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김용옥 (97)
건빵이랑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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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序) 『맹자』는 고전(古典)이 아니다. 그것은 옛[古] 책[典]이 아니라, 지금 여기 살아있는 사람들의 혈맥을 흐르고 있는 뜨거운 기운이다. 우리나라 고금에 『맹자』를 완독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맹자』를 읽었는가? 나는 장담할 수가 없다. 퇴계나 다산이 『맹자』를 정확하게 이해했는가? 나는 장담할 수가 없다. 물론 그들은 우리보다 자구(字句)의 의미에 관해 감정적으로 보다 근접한 느낌을 가졌을지는 모르겠지만 정확하게 이해했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그들이 정확하게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시대적 사상의 제약이 강했고, 뒷받침하는 문헌의 포괄성이 부족했다. 그리고 맹자라는 역사적 인간을 투시하기에는 그들이 산 시대상의 단일 칼라가 너무 강렬했다. 21세기와 같은 자유분방한 시대상 속..
도올의 교육입국론 목차 Ⅰ. 총론 1. 호학 민족에게 도래한 혁신교육감 시대충절과 반역, 수구와 혁명호학의 민족사, 『팔만대장경』을 보라! 2. 진보교육감 시대의 의의교육감만 장악하면 역사의 대세를 장악하는 대승대학생들의 아파티세월호 참변에 대한 안타까움 3.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관점 차이교육혁명 없는 정치혁명은 권좌의 교체일 뿐교육은 철학의 목적진보와 보수의 교육에 관한 철학적 담론의 차이: 인간론인식론과 진리론진보세력의 통렬한 반성이 요구되는 시대 Ⅱ. 공부론 1. 공부란 단어의 어원과 용례공부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공부의 어원, 한·중·일 단어의 비교공부라는 말의 역사적 용례 2. 공부와 시간공부의 원의와 희랍인의 아레떼도와 덕공부와 시간공부는 관념상의 변화가 아닌 몸의 단련 3. 공부와 ..
5. 혁신은 창조적 전진이다. 해체가 아닌 형성이다 엄마가 남긴 교육자의 심상 나에게 있어서 교육자의 심상은 나의 엄마가 내 가슴에 그려놓은 것이다. 나의 모친은 무한한 호기심과 섬세한 미감의 소유자였다. 나의 엄마가 평생 어김없이 새벽기도를 다니신 이야기는 옛 천안 잿배기 가도에 칸트의 산보처럼 전해져 왔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는 새벽기도를 가지 않았다. 왜? 엄마는 나팔꽃처럼 아침에 피어나는 꽃의 동태를 전부 관찰하고픈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 꽃이 피어나는 그 모습을 두 눈으로 관찰하고 싶었던 것이다. 벼르고 벼르다가 엄마는 교회를 가지 않고 우리집 화단을 지킨 것이다. 어슴푸레 먼동이 트는 추이와 함께 3시간 동안 꼬박 꽃망울을 응시한 것이다. 내가 잠에서 눈을 떴을 때, “난 보았다!” 그 한마..
3. 문명의 전사들, 교사 교사의 두 가지 덕성 교사의 자질을 결정하는 두 가지 위대한 덕성이 있다. 그 첫째는 학생들에 대한 따사로운 인간적 사랑이다. 학생들을 인격적 개체로 존중하고 그들의 마음상태에 이입(empathy)하는 정서적 폭을 갖춘 인격이다. 둘째는 자기가 소유한 지식과 자기가 신념으로 생각하는 정당한 가치를 가급적인 한 효율적으로 학생에게 분유시키고자 하는 지적 열정(intellectual ardor)이다. 주입은 그 위대한 방편이요, 토론은 주입의 평화롭고 효율적인 방법론일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과목의 성격과 교실의 분위기, 학생들의 수용성과 지적 수준에 따라 상황적으로 결정될 뿐이다. 교육은 하나의 이념적 방법론에 치우칠 수 없다. 인간은 복합적이다. 자유와 필연의 복합체이며, 무..
2. 주입식이냐, 토론식이냐의 공허한 논의 공자의 세미나 공자는 학생들과 종종 세미나를 했다. 그가 유랑생활을 할 때 논두렁에 쪼그리고 앉아서도 틈틈이 세미나를 했다. 그의 유랑길을 시종일관 지킨 것은 자로와 안회였다. 쫓겨 다니면서 논두렁에서 밥을 지어 먹어야 하는 고달픈 인생! 공자는 갑자기 이런 말을 한다: “야들아! 각자 인생 포부를 한 번 말해보기로 하자!” 그러니까 나서기 좋아하는 자로가 먼저 이렇게 말한다: “난 말이유, 천리마가 달린 고급수레 하나 타고 다니는 것이 소원이유.” 요즈음 말로 하면 최고급 벤츠 승용차 하나 굴리고 싶다는 소박한 포부를 말한 것이다. 그리고 또 “가벼운 고급 털옷을 유감없이 입어보았으면 좋갔수.” 베르사체 모피외투라도 하나 구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자 안연이..
5. 회고와 전망 1. 공자가 말하는 교학의 방법 교학상장의 실천론, 관계론, 생성론 내 글을 진지하게 읽는 사람들은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이 한마디가 내포하고 있는 다양한 의미맥락으로부터 충격에 가까운 전율을 느꼈을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요리가 앞에 있어도 먹어보지 않으면 그 맛을 알 길이 없다[雖有嘉肴, 弗食不知其旨]”라는 것은 교육에 있어서의 모든 실천주의, 과정론적 참여주의, 그리고 요즈음 말하는 체험학습의 의미를 압축한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교육에 있어서 교사의 주체성과 그 존엄을 말하면서도, 교사라는 주체가 일방적인 주체가 아니며 반드시 학생을 전제로 해서만 가능한 쌍방적ㆍ상감적(相感的)ㆍ융합적 주체라는 것, 다시 말해서 선생과 학생은 상즉상입(相卽相入)의 관계망 속..
5. 교사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제안 교사혁명의 다섯 가지 조건 나는 교사의 존엄성과 학교의 면학분위기를 제고시키기 위한 현실적 개선방향으로서 다음의 다섯 가지 테제를 제시한다. 첫째, 교사는 교육의 커리큘럼을 조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기가 주체적으로 시험문제를 내고 자기가 채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개성 있는 교육이 가능해지는 첩경이다. 수학자ㆍ물리학자로서 20세기의 가장 완정한 형이상학적 우주론을 수립한 화이트헤드(A. N. Whitehead, 1861~1947)는 교사가 자기가 가르치는 과목의 교과과정을 자신의 주체적 판단에 따라 상황적으로 조정할 수 없다면 그것은 인문ㆍ과학교육의 기본여건에 미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현재 입시교육의 전체주의적 엄격성 때문에 그러한 권..
4. 교육의 주체인 교사를 존중하라 에꼴 노르말의 경우 프랑스가 인류의 인문주의세계에 자랑하는, 세계지성계를 선도한 위대한 사상가들을 배출한 걸출한 교육기관으로서 에꼴 노르말 쉬페리외르(École normale supérieure)라는 것이 있다. 앙리 베르그송, 에밀 뒤르껭, 사르트르, 보봐르, 메를로 퐁티, 알튀세르,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알랭 바디우 …… 이 셀 수 없는 많은 위대한 사상가들이 이 한 교육기관에서 쏟아져 나왔다. 참으로 경이롭다 할 것이다. 그런데 이 프랑스 교육부 산하의 교육기관이 고등학교 교사를 배출하기 위한 ‘사범학교’로서 출발한 기관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인지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프랑스에서는 중ㆍ고등학교 교사도 ‘프로페쇠르(professeur)’라고 부른다. 에꼴 노르..
