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고전/불경 (466)
건빵이랑 놀자
붓다와 예수의 최후의 말 제법무아(諸法無我)란 무엇인가? 불교에서 말하는 제법(諸法)이란, ‘법(法)’이라 해서 무슨 대단한 ‘달마’나 ‘진체(眞諦)’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나 유식(唯識)에서 칠십오법(七十五法), 백법(百法) 운운했듯이 그냥 ‘모든 존재(存在)’를 말하는 것이다. 법(法)은 존재요, 있을 수 있는 모든 것이다. 그런데 인도인들은 법을 크게 두 카테고리로 나눈다. 하나는 인간이 작위적으로 만든 유위적 법(法, 존재)이요, 하나는 인간이 조작한 것이 아닌 스스로 그러한 무위적 존재다. 전자를 유위법(有爲法)이라 하고 후자를 무위법(無爲法)이라 하는데, 유위법 속에는 또다시 크게 색법(色法), 심법(心法), 심소유법(心所有法), 불상응행법(不相應行法)의 4카테고리가 있..
3-3.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고, 셀 수 없고, 가 없는 중생들을 내 멸도한다 하였으나, 실로 멸도를 얻은 중생은 아무도 없었어라.’ 如是滅度無量无數無邊衆生, 實无衆生得滅度者.’ 윤회의 공포 바로 여기까지가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을지어다’의 ‘이와 같이’의 내용을 부연설명한 것이다. 즉 보살의 마음가짐의 내용을 설한 것이다. 바로 이 3절의 내용이야말로 대승정신의 출발이며, 바로 『금강경』」이 『벼락경』이 될 수밖에 없는 전율의 출발인 것이다. 벼락같이 내려친 대승(大乘)의 종지(宗旨)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무엇인가? 사실 여기 붓다의 결론이 너무 쉽게, 너무 퉁명스럽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당혹감을 느끼기에 앞서 별 느낌이 없는 무감각 상태로 서 있을 수도 있다. 여기서 과연 붓..
3-2. ‘존재하는 일체의 중생의 종류인, 알에서 태어난 것, 모태에서 태어난 것, 물에서 태어난 것, 갑자기 태어난 것, 형태가 있는 것, 형태가 없는 것, 지각이 있는 것, 지각이 없는 것, 지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것, 이것들을 내가 다 남김 없는 온전한 열반으로 들게 하여 멸도하리라. ‘其心所有一切衆生之類, 若卵生若胎生, 若濕生若化生, 若有色若無色, 若有想若無想, 若非有想非無想, 我皆令入無餘涅槃而滅度之. ‘기심소유일체중생지류, 약난생약태생, 약습생약화생, 약유색약무색, 약유상약무상, 약비유상비무상, 아개령입무여열반이멸도지. ‘소유(所有)’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는 ‘있는 바’의 뜻인데, 백화문에서는 이 자체로 ‘일체’라는 뜻이 된다. 다음에 ‘일체(一切)’라는 것이 다시 나오..
3. 대승의 바른 종지 대승정중분(大乘正宗分) 3-1.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뭇 보살 마하살들이 반드시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을지어다: 佛告須菩堤: ”諸菩薩摩訶薩, 應如是降伏其心. 불고수보리: ”제보살마하살, 응여시항복기심. 소명태자의 분의 이름은 적합치 못하다. 왜냐하면 『금강경』의 본경에 해당되는 부분(13분 2절까지)에서 이 ‘대승(大乘)’이라는 표현은 나타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최초의 혁명적 보살운동이 아직 ‘대승’이라는 규합개념(organizing concept)으로 ‘소승’과 대비되기 이전의 소박한 진리를 이 경(經)은 설(說)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강경』에서의 대승은 오직 ‘보살’일 뿐이요, ‘선남선녀’일 뿐이요, ‘더 이상 없는 수레(agrayāna)..
2-5.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즐겁게 듣고자 원하오니이다.” “唯然世尊! 願樂欲聞.” “유연세존! 원락욕문.” 이 짧은 한마디 속에는 무수한 명제가 중첩되어 있다. ‘유연(唯然)’은 단순한 ‘예(唯)’라는 대답의 음사(音寫)에 ‘연(然)’을 붙인 것이다. 그러나 이 ‘예’는 붓다의 선포(케리그마)에 대한 보살들의 긍정이다. ‘그러하옵니다!’ 즉 ‘이와 같이’란 내용이 설파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의 ‘열음’이다. 받아들이고 나면 우리의 마음이 편해진다. 긴장이 사라진다. 갈등구조들이 해소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진리를 즐겁게 들을 수 있게 된다. 진리는 즐기는 것이다. 그것은 향유(Enjoyment)의 대상이다. 존재는 곧 향유, 즐김인 것이다. 즐길 수 있을 ..
2-4.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좋다! 좋다! 수보리야! 네가 말한 바대로, 여래는 뭇 보살들을 잘 호념하며, 뭇 보살들을 잘 부촉해준다. 너 이제 자세히 들으라! 반드시 너를 위하여 이르리라,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냈으면, 마땅히 이와 같이 살 것이며,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하리라.” 佛言: “善哉! 善哉! 須菩堤! 如汝所說, 如來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汝今諦聽! 當爲如說. 善男子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應如是住, 如是降伏其心.” 얼마나 강력하고 단호한 붓다의 말씀인가? 좋다! 좋다! 나는 네 말대로 못 보살들을 잘 호념하고 잘 부촉한다. 너 이제 자세히 들으라! ‘여금체청(汝今諦聽)’에서 ‘여(汝)’는 ‘너’이다. 그런데 이 여자는 중국고어에서 매우 친..
2-3.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냈으면, 마땅히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하오리까?” 世尊! 善男子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應云何住? 云何降伏其心?” 세존! 선남자선녀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응운하주? 운하항복기심?” 지혜는 마음의 문제다! 2-2절에서의 질문의 내용을 보다 구체화시키고 있다. 물론 여기의 라집역도 산스크리트 원문과는 크게 차이가 있다. 그러나 산스크리트 원문의 맛보다 라집본의 맛이 더 명료하고 그 의취가 깊다. ‘선남자선여인(善男子善女人)’이란 불전에서 매우 관용구적인 표현으로 쓰인다. 특별히 선택된 승가의 멤버가 아니라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보통사람들’의 뜻이고, 여기서는 ‘보살’(구도자求道者)의 다른 표현..
2-2. “희유하신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뭇 보살들을 잘 호념하시며, 뭇 보살들을 잘 부촉하여 주십니다. 希有世尊! 如來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희유세존! 여래선호념제보살, 선부촉제보살. 산스크리트 원문을 무시하고 집본(什本)을 그대로 볼 때에 ‘희유(希有)’는 세존(世尊)을 수식하는 형용구로 볼 수밖에 없다. ‘참으로 드물게 있는 세상의 존귀하신 분이시여!’의 뜻이 될 것이다. 세존(世尊)은 이미 상설(詳說)하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호칭으로 부를 때는 ‘세존(世尊)’이라는 말을 쓰고, 구체적인 문장의 주어로 쓰일 때는 ‘여래(如來)’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라집(羅什)이라는 탁월한 번역자의 숙달된 맛에서 생겨난 것으로 산스크리트 원문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불(佛), 세존(世尊..
2. 선현이 일어나 법을 청함 선현계청분(善現啓請分) 2-1. 이 때, 장로 수보리가 대중 가운데 있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웃옷을 한편으로 걸쳐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손을 모아 공경하며,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時, 長老須菩堤在大衆中, 卽從座起, 偏袒右肩, 右膝著地, 合掌恭敬而白佛言: 시, 장로수보제재대중중, 즉종좌기, 편단우견, 우슬착지, 합장공경이백불언: 소명태자의 분의 이름은 4자의 제약 때문에, 수보리(須菩提)라는 3글자 이름을 쓸 수 없으므로, 그것을 줄여 표현한 것이다. ‘선현(善現)’은 바로 ‘수보리(須菩提, Subbūti)를 의역한 데서 생겨난 말이다. 후에 현장(玄奘)은 바로 이 의역을 채택하였다. ‘세존(世尊)’과 같은 것은 ‘박가범(薄伽梵)’이라..
통석(痛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는 이유 나는 매우 엄격하고도 신실한 기독교신앙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우리어머니는 기독교를 통하지 아니하고서는 우리민족의 구원의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개화(開化)의 세기를 사셨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성경』 구절을 외워야 했다. 그리고 학교 가기 전에 안방윗목 문턱에서 『성경』구절을 외우면 한 구절당 10원을 탔다. 그리고 못 외우면 종아리를 맞았다. 그렇게 해서 『신약성경』을 몽땅 외우다시피 했다. 나의 고전에 대한 소양은 이렇게 해서 길러진 것이다. 동양고전에 대한 기초 소양도 우리 모친이 이렇게 해서 길러준 것이다. 그런데 내가 가장 신나게 외운 것으로 ‘산상수훈(Sermo in monte)’이라는 것이 있다. 이 산상수훈은 「마태복음」에 가장 완정한 형태..
앉아서 들어야 들린다 제일 마지막 표현인 ‘부좌이좌(敷座而坐)’는 라집(羅什)의 위대성을 잘 드러내주는 명번역 중의 명번역이다. 그 산스크리트 원문을 보면, ‘이미 마련된 자리에 앉아, 양다리를 꼬고, 몸을 꼿꼿히 세우고, 정신을 앞으로 집중하였다.’로 되어 있다. 이미 설정된 자리에 쌍가부좌를 틀고 등을 세우고 입정(入定)하였다는 뜻인데, 현장(玄奘)은 이러한 원문에 충실하여 ‘어식후시(於食後時), 부여상좌(敷如常座), 결가부좌(結跏趺坐), 단신정원(端身正願), 주대면념(住對面念)’이라고 구구한 문자를 늘어놓았다. 집(什)【앞으로 꾸마라지바(鳩摩羅什)를 약(略)하여 집(什)으로 쓰기도 한다】의 위대성은 바로 문자의 간결함과 상황적 융통성이다. 특정의 자리에 앉는다는 것보다는 불특정의 장소에 방석이나 자..
1-4. 옷과 바리를 거두시고, 발을 씻으심을 마치시고, 자리를 펴서 앉으시거늘. 收衣鉢. 洗足已, 敷座而坐. 수의발. 세족이, 부좌이좌. 설법에 동참하려면 발을 씻어라 그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인가? 잔잔한 영화 속에 클로즈엎 되어 나타나는 컷들이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하나둘씩 스러져간다. 이 장면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번뜩이는 금강의 지혜가, 너무도 일상적이고 평범한 하루의 일과 속에서 설파(說破)되었다고 하는 사실의 파라독스다. 가장 일상적인데 가장 벼락 같은 진리가 숨어있다고 하는 긴장감을 이 붓다의 행동은 보여 준다. 의발을 거두어들이고, 발을 씻고 자리를 깔고 앉는 이 모든 평범한 의례가 바로 금강의 지혜에 번뜩이는 자가 바로 금강의 지혜를 설(說)하려는 그 순간에 묵묵히 진행되고 있었다..
