. 단지 걷는다는 느낌이 아니라 ..
목차 1. ‘가만히 있으라’를 외치는 교육 세월호 사건과 반민주 교육 ‘가만히 있으라’와 외국의 사례 가만히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2. 힘을 북돋워주는 교육 교육은 힘을 북돋는 것 하위욕구부터 하나씩 충족시켜 나가야 상위 욕구로 나갈 수 있다 3. 민주교육으로 주체적인 학생들을 기르다 주체가 된 학생들이 이룬 쾌거 대안학교 or 민주교육 번역을 하던 하태욱 교수의 첨언 인용 강의
3. 민주교육으로 주체적인 학생들을 기르다 어떤 흑인의 이야기를 해보겠다. 그녀는 노예들을 농장으로부터 빼내어 북쪽으로 가서 자유를 얻도록 도왔다. 더욱이 노예 반대주들의 군인이 되어 2년 정도 님북전쟁에서 열심히 싸우기까지 했다. 하지만 정부는 전쟁이 끝났는데도 그녀에게 아무런 보상도 해주지 않았다. 자신의 삶을 남을 위해 바쳤다는 것만으로도 정부는 보통 사람에겐 연금을 주는데도 유독 그녀에게만은 어떠한 보상도 하지 않은 것이다. 주체가 된 학생들이 이룬 쾌거 이에 우리 학교 학생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정의롭지 않은 것에 대해 학생들은 화를 냈다. ‘그녀의 가족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후손들은 빌 클린턴을 찾아가 하소연 해보았으나, 그녀가 죽은 ..
2. 힘을 북돋워주는 교육 그런 의미에서 헤리타운의 졸업식은 특이하다. 졸업 위원회는 학생과 교사들과 지역사회 위원들로 구성된다. 학생은 졸업위원회에서 ‘저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 크리스 메리코글리아노 교장 선생님의 열강이 이어지고 있다. 우린 귀에 번역기를 달고 강의를 경청하고 있다. 교육은 힘을 북돋는 것 다음은 어떤 학생이 졸업을 증명하기 위해 쓴 글이다. 참고하여 보자. 아버지가 알콜 중독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 당시 성적은 형편없었고, 모든 과목에서 낙제를 했고, 학교에 적극적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자신감도 없었다. 하지만 선생님을 만나서 이 학교가 어떤 곳이고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되자, 걱정이 사라졌다. 교육이란 게..
1. ‘가만히 있으라’를 외치는 교육 아이덱International Democratic Education Conference의 강연 방식이 전통적 교수방식이어서 꺼려진다. 하고 싶은 말이나 질문은 강연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말고 바로 바로 질문하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이야기하는 것보다 질문을 통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 좋다. 한국에 10년 전에 온 적이 있었다. 그땐 여기저기에서 학교의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으며, 대안교육 운동이 일어나 젊은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10년 만에 미비했던 것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혁명이 되었다. 그와 같이 한국의 대안학교 혁명이 10년 간 끊임없이 진행된 것이 기쁘다. ▲ 광명시민체육관에서 1주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된 아이덱. 단재학교 영..
목차 1. 아빠가 사라진 시대의 속내 친족관계는 사회구조적으로 만들어진다 반부권제 사회는 시대적 흐름과 인권 향상으로 도래했다 반부권제 사회에 숨어 있는 기업의 전략 2. 성숙을 방해하는 구조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가족 해체를 부추긴 미디어와 기업의 전략 오해하고 잘 모를수록 잘 성숙해질 수 있던, 부권제 사회의 구조 너무 잘 알기에 성숙할 수 없는, 반부권제 사회의 구조 3. 교육의 이유, 성숙한 인간 만들기 성숙의 문제는 사회구조의 문제이기에, 흐름을 바꿔야 한다 성숙을 위한 답, 그것이 궁금하다 트라우마의 삶과 성숙의 삶 성숙한 사람이 필요한 시대에 아이를 키우는 법 성숙한 사람의 공부법, 나를 위한 공부가 아닌 너를 위한 공부 인용 강의
3. 교육의 이유, 성숙한 인간 만들기 아이의 성숙이 힘들어지게 된 데엔 ‘① 반부권제 사회의 도래, ② 욕망의 균질화, ③ 가족의 해체’라는 다양한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 살펴봤다. ▲ 가족의 해체는 더욱 급격화되고 있다. 여기엔 기업의 전략이 숨어 있다. 성숙의 문제는 사회구조의 문제이기에, 흐름을 바꿔야 한다 하지만 이런 반부권제 사회에서 아이의 성숙에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건 딸의 경우라기보다 아들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딸은 ‘어머니와 싸울 것인가, 도망갈 것인가?’에 대해 선택을 해야 할 때, 모든 권한을 쥐고 있는 어머니를 보며 모델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가 더 이상 성숙의 모델이 되지 못하기에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그와 같은 상황이 반세기동안이나 이어지며 아들들은..
2. 성숙을 방해하는 구조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이처럼 욕망의 균일화는 매우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이런 욕망의 균일화와 함께 동시에 일어난 것이 ‘가족의 해체’라 할 수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 봤을 때, 가족이란 구성단위는 눈엣가시였다. 왜냐 하면 가족이란 단위는 소비활동이 가장 소극적으로 일어나는 단위였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돈을 혼자 벌어오지만, 그것을 쓰는 데는 가족들의 동의가 필요한 시기였다. 그러니 가족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소비활동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과거엔 지금처럼 핵가족도 아닌 대가족이었고 자급자족이 가능한 형태였으니, 기업의 입장에선 한숨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 한국도 1인가구 시대에 접어 들며, 혼밥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이 밑바닥엔 기업과 미디어의 전략..
1. 아빠가 사라진 시대의 속내 한국과 일본에서 아이들 성숙의 문제가 대두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지금 사회는 아버지가 어떤 성숙의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 망각해버린 사회가 되고야 말았다. 각 가정에서 아버지들은 지위를 잃어버림과 동시에 발언권도 잃게 되었다. 이와 같이 아버지가 가정 내에서 지위를 어떻게 상실하게 되었는지 다룬 영화들이 헐리우드에서 나오고 있다. ▲ 그의 마지막 주연작. 이 영화에서 나타난 아버지의 모습이야말로 현대 아버지의 모습의 압축판이라 할 수 있다. 친족관계는 사회구조적으로 만들어진다 클린트 이스티 우드Clint Eastwood(1930~)의 작품을 보면 이와 같은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있다. 20년간 딸에게 미움을 받는 아버지 역할로 나오기 때문이다. 밖에선 슈퍼히어로지만 ..
인포그래픽 세미나 목차 1. 인포그래픽과 픽토그램 정의와 특징 주연 뒤엔 빛나는 조연인 픽토그램이 있다 2. 나의 생각을 어떻게 왜곡 없이 신속하게 전달할 것인가? 소통의 경제성을 위한 픽토그램 픽토그램의 한계 인포그래픽은 데이터를 정보로 가공하는 것 인포그래픽은 사람에 다가가고자 하는 욕구의 표현이다 3. 인포그래픽 세미나는 어땠나요? 대상 선정의 실패 : 오합지졸의 고지점령? 강의내용의 실패 : 짧은 시간에 전문적인 내용을? 시간 안배 실패 : 쉬어야 보이고 쉬어야 들린다 불쾌한 포만감을 주던 인포그래픽 강의 4. 인포그래픽의 교육적 의의 결과물엔 만든 이의 생각이 들어있다 인포그래픽과 포스터의 구분점, 스토리 인포그래픽 관련 사이트 공유 인용 강의
4. 인포그래픽의 교육적 의의 인포그래픽을 구현하려면 툴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기본적으로 있어야 한다. 포토샵이나 일러스트 정도는 기본적으로 다루며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때 인포그래픽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스킬에 관한 얘기일 뿐이다. 스킬보다 더 중요한 건 따로 있다. 그게 바로 ‘표현욕’이다. ▲ 김지원의 작품. 의미가 분명히 드러나진 않았지만, 한 컷의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았다. 한국도 성형수술을 통해 서양형 미인이 많아졌다는 것을 표현했다. 결과물엔 만든 이의 생각이 들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포그래픽만을 교육 현장에서 배우거나 가르치는 것은 무의미하다. 스킬은 ‘소통하려는 마음’이 생길 때 자연스레 익혀지기 때문이다. 글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의 글이 다..
3. 인포그래픽 세미나는 어땠나요?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올지, 어떤 앎의 촉발이 일어날지 잔뜩 기대하게 만든 강의였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기대 이하의 저급한 ‘앎의 허영’만을 채우고 오는 자리였던 것이다. 왜 그렇게 결론 내렸는지 하나하나 되짚어 보자. 대상 선정의 실패 : 오합지졸의 고지점령? 주최 측의 입장에선 대상을 한정지어 적은 인원이 오는 것보다 대상을 최대한 확대하여 많은 인원이 오는 것이 좋을 것이다. 대중을 위한 강연일 경우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할수록 활기가 넘치고 시너지 효과도 발생한다. 하지만 전문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강연일 경우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는 게 강사에게도 청중에게도 모두 문제가 된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모였다. 300명 정도가 ..
2. 나의 생각을 어떻게 왜곡 없이 신속하게 전달할 것인가? 픽토그램이라는 용어가 낯선 탓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여전히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어가 지닌 무게를 벗어던지고 실제로 사용되는 예들을 보면, 픽토그램이 이미 우리 주변에 널리 쓰이고 있다는 것을 금세 알게 된다. 비상구 표시나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마크, 남자ㆍ여자화장실의 표시 등이 그 예이기 때문이다. 또한 좀 더 차원을 넓히자면, 메소포타미아나 한자의 상형문자가 픽토그램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 ▲ 이게 바로 픽토그램이다. 간단한 그림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전한다. 소통의 경제성을 위한 픽토그램 비상구의 경우 일본에선 1970년대까지만 해도 ‘非常口’라는 한자로 쓰여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100명 이..
