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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더 읽을 책들 발라스 듀스, 『그림으로 이해하는 현대사상』 (남도현 옮김, 서울: 개마고원,2002) 현대철학에 대한 알기 쉬운 개론서인 동시에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모범적인 안내서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철학의 임무가 바로 개념의 창조라고 이야기했던 들뢰즈의 입장에 충실하다는 점입니다. 가라타니 고진, 『은유로서의 건축: 언어, 수, 화폐』 (김재희 옮김, 서울: 한나래, 1998) 서양철학의 전통이 ‘건축’이란 은유로 지탱되었음을 폭로하는 책입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맑스, 비트겐슈타인, 들뢰즈 등을 통해서 타자 그리고 타자와의 비대칭적 차이라는 문제를 집요하게 사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박동환, 『안티호모에렉투스』 (강릉: 길, 2001) 서양철학의 논리와 중..
사건과 무의미 지금까지 우리는 생각이 발생하는 조건을 음미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생각의 비밀에 어느 정도 접근하게 된 것 같습니다. 생각의 비밀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생각을 한다고 하더라도, 생각이 우리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생각은 우리가 낯선 사건‘과 우연히 마주쳤을 때, 비자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이 발생하는 조건을 음미하고자 할 때 우리는 최종적으로 ‘사건’이라는 개념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장의 이야기를 마치면서 ‘사건’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자리를 갖도록 할 것입니다. ‘사건’을 다루기 위해서 예를 다시 하나 들어봅시다. 그에게 오..
교환 가능한 것과 교환 불가능한 것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왜 ‘2인칭적 죽음’은 하나의 사건으로서 우리의 생각을 강요하는데 ‘3인칭적 죽음’은 그냥 스쳐가는 것, 우리에게 별다른 생각을 강요하지 않은 채 흘러가는 것일까요? 왜 아내의 밤늦은 귀가는 하나의 사건이 되어 나의 뇌리를 지배하는데, 옆집 아주머니의 행실은 그런 힘을 발휘하지 못할까요? 다시 질문해본다면, 왜 어떤 경우에 나는 사건의 의미를 찾는 사람, 즉 기호의 해석자가 되지만 다른 경우에는 그렇지 않고 단순히 무관심한 방관자가 되는 것일까요? 이것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타자를 두 가지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방식의 차이를 음미해보기 위해 잠시 키르케고르(S. Kierkegaard, 181..
죽음이라는 사건이 우리에게 드러나는 방식 ‘사건’, ‘마주침’ 그리고 ‘기호’는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낯선 것입니다. 이런 낯섦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강요하는 것이지요. 들뢰즈는 이런 낯섦의 의미를 찾는 것을 ‘생각’이라고 여겼습니다. 그가 ‘기호의 해석’이라고 불렀던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실 기호를 해석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삶을 너무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홍조 띤 얼굴, 화장실에서의 콧노래, 남편에게 보내는 미소 등의 기호는 남편을 매우 불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남편이 이런 기호를 해석하려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느끼는 불편함을 해소하려는 어쩔 수 없는 의지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생각’이란 것은 낯섦과 불편함을 친숙함과 편안함..
나의 사유를 강요하는 사건 이제 우리는 우리가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분명 우리는 생각을 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항상 예상치 못한 사건과의 조우를 통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제 결혼한 지 20년이 된 너무나 친숙한 부부가 있다고 합시다. 철학자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부부는 ‘손 안에 있는’ 관계, 즉 너무나 친숙해서 전혀 생각이 발생하지 않는 습관적인 관계에 빠져 있습니다. 서로의 안색만 보아도 두 사람은 상대방의 욕구, 불만족 등을 생각하지 않고도 알게 됩니다. 남편이 아침 밥상에서 반찬을 젓가락으로 뒤적이면, 아내는 금방 오늘 야근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또 역으로 아내가 저녁상에 와인을 올려놓고 새로운 음식을 준비하면, 남편은 아내가 돈이 ..
제1부 철학적 사유의 비밀 사유를 발생시키는 조건들 우리는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 이래로 서양에서는 인간을 보통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은 생각하는 것이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시켜주는 관건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공룡능선을 타고 대청봉에 오를까, 아니면 서북주릉을 타고 대청봉에 오를까?’ ‘그녀가 원하는 것은 진정으로 무엇일까?’ ‘약속 시간이 지났는데도 왜 그 사람은 오지 않을까?’ ‘이 책을 통해서 저자가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등등. 그러나 저는 묻고 싶습니다. 인간이 분명 생각하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과연..
프롤로그 1. 사랑하는 것과 사랑을 문제 삼는 것 햇살이 따사롭지만 그리 덥지는 않은 초가을 날입니다. 한 쌍의 남녀가 카페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부드러운 카푸치노를 마시며, 그들은 잠시 감미롭게 흘러나오는 음악에 취해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가 진지한 얼굴로 남자에게 이야기합니다. “도대체 사랑이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모르겠어. 그런데도 나는 전화를 끊기 전에, 집앞에서 헤어질 때 너한테 사랑한다고 말하거든, 내 생각엔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너도 그런 것 같아. 사랑이 뭔지 잘 모르면서 우리는 습관적으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음악에 취해 있던 남자는 갑작스런 애인의 의문에 얼굴을 붉히며 대답합니다. “아니, 너 왜 그래? 너 지금 무슨 말을..
책을 시작하며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농담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전혀 웃지 않더군요. 웃기는커녕 오히려 제 농담을 노트에 적으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또 어느 때는 전혀 반대되는 일도 있었지요. 저는 진지하게 어떤 철학적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주제였기 때문에 저는 심각하게 논의를 진행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갑자기 학생들이 박장대소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당혹스런 경험들로부터 저는 중요한 사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 이야기가 농담이 되느냐 진담이 되느냐는 저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최종적으로 결정된다는 점입니다. 주변을 한번 둘러보십시오. 여러분의 삶은 수많은 만남으로 이루어져 있지 ..
강신주의 장자수업 강신주 작가 소개, 책을 펴내며 프롤로그: 바람이 붑니다, 이제 대붕의 등에 탈 시간입니다 ① / ② / ③ 1부 대지를 뛰어올라 1. 철학을 위한 찬가(황천 이야기) 장자, 무용의 철학자 내가 밟은 땅만 남기고 모조리 파낸다면 쌀도 밥도 안 나오는 일들의 위대함 2. 사랑의 비극을 막는 방법(바닷새 이야기) 노나라 임금이 몰랐던 것 타자를 절실하게 읽으려면 내가 변하는 것이 사랑 3. 소유하라, 당신의 삶을(빈 배 이야기) 배를 붙여서 황하를 건너려는 사람 소유욕은 자의식과 함께 한다 자신을 비우고 세상에 노니는 사람 4. 바람이 분다, 그러니 살아야겠다(대붕 이야기) ‘곤’은 어떻게 ‘붕’이 되었나 타자의 세계로 이끄는 바람 바람을 따를 것인가, 피할 것인가 5. 소인의 힘, 소인의..
타인의 삶과 한나 아렌트 목차 ‘너’와 ‘나’를 넘어 ‘그 사이’에 존재하기 위하여 1. 타인의 삶을 빼앗는 기술 2. 정치적 선택 속에서 정체성이 매순간 만들어지고 있다 3. 영웅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것 4. 악당과 영웅이 ‘한 사람’의 몸에 공생하는 법 5. 감시했을 뿐인데 마음에 동요가 생기다 6. 타인의 내면을 파괴하는 기술 7. 순전한 무사유 8. 나는 (보이지 않는 권력의) ‘대리인’일 뿐인가 9. 갈등의 파문이 이는 두 경우 10. 자신을 소중히 다루는 법 11. ‘사이’에 존재하는 법 12. 한 사람의 힘 13. 예술을 볼모로 소중한 사람의 비밀을 밀고하다 14. ‘what’을 넘어 ‘who’가 되는 법 15. 표상의 세계에서 현상의 세계로 16. 아무 것도 아닌 인간 17. 감사의 마음..
본 아이덴티티와 미셸 푸코 목차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의심하라 1. ‘나’를 나이게 만드는 것들은, 정말 나다운 것인가 2.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있는 길이 없다! 3. 내가 누구인지 알수록 나는 위험해진다 4. ‘잃어버린 기억’에 추격당하며 점점 고통스러워지다 5. ‘기억할 수 없는 나’가 ‘기억을 찾는 나’를 추격하다 6. 나는 위험인물이다. 그런데 누구에게? 7. 직업은 무엇입니까? 8. 우린 같은 기계의 부속품이야 9. 조직권력이 나의 권력? 10. 훈육의 프로그램도 미처 길들이지 못한 마음 11. 모두 너였어! 널 만든 건 너야! 12. 나를 지워야 내가 될 수 있다 13. 발설된 것은 철회될 수 없고, 시행된 것은 되돌릴 수 없다 14. 애국심의 함정 15. 장애물의 지형도를 지닌 채..
의형제와 미하엘 바흐친 목차 피사체가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앵글을 찾아서 1. 피사체가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앵글을 찾아서 2. 있는 그대로를 최대한 담담히 보여주기 위해 3. 타인의 이해가 어렵다는 걸 이해하는 순간 4. 얼굴 위에 새겨진 이야기의 우주 5. 두 사람의 빛 6. 너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너를 안다 7. ‘존재의 가장 어두운 밤’을 통과하는 동안 8.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 9. 인물에 완전히 동화되지도, 인물과 완전히 거리를 두지도 않는 지탱점 10. ‘에고’와의 내전(內戰) 11. 어깨에 무겁게 닻을 내리고 있는 조직 12. 상처 입은 사람만이 알아보는 서로 닮은 상처 13. 나는 네가 아니다. 그러나…… 14. 간신히 친구가 될 뻔하다가 15. 나의 존재가 무한히 작아질수록 타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와 발터 벤야민 목차 타인의 추억을 앓는 산책자를 위하여 1. 부랑자들, 혹은 비정한 도시의 산책자들 2. 어린 시절 그대로 남은 게 하나 없지만 3. 남루하고 비참한 어른이 되어서야 4. 단순한 회고가 아닌 기억의 끊임없는 다시 쓰기 5. 가장 순수했을 때 사랑했던 단 한 사람과의 추억 6. 방황의 기술을 연구하다 7. 기억의 별자리, 그릴수록 희미해지는…… 8. 멜랑콜리의 도시 9. 매일 눈앞에서 볼 수 있는데 가질 수 없다니 10. 자본의 찬란한 빛과 자본의 음습한 어둠의 대변자 11. 추악한 것을 도려내는 순간 아름다운 것도 사라진다 12. 꿈의 시체로 만든 별자리들 13. 모두 가졌지만 허한 이 느낌은 14. 욕망의 만화경적 파노라마 15. 길을 잃어야만 포착할 수..
