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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6장. 종묘를 지키듯 몸을 지켜야 하는 이유 「효행」 6장은 다음과 같다. 증자가 말하였다: “부모님께서 낳아주신 이 몸, 자식된 자로서 어찌 감히 그 생명을 잃게 할 수 있으랴! 부모님께서 내가 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양육해주신 이 몸, 자식된 자로서 어찌 감히 폐(廢)하리오! 부모님께서 온전한 생명체로서 부여하여 주신 이 몸, 자식된 자로서 어찌 감히 결손케 할 수 있으랴! 그러므로 강을 건널 때도 배를 타고 건널지언정 함부로 헤엄쳐 건너지 아니 하고, 길을 갈 때에도 샛길로 다니지 아니하고 당당히 대로를 걷는다. 내 몸의 지체를 마치 종묘와 같은 성전을 지키는 것처럼 온전하게 지키는 것, 그것이 바로 효인 것이다.” 曾子曰: “父母生之, 子弗敢殺. 父母置之, 子弗敢廢. 父母全之, 子弗敢闕. 故舟而不..
5장. 선왕이 천하를 다스린 근본 다섯 가지 「효행」 5장은 다음과 같다. 증자가 말하였다: “선왕(先王)께서 천하를 다스리는 근본이 되는 것이 다섯 가지가 있었다. 덕이 있는 자를 귀하게 여기고[貴德], 본시 존귀한 자를 귀하게 여기고[貴貴], 오래 산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고[貴老], 손위의 사람들을 공경하고[敬長], 손아래 사람들을 자애롭게 대하는 것[慈幼], 이 다섯 가지였다. 이 다섯 가지야말로 선왕께서 천하를 안정되게 만드는 요체였다. 曾子曰: “先王之所以治天下者五, 貴德, 貴貴, 貴老, 敬長, 慈幼. 此五者, 先王之所以定天下也. 덕이 있는 자를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그가 성스러움에 가깝게 가기 때문이다. 존귀한 자를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그가 임금을 보좌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 산 사람들을 ..
4장. 어떤 죄보다도 큰 죄 「효행」 4장은 다음과 같다. 『상서(商書)』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형벌에 삼백 가지가 있어도 그 죄가 불효보다 중한 것은 없다.” 商書曰: “刑三百, 罪莫重於不孝.” 마지막의 ‘상서(商書)’의 말로써 인용된 것은 지금 우리가 ‘상서(尙書)’라고 부르는 것의 일부일 텐데 현존하는 금ㆍ고문 『상서』속의 ‘상서(商書, 상商나라의 문서)’에는 전하지 않는다. 본시 ‘상서(尙書)’의 ‘상(尙)’은 ‘상대(上代)’라는 의미이다. ‘서(書)’는 ‘문서로서 기록된 것’이라는 의미이다. ‘상서(尙書)’는 ‘고대의 공문서’라는 뜻인데, 그 속에 ‘상서(商書)’가 포함된다. 현행 『상서』 속에서 발견되지 않는 인용문들을 위조로서 보는 경향이 강했는데, 최근 청화간(淸華簡)의 상황이 그러하..
3장. 부모의 몸을 물려받은 자식이 실천해야할 다섯 가지 「효행」 3장은 다음과 같다. 증자가 말하였다: “우리의 몸은 부모의 몸의 연장태이다. 부모의 몸의 연장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어떻게 감히 공경하지 아니 할 수 있겠는가? 일상의 기거(起居)에 있어서 장중하지 아니 하면 그것은 불효이다. 임금을 섬김에 충성되지 아니 하면 그것은 불효이다. 관직에 임하여 공경함이 없으면 그것은 불효이다. 붕우를 사귐에 독실하지 아니 하면 그것은 불효이다. 전장에 나아가 진을 침에 용기가 없으면 그것은 불효이다. 曾子曰: “身者, 父母之遺體也. 行父母之遺體, 敢不敬乎? 居處不莊, 非孝也. 事君不忠, 非孝也. 莅官不敬, 非孝也. 朋友不篤, 非孝也. 戰陳無勇, 非孝也. 이 다섯 가지 행동을 완벽하게 수행하지 아니 하면 그..
2장. 부모를 공경할 줄 아는 천자 「효행」 2장은 다음과 같다. 대저 하나의 원칙을 굳게 지키면, 백 가지로 좋은 결과가 도래하며 백 가지로 나쁜 일들이 사라지며, 천하 사람들이 모두 존경하여 따르게 되는 상황이란 ‘효’가 그 유일한 대안일 것이다. 夫執一術而百善至, 百邪去, 天下從者, 其惟孝也. ‘집일술(執一術)’의 ‘술(術)’은 요즈음의 말처럼, 기술이나 술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이나 원리, 즉 도(道)를 의미한다. 옛말에는 ‘유도(儒道)’도 ‘유술(儒術)’이라고 했다. ‘일술(一術)’은 효라는 원칙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평가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가 친부모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살펴야 할 것이요, 그가 사회적 인사들을 사귀는 방식은 평가에서 뒤로 돌려야 한다. 반드시 먼저 그가 중요한 사람들을..
제11장 『여씨춘추(呂氏春秋)』 「효행」 편 역주 1장. 근본인 효에 힘쓸 때의 공능 『효경』의 충실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하여 『여씨춘추(呂氏春秋)』 「효행」편 전문을 여기 소개한다. 독자들 스스로의 『효경』 연구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1장은 다음과 같다. 대저 천하를 다스리고 국가를 통치한다는 것은 반드시 먼저 근본을 힘쓴 후에 말엽을 다스리는 것이다. 근본이란 무엇인가? 소위 근본이라는 것은 밭을 갈고 김매고 파종하고 경작하는 그런 경제적 행위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 근본이란 바로 국민 그 개개인 사람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사람을 향상시킨다 하는 것은 빈궁한 자를 부자로 만들고, 재력이 부족한 자를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본바탕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凡爲天下, 治國家, 必務..
『효경』과 진(秦)제국의 탄생, 저자는 여불위의 식객이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추상적 가치로써 인욕을 절제시키고 영으로 다시 태어나는 인간세의 새로운 보편주의적 질서를 설파함으로써 로마제국을 압도하는 새로운 제국의 질서를 창출해내는 데 성공한다. 『효경』의 저자는 인간의 생리적 본능으로부터 고도로 추상화된 상징계의 도덕적ㆍ인문적 원리까지를 포괄할 수 있는 ‘효’라는 개념 하나로 새로운 제국의 질서를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효경』의 저자, 그 엑스(x)는 누구일까? 나는 감히 단언한다. 아니, 단언할 수밖에 없다. 그 엑스는 여불위(呂不韋)의 식객 중의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요즈음 간백(簡帛)자료가 출토된 이후 중국 고경의 상한선을 마구 올려잡는 경향이 있으나 『효경』의 경우,..
여불위의 비젼과 효 담론 여불위(呂不韋) 자신의 변을 한번 들어보자! 『여씨춘추(呂氏春秋)』가 완성되었을 때 어떤 평범한 사람이 여불위(呂不韋)에게 「십이기(十二紀)」에 관해 물었다. 그러자 문신후(文信侯)【장양왕(莊襄王)으로 여불위가 자금을 댄 자초(子楚)를 말한다】 원년(元年)에 여불위는 승상(丞相)이 되었고 문신후에 봉하여졌다)가 이와 같이 대답했다. 나는 일찌기 황제(黃帝)가 그의 손자인 전욱(顓頊)을 교육할 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들은 적이 있다: “너의 머리 위로는 저 둥근 거대한 하늘이 있고 너의 발 아래는 저 네모난 거대한 땅이 있다. 너는 저 하늘과 땅을 본받아라. 그리하면 너는 백성들의 부모되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嘗得學黃帝之所以誨顓頊矣, 爰有大圜在上, 大矩在下, 汝能法之, 爲民..
군주론: 집권의 요청과 견제 『여씨춘추(呂氏春秋)』가 말하는 군주론은 새롭게 중국문명에 등장하는 훗날의 진시황 정(政)에 대한 인정과 견제의 양면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 군주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군주는 국정의 개별적 사안에 관여해서는 아니 된다. 정무의 만단(萬端)을 능력있는 신하들에게 맡겨야 한다. 2) 군도(君道)는 ‘정(靜)’, 신도(臣道)는 ‘동(動)’, 군도는 ‘인(因)’, 신도는 ‘위(爲)’. 군주된 자는 군ㆍ신의 구별을 확실하게 하고, 자신은 ‘무지무능(無知無能)’의 철학을 실천하면서 신하의 ‘유지유능(有知有能)’에 철저히 의거할 것. 3) 군주는 천박한 이목(耳目)의 시청(視聽)을 버리고, 번잡한 사려(思慮)를 중단하고(‘에포케epokhế’에 집어 넣는다), 성명(性命)의 ..
지공(至公)한 거사(去私)의 제국 여기 『여씨춘추(呂氏春秋)』 「십이기」의 시령사상이 우리에게 전하려고 하는 것은 정치는 근본적으로 타이밍의 예술이라는 것이다. 시령의 사상은 천지자연(天地自然)과 인간(人間)의 하나됨을 말하고 있다. 하늘의 기가 하강하고 땅의 기가 상등(上騰)하면서 생물이 맹동(萌動)하는 맹춘(孟春)의 달에는 시생(始生)하는 천지의 기운에 맞추어 전성(全性: 본성을 온전하게 함)하고 전덕(全德: 덕을 온전하게 함)해야 하며(「본생本生」 편), 욕망을 조절하여 장생의 길을 터득해야 하며(「중기重己」 편), 무편무당(無偏無黨)의 공도(公道)를 실천함으로써 천하를 한 사람의 사심으로써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천하의 천하가 되게 하며(「귀공貴公편), 사심(私心)을 버려야 한다(「거사去私」 편)...
서명의 유래 그런데 『사기』의 기록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편집체계가 「팔람」, 「육론」, 「십이기」의 순서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본서의 편집체계의 원래 모습을 전하고 있는 중요한 언급으로 간주된다. 오늘날의 『여씨춘추(呂氏春秋)』는 「십이기」, 「팔람」, 「육론」의 순서이다. 즉 「십이기」가 앞으로 와있는 것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를 보통 『여람(呂覽)』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팔람(八覽)」이 가장 앞으로 와있는 상황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리고 「팔람」의 제1람이 「유시람(有始覽)」으로 되어 있는데, 「유시람(有始覽)」의 내용이 전체 서물의 총론적 성격을 지니고 있어 그것을 경(經)이라고 한다면, 나머지 일곱 람과 육론(六論)이 전(傳)에 해당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역시 「팔람..
치열한 편집의 결과물 『여씨춘추(呂氏春秋)』의 편찬상황에 관한 사마천의 「여불위열전(呂不韋列傳)」의 기록을 한번 훑어보자! 이 시기에 위(魏)나라에는 신릉군(信陵君: 무기無忌, 위나라 안리왕安釐王의 아우), 초(楚)나라에는 춘신군(春申君: 황헐黃歇. 초나라의 귀족), 조(趙)나라에는 평원군(平原君: 조승趙勝. 조나라 혜문왕惠文王의 아우), 제(齊)나라에는 맹상군(孟嘗君: 전문田文. 제선왕齊宣王의 이복동생 전영田嬰의 아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천하의 선비들 앞에서 자신을 낮출 줄 알았고 빈객(賓客) 좋아하기를 서로 경쟁하였다. 여불위(呂不韋)는 진나라가 강성하기는 하지만 문화적으로 그 여타 나라와 같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기었다. 그래서 또한 선비들을 불러 모으고 그들을 후대하였는데 식객(食客)이 3천..