3. 학생은 온전한 개체이기에 풀어둬도 될까 존 듀이 철학을 왜곡하지 말라 그런데 진보주의교육이 왕왕 자유주의로 오해된다. 그리고 자유주의는 개인주의적 가치를 지상의 테제로 삼는 성향이 있다. 개체지상주의는 결국 방종으로 귀결된다. 몬테소리(Montessori), 섬머힐(Summerhill)류의 열린학교가 초창기의 건강한 혁명적 성격과는 달리 실패로 끝나는 이유가 결국 ‘방종’과 ‘훈육의 결여’, ‘결과적 진부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존 듀이(John Dewey, 1859~1952: 미국 교육철학의 아버지)를 존경하지만 그의 리버랄리즘적 교육관의 계승자들이 시행한 교육방법론의 파탄은 미국의 공교육을 망쳐버리고 미국 사회를 근원적으로 해체시키는 데 공헌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
2. 소유하려는 마음이 자율을 제약하다 자유에서 자율로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는 일시적인 느낌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자유로울 수 없는가? 물론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다. 어떻게? 존재모드를 자유에서 ‘자율’로 전환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자율(自律)이란 무엇인가? 자기가 자기에게 스스로 규율을 부과하는 것이다. 인간은 욕망의 주체이다. 욕망은 공생의 진리를 부정하는 강렬한 유혹성을 가지고 있다. 사적인 욕망에 자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다시 말해서 법정 스님께서 그토록 가르치시고 실천하신 ‘무소유’를 실천하는 것, 우리의 존재모드를 소유모드에서 무소유모드로 전환하는 것, 이 전환을 나는 ‘협력(cooperation)’이라고 부른 것이다. ▲ 법정스님 다비식. 남김 없이 가셨다. 칸트의 자율적 도..
4. 교사론 1. 자유가 대중교육의 목표여선 안 되는 이유 전남대학교 철학과의 경우 인문학 르네상스의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전남대학교 철학과에서는 1학년 정원 35명 중에서 6개의 자리를 특별히 대안학교 출신의 학생들에게 수능점수에 관계없이 배당한다고 한다. 처음에 3명만 받았다가 그들의 성적이 너무 우수하고 또 인간적으로 성숙되어 있어 6명으로 늘렸는데, 이들의 존재는 과의 면학 분위기를 놀랍게 향상시키고 있다고 한다. 자유로운 사색과 억압받지 않는 삶, 그리고 목전의 당면한 성취 스트레스에 오염되지 않은 여유로움을 지닌 어린 생령의 정신능력이 철학을 공부하는 데 훨씬 더 적합한 토양을 보유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입학 내규가 국립대학과 교수들 자체의 합의에 의하..
5. 엘리트를 위한 교육이 아닌 보통을 위한 교육 식민지교육이 폐허에서 피어난 혁신학교운동 일제식민지교육의 폐해를 극복한 것은 우리 학생들 스스로의 깨우침에 의한 것이었다. 3·1운동, 광주학생운동,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을 거치면서 학생들은 그들이 산 시대에 항거했지만 그 항거를 억누르려는 식민통치자의 후손들은 식민지배를 계속 강화해나갔다. 그 변통을 모르는 타락의 소돔과 고모라의 현장에서 민중 스스로의 각성에 의하여 솟은 불길이 바로 해공 신익희가 다닌 바 있었던 너무도 초라한 남한산초교에서부터 시작한 ‘혁신학교’ 운동이다. 이 학교는 1912년 개교한 이래 해공 신익희가 다닌 바 있는 유서 깊은 학교였으나 2000년 3월 기준으로 학생이 26명밖에 남지 않았다. 폐교의 위..
4. 교육의 지향점은 자유가 아닌 협력이다 교육이 지향하는 인간상: 역사이념의 체현 교육이란 그 교육이 처한 역사가 체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이상적 상과 대체적으로 일치한다. 교육은 인간형성(Human Building)이다. 빌딩에는 설계도가 있기 마련인데 그것은 그 역사사회가 구현하고자 하는 이념의 체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희랍인들의 교육은 폴리스에 사는 사람들의 염원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폴리스는 전쟁국가였다. 도시국가간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내는 전사(Warrior)들을 길러내지 못하면 존속이 불가능한 커뮤니티 형태였다. 따라서 희랍의 모든 교육이념은 어떻게 이상적인 전사를 길러내느냐 하는 명제로 집약된다. 플라톤의 『국가』를 읽어보면 너무도 끔찍한 전체주의적 사유에 치를 떨게 된다...
3. 교육보수주의와 식민지 멘탈리티 한국의 보수는 식민지 멘탈리티의 연속태 우리 국민이 가난하고 힘없고 부당하게 억압받던 일제식민지시절! 그나마 구한말로부터 시작하여 경술국치(庚戌國恥) 이전까지 짧은 신교육의 각성기가 있었지만, 그 꿈은 산산이 좌절되었다. 독자적인 폴리테이아(πολιτεία, 플라톤이 『국가』라는 책에서 ‘정부의 형태’라는 의미로 씀)의 주체기반을 갖지 못한 우리 민중에게 있어서 교육을 받아 신분의 상승이나 확보를 성취할 수 있었던 유일하고도 확고한 길이 의대를 가서 의사가 되거나, 법대를 가서 법관이 되는 것이었다. 의사가 되면 돈 잘 벌고 일경에게 정치범으로 몰리지 않고 별 탈 없이 살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었고, 법관으로 임관되는 영예를 누리게 되면 일본인과 거의 대등한 관..
2. 교육보수주의의 실상 보수와 진보의 학교론, 가치론 앞서 나는 보수 교육철학과 진보 교육철학의 진리에 대한 관점을 절대적ㆍ상대적, 고착적ㆍ역동적, 선재적ㆍ상황적인 시각의 차이로써 규정한 바 있다. 그렇게 되면 선(善)에 대한 인식에 관해서도, 불변의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이성을 사용하는 보수주의자들은 학생의 행동이나 습관 그리고 그 평가방식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선악의 기준을 선재적으로 전제할 것이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들은 모든 가치는 시대의 변화와 그때마다 등장하는 인류의 욕구에 맞추어 재구성되어야 하며 영구적인 선악의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학교의 존재이유에 관해서도, 이성주의적 입장에서 명료하게 규정하며, 가정환경이나 도제체제로써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집단적 탁월한..
3. 제도론 1. 새로움의 창출만이 퇴몰을 막는다 교육에는 진보ㆍ보수가 없다 교육에는 진보ㆍ보수가 없다. 내가 이 글의 제목을 ‘혁신교육감시대’로 규정한 것도, 교육감을 사소한 몇몇의 방법론적 기준에 의하여 진보와 보수라는 카테고리로써 분류할 수도 없고, 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나는 매사에 보수를 싫어하지만 진보주의자는 아니다. 나는 역사의 진보(the Progress of history)를 신봉하지 않는다. 나는 헤겔의 역사철학적 사관이나 칼 맑스의 경제발전단계설적 유물사관류의 필연주의적 역사주의(historicism)를 거부한다. 역사는 진보하지 않는다. 역사 그 자체는 인간의 언어행위나 가치관의 소산인 ‘진보’라는 개념에 의하여 규정될 수 없다. 역사는 진보하지도 퇴보하지도 않는다..
3. 공부와 경(敬) 퇴계의 『성학십도』와 경의 철학 퇴계의 말년 걸작인 『성학십도(聖學十圖)』에는 우주와 인간 전체가 상술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명(天命)’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즉 인간에게 명령하는 하늘, 인격적 주재자의 가능성으로서의 천(天)이라는 관념이 소실되어 버린 것이다. “천명, 즉 하늘의 명령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퇴계는 명쾌히 대답한다: “천(天)은 리(理)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죄를 사하여 줄 수 있는 천(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의 모든 행위는 나의 책임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늘은 곧 나의 마음이다. 나의 마음은 곧 리(理)며 성(性)이다. 나의 마음은 나라는 존재의 일신(一身)을 주재한다. 그런데 그 마음을 주재하는 것은 경(敬)이..
4. 교사론 1. 자유가 대중교육의 목표여선 안 되는 이유 전남대학교 철학과의 경우 인문학 르네상스의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전남대학교 철학과에서는 1학년 정원 35명 중에서 6개의 자리를 특별히 대안학교 출신의 학생들에게 수능점수에 관계없이 배당한다고 한다. 처음에 3명만 받았다가 그들의 성적이 너무 우수하고 또 인간적으로 성숙되어 있어 6명으로 늘렸는데, 이들의 존재는 과의 면학 분위기를 놀랍게 향상시키고 있다고 한다. 자유로운 사색과 억압받지 않는 삶, 그리고 목전의 당면한 성취 스트레스에 오염되지 않은 여유로움을 지닌 어린 생령의 정신능력이 철학을 공부하는 데 훨씬 더 적합한 토양을 보유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입학 내규가 국립대학과 교수들 자체의 합의에 ..