원령공주와 가스통 바슐라르 목차 창조적 몽상은 너와 나의 ‘다름’에서 시작된다 1. 설명하고 분석할 수 있는 이미지는 이미지가 아니다 2. 세균 없는 곳에서는 상상력이 배양되지 않는다? 3. 24시간 ‘ON AIR’의 세계에서 길을 잃다 4. 숲을 정복하려는 사람들과 지키는 늑대 5. 협소해져버린 문명인의 상상력 6. 몽상의 여유가 없는 이들 7. 문명의 진보 vs 몽상의 몰락 8. 자아의 그림자를 만나다 9. 아니무스의 눈물, 아니마의 미소 10. 상생과 적대 11. 더 커다란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두려움을 잊다 12.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균형이 깨져버린 숲 13. 시시신을 죽이다 14. 기적적인 찰나의 순간, 수직적 시간 15. 몽상의 스트레칭, 이성의 근육 이완법 인용 목차 시네필
아바타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목차 브리콜라주, 인류의 잃어버린 꿈의 조립법 1. 아마존의 눈물, 아바타의 비명 2. 언옵타늄을 찾아 판도라에 오다 3. 복종과 해방 사이 4. 내가 아닐 때, 가장 나답다? 5. 원시문명 그 속으로 들어가다 6. 아바타의 신체가 거꾸로 인간의 영혼을 물들이다 7. 나는 왜 ‘너’일 수 없는가 8. 과잉 커뮤니케이션 VS 과소 커뮤니케이션 9. 평범한 나무 VS 신성한 나무 10. 두려워하지 마, 내가 너의 거울이 되어줄게 (3) 11. 슬픈 히트상품, 노스탤지어…… 12. 아바타와 주인의 권력관계가 전도되다 13. I See You 14. 과학의 끝에서 신화를 만나다 15. I will fly with you…… 16. 샤헤일루와 미메시스와 브리콜라주 인용 목차 시네필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질 들뢰즈 목차 시간을 잴 수 없는 시간의 무한 탈주 1. 시간의 단위는 무엇일까 2. 내가 변하면 시간도 변할 수 있다 3.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4. 어제의 나는 과연 오늘의 나와 같은 존재일까 5. ‘내 시간’은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일까 6. 시간은 우리에게 주어진 기호 7. ‘현재’라는 말뚝에 고정된 한계 내에서 진행되는 크로노스의 시간 8. 돌아가는 시간과 돌아가지 않는 마음 9. 크로노스의 시간과 아이온의 시간 10. 중요한 감흥을 불러일으키거나 중대한 의미를 갖는 아이온의 시간 11. 기억을 지배하는 인간 vs 인간을 지배하는 기억 12. 기억이 나의 등 뒤에서 나를 공격한다 13. 비자발적 기억이 가져다주는 치명적인 고통 14. 잃어버린 시간과 되찾은 ..
슈렉과 줄리아 크리스테바 목차 ‘바람직한 주체’가 되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 1. ‘바람직한 주체’가 되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 2. 괴담 주인공의 실체 3. 동화 속 생물들이 모여든 곳 4. 인권과 주거권을 탈환하기 위해 모험에 나서다 5. ‘세균 없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버려지는 타자들 6. 미처 발현되지 못한 우리 안의 가능성 7. 코라(chora): 내가 버린 나의 가능성의 총집합 8. 동화 속의 세계는 너무 안전하다? 9. 미워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 10. 동화의 철책에 갇힌 주인공들 11. 사랑은 불안과 슬픔과 혼돈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12. 아무도 사랑하지 못한 편협함 13. ‘우울한 결핍’에서 ‘유쾌한 차이’로 14. 우리 안에 숨죽이고 웅크린 숨은 욕망 15. 사랑은 결핍이 도드..
순수의 시대와 피에르 부르디외 목차 아비투스, 일상이 창조하는 미시적 권력의 지형도 1. ‘구별짓기’의 디스토피아: 짝퉁에도 등급이 있다? 2. 그들만의 리그 vs 초대받지 않은 손님 3. ‘순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타자의 침입을 경계하다 4. 귀족들의 우아한 폭력 5. 아비투스의 딜레마, 그것은 학습될 수 있는가 6. 너는 우리와 달라 7. 몸의 속삭임에 굴복한 마음 8. 메이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순수 9.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엘렌의 순수 10. 플라밍고를 닮은, 엘렌의 순수 11. 현실의 쾌락보다 환상의 쾌락이 달콤한, 뉴랜드의 순수 12. 낭만적 환상에만 만족하는, 뉴랜드의 순수 13. 무한미디어, 사회를 구별짓기하다 14. 아비투스의 그물망이 조종하는 대로 행동하다 인용 목..
쇼생크 탈출과 프리드리히 니체 목차 지상에서 영원으로, 초인의 오디세이 1. 형벌은 인간을 길들일 수 있는가 2. 도덕 없이는 살 수 없다? 3. 그는 우리와 다르다, 그 다름은 무엇일까 4. 강자는 끊임없이 각자 흩어지려 하고 약자는 집요하게 서로 무리 지으려 한다 5. 내가 떠나온 세계,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한…… 6. 모든 곳이 감옥이다. ‘감각의 한계’에 갇혀 있는 한 7. 감옥에서 모든 가능성을 시험하다 8. “주인이 돌아올 때를 알지 못하니 깨어 있으라” 9. 성경을 사용하는 두 가지 방법 10. 벽을 증오하다가, 벽에 길들여지다가, 마침내 벽에 의지하게 되다 11. 노랫소리에서 비릿한 자유의 향기를 맡다 12. 내 머릿속에는 모차르트가 살고 있다 13. 꿈의 마그마가 뜨겁게 꿈틀대다 14.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조셉 캠벨 목차 너를 찾으러 가는 길 끝에서 ‘나’를 발견하다 1. 미야자키 하야오의 소녀들은 자라지 않는다 2. ‘미션 임파서블’과의 조우: 내 안의 중심을 잃어버릴 때, 여행은 시작된다 3. 미지와의 조우: 이제 나는 내가 아니다 4. 신화적 통과의례의 첫 번째 관문 5. 영원에 발을 딛고 시간의 장(場) 위에서 춤추다 6. 세 친구: 나보다 더 아픈 나와의 만남 7. 센의 딜레마 vs 유바바의 딜레마 8. one-way ticket: 당신은 돌아올 수 없다. 그래도 떠나겠는가? 9. one-way ticket: 돌아올 길이 없음이 겁나지 않는다 10. 서로를 위해 목숨을 걸 때 11. ‘너’를 찾으러 떠난 길에서, ‘나’를 만나다 12. 너를 찾지 못했다면 나의 존재도 잃었..
색 & 계와 롤랑 바르트 목차 풍크툼, 세계와 나는 ‘상처의 틈새’로만 만난다 1. 그대로 인해 흔들리는 세상 2. 탐색전: 무대 위의 연극 vs 무대 뒤편의 침묵 3. 첫 번째 풍크툼(punctum): 낭만적 나르시시즘의 세계가 파열되다 4. 두 번째 풍크툼: 나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5. 세 번째 풍크툼: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Nobody loves me) 6. 세 번째 풍크툼: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 7. 색 & 계(Lust & Caution): 욕망과 금지의 끝없는 이중주 8. 바르트의 풍크툼: 어머니, 단 하나의 여자 인용 목차 시네필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과 지그문트 프로이트 목차 영원히 끝나지 않는 이별을 ‘살아내는’ 법 1. 알고는 싶지만 배울 순 없는 이별학 2. ‘바람직한’ 이별은 가능할까 3. 애도와 우울 사이에서 길을 잃다 4. 애도와 우울도 어쩌면 사랑을 지닌 자의 특권 5. 너무 슬퍼서 슬프다는 감정조차 느끼지 못하다 6. 그렇게들 흘러간다 7. 그래도 삶은 계속되는가 8. 이승에 실현된 저승의 그림자 9. 아내의 영혼과 교신할 수 있는 내면의 주파수를 찾아내다 10. ‘과격하고 당혹스러움’과 ‘아름답고 사랑스러움’ 사이 11. 그림자의 춤: 나를 벗어 너를 입다 12. 내 온몸 구석구석이 당신이 사는 장소 13. 나는 너야(I am you) 14. 진정한 애도의 순간 15. 이젠 행복해요, 이별 없이…… 인용 목차 시네필
뷰티풀 마인드와 칼 구스타프 융 목차 내 안의 메피스토펠레스와 사랑에 빠지다 1. 내부의 서사가 외부의 서사를 압도하는 인간들 2. 고독은 천재의 학교다? 3. 내쉬의 독백: 강력한 우상이 필요할 뿐 친밀한 스승은 필요치 않다 4. 융의 독백: 신경증 덕에 배웠다 5. 당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나만의 미션이 있다 6. 사람들은 언제나, 필연적으로 ‘나’를 오해한다 7. 내쉬의 아곤: 천재들은 ‘좋은 전쟁’ 속에서 태어난다 8. 융의 아곤: 천재들은 ‘좋은 전쟁’ 속에서 태어난다 9. 모든 참고문헌을 찢어버린 인간의 고독 10. 수학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한한 자유 11. 내과의사가 정신의학으로 발길을 돌리다 12. 정신분열을 대하는 내쉬와 융의 차이 13. 무의식을 제압하려는 의식: 매카시즘과 호모포..
매트릭스와 미르치아 엘리아데 목차 ‘문턱’을 넘는 순간, 내 안의 신화는 시작된다 1. ‘문턱’을 넘는 순간, 내 안의 신화는 시작된다 2. ‘토마스’와 ‘네오’ 3. 현실은 꿈의 배설물일 뿐이야 4.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사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5. 내가 정말 ‘그’일까? 6. 매트릭스에 갇히길 희망하다 7. 오라클의 시험: 미안하지만, 너는 ‘그’가 아니야 8. 오라클의 모호한 화법과 엄청난 미션 9. “미안해, 넌 그냥 평범한 사람이야.” VS “아니, 너는 비범함이야.” 10. 길을 아는 것과 걷는 것의 차이 11. 내 이름은 …… 네오다 12. 난 이제 그들이 두렵지 않아 13. 예언과 믿음과 사랑이 합치되는 순간 14. 너와 함께, 네 안에서, 너를 통해, 내가 된다 인용 목차 시네필
굿 윌 헌팅과 수전 손택(Susan Sontag) 목차 편집되는 고통, 유통되는 슬픔을 넘어 1. 편집되는 고통, 유통되는 슬픔 2. ‘천재’로 호명되는 순간 ‘죄수’로 호명되다 3. ‘천재’라는 꼬리표가 담을 수 없는 것들 4. 당신의 불행이 당신의 질병을 부른다? 5. 전시되는 고통, 소외되는 인간 6. ‘가위손’을 닮은 천재 소년, 사랑에 빠지다 7. ‘연민’의 마지노선을 넘을 수 있을까 8. 난, 널, 사랑하지 않아…… 9. 나는 두렵다, 진짜 나 자신을, 만나게 될까 봐…… 10.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 11. 나를 잊어 너를 꿈꾸는 절실함 인용 목차 시네필
연암을 읽는다 목차 박희병 서문: ‘고’를 탐구해나가는 힘찬 발걸음들 1. 큰누님 박씨 묘지명 1총평伯姉贈貞夫人朴氏墓誌銘 2. 말 머리에 무지개가 뜬 광경을 적은 글 1자연을 담아내는 표현馬首虹飛記2동양화 식으로 묘사한 구름 3깔끔하고 절제된 미학 4총평 3. ‘죽오’라는 집의 기문 1대나무 기문을 써주지 않다竹塢記2상투적인 언어에 생기를연암과 패관소설3양호맹의 진실한 대나무 사랑『過庭錄』 1권 304대나무를 닮아 간 사내 5변함없는 인간에 대한 헌사 6총평 4. ‘주영염수재’라는 집의 기문 1작은 규모의 집에 다 있네晝永簾垂齋記2개성 지식인의 하릴없음 3개인 취향에 빠진 사대부 4양인수의 취미가 다른 점 5총평 5. 술에 취해 운종교를 밟았던 일을 적은 글 1총평醉踏雲從橋記 6. 소완정이 쓴 「여름밤 ..
6. 총평 1 연암은 글의 거죽만 읽으려 들지 말고 글에 깃들여 있는 글쓴이의 마음을 읽으라고 말하고 있다. 연암의 이 말은 우리가 연암의 글을 읽을 때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연암이 쓴 글들의 거죽만 보고 이러쿵저러쿵 말하거나 환호할 것이 아니라, 그 심부深部에 깃들여 있는 연암의 마음, 연암의 고심을 읽어내는 일이 중요하다. 연암의 글을 피상적으로 읽고 망발을 일삼거나 대중을 위한다면서 혹세무민하는 사람들은 없는가? 혹 그런 사람이 있다면 연암의 이 말에 두려움을 느껴야 마땅하리라. 2 이 글 2단락의 나비 잡는 아이의 비유는 그 표현이 썩 참신하다. 연암은 글쓰기에서 비유나 은유를 퍽 잘 활용했는데, 이런 데서 연암의 기발한 상상력이 잘 드러난다. 3 연암이 인간 심리를 포착하는 데 탁월한 능..
