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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반야경과 대승불교와 선불교 『금강경』과 『심경』은 어느 쪽이 더 먼저 성립했을까요? 『금강경』은 구라의 질감이 매우 평이하고 비개념적이며 시적이며 반복의 묘미가 매우 리드믹한 느낌을 형성하고 있지요. “수보리야! 갠지스강에 가득찬 모래알의 수만큼, 이 모래만큼의 갠지스강들이 또 있다고 하자! 네 뜻에 어떠하뇨? 이 모든 갠지스강에 가득찬 모래는 참으로 많다 하지 않겠느냐?” 그런데 반해, 『반야심경(般若心經)』이라는 260개의 문자 속에는 이미 ‘공(空)’이라는 철학용어가 나오고, 오온(五蘊), 18계(十八界), 사성제(四聖諦), 십이지연기(十二支緣起)와 같은 기초이론이 깔려있는가 하면, 용수(龍樹, Nāgārjuna, c.150~c.250)의 중론(中論)의 논리도 이미 반영되어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

반야경과 도마복음서 『반야심경』의 ‘심(心)’이라는 말을 오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반야를 성취하는 우리의 마음을 설하는 경처럼 오해하는데, 여기 ‘심’은 ‘흐리다야(hṛdaya, 음역은 흘리다야紇利陀耶)’의 뜻으로 그러한 추상적이고 정신적인 뜻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매우 물리적인(의학적인) 용어로서 신체의 중추를 형성하는 심장(Heart)을 의미합니다. 육단심(肉團心이라고도 번역하지요. 그리고 밀교에서 만다라(曼茶羅)를 그릴 때 그 전체구도에서 핵심이 되는 것을 심인(心印, hṛdaya-mantra)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말의 ‘핵심(核心)’이라는 말이 그 원래 의미를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반야심경(般若心經)』이란 600권의 방대한 『대반야경』의 핵심을 요약한 경전이라는 뜻..

확대와 축약 자아! 간단히 생각해보죠! 우리가 알 수 있는 확실한 반야경전은 대강 AD 2세기 지루가참의 『도행반야경』으로부터 AD 7세기 현장(玄奘)의 대전집 『대반야경』에 이르는 소품계, 대품계, 밀교계의 다양한 경전들이 열거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핵심경전의 성립을 AD 1세기로 본다면 약 600년간의 끊임없는 확대가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반야사상은 인기가 있었고 대중의 호응이 있었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문헌은 ‘확대’만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너무도 번잡하게 교설이 확대되어 나가는 중에 혹자는 이렇게 뇌까릴 수도 있습니다. “에이 씨발 뭐가 그렇게 복잡해! 번뇌를 버리고 잘 살면 되는 거 아냐? 한마디로 하자구! 한마디로!” 이러한 확대과정에 역행하여 극도의 축약화..

현장의 『대반야경』이라는 거질 현장(玄奘)이라는 정력적인 역경대가가 AD 663년 10월 20일에 『대반야경』이라는 책을 번역ㆍ완성합니다. 그리고 넉 달 후에 그만 이 세상을 하직합니다(664년 2월 5일 야밤중. 향년 63세). 요즈음으로 보면 너무 일찍 죽었습니다. 그런데 실은 요즈음 사람들이 공연히 오래 사는 것일지도 모르죠. 그런데 『대반야경』이라는 책이 언제 번역과 편집을 시작한 것인지 아세요? AD 660년 원단(元旦)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불과 3년 11개월 만에 그 대작을 완성한 것이죠. 그런데 미치고 똥 쌀 일이 하나 있어요. 이 『대반야경』의 분량이 얼마나 방대한 것인지 아세요? 8만대장경판 중에서 단일 종목으로는 가장 분량이 많은 것인데, 깨알 같이 작은 글씨로 편집된 대정대장경의..

쿠샨왕조의 성격: 포용적 문화, 불상의 탄생, 대승의 기반 쿠샨왕조는 매우 관용적이고 포용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는데, 개화된 상업인들의 마인드가 이 문화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쿠샨왕조는 금화를 많이 제작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 금화를 보면, 희랍, 로마, 이란, 힌두의 신들, 그리고 불상을 자유롭게 주조해 넣었는데, 희랍어문자로 친절한 설명까지 첨가해놓고 있습니다. 어느 한 종교에 아이덴티티를 고집하지 않았던 것이죠. 바로 이러한 종교적 관용과 포용의 자세가 동서문명의 가교역할을 했고, 불교를 동방에 전래시키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지루가참이 중국에 왔을 때 그 ‘지(支)’는 쿠샨왕조였으며, 매우 개명한 고등문명의 사람으로서 그는 한자문명권에 발을 내딛었던 것입니다. 쿠샨왕조는 이란에서 ..

월지국에서 쿠샨제국으로 이런 얘기를 하기 전에, 딱 한 가지, 지루가참의 ‘지(支)’에 관한 얘기를 잠깐 해야겠습니다. 월지(월씨)는 본시 흉노족이 크게 세력을 떨치기 이전에 돈황과 기련산(祁連山) 사이의 영역, 그러니까 감숙성의 서쪽에 살던 상당히 강인하고 영리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이 살던 영역을 ‘하서주랑(河西走廊, Hexi Corridor)’이라고 부르는데 중국 내지(內地)의 서역통로로서 가장 중요한 요도(要道)였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 고조선 제국의 일부 종족이 서진하여 정착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월지는 흉노족의 중흥조인 라오상츠안위(老上單于, Lao Shang, BC 174~161 재위)의 공격에 대패하고 그들의 왕이 살해당하자, 월지의 주간세력이 서진하여 소그디아나(Sogdiana)와 ..

『8천송반야경』의 유일한 조형과 대승불교의 출발 『도행반야경』은 현존하는 『8천송반야경』의 유일한 조형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도행반야경』을 번역한 지참(支讖, 지루가참의 약칭)은 월씨국에 『8천송반야경』의 산스크리트 원본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 원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8천송반야경』의 원형의 모습을 우리는 『도행반야경』에 의해 추론할 수 있을 뿐입니다. 현존하는 한역본 『도행반야경』을 거꾸로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하면 『8천송반야경』의 원래 모습을 알 수 있겠다는 것이죠. 그러나 과연 지루가참이 산스크리트 원본을 문자 그대로 직역했을 것인가? 사계의 대학자인 카지야마 유우이찌(梶山雄一, 1925~2004)【경도대학 철학과 출신의 불교학자. 경도대학 문학부 교수로서 경도학파를..

『도행반야경(道行般若經)』과 월지국 루가참의 기적 같은 번역 그럼 진짜 『8천송반야경』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현존하는 한역대장경(漢譯大藏經) 속에 반야라는 말이 들어간 아주 희한한 경전이 하나 있습니다. 『도행반야경(道行般若經)』이라는 문헌이지요. 인도사람들은 진리의식만 강하고, 역사의식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누가 무엇을 했다는 것을 역사적 사건으로서 기술하는 데 별 관심이 없습니다. 인도역사기술방식에서 정확한 연대를 말하기 힘든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죠. 그런데 「도행반야경」이라는 문헌은 지루가참度이라는 번역자의 이름이 명기되어 있고, 그 번역자가 중국에 와서 이 경을 한역(漢譯)한 시기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는 인도측 역사에서는 얻기 어려운 것이기에 진실로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8천송반야경』의 산스크리트어 원전 ‘8천송(八千頌)’이라는 것은 분량을 말하는 것인데 대부분 옛날 인도경전이 노래로서 암송되었기 때문에 ‘송(gāthā, 偈陀, 伽陀)이라 하는 것이고, 이 노래는 여러 형식이 있지만 불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슐로카(śloka)라는 것입니다. 슐로카는 1구가 8음절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이 2구 연결된 것이 또다시 2행을 이루어 하나의 그룹(스탄자stanza 같은 것)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8음절 4구 32음절(8×4=32)의 산스크리트 시형(詩形)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32음절의 슐로카가 8천 개가 모인 반야를 설하는 노래가 바로 『8천송반야경』이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8천송반야경』은 25만 6천 개의 음절로 이루어진 경전입니다. 우..

반야란 무엇인가? 반야경의 이해 이제 우리는 3학의 가장 중요한 측면 혜(慧)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혜는 의역이고(선진경전에서 ‘慧’는 특별한 의미가 없던 글자였다), 그 음역이 바로 ‘반야(般若)’라는 것이죠. 반야란 무엇인가 바로 이 주제가 제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입니다. 자아! 이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반야경’이라는 것은 한 권의 책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반야사상을 표방한 경전들을 총칭하여 일반적으로 ‘반야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계의 권위자인 히카타 류우쇼오(干潟龍祥, 1892~1991, 동경제대 철학과 졸업. 구주제대九州帝大교수. 일본의 인도철학자)는 의미 있는 중요한 반야경으로서 27경을 꼽고, 독일계 영국인으로서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반야경연구 전문가, 에드워드 콘체(Ed..

