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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헌문 제십사(憲問 第十四) 편해(篇解) 「헌문」은 47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논어』의 편들 중에서 가장 많은 장수를 과시하고 있으며 성격도 매우 잡다하여 제일적인 성격규정이 어렵다. 이렇게 복잡하고 방대한 편을 앞에 ‘원헌(原憲)’이라는 공자의 제자가 등장했다는 이유로, 호인(胡寅)이 「헌문」 전편을 원헌의 소기(所記: 기록과 편집)로 간주한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그리고 그 호인의 어처구니없는 말을 편해로서 앞에 인용하고 있는 주희의 태도 또한 무성의하다. 이것은 송유들이 얼마나 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없이 관념적으로만 『논어』 및 기타 고경을 대했는가 하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헌문」편의 편집은 2ㆍ3전 제자 이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나 그렇게 시대를 내려가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
30. 가르치지 않고 백성을 전쟁터로 보내다 13-30.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백성들을 가르치지 아니 하고 전장(戰場)에 내보내는 것은 백성들을 내다버리는 짓이라 일컫는다.” 13-30. 子曰: “以不敎民戰, 是謂棄之.” 명백하게 전장과 내면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여기서 가르침이란 물론 구체적인 군사교육이다. 첫 구를 문자 그대로 직역하면 ‘가르치지 아니 한 백성들로써 싸우면’이 된다. 『손자』의 첫머리를 인용하는 것으로 해설을 대신한다. 병(兵)이란 것은 나라의 대사(大事)이며, 사생이 결판나는 땅[地]이며, 존망이 엇갈리는 도(道)이다. 깊게 살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兵者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 최근 간백(簡帛) 문헌으로 병가계열의 문헌이 대량 출토됨으로써 그동안 외경처럼..
29. 선인이 백성을 7년 동안 가르치면 전쟁터에 보낼 수 있다 13-29.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선인(善人)이 백성을 7년 동안 잘 가르치면 그들로 하여금 전장에 나아가게 할 수 있다.” 13-29. 子曰: “善人敎民七年, 亦可以卽戎矣.” 이 장에 관해서도 매우 반군사적 해석(anti-militaristic interpretation)이 주류를 이루지만 그것은 문약주의(文弱主義)에 빠진 송유들의 해석이다. 이것은 확고한 밀리타리즘의 메시지이다. 전쟁을 준비하려면 최소한 7년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술뿐만 아니라 정신적 자세까지도 완벽하게 잘 가르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 지도자가 여기 ‘선인(善人)’이다. ‘선인’이 단순한 정신적 덕성의 소유자가 아니라 기예를 마스터한 인간일 것이..
28. 선비라 불려질 수 있는 사람이란 13-28. 자로(子路)가 여쭈어 말하였다: “어떠해야 선비(土)라 일컬을 만하오니이까?” 13-28. 子路問曰: “何如斯可謂之士矣?”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절절시시(切切偲偲)하게 서로를 책망할 줄 알고, 이이여(怡怡如)하게 서로를 화락하게 하면, 그를 선비라 일컬을 만하니라. 붕우에게 절절시시하게 하고, 형제에게 이이여하게 할지어다.” 子曰: “切切, 偲偲, 怡怡如也, 可謂士矣. 朋友切切, 偲偲, 兄弟怡怡.” 해석은 고주에 기초하였다. ‘절절시시(切切偲偲)’는 ‘서로 절박하게 꾸짖는 모습[상절책지모(相切責之貌)]’라 하였고 ‘이이(怡怡)’는 ‘화순지모(和順之貌)’라 하였다. 그런데 이 장은 본 편의 제20장과 완벽하게 질문이 동일하다. 이름만 자공에서 자..
27. 인(仁)에 가까운 네 가지 자질 13-2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강인하고, 굳세고, 질박하고, 어눌한 것은 인(仁)에 가깝다.” 13-27. 子曰: “剛ㆍ毅ㆍ木ㆍ訥, 近仁.” 1-3, 17-17에 보이는 ‘교언영색(巧言令色), 선의인(鮮矣仁)’을 그 반대로 포지티브하게 이야기한 것이다. 공자에게 있어서 ‘교언영색’에 대한 증오가 얼마나 강렬한 것이었나를 보여주는 한 예증이다. 동일한 주제가 계속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인용 목차 전문 / 본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26. 태연한 군자와 교만한 소인 13-2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태연(泰然)하되 교만하지 않고, 소인은 교만하면서 태연하지 못하다.” 13-26. 子曰: “君子泰而不驕, 小人驕而不泰.” ‘태연(泰然)’이란 자기존재에 대한 깊은 확신에서 오는 여유로움을 말한다. 여기 ‘군자’와 ‘소인’이 치자와 피치자의 이원적 개념이 아니라 치자에 대한 가치평가어라는 사실을 주목해주기 바란다. 인용 목차 전문 / 본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25. 군자와 소인이 사람을 부릴 때의 차이 13-25.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섬기기는 쉬워도, 그를 기뻐하게 만들기는 어렵다. 도(道)로써 기뻐하게 만들지 않으면 그는 결코 기뻐하지 아니 하기 때문이다. 군자는 사람을 부리는 데 이르러서는 사람들의 그릇의 역량에 따라 자유롭게 부린다. 13-25. 子曰: “君子易事而難說也: 說之不以道, 不說也; 及其使人也, 器之. 그런데 소인은 섬기기는 어려워도 기뻐하게 만들기는 쉽다. 기뻐하게 만들기를 도(道)로써 하지 않아도 그들은 쉽게 기뻐해하기 때문이다. 이런 소인이 사람을 부리는 데 이르러서는 오히려 사람들이 완벽할 것을 요구한다.” 小人難事而易說也: 說之雖不以道, 說也; 及其使人也, 求備焉.” 강력한 사회비판을 내포한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는 『논어..
24. 선한 사람이 좋다고 하고 나쁜 사람이 싫다고 하는 사람 13-24. 자공이 여쭈어 말하였다: “향인(鄕人) 전부가 한 사람을 다 좋아한다면 그 사람은 어떻습니까?”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13-24. 子貢問曰: “鄕人皆好之, 何如?” 子曰: “未可也.” 자공이 또 말하였다: “그렇다면 향인 전부가 한 사람을 다 미워한다면 그 사람 은 어떻습니까?”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향인 중의 선한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고, 향인 중의 선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를 미워하는 것만 같지 못하니라.” “鄕人皆惡之, 何如?” 子曰: “未可也. 不如鄕人之善者好之, 其不善者惡之.” 『논어』의 공자 말씀 중에서 내가 살아가면서 가슴속에 새기고 또 새길 수밖에 없었던 ..
23. 군자와 소인의 화(和)와 동(同) 13-23.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지만 동류로서 휩쓸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소인은 사람들과 동류로서 휩쓸리기만 할 뿐 오히려 조화를 이루지는 못한다.” 13-23. 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따라서 인간들과 조화롭게 살아갈 수밖에 없 다. 그러나 뭇사람들과 부화뇌동(附和雷同)해서는 아니 된다. 역시 인간의 주체성에 관한 논의이다. 인용 목차 전문 / 본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22. 사람에겐 항상스러움이 있어야 한다 13-22.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남쪽나라 사람들 말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된 자가 항상된 마음이 없으면 무당을 해서도 아니 되고 의사가 되어도 아니 된다.’ 참으로 적확(的確)한 좋은 말이다. 13-22. 子曰: “南人有言曰: ‘人而無恆, 不可以作巫醫.’ 善夫! 『역』에도 이런 말이 있지 않니, ‘그 덕(德)을 항상되게 하지 못하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수치를 당할 수도 있다.’” ‘不恆其德, 或承之羞.’” 이어 또 말씀하시었다: “덕이 항상스럽지 못한 사람들은 점을 칠 수도 없다.” 子曰: “不占而已矣.” 구구한 해석이 많은 장이지만 나는 문자 액면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사람으로서 항상됨이 없으면 무당이나 의사가 되어서는 아니..
21. 광자(狂者)와 견자(狷者) 13-21.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중도(中道)를 행(行)하는 선비와 더불어 같이 걸어갈 수 없다면, 나는 차라리 광자(狂者)나 견자(狷者)와 더불어 할 것이다. 광자는 진취적이고, 견자는 행하지 아니 하는 바가 있는 확실한 사람들이다.” 13-21. 子曰: “不得中行而與之, 必也狂狷乎! 狂者進取, 狷者有所不爲也.” 『논어』가 내 인생에 의미를 주었다면, 그 확실한 지침을 제시해준 하나의 말씀으로서 나는 이 장을 꼽을 수 있다. 인간을 대하는 데 나는 항상 이 장의 메시지를 가슴에 품었다. 여기 ‘중행(中行)’이라는 말은 이미 ‘중용(中庸)’의 개념이 충분히 반영되어 있다. 「자로」편과 『중용(中庸)』편이 동시대에 성립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용의 인간은 현실적으로 ..
20. 선비란 어떤 사람인가? 13-20. 자공(貢)이 여쭈어 말하였다: “어떠해야 선비[士]라 일컬을 만하오니이까?”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자기의 행동에 대하여 수치를 느낄 줄 알며, 사방(四方)의 나라에 사신으로 나아가선 임금의 명(命)을 욕되게 하지 아니 하는 자, 그를 선비라 일컬을 만하나니라.” 13-20. 子貢問曰: “何如斯可謂之士矣?” 子曰: “行己有恥, 使於四方, 不辱君命, 可謂士矣.” 자공이 다시 말하였다: “그 다음가는 자격을 감히 묻겠나이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종족(宗族) 전체 사람들이 효성스럽다고 칭찬하며, 향당(鄕黨) 전체 사람들이 우애가 있다고 칭찬하는 사람일 것이다.” 曰: “敢問其次.” 曰: “宗族稱孝焉, 鄕黨稱弟焉.” 자공이 다시 말하였다: “그 다음..
19. 번지가 인에 대해 물었다 13-19. 번지(樊遲)가 인(仁)을 여쭈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평소에 거처하는 모습이 공(恭)해야 하고, 일을 하는 모습은 경(敬)해야 하며, 사람을 사귀는 모습은 충(忠)해야 한다. 비록 이적(夷狄)의 나라에 간다 할지라도 이러한 자세를 버려서는 아니 된다.” 13-19. 樊遲問仁. 子曰: “居處恭, 執事敬, 與人忠. 雖之夷狄, 不可棄也.” 공자의 놀라운 국제감각! 당시의 중원(中原)이라는 좁은 편견의 세계를 뛰어넘는 보편주의적 가치관은 18장에서 말하는 직(直)의 논리를 완벽하게 초월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의 직(直)의 논리도 이러한 보편주의적 가치관이 바탕이 되어있다고 생각하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공자의 말은 BC 5ㆍ6세기의 말인데 이미 20세..