5. 높은 수준의 글을 쓰도록 만드는 결락감 연암은 10대 때부터 『사기』에 매료되었다. 연암 문장의 드높은 기세는 『사기』가 보여주는 기운찬 문장과 상통하는 점이 많다. 연암과 사마천은 그 문장만 상통하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의 심리적 기저에 있어서도 상통하는 점이 없지 않다. 앞서 말했듯 사마천 글쓰기의 기저부에는 자욱한 분만감이 깔려 있는데, 연암 글쓰기의 밑바닥에도 이 비슷한 감정이 자리하고 있다. 연암은 자신의 글쓰기를 ‘유희遊戲’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이는 분만감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뜻을 얻지 못한 채 소외되어 있던 연암으로서는 울분을 품을 수밖에 없었으며 이런 감정으로 인해 그의 글은 더욱 파격적이고 불온하게 되어 갔다. 사마천과 연암은 둘 다 ‘결락감缺落感’을 지녔다는 점에서 또 다..
4. 수치심과 분만감으로 쓴 『사기』 『사기』라는 저술의 심연에는 어찌해서 수치심과 분만감이 깃들여 있는 것일까?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선 사마천의 생애를 간단하게라도 살펴두지 않으면 안 된다. 사마천 시대의 군주인 무제武帝는 영토 확장에 혈안이 된 전제군주였다.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정복 전쟁을 벌였다. 베트남을 침공하고 한반도를 침략했다. 그리고 흉노와 줄창 싸웠다. 당시 이릉李陵이라는 20대의 용맹한 장수가 있었다. 그는 흉노와 싸워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전투에서 불행히 흉노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으나 부하들이 전멸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무제는 이릉이 자결하지 않고 포로가 되었다고 해서 그의 구족九族을 멸해 버렸다. 사마천은 당시 궁정의 ..
3. 『사기』를 쓸 때 사마천의 마음과 나비를 놓친 아이의 마음 어린아이가 나비를 잡는 광경을 보면 사마천의 마음을 알 수 있사외다. 앞다리는 반쯤 꿇고 뒷다리는 비스듬히 발꿈치를 들고서는 손가락을 ‘丫아’자 모양으로 하여 살금살금 다가가 잡을까 말까 주저하는 순간, 나비는 그만 싹 날아가 버리외다. 사방을 돌아봐도 아무도 없자 씩 웃고 나서 부끄럽기도 하고 분이 나가도 하나니, 이것이 바로 사마천이 『사기』를 쓸 때의 마음이외다. 見小兒捕蝶, 可以得馬遷之心矣. 前股半跽, 後脚斜翹, 丫指以前, 手猶然疑, 蝶則去矣. 四顧無人, 哦然而笑, 將羞將怒, 此馬遷著書時也. 갑자기 문의文意가 바뀌어 나비 잡는 어린아이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는 나비를 잡으러 살금살금 다가갔다가 막판에 놓쳐버린 아이의 복잡한 심리..
2. 작가는 고심 때문에 글을 쓸 수밖에 없다 이 단락의 첫 문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지의 『사기』 읽는 방식은 그 글만 읽는 것이요, 작가의 ‘마음’을 읽는 것은 못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글의 거죽만 읽었지 글 쓴 사람의 마음자리를 읽지 못했다는 말이다. 전통적인 어법으로는 글쓴이의 마음자리를 특히 ‘고심苦心’이라고 한다. 고심이라는 말은, 작가의 고민이라든가 현실에 대한 입장, 삶과 세계에 대한 감정을 두루 포괄하는 말이다. 요컨대, 그것은 삶과 세계에 대한 작가의 근원적이거나 실존적인 태도와 관련되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작가의 글쓰기가 이루어지는 원점 혹은 어떤 최저 지점을 뜻한다. 작가는 바로 이 고심 때문에 글을 쓸 수밖에 없다. 그것은 사회적 의제議題나 이념과 관련된 것일 수도 ..
1. 경지의 『사기』 읽는 방식을 비판하다 그대는 태사공太史公의 『사기史記』를 읽었으되 그 글만 읽었을 뿐 그 마음은 읽지 못했사외다. 왜냐고요? 「항우본기項羽本紀」를 읽을 땐 제후들의 군대가 자신의 보루堡壘에서 초나라 군대의 전투를 구경하던 광경을 떠올려 보아야 한다느니, 「자격열전刺客列傳」을 읽을 땐 고점리高漸離가 축筑을 타던 장면을 생각해보아야 한다느니 하는 따위의 말은, 늙은 서생의 케케묵은 말일 뿐이니, 부엌에서 숟가락 줍는 것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足下讀太史公, 讀其書, 未嘗讀其心耳. 何也? 讀項羽, 思壁上觀戰; 讀刺客, 思漸離擊筑, 此老生陳談, 亦何異於廚下拾匙? 아마 경지가 지난번에 연암에게 보낸 편지 내용 중에 “「항우본기」를 읽을 땐 제후들의 군대가 자신의 보루에서 초나라 군대의 전투를 ..
5. 총평 1 이 글은 표면적으로는 글읽기에 대해 말하고 있으나 기실 글쓰기의 문제를 밑바닥에 깔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 이 글은 문자와 사물의 관계에 대해 연암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문자를 그냥 문자로만 알아서는 안 되고, 문자에 생기와 온기 및 사물의 다채로운 뉘앙스를 채워 넣을 수 있어야 비로소 문자를 제대로 아는 것이라는 관점은 『과정록』에 나오는 다음의 일화에서도 확인된다. 아버지는 이공(이광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평생 독서했는데 아는 글자가 몇 자나 되지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라며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비웃었다. ‘이공이 글을 잘하고 박식한 선비라는 걸 누가 모른단 말야!’ 이공은 한참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겨우 서른 자 남짓 아는..
4. 사물을 잘 관찰하는 것이 훌륭한 독서 아침에 일어나니 푸른 나무 그늘이 드리운 뜨락에 여름새들이 찍찍 짹짹 울고 있더이다. 나는 부채를 들어 책상을 치며 이렇게 외쳤소이다. “저것이야말로 ‘날아가고 날아온다’라는 문자이고, ‘서로 울며 화답한다’라는 문장이다! 갖가지 아름다운 문채를 문장이라고 한다면 저보다 더 나은 문장은 없으리라. 오늘 나는 진정한 글 읽기를 했노라!” 朝起, 綠樹蔭庭, 時鳥鳴嚶. 擧扇拍案胡叫曰 : “是吾飛去飛來之字, 相鳴相和之書.” 五釆之謂文章, 則文章莫過於此. 今日僕讀書矣. 다시 문세를 전환해 연암 스스로의 경험을 말하고 있다. 어떻게 글을 읽어야 하는가? 어떤 독서가 참된 독서인가? 이 단락은 이 물음에 대해 답하고 있다. 연암의 답인즉슨, ‘사물’을 읽으라는 것이다. 사물..
3. 새를 글자 속에 가두다 저 하늘을 날아가며 우는 새는 얼마나 생기가 있습니까? 그렇건만 적막하게도 새 ‘조鳥’자 한 글자로 그것을 말살하여 새의 고운 빛깔을 없애버리고 그 울음소리마저 지워 버리지요. 이는 마을 모임에 가는 촌 늙은이의 지팡이 머리에 새겨진 새 모양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새 ‘조鳥’자의 진부함이 싫어 산뜻한 느낌을 내고자 새 ‘조鳥’자 대신에 새 ‘금禽’자를 쓰기도 하지만, 이는 책만 읽고서 문장을 짓는 자들의 잘못이라 할 거외다. 彼空裡飛鳴, 何等生意? 而寂寞以一‘鳥’字, 抹摋沒郤彩色, 遺落容聲. 奚异乎赴社邨翁杖頭之物耶? 或復嫌其道常, 思變輕淸, 換箇禽字, 此讀書作文者之過也. 연암은 시선을 갑자기 하늘로 돌리고 있다. 그리하여 앞 단락에서 언급한 천지 사방 혹은 만물의 한 예로서..
2. 맹목적인 독서로 헛 똑똑이가 되다 이 편지글은 그 서두가 퍽 도발적이다. 다짜고짜 “정밀하고 부지런히 글을 읽은 이로 포희씨包犧氏만 한 사람이 있겠습니까?(讀書精勤, 孰與庖犧?)”라고 묻는 말로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인즉슨 포희씨만큼 글을 잘 읽은 사람은 없다는 건데,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연암의 생각을 따라가면 이렇다. 포희씨는 우주의 삼라만상을 세밀히 관찰하여 그 근본 원리를 8괘라는 기호에 집약해냈다. 포희씨가 삼라만상을 관찰한 행위는 바로 글(혹은 책)을 읽은 것에 다름 아니다. 왜냐면 글의 에센스, 즉 글의 정수精髓(이 단락에서 말하고 있는 글의 ‘정신’이란 바로 이런 뜻이다)는 바로 사물과 세상 속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삼라만상을 잘 관찰하여 그 정수를 포착해 8괘..
1. 천지 사이에 있는 게 책의 고갱이 정밀하고 부지런히 글을 읽은 이로 포희씨包犧氏만 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글의 정신과 뜻이 천지사방에 펼쳐 있고 만물에 두루 있으니, 천지사방과 만물은 글자로 쓰지 않은 글자이며, 문장으로 적지 않은 문장일 거외다. 후세에 글을 부지런히 읽기로 호가 난 사람들은 기껏 거친 마음과 얕은 식견으로 말라붙은 먹과 문드러진 종이 사이를 흐리멍덩한 눈으로 보면서 하찮은 글귀나 주워 모은 데 불과하외다. 이는 이른바 술지게미를 먹고서 취해 죽겠다고 하는 격이니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讀書精勤, 孰與庖犧? 其神精意態, 佈羅六合, 散在萬物, 是特不字不書之文耳. 後世號勤讀書者, 以麁心淺識. 蒿目於枯墨爛楮之間, 討掇其蟫溺鼠渤. 是所謂哺糟醨而醉欲死. 豈不哀哉! 이 단락의 취지는 앞에서..
5. 총평 1 그리움이라든가 누군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모두 망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설사 망상이라 할지라도 그립고 아련한 마음을 우리는 어찌할 수가 없다. 2 이 글은 짤막한 편지지만 글 쓴 사람의 진정이 오롯이 담겨 있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여운이 참 깊다. 일생에 이런 편지를 한 통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리라. 3 옛날의 편지에는 크게 보아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격식을 갖추어서 쓰는 비교적 긴 편지이고, 다른 하나는 크게 격식을 따지지 않고 안부나 소회所懷를 전하는 짤막한 편지이다. 전자는 보통 ‘서書’라고 부르고, 후자는 ‘간찰簡札’이나 ‘척독尺牘’이라고 부른다. 경지에게 보낸 답장 세 통은 모두 후자에 속한다. 척독은 ‘서’에 비해 글쓰기가 자유롭고 격식에..
4.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곳 어제 당신께서는 정자 위에서 난간을 배회하셨고, 저 역시 다리 곁에 말을 세우고는 차마 떠나지 못했으니, 서로간의 거리가 아마 한 마장쯤 됐을 거외다. 모르긴 해도 우리가 서로 바라본 곳은 당신과 제가 있던 그 사이 어디쯤이 아닐까 하외다. 昨日足下, 猶於亭上, 循欄徘徊, 僕亦立馬橋頭, 其間相去已爲里許. 不知兩相望處, 還是那際. 당시 연암은 경지와 유별留別했던 듯하다. 떠나는 사람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 작별을 고하는 것을 ‘유별’이라 하고, 남아 있는 사람이 떠나는 사람을 전송하는 것을 ‘송별’이라 한다. 연암이 떠나왔으니, 연암은 유별한 게 되고, 경지는 송별한 게 된다. 두 사람 모두 작별이 퍽 아쉬웠던 모양이다. 경지는 말을 타고 떠나가는 연암을 정자 위 난간에서 ..