삼학과 삼장, 성묵과 법담 계ㆍ정ㆍ혜는 싯달타의 삶의 과정을 요약한 것일 수도 있지요. 달타가 출가하여 보리수 밑에 앉기까지 그의 삶을 지배한 것은 계(戒)였습니다. 그리고 보리수(핍팔라나무) 밑에서 선정에 들어갔지요. 그것이 바로 정입니다. 그리고 정을 통하여 아다라삼막삼보리를 증득합니다. 그러니까 싯달타의 계를 담은 것이 율장이고, 싯달타의 정(定)을 담은 것이 경장이고, 싯달타의 혜를 담아놓은 것이 논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약간의 디테일한 역사적 설명이 필요하지만 대략적인 의미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초기경전에는 율장과 경장만이 있었다. 논장은 후대에 성립한 것이다). 삼학 三學 계(戒) 율장(律藏) 대장경 大藏經 tri-piṭaka 정(定) 경장(經藏) 혜(慧) 논장(論藏) 싯달타는 어려서..

득도와 화두 생각해보세요! 여기 스님이 한 분 있다고 합시다. 왜 이 사람을 스님이라고 우리가 존경을 할까요? 우선 스님이 됐다고 하는 것은 ‘수계(受戒)’를 의미합니다. 즉 계를 받아야 스님이 되는 것입니다. 스님이 된다는 것은 계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인간은 섹스를 좋아하고 올가즘에 도달했을 때의 쾌감을 양보할 수 없는 인생의 도락으로 엔죠이합니다. 그런데 이토록 참기 어려운 쾌락의 향유를 근원적으로 포기한다, 왜 그럴까요? 득도를 위해, 깨달음을 얻기 위해? 하여튼 보통 사람이 실천하기 어려운 매우 근원적인 금욕을 실천하는 사람, 그 고통을 감내하기 때문에 우리는 스님이나 신부를, 비구니나 수녀를 존경하게 되는 것이죠. 스님이 색이나 밝히고 돌아다닌다고 한다면 우리가 왜 그들을 존경해야 할까요? 계..

지눌의 정혜쌍수 보조(普照) 지눌(知訥, 1158~1210)도 무신정권이 발흥하여 대고려제국의 정치체제와 결탁된, 축적된 교학불교가 쇠퇴하고, 선불교의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격외성(格外性, 교외별전敎外別傳)이 고려불교 그 자체를 뒤흔들고 있던 시대에, 선(禪)과 교(敎)는 본질적으로 대립되어야 할 양대세력이나 이론체계가 아니라 근원적으로 융합되어야만 하는 하나의 통불교라는 깨달음을 가지고 독자적인 운동을 전개해나갔던 탁월한 사상가였습니다. 그에게는 도통을 전수받을 만한 스승도 없었습니다. 당시는 선이라는 것이 깊게 이해된 상태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독자적인 문학(問學)의 수련을 통해 새로운 결사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그 결사운동의 핵이 ‘정혜결사(定慧結社)’라고 하는 것인데 바로 계ㆍ정ㆍ혜 삼학의 본래정..

팔정도와 삼학 그런데 4번째의 도제는 초기불교시대에 있어서는 엄청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수행자들의 생활규칙 같은 것이었는데, 그것을 팔정도(八正道)라고 부릅니다. 여덟 가지의 바른 길이라는 뜻일 텐데, 이 팔정도야말로 원시불교의 실천강령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죠(우리나라에서는 ‘원시’가 ‘원시인’처럼 ‘primitive’하다는 뉘앙스가 있어 싫어한다. 그리고 초기 불교라고 한다. 나는 불타가 살아있을 시대의 불교를 ‘근본불교’라 부르고, 적멸 후 한 150년간, 부파불교가 시작되기 이전의 시대를 원초적이라는 의미에서 ‘원시불교’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양자를 합쳐서 ‘초기불교’라 불러도 무방하다). 팔정도(八正道)는 정견(正見, 바른 소견), 정사유(正思惟, 바른 생각), 정어(正語, 바른 말), 정업..

삼학, 유전연기와 환멸연기 자아! 이제 ‘삼법인’과 함께 ‘삼학(三學)’이라는 것을 한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삼학이라는 것은 근본불교시대(역사적 싯달타가 활약하던 가장 근원적인 시기)에 싯달타를 따르는 자들이 선생님이 제시하는 이상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하여 정진하는 데 필연적으로 지켜야만 했던 세 측면의 수행덕목을 말하는 것으로, 보통 계(戒, sīla), 정(定, samādhi), 혜(慧, paññā)라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 삼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싯달타가 깨달음을 얻은 후, 그 깨달음을 쉽게 일반대중에게 전하기 위해서 설파했다고 하는 사성제(四聖諦, Four Noble Truth)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성제는 4가지 성스러운 진리(catur-ārya-satya)라는 뜻이죠. 싯달..

심리학과 무신론, 그리고 무아의 종교 여기 이 4명제에 관해 정리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이 있어요. 내가 하바드대학에서 강의할 때였습니다. 미국학생이 나에게 묻더군요? “그럼 불교는 일종의 심리학입니까?” 나는 서슴치 않고 대답했어요. “아~ 그렇죠. 그렇구말구요. 불교는 심리학입니다. 서양의 심리학이 불교를 제대로 못 배우는 것만이 제 한이죠.” 제가 신학대학에서 강의할 때였어요. 목사후보생인 대학원 학생이 묻더군요. “그럼 불교는 무신론입니까? 4법인에 신에 관한 얘기가 하나도 없군요.” 나는 학생의 질문에 감동했습니다. 제 강의의 핵심포인트를 너무도 정확하게 짚어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그가 어떤 맥락에서 그런 질문을 했는지는 모릅니다만 추측컨대 ‘무신론(atheism)’이라는 말을 매우 ..

열반적정과 삶의 종교 다음의 제4명제를 분석해보죠. 열반적정(涅槃寂靜, śāntaṃ nirvāṇam) 열반적정이라는 명제는 제법무아(제법에는 기실 아我가 없는 것이다)라는 명제와 또다시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한 측면과도 같은 것이죠. 제행무상과 일체개고가 한 쌍이라면, 제법무아와 열반적정은 또다시 한 쌍이 되지요. 제법이 무아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열반에 들게 되어 고요하고 편안한 삶을 살게 된다, 이 말이지요. ‘열반(涅槃)’이라는 말은 ‘니르바나(nirvāṇam)’라는 말의 음역입니다. 아~ 참, 제가 가사를 쓰고 제 친구 박범훈이 곡을 만들고 박애리가 노래 부른 ‘니르바나’라는 작품이 유튜브에 올라가 있는데 그것을 보셨나요?(2018년 6월 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초연, BTN 제작, 29분 ..

제법무아의 아트만과 실체 자아! 이제 제3의 명제를 분석해봅시다! 제법무아(諸法無我 sarvadharma anātmānaḥ 여기 ‘제법’이라는 말 속에, ‘모든’의 뜻을 가지는 ‘제’ 이외로 ‘법(法)’이라는 말이 주어로 등장하고 있습니다만, 이 ‘다르마(dharma)’라는 말처럼 불교세계에서 넓게 쓰이는 말도 없습니다. 다르마는 법칙, 정의, 규범의 뜻도 있고, 불타의 가르침을 총칭해서 쓸 때도 있고, 덕, 속성, 원인의 뜻을 가리킬 때도 있습니다. 번역가들이 중국고전 중에서 법가에서 쓰이는 ‘법’이라는 개념을 선택했지만 기실 다르마는 법(法)보다는 도(道)라고 했어야 옳을 것 같아요. 그런데 4법인 제3명제에서 쓰인 ‘법’은 매우 단순한 의미로 쓰인 것입니다. 그냥 사물, 물건, 존재하는 것이라는 매..

중동 사막문명의 테마: 죄 중동으로 가면 상황이 아주 달라져요. 고조선-고구려문명의 테마가 ‘생(生, Creative Advance)’이고, 인도문명의 테마가 ‘고(苦)’라고 한다면 중동문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테마는 역시 ‘죄(罪, Sin)’입니다. 사막에서의 삶은 공동체의 영역이 매우 좁으며, 대자연의 순환이라는 생생지도(生生之道)에서 단절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대지를 생명의 근원으로 인식할 수 없으며, 땅에 대한 애착과 신념이 없습니다. 따라서 하늘은 수직적 관계 속에서 초월적 ‘존재’로서만 인식되고, 우주의 순환이라는 시공범주를 벗어나 버리죠. 그런데 사막의 사람들이 이 ‘하나님’이라는 존재자에 대하여 갖는 의식은 ‘죄’라고 하는 한계 상황을 통해 매개됩니다. 여러분들께서 구약의 레위기 18장을 ..

일체개고와 쇼펜하우어, 문명사적 맥락 ‘일체개고(一切皆苦)’라는 것은 ‘일체(一切)’가 다 ‘고(苦)’라는 뜻입니다. ‘고(苦)’ 즉 ‘두흐카(duḥkha)’라는 것은 아비달마 문헌에서는 ‘핍뇌(逼惱)’라고 번역했는데 ‘핍박하여 고뇌하게 만든다’는 뜻이겠지요. 하여튼 ‘괴롭다’는 뜻이지요. ‘일체’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고(苦)라는 것은 ‘존재함’ 그 자체가 고라는 뜻이겠지요. 다시 말해서 ‘존재한다’는 것은 ‘고통스럽다’라는 말이 되는 것이지요. 생각해보세요! 일체라고 한다면 우주 전체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빅뱅이론에 의하면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는데 아마도 삼법인에 미친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겠지요. ‘아~ 우주가 팽창하느라고 고통스러워하고 있구나!’ 뿐만 아니지요. 우..