제10장 『여씨춘추(呂氏春秋)』를 논함 모든 다양성을 포용하는 일(一) 『한서』 「예문지」는 『여씨춘추(呂氏春秋)』 26편(二十六篇)을 유가, 도가, 음양가, 법가, 명가(名家), 묵가, 종횡가 등 그 어느 분류에도 끼지 못하는 잡가자류(雜家者流)로 규정하고 있다. 그 바람에 『여씨춘추(呂氏春秋)』는 일정한 견해나 사상의 족보가 박약한 잡서(雜書)로서 인상 지워지는 경향이 강했다. ‘잡(雜)’이라는 어휘 속에는 분명 천시하는 가치판단이 들어가 있다. 곽말약도 『십비판서(十批判書)』 속에서 ‘잡(雜)’이라는 명칭 속에는 악의가 숨겨져 있다고 지적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한서』 「예문지」의 분류로써 일논(一論)하자면 『여씨춘추(呂氏春秋)』는 ‘유가’로써 들어갔어야 한다. 중국문명의 정통의 위치를 확보했어야..
위대한 비젼의 기업인과 색마의 야누스 한번 생각해보자! 한국과 미국을 무대로 해서 활약하는 거대한 기업인이 한 사람 있다고 하자! 그 기업인이 미국시민권을 소유한 어떤 탁월한 재능있는 교포가 한국에 와서 살면서 고생하고 있는 모습을 목도하게 된다. 그 재능의 미래적 가능성이 탐나 그에게 막대한 투자를 한다. 그리고 그의 고향인 로스앤젤레스에서도 엄청난 로비활동을 벌여 그를 로스앤젤레스 시장에 당선시킨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투자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 시장의 아들이 원대한 포부가 있는 큰 인물임을 발견하고 대를 물려 그 아들에게 또 투자를 한다. 그리하여 그 아들을 오바마와 같은 미국의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그 아들이 대통령으로서 미국을 재건해 나가는 데 필요한 방대한 정치..
제9장 사마천의 「여불위열전」을 비판함 청대 필원(畢元)의 교정본으로 재발굴된 『여씨춘추(呂氏春秋)』 이제 우리가 감행해야 할 작업은 『여씨춘추(呂氏春秋)』의 성격을 밝히는 것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는 누가 왜 썼는가? 중국은 선진고경 중에서 『여씨춘추(呂氏春秋)』처럼 저작연대가 확실하고【‘유진팔년(維秦八年)’의 해석을 놓고 BC 239년이냐, BC 241년이야 하는 정도의 논란만 있을 뿐】, 또 직접적인 집필자는 아니더라도 그 책을 편찬하게 만든 인물의 역사성이 확실한 서물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책이 우리의 의식에서 소원하게 자리잡고 있는 이유는 역사적으로 이 서물이 방치된 채로 있었으며 청나라 때의 고증학자가 손을 대기까지는 사람들이 거의 읽지 않았으며 따라서 별로 인용도 되..
순자가 말하는 군신관계: 간(諫)ㆍ쟁(爭)ㆍ보(輔)ㆍ불(拂) 노나라 애공이 공자에게 이와 같이 묻는다: “아들이 아버지의 명에 무조건 따르는 것이 효(孝)입니까[子從父命, 孝乎]? 신하가 임금의 명에 무조건 따르는 것이 정(貞)입니까[臣從君命, 貞乎]?” 여기 순자의 어휘선택에서 우리가 주목할 사실은 후대의 ‘군신관계’에서 고착적으로 사용된 ‘충(忠)’이라는 말을 일부러 기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충 대신 ‘정(貞)’이라는 단어를 썼다. ‘정’에는 ‘곧음’ ‘절개’ ‘정절’의 의미가 더 강하게 풍기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정은 충(loyalty)을 의미한다. 애공이 세 번이나 되풀이하여 물었어도 공자는 대답을 하지 않고 물러났다. 물러난 뒤 공자는 자공에게 말하였다: “애공이 나에게 아들이 아버지 명..
군ㆍ부(君父)라도 도의(道義)를 구현치 않으면 따르지 말라 여기 「자도(子道)」의 충격적인 메시지는 ‘종도부종군(從道不從君), 종의부종부(從義不從父)’이다. 송ㆍ명ㆍ청대의 윤리와는 너무도 다른 것이다. 임금이라도 도(道)를 구현하는 자가 아니면 따라서는 아니 되는 것이요, 아버지라도 의(義)를 구현하는 인간이 아니라면 따라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도와 의는 인간 개체의 임의성을 초월하는 객관적 사회적 원리요 기준이다. 효자가 어버이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경우, 그 이유는 다음 세 가지가 있다. 어버이의 명을 따르면 오히려 어버이가 위태롭게 되고, 어버이의 명을 따르지 않으면 어버이가 안전하게 되는 경우, 효자라면 어버이의 명을 따르지 않는 것이 충정(衷情)【여기서 ‘충(忠)’ 대신 ‘충(衷)’이라는 어휘..
유의 적통, 법가적 합리성의 새 국면 개척 오늘날 법제가 발달한 사회일수록 이러한 순자(荀子)의 명제는 매우 적확한 의미를 지닌다. 순자(荀子)는 유ㆍ법을 통합하고 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儒)의 적통성을 지키면서 법가적 합리성의 새로운 국면을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묻건대, 사람의 임금(人君)된다 함이 무엇이뇨? 대답컨대, 예를 기준으로 하여 신하들에게 관작과 봉록을 나누어주는데 공평하고 두루 미치게 하여 어느 한편에 치우침이 없어야 임금이다. 請問爲人君? 曰, 以禮分施, 均徧而不偏. 묻건대, 사람의 신하[人臣] 된다 함이 무엇이뇨? 대답컨대, 예를 기준으로 하여 임금을 대하고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와 따르고 나태함이 없어야 신하이다. 請問爲人臣? 曰, 以禮待君, 忠順而不懈. 묻건대, ..
순자의 냉철한 합리주의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효가 논쟁의 중심과제로서 담론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효의 담론화 과정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효경』의 성립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순자(荀子)의 냉철한 합리성은 다음의 논지에서 더욱 명료하게 드러난다. 순자(荀子)의 합리주의는 우리가 『삼강행실도』의 비판적 검토에서 논의한 바, 인륜관계의 쌍방성에 관한 것이다. 그는 일방적 관계는 결국 인간세에 파탄을 가져올 뿐이라고 굳게 믿는다. 순자(荀子)는 인륜관계의 무차별적 평등이라는 것은 혼란을 의미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하이어라키(hierarchy, 계층)는 인정하지만 복종주의나 권위주의는 수용하지 않는다. 그는 우선 군ㆍ신, 부ㆍ자, 형제, 부ㆍ부의 관계가 인륜도덕의 근본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군..
맹자(孟子)를 반박하는 순자의 명쾌한 논리 데카르트의 코기탄스(cogitans)로부터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monadology)에 이르는 모호한 선험적 명제들을 대하다가, 갑자기 존 록크(John Locke, 1632~1704)의 ‘백지(white paper)’【록크는 『인간오성론』 속에서 ‘타불라 라사(tabula rasa)’라는 말을 쓴 적이 없다. 그것은 1700년 삐에르 코스테Pierre Coste가 『인간오성론』을 불어로 번역할 때 아리스토텔레스 저작물의 라틴어 번역개념을 부과하여 날조한 개념이며 전혀 록크의 의도와 관련없다】를 대하는 느낌을 받는다. 록크는 『인간오성론』속에서 인간의 마음은 백지로써 태어나며, 그 백지 이전의 감성에 주어진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그 백지 위에 무한히 다채로운..
맹자(孟子)가 말하는 인의예지와 효 잠깐 앞서 얘기했던 ‘효의 담론화’라는 주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공자에게 맹무백(孟武伯)이 효를 물었다는 이야기는 분명히 ‘효’가 사회적 담론으로서 개념화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논어(論語)』 「위정편」에 보면 제5장부터 제8장까지 쪼르르륵 ‘맹의 자문효(孟懿子問孝)’, ‘맹무백문효(孟武伯問孝)’, ‘자유문효(子游問孝)’, ‘자하문효(子夏問孝)’라는 식으로 양식화된 질문이 4장을 관(冠)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공자 당대에 공자의 말로써 오간 상황이 기록된 것이라고 간주되기는 어렵다. “孟武伯問孝. 子曰: ‘父母唯其疾之憂’”라는 기록에서, 아마도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 걱정이다’라는 문장은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공자의 말로서 공문(孔門) 내에서 전송된..
제8장 선진시대 효의 담론화 『효경』이라는 책명과 내용이 인용된 최초의 사례 『효경』」이 선진문헌에서 독립된 책자로서 언급되고, 그 책의 내용이 정확하게 인용되어 있는 최초의 사례를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선식람(先識覽)」 제4, 여섯 번째 편인 「찰미(察微)」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대저 나라를 보지(保持)하는 데 있어 최상의 방책은 위험을 발생시킬 수 있는 사태의 최초상황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 다음의 방책은 벌어진 일이 결국 어떻게 결말지어질지를 예견하는 것이다. 그 다음의 차선책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의 상황이라도 정확히 분석하는 것이다. 凡持國, 太上知始, 其次知終, 其次知中. 이 세 가지에 능하지 못하면 나라가 반드시 위태로워지고, 군주 자신도 궁색하게 되고 마는 ..
새로운 보편주의적 제국의 꿈 불란서의 좌파 지식인으로서 유럽 현대철학의 리더 중의 한 사람인 알랭 바디우(Alain Badiou, 1937~ )가 쓴 『성 바울(Saint Paul) - 보편주의의 정립(La fondation de l'universalisme)』이라는 책이 있다. 바디우는 결코 현대서구신학적 논쟁의 디테일한 맥락 속에서 바울을 해석하고 있지 않다. 마치 레닌이 맑스를 해석하는 과정을 통하여 새로운 러시아 공산혁명을 이룩했듯이, 예수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로마의 정치권력과 대항하는 또 다른 정신세계로서의 보편주의적 교회 - 세계질서를 창출해낸 사상가로서, 마치 하나의 콘템포러리 혁명적 이데올로그를 그리듯이 바울의 이미지를 그려내고 있다. 누구든지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는 그리..
맹무백과 공자의 효 담론 우리는 『논어(論語)』의 구절들을 아주 상식적으로, 다시 말해서 우리의 의식 속에 당연히 주어져 있는 평범한 사태로서 읽어버리고 말 수가 있다. 그런데 여기 『논어(論語)』 「위정」의 첫 마디, ‘맹무백이 효를 물었다[孟武伯問孝]’라는 말은 객관적인 사태의 기술로서는 좀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왜 뜬구름 없이 갑자기 효를 묻는가? 효가 무엇이길래 공자에게 갑자기 던지는 질문의 대상이 되는가? 효는 인간의 가장 순수한 원초적 감정이고 누구나 일상생활 속에서 저절로 느끼는 감성의 체계일 것이다. 결코 이성적 질문의 대상으로서 객관적 탐구의 대상이 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라는 대 석학을 만났을 때 갑자기 맹무백이 효를 물었다는 사실은, 효가 이미 사회적 ..