1. 인포그래픽과 픽토그램 인포그래픽이란 단어를 처음 들어봤다. 그런데 나와 같은 사람들도 꽤 될 것이다. 모르는 분야지만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호기심 때문에, ‘인포그래픽을 배울 사람 모여라’라는 게시글을 봤을 때 묘한 긴장과 설렘이 있었다. 그건 아마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의 감흥(지극히 미국적인 관점에서) 같은 거였을 터다. 그와 같은 묘한 감정으로 인포그래픽이라는 신대륙을 향해 단재학생들과 건빵은 거침없이 발걸음을 내딛었다. ▲ 인포그래픽 세미나가 열린다고 해서 우린 참여했다. 정의와 특징 인포그래픽inforgraphic은 ‘information+graphic’이 합쳐진 단어로 ‘그래픽 속에 정보를 담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이런 것이 개발됐을까? 그건 글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
목차 1. 객관적이지 않은 주관적으로 비고츠키 그리기 산만한 정신을 부여잡고 후기를 쓰다 기억은 추억을 배반한다 人間 그리고 삶 2. 비고츠키가 알려주는 능력ㆍ장애ㆍ학습의 개념 능력이란 무엇인가? 장애와 비장애란 무엇인가? 개체의 관점이 변하면 학습이란 관점도 변해야 한다 3. 비고츠키와 포정이 알려준 것 안다는 것, 그건 끊임없는 투쟁의 길이다 돗대가 아닌 연대로 인용 교육학에서 비고츠키 강의
3. 비고츠키와 포정이 알려준 것 관성대로 살 때 우리의 삶은 편하다. 더 이상 머리 아프게 공부할 필요도, 내가 발 딛고선 현실을 부정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불편함에 익숙해진 결과이고 왜곡을 합리화한 결과에 불과할 뿐이다. 학교에서 정한 성적 따위로 사람을 판단하고, 기업이 정한 기준으로 나만의 가치를 죽이고 스펙으로 가득 찬 기계덩어리로 변해가는 것이 과연 편하고 좋기만 한 것일까. 그렇기에 박동섭 교수님은 “어떤 사실을 알았다는 것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긴장감을 유지하고 살아야 합니다.”고 말했던 것이리라. 안다는 것, 그건 끊임없는 투쟁의 길이다 현실의 부조리를 아는 순간, 어떻게 살지 막막해졌다. 하지만 그 순간의 혼란은 ‘짜릿한 황홀감’이었다. 내가 살아 숨 쉬고 ..
2. 비고츠키가 알려주는 능력ㆍ장애ㆍ학습의 개념 우리를 구성하는 수많은 관계들은 생각지도 않은 채, 모든 문제점을 한 개인으로 환원하여 생각하기 쉽다. 예를 들면 능력의 유무, 성실성 유무, 장애의 유무 등과 같은 것들이 그렇다. 능력이란 무엇인가?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을 보고선 ‘능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그런 학생일수록 ‘역시 난 놈은 뭘 해도 잘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반면 공부 못하는 학생을 보고선 ‘능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하고, 뭘 조금이라도 잘 한다 해도 ‘어쩌다 보니 그런 것 뿐’이라고 단정 짓기 쉽다. 이런 판단을 통해 우린 ‘능력’을 ‘개인의 특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자. 여기서 ‘유능’이라는 판단 근거는 무엇인가? 바로 ‘추상적 사고 능력의 뛰어남’이다..
1. 객관적이지 않은 주관적으로 비고츠키 그리기 준규쌤의 건의에 의해 강의를 듣게 되었다. 6강으로 구성된 강의는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더욱이 배우려는 자세가 있긴 했던 걸까? ▲ 6강으로 구성된 이 강의는 교육학 시간에 배웠던 비고츠키를 완전히 깨부수었다. 산만한 정신을 부여잡고 후기를 쓰다 6강의 강의가 끝나는 순간 든 생각은 ‘이제야 끝났다’는 안도감이었다. 내용이 그렇게 어렵다거나, 힘이 부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 마음이 딴 데에 가있었다. 요즘 방향도 잡지 못하고 붕 떠있는 느낌으로 살다보니, 정신도 산만해져 있다. 이런 상태이기에 6강 동안 치열하게 알고자 했지만 헛수고였다. 준규쌤의 ‘관점이 있어야 상이 맺힌다’라는 말처럼 무언가 나만의 관점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러질 못..
목차 1. 돌아다니는 멍청이를 꿈꾸다 대학에서 ‘큰 배움’이 아닌, ‘작은 배움’만을 탐하다 작은 배움을 탐하다, 작은 틀에 갇히다 집에 있는 빠꼼이가 되길 원하다 집에 있는 빠꼼이가 아닌 돌아다니는 멍청이를 꿈꾸다 2. 삶이 배반한 자리에 희망이 어리다 삶이 배반한 자리에 서다 삶이 배반한 자리에서 싹튼 ‘지금-여기’ 삶론 실패할지라도, 도전해보다 지금-여기를 축복하는 삶이 만든 기적 3. 어색한 만큼 금방 친해진다 모르기에 떠나는 여행 ‘아기가 처음 만난 세계’를 어른이 되어 다시 느끼다 어색하기에 금방 친해질 수 있다 마재에서 느낀 다산의 향기 4. 정약용이 여유당이라 호를 지은 이유 마재엔 다산 인생의 시작과 끝이 담겨있다 여유당, 그기 뭐꼬? 5. 정약용이 가르쳐준 인생담 여유당에 스민 다산의 ..
정약용은 갑자기 닥쳐온 환란으로 집안이 쑥대밭이 됐지만 그걸 운명으로 치부하지 않고 자신이 불러들인 실존의 문제로 여겼다. 바로 이런 가치관이 여유당이란 호를 짓게 된 이유였던 것이다. ▲ 다산은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 보니, 의심하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아 비방이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여유당에 스민 다산의 마음 바로 다음의 문장에서 그는 드디어 ‘여유당’이란 당호를 짓게 된 경위를 말한다. 노자의 말에 “신중하도다 겨울에 냇가를 건너는 것처럼, 경계하도다 사방에서 나를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이라고 하였으니, 이 두 말이야말로 나의 병을 고칠만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일반적으로 겨울에 냇가를 건너는 사람은 한기가 뼈에 아리듯하기에 심히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건너지 않으며, ..
마재에 도착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통성명을 하며 친해지기 시작했다. 이럴 때 보면 사람은 어색한 상황을 어떻게든 정리하려 노력하는 게 보인다. 그러니 멋쩍을지라도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친해지니 말이다. 그 덕에 나도 두 명의 친구가 한 순간에 생겼고 ‘어색한 사람들과 어떻게 3박4일 동안 지내지’라는 우려는 말끔히 사라졌다. ▲ 마재에서 다산을 만났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 마재엔 다산 인생의 시작과 끝이 담겨있다 마재는 다산(1762~1836)이 나서 15년 동안 자란 곳이자, 12년의 공직 생활을 끝내고 1년간 머물다가 유배 후에 돌아와 18년을 살았던 곳이다. 마재에서만 34년을 산 것이니, 다산의 시작과 끝이 오롯이 담겨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
나에게 여행이란 ‘학교의 커리큘럼에 따라 계획되어 있기에 가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누군가에 의해서 여행을 떠난 적은 있었어도, 내가 원해서 떠난 적은 없었다. 그만큼 ‘내일만 보고 살아가는 놈’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능동적으로 살아가기보다, 다른 사람의 의지에 따라 수동적으로 살아갈 확률이 높단 말이다. ▲ 나에게 여행이란 이런 광경~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모르기에 떠나는 여행 그렇게 살아왔기에 나의 의지로 참가하기로 결심을 한, 실학순례는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이쯤 되어서 드는 생각은 ‘왜 여태껏 내 의지대로 여행을 떠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맘을 먹기 전까지만 해도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 막연히 했을 ..
무엇을 하든 ‘임용에 합격한 후에 하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임용이 된 후에 할 일 목록’을 만들기도 했고, 그런 영광의 순간을 위해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 합격 이후로 모두 다 미루어놓은 삶. 그러다 보니 '지금-여기'는 늘 거부되고, 저주하게 된다. 삶이 배반한 자리에 서다 하지만 첫 임용시험에서 보란 듯이 떨어지고 말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중등임용 시험의 경쟁률이 높으니, 첫 시험에서 떨어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닌,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임용을 보는 사람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첫 시험은 예행연습 삼아서 보는 거야’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런데도 원체 기대도 컸고, 4년 간 최선을 다해 달렸다고 생각하니 떨어짐의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삶이 언제고 맘..
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얼마나 많은 날을 지냈는지 모른다. 앞날은 불투명했지만 어찌 되었든 대학에 왔으니 어떻게든 될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때론 그렇게 생각 없이, 고민 없이 정해진 수순대로 살아갈 때가 있다. 하긴 ‘때론’이 아니라, ‘대부분’이 그렇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게 정해진 길만을 걷다 보면, 그게 ‘당연히 가야 할 길’로 보이고, 그 길 외엔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 인생엔 분명 무수한 갈림길이 있지만, 우린 갈림길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저 하나의 길만 보고 맹목적으로 따라갈 뿐이다. 대학에서 ‘큰 배움’이 아닌, ‘작은 배움’만을 탐하다 하지만 모두 다 그렇게 들어서서 가고 있는 길이라 해서, 아무런 걱정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10대엔..
목차 1. 전통이란 이름의 폭력 영화가 소설보다 못하다? 전통이 올가미가 되다 2. 영화 속 학교, 현실 속 학교 학교라는 이름의 감옥, 학교라는 이름의 획일화 기구 학교라는 감옥에서 탈출하는 법 3. 학생들에게 처음으로 준 선택권: 호칭 정하기 너는 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학생들에게 호칭을 선택할 자유를 주다 4. 카르페디엠Carpe Diem 체험, 박물관 현장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을 살라 5. 교사의 교육관과 수업 이벤트적인 수업 & 판에 박힌 수업, 그 사이의 줄타기 교육관이란 이상이 수업을 통해 현실이 된다 6. 불가능한 꿈을 꾸는 리얼리스트가 되라 키팅,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다 ‘자유로운 사색가와 예술가’라는 인식의 차이 키팅과 학생들이 빚어낸 이야기의 장으로 7. 교과서..
22. ‘죽은 시인의 사회’ 넘어서기2 둘째, 교사가 교육에 대한 욕심을 내면 낼수록, ‘학생을 변화시키겠다’는 생각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학생과의 관계는 왜곡된다는 점이다. 교사의 의욕이 학생의 성숙을 막는다 교사가 학생들에 비해 앞서서 생각할수록, 앞서서 계획할수록 학생들의 입지는 좁아지고 소외되게 마련이고, 교사가 가르쳐주고 싶은 게 많으면 많을수록 학생들의 배우고자 하는 마음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교사는 ‘학생보다 한 걸음 앞서 가선 안 되며, 반보만 앞서 가면 된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교사가 된 입장에선 하나라도 더 학생들에게 가르쳐주고 싶고, 자신이 살아오면서 느낀 것들을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다 보니, 의욕이 앞설 때가 많다. 그래서 수많은 교사들이 개인의 역량을 ..
21. ‘죽은 시인의 사회’ 넘어서기1 『죽은 시인의 사회』는 1950년대 미국의 한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국과는 무려 60년 이상의 시간차가 있음에도, 그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전혀 낯설거나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얼핏 생각하면 그만큼 선진적인(?) 미국의 교육제도를 잘 따라갔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보다는 미국은 예전부터 경쟁주의의 사회였고 한국도 그런 풍조가 있었지만 IMF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를 받아들이며 급속도로 닮아갔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 일제고사로 경쟁을 가속화 시키고, 당연하게 줄을 세운다. 그러면서도 그런 세상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만 한다. 이 영화는 우정담이자, 갈등담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 한국의 학생들은 여전히 토드처럼 자기표현을 잘 하지 못하며 학교에서 하라는..
