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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32. 성인도 또한 사람일 뿐 4b-32. 제나라의 재상인 저자(儲子)【『전국책(戰國策)』 연책(燕策)1 9에는 연나라의 재상 자지(子之)가 연왕 쾌(噲)의 지위를 찬탈하여 남면한지 3년만에 나라가 어지럽게 되자 장군 시피(市被)와 태자 평(平)이 모반하려 할 때 바로 제선왕(齊宣王)에게 연나라를 칠 것을 권유한 제나라의 재상의 이름이 저자(儲子)로서 기록되어 있다. 여기의 저자는 분명히 그 저자임이 분명하고 다음의 ‘왕’ 또한 제선왕이다. 그렇다면 이 대화는 맹자 59세 전후에 제나라에서 있었던 것이다】가 맹자에게 물어 말하였다: “제선왕께옵서 사람을 보내어 선생님의 일상생활을 규탐케 하였다고 들었는데【여기 ‘간(瞷)’은 엿보게 한다는 뜻인데 정탐한 것은 아닌 것 같고, 제선왕이 맹자를 흠모하여 그 일..
31. 다른 처지 속 같은 취지Ⅱ 4b-31. 공문의 적통을 이은 증자는 노나라 사람이었는데 자기의 원래 고향인 무성(武城)【산동성 비현(費縣) 서남 90리】에서 국부대접을 받으면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월나라의 군대가 침입하여 왔다【『좌전』 애공 27년에 보면 노나라의 애공이 월나라의 군사력을 이용하여 삼환(三桓)을 제거하려고 한 사건이 있었다. 그때의 침공이라는 설도 있다. 또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킨 이후로 월나라의 강역이 넓어져 노나라와 그 경계가 들쑥날쑥 직접 맞물리게 되면서 비현(費縣) 동남 일대의 지역은 월구(越寇)의 침입을 자주 받았다. 그 중의 한 사건일 것이다】. 혹자가 권유하여 말하였다: “월나라의 군대가 침입하여 오니, 피난하셔야겠습니다.” 4b-31. 曾子居武城, 有越寇. 或曰:..
30. 광장(匡章)은 불효자가 아니다 4b-30. 이것 역시 맹자께서 제나라에 머물고 있을 때 일어난 대화 이다. 그의 중후한 제자인 공도자(公都子)【2b-5, 3b-9에 기출, 공도(公都)가 복성. 제나라 사람인 듯하다】가 맹자께 여쭈었다: “광장(匡章)【제나라의 유명한 장수인데 강직한 인물이다. 제선왕의 아버지 제위왕 시절부터 활약한 인물. 맹자와 나이가 비슷했던 것 같다. 그리고 맹자와 막역한 친구지간이었던 것 같다. 광(匡)이 성, 명이 장(章)이다】은 나라안의 모든 사람이 그를 불효자라고 부릅니다【‘통국(通國)’은 ‘나라 전체를 통틀어서’라는 뜻인데 이때 ‘국(國)’은 보통 수도의 성 안을 가리킨다. 임치성 안에서 불효자로서 소문이 자자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그 불효한 광장과 그토..
29 다른 처지 속 같은 취지 4b-29. 요ㆍ순시절의 명신하로서 치수를 담당한 우(禹)와 농경을 담당한 후직(后稷)은 태평한 치세를 살았지만【여기 ‘평세(平世)’라는 단어선택은 아래의 안회의 난세(亂世)에 대비하여 좀 과장되게 표현된 것이다. 홍수가 범람하고 문명의 질서가 잡히지 않은 난세였으나, 그 재앙을 바로잡아가는 충신들이 활약한 시대였다】, 자신의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하여 일만 열심히 했기 때문에 아내와 자식이 기다리고 있는 자기 집 앞을 세 번이나 지나치게 되었지만 결코 대문을 열고 들어가질 않았다【이 이야기는 보통 우(禹)에 해당되는 것으로 거론되었다. 3a-4 참조】. 공자는 이들을 현(賢)하다고 평가하였다. 안자(顔子)【공자의 수제자 안회】는 난세 속에서 살면서 누추한 동네에 살았고 한 ..
28. 두 가지 근심 4b-28.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유덕한 군자가 범인과 다른 것은 항상 수행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마음속에 계속 담고 있다는 데 있 다. 군자는 인(仁)으로써 마음에 담고, 예(禮)로써 마음에 담는다. 인하다는 것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요, 예가 있다는 것은 사람을 공경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자는 사람으로부터 항상 사랑을 받고, 사람을 공경하는 자는 사람으로부터 항상 공경을 받는다. 4b-28. 孟子曰: “君子所以異於人者, 以其存心也. 君子以仁存心, 以禮存心. 仁者愛人, 有禮者敬人. 愛人者人恆愛之, 敬人者人恆敬之. 여기 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 사람이 이유 없이 나를 횡 역(橫逆)【강포(强暴)하고 불순리(不順理)함】으로써 대한다면, 군자는 그 사람을 탓하지 않..
27. 초상집에서 만난 왕환과 말하지 않다 4b-27. 맹자가 제나라에 있었을 때의 일이었다. 제나라의 대부 공행자(公行子)가 장자(長子)의 상을 당하였기에 제나라의 대신들이 모두 가서 조의를 표하였다. 이때 우사(右師)인 왕환(王驩)도 조문하러 갔다【왕환에 관해서는 이미 2b-6를 비롯하여 4a-24, 4a-25에서 상설하였다. 맹자가 아주 싫어하는 제선왕의 총신, 자(字)가 자오(子敖)이다. 그리고 ‘자지상(子之喪)’ 관하여, 공행자가 아들로서 행한 상, 즉 부모상이라는 설과, 연(燕)나라 재상 자지(子之)의 상이라는 설이 있으나 호사가들의 잡설일 뿐이다. 취하지 않는다】. 왕환이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종종 걸음으로 달려와서 왕환에게 말을 거는 자가 있었다. 왕환이 우사(右師)의 자리에 앉자마자 옆에서..
26. 자연적인 공부와 천착하는 공부 4b-26.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천하사람들이 모든 사물의 보편적 본성을 말하려고 하면 반드시 그 본성을 본성이게끔 하는 그 근원을 탐구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 근원이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여기 ‘이리위본(以利爲本)’의 ‘리(利)’는 ‘이익’의 뜻이 아니고 ‘순리(順利)’의 뜻이며, ‘자연지세(自然之勢)’이다. 주희의 설을 따른다】. 우리가 부자연스러운 지적 탐구를 혐오하게 되는 것은 그 지식이 항상 무엇을 무리하게 천착하여 꿰맞추려고 하기 때문이다. 4b-26. 孟子曰: “天下之言性也, 則故而已矣. 故者以利爲本. 所惡於智者, 爲其鑿也. 우리가 지식을 마치 우임금이 물을 소통시키는 것처럼 사용한다면 지식에 대한 혐오감은 있을 수 없게 된..
25. 미녀인 서시도 똥물을 뒤집어쓴다면 4b-25.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절세미녀인 서자(西子)【서시(西施)를 가리킨다. 서시는 범려가 오왕 부차(夫差)에게 바친 미녀로서 유명하지만, 일반적으로 서시는 특정인을 가리키기보다는 절세미녀의 전설적 상(像)이다】라도 머리에 똥걸레를 쓰고 다니면 사람들이 모두 코를 틀어막고 피해간다. 아무리 추악한 인간이라도 재계목욕(齋戒沐浴)하여 자신을 정결케 하면 하느님[上帝]께 제사를 지낼 수 있다.” 4b-25. 孟子曰: “西子蒙不潔, 則人皆掩鼻而過之. 雖有惡人, 齊戒沐浴, 則可以祀上帝.” 사실 여기 문장의 콘트라스트를 위하여 ‘악인(惡人)’을 ‘추악한 인간’이라고 번역했으나 실상 이것은 ‘악인’이라고 읽어서는 아니 되고 “오 인’이라고 읽어야 한다. 이것은 미인에..
24. 예(羿)와 유공 사(庾公斯) 이야기 4b-24. 옛날에 방몽(逄蒙)이라는 자가 활의 명인 예(羿)에게 활쏘는 법을 배웠다【예(羿)는 하나라 시절의 제후국인 유궁국(有窮國)의 군주였다. 그의 죽음에 관한 기사는 『좌전』 양공 4년조에 보인다. 그리고 방몽(逄蒙)은 예의 신하였다. 그의 이야기는 『순자(荀子)』 「왕패(王覇)」, 『여씨춘추(呂氏春秋)』 「구비(具備)」, 『사기(史記)』 「귀책열전(龜策列傳)」, 『회남자(淮南子)』 「원도훈(原道訓)」 등에 나온다. 그런데 그 이름의 표기는 다양하다】, 방몽은 예의 궁도를 완벽하게 습득한 후에, 천하에 자기보다 궁술이 뛰어난 인물은 오직 예(羿)뿐이라고 생각하여, 그만 예(羿)를 죽여버리고 말았다. 4b-24. 逄蒙學射於羿, 盡羿之道, 思天下, 惟羿爲愈己..
23. 소득과 나눔과 용기 4b-23.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취(取)해도 좋고 아니 취해도 좋을 때, 취하는 것은 나의 참된 청렴을 상(傷)한다. 주어도 좋고 아니 주어도 좋을 때 주는 것은 나의 참된 베풂을 상한다. 죽어도 좋고 아니 죽어도 좋을 때 죽는 것은 나의 참된 용기를 상한다” 4b-23. 孟子曰: “可以取, 可以無取, 取傷廉; 可以與, 可以無與, 與傷惠; 可以死, 可以無死, 死傷勇.”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맹자의 금언인데 구구한 설명이 필요없다.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나는 이 구절을 떠올린다. 주희는 ‘얼핏 보면 취할 만하고, 자세히 보면 취하지 말아야 할 경우에 취하면’이라고 해석했는데 참으로 매가리 없는 한심한 해석이다. 인용 목차 / 맹자 전문 / 본문 중용 강의 논어..
22. 나는 공자를 사숙(私淑)했다 4b-22.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의 아름다운 유풍(流風)도 그 여운이 다섯 세대(150년 정도)를 지나가면 단절된다. 그리고 소인의 평범한 유풍의 여운 또한 다섯 세대를 지나가면 단절된다. 나는 직접 공자의 제자가 된 적은 없다. 그러나 나는 그 유풍이 단절되기 전에 그 유풍을 보존하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배워 그것을 몸에 익혔다【여기 ‘사숙(私淑)’이라는 말이 나온다. ‘사(私)’는 ‘사적으로’라는 의미이고, ‘숙(淑)’은 ‘취하였다’, ‘학습하였다’라는 의미이다. 직접 만난 사람에게는 ‘사숙’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당대의 사람이라도 못 만나고 흠모하기만 하면서 배운 경우 ‘사숙’이라는 말을 쓴다】.” 4b-22. 孟子曰: “君子之澤五世而斬, 小人之澤五世而..
21. 춘추라는 노나라 역사서 4b-21.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왕도를 구현하는 위대한 왕들의 활동이 종식되면서 『시(詩)』도 같이 사라졌다【‘왕자지적(王者之迹)’의 ‘적(迹)’을 왕자의 순수(巡狩)로 보거나, 또 순수하면서 민요를 채집하기 위하여 울리는 목탁(木鐸)으로 보는 설도 있다. 즉 성왕들의 시(詩)를 채집하는 활동이 종식되면서 시가 사라졌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식(熄)’에 관해서는 주나라의 평왕이 낙읍(洛邑)으로 동천(東遷)하면서 왕도가 쇠퇴하였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시(詩)』가 사라진 연후에 비로소 『춘추(春秋)』가 일어났다【沃案: ‘작(作)’을 ‘지어졌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보통이나 나는 그런 해석을 취하지 않는다】. 진(晉)나라에는 이라는 『승(乘)』이라는 사서..