행(行)과 연기(緣起)의 의미 기실 일체개고와 제행무상은 한 동전의 양면 같은 성격이 있습니다. 제행이 무상하면 모든 것이 ‘고(苦)’로 느껴질 수 있으니까요. 제행의 ‘행(行)’은 우리말로는 ‘간다’는 뜻이지만, 그 원어인 ‘삼스카라 (samskāra)’는 ‘드러난 것’ ‘만들어진 것’을 의미하며 ‘제행(諸行)’은 나의 인식 세계에 드러나는 모든 현상(phenomena)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사물, 사건, 그 모든 것은 항상됨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찰나찰나 변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싯달타가 보리수 밑에서 제일 먼저 깨달은 진리는 ‘연기’라는 것인데 ‘연(緣)’이라는 것은 원인의 뜻이고, ‘기(起)’라는 것은 연으로 해서 ‘일어나는’ 결과의 뜻입니다. 그러니까 어떠한 사물도 그것..

3장 싯달타에서 대승불교까지 불교의 근본교리인 삼법인(사법인) 우리는 지금 여기서 선(禪)을 얘기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불교의 근본교리, 그 근원적 지향성을 우선 깨달아야 합니다. 불교의 교리에 관한 천만 가지 법설이 난무하지만, 나는 여러분께 내가 불교학개론 첫 시간에 배운 누구나 쉽게 접하는 세 마디를 우선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불교의 교리를 특징 지우는 세 개의 인장과도 같은 것, 바로 삼법인(三法印)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사실 이 삼법인이라는 것만 정확히 알아도 불교에 관한 모든 논의는 종료됩니다.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우리의 이해체계에 이 세 개의 도장만 확실히 찍히면 확고한 인식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신학에는 이런 식의 확고한 기준이 되는 법인(..

임제 법문의 궁극적 의미 모든 종파를 초월하여 성상태현(性相台賢, 성은 법성法性을 말하며 삼론종三論宗을 의미, 상은 법상法相을 말하며 유식종을 의미, 태는 천태종天台宗, 현은 현수종賢首宗, 즉 화엄종華嚴宗을 의미한다)의 불교경전을 골고루 섭렵하였으며, 그 이전에 이미 유교의 기본경전과 도가의 경전들을 통독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책을 읽고 사색한다는 것 자체가 좌선의 용맹정진과 똑같은 삼매(三昧)입니다. 어떻게 지식을 배제하고 높은 선경(禪境)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아예 이렇게 생각해보죠. 선종의 마지막 대가 중의 한 사람이었던 임제의현(臨濟義玄, ?~867)은 이렇게 말했어요 야 이놈들아! 불법이란 본시 힘쓸 일이 없나니라 단지 평상심으로 무사히 지내면 되나니라 너희들이 옷 입고 밥처먹고 똥 싸고 오..

교와 선, 이와 사의 구분은 있을 수 없다 나는 불교를 선종이니 교종이니 운운하고, 이판(理判, 좌선수행을 주로 하는 선승)이니 사판(事判, 조직운영을 책임지는 살림꾼들)이니 하여, 분별적으로 이해하는 모든 이분법적 논리를 거부합니다. 불교사를 다루는 데 있어 방편적으로 쓰지 않을 수 없는 개념들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교(敎)’와 ‘선(禪)’이 양대산맥인 것처럼 이해하는 것은 넌센스 중의 넌센스입니다. 우리는 교종ㆍ선종을 운운하기 전에 불교 그 자체를 고구(考究) 하여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부를 많이 하는 학승은 선경이 높질 못하고, 좌선만 하다가 득도했다 하는 스님들은 무식하기 그지없다고 스님들이 서로서로 비난하는 소리가 잘 들려와요. 선과 교를 분별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의 의식구조에는 이런 ..

법상종과 댜나의 음역 속에 겹친 속뜻 그리고 이 학파는 법의 본질(性, 성)을 다루지 않고 법이 드러나는 의식의 현상(相, 상)을 다루기 때문에 ‘법상종(法相宗)’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제 말이 다시 너무 학술적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만, 겉으로는 아주 다른 것 같지만 ‘요가행파’ ‘유식종’ ‘법상종’은 거의 같은 말이라고만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이 법상종(유식종)에 의하여 아주 복잡한 불교 인식론이 만들어졌고, 선의 궁극적 의미도 이러한 인식론적 바탕을 이해해야만 확연하게 풀린다는 것만을 얘기해놓고 넘어가겠습니다. 단순히 선사들의 공안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죠. 선(댜나), 삼매, 요가 등등은 본시 인도사람들의 생활습관 속에 배어 있는 수행방식일 뿐, 그것이 그러한 생활습관과 분리되어 있는 어..

선불교와 선, 삼매, 요가의 뜻 선불교는 물론 인도불교에 없는 개념이고, 인도불교사에는 선종이라는 종파가 성립한 적이 없습니다. 기실 선불교라는 것은 인도의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어 점점 중국적인 풍토와 언어와 심성, 그리고 사회적 여건에 적응하여 간 종국에, 다시 말해서 인도불교의 중국화과정 (Sinicization process)의 정점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불교의 모습일 뿐이죠. 불교의 변화상(變化相)일 뿐이죠. 산문적인 불교가 운문적인 불교로, 논리적인 불교가 초논리적 불교로, 논술적인 불교가 시적인 불교로, 다시 말해서 산스크리트어의 틀 속의 사고체계가 고전중국어의 틀 속의 사고체계로 변해가는 과정의 극단적 사례가 선불교의 제반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선(禪)’이라는 말은 본래 그 자체로 ..

한국의 불교는 선불교가 아니라 통불교이다 내가 한국불교계의 문제점에 관해서 해야 할 이야기들이 너무도 많지만 이제 함구불언(緘口不言)하려 합니다. 내가 얘기하려 하는 것은 한국불교의 문벌싸움, 일종의 불교종파주의 싸움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불교계에서 도를 닦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치열한 삶을 소개하고 싶었고, 우리나라의 불교전통이야말로 당ㆍ송의 불학을 뛰어넘는 우리민족의 고유한, 독자적인 삶과 가치와 느낌의 결정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었죠. 이것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만이 우리민족의 새로운 정신사적 활로라는 것을 이 조선땅의 미래세대들에게 말하려는 것입니다. 그 방편으로 내가 택한 불교의 진리체계가 『반야심경(般若心經)』이라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본서의 서론이 되겠습니다. 이제부터 본론인 『반야심경(般..

성철 스님의 입장 성철은 불교정화운동의 한복판에서 계율적인 엄격주의를 주장했기 때문에 경허 - 만공계열의 선풍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막행막식이 새로 태어나는 순결한 비구종단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가 1947년 봉암사결사를 묘사한 글을 보면 그의 입장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방침을 세웠느냐 하면, 전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임시적인 이익관계를 떠나서 오직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 무엇이든지 잘못된 것은 고치고 해서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 이것이 원(願)이었습니다. 즉 근본목표다 이 말입니다.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는 성찰의 근본주의적 입장은 매우 고귀한 측면이 분명 있고, 정화운동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한 줄기 순결한 빛줄기로서 큰 효용이 있었습니다. 그러..

해인사 반살림 그런데 이 90일간의 싸움기간 동안의 한 중간이 되는 45일을 ‘반살림’ 또는 ‘반결제’ 라고도 부릅니다. 그때에는 시작이 반인데 이미 반을 잘 채웠으니 나머지 기간도 아무런 마장(魔障)이 없이 공부 잘 하라는 뜻으로 큰 행사를 합니다. 성찬을 준비하여 대중공양을 하기도 하고, 중요한 것은 방장스님께서 설법을 하시는 것입니다. 당대의 해인사 총림 방장스님은 성철(性徹, 1912~1993, 경허 스님 돌아가신 해에 태어남)이라는 분이었는데, 해방 후 정화운동과정을 통하여 한국불교, 특히 비구승단의 중심점이 되신 분으로 엄청난 권위를 축적해온 거목이었습니다. 학인들은 감히 궐내에서 고개 들고 쳐다보지도 못하는 서슬퍼런 존재였습니다. 법문이 이루어지는 곳은 대웅전 앞마당 삼중석탑(三重石塔)이 있..

안거 ‘안거(安居)’라는 말,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문자 그대로 ‘편안히 거한다’는 뜻이지만, 사실은 밖에 나가지 않고 집안에서만 지낸다는 뜻입니다. 사실 초기 인도불교승단에서는 6월 초부터 9월까지 약 3ㆍ4개월 동안 몬순기(monsoon期, 남서 계절풍이 부는 인도의 우기)가 지속되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바깥출입을 금하고 한 곳에 정주(定住)하여 수행에 전념토록 한 승단의 법규를 의미했습니다. 비가 내리면 저지대에 있는 개미, 파충류들이 모두 고지대로 이동하기 때문에 수행자들이 유행(遊行)하게 되면 본의 아니게 생명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바깥출입을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거는 본래 우안거(雨安居)였고, 이 우안거는 여름 한 철의 하안거(夏安居)밖에는 없었습니다. 동안거(冬安居)가 ..