3. 석별의 아쉬움을 잇는 ‘사이’ 이야기 지난번 백화암百華菴에 앉아 있을 때 일이외다. 암주菴主인 처화處華가 멀리 마을에서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를 듣고는 비구 영탁靈托에게 이렇게 게偈를 읊더이다. “탁탁 하는 방망이 소리와 툭툭 하는 다듬잇돌 소리, 어느 것이 먼저인고?” 그러자 영탁은 합장하며 이렇게 말했사외다. “먼저도 없고 나중도 없으니 그 사이에서 소리가 들리옵나이다.” 頃坐百華菴, 菴主處華, 聞遠邨風砧, 傳偈其比丘靈托曰: “椓椓礑礑, 落得誰先?” 托拱手曰: “不先不後, 聽是那際?” 갑자기 문세가 확 전환되면서 앞서 「『말똥구슬』 서문蜋丸集序」에서 봤던 것과 같은 이상한 일화가 제시되고 있다. 뭘 말하려는 걸까? 처화가 툭 던진 물음은 방망이 소리가 먼저냐 다듬잇돌 소리가 먼저냐는 것이다. 어느..
2. 첫 시작부터 본론으로 들어간 편지 전의감동 시절 연암은 자신이 살던 집 건물에 ‘방경각放瓊閣’이라는 이름과 영대정映帶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금 전하는 연암의 문집에는 ‘방경각 외전放璚閣外傳’이라는 이름하에 「양반전」 등 이른바 9전九傳을 수록해놓고 있다. 연암은 전의감동에 살 때 이전에 창작한 전들을 모아 『방경각 외전』이라는 책을 엮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의감동 시절 연암은 이 책 말고 또 하나의 창작집을 스스로 엮었으니, 『영대정잉묵映帶亭賸墨』이 그것이다. ‘영대정 잉묵’이란 영대정에서 엮은 하잘 것 없는 편지글이라는 뜻이다. ‘하잘 것 없는’이라는 말은 겸사로 한 말이다. 연암 자신의 편지글 모음집인 이 책은 정확히 1772년 10월에 편찬되었다. 연암은 이 책에 자서(映帶亭賸墨自序)를 붙..
1. 경지란 누구인가? 이 편지는 경지京之라는 사람에게 보낸 답장이다. 경지가 누군지는 확실치 않다. 나는 그가 혹 당대의 저명한 서예가이자 퉁소 연주자인 이한진李漢鎭(1732~?)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고 있다. 이한진은 호가 경산京山이고, 자는 중운仲雲이며,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경지’는 그의 또 다른 자字가 아닐까 한다. 이한진은 감역監役이라는 말단 벼슬을 지냈을 뿐이다. ‘감역’이라는 벼슬은 대개 문과에 급제하지 못한 양반이 음직蔭職으로 하는 벼슬이다. 홍대용과 박지원도 감역 벼슬로부터 벼슬을 시작했다. 이한진은 전서篆書와 퉁소에 능하고 아취가 있었으며, 성대중成大中(1732~1809)ㆍ홍대용ㆍ이덕무ㆍ박제가ㆍ홍원섭洪元燮(1744~1807) 등과 교유했다. 성대중의 문집인 『청성집』에 실려 있는..
12. 총평 1 이 글은 당시 보수적인 문예관을 지닌 사람의 눈에는 경망스럽고 상스러운 글로 보였을 테지만, 제문의 매너리즘을 깨뜨리면서 인간의 진정眞情을 쏟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빛이 바래지 않으며, 퍽 감동적이다. 2 이 글에서는 정작 슬픔이라든가 애통함이라든가 이런 말은 단 한 군데도 나오지 않지만 친구의 죽음을 앞에 한 채 비탄과 슬픔에 잠겨 있는 인간 연암의 마음이 약여하게 느껴진다. 3 이 글은 연암의 심리적 추이에 따라 글이 구성되어 있다. 1단락은 석치의 죽음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 그럼에도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연암의 착잡하고 당혹스런 마음을 빠른 필치로 적고 있다면, 2단락은 너무나 큰 슬픔 앞에서 잠시 망연자실하여 멍한 눈으로 우두커니 빈소를 바..
11. 파격적인 제문을 쓸 수밖에 없던 이유 이제 끝으로, 연암이 정석치의 제문을 왜 그리도 파격적으로 썼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자.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고 여겨진다. 그 하나는, 제문의 대상 인물인 석치 자체가 몹시 파격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제문의 대상 인물이 음전하고 순순한 인간이었다면 굳이 그렇게 쓰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석치는 방달불기放達不羈(말과 행동에 거리낌이 없고 예법 따위에 구속되지 않는 태도)한 인간 타입이었다. 박제가가 그를 “청동 술잔으로 3백 잔을 마신 술꾼이어라(靑銅三百酒人乎)”라고 읊었듯이, 그는 당대의 주호酒豪였다. 두 번째 이유는, 당시 연암이 처해 있었던 상황과 그 심경에서 찾아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앞에서 말했듯 연..
10. 울울하던 그날 함께 하던 벗 홍국영은 1780년 2월 권력에서 축출된다. 박지원은 더 이상 연암협에 은거해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는 서울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해 5월 중국 여행길에 올라 동년 10월에 귀국한다. 박지원은 귀국 후 서울과 연암협을 오가며 『열하일기』의 집필에 힘을 쏟는다. 『과정록』은 당시의 사정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아버지는 경자년(1780)에 서울로 돌아와 평계平谿에 거처하셨으니 곧 지계공芝溪公(연암의 처남인 이재성)의 집이었다. 이때 홍국영이 실세하여 화근은 사라졌지만 점잖은 옛 친구들은 거의 다 세상을 떴다. 그래서 분위기가 싹 변해 옛날 같지 않았다. 아버지는 더욱 뜻을 잃고 스스로 방달하게 지내셨는데 그것이 몸을 보존하는 비결임을 도리어 기뻐하셨다. 그러면서도 항상 ..
9. 너무나 인간적인 나의 친구 탈락된 부분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그리고 혹 그 부분에 대한 보충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여기서 잠시 연암과 정석치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정석치의 인간적 특성과 재예才藝에 대해 조금 언급해두기로 한다. 연암과 정석치는 언제부터 알게 된 걸까? 『과정록』 초고본에는 이런 기록이 보인다. 아버지는 임진년(1772)과 계사년(1773) 사이에 가족을 석마石馬(지금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돌마 일대)에 있는 처가로 보내고 늘 홀로 서울의 전의감동 집에 거처하셨다. 홍담헌 대용, 정석치 철조, 이강산李薑山 서구書九와 때때로 서로 왕래하셨고, 이무관 덕무, 박재선朴在先 제가齊家, 유혜풍 득공이 늘 아버지를 좇아 노닐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연암이 정철조와 알게 된 것은 적..
8. 사라져 버린 본문 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지어 읽는다. (이하 글을 잃어버렸음) 爲文而讀之曰 缺 “글을 지어 읽는다”라는 말 뒤에 비로소 본격적인 제문이 시작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 부분은 현재 탈락되고 없다. 아마 4언으로 된 운문이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묘지명의 ‘명’이 보통 아주 짤막한 운문인 것과는 달리 제문의 운문은 아주 길어 60구句 내지 100여 구에 이르는바 제문의 중심부분을 이룬다. 가령 연암이 그 처삼촌인 이양천李亮天을 위해 쓴 제문의 경우 4언구가 96구이며, 형수의 아버지인 이동필을 위해 쓴 제문의 경우 61구이다. 이 두 제문은 4언구를 통해 고인의 인품과 생전의 언행, 고인에 대한 연암의 특별한 추억과 애통한 심정 등을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4언구가 끝나면 ‘상향’이라..
7. 진짜로 네가 죽었구나 석치는 진짜 죽었구나. 귓바퀴는 이미 문드러지고 눈알도 이미 썩었으니, 이젠 진짜 듣지도 보지도 못하겠지. 잔에 술을 따라 강신降神해도 진짜 마시지도 못하고 취하지도 못할 테지. 평소 석치와 함께 술을 마시던 무리를 진짜로 놔두고 떠나가 돌아보지도 않는단 말인가. 정말 우리를 놔두고 떠나가 돌아보지도 않는다면 우리끼리 모여 큼직한 술잔에다 술을 따라 마시지 뭐. 石癡眞死. 耳郭已爛, 眼珠已朽, 眞乃不聞不覩, 酌酒酹之, 眞乃不飮不醉. 平日所與石癡飮徒, 眞乃罷去不顧. 固將罷去不顧, 則相與會酌一大盃. 이 단락은 “석치는 진짜 죽었구나”라는 말로써 시작된다. 1단락의 맨 끝 문장이 “지금 석치는 진짜 죽었구나(今石癡眞死矣)”였음을 상기한다면, 이 단락은 1단락을 잇고 있음을 알 수 있..
6. 머리로 아는 죽음과 가슴으로 느껴지는 죽음 이 단락의 포인트는 평소 석치를 저주하던 자들에게 대한 역설적 조소에 있다고 해야겠지만, 이 단락의 가장 미묘한 대목은 석치의 죽음에 대한 도인의 반응을 언급한 구절이 아닌가 한다(世固有夢幻此世, 遊戱人間, 聞石癡死, 固將大笑, 以爲歸眞, 噴飯如飛蜂, 絶纓如拉朽). 이런 도인은 『장자』라는 책에 허다하게 등장한다. 『장자』는 이런 인물을 내세워 삶이란 한낱 꿈에 지니지 않는다는 것, 삶과 죽음은 결코 분리되지 않으며 죽음이야말로 삶의 근원이라는 것, 따라서 죽음이란 특별한 일도 슬퍼할 일도 아니며 자기의 원래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단락 끝 부분에서 도인이 보여주는 태도는 이런 생사관을 반영하고 있다. 이런 생사관은 그야말로 아..
5. 석치를 저주한 사람들 이 단락은 잠시 숨을 고르는 부분이다. 앞 단락이 아주 빠른 템포로 감정의 직절적直截的 분출을 보여주었다면, 이 단락은 망자亡者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비교적 차분하게 서술해놓고 있다. 앞 단락을 ‘급急’이라 한다면 이 단락은 ‘완緩’이다. 이렇듯 두 단락은 퍽 대조적이다. 이처럼 완급을 교대해가며 서술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독자를 편안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글에 입체감을 부여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급’으로만 일관하거나 ‘완’으로만 일관하는 글을 한번 상상해보라. 독자는 전자의 경우 숨이 가빠 죽을 것이고, 후자의 경우 지루해 죽을 것이다. 한편, 앞 단락이 격렬함과 당혹감이라는 감정을 거쳐 체념의 감정으로 끝나고 있고, 그것을 받아 이 단락이 시작된다는..
4. 천문학ㆍ수학ㆍ지리학 등 학문에 뛰어났던 그대 석치가 죽자 시신을 둘러싸고 곡하는 이들은 석치의 처첩과 함께, 아들과 손자, 친척들인데, 그 곁에 함께 모여 곡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석치 유족의 손을 잡고 이렇게 위로한다. “훌륭한 가문의 불행입니다. 철인哲人이 어찌해 이렇게 되셨는지……” 그러면 그 형제와 아들과 손자들이 절하고 일어나 머리를 조아리며 이렇게 대꾸한다. “저희 집안의 흉액입니다.” 석치의 벗들은 서로 이렇게 탄식한다. “이런 사람은 정말 쉽게 얻을 수 없는데……” 함께 모여 조문하는 이들도 실로 적지 않다. 한편, 석치에게 원한이 있던 자들은 평소 석치더러 병들어 죽으라고 저주를 퍼붓곤 했거늘 이제 석치가 죽었으니 그 원한을 갚은 셈이다. 죽음보다 더한 벌은 없는 법이니까...