20. 주공은 우임금과 탕임금과 문무왕을 이었다 4b-20.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우(禹) 임금은 미주(美酒)를 망국의 근본이라고 하시면서 물리치셨고【『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 2」 17에 우임금이 그의 딸이 의적(儀狄)에게 명하여 빚게 한 술이 너무도 맛이 있었지만 그것을 물리치면서, ‘후세에 반드시 술로써 나라를 망치는 자가 있을 것이다[後世必有以酒亡其國者].’라고 예언했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선언(善言)을 흥국의 근본이라고 하시면서 좋아하셨다. 탕 임금은 중용의 도를 견지하셨으며 현인을 등용함에 있어서 정규(定規)에 구애됨이 없이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시었다. 문왕께서는 백성 보기를 마치 상처 입은 사람을 돌보듯이 하셨고, 정도(正道)를 쳐다보면서도 마치 그 도(道)에 이르지..
19. 인간이 짐승보다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 4b-19.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사람이 실제로 금수와 다르다고 하는 것은 지극히 근소한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보통사람들은 그 금수와 다른 차이의 특성을 무시하고 살아가는데 반해, 군자는 그 것, 그러니까 인의(仁義)의 도덕성 같은 것을 살리고 보존한다. 순은 진실로 모든 사물의 이치에 밝았다. 그래서 인륜(人倫)을 살필 줄 알았고, 인의 말미암아 행동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인의(仁義)는 인간 내면에서 샘솟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그것을 수단적 가치로서 활용한 적은 없었다” 4b-19. 孟子曰: “人之所以異於禽獸者幾希, 庶民去之, 君子存之. 舜明於庶物, 察於人倫, 由仁義行, 非行仁義也.” 여기 핵심적 주제는 ‘유인의행(由仁義行), 비행인의(非行仁義..
18. 영과후진(盈科後進) & 성문과정(聲聞過情) 4b-18. 맹자의 제자인 서자(徐子)【서벽(徐辟)을 가리킨다. 등나라에서 맹자의 문인으로 활약하였다. 3a-5에 기출】가 말하였다: “중니께서 자주 물을 찬양 하시어, ‘물이여! 물이여!’라고 감탄의 말씀을 발하셨는데, 도대체 물의 어떤 측면을 취하셨길래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논어(論語)』 9-16 참조】 4b-18. 徐子曰: “仲尼亟稱於水, 曰: ‘水哉, 水哉!’ 何取於水也?”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수원지로부터 콸콸 솟아 흐르는 물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줄기차게 흐르며, 웅덩이가 있으면 채우고 나서 또다시 흐르며, 드디어 넓은 바다로 터져 나아간다. 이러한 물의 미덕처럼 수원지 같은 뿌리가 있는 사람은 고갈되는 것을 모른다. 공자께서는 ..
17. 불상(不祥)한 말 4b-17.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인간들이 불길한 미래를 예언하기를 좋아하나, 실제로 불길한 미래를 예언하는 그런 인간의 말은 있을 수 없다. 실제로 불길한 말이라는 것은 현자(賢者)들이 사회적으로 등용되는 것을 막는 그러한 말이 그것에 해당될 뿐이다.” 4b-17. 孟子曰: “言無實不祥. 不祥之實, 蔽賢者當之.” 여태까지 접한 『맹자』의 텍스트 중에서 가장 해석이 난해한 단편이다. 아마도 궐문이 있는 듯하다. 주희도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그 첫째는 ‘천하의 말에 실제로 불상한 것이라고는 없는 것이니, 오직 현인을 은폐하는 말이야말로 불상(不祥)의 실상이다[天下之言無有實不祥者, 惟蔽賢爲不祥之實].’라는 것이다. 나의 해석은 이 첫째 풀이에 기초하였다. 그 둘째는 ‘말..
16. 의도가 없는 선으로 할 때 4b-16.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사람을 감복시키기 위한 동기를 가지고서 선을 행하는 사람은 진실로 사람을 감복시켜 본 적이 없다. 그러한 동기가 없이 스스로 선을 행하여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고 저절로 그들이 교화되도록 한 연후에나 비로소 천하사람들의 마음을 감복시킬 수 있다. 천하사람들이 가슴속으로부터 우러나와 감복되지 않고서 천하를 통일하는 왕자가 된다는 것은 여태까지 있어본 적이 없다.” 4b-16. 孟子曰: “以善服人者, 未有能服人者也; 以善養人, 然後能服天下. 天下不心服而王者, 未之有也.” 구체적인 목적성을 가지고 선을 행하는 것은 결코 사람에게 진실된 도덕적 감화를 줄 수가 없다. 결국 그것은 패도의 정치일 뿐이다. 합목적적 선행이 아닌 무전제의 절대적 선..
15. 넓게 배우려는 이유 4b-15.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널리 배우고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자신의 박학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박학의 지식을 융합하여 요령이 되는 핵심을 설파하기 위한 것이다.” 4b-15. 孟子曰: “博學而詳說之, 將以反說約也.” 비슷한 취지의 논의가 『논어(論語)』(6-25)에도 있다: ‘군자는 문(文)의 세계에 있어서는 가급적 널리 배워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반드시 예로써 집약시켜야 한다. 그리하면 도에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君子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弗畔矣夫].’(9-10, 12-15). 하여튼 ‘박(博)’과 ‘약(約)’은 학문의 방법론으로서 공문(孔門)에서 중시되어온 것이다. 박학지사와 대화를 하다보면 횡설수설하면서 자기가 과연 어떠한 주제를 이야기해야..
14. 군자가 자득(自得)하려는 이유 4b-14.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가 진리에 깊게 도달하기 위해 정확한 방법과 순서를 밟아나가는 것은, 그러한 과정을 통해 진리를 자득(自得)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자득한다는 것은 홀로 스스로 깨닫는다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진리에 거(居)하는 것이 확고한 안정성을 얻게 된다. 확고한 안정성을 얻게 되면 나의 내면에 쌓여져가는 것이 깊게 된다. 내면에 쌓여져가는 것이 깊게 되면 좌우의 비근한 일상체험으로부터도 진리의 근원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묘효(妙效)가 있기 때문에 군자는 진리의 자득을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것이다.” 4b-14. 孟子曰: “君子深造之以道, 欲其自得之也. 自得之, 則居之安; 居之安, 則資之深; 資之深, 則取之左右逢其原, 故君子欲其自得之也..
13. 큰일에 대한 맹자의 생각 4b-13.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사람의 자식으로서 부모님이 살아 계실 동안 잘 모시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평상적 도덕일 뿐 대사(大事)라고 말할 수는 없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장의(葬儀)를 정중하게 행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대사(大事)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4b-13. 孟子曰: “養生者不足以當大事, 惟送死可以當大事.” 이것은 요즈음의 사람들에게는 아이러니칼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살아계실 동안의 효도는 끊임없이 닥쳐오는 일이므로 보정(補正)이 가능하지만, 돌아가셨을 때의 상례는 단 한 번에 지나가고 마는 것이므로 부모와의 관계에 있어서 최후의 지성이라고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이 로기온은 묵자(墨子)의 박장(薄葬)을 의식한 논의라고 보여진다. 인용 목..
12. 대인은 반드시 유머가 있다 4b-12.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대인(大人)이란 애기와 같은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4b-12. 孟子曰: “大人者, 不失其赤子之心者也.” 대인은 언불필신(言不必信)하고 행불필과(行不必果)라고 말한 뒤끝에 바로 대인을 적자지심(赤子之心)을 잃지 않는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편집자의 고도의 안배기술을 규탐할 수 있다. 대인은 말이 신험하고 행동이 일관된 결과를 산출하기에 앞서 마음이 어린애 같이 순결한 인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적자지심(赤子之心)이 무엇보다도 앞선다는 것이다. 조기는 여기 ‘대인(大人)’을 ‘국군(國君)’이라고 규정하고, 국군은 적자와 같이 무지스러운 백성의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해석했는데(조 기가 하나의 설로서 제시한 것을 초순이 이어..
11. 대인의 말과 행동 4b-11.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언행일치는 매우 중요한 미덕이지만, 대인(大人)의 경우, 말하는 것마다 모두 입증되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며, 행동하는 것마다 모두 관철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대의(大義)에 근거하여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4b-11. 孟子曰: “大人者, 言不必信, 行不必果, 惟義所在.” 오해의 소지도 있는 언급이지만 맹자가 자기 삶의 자세를 솔직하게 얘기해주는 좋은 로기온자료이다. 규범의 소절에 구애를 받으면 사람은 대인이 되기 어렵다. 어느 정도는 융통성 있는 잣대로 사람을 바라볼 줄도 알아야 한다. 『논어(論語)』(13-20)에도 자공이 공자에게 선비됨의 자격을 묻는 자리에서 공자는 A급, B급, C급으로 ..
10. 과한 행동을 하지 않는 공자 4b-10.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공자는 무엇이든지 과하고 심한 것은 하지 않으시는 분이셨다【이심(已甚): 3b-7에 기출 ‘이(已)도 ‘심(甚)’과 같이 ‘태(太)’의 뜻이다】.” 4b-10. 孟子曰: “仲尼不爲已甚者.” 유교의 본질은 커먼센스의 영역을 고수한다는 데 있다. ‘커먼센스(common sense)’는 일견 오류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보면 커먼센스처럼 지고의 진리도 없다. 그것은 매우 지키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말로 ‘상식(常識)’이라는 것은 ‘항상스러운 의식’이라는 말인데, 그것은 모든 의식현상의 공통분모를 극대화한 것인데, 특히 모든 신화적 비상식을 배제하는 것이다. 서구철학의 최대의 문제점은 아직도 상식 내에 신화를 수용한다는 것이다...
9. 남을 씹어대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4b-9.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구태여 타인의 불선을 드러내 이야 기하는 것을 좋아하다가 후환이 미치게 되면 어찌하려는가?” 4b-9. 孟子曰: “言人之不善, 當如後患何?” 『논어(論語)』(17-24)에 보면 자공이 공자에게, “군자도 미워하는 것이 있습니까?”라고 물으니까,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암~ 있구말구. 남의 단점을 들추는 자를 미워한다[有惡: 惡稱人之惡者]…” 『중용(中庸)』 6장에도 공자는 순임금의 대지(大知)를 평가하여 ‘은오이양선(隱惡而揚善)’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의 추한 면은 덮어주고 좋은 면을 잘 드러내주었다는 뜻이다. 타인의 불선을 드러내어 고발하는 것이 필요할 때도 물론 있다. 후환을 두려워하여 움추릴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런..
8. 하지 않음이 있어야 함이 있다 4b-8.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반드시 해서는 아니 되겠다는 자각이 든 연후에나 해야만 한다는 자각이 든다.” 4b-8. 孟子曰: “人有不爲也, 而後可以有爲.” 극히 짧은 기온자료이지만 맹자의 사유의 심오함을 유감없이 나타내는 명언이다. 나는 『중용한글역주』 제13장의 해설에 있어서도 ‘시저기이불원(施諸己而不願), 역물시어인(亦勿施於人)’이라는 황금률 명제의 보편 도덕의 가능성이 그 명제의 부정형적 측면에 있다는 것을 충분히 설파한 바 있다. 모든 보편적 도덕은 부정형의 자각에서 긍정형으로 진화한다. ‘내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않는 것[己所不欲, 勿施於人]’이야말로 진실한 도덕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남에게 마구 베푸는 것은 제..