3. 제도론 1. 새로움의 창출만이 퇴몰을 막는다 교육에는 진보ㆍ보수가 없다 교육에는 진보ㆍ보수가 없다. 내가 이 글의 제목을 ‘혁신교육감시대’로 규정한 것도, 교육감을 사소한 몇몇의 방법론적 기준에 의하여 진보와 보수라는 카테고리로써 분류할 수도 없고, 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나는 매사에 보수를 싫어하지만 진보주의자는 아니다. 나는 역사의 진보(the Progress of history)를 신봉하지 않는다. 나는 헤겔의 역사철학적 사관이나 칼 맑스의 경제발전단계설적 유물사관류의 필연주의적 역사주의(historicism)를 거부한다. 역사는 진보하지 않는다. 역사 그 자체는 인간의 언어행위나 가치관의 소산인 ‘진보’라는 개념에 의하여 규정될 수 없다. 역사는 진보하지도 퇴보하지도 ..
2. 공부론 1. 공부란 단어의 어원과 용례 공부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말에 ‘공부’라는 말이 있다. 이 ‘공부’라는 말은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교육을 생각할 때, 그 함의의 99%를 차지한다. 나의 자녀를 ‘교육시킨다’는 말은 ‘공부시킨다’는 말과 거의 같다. 나의 자녀에 대한 자랑도 ‘우리 아이는 공부를 잘해요’라는 명제로 표현된다. ‘공부를 잘한다’는 뜻은 과연 무엇일까? ‘공부를 잘한다’는 의미를 복잡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우리 일상언어의 가장 평범한 의미체계를 정직하게 밝히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그것은 ‘학교 시험 점수가 높다’는 뜻이다. 우리 아이 공부 잘한다는 의미에 실제로 딴 뜻이 없다. ‘학교 시험 점수가 높다’는 것은 대학입시에 유리하다는 뜻이고, 대학입시에 유리하다는..
1. 총론 1. 호학 민족에게 도래한 혁신교육감 시대 충절과 반역, 수구와 혁명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의 파랑을 격파하며 나아간다[讀萬卷書, 破萬里浪].” 진리 탐구를 위해 눈물겨운 여정을 감행하였던 신라의 구법승(求法僧)들이 유학 장도에서 읊었던 장쾌한 절구의 한 소절! 어찌 만 리의 파랑이 서해바다의 파랑일 뿐이리오? 그것은 기구한 우리 인생의 파랑이요, 기나긴 반만년 역사의 격랑이요, 충절과 반역, 수구와 혁명, 억압과 자유의 기복으로 점철된 우리 정치사의 풍랑이리라! 공자는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열 가호쯤 되는 조그만 마을에도 나처럼 충직하고 신의 있는 사람은 반드시 있다. 그러나 나만큼 배우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論語』 「..
해제 2. 똥 누기와 중용적 삶 善讀者, 玩索而有得焉, 則終身用之, 有不能盡者矣.” 잘 읽는 사람이 완색하여 얻음이 있으면 죽을 때까지 그것을 써도 다할 수 없는 바가 있는 것이다. 중국말의 선(善)이라는 말은 누누이 얘기했듯이 서양말의 ‘굿(good)’이 아니고 ‘웰(well)’과 같은 말로 무엇을 잘한다는 뜻이고, 완색(玩索)의 완(玩)은 ‘가지고 논다’는 뜻입니다. 장난감을 완구라고 하듯이 문장도 맛이 있으니까 갖고 놀아야 됩니다. 여자의 몸처럼 요기조기 만지고 살피면서 음미하면 그 맛이 무궁무진하다는 거죠. 제대로 읽은 사람은 그렇게 리얼하게 느끼고 얻는 게 있죠. 이것이 실학입니다. 종신(終身)은 죽을 때까지라는 뜻인데, 중국 사람들은 결혼을 일컬어서 죽을 때까지 치루는 일 가운데서 가장 큰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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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장구서 11. 황연대오의 순간 熹自蚤歲, 卽嘗受讀而竊疑之. 沈潛反復, 蓋亦有年. 一旦恍然, 似有得其要領者. 나 희는 어릴 적부터 그 책을 받아 읽으면서 차분히 홀로 다소곳이 그 내용을 생각하곤 했다. 침잠하고 반복하기를 여러 해 계속했다. 어느 날 새벽이었다. 홀연히 아! 하고 그 요령을 터득함이 있는 듯하였다. 조세(蚤歲)는 ‘소시(少時)’, 조(蚤)는 조(早)와 통하는 글자입니다. 절(竊)은 ‘가만히 몰래’ 의(疑)는 꼭 ‘의심한다’라기보다 영어의 ‘doubt’처럼 ‘~라고 생각한다’는 뜻이고 유년(有年)은 나이를 먹고 연륜이 쌓이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일단황연(一旦恍然)은 중국 사람들이 잘 쓰는 황연대오(恍然大悟, 후앙르안따우)【『대학(大學)』에선 ‘하루아침에 천지만물의 이치를 꿰뚫게 된다[一旦..
중용장구서 10. 우여곡절 끝에 남겨지다 歷選前聖之書, 所以提挈綱維, 開示蘊奧, 未有若是其明且盡者也. 옛 성인의 책을 역대로 가려 뽑아서 그 강유(綱維)를 파악하고 온오(蘊奧)를 열어 보인 방법이 아직 이처럼 명백하고 상세한 책은 없었다. 강유(綱維)는 ‘핵심적인 기본구조’, 제계(提契)는 ‘끌어낸다(present)’, 온오(蘊奧)는 ‘이면에 담긴 깊은 뜻’을 말합니다. 自是而又再傳, 以得孟氏. 爲能推明是書, 以承先聖之統. 及其沒而遂失其傳焉. 則吾道之所寄, 不越乎言語文字之間. 而異端之說, 日新月盛, 以至於老ㆍ佛之徒出, 則彌近理而大亂眞矣. 이로부터 다시 전하매 맹자(孟子)라는 걸출한 인물을 얻었다. 그는 이 책을 한층 더 명백히 밝혀 선성(先聖)의 도통(道統)을 이을 수 있었는데 그가 죽고 나자 전할 데를..
저자 2. 자사가 지을 수가 없다 『중용(中庸)』의 단행본화는 주희 이전에 이미 있었다 사서(四書) 이전에 『중용(中庸)』이 『예기(禮記)』에 있었다는 것과 따로 떨어져 있었다는 것은 어떠한 점이 다를까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은 『중용(中庸)』에 대한 별도의 주석본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가 『예기(禮記)』에 주석을 할 적에 『중용(中庸)』에 관한 것이 예기 중의 일부분으로는 있을 수 있어도 독립적인 주석은 거의 없는 것입니다. 『논어(論語)』는 한나라 때부터 계속 독립적으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주석이 축적되어왔지만 『중용(中庸)』은 비교적 주석이 없어요. 『중용(中庸)』은 주자가 맨 처음으로 끄집어낸 것은 아니고 이미 주자 이전에도 단독본으로 조금씩 유명해지기는 했습니다. 『수서(隋書)..
서설 10. 고전학을 공부하는 이유 해 아래 새 것은 파워가 없다 완전히 쌩으로 새 것이 나온다고 하면, 불가능할 거야 없지만 힘들고 또 누가 알아주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고전은 어떤 의미에서 업보예요. 왜냐하면, 글을 쓸 때에도 『중용(中庸)』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하면 근사하게 생각하고, 쌩으로 김용옥 얘기다 하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대중을 움직이기가 어렵다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고전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유는 아주 단순해요. 더 센 게 있으면 해도 됩니다. 그렇지만 서태지 정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서태지는 아주 센세이셔널(sensational)하고 자기 메시지도 있고 텍스트도 있으며 매체도 있습니다. 랩송은 아주 새로운 것이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나도 ‘전혀 새..