마조와 은봉 지앙시(江西)의 어느 절, 비탈길, 어느 젊은 스님이 손수레를 끌고 있었습니다. 그 비좁은 비탈길 아래 켠에 거대한 체구의 노장 조실스님이 다리를 뻗고 오수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젊은 스님은 수레를 몰고가면서 황망히 외쳤습니다. “스님! 스님! 수레가 내려갑니다. 비키세요! 뻗은 다리를 오므리시라구요[청사수족請師收足]!” 조실스님이 눈을 번뜩 뜨면서 말했습니다. “야 이놈이! 한번 뻗은 다리는 안 오무려[이전불축已展不縮].” 그러자 젊은 스님이 외칩니다. “한번 구른 수레는 빠꾸가 없습니다[이진불퇴己進不退].” 아뿔싸! 굴러가는 수레바퀴는 조실스님의 발목을 깔아뭉개고 말았습니다. 딱 부러진 발목을 질질 끌고 법당에 들어간 조실스님, 거대한 황소 같은 체구에 호랑이 같은 눈을 부라리며 씩씩 대..

명진의 이야기 기실 나는 명진의 삶의 일대기에 관해 자세한 정보가 없습니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구요. 성인으로 만나 생각이 통하고, 인품의 질감을 통해 교제하는 것뿐이지요. 명진에게는 당대의 여타 스님과는 달리 강렬한 사회적 책임의식이 있습니다. 중이라 하면 쉽게 ‘도 닦으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나 역사의 가치로부터 자신을 은폐하는 것을 당연지사로 아는데, 명진은 근원적으로 ‘도를 닦는다[修道]’하는 것을 공동체적 삶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공동의 사회적 선(Common Good)을 위하여 자기를 내던지는 일상적 가치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용기가 있는 사람이지요. 명진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 얼핏 경상도 액센트가 강한 것처럼 들리는데, 기실 그는 충청남도 당진(唐津) 신평면(新平面)..

정화운동(1954~62)의 한계 사실, 해방 후에 이승만정권이 종교를 정권유지의 방편으로 활용하는 저질스러운 짓들을 많이 하면서 오히려 기독교, 불교가 다 같이 망가져갔습니다. 청담이나 성철 스님으로 대변되는 불교정화운동이라고 하는 것이 그 내면에 ‘봉암사결사’와 같은 훌륭한 정신도 있었지만 결국 정치권력의 수단으로 악용되면서 불교계의 자생적 자정 노력이 펼쳐지지 못한 채, 공권력의 폭력에 의존케 됨으로써 결국 파행적인 해결책만 도모되었고, 불교정신 자체의 타락만 초래되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총무원장이라는 권좌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저열한 스님들의 행태에까지 연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자아! 내가 ‘진짜 중’이라는 말 한마디의 의미를 풀려고 했다가 여기까지 오고 말았는데 이제 그 의미를 말해보도록 하죠...

진언(眞言) 那謨婆伽跋帝 鉢喇壤 나모바가바떼 쁘라갸 波羅弭多曳 빠라미따예 唵 伊利底 伊室利 輸盧馱 옴 이리띠 이실리 슈로다 毗舍耶 毗舍耶 莎婆訶비샤야 비샤야 스바하 진언은 진언일 뿐이다. 그것은 인간의 의미로 헤아려서는 아니 된다. 진언은 나의 신(神)과의 대화다. 그때 나는 바로 다름 아닌 신(神)이다. 진언은 그 자체로서 신성한 힘을 갖는 것이다. 진언, 그 자체가 브라만인 것이다. 삼라만상 이 우주가 모두 진언이다. 이 진언에 의하여 곧바로 성불한다고 믿는 것이 진언종(眞言宗)의 신념이다. 그러나 이 진언에 참으로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 기나긴 금강의 지혜의 여행을 했어야만 했다는 것을 마음에 되새기자! 『금강경』을 못 외우더라도, 이 마지막 진언이라도, 어려울 때나 괴로울 때 나 기쁠 때..

32. 색신은 모습이 없어라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 32-1.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수로 헤아릴 수 없는 무량한 세계에 가득찬 칠보를 가져다가 보시를 한다 해도, 여기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보살의 마음을 발하고, 이 경 내지 그 사구게라도 받아 지녀 읽고 외워, 다른 사람을 위해 연설한다면, 이 복이 저 칠보의 복을 뛰어 넘으리라.” “須菩堤! 若有人以滿無量阿僧祈世界七寶持用布施. 若有善男子善女人發菩薩心者, 持於此經乃至四句偈等, 受持讀誦爲人演說, 其福勝彼.“수보리! 약유인이만무량아승기세계칠보지용보시. 약유선남자선여인발보살심자, 지어차경내지사구게등, 수지독송위인연설, 기복승피. 32-2. 그리하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위하여 연설한단 말인가? 상을 취하지 말라. 있는 그대로 움직이지 말라. 云何..

31. 앎을 갖지 말지어다지견불생분(知見不生分) 31-1. “수보리야! 누가 부처가 아견ㆍ인견 ㆍ중생견ㆍ수자견을 설했다고 말한다면,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이 사람이 내가 설한 바의 뜻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느냐?”“須菩堤! 若人言佛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須菩堤! 於意云何? 是人解我所說義不?”“수보리! 약인언불설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수보리! 어의운하? 시인해아소설의불?” 31-2.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여래께서 설하신 바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나이다. 어째서 그러하오니이까? 세존께서 말씀하신 아견ㆍ인견ㆍ중생견ㆍ수자견은 곧 아견 인견 ㆍ중생견ㆍ수자견이 아니오이다. 그래서 비로소 아견ㆍ인견ㆍ중생견ㆍ수자견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이오니이다.” “世尊! 是人不解如來所說義. 何以故? 世尊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

30. 모으나 흩어지나 한 모습일합리상분(一合理相分) 30-1. “수보리야! 만약 여기 선남자 선여인이 삼천대천세계를 힘껏 부숴 티끌로 만든다면, 네 뜻에 어떠하뇨, 그 티끌들이 많겠느냐? 많지 않겠느냐?” “須菩堤! 若善男子善女人, 以三千大千世界碎爲微塵. 於意云何? 是微塵衆寧爲多不?”“수보리! 약선남자선여인, 이삼천대천세계쇄위미진. 어의운하? 시미진중녕위다불?” 우선 분명(分名)에 텍스트의 문제가 있다. 세조언해본에 보면 분명이 ‘일합상리분(一合相理分)’으로 되어 있고(김운학본本, 석진오본本) 또 기타 통용본에는 ‘일합리상분(一合理相分)’(무비本, 이기영本)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모두 전사(轉寫)과정에서 생겨난 동음이자(同音異字)의 오류에 속하는 것이다. 그 원명은 나카무라가 제시하는 바대로 ‘일..

29. 위엄 있는 그 모습 고요하기도 하다위의적정분(威儀寂靜分) 29-1.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를 일컬어, 오는 듯 가는 듯, 앉는 듯 눕는 듯하다 하면, 이 사람은 내가 말한 바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須菩堤! 若有人言如來若來若去, 若坐若臥, 是人不解我所說義. “수보리! 약유인언여래약래약거, 약좌약와, 시인불해아소설의. 29-2. 어째서 그러한가? 여래는 어디로부터 온 바도 없으며 어디론가 가는 바도 없다. 그래서 여래라 이름하는 것이다.”何以故? 如來者, 無所從來, 亦无所去, 故名如來.”하이고? 여래자, 무소종래, 역무소거, 고명여래.” 나는 인간적으로 이 분을 매우 좋아한다. 그 언어가 극히 평이하고 그 말이 가지고 있는 자체의 뜻을 아주 시적(詩的)으로 리드믹하게 표현..

28. 받을 생각도 말고 탐하지도 말라불수불탐분(不受不貪分) 28-1. “수보리야! 만약 어떤 보살이 갠지스강의 모래만큼의 세계에 가득찬 칠보로써 보시한다고 하자. 또 어떤 사람이 있어 일체의 법이 아가 없음을 알고, 인을 얻어 이루면, 이 보살의 공덕이 앞의 보살이 얻은 바의 공덕을 뛰어 넘으리라. “須菩堤! 若菩薩以滿恒河沙等世界七寶布施. 若復有人知一切法無我, 得成於人, 此菩薩, 勝前菩薩所得功德. “수보리! 약보살이만항하사등세계칠보보시. 약복유인지일체법무아, 득성어인, 차보살, 승전보살소득공덕. 28-2. 수보리야! 뭇 보살들은 복덕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보살이 복덕을 받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나이까?” “수보리야! 보살은 자기가 지은 복덕..

27. 끊음도 없고 멸함도 없나니무단무멸분(無斷無滅分) 27-1. “수보리야! 네가 만약 여래가 상을 구족한 까닭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은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생각한다면, 수보리야! 간곡히 부탁하노니, 이와 같은 생각을 짓지 말라, 여래가 상을 구족한 까닭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은 아니다라고. “須菩堤! 汝若作是念, 如來不以具足相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堤. 須菩堤! 莫作是念, 如來不以具足相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堤.“수보리! 여약작시념, 여래불이구족상고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막작시념, 여래불이구족상고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여기 쓰인 ‘구족(具足)’의 원어는 ‘saṃpad’인데, 이는 모든 것을 구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미 20분에서 논의되었다. 무엇인가를 빠뜨리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26. 법신은 모습이 없다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26-1.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느뇨?” “須菩堤! 於意云何? 可以三十二相觀如來不?”“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삼십이상관여래불?” 26-2. 수보리가 사뢰어 말하였다: “그러하옵니다. 그러하옵니다.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가 있습니다.” 須菩堤言: “如是如是. 以三十二相觀如來.”수보리언: “여시여시. 이삼십이상관여래.” 여기 수보리의 대답이 우리의 상식적 기대를 벗어나 있다. 분명히 여태까지의 일관된 논리구조 속에서 이를 논하면 분명히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보아서는 아니 되고, 또 그렇게는 볼 수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찌된 일인가? 바로 이것이 방편(方便) 설법이라는 것이다. 수보리는 그 자리에서 ..