20. 학창시절에 공부가 아닌 사랑을 쟁취하다 용기를 내어 짝사랑하는 크리스에게 녹스는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금요일 파티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이미 녹스는 크리스에게 양혼자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한 번 일어나 마음의 불꽃은 자신도 어쩔 수가 없었다. ▲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녹스는 파티장에서 엄청난 쓸쓸함을 느끼게 된다. 처음으로 그녀에게 마음을 전하다 물론 크리스는 녹스만을 초대한 게 아닌, 모든 친구를 초대한 것이다. 하지만 녹스는 그녀가 자신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감격하며, 금요일 저녁의 파티 시간이 빨리 오길 기다렸다. 녹스는 크리스와 조금이라도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파티장에 들어갔지만 역시나 사람은 너무도 많다. 거기다가 크리스는 양혼자인 쳇트만 찾을 뿐..
19. 안 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키팅과 학생들과의 만남이 맛남이 되면서, 꽉 억눌려 있던 토드는 감정 표현의 화신이 되었고, 아버지의 인형(대리인)으로 살며 한 번도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보지 못한 닐은 정열의 화신이 되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많은 군상 중 토드와 닐을 살펴봤다면, 녹스를 건너뛰어선 안 된다. 교학상장의 변화를 살펴보는 이 자리에 마지막으로 초대된 사람은 바로 녹스 오버스트리트다. 그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 학창 시절의 로맨스를 금기로 여긴다. 공부에 방해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하이틴 로맨스 소설'이 판친다. 가혹한 운명의 장난 녹스는 아버지 친구의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았다. 그래서 학교에 양해를 구하고 그곳에 갔는데 글쎄 그곳에서..
18. 인형이 아닌 인간이 되길 희망하다 닐은 정말 하고 싶은 일이었기에 아버지 몰래 오디션을 봤고 남자주인공이란 배역도 맡게 되었다. 하지만 이 내용을 친구에게 듣게 된 아버지가 다짜고짜 기숙사를 찾아와 영화 초반의 졸업연감 만드는 일을 그만두게 만든 것처럼 화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영화 초반의 닐이었다면, 마찬가지로 연극도 포기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거부를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킬 각오는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닐, 꿈을 향한 정열의 화신이 되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를 알게 됐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 앞에선 마지못해 대답을 했지만, 이번에는 관두지 않을 것이다. 단지 아버지와 말을 해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에, 그나마 얘기를 할 수 있는 키팅을 찾..
17. 사람에게 인형이 되길 희망하다 교육은 대화여야 한다. 가르치려는 사람과 배우려는 사람이 유기적으로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해야만 한다. 키팅의 교수방법이 탁월한 이유는 단순히 남다른 수업을 했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학생과 주고받는 수업을 했다는 데에 있다. 그에 따라 키팅 자신도 성장해 갔으며, 그를 만난 학생들도 성장해갈 수 있었다. 의식의 움직임을 통해 그들은 만나며 함께 성장해 갔고, 그에 따라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해갔다. ▲ 만남은 서로에게 변화를 만들어 낸다. 닐의 아킬레스건, 아버지 닐 페리는 꽤나 유쾌하면서 밝은 학생이다. 학교생활도 잘하며 교우관계도 좋다. 더욱이 성적까지 좋으며, 토드와 같이 소심한 친구까지 살뜰히 챙길 줄 아는 팔방미남형 인물이다. ▲ 토드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닐...
16. 감정에 충실한 화신 토드의 변화는 두 장면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첫 장면은 닐이 자살했다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전해들은 뒤에 토드가 반응을 보이는 장면이다. 토드, 감정에 충실한 화신이 되다 당연히 ‘죽은 시인의 사회’ 멤버였던 친구의 죽음을 전해 들었기에 깊은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친구들은 슬픔을 절제하며 표현하지 않는데 반해, 토드는 온 몸으로 표현하며 “(닐의) 아버지 때문이야”라고 설움 가득한 목소리로 외치며 눈밭을 뒹군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된 이후부터 토드는 어찌 보면 슬픔, 분노, 기쁨 무엇 하나 할 것 없이 가장 잘 표현하는 ‘표현의 달인’이 된 것이다. ▲ 울부짖으며 맘껏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토드. 두 번째 장면은 닐의 자살이 키팅 때문이라고 결론이 났..
15. 감정을 폭발시켜라 토드는 12번째 후기에서도 잠시 살펴봤다시피 형의 후광에 짓눌려 자기표현도 잘 하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그런 학생이 키팅의 수업을 받고 친구들이 조직한 ‘죽은 시인의 사회’에 들어가면서 여태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 ▲ 입학식 때의 도드. 한껏 주눅 들어 있고, 그로 인해 말수도 적다. 닐과 룸메이트가 되면서 표정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사람의 변화는 내부와 외부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물론 여기서 한 가지 확실히 하고 가야할 점은 토드의 변화는 결코 외부의 자극 때문만이 아니라, 그걸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불편한 순간들을 감내하면서 스스로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즉, 모든 변화는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처럼 외부의 조건과 내부의 노력이 함께..
14. 가르치고 배우며 함께 성장한다 앞에서 쓴 13편의 후기를 통해 영화에 묘사된 학교가 현재의 한국 학교와 얼마나 비슷한지, 그 와중에서도 키팅 선생의 수업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수업인지 살펴봤다. ▲ 키팅의 수업은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에겐 하나의 좋은 소스가 된다. 교육은 대화다 하지만 아무리 한 교사의 교육철학이 탁월하고 교수방법이 좋다 할지라도, 그게 학생들에게 가 닿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교육은 교사만의 것도, 학생만의 것도 아닌, 쌍방의 유기적인 흐름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 교육은 대화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쌍방의 주고 받음과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은 대화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대화란 두 사람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고, 그 ..
13. 나만의 속도, 나만의 걸음걸이로 가다 키팅의 수업은 각 시간들이 나름의 의미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번 수업 시간엔 학생들을 밖에 모이게 하여 일렬로 세우고 원을 그리며 돌게 했다. 처음에 걷기 시작했을 땐 각자의 템포에 맞춰 걸으니, 속도도 맞지 않아 뒤죽박죽이 됐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조금 시간이 지나자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도 속도가 맞고 심지어 발까지 맞춰졌다. 이런 상황을 보면 누군가는 ‘학생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은 결과’라며 흡족한 표정을 지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처럼 개인주의가 판을 치고 공동체 마인드를 볼 수조차 없는 시대엔 제식훈련을 하듯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좋아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속도가 맞고 발이 맞기 시작했다. 공동체를 지향하되,..
12. 표현의 수업 키팅의 네 번째 수업 시간은 야외에서 진행되었다. 키팅은 공을 가득 담은 그물망을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엔 ‘시구가 적힌 쪽지’를 쥐고 학생들과 운동장을 걸어간다. 한 가운데에 도착하자 키팅은 학생들에게 시구 하나씩을 나눠주고 그들을 일렬로 서게 한다. 학생들은 자신이 받은 시구를 크게 읽은 후에 그 감정을 담아 공을 발로 차는 것이다. ▲ 공을 찬다는 건, 나에게 달라 붙어 있는 불안, 공포, 후회의 온갖 감정을 날려 버린다는 의미가 있다 나를 표현하라 학생들이 시구를 읽고 공을 찰 때 키팅은 휴대용 턴테이블로 음악을 튼다. 음악을 튼 이유는 리듬에 맞춰 시를 좀 더 리드미컬하게 낭독하기 위해서이며, 작게 웅얼거리는 학생의 경우 음악 소리에 낭독 소리가 묻히기에 크게 낭독하도록 만..
11. 욕망의 수업 우리가 학창 시절에 자주 들었던 말이자,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던 말은 “지금은 참아라. 대학에 가면 그땐 원하는 것을 다 할 수 있으니”라는 말이었다. ▲ 서양과 동양이 자식 교육에 있어서는 완벽하게 하나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 지금은 참아라, 나중에 원하는 건 다할 수 있다 이 말은 현재 하고자 하는 수많은 것들을 가로막고 오로지 공부만을 강요할 때 쓰이며, 여기에 대해 누구도 함부로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게 한다. 학생이라면 누구나 ‘학생의 본분은 공부하는 것’을 알기에, 그것 외에 다른 것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이런 현실에 머물다 보니 자연히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사라져 갔고, 으레 해야 할 것들만 남게 되었다. 이럴 때 헛갈리는..
10. 교탁에 올라서라 시가 얼마나 우리의 일상에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는지를 알려줬다. 그러다 갑자기 키팅은 교탁에 올라간다. 그러면서 학생들에게도 똑같이 교탁을 밟고 올라설 것을 주문한다. 역시나 꽤나 황당한 장면이다. 과연 현재 한국에서 학생들이 교탁에 올라간다면, 교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니 교사가 올라가라고 해서 올라갔다 해도 그걸 본 다른 교사들은 그 교사에게 어떤 반응을 보일까? 더욱이 지금처럼 교탁이 최신 기자재로 바뀐 상황에선 더더욱 이와 같은 광경은 힘들 것이다. ▲ 교탁에 올라선 키팅. 학생들도 '저 선생이 왜 저러나?' 의아했을 것이다. 다른 시각으로, 자기 자신 안에 억압된 영감으로 세상을 대하라 키팅이 그와 같이 도발적(?)인 행동을 하도록 한 데엔,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
9. 틀을 깨고 나오라 존 키팅 선생과의 두 번의 수업은 학생들에게 충격을 줌과 동시에 깨달음도 함께 선사했다는 이상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여태껏 학생들은 수많은 교사들을 만났지만,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이걸 우린 ‘파격’이라 표현할 수 있다. ▲ 격은 어느 순간까진 필요하지만, 그 이후엔 과감하게 깰 수 있어야 한다. 틀이 필요한 순간 & 틀을 깨야할 순간 파격破格은 ‘격(틀)을 깬다’는 말이다. 틀은 무언가를 하기 위해 최적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3년 전에 수영을 배웠는데, 그 때 강사가 가장 중시하는 게 영법에 따라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점이었다. 자유영을 할 때 최대한 팔을 큰 원을 그리듯 휘둘러 몸이 물과 수평이 되도록 해야 하고, 그럴 땐 숨을 크게 쉴 ..
8. 남과 같지 않기를 키팅은 단순히 욕을 한 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말은 행동으로 실천되어야 하고, 행동은 말로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言行一致, 行言一到). 그래서 키팅은 학생들에게 “서문을 모조리 찢어라”는 아주 파격적인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 교과서를 찢으라니, 학생들의 표정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쓰레기”를 가차 없이 뜯어 버리라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만해도 교과서에 낙서를 한다거나, 교과서를 비판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었다. ‘교과서=진리’라는 생각이 있었기에, 익히고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하니 교과서를 찢는다는 건, 매우 불경스러운, 그래서 양심의 가책까지 느껴지는 일이었던 것이다. 내가 학교 다닐 때도 그랬는데 1950년대가 배경인 이 학교의 ..