서설 9. 주희의 사서운동(四書運動) 주희, 「대학」과 「중용」을 장구화하다 그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잘못되어가는 문명을 바로잡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새 문명을 만들어야겠다는 근본적인 걱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한 대응방법으로 아주 강력한 윤리주의를 들고 나오게 된 것입니다. 『중용(中庸)』의 첫머리에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게 무슨 뜻입니까? 주자가 이것저것 고민하면서 십삼경(十三經)을 들여다보다가 『예기』 31장에 있는 『중용(中庸)』의 첫머리를 보고 쇼크를 받은 거예요. 하늘(Heven)이 명령하는 것, 그것이 성(性)이라는 거예요. 이때 주자의 눈에 들어온 성(性)이란 것은 인간의 도덕적 본성(moral nature)입니다. ‘하늘이 인간에게 도덕성을 이미 부여했..
서설 8. 안타깝게 송나라를 바라보던 주희의 눈망울 송나라에서 적폐로 인식된 불교 그러나 침투한 문명 중 핵심적인 것은 불교였고 그것이 중국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종교이든지 방식이 다를 뿐, 결국 그 주제는 ‘구원’일 수밖에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그 구원의 방식이 문명으로부터의 벗어남인 해탈(解脫, enlightenment)이라고 주장합니다. 불교가 말하는 해탈이라는 것은, 인간세의 모든 것이 고(苦, 一切皆苦)이고 그 고(苦)는 집착[執]에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고(苦)’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세의 일에 대한 집착을 끊는[滅執]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라는 것은 윤리로부터 근본적으로 벗어나버린다(transethical)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윤리적..
서설 3. 인간 세계를 이루는 두 축, 예(禮)와 악(樂)② ▲ 사람은 군집하여, 집단을 이루어 살아가야 하기에, 예는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여타 동물과 다른 존재로 발돋움하게 하는 악(樂) 인간은 자유의지(free will)를 가진 동물입니다.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은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식물은 추위가 오면 잎이 떨어져야지 안 떨어지겠다고 폼 잡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식물은 자유의지가 없어요. 자연의 변화에 대해서 그대로 반응(Reaction)을 하는 겁니다. 소나무도 독야청청(獨也靑靑)한다고 하지만 성격이 다를 뿐 변화를 그대로 다 받아요. 추우면 추운데 따라서 거기에 맞게 조절(adjust)을 합니다. 나무를 잘라보면 나이테라는 것이 있는데 추울 때 성장한 부분과 더울 때 성..
나의 길을 걷다가 중용의 길과 마주치다 길이 있다. 그 누구도 걸어간 적이 없는 길과 많은 사람들이 걸어서 반들반들 닦여진 길. 어느 길로 가든 내가 원하는 곳에 갈 수는 있을 것이다. 모든 길은 이어지고 통한다는 걸 아니까. 단지 시간이 많이 걸리느냐, 조금 걸리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 차이라는 게 근시안적으로 보면 거창한 것처럼 보일 테지만, 실상 따지고 보면 별 거 아닌 거라는 생각도 든다. 어떤 삶이든 그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말이다. 더욱이 그렇게 나만의 길을 만들며 돌아가는 것이 그 자신에게는 가장 빠른 길일지도 모르고,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 인생의 다른 의미도 느끼게 될지도 모르니까. 고로, 어느 길을 선택하건 그건 곧 자신의 길이라 표현할 수 있다는 말씀. 이쯤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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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老子) 목차노자와 21세기 & 노자가 옳았다 간서(間序) / 후서(後序) 서설(序說) 방송문화의 한 전기를 위하여1. 내 생각을 글로 쓴다는 것2. 인류는 앞으로 테레비 때문에 패망할 것이오3. 테레비의 이중성4. 테레비 앞에 앉어 있는 사회 & 테레비 볼 시간도 없는 사회5. 브레인코리아와 시청률6. 고전강의 계획이 좌절된 이유7. EBS 밀레니엄 특강에 거는 기대 21세기의 3대 과제흙, 건강, 디자인인간과 자연환경의 화해종교와 종교와의 화해지식과 삶의 화해 『노자도덕경』이라고 하는 책1. 『노자』라는 책은 역사적으로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2. 마왕퇴에서 발견된 B.C. 168년의 백서 노자3. 곽점의 죽간본이 불러일으킨 소용돌이4. 곽점죽간본 출토로 노자 연구는 한층 복잡해졌다5. 노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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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장 以道佐人主者,이도좌인주자,도로써 사람의 주인을 잘 보좌하는 사람은不以兵强天下.불이병강천하.무력으로 천하를 강하게 하지 않는다.其事好還.기사호환.무력의 댓가는반드시 자기에게 되돌아오기 마련이다.師之所處, 사지소처, 군대가 처한 곳에는荊棘生焉.형극생언.가시덤불이 생겨나고,大軍之後, 대군지후, 대군이 일어난 후에는必有凶年.필유흉년.반드시 흉년이 따른다.善有果而已, 선유과이이, 부득이 해서 난을 구해줄 뿐不敢以取强.불감이취강.무력으로 세상을 억누르지 않는다.果而勿矜,과이물긍,좋은 성과가 있어도 뽐내지 아니하며,果而勿伐,과이물벌,좋은 성과가 있어도 으시대지 아니하며,果而勿驕.과이물교.좋은 성과가 있어도 교만치 아니한다.果而不得己,과이부득이,성과가 있었던 것도단지 부득이 해서 그리된 것일 뿐이니,果而勿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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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장 將欲取天下而爲之, 장욕취천하이위지,천하를 가질려고발버둥치는 자를 보면吾見其不得已. 오견기부득이.나는 그 얻지 못함을 볼 뿐이다.天下神器, 천하신기,천하란 신령스러운 기물이다.不可爲也: 불가위야:도무지 거기다 뭘 할 수가 없는 것이다.爲者敗之, 위자패지,하는 자는 패할 것이요,執者失之. 집자실지.잡는 자는 놓칠 것이다.故物或行或隨, 고물혹행혹수,그러므로 사물의 이치는앞서 가는 것이 있으면뒤따라가는 것이 있고,或歔或吹, 혹허혹취,들여 마시는 것이 있으면내 뿜는 것이 있고,或强或羸, 혹강혹리,강한 것이 있으면여린 것이 있고,或挫或隳. 혹좌혹휴.솟아나는 것이 있으면무너지는 것이 있다.是以聖人去甚, 시이성인거심, 그러하므로 성인은극심한 것을 버리고去奢, 去泰.거사, 거태.사치한 것을 버리고과분한 것을 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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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장 知其雄, 守其雌, 지기웅, 수기자, 그 숫컷됨을 알면서도 그 암컷됨을 지키면爲天下谿. 위천하계.천하의 계곡이 된다.爲天下谿, 위천하계,천하의 계곡이 되면,常德不離, 상덕불리,항상스런 덕이 떠나질 아니하니,復歸於嬰兒. 복귀어영아.그리하면 다시 갓난아기로 되돌아 간다.知其白, 守其黑, 지기백, 수기흑,그 밝음을 알면서도 그 어둠을 지키면爲天下式. 위천하식.천하의 모범이 된다.爲天下式, 위천하식,천하의 모범이 되면,常德不忒, 상덕불특,항상스런 덕이 어긋나질 아니하니,復歸於無極. 복귀어무극.그리하면 다시 가없는 데로 되돌아 간다.知其榮, 守其辱, 지기영, 수기욕,그 영예를 알면서도 그 굴욕을 지키면爲天下谷. 위천하곡.천하의 골이 된다.爲天下谷, 위천하곡, 천하의 골이 되면,常德乃足, 상덕내족, 항상스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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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 太上, 下知有之;태상, 하지 유지;가장 좋은 다스림은,밑에 있는 사람들이다스리는 자가 있다는 것만 알 뿐이다.其次, 親而譽之;기차, 친이예지;그 다음은,백성들을 친하게 하고 사랑하는 것이다.其次, 畏之;기차, 외지;그 다음은,백성들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이다.其次, 侮之.기차, 모지.그 다음은,백성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것이다.信不足焉, 有不信焉.신부족언, 유불신언.믿음이 부족한 곳엔반드시 불신이 있게 마련이다.悠兮, 其貴言.유혜, 기귀언.그윽하도다 !그 말 한마디를 귀하게 여기는 모습이여.功成事遂,공성사수,공이 이루어지고일이 다 되어도百姓皆謂我自然.백성개위아자연.백성들은 모두 한결 같이 일컬어나 스스로 그러할 뿐이라 하는도다! 1. 죽간 병조에도 들어 있는 파편, 죽간 을조와 병조의 차이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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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寵辱若驚,총욕약경,총애를 받으나 욕을 받으나다같이 놀란 것 같이 하라.貴大患若身.귀대환약신.큰 걱정을 귀하게 여기기를내 몸과 같이 하라.