유대교 창조신화나 희랍신들의 세계나 외디푸스 콤플렉스의 효 결여 유대교의 전통 속에서도 최초의 인간인 아담은 자신을 창조한 야훼 아버지와 선악과를 사이에 두고 끊임없는 긴장관계에 있다. 그리고 부인 하와(이브)와의 관계도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하와는 아담의 갈빗대 하나에 불과한 종속적 존재이다. 그리고 실낙원(失樂園)과 복락원(復樂園)의 테마는 인간과 야훼와의 긴장관계가 유지된 채 인간 삶의 역사성을 계속 신화적 합목적성 속에서 전개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서 효라는 주제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우스(Zeus)도 아버지 크로누스(Cronus)와 끊임없는 대립적 긴장관계에 놓여있다. 티탄들의 왕인 크로누스는 부인 레아(Rhea)와의 관계에서 태어나는 자식들이 자기보다 더 강성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
인도유러피안 어군 속에는 ‘효’라는 개념이 없다 한번 이런 생각을 해보자! 요즈음 젊은이들에게 효심이 사라지고 있다고들 말한다. 이대로 가면 효도나 효성은 우리사회에 자취를 감추고 말 것이다 운운, 과연 그럴까? 한국인의 가족관계와 서양인의 가족관계를 차이지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사람은 일차적으로 말하는 존재이다. 불교가 아무리 불립문자를 이야기해도 인간 존재의 모든 규정성은 언어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말’이란 결코 서구언어학이나 철학이 말하는 어떤 추상적 논리나 감정이나 역사가 배제된 어떤 수학적 도상이 아니다. 말이란 존재의 역사이다. 말이란 단순히 의사전달을 위한 논리적 매개가 아니라, 나의 존재의 역사성을 토탈하게 규정하는 논리 이상의 그 무엇이다. 말이 의사전달의 수단이 아니라 나의 의..
『효경』의 ‘경’은 오경박사제도 이후의 경 개념일 수 없다 공자는 하ㆍ은ㆍ주 삼대에 대한 뚜렷한 역사의식이 있었다. 그리고 역사의 교훈을 통하여 미래를 예견하는 통찰력이 있었다. 그래서 『시(詩)』, 『서(書)』를 편찬했고, 『춘추(春秋)」라는 역사서를 편찬했다. 다시 말해서 유교만이 중국이란 무엇이며 중국의 역사는 어떻게 이어져가야 하는가에 대한 역사적 통찰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막연하지만 선진시대에 ‘육예(六藝)’라는 말이 있었다고 사료되지만, 시(詩)ㆍ서(書)ㆍ예(禮)ㆍ악(樂)ㆍ역(易)ㆍ춘추(春秋)를 ‘육경(六經)’이라는 말로 지칭한 것은 『장자(莊子)』 「천운(天運)」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 최초의 용례이다. 그러나 과연 「천운(天運)」 편이 언제 만들어진 문헌인지를 단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제7장 효와 제국의 꿈 『효경』은 누가 지었을까? 이상으로 주자학의 수용으로부터 시작하여 한국인의 효관념의 변화과정을 살펴보았다. 이제 우리가 감행해야 할 작업은 『효경』이라는 텍스트 그 자체에 관한 것이다. 과연 누가 언제 왜 『효경』을 만들었는가? 이러한 문제에 관하여 아무 『효경』 책이나 거들떠보면 있는 얘기들을 내가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공자자찬(孔子自撰), 증자소록(曾子所錄), 증자문인편집(曾子門人編輯), 자사소작(子思所作), 칠십제자문도의 유서(遺書), 한유소찬(漢儒所撰) 등등의 다양한 제설이 있으나, 그 작자(作者)를 이야기하면 ‘증자문인계열에서 성립한 책’이라는 설이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증자는 효를 주제로 하여 공자학설을 발전시킨 인물이라는 것이 통설이고, 그 효의..
용주사 『부모은중경』, 『삼강행실도』를 능가하는 대중적 인기 용주사 『부모은중경』은 정조대왕의 후원과 함께 조선말기 우리사회의 최대의 힛트작이 되었다. 그 후로 일제시대까지 다양한 판본이 유통되었고 그 포퓰라리티는 실제로 『삼강행실도』를 능가했다. 『삼강행실도』보다는 단일하게 촛점이 맞추어진 스토리이며 훨씬 더 부모의 은혜를 자식에게 가르치는데 유용했으며, 또 삶의 가치를 깨닫는데 어떤 종교적 위안을 주었기 때문이다. 『삼강행실도』가 가르치는 의무적 효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효 개념이었다. 구한말의 기독교의 전파도 실상 『부모은중경』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다석이 ‘효기독론’을 주장하게 되는 배경에도 불교의 효의 보편주의적 패러다임이 깔려 있다. 실상 오늘날 기독교 신앙인들의 심리상태를 살펴보면 대부분이..
『은중경』은 가지산문 학승의 작품 보경스님과 정조의 특별한 만남이 단지 우발적인 사태가 아니라 기나긴 조선불교사의 필연적 기파(奇葩, 기이한 꽃)라 해야 할 것이다. 보경이 가지산문의 본산인 장흥 보림사의 스님이었고 또 용주사의 전신인 갈양사는 가지산문의 제2대 조사인 염거스님이 창건한 절이다. 가지산문은 체징(體澄) 이후로, 강진 무위사(無爲寺)에서 입적한 선각대사(先覺大師) 형미(逈微), 태조 왕건의 존숭을 받았던 풍기 비로암의 진공대사(眞空大師), 고려시대 숙종과 인종때 활약하였던 원응국사(圓應國師) 학일(學一), 『삼국유사』를 찬술한 보각국존(普覺國尊) 일연(一然), 충렬왕ㆍ충숙왕 때 존지를 선양하였던 보감국존(普鑑國尊) 혼구(混丘), 현재 한국 불교의 종조가 되는 태고보우(太古普愚)로써 그 법맥..
효의 새로운 보편주의적 지평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이라는 이름의 경전이 중국에서 통용되지 않았으며 그것은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었다는 사실이다. 중국에서도 비슷한 이름의, 우리나라 판본의 원형을 이룬다고 말할 수 있는 은중경류의 경전이 많이 있으나 우리나라 『불설대보부모은중경』과 같이 완벽한 체제를 갖춘 짜여진 경전은 존재하지 않는다【이러한 문제에 관하여서는 최은영, 『부모은중경』의 해설과, 『가산불교대사림(伽山佛敎大辭林)』 제10권 ‘부모은중경’ 항목을 보라】. 우리나라 판본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 대덕본(大德本)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대덕 4년(충렬왕 26년, 1300)에 목판으로 간행된 『부모은중경』. 후대의 판본과 내용상 차이가 있으나 이영성(李永成)의 ..
위경은 잘못된 개념, 전래경전과 토착경전만 있을 뿐 용주사에 소장된 목판본 『불설대보부모은중경』 뒤에 보면, ‘세유조집서중하개인(歲柔兆執徐仲夏開印), 장우화산용주사(藏于花山龍珠寺)’라고 되어 있다. 고갑자(古甲子)로 ‘유조(柔兆)’는 천간(天干) 병(丙)의 별칭이고, ‘집서(執徐)’는 12지중 진(辰)의 별칭이다. 때는 병진년(정조 20년, 1796) 중하(仲夏: 한 여름)에 개인(開印: 초판 인쇄)하였고, 경판은 화산 용주사에 보관한다는 뜻이다. 이 목판은 규장각(奎章閣) 소속의 주자소(鑄字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경판을 용주사에 내려보내어, 그곳에 보관케 하였다. 용주사에 경판이 보관된다는 의미는 용주사에서 계속 책으로 찍어낼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이 목판의 특징은 변상도 12매(목판은 앞..
『은중경』 대성공의 비결 정조가 『부모은중경』을 펴내고(1796) 게송을 지었는데, 그 게송에 화답하여 당시의 영의정이었던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이 지은 게송을 보면 당시 편견없이 부모은중경을 읽은 사람의 감정이 잘 드러나 있다(『번암집樊巖集』권59). 신이 연전에 우연히 죽산(竹山) 칠장사(七長寺)에 올라 갔다가, 그곳에 『부모은중경』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나이다. 그것을 집어들고 읽기 시작했는데 채 반도 나가기 전에 감격하여 눈물이 저절로 눈시울 안에 가득하게 되었나이다. 이는 사람이 마음이 동하여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이지 억지로 된 것이 아니옵니다. 臣年前, 偶上竹山七長寺, 見有恩重經. 拈讀未半, 感淚目然盛眶, 此人心之不待勉强而然者. 대저 우리 유가에서는 불승(佛乘)이라 하면 오랑캐 놈..
불교와 여성성 그런데 불교는 원래 정치적 권력의 장악을 목표로 하는 종교가 아니라, 인간의 고해로부터의 구원과 해탈을 목적으로 하는 각성(覺醒)운동이다. 따라서 그 각성을 유도하는 대자대비의 상징체계에는 본시 남성성보다는 여성성이 강하다. 우리나라 민중에게 가장 아필이 된 구세보살(救世普薩)인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경우에도 그 성별을 정확히 논하기는 어려운 것이나(물론 남성으로 규정되었다), 그 불상의 표현양식을 보면 온갖 찬란한 영락(瓔珞: 꿴 보석구슬 장식)으로 몸을 휘감고 속이 비치는 샤리 속에 아련히 흘러내리는 몸매의 표현은 지극히 여성적이다. 고려불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의 섬세하기 그지없는 그 매혹적인 자태를 보라! 석굴암의 11면관음보살상 대비성자(大悲聖者)의 지엄한 자태 속에도 아..
남성성에서 여성성으로 다음으로 지적되어야 할 중요한 패러다임 쉬프트는 효를 남성성(masculinity)으로부터 여성성(femininity)으로 전환시켰다는 것이다. 효의 가장 원초적 출발은 모성애이다. 동물의 세계에 있어서도 수컷은 수태과정에 주로 기능하며, 출산과 양육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출산과 양육은 암컷의 모성애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효의 교감의 가장 원초적 대상은 엄마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효경』이나 『삼강행실도』나 기타 유교경전을 보면 효의 대상이 모두 아버지로만 되어 있다. 모녀 관계는 언급되지 않고 부자관계, 부녀관계, 부부관계만 언급되어 있다. 부(父)는 자(子)의 벼리[綱]가 되고, 부(夫)는 부(婦)의 비리가 된다. 그러니깐 모든 것이 아버지 중심이요, 남성 중심이다. ..
효의 본질은 위로부터 아래로의 방향에 있다 용주사(龍珠寺)라는 이름 자체에서도 우리는 정조의 애틋한 효심을 읽을 수 있다. 억울하게 유명을 달리한 아버지 사도세자가 죽어서라도 제왕의 묘혈에서 제왕을 상징하는 용(龍)으로서 입에 여의주(珠)를 물고 승천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용주사 대웅전 대들보 주변으로 여의주를 문 용들이 13수나 조성되어 있다. 『조선불교통사』의 기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정조와 보경(寶鏡) 사일(獅馹) 스님의 만남이 일차적으로 용주사를 매개로 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용주사를 개창하기 이전에 만난 것이며, 그 인연은 바로 『부모은중경』을 매개로 이루어진 것이다. 정조는 원래 성리학에 밝은 대 유학자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불법(佛法)의 시비를 가려 도태시키려고 했다는 것이..