3. 자유분방하게 감정을 토로하다 (A) (B) 살아 있는 석치라면 이러이러할 텐데, 그럴 수 없는 걸 보니 석치가 진짜 죽었구나.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A)의 가정문은 절묘하게도 두 가지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 하나는 이를 통해 연암과 석치의 개인적인 특별한 관계를 말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석치의 죽음을 도무지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는 연암의 감정 상태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연암은 일상 속 석치의 부재를 통해 ‘석치가 진짜 죽은 게 맞긴 맞구나!(今石癡眞死矣)’하고 석치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처럼 이 단락은 가정문 (A)와 그에 이어지는 단정문 (B)를 통해 친한 벗 석치의 죽음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 연암의 심리 상태 및 그럼에도 결국 석치..
2. 일상 속 빈자리를 통해 너의 부재를 확인하다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단락이 느닷없는 출발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서양의 산문 분석에서는 이런 시작 방식을 ‘sudden start’라고 부른다. 이런 방식으로 시작되는 서두는 독자의 심리에 강한 인상과 파문을 던지면서 초입에서부터 독자를 긴장시키는 효과가 있다. 다시 말해 독자는 어떤 심리적 준비 과정도 없이 단박에 대상 속으로 들어가기를 강요당한다. 그런데다가 이 단락의 문장은 그 호흡이 유장하고 느긋한 것이 아니라, 아주 짧고 촉급하다. 빠른 숨으로 단숨에 읽도록 씌어진 문장인 것이다. 왜 서두에서부터 이렇게 급한 템포의 문장을 서술한 걸까? 이는 연암의 심리 상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단락의 통사 구조統辭構造를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다..
1. 파격적인 제문 살아 있는 석치石癡라면 함께 모여 곡도 하고, 함께 모여 조문도 하고, 함께 모여 욕지거리도 하고, 함께 모여 웃기도 하고, 몇 섬이나 되는 술을 마시기도 하고, 맨몸으로 서로 치고받고 하며 고주망태가 되도록 잔뜩 취해 서로 친한 사이라는 것도 잊어버린 채 인사불성이 되어, 마구 토해서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뒤집혀 어질어질하여 저의 죽을 지경이 되어서야 그만둘 터인데, 지금 석치는 진짜 죽었구나! 生石癡, 可會哭可會吊, 可會罵可會笑. 可飮之數石酒, 相臝體敺擊, 酩酊大醉, 忘爾汝, 歐吐頭痛, 胃翻眩暈, 幾死乃已. 今石癡眞死矣. 제문祭文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글로서, 흔히 제물祭物을 올려 축문祝文처럼 읽게 되어 있다. 그 형식은 보통 글의 서두에 ‘언제 누가 누구를 위해 제문을 지은바..
11. 총평 1 공인 이씨가 열여섯에 시집올 때는 꽃다운 얼굴이었을 터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내내 우리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그녀의 파리하고 핏기 없는 얼굴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기품 있는 여인이었으리라. 아픈 몸을 일으켜 빙긋이 웃으며 “이는 제 오랜 꿈인 걸요(是吾宿昔之志)”라고 말하는 데서 그녀의 인간 됨됨이와 기품이 느껴진다. 2 이 글은 조선시대 가난한 선비 집안에 시집 온 여성에 대한 ‘실록實錄’이라 할 만하다. 연암 외에도 빈사처貧士妻의 생애를 기록한 문인들은 상당수 있다. 하지만 연암의 이 글처럼 그런 여성의 내면 풍경과 심리 상황까지 냉철하게 그려 보인 글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연암은 가난 때문에 사대부 집안의 한 여성이 절망과 낙담 끝에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놀랍도록 예..
10. 유언호가 명을 짓다 나는 친구인 규장각 직제학直提學 유언호俞彦鎬에게 묘지명을 지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는 마침 개성 유수로 와 있었는데 개성은 연암골에서 가까웠다. 그는 장례를 도와주었을 뿐 아니라 명銘도 지어 주었다. 그 명은 다음과 같다. 연암이라 그 골짝은, 산 깊고 물 맑은데, 시동생이 유택幽宅을 마련했지요. 아아! 온 가족이 함께 은거하려 했거늘, 마침내 이곳에 머무시게 됐군요. 계시는 곳 편안하고 굳건하니, 아무쪼록 후손들 보우하소서. 趾源求銘於其友人, 奎章閣直提學兪彥鎬. 彥鎬方留守中京, 地接燕岩, 爲助葬且銘之, 其銘曰: “燕岩之洞, 山窈而水淥, 繄惟小郞之所營築. 嗚呼鹿門盡室之計. 竟於焉而托體. 旣安且固, 以保佑厥後.” 묘지명의 ‘지誌’와 ‘명銘’은 대개 한 사람이 짓는 법인데, 이 ..
9. 형수님은 연암협에 가지 못하고 돌아가셨네 형수는 몹시 위독했지만 이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손으로 머리를 가누고선 한 번 웃으며 “이는 제 오랜 꿈인 걸요(是吾宿昔之志)”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이 단락에서뿐만 아니라 이 글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부분으로 우리 눈에 박힌다. 20여 년을 생활고에 시달린 나머지 힘이 소진하여 절망과 좌절감 속에 죽어가고 있던 형수에게 연암이 들려준 말은 그 말만으로도 기쁘고 가슴이 벅찼으리라.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한 번 빙긋이 웃음을 머금은 것이리라. 사실 이 글 전체에서 형수가 직접 나서서 자신의 목소리로 스스로 발언한 것은 이 대목 한 군데밖에 없다. 비록 앞 부분에서 공인 이씨에 대해 많이 서술해 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8. 형수를 위로하려 연암협을 미화하다 「기린협으로 들어가는 백영숙에게 주는 서贈白永叔入麒麟峽序」를 검토하며 자세히 살핀바 있지만, 연암은 1771년에 처음 연암협을 답사한 이래 이곳에 작은 산장을 지어 놓고 수시로 머물곤 했던 듯하다. 하지만 그가 온 가족과 함께 이곳으로 이주한 것은 1778년에 와서였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정이 있었다. 1777년 정조가 즉위하면서 홍국영이 세도를 부리게 되었다. 홍국영은 정적들을 하나하나 제거해나갔는데, 연암에 대해서도 악감정을 품고 장차 해코지를 하고자 하였다. 당시의 사정을 『과정록』은 이렇게 적고 있다. 유공(유언호)은 아버지와 우정이 아주 깊었다. 그리하여 난처한 일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를 찾아와 의논하곤 하였다. 공은 아버지의 의론이 준엄하고 과격해 ..
7. 에피소드를 삽입시켜 글에 생기를 불어넣다 나는 화장산華藏山의 연암골에 새로 터를 잡아 그 산수를 어여삐 여기며 손수 가시덤불을 베어 내 나무 곁에다 집을 세웠다. 趾源新卜居華藏山中燕岩洞, 樂其水石, 手剪荊蓁, 因樹爲屋. 언젠가 형수님께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 “형님이 연로하시니 장차 저와 함께 시골에서 사셨으면 합니다. 담을 둘러 천 그루의 뽕나무를 심고, 집 뒤엔 천 그루의 밤나무를 심고, 문 앞에는 천 그루의 배나무를 심고, 시냇가에는 천 그루의 복숭아나무와 살구나무를 심으렵니다. 못에는 한 말 가량 치어稚魚를 풀어 놓고, 바위 절벽 밑에는 벌통 백 개를 놓아두며, 울타리 사이에 소 세 마리를 묶어 두렵니다. 제 처가 길쌈할 때면 형수님께선 그저 계집종이 기름 짜는 일이나 살펴 제가 밤에..
6.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가정살림을 돌보다 아아! 옛사람들은 가난한 선비의 아내를 약소국의 대부大夫에 견주었다. 조석朝夕도 보전키 어려운 상황에 놓인 기울고 망해가는 나라를 부지하며 조정에서 혼자 국사國事를 맡아 고군분투하듯 하셨고, 변변찮은 것이지만 정성스레 제수祭需를 마련해 선조의 혼령이 굶주리지 않게 하셨으며, 또 좋은 음식은 못 되더라도 음식을 장만해 손들을 잘 접대하셨으니, 이 어찌 이른바 ‘온 힘을 다해 죽은 이후에야 그만둔다’는 데에 해당하지 않겠는가. 嗟乎! 貧士之妻, 昔人比之弱國之大夫. 其拄傾支覆, 莫保朝夕, 猶能自立於辭令制度之間, 而澗繁沼毛, 不餒其鬼神, 不腆之廚庖, 足以嘉會, 豈非所謂: ‘鞠躬盡瘁, 死而後已’者耶? 내가 자식을 낳아 그 아이가 겨우 태胎를 벗었을 때 형수님은 그 ..
5. 가난 때문에 병들어 죽어간 형수를 그려내다 이 단락에서 가장 빼어난 서술은 “이렇게 20년을 노심초사하며 뼈 빠지게 일했지만 적빈을 면할 수 없어 의기소침해지고 낙담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廿載嘔膓擢髓, 甁槖垂倒, 屈抑挫銷, 無所展施)”라는 대목이다. ‘20년’이란 연암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해인 1759년부터 형수가 세상을 버린 해인 1778년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이 문장은, 주부로서 공인 이씨가 살아온 삶과 그녀의 내면적 심리 상황을 놀랍도록 예리하게 묘파해내고 있다. 가족과 집안을 위해 죽으라고 일하고 애썼지만 가난은 늘 그 자리에 있어 공인 이씨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절망감과 좌절감에 사로잡혔다는 것. 이 절망감과 좌절감이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었을 터이다. “노심초사하여 뼈 빠지게(嘔膓擢..
4. 주부로 두 번의 상을 치르다 “집안에 연거푸 상이 났(歲且荐喪)”다고 했는데, 이는 1759년 연암의 모친 함평 이씨가 59세로 세상을 하직하고 이듬해인 1760년 조부 박필균이 76세로 별세한 일을 말한다. 공인 이씨가 시어머니 상을 당한 것은 그 36세 때였다. 시집온 지 20년 째 되던 해다. 이때부터 공인 이씨는 연암 집안의 맏며느리로서 ‘주부主婦’의 역할을 수행했다. ‘주부’란 오늘날의 ‘가정주부’라는 말과 다소 의미가 다르다. 당시 주부에게는 한 집안의 살림에 대한 책임이 주어졌을 뿐만 아니라 집안의 온갖 제사에 대해 준비해야 하는 책임이 주어졌다. 말하자면 한 집안의 경제와 제사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었다. 공인 이씨가 이 역할을 맡기 전에는 시어머니 함평 이씨가 이 역할을 수행했을 터이..
3. 청빈의 가풍 때문에 엄청 고생한 큰 형수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자. 이 단락은 먼저 이씨의 가계家系를 밝힌 다음, 반남 박씨 집안에 시집온 일과 아이 셋을 낳았으나 모두 일찍 죽은 일, 집안이 몹시 가난하여 20년을 뼈 빠지게 일을 하다 결국 병고 속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말함으로써 이씨의 생애를 압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대체로 묘지명의 일반적인 서술 방식이다. 연암의 집안은 반남 박씨 명문가 집안으로, 할아버지가 고관대작을 지냈는데 왜 그리 가난했을까? 이런 의문에 답하기라도 하듯 연암은 이 단락의 중간부분에서 그 이유를 밝히고 있는바, 곧 ‘청빈淸貧’ 때문이었다. 할아버지가 워낙 청렴결백하여 집안에 남긴 재산이 없어 가난을 면할 수가 없었다는 것. 다시 말해 할아버지가 관직에 있을 때 부정..
2. 생활고에 병에 걸린 형수님을 부모처럼 모시다 집안에 연거푸 상喪이 났지만 형수님은 힘써 가족 열명의 생계를 꾸려 나갔으며, 제사를 모시거나 손님을 접대함에 대가大家의 법도를 잃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이리 깁고 저리 맞추며 온갖 노력을 다하셨다. 이렇게 20년을 노심초사하며 뼈 빠지게 일했지만 적빈赤貧을 면할 수 없어 의기소침해지고 낙담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매양 낙엽이 지고 추워지는 가을이면 형수님은 더욱 실망하고 낙심하여 병이 더욱 도졌다. 이렇게 몇 년을 시름시름 앓으시다가 마침내 금상今上 2년인 무술년戊戌年(1778) 7월 25일에 운명하셨다. 歲且荐喪, 恭人力能存活其十口, 奉祭接賓, 恥失大家規度, 綢繆補苴. 且廿載嘔膓擢髓, 甁槖垂倒, 屈抑挫銷, 無所展施. 每値高秋木落天寒, 意益廓然霣沮,..