18. 유교에서 말하는 정직이란 13-18. 섭공이 공자에게 일러 말하였다: “우리 무리 중에 대단히 곧은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가 양을 훔쳤는데, 아들인 그가 그것을 입증하여 유죄가 되었습니다.” 13-18. 葉公語孔子曰: “吾黨有直躬者, 其父攘羊, 而子證之.”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우리 무리 중의 곧은 자는 당신네 곧 은 자와는 다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위하여 숨겨주고, 아들은 아버지를 위하여 숨겨줍니다. 곧음이란 그 속에 있는 것이외다.” 孔子曰: “吾黨之直者異於是. 父爲子隱, 子爲父隱, 直在其中矣.” 중국사상사를 통하여 항상 문제가 되는 유명한 장이다. 서양의 이성주의 와 동양의 합리주의가 얼마나 성격이 다른가를 보여주는 공자의 언급이다. 비단 동ㆍ서의 문제가 아니라, 동방 자체..
17. 욕속부달(欲速不達) 13-17. 자하(夏)가 거보(宮)의 재가 되어 공자께 정치를 여쭈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속히 성과를 내려고하지 말라. 작은 이익에 구애되지 말라. 속히 성과를 내려하면 전체적으로 통달할 수 없고, 작은 이익에 구애되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 13-17. 子夏爲莒父宰, 問政. 子曰: “無欲速, 無見小利. 欲速, 則不達; 見小利, 則大事不成.” 거보(莒父)는 노나라에 속한 중요한 도시, 오늘날 산동성 거현(莒縣)이다. 곡부에서 한참 동쪽으로 같은 위도상에 있다. 위정자가 새겨들어야 할, 흠 잡을 데 없는 공자의 말씀이다. 인용 목차 전문 / 본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16. 가까운 사람을 즐겁게 하고 멀리 있는 사람을 오게 하는 정치 13-16. 섭공(葉公)이 정치를 여쭈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가깝게 있는 백성들을 기뻐하게 할 수 있으면, 먼 곳에 있는 백성들도 모여들겠지요.” 13-16. 葉公問政. 子曰: “近者說, 遠者來.” 섭공(葉公)은 심제량(沈諸梁). 자(字)는 자고(子高). 초(楚)나라의 중신 (重臣). 섭(葉) 땅의 장관(長官). 7-18에서 해설. ‘근(近)’은 성내의 사람들. ‘원(遠)’은 그 밖의 원방의 사람들. 가깝게 있는 사람들은 군주의 결점을 잘 볼 수 있다. 그들을 열복(說服)시키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들을 열복시킬 수 있으면 원방의 사람들도 귀순한다. 한국의 정치는 서울의 사람들을 열복시킬 수 있으면 곧 전 세계인의 존경을 얻..
15. 나라를 흥하게 할, 망하게 할 한 마디 말 13-15. 정공이 물었다: “단 한마디로써 나라를 흥(興)하게 할 수도 있다 하니, 그러한 것이 있습니까?” 13-15. 定公問: “一言而可以興邦, 有諸?” 이에 공자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었다: “인간의 말이라는 것이 그토록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한번 말씀드려 보지요. 사람들이 하는 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임금노릇하기 어렵고 신하노릇 하기 쉽지 않다. 만약 당신께서 임금노릇하기 어렵다는 것을 아신다면, 이 한마디의 말로도 나라를 흥하게 하는 데 거의 이르게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孔子對曰: “言不可以若是其幾也. 人之言曰: ‘爲君難, 爲臣不易.’如知爲君之難也, 不幾乎一言而興邦乎?” 정공이 또 물었다: “단 한마디로써 나라..
14. 염유가 계씨의 사적 조정 회의에 참석하다 13-14. 염자(冉子)가 조정에서 물러나왔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오늘은 왜 이렇게 늦었느냐?” 13-14. 冉子退朝. 子曰: “何晏也?” 염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중요한 정무(政務)가 있었습니다.” 對曰: “有政.” 이제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중요한 정무이긴? 사사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만약 중요한 정무였다면, 내가 비록 벼슬의 자리에는 있지 않으나, 나에게 반드시 상의했을 것이다.” 子曰: “其事也. 如有政, 雖不吾以, 吾其與聞之.” 우선 여기의 ‘염자(冉子)’라는 용례는 염자 문인(門人)이 그를 높여 부른 파편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공자의 제자를 ‘자(子)’로 높여 부른 용례가 20회 되는데 그 중 ‘염자(冉子)’는 2회, 여기와 6-3..
13. 몸을 바로잡아라 13-13.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다스리는 자가 그 몸을 바르게 한다면 정치를 하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을까보냐! 다스리는 자가 그 몸을 바르게 할 수 없다면 어떻게 타인을 바르게 할 수 있단 말인가!” 13-13. 子曰: “苟正其身矣, 於從政乎何有? 不能正其身, 如正人何?” 비슷한 말투가 3-3, 4-13, 6-6 등에 있다. 내용적으로는 13-6과 관련있다. 『대학』의 수신(修身)사상과도 관련 있어 보인다. 정신(正身)과 수신(修身)의 관계는 사상사적 탐구과제일 것이다. 인용 목차 전문 / 본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12. 왕자가 정치하더라도 한 세대가 지나야 인해진다 13-12.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만약 왕자(王者)가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한 세 대가 지난 후에나 백성들이 인(仁)하게 될 것이다.” 13-12. 子曰: “如有王者, 必世而後仁.” 우선 여기 ‘왕자’라는 개념이 문제다. 이것은 패도(覇道)와 왕도(王道)를 전제로 하는 맹자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완전한 도덕성을 구현한 군주(a Sage-King)’의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이 공자의 입에서 나온 말일 수는 없다. 맹자시대의 파편이거나, 이미 맹자시대 이전에 어느 시기에 맹자류의 개념이 공문에서 성립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파편일 것이다. ‘필세이후인(必世而後仁)’의 해석은 신주를 따랐다. 신주에 의하면 ‘일세(一世)’는 삼십 년. 아무리 선정..
11. 선인이 1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린다면 13-11.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옛말에 ‘선인(善人)이 나라를 다스리기를 백년만 지속할 수 있다면, 또한 모든 잔폭함을 극복하고 사형을 없앨 수 있다’ 했는데, 옳도다! 이 말이여!” 13-11. 子曰: “善人爲邦百年, 亦可以勝殘去殺矣. 誠哉是言也!” 100년 동안 평화가 유지되고, 그 기간 동안 훌륭한 리더십이 확보되는 역사의 단락! 결코 쉬울 것 같지가 않다. ‘선인(善人)’의 용례는 여기 외로는 7-25, 11-19, 13-29, 20-1에 있다. 인용 목차 전문 / 본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10. 내가 등용된다면 3년이면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 13-10.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만약 나를 제대로 기용할 줄 아는 인물이 이 세상에 있다면, 일 년이면 나라를 바로잡을 수 있고, 삼 년이면 그 나라를 완성시킬 수 있다.” 13-10. 子曰: “苟有用我者. 朞月而已可也, 三年有成.” ‘구(苟)’라는 가정법은 현실적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공자세가(孔子世家)」에서는 공자가 포(蒲) 땅에서의 고난 이후에 위나라에 다시 돌아왔다가 늙은 영공이 그의 말을 듣지 않기에 다시 떠나게 되는데, 그때 한 말로서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애공 2년(BC 493), 공자 나이 59세 때가 될 것이다. 공자가 이 말을 한 후 얼마 안 있어 위령공은 죽고 만다. 인재의 등용! 참으로 큰 문..
9. 백성을 위한 공자의 세 가지 정치 13-9. 공자께서 위나라로 가시었을 때에 염유(有)가 수레를 몰았다. 공자께서 위나라 수도의 거리를 지나시면서 말씀하시었다: “아~ 참 사람이 많기도 하구나!” 13-9. 子適衛, 冉有僕. 子曰: “庶矣哉!” 염유가 여쭈었다: “그렇습니다. 인구가 많습니다. 그럼 또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들을 풍요롭게 해주어야 한다.” 冉有曰: “旣庶矣. 又何加焉?” 曰: “富之.” 염유가 또 여쭈었다: “이미 풍요롭게 되었다면, 또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들을 교육시켜라.” 曰: “旣富矣, 又何加焉?” 曰: “敎之.” 놀라운 컴먼센스! 부의 바탕은 인구의 확보에 있었다. 다음의 급선무는 경제적 풍요. 서의(庶矣..
8. 위나라 공자인 형(荊)은 재산에 휘둘리지 않았다 13-8. 공자가 위나라의 현명한 공자 형(荊)을 평하여 말씀하시었다: “그는 집안 재산을 잘 관리할 줄 알았다. 13-8. 子謂衛公子荊, “善居室. 재산이 처음 생겼을 때 말하기를, ‘그런대로 조금 모였군요’라 했다. 始有, 曰: ‘苟合矣.’ 재산을 어느 정도 가지게 되었을 때 말하기를, ‘그런대로 구비되었군요’라 했다. 少有, 曰: 苟完矣. 재산을 풍요롭게 가지게 되었을 때 말하기를, ‘그런대로 아름답군요’라 했다.” 富有, 曰: 苟美矣.” 정확한 해석은 불가능하다. 형(荊)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위나라의 공자(公子)라 했으므로 임금의 친족이었다. 그러니까 돈과 지위가 있는 사람이다【신주는 ‘위대부(衛大夫)’라고 했다】. 그러나 상당히 현명한 사람..
7. 노나라와 위나라 정치가 혼란해지다 13-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노(魯)나라와 위(衛)나라의 정치는 형제간이로다!” 13-7. 子曰: “魯ㆍ衛之政, 兄弟也.” 노나라는 주공(周公) 단(旦)의 나라이고, 위나라는 주공의 동생인 강숙 (康叔)의 나라이니까, 두 나라가 형제의 나라인 것은 틀림이 없다. 여기 ‘정(政)’이 현실정치를 의미할 뿐 아니라 ‘정체(政體)’ 즉 폴리티칼 보디(political body)를 의미할 수도 있다. 정체의 본원이 같은 근원에서 왔다는 것을 시사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것이 어떠한 논리적 맥락에서 언급된 것인지는 잘 알 수가 없다. 신주는 공자 당대의 현실정치 상황이 위나라나 노나라나 다 같이 쇠란(喪亂)된 것을 개탄하는 언사로 풀었고, 유보남은 6-22의 사례를 들..
