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06년 (260)
건빵이랑 놀자
민족주의 Nationalism 오랜 기간 동안 동질적인 역사를 이루며 살아온 탓인지 우리는 민족이라는 개념에 거의 종교적이라 할 만큼 엄숙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런 탓에 문화 공동체인 민족을 무의식적으로 정치적 공동체인 국가와 일치시키는 습관이 있다. 서양의 역사에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nation’이라는 영어 단어가 민족과 국가를 모두 뜻하는 것이 그러한 역사의 흔적이다. 종교개혁(宗敎改革)으로 교회가 정신적 구심점으로서의 권위를 잃자 17세기부터 유럽 세계는 각국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각개약진(各個躍進)의 시대를 맞았다. 이 대분열기는 17세기 초의 30년전쟁에서 20세기 중반의 제2차 세계대전까지 300여 년 동안 지속되는데, 이 기간이 대체로 민족주의 시대에 해당한다. 그 중에서도..
미장센 Mise en scène 연극과 영화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가장 큰 차이는 라이브와 녹화라는 점일 것이다. 연극은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관람하는 데 비해 영화는 제작이 완료된 뒤에 관람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차이는 차원이라는 측면에 있다. 연극과 영화는 차원이 다르다. 수준이 어떻다는 말이 아니라 연극은 3차원의 예술이고 영화는 2차원의 예술이라는 이야기다. 연극의 공간은 무대와 객석으로 이루어지며, 무대 위의 공간도 3차원으로 배치된다. 그에 비해 영화에는 객석이 존재하지 않으며 - 영화는 현장에서 관객과 함께 호흡하지 않는다 - 스크린은 마치 회화 평면처럼 3차원의 현실을 2차원으로 표현하는 장치다【프레임이 있다는 점에서도 영화는 연극보다 회화에 더 가깝다. 프레임은 작가가 원하는 장면만..
미메시스 Mimesis 예술가와 의사의 공통점은 뭘까? 마음과 몸을 치유하는 기능을 한다는 점일까? 기예(art)를 중시한다는 점일까? 그보다는 교육 방식이 닮은꼴이다. 전통적으로 예술 교육과 의학 교육은 개인 교습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르네상스 시대 이래로 음악과 미술 교육은 학생들이 학교에 모여 배우는 방식이 아니라 스승의 집에 제자로 들어가 직접 1 대 1로 배우는 방식이었다. 의학 교육도 마찬가지였는데, 수련의를 뜻하는 인턴(intern)과 레지던트(resident)라는 말에 모두 ‘거주’의 의미가 들어 있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1 대 1 교육은 모방을 기본으로 한다. 제자는 스승의 작업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스승의 솜씨를 모방한다. 무수한 모방을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제자는 스승을 똑같이 흉내..
미디어 Media 정보고속도로라는 말처럼 인터넷은 도로와 같은 역할을 하는 매체, 즉 미디어다. 한자어의 매체(媒體)나 영어의 미디어(media, medium의 복수형)는 둘 다 뭔가를 매개한다는 뜻이다. 도로는 가족이 여름휴가를 가거나 화물차가 물자를 수송할 때 사용하듯이 어떻게 쓰는가가 중요할 뿐 도로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인터넷도 역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도로와 같은 기능을 한다. 이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러나 캐나다의 미디어 비평가인 맥루한(Marshall McLuhan, 1911~1980)의 생각은 다르다. 맥루한은 미디어를 매체로만 보는 기존의 견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미디어는 메시지가 오가는 도로에 불과한 게 아니라 메시지 자체다. 그래서 맥루한은 미디어는 곧 메시지라고 말..
미네르바의 부엉이 Owl of Minerva 미네르바는 지혜의 여신이고 부엉이도 서양에서 지혜를 상징하는 동물로 손꼽히니까 미네르바의 부엉이라면 탁월한 지혜를 뜻할 것이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헤겔(Hegel, 1770~1831)은 자신의 사상을 미네르바의 부엉이에 비유할 만큼 자신감으로 넘쳤다. 난해하기 짝이 없는 그의 철학을 다른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비판하는 것을 가리켜 헤겔은 마치 선문답처럼 이렇게 말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질 무렵에야 비로소 날개를 펴기 시작한다. -『법철학』” 시대를 앞서 나가는 사람은 고독하다. 남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기 때문이다(혹은 알아주지 않는다고 여기거나). 헤겔은 자신의 그런 처지를 미네르바의 부엉이에 비유했다. 선견지명(先見之明)의..
물자체 Ding an sich 모든 사물은 보편성과 특수성이라는 두 가지 존재의 측면을 가진다. 축구공은 공으로서의 보편성과 더불어 축구를 할 때 사용하는 공이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보편성의 측면을 보편자라고 부르며, 특수성의 측면을 개별자라고 부른다. 보편자와 개별자의 문제는 중세에 중요한 철학적 쟁점이었다. 나무의 개별자는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버스 정류장 앞에 서 있는 플라타너스라는 구체적인 나무다. 나무의 보편자는 개별자와 다른 차원의 존재다. 나무에는 플라타너스만이 아니라 물푸레나무, 떡갈나무, 감나무 등 수많은 종류가 있다. 이 각기 다른 나무들을 나무라는 말로 총칭하는 이유는 나무의 보편자가 있기 때문이다. 나무 같은 자연 존재만 그런 게 아니다.
물신성 Fetishism 인간의 존엄성이 당연시되는 현대 사회지만 구체적인 일상생활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항상 인간으로서의 품위가 유지되지는 않는다. 정부조직의 하나인 교육인적자원부(敎育人的資源部)라는 부서의 명칭은 인간을 자원으로 분류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또 군대나 학교에서는 인간이 정해진 병력이나 인원을 채우는 양적 개념으로 규정된다. 지하철의 공익요원에게 출근과 퇴근 시간에 만나는 인간이란 등을 떠밀어 지하철에 태워야 하는 짐일 뿐이다. 질적으로 대우받아야 마땅한 인간이 양적 ‘덩어리’로 취급되는 현상에는 자본주의 특유의 물신성(物神性)이 깔려 있다.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가 제기한 물신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 전도 현상의 하나다. 인류 역사에서..
문화제국주의 Cultural Imperialism 몸은 가둘 수 있어도 영혼마저 가둘 수는 없다. 양심수의 자부심에 찬 선언이 아니다. 신체를 완전히 정복해도 정신까지 정복할 수 없다는 것은 세계의 지리적 정복을 완료한 서구 제국주의 열강이 새삼 깨달은 진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동시에 제국주의의 세계 분할과 재분할도 끝났다. 이 시기의 무기는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이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더 이상 그 무기의 효력이 통할 환경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식민지의 정치적 지배가 불가능해졌다. 서구의 선발 제국주의와 후발 제국주의의 대결이었던 제1차 세계대전, 서구 제국주의와 파시스트 제국주의의 대결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은 모두 제국주의적 모순의 표출이었으므로 종전 후에는 식민지 해방을 허용하지 않으..
문화상대주의 Cultural Relativism 제국주의 시대로 불리는 19세기에 구 열강은 전 세계를 자기들 마음대로 분할했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태평양 일대의 섬들처럼 문명의 힘이 미약한 지역은 물론이고 동아시아처럼 인구가 많고 수천 년 전부터 빛나는 문명을 발전시켜온 지역도 서구의 막강한 물리력 앞에 추풍낙엽(秋風落葉)처럼 무너졌다. 그 양태는 침략이었으나 세계 분할이 어느 정도 완료되자 서구는 자신들이 경제적ㆍ군사적으로 침탈한 지역에 관해 지적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오리엔탈리즘). 그 결과로 탄생한 새로운 학문이 인류학이다. 인류학은 다양한 인간 사회들을 비교 연구하고 그 특징과 성격을 분석하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인류학에서는 사회마다 대개 보편적이고 획일적인 사회경제적 메커니즘보다 ..
문화권력 Cultural Power 권력에는 공식적인 것과 비공식적인 것이 있다. 공식적인 권력은 법을 토대로 행사되는 정치권력과 공권력이다. 이 권력은 의미나 용도가 명백하다. 그러나 비공식적 권력은 정확히 정의되지 않고 행사되는 방식도 모호하다. 대표적인 예는 신분에서 비롯되는 권력이다. 오늘날은 신분사회가 아니지만 비공식적인 신분은 엄연히 존재한다. 투표할 때는 누구나 1인 1표를 행사한다 해도 평범한 시민의 발언이 재벌그룹 회장의 발언과 같은 영향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비공식적 권력 중에서도 가장 비공식적인 것은 신분이 아니라 문화에서 나온다. 바로 문화권력이다. 문화는 삶의 양식을 반영하므로 문화권력의 기반은 무척 다양하다. 지식. 정보, 미디어처럼 가시적인 게 있는가 하면 연고(緣..
무의식 Unconsciousness 꿈의 내용을 맘대로 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로또 복권에 당첨되어 프로방스(Provence)를 유람할 수도 있고, 잉베이 맘스틴(Yngwie Malmsteen, 1963~)보다 손가락이 빨리 돌아가 바로크 기타의 신이 될 수도 있다. 꿈에서는 모든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 일생 동안의 수면 시간을 모두 합하면 평균 수명의 1/3쯤 되니까 최소한 인생의 1/3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터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자기 마음대로 꿈꿀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꿈은 내 의도와는 정반대의 줄거리로 흘러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누가 내 뒤를 쫓아오는데 발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빨리 도망치지 못하고 애만 태웠던 꿈은 누구나 한번쯤 꿔봤을 것이다. 꿈꾸는 사람은 난데 왜 꿈..
뫼비우스의 띠 Möbius Strip 종이로 만든 기다란 띠가 있다. 연필을 떼지 않고 앞면과 뒷면을 따라 연속되는 선을 그을 수는 없을까? 불가능하다. 종이 띠의 앞면과 뒷면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2차원의 평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2차원을 3차원으로 만들면 가능하다. 종이의 한쪽 끝을 다른 쪽 끝과 풀로 붙이면 된다. 그래도 안 된다고? 그럼 그냥 붙이지 말고 한쪽 끝만 살짝 비틀어 뒤집어서 붙여보라. 신기하게도 연필은 종이 띠의 앞면과 뒷면에 계속 이어지는 선을 긋게 된다. 이렇게 만든 띠에는 앞면과 뒷면의 구별이 사라진다. 서로 다른 차원이 연결된다(→ 사차원). 이 띠를 고안한 사람은 19세기 독일의 수학자인 뫼비우스(August Ferdinand Möbius, 1790~1868)다. 그가 이 ..
목적론 Teleology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 모든 행위의 구성요소는 이 세 가지다. 즉 행위에는 주체, 방법, 목적이 있다. 추리소설이 발달해온 과정도 그 세 단계로 나뉜다. 초기 추리소설은 “Who done it?” 즉 범인이 누구냐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 다음에는 범행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How done it?”)로 중심이 옮겨갔고, 가장 높은 단계로 범죄의 목적(“why done it?”)을 중시하기에 이르렀다. 사건이나 현상을 설명할 때 목적을 고려하면 상당히 그럴듯한 이론을 구성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경우 자칫하면 목적론의 함정에 빠진다. 목적은 사건의 시간 순서로 보면 맨 마지막에 위치하기 때문에 중간 과정의 모든 것을 설명하기가 편하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목적에 비..