1. 형수의 아버지가 형수를 보러 자주 찾아오다 공인恭人 휘諱 모某는 완산完山 이동필李東馝의 따님으로 왕자 덕양군德陽君 후손이다. 열여섯에 반남潘南 박희원朴喜源에게 시집 와 아들 셋을 낳았는데 모두 일찍 죽었다. 형수님은 평소 몸이 여위고 약해 온갖 병에 시달렸다. 恭人諱某, 完山李東馝之女, 王子德陽君之後也. 十六, 歸潘南朴喜源, 生三男, 皆不育. 恭人素羸弱身, 嬰百疾. 희원의 할아버지는 당대에 이름난 고관高官이었는데, 선왕先王께서는 매양 한漢나라 탁무卓茂의 고사故事를 거론하며 그 벼슬을 올려 주셨다. 할아버지께서는 관직에 계실 때 자손에게 물려주기 위한 재산을 손톱만큼도 늘린 적이 없어 청빈淸貧이 뼈에 사무쳤으니, 별세할 때 집안에는 돈이 몇 푼 없었다. 喜源大父, 爲世名卿, 先王時每擧漢卓武故事, 以增..
14. 총평 1 이 글은 전체적으로 ‘김홍연 알아 가기’의 과정을 보여준다. 재미있는 것은, 김홍연을 알아감에 따라 작자의 심리상태가 수시로 바뀐다는 사실이다. 작자는 호기심에서 시작하여 분노와 우호의 감정을 거쳐 연민의 마음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이 글은 역으로 이 연민의 감정에서 출발해 씌어지고 있다. 그리하여 이 글의 기저에서 연암은 김홍연이라는 인간에 대해 아주 따뜻한 눈길을 주고 있다. 김홍연에 대한 작가의 감정 기복에 따라 글도 심하게 출렁거리며 기복과 파란波瀾을 보여준다. 2 만년의 김홍연은 벼랑 끝에 서 있는 인간이라 말할 수 있다. 그는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으며,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다. 이런 존재는 어떻게 자신을 지탱할 수 있을까? 이 글은 이에 대한 인간학적 탐구의 기록이다..
13. 게(偈)에 드러난 사람에 대한 따스한 시선 그 글 끝에 다음과 같은 게偈를 붙였다. 까마귀는 뭇 새가 검다고 믿고, 백로는 안 흰 새를 의아해하네. 흑백 모두 자기가 옳다고 하니, 하늘도 판정하길 싫어한다지. 사람들 모두 두 눈 있지만, 한쪽 눈 없어도 또한 본다네. 하필 두 눈 있어야 밝게 보일까? 외눈박이만 사는 나라도 있는데. 두 눈도 오히려 적다고 여겨, 이마에 눈 하나를 보태기도 하네. 또한 저 관음보살은, 변신하여 눈이 일천 개라지. 천 개의 눈을 어디에 쓰리? 장님도 검은 것은 볼 수 있다마다. 김군은 몹쓸 병 걸려 몸이 불편해, 부처에 의지해 연명한다지. 돈을 쌓아 두고 쓰지 않으면, 가난한 거지와 무어 다를까? 중생들 제각각 살면은 되지, 억지로 남을 배울 건 없네. 대심大深이 뭇..
12. 늙어서도 이름에 집착하며 기문을 부탁하다 어느 날 그는 나의 우거寓居에 찾아와 이런 부탁을 했다. “제가 이제 늙어 머잖아 죽을 터인데, 마음인즉슨 진작 죽었고 머리카락만 남아 있을 뿐이며, 거주하는 곳은 모두 중들의 암자입니다. 바라건대 선생의 문장에 의탁해서 후세에 이름을 전했으면 합니다.” 나는 그가 늙어서도 그 뜻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는 게 슬펐다. 나는 마침내 그 옛날 함께 산에 노닐던 객과 주고받았던 말을 글로 써서 보내주면서 一日詣余寓邸而請曰: “吾今老且死, 心則先死, 特髮存耳, 所居皆僧菴也. 願托子文而傳焉.” 余悲其志老猶不忘者存, 遂書其舊與遊客答問者以歸之. 이 단락에서 연암은 이 글을 쓴 이유를 밝히고 있다. ‘우거’란 타향에서 임시로 몸을 붙여 사는 집을 이르는 말이다. 여기서는..
11. 9년 만에 실제로 만나게 되다 그로부터 9년 뒤다. 나는 평양에서 김을 만날 수 있었다. 누가 그의 뒷모습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김홍연입니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그의 자字를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 “대심! 발승암 아닌가!” 김군은 고개를 돌려 물끄러미 보더니, “어떻게 저를 아시지요?” 라고 하였다.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옛날 만폭동에서 이미 자네를 알게 됐지. 집은 어딘가? 옛날에 수집한 물건들은 잘 간직하고 있는가?” 김군은 서글픈 얼굴로 말했다. “가난해져 다 팔아 버렸지요.” “왜 발승암이라고 하나?” “불행히도 병 때문에 불구가 된 데다 늘그막에 아내도 없어 늘 절집에 붙어사는 까닭에 그렇게 자호自號하지요.” 그 말과 행동거지를 살펴보니 옛날의 모습과 태도가 아직 남아 있었..
10. 김홍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백동수 그런데 이 단락에서 연암과 문답을 주고받는 사람은 과연 누굴까? 앞 단락에 의하면 그는 본래 김홍연의 행적을 잘 아는 사람이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이 사람이 백동수白東修(1743~1816)가 아닐까 생각한다. 백동수는 서얼 출신의 무반武班으로, 이덕무의 처남이다. 연암은 35세 때인 1771년 과거를 완전히 포기하고 이 자와 더불어 명산에 노닐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용력이 절륜하고 무예에 출중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한미한 신분 때문에 몹시 불우하였다. 이 글은 1779년경에 쓴 게 아닌가 추측되는데, 당시 백동수는 건달 신세였다. 훗날 그는 무직武職인 장용영壯勇營 장교將校를 거쳐 박천 군수를 지냈다. 정조 때 왕명으로 편찬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
9. 이름에 집착하는 유교, 그 너머 이상 살펴본 것처럼 이 단락은 그 필치가 경쾌하고 해학적이지만 그 속에 깊은 철리哲理가 담겨 있다. 한편 독자는 이 단락에 이르러 비로소 김흥연이 바로 발승이라는 사실을 고지告知 받는다. 그리하여 왜 이 글의 제목이 ‘발승암기髮僧菴記’인지를 간취하게 된다. 이 점 또한 묘미가 있다. 연암은 독자의 심리를 이리저리 저울질해가며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대상 인물의 심리를 통찰하는 데 썩 뛰어날 뿐 아니라 독자 심리학에도 일가견이 있다 할 만하다. 천하의 문장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이름이라는 것이 실체가 없는 허상이라는 것, 그것은 허깨비에 불과하며, 따라서 그에 집착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 이는 20대 중반 무렵에 연암이 깨달은 사실이었다. 연암은 이런..
8. 이름이 남길 바라는 허망함에 대해 이야기하던 자가 대꾸가 없자 나는 웃으며 말했다. “옛날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없다’라는 분과 ‘있을 리가 있나’라는 선생을 허구적으로 설정해 서로 문답하게 하는 글을 쓴 적이 있거늘 지금 나와 그대가 우연히 절벽 아래 흐르는 물가에서 만나 서로 문답하고 있네그려. 먼 훗날 생각하면 우리 모두가 ‘있을 리가 있나’ 선생일 터이니 이른바 발승암이란 자가 있을 리가 있나?” 그러자 그는 발끈하여 얼굴에 노기를 띠고 말했다. “내 어찌 황당한 말을 지어낸 것이겠습니까? 정말 김홍연은 존재하외다!” 나는 껄껄 웃으며 말하였다. “그대는 너무 집요하이. 지난날 왕안석王安石이 「진秦나라를 비판하고 신新나라를 찬미함(劇秦美新)」이라는 글에 대해 변증辨證하면서 ‘이건 필시 곡자운谷..
7. 이름이 곧 존재라는 착각 내가 물었다. “그 사람이 뉜가?” “김홍연이외다.” “이른바 김홍연은 뉜가?” “그 자字가 대심大深이외다.” “대심이라는 이는 뉜가?” “자호自號를 발승암髮僧菴이라고 하외다.” “이른바 발승암은 뉜가?” 余問: “是人爲誰?” 曰: “金弘淵.” “所謂金弘淵爲誰?” 曰: “字大深.” 曰: “大深者誰歟?” 曰: “是自號髮僧菴.” “所謂髮僧菴誰歟?” 이 단락은 마치 선문답 같다. 단락 전체가 물음과 대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문답이란 무엇인가? 통념과 지식을 허물어뜨려 깨달음, 즉 절대의 진리에 이르는 방편 아닌가. 이 단락에서 연암이 톡톡 던지는 물음은 이런 의미의 선문답적 물음이다. 연암은 먼저 ‘김홍연’이 누구인지를 묻는다. 그러자 상대방은 ‘대심’이라고 답한다. 연암은 다..
6. 왈짜를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 이야기가 조금 옆으로 샜지만 다시 본제本題로 돌아가자. 『사기』 열전 중에 「유협열전」과 「자객열전」이 있다. ‘유협’이란 협객을 말한다. 이 두 편의 열전에서 다룬 유협과 자객은 모두 유교적 규범에 들어맞지 않는 인간부류로서, 질서와 예법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모두 불온시 되거나 비판받아야 할 인간들이다. 그렇건만 사마천은 이들의 미덕을 찬양하고 기리어 역사에 편입하였다. 이를 두고 후대의 학자들은 두고두고 사마천을 비난하였다. 불온한 인물들을 미화하고 역사에서 다루었다는 게 비난의 이유였다. 연암이 이런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그는 『사기』 열전의 이 두 편, 특히 「유협열전」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 같다. 바로 이런 독서 경험과 관련해 연암은 젊..
5. 왠지 남 같지 않다 했더니 조선 후기 부의 축적으로 협객이 출연하다 조선 후기 도시의 발달과 상업 발전은 중간계급의 성장을 가져왔다. 특히 중인 서리층은 이런저런 이권에 개입함으로써 많은 부를 축적해 갔다. 이들의 부富는 판소리를 비롯한 서민 예술의 물질적 기초가 되기도 했으나 그 대부분은 유흥 공간으로 흘러들어 갔다고 생각된다. 이들은 재력을 바탕으로 서화를 사 모으기도 하고, 골동품이나 값비싼 중국 물건, 사치품 따위로 집을 장식하기도 했다. 혹은 유협遊俠이나 협객으로 행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부富는 서유럽의 발흥기 시민계급처럼 생산적이고 진취적인 방향으로 그 출로를 찾지는 못했다. 조선 후기의 중간계급은 비록 물질적 힘은 획득했지만 정치적ㆍ사회적 진출의 가능성은 봉쇄되어 있었다. 이 때..
4. 가뭄의 단비처럼 제공된 김홍연의 개인정보 어떤 이가 본래 김金의 행적을 잘 알아 나에게 얘기해줬는데, 그에 의하면 김은 곧 왈짜였다. 왈짜란 대개 여항의 허랑방탕하고 오활한 이들을 일컫는 말인데, 이른바 검객이나 협객俠客과 같은 부류를 말한다. 그는 젊은 시절 말 타기와 활쏘기를 잘하여 무과에 합격했으며, 힘이 세어 범을 때려잡거나 좌우 옆구리에 기생 둘을 끼고 몇 길의 담을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였지만 쩨쩨하게 벼슬자리를 얻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집이 본래 부유하여 돈을 물 쓰듯 하였고, 고금古今의 유명한 서첩書帖과 좋은 그림, 칼이며 거문고며 골동품, 기이한 꽃과 풀 따위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어, 혹 하나라도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천금을 아끼지 않았으며, 준마駿馬와 송골매를 늘 ..