7. 교과서 첫 페이지를 읽고 ‘쓰레기’라 외치다 존 키팅 선생은 첫 수업을 하며 학생들에게 ‘불가능한 꿈을 꾸는 리얼리스트’의 면모를 여지없이 보여줬다. 여태껏 만나왔던 교사와는 달리, 전혀 의심조차 하지 않고 받아들였던 ‘현재를 희생물로 바쳐라’는 정언 명령과는 달리, ‘현재를 즐겨라(Seize The Day / Carpe Diem)’라는 말에 학생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과 마주칠 때 사람은 두 가지 반응 중 하나를 보이게 된다. ‘신선해’, ‘재밌어’라고 생각하여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던지, ‘왜 저래?’, ‘뭐지?’라는 의심의 눈초리로 거부하려 하던지 말이다. 두 가지 반응은 어찌 보면 맞닥뜨린 상황이 얼마나 당황스러웠고, 갑작스러웠는지를 알려준다고도 할 수 있다..
6. 불가능한 꿈을 꾸는 리얼리스트가 되라 키팅의 교육관은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84p)’이다. ‘생각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가 정해놓은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객체로서의 사람이 아닌, 자신의 길을 만들며 ‘두 갈래 길 중 인적이 드문 길’로 갈 수 있는 주체로서의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 자취가 적은 길로 갔고, 그게 인생을 바꿨다는 말이야말로 생각하는 삶이 무언지를 보여준다. 키팅,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다 그 당시 교육이란 국가에서 정해준 지식만을 가르칠 수 있었고, 학생들은 그걸 맹목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물론 21세기인 한국은 현재도 국정교과서라는 쾌쾌 묵은 방식으로 국가가 지식을 정해주고 그것만을 가르치도록 강제하려 하고 있으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
5. 교사의 교육관과 수업 ‘처음’은 강인한 인상으로 남든지, 지루한 일상으로 남든지 한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것과 완전히 빗나갈 때 나의 이성으로 알던 영역을 벗어나서 앎의 희열을 맛볼 때 강인한 인상으로 남지만, 판에 박힌 경험일 때 여태껏 알던 내용의 반복일 때는 지루한 일상으로 남는 것이다. ▲ 첫 수업을 들으며 학생들은 깅인한 인상을 받았다. 이벤트적인 수업 & 판에 박힌 수업, 그 사이의 줄타기 키팅 선생의 첫 수업은 학생들에게 강인한 인상으로 남았다. 여태껏 경험하지 못했던 순간이었고,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던 순간이었기에, 학생들은 “등골이 오싹했어”, “이상했어”라는 평가를 한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첫 수업만을 보고 좋다, 나쁘다 평가하는 건 너무도 어리석은 행동이다. 한 번의 임팩트 있..
4. 카르페디엠Carpe Diem 그렇다면 키팅은 왜 첫 수업시간에 학생들을 박물관에 데리고 간 것일까? 그 박물관엔 선배들의 의기양양한 사진이 걸려 있다. 명문학교답게 그곳에 다니던 선배들은 열정이 가득했고, 얼굴엔 자신감이 흘러넘치며,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에 가득 부풀어 있었다. 겨우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만족감과 희망을 단번에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사진을 보여주며 키팅은 ‘선배들의 사진을 보면서 너희들도 자신감과 희망을 가지고 힘내서 학교생활을 해보렴’이라 말하고 싶었던 걸까? ▲ 젊음의 열정. 그리고 자신감이 한가득 보인다. 이걸 본받으라는 것인가? 체험, 박물관 현장 하지만 역시나 기대를 깨듯 “너희와 별로 다르지 않을 거야. 그렇지? 머리모양도 같고, 너희처럼 젊..
3. 학생들에게 처음으로 준 선택권: 호칭 정하기 교실이란 공간에서 교사와 학생의 첫 만남은 긴장이 넘친다. 물론 단재학교는 작은 학교이기에 이렇진 않지만, 일반학교는 그렇다는 얘기다. 이상적으론 교사가 교실에 들어서면 학생들이 환호를 하며 맞이해줄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학생들은 교사의 등장과 전혀 상관없이 원래 하던 대로 떠들고, 교사를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학생들은 그런 과정을 통해 교단에 선 교사가 어떤 사람인지, 어디까지 자기들의 뜻대로 할 수 있는지 떠보려는 것이다. 그런 상황을 알기 때문에 교사도 교실에 들어갈 땐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표정은 굳어질 수밖에 없다. 이때 기선을 제압하지 않으면 1년 내내 힘들 수 있다는 생각에, 더욱 더 표정은..
2. 영화 속 학교, 현실 속 학교 이제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된다. 그런데 첫 수업부터 우리가 어디서 많이 보던 광경이 나온다. 무작정 시험에 나오는 것을 추려서 반복 연습을 시키는가 하면, 많은 분량의 숙제를 내주고 그걸 하지 않으면 1점을 감점하겠다고 윽박지른다. ▲ 배우는 이유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그저 점수를 받기 위해 좋은 상급학교에 가기 위해 배우는 것일 뿐이다. 학교라는 이름의 감옥, 학교라는 이름의 획일화 기구 이와 같은 단순한 수업, 겁주기 수업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다. 바로 이 학교에선 대입 위주의 교육을 한다는 것과 그것만 잘 따라오면 일류대학 입학은 떼어 놓은 당상이기 때문이다. 고로, ‘내가 행하는 어떠한 불합리한 것이라도 믿고 따르라, 그리하면 너에게 대학 합격의 명예가 뒤..
1. 전통이란 이름의 폭력 『죽은 시인의 사회』는 영화보다 책으로 먼저 접했고 독후감을 먼저 썼었다. 그러니 이젠 본격적으로 영화를 본 이야기를 나눌 차례다. 꼭 이렇게 말하고 나니 ‘일에도 순서가 있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전혀 그런 말은 아니다. 단지 나의 경우엔 책을 먼저 읽고 그 감흥으로 영화를 보게 되었기에, 책의 내용이 어떻게 영상으로 구현되었는지 확인하고 싶었고, 그게 어떤 울림을 낳게 되는지 알고 싶었다. ▲ 영화와 소설, 당연히 소설이 감정 표현이나 상황 묘사가 자세하다. 하지만 영화도 충분히 매력적이기에 같이 보면 금상첨화다. 영화가 소설보다 못하다? 소설의 내용을 영화한 경우, 우린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활자로는 세밀한 감정의 표현이나 정황의 묘사가 가능하다. 문자라..
2018년 제주도 자전거 일주여행 1. 갑갑증이 몰려올 땐 무작정 떠나야 한다 즉흥적인 제주 여행, 콜? 떠나면 보이는 것들 ‘파랑새는 곁에 있다’는 말의 의미 2. 무작정 제주로 떠나다 홀로 떠나는 여행이 주는 선물 제주에 스민 역사, 나에게 스밀 제주 3. 우연처럼 두려움을 안고 제주행 비행기를 타다 망상에 시달리던 새해 첫 날의 풍경 발작적으로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표를 예매하다 우연을 저주가 아닌 축복으로 여기며 두려움으로 시작한 제주 여행의 시작 4. 공항검색대는 언제나 날 긴장시킨다 해보면 별 것 아니지만, 해보기까지가 힘들다 검색대는 언제나 나를 긴장하게 한다 비행기가 뜨면 몸이 근질근질 거려 5. 제주를 보니 열정이 샘솟는다 제주를 마주치는 순간, 전혀 다른 나를 발견하다 만남은 맛남이 될 ..
26. 제주여행이 준 선물, ‘한 평생이란 시각’ 자전거점에 자전거를 반납하니 공항까지 태워다 주신다. 역시나 방학 기간 중 주말답게 공항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알쓸신잡에서 유시민씨가 말했던 것처럼 70~80년대엔 신혼여행지의 대명사였지만, 지금은 그저 쉽게 오고 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하긴 나도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작정 제주에 온 것이니, 제주는 이제 더 이상 머나 먼 유배지의 땅은 아니게 된 것이다. 나만큼 이들도 이곳저곳 다니며 2018년을 활기차게 시작하는 계기를 마련했겠지. ▲ 사람이 가득 찬 공항. 제주에 왔지만 집에 가려는 사람이 많다 보니 이런 북새통을 이룬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전주 비행기는 공항을 벗어나 활주로에 진입하기 전 단계에서 멈췄다. 이곳은 하나의 활주로를 ..
25. 제주에서의 마지막 식사와 여행의 마무리 김만덕기념관을 둘러보고 나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이중섭미술관에선 이중섭을 만나 가슴 뭉클했었는데 여기서도 김만덕을 직접 만나 가슴 절절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김만덕은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의 사람이고 이중섭은 50년 전의 사람이지만, 기념관과 미술관을 둘러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그들 또한 나와 전혀 다르지 않은 팔팔 끓는 가슴을 지닌 사람이었다는 걸 알겠더라. 이래서 맹자는 “옛 시를 읊고 옛 글을 읽었는데도 그 사람을 모른다고 한다면, 그건 말도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옛 사람이 살던 때를 말할 수 있게 되니, 이것이야말로 ‘옛 사람을 벗 삼는다(尙友)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나 보다. 그들을 통해 나도 그들과 벗이 되었으..
24. 김만덕 이야기를 통해 사람평가에 대해 생각하다 김만덕이 갑인흉년에 제주민들에게 쌀을 나눠줬다는 훈훈한 이야기는 굳이 소문내려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입을 타고 금세 퍼졌다. 이 이야기를 듣게 된 정조는 매우 흐뭇했으리라. 그래서 그녀에게 상을 주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그걸 거부한다. 어찌 보면 그 마음이 이해가 된다. 자신은 상을 받기 위해, 기림을 얻기 위해 이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했을 테니 말이다. 그런 마음으로 했는데 상을 받게 되면 자신의 진심이 훼손될 것을 알기에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 흉년에 제주민들에게 양곡을 구입하여 그대로 나누어준다. 만덕,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인물로 기려지다 그래서 상을 주는 대신 소원을 말하라고 하니 만덕은 “달리 원하..
23. 김만덕의 파란만장한 삶과 갑인흉년에 드러난 진심 아침으론 어제 먹다 남은 것들로 간단하게 먹고 마지막 날의 일정을 시작했다. 제주박물관의 개관시간이 1시간 늦춰졌기에 그곳엔 갈 수는 없었고, 여기서 가볍게 둘러볼 수 있는 김만덕기념관에 가기로 했다. 김만덕 기념관은 제주항 부근에 있기에 자전거를 타고 1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하긴 김만덕이 활동하던 당시의 제주는 지금처럼 번화한 곳은 아니었다. 제주항 부근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았으며 김만덕은 이곳에 객주를 열어 장사를 시작했으니 말이다. ▲ 후덕한 인상이 보기 좋다. 대모와 같은 풍모가 어린다. 김만덕기념관에 들어서다 기념관에 들어서니 김만덕(1739~1812) 상과 그 앞에 나란히 쌓아올려 진열된 ‘김만덕 사랑의 나눔쌀’이란 포대자..