모순 Contradiction 어떤 주장이나 논리에 조리가 없고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뜻으로 흔히 모순(矛盾)이라는 말을 쓴다. 옛날 중국의 어느 장사꾼이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矛, 모)과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창도 막을 수 있는 방패(盾, 순)를 함께 팔았다는 데서 나온 말이므로 모순은 그 자체로 모순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모순은 비록 부정적인 유래에서 비롯되었으나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만 가진 것은 아니다. 일찍이 철학의 초창기에 이오니아의 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os, BC 540~480)는 대립물의 투쟁이 모순을 이루고 이 모순에서 운동이 생겨난다고 주장했다. 이후 다양한 사상이 제기된 고대, 신학적 합의를 중시하던 중세, 인식론이 초점이었던 근대를..
모더니즘 Modernism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는 흔히 현대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주관과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냉철한 이성과 과학적인 관점을 취하는 것이 곧 현대성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식과는 달리 현대성은 사실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현대라는 말은 현재의 시기를 가리키는 보통명사이기도 하지만 고유명사로 쓰면 19세기 말~20세기 초 이후를 가리킨다. 바로 그 무렵에 전통적인 권위와 사고방식을 거부하는 모더니즘이라는 지적 흐름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낡은 틀을 부수는 데 앞장서는 것은 대개 사회 이론이나 과학보다 문학이나 예술이다. 중세의 틀을 해체한 이탈리아 르네상스(Renaissance)의 기폭제가 된 인물도 단테와 페트라르카 같은 문학가들이었듯이 모더니즘도 철학이나 과학보다 예술에서 먼저..
모노가미 & 폴리가미 Monogamy & Polygamy 지금의 문명사회에서는 대부분 모노가미(일부일처제)가 법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이 관습이 제도화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본능을 중시하는 생물학적 인간의 개념을 받아들인다면 폴리가미(일부다처제 혹은 일처다부제)가 모노가미보다 더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인류 문명이 탄생할 무렵에는 세계적으로 폴리가미가 훨씬 더 많았으며, 현재까지도 폴리가미를 관습으로 취하고 있는 사회가 상당수 존재한다. 폴리가미의 한 형태인, 형제가 공동의 아내를 취하는 경우도 그다지 드물지 않다. 인도의 어느 부족에는 형제가 동시에 한 아내를 공유하는 일처다부제의 관습이 있으며, 이슬람 율법은 한 남자가 아내를 네 명까지 맞을 수 있는 일부다처제를 허용한다. 역..
마르크스주의 Marxism 이론과 실천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지만 엄연히 다른 차원에 속한다. 학문과 삶도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지만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론을 구성하고 학문을 발전시키는 것은 학자로서의 임무이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활동가로서의 삶이다. 과학의 경우를 제외하면 두 측면을 한 사람이 소화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 드문 예에 속하는 사람이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석하기만 했으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스물일곱 살 때 쓴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Thesen über Feuerbach)』라는 책자에 나오는 마지막 열한 번째 테제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Plat..
마녀사냥 Witch Hunt 정치적인 이유에서, 혹은 여론에 밀려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모는 것을 마녀사냥이라고 한다. 그런데 마녀사냥은 원래 종교에 바탕을 둔 용어로 무고한 사람을 단죄하려는 의도가 두드러졌던 것도 아니다. 역사적으로 마녀사냥은 중세에 성행했던 종교재판에 근원을 두고 있다. “너희는 무당을 살려두지 말라. -출애굽기 22,18” 성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무당이 반드시 여자는 아니므로 특별히 여성 차별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학설이든 교리든 정설이 뿌리를 내리면 이단(異端)이 생기는 법이다. 그리스도교가 지배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은 유럽의 중세에는 교회의 ‘정통’ 교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단으로 간주했다. 이 이단을 곧 마법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터무니없게 ..
리비도 Libido 인간은 정신과 신체로 구분된다. 이성을 인간의 중요한 속성으로 간주하는 전통 철학에서는 정신이 신체를 움직이게 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정신을 운전자로, 신체를 자동차로 보는 관점이다. 하지만 욕망을 새로이 조명하고자 하는 20세기의 현대 철학(→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정신에 대한 비중을 낮추고 오히려 신체를 중시한다. 이런 철학적 전환에 모티브를 제공한 사람이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다. 프로이트가 연구한 무의식은 분명히 인간 정신의 일부분이지만 전통적인 개념의 인간 정신(이성적 주체)과는 크게 다르다. 어떤 면에서 무의식은 정신이라기보다 신체적 속성에 가깝다. 그런 무의식의 속성을 분석하는 데 프로이트가 사용한 주요 개념이 바로 리비도다. 리비도란 성..
레세페르 Laissez-faire 프랑스어에서 laissez는 영어의 let과 비슷한 뜻을 가진 laisser 동사의 2인칭 변화 형태이고 faire는 영어의 do와 같은 뜻이다. 그러니까 laissez-faire는 “마음대로 하게 놔둬”, “내버려 둬”라는 뜻이다. 올드 팝송 〈케세라세라(Qué será será)>나 비틀스의 〈렛잇비(Let it be)> 같은 노래를 연상케 하는데, 더 고상한 말로 표현하면 자유방임주의다. 이 일상적인 프랑스어가 개념어로 자리 잡은 이유는 역사적이고 경제적인 맥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과 비슷한 의미지만 그보다 선배다. 스미스는 자본주의 초창기에 살았으나 레세페르는 자본주의의 전 단계인 중상주의 시대에 프랑스 중농주의자들이 즐겨 ..
디아스포라 Diaspora 유대인만큼 평판이 극적으로 엇갈리는 민족도 없다. 유대인은 중세 유럽에서 수전노(守錢奴)의 대명사였고 오늘날에도 미국의 재계와 언론계를 좌지우지하는 검은 손인가 하면, 인류 역사상 최대의 비극인 홀로코스트(Holocaus)의 희생자였고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 프로이트 같은 위대한 인물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또한 탈무드의 지혜를 가진 현명한 민족인가하면 악명 높은 선민의식【유대인만이 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사상】으로 똘똘 뭉친 이기적인 민족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양한 평판 속에서도 한 가지 공통점은 유대인만큼 역사에서 수난을 많이 당한 민족은 없다는 점이다. 그런 사연을 말해주는 개념이 디아스..
동일자 & 타자 le même & l'autre 사전은 수많은 정의(定義)들로 이루어진 책이다. 국어사전은 우리말에서 사용하는 낱말들의 정의를 수록하고 있으며, 백과사전은 학문과 시사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의 정의를 수록하고 있다. 그런 만큼 사전에 나오는 정의는 매우 엄정하고 최대한 객관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사전은 무수한 의미들을 정의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무수한 의미들을 누락시킨다. 정의의 배후에는 배제가 있다. 예를 들어 국어사전에서 ‘행복’의 정의를 찾아보면 “생활의 만족과 삶의 보람을 느끼는 흐뭇한 상태”라고 되어 있는데, 이 정의에 의거하면 민족을 위한 희생이나 종교적 순교는 행복에서 배제된다. 또 백과사전에서 ‘예술’이라는 용어를 찾아보면 “작품의 창작과 감상에 의해 정신의 충실한 ..
도 道 “하나의 물건도 집어들 수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려놓아라.” “아무것도 집어들 수 없는데 어떻게 내려놓을 수 있습니까?” “그럼 가져가거라.” 12세기 중국 선종(禪宗) 불교의 승려가 말한 공안(公案), 즉 화두다. 얼핏 들으면 멋진 이야기인 듯도 싶지만 그런 방면에 감수성이 발달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저 재치 있는 유머 정도일 수도 있다. 화두는 원래 선종 불교에서 자주 쓰는데, 사실 동양 사상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으니 딱히 불교적인 것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말할 수 있는 도(道)는 영원한 도가 아니며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덕경(道德經)』의 첫 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이 말도 일종의 화두다. 『도덕경..
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 읽기에도 까다로운 이 라틴어 문구를 문자 그대로 옮기면, ‘기계에서 나온 신’이라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연극에서 시기적절하게 신이 등장해 극의 플롯을 해결해버린 데서 유래한 말이다. 극의 사실성보다 메시지를 중시했던 당시에는 실제로 기중기(起重機)와 같은 기계 장치로 공중에서 신이 내려와 꽉 막혀 있는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버리는 방식을 사용했다. 작가가 시나리오를 쓰거나 연출자가 연극을 연출할 때 줄거리를 일목요연하게 구성하는 작업이 어렵다는 것은 이해하겠지만, 그렇다고 ‘해결사’를 고용해버리면 앞과 뒤의 연결에 필연성이 없어진다. 더구나 갈등이 가장 고조되었을 때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관객은 맥이 탁 풀릴 수밖에 없다. 주인공이 막다른 궁지에 ..
담론 Discourse 담론(談論)이란 담화(談話)와 논의(論議)를 줄인 말이다. 학문적 이론이나 정치적 발언은 물론이고 일상적인 대화나 토론도 모두 담론이다. 사전적인 어의 이외에 고유한 의미가 없으므로 실은 개념이라고 할 것도 없는 용어인데, 마치 특별한 개념처럼 자리 잡은 데는 프랑스 현대 철학자인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의 영향이 크다【프랑스어에서는 discours라고 쓰고 ‘디스쿠르’라고 읽는다】. 담화와 논의라면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즉 담론은 특정한 대상을 설명한다. 그렇다면 담론은 대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푸코는 담론이 대상과 따로 노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분석한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등장하기 전까지 태양계라는 대..
달력 Calendar 해마다 1월이 되면 한동안은 새 연도에 익숙하지 않아 헤매게 마련이다. 사실 계절이 바뀌고 나이를 먹는 것은 자연현상이지만, 단 하루 차이로 연도가 바뀐다는 것은 사람이 만든 인위적인 제도일 뿐이다. 작년 12월 31일보다 올해 1월 1일이 훨씬 더 추운 것도 아니고, 그 사이에 내 몸이 팍 늙어 버린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기분은 그렇게도 다를까? 그저 달력을 바꾸어 걸었을 뿐인데…… 기록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달력을 전해 준 것은 중국이다. 최초의 황제로 알려진 진 시황제(秦 始皇帝, BC 259~210)는 이미 기원전 200년경에 달력을 만들어 사용했다. 이 달력은 1년의 길이를 365.25일로 하는 것이었는데, 이 점에서 오늘날의 양력과 상당히 비슷하다. 중국의 달력이 한반도..
노동 Labor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철학자자라면 지성을 지닌 존재로 볼 것이고, 역사가라면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체로 볼 것이며, 과학자라면 두뇌가 발달한 영장류의 하나로 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로 보았고 파스칼(Blaiss Pascal, 1623~1662)은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했다. 더 통속적인 관점도 있다. 교회에서는 인간을 신도(信徒)로 볼 테고, 법정에서는 피의자로, 병원에서는 환자로, 장의사는 잠재적 시신으로 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을 어떻게 보든 간에 인간을 인간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속성에는 공통적인 면이 있다. 우선 인간은 언어를 사용한다. 인간 이외에 언어를..