7. 재능인과 도덕인의 증여(贈與) 4b-7.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도덕의 품성이 마음 내면에 가득 차 있는 자가 그러한 품성을 아직 갖추지 못한 자를 훈도(薰陶)해야 하고【‘양(養)’을 주희가 ‘함육훈도(涵育薰陶). 사기자화야(俟其自化也)’라고 주했는데 매우 좋은 해석이다. ‘훈도(薰陶)’란 향을 피우면 오랜 세월을 거쳐 향이 방에 은은히 배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훈도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화(自化)’, 즉 자기 스스로 감화되어 변해가는 것을 기약하는 것이다】, 재능이 있는 자가 재능이 부족한 자를 훈도(薰陶)해야 한다. 그러므로 집안에 슬기로운 아버지나 형제가 있는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다. 저절로 도덕과 재능이 함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도덕의 품성이 마음 내면에 가득 차있는 훌륭한 인..
6. 형식화된 예나 의를 따르지 마라 4b-6.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일견 예(禮)인 것처럼 보이지만 예가 아닌 것, 일견 의(義)처럼 보이지만 의가 아닌 것, 이런 것들을 큰 인물들은 절대 하지 않는다.” 4b-6. 孟子曰: “非禮之禮, 非義之義, 大人弗爲.” 인간에게 있어서 예의라고 하는 것은 그 내면적 정신을 파악하여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가 어쩔 수 없이 예(禮)와 의(義)라는 규범을 제시한다고 해서 거기에 맞추어 행동하는 것은 본래의 정신을 망각한 ‘사이비(似而非)’ 행동이 되기 쉽다. 예의는 항상 사이비화 되는 경향이 강하다. 예(禮)라는 것은 삶에 질서감각을 주는 절도인데 디코럼(decorum, 점잖음)에 해당되는 것이다. 의(義)라는 것은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사회정의(soc..
5. 남을 바로잡기보다 자신을 바로 잡아라 4b-5.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한 나라의 최고통치자가 인(仁)하면 그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인하지 않을 수가 없고,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가 의로우면 그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의롭게 되지 않을 수가 없다.” 4b-5. 孟子曰: “君仁莫不仁, 君義莫不義.” 지금도 적용되는 만고의 명언이다. 쥐새끼 같은 놈이 대통령자리에 앉으면 온 나라에 쥐새끼 같은 놈들이 들끓게 마련이다. 비단 국가만 아니라 작은 회사라도 그 회사의 사장이 인하면 직원들이 결국 인해지는 감화를 받지 않을 수 없고, 의로우면 직원들이 결국 다롭게 행동하지 않을 수 없다. 4a-20을 같이 참고할 것. 『논어(論語)』(12-17)에도 공자가 당시 노나라의 실권자인 계강자에게 “수장인 그대가 바..
4. 신하가 나라를 떠날 수 있는 상황 4b-4.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임금이 아무 죄도 없는 사(士)를 죽이면, 곧 화가 대부에게까지 미친다고 보면 된다. 대부(大夫)는 그 나라를 떠나는 것이 현명하리라 임금이 아무 죄도 없는 민(民)을 죽인다면, 곧 화가 사(士)에게까지 미친다고 보면 된다. 사(士)는 그 나라를 떠나 딴 나라로 가는 것이 현명하다.” 4b-4. 孟子曰: “無罪而殺士, 則大夫可以去; 無罪而戮民, 則士可以徙.” 여기 논리는 오늘 우리가 말하는 근대적 민족국가(nation state) 개념을 가지고 국가를 생각하면 안 된다. 군신도 국가도 다 숙명적인 것이 아닌 유동적인 것이었다. 나라에 도가 없으면 정치를 외면하라는 공자의 메시지는 평범한 은둔사상이나 정의감의 박약성으로 이해하면 안..
3. 임금의 신하 대우법 4b-3. 맹자가 제선왕에게 고하여 말씀하시었다: “군주가 신하를 보 기를 자기 자신의 팔ㆍ다리와 같이 여긴다면, 신하 또한 군주를 보기를 자기의 생명 같이 여길 것입니다【복심(腹心: 뱃속과 심장이라는 뜻인데 옛 사람들은 인간의 생명의 중추를 뇌(腦)로 보지 않고 복심, 즉 오장육부로 보았다】. 군주가 신하를 보기를 자기가 기르는 개나 말 정도로 여긴다면, 신하 또 한 군주를 보기를 성내를 걸어다니는 보통사람의 하나로 여길 것입니다【국인(國人)은 성(城)내에 사는 사람이다】. 군주가 신하를 보기를 토개(土芥)【짓 밟는 흙과 쓰레기. 아주 천한 것】처럼 여긴다면, 신하 또한 군주를 보기를 죽여야 할 원수나 적수로 여길 것입니다.” 4b-3. 孟子告齊宣王曰: “君之視臣如手足; 則臣視..
2. 근본적 해결책을 찾아라 4b-2. 춘추시대 정나라의 명재상이었던 자산(子産)【정(鄭) 나라의 공족(公族)의 중심적 인물로서 개혁정치를 감행한 탁월한 집정(執政). 그가 죽었을 때가 공자의 나이 30세였는데 눈물을 흘리면서 “옛부터 내려오던 사랑을 실천한 사람이었다”라고 말했다. 자산에 대한 공자의 평가는 극히 높은데, 맹자의 평가는 낮다. 보통 ‘정자산(鄭子産)’이라고 부르지만 그의 이름은 공손교(公孫僑)이다. 공손이 그의 성이다. 명이 교(僑), 자(字)가 자산이다】이 정나라의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을 때였는데, 진수(溱水)【하남성 밀현(密縣) 동북의 성수욕(聖水峪)에서 발원하여 동남으로 흘러 유수와 만나 쌍기하(雙洎河)가 된다. 결국 동류하여 가로하(賈魯河) 들어간다】와 유수(洧水)【하남 등봉현..
이루장구(離婁章句) 하(下) 1. 순임금과 문왕은 부절(符節) 같다 4b-1.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순은 동쪽의 저풍(諸馮)【산동성 제성현(諸城縣)】에서 태어나 부하(負夏)【위나라 지역으로 추정】로 이주하였고 명조(鳴條)【산동성 정도현(定陶縣) 부근, 『서경』 「탕서」편의 서(序)에는 탕왕(湯王)과 걸왕(桀王)이 싸운 곳으로 나온다. 이상은 모두 확실한 지명이 아니다】에서 생애를 마치었으니 그는 동쪽 오랑캐 사람[東夷之人]이다. 문왕(文王)은 기주(岐周)【섬서성 기산현(岐山縣) 동북. 주나라의 구읍(舊邑)】에서 태어나 필영(畢郢)【『여씨춘추(呂氏春秋)』 「구비(具備)」편에는 필정(畢程)으로 되어있다. 필정은 섬서성 함양시(咸陽市) 동 21리에 있다. 필영을 문왕이 도읍한 풍(豐)지역으로 보는 설도 있..
28. 크나큰 효도 4a-28.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천하의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여 자기에게 귀복(歸復)하면 누구든지 크게 기뻐할 것이다. 그런데 천하의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여 자기에게 귀복하는 것을 보고도 그것을 초개(草芥)와 같이 여긴 것은 오직 순(舜)일 뿐이다. 4a-28. 孟子曰: “天下大悅而將歸己. 視天下悅而歸己, 猶草芥也. 惟舜爲然. 순은 자기가 천자가 된다 해도 부모님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사람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였고, 부모님에게 자기의 행동을 인정 받아 그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하면 사람의 자식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不得乎親, 不可以爲人; 不順乎親, 不可以爲子. 그래서 순은 부모님을 섬기는 도를 극진하게 다하였기 때문에 드디어 그 완고하고 사악한 아버지 고수(瞽..
27. 어버이를 섬기는 것과 형을 따르는 것 4a-27.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인(仁)의 실제 내용은 부모님을 잘 섬기는 것이니 효(孝)라 말할 수 있다. 의(義)의 실제 내용은 형을 잘 따르는 것이니 제(弟)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지(智)의 실제 내용은 이 효와 제의 양자를 명료하게 깨달아 그것으로부터 삶이 빗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4a-27. 孟子曰: “仁之實, 事親是也; 義之實, 從兄是也. 智之實, 知斯二者弗去是也; 예(禮)의 실제 내용은 이 효와 제의 양자를 절도 있게 하여 외양에 문식(文飾)이 생겨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악(樂)의 실제 내용은 이 효와 제의 양자를 즐기는 것이다. 즐길 줄을 아는 경지에 이르게 되면 부모님을 잘 섬기고 형을 잘 따르는 마음이 속으로부터 저절로 ..
26. 불효 중 가장 큰 것 4a-26.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사람의 자식으로서 불효의 행위에 는 세 가지가 있다【① 부모를 불의에 빠뜨림 ② 부모가 연로하신데 자기 앞가림 못하는 것 ③ 후손을 잇지 못하는 것】. 이 셋 중에서 자손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불효라고 말할 수 있다. 4a-26, 孟子曰: “不孝有三, 無後爲大. 순은 부모님께 말씀드리지도 않고 부인을 취하였는데, 그것은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반대할 것은 뻔했고 그렇게 되면 자손이 끊어지는 것을 우려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세의 지식인들은 순이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못한 것을 말씀드린 것이 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舜不告而娶, 爲無後也, 君子以爲猶告也.” ‘삼불효(三不孝)’가 무엇인지는 맹자는 말하지는 않았으나 조기 주에 명시되어 있다. ..
25. 옛 도를 배워서 먹고 마시는 데 사용하다 4a-25. 맹자가 악정자를 꾸짖어 말씀하시었다: “그대가 자오(子敖)에 게 찰싹 붙어 따라온 것은 단지 사치스럽게 먹고 마시면서 여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야【沃案: 그렇게 따라 붙어오면서 제나라에 벼슬자리를 구한 것이라는 설도 있으나, 여기 나는 맥락적 의미를 그렇게까지는 확대하지 않는다】. 그대는 옛 성인의 대도를 배우기를 지향하는 사람이야. 그런 자네가 자네의 배움을 그렇게 사치스럽고 먹고 마시는 데 활용하다니, 난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아!” 4a-25. 孟子謂樂正子曰: “子之從於子敖來, 徒餔啜也. 我不意子學古之道, 而以餔啜也.” 우리는 살아가면서 방편의 편리함 때문에 원칙을 망각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이러한 『맹자』의 기록은 특별한 훈시를 목적으..
24. 자네, 또한 나를 뵈러 왔는가 4a-24. 악정자(樂正子)【1b-16에 기출, 노나라 사람이며 악정(樂正)이 성(姓)이고 명은 극(克)이다. 맹자의 그에 대한 평가가 7b-25에 실려있다. 좋은 사람[善人]과 믿을 만한 사람[信人]의 중간 정도라고 말했는데 그리 높은 평가는 아니다. 악정자는 현실적 감각이 있으며 맹자의 제자 중에서는 가장 정치적 활약이 많은 사람이다. 순박하고 우직하기보다는 도회지형 인간이며, 스마트하고 문명의 이기를 즐기는 인간이다】가 제나라의 사신 자오(子敖)【앞서 언급된 왕환(王驩)의 자(字)가 자오이다. 2b-6에서 맹자는 왕환을 부사로 하여 등나라에 조문을 다녀왔는데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맹자는 왕환이라는 인간을 특별히 잘못된 관계도 아닌 것 같은데 아주 싫어한다...
23. 남 가르치길 좋아하는 사람 4a-23.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사람의 병중의 하나가 타인의 스승이 되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4a-23. 孟子曰: “人之患在好爲人師.” 여기 ‘호위인사(好爲人師)’라는 것을 남을 가르쳐주기를 좋아하는 ‘회인불권(誨人不倦)’(『논어(論語)』 7-2, 7-33)의 성실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스승이 될 자격도 없는 놈이 스승인 양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요, 설사 스승 될 자격이 있는 자라도 자기를 스승이라고 생각하는 자는 자기자신의 학생 됨을 거부하는 것이며, 그런 인간에게서는 자기발전의 가능성이 봉쇄되고 만다. 타인의 스승이라고 자처하는 순간, 그 인간은 자기도 취에 빠져서 주변으로부터 배울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호위인사(好爲人師)야말로 인지환(人之患)..