제6장 한국의 토착경전 『부모은중경』 박성원의 『돈효록』을 간행한 정조의 효의식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줏간에 갇혀 굶어죽는 8일간의 고통을 11세의 나이에 같이 했다. 그는 그 현장을 목격했고 피끓는 아픔으로 그 처절한 사투를 같이 느꼈을 것이다. 따라서 정조의 효심은 각별한 것이었다. 정조는 혜경궁 홍씨가 환갑을 맞이한 다음 다음 해 정조 21년(1797) 정월 초일에, 앞서 말한 『이륜행실도』와 『삼강행실도』를 합본하여 새롭게 편찬한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를 펴낸다(총 150 케이스, 그 중 한국인은 16명), 그 서문에서 엄마 혜경궁 홍씨가 환갑을 맞이하도록 모실 수 있었던 행운을 언급하면서 이와 같이 말한다. 정치가 돌아가는 것은 조정에서 볼 수 있고, 나라의 풍속은 민간에서 볼 수 있다..
하나님이야말로 인간에게 효자, 가정윤리의 연속성 어찌하여 24효 중에 병들어 죽어가는 어린 자식을 위하여 부모가 단지나 할고를 했다는 소리는 단 한 건도 없는가? 다석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효로서 인식했다고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인간에게로 향한 아가페적 베풂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충화된 효가 아닌 아가페화된 효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가 하나님에 대한 완벽한 효자라고 한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이야말로 인간 모두에게 완벽한 효자일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이야말로 나의 효자이다. 하나님이야말로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하나님은 『삼강행실도』를 만백성에게 강요한 폭군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 체험을 가지고 말한다 하더라도 자식이 아무리 부모에게 효도한다 한들, ..
효의 생리성과 도덕성 1922년 10월 3일, 『동아일보』 기사를 한번 살펴보자. 경남(慶南) 삼천포(三千浦) 동리(東里) 김형수(金馨洙, 34세)는 신병으로 신음한 지 우금(于今) 수년이라. 그 처 강씨(姜氏, 33세)와 그 아우 김덕수(金德洙, 23세)는 이래 장구한 세월을 하루와 같이 간호하는 바 약석의 효험이 없이 병세가 점점 위중하여져서 지난 달 23일에 이르러 그만 절명하려 함으로 그 아우 김덕수는 급히 식도(食刀)로써 넓적다리 살을 베어 선혈을 그 형의 운명하려는 입에 떨어트리었더니 절명되었던 그 형은 곧 회생되어 10여 시간을 지내어 그 이튿날 오후에 또 운명하려 함으로 그 처 강씨는 왼쪽 손 무명지를 단지(斷指)하여 그 피를 흘리어 넣었더니 다시 일주야(一晝夜)를 회생하였다가 운명을 어찌..
우효ㆍ우충ㆍ우열의 역사 조선조 오백년을 통하여 『삼강행실도』가 가르친 우효(愚孝)ㆍ우충(愚忠)ㆍ우열(愚烈)의 소행은 참으로 비참한 수준의 것이었다. 송ㆍ원대에 『이십사효』가 확립된 이래, 이러한 우효의 관행은 명나라를 통하여 주자학의 관학화와 더불어 엄청난 포퓰리즘의 흐름을 형성한다. 그것은 명태조 주원장의 개인 싸이콜로지(psychology, 심리학)와도 관계가 있었다. 주원장은 천애(天涯)의 고아(孤兒)로 자라나 천자가 된 인물이다. 우리나라 북녘땅 곳곳의 민담 중에 주원장이 자기네 동네 고아였다는 설화가 많이 있다. 그토록 그는 출신이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포의(布衣)로서 민간의 빈곤과 질고를 충분히 체험하였으며, 민간에서의 효도의 거대한 효용을 숙지하였다. 더구나 원나라 통치를 통하여 북방 유목..
허벅지 살을 도려내거나 똥맛을 보거나 사슴젖 구하다 화살 맞거나 손가락 자르거나 한 이들 ‘의부할고(義婦割股)’는 하양인(河陽人) 왕무자(王武子)의 처가 그가 환유(宦遊: 벼슬하여 타지에 삼)하고 있는 동안에, 그 어머니가 병으로 위독하게 되었는데 그 부인이 효성이 지극하여 허벅지 살을 도려 내어 시어머니께 달여 드려서 그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이다. ‘금루상분(黔婁嘗糞)’은 남북조시대의 남제(南齊) 사람 유금루(庾黔婁)가 아버지가 병으로 위독해지자 벼슬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 병환의 차도를 알기 위해 아버지의 설사똥 맛을 보았다는 이야기이다. 상분(嘗糞)은 효행의 주요한 테마 중의 하나이다. ‘염자입록(琰子入鹿)’은 『이십사효』와 『효행록』에 나오는 유명한 일화다. 두 눈을 실명해가는 부모를 살..
개 야단쳤다고 내쫓긴 포영 처와 슬픈 효녀 심청의 프로토타입인 조아 한나라의 포영은 자(字)가 군장(君長)이었다. 포영의 처가 엄마 앞에서 개를 꾸짖었다. 그래서 포영은 부인을 내쫓아버렸다. 漢鮑永, 字君長. 妻於母前叱狗. 永遂去之. 이 고사는 매우 간단하다. 그 구체적인 상황설명이 없다. 그러나 시어머니 앞에서 개를 꾸짖었다고 조강지처를 내쳐버린다는 것은 바른 윤리라고 말할 수 없다. 소위 칠거지악(七去之惡)에 해당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고사에 대하여 우리나라 성리학의 개산조 중의 한 사람이며 여말 『효행록』을 엮은 권보ㆍ권준의 후손인 권근은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주석을 달아놓고 있다. 존장(尊丈)의 앞에서는 개도 소리쳐 꾸짖지 아니 한다는 것은 예의 소절(小節)이다. 지금 포영의 부인이 시어머니 앞에..
왕상빙어과 정란의 목각엄마 ‘왕상빙어(王祥冰魚)’의 이야기도 마음씨가 악랄한 계모가 겨울에 잉어를 먹고 싶어하니깐, 왕상이라는 효자가 꽁꽁 얼어붙은 연못 얼음을 깰 수가 없어 옷을 벗고 알몸으로 드러누워 얼음을 녹이려 하자, 얼음이 스스로 녹고 잉어 두 마리가 튀어올라 왔다는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도 ‘효성감천(孝誠感天)’의 한 패턴으로서 곽거경 『이십사효」에 등장하여 권준의 『효행록』을 통과하여 『삼강행실도』로 들어갔다. 그리고 악랄한 계모에게도 효도를 다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민자건(閔子騫)의 이야기(『설원(說苑)』에 실림)로부터 내려오는 한 패턴이다. 이 이야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조선의 아동들이 계모에게 학대를 받으면서도 끽소리 한번 못냈을 것인가? 유향의 『효자전』에도 나오고 한대의 화상석에도 나..
모기에게 알몸을 준 오맹과 어린 아들을 묻은 곽거 곽거경의 『이십사효』에는 들어 있는데, 권준의 『이십사효」에 누락되자, 권보가 다시 집어넣은 고사 중에 ‘오맹문서(吳猛蚊噬)’라는 것이 있다. 오맹은 진(晋)나라 사람인데 불과 8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아동이다. 집안이 빈곤하여 식구들이 여름철에 모기장을 치고 잘 돈이 없었다. 그래서 몸을 발가벗고 부모님 곁에 누워 잤는데 그 효심인즉 자기 몸을 모기들이 진냥 뜯어먹고 배가 불러 부모님을 물지 않도록 했다는 것이다. 어찌 이러한 어린아이의 행태가 효심의 예찬이 될 수 있을까? 어린이는 발가벗고 모기에게 진냥 뜯기고 어른은 편하게 잠을 잔다? 아니 모기들이 그토록 영민할까? 여덟 살 짜리 오맹의 피를 잔뜩 먹었다고 그 어린이의 효심을 생각하여 부모님은 안 ..
동영(董永)의 고사,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의 원형 순임금의 효도 이야기는 이미 『맹자(孟子)』에도 잘 소개가 되어있는 것이며, 70 먹은 노인 노래자(老萊子)가 100세가 된 부모 앞에서 5색의 색동저고리를 입고 어린애처럼 재롱을 부려 노부모를 즐겁게 하여 노쇠함을 방지케 하려 했다는 이야기나, 민자건ㆍ증삼의 이야기는 이미 고전을 통하여 알려진 상식적인 수준의 것이다. 자로는 공자의 수제자로서 일화가 많은 캐릭터이다. 동영(董永)의 이야기도 후한 무씨사(武氏祠) 화상석(畵象石)에 이미 명료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지극히 낭만적인 이야기 틀을 가지고 있어 중국역사를 통하여 문학이나 다양한 희곡의 주제가 되었다. 동영은 본시 효행이 지극하여 품팔이로 아버지를 극진히 모셨는데,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자기 몸까지 ..
유향의 『효자전』에서 곽거경의 『이십사효』까지 『효행록』에서 선정된 인물들이 『삼강행실도』에도 계속 등장할 뿐 아니라(선정과 배열에 출입이 있다), 그 이야기의 양식적 패턴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효행록』의 전편에 ‘24인의 효행’을 아들 권준이 실었다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권준이 독창적으로 중국 고사에서 뽑아 실은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이십사효’라는 것은 이미 당말(唐末)에서부터 시작되어 송대에는 확고하게 정착된 일종의 설화 문학양식이다. 이미 한나라 때의 유향(劉向)이 『효자전(孝子傳)』을 지은 이래 「벽암록(碧巖錄)」 첫 번째 공안의 주인공이며 우리나라에도 불사리(佛舍利)를 보내곤 했던(신라 진흥왕 10년) 양무제(梁武帝)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효자전을 지었다. 이러한 효자전류에서 ..
임란 직후 『동국신속삼강행실도』 또 편찬 『삼강행실도』의 간행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임진왜란이라는 비극적 국난을 거치면서 조선왕조는 기강이 흐트러지고 민심이 이반된다. 왜적을 막지 못했고 국민을 도탄에 빠뜨렸으니 국가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질 수밖에, 그러자 조정에서는 또다시 『삼강행실도』를 대규모로 증보하는 사업을 벌인다.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지 않고 헛치레로 역사의 과실을 땜방하는 치자의 꼬락서니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왜란 이후에 정표(旌表)를 받은 효자ㆍ충신ㆍ열녀를 중심으로 자그마치 1600여 명의 케이스를 모두 17권 17책으로 편찬하였는데 이름하여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라 하였다. 이 증보판의 특징은 수록된 인물이 모두 조선사람이라는 것이다. 광해군 7년(161..