何謂寵辱若驚?하위총욕약경?총애를 받으나 욕을 받으나다같이 놀란 것 같이 하란 말은무엇을 일컬음인가?寵爲下,총위하,총애는 항상 욕이 되기 마련이니得之若驚, 득지약경, 그것을 얻어도놀란 것처럼 할 것이요,失之若驚,실지약경,그것을 잃어도놀란 것처럼 할 것이다.是謂寵辱若驚.시위총욕약경.이것을 일컬어총애를 받으나 욕을 받으나늘 놀란 것 같이 하라 한 것이다.何謂貴大患若身?하위귀대환약신?큰 걱정을 귀하게 여기기를내 몸과 같이 하란 말은무엇을 일컬음인가?吾所以有大患者, 爲吾有身.오소이유대환자, 위오유신.나에게 큰 걱정이 있는 까닭은내가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及吾無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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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五色令人目盲,오색영인목맹,갖가지 색깔은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五音令人耳聾,오음영인이농,갖가지 음은사람의 귀를 멀게 하고,五味令人口爽.오미영인구상.갖가지 맛은사람의 입을 버리게 한다.馳騁田獵令人心發狂,치빙전렵영인심발광,말달리며 들사냥질 하는 것은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만든다.難得之貨令人行妨.난득지화영인행방.얻기 어려운 재화는사람의 행동을 어지럽게 만든다.是以聖人爲腹不爲目.시이성 인위복불위목.그러하므로 성인은배가 되지 눈이 되질 않는다.故去彼取此.고거피취차.그러므로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1.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를 통렬히 비판하다(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 五味令人口爽) 말초감각을 자극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에 대하여 이처럼 통렬한 비판의 소리는 듣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이 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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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載營魄抱一,재영백포일, 땅의 형체를 한 몸에 싣고하늘의 하나를 껴안는다.能無離乎!능무리호!그것이 떠나지 않게 할 수 있는가?專氣致柔,전기치유,기를 집중시켜 부드러움을 이루어能嬰兒乎!능영아호!갓난 아기가 될 수 있는가?滌除玄覽,척제현람,가믈한 거울을 깨끗이 씻어能無疵乎!능무자호!티가 없이 할 수 있는가?愛民治國,애민치국,백성을 아끼고 나라를 다스림에能無知乎!능무지호!앎으로써 하지 않을 수 있는가?天門開闔,천문개합,하늘의 문이 열리고 닫힘에能無雌乎!능무자호!암컷으로 머물 수 있는가?明白四達,명백사달,명백히 깨달아 사방에 통달함에能無爲乎!능무위호!함으로써 하지 않을 수 있는가?生之,생지,도는 창조하고,畜之,축지.덕은 축적하네.生而不有,생이불유,낳으면서도낳은 것을 소유하지 않고,爲而不恃,위이불시,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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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上善若水,상선약수,가장 좋은 것은물과 같다.水善利萬物而不爭,수선리만물이부쟁,물은 만물을잘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處衆人之所惡,처중인지소오,뭇 사람들이 싫어하는낮은 곳에 처하기를 좋아한다.故幾於道.고기어도.그러므로 도에 가깝다.居善地,거선지,살 때는낮은 땅에 처하기를 잘하고,心善淵,심선연,마음 쓸 때는그윽한 마음가짐을 잘하고,與善仁,여선인,벗을 사귈 때는어질기를 잘하고,言善信,언선신,말할 때는믿음직하기를 잘하고,正善治,정선치,다스릴 때는질서있게 하기를 잘하고,事善能,사선능,일할 때는능력있기를 잘하고,動善時.동선시.움직일 때는바른 때를 타기를 잘한다.夫唯不爭, 故無尤.부유부쟁, 고무우.대저 오로지다투지 아니하니허물이 없어라. 1.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문구, 상선약수(上善若水) 아마도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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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天地不仁,천지불인,천지는 인자하지 않다.以萬物爲芻狗;이만물위추구;만물을 풀강아지처럼다룰 뿐이다.聖人不仁,성인불인,성인은 인자하지 않다.以百姓爲芻狗.이백성위추구.백성을 풀강아지처럼다룰 뿐이다.天地之間, 其猶橐籥乎!천지지간, 기유탁약호!하늘과 땅 사이는꼭 풀무와도 같다.虛而不屈, 動而愈出.허이불굴, 동이유출.속은 텅 비었는데찌부러지지 아니하고움직일수록더욱 더 내뿜는다.多言數窮, 不如守中.다언삭궁, 불여수중.말이 많으면 자주 궁해지네.그 속에 지키느니만 같지 못하네. 1. 『길과 얻음』과 이번 책의 차이 나는 평생 『노자』를 강의했다. 내가 하바드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바로 귀국하여 고려대학교 부교수로 교편을 잡았을 때 처음 강의한 것이 이 『노자』였다. 사실 나는 82년도 고려대학에서 『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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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天下皆知美之爲美,천하개지미지위미,하늘아래 사람들이 모두아름다운 것이 아름답다고알고 있다.斯惡已;사오이;그런데 그것은 추한 것이다.皆知善之爲善,개지선지위선,하늘아래 사람들이 모두선한 것이 선하다고 만알고 있다.斯不善已。사불선이.그런데 그것은 선하지 않은 것이다.故有無相生,고유무상생,그러므로있음과 없음은 서로 생하고難易相成,난이상성,어려움과 쉬움은 서로 이루며長短相較,장단상교,김과 짧음은 서로 겨루며高下相傾,고하상경,높음과 낮음은 서로 기울며音聲相和,음성상화,노래와 소리는 서로 어울리며前後相隨。전후상수.앞과 뒤는 서로 따른다.是以聖人處無爲之事,시이성인처무위지사,그러하므로성인은함이 없음의 일에 처하고行不言之敎,행불언지교,말이 없음의 가르침을 행한다.萬物作焉而不辭,만물작언이불사,만물은 스스로 자라나는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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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道沖,도충도는 텅 비어있다.而用之或不盈.이용지혹불영.그러나 아무리 퍼내어 써도고갈되지 않는다.淵兮!연혜!그윽하도다!似萬物之宗.사만물지종.만물의 으뜸 같도다.挫其銳, 解其紛;좌기예, 해기분;날카로움을 무디게 하고얽힘을 푸는도다.和其光, 同其塵.화기광, 동기진.그 빛이 튀쳐남이 없게 하고그 티끌을 고르게 하네.湛兮!담혜!맑고 또 맑아라!似或存.사혹존.저기 있는 것 같네.吾不知誰之子,오부지수지자,나는 그가 누구의 아들인지 몰라.象帝之先.상제지선.하나님보다도 앞서는 것 같네. 1. 예전 다방의 흔한 광경(道沖而用之, 或不盈, 淵兮似萬物之宗) “레지 아가씨! 커피 좀 더 채워줘요!”“그 만큼 찼으면 됐지 뭘?”“인색하게 굴지말구 컵에다 좀 더 부으라구.” 우리가 대학 다닐 즈음, 요즈음과는 사뭇 달라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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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天下皆知美之爲美,천하개지미지위미,하늘아래 사람들이 모두아름다운 것이 아름답다고알고 있다.斯惡已;사오이;그런데 그것은 추한 것이다.皆知善之爲善,개지선지위선,하늘아래 사람들이 모두선한 것이 선하다고 만알고 있다.斯不善已。사불선이.그런데 그것은 선하지 않은 것이다.故有無相生,고유무상생,그러므로있음과 없음은 서로 생하고難易相成,난이상성,어려움과 쉬움은 서로 이루며長短相較,장단상교,김과 짧음은 서로 겨루며高下相傾,고하상경,높음과 낮음은 서로 기울며音聲相和,음성상화,노래와 소리는 서로 어울리며前後相隨。전후상수.앞과 뒤는 서로 따른다.是以聖人處無爲之事,시이성인처무위지사,그러하므로성인은함이 없음의 일에 처하고行不言之敎,행불언지교,말이 없음의 가르침을 행한다.萬物作焉而不辭,만물작언이불사,만물은 스스로 자라나는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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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道可道, 非常道;도가도, 비상도;도를 도라고 말하면그것은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名可名, 非常名。명가명, 비상명.이름을 이름지우면그것은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無名, 天地之始;무명, 천지지시;이름이 없는 것을천지의 처음이라 하고,有名, 萬物之母。유명, 만물지모.이름이 있는 것을만물의 어미라 한다.故常無欲以觀其妙,고상무욕이관기묘,그러므로늘 욕심이 없으면그 묘함을 보고,常有欲以觀其徼,상유욕이관기교,늘 욕심이 있으면그 가장자리만 본다.此兩者同,차양자동,그런데 이 둘은같은 것이다.出而異名。출이이명,사람의 앞으로 나와이름만 달리했을 뿐이다.同謂之玄,동위지현,그 같은 것을 일컬어가믈타고 한다.玄之又玄,현지우현,가믈고 또 가믈토다!衆妙之門。중묘지문。모든 묘함이이 문에서 나오지 않는가! 1. 대만대학에서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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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노자가 말하는 걸 빈 마음으로 따라가보자 『노자』는 한마디로 지혜의 서이다. 