22. 사람이 말을 쉽게 하는 이유 4a-22.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어떤 일이든 가볍게 말을 내뱉는 놈들은, 심각하게 비판할 아무런 가치조차 없다.” 4a-22. 孟子曰: “人之易其言也, 無責耳矣.” 경박하게 말을 내뱉는 것에 대하여 책망할 건덕지조차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구절의 해석에 관하여 여러 가지 이설이 있다. 1) 신하가 군주를 심각하게 비판하지 않고 쉽게 쉽게 넘어가는 것은 책임 있는 지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2) 사람이 경박스럽게 말을 하는 것은 타인으로부터 심각한 비판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주희 설). 3) 사람이 가볍게 말을 하는 것은 책임감이 없기 때문이다. 4) 사람이 가볍게 말을 내뱉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할 가치조차 없다. 나는 제4의 설을 취하였다. 그러나 결국..
21. 생각지도 못한 기림, 갑작스런 헐뜯음 4a-21.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사람이 살다보면 별일도 하지 않았는데 예기치 않은 명예를 얻을 수도 있고, 나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 하여 온전한 사업을 수행하였는데도 가혹한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孟子曰: “有不虞之譽, 有求全之毁.” 매우 짧지만 맹자의 깊은 사유를 보여주는 언급이다. ‘복덕불일치(福德不一致)’는 모든 종교의 존립을 정당화하는 구실로서 활용되어왔다. 불교가 윤회를 말하는 것도, 칸트가 신과 영혼불멸을 요청하는 것도 비슷한 기반 위에 서있다. 그러나 맹자는 복덕불일치라는 현상을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간이 선행을 하여도 그에 대한 응당한 사회적 평가가 수반되지 않는 것은 별일을 안 했는데도 의외의 명예를 획득하는 것과 마찬..
20.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아줄 수 있는 신하 4a-20.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치자의 경우 그 인간이 소인배인 경우에는 아무리 그를 비판하여도 별 소용이 없다【여기 ‘적(適)’은 ‘적(謫)’의 뜻이다】. 또한 그의 정책에 관하여 아무리 간섭하고 비판의 화살을 퍼부어도 별 소용이없다. 별 소용이 없다는 뜻은 근본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뜻이며 비판의 행위가 지엽말절(枝葉末節)에 그치고 만다는 것이다. 신하라도 오로지 대인(大人)의 품격을 갖춘 사람만이 임금의 마음의 과오[君心之非]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다. 최고통치자인 임금이 인(仁)하게 되면 나라의 모든 사람이 인하지 않을 수 없으며, 임금이 의롭게 되면 나라의 모든 사람이 의롭지 않을 수 없으며, 임금이 바르게 되면 나라의 모든 사람이 바르게 되지..
19. 섬기는 것과 몸을 지키는 것 4a-19.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섬기는 데 있어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 것일까? 부모님을 섬기는 것처럼 소중한 것은 없을 것이다. 지키는 데 있어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 것일까? 내 몸이 불의에 빠지지 않도록 지키는 것처럼 소중한 것은 없을 것이다. 내 몸의 정의로움을 잃지 않고 부모님을 잘 섬긴다는 것은 내가 항상 듣는 말이지만, 내 몸의 절조를 잃고 부모님을 잘 섬긴다는 것은 내가 들어본 적이 없다. 무엇인들 섬기는 것이라면 소중하지 않은 것이 있으리오마는, 부모님을 섬기는 것이야말로 모든 섬김의 근본일 수밖에 없다. 무엇인들 지키는 것이라면 소중하지 않은 것이 있으리오마는, 내 몸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모든 지킴의 근본일 수밖에 없다. 4a-19. 孟子曰: “..
18. 지 자식은 못 가르친다 4a-18. 공손추가 여쭈었다: “예로부터 군자는 자기의 친자식을 직접 가르치지는 않는다는데, 그것은 뭔 이유에서 그러합니까?” 4a-18. 公孫丑曰: “君子之不敎子, 何也?”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이 그렇게는 흘러가지 않은 것이다. 가르친다고 하는 것은 반드시 바른 도리로써 해야 한다. 그것이 잘 행하여지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바른 도리로써 하는 데 자식이 그 가르침을 실천하지 못하면 반드시 분노가 일게 마련이다. 분노가 일게 되면 오히려 자식을 해치게 된다. 孟子曰: “勢不行也. 敎者必以正; 以正不行, 繼之以怒; 繼之以怒, 則反夷矣. 그렇게 되면 자식은 이렇게 이야기하게 된다: ‘우리 아버지는 나를 바른 도리로써 가르치시려고 하였지만 아버지는 ..
17. 권도(權道)와 정도(正道) 4a-17. 당대 직하의 수장격인 순우곤(淳于髡)【성이 순우(淳于), 명이 곤(髡), 본시 제나라 사람이다. 제나라 위왕(威王)ㆍ선왕(宣王), 그리고 양혜왕의 멘토로서 활약하였다. 맹자보다 한 세대 위다. 이 대화는 제나라에서 혹은 위나라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순우곤의 날카로운 골계화법은 여기서도 잘 드러난다】이 말하였다: “남자와 여자가 직접 손으로 물건을 주고받지 않는 것이 예라고 말해야겠지요?” 4a-17. 淳于髡曰: “男女授受不親, 禮與?”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렇습니다. 손으로 주고받지 않는 것이 예입니다.” 孟子曰: “禮也.” 묻는다: “그럼 형수가 물에 빠졌는데 직접 손으로 끌어 잡아당겨 올리는 것은 어떻습니까?” 曰: “嫂溺則援之以手乎?” 말씀하신다..
16. 사람을 순종하게 하는 법 4a-16.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진심으로 공손한 사람은 근본적으 로 타인을 모멸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검약한 사람은 근본적으로 타. 인으로부터 탈취하지 않는다. 사람을 모멸하고, 사람에게서 탈취하기를 좋아하는 군주의 심리 내면에는 근원적으로 주변의 사람들이 자기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는 불안이 깔려있다. 그런 불안에 사로잡힌 자가 어찌 진실로 공손하고 검약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보냐! 공손과 검약이 어찌 공손한 말씨나 웃는 얼굴로써만 달성될 수 있는 것이란 말이냐?” 4a-16. 孟子曰: “恭者不侮人, 儉者不奪人. 侮奪人之君, 惟恐不順焉, 惡得爲恭儉? 恭儉豈可以聲音笑貌爲哉?” 오늘날 우리나라 청와대에 앉아있는 지도자를 연상하면 이 맹자의 말씀은 절실하게 우리..
15. 눈동자에 드러나는 본심 4a-15.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한 사람의 마음의 내면을 살피는 데 그 사람의 눈동자를 살피는 것처럼 좋은 방법이 없다. 눈동자는 그 내면의 악을 숨기지 못한다. 그의 가슴속이 바르면, 그의 눈동자도 해맑다. 그런데 그의 가슴속이 바르지 못하면 그의 눈동자도 흐리고 어둡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반드시 그 눈동자를 쳐다보라! 그는 결코 자신의 내면을 숨기지 못한다.” 4a-15. 孟子曰: “存乎人者, 莫良於眸子, 眸子不能掩其惡. 胸中正, 則眸子瞭焉; 胸中不正, 則眸子眊焉. 聽其言也, 觀其眸子, 人焉廋哉?” 물론 눈동자의 청ㆍ탁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얼굴이 발하는 전체적인 느낌을 상징적으로 요약한 말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 문제가 되는 것은, 전국시..
14. 정벌이 아닌 인한 정치 4a-14.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염구(冉求)【공자의 제자로서 성이 염(冉)이고 명이 구(求), 자가 자유(子有)이다. 노나라 사람이며 공자보다 29세 어리다. 공자의 제자 중에서 아마도 가장 실무정치의 재능이 있었던 인물이었을 것이다.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올 수 있는 계기를 만든 일등공신이었으며 또 염구는 공자에 대한 충성심을 지켰다. 그러나 염구는 계씨의 가재가 되어 공자가 말하는 인정을 베풀지 않고 계씨의 이권을 불리는 데만 기여하여 공자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공자와 염구의 사제관계는 결코 친밀성을 상실한 것은 아니었다】가 당대 노나라의 최고실권자였던 계씨(季氏, 계강자였다)의 총재가 되어 계씨의 도덕적 성품과 정치행위를 광정(匡正)하기는커녕, 오히려 계..
13. 존경 받는 어르신들이 귀의하는 정치 4a-13.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백이(伯夷)는 주왕(紂王)의 폭정을 피해 북해(北海)【백이는 고죽국(孤竹國)의 세자이다. 전한 시에 요서군(遼西郡) 영지현(令支縣)에 고죽성(孤竹城)이 있었다. 옛날의 북해(北海)는 지금 창려현(昌黎縣) 근방을 가리킨다】의 해변에서 조용히 은거하였다. 왕정을 행하는 문왕(文王)이 일어나자, 자신도 분연히 일어서며 말했다: ‘내가 왜 서백(西伯)【주 문왕을 가리킨다. 주(紂)가 명하여 그를 서방 제후들의 장(長)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서백이라고 불렀다】에게 아니 갈 것인가! 나는 서백이 노인을 잘 대접하는 사람이라 들었다.’ 태공망(太公望) 또한 주왕의 폭정을 피해 동해(東海)【후한의 낭야국(琅琊國) 해곡현(海曲縣)을 가리킨다...
12. 성(誠)과 성지(誠之) 4a-12.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면 백성을 다스릴 기회를 얻기 어렵다.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는 것은 방법이 있으니, 먼저 친구들에게 신임을 받지 못하면 당연히 윗사람에게도 신임을 얻지 못한다. 친구들에게 신임을 받는 것도 방법이 있으니, 먼저 부모님을 섬겨 기쁘게 해드리지 못하면 당연히 친구들에게도 신임을 받지 못한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도 방법이 있으니, 자기 몸을 돌이켜보아 성실하지 못하면 당연히 부모님에게 기쁨을 선사해드리지 못한다. 내 몸을 성실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 있으니, 선을 명료하게 인식하지 못하면 자기 몸을 성실 하게 할 길이 없는 것이다. 4a-12. 孟子曰: “居下位而不獲於上, 民不可得而治也. ..
11. 도는 쉽고 일상적인 일 속에 있다 4a-11.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도는 가까운 데 있는데 사람들 이 그것을 먼 데서만 구하려고 힘쓰고,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너무 도 쉬운 것인데 그것을 어렵고 희한한 것에서 구하려고 힘쓴다. 사람들이여! 우리 모두 친(親)을 친으로서 친하게 하고, 장자(長者)를 장자로서 공경하자! 그리하면 천하가 태평하게 되리라!” 4a-11. 孟子曰: “道在爾而求諸遠, 事在易而求之難. 人人親其親, 長其長而天下平.” 아주 간결한 말씀이지만 잘 뜯어보면 우리가 흔히 ‘유교’라고 부르는 것의 근본정신이 다 함축되어 있는 소박한 원시경전의 느낌이 든다. 여기 ‘친기친(親其親)’ ‘장기장(長其長)’은 유교의 양대원리이다. 맹자에게 있어서 이것은 양ㆍ묵을 의식한 것이다. 묵자(墨子)..
10. 자포자기(自暴自棄) 4a-10.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자포자(自暴者)【스스로 자기에게 폭력을 가하는 자】와는 더불어 가치있는 의론을 할 수가 없다. 자기자(自棄者)【스스로 자기를 버리는 자】와는 더불어 가치있는 행동을 할 수가 없다【여기 ‘유 언(有言)’ ‘유위(有爲)’는 독특한 맹자의 어법이다. ‘유위’는 ‘유행(有行)’이라고도 쓰는데 ‘유소작위(有所作爲)’의 뜻이다】. 입을 뻥끗했다 하면 예와 의를 비난하는 자를 의를 일컬어 스스로 자기에게 폭력을 가하는 자(자포자)라고 한다. 나 자신은 인에 살고 의에 의거하여 행동하는 것이 불가능하외다 하고 나자빠지는 자를 일컬어 스스로 자기를 버리는 자(자기자)라고 한다. 4a-10. 孟子曰: “自暴者, 不可與有言也; 自棄者, 不可與有爲也. 言非禮義,..