『속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연이어 펴낸 중종 중종 6년 8월 28일의 조령의 내용에, 국조 이래의 열녀ㆍ효자 중에서 『삼강행실도』에 언급되지 않은 자들을 편찬하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 명령은 중종 9년(1514) 10월 신용개(申用漑, 1463~1519: 김종직의 문인) 등에 의하여 간행된 『속삼강행실도(續三綱行實圖)』로써 구현되었다. 기존의 『삼강행실도』가 우리나라 사람보다는 중국사람의 윤리실천 사례를 들고 있다면【효자의 경우 35명 중 31명이 중국인, 4명만이 한국사람이다. 누백포호(婁伯捕虎), 자강복총(自强伏塚), 석진단지(石珍斷指), 은보감오(殷保感烏)의 4 케이스】, 『속삼강행실도』는 조선왕조의 윤리실천사례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효자의 경우 36명이 실렸는데 중국인이 3명..
중종의 시대는 『삼강행실도』의 전성기 『삼강행실도』 산정언해본을 만든 성종 본인은 물론 위대한 군주였지만 어우동과의 스캔들도 야사에 남길 정도로 삼강행실에 어긋나는 로맨스를 즐길 줄도 아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투기가 심한 부인 윤씨의 감정처리를 잘못하여 결국 연산군의 폭정과 무오사화ㆍ갑자사화라는 엄청난 비극의 씨를 남기었다. 연산군의 패륜행위를 문제삼아 그를 몰아내고 반정(反正)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대장금’이라는 드라마의 배경이 된 임금)은 초기에 공신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급진적 개혁론자인 신진 사림의 거두 조광조를 끌어들여 지치주의(至治主義)적 도학의 이상정치를 실현하려고 하였으나, 조광조는 너무도 형식주의적 도덕정통론에 치우쳤고 중종은 훈구대신들의 입지를 살려가면서 세력의 밸런스를 취할 수 있는..
『삼강행실도』 다이제스트 언해본의 등장 그러나 330설화의 한문본 『삼강행실도』는 3권(卷) 3책(冊)으로 그 분량이 방대하기 때문에, 대량으로 인출(印出)하여 대중에게 보급하기가 힘들었다. 『경국대전』을 완성하고 『동국여지승람』 등 각종의 문화서적을 편찬하여 대중의 삶의 질을 높이고, 또 도학이념에 충실하면서 훈구세력을 견제하고 새로운 사림세력에 의한 왕도정치를 실현하려고 하였던 성종(成宗)은 『삼강행실도』의 민중보급에 대한 절실한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세종이 『삼강행실도』를 만든 것은 훈민정음 반포 이전의 사건이었다. 따라서 성종은 『삼강행실도』를 간략화시키고 그것에 언해를 첨가하여 포퓰라 다이제스트(popular Digest)판을 만들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이러한 구상은 경기 관찰사 박숭질(朴崇..
백남준의 비디오아트와 조선왕조 텔레비젼 『삼강행실도』 『삼강행실도』를 지방의 관찰사와 수령들에게 배포하면서, 학식 있는 자들을 구하여 먼저 그 내용을 숙지케 하고, 그들로 하여금 일반 백성에게 강습하도록 하였으나 이러한 하달방식의 강습이 아름답게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향교에 일반백성들을 모아놓고 강의를 한다는 것도 당시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고 또 이렇게 구차스러운 일에 지방 수령들이 열심일 까닭이 없었다. 국민들은 상부로부터 일방적으로 하달되는 도덕교육이라는 것에 신물이 날 뿐이었다. 그러므로 예조(禮曹)에서는 지방수령들이 『삼강행실도』를 통한 국민교화를 자기 임무 이외의 귀찮은 일로 여기는 풍조가 생겨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새로운 방안을 제시했다. 그것은 관찰사로 하여금 수하 수령들이 『삼강행..
『효행록』과 『삼강행실도』 『효행록(孝行錄)』이란 어떤 책인가? 이것은 고려 말 충목왕 2년(1346) 경에 안향(安珦)의 문인으로 주자학의 보급에 혁혁한 공을 세운 문신 권부(權溥, 1262~1346)가 그의 아들 권준(權準, 1280~1352)과 함께 효행에 관한 기록을 모아 엮은 책이다. 늙은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 권준이 중국의 효자 24명에 관한 이야기를 화공에게 그림으로 그리게 한 뒤, 그것을 당대의 명문장가였던 이제현(李齊賢, 1287~1367)에게 찬(贊)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여 만들었다. 이것이 전찬(前贊)이다. 이 전찬을 보고 아버지 권보는 자기 스스로 또 다시 38명의 효행을 골라 다시 이제현의 찬을 지어 받았다. 이것이 후찬(後贊)이다. 이 전ㆍ후편을 합하여 여기에 다시 이..
제5장 조선왕조 행실도(行實圖)의 역사 조선왕조의 불교탄압, 대한민국의 반공교육 주자학의 교조주의적 성행으로 조선왕조는 불교를 탄압했다[崇儒抑佛]. 그 탄압의 수준이 이승만ㆍ박정희 정권하에서 좌파지식인을 탄압하는 것보다도 더 악랄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탄압은 물리적 탄압 그 자체로 유지될 수가 없다. 반드시 성공적인 ‘반공교육’이 수행되어야만 한다. 정신적인 가치관의 전환이 대중교육을 통하여 이루어지지 않으면 탄압은 지속될 수가 없는 것이다. 권력의 압제란 부정적인 방법만으로는 무기력한 듯이 보이는 대중 속에서도 곧 한계를 드러내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대중교육이란 추상적인 논리로써는 가능하지 않다. 대중에게 격조 높게 역사 필연주의의 빈곤(the poverty of histori..
용주사와 사도세자, 그리고 정조의 효심 양주동이 왜 『부모은중경』을 가지고 노래를 지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조선후기부터 『부모은중경』이 대중에게 보편화되어, 누구나 그 가사내용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부모은중경』은 대부분이 정조 때 용주사에서 간행한 판본이다. 이 사실에 대하여 좀 특별한 설명이 필요하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을 11세에 체험하였다. 그리고 과묵하고 시세를 외면한 듯한 현명한 행동거지로 위험에 대처하며 어려운 세월을 견디어 내었다. 그리고 25세에 등극한다(1776). 정조는 등극한 후 가슴앓이로만 간직했던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감행하고, 파당을 배격하고 새로운 인물을 대거 등용하여 새로운 국가기풍을 진작시키려..
양주동 작사의 「어머님 마음」과 『부모은중경』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기억하고 잘 부르는 노래에 「어머님 마음」이라는 것이 있다. 양주동이 작사하고 이흥렬이 작곡한 것이다.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뉘시며 손발이 다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무엇이 넓다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양주동의 작사는 바로 우리나라 정조 때 간행된 화산(花山) 용주사(龍珠寺) 판본의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 「정종분(正宗分)」속에 나오는 십게찬송(十個讚頌)에 기초한 것이다. 우선 그 게송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일 회탐슈호은(懷耽守護恩) 나를 잉태하여 지켜주신 은혜 제이 님산슈고은(臨産受苦恩) 해산에 즈음하여 고통을 감내하신 은혜 제삼 생자망..
목련존자와 우란분회: 초윤리와 일상윤리의 접합 이러한 불교의 아폴로지는 표면적인 불효(不孝)를 본질적인 대효(大孝)로 한 차원을 높이어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었다는 맥락에서 보편주의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불교는 본시 가족윤리나 세속윤리를 초월하고자 하는 갈망이 있다. 효와 같은 세속윤리는 근원적으로 고해(苦海)의 한 원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초윤리적(trans-ethical) 주장만으로는 민중의 삶의 보편적 가치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하기가 불가능했다. 보편적 가치는 일상적 가치가 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래서 이러한 초윤리와 일상윤리의 접합을 위하여,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해내는 신통제일(神通第一)의 목련존자(目連尊者, MahāMoggallāna)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이 이..
제4장 불교에서 말하는 효 불교와 유교의 충돌 효의 문제는 기독교의 격의(格義)의 틀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녔지만 이미 불교가 한자문화권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민중 속에 그 정체성을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거치지 않을 수 없는 통과의례였다. 양(梁)나라의 스님 승우(僧佑)가 찬한 『홍명집(弘明集)』이나 당(唐)나라의 스님 도선(道宣, 596~667)이 증보한 『광홍명집(廣弘明集)』에 이미 불교와 유교의 가치의 충돌이 잘 묘사되어 있다. 우선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어 그 자체로 아이덴티티를 지니고 윤회한다는 신불멸(神不滅)의 생각은 음양ㆍ귀신ㆍ혼백의 자연주의적 논리로 볼 때 매우 황당한 아이디어였다. 그래서 유자들은 신멸론(神滅論: 인간의 영혼은 신체와 더불어 멸한다)을 강력히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출가인이..
가온찍기 몸나와 얼나는 결국 ‘가온찍기’에서 통합되는 것이다. ‘가온찍기’란 물론 원래 있던 우리말이 아니고 다석이 만든 말이다. ‘가온’의 뜻은 역시 ‘가온데’라는 뜻이 일차적인 것으로 나의 내면 중심이면서 우주의 중심이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가온’의 의미 속에는 ‘온전함’이라는 의미도 들어가 있다. ‘찍기’란 ‘점을 찍는다’는 말의 동명사형이다. 가온찍기란 우주의 중심으로서의 참나를 영원히 오가는 시공간 속에서 확인하는 것이다. 그것은 순간 속에서 영원을 만나는 생명사건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통합되는 찍음이다. 그 가온찍기가 씨ᄋᆞᆯ이요 해탈이요 견성이요 십자가를 짐이다. ‘찍기’라는 말이 상징하듯이 그것은 삶의 순간순간에서 끊임없이 찍는 것이다. 그에게 하나님에 대한 효라는 것은 돈오(頓悟..
군신관계로 충화(忠化)된 기독교신앙 속 얼나와 몸나 현재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믿는 하나님은 다석이 말하는 보편적ㆍ쌍방적 효의 실천의 대상이 아니라 군신(君臣)의 관계로 충화(忠化)된 하나님이다. 구약의 하나님은 철저히 인간화된, 그러니까 타종족의 신앙을 배타하기 위하여 폭력화된 하나님이며, 그것은 타종족(이단)을 무찌를 수 있는 군주(a secular King)로서의 하나님이다. 다석의 효기독론이 철저히 배제하는 것은 충화(忠化)된 유교의 형식주의적 측면과 서구전통의 인격성의 배타성과 폭력성이다. 다석의 하나님은 인간화된 모습으로 칠정(七情)의 식색(食色)을 드러내는 하나님【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신관이나 희랍 신관의 일반적 모습】이 아니라, ‘없이 계신 하나님’이다. 그것은 표전(表詮)으로서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쌍방적이어야 한다 큐자료【마태와 누가에서 마가자료를 제외시키고 남은 자료에서 또 다시 공통되는 자료로서 공관복음서에 내재하는 어록복음서(sayings gospel)이다. 공관복음서의 가장 오리지날한 층대를 형성한다】에 속하는 예수의 주기도문(마 6:9~13, 눅 11:2~4)도 인자하기 그지없는 아빠의 나라(바실레이아, βασιλεία), 곧 사랑밖에 모르는 아빠의 다스림(Reign)이 이 땅에 실현되기를 간구하는 기도일 뿐이다【이 문제에 관해서는 김명수, 『큐복음서의 민중신학』 제8장 ‘큐복음의 주기도문’ 참고, 통나무출판사에서 2009년에 출간됨. 김명수의 큐복음서에 관한 함부르그대학 박사학위논문은 세계큐연구학회(IQP)의 권위 있는 정경으로 선정되었다】. 예수를 하나님 아버지..