22. 몸을 맡겨 흐를 수 있길 어제 저녁에 동문시장에서 회와 김밥, 튀김, 순대, 어묵탕을 사와서 한라산 소주와 함께 먹으며 제주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6년 만에 찾아온 제주지만, 3일 동안 자전거를 타고 일주를 하고 나니 늘 있었던 곳인 양 편하게만 느껴지더라. 이래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하나보다. 하지만 이렇게 여행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제주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고 생각하니 사무치게 외로워진다. ▲ 한라산 한 잔에 젖어든 외로움 하나. 빈 공간을 채우려 애쓰다 살다보면 사무치게 외로운 날이 있다. 가족도 날 달래주지 못하고, 책 읽거나 영화 보기조차 귀찮은 그런 날이 있다. 이런 날이면 나는 친구를 생각한다. 술이나 한잔하자고 할까? 그러나 이내 그만두고 만다. 가슴 한쪽이 텅 빈 듯한 공허감..
21. 제주의 마지막 밤이 아쉬워라 성산포항에 도착했으니 이젠 목적지를 정해야 한다. 조금만 달릴 거면 김녕까지만 가면 되지만, 좀 더 욕심을 낼 거면 삼양동까지 갈 수도 있다. 물론 그러려면 그 근처에 머물 만한 모텔이 있느냐가 중요하지만 말이다. ▲ 거대한 거인처럼 풍력발전기가 돌고 있다. 연거푸 이틀에 걸쳐 두 번이나 스쳐 지나간 인연 그래서 먼저 삼양동 근처의 모텔을 검색해보니 거기엔 숙소가 거의 없고 시내 외곽 부근부터 많더라. 이런 경우 고민의 여지는 없다. 어차피 내일이면 여행을 마무리 지어야 하기에 오늘 좀 더 많이 달린다고 해도 괜찮으니 말이다. 그래서 별 다른 고민 없이 시내 근처의 모텔을 예약했다. 지금 시간은 12시 20분 정도이고 지도상으론 여기서 제주 외곽까지 2시간 40분이면 ..
20. 대야에 담긴 물 같은 나의 마음 세 가지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고 땅콩아이스크림으로 입가심을 한 후에 음식점을 나왔다. 10시 24분에 들어가 11시 30분까지 있었으니, 정말 느긋이 먹은 셈이다. ▲ 한 시간이 넘도록 음식을 느긋이 먹었던 추억의 장소. 순간에 머물 수 있던 점심 식사 시간 음식을 먹더라도, 차를 마시더라도 이처럼 여유롭게 먹고 마시고 싶었다. 일상에 치여 살면 먹는 재미, 마시는 묘미, 그 시간을 즐기는 설렘을 모두 망각하게 된다. 그런 것들은 모두 살아가기 위한 방편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느 순간엔 ‘내가 무얼 위해 이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지?’라는 회의감이 밀려온다. 나도 일상에 치여, 삶에 갇혀 하루하루를 지내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턴 내 자신이란 ..
19. 처절하게 외로워져라 난 여행인데도 멋진 풍경을 볼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무작정 달릴 때 사무치게 외로움이 밀려오며 내 몸은, 나의 감정은 사시나무 떨 듯 떨렸다. 외로워지고 싶었지만 막상 외로움이 밀려드니, 그 감정을 주체하질 못하겠다. 이래서 사람인 거겠지. ▲ 우도의 풍경에서 밖을 내다 보고 찍은 사진. 사무치게 외로움이 밀려온다. 외로움에 사무치는 이에게 주는 선물 그래도 때론 외로워질 필요도 있다는 걸 느낀다. 그래야만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와 관계 맺은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외로워져야만 좀 더 내가 처한 상황이 명확하게 보이고 내 자신을 분명하게 알게 된다. 나란 사람은 참으로 누군가의 평판이나 기대에 한없이 흔들리는 사람이었다. 좋은 평판을 받기 ..
18. 후회 없던 우도 소풍에서의 점심식사 한참 해수욕장에서 바다를 보며 감상에 젖어들고 있으려니, 서서히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우도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뭐가 있는지 찾아봤다. 자전거를 타고 오는 내내 보니 ‘땅콩아이스크림’이라 씌어 있는 간판이 자주 보이더라. 땅콩아이스크림이라면 월드콘 위에 얹어 있는 땅콩이 떠오른다. 과연 그 맛과 무엇이 다른지 한 번 먹어봐야겠다. ▲ 날씨가 확 개었다. 호기롭게 주문한 점심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음식점이 눈에 띄었다. 거긴 해물짬뽕과 한라산 볶음밥, 전복스테이크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먹을 수 있는 곳인데, 매우 맘에 드는 점은 일인분도 주문이 가능하다는 거였다. 홀로 여행족이 가장 난감할 때가 그 지역의 음식을 먹고..
17. 콧바람 쐬며 우도에 왔어요 자전거는 구석에 잘 묶어두고 객실로 올라갔다. 내 기분처럼 하늘도 서서히 개며 햇살이 서서히 비춰오더라. 제주에 자주 오는 사람들은 바로 객실로 들어가 앉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 구름이 서서히 걷히며 햇볕이 비친다. 그에 따라 성산일출봉도 밝아지고 있다. 여행하는 자여, 콧바람을 쐬라 이렇게 제주의 바다를 건넌다는 게 신기했고, 제주의 바닷바람을 맘껏 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간에 기대어 배가 출발하길 기다렸다. 마지막으로 배를 탔던 건 남이섬에 갈 때였다. 거긴 북한강 한 가운데 있는 섬이기에 이렇게까지 물살이 세지도 바람이 세차지도 않았는데, 여긴 바다답게 물살이 심하게 일렁여 배는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며, 날카로운 바람이 옷깃 속을 파고들더라. ..
16. 섬 속의 섬, 우도에 이끌리다 어제 오후에 성산읍으로 달릴 때 하늘이 잔뜩 흐려졌고 바람까지도 심상치 않게 불어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했다. 그래서 잔뜩 긴장하며 달렸는데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고 머지않아 잠이 들었다. 정말 푹 잔 느낌이다. 이곳은 그래도 호텔이란 이름에 걸맞게 깨끗하고 시설도 좋은 편이며,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많아 편안한 분위기다. 6시에 일어나자마자 반사적으로 커튼을 젖히고 비가 오는지를 살폈다. 어제 발표된 일기예보엔 저녁부터 오늘 오전까지 비가 오는 걸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여전히 비가 온다면 이곳 퇴실 시간인 11시까지 뒤비져 놀다가 나가볼 작정이었다. 그래서 날씨를 확인한 건데, 다행히 하늘엔 구름만 껴 있을 뿐 비는 그쳤더라. 무작..
15. 존재가 선물이 되는 순간 표선면까지 가는 길도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오후가 되면서 구름이 가득 끼더니 더욱 흐려졌고 맞바람까지 불어 속도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2시간 정도 걸릴 거리가 그래서 2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다. ▲ 2011년 사람여행 때 포항에서 영덕으로 가는 길에 아침으로 먹은 것. 이때 맥주의 맛을 알았다지. 제주식 해장국? 점심으론 뭐를 먹을까 하다가 어제 점심엔 중화요리를 먹었기에 오늘은 다른 걸 찾기로 했다. 제주에서만 먹을 수 있는 해물요리(딱새우 된장찌개나 자리물회 같은 것)가 끌리긴 했는데 막상 마을에 들어섰음에도 눈에 보이는 음식점이 별로 없더라. 그때 해장국집이 보였는데 아침에도 해장국을 먹었기에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배가 무척 고팠고 심하게 부는 바람에 시달려 ..
14. 지도 들고 떠날 것인가, 스마트폰 들고 떠날 것인가 이중섭에 대해 그다지 관심은 없었지만, 이번 제주여행에 필수 코스로 넣은 것은 매우 잘한 일이었다. 막상 이중섭미술관에 들어가 보니 그가 내게 다가와 인생담, 예술관, 그리고 가족에 대한 소회 등을 맘껏 얘기해주는 것만 같았으니 말이다. 정현종 시인의 ‘사람이 온다는 건 /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그는 / 그의 과거와 / 현재와 / 그리고 /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라는 시처럼 그의 무수한 얘기들이 나를 흔들었다. 2011년에 사람여행을 하며 느꼈던 사실과 같이, 그 장소가 누군가와의 추억으로 채워지면 그 장소는 뭇 장소가 아닌 ‘그 장소’로 기억된다. 거기엔 우리가 함께 나눈 숨결과 이야기들이 ..
13. 이중섭미술관엔 이중섭이 살아있다 그의 작품 중 춘화라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은지화는 꼭 봐야만 하는 작품이다. ▲ '몰고기와 아이들' 작은 은지에 그린 그림이기에, 자세히 봐야만 보인다. 은지에 새겨진 가족애 우선 재료가 독특하다는 점이다. 담배를 감싸고 있던 은지를 날카로운 도구로 긁어 그림을 그렸으니 말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해방부터 한국전쟁까지의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인해 미술도구를 다 갖추고 창작활동을 할 수 없던 열악한 시대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스케치를 할 수 있는 도화지도 없고, 색칠을 할 수 있는 물감도 없다. 이런 상황에선 웬만한 창작열이 있지 않다면 대부분 창작활동은 포기하고 다른 생업을 찾아 전전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12. 이중섭미술관은 한바탕 울만한 곳이다 이중섭 미술관은 3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에선 이중섭의 연대기 및 주요 은지화 작품들, 그가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들, 그리고 아내에게 주고 온 팔렛트가 전시되어 있고 2층엔 그의 대표작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3층은 전망대로 제주의 남해를 시원하게 내다볼 수 있다. ▲ 3층 전망대에선 제주의 남해가 시원하게 보인다. 극도의 외로움과 가족애가 만든 이중섭의 작품세계 그는 21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문화학원에 다니며 미술을 본격적으로 공부했고 그 학교에 후배로 있던 야마모토 마사코와 사귀게 된다. 그 후 28살에 원산으로 입항하며 한국에 정착하게 되고, 30살이 되던 해에 그녀와 결혼하며 그녀에게 ‘이남덕’이란 한국식 이름을 지어준다. 그때는 1945년 5월로 해방..