9. 3년 된 쑥을 구하는 마음으로 정치하라 4a-9.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걸왕(桀王)과 주왕(紂王)이 천하를 잃은 것은 매우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그들은 인민의 지지를 잃었다. 인민의 지지를 잃은 것은 인민의 마음을 잃은 것이다. 천하를 얻는 데 방법이 있다. 인민의 지지를 얻으면 곧 천하를 얻는다. 인민의 지지를 얻는 데 방법이 있다. 인민의 마음을 얻으면 곧 인민의 지지를 얻는다. 인민의 마음을 얻는 데 방법이 있다. 인민이 진실로 소망하는 것을 주고 그들을 위하여 저축해둔다. 그리고 그들이 진실로 싫어하는 것은 주지 않는다. 그뿐이다. 그 이상의 복잡한 처방은 없다. 4a-9. 孟子曰: “桀ㆍ紂之失天下也, 失其民也; 失其民者, 失其心也. 得天下有道: 得其民, 斯得天下矣; 得其民有道: 得其心..
8. 화(禍)든 복(福)이든 자초(自招)한 것이다 4a-8.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불인자(不仁者)와 어찌 더불어 말을 할 수 있으리오? 그들은 위태로운 상황을 위태롭다 생각치 아니 하 고 오히려 안전하다 생각하며, 재앙을 재앙으로 생각치 아니 하고 오히려 돈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며, 멸망을 초래할 짓을 즐긴다. 만약 이토록 불인한 자들이 우리와 더불어 이야기를 걸어온다면 우리는 그들을 통하여 위험과 재앙을 간파할 수 있게 되므로, 나라를 망치고 집안을 패망케 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다. 4a-8. 孟子曰: “不仁者可與言哉? 安其危而利其菑, 樂其所以亡者. 不仁而可與言, 則何亡國敗家之有? 여기 한 아동이 부르는 노래가 있다: ‘창랑의 물이 맑구나! 내 갓끈을 씻으리로다. 창랑의 물이 탁하구나!..
7. 흐름에 따르는 사람, 흐름에 거스르는 사람 4a-7.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천하에 유도(有道)하면, 도덕이 표준이 되므로, 소덕자가 대덕자에게 부림을 당하고【沃案: 여기 ‘역대 덕(役大德)’의 ‘역(役)’은 능동태가 아니라 피동태이며 실제로 ‘역어대덕(役於大德)’의 뜻이다. ‘어(於)’가 생략된 것이다】, 소현자(小賢者)는 대현자(大賢者)에게 부림을 당한다. 천하에 무도(無道)하면, 적나라한 권력이 표준이 되므로, 소자(小者)는 대자(大者)에게 부림을 당하고, 약자는 강자에게 부림을 당한다. 이 두 경우가 모두 작은 자가 큰자에게 부림을 당하는 것이니, 이것은 자연스러운 하늘의 이치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순천자(順天者)는 존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한다.” 4a-7. 孟子曰: “天下有..
6. 임금이 가까운 사람부터 챙겨야 하는 이유 4a-6.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정치를 바르게 행한다는 것이 어려 운 것만은 아니다. 우선 한 나라의 권력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거실(巨室)들에게 득죄(得罪)를 하지 말아야 한다. 거실들이 군주를 경모(敬慕)하게 되면 한 나라의 전 국민이 같이 경모하게 되고, 한 나라의 전 국민이 같이 경모하게 되면 천하의 모든 국가의 사람들이 다 같이 경모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군주의 덕교(德敎)가 패연(沛然)하게 흘러넘쳐 사해에 넘실거리게 되는 것이다.” 4a-6. 孟子曰: “爲政不難, 不得罪於巨室. 巨室之所慕, 一國慕之; 一國之所慕, 天下慕之; 故沛然德敎溢乎四海.” 아주 짧은 기온자료이지만 앞서 상맹(上孟)에서 말한 모든 장황한 논설을 요약해주는 집약된..
5. 내 몸으로부터 시작된다 4a-5.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사람들이 모두 일상적으로 ‘천하국가(天下國家)’라는 말을 입에 담기를 좋아하는데, 천하의 근본은 국(國)에 있으며, 국의 근본은 가(家)에 있으며, 가의 근본은 나 개인의 신(身)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4a-5. 孟子曰: “人有恆言, 皆曰: ‘天下國家.’ 天下之本在國, 國之本在家, 家之本在身.” 이 맹자의 로기온자료를 모두 『대학』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와 관련지어 이야기하지만 반드시 직접적 연관을 지을 필요는 없다. 맹자의 말씀은 지극히 소박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가(家)’도 우리가 생각하는 가정(family)과 같은 개념이며, 대부(大夫)의 ‘가(家)’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맹자의 사유는 근본을 지향하는 것..
4. 탓하기 전에 돌아보라 4a-4.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내가 남을 그토록 사랑했는데, 사 랑해준 그가 나를 친하게 생각치 아니 하면 나의 인(仁)을 반성하라! 내가 사람을 다스렸는데 다스려지지 아니 한다면 나의 지(智)를 반성하라! 내가 남에게 예(禮)를 다했는데, 그가 나에게 응당한 보답을 하지 않으면 나의 경(敬)을 반성하라! 행하여 내가 기대한 것이 얻어지지 않 을 때는 항상 그 원인을 나에게 구하라. 나의 몸이 바르게 되면 천하 사람들이 모두 나에게로 돌아온다. 『시』【대아 「문왕」】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지 아니 하뇨!: ‘길이 길이 네 속의 천명에 배합될지니, 그것만 이 결국 너의 복을 구하는 길이니라.’” 4a-4. 孟子曰: “愛人不親反其仁, 治人不治反其智, 禮人不答反其敬. 行有不得者,..
3. 인하면 나라가 보전된다 4a-3.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하ㆍ은ㆍ주 삼대의 왕조가 천하를 얻은 것은 인정(仁政) 때문이었다. 하. 은ㆍ주 삼대의 왕조가 천하를 잃은 것은 불인(不仁) 때문이었다. 지금 우리 시대의 한 나라가 폐하느냐 흥하느냐, 존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것도 또한 똑같은 이치를 따를 뿐이다. 그러므로 천자가 불인하면 사해(四海)를 보전할 수가 없고, 제후(諸侯)가 불인 사직을 보전할 수가 없고, 하면 경대부(卿大夫)가 불인하면 종묘를 보전할 수가 없고, 사서인(士庶人)이 불인하면 자기 몸 하나를 보전할 수가 없다. 지금 사람들이 죽는 것은 죽도록 싫어하면서 불인한 것은 죽도록 좋아하니 참으로 괴이한 일이로다! 이것은 술 취하기를 싫어하는 놈이 술을 억지로 퍼먹고 있는 것이나 똑같은 짓..
2. 방명(芳名)과 오명(汚名) 사이 4a-2.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콤파스와 곡척은 사각형과 원형의 지극한 기준이며, 성인은 인륜의 지극한 기준이다. 훌륭한 임금이 되려면 임금의 도리를 다해야 하고, 훌륭한 신하가 되려면 신하의 도리를 다해야한다. 임금의 도리와 신하의 도리는 모두 요ㆍ순이 구현한 도리를 본받아야할 뿐이다. 왜냐하면 요는 임금의 도리의 지극한 기준이며 순은 신하의 도리의 지극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신하된 자로서 순이 요를 섬긴 도리로써 자기자신의 임금을 섬기지 않으면, 그것은 곧 그 임금을 불경하는 것이다. 또한 요가 백성을 다스린 도리로써 자기 자신의 백성을 다스리지 않으면, 그것은 곧 자기 백성을 해치는 것이다. 공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람의 길은 둘밖에 없다. 인(..
이루장구(離婁章句) 상(上) 1. 인정(仁政)을 행하라 4a-1.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이루(離婁)【『장자(莊子)』에는 ‘이주(離朱)’라고 표기된다. 황제(皇帝) 시대의 사람으로 시력이 강하기로 유명하며 백보지의(百步之外)에서 추호지말(秋豪之末)을 변별해낼 수 있다고 한다. 황제가 현주(玄珠)를 잃어버렸을 때 그로 하여금 수색해내게 하였다】의 시력이 있고, 공수자(公輸子)【이름이 반(班), 혹은 반(般). 노(魯)나라 사람, 그래서 노반(魯班)이라고도 불린다. 노나라 정공(定公), 혹은 애공(哀公) 때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한다. 공자보다는 나이가 어리고 묵자(墨子)보다는 많다. 고대중국의 유명한 교장(巧匠)이었다. 초나라 혜왕(惠王)을 위하여 운제(雲梯)를 만들어 이를 활용하여 송국(宋國)을 치려고 ..
10. 오릉의 증자 3b-10. 제나라의 장수였으며 친구로서 맹자에게 배움을 청하곤 했 던 광장(匡章)【제위왕의 장수로서 진(秦)나라 대군을 대패시킨 적도 있고 제선왕(齊宣王) 때도 오도(五都)의 병을 이끌고 연(燕)나라를 쳤다. 그의 행적은 『전국책(戰國策)』 「제책」과 「연책」, 그리고 『여씨춘추(呂氏春秋)』 「불굴(不屈)」 「애류(愛類)」편에 보인다. 그 나이가 맹자와 비슷하며 친구사이였을 것이다. 맹자의 제자일 수는 없다】이 말했다: “우리 제나라의 현인 진중자(陳仲子)【『순자(荀子)』 「불구」, 『한비자(韓非子)』 「외저설우(外儲設右)」에는 ‘전중(田仲)’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순자(荀子)』 「비십이자(非十二子)」편에는 십이자 중의 한 사람으로 나오는데 ‘진중(陳仲)’으로 되어있다. ‘오릉증..
9. 일치일란(一亂一治) 3b-9. 맹자가 제나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을 때였다. 맹자의 제자인 공도자(公都子)【맹자의 제자로서 매우 중후한 고제(高弟) 중의 한 사람이다. 공도(公都)가 복성인데 이름은 모른다. ‘공도자’라는 이름은 「공손추」 하5, 「등문공」 하5, 「이루」 하30, 「고자」 상6ㆍ15, 「진심」 상43에 1번씩, 「고자」 상5에 3번 모두 9번 나오고 있다. ‘자(子)’가 붙은 것을 보면 그 또한 문도를 거느리고 있었던 것 같다. 공도자 관련 파편은 그의 문인들에 의하여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가 맹자께 아뢰었다: “바깥 사람들이(당시 제나라에서 활동하던 지식인들) 모두 선생님께서 너무 지나치게 논쟁을 좋아하신다고 수군거립니다. 감히 묻겠습니다만 왜들 그렇게 생각할까요?” 公都子曰..
8. 지금 말고 나중에 그만두겠다 3b-8. 송나라의 정책을 담당하고 있었던 송나라의 대부 대영지(戴盈之)【3b-6의 대불승과 동일인일 가능성이 크다. 송나라의 수상격의 인물일 수도 있다】가 맹자가 제시한 왕도의 정책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말씀하시는 정전법의 10분의 1 조세제도의 실행과 관소의 관세, 그리고 시장의 물품세의 철폐【1a-7, 2a-5, 3a-3 등에서 언급】는 금년에는 아직 실행하기 어렵습니다. 올해는 우선 약간만 경감해주고, 내년의 상황을 기다 려서 전면적으로 실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3b-8. 戴盈之曰: “什一, 去關市之征, 今茲未能. 請輕之, 以待來年, 然後已, 何如?”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지금 여기 이웃집 닭들을 매일 한 마리씩 도둑질하는 습벽이 있는 사람이..