1-3. 그 성 안에서 차례로 빌으심을 마치시고, 본래의 곳으로 돌아오시어, 밥 자심을 마치시었다. 於其城中, 次第乞已, 環至本處, 飯食訖. 어기성중, 차제걸이, 환지본처, 반식글. 우리말은 세조언해본을 많이 따랐다. 고전을 읽을 때, 우리는 그 문의(文義)를 해석하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한편의 영화를 보듯이, 그 실제로 일어난 상황을 머릿속에 이미지로 그려보는 것이 중요하다. 1분 3절은 바로 그러한 이미지가 명료하게 그려지는 대목이다. 새벽에 먼동이 틀 무렵, 잠에서 깨어난 비구승들이 가사를 챙겨입고 바리를 들고 1km 떨어진 대성(大城) 안으로 묵묵히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그 성안에서 차례로 밥을 빌고, 다시 기원(祇園)의 숲으로 돌아오는 평화롭고 웅장한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차제(..
1-2. 이 때에, 세존께서는 밥 때가 되니 옷을 입으시고 바리를 지니시고 사위 큰 성으로 들어가시어 밥 빌으셨다. 爾時, 世尊食時, 著衣持鉢, 入舍衛大城乞食. 이시, 세존식시, 착의지발, 입사위대성걸식. 나의 국역은 세조본 언해의 아름다운 표현들을 참조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수양대군 세조께서는 마지막 ‘걸식(乞食)’을 1~3절의 첫머리에 붙도록 끊어 읽었다. ‘입사위대성(入舍衛大城), 걸식어기성중(乞食於其城中)’ 어떻게 끊어 읽든지 그 의미상에 대차는 없으나 나는 ‘입성(入城)’과 ‘어기성중(於其城中)’이 너무 뜻이 반복되므로, ‘어기성중(於其城中)’이 뒤로 붙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우선 주어의 표현이 달라졌다. 앞에서는 ‘불(佛)’이란 표현을 쓰고, 여기서는 ‘세존(世尊)’이란 표현을 썼다..
라집과 산스크리트원본 금세기 일본의 대불교학자라 할 수 있는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 1912~1999)【동경대학 인도철학과 중심으로 활약】는 역으로 의정(義淨) 외의 타5본(他五本)에 보살ㆍ마하살이 없으므로 범본의 ‘보살ㆍ마하살’ 부분이 후대의 첨가라고 못박았다. 나카무라의 이와 같은 생각은 『금강경』 전체 텍스트와 그 전체 의미를 고려하지 못하고 부분만을 천착한 데서 생겨난 명백한 단견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이기영은 이 단견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한국불교연구원(韓國佛敎硏究院)에서 나온 이기영(李箕永) 번역(飜譯)ㆍ해설(解說)의 『반야심경』ㆍ『금강경』(1978 초판, 1997 개정판)은 일본 불교학계의 거장,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ㆍ키노 카즈요시(紀野一義) 역주(譯註)의 『반야심경(般若心經)』ㆍ『금..
1,250명에 대해 우선 큰 비구들 1,250명이라는 숫자부터 문제다. 왜 하필 1,250명인가? 그런데 이런 질문에 대해 역대주석가들의 신통한 논의가 별로 없다. 원시불교 교단의 구성멤버의 수로서 관념적으로 그 숫자를 구성해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의 상식으로 비추어, 해인사나 송광사 같은 대찰의 규모에 비견해보아도, 큰 비구스님들 1,250명이라는 숫자는 좀 과장된 표현으로 보인다. 기원정사의 규모로 볼 때 도저히 1,250명의 스님들을 한자리에 수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초기승가의 규모가 큰 스님 1,250명 정도가 한자리에 모일 만큼의 체제를 갖춘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일설에 의하면 기원정사 본당이 7층짜리 건물이었고, 또 오늘 발굴된 기단의 주춧돌의 규..
방편설법과 대비구(大比丘) ‘여대비구중천이백오십인구(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俱)’에서 앞의 ‘여(與)’는 우리말의 ‘~과’에 해당되는 전치사이다. ‘대비구중천이백오십인(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은 그 전치사의 목적이며, 맨 끝의 ‘구(俱)’가 본동사이다. ‘구(俱)’는 ‘더불어 계시었다.’ ‘같이 생활하였다’는 의미이다. ‘중(衆)’은 여기서는 우리말의 ‘들’에 해당되는 복수격일 뿐이다. ‘대(大)’는 산스크리트 원전의 문맥으로 비추어볼 때, ‘아주 훌륭한 인격을 갖춘’, ‘득도(得道)의 깊이가 있는’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 ‘대비구중천이백오십인(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 훌륭한 비구들 1,250인)’이라는 말은 좀 깊은 통찰을 요구한다. 『금강경』의 설법의 내용은 불교적 진리의 최고봉의 간략한 통찰이..
기원정사(祇園精舍) 붓다 당대의 코살라왕국의 군주는 파사익왕(波斯匿王), 즉 쁘라세나지뜨(Prasenajit)였다. 설화적인 이야기겠지만, 파사익왕은 싯달타와 생년월일이 같다 하고, 또 싯달타가 성불한 해에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성불한 싯달타를 만나는 순간 그에게 감화를 입어 독실한 신도가 되었다고 한다. 이념적으로 보나, 정치적 관계로 보나 이 두 사람은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복자가 피정복자에게 정신적으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붓다의 인격의 위대성과 함께, 그 위대함을 위대함으로 인지할 줄 아는 당대의 통치자들의 큰마음을 엿볼 수 있다. 파사익왕은 초기승가의 절대적인 외호자(外護者)였다. 바로 파사익왕은 국도(國都)인 슈라바스띠(사위성)에서 살고 있었다. 파사익왕에게..
사위국(舍衛國)과 서라벌(徐羅伐) ‘불재사위국기수급고독원(佛在舍衛國孤樹給孤獨園)’이란 문장은 정확한 사실적 고증과 역사적 상황에 대한 상상을 요구하는 대목이다. 내가 생각키에는 여기서 말하는 ‘사위국(舍衛國)’은 곧이어 뒤에 나오는 ‘사위대성(舍衛大城)’과 구분되어 이해되어야 한다. 분명 국(國)과 성(城)은 다른 개념이기 때문이다. 성(城)은 국(國) 속에 있는 성곽도시의 개념이다. 사위국(舍衛國)은 여기서는 바로 코살라왕국을 가리킨다. 역사적 붓다가 소속해 있던 샤캬종족의 카필라바쯔는 작은 종족(tribe) 단위의 종족집단정치체제였고, 그것은 보다 거대한 집단인 부족(部族, clan)에 속해 있었다. 당대의 부족은 큰 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전제군주체제인 왕국(王國)과 ‘상가’ 혹은 ‘가나’라고 ..
금강경(金剛般若波羅蜜多經, Vajracchedikā-Prajñāpāramitā-Sūtra) 요진 천축삼장 구마라집역(姚秦 天竺三藏 鳩摩羅什譯)무술세고려국대장도감봉칙조조(戊戌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법회의 말미암음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 1-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 고독원에 계셨는데, 큰 비구들 천이백오십인과 더불어 계시었다. 如是我聞. 一時, 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俱. 여시아문. 일시, 불재사위국기수급고독원, 여대비구중천이백오십인구. 여시아문(如是我聞)과 일시(一時) 제일 먼저 소명태자가 나눈 분(分)의 이름을 설(說)하겠다. 소명태자의 분명(分名)은 글자수를 모두 네 글자로 맞추었다. 따라서 문법적으로 약간의 무리가 있는 상황도 있다...
금강경 강해 목차 김용옥(金容沃) 서문 서두 들어가는 말서두제1명제: 종교는 신앙이 아니다. 종교는 더더욱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제2명제: 종교의 주제는 신이 아니다. 신이 없이도 얼마든지 종교가 될 수가 있다. 방편적 언어 종교는 신학이 아니다제3명제: 종교의 주제는 신이 아니다. 신이 없이도 얼마든지 종교가 될 수가 있다. 제도 속 종교 고정불변의 실체 유일교에로의 해답 『금강경(金剛經)』에 대하여선종의 대표경전으로 착각된 이유6바라밀현장의 신역소명태자두 경전과의 최초의 만남명심포니군주들의 인간적 고뇌기존 주해서 ‘금강’의 의미?콘체가 다이아몬드로 번역한 이유나의 무화 ‘소승’은 뭐고 ‘대승’은 뭐냐?소승과 무관한 소승개념우월의식과 특권의식의 거부가 대승의 출발무아와 소승금강경은 선이 아니다 주해 제..
4. 금강경은 선이 아니다 올 봄, 초파일의 신록이 우거질 즈음의 일이었다. 나는 우연히 내설악(內雪岳)의 백담(百潭)을 지나치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의 회주(會主) 큰스님께서 날 알아보시고 만남을 자청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오실(奧室)로 안내되었다. 법명(法名)이 오현(五鉉)! 아무리 그것을 뜯어 보아도 법명의 냄새가 없었다. 나는 우선 그것부터 여쭈었다. “그건 어릴 적부터의 내 이름입니다. 중이라 할 것이 따로 없으니 그 속명이 바로 내 법명이 된 것이지요.” 낌새가 좀 심상치 않았다. “내가 도올선생을 뵙자고 한 뜻은, …… 아무리 여기 백담에 백칸짜리 가람을 짓는다 한들, 그곳에 인물이 없고 지혜가 없으면 자연만 훼손하는 일이지 뭔 소용이 있겠소?” 오현 스님은 다짜고짜 나에게 이와같은 제안을 ..
3. 무아와 소승 그렇다면, 금강의 지혜 즉 반야란 무엇인가? 그것이 곧 부처의 삼법인(三法印) 중의 가장 궁극적 법인이라 할 수 있는 ‘제법무아(諸法無我)’에 대한 가장 심오하고 가장 보편적인 규정인 것이다. 『금강경』이야말로 ‘무아(無我)’의 가장 원초적 의미를 규정한 대승의 가르침인 것이다. 내가 많은 중생을 제도한다고 하는데 보살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많은 중생을 제도하는 내가 있지 아니하다고 하는 아상(我相)의 부정, 「금강경』에서 말하는 사상(四相: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의 부정에 곧 그 보살의 원초적이고도 진실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현금 한국의 대부분의 스님은 소승이다. 따라서 한국불교는 소승불교다. 왜냐? 그들은 법당(法堂)에 앉아 있는 스님이고..