25. 교화는 교화하는 바가 없다화무소화분(化無所化分) 25-1.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너희는 여래가 ‘나는 마땅히 중생을 제도하리라’고 이 같은 생각을 지었다고 말하지 말라. 수보리야! 이 같은 생각을 지어서는 아니 된다. 어째서 그러한가? 실로 여래가 제도할 중생이 있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만약 여래가 제도할 중생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곧 여래가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을 가지고 있음이라. “須菩堤! 於意云何? 汝等勿爲如來作是念, 我當度衆生. 須菩堤! 莫作是念. 何以故? 實無有衆生如來度者. 若有衆生如來度者, 如來則有我人衆生壽者.“수보리! 어의운하? 여등물위여래작시념, 아당도중생. 수보리! 막작시념. 하이고? 실무유중생여래도자. 약유중생여래도자, 여래즉유아인중생수자. 25-2. 수보리야! ..

24. 복덕과 지혜는 비교될 수 없다복지무비분(福智無比分)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모든 수미산들만큼 쌓인 칠보더미를 가져다가 보시를 한다 해도, 또 어떤 이가 있어 반야바라밀경 내지 그 사구게 하나를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 타인에게 설한다면, 앞의 칠보복덕은 이에 백분의 일도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백천만억분의 일 내지 어떠한 숫자의 비유로도 이에 미치지 못하리라.”“須菩堤! 若三千大千世界中所有諸須彌山王, 如是等七寶聚, 有人持用布施. 若人以此般若波羅蜜經乃至四句偈等, 受持讀誦爲他人說, 於前福德百分不及一, 百千萬億分乃至算數譬喩所不能及.”“수보리! 약삼천대천세계중소유제수미산왕, 여시등칠보취, 유인지용보시. 약인이차반약바라밀경내지사구게등, 수지독송위타인설, 어전복덕백분불급일, 백천..

23. 깨끗한 마음으로 선을 행하시오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23-1. “이제 다음으로 수보리야!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있지 아니하니, 그래서 이를 이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한 것이다. “復次須菩堤! 是法平等無有高下, 是名阿耨多羅三藐三菩堤. “복차수보리! 시법평등무유고하, 시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 23-2. 아도 없고, 인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자도 없는 것으로써 일체의 선한 법을 닦으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 以无我無人無衆生无壽者, 修一切善法, 則得阿耨多羅三藐三菩堤.이무아무인무중생무수자, 수일체선법, 즉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23-3. 수보리야! 이른바 선한 법이라 하는 것은 선한 법이 아니라고 여래가 설하였으니 이를 이름하여 선한 법이라 한 것이다.”須菩堤! 所言善法者, 如..

22. 얻을 법이 없어라무법가득분(無法可得分) 22-1.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하심은 곧 얻음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오니이까?” 須菩堤白佛言: “世尊! 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堤, 爲無所得耶?”수보리백불언: “세존! 불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위무소득야?” 22-2. “그렇다! 그렇다! 수보리야!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음에, 조그만큼의 법이라도 얻을 바가 있지 아니함에 이르렀으므로 비로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如是如是. 須菩堤! 我於阿耨多羅三藐三菩堤, 乃至無有少法可得, 是名阿耨多羅三藐三菩堤.”“여시여시. 수보리! 아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 내지무유소법가득, 시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 제1절은 7분, 17분 등지에서 나왔던..

21. 설하는 자도 없고 설되어지는 자도 없다비설소설분(非說所說分) 21-1. “수보리야! 너는 여래가 ‘나는 마땅히 설할 법을 가지고 있노라’고, 이 같은 생각을 지었다고 말하지 말라. 이 같은 생각을 지어서는 아니 된다. 어째서 그러한가?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가 설할 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는 곧 부처를 비방하는 자라. 내가 설한 바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 수보리야! 법을 설한다 해도, 설할 법이 아무것도 없나니, 그래서 비로소 법을 설한다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須菩堤! 汝勿謂如來作是念, 我當有所說法. 莫作是念. 何以故? 若人言如來有所說法, 卽爲謗佛. 不能解我所說故. 須菩堤! 說法者, 無法可說. 是名說法.”“수보리! 여물위여래작시념, 아당유소설법. 막작시념. 하이고? 약인언여래유..

20. 색을 떠나시오, 상을 떠나시오이색이상분(離色離相分) 20-1.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부처가 색신을 구족한 것으로 볼 수 있느냐? 없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색신을 구족하신 것으로 보아서는 아니 되옵니다. 어째서 그러하오니이까? 여래께서는 ‘색신을 구족했다하는 것은 곧 색신을 구족한 것이 아니다’라고 설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로소 색신을 구족했다고 이름할 수 있는 것이오니 이다.” “須菩堤! 於意云何? 佛可以具足色身見不?” “不也. 世尊! 如來不應以具足色身見. 何以故? 如來說具足色身, 卽非具足色身. 是名具足色身.”“수보리! 어의운하? 불가이구족색신견불?” “불야. 세존! 여래불응이구족색신견. 하이고? 여래설구족색신, 즉비구족색신. 시명구족색신.” 20-2. “수보..

19. 모든 법계를 다 교화하시오법계통화분(法界通化分) 19-1.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차는 칠보로써 보시한다면, 이 사람이 이 인연으로 얻는 복이 많다 하겠느냐? 많지 않다 하겠느냐?”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이 이 인연으로 얻는 복은 정말 많습니다.” “須菩堤! 於意云何? 若有人滿三千大千世界七寶, 以用布施, 是人 以是因緣得福多不?” “如是. 世尊! 此人以是因緣得福甚多.”“수보리! 어의운하? 약유인만삼천대천세계칠보, 이용보시, 是人 이시인연득복다불?” “여시. 세존! 차인이시인연득복심다.” 19-2. “수보리야! 만약 복덕이라고 하는 실제 모습이 있다고 한다면, 여래는 결코 복덕을 얻음이 많다고 설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복덕이 없는 까닭에..

18. 모든 것을 한몸으로 보아라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18-1.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는 육안이 있느뇨? 없느뇨?’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육안이 있사옵니다.” “須菩堤! 於意云何? 如來有肉眼不?” “如是. 世尊! 如來有肉眼.”“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육안불?” “여시. 세존! 여래유육안.” 18-2.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는 천안이 있느뇨? 없느뇨?”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천안이 있사옵니다.” “須菩堤! 於意云何? 如來有天眼不?” “如是. 世尊! 如來有天眼.”“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천안불?” “여시. 세존! 여래유천안.” 앞 절에서 말한 ‘육안(肉眼)’은 그냥 우리말대로 육안이며, 우리의 평상적 몸을 구성하는 감각기관으로서의 육안이다. ..

17. 지혜의 궁극은 나가 없음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 17-1. 이 때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냈으면, 어떻게 마땅히 살아야 할 것이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하오리까?” 爾時, 須菩堤百佛言: “世尊! 善男子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堤心, 云何應住? 云何降伏其心?”이시, 수보리백불언: “세존! 선남자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운하응주? 운하항복기심?” 17-2.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선남자 선여인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발하는 자는 반드시 이와 같은 마음을 낼지어다: ‘나는 일체중생을 멸도한다 하였으나 일체중생을 다 멸도하고 보니 실로 멸도를 한 중생이 아무도 없었다’라고. 佛告須菩堤: “若善男子善女人, ..

16. 더러운 업을 항상 깨끗이능정업장분(能淨業障分) 16-1. “이제 다음으로 수보리야!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울 때에 이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경시당하고 핍박을 받는다면 이는 전생에 지은, 지옥에 떨어지게 될지도 모르는 죄업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지금 세상의 사람들이 이 사람을 경시하고 핍박하기 때문에 곧 전생의 죄업이 소멸할 것이요. 그래서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復次須菩堤! 善男子善女人受持讀誦此經, 若爲人輕賤, 是人先世罪業應墮惡道. 以今世人輕賤故, 先世罪業則爲消滅, 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堤.“복차수보리! 선남자선여인수지독송차경, 약위인경천, 시인선세죄업응타악도. 이금세인경천고, 선세죄업즉위소멸, 당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그 내면적 뜻의 정확한..

15. 경을 외우는 공덕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 15-1. “수보리야! 여기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아침 나절에 갠지스강의 모래 수만큼의 몸을 바쳐 보시하고, 또 점심 때 갠지스강의 모래 수만큼의 몸을 바쳐 보시하고, 다시 또 저녁 때 갠지스강의 모래 수만큼의 몸을 바쳐 보시한다 하자! 그리고 또 이와 같이 매일 매일 헤아릴 수 없는 백천만억 겁의 시간 동안을 몸바쳐 보시한다 하더라도,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경전을 듣고 믿는 마음이 우러나와 거슬리지 않는다면, 바로 이 사람의 복이 저 사람의 복을 이기리니, 하물며 이 경을 베껴 쓰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 남에게 해설해주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랴! “須菩堤! 若有善男子善女人, 初日分以恒河沙等身布施, 中日分復以恒河沙等身布施, 後日分亦以恒河..