7. 맹자가 제후를 찾아보지 않는 이유 3b-7. 맹자의 제자 공손추가 물었다: “선생님께서 주동하여 자발적 으로 제후들을 찾아가 만나시지 아니 함에는 어떤 뜻이 숨어있나이 까?” 3b-7. 公孫丑問曰: “不見諸侯何義?”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옛날부터 제후의 신하가 아닌 이상, 제후 를 자발적으로 만나지 않는 것은 보통 있는 일이었다. 단간목(段干木)【성이 단(段)이고 이름이 간목(干木)이다. 단간(段干)이라는 복성을 가진 자도 있으나 그것은 다른 사람이다. 『사기(史記)』 「위세가(魏世家)」에 여기저기 나온다. 복자하(卜子夏)와 전자방(田子方)을 스승으로 모시었다. 이극(李克)ㆍ적황(翟璜)ㆍ오기(吳起)와 함께 위나라에 머물렀으나 간목은 끝내 벼슬을 하지 않았다. 위문후가 존숭한 현자였다】의 경우, ..
6. 좋은 사람과 함께 해야 하는 이유 3b-6. 맹자께서 송나라에 체재하실 동안의 문답이었다. 맹자께서 송나라의 충신인 대불승(戴不勝)【송나라 조정의 사람인데 누구인지는 확정지을 수 없다. 다음 제8장에 나오는 대영지(戴盈之)일 수도 있다. 『순자(荀子)』 「해폐(解蔽)」편의 양량(楊倞)주에는 대환(戴驩)이 송의 태재(太宰)였다고 한다. 『한비자(韓非子)』 「내저설(內儲說)」 상 13에도 나온다. 이 사람일 수도 있다】에게 일러 말씀하시었다: “그대는 송나라의 왕이 선한 길을 걸어가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그대의 왕이 선행을 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을 가르쳐 주겠소. 여기 초나라의 대부가 있 다고 합시다. 그는 그의 아들이 제나라 말을 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소【당시 초나라 말은 촌..
5. 작은 나라일수록 왕도정치를 해야 한다 3b-5. 맹자의 고제(高弟) 만장(萬章)이 물어 아뢰었다: “송(宋)나라는 소국(小國)입니다. 지금 바야흐로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왕정(王政)을 실천하고 싶어하는 의욕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런데 옆의 제나라와 초나라와 같은 대국이 그 꼴을 보고 싶어하지 않아 정벌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사기(史記)』 「송세가(宋世家)」에 의하면 언(偃)이 군주인 형 척성(剔成)을 방축하고(BC 331), 자립하여 송의 군주(BC 330)가 되었다. 십년 후에는(BC 320) 칭왕(稱王)하고 제ㆍ초ㆍ위를 깨뜨리고 한때 세를 과시한 적이 있다. 그런데 사마천은 그를 걸과 같은 포악한 임금으로 그리고 있고, 그의 폭정 때문에 제ㆍ위ㆍ초가 연합하여 송나라를 ..
4. 선비가 무위도식하며 얻어먹어도 되는가? 3b-4. 맹자의 제자 팽갱(彭更)【팽갱은 관리였던 것 같다】이 날카로운 질문 을 던졌다. “선생님께서는 왕도를 강설하기 위하여 주유하실 때, 제후가 원하는 것은 결국 선생님 한 분뿐일 텐데, 선생님은 꼭 뒤에 수레를 수십승(數十乘), 그리고 따라 걸어가는 자 수백인(數百乘)이 수반 들게 하시고, 이 제후에서 저 제후에로 향응을 받으시며 다니시는 모습이 너무 분에 지나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시는지요?” 更問曰: “後車數十乘, 從者數百人, 以傳食於諸侯, 不以泰乎?”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물론 그 도(道)가 아니라면 한 소쿠리의 밥도 남에게서 얻어먹어서는 아니 된다. 그러나 정도를 행한다면 순임금이 천하를 요임금에게 받은 것도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다. 그대는 ..
3. 3개월 동안 벼슬을 못하면 서로 조문했다 3b-3. 위(魏)나라 사람인 주소(周霄)가 맹자에게 물었다: “옛 군자들도 벼슬을 하였습니까?” 3b-3. 周霄問曰: “古之君子仕乎?”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암 벼슬했구 말구 전해오는 기록에 의하면 이런 말이 있지: ‘공자는 삼 개월 동안이라도 자기를 써주는 군주 가 없으면 마음이 초조해져서 안정되지 않는 모습이었다네. 한 나라에서 사직하고 저 나라로 떠날 때에도 반드시 군주를 뵈올 때 필요한 상견예물을 수레에 싣고서야 떠났다네.’ 노나라의 현인 공명의 (公明儀)【「등문공」 상1에 나옴】도 이렇게 말했지: ‘옛 사람도 삼 개월 동안 자기를 써주는 군주를 만나지 못하고 있으면, 주변사람들이 반드시 그를 찾아가 위로해주었다네. 그러니 벼슬하는 일은 중요한 ..
2. 대장부(大丈夫) 3b-2. 당시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던 종횡가(縱橫家) 중에 경춘(景春)【『한서』 「예문지」 병형세십일가(兵形勢十一家) 중에 ‘『경자(景子)』 713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경자는 맹자의 경춘과 동일인물로서 학계에서 비정하고 있다】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등 나라에 왔을 때, 맹자를 뵙고 말하였다: “공손연(公孫衍)과 장의(張儀)【장의(張儀)는 연횡의 대가, 소진(蘇秦)은 합종의 대가. 이 두 사람은 다같이 귀곡선생(鬼谷先生)의 동문으로서 종횡가의 쌍벽을 이루는 거두라는 것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경춘은 왜 이 두 사람을 이야기하지 않고 공손연과 장의를 이야기했을까? 실제로 소진은 장의의 적수가 아니었다. 장의의 진정한 라이벌은 공손연이었던 것이다. 공손연은 위나라 음진(陰晋..
등문공장구(勝文公章句) 하(下) 1. 자기를 굽신거리며 남을 바른 길로 이끌 수 있는 이는 없다 3b-1. 맹자의 제자 진대(陳代)가 맹자가 등나라에만 쑤셔박혀 있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져서 선생님의 심중을 떠보면서 말을 건넸다: “선생님께서 천하의 제후들로부터 초빙을 받아도 응하지 않고 그들을 만나지 않는 것은 소절에 구애되는 속좁은 행동이라고 사료되옵니다. 이제 그들을 활달하게 한번 만나보시기만 한다면, 크게는 왕업을 달성하실 수 있을 것이요, 작게는 패업을 달성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옛 기록에도 이런 말이 있지요: ‘단지 한 척을 굽혀서 여덟 척을 펴게 만들 수 있는 상황도 있다[枉尺而直尋].’ 선생님께서도 이렇게 한번 웅지를 펼치실 만합니다.” 3b-1. 陳代曰: “不見諸侯, 宜若小然; 今一見之, ..
5. 박장(薄葬)과 후장(厚葬), 그리고 매장(埋葬) 3a-5. 묵자(墨子)【묵가(墨家)의 창시자인 묵적(墨翟)의 사상을 신봉하는 사람이라는 뜻. 묵적의 주장은 겸애(兼愛)와 절용(節用)으로 압축된다. 「등문공」 하9 참고】의 한 사람으로서 등나라에서 활약하던 이지(夷之)【성이 이(夷)고, 명이 지(之)이다】라는 사람이, 맹자의 제자인 통하여 맹자의 면회를 요청하여 왔다. 이에 맹자는, ‘나 또한 만나기를 원하는 바이나, 지금 내 몸이 불편하니, 병이 쾌차하게 되면, 그때는 내가 직접 이지(夷之)에게로 가서 만나겠다. 이지는 지금 오지 마시오!’라고 말하였다. 3a-5. 墨者夷之, 因徐辟而求見孟子. 孟子曰: “吾固願見, 今吾尙病, 病愈, 我且往見, 夷子不來!” 그랬더니 얼마 안 있다가 이지(夷之)가 또다..
4. 다스리는 이와 다스려지는 이의 차이 3a-4. 젊고 패기 있고 공손한 등문공은 맹자의 정전법 등 인정(仁政)의 구상을 등나라 운영에 실행하여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 단기간 내에 나라가 안정되고 인민의 삶이 풍요로워졌으며 도덕적 모범이 되었다. 그래서 타국에서 등나라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농사의 신인 신농(神農)의 가르침을 존숭하는 허행(許行)이라는 사상가가 있었다【복희(伏羲)ㆍ신농(神農)ㆍ수인(燧人)을 삼황(三皇)이라 한다. 전국시대의 사상가들은 맹자가 요ㆍ순을 업듯이, 고대의 설화상의 인물을 업었다. 허행은 맹자보다 더 높게 올라가 신농을 업은 것이다. 전국시대 전란이 계속되자 사람들이 농경을 게을리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농가는 이런 풍조를 경계하면서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여씨춘..
3. 이상적인 토지제도 정전법과 이상적인 교육제도 3a-3. 등나라의 문공은 정식으로 즉위한 후에 예를 두텁게 하여 맹자를 초빙하였기에 맹자는 등나라로 갔다. 등문공이 나라를 다스리는 법에 관하여 물었다.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백성의 생업에 관한 일은【당대에는 농사(農事) 일 수밖에 없었다】 느긋하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시급한 개혁이 필요합니다. 시(詩)【『시경』 빈풍(豳風) 「칠월」】에 농사일이 얼마나 긴박하게 돌아가는지를 말해주는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낮이면 들에 나가 띠풀을 베어오고, 밤이면 집에서 새끼를 꼬아, 빨리 지붕을 해 이어야, 내년에 비로소 다시 백곡을 파종할 수 있도다.’ 3a-3. 滕文公問爲國. 孟子曰: “民事不可緩也. 『詩』云: ‘晝爾于茅, 宵爾索綯; 亟其乘屋,..
2. 세자 시절의 등문공이 장례를 묻다 3a-2. 등나라 세자의 아버지인 등정공(滕定公)께서 승하하시었다. 세자가 자기의 사부인 연우(然友)에게 일러 말하였다: “일전에 맹자께서 나와 더불어 송나라에서 말씀하시면서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맹자의 말씀이 지금까지도 내 마음에 새겨져 종내 잊을 수가 없군요. 그런데 지금 불행하게도 부왕의 상을 당하였으니, 내 생각으로는 그대가 이웃 추나라에 가서 맹자에게 장례에 관한 것을 여러모로 상담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대상(大喪)을 치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3a-2. 滕定公薨. 世子謂然友曰: “昔者孟子嘗與我言於宋, 於心終不忘. 今也不幸至於大故, 吾欲使子問於孟子, 然後行事.” 연우(然友)는 멀지 않은 추나라로 가서 맹자에게 여쭈었다. 然友之鄒問於..
등문공장구(滕文公章句) 상(上) 1. 성선(性善)을 말하다 3a-1. 등문공이 세자 시절에 아주 젊고 영명한 사람이었는데 초(楚) 나라에 사신으로 갈 일이 있었다. 가는 길에 그는 송(宋)나라를 들렀다. 그때 마침 맹자는 제나라를 떠나 송나라에 머물고 있었다【맹자의 행로에 관해, 제나라를 떠나 → 송 → 설 → 추로 갔다는 설도 있고, 제나라를 떠나 일단 고향 추로 갔다가, 다시 추에서 → 송 → 설 → 다시 추로 돌아왔다가, 다시 등나라로 초빙되어 갔다고 보기도 한다】. 그래서 등문공은 세자 시절에 송나라에서 맹자를 뵈올 수 있었다. 등세자는 맹자가 현인이라는 소문을 듣고 일부러 우회하여 송에 들른 것이다. 따라서 맹자는 그를 만났을 때 그의 지론인 성선론을 강의했다. 맹자는 말끝마다 요ㆍ순을 반드시 ..