농업혁명Agricultural Revolution 인류 문명의 초기부터 노예가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문명이 생기기 이전에도 인간이 노예를 부렸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노예는 인류가 도시 문명을 일구기 시작할 때부터 있었다. 도시를 건설하게 된 것도 실은 노예 덕분이었다. 노예가 도시보다 먼저라니 가능한 일일까? 하지만 그 노예는 인간이 아니었다. 노예를 인간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인간 중심적인 사고다. 노예의 사전적인 정의는 “자신의 권리를 빼앗기고 남의 부림을 받는 사람”이지만, 더 넓게 인류학적인 시각에서 보면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재산처럼 소유하는 다른 생물 종도 노예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인간이 사육하고 재배하는 동물과 식물도 모두 노예다. 인간이 최초로..
기호 Sign 아침에 일어나면 신문을 보고, 출근길에는 라디오나 MP3로 음악을 듣고, 직장에 가서는 서류를 읽는다. 점심시간이 되면 거리의 횡단보도를 건너 식당을 찾고, 오후에는 회사 차를 타고 수많은 도로 표지판을 지나 거래처로 간다. 저녁에 퇴근하면 친구들과 영화를 한 편 보고, 집에 와서는 책을 읽다가 잠자리에 든다. 이 과정에서 접하는 것들은 모두 기호(記號)다. 현대 생활은 기호로 가득하다. 신문, 서류, 책 같은 문자와 언어의 기호, 음악 기호, 도로 표지판, 영화와 TV의 영상 기호 등등 우리는 무수한 기호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기호의 일차적인 목적은 소통(疏通)이다. 사회가 단순하면 소통의 과정도 단순하다. 원시사회는 집단의 규모가 작고 삶의 과정이 단순했기 때문에 그다지 많은 기호가 ..
기시감 Déjà-vu 처음 만나는 사람, 처음 가본 풍경이라도 문득 언젠가, 어디선가 보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 섬뜩한 느낌을 기시감(旣視感, 데자뷔)이라고 부른다. ‘이미(Déjà)’ ‘보았다(vu)’는 뜻의 프랑스어다. 때로는 젓가락을 집어드는 것과 같이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에서도 순간적으로 기시감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기시감은 심리학의 용어라기보다는 기억의 속성을 말해주는 개념인데, 대부분은 착각에 기인한다. 어떤 풍경을 보거나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의 두뇌는 풍경이나 얼굴 전체가 아니라 특징적인 일부분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나머지는 배경으로 기억한다. 따라서 분명히 처음 겪는 경험이라 해도 경험의 부분적 특징이 같을 경우 두뇌 속에 저장된 과거의 경험이 되살아나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
근친상간 Incest 그리스의 도시 테베(Thebes)의 왕은 아들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리라는 신탁을 받고 고민하다가 갓난 아들을 산에 버린다. 그 아들은 농부에게 구출되어 다른 도시에서 자란다. 청년으로 성장한 그 역시 장차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리라는 비극적인 신탁을 알게 된다. 그는 이 비극적 운명을 피하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결국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다. 자살로도 자신의 죄를 씻을 수 없다고 여긴 그는 스스로 눈을 멀게 하고 딸이자 동생인 안티고네와 함께 참회의 여행을 떠난다. 잘 알려진 오이디푸스의 신화인데, 이와 같은 근친상간(近親相姦)에 관한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된다. 오늘날에는 근친상간..
근본주의 Fundamentalism 2001년 9월 11일 아침 미국의 심장부 뉴욕에 위치한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비행기 두 대가 충돌하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테러가 일어났다. 이 사태로 400미터가 넘는 두 건물이 붕괴했고 3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테러의 주체는 알카에다(al-Qaeda)라는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로 알려졌으며, 전 세계 사람들은 테러의 당위성을 떠나 근본주의의 위험성을 새삼 실감했다. 원리주의라고도 불리는 근본주의는 어느 종교에나 있고, 나타나는 양상도 거의 비슷하다. 우선 종교의 경전(經典)을 자구(字句)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엄정한 입장을 취하며(순결성), 금욕에 가까운 엄격한 윤리를 내세우고(도덕성), 다른 종교는 물론 같은 종교의 다른 종파에 대해서까지도 적대적이거나 배..
그리스도교 Christianity 원래 원시 종교는 모두 다신교(多神敎)였다. 로고스(이성)가 발달하지 못한 미토스(신화)의 세계에서는 불가해한 자연 현상을 종교로써 설명했다. 따라서 그런 현상의 가짓수만큼 많은 신들이 필요했다. 비의 신, 번개의 신, 폭풍의 신, 숲의 신 등 두려운 미지의 대상에 대해서는 모조리 신을 갖다 붙였다. 그런 상황에서 기원전 2000년 무렵 히브리인들이 유일신앙을 가지게 된 것은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다. 좁은 지역의 한정된 인구였기 때문일까? 주변 민족들과 다툼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차별성을 가지게 된 탓일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히브리인들은 일찍부터 야회(YHWH)라는 유일신을 섬겼고, 이들의 신앙은 이스라엘 왕국 시대를 거치면서 유대교로 계승되었다. 그..
귀납 & 연역 Induction & Deduction 어느 동사무소 직원이 한 마을에 사는 주민들의 성(姓)을 조사하는 임무를 맡았다. 몇몇 사람에게 물어보았는데 모두 성이 최 씨라고 대답했다. 그 마을은 집성촌(集姓村)이었다. 직원은 서류에 마을 주민들의 성이 모두 최 씨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아뿔싸, 마을에는 박 씨가 단 한 사람 있었다. 16세기 영국의 철학자인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이 귀납과 연역의 함정을 설명하기 위해 든 예다. 지식을 얻는 방법, 그리고 그 지식을 검증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아래로부터 진행하는 것, 즉 귀납(歸納)이고 다른 하나는 위로부터 진행하는 것, 즉 연역(演繹)이다. 동사무소 직원이 만나는 주민마다 성을 물어본 것은 귀납적 ..
권력 Power 다소 무관해 보일지 모르지만 권력의 개념을 말하려면 먼저 번역의 문제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trade union을 ‘무역연합’으로 번역한 사례가 있었다. trade에는 ‘무역’이라는 뜻이 있고 union은 ‘연합’이니까 번역자는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옮겼을 테지만 올바른 뜻은 노동조합이다. 그 무신경과 대담함이라니! 또 New Age는 대문자로 표기되었는데도 번역자가 굳이 ‘신시대’라고 옮긴 사례도 있다. 그냥 뉴에이지라고 읽어주면 될 것을, 번역자의 과잉 친절이 오히려 의미를 훼손한 경우다. 권력의 경우는 그 정도의 터무니없는 오역은 아니지만 일상어인 원어를 뭔가 전문 용어처럼 번역했다는 점에서 광의의 오역이다. 영어의 power, 프랑스어의 pouvoir, 독일어의 Macht는 ..
국가 State 1917년 러시아 임시정부의 탄압을 피해 잠시 핀란드로 도피하고 있던 시기에 레닌(Vladimir Il'ich Lenin, 1870~1924)은 『국가와 혁명』이라는 책을 썼다. 그리고 1963년 군복을 벗고 대통령이 될 차비를 갖추던 시기에 박정희(朴正熙, 1917~1979)는 『국가와 혁명과 나』라는 책을 썼다. 레닌이 말하는 국가는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하기 전 일시적으로 존재하게 될 프롤레타리아 국가이며, 박정희가 말하는 국가는 오랜 왕조 시대를 거쳐 공화국으로 갓 태어난 대한민국이다. 레닌이 말하는 혁명은 프롤레타리아 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사회주의 혁명을 가리키며, 박정희가 말하는 혁명은 군부독재 체제를 수립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1961년의 5·16 군사 쿠데타를 가리킨다. ..
구조주의 Structuralism “하나님이 그들(인간)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8” 이 성서의 구절에 가장 알맞은 시대는 천지창조의 시기보다 19세기 후반일 것이다. 인간은 세상 만물의 주인이었고 자유로웠다. 과학적·철학적 이성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고 모든 이치를 이해할 수 있었다. 세계는 한없이 투명했다. 비록 당시의 현실은 폭풍 전야였으나 지성의 영역은 더없이 안정적이었다. 이 휴머니즘의 절정기, 이성 만능시대에 휴머니즘과 이성에 반대하는 구조주의가 탄생한 것은 아이러니다. “물질적 존재 조건이 낡은 사회 자체의 태내에서 충분히 성숙하기 전까지는 새롭고 고도한 생산..
교양 Education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의 학부모들이 생각하는 가장 쓸모 있는 공부는 영어와 컴퓨터일 것이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영어에 능숙하고 컴퓨터를 잘 다루면 학교 성적은 물론이고 장차 취업과 승진에도 훨씬 유리하리라고 굳게 믿는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자. 영어와 컴퓨터를 잘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공부의 목적이 아니라 다른 공부를 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영어를 배우는 목적은 외국어로 된 문헌을 읽거나 외국인과 소통하기 위해서이며, 컴퓨터를 배우는 목적은 정보화 시대를 맞아 필요한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영어와 컴퓨터를 공부의 목적으로 삼는 것은 수단을 목적으로 여기는 전도적 가치관이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본말이 전도(顚倒)되어 있는지는 교육에서부터 드러난..
관음증 Voyeurism 정신질환 가운데 가장 많은 종류가 성(性)에 관계된 것을 보면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가 리비도를 중심으로 정신분석을 진행한 게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나마 사디즘(sadism, 성적 상대방을 학대하는 데서 쾌감을 얻는 것), 마조히즘(masochism, 성적 상대방에게 학대를 당하는 데서 쾌감을 얻는 것), 트랜스베스티즘(Transvestism, 이성의 옷을 입고 성적 만족을 얻는 것) 같은 증세보다는 경증인 게 관음증(觀淫症)이다. 관음증이란 다른 사람의 나체나 성행위를 보는 데서 성적 만족을 얻는 증세인데, 성적 욕구를 정상적인 방식으로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에 나타난다. 그런데 마음에 둔 상대방과 성관계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상대방의 성행..
관용 Tolerance 차이와 차별은 분명히 다른 말이지만 현실에서는 자주 뒤섞이며, 때로는 의도적으로 혼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기업에서 신입사원을 모집할 때 학력 차이를 학력 차별과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학력에 따른 편차가 비상식적일 정도로 심할 경우다). 또 우리 사회처럼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주의가 여전히 우세한 사회에서는 남녀의 성적 차이를 성적 차별로 몰아가려는 불순한 의도가 자주 포착된다.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은 거부하라! 이것이 관용의 기본 모토다. 관용을 흔히 ‘톨레랑스(tolérance)’라는 프랑스어로 말하는 관행은 역사적이고 종교적인 데 연원이 있다. 16세기 초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불을 지핀 종교개혁의 불길은 순식간에 전 유럽을 휩쓸었..