14. 상을 떠나 영원으로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14-1. 이 때에, 수보리가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그 의취를 깊게 깨달아 눈물 흘려 흐느끼며,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정말 드문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깊고 깊은 경전을 설하신다는 것은! 저는 예로부터 얻은 바의 혜안으로도 이와 같은 경을 얻어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爾時, 須菩堤聞說是經, 深解義趣, 涕淚悲泣而白佛言: ”希有世尊! 佛說如是甚深經典. 我從昔來所得慧眼, 未曾得聞如是之經.이시, 수보리문설시경, 심해의취, 체루비읍이백불언: ”희유세존! 불설여시심심경전. 아종석래소득혜안, 미증득문여시지경. 이 제14분은 『금강경』 전체에서 가장 긴 분이다. 콘체의 말대로 주된 암송이 제13분에서 끝났다고 한다면,..

13. 법에 따라 받아지녀라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 13-1. 이 때에, 수보리는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이 경을 마땅히 무어라 이름하오며, 우리들은 어떻게 이 경을 받들어 지녀야 하오리까?” 爾時, 須菩堤白佛言: “世尊! 當何名此經, 我等云何奉持?”이시, 수보리백불언: “세존! 당하명차경, 아등운하봉지?” 13-2.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이 경을 이름하여 금강반야바라밀이라 하라. 이 이름으로써 그대는 이를 마땅히 받들어 지닐지라.” 佛告須菩堤: “是經名爲金剛般若波羅蜜, 以是名字, 汝當奉持.” 불고수보리: “시경명위금강반야바라밀, 이시명자, 여당봉지.” 콘체는 『금강경』이 바로 여기서 끝난다고 보고 있다. 사실 콘체의 이와 같은 분석은 공부를 깊게 한 사람의 통찰력 있는..

12. 존중해야 할 바른 가르침존중정교분(尊重正敎分) 12-1. “이제 다음으로 수보리야! 어디서나 이 경을 설하되, 사구게 하나라도 설하는데 이른다면, 마땅히 알라, 바로 그곳이 일체세간의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가 모두 기꺼이 공양하는 부처님의 탑묘와도 같은 곳이 되리라는 것을, 하물며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경 전체를 수지하고 독송함에 있어서랴!“復次須菩堤! 隨說是經乃至四句偈等, 當知此處一切世間天人阿修羅, 皆應供養如佛塔廟. 何況有人盡能受持讀誦!“복차수보리! 수설시경내지사구게등, 당지차처일체세간천인아수라, 개응공양여불탑묘. 하황유인진능수지독송! 이 분 역시 대승불교운동의 역사적 상황을 간접적으로 시사해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 『금강경』의 성립이, 부처님의 탑묘와 같은 것이 많이 지어진 시대를 배경으..

11. 함이 없음의 복이여, 위대하여라!무위복승분(無爲福勝分) 11-1. “수보리야! 갠지스강에 가득찬 모래알의 수만큼, 이 모래만큼의 갠지스강들이 또 있다고 하자! 네 뜻에 어떠하뇨? 이 모든 갠지강들에 가득찬 모래는 참으로 많다 하지 않겠느냐?” “須菩堤! 如恒河中所有沙數, 如是沙等恒河! 於意云何? 是諸恒河沙寧爲多不?”“수보리! 여항하중소유사수, 여시사등항하! 어의운하? 시제항하사녕위다불?”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분(分)이다. 인도인들의 프라이드와 시적 정취가 너무도 잘 표현된 아름다운 분이다. 인도의 고문명(古文明)은 하라파(Harappa), 모헨죠다로(Mohenjodaro) 등의 유적지에서 보여지는 하라판문명(Harappan Civilization)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이것을 포함하여 인더스강..

10. 깨끗한 땅을 장엄케 하라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 10-1.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가 옛날에 연등부처님의 곳에서, 법에 얻은 바가 있느냐? 있지 아니하냐?” 佛告須菩堤: “於意云何? 如來昔在然燈佛所, 於法有所得不?” 불고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석재연등불소, 어법유소득불?” 여기 ‘정토(淨土)’란 이름이 분명(分名)으로 나오고 있는데 본문(本文) 속의 ‘불토(佛土)’와 동일한 뜻이다. 정토(淨土)란 말은 한역(漢譯) 『무량수경(無量壽經)』에 나오는 ‘청정국토(淸淨國土)’라는 말을 두 글자로 압축시킨 것이다. 정토(淨土)란 ‘부처님의 나라’ 즉 깨달은 자들의 나라며 정복(淨福)의 영원한 이상향이다. 불계(佛界), 불국(佛國), 불찰(佛刹)로도 쓰이는데, 이는 우..

9. 어느 한 상도 상이 아니어라일상무상분(一相無相分) 9-1.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수다원이 ‘나는 수다원의 경지를 얻었노라’하는 이런 생각을 해서 되겠느냐? 아니 되겠느냐?” “須菩堤! 於意云何? 須陀洹能作是念, 我得須陀洹果不?”“수보리! 어의운하? 수다원능작시념, 아득수다원과불?” 이 제9분은 역사적으로 『금강경』의 위치를 확인하는데 매우 중요한 분이다. 『금강경』은 소승과 대승이라는 구분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당대에 성립한 부파불교에 대한 통렬한 반성 위에서 출발하고 있다. 바로 이 분(分)은 『금강경』이 쓰여진 당대의 부파불교의 통념에 대한 매우 통렬한 비판의 어조를 깔고 있다. 불교의 언어는 매우 밋밋하고 두리뭉실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배면에 숨어..

8. 법에 의해 다시 태어나라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 8-1.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만약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칠보로써 보시한다면, 이 사람이 얻을 복덕이 많다 하겠느냐? 그렇지 않다 하겠느냐?” “須菩堤! 於意云何? 若人滿三千大千世界七寶, 以用布施. 是人所得福德寧爲多不?”“수보리! 어의운하? 약인만삼천대천세계칠보, 이용보시. 시인소득복덕녕위다불?” 이 장에서 우리의 ‘악취공(惡取空)’의 가능성을 경계한다. 법(法)을 버리고 비법(非法)을 떠난다 해서 그럼 우리 인간은 아무 것도 하지 말란 말인가? 무위(無爲)란 정말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의 현실적 도덕적 행위는 결코 의미 없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것을 행하는 자세가 보살승에 올라타 있어야 한다는 것..

7. 얻을 것도 없고 말할 것도 없다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7-1.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가 과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인가? 여래가 설한 바의 법이 과연 있는 것인가?” “須菩堤! 於意云何? 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耶? 如來有所說法耶?”“수보리! 어의운하? 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야? 여래유소설법야?” ‘과연’은 내가 문의를 살리기 위해 첨가한 것이다. 이제 『금강경』이 바로 『금강경』을 설할 것이다. 7-2. 수보리가 사뢰었다: “제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의 뜻을 이해하기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이름할 정해진 법이 없으며, 여래께서 설하실 만한 정해진 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須菩堤言: “如我解佛所說義, 無有定法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 亦无有定法如來可說. 수보리언: “여아해불소..

6. 바른 믿음은 드물다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6-1.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퍽으나 많은 중생들이 이와 같은 말씀이나 글귀를 듣고 진실한 믿음을 낼 수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須菩堤白佛言: “世尊! 頗有衆生得聞如是言說章句, 生實信不?”수보리백불언: “세존! 파유중생득문여시언설장구, 생실신불?” ‘정신(正信)’은 ‘바른 믿음’이다. 문중(文中)의 ‘실신(實信)’과 상통한다. 선진문헌(先秦文獻)에서는 ‘신(信)’이란 글자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종교적 의미에서의 ‘믿음(faith)’이라는 용례에로 쓰인 적이 없다. 그것은 ‘실증한다’라는 ‘verification’의 의미에 가까운 내포를 지녔을 뿐이다. 이미 라집(羅什)의 시대에는 신(信)이라는 글자가 종교적 ‘믿음’의 ..

5. 진리대로 참 모습을 보라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5-1.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몸의 형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須菩堤! 於意云何? 可以身相見如來不?”“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신상견여래불?” ‘여리(如理)’는 ‘리와 같이’ ‘리대로’라는 뜻이다. 그런데 불교에서, 그리고 물론 이것은 한역불교에서 더 뚜렷이 발전된 개념이지만, ‘리(理)’라고 하는 것은 ‘사(事)’와 대비되어 나타난다. 사(事)는 인연의 사실들이다. 리(理)는 그 인연의 사실들을 일으키고 있는 연기 그 자체를 말하는 것으로 그것은 서양철학의 본체론과는 다르지만 본체론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리(理)는 진여(眞如)의 세계며 그것은 생멸(生滅)의 세계가 아닌 생멸을 일으키고 있는 그 자체의 세계다. 엄밀..