그것은 어떤 종교의 교리를 말하거나, 어떤 물리적 사태의 규명을 목적으로 하거나, 우리에게 특정한 교훈이나 가치규범을 강요하거나 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서양의 전통에 있어서 ‘지혜’란,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무엇이다. 그러나 그러한 지혜란 근원적으로 ‘무당의 지껄임’이다. 동양에서 말하는 지혜란 그런 것이 아니다. 신이란 전제도, 인간이란 전제도, 지혜 앞에선 성립하지 않는다. 지혜란 우리 삶의 과정적 행위의 지혜이다. 그런데 지혜의 특징은 일체의 권위적 실체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혜는 어떠한 경우에도 ‘무전제’인 것이다. 지혜는 개념적 분석의 소산이 아니다. 그것은 분별적 지식을 뛰어넘어 우리의 몸으로 궁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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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노자가 원본은 질박한 사상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본 강의는 대중강연이다. 『노자(老子)』라는 문헌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이미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진행되는 학술세미나가 아니다. 그리고 본 강의의 취지 자체가 『노자(老子)』의 생각을 전달하려는 것이지, 『노자(老子)』라는 문헌의 전문적 분석결과를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서지학(書紙學)적 논쟁이 매우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너무도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것이며 여기 소개되어야 할 하등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곽점초간본(郭店楚簡本) 『노자(老子)』를 살펴 본 나의 소감 중에 가장 의미 있는 사실은, 그것이 『노자(老子)』라는 책의 형성과정에 대해 매우 설득력 있는 새로운 가설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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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곽점죽간본 출토로 노자 연구는 한층 복잡해졌다 곽점죽간본(郭店竹簡本, 약칭하여 ‘簡本’이라 한다)은 갑(甲)ㆍ을(乙)ㆍ병(丙) 삼조(三組)로 나누어져 있다. 갑조(甲組)의 것은 길이 32.3㎝짜리 39매(枚)로 되어 있고, 을조(乙組)의 것은 30.6㎝짜리 18매(枚), 병조(丙組)의 것은 26.5㎝짜리 14매(枚)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백서(帛書)가 오늘날 우리의 한문지식으로도 쉽게 식별할 수 있는 소전체와 예서체로 되어 있는데 반하여, 우리의 눈으로 보아 쉽게 식별하기 어려운 초(楚)나라의 독특한 자체(字體)로 되어있다(戰國中期의 古體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리고 백서(帛書)의 경우 갑(甲)ㆍ을(乙)이 동일한 내용의 중복되는 두 세트의 문헌임에 반하여, 이 간서(簡書)의 경우는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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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곽점의 죽간본이 불러일으킨 소용돌이 1993년 10월, 호남성(湖北省) 형문시(荊門市) 사양구(沙洋區) 사방향(四方鄕) 곽점촌(郭店村)에 자리 잡고 있는 전국(戰國)시대의 분묘 하나를 발굴했는데, 그곳에서 804개나 되는 죽간(竹簡, 문자가 새겨진 대나무 쪽)에 쓰여진 一萬三天여 글자의 문헌이 발견된 것이다. 그런데 이 모두가 매우 심각한 개념성의 학술저작인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 분묘주인 자신의 라이브러리(library)가 같이 묻힌 듯한데, 그렇다면 이 분묘의 주인은 대단한 사상가였을 것이다. 부장품중에 ‘동궁지사(東宮之師)’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는 컵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분묘의 주인은 나라의 태자(太子)의 선생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맹자(孟子)와 동시대며 맹자(孟子)보다 약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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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왕퇴에서 발견된 B.C. 168년의 백서 노자 『노자(老子)』는 단행본으로 존재(存在)한 것이 매우 오래된, 그 정확한 추정이 가능한 희귀한 책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아주 확실하게 말하면 오늘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노자(老子)』와 거의 유사한 책이 신약성서가 쓰여진 시대보다, 최소한 300년을 앞서 실재(實在)했다는 것이 고고학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1973년 11월부터 1974년 초에 이르기까지 중국(中國)의 호남성마왕퇴(湖南省馬王堆, 마왕뛔이)라는 곳에서 한묘(漢墓)를 발굴했는데 그 3호 분묘에서 대량의 가 나왔다. 백서(帛書)라는 것은 비단에 먹과 붓으로 쓴 책을 말한다. 이 백서 중에 바로 오늘날의 『노자(老子)』 책과 그 내용이 거의 비슷한 『노자(老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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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종교와 종교간의 화해 다음의 주제는 종교와 종교간의 화해(the Harmony between Religions)다. 얼마전에 참으로 놀라운 기사를 하나 읽었다. 한겨레신문에 실린 현각(女覺)이라는 이름의 외국인 승려의 컬럼이었다(1999년 9월 28일자). 현각은 얼마전 KBS의 다큐멘타리, 『만행』이라는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도 우리에게 낯익은 인물이었다. 해맑은 얼굴, 거침없이 말하는 그의 명료한 자세가 수도인의 기품을 물씬 풍긴다. 미국 동부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하바드대학에서 신학ㆍ철학을 공부한 나의 후배이기도 한데 참 사려 깊은 인물이다. 그런데 그 컬럼의 제목이 ‘화계사의 불’ 이었다. 얘기인 즉, 기독교 광신도들이 화계사가 마귀사는 곳이라고 여러차례 와서 몰래 방화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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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간과 자연환경의 화해 수 년전의 일이다. 아프리카대륙과의 최초의 해후! 내가 탄 헬리콥타가 탕가니카 호수 북단의 호반의 푸른 초원에 내렸다. 내가 탄 헬리콥타가 검은 대륙에 착지하려고 접근을 시도할 때, 주변 동네의 어린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뛰어오는 모습이 어른거렸다. 바스라질 듯 해맑은 대기, 바다보다도 더 큰 호수, 호수를 병풍 친 밋밋하면서도 웅장한 산맥의 준령, 이 모든 것이 작열하는 태양빛 아래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에게 문화충격이랄까, 삶의 환희라고 해야 할까, 생명의 약동이랄까,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보다도 내 주변에 바글거리는 까만 아동들의 얼굴이었다. 김서린 새벽 호면을 박차고 튀어 오르는 물고기들의 강렬한 몸짓보다도 더 투명한 빛을 발하는 그들 까아만 얼굴의 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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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3대 과제 1. 흙, 건강, 디자인 지난 주 오스트랄리아 시드니에 다녀왔다. 세계 디자이너들의(ICSID, ICOGRADA, IFI 3단체) 총회가 열리는데, 나 보고 주제 강연을 하나 해 달라는 것이었다. 올 여름에 IFI(International Federation of Interior Architects/Designers) 워크숍이 서울에서 열렸다. 내가 디자인에 대해서 뭘 알까마는 우연한 기회에 주제강연을 간곡히 부탁하길래, ‘흙, 건강, 디자인(Soil, Health, Design)’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국제회의가 되어 놓고 보니, 영어를 제대로 할 줄 알면서도 좀 토속적인 냄새가 나는 사람을 고르다 보니까 나같은 사람이 적격이라는 생각이 드는지, 하여튼 요즈음은 그런 청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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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BS 밀레니엄 특강에 거는 기대 요번 EBS 밀레니엄특강 고전강의는 내가 원하는 프로그램의 형태로 방송사에 수용된 최초의 전기이다. 