다석 유영모(柳永模)의 언어세계 서양인에게 그런 책은 물론 『신약성서』이다. 여기서 서양인이라고 하는 것은 로마제국문명의 직ㆍ간접 영향권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 땅에 가톨릭의 역사는 교황청체제에 의한 교권의 확립에 주력한 역사이기 때문에, 순교와 정의로운 항거의 역사는 있을지라도 독자적인 사상의 역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데 비하면 그래도 개신교는 인간의 사유를 규제할 수 있는 중앙의 통제력이 박약하고, 교회(에클레시아) 단위의 공동체의 보이지 않는 구속력만이 일차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그러한 구속력을 벗어나는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신학적 사유를 전개할 수 있다. 이렇게 자유롭게 살면서 독창적인 자신의 신학적 사유를 전개한 격동기의 사람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상가로서..
제3장 다석(多夕)의 효기독론 문화유형에 따른 효의 행동 패턴 이런 예를 한번 들어보자! 3세동당(三世同堂)의 집에서, 그러니까 연로하신 노모가 한 분 계시고 어린 자식 둘을 거느리고 있는 부부가 사는 작은 집에서 불이 났다고 가정을 해보자! 불이 훨훨 타올라 목숨이 경각(頃刻)에 달려 있는 상황에서 모두를 구출하기란 어렵다, 노모나 자식 중에 누구를 먼저 구출해야 할까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 선택의 기로에 있는 가장(家長) 갑돌이! 과연 갑돌이는 본능적으로 누구를 먼저 구출할 것인가? 갑돌이가 미국사람이라면 아마도 100 중 99는 어린 자식 둘을 먼저 데리고 나올 것이다. 미국영화를 보아도 대개 그러한 분위기로 그려지고 있다. 어린 자식에 대한 보호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처럼 절대적인 그 무엇으로..
주자 존숭만 있고 주자 판본에 대한 검토가 없다 조선왕조에서 『효경』」이라고 하는 것은 동계형의 『효경대의』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중용으로 『효경언해(孝經諺解)』를 만들었는데【선조(宣祖) 때 안동 하회 사람, 홍문관 예문관 대제학(大提學) 류성룡(柳成龍)이 주관하여 만들었다】, 그 언해도 『효경대의」의 경과 전만을 도려내어 그 경전(經傳)에 대해서만 언해를 한 것이다. 그러니까 동계형의 대의주석 부분은 번쇄하다고 생각하여 언해의 대상으로 삼지 않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효경언해』는 사마광의 『효경지해』를 주자가 간오(刊誤)한 대로 배열해놓은 경전에 한글 토를 달고 한글해석을 겸하여 단 것이다. 『효경언해』로서 조선왕조의 최고본(最古本)인 경진자(庚辰字) 귀중본은 불행하게도 이 땅에 보존되어 있지 않..
『효경간오』의 뜻을 실현한 동정의 『효경대의』 그러니까 주희의 『효경간오』는 사마광의 『효경지해』 원문을 놓고 거기에 자신의 간오(刊誤) 작업을 한 것인데, 이 『효경』 원문변형을 가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삭제할 부분과 바꾸어놓을 부분을 지시만 한 것이며 원문을 일단 전통방식대로 실어 놓았다. 그러니까 『효경간오』는 미완성작이며 일체의 주석을 가하지 않았다. 이 『간오』를 경(經) 1장과 전(傳) 14장의 체제로 삭제할 부분은 삭제하고 전 14장을 원문의 순서를 바꾸어 다시 배열하여 간오가 지시하는 바 대로의 원문을 만든 다음에 그 경(經) 1장 전(傳) 14장에 대하여 상세하고 화려한 주석을 가한 것이 그 유명한 동정(董鼎, 자는 계형季亨)의 『효경대의(孝經大義)」라는 책이다【동정의 정확한 생몰연대가..
사마광의 엉터리 『효경지해』를 계승한 주희 그런데 북송 옹희(雍熙) 원년(984), 일본의 동대사(東大寺)의 스님인 쵸오넨(奝然, 우리말로는 소연이라 발음)이 입송(入宋)하여 송태종에게 정주(鄭注) 한 책[一本]을 헌상하였다【『송사(宋史)』 권491 「일본전(日本傳)」】. 태종은 쵸오넨을 직접 만났으며 그를 후대하였다. 그리고 자의(紫衣)도 사(賜)하였다. 이 일본에서 보존된 정현주 금문효경을 황실도서관인 비각(秘閣)에 보관하였는데 사마광은 비각에 접근이 용이하였고, 바로 이 쵸오넨이 헌상한 정주 금문효경을 보았던 것이다【애석하게도 사마광이 본 후로 언젠가 이 판본도 사라지고 말았다. 일본사람들이 애써 보관하여 헌상한 것을 중국인들은 유실하기만 한 것이다】. 그리고 물론 『어주효경』도 보았을 것이다【이상..
주희가 『효경간오』에 준거로 삼은 텍스트는? 그런데 주희는 뜬금없이 갑자기 어주(御注)의 금문에 의존치 아니하고 고문효경을 텍스트로 삼겠다고 한 것이다. 상투적인 통용본 텍스트를 버리고 무엇인가 더 오리지날한 텍스트에 의거하여 간오(刊誤)작업을 하겠다는 주자의 자세는 높이 살 만하다. 그런데 과연 주자가 고문효경이라는 오리지날 테스트를 두 눈으로 본 것인가? 그것이 과연 가능했을까? 앞에서 주희가 『효경』의 경문(經文)을 만들기 위하여 제1장부터 제7장까지를 하나로 뭉뚱그리면서 각 장의 앞에 원래 있던 ‘자왈(子日)’을 두 개 빼버려야 한다고 했는데, 만약 주희가 고문 텍스트를 기준으로 했다면 그것이 두 개가 아니라 여섯 개가 되어야만 한다. 이것은 사소한 하나의 실례이다. 자세하게 『효경간오』 텍스트와..
제2장 사마광의 『효경지해(孝經指解)』로부터 동정의 『효경대의(孝經大義)』까지 당현종의 『어주효경』 이후 금ㆍ고문 다 사라지다 『효경간오(孝經刊誤)』의 문제도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간오’의 문제가 아니라, 간오의 대상이 된 『효경』이 과연 어떤 텍스트였나 하는 것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효경』은 한대로부터 이미 금문(今文)ㆍ고문(古文)의 시비가 있는 텍스트이다【금ㆍ문 『효경』의 문제에 관해서는 제12장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조금만 참아주면 좋겠다】. 당대(唐代)에도 이미 금고문의 시비가 문제시되었고 이러한 금문학파와 고문학파의 시비를 잠재우기 위하여 희대의 로만티스트(romancist)이며 지식인인 당현종(唐玄宗)은 스스로 금ㆍ고문학파의 주장을 ..
가정(Family)과 교회(Church) 회창폐불(會昌廢佛)【842년부터 4년에 걸친 당무종(唐武宗)의 불교탄압】 이래 지속된 송대의 배불정책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선종(禪宗)이 쇠퇴하지 않고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대장경의 율장, 그러니까 원시불교의 승가계율에 기초한 법규(法規)와는 달리, 독자적으로 중국사찰에 맞는, 승단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중국식 청규(淸規)가 살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타종파와는 달리 선종은 사찰 자체가 개별적으로 독립되어 있었으며 승려의 노동력에 기초한 자급자족체제를 유지했기 때문이었다. 대종(大宗)이 아니라 소종(小宗)이었던 것이다. 논장(論藏)【부처님의 말씀을 크게 경ㆍ율ㆍ논 삼장(三藏), 곧 경장(經藏), 율장(律藏), 논장(論藏)으로 나눈다. 경장(經..
대종주의와 소종주의 주자가 『가례」를 만들었다는 것은 단순히 고전학자로서 고경의 내용을 축약시켜 놓은 다이제스트(digest)판 의례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효경』을 이론적으로 탐구하지 않았다. 『효경』이 계몽하고자 하는 효의 덕성을 구체적인 제도로서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효는 추상적 함양이 아니라 제도적 실천이다. 이렇게 되려면 당대의 사람들이 누구든지 집안에서 당하는 일상적인 사태로서 익숙하게 알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주자 「가례서(家禮序)」의 첫 문장을 한번 살펴보자. 대저 예(禮)라는 것에는 본질과 형식이 있다. 일상가정에 시행되는 것으로부터 이러한 문제를 접근해 들어간다면, 명분을 바르게 지킨다든가, 사랑(愛)과 공경(敬)을 실천한다든가 하는 것은 예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다. 凡..
『가례』는 주희의 혁명적 시안 우리는 현재 『주자가례』가 관혼상제에 관한 가장 신빙성 있는 정통의 기준이라고 그냥 믿어버리지만, 그것은 역사적 본말을 전도시키는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가례』는 주희에게 있어서는 매우 혁명적인 시안일 뿐이었다. 우리는 여기 ‘시안(試案)’이라는 말을 주목해야 한다. 주희 시대에 주희는 전혀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따라서 『가례』는 주자가 하나의 민간사상가로서 송대 사회가 지향해야 할 규범으로서의 가정의례를 시험적으로 구성해본 하나의 모델(이데아 티푸스, ideal type)일 뿐이며, 우리나라 조선왕조에서와 같이 전혀 구속력을 지니는 절대적 의례질서가 아니었다. 주자는 후대로 내려올수록 영향력 있는 사상가로서 추앙받게 되었고, 따라서 『주자가례』는 덩달..
주희 당대에만 해도 가례는 정설이 없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주자학의 체계가 『사서』 중심주의로 특징 지워지고 『효경』이 경시되며 그 대신 『소학(小學)』이 부상한다는 것은 동아시아문명권의 주자학 700년의 역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프레임웍(framework)임에 틀림이 없지만, 『소학(小學)』과 더불어 반드시 고찰해야만 할 중요한 문헌이 바로 『주자가례(朱子家禮)』라는 것이다. 조선조에서 『주자가례(朱子家禮)』는 번쇄한 권력다툼인 예송(禮公)의 주역이었으며, 또 송시열(宋時烈)이 『주자가례(朱子家禮)』야말로 주자가 고금을 참작하여 시의적절하게 정립한 의례로서 그 절대적 권위가 고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이래【송시열도 『가례』의 위작설에 관한 문제의식은 있었다 한다】 아무도 본격적으로 그 권위에 ..
『소학』의 편집자 유청지(劉淸之)와 주희의 관계 그는 효(孝)의 중요성은 확고하게 인식하였다. 그러나 효는 그의 이기론(理氣論)적 코스몰로지(Cosmology)의 논리적 결구 속에서 분석되어야 할 그 무엇이 아니었다. 효는 일차적으로 감성의 문제이며, 당위의 문제이며, 실천의 문제이다. 그것은 성인(聖人)의 문제이기보다는 소아(小兒)의 문제였다. 성인에겐 효를 가르친다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다. 그것은 어린이의 일상거지로부터 스며드는 것이라야 했다. 효는 논(論)의 문제가 아니라 습(習)의 과제였다. 인(仁) 효(孝) 성인(聖人)의 문제 소아(小兒)의 문제 논(論)의 문제 습(習)의 과제 주희의 판단은 매우 현실적이었다. 그가 『효경간오』를 쓴 것이 57세인데, 『소학(小學)』을 그 이듬해 58세 때 완성..