4. 아름다운 행동은 집착이 없다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4-1. 이제 다음으로 수보리야! 보살은 법에 머무는 바 없이 보시를 행하여야 한다. 復次須菩堤! 菩薩於法應無所住, 行於布施. 복차수보리! 보살어법응무소주, 행어포시. ‘묘행(妙行)’이란 ‘아름다운 행동’이라 번역했지만, 실제로 여기서의 ‘행(行)’은 ‘보시’를 가리킨다. 대승불교에서의 ‘묘(妙)’라는 글자는 ‘진공묘유(眞空妙有)’라 할 때의 묘와 항상 의미적으로 상통해 있는 글자며, 그것은 통속적 인식을 벗어난, 즉 지혜의 인식을 거친 후에 획득되는 상식의 세계를 의미한다. ‘무주(無住)’라는 말은 ‘부주열반(不住涅槃)’ 혹은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이라는 대승의 개념에서 도출되는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생사(生死)가 곧 열반(涅槃, ni..

3. 대승의 바른 종지대승정중분(大乘正宗分) 3-1.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뭇 보살 마하살들이 반드시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을지어다: 佛告須菩堤: ”諸菩薩摩訶薩, 應如是降伏其心.불고수보리: ”제보살마하살, 응여시항복기심. 소명태자의 분의 이름은 적합치 못하다. 왜냐하면 『금강경』의 본경에 해당되는 부분(13분 2절까지)에서 이 ‘대승(大乘)’이라는 표현은 나타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최초의 혁명적 보살운동이 아직 ‘대승’이라는 규합개념(organizing concept)으로 ‘소승’과 대비되기 이전의 소박한 진리를 이 경(經)은 설(說)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강경』에서의 대승은 오직 ‘보살’일 뿐이요, ‘선남선녀’일 뿐이요, ‘더 이상 없는 수레(agrayāna)..

2. 선현이 일어나 법을 청함선현계청분(善現啓請分) 2-1. 이 때, 장로 수보리가 대중 가운데 있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웃옷을 한편으로 걸쳐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손을 모아 공경하며,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時, 長老須菩堤在大衆中, 卽從座起, 偏袒右肩, 右膝著地, 合掌恭敬而白佛言:시, 장로수보제재대중중, 즉종좌기, 편단우견, 우슬착지, 합장공경이백불언: 소명태자의 분의 이름은 4자의 제약 때문에, 수보리(須菩提)라는 3글자 이름을 쓸 수 없으므로, 그것을 줄여 표현한 것이다. ‘선현(善現)’은 바로 ‘수보리(須菩提, Subbūti)를 의역한 데서 생겨난 말이다. 후에 현장(玄奘)은 바로 이 의역을 채택하였다. ‘세존(世尊)’과 같은 것은 ‘박가범(薄伽梵)’이라..

금강경(金剛般若波羅蜜多經, Vajracchedikā-Prajñāpāramitā-Sūtra) 요진 천축삼장 구마라집역(姚秦 天竺三藏 鳩摩羅什譯)무술세고려국대장도감봉칙조조(戊戌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법회의 말미암음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 1-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 고독원에 계셨는데, 큰 비구들 천이백오십인과 더불어 계시었다. 如是我聞. 一時, 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俱. 여시아문. 일시, 불재사위국기수급고독원, 여대비구중천이백오십인구. 여시아문(如是我聞)과 일시(一時) 제일 먼저 소명태자가 나눈 분(分)의 이름을 설(說)하겠다. 소명태자의 분명(分名)은 글자수를 모두 네 글자로 맞추었다. 따라서 문법적으로 약간의 무리가 있는 상황도..

‘소승’은 뭐고, ‘대승’은 뭐냐? 1. 소승과 무관한 소승개념 자아! 너무 번쇄(煩瑣)한 학구적 논의를 떠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개념들을 분석해보자! 도대체 소승(小乘, hīnayāna)이란 무엇이냐? 작은 수레다! 그럼 대승(大乘, mahāyāna)이란 무엇이냐? 큰 수레다! 그럼 소승이 좋은 거냐 대승이 좋은 거냐? 요즈음 아파트도 모두 작은 아파트보다 큰 아파트 못 얻어서 야단인데 아무렴 큰 게 좋지 작은 게 좋을까보냐? 큰 수레가 넉넉하고 좋을 게 아니냐? 작은 길 가는 데는 작은 수레가 좋지, 뭔 거추장스런 큰 수레냐?? 사실 ‘히나(hīna)’라는 의미에는 단순히 싸이즈가 작다는 물리적 사실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용렬하고 옹졸하다’는 가치판단의 의미가 들어가 있다...

‘금강’의 의미? 1. 콘체가 다이아몬드로 번역한 이유 20세기 구미(歐美) 반야경전학의 최고 권위라 할 수 있는 에드워드 콘체(Edward Conze, 1904~1979, 영국에서 출생한 독일인. 맑시즘과 부디즘의 대가)는 『금강경』을 ‘The Diamond Sutra’로 번역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금강(金剛)’과 ‘다이아몬드"를 일치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오역(誤譯)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물론 콘체 선생이 이것이 오역인 것을 모르고 그렇게 번역하신 것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다이아몬드라고 부르는 광물이 오늘날과 같이 우리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보편적인 보석으로서 자리잡게 된 것은 대강 19세기 중엽 이후, 즉 1867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오렌지강(江) 상류지역..

『금강경(金剛經)』에 대하여 1. 선종의 대표경전으로 착각된 역사적 이유 조선의 불교는 『금강경(金剛經)』을 적통으로 한다라고 말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니다. 『대장경(大藏經)』이라고 하는 거대한 바구니 속에 삼장(三藏)의 호한(浩瀚)한 경전이 즐비하지만, 우리 민중이 실제로 불교를 생각할 때 가장 많이 독송하고 암송하고 낭송하고 인용하는 소의경전을 꼽으라 하면 그 첫째로 『반야심경(般若心經)』이 꼽히고, 그 둘째로 『금강경』이 꼽힌다. 우리나라 불교, 특히 우리에게서 가까운 조선왕조시대의 불교사, 그리고 오늘날의 한국불교를 이야기하면 임제(臨濟) 류의 선(禪)을 적통으로 하는 선종(禪宗)중심의 역사이고 보면, 선종에서 거의 유일하게 소의경전으로 삼는 것이 『금강경」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금강경』이..

들어가는 말 나는 과연 어떠한 종교를 믿는 사람일까? 나는 독실한 기독교집안에서 태어났다. 나의 어머니는 이화학당을 다니면서 개화의 물결의 선두에 섰고 나의 아버지 역시 휘문고보 시절부터 기독교야말로 우리민족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이라는 믿음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개화된 의사집안 광제병원 일가의 막둥이로 태어난 나는 태어나자마자 유아세례를 받았고 장성하여서는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까지 들어갔다. 그렇지만 우리 집안은 증조부가 조선말기에 종2품 전라도병마절도사, 중추원(中樞院) 칙임의관(勅任議官)까지 지낸 사람이고, 할아버지도 무과에 급제하여 동복군수를 지내었다. 조부는 아관파천(俄館播遷) 이후 덕수궁돌담 쌓는 작업을 총감독하고 정3품 당상관의 지위에까지 오른 사람인데, 일제에 강점을 당하자 ..

서문 법정(法頂) 『금강경(金剛經)』은 대승경전(大乘經典) 중에서도 가장 널리 읽히는 불타 석가모니의 가르침이다. 초기에 결집(結集)된 경전이라, 그만큼 그 형식이 간결하고 소박하다. 다른 대승경전에서처럼 도식화된 현학적인 서술이 거의 없다. 공(空)의 사상을 담고 있으면서도 공(空)이란 용어마저 쓰지 않는다. 대장경 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가르침 중에서 이 『금강경』은 패기에 가득 찬 가장 젊은 사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전 여기저기에 읽는 사람의 눈을 번쩍 뜨게 하고 참신한 사상의 맥박이 약동하고 있다. 강을 건너는 뗏목의 비유(捨筏登岸)를 들면서 부처의 가르침에도 얽매이지 말고 자유로워지라고 부처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있다. 온갖 명칭과 겉모양에 팔리지 않는 사람만이 진리를 볼 수 있다고 ..

5장 에필로그 20대 초반에 나를 사로잡은 경전, 더불어 살아온 지 어언 반세기, 그 50년의 통찰을 꼭 글로 써서 남겨야겠다는 사명감이 있었지만, 그 통찰을 글로 옮기는 과정은 솔직히 말해서 나에겐 처참한 투혼의 발로였다. 나의 발언의 형식으로 KBS 「도올아인 오방간다」에서 국민 모두에게 방영된 내용을 가지고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아들 이인수 박사가 날 고소했다는 것이다. 고소가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냐고 웃어넘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리같이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고 살아온 사람들에게(내 평생 사적이든 공적이든 일체 ‘장’ 자리에 앉은 적이 없다)는 그 번거로운 프로세스가 한없는 모멸감과 배신감, 그리고 울분의 심사를 끓게 만든다. 마음 편하게 해탈된 경지에서 써야만 할 글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

제9강 설반야에서 보리 사바하까지 마지막으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말하겠습니다. 곧 그 주문은 다음과 같이 설하여집니다. 說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사바하.”揭帝揭帝, 般羅揭帝, 般羅僧揭帝, 菩提僧莎詞.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사바하 나에게 보내는 헌사 우선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사바하’라는 주문은 단지 음역일 뿐이므로 한자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그래서 아주 다양한 음역표기가 있으나, 나는 고려대장경의 현장(玄奘)본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발음은 우리 절깐에서 흔히 독송하는 발음을 썼습니다. 사계의 권위자인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 박사는 우리 고려장경의 텍스트를 그대로 썼습니다. 보통 일본에서는 ‘羯諦羯..