11. 한문학도가 이중섭미술관을 찾은 이유 최근에 ‘알쓸신잡’이란 TV프로그램을 알게 되어서 재밌게 보고 있다. 이 프로는 단순히 여행을 하고 별 의미 없는 게임을 하는 여타 프로그램과 달리, 여행한 후에 인문학자, 건축학자, 뇌과학자, 음식전문가와 같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느낀 점을 스스럼없이 말하는 프로다. 요즘 자주 회자되는 ‘지식의 통섭’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라 할 수 있고, 그걸 통해 우린 그들이 여행한 곳의 인문, 사회, 건축, 음식 등의 다양한 지식들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 '알쓸신잡'은 통섭적 학문을 프로그램으로 구현했다. 그래서 보는 재미가 있다. 한문학도가 바라본 여행을 담아내기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학문은 잘게 쪼개어져 과학을 하는 사람은 과학만, 철학을 하는 사람은..
10. 서귀포로 가는 아름다운 길을 달리다 어젠 그래도 간간히 햇살이 비치며 기온도 높아 꽤 덥게 느껴졌는데, 오늘은 벌써부터 구름이 한가득 끼어 있어 서늘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목도리를 목에 칭칭 감고, 겨울용 외투로 중무장을 했다. ▲ 가까운 곳에 해장국집이 있어서 들어왔다. 배불리 먹고 이튿날의 일정을 시작해보련다. 해장국, 넌 나에게 치욕을 안겨줬어 아침은 호텔 근처에 있는 미향해장국집에서 먹기로 했다. 아침 식사를 해주는 곳인 줄은 알았는데,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 문을 열고 들어가 “해장국 하나 주세요”라고 말했더니, “얼큰한 맛과 순한 맛 중 뭐로 드릴까요?”라고 묻는다. 보통 때였으면 당연히 순한 맛을 시켰을 거다. 누군가는 매운 것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는데, 난 매운맛은 질색이니..
9. 일찍 일어나는 새가 일찍 지친다 어제 밤 11시쯤에 잠이 들었나 보다. 저녁 7시까지 페달을 밟아 하루 만에 제주에서 서귀포까지 달리고보니 몸은 완전히 파김치가 됐다. 낯선 공간이라 선잠을 잘 법도 한 데도, 몸을 누이자마자 언제 잤는지도 모르게 꿀잠을 잘 수 있었다. ▲ 싱글 베드 두개가 놓인 방이라, 아무래도 좀 저렴했던 거 같다. 저녁으론 통닭을 먹으며 알쓸신잡을 봤다. 비를 맞는 여행의 묘미? 오늘 서울은 영하의 강추위가 이어진다고 하던데 이곳 제주는 어제와 똑같이 영상 4도로 포근하기만 하다. 막상 자전거 여행을 하기로 맘먹었을 때만 해도 ‘겨울이라 하이킹이 가능할까?’라는 걱정을 했는데, 그런 걱정 따위는 ‘넣어둬~ 넣어둬~’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포근하기만 했으니 정말 다행이다. 단..
8. 사람 맘은 참으로 간사하다 그런데 그때쯤 잠시 후회가 밀려왔다. 제주에 와서 늘 반시계 방향으로 돌며 자전거 여행을 했었기에 이번에도 별 생각 없이 반시계방향으로 돌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 말이다. ▲ 오후가 되니 눈부신 햇살이 반겨준다. 제주에서 정말 맛있는 볶음밥을 먹다 역시 고민하지 않으면 늘 하던 방식대로 살아가고 행동하게 마련이다. 누군가 그렇게 정해놓은 것도 아니고, 꼭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님에도 자신도 모르게 그런 패턴화된 방식대로 행동하게 된다. 이번에도 어차피 자전거를 타고 다닐 거면 저번과는 달리 시계 방향으로 도는 방법도 있었을 거다. 그렇게 했다면 그땐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을 보고, 다른 방향에서 느껴지는 제주의 모습을 그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멀리까지 갈 필요도 ..
7. 제주의 바다를 보니 일주를 하고 싶어지다 사람 맘이 참으로 간사하다. 비행기를 타고 올 때까지만 해도 ‘이번엔 절대 자전거를 타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자전거를 빌려서 달리고 있으니 언제 그랬냐 싶게 절로 행복해진다. 언제였더라, 중학교 3학년 때였던 거 같은데 자전거를 타고 싶어 무작정 끌고 나왔던 적이 있다. 막상 집에서 나오긴 했는데 목적지가 있는 건 아니기에 도로를 그냥 달렸다. 그만큼 그때나 지금이나 자전거는 나에겐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나오는 뫼베처럼 세상을 맘껏 누빌 수 있도록 해주는 둘도 없는 친구다. ▲ 자전거를 타고 제주 바다로 나간다. 기분 짱 좋다. 자전거 여행의 묘미를 알게 된 순간 여행을 할 때면 별 생각 없이 ‘도보여행’만을 생각했다. 첫 여행이 도보여행이었..
6. 1월에 자전거를 대여하다 검색해 보니 여기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자전거 대여점이 있더라. 아마도 상호명이 같은 걸로 봐서는 이곳이 확장 이전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아까 버스에서 내렸던 곳에서 다시 가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린 후에 내려 자전거 대여점에 들어갔다. ▲ 좀 헤매긴 했지만, 아무래도 좋다. 이게 헤매고 예상치 못한 것들을 하는 게 여행의 묘미이니. 자전거 대여점에 불쑥 들어온 황당한 손님? 가게에 쭈뼛쭈뼛 들어가니, 이곳은 대여점이라기보다 판매점에 훨씬 가까운 모양새더라. 바깥에 대여해주는 자전거가 몇 대 보이긴 했지만, 안쪽에 팔기 위한 자전거가 더 많아 보였으니 말이다. 기억이 왜곡된 탓일 수도 있지만, 예전엔 대여해주는 자전거가 더 많았다고 기억에 남아 있다. 가게 안엔 사람..
5. 제주를 보니 열정이 샘솟는다 비행기는 1시간 정도를 날아 마침내 제주에 도착했다. 2011년에 제주에 처음 왔을 때의 그 설렘이 지금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미지의 세계에 발을 내딛는 것 같은, 그리고 이곳이라면 무엇이든 관념에 갇히지 않고 맘껏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말이다. ▲ 비행기는 날아갈 때보다 떠오를 때와 내려앉을 때의 기분이 좋다. 제주를 마주치는 순간, 전혀 다른 나를 발견하다 그런데 더 재밌는 점은 마침내 제주가 한 눈에 내려 보이는 순간부터 이상하리만치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분명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별 다른 계획도, 별 다른 의미도 없이 갔다가 오자고만 생각했었는데, 제주도가 보이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파고를 치며 무엇이든 ..
4. 공항검색대는 언제나 날 긴장시킨다 제주여행 중 이전 두 번의 여행은 며칠 전부터 철저히 준비하고 떠난 데 반해, 이번 여행은 감정기복에 따라 순전히 우발적으로, 우연하게 떠나게 됐다. 바로 하루 전날에 비행기표를 예매했고 그에 따라 출발하게 된 여행이니 말이다. ▲ 하루 전 날에 제주행 비행기를 끊었다. 해보면 별 것 아니지만, 해보기까지가 힘들다 집에서 김포공항까진 전철로 1시간 20분 정도가 걸린다. 김포공항에 오는 건 두 번째지만 벌써 6년이나 흘렀고, 오늘처럼 혼자 오는 건 처음이니 모든 게 생소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지하철역에서부터 이정표를 따라가니 김포공항이 나오더라. 2층에선 티케팅을 할 수 있고, 3층에선 수속을 밟은 후에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다. ▲ 공항역에서 김포공항으로 가는 ..
3. 우연처럼 두려움을 안고 제주행 비행기를 타다 2018년 새해가 밝았다. 누군가는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겠다며 동해로 서해로 종로로 또는 높은 산을 찾아 떠났겠지만, 난 내 방에 콕 틀어박힌 채 가만히 있었다. 그렇다고 방안에서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맘 같아선 어딘가로 홀연히 떠나고 싶기도 했지만, 그땐 그저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렇게 있었다. ▲ 보신각을 에워싼 사람들. 산으로, 바다로, 종로로 모인 사람들. 새 기분으로 새 해를 열려는 마음이 소중하다. 망상에 시달리던 새해 첫 날의 풍경 그랬더니 스멀스멀 여러 생각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방학이 됐는데도 왜 이 시간을 허비하고 있어?’, ‘늘 나중에 시간이 남으면 여행도 떠나고 하고 싶은 일도 하겠다고 하더니 뻥이었던..
2. 무작정 제주로 떠나다 제주도 여행은 2011년에 여자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3박 4일 동안 제주도를 일주했던 여행을 시작으로 2012년엔 단재학교 아이들과 4박 5일 동안 자전거를 타고 일주했던 여행이 끝이었다. ▲ 2011년엔 10월에 2012년엔 4월에 갔었다. 홀로 떠나는 여행이 주는 선물 생활이 안정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 더 많은 여행을 할 줄 알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역시나 ‘나중에 ~이 되면 그땐 맘껏 할 수 있으니, 지금은 하지 말고 나중에 해’라는 말은 매우 그럴 듯해보여도 전혀 사실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무엇이 된 이후엔 그때 나름대로의 사정으로 인해 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니 말이다. 그러니 맘이 동할 때 재지 말고 그냥 할 수 있는 저력이 필요하..
1. 갑갑증이 몰려올 땐 무작정 떠나야 한다 닭의 해에 태어난 나에게 닭의 해인 2017년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해였다. 단재학교에서의 생활이야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고 6년차 교사가 된 만큼 중학교 1학년 때부터 6년 간 생활해온 민석이와 잘 마무리하는 해이자, 단재학교 학생 외에 다른 학교 학생들을 만나 영상을 만드는 작업을 해보기도 하는 등 도전이 가득한 해였으니 말이다. 그뿐 아니라 송파마을예술창작소에선 매달 한 번씩 지역민들과 만나 독립영화를 보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도 이끌 수 있었으니, 좀 더 사람과 사람, 관계와 인연에 대해 생각을 넓힐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지금 쓰는 기록은 제주도 여행기이기에 이에 관한 내용은 별도로 정리하도록 하겠다. ▲ 마을예술창작소에서 독립영화를 ..
목차 1. 대안학교의 역사와 위기상황 많아진 대안학교와 협소해진 교육철학이 위기를 부르다 대안학교는 개별성을 중시하며, 학생 맞춤형 학교다? 2. 단재학교에서 전체여행이 중요한 이유 학생 맞춤형 학교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학교 단재학교에서 여행을 가고, 발표회를 하는 이유? 3. 사후적 지성으로 5월에 전체여행을 떠나다 목표에 따라 커리큘럼이 구성되어야 하나? 해본 이후에야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5월에 전체여행을 가게 된 이유 4.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모두 놓치다 특명: 왕십리역 중앙선 승차장에서 모두 모두 모여라 여유로운 아침 속에 분주한 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환상이 낳은 비극 5. 경춘선은 상봉역에서 떠나네 춘천 가는 기차는 상봉역에서 떠나네 경춘선 기차에서 보는 풍경 6. 가평..