관료제 Bureaucracy 상명하복(上命下服). 위에서 명령하면 아래에서는 무조건 복종한다. 복지부동(伏地不動).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고 바닥에 엎드려 몸을 사린다. 공무원의 소극적인 업무 자세를 비난할 때 흔히 사용하는 어구다. 모든 공무원이 그렇다면 나라가 제 꼴이 날 리 없겠지만, 일부 공무원은 실제로 그런 자세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런 말이 나왔을 터이다. 그런데 그런 현상은 공무원 사회에만 있는 게 아니라 관료제 특유의 병폐다. 관료제는 현대 국가가 국민을 통치하기 위한 주요 수단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국가가 탄생한 이래 관료(고위 관리)와 관료의 지배는 늘 존재했으나 관료제는 현대의 산물이다. 과거에 있었던 관료의 지배와 현대 국가의 관료제는 무엇이 다를까? 과거의 국가나 현대 국가나 ..
관념론 Idealism 탁상공론(卓上空論)이라고 해서 반드시 탁상에서만 하는 것은 아니듯이 관념론도 그 말처럼 좋은 아이디어(idea)와 관련된 개념은 아니다. 오히려 상식적으로 말하는 관념적 사고란 탁상공론처럼 현실적 조건과 무관하고 별로 실효성이 없는 생각을 가리킨다. 하지만 관념론의 의미와 역사를 보면 그런 오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관념론은 말 그대로 관념(idea)을 중시하는 철학적 사유의 방식을 가리키는데, 그 반대의 개념을 보면 의미를 더 확연하게 이해할 수 있다. 관념론의 반대는 두 가지로, 존재론적으로는 유물론(materialism)이고 인식론적으로는 실재론(realism)이다. 유물론은 물질이 세계의 근본이라고 보는 관점이며, 실재론은 인식 대상이 우리의 의식과는 독립적으로 실재한..
공리주의 Utilitarianism 한계효용(限界效用)이라는 말이 있다. 1만 원으로 자장면 세 그릇을 사 먹는다면 한계효용이 점차 체감하게 되므로 그 대신 탕수육을 시켜 먹든가, 영화를 보고 햄버거를 사 먹든가, 음반을 사든가 하는 등의 소비 방식으로 최대 효용을 추구한다는 뜻을 담은 개념이다. 19세기 경제학자들이 만들어낸 용어로, 그 근저에는 만족도를 지수화해서 비교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쾌락을 계량화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자신감은 18세기 영국의 철학자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이 먼저다. 그가 주창한 공리주의는 모든 인간이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추구한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러니까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공동체 Community 인간이 사회를 이루어 살게 된 이유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각 개인이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야만적인 자연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를 구성했다고 말한다. 그 반면에 다음 세대의 철학자인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는 자연 상태를 문화적인 상태로 본다. “인간이 이성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지상에 인간을 재판할 권리를 지닌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태가 바로 자연 상태다. -로크, 『정부론』” 서로 정반대로 주장했으나 두 사람의 해법은 똑같다. 홉스는 야만적인 자연 상태를 바로잡기 위해, 로크는 이성적인 자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프랑스 혁명의 이념을 ..
고독한 군중 Lonely Crowd “남들과 똑같이 사는 것은 죽기보다도 싫다.” 어느 청바지 회사의 텔레비전 광고 문구다. 개성을 생명처럼 여기는 젊은 세대에게는 상당한 호소력이 있을 법하다. 그러나 그 회사에서 만드는 청바지가 실은 윤전기(輪轉機)로 신문을 찍듯이 대량생산되는 것이라면 어떨까? 그 회사의 목적, 그 광고의 목적은 개성을 빌미삼아 똑같은(따라서 개성 없는) 제품을 될수록 많이 판매하려는 데 있다. ‘개성 있는’ 청바지를 ‘대량으로’ 판매하려는 회사 측의 모순, 남들과 똑같이 사는 게 죽기보다 싫어 대량 복제품을 사서 입는 소비자의 모순 - 개성의 상품화란 이렇듯 자체 모순에 불과하다. 1950년대의 저작인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에서 미국의 사회학자인 리스먼(Da..
계몽주의 Enlightenment ‘enlighten’이란 말은 ‘뭔가를 밝힌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계몽주의라는 개념에는 광원(光源)과 밝혀야 할 대상, 즉 어둠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무엇이 무엇을 밝힌다는 걸까? 계몽주의가 태동한 시기가 17세기라면 그 답을 알기 어렵지 않다. 계몽주의는 근대 이성의 빛으로 중세의 어둠을 밝히려는 지적 운동이다. 서양의 중세는 신이 모든 것의 원인이자 목적이었고 신학이 철학을 비롯한 모든 학문의 왕으로 군림하던 시대였다. 이런 중세를 어둠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곧 종교의 통제력이 그만큼 약화되었다는 의미다. 1517년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비텐베르크(Wittenburger) 교회의 대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면서 시작된 종교개혁..
계급의식 Class Consciousness 계급은 경제적인 개념이므로 계급 구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적 이해관계다. 하지만 경제적 이해관계가 같다고 해서 사고방식도 같은 것은 아니다. 같은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한다면 세상은 삭막하고 재미가 없을 것이다. 노동자라고 해서 누구나 해방을 꿈꾸지는 않으며, 자본가라고 해서 모두가 착취적인 성향을 가진 것은 아니다. 헝가리 태생의 사회주의 철학자인 루카치(György Lukács, 1885~1971)는 『역사와 계급의식』에서 한 계급의 구성원들이 반드시 행동을 함께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런데 계급의 공동 행동이 불가능하다면 착취 구조를 근절하기 위한 혁명은 어떻게 가능할까? 루카치에 의하면 그것은 계급의식이 동반되어야 가..
계급 Class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되어 있다.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이와 같은 평등의 이념이 법으로 규정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조항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현실적으로 불평등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법 앞에’라는 문구다. 모든 국민은 무조건 평등한 게 아니라 법 앞에 평등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법적ㆍ정치적 평등권을 가진다. 대통령이나 노숙자나 남의 물건을 훔치면 똑같이 절도죄가 적용된다는 게 법적 평등이고, 대통령도 노숙자도 선거에서 똑같이 1표만 행사한다는 게 정치적 평등이다. 그러나 법과 정치의 범위를 벗어나면 평등을 보장해주는 제도적 장치는 없다..
경험 Experience 한자 성어와 영어 숙어의 뜻과 형태가 비슷한 드문 사례가 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과 믿는 대로 보는 것(Seeing is believing). 둘 다 경험만큼 좋은 스승은 없다는 뜻이다. 경험이 앎을 얻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과정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소금이 짜다는 것은 맛을 봐야 알고 승리가 얼마나 달콤한지는 이겨봐야 안다. 경험하지 않고 아는 것은 올바른 앎이 아니며 기껏해야 관념적인 앎일 뿐이다. 그런데 경험을 통한 앞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맛보는 사람에 따라 소금이 짠 정도가 다를 수 있고 승리를 얻기까지 치른 고통에 따라 승리의 쾌감이 달라진다. 즉 경험은 근본적으로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나의 경험을 고스란히 남에게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할뿐..
개념 Concept “내용 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Gedanken ohne Inhalt sind leer, Anschauungen ohne Begriffee sind blind). -칸트,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이 유명한 문구는 당시 인식론 철학의 주요한 두 가지 조류였던 합리론(合理論)과 경험론(經驗論)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륙을 무대로 전개된 합리론은 인식 주체를 강조했고, 영국에서 발달한 경험론은 인식 대상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따라서 합리론은 사물에 대한 인식을 주로 정신 활동의 결과라고 본 반면에 경험론은 사물에서 전해진 감각자료에 대한 경험이 인식이라고 여겼..
감정 Emotion “더 좋은 말은 등이 곧고, 사지가 말끔하고, 목이 길고, 매부리코에다, 털이 희고, 눈이 검다. 성공하려는 결의를 지녔으나 자제력과 남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조절할 줄 안다. 한마디로 정말 멋진 말이다. 이 말에게는 채찍질이 필요 없고 소리로 전하는 명령만으로 족하다. 다른 말은 등이 구부러졌고, 몸집이 지나치게 큰 데다 사지가 못났고, 목이 짧고 굵으며, 얼굴이 넓적하다. 털은 회색이 섞인 검은색이고, 눈은 충혈되어 있다. 과잉과 허식을 대표하는 말이다. 귀 주변에 털이 나 있어 소리를 잘 듣지 못하며, 채찍과 당근을 함께 사용해도 다스리기가 어렵다 –플라톤(Platon), 『파이드로스(Phèdre Φαῖδρος)』” 자제력을 가지고 통제에 잘 따르는 말은 이성을 상징하며, 탐욕스럽..
감각 Sense 보통 지식이라고 하면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을 연상한다. 경제학 지식은 경제 현상에 관한 다양한 정보가 특정한 계통에 따라 배열된 것을 가리키며, 생물학 지식은 유기체의 구조와 특성에 관한 정보가 총체적으로 집적된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 방대한 지식 체계도 처음에는 아주 단순한 정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럼 그 단순한 정보는 어떻게 얻었을까? 정보의 가장 기본적인 원천은 감각이다. 돌이 단단하고 물이 부드럽다는 것은 감각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러나 감각이 체계적인 지식으로 발전하는 데는 하나의 걸림돌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감각이 주관적이라는 사실이다. 사람마다, 때마다 다른 게 감각이다. 이러니 감각에서 어떻게 올바른 지식이 나오겠는가? 그래서 고대로부터 철학자들은 감각을 중..
가치 Value 모든 단어가 다의적이지만 가치(價値)라는 단어만큼 여러 가지 층위에서 두루 사용되는 말도 드물다. 우선 일상생활에서 가치는 ‘중요하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일례로 가장 가치가 큰 선수, 즉 MVP(most valuable player)는 팀에 반드시 필요한 기둥 선수다. 선수 생활 내내 한 번도 트레이드되지 않았던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 1963~)이나 선동열(宣銅烈, 1963~)이 그렇다. 프로 선수라면 가치를 몸값과 거의 동일시할 수 있다. 학문에서 가치라는 말을 쓸 때는 단순히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평가의 의미가 포함된다. 주로 도덕철학에서 가치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도덕 역시 여러 가지 기준들 가운데 하나일뿐이므로 그다지 객관적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사..
가상현실 Virtual Reality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조선의 왕인 선조는 가까운 신하들과 식솔들을 거느리고 북쪽의 의주까지 야반도주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대통령인 이승만(李承晩, 1875~1965)은 수도 서울을 사수하겠다던 대국민 약속을 헌신짝처럼 팽개친 채 한강 인도교를 끊고 남쪽으로 도망쳤다. 우리나라의 위정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하지만 앞으로는 설사 전쟁이 터진다 해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굳이 보따리 싸서 피난 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쿠웨이트를 무력으로 점령한 이라크를 응징하기 위해 1991년 미국의 주도 하에 벌어진 걸프전쟁은 현대전의 양상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것은 ‘가상 전쟁(假想 戰爭)’이다. 불과 42일..
책머리에 개념어의 이미지를 내 멋대로 그리다 한 개인이 ‘사전(辭典)’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면 둘 중 하나다. 알래스카에 냉장고를 팔려 할 만큼 무모하거나, 아니면 알래스카에 냉장고를 팔 수 있을 만큼 뻥이 세거나. 하지만 이 책의 제목 앞에 생략된 문구를 밝히면 면죄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내 멋대로 순전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쓴 개념어 사전’ 이것이 이 책의 원제목이다. 사전을 쓰는 일은 저술이 아니라 편찬이다. 한마디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수십 명의 전문가가 달라붙거나, 적어도 위원회가 구성되어야 가능한 작업이다. 18세기에 프랑스의 계몽주의자들이 만든 『백과전서 (L'Encyclopédie)』는 160명의 학자와 21년의 세월이 필요했고,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서 황제의 명으로..