6. 몸이 올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한다 13-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다스리는 자의 몸이 바르면, 법령을 발하지 않아도 스스로 행하여지고, 그 몸이 바르지 못하면 법령을 발하여도 아무도 따르지 않는다.” 13-6. 子曰: “其身正, 不令而行; 其不正, 雖令不從.” 여기 ‘몸[身]’은 서양언어가 말하는 ‘보디(Body)’가 아니다. 총체적 인격을 말하는 것으로 몸과 마음을 통합하는 개념이다. ‘령(令)’은 단순히 개인적 명령이 아니다. 법제적 근거가 있는 정령이나 명령일 것이다. 법령은 될 수 있는 대로 최소화시켜야 한다는 공자의 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인용 목차 전문 / 본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5. 시만 많이 외우면 뭐해 일도, 인간관계도 젬병인대 13-5.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시(詩) 삼백 편을 줄줄 외운다 해도, 그 자에게 정치를 맡겨본들 통달치 못하고, 또 사방의 사신으로 보내본들 온전하게 응대하지도 못한다면, 지식이 많은 것이 또한 무슨 소용이랴!” 13-5. 子曰: “誦詩三百, 授之以政, 不達; 使於四方, 不能專對; 雖多, 亦奚以爲?” 여기 ‘시삼백(詩三百)’이라는 표현은 이미 공자시대 때에 (말년학단)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시경』 305편 체제의 텍스트가 문자로써 완성되어 있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좋은 자료이다. 그러니까 여기 ‘송시삼백(誦詩三百)’ 교양이란 일반의 한 예로써 들은 것이다. 여기서 공자가 지적하는 문제나, 오늘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의 병폐를 지적하는 일반사람들..
4. 농사짓는 법을 물은 번지 13-4. 번지(樊遲)가 공자에게 농사일을 배우기를 청하였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농사일에 관해서는 나는 늙은 농부만 못하다.” 그러자 번지가 또 채소 갈아먹는 것 배우기를 청하였다. 13-4. 樊遲請學稼, 子曰: “吾不如老農.” 請學爲圃.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채소경작에 관해서는 나는 채마밭 늙은이만 못하다.” 曰: “吾不如老圃.” 번지가 퇴장하자, 공자께서는 한탄스럽게 말씀하시었다. “참 쩨쩨한 소인(小人)이로구나! 저 번수(樊須: 번지의 실명) 녀석! 통치자가 예(禮)를 좋아하면 백성들은 공경치 아니함이 없고, 통치자가 의(義)를 사랑하면 백성들은 심복하지 아니함이 없고, 통치자가 신험信驗)하기를 좋아하면 백성들은 자기의 진실을 내보이지 아니하는 자..
3. 정명론(正名論) 13-3. 자로가 말하였다: “위(衛)나라의 군주가 선생님을 모셔다가 정치를 하려 한다면,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13-3. 子路曰: “衛君待子而爲政, 子將奚先?”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반드시 이름을 바로 잡는 정명(正名)을 먼저 할 것이다.” 子曰: “必也正名乎!” 자로가 말하였다: “역시나 했더니만, 선생님도 참 아둔하기 그지없으시구려. 왜 하필 이름을 바로 잡는다고 하십니까?” 子路曰: “有是哉, 子之迂也! 奚其正?”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야비하구나! 유(由) 이녀석! 군자는 알지 못하는 것에는 입이나 다물고 있는 법이어늘,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바른 논리를 따라가지 않고, 말이 바른 논리를 따르지 않으면 사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업이 이루..
2. 중궁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묻다 13-2. 중궁(仲弓)이 계씨(季氏)의 가신이 되어 정치를 여쭈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유능한 관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들의 사소한 과실은 용서해라. 슬기로운 자와 재능 있는 자를 등용하라.” 13-2. 仲弓爲季氏宰, 問政. 子曰: “先有司, 赦小過, 擧賢才.” 중궁이 여쭈 었다: “슬기로운 자와 재능 있는 자를 어찌 알고 등용하오리까?” 曰: “焉知賢才而擧之?”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네가 알고 있는 슬기로운 자와 재능 있는 자를 우선 등용한다면, 네가 모르는 슬기로운 자와 재능 있는 자를 세상이 내버려두겠는가?” 曰: “擧爾所知. 爾所不知, 人其舍諸?” 세부적 뜻은 번역에 다 반영되어 있다. 구한말의 대유 동무(東武) 이제마(李..
1. 자로가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묻다 13-1. 자로가 정치를 여쭈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백성들에 앞서 실천하는 솔선수범을 보여라. 그리고 백성들이 사는 수고로움을 잊게 하라.” 13-1. 子路問政. 子曰: “先之, 勞之.” 자로가 더 좀 말해 주십사고 부탁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권태를 느끼지 말고 열정을 지속시켜라.” 請益. 曰: “無倦.” ‘노지(勞之)’의 해석이 어렵다. 1) 내가 부지런히 노력한다. 2) 백성들로 하여금 부지런히 일하게 한다. 3) 백성들을 위로한다. 나는 공안국의 주를 따랐다: ‘백성들로 하여금 수고로움을 잊게 한다.’ ‘무권(無倦)’과 관계된 장은 12-14이다. 인용 목차 전문 / 본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자로 제십삼(子路 第十三) 편해(篇解) ‘자로문정(子路問政)’이란 첫마디가 역시 이 편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자로를 앞에 내걸었다는 것 자체가 이 편이 내용이 결코 후대에 성립된 것이 아닌, 상당히 오리지날한 내음새가 나는 언행의 기록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문정(問政)’이란 것 자체가 이미 이 편의 성격을 규정한다. 이 편처럼 정치라는 주제를 집약적으로 다루고 있는 편은 없다. 「자로」는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뉜다. 1장부터 18장까지가 A그룹, 19장부터 30장까지가 B그룹, A그룹은 정치에 관한 기사가 집중적으로 편집되어 있고 B그룹은 사군자의 덕성이나 삶의 태도에 관한 기사가 집중적으로 편집되어 있다. A그룹 1~18장 정치주제 1~4장 사제문답, 정치주제 5~13장 자왈파편, 정치주제 1..
24. 학문으로 함께 하는 친구 12-24. 증자(曾子)가 말하였다: “군자는 문(文)으로써 친구를 모으고, 친구로써 인(仁)을 돕는다.” 12-24. 曾子曰: “君子以文會友, 以友輔仁.” 문화는 우정의 기준이다. 문화가 빠진 우정은 앙상한 이해(利害) 관계일 뿐이다. 문화에 기초한 우정은 그들이 살고있는 사회를 인(仁)하게 만든다. 보 편적 가치관을 우정으로써 확대해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신앙이나 전도와는 매우 다른 방식이다. 이 증자의 말은 공자 사후 한참 지나 기록된 증자의 말인데 증자라는 사람의 인품을 나타내주는 차분한 말이다. 인용 목차 전문 / 본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23. 친구와 오래 사귀는 방법 12-23. 자공(貢)이 친구 사귐(友)에 관하여 여쭈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친구에게 충심으로 권고하여 바르게 이끌어 주어라. 그러나 너의 충심이 먹히지 않을 때에는 중지하라. 자신을 스스로 욕되게 말라.” 12-23. 子貢問友. 子曰: “忠告而善道之, 不可則止, 無自辱焉.” 천하의 명언! 내 일생 새기고 또 새기는 명언이다. 친구란 본시 의(義)의 관계이며 한계가 있는 것이다. 서양 기독교류의 전도주의(evangelism)의 무리함은 바로 이러한 공자의 사상에서 여지없이 그 유치함이 드러난다. 나의 충심이 먹히지 않을 때 무리하게 인도하면(道: ‘導’로 쓴 판본도 있다) 나의 욕(辱)으로만 돌아올 뿐이다. 이것은 그 사람을 버리거나 배반하라는 뜻이 아니다...
22. 공자가 번지에게 인함과 지혜에 대해 말해주다 12-22. 번지(樊遲)가 인(仁)을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또 지(知)를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사람을 아는 것이다.” 번지가 이 말씀을 깊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공자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첨가하시었다: “굽은 판자때기 위에 곧은 판자때기를 놓아 누르 면 굽은 판자때기가 펴지듯이, 곧은 사람을 들어 굽은 사람 위에 놓으면 모든 굽은 사람들이 곧게 될 수 있나니라.” 12-22. 樊遲問仁. 子曰: “愛人.” 問知. 子曰: “知人.” 樊遲未達. 子曰: “擧直錯諸枉, 能使枉者直.” 번지가 물러나 자하(夏)를 보았을 때, 다시 말했다: “지난번에 내가 부자를 뵈었을 때에 지(知)에 대해 여쭈었..
21. 덕을 숭상하는 방법, 사특함 다스리는 방법, 미혹됨 분별하는 방법 12-21. 번지(樊遲)가 공자를 시중들며 노나라 성 남쪽의 무우(舞雩) 제단 아래서 한가로이 노닐고 있었는데, 불쑥 여쭈었다: “감히 묻겠나이다. 덕을 높이는 것과, 사특함을 닦아 없애는 것과, 미혹함을 분변하는 것을 묻겠나이다.” 12-21. 樊遲從遊於舞雩之下, 曰: “敢問崇德, 脩慝, 辨惑.” 거니시던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거참 좋구나! 너의 질문이. 실천을 먼저하고 그 실천으로써 얻는 이득을 뒤로 하는 것, 그것이 덕을 높이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니? 자신의 결점을 공격하고 타인의 결점을 공격하지 아니 하는 것, 그것이 사특함을 닦아 없애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니? 하루아침의 분노로써 한 몸을 잊어버리고 그 화(禍)를 부..
20. 소문과 달함의 차이를 자장에게 알려주다 12-20. 자장이 여쭈었다: “선비가 어떤 모습이라야 곧 통달한 사람이라 일컬을 수 있겠나이까?” 12-20. 子張問: “士何如斯可謂之達矣?”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네가 말하는 통달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뇨?” 子曰: “何哉, 爾所謂達者?” 자장이 이에 대답하여 말하였다: “나라에서도 반드시 소문이 나고, 집에서도 반드시 소문이 나는 것이오니이다.” 子張對曰: “在邦必聞, 在家必聞.”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이 녀석아. 그것은 유명한 것이지 통달한 것이 아니다. 대저 통달한다 하는 것은, 질박하며 정직하고 의(義)를 좋아하며, 남의 말을 잘 살피고 타인의 얼굴빛을 잘 관찰하여 항상 사려 깊게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라야 가능한 것이니, 이런 사람은 나라..