저녁을 거의 먹어가던 그 때 아이들은 수상한 눈빛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뭔가 비밀접선을 하는 눈빛이었고, 그에 따라 몇 명의 아이들은 방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곧 있으면 식사가 끝나고 치워야 함에도 방에 들어가 노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모두 나와서 저녁 먹은 건 치우고 놀아라’라고 말할까도 했지만, 아직 먹는 사람들이 있기에 기다리기로 했다. ▲ 맛있게 밥을 먹던 그 때 아이들은 심상치 않은 눈빛을 교환하더니, 방으로 들어갔다. 이건 그 때의 흔적들. 기획하지 않은 ‘스승의 날’ 행사 그렇게 저녁 식사가 거의 끝나가던 그 때, 규빈이는 쟁반에 초코파이와 과자를 담고, 초코파이엔 초를 꽂아 우리 쪽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그 순간 ‘오늘 누구 생일인 건가?’라는 생각이 스쳤다...
15. 요리가 공부가 되는 현장 제이드 가든에서 걸어서 펜션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가까워서 걸을 만했다. 들어와선 곧바로 저녁 준비를 했다. 이번 저녁은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여행 마지막 밤엔 고기파티’라는 일반적인 흐름을 깨고 아이들이 직접 요리를 하여 함께 먹는 것이다. ▲ 열심히 각자 맡은 일을 하는 아이들. 요리와 공부의 공통점 여행 기간 중 함께 요리를 하고 함께 나누어 먹게 된 시작은 12년 4월에 단재 식구들이 함께 떠났던 천리포 수목원에서였다. 그 후로 한동안 전체여행을 가서 요리를 만들어 먹은 적은 없었고 각 팀별 여행에서나 요리를 하여 먹는 정도였다. 그러다 작년 9월에 격포로 전체여행을 갔을 때, 둘째 날 아침을 팀별로 준비하여 함께 먹으며 3년 만에 부활되었다. 그때부터 여행을 갈 ..
1시간 20분 정도만 있기로 했기에, 시간이 많은 것도 적은 것도 아니었다. 태기와 성민이는 심드렁해졌는지, 더 이상 둘러보지 않고 그냥 내려가더라. 이에 반해 준영이는 길을 따라 쭉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나도 그 뒤를 따라 함께 올라갔다. ▲ 준영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 곳. 오르니 그래도 좋긴 하다. 청춘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준영이는 작년 2학기부터 함께 하며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을 함께 한 영화팀의 일원이기도 했지만, 등교시간이 차츰 늦어지면서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시간조차 없었다. 그 후로 올핸 학교생활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더 거리감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이땐 함께 오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다. 제일 꼭대기에 올라가니, 카페가 있더라. 거기엔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파..
남이나루에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한번에 나가지 못하고 다음 배를 기다려야 했다. 지금 시간은 아침 11시 20분인데도 사람들은 가득 찼다. 들어오려는 사람부터 나가려는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밀리니 그런 것이다. 남이섬에서 하룻밤을 지내지 않을 거면 차라리 이들처럼 아침 일찍 들어가 늦은 오후까지 맘껏 즐기다 가는 것도 괜찮을 것이기에, 이 시간부터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일 거다. ▲ 남이섬 안녕 보고 싶을 거야. 가평터미널 기사식당에서 점심을 먹다 선착장에서 내려 터미널로 가야 한다. 33-5번 버스가 30~40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으니 그것을 타고 가도 되지만, 초이쌤은 택시를 타고 가자고 한다. 아무래도 버스를 타려면 시간이 꽤 지체될 것이니, 그럴 바에야 돈이 좀 더 들더라도 택시를 타고 가자는 의미..
아침에 일어나 잠시 주변을 산책했다. 우리 콘도 옆으로도 콘도들이 쫙 늘어서 있으며 2인실에서부터 다인실까지 다양한 모양의 건물이 있더라. ▲ 창문으로 아침이 들어온다. 남이섬에서 맞이한 아침 8시 30분쯤 콘도에 들어가니 아침을 준비하는 팀이 열심히 토스트와 계란 후라이를 준비하고 있었다. 어제 저녁에 고기로 배불리 먹은 터라, 간단하게 먹어야 하는 아침도 무척이나 반가웠다. 토스트와 우유를 먹으며 잠시 고개를 들어 천정을 올려다보니, 높이 설치된 창문에서 아침 햇살이 새어 나오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드디어 5월 12일, 여행 둘째 날의 시작이다. 날씨는 맑고 약간 덥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진 땀이 주룩주룩 흐를 정도는 아니니 다시 시작될 여행이 기대가 됐다. 11시까지 퇴실이기에 우..
이번 전체여행의 컨셉을 ‘공포여행’으로 잡았다. 그것도 한 번만 하자는 게 아니라, 오늘과 내일 두 번 모두 하자는 것이다. 아이들은 지금 ‘공포’라는 것에 꽂혀 있어서 영화를 보더라도 ‘공포영화’, 게임을 하더라도 ‘공포게임’, 놀이를 하더라도 ‘공포체험’을 하려 한다. ▲ 이게 진정한 공포여행 단재학교 학생들, ‘공포’에 빠져들다 언제부터 이렇게 ‘공포’에 빠지게 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그 시작은 작년 1학기 여행인 ‘전주-임실 여행’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땐 교사들끼리 ‘담력훈련’을 하자며 계획을 짰었다. 전주엔 한옥마을 바로 옆에 ‘치명자산(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묻힌 산)’이란 으스스한 이름의 산이 있다. 이곳 곳곳엔 순교자들을 기리는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어서, 자연스레 공동묘지에서..
구석구석 가볼 만한 곳은 모두 달렸지만, ‘남이장군묘’엔 가보지 못했다. 이곳은 애써 찾아야만 겨우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린 외곽으로만 달렸으며 안을 세밀하게 보면서 달리진 않았기 때문에 놓친 것이다. ▲ 남이섬에 왔으면 빠름이나 효율은 버리고 그저 즐겨볼 일이다. 남이섬에선 빠름보단 느림으로, 효율보단 비효율로 진짜 남이장군의 묘는 경기도 화성시에 있고, 이곳은 역모를 꾀한다고 유자광이 모함하여 능지처참을 당하게 된 후에, 그 시체가 묻혀 있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돌무더기를 묘로 만든 곳이라고 한다. 가묘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남이섬이란 이름의 유래에 해당되는 장소이니만치 한 번쯤은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느라 결국은 가보지 못하고 남이섬 자전거 여행은 끝이 났다. ..
콘도에 들어와 짐을 풀고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이불을 펴고 누우니, 잠이 소록소록 온다. 아이들도 저마다 자리를 펴고 누워 게임을 하거나, 잠을 자거나 한다. 만약 이대로 놔뒀다면 한숨 푹 잤을 테지만, 다음 일정이 있기 때문에 30분 정도 쉬다가 일어나야 했다. ▲ 각자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는 아이들. 항우의 힘과 기개를 느낄 수 있던 잔디 축구 밖에 나오니 아이들은 콘도 바로 옆에서 공을 패스하며 놀고 있더라. 평소에 운동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이런 날엔 몸을 움직이고 싶긴 하나 보다. 누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공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던 승태쌤은 아예 팀을 짜서 미니 축구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여학생들과 준영이는 쉬고 싶다며 하지 말자고 ..
남이섬에 들어가기 위한 방법은 총 세 가지가 있다. 2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배를 타는 방법, 짚와이어를 타고 들어가는 방법, 모터보트(4~5인승)를 타고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 기본 가격은 일인당 만원 씩이다. 남이섬에 들어가는 갖가지 방법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인 배를 타고 들어가는 방법은 1인당 만원의 요금이 들어간다. 만원엔 남이섬 입장료와 배를 왕복으로 이용할 수 있는 비용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배는 세 대 정도가 번갈아가며 운행을 하기에 우리가 갔을 때는 많이 기다리지 않고 배가 올 때마다 바로 바로 탈 수 있었다. 하지만 주말엔 배를 탈 때까지 꽤 많은 시간과 번잡함을 감수해야 할 듯했다. ▲ 가장 많이 애용하는 배를 타고 가는 방법. 저렴하지만 대기인원에 따라 시간이 무한정 길어질 ..
두 손 가득 짐을 들고 남이섬가평 선착장으로 걸어간다. 선착장 주차장엔 관광버스들이 즐비하다. 얼마나 많은 관광객들이 있을지 걱정과 기대가 동시에 된다. 선착장에 들어서니 한옥풍의 건물이 보이고 ‘사람떼’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역시나 유명 관광지답게 내국인부터 외국인까지, 여행객부터 수학여행을 온 학생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 지금 시간은 평일 2시 40분인데, 사람들이 많기도 많다. 남이섬이 유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남이섬은 겨울연가로 유명해진 곳이다. 겨울연가라는 드라마로 인해 일본에 한류 열풍이 불었다. 그 당시 일본의 중년 여성들은 배용준에게서 ‘일본 남성’에겐 느끼지 못한 부드러운 남성미와 사르르 녹는 듯한 감미로움을 느끼며 그를 추앙하여 ‘욘사마’라는 별명까지 붙..
1시간 정도를 달려 가평역에서 내렸다. 당연히 가평역 앞에서 승태쌤과 준영이가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준영이는 보이지 않고 승태쌤만 계시더라. ▲ 닭갈비집이 문을 닫아 헤매고 있는 아이들. 가평에서 먹은 춘천닭갈비의 맛 시간이 11시 50분이 넘었기 때문에 점심밥부터 먹기로 했다. 그래서 시내버스를 타고 터미널에서 내렸다. 예전 가평역은 터미널 바로 뒤편에 있었기에 훨씬 접근성이 좋았지만, 지금은 조금 외곽에 있기에 걸어서 30분 정도 걸린다. 그곳에서 아이들에게 뭐 먹을지 물으니, 중화요리를 먹자는 의견과 닭갈비를 먹자는 의견으로 양분됐다. 하지만 터미널 바로 근처에 닭갈비집이 보였기에, 거기서 먹기로 했다. 그런데 이날은 평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음식점은 열지 않은 상황이었다. 원래 매주 수요..
10시까지 왕십리역 경의중앙선 승강장으로 모이기로 했다. 지훈이와 현세는 조금 늦게 왔고, 준영이는 바로 가평역으로 온다고 하더라. 오늘은 작년 1학기 마무리 여행이었던 가평 도마천 여행 이후 오랜만에 상현이도 함께 가기로 했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상현이 어머니에게 “12번 출구로 왔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요?”라고 전화가 오더라. 그래서 태기와 성민이와 함께 12번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거긴 선상역사로 들어오는 곳이니, 당연히 승강장 위에 있었고 우린 그걸 알 리가 없었다. 그러니 한참을 헤맨 후에 승강장에서 위로 올라가야 12번 출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바로 올라가 보니 개찰구 바로 앞에 상현이와 어머님이 서있더라. 상현이를 데리고 다시 승강장으로 내려오니, 그 사이에 늦었던..