연암을 읽는다 목차 박희병 서문: ‘고’를 탐구해나가는 힘찬 발걸음들 1. 큰누님 박씨 묘지명 1총평伯姉贈貞夫人朴氏墓誌銘 2. 말 머리에 무지개가 뜬 광경을 적은 글 1자연을 담아내는 표현馬首虹飛記2동양화 식으로 묘사한 구름 3깔끔하고 절제된 미학 4총평 3. ‘죽오’라는 집의 기문 1대나무 기문을 써주지 않다竹塢記2상투적인 언어에 생기를연암과 패관소설3양호맹의 진실한 대나무 사랑『過庭錄』 1권 304대나무를 닮아 간 사내 5변함없는 인간에 대한 헌사 6총평 4. ‘주영염수재’라는 집의 기문 1작은 규모의 집에 다 있네晝永簾垂齋記2개성 지식인의 하릴없음 3개인 취향에 빠진 사대부 4양인수의 취미가 다른 점 5총평 5. 술에 취해 운종교를 밟았던 일을 적은 글 1총평醉踏雲從橋記 6. 소완정이 쓴 「여름밤 ..
6. 총평 1 연암은 글의 거죽만 읽으려 들지 말고 글에 깃들여 있는 글쓴이의 마음을 읽으라고 말하고 있다. 연암의 이 말은 우리가 연암의 글을 읽을 때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연암이 쓴 글들의 거죽만 보고 이러쿵저러쿵 말하거나 환호할 것이 아니라, 그 심부深部에 깃들여 있는 연암의 마음, 연암의 고심을 읽어내는 일이 중요하다. 연암의 글을 피상적으로 읽고 망발을 일삼거나 대중을 위한다면서 혹세무민하는 사람들은 없는가? 혹 그런 사람이 있다면 연암의 이 말에 두려움을 느껴야 마땅하리라. 2 이 글 2단락의 나비 잡는 아이의 비유는 그 표현이 썩 참신하다. 연암은 글쓰기에서 비유나 은유를 퍽 잘 활용했는데, 이런 데서 연암의 기발한 상상력이 잘 드러난다. 3 연암이 인간 심리를 포착하는 데 탁월한 능..
5. 높은 수준의 글을 쓰도록 만드는 결락감 연암은 10대 때부터 『사기』에 매료되었다. 연암 문장의 드높은 기세는 『사기』가 보여주는 기운찬 문장과 상통하는 점이 많다. 연암과 사마천은 그 문장만 상통하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의 심리적 기저에 있어서도 상통하는 점이 없지 않다. 앞서 말했듯 사마천 글쓰기의 기저부에는 자욱한 분만감이 깔려 있는데, 연암 글쓰기의 밑바닥에도 이 비슷한 감정이 자리하고 있다. 연암은 자신의 글쓰기를 ‘유희遊戲’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이는 분만감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뜻을 얻지 못한 채 소외되어 있던 연암으로서는 울분을 품을 수밖에 없었으며 이런 감정으로 인해 그의 글은 더욱 파격적이고 불온하게 되어 갔다. 사마천과 연암은 둘 다 ‘결락감缺落感’을 지녔다는 점에서 또 다..
4. 수치심과 분만감으로 쓴 『사기』 『사기』라는 저술의 심연에는 어찌해서 수치심과 분만감이 깃들여 있는 것일까?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선 사마천의 생애를 간단하게라도 살펴두지 않으면 안 된다. 사마천 시대의 군주인 무제武帝는 영토 확장에 혈안이 된 전제군주였다.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정복 전쟁을 벌였다. 베트남을 침공하고 한반도를 침략했다. 그리고 흉노와 줄창 싸웠다. 당시 이릉李陵이라는 20대의 용맹한 장수가 있었다. 그는 흉노와 싸워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전투에서 불행히 흉노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으나 부하들이 전멸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무제는 이릉이 자결하지 않고 포로가 되었다고 해서 그의 구족九族을 멸해 버렸다. 사마천은 당시 궁정의 ..
3. 『사기』를 쓸 때 사마천의 마음과 나비를 놓친 아이의 마음 어린아이가 나비를 잡는 광경을 보면 사마천의 마음을 알 수 있사외다. 앞다리는 반쯤 꿇고 뒷다리는 비스듬히 발꿈치를 들고서는 손가락을 ‘丫아’자 모양으로 하여 살금살금 다가가 잡을까 말까 주저하는 순간, 나비는 그만 싹 날아가 버리외다. 사방을 돌아봐도 아무도 없자 씩 웃고 나서 부끄럽기도 하고 분이 나가도 하나니, 이것이 바로 사마천이 『사기』를 쓸 때의 마음이외다. 見小兒捕蝶, 可以得馬遷之心矣. 前股半跽, 後脚斜翹, 丫指以前, 手猶然疑, 蝶則去矣. 四顧無人, 哦然而笑, 將羞將怒, 此馬遷著書時也. 갑자기 문의文意가 바뀌어 나비 잡는 어린아이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는 나비를 잡으러 살금살금 다가갔다가 막판에 놓쳐버린 아이의 복잡한 심리..
2. 작가는 고심 때문에 글을 쓸 수밖에 없다 이 단락의 첫 문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지의 『사기』 읽는 방식은 그 글만 읽는 것이요, 작가의 ‘마음’을 읽는 것은 못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글의 거죽만 읽었지 글 쓴 사람의 마음자리를 읽지 못했다는 말이다. 전통적인 어법으로는 글쓴이의 마음자리를 특히 ‘고심苦心’이라고 한다. 고심이라는 말은, 작가의 고민이라든가 현실에 대한 입장, 삶과 세계에 대한 감정을 두루 포괄하는 말이다. 요컨대, 그것은 삶과 세계에 대한 작가의 근원적이거나 실존적인 태도와 관련되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작가의 글쓰기가 이루어지는 원점 혹은 어떤 최저 지점을 뜻한다. 작가는 바로 이 고심 때문에 글을 쓸 수밖에 없다. 그것은 사회적 의제議題나 이념과 관련된 것일 수도 ..
1. 경지의 『사기』 읽는 방식을 비판하다 그대는 태사공太史公의 『사기史記』를 읽었으되 그 글만 읽었을 뿐 그 마음은 읽지 못했사외다. 왜냐고요? 「항우본기項羽本紀」를 읽을 땐 제후들의 군대가 자신의 보루堡壘에서 초나라 군대의 전투를 구경하던 광경을 떠올려 보아야 한다느니, 「자격열전刺客列傳」을 읽을 땐 고점리高漸離가 축筑을 타던 장면을 생각해보아야 한다느니 하는 따위의 말은, 늙은 서생의 케케묵은 말일 뿐이니, 부엌에서 숟가락 줍는 것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足下讀太史公, 讀其書, 未嘗讀其心耳. 何也? 讀項羽, 思壁上觀戰; 讀刺客, 思漸離擊筑, 此老生陳談, 亦何異於廚下拾匙? 아마 경지가 지난번에 연암에게 보낸 편지 내용 중에 “「항우본기」를 읽을 땐 제후들의 군대가 자신의 보루에서 초나라 군대의 전투를 ..
5. 총평 1 이 글은 표면적으로는 글읽기에 대해 말하고 있으나 기실 글쓰기의 문제를 밑바닥에 깔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 이 글은 문자와 사물의 관계에 대해 연암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문자를 그냥 문자로만 알아서는 안 되고, 문자에 생기와 온기 및 사물의 다채로운 뉘앙스를 채워 넣을 수 있어야 비로소 문자를 제대로 아는 것이라는 관점은 『과정록』에 나오는 다음의 일화에서도 확인된다. 아버지는 이공(이광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평생 독서했는데 아는 글자가 몇 자나 되지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라며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비웃었다. ‘이공이 글을 잘하고 박식한 선비라는 걸 누가 모른단 말야!’ 이공은 한참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겨우 서른 자 남짓 아는..
4. 사물을 잘 관찰하는 것이 훌륭한 독서 아침에 일어나니 푸른 나무 그늘이 드리운 뜨락에 여름새들이 찍찍 짹짹 울고 있더이다. 나는 부채를 들어 책상을 치며 이렇게 외쳤소이다. “저것이야말로 ‘날아가고 날아온다’라는 문자이고, ‘서로 울며 화답한다’라는 문장이다! 갖가지 아름다운 문채를 문장이라고 한다면 저보다 더 나은 문장은 없으리라. 오늘 나는 진정한 글 읽기를 했노라!” 朝起, 綠樹蔭庭, 時鳥鳴嚶. 擧扇拍案胡叫曰 : “是吾飛去飛來之字, 相鳴相和之書.” 五釆之謂文章, 則文章莫過於此. 今日僕讀書矣. 다시 문세를 전환해 연암 스스로의 경험을 말하고 있다. 어떻게 글을 읽어야 하는가? 어떤 독서가 참된 독서인가? 이 단락은 이 물음에 대해 답하고 있다. 연암의 답인즉슨, ‘사물’을 읽으라는 것이다. 사물..
3. 새를 글자 속에 가두다 저 하늘을 날아가며 우는 새는 얼마나 생기가 있습니까? 그렇건만 적막하게도 새 ‘조鳥’자 한 글자로 그것을 말살하여 새의 고운 빛깔을 없애버리고 그 울음소리마저 지워 버리지요. 이는 마을 모임에 가는 촌 늙은이의 지팡이 머리에 새겨진 새 모양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새 ‘조鳥’자의 진부함이 싫어 산뜻한 느낌을 내고자 새 ‘조鳥’자 대신에 새 ‘금禽’자를 쓰기도 하지만, 이는 책만 읽고서 문장을 짓는 자들의 잘못이라 할 거외다. 彼空裡飛鳴, 何等生意? 而寂寞以一‘鳥’字, 抹摋沒郤彩色, 遺落容聲. 奚异乎赴社邨翁杖頭之物耶? 或復嫌其道常, 思變輕淸, 換箇禽字, 此讀書作文者之過也. 연암은 시선을 갑자기 하늘로 돌리고 있다. 그리하여 앞 단락에서 언급한 천지 사방 혹은 만물의 한 예로서..
2. 맹목적인 독서로 헛 똑똑이가 되다 이 편지글은 그 서두가 퍽 도발적이다. 다짜고짜 “정밀하고 부지런히 글을 읽은 이로 포희씨包犧氏만 한 사람이 있겠습니까?(讀書精勤, 孰與庖犧?)”라고 묻는 말로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인즉슨 포희씨만큼 글을 잘 읽은 사람은 없다는 건데,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연암의 생각을 따라가면 이렇다. 포희씨는 우주의 삼라만상을 세밀히 관찰하여 그 근본 원리를 8괘라는 기호에 집약해냈다. 포희씨가 삼라만상을 관찰한 행위는 바로 글(혹은 책)을 읽은 것에 다름 아니다. 왜냐면 글의 에센스, 즉 글의 정수精髓(이 단락에서 말하고 있는 글의 ‘정신’이란 바로 이런 뜻이다)는 바로 사물과 세상 속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삼라만상을 잘 관찰하여 그 정수를 포착해 8괘..