19. 풀 위에 바람이 불듯 정치하라 12-19.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를 물어 말하였다: “무도(無道)한 자들을 사형에 처하여 유도(有道)한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면 어떠하겠나이까?” 12-19. 季康子問政於孔子曰: “如殺無道, 以就有道, 何如?” 이에 공자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었다: “그대는 정치를 하는 사람이다! 어찌하여 인명(人命)을 살상하여 정치를 하려는고! 그대가 선을 원하면 백성 또한 선하게 될 것이다. 군자의 덕은 스치는 바람과도 같고, 백성들의 덕은 풀과도 같다. 풀 위에 바람이 스치면, 풀은 누울 뿐이로다.” 孔子對曰: “子爲政, 焉用殺? 子欲善, 而民善矣. 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 必偃.” 시공을 초월하여 이 지구상의 모든 위정자에게 공자가 던지는 위대한 메 시지!..
18. 무언가를 고치고 싶거든 나부터 하지 않으면 된다 12-18. 계강자(季康子)가 도둑이 성하여 그 대책을 여쭈었다. 공자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었다: “이 나라의 수장인 그대가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면, 비록 백성들에게 상을 주면서 도둑질하라 해도 도둑질하지 않을 것이다.” 12-18. 季康子患盜, 問於孔子. 孔子對曰: “苟子之不欲, 雖賞之不竊.” 17ㆍ18ㆍ19는 모두 계강자의 정치에 관한 질문인데 뜯어보면 같은 주제를 변조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계강자는 열심히 묻는다. 그러나 어차피 공자 말을 들어 실천할 수 있는 위인은 못 된다. 심각히 듣지 않을 수도 있다. 공자는 이제 죽음을 앞둔 노인! 국부(國父)와도 같은 위치에서 거리낄 말이 없다. 참으로 과격한 언사처럼 들리지만 우리가 하고..
17. 정치란 바로잡는 것이다 12-17.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를 물었다. 공자가 이에 대답하여 말씀하시었다: “정치라는 것은 바르게 하는 것이다. 수장인 그대가 바름으로써 솔선수범을 보인다면 감히 그 누가 바르지 않을 수 있겠느뇨?” 12-17. 季康子問政於孔子. 孔子對曰: “政者, 正也. 子帥以正, 孰敢不正?” 가슴을 시원하게 만드는 공자의 만고의 명언! 계강자는 공자 귀로(歸魯) 시의 노나라 정치의 수장, ‘정(政)’과 ‘정(正)’은 동원어(同源語), 영어로는 ‘워드 패밀리(word family)’라고 한다. 어원이 같으며 따라서 음도 비슷하고 의미도 비슷한 패밀리를 가리킨다. 이런 것을 성훈(聲訓)이라고도 한다. 동음자(同音字)로 뜻을 풀이하는 것이다. 인용 목차 전문 / 본문 공자 철학 / 제..
16. 군자와 소인이 남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점 12-1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君子)는 사람의 아름다운 측면을 완성하도록 도와주고, 사람의 추한 측면은 버리도록 도와준다. 소인(小人)은 이와 정반대이다.” 12-16. 子曰: “君子成人之美, 不成人之惡. 小人反是.” 미(美)의 짝으로서의 ‘惡’은 ‘악’으로 읽지 말고 ‘오’로 읽어야 한다. ‘미워하다’는 동사로 읽지 않을 때도 ‘오’로 읽어야 한다. ‘선(善)’의 반대는 ‘불선(不善)’이지 ‘악’이 아니다. 선ㆍ악의 이원론은 중동문명권과 헤브라이즘-헬레니즘문명권의 소산이다. 선진사상에서 말하는 ‘惡’은 실체화된 ‘악(the Evil, the Satan)’이 아니라 ‘추‘ 일 뿐이며 윤리적 가치인 동시에 보다 근원적인 심미적 가치인 것이다. ‘..
15. 문(文)으로 확장하고 예(禮)로 집약하라 12-15.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문(文)의 세계에 있어서는 가급적 널리 배워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반드시 예(禮)로써 집약시켜야 한다. 그리하면 도에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12-15. 子曰: “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弗畔矣夫!” 중출(重出), 6-25를 참견. 인용 목차 전문 / 본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14. 게으르지 말고 충심으로 하라 12-14. 자장이 정치를 여쭈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정치 속에서 살 때에는 무엇보다도 권태를 느끼지 않고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를 행할 때에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충(忠)으로써 해야 한다.” 12-14. 子張問政. 子曰: “居之無倦, 行之以忠.” ‘무권(無倦)’은 13-1을 참고할 것. 그냥 ‘게으름 없다’고 안일하게 번역하는데, 권태를 느끼지 않고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에게 너무도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가 아닐지 모르겠다. 속으로는 권태에 빠져있으면서 겉으로만 금딱지를 붙이고 있는 상황이 비일비재할 것이다. ‘충(忠)’은 사람을 대하는 나의 내면적 자세에 관한 것이다. 인용 목차 전문 / 본문 공자 철..
13. 아예 재판조차도 없는 세상에 대한 꿈 12-13.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송사를 듣고 결단하는 데 있어서는 나 또한 남과 같이 잘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기필코 원하는 것은 이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송사를 일으킬 일이 없도록 만드는 정치를 행하는 것이다.” 12-13. 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대학4장)” 내가 살아가면서 공자를 존경하게 만드는 공자의 위대한 발언이다. 이것은 역사적 공자의 실제발언이었을 것이다. 만약 후대에 기술된 것이라 할지라도 공자사상의 정수를 꿰뚫은 자의 명언일 것이다. 송사가 일어날 일이 없는 이상사회, 그 유토피아를 우리는 만들어볼 수가 없을까? 변호사를 양산하여 송사가 비즈니스가 되어가고, ‘법률서비스’ 운운하면서 인간세를 이간질로 가득 차 버리..
12. 자로의 결단력과 실천력 12-12.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편린의 진실된 말만 듣고도 옥사(獄事)를 결단할 수 있는 자는 유자(由: 자로)뿐일 것인저!” 주변 사람들이 자로를 평한 말이 있다: ‘자로는 한 번 결단한 것은 즉각 실행에 옮기지 않는 법이 없었다.’ 12-12. 子曰: “片言可以折獄者, 其由也與?” 子路無宿諾. ‘무숙낙(無宿諾)’의 해석에는 고주와 신주가 좀 엇갈리지만 나는 신주를 취하였다. 직역하면 ‘승낙한 것을 실행에 옮기는 데 날을 묵히는 법이 없었다’는 뜻이다. 5-13과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편해에서도 말했지만, 본 장(12)과 다음 장(13)은 송사에 관련된 공자의 로기온자료(가라사대 파편)로서 대화가 아니다. 본 편의 전체 성격에서는 이질적이지만, 앞의 정..
11. 주어진 신분답게 12-11.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공자에게 정치를 물었다. 12-11. 齊景公問政於孔子. 공자가 대답하였다: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아버지가 아버지답고, 아들이 아들다우면 정치는 잘 돌아가게 되어있는 것이오이다.” 孔子對曰: “君君, 臣臣, 父父, 子子.” 경공이 기뻐 말하였다: “좋구나! 그대의 말이여! 진실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고,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고, 아들이 아들답지 못하다면, 곡식이 쌓여있다 한들 내 어 찌 그것을 먹고 즐기는 삶을 살 수 있겠는가?” 公曰: “善哉! 信如君不君, 臣不臣, 父不父, 子不子, 雖有粟, 吾得而食諸?” 제나라는 지금 산동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동방의 대국, 강태공의 나 라! 임치(臨淄)를 수도로..
10. 덕을 숭상하는 법과 미혹됨을 분별하는 법을 말하다 12-10. 자장이 덕(德)을 높이고 미혹됨[惑]을 분변하는 방법에 관해 여쭈었다. 12-10. 子張問崇德, 辨惑.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충(忠)과 신(信)을 내 가슴속의 원칙으로 삼고, 의(義)를 보면 곧바로 의를 실천하는 것, 그것이 바로 덕을 높이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좋아하면 그것이 잘되기를 바라고, 싫어하면 그것이 못되기를 바란다. 이미 잘되기를 바라면서 또 못되기를 바라는 인간의 모순된 감정, 그것이 바로 미혹[惑] 이니라. 이런 노래가 있지 않니? ‘진실로 내면의 풍요로움을 구하지 아니 하고 단지 외면의 색다름만 구해 떠도는 너 인간이여!’ 인간의 미혹된 모습이로다.” 子曰: “主忠信, 徙義, 崇德也. 愛之欲其生, 惡之欲其死...
9. 증세하기보다 감세해야 한다 12-9. 노나라의 군주 애공(公)이 유약(有若)에게 물었다: “올해도 기근이 심하다. 재정이 부족하도다.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12-9. 哀公問於有若曰: “年饑, 用不足, 如之何?” 유약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왜 십 분의 일의 세법을 쓰지 않으시오니이까?” 有若對曰: “盍徹乎?” 애공이 말하였다: “십 분의 이로도 내 오히려 부족하거늘, 어찌 십 분의 일의 세법을 쓰라는 말인가?” 曰: “二, 吾猶不足, 如之何其徹也?” 유약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백성이 풍족한데 임금께서 누구와 더불어 부족하실 수 있으며, 백성이 부족한데 임금께서 누구와 더불어 풍족하실 수 있겠나이까?” 對曰: “百姓足, 君孰與不足? 百姓不足, 君孰與足?” 애공(哀公)은 노나라 말년의 허약한..
8. 문(文)과 질(質)은 같은 것으로 조화시키려 해야 한다 12-8. 위나라 대부 극자성(棘子成)이 말했다: “군자는 질(質)로써 충분하다. 어찌 하여 문(文)해야 한다고 그리 법석을 떠는가?” 12-8. 棘子成曰: “君子質而已矣, 何以文爲?” 이 말을 들은 자공이 탄식하여 말하였다: “아~ 애석토다! 저자가 군자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보라! 사두마차가 저자의 혓바닥에서 떨어진 실언을 따라잡지 못하는구나! 문(文)이 결국 질(質)과 같은 것이며, 질(質)이 결국 문(文)과 같은 것이다. 문ㆍ질은 빈빈해야 하는 것이다. 호랑이나 표범의 가죽에서 털을 벗기고 나면, 털 없는 양가죽이나 개가 죽과 무엇이 다르랴! 군자가 질로써 충분하다면 털 없는 가죽일 뿐이로다!” 子貢曰: “惜乎! 夫子之說, 君子也. 駟不及..
7. 정치의 삼요소: 먹을거리, 군사력, 믿음 12-7. 자공이 정치를 여쭈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먹을 것을 풍족케 하고, 군사력을 풍족케 하고, 백성들에게 믿음을 주는 것이 곧 정치다.” 12-7. 子貢問政. 子曰: “足食. 足兵. 民信之矣.” 자공이 반문하였다: “부득이 하여 반드시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이 셋 중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하오리이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병(兵)을 버려라.”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何先?” 曰: “去兵.” 자공이 또 반문하였다: “부득이 하여 반드시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이 둘 중 무엇을 버려야 하오리이까?”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식(食)을 버려라! 예로부터 전쟁이 나서 죽든, 기아로 죽든 인간의 죽음이란 불가피하게 있어온 것이다. ..