3.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 무릇 명산을 유람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지극히 위험한 곳까지 찾아가 온갖 어려움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기이한 경치를 구경할 수 없는 법이다. 나는 평소 이전에 산에 오른 일을 회상할 적마다 오싹해지며 자신의 무모함을 뉘우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다시 산에 오르면 그만 지난날의 경계를 소홀히 해 가파른 바위에 오르기도 하고 깊은 낭떠러지를 내려다보기도 하며, 몸을 모로 하여 아슬아슬하게 썩은 잔도棧道를 밟고 낡은 사다리를 오르기도 하면서 왕왕 천지신명에게 무사하기를 빌며 살아 돌아가지 못할까봐 벌벌 떨면서 두려워하곤 하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주사朱砂로 사슴 정강이 크기는 될 정도로 큼지막하게 쓴 붉은 글씨가 늙은 나무 등걸과 오래된 등나무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서렸..
2. 가는 산마다 보이는 그 이름 그 후 나는 나라 안의 명산들을 두루 돌아다닌바, 남으로는 속리산과 가야산, 서西로는 천마산과 묘향산에 올랐다. 깊숙하고 외딴 곳에 이르러 세상 사람들이 도저히 올 수 없는 곳까지 왔다고 자부할 양이면 그때마다 늘 김홍연이 새겨 놓은 이름자가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닌가. 나는 화가 치밀어 이렇게 욕을 했다. “홍연이 어떤 놈이기에 감히 이리도 당돌한가!” 其後余遊歷方內名山, 南登俗離ㆍ伽倻, 西登天摩ㆍ妙香. 所至僻奧, 自謂能窮世人之所不能到, 然常得金所題. 輒發憤罵曰: “何物弘淵, 敢爾唐突耶?” 앞 단락에서 홍연에 대한 호기심을 보였다면, 이 단락에서는 홍연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분노가 명산의 외딴 곳에서 ‘김홍연’이라는 이름 석 자와 계속해서 조우..
1. 바위에 이름을 새기는 부질없는 짓 내가 동東으로 금강산을 유람할 적이다. 골짝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옛사람과 요즘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바위에 써 놓은 게 보였는데 큼지막한 글씨로 깊이들 새겨 놓아 작은 틈도 없었으니 마치 장 보러 나온 사람들이 북적거려 어깨가 부딪는 것 같기도 하고 교오의 묘지에 빽빽이 들어선 무덤 같기도 했다. 옛날에 새긴 이름은 이끼에 덮여 있었고, 새로 쓴 이름은 붉은 글씨가 환히 빛났다. 깎아지른 듯한 천 길 벼랑의 바위 위에 이르매 날아가는 새 그림자도 없었으며 오직 ‘金弘淵김홍연’이라고 새긴 세 글자만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내심 참 이상하다고 여기며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에로부터 관찰사의 위세란 족히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을 만큼 대단하고, 또 저 ..
13. 총평 1 연암은 이 글에서 홍대용과 자신의 우정, 홍대용과 국내 지인들과의 우정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하고 있지 않다. 이는 글의 초점을 중국인들고의 우정 쪽에 맞추기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다. 2 이 글의 주제가 ‘홍대용과 중국인 벗들과의 우정’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이 글을 제대로 읽은 게 못 된다. 이 글에서 말하고 있는 중국인 벗들과의 우정은 비록 몹시 감동적으로 묘사되고 있기는 하나 그럼에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방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연암은 이 방편을 통해 홍대용에 대해, 그리고 당대의 조선 사회에 대해 발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의 주제는 무엇인가? 이미 많은 말을 했으니 독자들께서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3 이 글의 가장 밑바닥에..
12. 반함하지 않은 홍대용의 일화를 끄집어내다 명銘은 다음과 같다. 하하 웃고, 덩실덩실 춤추고, 노래하고 환호할 일, 서호西湖에서 이제 상봉하리니, 서호의 벗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리. 입에 반함飯含을 하지 않은 건, 보리 읊조린 유자儒者를 미워해서지. 銘曰: “宜笑舞歌呼, 相逢西子湖, 知君不羞吾. 口中不含珠, 空悲咏麥儒. 이 마지막 두 구에서 이 명의 풍자는 절정에 달한다. 평생 양심적 실학자로 살았던 홍대용이야 스스로에게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었지만, 선비들이라고 다 그런가? 주변을 돌아보면 위학과 허학虛學으로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는 선비들이 수두룩하다. 그런 자들이 학자로 행세하고, 명성을 누리고, 권력에 빌붙어 출세하고, 부귀를 누리지 않던가? 이처럼 이 두 구는 홍대용의 삶과 극명히 대비..
11. 불온하고 과격한 묘지명의 1구 명銘은 다음과 같다. 하하 웃고, 덩실덩실 춤추고, 노래하고 환호할 일, 서호西湖에서 이제 상봉하리니, 서호의 벗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리. 입에 반함飯含을 하지 않은 건, 보리 읊조린 유자儒者를 미워해서지. 銘曰: “宜笑舞歌呼, 相逢西子湖, 知君不羞吾. 口中不含珠, 空悲咏麥儒. 이런 일에 대해 추론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기는 하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왜 이 명이 이처럼 삭제되거나 변개되는 운명을 겪게 되었을까하는 물음에 답하는 일이다. 정말 왜 그랬을까? 한마디로 답한다면, 이 명에 내포된 불온함과 과격함 때문이다. 우선 이 명의 제1구인 ‘宜笑舞歌呼’를 보자. 이 구절은 ‘웃다(笑)’ ‘춤추다(舞)’ ‘노래하다(歌)’ ‘환호하다(呼)’라는 네 개의 동사로..
10. 홍대용의 묘지명을 복원하다 명銘은 다음과 같다. 하하 웃고, 덩실덩실 춤추고, 노래하고 환호할 일, 서호西湖에서 이제 상봉하리니, 서호의 벗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리. 입에 반함飯含을 하지 않은 건, 보리 읊조린 유자儒者를 미워해서지. 銘曰: “宜笑舞歌呼, 相逢西子湖, 知君不羞吾. 口中不含珠, 空悲咏麥儒. 이 명銘은 짧지만 대단히 문제적이다. 연암의 문집 전체가 간행된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31년에 와서 였다. 당시 박영철이라는 사람이 돈을 대고 출판을 주관하였다. 이 본本을 보통 박영철본 『연암집』이라 부른다. 그런데 박영철본 『연암집』에는 이 명이 빠져 있다. 하지만 『과정록』에는 다음과 같이 이 명을 특별히 소개해 놓고 있다. 相逢西子湖 知君不羞吾 서호에서 이제 상봉하면 서호의 벗은 나를..
9. 홍대용의 신원(身元) 그 부친은 이름이 역櫟인데 목사牧使를 지내셨고, 조부는 이름이 용조龍祚인데 대사간大司諫을 지내셨으며, 증조부는 이름이 숙潚인데 참판參判을 지내셨다. 모친은 청풍淸風 김씨金氏이니, 군수 방枋의 따님이시다. 덕보는 영조 신해년(1731)에 태어났으며, 음보蔭補로 선공감 감역에 제수되었고, 곧 돈녕부敦寧府 참봉參奉으로 옮겼으며, 다시 세손익위사世孫翊衛司 시직侍直에 제수되었다가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로 승진되고, 종친부宗親府 전부典簿로 전임되었다가 태인 현감泰仁縣監으로 나갔으며, 영천 군수로 승진하여 두어 해 재임하다 노모 봉양을 이유로 사직하고 돌아왔다. 처는 한산韓山 이홍중李弘重의 따님인데, 1남 3녀를 낳았다. 사위는 조우철趙宇喆ㆍ민치겸閔致謙ㆍ유춘주兪春柱이다. 돌아가신 그해 12월..
8. 중국의 벗들이여 천하지사인 홍대용을 알려라 아아! 덕보는 생전에 이미 우뚝하여 옛사람의 기이한 자취와 같았으니, 훌륭한 덕성을 지닌 벗이 이 일을 널리 전해 그 이름이 한갓 강남에만 유포되는 데 그치지 않게 한다면 굳이 묘지명을 쓰지 않더라도 덕보의 이름은 불후不朽가 되리라. 噫! 其在世時, 已落落如往古奇蹟, 有友朋至性者, 必將廣其傳, 非獨名遍江南, 則不待誌其墓, 以不朽德保也.” 이 단락은 2편부터 6편까지의 서술을 총괄하면서 홍대용이 생전 얼마나 위대한 인간이었나 하는 점을 다시 언급하고 있다. 그런 다음, 홍대용의 중국인 벗들은 이처럼 위대한 인간이 단지 중국의 강남에만 알려지게 하지 말고 천하에 알려지게 해 홍대용이 불후不朽하도록 해주기 바란다는 완곡한 말을 붙이고 있다. 여기서 ‘불후’라는 ..
7. 홍대용이 청의 위대한 학자인 대진을 만났다면 사실 항주의 세 선비는 문장과 예술에서 그리 빼어난 인물들이 아니었다. 일찍이 일본인 학자 후지츠카 치카시藤塚鄰(1879~1948)는 당시 홍대용이 대진戴震(1724~1777)과 같은 청나라의 석학을 만나지 못한 것을 애석해한 바 있다. 대진은 고증학자로서 기철학氣哲學을 토대로 다양한 학문 세계를 펼쳐 나갔다. 20세기 전반기 중국의 걸출한 교육가인 채원배蔡元培는 청대淸代의 가장 위대한 세 사상가로 황종희黃宗羲(1610~1695), 대진, 유정섭兪正燮(1775~1840)을 꼽은 바 있다. 홍대용 역시 기철학 위에 자신의 사상을 구축해갔던 만큼 만일 두 사람이 만났더라면 서로 도움이 되었을 터이다. 하지만 대진의 사상은 크게 보아 구래舊來의 중국 철학의 틀..
6. 홍대용과 엄성의 국경을 넘나드는 우정 그로부터 두어 해 뒤 엄성은 민중閩中에서 객사하였다. 반정균이 글을 써서 덕보에게 부음을 전하자 덕보는 애사를 짓고 향을 갖추어 용주에게 부쳤는데 그것이 전당에 전해진 그날 저녁이 마침 엄성의 대상大祥 날이었다. 서호西湖 주변의 두어 고을에서 대상에 참예하러 왔던 사람들은 모두 경탄해 마지않으며 혼령이 감응한 결과라고들 하였다. 엄성의 형인 과果가, 덕보가 보내온 향을 피운 뒤 그 애사를 읽고 초헌初獻을 하였다. 後數歲, 客死閩中, 潘庭筠爲書赴德保. 德保作哀辭具香幣, 寄蓉洲, 轉入錢塘, 乃其夕將大祥也. 會祭者環西湖數郡, 莫不驚歎, 謂冥感所致 誠兄果, 焚香幣, 讀其辭, 爲初獻. 엄성의 아들 앙昻이 덕보를 백부伯父라 일컫는 편지를 써서 아버지의 글을 모은 『철교유집..
5. 중국 친구인 엄성에게 출처관에 대해 얘기한 이유 덕보는 일찍이 서장관書狀官인 작은아버지를 수행하여 북경에 가 육비, 엄성, 반정균을 유리창에서 만났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집이 전당錢塘인데 다 문장과 예술에 능한 선비였으며, 그 사귀는 이들도 모두 중국의 저명한 인사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덕보를 대유大儒로 떠받들며 심복心腹하였다. 덕보는 그들과 수만 글자의 필담을 나눴는데, 그 내용은 경전의 취지며 하늘의 명命이 사람에게 품부稟賦된 이치며 고금古今 출처出處의 도리를 분변한 것으로, 그 견해가 웅대하고 걸출하여 기쁘기 그지없었다. 급기야 그들은 헤어질 때 서로 마주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한번 헤어지면 천고千古에 다시 만나지 못할 테지요. 지하에서 만날 그날까지 부끄러운 일..