1. 천지 사이에 있는 게 책의 고갱이 정밀하고 부지런히 글을 읽은 이로 포희씨包犧氏만 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글의 정신과 뜻이 천지사방에 펼쳐 있고 만물에 두루 있으니, 천지사방과 만물은 글자로 쓰지 않은 글자이며, 문장으로 적지 않은 문장일 거외다. 후세에 글을 부지런히 읽기로 호가 난 사람들은 기껏 거친 마음과 얕은 식견으로 말라붙은 먹과 문드러진 종이 사이를 흐리멍덩한 눈으로 보면서 하찮은 글귀나 주워 모은 데 불과하외다. 이는 이른바 술지게미를 먹고서 취해 죽겠다고 하는 격이니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讀書精勤, 孰與庖犧? 其神精意態, 佈羅六合, 散在萬物, 是特不字不書之文耳. 後世號勤讀書者, 以麁心淺識. 蒿目於枯墨爛楮之間, 討掇其蟫溺鼠渤. 是所謂哺糟醨而醉欲死. 豈不哀哉! 이 단락의 취지는 앞에서..
5. 총평 1 그리움이라든가 누군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모두 망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설사 망상이라 할지라도 그립고 아련한 마음을 우리는 어찌할 수가 없다. 2 이 글은 짤막한 편지지만 글 쓴 사람의 진정이 오롯이 담겨 있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여운이 참 깊다. 일생에 이런 편지를 한 통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리라. 3 옛날의 편지에는 크게 보아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격식을 갖추어서 쓰는 비교적 긴 편지이고, 다른 하나는 크게 격식을 따지지 않고 안부나 소회所懷를 전하는 짤막한 편지이다. 전자는 보통 ‘서書’라고 부르고, 후자는 ‘간찰簡札’이나 ‘척독尺牘’이라고 부른다. 경지에게 보낸 답장 세 통은 모두 후자에 속한다. 척독은 ‘서’에 비해 글쓰기가 자유롭고 격식에..
4.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곳 어제 당신께서는 정자 위에서 난간을 배회하셨고, 저 역시 다리 곁에 말을 세우고는 차마 떠나지 못했으니, 서로간의 거리가 아마 한 마장쯤 됐을 거외다. 모르긴 해도 우리가 서로 바라본 곳은 당신과 제가 있던 그 사이 어디쯤이 아닐까 하외다. 昨日足下, 猶於亭上, 循欄徘徊, 僕亦立馬橋頭, 其間相去已爲里許. 不知兩相望處, 還是那際. 당시 연암은 경지와 유별留別했던 듯하다. 떠나는 사람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 작별을 고하는 것을 ‘유별’이라 하고, 남아 있는 사람이 떠나는 사람을 전송하는 것을 ‘송별’이라 한다. 연암이 떠나왔으니, 연암은 유별한 게 되고, 경지는 송별한 게 된다. 두 사람 모두 작별이 퍽 아쉬웠던 모양이다. 경지는 말을 타고 떠나가는 연암을 정자 위 난간에서 ..
3. 석별의 아쉬움을 잇는 ‘사이’ 이야기 지난번 백화암百華菴에 앉아 있을 때 일이외다. 암주菴主인 처화處華가 멀리 마을에서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를 듣고는 비구 영탁靈托에게 이렇게 게偈를 읊더이다. “탁탁 하는 방망이 소리와 툭툭 하는 다듬잇돌 소리, 어느 것이 먼저인고?” 그러자 영탁은 합장하며 이렇게 말했사외다. “먼저도 없고 나중도 없으니 그 사이에서 소리가 들리옵나이다.” 頃坐百華菴, 菴主處華, 聞遠邨風砧, 傳偈其比丘靈托曰: “椓椓礑礑, 落得誰先?” 托拱手曰: “不先不後, 聽是那際?” 갑자기 문세가 확 전환되면서 앞서 「『말똥구슬』 서문蜋丸集序」에서 봤던 것과 같은 이상한 일화가 제시되고 있다. 뭘 말하려는 걸까? 처화가 툭 던진 물음은 방망이 소리가 먼저냐 다듬잇돌 소리가 먼저냐는 것이다. 어느..
2. 첫 시작부터 본론으로 들어간 편지 전의감동 시절 연암은 자신이 살던 집 건물에 ‘방경각放瓊閣’이라는 이름과 영대정映帶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금 전하는 연암의 문집에는 ‘방경각 외전放璚閣外傳’이라는 이름하에 「양반전」 등 이른바 9전九傳을 수록해놓고 있다. 연암은 전의감동에 살 때 이전에 창작한 전들을 모아 『방경각 외전』이라는 책을 엮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의감동 시절 연암은 이 책 말고 또 하나의 창작집을 스스로 엮었으니, 『영대정잉묵映帶亭賸墨』이 그것이다. ‘영대정 잉묵’이란 영대정에서 엮은 하잘 것 없는 편지글이라는 뜻이다. ‘하잘 것 없는’이라는 말은 겸사로 한 말이다. 연암 자신의 편지글 모음집인 이 책은 정확히 1772년 10월에 편찬되었다. 연암은 이 책에 자서(映帶亭賸墨自序)를 붙..
1. 경지란 누구인가? 이 편지는 경지京之라는 사람에게 보낸 답장이다. 경지가 누군지는 확실치 않다. 나는 그가 혹 당대의 저명한 서예가이자 퉁소 연주자인 이한진李漢鎭(1732~?)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고 있다. 이한진은 호가 경산京山이고, 자는 중운仲雲이며,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경지’는 그의 또 다른 자字가 아닐까 한다. 이한진은 감역監役이라는 말단 벼슬을 지냈을 뿐이다. ‘감역’이라는 벼슬은 대개 문과에 급제하지 못한 양반이 음직蔭職으로 하는 벼슬이다. 홍대용과 박지원도 감역 벼슬로부터 벼슬을 시작했다. 이한진은 전서篆書와 퉁소에 능하고 아취가 있었으며, 성대중成大中(1732~1809)ㆍ홍대용ㆍ이덕무ㆍ박제가ㆍ홍원섭洪元燮(1744~1807) 등과 교유했다. 성대중의 문집인 『청성집』에 실려 있는..
12. 총평 1 이 글은 당시 보수적인 문예관을 지닌 사람의 눈에는 경망스럽고 상스러운 글로 보였을 테지만, 제문의 매너리즘을 깨뜨리면서 인간의 진정眞情을 쏟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빛이 바래지 않으며, 퍽 감동적이다. 2 이 글에서는 정작 슬픔이라든가 애통함이라든가 이런 말은 단 한 군데도 나오지 않지만 친구의 죽음을 앞에 한 채 비탄과 슬픔에 잠겨 있는 인간 연암의 마음이 약여하게 느껴진다. 3 이 글은 연암의 심리적 추이에 따라 글이 구성되어 있다. 1단락은 석치의 죽음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 그럼에도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연암의 착잡하고 당혹스런 마음을 빠른 필치로 적고 있다면, 2단락은 너무나 큰 슬픔 앞에서 잠시 망연자실하여 멍한 눈으로 우두커니 빈소를 바..
11. 파격적인 제문을 쓸 수밖에 없던 이유 이제 끝으로, 연암이 정석치의 제문을 왜 그리도 파격적으로 썼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자.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고 여겨진다. 그 하나는, 제문의 대상 인물인 석치 자체가 몹시 파격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제문의 대상 인물이 음전하고 순순한 인간이었다면 굳이 그렇게 쓰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석치는 방달불기放達不羈(말과 행동에 거리낌이 없고 예법 따위에 구속되지 않는 태도)한 인간 타입이었다. 박제가가 그를 “청동 술잔으로 3백 잔을 마신 술꾼이어라(靑銅三百酒人乎)”라고 읊었듯이, 그는 당대의 주호酒豪였다. 두 번째 이유는, 당시 연암이 처해 있었던 상황과 그 심경에서 찾아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앞에서 말했듯 연..
10. 울울하던 그날 함께 하던 벗 홍국영은 1780년 2월 권력에서 축출된다. 박지원은 더 이상 연암협에 은거해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는 서울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해 5월 중국 여행길에 올라 동년 10월에 귀국한다. 박지원은 귀국 후 서울과 연암협을 오가며 『열하일기』의 집필에 힘을 쏟는다. 『과정록』은 당시의 사정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아버지는 경자년(1780)에 서울로 돌아와 평계平谿에 거처하셨으니 곧 지계공芝溪公(연암의 처남인 이재성)의 집이었다. 이때 홍국영이 실세하여 화근은 사라졌지만 점잖은 옛 친구들은 거의 다 세상을 떴다. 그래서 분위기가 싹 변해 옛날 같지 않았다. 아버지는 더욱 뜻을 잃고 스스로 방달하게 지내셨는데 그것이 몸을 보존하는 비결임을 도리어 기뻐하셨다. 그러면서도 항상 ..
9. 너무나 인간적인 나의 친구 탈락된 부분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그리고 혹 그 부분에 대한 보충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여기서 잠시 연암과 정석치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정석치의 인간적 특성과 재예才藝에 대해 조금 언급해두기로 한다. 연암과 정석치는 언제부터 알게 된 걸까? 『과정록』 초고본에는 이런 기록이 보인다. 아버지는 임진년(1772)과 계사년(1773) 사이에 가족을 석마石馬(지금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돌마 일대)에 있는 처가로 보내고 늘 홀로 서울의 전의감동 집에 거처하셨다. 홍담헌 대용, 정석치 철조, 이강산李薑山 서구書九와 때때로 서로 왕래하셨고, 이무관 덕무, 박재선朴在先 제가齊家, 유혜풍 득공이 늘 아버지를 좇아 노닐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연암이 정철조와 알게 된 것은 적..
8. 사라져 버린 본문 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지어 읽는다. (이하 글을 잃어버렸음) 爲文而讀之曰 缺 “글을 지어 읽는다”라는 말 뒤에 비로소 본격적인 제문이 시작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 부분은 현재 탈락되고 없다. 아마 4언으로 된 운문이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묘지명의 ‘명’이 보통 아주 짤막한 운문인 것과는 달리 제문의 운문은 아주 길어 60구句 내지 100여 구에 이르는바 제문의 중심부분을 이룬다. 가령 연암이 그 처삼촌인 이양천李亮天을 위해 쓴 제문의 경우 4언구가 96구이며, 형수의 아버지인 이동필을 위해 쓴 제문의 경우 61구이다. 이 두 제문은 4언구를 통해 고인의 인품과 생전의 언행, 고인에 대한 연암의 특별한 추억과 애통한 심정 등을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4언구가 끝나면 ‘상향’이라..