6. 참소와 하소연을 통해 보는 현명함이란 12-6. 자장이 사리의 밝음(明)에 관하여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물에 젖듯이 서서히 스며드는 참언(讒言)과 피부로 느끼듯이 절박하게 다가오는 무고(誣告)의 호소가 먹혀들지 않는 사람이라면 밝다고 일컬을 만하다. 물에 젖듯이 서서히 스며드는 참언과 피부로 느끼듯이 절박하게 다가오는 무고의 호소가 먹혀들지 않는다면 어디 밝을 뿐이겠나? 고원한 경지의 인물이라 해야겠지.” 12-6. 子張問明. 子曰: “浸潤之譖, 膚受之愬, 不行焉. 可謂明也已矣. 浸潤之譖膚受之愬不行焉, 可謂遠也已矣.” 우선 서양문화권에서는 밝음이라 하면 초월적 세계에 대한 인간의 지식, 즉 그노시스(gnosis)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황하문명권의 사람들에게, 특히 여기서 논의되고 있..
5. 공경하면 모든 사람들이 다 형제 12-5. 사마우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형제가 있는데, 나 홀로 없구나!” 12-5. 司馬牛憂曰: “人皆有兄弟, 我獨亡.” 자하가 위로하여 말하였다: “나 상(商, 자하의 실명)은 이와 같이 들었 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운명이 있는 것이요, 부(富)하고 귀(貴)하게 되는 것은 하늘에 달린 것이다.’ 군자는 경건하여 실수가 없고, 사람들과 더불어 공손하고 예(禮)가 있으면 사해지내(四海之內)의 동포들이 모두 형제이니, 군자가 어찌 형제 없음을 근심하리오?” 子夏曰: “商聞之矣: 死生有命, 富貴在天. 君子敬而無失, 與人恭而有禮. 四海之內, 皆兄弟也. 君子何患乎無兄弟也?” 사마의 언급 내용을 무도하고 포악한 형 환퇴(桓魋)의 죽음을 전제로 한 동..
4. 군자란 근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12-4, 사마우(司馬牛)가 군자(君子)를 여쭈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근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12-4. 司馬牛問君子. 子曰: “君子不憂不懼.” 그러자 사마우가 반문하였다: “근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기만 한다면 곧 군자라 일컬을 수 있겠나이까?” 曰: “不憂不懼, 斯謂之君子已乎?”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안으로 살피어 고통 받을 일이 없는데, 무엇을 근심하며 무엇을 걱정하리오!” 子曰: “內省不疚, 夫何憂何懼?” 12-3과 12-4의 동일한 문답패턴과 동일한 주제 전개양식에 새삼 놀라움 을 금치 못한다. 상당히 양식화된 문체의 소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오리지날한 맛은 떨어진다. ‘내성불구(內省不疚)’의 ‘구(疚..
3. 말을 참는 게 인(仁)이라고 사마우에게 알려주다 12-3. 사마우(司馬牛)가 인(仁)을 여쭈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인한 사람은 말 더듬듯이 어렵게 한다.” 12-3. 司馬牛問仁. 子曰: “仁者其言也訒.” 그러자 사마우가 반문하였다: “그럼 말을 더듬듯이 어렵게 하기만 하면 곧 인(仁)하다고 일컬을 수 있겠나이까?” 曰: “其言也訒, 斯謂之仁已乎?”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무엇이든 실천하기가 어려운 것인데, 말을 더듬듯이 어렵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느뇨?” 子曰: “爲之難, 言之得無訒乎?” 사마우(司馬牛)는 성이 사마(司馬, 혹은 자마子馬)이고 이름이 경(耕). 자 (字)가 자우(子牛). 송나라사람(宋人)으로 일컬어진다. 공안국의 주에 의하면 이 사람은 이름이 리(犁)이며 공자 주유시에..
2. 중궁에게 경(敬)과 서(恕)를 가르치다 12-2. 중궁(仲弓)이 인(仁)을 여쭈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집 문을 나가면 큰 손님을 뵈온 듯이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큰 제사를 받들 듯이 하라.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도 베풀지 말라. 그리하면 나라에서도 원망 받는 일이 없을 것이며 집에서도 원망 받는 일이 없을 것이다.” 12-2. 仲弓問仁. 子曰: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己所不欲, 勿施於人. 在邦無怨, 在家無怨.” 중궁이 대답하였다: “옹(雍) 제가 불민하오나 이 말씀을 공경되이 따르겠나이다.” 仲弓曰: “雍雖不敏, 請事斯語矣.” 우선 전 장과의 양식적 일치가 눈에 띈다. 시작과 끝이 사람만 바뀌었을 뿐 동일한 주제에 대한 사제문답의 동일한 양식이다. 시작 끝 제1장 안..
1. 사적 욕망을 극복하여 예를 회복하라 12-1 안연이 인(仁)을 여쭈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자기를 이기어 예(禮)로 돌아가는 것을 인(仁)이라고 한다. 하루라도 자기를 이기어 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천하가 모두 인(仁)으로 돌아간다. 인을 실천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로 말미암는 것이니, 어찌 타인으로 말미암아 인을 실천할 수 있겠느뇨?” 12-1 顔淵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안연이 말씀드렸다: “그 세목을 여쭙겠나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도 말지어다.” 顔淵曰: “請問其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
안연 제십이(顏淵 第十二) 편해(篇解) ‘안연’이라는 편명은 물론 상례(常例)에 따라 첫 구절 ‘안연문인(顔淵問仁)’에서 머릿글자 두 개를 딴 것이지만 벌써 이 편명 하나에서 이 편의 성격이 다 간파될 수 있다. 우선 제자가 물은 것이다. 누구에게 뭘 물었나? 공자에게, 인(仁)을 물은 것이다. 우선 안회라는 인물은 공단 내에서 가장 중후한 제자이다. 그리고 또 인(仁)이라는 것은 공단이 추구한 가치 중에서 가장 중후한 주제이다. 그러니까 중후한 제자들 이 중후한 테마들에 관하여 공자에게 묻고 그것에 대해 공자가 답하는 문답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제문답(師弟問答) 형식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타 파편도 사제문답이 아닐지라도 대부분이 문답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냥 일 방적인 공자..
25. 자로와 증석, 염유, 공서화가 각자의 이상을 얘기하다 11-25. 자로(子路)와 증석(曾晳)과 염유(冉有)와 공서화(公西華)가 공자를 모시고 대청마루에 둘러앉아 있었다. 이때 공자께서 입을 여시었다: “내가 너희들보다 하루라도 더 나이를 먹었다고 나를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 너희들은 평소 말하기를,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투덜거리지만, 만약 여기 어떤 사람이 있어 너희들을 기용키 위해 그 사람됨을 알아보려고 한다면 과연 무엇으로써 너희들은 자신을 알리려느냐? 각자 포부를 말해보렴.” 11-25. 子路ㆍ曾晳ㆍ冉有ㆍ公西華侍坐. 子曰: “以吾一日長乎爾, 毋吾以也. 居則曰: 不吾知也! 如或知爾, 則何以哉?” 이에 자로가 대뜸 쌈박하게 대답하여 말하였다: “천승의 나라가, 강대국 사이에 끼어..
24. 공자가 말 잘하는 사람을 미워한 이유 11-24, 자로(子路)가 자고(子)를 비읍(費邑)의 읍제(邑宰)로 삼았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멀쩡한 남의 자식 하나 버리겠구나!” 11-24. 子路使子羔爲費宰. 子曰: “賊夫人之子.” 자로가 말씀드렸다. “백성이 있고, 사직이 있으면 정치를 하면서도 배울 수 있는 게 아닐까요? 하필 책을 읽고 난 연후에만 배운다고 말할 수 있겠나이까?” 子路曰: “有民人焉, 有社稷焉. 何必讀書, 然後爲學?”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이러기에 내가 말재주가 있는 자가 밉다고 평소 말하는 것이다.” 子曰: “是故惡夫佞者.” 자로는 공자보다 9세 연하, 자고는 30세 연하, 자로는 통이 큰 사람이라 별 생각없이 후배 제자를 말썽 많은 비읍의 읍재로 삼았다. 자로..
23. 대신(大臣)과 구신(具臣) 11-23. 계씨의 집안사람인 계자연(季子然)이 여쭈었다: “우리집 가신 노릇을 하고 있는 중유(仲由: 자로)와 염구는 훌륭한 신하라고 일컬을 만하나이까?” 11-23. 季子然問: “仲由ㆍ冉求可謂大臣與?”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는 그대가 좀 색다른 질문을 할 것으로 기대했었는데, 겨우 유(由: 자로)와 구(求: 염구)에 관한 질문을 하는구나. 이른바 훌륭한 신하라고 하는 것은 있는 동안은 도(道)로써 임금을 섬기고, 그것이 불가능하게 되면 곧 떠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유와 구는 그만한 수준은 못 되고 보통 신하로서 숫자를 채우고 있다고 일컬을 수 있다.” 子曰: “吾以子爲異之問, 曾由與求之問. 所謂大臣者: 以道事君, 不可則止. 今由與求也, 可謂具臣矣.” 계..
22. 광 땅에서 시련을 당할 때 안연이 한참 늦게 오다 11-22, 공자께서 광 땅에서 포위되어 죽음을 두려워해야 할 곤경에 빠져있었다. 이때 안연은 뒤쳐져 있었다. 그가 뒤늦게야 당도하자 공자는 말씀하시었다: “회(同: 안연의 이름)야! 난 네가 죽은 줄로만 알았다.” 11-22. 子畏於匡, 顔淵後. 子曰: “吾以女爲死矣.” 이에 안연은 말하였다: “선생님께서 살아계시거늘 저 회(回)가 어찌 감히 죽을 수 있겠나이까?” 曰: “子在, 回何敢死?” 참으로 눈물을 자아내는, 너무도 처참한 극한상황에서 너무도 훈훈한 인간의 사랑과 운명의 확신을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다. 인간의 의지를 뛰어넘는 보편적 가치에 대한 동경과 믿음이 서려있다. 「자한」 5를 보라! 똑같이 ‘자외어광(子畏於匡)’이라는 특별한 양식적..
