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설(序說)
1. 한시(漢詩) 연구(硏究)의 과제(課題)
한시를 연구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를 검증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한시에서의 자연은 ‘스스로 그렇게 있는 것’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인간들의 삶을 있게 해주는 원천으로 소중한 것이 되고 있으며, 한시에서 인간들은 삶의 의미를 확인하는 해법(解法)조차도 이 자연을 통하여 구하려 한다. 그러나 한시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들과 자연이 가까운 거리에서 만날 때, 물아(物我)가 한데 어우러져 무아(無我)의 경지에 이르게 되며 조화미(調和美)의 극치(極致)를 이룬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시(漢詩)를 모르면서도 한시(漢詩)를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될 어려운 상황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 더욱이 우리 학계의 현실은 지금까지도 연구에 제공될 자료의 기초 조사조차도 기도(企圖)된 일이 거의 없는 원초(原初) 그대로이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심각한 것이다. 부분적으로 개별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연구 성과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사실상 문학외적(文學外的)인 연구 목적에 바쳐져 왔을 뿐, 한시(漢詩)를 제모습 그대로 파악하여 접근한 본격적인 연구 작업은 나타나지 않았다. 때문에 개별 작품에 대한 연구 기반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은 불모(不毛)를 무릅쓰고 역사적인 연구부터 먼저 엄두를 내는 기도(企圖)는 엄청난 욕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어느 한쪽도 안일하게 앉아서 기다리고 있을 여유가 우리에게는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시(漢詩)를 제 모습 그대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기본적으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에서 비롯해야 할 것이다.
첫째, 우리나라 한시(漢詩)를 역사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시(漢詩)의 원산지인 육조(六朝)ㆍ당(唐)ㆍ송(宋) 등 중국시(中國詩)의 표정을 있는 그대로 읽어야 하며
둘째, 자료의 선택과 작품의 평가는 모름지기 한시(漢詩)를 생산한 당시의 시인(詩人), 비평가(批評家)들이 직접 편찬에 참여한 선발책자(選拔冊子)와 비평서(批評書)에 일차적으로 의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의 수행을 통하여 우리나라 한시문학(漢詩文學)의 진상(眞相)을 파악하고, 나아가 이러한 문학사의 현실이 제시한 방향에 따라 한시(漢詩) 연구의 당면 과제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한시(漢詩)가 중국시의 전통을 그대로 배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문언(文言)으로 중국시를 체험한 우리나라 시인들이 도달할 수 있는 시세계의 한계는 처음부터 예료(豫料)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근체시(近體詩)를 예술적으로 완성하였다는 두보(杜甫)의 시를 통하여, 우리나라 시인(詩人)들이 그 음악의 소리에 얼마나 귀를 기울일 수 있었으며, 대목(大木)의 솜씨로 깎고 다듬은 장식(粧飾)의 묘(妙)를 어떻게 체득(體得)할 수 있었을 것인지, 한시(漢詩) 연구의 과제는 이러한 의심에서부터 비롯하여야 할 것이다.
문학은 그 독특한 언어구조로 인하여 매우 교묘한 전달 능력을 가질 수도 있고, 또 독자에게 다른 종류의 글에서 얻어 낼 수 없는 어떤 독특한 인식을 안겨주는 힘의 덩어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시적(詩的) 표현의 공구(工具)로서의 언어 즉 중국어에 소원(疏遠)한 우리나라 시인들이 제작한 한시(漢詩)는 필연적으로 개념의 시(詩), 정신의 시(詩)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때문에 우리나라 한시(漢詩)에 있어서의 수사학적(修辭學的) 요구는 사실상 공소(空疎)한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곧 우리나라 한시(漢詩)의 한계를 가늠하는 특징적인 사실로 지적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시(漢詩)의 전통이 이미 전시대(前時代)의 것이 되어 버린 오늘에 있어, 복고적인 비평적 접근으로 양자(兩者)의 편차를 검증하기에는 우리들의 능력은 분명히 제한되어 있다. 그러므로 한시(漢詩) 연구에서 문제 삼아야 할 중요한 과제는, 우리나라 시인ㆍ비평가들이 중국의 문학 이론을 수용할 때 보여준 자각적(自覺的)인 의지를 읽어내어 개념의 시(詩)가 함축하고 있는 깊은 의취(意趣)를 탐색하고 발굴하는 것만이 한시(漢詩) 문학의 창조적 전승에 이바지하는 길이 될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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