10시까지 왕십리역에서 모이기로 했다. 경춘선이 출발하는 상봉역에서 모이면 훨씬 편하지만, 아직 지하철을 타는데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있어서 그나마 편하게 모일 수 있는 왕십리역에서 모이기로 한 것이다. ▲ 한파가 찾아온 개학여행 때 왕십리역에서 아이들을 찾아다녔다. 특명: 왕십리역 중앙선 승차장에서 모두 모두 모여라 그런데 왕십리역은 무려 네 개의 노선이 지나가다 보니 엄청 복잡하다. ‘청량리 방향으로 가는 중앙선 승차장’에서 모이기로 정했지만, 잘 찾아오는 아이들도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헤매게 마련이다. 실제로 개학여행으로 강촌스키장에 갔을 때도 왕십리역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각자 오는 방법이 다르다 보니 아이들을 찾아 한참을 돌아다녀야 했다. 그때 경험을 해봤으니, 이번에는 그나마 좀..
단재학교는 ‘성숙한 인간을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전체여행과 학습발표회를 매학기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다. ▲ 2011 학습발표회 ▲ 2012 1학기 학습발표회 ▲ 2012 2학기 학습발표회 ▲ 2013 학습발표회 ▲ 2014 학습발표회 ▲ 2015 1학기 작은 전시회 ▲ 2015 2학기 학습발표회 ▲ 단재학교는 시험을 보지 않는다. 그 대신에 시험만큼 중요한 학습발표회를 한다.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 글로 링크됨) 목표에 따라 커리큘럼이 구성되어야 하나? 하지만 어떤 활동이든 목표가 정해져 있다고 해서 꼭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활동으로만 커리큘럼이 짜여야 하는 건 아니다. 이를 테면 ‘수학 영재 육성’이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모든 과목을 수학 한 과목으로 도배하여 1교시엔 집합을 배우고, 2교시엔 사..
이런 이야기를 듣고 보면, 정말로 맞는 말처럼 들린다. 제도권 학교의 문제점 때문에 대안교육 운동이 일어났으니, 그런 문제점을 면밀히 파악하여 고치기만 해도 좋은 학교가 될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 우린 돈을 주고 교육 상품을 산다고 생각한다. 학생 맞춤형 학교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학교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와 같은 생각의 기저엔 소비자와 공급자 마인드가 깊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소비자가 원하는 교육상품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건 곧 내 아이에 맞춤식 교육활동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런 얘기는 학교에서 학부모를 상담하다 보면 어렵지 않게 듣게 되는 말이다. 그 분들은 한결 같이 일반학교와 다른 대안학교의 특성을 ‘내 아이 개인에게 맞춰서 커리큘럼도 만들 수 있고, ..
단재학교의 1년 학사운영 중 큰 행사이면서 중요한 행사를 꼽으라면, 단연 각 학기마다 진행되는 전체여행과 학습발표회라 할 수 있다. 많아진 대안학교와 협소해진 교육철학이 위기를 부르다 대안학교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대안학교는 제도권 학교에 대한 회의감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텍스트 위주 교육, 성적이란 단일 잣대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교육, 개인의 특성을 무시한 획일적인 교육,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교육이 아닌 정답 맞추기식의 교육에 반대하여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15년이 넘는 대안교육의 역사는 수많은 오해와 작은 기대 속에서, 너무 이상적이라는 비판을 들으며, 아이들의 인생을 상대로 실험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들으며 첫 출발을 할 수 있었다. ▲ 2..
목차 1. 친근보담 낯섦 무계획이 곧 계획이야 당황하지 않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답하면 끝! 2. 일상을 벗어나 어린이로 돌아가다 장소, 그 까이꺼 대충 총각들의 저녁식사 족대질을 어른이 되어 처음으로 해본 사내 앎이 너를 자유케 하리라 3. 남자 셋, 텐트 하나 이야기로 세상을 본다 ‘쾅 하는 소리’가 만든 다양한 이야기 4. 덤으로 누리는 행복 한여름 밤에 추위에 벌벌 떨며 잔 사내들 광고기획자에게 듣는 기획이야기 계획되지 않은 旅行, 그래서 餘幸(덤으로 누리는 행복) 인용 여행기
4. 덤으로 누리는 행복 텐트 안에 들어가니 아득하고 좋았다. 진규는 최근에 4년 동안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자동차를 렌트하여 강원도 방방곡곡을 2주 동안 여행했다. 오늘 우리가 자는 이 텐트도 그 여행 때 썼던 텐트다. ▲ 정말 오랜만에 텐트에서 잠을 잔다. 혼자 잤으면 못 잤을 텐데, 같이 자니 오히려 안심이 되고 좋았다. 한여름 밤에 추위에 벌벌 떨며 잔 사내들 진규는 나의 국토종단기를 보면서 “뭔 내용들이 다 자는 곳을 구하느라 걱정을 하는 내용이더만”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아마도 잠자리를 구하는 문제로 여행의 참맛을 느끼지 못할 바에야, 텐트를 사서 편하게 자면서 여행을 좀 더 즐기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막상 텐트에 들어가 보니 운치도 있고, 꽤 공간도 넓어 쾌적한 느낌이더라. 친구들과..
3. 별을 보고 소리를 들으며 세상을 이해하다 12시가 넘었다. 인근 테니스장 불도 완벽히 소등되고 빛이 모두 사라진 자리에, 감춰져 있던 빛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했다. 인위적인 강렬한 빛이 사라진 자리에 자연의 빛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30초 노출로 찍은 밤하늘. 아마 성능이 더 좋은 사진기가 있었으면 더욱 잘 나왔을 텐데, 아쉽다. 고기를 구울 땐, 고기가 잘 익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랜턴의 불을 켜고, 핸드폰의 ‘후레쉬’를 켜기도 했다. 고기를 다 굽고 먹기 시작했을 때도 랜턴을 켜놓은 상태였다. 아마도 ‘랜턴을 켜면 잘 보여 먹기 편할 것’이란 생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랜턴을 끄니, 그제야 주변이 또렷하게 보이더라. 때론 잘 보기 위해서 불을 꺼야 한다는 사실을 알 ..
2. 일상을 벗어나 어린이로 돌아가다 3시 30분쯤 친구 집에 도착하니, 짐이 한 가득이더라. 이미 고기와 밑반찬, 텐트, 낚시대 등을 모두 챙긴 후였다. 나에겐 ‘옷만 챙겨와’라고 해놓고선 자기가 모든 짐을 다 챙긴 것이다. 장소, 그 까이꺼 대충 주승이가 오자마자 짐을 차에 싣고 출발하니, 4시 30분이 넘었다. 계획도 없이 갑작스레 추진된 여행, 그것도 아침도 아닌 저녁이 가까워서야 출발하는 여행은 난생 처음이다. 이런 상황이니 목적지라고 제대로 조사해봤을 리가 없다. 진규는 ‘양평 회현리 쪽에 낚시하기 좋은 곳이 있다’는 단서만을 듣고 ‘흑천’을 검색하여 찾아갔으나 이게 웬 걸 ‘상수원 보호구역’이란 팻말이 가드레일 곳곳에 떡하니 설치되어 있더라. 물도 맑고 낚시하기에 좋은 곳이었기에 한참 주위를..
1. 무계획이라는 계획에 대해 ‘8월의 어느 날 갑자기 걸려온 의문의 전화, 그리고 전화로 모든 게 시작되었다.’ 공포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런 멘트와 관련된 일이 최근에 일어났기에 이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빡빡한 스케줄과 ‘낙오는 곧 죽음’이란 압박 속에서 살아야 21세기의 한국인들에겐 여행도 계획에 따른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휴가철이 정해져 있고, 그 날에 맞춰 몇 달 전부터 예약을 하고 일정을 짠다. ‘모든 건 계획 하에’ 이게 바로 현대 한국인들의 모토인 셈인데, 나도 이러한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계획에 없던 일이 생기면, 긴장하고 초조해져서 거부하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무계획이 곧 계획이야 ‘지금 나의 삶이 내 계획 하에서 완벽하게 이루어지며 살아온 것일까?’ 생각해보면, 전혀 ..
목차 1. 나의 역사가 스민 부안을 교사가 되어 다시 찾다 지하철을 타고 갈까, 자전거를 타고 갈까 큰 문제는 결정이 쉽지만, 작은 문제는 오히려 결정이 어렵다 나의 아픔이 산산이 부서진 변산에 교사가 되어 가다 2. 우린 트러블메이커가 아닌 이슈메이커 문제는 일의 발생이 아닌, 해결하려는 의지 걷는 건 고생하자는 게 아닌, 삶을 오롯이 느끼자는 것 걷는다는 게 불이익이 되는 구조 ‘갤럭시 그랜드 맥스’가 그랜드(완전한)인 이유? 3. 함께 먹을 아침을 손수 만들다 손수 만든 음식을 남에게 대접한다는 것 완벽한 여유로움 중 2 때의 추억 4. 우의를 입고 칼국수 먹으로 왔어요 자신이 뜻이 어긋난 곳에 싹트는 여행의 묘미 우의를 통해 본 옷의 원래 의미 비바람 속에서 음식점 찾아 5. 빗속여행의 낭만 채석..
9. 안녕 변산, 안녕 변산 현세가 단재학교에 처음 왔을 때부터 올해 6월까진 승빈이와 여러 번 충돌했다. 난 지금껏 현세가 승빈이를 편하게 생각했기에 그런 줄만 알았는데,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전혀 뜻밖의 말을 듣게 되었다. ▲ 새벽 산책을 하다보니 평소엔 말하지 않던 걸 말하게 된다. 이게 새벽 산책의 즐거움. 시간의 더께만큼 돈독해진다 “그 땐 다른 뜻은 없었고 건호 형과 친해지고 싶어서 그랬어요”라고 말한 것이다. ‘어떤 사람과 친해지려면 그 사람의 사고방식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분명 사람 관계에 있어서 나를 남에게 맞추거나, 남을 나에게 맞추는 방법들이 있다. 아마도 그 절충점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관계를 유지하는 핵심일 것이다. 현세는 이때 상대방에게 100% 맞춰주는 것을 ..
8. 새벽에 변산을 산책하며 뿌듯함을 느끼다 아이들은 옆방에서 시끄럽게 떠들며 놀고 나는 이불을 펴고 누워 여행기를 쓴다. 이런 식으로 함께 여행을 하지만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도 나름 좋다. 하지만 어차피 이곳은 남학생들의 방이기에 완벽하게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도 없고 피곤하다고 편하게 잘 수도 없다. 아이들이 수시로 들락날락거리고 떠드는 소리가 밤 깊도록 들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웬 일인지, 밤새도록 놀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더라. 시간이 조금 지나니 함께 게임하는 분위기는 깨졌고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남학생 몇몇은 핸드폰을 하고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몇몇은 밖으로 나갔다. 교사로서는 차라리 아이들이 한 공간에 모여 노는 것이 속편하고, 뿔뿔이 흩어져 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