4. 뛰어난 경세적 능력을 꼭꼭 숨겨라 하지만 덕보는 자신의 재주가 남에게 드러나는 걸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한두 고을의 수령으로 지낼 때에도 그저 관아의 장부를 잘 정리하고, 일을 미리미리 처리하며, 아전들을 공손하게 만들고, 백성들을 잘 따르게 함이 고작이었다. 獨不喜赫赫耀人, 故其莅數郡, 謹簿書, 先期會, 不過使吏拱民馴而已. 연암은 홍대용이 일국을 경영할 만한 재상의 자질을 지녔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실제 홍대용의 삶은 어떠했는가? 이 점은 이 단락의 끝 부분에서 언급되고 있는바, 한두 고을의 수령을 지내면서 관아의 장부나 정리하고, 아전들을 공손하게 만들고, 백성들을 잘 따르게 함이 고작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역설이 있는가. 그런 학문과 재주와 식견으로 고작 작은 고을 수령을 하면서 장부나 정리했다..
3. 뛰어난 경세적 능력을 지닌 홍대용 그래서 덕보가 백사百事를 두루 잘 다스리고, 문란하고 그릇된 일을 척결할 수 있으며, 나라의 재정을 맡기거나 먼 나라에 사신으로 보냄 직하며, 군대를 통솔해 나라를 방어하는 데 뛰어난 책략을 지녔다는 걸 통 알지 못했다. 而殊不識德保綜理庶物, 剸棼劊錯, 可使掌邦賦使絶域, 有統禦奇略. 연암은 홍대용의 경세적 능력을 다음과 같이 아주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꼽아가며 명시하고 있다. “백사百事를 두루 잘 다스리고, 문란하고 그릇된 일을 척결할 수 있으며, 나라의 재정을 맡기거나 먼 나라에 사신으로 보냄 직하며, 군대를 통솔해 나라를 방어하는 데 뛰어난 책략을 지녔다(綜理庶物, 剸棼劊錯, 可使掌邦賦使絶域, 有統禦奇略)” 여기서 ‘백사를 두루 잘 다스릴 수 있었다(綜理庶物)’는..
2.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학자를 멸시하다 중국 가는 사람을 보내고 난 뒤 나는 항주杭州 사람들이 덕보에게 보낸 서화書畵며 서로 주고받은 편지와 시문詩文이며 이런 것 열 권을 손수 찾아내어 빈소 옆에 벌여 놓고 관을 어루만지며 통곡하였다. 旣送客, 手自檢其杭人書畵尺牘諸詩文共十卷. 陳設殯側, 撫柩而慟曰: 아아! 덕보는 통달하고 명민하고 겸손하고 고아古雅했으며, 식견이 심원하고 아는 것이 정밀하였다. 특히 율력律曆에 정통하여 그가 만든 혼천의渾天儀 등 여러 기구들은 깊이 생각하고 오래 궁구하여 슬기를 발휘해 제작한 것이었다. 애초 서양인은 땅이 둥글다는 것만 말하고 회전한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덕보는 일찍이 지구가 한 번 돌면 하루가 된다고 논했는데 그 이론이 미묘하고 심오하였다. 그는 미처 이에 관한..
1. 왜 중국사람에게 홍대용의 부고를 알리는가? 덕보德保가 숨을 거둔 지 사흘째 되던 날 어떤 객客이 북경으로 가는 사신을 따라 중국으로 떠났는데 그 가는 길이 삼하三河를 지나게 되어 있었다. 삼하에는 덕보의 벗이 있는데 이름은 손유의孫有義이고 호는 용주蓉州다. 3년 전 내가 북경에서 돌아오는 길에 용주를 방문했으나 만나지 못해 편지를 남겨 덕보가 남쪽 땅에서 고을살이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자세히 전하고 아울러 우리나라의 토산품 두어 가지를 정표情表로 두고온바 용주는 그 편지를 읽어 내가 덕보의 친구인 줄 알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 떠나는 객에게 다음과 같은 부고訃告를 용주에게 전하게 하였다. 德保歿越三日, 客有從年使入中國者, 路當過三河. 三河有德保之友曰: “孫有義號蓉洲.” 曩歲, 余自燕還, 爲訪蓉洲不遇..
12. 총평 1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한학자漢學者 김택영은 이 글에 대해 “솜씨가 걸출하며” “호방하며 깨끗함이 마치 태사공(사마천)의 글 같다”고 평한바 있다. 2. 이 글은 문예적으로만이 아니라 사상사적 견지에서도 중요한 글이다. 북학이 고고지성呱呱之聲을 지르며 탄생하는 역사적 현장을 보여주고 있음으로써다. 3 17세기 이래 조선의 사대부들이 이른바 ‘단안單眼’으로 청나라를 봤다면, 이 글에서 확인되는 홍대용의(그리고 박지원의) 청을 보는 눈은 이른바 ‘복안複眼’이라 할 만하다. 놀랍게도 만주족 지배층과 한족 인민, 외관상의 변화와 본질적 연속성, 명분과 현실 등을 구분해 파악하는 관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4 중국인 벗들과의 친분을 무조건 동아시아적(혹은 국제적) 연대라고만 말할 것은 아..
11. 홍대용의 필담으로 벗 사귀는 도를 깨닫다 마침내 홍군은 항주의 세 선비와 이야기 나눈 것을 적은 세 권의 초고를 꺼내서 내게 보여주며, “서문을 부탁하외다!” 라고 하였다. 나는 그 책을 다 읽고 탄복하여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홍군은 벗 사귀는 법에 통달했구나! 나는 이제야 벗 사귀는 법을 알았다. 그가 누구를 벗으로 삼는지를 보고, 누가 그를 벗으로 삼는지를 보며, 또한 그가 누구를 벗으로 삼지 않는지를 보는 것, 이것이 나의 벗 사귀는 방법이다.” 迺出其所與三士譚者, 彙爲三卷以示余曰: “子其序之.” 余旣讀畢, 而歎曰: “達矣哉, 洪君之爲友也! 吾乃今得友之道矣. 觀其所友, 觀其所爲友, 亦觀其所不友, 吾之所以友也.” 어째서 이 서문을 쓰게 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홍대용이 보여주는 우도友道에..
10. 중국인들과 나눈 필담으로 비난받다 17세기 후반 이래 조선 사대부들은 중국이 청나라의 지배하에 들어가 비린내 나는 땅으로 변했으며 따라서 야만국인 중국에서 배울 점은 없으며 이제 조선이 중화 문명의 유일한 계승자임을 자부하였다. 조선 사대부들은 특히 청나라가 들어서면서 복식과 두발의 모양이 만주족의 방식으로 바뀐 것을 개탄해 마지않았다. 중화 문명의 빛나는 전통이 그로써 사라졌다고 본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중화 문명의 유일한 계승자인 조선이 청나라를 쳐서 다시 한족의 나라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자임했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북벌론北伐論이 그것이다. 하지만 북벌론은 허구였으며, 기실은 효종과 노론 세력, 이 둘은 공통된 이해관계에서 나온 통치용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았다. 어찌 보면 그것은 가증..
9. 청나라의 땅과 인민과 학술과 문화는 옛 중국 그대로다 아! 우리나라에서 항주까지는 거의 만 리이니 홍군은 이제 다시는 세 선비를 만나볼 수 없으리라. 그런데 접때 자기 나라에 살 땐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서로 친구 하지 않더니 지금 만 리나 먼 곳에 있는 사람들과 교유하고 있고, 접때 자기 나라에 살 땐 같은 종족이면서도 서로 사귀지 않더니 지금 다시는 만나볼 수 없는 살마들을 벗 삼고 있으며, 접때 자기 나라에 살 땐 언어와 의관이 같아도 서로 벗 삼지 않더니 지금 갑자기 서로 말도 다르고 옷차림도 다른 사람들을 친구로 받아들이니 어떻게 된 일일까? 嗟呼吾東之去吳幾萬里矣, 洪君之於三士也, 不可以復見矣. 然而向也居其國, 則同其里閈而不相知, 今也交之於萬里之遠; 向也居其國, 則同其族類而不相交, 今也友之..
8. 외줄타기의 긴장감을 지닌 북학정신 홍대용과 연암이 북학(=중국 배우기)을 제창했다고는 하나 이런 현상(慕華思想)을 희구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청나라에 대한 경계심은 경계심대로 지닌 채, 헛된 명분론을 벗어나 청나라의 선진 기술과 문물을 배움으로써 조선인민의 생활을 향상시키고 조선의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이들의 청나라에 대한 태도는 ‘양가적兩價的’이다. 한편으로는 청나라에 대한 경계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청나라를 학습하자는 것, 이것이 그들의 기본 구상이었다. 이 구상은 어찌 보면 모순 같기도 하나, 바로 이 모순에서 조선적 주체성이 발아發芽할 ‘틈’이 생겨나온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본다면 홍대용과 연암의 입점立點은 아주 ..
7. 조선의 한계가 중국에 대한 선망을 낳다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만 볼 수 없는 측면도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앞서 말했듯 홍대용의 경우 중국인들과의 교유는 명예나 이익 따위를 넘어서 있는 것이었고, 그 점에서 그것은 인격을 담보한 퍽 순수한 성격의 것이었다고 할 만하다. 하지만 박제가 등에 이르면 사정이 좀 달라지는 듯하다. 즉 박제가의 경우 중국인과의 교유는 단지 순수한 동기에서만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고, 중국인과의 교유를 통해서 얻게 되는 명예나 이익에 대한 고려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없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박제가는 이른바 모화사상慕華思想이 아주 강했던 인물이었던 만큼 중국 문인이나 지식인과의 친교는 그의 문화적 욕구를 채워주었으리라 짐작된다. 뿐만 아니라 중국인과의 친교는 박제가의..
6. 중국인과의 교류로 우리 홍대용이 달라졌어요 홍대용이 체험한 1766년 초봄의 이 만남은 이후 홍대용이 자신의 독특한 사상을 만들어 나가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며, 한중 교류사에서도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홍대용은 귀국 후 박지원과 함께 이른바 ‘북학’에 제창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흔히 오해되고 있듯, 홍대용의 사상적 고취가 고작 북학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홍대용은 그보다 훨씬 멀리 나아갔다. 즉 그는 오랜 숙고를 거쳐, 진리의 배타적 독점성을 주장하던 당대의 주자학에서 벗어나 양명학, 서학西學, 불교, 노장老莊, 묵가 등 모든 이단 사상도 그것대로의 장점이 있으며 궁극적으로 ‘징심구세澄心求世’, 즉 인간의 마음을 맑게 하고 세상을 구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바, 공평무사한 마음으로 그 장점..
5. 중국 친구와 사귀다 보니 인식이 바뀌네 그리하여 몰래 그들이 묵는 여관을 찾아가 마치 오랜 친구처럼 환담했으니, 하늘의 명命이 사람에게 성으로 품부稟賦된 이치라든가 주자학朱子學과 육왕학陸王學의 차이라든가 세도世道가 성하고 쇠한 기미라든가 벼슬길에 나아가거나 물러나는 일의 영광스러움과 욕됨의 분간 등등에 대하여 샅샅이 논하며, 근거를 들어 고찰하고 입증하니, 서로 마음에 맞지 않는 게 없었다. 서로간에 잘못을 지적하고 충고하는 말은 모두 지성스럽고 간절한 데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이에 처음에 서로 지기知己로 허여하다가 종국에는 의형제를 맺었다. 서로 흠모하고 좋아함은 마치 성색聲色을 좇는 것 같았고, 서로 저버리지 않음은 마치 하늘에 맹세한 것 같았으니, 그 의義가 족히 사람들을 감읍感泣시킬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