14. 떠나려는 자 녹봉을 받지 마라 2b-14. 맹자께서 제나라를 떠나 휴(休) 땅【지금 등현(滕縣) 북쪽 15리, 맹자 집에서 약 100리 지역】에 머무르실 때였다. 제자 공손추가 물었다: “벼슬을 하고 있으면서도 봉록을 받지 않는 것이 고례(古禮)에 속하는 것입니까?” 2b-14. 孟子去齊, 居休. 公孫丑問曰: “仕而不受祿, 古之道乎?”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렇지 않다. 나는 숭(崇, 미상)에서 왕을 만난 적이 있다. 물러난 후에 나는 제나라를 떠날 의지를 굳혔다. 제나 라를 떠나기로 결심한 마당에 그 결심을 변치 않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봉록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제나라는 전쟁에 휘말려 다사다난했기 때문에, 정식으로 사직원을 낼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13. 지금 세상에 나는 꼭 필요한 인물이다 2b-13. 맹자는 제나라를 떠났다. 행사를 주로 담당하는 그의 제자 충우(充處)【2b-7에 기출】가 가는 노상에서 여쭈었다: “선생님의 모습이 약간 우울한 기색을 띠고 있는 듯이 보이는군요. 언젠가 선생님께서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군자는 하늘을 원망치 않으며 사람을 허물치 않는다’【공자ㆍ자사의 말, 『논어(論語)』14-37, 『중용(中庸)』 14장】. 그런데 지금 어이하여 우울한 모습을 하고 계시나이까?” 2b-13. 孟子去齊. 充虞路問曰: “夫子若有不豫色然. 前日虞聞諸夫子曰: ‘君子不怨天, 不尤人.’”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하늘을 원망치 않고 사람을 허물치 않는 초일한 때도 한 때요,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허물하는 우국의 때 ..
12. 제나라를 3일 동안 지체하고서 떠나다 2b-12. 맹자는 제나라를 떠나갔다. 맹자를 평소에 마음속으로 흠 모하고 있었던 제나라의 현자 윤사(尹士)【상세한 정보 없음】가, 맹자가 주(晝) 땅에서 미적거리다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실망하여 말하였다: “맹자가 제선왕이 탕임금이나 무왕(武王)과도 같은 혁명의 주체세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애초에 몰랐다면 그것은 맹자가 바보스러운 것이다. 그러한 사정을 알고도 갔다면 그것은 봉록을 얻어먹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부귀를 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제나 라에 와서 선왕을 만나고, 의견이 맞지 않는다고 홀연히 떠나는 놈이 왜 사흘이나 주 땅에 머물러 있다가 떠나는가? 도대체 왜 거기서 미적거린 거냐? 나는 맹자의 그런 태도는 정말..
11. 목공이 자사를 모시듯 2b-11. 맹자는 드디어 제나라를 떠났다. 그리고 수도 임치에서 멀지 않은 주(晝) 땅에서 머물렀다【주는 임치의 서남에 있다. 혹자는 주가 획(畫)의 오자(誤字)라고 말하지만 주가 맞다. 획은 서북 30리에 있어 여정의 방향과 안 맞는다. 혹은 연 나라로 가는 길목이다】. 그런데 제선왕을 위하여 맹자가 떠나는 것을 만류하려는 사람이 있었다【여기 ‘위왕(爲王)’이라는 뜻의 정확한 내용을 상술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이 사람이 제선왕이 직접 파송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확연하게 판단할 수 없다. 염약거(閻若璩)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로 만나는데 통성명(通姓名)하는 과정도 생략되어 있는가 하고 반문한다. 『맹자』라는 문헌을 7편으로 줄이는 과정에서 생략된 부분이 많았을 것이라고..
10. 농단(龍斷) 2b-10. 맹자는 드디어 크게 결심했다. 그래서 경(卿)이라는 지위를 반납하고 추나라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였다(이미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안 계셨다). 그 소식을 들은 제선왕은 슬픈 얼굴을 하고 굳이 몸소 맹자 있는 곳으로 찾아와 맹자를 만나 말하였다: “저는 젊은 시절부터【‘전일(前日)’을 당연히 맹자가 제나라에 오기 전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2b-2의 ‘치(齒)’의 문제에서 드러나듯이 제선왕은 맹자보다 어리다. 여기서 전일이 맹자가 양나라에 있을 때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더 젊은 시절에 이미 맹자는 추로지역과 제나라에서 신화적 족적을 많이 남겼을 수도 있다】 선생을 뵈옵는 것이 꿈이었습니다만, 그 꿈이 이루어질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7년이라는 세월 동안 같은..
9. 허물에 관한 군자들의 방식 차이 2b-9. 제나라는 연나라를 병합하려고 무리하게 2년을 끌었다. 그러 나 연나라의 인민들은 태자 평(平)을 왕으로 옹립하고 제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그러자 제선왕은 말했다: “내가 맹자 말을 듣지 않아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맹자를 볼 면목이 없구나!” 2b-9, 燕人畔. 王曰: “吾甚慚於孟子.” 제나라의 대부 진가(陳賈)가 왕을 위로하면서 말하였다: “임금님께서는 걱정하실 것까지 없습니다. 임금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주공(周公)에 비교하여 과연 누가 더 인하고 지혜롭다고 생각하십니까?” 陳賈曰: “王無患焉. 王自以爲與周公, 孰仁且智?” 왕이 말하였다: “데끼! 그게 뭔 말인고! 주공 같은 위대한 인물을 나에게 비교하다니!” 王曰: “惡! 是何言也?” 진가가 말하였다: ..
8. 연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다 2b-8. 제나라의 대신인 심동(沈同)이, 대신의 자격으로서가 아니라 사적 개인의 자격으로서, 넌지시 맹자에게 물었다: ‘연나라를 정벌해도 되겠습니까?’ 2b-8. 沈同以其私問曰: “燕可伐與?” 그러자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괜찮겠지요. 연왕 자쾌(子噲)도 천자의 명에 의거하지도 않고 주어서는 아니 될 사람(자지子之)에게 연나라를 양도해서는 아니 될 것이고, 대신 자지(子之) 또한 나라를 천자의 명도 없이 자쾌(子噲)로부터 직접 받아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연왕 자쾌(子噲)는 멍청하고 그 대신 자지(子噲)는 도둑놈 심보이올시다. 예를 들 면, 여기 한 사람이 있다고 해봅시다. 당신이 그 사람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해서, 제선왕에게 말도 하지 않고, 당신 자신의 녹작(祿爵)..
7. 장례에서만큼은 과해도 된다 2b-7. 맹자는 제나라에서 노나라로 가서 어머니의 장례를 거기서 치렀다. 장례를 다 마치고 제나라의 수도인 임치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제나라의 남쪽에 있는 영(嬴)【래무현(萊蕪縣) 서북 40리의 북쪽에 성이 남아있다】 땅에 머물렀다. 이때 맹자의 제자로서 장례를 총괄지휘한 충우(充虞)가 아뢰었다: “일전에는 저의 불초함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잘 봐주셔서 저로 하여금 관곽(棺槨)을 짜는 일을 감독하도록 하여 주셨습니 다. 영광이로소이다. 그러나 그때는 하도 한가한 틈이 없어, 궁금한 것을 다 여쭈어보지 못했습니다. 이제와서 좀 여쭙겠습니다. 관곽에 쓴 목재가 지나치게 화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 2b-7. 孟子自齊葬於魯, 反於齊, 止於嬴. 充虞請曰: “前日不知虞之不肖..
6. 싫은 사람과는 말도 섞지 않던 맹자 2b-6. 맹자가 제나라에 경(卿)이라는 높은 지위에 올랐다. 그래서 국 사의 자격으로 등(滕) 나라의 국상(國喪)에 조문을 떠났다. 제선왕은 자기가 총애하는 개읍(蓋邑)【산동성 기수현(沂水縣) 서북 80리】의 대부인 왕환(王驩)으로 하여금 맹자의 부사로서 맹자를 보좌하게 하였다. 여행 내내 왕환은 정사(正使)인 맹자에게 아침저녁으로 문안인사를 드렸지만. 제나라와 등나라를 왕복하는 기나긴 여로에서 맹자는 왕환과 더불어 단 한 번도 행사에 관하여 상담하거나 친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2b-6. 孟子爲卿於齊, 出弔於滕, 王使蓋大夫王驩爲輔行. 王驩朝暮見, 反齊滕之路, 未嘗與之言行事也. 수행의 일원으로서 같이 간 공손추는 이러한 맹자의 태도가 석연치 않아 여쭈었다..
5. 그 직책에 충실하되 할 수 없거든 떠나라 2b-5. 맹자께서 제나라의 대부 지와(蚔䵷)에게 일러 말씀하시었다: “그대가 제나라 변경의 읍인 영구(靈丘)【산동성 료성(聊城), 혹은 등현(滕縣) 부근】의 재직을 사양하고 왕 옆에서 간언할 수 있는 사사(士師)【여기서는 그냥 간관 정도의 의미일 것이다】의 직을 청한 것은 참 잘한 일이다(이치에 맞는 일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왕에게 간언을 하기 위 한 것이다. 그런데 그대는 그 자리에 앉은 지 수개월이 지나도록 왕 에게 한마디도 간언하지 않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오?” 2b-5. 孟子謂蚔䵷曰: “子之辭靈丘而請士師, 似也, 爲其可以言也. 今旣數月矣, 未可以言與?” 지와는 이러한 맹자의 지적에 분발되어 왕에게 열심히 간언하였으 나 그 간언이..
4. 임금은 백성을 소와 양처럼 길러야 한다 2b-4. 맹자께서 제나라의 변경에 있는 중요한 읍인 평륙(平陸)【노나라와 접경지대에 있다. 지금 산동성 문상현(汶上縣) 북】에 가서 그곳을 다스리는 대부(大夫)【전국시대에는 읍재(邑宰)를 대부라고 불렀다. 지금의 현장(縣長)】인 공거심(孔距心)을 만나 말씀하시었다: “그대가 거느리고 있는 지극지사(持戟之士)【극이라는 병기를 가지고 있는 병사라는 뜻인데 보통 전사(戰士)를 ‘지극(持戟)’이라고 많이 불렀다】가 전쟁터에 나아가 싸울 때 하루에 세 번이나 대오를 이탈했다면, 그 병사를 죽이시겠지요.” 공거심은 즉각 대답했다. “세 번까지 기다리지 않고 단번에 죽여버리겠소.’ 2b-4, 孟子之平陸. 謂其大夫曰: “子之持戟之士, 一日而三失伍, 則去之否乎?” 曰: “不..
3. 어찌 군자가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랴 2b-3. 맹자와 여로를 같이 한 제자 진진(陳臻)이 맹자께 여쭈어 말하였다: “얼마 전에 제나라에 계실 때에는 왕이 겸금(兼金)【질 좋은 순금이라는 뜻인데, ‘겸(兼)’은 보통 것보다 값이 두 배 나간다는 뜻에서 붙은 것이다. 그런데 전국시대 때 ‘금(金)’이라는 것이 오늘 우리가 말하는 황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금(金)’이라는 것은 동(銅)을 가리킨 것이다. 무게를 달아 화폐가치로 통용되었다. 혹자는 ‘은(銀)’을 가리킨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동일 확률이 더 크다】 100일(鎰)【1일(鎰)=20량(兩) 혹은 24량(兩)】을 선물로 주었는데 받지 아니하셨고, 송(宋)나라에서는 70일을 선물 했는데 받으셨고, 설(薛)나라에서도【춘추시대의 설(薛)은 ..