7. 진짜로 네가 죽었구나 석치는 진짜 죽었구나. 귓바퀴는 이미 문드러지고 눈알도 이미 썩었으니, 이젠 진짜 듣지도 보지도 못하겠지. 잔에 술을 따라 강신降神해도 진짜 마시지도 못하고 취하지도 못할 테지. 평소 석치와 함께 술을 마시던 무리를 진짜로 놔두고 떠나가 돌아보지도 않는단 말인가. 정말 우리를 놔두고 떠나가 돌아보지도 않는다면 우리끼리 모여 큼직한 술잔에다 술을 따라 마시지 뭐. 石癡眞死. 耳郭已爛, 眼珠已朽, 眞乃不聞不覩, 酌酒酹之, 眞乃不飮不醉. 平日所與石癡飮徒, 眞乃罷去不顧. 固將罷去不顧, 則相與會酌一大盃. 이 단락은 “석치는 진짜 죽었구나”라는 말로써 시작된다. 1단락의 맨 끝 문장이 “지금 석치는 진짜 죽었구나(今石癡眞死矣)”였음을 상기한다면, 이 단락은 1단락을 잇고 있음을 알 수 있..
6. 머리로 아는 죽음과 가슴으로 느껴지는 죽음 이 단락의 포인트는 평소 석치를 저주하던 자들에게 대한 역설적 조소에 있다고 해야겠지만, 이 단락의 가장 미묘한 대목은 석치의 죽음에 대한 도인의 반응을 언급한 구절이 아닌가 한다(世固有夢幻此世, 遊戱人間, 聞石癡死, 固將大笑, 以爲歸眞, 噴飯如飛蜂, 絶纓如拉朽). 이런 도인은 『장자』라는 책에 허다하게 등장한다. 『장자』는 이런 인물을 내세워 삶이란 한낱 꿈에 지니지 않는다는 것, 삶과 죽음은 결코 분리되지 않으며 죽음이야말로 삶의 근원이라는 것, 따라서 죽음이란 특별한 일도 슬퍼할 일도 아니며 자기의 원래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단락 끝 부분에서 도인이 보여주는 태도는 이런 생사관을 반영하고 있다. 이런 생사관은 그야말로 아..
5. 석치를 저주한 사람들 이 단락은 잠시 숨을 고르는 부분이다. 앞 단락이 아주 빠른 템포로 감정의 직절적直截的 분출을 보여주었다면, 이 단락은 망자亡者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비교적 차분하게 서술해놓고 있다. 앞 단락을 ‘급急’이라 한다면 이 단락은 ‘완緩’이다. 이렇듯 두 단락은 퍽 대조적이다. 이처럼 완급을 교대해가며 서술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독자를 편안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글에 입체감을 부여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급’으로만 일관하거나 ‘완’으로만 일관하는 글을 한번 상상해보라. 독자는 전자의 경우 숨이 가빠 죽을 것이고, 후자의 경우 지루해 죽을 것이다. 한편, 앞 단락이 격렬함과 당혹감이라는 감정을 거쳐 체념의 감정으로 끝나고 있고, 그것을 받아 이 단락이 시작된다는..
4. 천문학ㆍ수학ㆍ지리학 등 학문에 뛰어났던 그대 석치가 죽자 시신을 둘러싸고 곡하는 이들은 석치의 처첩과 함께, 아들과 손자, 친척들인데, 그 곁에 함께 모여 곡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석치 유족의 손을 잡고 이렇게 위로한다. “훌륭한 가문의 불행입니다. 철인哲人이 어찌해 이렇게 되셨는지……” 그러면 그 형제와 아들과 손자들이 절하고 일어나 머리를 조아리며 이렇게 대꾸한다. “저희 집안의 흉액입니다.” 석치의 벗들은 서로 이렇게 탄식한다. “이런 사람은 정말 쉽게 얻을 수 없는데……” 함께 모여 조문하는 이들도 실로 적지 않다. 한편, 석치에게 원한이 있던 자들은 평소 석치더러 병들어 죽으라고 저주를 퍼붓곤 했거늘 이제 석치가 죽었으니 그 원한을 갚은 셈이다. 죽음보다 더한 벌은 없는 법이니까...
3. 자유분방하게 감정을 토로하다 (A) (B) 살아 있는 석치라면 이러이러할 텐데, 그럴 수 없는 걸 보니 석치가 진짜 죽었구나.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A)의 가정문은 절묘하게도 두 가지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 하나는 이를 통해 연암과 석치의 개인적인 특별한 관계를 말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석치의 죽음을 도무지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는 연암의 감정 상태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연암은 일상 속 석치의 부재를 통해 ‘석치가 진짜 죽은 게 맞긴 맞구나!(今石癡眞死矣)’하고 석치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처럼 이 단락은 가정문 (A)와 그에 이어지는 단정문 (B)를 통해 친한 벗 석치의 죽음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 연암의 심리 상태 및 그럼에도 결국 석치..
2. 일상 속 빈자리를 통해 너의 부재를 확인하다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단락이 느닷없는 출발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서양의 산문 분석에서는 이런 시작 방식을 ‘sudden start’라고 부른다. 이런 방식으로 시작되는 서두는 독자의 심리에 강한 인상과 파문을 던지면서 초입에서부터 독자를 긴장시키는 효과가 있다. 다시 말해 독자는 어떤 심리적 준비 과정도 없이 단박에 대상 속으로 들어가기를 강요당한다. 그런데다가 이 단락의 문장은 그 호흡이 유장하고 느긋한 것이 아니라, 아주 짧고 촉급하다. 빠른 숨으로 단숨에 읽도록 씌어진 문장인 것이다. 왜 서두에서부터 이렇게 급한 템포의 문장을 서술한 걸까? 이는 연암의 심리 상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단락의 통사 구조統辭構造를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다..
1. 파격적인 제문 살아 있는 석치石癡라면 함께 모여 곡도 하고, 함께 모여 조문도 하고, 함께 모여 욕지거리도 하고, 함께 모여 웃기도 하고, 몇 섬이나 되는 술을 마시기도 하고, 맨몸으로 서로 치고받고 하며 고주망태가 되도록 잔뜩 취해 서로 친한 사이라는 것도 잊어버린 채 인사불성이 되어, 마구 토해서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뒤집혀 어질어질하여 저의 죽을 지경이 되어서야 그만둘 터인데, 지금 석치는 진짜 죽었구나! 生石癡, 可會哭可會吊, 可會罵可會笑. 可飮之數石酒, 相臝體敺擊, 酩酊大醉, 忘爾汝, 歐吐頭痛, 胃翻眩暈, 幾死乃已. 今石癡眞死矣. 제문祭文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글로서, 흔히 제물祭物을 올려 축문祝文처럼 읽게 되어 있다. 그 형식은 보통 글의 서두에 ‘언제 누가 누구를 위해 제문을 지은바..
11. 총평 1 공인 이씨가 열여섯에 시집올 때는 꽃다운 얼굴이었을 터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내내 우리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그녀의 파리하고 핏기 없는 얼굴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기품 있는 여인이었으리라. 아픈 몸을 일으켜 빙긋이 웃으며 “이는 제 오랜 꿈인 걸요(是吾宿昔之志)”라고 말하는 데서 그녀의 인간 됨됨이와 기품이 느껴진다. 2 이 글은 조선시대 가난한 선비 집안에 시집 온 여성에 대한 ‘실록實錄’이라 할 만하다. 연암 외에도 빈사처貧士妻의 생애를 기록한 문인들은 상당수 있다. 하지만 연암의 이 글처럼 그런 여성의 내면 풍경과 심리 상황까지 냉철하게 그려 보인 글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연암은 가난 때문에 사대부 집안의 한 여성이 절망과 낙담 끝에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놀랍도록 예..
10. 유언호가 명을 짓다 나는 친구인 규장각 직제학直提學 유언호俞彦鎬에게 묘지명을 지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는 마침 개성 유수로 와 있었는데 개성은 연암골에서 가까웠다. 그는 장례를 도와주었을 뿐 아니라 명銘도 지어 주었다. 그 명은 다음과 같다. 연암이라 그 골짝은, 산 깊고 물 맑은데, 시동생이 유택幽宅을 마련했지요. 아아! 온 가족이 함께 은거하려 했거늘, 마침내 이곳에 머무시게 됐군요. 계시는 곳 편안하고 굳건하니, 아무쪼록 후손들 보우하소서. 趾源求銘於其友人, 奎章閣直提學兪彥鎬. 彥鎬方留守中京, 地接燕岩, 爲助葬且銘之, 其銘曰: “燕岩之洞, 山窈而水淥, 繄惟小郞之所營築. 嗚呼鹿門盡室之計. 竟於焉而托體. 旣安且固, 以保佑厥後.” 묘지명의 ‘지誌’와 ‘명銘’은 대개 한 사람이 짓는 법인데, 이 ..
9. 형수님은 연암협에 가지 못하고 돌아가셨네 형수는 몹시 위독했지만 이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손으로 머리를 가누고선 한 번 웃으며 “이는 제 오랜 꿈인 걸요(是吾宿昔之志)”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이 단락에서뿐만 아니라 이 글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부분으로 우리 눈에 박힌다. 20여 년을 생활고에 시달린 나머지 힘이 소진하여 절망과 좌절감 속에 죽어가고 있던 형수에게 연암이 들려준 말은 그 말만으로도 기쁘고 가슴이 벅찼으리라.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한 번 빙긋이 웃음을 머금은 것이리라. 사실 이 글 전체에서 형수가 직접 나서서 자신의 목소리로 스스로 발언한 것은 이 대목 한 군데밖에 없다. 비록 앞 부분에서 공인 이씨에 대해 많이 서술해 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8. 형수를 위로하려 연암협을 미화하다 「기린협으로 들어가는 백영숙에게 주는 서贈白永叔入麒麟峽序」를 검토하며 자세히 살핀바 있지만, 연암은 1771년에 처음 연암협을 답사한 이래 이곳에 작은 산장을 지어 놓고 수시로 머물곤 했던 듯하다. 하지만 그가 온 가족과 함께 이곳으로 이주한 것은 1778년에 와서였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정이 있었다. 1777년 정조가 즉위하면서 홍국영이 세도를 부리게 되었다. 홍국영은 정적들을 하나하나 제거해나갔는데, 연암에 대해서도 악감정을 품고 장차 해코지를 하고자 하였다. 당시의 사정을 『과정록』은 이렇게 적고 있다. 유공(유언호)은 아버지와 우정이 아주 깊었다. 그리하여 난처한 일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를 찾아와 의논하곤 하였다. 공은 아버지의 의론이 준엄하고 과격해 ..
7. 에피소드를 삽입시켜 글에 생기를 불어넣다 나는 화장산華藏山의 연암골에 새로 터를 잡아 그 산수를 어여삐 여기며 손수 가시덤불을 베어 내 나무 곁에다 집을 세웠다. 趾源新卜居華藏山中燕岩洞, 樂其水石, 手剪荊蓁, 因樹爲屋. 언젠가 형수님께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 “형님이 연로하시니 장차 저와 함께 시골에서 사셨으면 합니다. 담을 둘러 천 그루의 뽕나무를 심고, 집 뒤엔 천 그루의 밤나무를 심고, 문 앞에는 천 그루의 배나무를 심고, 시냇가에는 천 그루의 복숭아나무와 살구나무를 심으렵니다. 못에는 한 말 가량 치어稚魚를 풀어 놓고, 바위 절벽 밑에는 벌통 백 개를 놓아두며, 울타리 사이에 소 세 마리를 묶어 두렵니다. 제 처가 길쌈할 때면 형수님께선 그저 계집종이 기름 짜는 일이나 살펴 제가 밤에..