2. 우월의식과 특권의식의 거부가 대승의 출발 불교사적으로 ‘소승’이란 주로 ‘부파불교’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대승이란 이 부파불교를 근원적으로 비판하고 나온 어떤 혁신적 그룹의 운동을 규정하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소ㆍ대승에 대한 이해는 바로 이러한 역사적 정황에서 규정된 원래의 의미만을 정확히 맥락적으로 파악하고, 그 파악된 의미를 상황적으로, 유동적으로, 방편적으로 적용해야 할 뿐인 것이다. 우선 우리의 논의를 단축하기 위해서 이러한 역사적 정황을 압축시킨 도식을 하나 제시해보자! 소승(hīnayāna) 阿羅漢(아라한, Arhat) 八正道(팔정도) 대승(mahāyāna) 菩薩(보살, Bodhisattva) 六波羅蜜(육바라밀)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도식적 이해 자체가 불교의 근본교의의 이해..
‘소승’은 뭐고, ‘대승’은 뭐냐? 1. 소승과 무관한 소승개념 자아! 너무 번쇄(煩瑣)한 학구적 논의를 떠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개념들을 분석해보자! 도대체 소승(小乘, hīnayāna)이란 무엇이냐? 작은 수레다! 그럼 대승(大乘, mahāyāna)이란 무엇이냐? 큰 수레다! 그럼 소승이 좋은 거냐 대승이 좋은 거냐? 요즈음 아파트도 모두 작은 아파트보다 큰 아파트 못 얻어서 야단인데 아무렴 큰 게 좋지 작은 게 좋을까보냐? 큰 수레가 넉넉하고 좋을 게 아니냐? 작은 길 가는 데는 작은 수레가 좋지, 뭔 거추장스런 큰 수레냐?? 사실 ‘히나(hīna)’라는 의미에는 단순히 싸이즈가 작다는 물리적 사실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용렬하고 옹졸하다’는 가치판단의 의미가 들어가 있다. ‘마..
2. 나의 무화 애초에 중국인들이 ‘바즈라’를 ‘금강(金剛)’으로 번역한 것은 바로 이 신들이 휘두르는 무기의 이미지에서 온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의 ‘다이아몬드’가 아닌, ‘가장 강한 쇠’(금중최강金中最剛)라는 의미로 쓴 것이며, 대강 철제(鐵製), 동제(銅製)의 방망이었다. 그것이 바로 ‘금강저(金剛杵)’였고, 이 금강저의 위력은 특히 밀교(密敎)에서 중시되었던 것이다. 현장(玄奘)이나 의정(義淨)은 ‘능단금강반야(能斷金剛般若)’라는 표현을 썼고, 급다(笈多)는 ‘금강능단반야(金剛能斷般若)’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무엇이든지 능히 자를 수 있는 금강과도 같은 지혜’라는 뜻이지만, 돈황(敦煌)의 동남(東南)의 천불동(千佛洞)사원에서 발견된 코오탄어표의 『금강경』은 ‘금강과도 같이 단단한 업(業)과 ..
‘금강’의 의미? 1. 콘체가 다이아몬드로 번역한 이유 20세기 구미(歐美) 반야경전학의 최고 권위라 할 수 있는 에드워드 콘체(Edward Conze, 1904~1979, 영국에서 출생한 독일인. 맑시즘과 부디즘의 대가)는 『금강경』을 ‘The Diamond Sutra’로 번역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금강(金剛)’과 ‘다이아몬드"를 일치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오역(誤譯)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물론 콘체 선생이 이것이 오역인 것을 모르고 그렇게 번역하신 것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다이아몬드라고 부르는 광물이 오늘날과 같이 우리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보편적인 보석으로서 자리잡게 된 것은 대강 19세기 중엽 이후, 즉 1867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오렌지강(江) 상류지역에서..
8. 기존 주해서 『금강경언해』는 소명태자가 분절한 라집한역본(羅什漢譯本)과 육조(六祖) 혜능(慧能)의 『구결(口訣)』이 실려있고 이 양자의 국역이 다 실려 있어, 나는 그 판본과 국역을 다 참조하였다. 불행하게도 세조언해본 『금강경』 판본은 아주 후대에 성립한 열악한 판본이며 우리 해인사본과는 출입(出入)이 크다. 연세대학교 국문과 박사과정에 있는 장경준군(張景俊君, 도올서원 제12림 재생)이 『금강경언해』를 내가 활용할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타이프치고 고어(古語)를 현대말로 옮겨주었다. 이 자리를 빌어 그 공로에 감사한다. 내가 『금강경』을 번역함에 있어 우리 옛말의 아름다운 표현이 참조될 부분이 있을 때는 그것을 살리도록 노력하겠다. 내가 참고로 한 판본은 홍문각(弘文閣) 영인본 『금강경언해(金剛..
7. 군주들의 인간적 고뇌 『금강경』은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 천하의 명주보다도 더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 소명태자(昭明太子)가 이에 취해 그 유명한 분절(分節)을 창조했다면, 나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이 금강경』의 향기에 취했던 자로서, 두 얼굴의 사나이, 총명과 예지로 번뜩이는가 하면 탐욕과 음험한 살육의 화신인 사나이, 경세치용의 명군인가 하면 조선의 역사를 부도덕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사나이, 수양대군(首陽大君) 세조(世祖)를 서슴치 않고 들겠다. 우리나라 조선왕조의 초기의 사상적 형세는 실로 불교와 유교라는 양대(兩大) 의식형태의 충돌로 특징지워진다. 조선왕조가, 교과서에 나오듯이 1392년 7월 17일 무장(武將) 이성계(李成桂)가 왕(王)으로 추대되는 사건으로 성립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
6. 명심포니 회고컨대, 푸릇푸릇한 청춘의 시기에, 지적인 갈구에 영혼의 불길이 세차게 작열하고 있었던 그 시기에 내가 『반야심경』을 포(褒)하고, 『금강경』을 폄(貶)한 것은 실로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금강경』과 『반야심경』은 그 성립시기가 약 3세기 정도(정확한 시기를 추정키는 어렵지만)의 세월을 격한다. 비록 『반야심경』은 『금강경』에 비해 분량이 극소한 것이지만, 그 내용은 『금강경』보다 훨씬 더 복잡한 개념과 논리적 결구로 이루어져 있다. 『금강경』은 원시불교의 아주 소박한 수뜨라의 형태, 즉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시작하여 ‘환희봉행(歡喜奉行)’으로 끝나는 전형적인, 소박한 붓다설법의 기술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반야심경』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반야심경』은 이미 이러..
5. 두 경전과의 최초 만남 나의 생애에서 이 지혜의 서를 처음 접한 것은, 1960년대 내가 당시로서는 폐찰이 되다시피 쇠락하였던 고찰, 천안의 광덕면에 자리잡고 있는 광덕사(廣德寺)에서 승려생활을 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계통을 밟아 정식 출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머리 깎고 승복 입고 염불을 외우며 승려와 구분 없이 지냈으니 출가인(出家人)과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구멍 숭숭 뚫린 판잣대기로 이어붙인 시원한 똥간에 앉아 있는데, 밑 닦으라고 꾸겨놓은 휴지쪽 한 장에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이 현토를 달아 뜻이 통하도록 해석되어 있는 글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아랫도리에 힘을 주는 일도 잊고 꾸부린 가랭이가 완전히 마비되도록 하염없이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랫도리에 힘을..
4. 소명태자 『금강경』의 경우, 한역본으로 우리는 보통 다음의 6종을 꼽는다. 이를 시대적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후진(後秦) 구마라집(鳩摩羅什, Kumārajīva) 역(譯),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일권一卷), 402년 성립. 2. 북위(北魏) 보데류지(菩提流支, Bodhiruci) 역(譯),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일권一卷), 509년 성립. 3. 진(陳) 진체(眞諦, Paramārtha) 역(譯),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일권一卷), 562년 성립. 4. 수(隋) 급다(笈多, Dharmagupta) 역譯, 『금강능단반야바라밀경(金剛能斷般若波羅蜜經)』(일권一卷), 590년 성립. 5. 당(唐) 현장(玄奘) 역(譯), 『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蜜..
3. 현장의 신역 다음으로 내가 ‘논리적 이유’라 말한 뜻은 무엇인가? 논리적 이유라 함은, 비록 『금강경』의 성립과 선종(禪宗)의 성립 사이에 5ㆍ6세기의 시간이 가로놓여 있지만, 그리고 선종의 불립문자적 정신으로 볼 때, 『금강경』은 부정되어야 할 문자로 이루어진 초기경전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선종이 ‘불립문자(不立文字)ㆍ직지인심(直指人心)ㆍ견성성불(見性成佛)’등의 말을 통하여 표방하고자 하는 모든 논리적 가능성이, 아니, 정확하게는 논리 이전의 가능성이, 이미 『금강경』이라는 대승불교의 초기경전 속에 모두 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금강경』이라는 대승교학의 바이블은 비록 그것이 교학불교의 남상(濫觴)을 이루는 원천적인 권위경전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가 하나의 선(禪)이요, 가..
2. 6바라밀 그런데 또 많은 사람들이 ‘반야경’이라는 말을 어떤 단일한 책의 이름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반야경이란 단권의 책이 아니요, 반야사상을 표방하는 일군(一群)의 책들에 붙여지는 일반명사인 것이다. 반야경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오는 책들은 한두 권이 아니다(한역漢譯된 것만도 42종). 그런데 반야사상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반야(prajñā)라는 것을 공통으로 표방하는, 기독교의 『신약성경』이 쓰여지기 시작한 1세기, 같은 시기에, 초기 불교승단에서 불꽃같이 타오른 새로운 운동을 말하는 것이다. 아주 쉽게 말하면, 반야사상의 성립, 즉 반야경의 성립이 곧 대승불교의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출발과 대승불교의 출발은 거의 같은 시기에 같은 언어문자권(희랍어-산스크리트어) 내에서, 아주 비슷한..
『금강경(金剛經)』에 대하여 1. 선종의 대표경전으로 착각된 역사적 이유 조선의 불교는 『금강경(金剛經)』을 적통으로 한다라고 말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니다. 『대장경(大藏經)』이라고 하는 거대한 바구니 속에 삼장(三藏)의 호한(浩瀚)한 경전이 즐비하지만, 우리 민중이 실제로 불교를 생각할 때 가장 많이 독송하고 암송하고 낭송하고 인용하는 소의경전을 꼽으라 하면 그 첫째로 『반야심경(般若心經)』이 꼽히고, 그 둘째로 『금강경』이 꼽힌다. 우리나라 불교, 특히 우리에게서 가까운 조선왕조시대의 불교사, 그리고 오늘날의 한국불교를 이야기하면 임제(臨濟) 류의 선(禪)을 적통으로 하는 선종(禪宗)중심의 역사이고 보면, 선종에서 거의 유일하게 소의경전으로 삼는 것이 『금강경」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금강경』이야말..