21. 공자, 사람에 따라 다르게 가르치다 11-21. 자로가 여쭈었다: “바른 도리를 들으면 곧바로 실행해야 하오니이까?”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부모형제가 살아있는데, 어떻게 바른 도리를 듣는다고 곧바로 그것을 실행할 수 있겠느냐!” 11-21. 子路問: “聞斯行諸?” 子曰: “有父兄在, 如之何其聞斯行之?” 엄유가 여쭈었다: “바른 도리를 들으면 곧바로 실행해야 하오니이까?”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암 그렇구 말구. 바른 도리를 들으면 곧바로 그것을 실행해야 하느니라.” 冉有問: “聞斯行諸?” 子曰: “聞斯行之.” 이 이야기를 두 번 다 옆에서 들은 공서화(西)가 말하였다: “유(由: 자로)가 ‘바른 도리를 들으면 곧바로 실행해야 하오니이까’라고 물었을 때는 공자께서 ‘부모형제가 살아있..
20. 군자와 겉모습만 장엄한 사람 11-20.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말하는 것이 돈독하게 보인다고 그런 사람과 더불어하는 사람을, 군자(君子)라고 해야 할까? 외면만 그럴싸하게 꾸미는 자라고 해야 할까?” 11-20. 子曰: “論篤是與, 君子者乎? 色莊者乎?” 이 장의 해석에 있어서 고주와 신주는 확연히 갈린다. 나는 신주를 따랐다. 고주와 신주의 가장 큰 차이는 우선 선인(善人)을 과정적 초보인간으로 보는가, 목표로서의 완성된 인간으로 보는가에서 엇갈린다. 신주는 선인을 철저히 과정적 초보만으로 보지만 고주는 인생의 목표로서의 한 이데아로서 본다. 따라서 신주는 본 장을 완전히 앞 장과 단절시켰지만, 고주는 본 장을 앞 장의 연속으로 보는 것이다. 즉 선인에 대한 규정으로 보는 것이다. 선인의 내..
19. 선인(善人)이란 11-19. 자장이 선인(善人)의 도(道)에 관해 여쭈었다. 11-19. 子張問善人之道.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성인의 발자취를 밟고 따라가는 각고의 노력이 없으면 또한 저 깊은 경지에는 들어갈 수가 없다.” 子曰: “不踐迹, 亦不入於室.” 우선 ‘선인(善人)’이라는 말의 개념이 확연하지 않다. 인간이 살아가는 과 정에 있어서의 어떠한 이데아티푸스로서의 과정적 인간의 상(像)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군자(君子)와도 같은 어떤 인생의 최종적 목표로서의 상(像)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신주는 철저하게 선인(善人)을 낮은 단계의 인간, 아직 배움의 단계에도 가지 못한 미숙한 자, 그러나 착함은 유지하고 있는 자로서 보고 있 다. 그러나 나는 선인(善人)을 그런 수준에서 규정할 필요..
18. 안회와 자공에 대한 평가 11-18.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앞서 말한 인물들에 비한다면, 안회야말로 완벽에 가까웠지! 그러나 그는 가난하여 자주 끼니를 굶었단다. 11-18. 子曰: “回也其庶乎, 屢空. 사(賜: 자공)는 천운을 타지 않는데도 재화가 늘어났다. 그 녀석은 억측을 해도 자주 들어맞았다.” 賜不受命, 而貨殖焉, 億則屢中.” 제설이 분분하나, 모든 설을 참고하여 번역에 신중을 기한 것이다. 잘 살펴보기 바란다. 우리말에 ‘재물이 따른다’, ‘재복이 있다’는 표현이 있는데 자공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와 대비하여 안회의 가난을 언급한 것이다. 가난 속에서도 완벽한 인간! 안회의 지긋한 성격, 고요한 성품이 상상이 간다. ‘서(庶)’는 가깝다는 뜻이다. 이것은 안회가 도(道)의 경..
17. 자고, 증삼, 자장, 자로에 대한 평가 11-1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시(柴: 자고)는 어리석고, 삼(參: 증삼實參)은 노둔하고, 사(師: 자장子張)는 치우쳤고, 유(由: 자로子路)는 거칠다.” 11-17. 柴也愚, 參也魯, 師也辟, 由也喭. 제자의 결점만을 말한 유례가 별로 없기 때문에 편집자가 ‘자왈(子曰)’을 뺐다는 설도 있고, 요시카와는 다음 18장에서 공자가 안회와 자공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제3자가 그러한 분위기를 흉내내어 네 사람에 대한 평을 한 것을 공자가 시인한 정도의 이야기일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나는 공자의 단도직입적인 평어로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모두 쿨한 멘트이므로 최소한 이 4인 계열의 문하에서 전승된 파편은 아닐 것이다. 제자들의..
16. 소자들아 염구는 우리의 무리가 아니니 성토하라 11-16. 계씨는 주공(周公)보다도 부유한데도, 염구 저 놈은 계씨를 위해 불쌍한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쥐어 짜내어 계씨의 재산을 늘려주었다. 11-16. 季氏富於周公, 而求也爲之聚斂而附益之.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저 놈은 우리의 무리가 아니로다! 아해들아! 북을 울려라! 저 놈을 공격함이 옳다!” 子曰: “非吾徒也. 小子鳴鼓而攻之, 可也.” 염구는 현실감각이 탁월한 관료형의 인간이었기 때문에 어디에 가든지 그 상황에 맞게 충직하게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공자가 귀로의 꿈을 실현할 수 있었던 것도 염구 덕분이었다. 염구는 나이가 자공과 비슷하다. 퍽 지긋한 인물로서 공자와 고난의 행군도 같이 했다. 그리고 공자에게도 의리를 저버린 적이 없다. 그..
15. 과유불급(過猶不及) 11-15. 자공이 공자께 여쭈었다: “사(師: 자장)와 상(商: 자하)을 비교한다면 누가 더 훌륭합니까?” 11-15. 子貢問: “師與商也孰賢?” 공자께서 이에 말씀하시었다: “사(師)는 과(過)하고, 상(商)은 불급(不及)하다.” 子曰: “師也過, 商也不及.” 그러자 자공이 말했다. ‘그렇다면 사(자장)가 더 낫겠군요?“ 曰: “然則師愈與?”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과한 것이 불급한 것보다 더 나을 것은 없다.” 子曰: “過猶不及.” 자공은 사람을 비교해보는 습벽이 있다(14-31). 자공은 대선배(선진先進). 후배, 즉 후진(後進)들에 대한 공자의 비교적 평어가 듣고 싶은 것이다. 사(사장)는 48세 연하로 최연소의 사람인데 성격이 좀 급한 면이 있었다. 그러나 매우 활..
14. 당에 오르는 경지와 실에 들어오는 경지 11-14. 공자께서 자로가 현악기 슬을 연주하는 것을 듣고 말씀하시었다: “유(由: 자로)가 슬을 타는구나! 어찌 굳이 내 집안에서 뜯을 필요가 있겠나?” 11-14. 子曰: “由之瑟奚爲於丘之門?” 문인들이 공자 말씀을 듣고 자로를 공경하지 않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아서라! 유(由)는 높은 당(堂) 위에 당당히 오른 사람이요, 저 깊은 내실(內室)에만 아직 발을 디밀지 못했을 뿐이다.” 門人不敬子路. 子曰: “由也升堂矣, 未入於室也.” 우리가 보통 ‘금슬(琴瑟)이 좋다’라는 말을 쓰지만, 내외지간에 금(琴)과 슬(瑟)이라는 악기를 주거니 받거니 같이 타는 모습을 일컬은 것이다. 둘 다 아 악기로서 우리나라에 전하여졌다. 금은 보통 칠현금(七絃琴)이라..
13. 창고를 새로 만드는 너 아웃! 11-13. 노나라의 사람들이 장부(府)라는 큰 재물창고를 새로 지었다. 11-13. 魯人爲長府. 민자건이 말하였다: “옛 관습대로 따라 한다고 덧날 일이 있겠는가? 새로 지을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閔子騫曰: “仍舊貫, 如之何? 何必改作?”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저 사람은 평소 말을 하지 않을지언정, 말을 하면 반드시 사리에 들어맞는다.” 子曰: “夫人不言, 言必有中.” 마지막의 ‘중(中)’은 주희가 거성이라고 했지만, ‘적중(的中)’의 ‘중’이며 현대중국어에서도 제4성이다. ‘가운데’를 의미할 때는 제1성이다. 청유들은 ‘장부(長府)’를 『좌전』 소공 25년에 나오는 기사와 관련시켜 해설하는 데[公居於長府], 별로 재미없다. 나는 취하지 않는다. ‘장부(長府..
12. 자로가 제 명대로 살지 못하겠구나 11-12. 제자들이 공자를 옆에서 모시는데 민자건은 그 모습이 은은하였고, 자로는 그 모습이 강건하였고, 염유와 자공은 그 모습이 화락하였다. 이들이 옆에 있을 때 공자는 마냥 즐거운 표정을 지으셨다. 11-12. 閔子侍側, 誾誾如也; 子路, 行行如也; 冉有ㆍ子貢, 侃侃如也. 子樂. 그러나 강직하기만 한 자로의 모 습을 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자로야! 너는 온당한 죽음을 얻지 못할 듯하구나!” “若由也, 不得其死然.” 만년 공자학당의 화목한 정경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있다. 자로에 대한 논평은 삼인칭으로 되어있으나 일인칭으로 바꾸어 번역하였다. 자로의 죽음의 그림자를 쳐다보고 있는 공자의 육감 같은 것이 서려있는 장면이다. 제일 끝의 ‘연(然)’자가 너무..
11. 자로, 귀신을 섬기는 것과 죽음에 대해 묻다 11-11. 계로(季路: 자로)가 귀신(鬼神)을 섬기는 것에 관하여 여쭈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아직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면서,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단 말인가?” 11-11. 季路問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이에 우직한 계로가 다시 여쭈었다: “그럼 이번에는 감히 죽음에 관하여 여쭙고자 하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아직 삶을 모르면서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敢問死. 曰: “未知生, 焉知死?” 『논어』 전체를 통관하는 일관된 주제가 반복되면서 우리의 가슴을 파고 든다. 유교는 반종교적인 철학이 아니라, 지극히 종교적인 철학이다. 유교를 피상적인 규범적 윤리체계(the system of normative eth..