공자의 효 담론과 주자의 효 중시 그렇다면 주희는 자신의 사상체계 속에서 『효경』을 파기해버렸을까? 효(孝)라는 것은 인륜의 대본(大本)이요 유교의 대강(大綱)이다. 공자가 인(仁)을 말하였다고는 하나, 인은 너무 어렵고 구름 잡는 것 같아 이해하기가 어렵다. 『논어(論語)』를 펼치면 바로 두 번째로 유약(有若)의 말로서 기록된 “효제야자, 기위인지본여(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라는 로기온이 나오고 있다. 효야말로 인(仁)을 실천하는 근본이라는 뜻이다. 인의 구체적인 실천덕목이 효라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인을 가깝게 실생활 속에서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효(孝)이다. 위정편에 보면 제5장부터 제8장까지 쪼로록 효에 관한 담론이 나오고 있다. 공자의 효에 대한 생각을 매우 절절하게 알 수 있다. ..
『사자서』가 세상에 나오게 된 까닭 『효경』은 첫머리부터 공자가 증자에게 “삼(參, 증자의 이름)아, 게 앉거라. 내가 너에게 일러주겠다”하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증자의 책으로서 『대학(大學)』과 『효경』은 라이벌 관계에 있게 된다. 『대학(大學)』을 경(經)과 전(傳)으로서 나누어 장구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주희는 당연히 『효경』마저 같은 방식으로 경(經)과 전(傳)으로 나누어 새로운 장구작업을 시도하려 하였다. 물론 그는 그의 도학적 틀 속에 『효경』을 편입시키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효경』에 손을 대고 보니 『효경』이라는 경전은 전혀 자기의 도학적 틀과 맞아떨어지는 책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경문을 만드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부분들을 삭제하게 되었고, 또..
도통(道統) 속 문제는 증자의 책 마찬가지로 중국의 오경(五經)은 읽어야 하는 책이지만 읽기가 어렵다. 주희는 따라서 오경에 접근하기 전에 일반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을 편찬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자서(四子書)라는 것이다. ‘사자서(四子書)’라는 표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사자(四子)’라는 표현이다. ‘사자’는 네 책이라는 뜻이 아니라 ‘네 선생(Four Masters)’이라는 뜻이다. 이 네 선생은 과연 누구일까? 당대(唐代)의 문호 한유(韓愈, 768~824)의 「원도(原道)」로부터 촉발되어 형성된 송대의 도통론은 다음과 같은 계보를 말하고 있다. 요 순 우 탕 문 무 주공 공자 증자 자사 맹자 堯 舜 禹 湯 文 武 周公 孔子 曾子 子思 孟子 한유(韓愈)는 맹자(孟..
송나라는 매스컴시대 앞서 말했듯이 주희는 45~6세 때에 학용장구(學庸章句)의 초고를 완성했다. 그리고 57세 때 『효경간오』를 썼다. 46세 때 탈고한 『대학장구』가 과연 어떠한 모습의 것이었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주희는 『대학장구』에 대하여 각별한 애착을 지니고 끊임없이 수정작업을 가했기 때문이다. 그는 71세로 세상을 뜨기 사흘 전까지 『대학장구』에 수정을 가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여튼 『대학장구』의 초고를 46세 때 탈고한 후 11년 후에 『효경』에 손을 대었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각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주희가 사서(四書)를 새로운 유학운동의 시발점으로 생각했다는 것은 우선 그의 정통론의 구상과 관련이 있다. 주자는 학문의 보편성을 매우 강조한 사람이다. 학문의 보편성이란, 우선..
천자와 사에 대한 주희의 강조 ‘천자(天子) - 제후(諸侯) - 경대부(卿大夫) - 사(士) - 서인(庶人)’의 하이어라키(hierarchy, 계층)에서 제후ㆍ경대부ㆍ서인이 빠져버리고 천자와 사만 전(傳)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주희의 의식세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천자 - 제후 - 경대부 - 사 - 서인’이라는 하이어라키(hierarchy, 계층)는 주대의 봉건질서를 전제로 한 것이며 송대의 정치제도나 사회조직에는 합당한 이야기가 아니다. 조선왕조의 유자들은 주희가 막연하게 복고적인 사상가인 것처럼 떠받들었을지 모르지만 주희는 과거지향적 인물이 아니라 철저히 현재지향적 인물이었다. 주희는 정강지변(靖康之變, 1127년) 이후 굴욕적으로 여진족의 금나라와 대치하고 있었던 남송(南宋)..
『효경』 수술에 대한 주희 자신의 변명 『효경장구』라 말하지 않고 『효경간오』라 말한 것 자체가 이미 『효경』이라는 문헌을 학용(學庸)에 비해 낮잡아 봤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더 중요한 이유는 『효경』이, 「대학(大學)」처럼 한 경의 한 편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독립된 경(經)이었으며 주희가 손을 대기 이전에 이미 장(章)의 구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뒤에 다시 말하겠지만 금문효경은 18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고문효경은 22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분장(分章)을 무시한 전체 경전의 내용은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주희가 「대학(大學)」을 모델로 삼아 감행해야 할 작업은 우선 삼강령 팔조목에 해당되는 경(經)을 만드는 작업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효경』의 앞대가리 제1장부터 제7장까지..
왕양명의 주자 『대학장구』 비판 주희는 「대학(大學)」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대학지도(大學之道)’로부터 ‘미지유야(未之有也)’까지의 한 단, 즉 삼강령 팔조목의 한 섹션만을 경화(經化, canonization)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도학(道學)의 출발경전으로서의 최고의 권위를 「대학(大學)」의 첫머리에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나머지에 오는 문장은 이 경(經)을 부연설명하는 전(傳)으로서 간주되어야 마땅하다고 본 것이다. 명도(明道)는 주희가 경으로 간주한 부분에 이미 뒷 문장을 삽입해 넣었지만, 주희는 「대학(大學)」의 앞대가리 한 단은 온전하게 경(經)으로서 보전했다. 그러나 그것을 부연설명했다는 나머지 부분을 10장으로 나누어 배열하려고 하였을 때, 순서의 재배치가 불가피했다. ..
「대학(大學)」과 수기치인(修己治人) 주자는 「대학(大學)」이라는 텍스트가 수기치인(修己治人)의 가장 이상적 전범을 이루는 텍스트라고 생각했다. 수기(修己)라는 것은 나라는 개인 존재의 내면적 덕성의 함양이며, 이것은 매우 도덕주의적인 실존활동(subjective moral activities)이다. 그리고 치인(治人)이라는 것은 나 이외의 타인을 어떻게 다스려서 사회적 질서(Social Order)를 형성시키는가에 관한 것으로 이것은 매우 사회과학적인 객관적 외재활동(objective governing activities)이다. 주자는 이 수기와 치인의 두 다른 층면(層面)을 동일한 연속적 차원에서 통합하려고 노력했다. 수기 修己 개인 존재의 내면적 덕성의 함양 도덕주의적인 실존활동 (subjectiv..
『예기』 「중용(中庸)」은 그대로, 『예기』 「대학(大學)」은 재구성 『중용장구』의 경우 『예기』 제31편의 「중용(中庸)」과 비교해보면 거의 텍스트의 변형이나 가감이 없이, 있는 순서대로 장을 33개로 나누어 배열했다. 본시 「중용(中庸)」에도 텍스트의 이질적 요소가 융합된 느낌이 있고, 『한서』 「예문지」에 예가(禮家)로 분류되어 수록된 『중용설(中庸說)』 2편이라는 서물이 의문부호로 남아있기 때문에, 텍스트 비평의 시각에서 본다면 「중용(中庸)」 텍스트 그 자체의 정합성(整合性)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누가 보아도 전반의 중용론(中庸論)과 후반의 성론(誠論)은 그 텍스트의 성격이 다르다. 그러나 주희가 이것을 변형없이 그대로 수용했다고 하는 것은 「중용(中庸)」을 하나의 유기적 통일체로서..
사서운동, 아타나시우스와 주희 주자학(Zhuxiism)의 출발이 사서운동(四書運動)에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사서(四書) 중에서 『논어(論語)』와 『맹자(孟子)』는 기존의 독립된 서물이다. 그런데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은 독립된 책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예기(禮記)」라는 잡다한 유가 저선집(An Anthology of Confucian Treatises on Rites) 중의 두 편이었다. 『예기』 중의 두 편(two chapters)인 「대학(大學)」(제42편)과 「중용(中庸)」(제31편)을 독립시켜 『논어(論語)』ㆍ『맹자(孟子)』와 함께 4개의 책으로 묶어 도학(道學) 즉 성리학(性理學)으로 불리는 새로운 유학운동을 전개하는 핵심 바이블로 삼았던 것이다. 4세기에 아타나시우스(At..
『효경』은 한대의 위작이라는 것이 주자의 생각 주희는 아무리 『효경』의 내용이 공자가 증자에게 직접 타일러 훈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액면의 진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허구적 구성으로 보았던 것이다. 『효경』을 공자 자신의 저작[自著]으로까지 보는 관점은 가소롭고 또 가소로운 일이라고 질책하였다[至或以爲孔子之所自著, 則又可笑之尤者]. 그리고 심지어 『효경』을 『공총자(孔叢子)』와 같은 위서(僞書)로 보아 그 위작연대가 후한대(後漢代)에까지 내려올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주자의 논의는 오늘날의 문헌학적 성과에 비추어 볼 때, 참으로 엉성하기 그지없는 주장이다. 『효경(孝經)』은 엄존하는 문헌의 형태로 이미 『여씨춘추(呂氏春秋, BC 241년에 성립)』에 인용되고 있다. ..
『효경간오』는 실패작이다 그 대강의 사정은 이러하다. 주자의 『효경간오(孝經刊誤)』는 우리가 독립된 작품으로서 읽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책자가 아니다. 우선 ‘간오(刊誤)’라는 말을 살펴보자! 간오란 오류[誤]를 도려낸다[刊]는 뜻이다. 즉 외과의사가 암덩어리를 잘라내듯이 『효경』이라는 텍스트 속에 박혀있는 암덩어리들을 후벼 파내버린다는 뜻이다. 즉 『효경간오』는 수술대 위에서 의사가 도려낼 것을 도려내기만 한 상태에서 멈춘 작품으로, 제대로 다시 봉합도 하지 않았고, 수술이 끝난 후 치유의 과정을 거치지도 않았다. 그런데 수술은 제대로 되었는가? 천만에! 수술 자체가 엉터리로 되고 말았다. 이 덩어리를 자르다가 저 덩어리도 건드리게 되고, 그러다가 또 자르고 또 자르고, 그러다 보니까 엉망이 되어 버렸..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본(最古本)과 조선조 효경인 『효경대의』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효경』 판본 중 현재 남아있는 것으로서 가장 오래된 것은 홍무(洪武) 6년, 그러니까 공민왕 22년(1373)의 발문과 간행기가 붙어있는 목판본 『효경』인데 이것은 백낙천 「장한가(長恨歌)」의 주인공이며 양귀비와 로맨스를 속삭인 사람으로 유명한 당 현종이 직접 주석한 『어주효경(御注孝經)』 계열의 금문 효경 텍스트로서 사료된다【이재영(李宰榮)의 석사논문 ‘조선시대 효(孝)사상의 전개와 『효경(孝經)』의 간행’에 언급되어 있으나 자세한 서지정보가 없다. 불행하게도 이재영과 연락이 안 닿아 실물을 확인하지 못했다. 귀중본일 것이다. 이러한 고판본에 대한 영인작업과 함께 치밀한 고증학적 연구가 절실하게 요청된다. 임화보(林華甫..