제3명제: 종교는 제도가 아니다. (유일교에로의 해답) 자아! 한번 다시 생각해보자! 종교란 믿음이 아니요, 종교란 하느님이 아니요, 종교란 제도도 아니다. 종교란 성경도 아니요, 말씀도 아니요, 교리도 아니요, 인간의 언어도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종교란 무엇이란 말인가? 종교란 무엇인가? 바로 나는 여기에 대답을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나의 입을 열어서는 아니된다. 입을 여는 순간, 나는 ‘아닌’ 또 하나의 종교를 말해버리거나, 나 자신이 하나의 종교를 만들거나, 또 하나의 제도를 만드는 죄업(罪業)을 쌓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침묵한다. 그러나 나는 말한다. 여기 바로 내가 『금강경(金剛經)』을 설(說)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금강경』은 내가 발견한 유일한 종교에로의 해답이다. ..
제3명제: 종교는 제도가 아니다. (고정불변의 실체) 그런데 사실 이러한 논의는 좀 피상적이다. 아직 우리의 논의가 ‘제도’라고 하는 것의 본질에 접근하고 있질 못하기 때문이다. 제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기 위하여 만들어 내는 유위적(有爲的) 세계의 총칭이다. 무위(無爲)란 스스로 그러한[자연(自然)] 것임에 반해 유위(有爲)란 인간이 만든다(man-made)고 하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제도라는 것은 대개 약속(convention)의 성격을 띠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제도란 인간이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방편적으로 만들어 내는 모든 약속체계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결혼도 약속이고, 가정도 약속이고, 집도 하나의 약속이다. 그리고 학교도 약속이고, 입시도 약속이고..
제3명제: 종교는 제도가 아니다. (제도 속 종교)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가면 예수를 믿는다고 하고, 절깐에 다니면 부처를 믿는다 하고, 나처럼 일요일날 교회도 아니 가고 절에도 아니 가면 예수도 안 믿고, 부처도 안 믿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교회나 절깐에 가는 것을 예수 믿고 부처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극장 가면서 영화 믿는다고 하고, 식당 가면서 음식 믿는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근본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영화야말로 나의 삶의 구원이요, 영화를 보는 행위 그 자체가 나의 삶의 유일한 소망이라고 믿는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도, 그의 영화에 대한 특수한 믿음과 그의 극장 가는 행위가 전적으로 일치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명약관화한 일이다. 대강 ‘제도적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제2명제: 종교의 주제는 신이 아니다. 신이 없이도 얼마든지 종교가 될 수가 있다. (종교는 신학이 아니다) 그런데 믿음의 대상으로서 신(神)을 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일신’ 즉 하나밖에 없는 신을 고집한다. 이 우주에 단 하나밖에 있을 수 없는 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믿는 신만이 우주 전체에 유일무이하게 존재하는 신이라는 것이다. ‘유일무이하게 존재한다는 것’, 참 그것이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으나, 유일무이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든 타 존재를 배제한다는 뜻이 된다. 이렇게 되면, 모든 타 존재를 배제하는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은, 스피노자의 말대로 존재(存在)하는 모든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보다 쉽게 말하면 우주에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은 우주 전체 그..
제2명제: 종교의 주제는 신이 아니다. 신이 없이도 얼마든지 종교가 될 수가 있다. (방편적 언어) 이 두 번째 명제는 실상 상식적인 경우, 제1명제 속에서 포함되어 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대개 상식적으로 신(神, God)을 말하는 경우, 신은 초월적인 존재자가 되어야만 하고, 초월적인 존재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곧 바로 믿음 즉 신앙(Faith)의 대상이 된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신이 존재자이고 그것이 초월적이라고 하는 생각은, 신은 우리의 상식적 감관에는 포착되지 아니하며 그의 언어ㆍ행동방식이 우리의 상식과 맞아떨어지지 않는 상황이 많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의 상식에 기초한 합리적 이성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고, 따라서 이성을 초월하는 비합리적 신앙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생각..
제1명제: 종교는 신앙이 아니다. 종교는 더더욱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 종교는 꼭 믿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매우 어리석은 것이다. 생각해 보자! 여기 어떤 사람이 눈사람이 땡볕 아래서 절대 녹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고 하자! 그 믿음이 그에게 있어서 매우 소중한 것이었고 확고한 것이었다 한들, 눈사람을 땡볕에 놓고 보니 녹더라는 현상의 분석보다 구극적으로 더 강렬하고 보편적인 믿음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그에게 눈사람은 녹지 않는다는 믿음이 성립되었다 하더래도, 또 그와 같은 믿음이 상당수의 사람들에게 공유된다 하더래도, 결국 눈사람이 땡볕 더위 속에서 녹는다는 사실은 매우 쉽게 관찰될 수 있는 사실로서 보다 일상적이고 보다 보편적인 ‘믿음’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들어가는 말 나는 과연 어떠한 종교를 믿는 사람일까? 나는 독실한 기독교집안에서 태어났다. 나의 어머니는 이화학당을 다니면서 개화의 물결의 선두에 섰고 나의 아버지 역시 휘문고보 시절부터 기독교야말로 우리민족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이라는 믿음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개화된 의사집안 광제병원 일가의 막둥이로 태어난 나는 태어나자마자 유아세례를 받았고 장성하여서는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까지 들어갔다. 그렇지만 우리 집안은 증조부가 조선말기에 종2품 전라도병마절도사, 중추원(中樞院) 칙임의관(勅任議官)까지 지낸 사람이고, 할아버지도 무과에 급제하여 동복군수를 지내었다. 조부는 아관파천(俄館播遷) 이후 덕수궁돌담 쌓는 작업을 총감독하고 정3품 당상관의 지위에까지 오른 사람인데, 일제에 강점을 당하자 일..
서문 법정(法頂) 『금강경(金剛經)』은 대승경전(大乘經典) 중에서도 가장 널리 읽히는 불타 석가모니의 가르침이다. 초기에 결집(結集)된 경전이라, 그만큼 그 형식이 간결하고 소박하다. 다른 대승경전에서처럼 도식화된 현학적인 서술이 거의 없다. 공(空)의 사상을 담고 있으면서도 공(空)이란 용어마저 쓰지 않는다. 대장경 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가르침 중에서 이 『금강경』은 패기에 가득 찬 가장 젊은 사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전 여기저기에 읽는 사람의 눈을 번쩍 뜨게 하고 참신한 사상의 맥박이 약동하고 있다. 강을 건너는 뗏목의 비유(捨筏登岸)를 들면서 부처의 가르침에도 얽매이지 말고 자유로워지라고 부처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있다. 온갖 명칭과 겉모양에 팔리지 않는 사람만이 진리를 볼 수 있다고 설..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목차 서설: 고행과 해탈 기나 긴 사색의 출발고행과 해탈생명의 원리로서의 물생명의 원리로서의 불과 기와 숨윤회란 무엇인가?업에 대한 최대의 왜곡체념적인 전생의 업보업의 새로운 이해중도와 뉴웨이(1)선정지상주의고행이란 무엇인가?신비주의아트만브라흐만합일과 피타고라스신비주의적 합일고행의 단념과 안아트만싯달타의 고독고행 단념한 뒤 싯달타의 행동싯달타와 수자타인도신화와 단군신화길상과의 대화붓다의 세 가지 의미색신과 법신(2)붓다인 싯달타모두 붓다가 될 수 있다의 붓다35세 청년이 붓다가 되다싯달타와 예수의 유혹욕망이여! 마라여!사문유관과 출가해탈과 열반깨달음에 대해대각은 앎이다번뇌가 끊어지니 마음이 시원해지다삼법인의 허구무아와 비아(3)싯달타가 깨달은 것12연기설이 만든 혼란연기론이 아닌..
감사의 말씀 이 책이 완성되기까지 나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얻었다. 내가 도움을 청한 모든 사람들이 헌신적인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먼저 나의 인도여행의 모든 여정을 기획해주고 인도의 유적에 관한 정보와 자료를 제공해준 이춘호군에게 감사한다. 도올서원 제1림 재생이며 현재 델리대학 인도미술사과정에서 박사공부를 하고 있다. 탁월한 언어능력으로 매우 소상한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그리고 나의 인도여행을 도와준 메타(Mr. Bharat Mehta)와 그의 가족에게 감사한다. 뭄바이 베이스로 다이아몬드무역에 종사하는 가문의 사람인데 원광대학교 재학시절에 우연히 이리에서 알게되어 훌륭한 우정이 지속되었다. 아주 독실한 자이나교도인데 자이나교의 현실적 종교관행에 관하여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한항공..
나는 중이요 나는 사실 그에게 묻고 싶은 불교학의 전문적 주제들이 너무도 많았다. 나는 일평생 ‘불여구지호학야’(不如丘之好學也)라는 공자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살았다. 호학(好學)이란 끊임없이 배우는 것이다. 끊임없이 배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런데 배우기를 좋아한다 하는 사람일수록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다. 그래서 독단에 갇혀 버린다. 사실 공자가 말하는 호학도 자기를 비울 줄 아는 마음의 공부가 없으면 이루어질 수가 없다. 자기를 비우는 마음의 공부가 곧 공의 지혜다. 내가 생각하기엔 공자도 그러한 공의 지혜를 터득한 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이십일세기에 현실적으로 존속하고 있는 왕입니다...
서양의 이성과 불교의 이성 나의 이야기를 바톤받아 달라이라마는 이성에 관하여 매우 중요한 언급을 하였다. “이성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는 죄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성에 관한 모든 논의는 그 논의가 되고 있는 맥락이라는 어떤 삶의 장을 떠나서 이야기될 수가 없습니다. 이성은 절대적으로 논의되어서는 아니되며 반드시 그것은 어떤 필드(Field) 속에서의 이성에 관한 논의로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이성 자체가 천수관음처럼 무한히 다른 모습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이성을 너무 수학적인 것으로만 생각했으며, 그리고 그것이 적용되는 대상을 지나치게 물리적 세계에 한정시켰습니다. 그러니까 계산이 가능하고 진ㆍ위의 분별이 정확한 그런 물리적 세계만을 이성의 영역으로 설정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수..
근대적 인간, 합리성, 불교 나는 몇년 전에 읽은 애튼보로의 『식물의 사생활』이라는 책이 생각났다【David Attenborough, The Private Life of Plants, Princeton :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5. 과학세대 옮김, 『식물의 사생활』, 서울 : 까치, 1995.】. 식물의 행태에 관한 수준높은 보고서였다. 그런데 나는 더 이상 윤회문제로 머뭇거릴 수가 없었다. 오늘 나와 달라이라마의 예정된 시간은 매우 제한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달라이라마의 대답은 매우 명료했다. 그것은 이미 오랜 논전을 거쳐 성숙된 정연한 이론체계일 것이다. 이제 나는 감잡기 어려운 형이상학의 세계로부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형이하학의 세계로의 착륙을 시도하는 것이 최..
윤회는 마음을 기준으로 한다 “말씀하시는 것을 모두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저에게는 몇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우선 말씀하시는 이러한 모든 것이 과학적 사실이라고 한다면, 우선 미세마음이 물리적 근거가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그것이 전혀 없는 것이라면 이 모든 이야기는 환상에 그치고 말수가 있습니다.” “도올선생께서는 인간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 그것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물리적 조건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물질로부터 현현(emergence)되는 그 무엇일 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신체적 조건을 떠나 독립적으로 떠다니는 존재로서의 마음은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조건하에서의 이매지내이션의..