6.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가정살림을 돌보다 아아! 옛사람들은 가난한 선비의 아내를 약소국의 대부大夫에 견주었다. 조석朝夕도 보전키 어려운 상황에 놓인 기울고 망해가는 나라를 부지하며 조정에서 혼자 국사國事를 맡아 고군분투하듯 하셨고, 변변찮은 것이지만 정성스레 제수祭需를 마련해 선조의 혼령이 굶주리지 않게 하셨으며, 또 좋은 음식은 못 되더라도 음식을 장만해 손들을 잘 접대하셨으니, 이 어찌 이른바 ‘온 힘을 다해 죽은 이후에야 그만둔다’는 데에 해당하지 않겠는가. 嗟乎! 貧士之妻, 昔人比之弱國之大夫. 其拄傾支覆, 莫保朝夕, 猶能自立於辭令制度之間, 而澗繁沼毛, 不餒其鬼神, 不腆之廚庖, 足以嘉會, 豈非所謂: ‘鞠躬盡瘁, 死而後已’者耶? 내가 자식을 낳아 그 아이가 겨우 태胎를 벗었을 때 형수님은 그 ..
5. 가난 때문에 병들어 죽어간 형수를 그려내다 이 단락에서 가장 빼어난 서술은 “이렇게 20년을 노심초사하며 뼈 빠지게 일했지만 적빈을 면할 수 없어 의기소침해지고 낙담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廿載嘔膓擢髓, 甁槖垂倒, 屈抑挫銷, 無所展施)”라는 대목이다. ‘20년’이란 연암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해인 1759년부터 형수가 세상을 버린 해인 1778년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이 문장은, 주부로서 공인 이씨가 살아온 삶과 그녀의 내면적 심리 상황을 놀랍도록 예리하게 묘파해내고 있다. 가족과 집안을 위해 죽으라고 일하고 애썼지만 가난은 늘 그 자리에 있어 공인 이씨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절망감과 좌절감에 사로잡혔다는 것. 이 절망감과 좌절감이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었을 터이다. “노심초사하여 뼈 빠지게(嘔膓擢..
4. 주부로 두 번의 상을 치르다 “집안에 연거푸 상이 났(歲且荐喪)”다고 했는데, 이는 1759년 연암의 모친 함평 이씨가 59세로 세상을 하직하고 이듬해인 1760년 조부 박필균이 76세로 별세한 일을 말한다. 공인 이씨가 시어머니 상을 당한 것은 그 36세 때였다. 시집온 지 20년 째 되던 해다. 이때부터 공인 이씨는 연암 집안의 맏며느리로서 ‘주부主婦’의 역할을 수행했다. ‘주부’란 오늘날의 ‘가정주부’라는 말과 다소 의미가 다르다. 당시 주부에게는 한 집안의 살림에 대한 책임이 주어졌을 뿐만 아니라 집안의 온갖 제사에 대해 준비해야 하는 책임이 주어졌다. 말하자면 한 집안의 경제와 제사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었다. 공인 이씨가 이 역할을 맡기 전에는 시어머니 함평 이씨가 이 역할을 수행했을 터이..
3. 청빈의 가풍 때문에 엄청 고생한 큰 형수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자. 이 단락은 먼저 이씨의 가계家系를 밝힌 다음, 반남 박씨 집안에 시집온 일과 아이 셋을 낳았으나 모두 일찍 죽은 일, 집안이 몹시 가난하여 20년을 뼈 빠지게 일을 하다 결국 병고 속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말함으로써 이씨의 생애를 압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대체로 묘지명의 일반적인 서술 방식이다. 연암의 집안은 반남 박씨 명문가 집안으로, 할아버지가 고관대작을 지냈는데 왜 그리 가난했을까? 이런 의문에 답하기라도 하듯 연암은 이 단락의 중간부분에서 그 이유를 밝히고 있는바, 곧 ‘청빈淸貧’ 때문이었다. 할아버지가 워낙 청렴결백하여 집안에 남긴 재산이 없어 가난을 면할 수가 없었다는 것. 다시 말해 할아버지가 관직에 있을 때 부정..
2. 생활고에 병에 걸린 형수님을 부모처럼 모시다 집안에 연거푸 상喪이 났지만 형수님은 힘써 가족 열명의 생계를 꾸려 나갔으며, 제사를 모시거나 손님을 접대함에 대가大家의 법도를 잃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이리 깁고 저리 맞추며 온갖 노력을 다하셨다. 이렇게 20년을 노심초사하며 뼈 빠지게 일했지만 적빈赤貧을 면할 수 없어 의기소침해지고 낙담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매양 낙엽이 지고 추워지는 가을이면 형수님은 더욱 실망하고 낙심하여 병이 더욱 도졌다. 이렇게 몇 년을 시름시름 앓으시다가 마침내 금상今上 2년인 무술년戊戌年(1778) 7월 25일에 운명하셨다. 歲且荐喪, 恭人力能存活其十口, 奉祭接賓, 恥失大家規度, 綢繆補苴. 且廿載嘔膓擢髓, 甁槖垂倒, 屈抑挫銷, 無所展施. 每値高秋木落天寒, 意益廓然霣沮,..
1. 형수의 아버지가 형수를 보러 자주 찾아오다 공인恭人 휘諱 모某는 완산完山 이동필李東馝의 따님으로 왕자 덕양군德陽君 후손이다. 열여섯에 반남潘南 박희원朴喜源에게 시집 와 아들 셋을 낳았는데 모두 일찍 죽었다. 형수님은 평소 몸이 여위고 약해 온갖 병에 시달렸다. 恭人諱某, 完山李東馝之女, 王子德陽君之後也. 十六, 歸潘南朴喜源, 生三男, 皆不育. 恭人素羸弱身, 嬰百疾. 희원의 할아버지는 당대에 이름난 고관高官이었는데, 선왕先王께서는 매양 한漢나라 탁무卓茂의 고사故事를 거론하며 그 벼슬을 올려 주셨다. 할아버지께서는 관직에 계실 때 자손에게 물려주기 위한 재산을 손톱만큼도 늘린 적이 없어 청빈淸貧이 뼈에 사무쳤으니, 별세할 때 집안에는 돈이 몇 푼 없었다. 喜源大父, 爲世名卿, 先王時每擧漢卓武故事, 以增..
14. 총평 1 이 글은 전체적으로 ‘김홍연 알아 가기’의 과정을 보여준다. 재미있는 것은, 김홍연을 알아감에 따라 작자의 심리상태가 수시로 바뀐다는 사실이다. 작자는 호기심에서 시작하여 분노와 우호의 감정을 거쳐 연민의 마음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이 글은 역으로 이 연민의 감정에서 출발해 씌어지고 있다. 그리하여 이 글의 기저에서 연암은 김홍연이라는 인간에 대해 아주 따뜻한 눈길을 주고 있다. 김홍연에 대한 작가의 감정 기복에 따라 글도 심하게 출렁거리며 기복과 파란波瀾을 보여준다. 2 만년의 김홍연은 벼랑 끝에 서 있는 인간이라 말할 수 있다. 그는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으며,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다. 이런 존재는 어떻게 자신을 지탱할 수 있을까? 이 글은 이에 대한 인간학적 탐구의 기록이다..
13. 게(偈)에 드러난 사람에 대한 따스한 시선 그 글 끝에 다음과 같은 게偈를 붙였다. 까마귀는 뭇 새가 검다고 믿고, 백로는 안 흰 새를 의아해하네. 흑백 모두 자기가 옳다고 하니, 하늘도 판정하길 싫어한다지. 사람들 모두 두 눈 있지만, 한쪽 눈 없어도 또한 본다네. 하필 두 눈 있어야 밝게 보일까? 외눈박이만 사는 나라도 있는데. 두 눈도 오히려 적다고 여겨, 이마에 눈 하나를 보태기도 하네. 또한 저 관음보살은, 변신하여 눈이 일천 개라지. 천 개의 눈을 어디에 쓰리? 장님도 검은 것은 볼 수 있다마다. 김군은 몹쓸 병 걸려 몸이 불편해, 부처에 의지해 연명한다지. 돈을 쌓아 두고 쓰지 않으면, 가난한 거지와 무어 다를까? 중생들 제각각 살면은 되지, 억지로 남을 배울 건 없네. 대심大深이 뭇..
12. 늙어서도 이름에 집착하며 기문을 부탁하다 어느 날 그는 나의 우거寓居에 찾아와 이런 부탁을 했다. “제가 이제 늙어 머잖아 죽을 터인데, 마음인즉슨 진작 죽었고 머리카락만 남아 있을 뿐이며, 거주하는 곳은 모두 중들의 암자입니다. 바라건대 선생의 문장에 의탁해서 후세에 이름을 전했으면 합니다.” 나는 그가 늙어서도 그 뜻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는 게 슬펐다. 나는 마침내 그 옛날 함께 산에 노닐던 객과 주고받았던 말을 글로 써서 보내주면서 一日詣余寓邸而請曰: “吾今老且死, 心則先死, 特髮存耳, 所居皆僧菴也. 願托子文而傳焉.” 余悲其志老猶不忘者存, 遂書其舊與遊客答問者以歸之. 이 단락에서 연암은 이 글을 쓴 이유를 밝히고 있다. ‘우거’란 타향에서 임시로 몸을 붙여 사는 집을 이르는 말이다. 여기서는..
11. 9년 만에 실제로 만나게 되다 그로부터 9년 뒤다. 나는 평양에서 김을 만날 수 있었다. 누가 그의 뒷모습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김홍연입니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그의 자字를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 “대심! 발승암 아닌가!” 김군은 고개를 돌려 물끄러미 보더니, “어떻게 저를 아시지요?” 라고 하였다.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옛날 만폭동에서 이미 자네를 알게 됐지. 집은 어딘가? 옛날에 수집한 물건들은 잘 간직하고 있는가?” 김군은 서글픈 얼굴로 말했다. “가난해져 다 팔아 버렸지요.” “왜 발승암이라고 하나?” “불행히도 병 때문에 불구가 된 데다 늘그막에 아내도 없어 늘 절집에 붙어사는 까닭에 그렇게 자호自號하지요.” 그 말과 행동거지를 살펴보니 옛날의 모습과 태도가 아직 남아 있었..
10. 김홍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백동수 그런데 이 단락에서 연암과 문답을 주고받는 사람은 과연 누굴까? 앞 단락에 의하면 그는 본래 김홍연의 행적을 잘 아는 사람이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이 사람이 백동수白東修(1743~1816)가 아닐까 생각한다. 백동수는 서얼 출신의 무반武班으로, 이덕무의 처남이다. 연암은 35세 때인 1771년 과거를 완전히 포기하고 이 자와 더불어 명산에 노닐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용력이 절륜하고 무예에 출중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한미한 신분 때문에 몹시 불우하였다. 이 글은 1779년경에 쓴 게 아닌가 추측되는데, 당시 백동수는 건달 신세였다. 훗날 그는 무직武職인 장용영壯勇營 장교將校를 거쳐 박천 군수를 지냈다. 정조 때 왕명으로 편찬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