내가 하고 싶은 강의가 테레비 영상을 통해 국민에게 널리 다가가는 최초의 계기가 EBS 교육방송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이 역사적 사실에 대해 나는 무한한 자부감을 느낀다. 첫째, 나는 우리나라 방송문화의 개선을 위하여 ‘인식의 변화’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기회가 교육방송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퍽으나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 나라의 문화의 수준은 단순한 상업성을 뛰어넘는, 그러한 전제로서 운영되지 않는 체계가 바르게 작동될 때만 그 꾸준한 기준이 확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EBS 교육방송 자체의 인식의 변화와 또 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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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브레인코리아와 시청률 나는 사회 전반적으로 테레비 시청률이 내려가는 편이 좋은 사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생각은 현실과 무관한 하나의 유토피아(Utopia)적 꿈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나의 이러한 꿈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시청률을 내리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역설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 국가의 운영에 있어서 그 문화정책이 중요하다는 것은 새삼 부언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문화정책의 가장 비중있는 섹터(sector)로서 우리는 교육정책을 꼽는다. 물론 교육이 제대로 되어야 그 나라의 미래가 확보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십년지계(十年之計)는 수목(樹木, 나무를 심음)에 있고 백년지계(百年之計)는 수인(樹人, 사람을 심음)에 있다는 옛말(『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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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테레비 앞에 앉어 있는 사회 & 테레비 볼 시간도 없는 사회 내가 생각하기에 한국사회의 문제는 정치만의 문제도 아니요, 교육만의 문제도 아니요, 경제만의 문제도 아니다.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매스컴 전반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으며, 더 중요한 문제는 이 매스컴의 창조적 계기를 만들어갈 수 있는 도덕적 구심체가 부재하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는 제1의 관건은 테레비 프로그램을 만드는 당사자인 피디와 피디를 지원하는 모든 협업체계의 ‘인식의 변화’다. 인식의 변화라는 것은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법과 과정과 목표에 대한 자유로운 인식의 지평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프로그램에 대한 생각 그 자체가 어떤 고정의 틀이나 선입견에 얽매여 있지 않은 것을 일컫는 것이다. 그런데 제작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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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3대 과제 1. 흙, 건강, 디자인 지난 주 오스트랄리아 시드니에 다녀왔다. 세계 디자이너들의(ICSID, ICOGRADA, IFI 3단체) 총회가 열리는데, 나 보고 주제 강연을 하나 해 달라는 것이었다. 올 여름에 IFI(International Federation of Interior Architects/Designers) 워크숍이 서울에서 열렸다. 내가 디자인에 대해서 뭘 알까마는 우연한 기회에 주제강연을 간곡히 부탁하길래, ‘흙, 건강, 디자인(Soil, Health, Design)’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국제회의가 되어 놓고 보니, 영어를 제대로 할 줄 알면서도 좀 토속적인 냄새가 나는 사람을 고르다 보니까 나같은 사람이 적격이라는 생각이 드는지, 하여튼 요즈음은 그런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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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문화의 한 전기를 위하여 1. 내 생각을 글로 쓴다는 것 요즈음 내 마음은 백담의 푸른 물처럼 맑다. 세상 일을 다 놓아버려 집착하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환자도 보지 않고, 대학강단에 서지도 않고, 외유(外遊)도 삼가고 오로지 집안구석에 쑤셔박혀 사랑하는 책들을 벗삼아 이리뒹굴 저리 뒹굴, 인간의 생각의 여로(旅路)를 탐색하는 재미로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 수 있는 삶은 물론 나 자신의 어려운 노력으로 얻은 것이기는 하지만, 하여튼 고맙기 이를 데 없고, 또 송구스러운 느낌도 든다. 이렇게 한가로운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끊임없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것과,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내 자신의 새로운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이다. 그런데 글로 옮긴다 하..
『대학ㆍ학기 한글역주』의 정리를 마치며 1. 어렵지만 재밌는 책 쉽게 도전할 수는 없는 책, 그런데 늘 읽고 싶은 책 읽고 기록하는 방식의 변화 2. 주희가 사대부 통치국가를 꿈꾸며 변형시킨 『대학』 주희의 문화변혁 운동 대학은 통일제국을 눈앞에 눈 시점에 쓰여진 책 3. 사대부를 위한 책과 통치자를 위한 책 사대부들을 위한 책, 『大學章句』 통치자들을 위한 책, 『禮記大學』 4. 주희가 왜곡한 『대학』을 바로잡다 주희가 해석한 삼강령 원본 대학에 담긴 삼강령의 의미 대학을 마친다는 것, 새롭게 볼 수 있다는 것 인용 목차
4. 주희가 왜곡한 『대학』을 바로잡다 말을 전해줄 대상이 명확해지고 나면 지금껏 고수해왔던 해석에도 변화가 생긴다. 그러니 우리가 알게 모르게 정설로 받아들였던 주희의 해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 대학의 큰 줄기다. 하지만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내용이 된다. 주희가 해석한 삼강령 주희는 ‘명명덕明明德ㆍ신민新民ㆍ지어지선止於至善’이란 대학의 삼강령을 제시했다. 그는 ‘친민親民’이라 쓰여 있는 원문의 내용을 정이천의 주장을 수용하여 ‘親⇒新’으로 바꾸자고 한 것이다(程子曰親當作新). 우리도 1900년대 초반엔 ‘브나로드 운동’과 같은 농촌계몽운동이 있었듯이 ‘明明德’을 통해 선한 본성을 획득한 사대부들이 아직도 구습에 쪄든 백성들에게 가서 계몽해줘야 한다는 의식을 담고 있었다(新..
3. 사대부를 위한 책과 통치자를 위한 책 도올 선생은 『예기』 속의 「대학」이 전국시대 말기에 쓰인 책이라고 여러 고전을 인용하며 밝혔다. 그런데 이렇게 집필시기를 상정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며, 『대학』이란 책의 내용이 그로 인해 어떻게 달라진다는 것일까? ▲ 책들에 쌓여 살 수 있다는 축복이다. 공부의 맛, 아는 재미. 사대부들을 위한 책, 『大學章句』 시기를 상정할 수 있다는 건, 저자를 상정할 수 있다는 건 그 책에 무슨 내용이 담기려 했는지 알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당연하지만 어느 책이든 그 시대가 지닌 문제의식이나 사상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건 지금의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기 때문에 ‘돈이 최고’라는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과 매한가지다. 그리고 이런 생각..
2. 주희가 사대부 통치국가를 꿈꾸며 변형시킨 『대학』 도올 선생은 주희가 편집한 『대학집주』는 문제가 많다며, 원래 『예기』 속에 들어있던 「대학」의 원래의 모습을 찾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래서 이 책은 『예기』 속에 들어있는 대학판본을 기준으로 번역을 하고 있다. 그리고 왜 그래야 하는지 앞에서 쭉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 EBS에서 중용 강의를 하고 있는 도올 선생님. 주희의 문화변혁 운동 그렇다면 주희가 편집하여 자기의 사상체계에 따라 수정을 가한 『대학집주』엔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그걸 알기 위해선 주희가 왜 四子書라는 걸 만들었으며, 그 속에 자신의 어떤 생각을 투영하려 했느냐 하는 것을 중요하게 봐야 한다. 四子書 주요 저자 서명 孔子 論語 曾子 大學 ..