윤회하는 것은 미세마음이다 그러나 나의 추궁은 집요했다. “앞서 말씀드린 영혼의 동일성의 지속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도 도올선생님은 적절한 질문만을 골라 던지시는지 참 놀랍군요. 도올선생께서 지적하신 문제야말로 흔히 불교에 대해서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애매하고 막연하게 생각하기만 해서 오해가 많은 핵심적 주제이지요. 우선 ‘영혼의 동일성의 지속’(the continuation of the identity of soul)이라는 말 자체에 대한 세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우리 티벹에서는 윤회의 과정에서 전생의 존재가 확인된 사람들을 뚤꾸(trulku)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화신(化身, nirmāṇa-kāya)의 뜻이지요. 저는 제 전대 13대 달라이라마의 뚤꾸입니다. ..
종교의 본질적 주제는 죽음 나는 갑자기 숨이 콱 막히고 말았다. 사실 난 중국철학적 세계관에 오며는 너무도 할 말이 많다. 그것은 나의 언어영역이기 때문에 나는 세세하고도 권위있는 답변을 끝없이 늘어놓을 수가 있다. 그러나 성하의 말씀도 일리가 있었다. 전혀 다른 평행선의 신념체계를 맞부닥뜨려 본들 거기서 설득이나 타협이란 실제로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종교적 가치의 문제가 개입되고 있는 이상! 달라이라마는 말씀을 이었다. “유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것은 세속적 윤리(secular ethics)입니다. 그것은 바람직한 삶(good life)에 관한 것이며, 좋은 사회, 좋은 군주, 좋은 시민에 관한 담론일 뿐입니다.” “성하께서는 이미 불교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종교가 아니라고 말씀하시지 않았..
영혼의 동일성에 대해 그래서 나는 작전을 변경했다. 공세의 방향을 대전환시키기로 작심했다. 그러나 윤회의 문제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좋습니다. 사실 윤회의 문제란 불교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도아리안족의 세계관의 공통분모였으며 그들은 그러한 윤회의 생각을 통해서 카스트의 고착성을 정당화시킬려고 노력했습니다【힌두이즘과 카스트의 관계, 그리고 카스트 자체에 대한 정치ㆍ종교ㆍ사회적 의미를 아주 명료하게 잘 해설한 것으로 킨슬리의 저서를 들 수 있다. David R. Kinsley, Hinduism ― A Cultural Perspective, New Jersey : Prentice Hall, 1993. 제5장과 제8장을 참고할 것.】. 그리고 또 희랍의 올페이즘에도 완전히 동일한 윤회의 생각이 있습..
윤회란 인간마음의 역사 그러나 쉽게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연기적 자아라는 표현에 대해서 좀더 설명을 해주시죠?” “연기란 한마디로 무자성(無自性, niḥsvabhāva)이라는 뜻입니다. 무자성이란 자성(自性)의 법(法, dharma)이 인정이 되지 않는다는 말인데, 그것은 결국 모든 존재는 서로 의존하고 있으며(interdependency), 상호관련되어 있다(interconnectedness)는 뜻입니다. 이러한 상호의존성ㆍ상호관련성을 불교에서는 공(空, śūnya)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불교에서 말하는 공은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의 무(無, Nothingness)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무엇인가 항상 거기 있는 겁니다(something there). 그러니까 무아라고 하는 뜻은 아라..
무아와 윤회의 모순 나는 정말 할 말이 없어지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두 손 들고 항복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나는 당초에 과학적 검증 운운했지만, 이러한 영역은 영원히 과학적 검증의 대상이 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렇게도 정정당당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아마도 나의 이런 질문에 감춰져 있는 논리적 함정을 이미 간파를 하고 계셨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솔직히 윤회를 사실로서 믿는 세계관에는 익숙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나 윤회를 사실로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불교의 많은 교설들이 논리적으로 성립불가능해진다. 임마누엘 칸트는 아예 그것을 요청(postulation)으로 말해 버렸지만 달라이라마는 그것을 사실(fact)로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칸트는 역시 합리주의적 철학자였고, 달라이..
윤회는 과학이다 이런 부분에 오면 그의 이야기는 알 듯 말 듯했다. 그러나 그 자신은 매우 명료한 논리를 가지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열반이나 해탈(解脫, mokṣa)과 무관하게 윤회는 있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윤회라는 것은 인간의 선업과 악업의 과보를 정당하게 만들기 위해서 논리적으로 설정된 하나의 문화적 전통(cultural convention)이 아닙니까? 그것은 성하나 티벹사람들의 세계인식의 한 방법이지 그것을 사실로서 강요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성하와 같이 과학에 사리가 분명하신 분이 윤회를 정말 사실이라고 믿고 계신 겁니까?” “윤회는 사실입니다.” “문화적 사실이나 심리적 사실이나 논리적 사실이 아닌, 물리적 사실이며 과학적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윤회는..
열반이 해탈을 보장하지 않는다 나는 너무 정치적인 문제로 깊게 들어가고 싶질 않았다. 그것은 시간이 나면 뒤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고 화두를 틀었다. 마음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김에. “아까 불교를 심리학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그 심리학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마음의 평화입니다.” 달라이라마의 대답은 정말 정갈했다. 그는 될 수 있으면 어려운 불교용어를 피해가며 말한다. “마음의 평화란 열반(涅槃, nirvāṇa)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존재가 아닙니까?” “그것은 분명 존재가 아닙니다. 열반에 들었다고 하는 표현이 열반이라는 존재가 있고, 그 존재 속으로 내가 들어간다는 의미는 아닌 것입니다. 열반은 어떠한 경우에도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존재론적 실체(onto..
인간의 마음에 달렸다 “아시아 역사에 있어서 정치적 리더십의 도덕성 그 자체도 항상 문제가 되겠지요.” “그렇습니다. 아시아역사의 현실적 대세는, 비록 그것에 대한 정확한 가치판단을 유보한다 할지라도, 그 나름대로의 필연성이 있는 것입니다. 즉 아시아의 인민들은 힘이 없었고 배가 고팠던 것입니다. 그래서 근대화ㆍ서구화라는 문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빵으로만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삶의 존재이유에 대한 정신적 가치가 충족되어야만 사는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정신적 가치를 정치적 리더들이 제공해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아시아제국의 근대정치사는 탐욕적 개인들에 의하여 지배되어온 역사였습니다. 전 국가의 정신적 가치가 그 국가를 리드하는 리더십의 도..
티벹과 중국의 미래 “저는 티벹의 문제를 매우 가슴아프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성하께서 지적하신 그 타협의 문제와 관련하여 티벹이야말로 이상적인 어떤 인류문명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한 문명이었습니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며, 지식과 삶이 화해하며, 모든 종교적 신념이 관용되며, 전통적 가치가 서구적 물질문명 앞에 일방적으로 무릎을 꿇지만은 않는 그러한 인류문명의 본보기로서 존속될 가치가 있는 문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독자적 문명을 강압적인 수단에 의해 일방적으로 파괴하고 서구문명의 모든 병폐의 쓰레기더미로 만들어버리는 중국정부의 소행은 인류의 공동의 미래를 위하여, 그리고 중국자신의 미래를위하여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지난달에 저는 홍콩에서 활약하고 있는 어느..
과학적 가치의 정립 그리고 나는 최근에 나의 EBS 노자강의에서 21세기의 인류의 당면과제로 제시한 세 가지 문제를 거론하면서 다시 과학의 주제를 접근해 들어갔다. “저는 최근 우리 한국사람들을 위한 테레비강의에서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과제로서 세 가지를 들었습니다. 그 첫째가 인간과 자연환경의 화해고, 그 둘째가 지식과 삶의 화해고, 그 셋째가 종교와 종교간의 화해였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주제는 이미 우리가 어제 심도있게 토론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인간과 환경의 문제, 그리고 인간의 지식이 인간의 삶으로부터 유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의 지식이 과도하게 인간의 삶의 본연을 제어하고 있는 상황, 이런 것들은 모두 과학이라고 하는 세계사적 주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과학의 발전이 인간을 자연을 파..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또 한번 그의 단도직입적인 언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정말 절대적 진리란 없는 것입니까?” “절대적 진리는 없습니다. 물론 불경에 보며는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 이따위 말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들을 사람들이 매우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타의 깨달음이 연기(緣起)인 한에 있어서 절대적인 진리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어로 ‘앱솔루트 트루쓰’(Absolute Truth)라고 말할 때 이미 우리는 그 말이 지닌 역사적 인식의 포로가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마치 절대적 진리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그리고 이 우주에는 절대적인 그 무엇이 꼭 있어야만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어떤 공포감이나 중압감의 포..
비그뱅, 절대적 진리는 없다 달라이라마의 어조는 단호했고 간결했다. 어제 단 하루의 만남이었지만 우리는 그 만남을 통하여 서로에게 깊은 신뢰감을 주고 받았다. 사실 그가 내뱉고 있는 말들은 거대한 종교계의 현실적 지도자로서는 몸을 좀 사려야할 그런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어마어마한 말들을 그는 거침없이 내뱉었다. 나는 그의 그러한 정직한 태도가 너무도 좋았다. 어느 샌가 나는 그의 한 친구로서, 제자로서 한없는 경복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진실한 인간이었다. 나는 그의 과학에 대한 생각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갔다. “비그뱅(Big Bang)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연기론에 위배되는 것이 아닙니까? 원인이 없이 시작되는 사건이니까요.” “비그뱅(Big Bang)이라는 사건을 단순히 ..
불교는 심리학인가? “어제 말씀 중에서 기독교는 사건중심이고 불교는 법중심이라고 하셨는데, 그 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연기(緣起, 산스크리트어: pratītya-samutpāda, 팔리어: pa ṭicca-samuppāda)입니다.” 나는 이 한마디에 온 전신에 전율이 감도는 것을 느꼈다. 그의 대답은 너무도 간결했고, 내가 원시불교에 관하여 깨달은 총체적 결론을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그는 대스승이었다. “연기(緣起)란 무엇입니까?” “연기(Dependent Arising)란 모든 것이 서로 의존하여(paṭicca) 함께(sam) 일어난다 (uppāda)는 뜻입니다. 즉 이 우주의 어떠한 이벤트도 절대적인 독립성을 갖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연기..
다 이루었다 나는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수자타호텔 209호실로 들어갔다. 수자타호텔 리셉셔니스트가 내가 딴 호텔에서 자는 것을 눈치채고, 남향의 좋은 수트룸을 주었던 것이다. 안온한 느낌이 드는 쾌적한 방이었다. 나는 이날 밤 꼼짝 않고 침대에 누워있기로 했다. 나는 두 손을 쫙 벌리고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형상으로 침대 위에 벌컥 드러누웠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외쳤다. 我也悉達! 나 또한 다 이루었다!(요 19:30)는 뜻이다【‘실달(悉達)’에는 ‘싯달타’라는 뜻과 ‘다 이루었다’는 뜻이 겹쳐있다.】. 순간 나의 기나긴 반백년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아무 이유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왜 이토록 치열하게 나는 살아야 하는 것일까? 머나먼 옛날, 엄마와 남산 수도산에 원족가던 일, 눈들 방죽에서 ..