서람(序覽): 효경개략(孝經槪略) 제1장 주자학(朱子學)과 『효경간오(孝經刊誤)』 효의 나라 조선에서 『효경』이 읽히지 않은 것을 아시나요? 한국인의 혈관 속에는 『효경』이 흐르고 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효경』이 소기한 가치가 적혈구에 배어 흐르고 있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한국인들은 『효경』이라는 문헌, 그 텍스트는 별로 접한 적이 없다. 요즈음 신세대 고전학자들도 사서오경(四書五經)은 읽었을지언정, 『효경』은 거의 읽지 않는다. 그런데도 『효경』」이 표방한 가치, 그리고 그 가치를 활용하여 사회질서(social order)를 유지 시키고자 노력한 이들의 땀방울이 한국인 모두의 체취 속에는 흥건히 젖어 있다. 『효경』이라는 책을 접한 적이 없다는 말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나 ..
도마복음한글역주 목차 탐방보고서 예수의 기적과 참혹한 현대사 공존하는 땅, 인류문명 새 패러다임은 어디쯤 있는 걸까?어렵고 버겁던 여행의 시작문명의 여로는 오늘 우리 모습에 대한 끝없는 반문예수의 본거지는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예수 생전에 예수를 초청한 에데사의 왕(王)마르코 폴로와 도마의 최후예수와 페니키아 문명예수 자신의 이방선교지브란과 견유 예수에데사의 도마복음콥트어와 성각문자 본론 서장영지주의와 도마복음메시아니즘과 도마복음화자와 기록자메시아 비밀슈바이처와 도마복음예수의 죽음성서와 해석학은밀한 말씀과 나레이터1장요한복음과 도마복음해석의 발견죽음의 해석 2장소승과 대승쉬움과 어려움지혜의 왕3장주체의 혁명안과 밖소크라테스와 예수아가페와 그노시스4장아니마와 아니무스자웅동체의 시간관어른과 아이시간의 반역첫..
탈고소감(脫稿所感) 기존의 복음서를 새롭게 바라보게 만드는 말씀의 황금광맥 AD 367년 아타나시우스 27서 정경체제 발표, 외경소장 금지. 그즈음 파코미우스 수도원 도서관에 있던 도마복음서를, 의식있는 수도승들이 항아리에 담아 밀봉, 소중하게 게벨 알 타리프에 매장. 1945년 12월 엘 카스르의 무함마드 알리와 그의 친구들이 사바크를 캐다가 발견. 1947년 9월 불란서 성서고고학자 쟝 도레쓰(Jean Doresse), 카이로 도착, 문서 발견사실을 처음 알게되어 세상에 알림(1948년 2월 23일자 「르몽드」 지). 1966년 미국신학자 제임스 로빈슨(James M. Robinson) 발견현장 방문. 1975년 가을 제임스 로빈슨 이 지역 탐색. 1977년 제임스 로빈슨 주편하에 나그함마디 라이브러..
지로역정(地路歷程) 한국의 교회여! 끊임없이 새롭게 울려퍼지는 예수의 복음을 들으라! ❝종교는 권유이며 강요가 아니다. 과도한 전도주의는 죄악이다. 종교가 우리사회의 합리적 소통을 방해하는 이념이 될 수는 없다. 모든 성서는 인문학적 분석의 대상이다.❞ 100회로써 중앙SUNDAY에 연재되었던 ‘도을의 도마복음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나는 본시 중앙일보에서 2년 동안만 사회적 글쓰기의 책무를 수행하기로 약속했다. 2년이라는 세월이 짧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돕시 기나긴 인생의 시간이었다. 중앙일보 본지에 쓴 도올고함과 중앙SUNDAY에 쓴 도마복음서 주석을 모두 비슷한 분량인데, 2년 동안 무사히 연재하고 약속대로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 사실이 기적 같게만 느껴진다. 도마복음서 주석은 신약성..
로기온 주제 상관 도표 후학들을 위하여 도마복음 각 로기온의 테마와 그 상관관계를 밝혀 놓는다. 앞으로의 복음서 전승사 연구나 신학이론 발전을 위하여 한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장 주제 비고 서론 ‘살아있는 예수’라는 개념이 중요. 바울의 ‘부활하신 예수’와 대비된다. 어록 복음서(sayings gospel)의 천명, 말씀들은 은밀하다. 화자 예수, 기록자 도마, 그리고 나레이터가 등장하고 있다. 복음서 전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서장(Prologue)에 해당. 1 해석의 발견. 죽음의 복음이 아닌 삶의 복음, 삶 속에서의 죽음의 거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한다 (1, 18, 19, 85, 111). 2 찾을 때까지 구함 - 찾음 - 고통 - 경이 - 다스림, ‘다스림’ 관련장(2, 81, 90). 3 ‘나라..
제114장 남성과 여성을 초월하여 살아있는 정기가 되어라 제114장 1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가로되, “마리아는 우리를 떠나야 한다. 여자는 생명에 합당치 아니 하기 때문이다.” 2예수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마리아를 인도하여 그녀 스스로 남성이 되도록 만드리라. 그리하여 그녀도 너희 남성들을 닮은 살아있는 정기(精氣)가 되도록 하리라. 3어떠한 여인이라도 자신을 남성으로 만드는 모든 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갈 것이니라.” 1Simon Peter said to them, “Mary should leave us, for females are not worthy of life.” 2Jesus said, “Look, I shall guide her to make her male, so that she to..
제113장 아버지의 나라는 지금 여기 이 땅에 깔려있다 제113장 1그의 따르는 자들이 그에게 가로되, “언제 나라가 오리이까?” 2(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라는 너희들이 그것을 쳐다보려고 지켜보고 있는, 그런 방식으로는 결코 오지 않는다. ‘보아라, 여기 있다!’ 3‘보아라, 저기 있다!’ 아무도 이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4차라리, 아버지의 나라는 이 땅 위에 깔려 있느니라. 단지 사람들이 그것을 보지 못할 뿐이니라.” 1His followers said to him, “When will the kingdom come?” 2(Jesus said,)“It will not come by watching for it. 3It will not be said, ‘Look, here it is,’ or ‘..
제112장 부끄러울지어다! 영혼에 매달린 육체여! 제112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부끄러울지어다. 영혼에 매달린 육체여! 2부끄러울지어다. 육체에 매달린 영혼이여!” 1Jesus said, “Shame on the flesh that depends on the soul. 2Shame on the soul that depends on the flesh.” 이 로기온은 외면적으로 보면 87장과 중복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본장은 87장보다 훨씬 더 명료한 문제의식을 전하고 있다. 도마에서 로기온의 중복은 단순한 중복이 아니라 해석의 차원을 고양시키는 그런 효과가 있다. 29장과도 간접적으로 관계되고 있다. 나는 ‘의존하다’를 ‘매달리다’로 번역하였다. 의존성을 보다 강렬하게 표현한 것이다. 보통 육체의 ..
제111장 하늘과 땅이 두루말릴지라도 살아있는 너희는 죽음을 보지 아니 하리라 제111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늘들과 땅이 너희 면전에서 두루말릴 것이다. 2그러나 살아있는 자로부터 살아있는 자는 누구든지 죽음을 보지 아니 하리라.” 3예수께서 말씀하시지 아니 하느뇨?: “자신을 발견한 자는 누구든지, 이 세상이 그에게 합당치 아니 하리라.” 1Jesus said, “The heavens and the earth will roll up in your presence, 2and whoever is living from the living one will not see death.” 3Does not Jesus say, “Whoever has found oneself, of that person the ..
제110장 세상을 발견하여 부자가 된 자는 세상을 부정하라 제110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세상을 발견하여 부자가 된 자는 누구든지, 그로 하여금 세상을 부정케 하라.” 1Jesus said, “Whoever finds the world and becomes rich, let him renounce the world.” 도마복음서는 막판에 이르러 기존의 논조와 본질적으로 상통하면서도 외면적으로 파라독스를 느끼게 하는 자극적인 방편설법을 계속 발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상에 대하여 우리에게 현실적 감각을 선사하는 긍정의 언사가 여기 강렬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도마에 있어서 ‘세상’은 항상 부정적인 그 무엇으로만 그려져왔다. 바울에 있어서 그러한 부정은 종말론적 전제가 있기 때문에 더욱 철저..
제109장 나라는 보물이 숨겨져 있는것도 모르고 밭을 가는 농부와도 같다 제109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라는 그의 밭에 한 보물이 숨겨져 있는데도 그것이 거기에 있는 줄을 모르는 한 사람과도 같다. 2그리고 그가 죽었을 때에 그는 그 밭을 그의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그 아들 또한 보물에 관해서는 전혀 알지를 못했다. 그 아들은 그 밭을 상속받은 후에 곧 팔아버렸다. 3그 밭을 산 사람은 밭을 갈았고 그 보물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누구에게든지 이자를 붙여서 돈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1Jesus said, “The kingdom is like a person who had a treasure hidden in his field but did not know it. 2And whe..
제108장 예수 나 자신 또한 너희처럼 되리라 제108장 1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마시는 자는 누구든지 나와 같이 되리라. 2나 자신 또한 그 사람과 같이 되리라. 3그리고 감추어져 있는 것들이 그 사람에게 드러나게 되리라. 1Jesus said, “Whoever drinks from my mouth will become like me; 2I myself shall become that person, 3and the hidden things will be revealed to that person.” 흔히 도마복음서의 로기온 배열이 임의적이고 어떠한 주제적 통일성을 찾기 어렵다고 말하지만, 과연 이것들이 완벽하게 랜덤(random)한 것인가에 관해서는 보다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나는 현재..
제107장 가장 큰 양 한 마리 제107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라는 일백 마리의 양을 가지고 있는 목자와도 같다. 2백 마리 중에 가장 큰, 그 한 마리가 무리를 떠났다. 목자는 아흔 아홉 마리를 버려두고 그 한 마리를 찾을 때까지 헤매었다. 3그리고 이 모든 수고를 끝내었을 때, 목자는 그 양에게 말했다: ‘나는 아흔아홉 마리보다도 너를 더 사랑하노라.’” 1Jesus said, “The kingdom is like a shepherd who had a hundred sheep. 2One of them, the largest, went astray. He left the ninety-nine and sought the one until he found it. 3After he had gone to..
제106장 너희가 둘을 하나로 만들면 산도 움직일 수 있다 제106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둘을 하나로 만들 때는 너희는 사람의 자식들이 될 것이니라. 2그리고 너희가 ‘산이여! 여기서 움직여라’라고 말하면, 산이 움직이리라.” 1Jesus said, “When you make the two into one, you will become children of humankind, 2and when you say, ‘Mountain, move from here’, it will move.” 본 로기온의 내용은 이미 48장에서 상설되었다. 여기 ‘사람의 자식들’은 86장의 ‘인간의 자식’과 같은 표현인데 복수가 되었다. 여기 ‘너희는 사람의 자식들이 될 것이니라’는 말씀에서 중요한 사실은 예수의 도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