10. 문인들이 공자의 말을 어기고 안연을 후장지내다 11-10. 안연이 죽었다. 공자의 문인들이 그의 장례를 후하게 치르기를 원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안된다.” 그런데 문인들이 후하게 치르고 말았다. 11-10. 顔淵死, 門人欲厚葬之, 子曰: “不可.” 門人厚葬之.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안회는 말이다, 날 보기를 아버지처럼 대했는데, 나는 그를 자식처럼 소담(素淡)하게 대해주지 못했구나. 이건 내 잘못이 아니로다. 진실로 너희들이 잘못한 것이로다.” 子曰: “回也視予猶父也, 予不得視猶子也. 非我也, 夫二三子也.” 7장부터 10장까지 한번 원문을 봐주기 바란다. 원문의 시작구에서 놀라운 일치점을 발견할 것이다. 바로 ‘안연사(顔淵死)’라는 짤막한 한마디로 모든 파편이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
9. 안연이 죽자 공자가 과하게 애통하다 11-9. 안연이 죽자, 공자께서는 그의 집으로 가서 곡을 하시었다. 그러나 곡을 하시다 못해 흐느껴 우시었다. 이때 따라간 제자들이 수군거렸다: “우리 선생님께서 진짜 흐느껴 우신다.” 11-9. 顔淵死, 子哭之慟. 從者曰: “子慟矣.” 이 말을 들은 공자는 말씀하시었다: “그랬는가? 내가 정말로 흐느껴 울었느냐? 아서라, 내 저 사람을 위해 흐느끼지 않는다면 누굴 위해 흐느끼리오!” 曰: “有慟乎? 非夫人之爲慟而誰爲!” 더없는 감동을 전하는 공자의 말씀이다. 인간적 공자의 극치라 할 것이다. ‘곡(哭)’은 의례적 곡이다. 여기 ‘통(働)’은 상례와 관련하여 타 고전에 쓰인 용례가 없다. 이것은 순결한 감정에 대한 『논어』의 표현이다. ‘통(働)’은 북받치는 극..
8. 하늘이 나를 버리셨구나! 11-8. 안연이 죽자, 공자는 울부짖었다: “아~! 하늘이 나를 버리셨구나! 하늘이 나를 버리셨구나!” 11-8. 顔淵死. 子曰: “噫! 天喪予! 天喪予!” 안연의 죽음, 가장 신뢰하던 제자의 상실은 공자에게 더없는 비탄과 절망과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자기 학문의 계승자의 상실은 공자에게 있어서는 자기 존재기반의 상실이었고, 실존의 파멸이었다. 공자는 예수와는 달리 ‘역사의 신(God of History)’을 믿었다. 인문전통 그것이야말로 하느님의 유일한 계시였다. 그것이 사문(斯文)이었다. 이 사문을 가장 정확하게 후대의 역사 속에 서 이어가리라고 믿었던 그 실존의 고리가 끊겨나가는 절망감은 실로 실존의 그룬트(Grund, 땅)의 붕괴일 뿐 아니라 역사의 붕괴였고, 하늘..
7. 안연이 죽자 그의 아버지가 외곽을 사주길 공자에게 청하다 11-7. 안연이 죽었다. 그 아버지 안로(顔路)가 공자의 수레를 팔아 관 밖의 화려한 외곽을 만들어주실 것을 청하였다. 11-7. 顔淵死, 顔路請子之車以爲之槨.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잘난 자식이든 못난 자식이든, 각기 그 부모에게는 다 귀한 자식일 뿐이다. 나는 내 아들 리(鯉)가 죽었을 때 관은 만들어주었으나 외곽은 만들어주지 못했다. 그냥 도보로 걸어다닐 생각을 하고서 내 아들에게 곽을 만들어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래도 대부들과 같이 다니는 사람, 어찌 수레 없이 걸어다닐 생각을 하고 네 아들 곽을 만들어주겠느냐?” 子曰: “才不才, 亦各言其子也. 鯉也死, 有棺而無槨. 吾不徒行以爲之槨. 以吾從大夫之後, 不可徒行也.” 안..
6. 안연의 호학 11-6. 계강자(季康子)가 물었다: “제자 중에서 누가 배우기를 좋아합니까?” 11-6. 季康子問: “弟子孰爲好學?” 공자가 대답하여 말씀하시었다: “안회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배우기를 너무도 좋아했지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명이 짧아 죽었습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孔子對曰: “有顔回者好學,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옹야」 2와 동일사태의 이전(異傳)이다. 애공이 계강자로 대치되었고, 공자 말씀이 보다 간결하게 처리되었으나 그 심오한 맛인즉 못지 않다. ‘명이 짧아 죽었다’는 말과, ‘지금은 이 세상에 있지 않다’라는 말이 연거푸 반복되면서 기묘한 효과를 낸다. 깊은 아쉬움, 깊은 그리움,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아주 절망적인 탄식이 저 어두운 저승의 계곡에서 울려퍼지..
5. 남용이 백규의 시를 여러 번 읊다 11-5. 남용이 「백규(白圭)」라는 시를 하루에도 여러 번 반복해서 외웠다. 그 시가 그 인품에 젖었다. 공자께서 형님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시었다. 11-5. 南容三復白圭, 孔子以其兄之子妻之. 「백규」라는 시는 지금 『시경』 대아 「억(抑)」에 들어있다. 白圭之玷 백규 옥의 티는 尙可磨也 그래도 갈아 없앨 수 있건만 斯言之玷 일상적 말의 티는 不可爲也 갈아 없앨 수 없어라 나라를 어지럽히는 위정자를 계고(戒告)하는 통렬한 비판의 시이다. ‘삼복(三復)’이란 꼭 세 번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주 외워 그 의미가 몸에 배는 것을 말한 다. 5-1B와 동일한 사실에 대한 이전(異傳)이다. ‘삼(三)’과 ‘처(妻)’는 모두 거성이다. ○ 『시경』의 대아(大雅) 「억(抑)..
4. 민자건을 칭찬하는 말에 고을 사람들도 비판을 못하다 11-4.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참말로 효성스럽구나! 민자건(閔子騫)이여! 외간 사람들이 그 부모ㆍ형제 집안사람들이 그를 칭찬하는 말에 조금도 트집을 잡지 못하다니!“ 11-4. 子曰: “孝哉閔子騫! 人不間於其父母昆弟之言.” 민자건은 안회와 더불어 덕행으로 꼽히었고, 안회보다도 나이가 많은(15세 위) 점잖은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계모의 학대를 받고 자라났으면서도 조금도 효심을 잃지 않았고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았다(6-7에서 기술). 가까운 집안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다. ‘간(間)’은 거성이다. ○ 호인이 말하였다: “가까운 부모ㆍ형제가 그 효도와 우애를 칭찬하는데, 동네사람들도 다 같이 탄복하고 이의(異意)를 달지..
3. 공자의 말에 의문 나는 게 없던 안회 11-3.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사랑하는 안회여! 그대는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아니로다! 내 말에 기뻐하지 아니 하는 적이 없으니!” 11-3. 子曰: “回也非助我者也, 於吾言無所不說.” 이것은 안회를 꾸짖는 말이 아니라, 안회를 상찬하는 말이다. 2-9의 ‘안회는 결코 어리석지 않도다[回也不愚]!’라는 말과 같이 상조(相照)하여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한 인간을 상찬하는 말이 이러한 격조를 과시한다는 것, 참 옛사람들의 언어사용의 미묘함과 포근한 정감에 찬탄을 금치 못한다. ‘說’은 열(悅)이라고 발음한다. ○ ‘조아(助我)’라 한 것은 「팔일(八佾)」 8에서 ‘나를 깨우치는 자, 상(자하)이로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의문이 있어야 학문이 서로 자라난..
2. 네 분야의 열 명의 뛰어난 이들 11-2.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진(陳)나라와 채(蔡)나라에서 나의 고난에 동참했던 제자들은 애석하게도 모두 취직할 기회를 잃고 말았다.” 11-2. 子曰: “從我於陳ㆍ蔡者, 皆不及門也.” 덕행(德行)에는 안연ㆍ민자건ㆍ염백우ㆍ중궁이 손꼽히고, 德行: 顔淵ㆍ閔子騫ㆍ冉伯牛ㆍ仲弓. 언어(言語)에는 재아ㆍ자공이 손꼽히고, 言語: 宰我ㆍ子貢. 정사(政事)에는 염유ㆍ계로가 손꼽히며, 政事: 冉有ㆍ季路. 문학(文學)에는 자유ㆍ자하가 손꼽히노라. 文學: 子游ㆍ子夏 ‘진ㆍ채’의 역사를 상세히 논할 필요는 없다. 공자의 의식 속에 그것은, 자기의 괴로운 떠돌이 주유의 생활역정 속에서도 가장 괴로웠던 체험으로 남아 있는 에너지 덩어리일 뿐이다. BC489년경 진ㆍ채의 국경 언저리에서..
1. 질박한 선배들과 잘 갖춰진 후배들 11-1.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내 밑에서 공부한 자는 크게 선배동아리와 후배동아리로 나뉜다. 예악에 먼저 나아간 선배동아리는 지금 보아도 촌스럽다. 그런데 예악에 뒤늦게 나아간 후배동아리는 썩 군자다웁다. 그러나 이들 간에 누구를 선택하라 한다면, 나는 예악에 먼저 나아간 촌스러운 자들을 따르겠다.” 11-1. 子曰: “先進於禮樂, 野人也; 後進於禮樂, 君子也. 如用之, 則吾從先進.” 참으로 존경스러운 공자의 말이다. ‘선진(先進)’ 그룹에는 공자의 고난길에 참여한 체험이 있는 자로ㆍ안연ㆍ염유ㆍ재아ㆍ자공ㆍ민자건ㆍ염백우ㆍ중궁ㆍ원헌ㆍ자고ㆍ공서화 등이 들어갈 것이고, ‘후진(後進)’ 그룹이란 귀로(歸魯) 후 공자학단의 규모가 짜여지고 커리큘럼이 완성된 이후에 들어와..
수신기(搜神記) 목차 간보(干寶) 搜神記新序 / 搜神記原序 ㄱ 가국마화(猳國馬化)가문합취처(價文合娶妻)가옹무두(賈雍無頭)가의복조부(賈誼鵩鳥賦)가정죽적(柯亭竹笛)가패란설궁내사(賈佩蘭說宮內事)가회만가(嘉會挽歌)갈유승목양(葛由乘木羊)갈조거민루(葛祚去民累)갈현법술(葛玄法術)강낭박계(絳囊縛紒)강동여복(江東餘腹)강수자립(僵樹自立)강호원일(羌豪袁釰)개석문자(開石文字)개염은형(介琰隱形)건안녀요(建安女妖)건업부인(建業婦人)견화실중(犬禍室中)경사요언(京師謠言)계자훈음담공경(薊子訓飮啖公卿)고산군(高山君)고소노모(古巢老姥)고야자살원(古冶子殺沅)곡분정녀시(鵠奔亭女尸)곡오토자문(穀烏菟子文)곡창함란(鵠蒼銜卵)공도함호(邛都陷湖)공두청천(孔竇淸泉)공손연수괴(公孫淵數怪)공유방구(孔愉放龜)공자담오유(孔子談五酉)공자야몽(孔子夜夢)과라(蜾蠃..