티벹의 침묵 나는 정말 기뻤다! 내일 또 시간을 내주시겠다니! 오늘 나의 대화가 결코 그에게 누가 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진심으로 그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이 바쁜 중에 또 시간을 내어 주시다니! “저는 도올선생님과 같은 분과 앉아서 대화하는 시간이 인생에 가장 보람 있는 순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말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았지만 도올선생님처럼 그렇게 많은 분야에 정통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만나 뵙기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무슨 얘기가 나와도 그것을 진지하게 풀어나가시는군요. 요번 보드가야의 일정은 너무 빡빡합니다. 내일 제가 특별히 시간을 만들어보겠습니다. 그러나 편안할 때 한번 다람살라에 오십시오. 다람살라에 오시면 언제고 제가 뵙고 싶습니다. 그곳에서는 보다 여유있..
불상 도입의 명과 암 달라이라마는 시간에 쫓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팔목에 찬 시계를 자꾸 들여다보았다. 나 도올은 평생 팔목에 시계를 차지 않고 살았는데 달라이라마는 왼쪽 손목에 쇠줄의 네모난 시계를 차고 있었다. 자주빛 다체(drache) 법복을 걸친 그의 우람찬 몸매에 달랑 감겨있는 시계줄의 모습은 정말 코믹했다. 그러나 그는 문명의 이기도 마다하지 않는 성자였다. 얼마나 바쁜 일정을 보내시면 저렇게 손목에 시계를 걸치고 사실까? 그러나 달라이라마는 나와의 대화를 계속하기를 원했다. 나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제가 불상에 관한 이러한 장황한 얘기를 하는 본 뜻은 우리 북전불교(福田佛敎)에서는 대승만이 불타의 참 가르침을 전하는 진짜 불교이고, 소승은 개인의 수양에 치우친 좀 수준 낮은 불교인 것..
불상과 반야 “그렇습니다. 제가 번역한 반야경전계열의 작품으로서 AD 200년경에 성립했다고 하는 『금강경』(Vajracchedikā-Prajñāpāramitā-Sūtra)【『금강경』은 『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경(能斷金剛般若波羅蜜多經)』으로도 불리우는 반야경전 중의 하나이다. 이 경전의 성립연대에 관해서는 AD 150~200년 사이라는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 선생의 설을 따랐다. 나는 동경대학 재학시절에 나카무라 선생의 강의를 몇 번 청강한 적이 있다. 中村元ㆍ紀野一義 譯註, 『般若心經ㆍ金剛般若經』(東京 :岩派書店, 1997), p.202.】을 펼치면 제5분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몸의 형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몸의 형상으로는 ..
희랍문명과 불상중심 운동 그러니까 불상이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박트리아 희랍문화로부터 시작된 쿠샨왕조의 일반적 문화풍토에서 우발적으로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아폴로나 제우스의 신상이나 신화의 내용을 담은 부조들을 벽면이나 정원의 치장에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었으며, 이 지역에 불교가 전파되자 자연스럽게 그러한 그리스의 신상들을 모델로 해서 붓다의 모습을 형상화했던 것입니다. 간다라의 불상들은, 근엄한 명상인의 정형화된 32호상의 프로토 타입을 전달하는 후기 마투라 불상들과는 달리 매우 인간적인, 아폴로를 닮은 미남자의 모습이었으며, 그 표현양식도 자세나 의복, 머리맵시 등이 자유분방한 표현을 취했으며, 대개 희랍-로마풍을 본뜬 것이었습니다. 이들의 조각공들은 중인도의 불상불표현(佛像不表現)을 고..
불상의 탄생 우리는 쿠샨왕조하며는 그 전성기를 이룩한 카니쉬카(Kaniṣka) 왕 생각이 나고, 카니쉬카왕하며는 『한서』(漢書)를 지은 반고(班固)의 동생 반초(班超) 생각이 납니다. 반초는 형 반고, 아버지 반표(班彪), 여동생 반소(班昭)와 함께 이름을 날린 초(楚)나라 명가의 자손으로 서역의 정벌에 대공을 세운 명장인데, AD 90년경 파미르고원을 넘어 카니쉬카왕의 군대와 일대 격전을 벌려 결국 카니쉬카의 무릎을 꿇게 하고 말았지만, 카니쉬카는 현명하게 화친을 맺고 오히려 파미르고원의 동서에 걸친 실크로드의 요지를 장악하고 로마와 계속 교역했던 것입니다. 카니쉬카왕이 로마의 아우레이(aurei)금화를 모방하여 갖가지 금화를 주조하였는데, 이 금화의 여러 신상 중에서 불타의 모습도 발견되는 것입니다...
부록 14. 초기불교의 정신이 담긴 통도사 우리나라의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심으로 해서 존재 의의를 갖는 사찰로서 그 가람의 성격이 초기불교의 정신에 가장 가깝게 오는 우리나라의 사찰이라 할 수 있다. 이 통도사를 창건한 스님, 자장율사는 신라 진골출신으로서 인도를 여행한 현장과 동시대의 인물이다. 여기 보이는 사진은 금강계단(金剛戒壇)이라 부르는 통도사의 핵심부이며 중앙에 부도 형태의 스투파(stūpa)가 있다. 그 앞에 있는 대웅전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데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대웅전은 이 금강계단 스투파에 대한 전실로서의 기능 밖에는 지니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금강계단은 선덕여왕대 646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나 오늘의 모습은 진신사리를 탐내는 외세의 침략..
대승운동의 출발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상좌부(Theravāda)와 대중부(Mahāsāṅghika)의 분열을 계기로, 대중부가 발전하여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난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하지만 그것은 정확한 역사적 정황을 전달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대중부도 어디까지나 소승부파불교의 일파에 불과한 것이며, 그것이 곧 바로 대승불교로 발전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대승불교 운동에 대중부의 이론이 보다 깊은 영향은 주었을 것입니다. 결국 초기부파불교의 주축이 아라한을 지향하는 상주(常住)의 특수승려집단에 한정되었던 것이라면, 대승불교운동은 아쇼카시대에 극성했던 스투파신앙의 흥기에 따라 파생된 레이맨(layman) 즉 재가 신도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대중혁신운동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상주의의 확립 나는 계속 형상(iconic)과 비형상(aniconic), 등신불과 법신불, 대승과 소승의 논제를 계속 풀어나갔다. “그런데 이러한 비형상주의적 경건성에 비하여 아주 색다른 표현력을 가진 문명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헬라스, 그리스 문명입니다. 크레테섬의 미노아문명에서 출발하여 이방정복자들의 문명을 창조적으로 결합해간 이 그리스 문명은 일찍이 신의 모습을 인성으로 표현하는 데 하등의 주저함이 없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인간주의를 그들의 합리적 사유의 근원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가 초기로부터 아이코노그라피를 발전시킨 것도, 결국 희랍세계와 접목됨으로써 시작된 것이며 예수의 모습도 초기에는 아폴로신상을 닮았던 것인데 로마제국의 제국종교가 된 이후로부터는 희랍의 영향을 받는 로마조각의..
이슬람의 형상거부 “인류의 종교사에 있어서 대중문화ㆍ예술과 관련된 가장 큰 잇슈 중의 하나가 결국 신성(Divinity)을 어떻게 시각화(visual representations)하냐는 문제와 되어 있다고 봅니다. 신은 일체의 시각적 표상을 거부한다든가, 인간외적 물체의 상징으로만 나타난다든가, 인간의 형상으로 표현된다든가 하는 여러 가지 표상 방법이 있겠는데, 아주 간단히 나누면 아이코닠 이미지(iconic image)와 언아이코닠 이미지(aniconic imagery)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아이코닉 이미지는 대체로 인간의 형상(anthropomorphic image)과 관련이 되어있습니다. 서양에서는 종교적 아이콘(icon)이라 하면 대체적으로 인간의 형상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인도의 베다제식전통에서..
소승, 대승, 아잔타! “그리곤 곧 아잔타석굴(the Ajanta Caves)을 가보았습니다. 제가 너무도 유명한 그 아잔타에 관하여 뭐 특별히 얘기할 것이 있겠습니까만, 기원전 200년경부터 기원후 650년경까지 장장 8ㆍ9세기에 걸치는 불교미술, 조각, 건축, 회화의 찬란한 전개를 한 무대에서 굽어볼 수 있다는 감격은 저로 하여금 문헌으로만 접해왔던 불교미술의 프로토타입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틔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잔타석굴을 안내하던 관광가이드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저로 하여금 인류의 종교미술사를 새롭게 정리할 수 있게 만드는 기준을 제공하는 천하의 명언이었습니다.” “그 말이 무엇입니까?” “저보고 묻더군요, ‘소승과 대승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가 머뭇거리고 있으니까 다음과..
부록 13. 아잔타 사원 아잔타는 인도인의 심미적 감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인도대륙의 가장 위대한 조형물의 하나이다. 감정적인 연루가 없이 아잔타석굴을 본다는 것은 천하의 불경이다. 아잔타는 돈황에서 우리나라 석굴암에 이르는 모든 석굴의 아키타입이다. 그것은 BC 2세기 소승의 시대로부터 AD 7세기, 엘로라에 바톤을 넘겨주기까지 번창했던 비하라(승방)와 차이띠야(caitya, 法堂)의 밀집취락이었다. 아우랑가바드의 북서쪽 101km, 잘가온(Jalgaon)의 남쪽 55km 지점에 위치하며 인도의 남과 북을 연결하는 교통요지였으며 ‘데칸의 문’이라 불리었다. 우리나라 하회(河回)와 같이 생긴 와고라강(Waghora River)의 흐름으로 침식된 높이 6m에 이르는 반월형(말발굽형)의 절벽에 구멍을 파들어간..
신화 속에 사는 인도인 우리나라 석굴암의 본존불의 상호에서 감지하는 고요한 적막 속에 살포시 눈썹을 내리감은 영원한 평화의 느낌, 그러한 느낌의 보다 장쾌한 깊이를 엘레판타의 마헤사(위대한 주, the Great Lord)의 모습에서 저는 발견했습니다. 영원한 명상 속에 살포시 내리감은 눈, 육감적인 도툼한 입술, 기다랗게 내려뜨린 귀, 날카로운 눈썹의 선율, 얼굴보다 더 높게 땋아올린 머리카락의 화려한 더미, 찬란한 목걸이 장식, …… 인도의 어느 곳에서 본 조각의 상호보다 이 시바의 얼굴은 뛰어난 세련미와 웅혼한 느낌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카일라사 산에서 파르바티와 성교를 하고 있는 시바를 저주하기 위해서 카일라사 산을 번쩍 들어버릴려고 용솟음 치는 랑카의 마왕 라바나(Ravana)를, 부인을 껴안..