제8강 고지반야바라밀다에서 진실불허고까지 그러므로 그대들은 다음의 사실을 숙지해야 할 것이다. 반야바라밀다야말로 크게 신비로운 주문이며, 크게 밝은 주문이며, 故知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더 이상 없는 주문이며, 비견할 바 없는 뛰어난 주문이라는 것을! 이 주문이야말로 일체의 고를 제거할 수 있다. 진실한 것이요, 허망하지 않기 때문이다.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眞實不虛故.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고. 무등등주와 도일체고액과 능제일체고 그리고 최종적으로 말합니다. ‘지(知)’는 전체에 걸리는 동사입니다. ‘그러므로 알지어다. 다음의 사실들을 …… ’하는 식의 구문이지요. 영어로 말하자면 ‘Therefore you should k..

제7강 보리살타에서 삼먁삼보리까지 보리살타 즉 보살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는 고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장애가 없다.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罣礙.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마음에 걸림이 없고 장애가 없는 고로, 공포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전도된 의식과 꿈같은 생각들을 멀리 벗어나 버리고, 끝내 열반에 도달한다. 無罣礙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과거ㆍ현재ㆍ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는 고로 무상의 정등각을 얻는다.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공포와 몽상 이 단락도 현장(玄奘)의 번역에 기준하여 아주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여기 주어가 ‘보리살타(..

제6강 무지에서 무소득고까지 앎도 없고 또한 얻음도 없다. 반야 그 자체가 무소득이기 때문이다!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우주론적 명제를 윤리적 명제로 이런 구절은 해석이 좀 어렵습니다. 물론 산스크리트 대응구가 있기는 하지만 현장(玄奘)의 번역이 매우 압축된 것이래서 주석가들은 자기 생각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내리고 있습니다. 하여튼 이러한 구절은 현장의 한역을 그대로 존중하여, 그 한자의 의미맥락대로 뜻을 새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는 여태까지 전개되어온, ‘오온개공(五蘊皆空)’ 이래의 모든 기존 불교의 이론을 부정해버리는 ‘무(無)의 철학’을 완성하는 마지막 구문입니다. 그리고나서 “보리살타" 즉 보살이라는 ..

제5강 무무명에서 무고집멸도까지 뿐만이냐! 싯달타께서 깨달으셨다고 하는 12연기의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이 사라진다고 하는 것도 없다. 이렇게 12연기의 부정은 노사의 현실에까지 다다른다. 無無明亦無無明盡, 乃至無老死, 무무명역무무명진 내지무노사 그러니 노사도 없고 노사가 사라진다는 것도 없다. 그러니 이러한 12연기를 요약적으로 표현한 고ㆍ집ㆍ멸ㆍ도 또한 없는 것이다.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12지연기와 4성제의 부정 뿐만이겠습니까? 이 우주가 다 사라졌는데, 인식의 뿌리도 대상도 그 사이에서 성립하는 의식의 필드도 다 사라졌는데 무엇이 남아있겠습니까? 지금부터 말하려는 이 단의 내용이야말로 진실로 소승의 아라한이라면 너무도 공포스러운 보살가나의 혁명적 외침이지요. 싯달..

제4강 시고공중무색에서 무의식계까지 그러므로 공의 모습 속에는 색도 없고, 수도 없고, 상도 없고, 행도 없고, 식도 없다. 따라서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도 없고, 是故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시고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법도 없고, 또한 안식계에서 의식계에 이르는 모든 식도 없다.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乃至無意識界.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내지무의식계 18계의 이해 이제 공 속에는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이 모두 다 없다라는 말은 쉽게 이해하시겠지요. 이제 ‘18계(十八界)’라는 말을 정확히 이해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18계이론은 싯달타 본인이 설한 법문으로서 아함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싯달타의 12연기 속에도 육입(六入)의 항목이 있습니다. 그러나 싯달타는 이러한 ..

제3강 사리자에서 부증불감까지 사리자여! 지금 내가 깨달은 세계, 반야의 완성을 통해 조련한 세계, 제법이 공한 이 모습의 세계는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고,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으며, 늘어남도 없고 줄어듦도 없다.不垢不淨, 不增不減불구부정 부증불감 『심경』의 육불을 바르게 이해하는 법 여기 ‘제법(諸法)’이라 하는 것은 ‘모든 다르마(dharma)’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바대로 여기 법이라 하는 것은 무슨 거대한 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존재하는 모든 것, 즉 사건, 이벤트, 사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모든 사건(Event)이 공상(空相, 공의 모습)인 세계에서는 생멸(生滅)이 없으며, 구정(垢淨)이 없으며, 증감(..

제2강 사리자에서 역부여시까지 사리자여! 오온개공이라는 말이 과연 무엇이겠느냐? 색이 공에 다르지 않고, 공이 색에 다르지 않으니,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나머지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같다는 뜻이다.受想行識, 亦復如是.수상행식 역부여시 관자재보살이 오온개공을 상설한다 심반야바라밀다를 행한 관자재보살은 오온(五蘊)이 개공(皆空)이라는 우주적 통찰을 얻었습니다. 그리하여 일체의 고액(고액에 관하여서도 팔고八苦니, 사액四厄이니 썰說을 펴나 다 부질없는 구라일 뿐. ‘괴로움’ ‘무명 속의 유전’으로 족하다)을 뛰어넘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성문 중에서도 ‘지혜제일’이라는 사리자(=사리불Śāripu..

4장 『반야바라밀다심경』 주해 제1강 관자재보살에서 도일체고액까지 관자재보살께서 심원한 반야의 완성을 실천하실 때에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오온이 다 공이라는 것을 비추어 깨달으시고, 일체의 고액을 뛰어넘으셨다.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관세음보살이 지혜의 완성을 이야기하다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첫머리는 ‘관자재보살’로써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반야심경(般若心經)』 전체의 주어가 관세음보살이라는 뜻입니다. 부처님이 설한 설법의 내용이 아니라는 뜻이죠. 부처님의 말씀이 아닌 후대에 등장한 보살의 말씀으로 지고의 경전이 성립했다? 이것이 바로 대승경전의 특징입니다. 더군다나 관세음보살이 법을 설한 대..

3장 싯달타에서 대승불교까지 불교의 근본교리인 삼법인(사법인) 우리는 지금 여기서 선(禪)을 얘기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불교의 근본교리, 그 근원적 지향성을 우선 깨달아야 합니다. 불교의 교리에 관한 천만 가지 법설이 난무하지만, 나는 여러분께 내가 불교학개론 첫 시간에 배운 누구나 쉽게 접하는 세 마디를 우선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불교의 교리를 특징 지우는 세 개의 인장과도 같은 것, 바로 삼법인(三法印)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사실 이 삼법인이라는 것만 정확히 알아도 불교에 관한 모든 논의는 종료됩니다.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우리의 이해체계에 이 세 개의 도장만 확실히 찍히면 확고한 인식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신학에는 이런 식의 확고한 기준이 되는 법..

2장 한국불교의 흐름과 그 본질적 성격 진짜 중과 가짜 중 요즈음 가깝게 지내는 도반(道伴, 길을 같이 가는 사람)으로서 명진(明盡)이라는 스님이 있습니다. ‘진짜 중’ 이지요. 스님에 대해 진짜다. 가짜다 이런 말을 쓴다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이고, 또 그런 분별심의 기준이 과연 어디에 있는가를 따지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좀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진짜다’ ‘가짜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상식적 기준은 명백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세상에 하도 가짜 중, 가짜 목사, 가짜 무당, 가짜 교주들이 많기 때문에 내가 어렵게 얘기를 하지 않아도 ‘가짜’가 무엇인지는 일반대중이 더 먼저 정확히 알아요. 나는 결코 스님의 정신적 경지의 고하(高下)를 가지고 가짜다 진짜다라는 말을 쓰지는 않아요. 그것은 스님..

1장 프롤로그 인연 나는 충남 천안시 대흥동 231번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천안에서 초등학교를 나왔고 상경하여 보성중ㆍ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1965년에 고려대학교 생물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던 중 신병이 깊어져 학업을 중단하고 낙향을 했습니다. 낙향한 후로도 고생을 심하게 했는데, 그 고통스러운 가운데서도 천안의 고교생들을 상대로 영어성경을 강의했습니다. 나는 그때 신약성경(RSV영어성경판) 전체를 류형기 주석서와 함께 다 읽었고, 예수와 더불어 사도 바울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나를 목회자로 이끌고 계시다, 그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길로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 자신의 신앙과 판단에 따라 수유리에 있는 한국신학..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觀自在菩薩 行深 般若波羅蜜多 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께서 피안(彼岸)에 도달할 때에 다섯 가지가 모두 공(空)한 것임을 비추어 보고 일체의 괴로움과 액란을 제도하였나니라관자재보살 행심 반야바라밀다 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即是空 空即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사리자여! 색은 공과 다르지 아니하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아니하다.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라.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도 이와 같으니라.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사리자여! 이 모든 오온(五蘊)에서 구분하여 둔 색. 수. 상. 행. 식의 그 낱낱과 같은 모든 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