건업부인(建業婦人) 建業有婦人背生一瘤, 大如數斗囊, 中有物, 如繭栗, 甚衆, 行卽有聲. 恆乞於市. 自言: “村婦也, 常與姊姒輩分養蠶, 己獨頻年損耗, 因竊其姒一囊繭焚之, 頃之, 背患此瘡, 漸成此瘤. 以衣覆之, 卽氣閉悶; 常露之, 乃可, 而重如負囊.” 인용 목차
공도함호(邛都陷湖) 邛都縣下有一老姥, 家貧, 孤獨, 每食, 輒有小蛇, 頭上戴角, 在床間, 姥憐而飴之. 食後稍長大, 遂長丈餘. 令有駿馬, 蛇遂吸殺之, 令因大忿恨, 責姥出蛇. 姥云: “在床下.” 令卽掘地, 愈深愈大, 而無所見. 令又遷怒, 殺姥. 蛇乃感人以靈言, 瞋令“何殺我母?當爲母報讎.” 此後每夜輒聞若雷若風, 四十許日, 百姓相見, 咸驚語: “汝頭那忽戴魚?” 是夜, 方四十里, 與城一時俱陷爲湖, 土人謂之爲陷湖, 唯姥宅無恙, 訖今猶存. 漁人採捕, 必依止宿, 每有風浪, 輒居宅側, 恬靜無他. 風靜水淸, 猶見城郭樓櫓畟然. 今水淺時, 彼土人沒水, 取得舊木, 堅貞光黑如漆. 今好事人以爲枕, 相贈. 인용 목차
화정대사(華亭大蛇) 吳郡海鹽縣北鄕亭里, 有士人陳甲, 本下邳人, 晉元帝時寓居華亭, 獵於東野大藪, 欻見大蛇, 長六七丈, 形如百斛船, 玄黃五色, 臥岡下. 陳卽射殺之, 不敢說. 三年, 與鄕人共獵, 至故見蛇處, 語同行曰: “昔在此殺大蛇.” 其夜夢見一人, 烏衣, 黑幘, 來至其家, 問曰: “我昔昏醉, 汝無狀殺我. 我昔醉, 不識汝面, 故三年不相知; 今日來就死.” 其人卽驚覺. 明日, 腹痛而卒. 인용 목차
우탕렵주(虞蕩獵麈) 馮乘虞蕩夜獵, 見一大麈, 射之. 麈便云: “虞蕩!汝射殺我耶?” 明晨, 得一麈而入, 卽時蕩死. 인용 목차
원모원자(猿母猿子) 臨川東興有人入山, 得猿子, 便將歸, 猿母自後逐至家. 此人縛猿子於庭中樹上以示之. 其母便摶頰向人欲乞哀, 狀直謂口不能言耳. 此人旣不能放, 竟擊殺之. 猿母悲喚, 自擲而死. 此人破腸視之, 寸寸斷裂. 未半年, 其家疫死, 滅門. 인용 목차
누고신(螻咕神) 廬陵太守太原龐企, 字子及, 自言其遠祖, 不知幾何世也, 坐事繫獄, 而非其罪, 不堪拷掠, 自誣服之, 及獄將上, 有螻咕蟲行其左右, 乃謂之曰: “使爾有神, 能活我死, 不當善乎.” 因投飯與之. 螻咕食飯盡, 去, 頃復來, 形體稍大. 意每異之, 乃復與食. 如此去來, 至數十日間, 其大如豚. 及竟報, 當行刑, 螻咕夜掘壁根爲大孔, 乃破械, 從之出. 去久, 時遇赦, 得活. 於是龐氏世世常以四節祠祀之於都衢處. 後世稍怠, 不能復特爲饌, 乃投祭祀之餘以祀之, 至今猶然. 인용 목차
화륭가견(華隆家犬) 太興中, 吳民華隆, 養一快犬, 號的尾, 常將自隨. 隆後至江邊伐荻, 爲大蛇盤繞, 犬奮咋蛇, 蛇死. 隆僵仆無知, 犬彷徨涕泣, 走還舟, 復反草中. 徒伴怪之, 隨往, 見隆悶絶. 將歸家. 犬爲不食. 比隆復蘇, 始食. 隆愈愛惜, 同於親戚. 인용 목차
의견총(義犬冢) 孫權時李信純, 襄陽紀南人也, 家養一狗, 字曰黑龍, 愛之尤甚, 行坐相隨, 飮饌之間, 皆分與食. 忽一日, 於城外飮酒, 大醉. 歸家不及, 臥於草中. 遇太守鄭瑕出獵, 見田草深, 遣人縱火爇之. 信純臥處, 恰當順風, 犬見火來, 乃以口拽純衣, 純亦不動. 臥處比有一溪, 相去三五十步, 犬卽奔往入水, 溼身走來臥處, 周迴以身灑之, 獲免主人大難. 犬運水困乏, 致斃於側. 俄爾信純醒來, 見犬已死, 遍身毛溼, 甚訝其事. 睹火蹤跡, 因爾慟哭. 聞於太守. 太守憫之曰: “犬之報恩, 甚於人, 人不知恩, 豈如犬乎!” 卽命具棺槨衣衾葬之, 今紀南有義犬葬, 高十餘丈. 인용 목차
의왕보동소지(蟻王報董昭之) 吳富陽縣董昭之, 嘗乘船過錢塘江, 中央, 見有一蟻, 著一短蘆, 走一頭, 迴復向一頭, 甚惶遽. 昭之曰: “此畏死也.” 欲取著船. 船中人罵: “此是毒螫物, 不可長, 我當蹋殺之,” 昭意甚憐此蟻, 因以繩繫蘆, 著船, 船至岸, 蟻得出. 其夜夢一人, 烏衣, 從百許人來, 謝云: “僕是蟻中之王. 不愼, 墮江, 慚君濟活. 若有急難, 當見告語.” 歷十餘年, 時所在劫盜, 昭之被橫錄爲劫主, 繫獄餘杭. 昭之忽思蟻王夢, 緩急當告, 今何處告之. 結念之際, 同被禁者問之. 昭之具以實告. 其人曰: “但取兩三蟻. 著掌中, 語之.” 昭之如其言. 夜, 果夢烏衣人云: “可急投餘杭山中, 天下旣亂, 赦令不久也」於是便覺. 蟻嚙械已盡. 因得出獄, 過江, 投餘杭山. 旋遇赦, 得免 인용 목차
고소노모(古巢老姥) 古巢, 一日江水暴漲, 尋復故道, 港有巨魚, 重萬斤, 三日乃死, 合郡皆食之. 一老姥獨不食. 忽有老叟曰: “此吾子也. 不幸罹此禍, 汝獨不食, 吾厚報汝. 若東門石龜目赤, 城當陷.” 姥日往視. 有稚子訝之, 姥以實告. 稚子欺之, 以朱傅龜目; 姥見, 急出城. 有靑衣童子曰: “吾龍之子.” 乃引姥登山, 而城陷爲湖. 인용 목차
공유방구(孔愉放龜) 孔愉, 字敬康, 會稽山陰人, 元帝時以討華軼功, 封侯, 愉少時嘗經行餘不亭, 見籠龜於路者, 愉買之, 放於飮不溪中. 龜中流左顧者數過. 及後, 以功封餘不亭侯, 鑄印, 而龜鈕左顧, 三鑄, 如初, 印工以聞, 愉乃悟其爲龜之報, 遂取佩焉. 累遷尙書左僕射, 贈車騎將軍. 인용 목차
수후주(隋候珠) 隋縣溠水側, 有斷蛇邱. 隋侯出行, 見大蛇被傷, 中斷, 疑其靈異, 使人以藥封之, 蛇乃能走, 因號其處斷蛇邱. 歲餘, 蛇銜明珠以報之. 珠盈徑寸, 純白, 而夜有光, 明如月之照, 可以燭室. 故謂之“隋侯珠,” 亦曰“靈蛇珠,” 又曰“明月珠.” 邱南有隋季良大夫池. 인용 목차
황의동자(黃衣童子) 漢時, 弘農楊寶, 年九歲時. 至華陰山北, 見一黃雀, 爲鴟梟所搏, 墜於樹下, 爲螻蟻所困. 寶見, 愍之, 取歸置巾箱中, 食以黃花, 百餘日, 毛羽成, 朝去, 暮還. 一夕, 三更, 寶讀書未臥, 有黃衣童子, 向寶再拜曰: “我西王母使者, 使蓬萊, 不愼, 爲鴟梟所搏. 君仁愛, 見拯, 實感盛德.” 乃以白環四枚與寶曰: “令君子孫潔白, 位登三事, 當如此環.” 인용 목차
학함주보은(鶴銜珠報恩) 噲參, 養母至孝, 曾有玄雀, 爲弋人所射, 窮而歸參, 參收養, 療治其瘡, 愈而放之. 後雀夜到門外, 參執燭視之, 見雀雌雄雙至, 各銜明珠以報參焉. 인용 목차
소이조호산(蘇易助虎産) 蘇易者, 廬陵婦人, 善看産, 夜忽爲虎所取, 行六七里, 至大壙, 厝易置地, 蹲而守, 見有牝虎當産, 不得解, 匍匐欲死, 輒仰視. 易怪之, 乃爲探出之, 有三子. 生畢, 牝虎負易還, 再三送野肉於門內. 인용 목차
손등치병룡(孫登治病龍) 晉魏郡亢陽, 農夫禱於龍洞, 得雨, 將祭謝之. 孫登見曰: “此病龍, 雨, 安能蘇禾稼乎?如弗信, 請嗅之.” 水果腥穢. 龍時背生大疽, 聞登言, 變爲一翁, 求治, 曰: “疾痊, 當有報.” 不數日, 果大雨. 見大石中裂開一井, 其水湛然, 龍蓋穿此井以報也. 인용 목차
진중거상명(陳仲擧相命) 陳仲擧微時, 常宿黃申家, 申婦方産, 有扣申門者, 家人咸不知, 久久方聞屋裏有人言: “賓堂下有人, 不可進.” 扣門者相告曰: “今當從後門往.” 其人便往. 有頃, 還, 留者問之: “是何等?名爲何?當與幾歲?” 往者曰: “男也. 名爲奴. 當與十五歲.” “後應以何死?” 答曰: “應以兵死.” 仲擧告其家曰: “吾能相此兒當以兵死.” 父母驚之, 寸刃不使得執也. 至年十五, 有置鑿於梁上者, 其末出, 奴以爲木也, 自下鉤之, 鑿從梁落, 陷腦而死, 後仲擧爲豫章太守, 故遣吏往餉之申家, 幷問奴所在; 其家以此具告. 仲擧聞之, 歎曰: “此謂命也.” 인용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