석굴암 성하께서 한국에 오시게 되면 딴 곳은 몰라도 꼭 한 군데는 가보셔야 할 곳이 있습니다. 조선의 옛 왕국 신라의 고도 경주의 토함산 꼭대기에 있는 흔히 석굴암이라고 불리는 석불사(石佛寺)라는 곳이지요【경덕왕(景德王) 창건 당시 이 석굴의 이름은 석불사(石佛寺)였다. 김대성(金大成, 700~774)의 발원에 의하여 이 석굴사원의 공사가 시작된 것은 경덕왕 10년(751)이었다. 그 뒤로 약 30년에 걸쳐서 공사가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黃壽永 編著, 『石窟庵』(서울 : 藝耕産業社, 1980), pp.18~20.】. 동해바다에서 첫 일출의 햇살이 떠오르는 순간 이 석굴 속의 본존불의 이마를 비추게 되어 있는데 그렇게 되면 온 전신이 보드라운 여인의 살결처럼 살아 움직이지요. 지금은 전실이 지어져서 이..
부록 12.4. 환조와 본존불에 대해 여기 환조(丸彫)라는 말은 부조(浮彫)와 대비되어 쓰이는 미술사의 용어인데, 그것은 좌우앞뒤 4면을 모두 조각한 통조각 작품이라는 뜻이다. 초기불상들을 잘 살펴보면 환조같이 보이는 것도 실상은 뒷면이 처리가 안 된 부조(relief)일 경우가 많다. 벽에 조각해 들어갈 때는 환조이기가 어려운 것이다. 간다라ㆍ마투라의 불상들이 모두 부조작품에 속하는 것이며 환조는 그 이후의 발전이다. 벤자민 로울랜드 지음, 이주형 옮김, 『인도미술사』(서울 : 예경, 1999), p.125. 그리고 석굴암의 본존(本尊)의 명호(名號)에 관하여 여러가지 논의가 있으나 이 본존은 그냥 소박하게 석가모니 부처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황수영(黃壽永)선생은 석굴암 본존이 아미타불(阿彌陀佛)임이..
엘레판타의 석굴 “저는 인도에서의 첫날밤을 뭄바이의 하버 베이(Harbour Bay)에서 지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호텔 창문을 열어보니 아라비아해면으로 반사되는 찬란한 햇살 저편에 그 유명한 게이트웨이 어브 인디아(Gateway of India)가 보이더군요. 첫날 특별한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게이트웨이 뒷켠을 어슬렁거리다가 어느 섬 관광을 가는 배가 있다기에 별 생각 없이 올라탔습니다. 동북쪽으로 9km가량을 가니까 엘레판타라는 섬(Elephanta Island)에 도착하더군요. 저는 이곳 유적에 대한 아무런 사전정보가 없었습니다. 엘레판타는 학구적으로 소개된 책자가 거의 없이 방치된 유적이었으니까요. 열대의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긴 계단을 올라가 섬의 중턱에 있는 석굴에 당도했을 때, 무방비상태..
부록 12.3. 석굴암에서의 추억 이 사진을 여기 공개할 수 있게 된 것을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내가 아홉살 때 석굴암의 모습인데 이 사진의 위대성은 동해일출의 햇살이 부처님의 이마를 한 줄로 비추고 있는 바로 그 현장을 담았다는 사실에 있다. 당시에는 전실이 없었다. 신라인의 석굴암은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나의 추억은 아련하면서도 생생하다. 엄마 주먹 속에 쥐어진 고사리 손을 따라 꼬불꼬불 넘고넘고 또 넘어도 여명이 밝을 줄 몰랐던 토함산! 그 토함산의 정상에서 동해바다를 바라 보았을 때 옥색 수평선의로 방울방울 맺힌 빛방을이, 점점 모여 달걀의 노른자위처럼 뭉치더니 둥실둥실 떠올랐다. 갑자기 찬란한 빛줄기를 발하자 부처님의 이마를 한줄로 비추었고 은 몸이 살아있는 여인의 감추어진 피부처럼 ..
부록 12.2. 관세음보살과 달라이라마 관세음보살은 우리가 잘 외우는 『반야심경』에는 관자재(觀自在)보살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보는 것이 자유자재로운 보살’이라는 뜻이다. 관세음이란 문자 그대로 하면 ‘세상의 고통스러운 소리를 본다’는 뜻인데 하여튼 중생의 고통과 더불어 하며 이 세상에 끝까지 남아 세상을 구원하는 자비의 화신이다. 관세음보살은 원래 남성이다. 그러나 그 표현은 지극히 여성적이다. 온갖 화려한 영락(구슬)을 몸에 휘감으며 비치는 샤리가 흘러내리는 사이로 섬세한 손가락이 우리를 매혹시킨다. 왼손은 활짝 핀 꽃이 담긴 정병을 젖가슴 밑으로 치켜들고 있고, 발은 활짝 핀 연꽃을 살짝 딛고 있다. 관음의 특징은 두상에 있다. 본래의 얼굴 이외로 두부에 11개의 얼굴이 있는데 여기에 얽힌 전설..
부록 12.1. 석굴암 본존의 자태 석굴암의 본존불과 그 주변의 감실. 감실의 존재는 석굴의 깊이를 주며 천연동굴의 자연미를 자아낸다. 이 석굴암의 성립연대가 아잔타 석굴의 하한선에서 불과 2세기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할 때 신라 석공들의 손길의 세련미와 그 기하학적 조형성의 완벽미는 세계불교미술사의 한 경이라고 할 것이다. 그 근엄한 자태의 그윽함은 가히 비견할 곳이 없다. 석굴암 본존의 자태는 전통적으로 규정해온 32상의 모든 뛰어난 속성을 구현한 이상적 형상이다. 그러나 신라석공의 손길은 우리의 시선이 닿는 곳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것은 완벽한 환조이며 편단우견의 옷자락이 등 뒤로 흘러내린 맵씨의 자연스러움은 비단결보다 더 고운 표현이다. 이런 섬세함은 인도ㆍ중국 어느 곳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
인도야말로 세계의 중심 달라이라마는 하나의 군주로서 볼 때에도 정말 개명한 군주였다. 마음이 열려있고 부패하지 않았으며 모든 도전 속에도 명랑한 자신감을 잃지 않는 그런 인간이었다. 그는 갑자기 대화의 주제를 돌리려는 듯 엉뚱한 질문을 했다. “도올선생은 인도에 처음 오신 겁니까?” “네, 처음입니다. 성하 덕분에 꿈에만 그리던 환상의 인도에 오게 되었습니다.” “아~ 참 많은 것을 느끼셨겠군요. 우리 티벹인들은 인도를 아랴부미(Aryabhumi)라고 부릅니다. 거룩한 땅(the Land of the Holy)이라는 뜻이지요. 나 역시 인도에 한번 스쳐 오는 것을 등에 그쳤습니다. 제가 인도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1956년 겨울의 일이었습니다. 그때의 감회는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라즈가..
잉글리쉬교육과 잉글리쉬 마인드 달라이라마는 다음과 같은 웅변으로 자신의 지식에 대한 논지를 매듭지었다 “나는 달라이라마라는 제도에 의하여 어려서 발탁이 되었고 그래서 고독한 유년기ㆍ청년기를 포탈라궁에서 보냈습니다. 제가 티벹의 정신적인 지도자, 달라이라마 14세로서 공식적으로 즉위하여 포탈라궁의 사자좌에 앉은 것이 1940년 겨울이었습니다. 그때 내가 몇 살이었는지 아십니까? 그때 나의 나이가 만 5세였습니다. 나는 그때 취임식에 대한 기억조차 별로 없습니다. 보석장식이 달려있고 아름다운 조각이 새겨진 커다란 나무의자에 앉아있었던 기억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저는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바깥세계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한 계기로 시계를 분해했다 조립했다 하는 기계조작의 취미를 ..
지혜와 지식 달라이라마의 논리는 매우 명료했다. 나는 이어 인간의 지식에 관한 또 하나의 주제를 끄집어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불교가 과학적 세계관이나 과학적 가치와 접목됨으로써 앞으로 닥쳐올 인류의 미래를 리드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불교는 과학에 대해서 보다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할 뿐 아니라 과학적 사유의 본령 속으로 깊게 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동ㆍ서양을 막론하고 대체적으로 종교적 지도자들이 너무 무식합니다. 원래 과학이라는 말은 스키엔티아(scientia)라는 라틴어에서 온 표현인데, 그것은 지식이라는 의미입니다. 인간과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세계에 관한 지식입니다. 이 지식의 원래적 의미는 앞서 말씀드린 그노시스(Gnosis), 즉 영지(靈知)였습니다. 이 그노시..
불교와 정신적 패러다임 나는 물었다. “불교는 무신론(atheism)이라는 저의 말에 동의하십니까?” “물론이지요! 유신론의 전제는 반드시 이 세계에 대하여 이 세계 밖에 있는 창조주를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인간의 구원도 인간 밖에 구세주(Savior)를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불교는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으며 구세주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간과 우주 밖에 있는 초월적 존재자로서의 신의 개념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 맥락에서는 불교는 분명한 무신론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진정한 과학의 힘을 믿는 모든 상식인들은 그 상식의 논리에 철저하기만 한다면 모두 무신론자(atheist)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서양의 종교인들은 무신론하면 아주 나쁜 말인 것처럼 생각하..
불교는 과학이다 달라이라마는 내 말을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하게 들어주었다. 그리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서양인들에게 불교가 아필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사실 달라이라마가 왜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누구보다도 몸소 그런 방면에 있어서 체험적인 정보를 충분히 습득하고 있는 사람일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서구인의 정신적 위기, 물질적 풍요 속에 정신적 빈곤 등등의 클리쉐(cliché)를 되씹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달랐다. “우선 제가 충분한 말씀을 드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만 저는 사실 서양인들에게 불교가 아필된다, 이런 말을 근본적으로 하기가 싫습니다. 지금 동양과 서양, 이런 구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그러..
새로운 세계사 전환의 계기 “깨우치는 바가 큽니다. 그러나 헤겔의 언급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하나의 이야기를 상기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불교는 본시 인도의 종교입니다. 현재 불교는 인도 자체에서는 괄목할 만한 족적을 남기고 있지 않지만, 대승불교ㆍ밀교를 포함해서 모든 불교의 원형은 분명히 인도문명에서 잉태되고 장육(長育)되었습니다. 그런데 불교가 잉태되고 성장한 이 인도라는 토양은, 드라비다족으로 추정되는 원주민의 문명을 잠시 도외시하고 이야기하자면, 인도-유러피안어군에 속하는 산스크리트어를 조형으로 하는 인도 아리안어족의 문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여태까지 논의한 초월적 종교의 모든 원형은 함족ㆍ셈족어군(Hamito-Semitic languages)의 문명 속에서 태어난 것입니다【함족ㆍ셈족어군(Ha..