2. 임금 맘대로 부르지 못하는 신하 2b-2. 맹자가 제선왕을 뵙기 위하여 제선왕이 있는 조정으로 자발 적으로 나가려고 하고 있던 참인데, 마침 제선왕이 사자(使者)를 보내 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원래 과인이 선생 계신 곳으로 와 서 뵈오려고 하였으나, 감기가 걸리는 바람에 바깥바람을 또 뵐 수가 없습니다. 선생께서 나와주실 수만 있다면, 제가 조정으로 나가있을 테니 거기서 뵈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겠습니까? 제가 선생을 뵈올 수 있을런지요.” 맹자는 제선왕이 핑계를 둘러대는 것을 알고 김이 샜다. 2b-2. 孟子將朝王, 王使人來曰: “寡人如就見者也, 有寒疾, 不可以風. 朝將視朝, 不識可使寡人得見乎?” 그래서 대답하여 말하였다: “불행하게도 저 또한 병이 걸려서 조정에 나아갈 수가 ..
공손추장구(公孫丑章句) 하(下) 1. 하늘의 때와 지리적인 이점과 사람들의 화합 2b-1.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천시(天時)는 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人和)만 못하다. 사방 3리의 내성(內城), 사방 7리의 외성(外城)으로 둘러싸인 아주 조그만 성읍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에워싸 공격해도 이기지 못할 경우가 있다. 그러한 성을 에워싸 공격할 때 반드시 천기의 증후가 공격자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기지 못하는 것은 천시(天時)가 지리(地利)만 못하다는 이치를 입증하는 것이다. 2b-1. 孟子曰: “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 三里之城, 七里之郭, 環而攻之而不勝. 夫環而攻之, 必有得天時者矣; 然而不勝者, 是天時不如地利也. 성이 높지 않은 것도 아니며, 해자가 깊지 않은 것..
9. 백이는 속이 좁고 유하혜는 불공하다 2a-9.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백이(伯夷)【은나라 말기, 혁명의 시기를 산 작은 제후국 고죽국(孤竹國)의 왕자】는 임금다운 임금이 아니면 아예 섬길 생각을 하지 않았고, 친구다운 친구가 아니면 아예 친구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악인(惡人)의 조정에는 서지 않았으며, 악인(惡人)과 더불어 말도 하지 않았다. 악인의 조정에 서며, 악인과 더불어 말한다는 것은 엄숙하고 화려한 조의(朝衣)ㆍ조관(朝冠)을 잘 차려입고 진흙길이나 석탄구덩이에서 뒹구는 것과도 같이 끔찍하도록 더러운 것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백이가 악을 미워하는 그 심정을 미루어 살펴보건대, 동네 사람들과 같이 서있을 때에도 옆에 있는 사람이 관(冠)이라도 삐딱하게 쓰고 있으면 창피하게 생각하여 지체 없..
8. 다른 사람과 선을 함께 하다 2a-8.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공자의 친구와도 같은 수제자 자 로는 타인이 자기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잘못을 타일러주면 너무도 기뻐했다. 하나라를 개창한 우임금은 남에게서 선한 말을 들으면 그 순간 왕이라는 고귀한 신분도 잊어버리고 그 사람에게 엎드려 절하여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런데 위대한 순임금은 이들보다도 더 위대한 덕성을 가지고 계시었다. 좋은 일이 있으면 그것을 자기 혼자 실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타인들과 더불어 같이 실천하시었다. 뿐만 아니라 타인이 나보다 더 훌륭하다고 생각되면 그 훌륭한 점을, 나를 버리고 사심 없이 따랐으며, 그렇게 하여 타인의 훌륭함을 더욱더욱 받아들여 나의 훌륭함으로 만드는 것을 인생의 가장 고귀한 즐거움으로 삼으셨..
7. 사람은 있는 곳에 따라 인함에 영향을 받는다 2a-7.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화살을 만드는 사람이라 해서 어찌 갑옷을 만드는 사람에 비교해서 더 불인(不仁)한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오? 그러나 화살을 만드는 사람은 갑옷을 뚫어 사람을 죽일 것만을 생각하고, 갑옷을 만드는 사람은 화살에 갑옷이 안 뚫리어 어떻게 사람을 살릴 것인가만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의사와 장의사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의사는 사람 살릴 것만 생각하고 장의사는 사람이 죽어야 먹고 산다. 그러므로 인간이 살아가면서 직업이나 기술을 선택하는 것도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없다. 2a-7. 孟子曰: “矢人豈不仁於函人哉? 矢人唯恐不傷人, 函人唯恐傷人. 巫匠亦然, 故術不可不愼也.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인한 동네를 선택하여 사는 것이..
6. 네 가지 단서 2a-6.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사람에게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고대의 제왕인 선왕(先王)들께서는 사람에게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사람에게 차마 어쩌지 못하는 인정을 베푸실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차마 어쩌지 못하는 인(仁)한 정치를 실천하기만 한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도 손바닥 위에 물건을 놓고 주무르듯이 쉬운 일이다. 이제 우리는 왜 사람이 모두 사람에게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지를 설명해볼 필요가 있다. 2a-6. 孟子曰: “人皆有不忍人之心. 先王有不忍人之心, 斯有不忍人之政矣. 以不忍人之心, 行不忍人之政, 治天下可運之掌上. 생각해보자! 지금 어떤 사람이 여기..
5. 천하에 무적인 사람을 천리(天吏)라 한다 2a-5.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현자(賢者)를 존중하고 능력자[能者]를 마땅한 직책에서 부리고, 영준하고 걸출한 인물들을 관위(官位)에 앉히면, 천하의 선비[士]【당대에는 대부분이 서인(庶人) 출신으로서 대부와 서인의 가운데 있는 자유로운 지식계층이었다. 1a-1 참조】들이 모두 기뻐하여 그러한 조정에서 벼슬하기를 갈망할 것이다. 2a-5. 孟子曰: “尊賢使能, 俊傑在位, 則天下之士皆悅而願立於其朝矣. 시장에는 창고를 만들어 물건을 저장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되 저장한 물건에 대하여 보관세를 징수하지 않으며, 또 팔리지 않아 적체되는 물건은 법에 의하여 구매해 주어 유통이 정체되지 않도록 해준다면, 천하의 상인들이 모두 기뻐하여 그러한 시장에 자기 물건을..
4. 천재(天災)는 피할 수 있으나, 인재(人災)는 피할 수 없다 2a-4.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인(仁)의 정치를 실천하면 곧 나라는 번영하게 되지만 불인(不仁)한 정치를 행하면 곧 나라는 쇠퇴하고 치욕을 입게 된다. 지금 대부분의 나라들이 치욕을 싫어하면서 계속해서 불인한 정치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마치 습기를 싫어하는 관절염환자가 습지대만 쫓아다니며 사는 것과 다름이 없다. 치욕을 싫어한다면 덕행(德行을 귀하게 여기고 지식인을 존중하여, 덕행을 구비한 현자를 있어야만 할 자리에 있게 하고 능력 있는 지식인이 적합한 직무를 담당케 하는 것, 그 이상의 시급한 처방은 없다. 지금 많은 국가들이 내우외환이 없고 비교적 평온하고 한가한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정치의 기강을 세우고 ..
3. 인도(仁道)와 패도(覇道) 2a-3.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실제로는 힘에 의지하면서도 겉으로 는 인의 명분을 빌어 정벌을 일삼는 자는 패자(霸者)이다. 패자는 반드시 강대한 국가를 소유해야 한다. 자기 내면의 덕에 의지하면서 인정(仁政)을 행하는 자는 왕자(王者)이다. 왕자는 반드시 대국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2a-3. 孟子曰: “以力假仁者霸, 霸必有大國, 以德行仁者王, 王不待大. 탕임금은 사방 70리의 나라를 기초로하여 혁명을 성공시켰고, 문왕은 사방 100리의 나라를 기초로 하여 혁명을 성공시켰다. 힘으로써 사람을 굴복시키는 것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복종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대항할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복종하는 것이다. 내면적 도덕의 힘으로써 사람을 복종케 하는 것은 마..
2. 부동심ㆍ호연지기ㆍ지언, 그리고 공자 2a-2. 공손추가 물어 말하였다: “만약 선생님께서 제나라의 경상(卿相)이라는 최고의 자리에 거하시게 되어 뜻하시는 바 왕도의 정치를 구현하는 포부를 실천하실 수 있다면, 그 포부를 통해 제왕 패자로 만들든 왕자로 만들든 결국 그것은 선생님의 역량에 의한 것이므로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바가 없을 것 같습니다【주희의 해석을 따랐다. 조기는 ‘선생님의 도움으로 제왕이 패자나 왕자가 되면 그들은 고대의 이상적 패자나 왕자와 다를 바 없는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다’라는 식으로 해석한다. 주희가 문맥상 더 자연스럽다】. 그러한 지위에 계속 계시게 된다면 책임부담도 많을 것이고 또 권세도 많을 것이니 마음이 흔들리는 일이 있지 않겠습니까?” 2a-2. 公孫丑問曰: “夫..
공손추장구(公孫丑章句) 상(上) 1. 배고픈 이에게 밥을 주긴 쉽고,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긴 쉽다 2a-1. 맹자가 제나라에 간 초기에 있던 일이다. 제나라에서 입문한 제나라 사람 제자 공손추(公孫丑)가 맹자에게 여쭈어 말하였다: “선생님께서 만약 제나라에서 국정의 권좌에 앉으신다면, 제나라의 찬란했던 명신 관중(管仲)【제환공(齊桓公)의 재상】과 안자(晏子)【제경공의 재상. 1b-4에 기출】의 공업(功業)을 다시 한 번 흥륭시킬 수 있겠군요?” 2a-1. 公孫丑問曰: “夫子當路於齊, 管仲ㆍ晏子之功, 可復許乎?”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너는 정말 지독한 제나라 사람이구나, 겨 우 안다는 게 고작 관중(管仲)과 안자(晏子)뿐이냐? 일찍이 누군가 증자의 아드님인 증서(曾西)【증서를 증자의 손자로 본 조기나..
16. 내가 노평공을 만나지 못한 것은 천명이다 1b-16. 노평공이 맹자를 맞이하기 위하여 외출 행렬을 준비시키고 있었다. 이때 노나라의 세세로 내려오는 권신이며 노평공이 총애하고 있었던 폐인(嬖人) 장창(臧倉)이라는 자가 공을 저지하면서 말하였다: “평일에는 임금께서 외출을 하시려면 반드시 담당관리에게 가실 곳을 미리 말하여 준비케 하셨는데 오늘은 웬일이시오니이까? 지금 임금님의 수레에 말까지 매달아 놓았는데 담당관리가 가시는 곳을 알지 못하오이다. 알려주시옵소서.” 1b-16. 魯平公將出. 嬖人臧倉者請曰: “他日君出, 則必命有司所之. 今乘輿已駕矣, 有司未知所之. 敢請.” 평공이 말하였다: “맹자를 만나러 가노라.” 公曰: “將見孟子.” 장창이 말하였다: “임금께서 웬일이시오니이까? 임금의 신분으로서..
15. 나라를 떠나던지, 죽음을 바치던지 선택하라 1b-15. 등문공이 물어 말하였다: “등나라는 힘없는 작은 나라입니 다. 있는 힘을 다하여 대국을 섬겨도 항상 침략당해 쌩피 보는 것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1b-15. 滕文公問曰: “滕, 小國也. 竭力以事大國, 則不得免焉. 如之何則可?” 맹자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었다: “옛적에 고공단보 태왕께서 빈(邠) 땅에 거하실 때, 북쪽의 적인(狄人)이 계속 침략해왔습니다. 태왕은 값 비싼 모피와 비단을 바쳐 적을 섬겼지만 또 침략당하기는 마찬가지였고, 개와 말을 바쳐 섬겼지만 또 침략당하기는 마찬가지였고, 주옥을 바쳐 섬겼지만 또 침략당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孟子對曰: “昔者大王居邠, 狄人侵之. 事之以皮幣, 不得免焉; 事之以犬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