야크를 탄 세계정신 이 부분에서 그의 말씨는 매우 무거웠고 매우 또박또박했다. 나는 짓궂게 또다시 물었다. “모택동(毛澤東, 1893~1976)에게 또 감사할 것이 없습니까?” “왜 없겠습니까? 너무 많지요!” 이런 말을 하면서 그는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나도 그의 호탕한 웃음을 따라 같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우리를 떠돌이 신세로 만들었기 때문에 전 인류에게 불법(佛法)이 전파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티벹 사람들에게 한없는 고통을 주었을지언정, 그는 우리 티벹인민들이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과거의 고립상태에서 벗어나 세계사의 흐름에 참여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광막한 고원의 적막 속에 갇혀있다가 바깥세상을 배우..
모택동에게 애도를 표한 달라이라마 나의 어조에 담긴 절묘한 새커즘(Sarcasm, 빈정거림, 풍자)을 달라이라마는 정확히 다 파악하는 듯했다. 그러면서 유쾌하게 깔깔 웃었다. 이런 말을 하며는 좀 언짢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미국에 로마교황이 나타나면 도로변에 마중 나온 사람들은 그 대부분이 비대한 흑인들이나 삶에 지친 서민들의 얼굴이다. 그러나 달라이라마가 맨하탄에 한번 나타나면 센트랄 파크의 잔디밭을 메우는 엄숙한 수만의 군중은 75%가 대학원 졸업생들이라고 한다. 현재 미국 불교도의 60%가 박사며 의사며 변호사며 회사고위간부 등, 프로펫셔날(professional)들이 차지한다. 미국사회의 인텔리겐챠(intelligentia, 지식노동자)들은 더 이상 기독교로부터 새로운 문명의 젖줄을 발견하..
부록 11. 불가촉천민을 위해 헌신한 암베드까르 암베드까르(Bhimrao Ramji Ambedkar, 1891~1956)는 불가촉천민(the Untouchable)의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새로 탄생된 인도공화국의 초대법무장관을 지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인도공화국(Republic of India)의 헌법을 기안했다. 그러니까 인도가 영국식민지에서 벗어나 근대국가로 태동되는 과정에서 인도사회의 가장 고질적인 병폐인 카스트의 문제를 한 몸에 구현하고 투쟁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불가촉천민 부모의 14번째 자식으로 태어난 암베드까르는 학교에서 높은 카스트의 아이들에게 굴욕을 당하면서 성장한다. 그의 아버지는 인도군대의 장교였다. 암베드까르는 봄베이에서 대학을 나오고 뉴욕의 콜럼비아대학에서 경제학박사를 획득했..
진리 중시의 기독교와 깨달음 중시의 불교 “불교가 인간을 종교로부터 해방시켜준다라는 도올선생의 말씀은 제 가슴을 깊게 후려치는 명언입니다. 저는 모든 사람들이 종교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류가 모두 종교적 신앙을 가져야만 더 나은 미래가 보장되리라는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종교에 대한 도올선생의 부정적 언급이나 저의 긍정적 언급이나 모두 말장난일 뿐 그 근원에 있어서는 상통되는 어떠한 진리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저는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하신 예수의 신비가설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한 것은 그것이 근원적으로 ‘역사적 예수’에 관한 논의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렸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적 예수’를 탐색하려는 집요한 노력들이 좀 황당해졌을 것 같다는 생..
불교와 인간해방 “우리가 지금 종교간의 대화를 문제삼고 있는 것은, 종교가 근원적으로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종교라는 제도 속으로 인간을 구속시키는 데서 오는 갈등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이 전쟁이라는 인간의 참혹한 죄악상으로 발전하곤 하기 때문입니다. 달라이라마께서는 종교를 아편이라고 말하는 자들을 아주 혹독하게 비판하시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민족주의적 제국주의의 탐욕을 가장한 마오이스트들의 침략구실일 경우에 한해서 성하의 혐오감은 이해가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근원적으로 종교가 인류의 구원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류에게 종교가 있어서 좋은 것인가? 없어도 좋을 것인가? 저는 인류에게 종교가 없을 수 있다면 그 나름대로 파생되는 또 다른 문제..
부록 10. 조로아스터교에 대해 조로아스터교의 한 상징인 미트라(Mithra)는 기원전 272년 12월 25일 동정녀 아나히타(Anahita)에게 태어났다. 미트라의 일생은 예수의 일생과 거의 비슷한 것으로 예수의 설화보다 훨씬 이전에 성립하였다. 미트라신앙의 보급 때문에 초기 기독교가 쉽게 소아시아 지역에 퍼질 수 있었다. 조로아스터교는 이란의 사산왕조(the Sāsānian) 때 국교로서 위세를 떨치다가 무슬림에게 정복당하면서 핍박을 받고 인도로 망명, 뭄바이에 정착하였다(8~10세기). 인도에서 이들은 구자라트말로 ‘페르시안’을 뜻하는 ‘파르시스’(Parsis)로 불리었다. 배화교 사람들은 놀라웁게 정직하며, 교육에 힘쓰고, 또 사회복지를 위하여 엄청나게 베푸는 미덕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영국식민통..
기독교는 본래 아시아대륙의 종교 “그런데 지금 논의가 조금 빗나가 버렸습니다. 제가 제기한 문제, 종교적 진리의 다양성의 관용이 또 다시 종교간의 에반젤리즘의 충돌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하는 문제는 결코 성하께서 답변하신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 앞으로 종교간의 충돌이라고 하는 우리 인류사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서는 단순한 다양성의 관용 이상의 어떤 종교에 대한 본질적 이해가 요청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뉴잉글란드로 건너간 청교도들보다도 더 순결하고 엄격한 기독교신앙을 가지신 어머님 슬하에서 자라났고 한때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저는 대학에서 도가철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또 한때 절깐에서 승려생활까지 했고 불교경전을 깊게 공부했습니다...
에반젤리즘의 한계 “그것은 또다시 에반젤리즘(evangelism, 전도주의)의 본질에 관한 논의를 해야겠지요. 모든 종교현상에 있어서 에반젤리즘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현상입니다. 자기가 깨달은 바나 믿는 바가 자기실존에 거대한 기쁨으로 다가올 때, 그 기쁨을 타인과 나누고 싶어하는 충동은 거의 본능적이라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기가 깨달은 것이나 믿는 것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무리가 발생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채식을 실천해보니 너무도 좋다고 해서, 고기를 안 먹고 살 수 없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채식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나에게 좋은 것이 꼭 타인에게도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실천해보니 정말 좋다고 생각될 때에 그것을 남에게 권유해볼 수는 있습니다. 나는 ..
종교 선택의 자유 “내가 종교의 대화라는 말을 할 때에는 종교간의 상이성을 거부한다는 맥락이 전혀 개입되어 있지 않습니다. 나는 종교간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서 대화를 해야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종교는 서로간의 차이를 명료하게 인식하기 위해서 대화를 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교간의 대화가 개종이나 교리의 혼합을 유발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은 기독교인 나름대로, 불교도는 불교도 나름대로 자기의 종교적 목적을 충실히 달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티벹에는 ‘양의 몸에 야크의 머리를 올려놓지 말라’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중론의 완성자인 나가르쥬나도 ‘모든 것을 같게만 보려고 하면 모든 것이 같아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극단적으로 밀고 들어가면 삼라만상의 모든..
신앙은 이성이다 이런 얘기를 주욱 듣고 있다가, 갑자기 달라이라마는 나보고 칭호를 무엇으로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모국에서는 보통 ‘도올선생’이라는 말로 불리운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도올선생’이라는 호칭에 대한 나의 영역은 ‘마스터 스톤’(Master Stone)이었다. 그랬더니 왜 하필 ‘마스터 스톤’이냐고 했다. 그래서 나는 어려서부터 ‘돌대가리’라고 불리었기 때문에 그런 호칭이 붙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랬더니 그는 깔깔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돌대가리가 아니라 불ㆍ법ㆍ승 삼보의 보석대가리라고 해야겠군요. 여태까지 도올선생께서 기독교역사나 교리에 관한 최근의 학설을 친절하게 소개해주신 것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도올선생처럼 그렇게 다방면으로 디테일한 학문적..
부록 9. 서구인들의 세 가지 신의 관념 화이트헤드는 그의 유기체적 우주론의 구상을 밝힌 대저, 『과정과 실재』의 마지막 장에서 서구인들의 전통적인 신의 관념을 세 가지로 분류하여 요약하고 있다. 그 첫째가 황제의 이미지로서의 신(God in the image of an imperial ruler)이다. 서구세계가 기독교를 받아들였을 때는 마침 시저가 세계를 정복한 후였으며, 따라서 서구신학의 표준 텍스트는 시저의 법률가들에 의하여 편찬되었다. 그리고 서구교회는 전적으로 시저에게 속해있던 속성들을 신에게 부여했던 것이다. 이집트ㆍ페르시아ㆍ로마의 황제와 같은 이미지로 신을 만들어 내는 뿌리깊은 우상숭배의 전통이 이미 그 초창기로부터 확립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두 번째가 도덕적 에너지를 의인화한 이미지로..
예수신화를 사실로 믿는 사람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종교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정치적으로 매우 교활한 인물이었습니다. 사실 서로마의 운세는 이미 기울기 시작했고, 그가 기독교를 공인하려 했던 것은 기독교의 대세에 밀렸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기독교를 역이용하여 쓰러져가는 로마제국을 재건하려 했던 것이죠. 기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기울어져가는 로마제국의 새로운 정신적 일체감의 기초로 삼으려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에서 본다면 영지주의와 같은 신비주의ㆍ개인주의, 그리고 우리 동학처럼 신과 인간을 하나로 이해하는 신인(神人, godman)의 로고스론은 제국주의의 하이어라키를 정당화시키는 데는 매우 불편합니다. 즉 리터랄리스트의 권위주의적 주장이 로마제국의 정치적 음모를 위해 더 적합했던 것이죠. 하나의 신,..
그노스틱스와 리터랄리스트의 대립 나는 달라이라마의 날카로운 질문에 좀 충격을 받았다. 그에게 나의 언변은 매우 생소한 것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장황할 수도 있는 나의 이야기를 매우 진지하게 경청했을 뿐 아니라, 중간에 이해가 안되는 대목이 있으면 반드시 되묻고 이해를 하고서야 넘어갔다. 나의 이야기를 막는 법이 없었으며 나의 이야기가 소기하고자 하는 의미맥락이 완벽하게 드러날 때까지 나로 하여금 이야기를 계속하게 만들었다. 내가 대화의 초장부터 받은 달라이라마의 인상은, 그는 매우 이지적인 사람이었으며, 무한한 지적 호기심의 소유자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을 홀대하는 자세가 전무했다. 그는 자비와 지혜의 상징이었다. 나는 곧 편안하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현대사회에 있어서도 어떤 추상적 정신운동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