1. 어렵지만 재밌는 책 최근에 김용옥 선생이 2009년에 쓴 『대학ㆍ학기한글역주』를 읽었다. 이 책을 읽은 건 지금까지 4번 정도 되는 것 같은데 그때마다 느껴지는 게 매번 달라 읽을 때마다 신선한 충격을 줬었고 이번에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 보고는 싶어서 펴볼 때가 많지만 완독을 하는 건 쉽지가 않다. 쉽게 도전할 수는 없는 책, 그런데 늘 읽고 싶은 책 그런데 지금까지 읽은 방식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서 읽었다. 그동안은 책에 나온 내용들을 받아들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너무도 방대한 내용들이 종횡무진으로 쓰여 있고 先秦古經을 아우르는 방대한 책들이 인용되어 있다. 그러니 그 내용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찰 수밖에 없었으며 그러다 보니 ‘주희가 편집한 『大學集註』를 비판하는 건 알겠는데 어느..
목차 1. 겨울방학에 받은 첫 번째 과제, 날 멸망시킬 태풍 나에게 던진 겨울방학 숙제 미완의 숙제, 그리고 새로운 숙제 동섭쌤의 강의가 던진 숙제 2. 겨울방학에 받은 두 번째 과제, 우물 안 개구리 공교육 교사들이 던진 숙제 2016년은 지적폐활량을 키우는 해 3. 개학여행 그리고 자나 깨나 동파조심 1월 마지막 주에 개학과 동시에 여행을 떠나는 이유? 올겨울 최악의 한파가 찾아온 날 동파되다 4. 한파가 찾아온 날 떠나는 스키여행 올겨울 최악의 한파가 찾아온 날 여행을 떠나다 백양리역에서 가방을 놓고 내린 사연 깔끔한 숙소, 하지만 비싼 음식 가격 5. 장갑사건과 스키복장에 관해 장갑이 없으시다구요? 우리에겐 양말이 있잖아요~ 스키복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실력에 따른 복장이 있을 뿐 6. 도전엔..
17. 흔들리되 방향성이 있는 사람으로 이제부턴 출발하며 썼던 ‘뜨거운 물이 졸졸 흐를 수 있도록 틀어놓고 나왔다. 이 작은 행동이 큰 사건을 빚어냈으니’가 무슨 사건인지 밝히도록 하겠다. 날이 어제 오후부터 대폭 풀렸기에 포근한 기운을 느끼며 집으로 간다. ‘과연 온수는 나올까?’하는 기대를 하며 빠른 속도로 걸어서 집에 간 것이다. ▲ 2박 3일간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는 이제 각자의 공간으로 간다. 겨울엔 자나 깨나 수도의 물조심 그런데 현관문을 여는 순간 이상한 냄새가 났고 앞엔 수증기가 자욱했다. 순간 평소의 집과는 너무도 다른 환경에 화들짝 놀랐고, 무슨 일인가 싶어 상황판단을 하려 했다. 그랬더니 해동이 되면서 온수가 나오기 시작했고 온수가 나오며 바깥과의 온도차이로 인해 수증기가 발생하..
16. 여행이 끝나갈 땐 늘 아쉽다 여행의 마지막 날은 언제나 아쉽다. 어제는 스키를 타느라 힘들어서 재밌게 놀지 못했으니, 오늘만큼은 마지막 저녁을 불살라도 된다. 준영이는 야간 스키를 타고 싶다고 말했기에, 승태쌤은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줬다. 야간 스키를 타던지, 노래방을 가던지 하는 것으로 말이다. ▲ 노래를 열창 중인 현세와 지훈이. 노래를 사랑하는 아이들이니 4시간이 금방 지나갔을 것이다. 둘째 날 저녁의 아쉬움 그러자 아이들은 한참 생각하는 듯하더니, 준영이와 기태는 야간 스키를 타는 것으로, 그 외 나머지는 노래방에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내심 민석이도 야간 스키를 탈 생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정훈이가 스키를 탈 생각이 없자 마음을 접은 듯했다. 스키팀은 12시까지 타고 돌아왔고, 노래팀은..
15. 그래 우리 한 걸음씩만 나가보자 현세의 “저는 앞으로 살면서 몸 쓰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어요”라는 발언은 어찌 보면 ‘못하는 것은 하지 않겠다’는 정도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나 또한 청소년 시절엔 몸치라고 생각해서 웬만하면 운동을 하지 않으려 했다. ‘운동엔 잼병’이라 나 자신을 규정해 놓으니, 무얼 하든 빠지기 쉬웠고 그에 따라 별로 고민할 이유도 없었다. ▲ 저녁은 제육덮밥이었다. 보드와 씨름을 한 바탕 하고 먹는 것이라, 완전 꿀맛이더라. 부족하기 때문에 안 하면, 영영 못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나 자신을 틀지어 놓으니, 그 한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안주하게 되더라. 어찌 보면 사람은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한계를 넘어서면 더 높은 시좌를 얻게 되기도 하는데 그런 걸 모두 거부했..
14. 현세의 도전 이런 상황들을 보면서 민석이에겐 책임감과 함께 인내심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오전 회의시간에 보인 반응은 오히려 ‘이기적이더구만’이라 오해할 만한 구석도 있었다. ▲ 오전 회의 시간의 반응은 어찌 보면 그 자리에 멈추지 말길 바라는 마음이기도 했다. 봉사활동에 대한 반응으로 민석이를 보다 2016학년도 단재학교의 일정을 공유하며 매달 두 번씩 봉사활동이 있다고 이야기하자, 민석이가 대번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너무 자주 한다는 불만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경우 민석이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처럼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위의 예에서처럼 민석이가 그렇게 막무가내로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상황에 따라 자신이 책임지기로 했으면 그..
13. 민석이의 도전 보드와 한바탕 씨름을 벌이고 있다. 조금이라도 빨라질라치면 몸이 먼저 긴장하여 알아서 넘어질 준비를 한다. 아무 준비가 없이 넘어지는 것보다 넘어질 것 같아서 미리 준비한 후 넘어지는 게 충격이 덜하기 때문이다. 특히 토엣지는 뒤돌아 있는 상태이기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절로 겁이 난다. 그땐 오히려 넘어질 것을 대비하여 몸이 한껏 긴장되다보니, 맘대로 움직여지질 않는다. 때론 과감히 몸을 움직여 기술을 쓸 수 있어야 ‘아 이런 식으로 하니깐 훨씬 쉽다’고 깨달을 수 있을 텐데, 미리 넘어질 준비를 하고 있으니 그럴 기회가 없다. 나는 지금 용기와 한바탕 씨름을 벌이고 있다. 나의 씨름과 별개로 초보코스에서는 두 명의 사내가 각자의 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분명히 둘은 함께 스키를 ..
12. 두 번째 보드 도전기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 길에 강습을 받으러 온 학생들을 본다. 먼저 강사가 시범을 보이면 그것에 따라 아이들은 하나씩 연습을 하며 내려가는 것이다. 강사는 아주 느린 속도로 양팔을 벌려 경사면을 따라 내려가다가, 서서히 팔을 90도 가량 돌리며 보드의 방향을 전환하며 내려온다. ▲ 보드를 배우러 앉아 있는 사람들. 배우려는 마음이 예쁘다. 바보는 빠름을 추구하고, 실력자는 완급조절을 추구한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초급코스라 해도 경사가 꽤 되었기에 천천히 내려가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강사는 꼭 슬로우비디오를 찍듯 아주 느린 속도로 자연스럽게 턴을 했으니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아주 느린 속도’라는 거였다. 어떻게 저 경사에서 저런 속도를 낼 수..
11. 두 번째로 보드를 타는 이의 각오 2시간이 넘도록 열띠게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허기가 몰려온다. 점심은 떡만두라면이다. 물론 어제 저녁이었던 카레와, 아침이었던 볶음밥이 남아 있으니 배부르지 않는 사람은 그걸 먹어도 된다. 밥을 먹는 동안 눈은 거의 그쳤다. 스키장에서 눈을 본다는 건 또 다른 흥취를 불러 일으켰다. 참 즐겁고도 행복한 시간들이다. ▲ 떡만두라면을 먹는 아이들. 두 번째 하면 어찌 되었든 첫 번째보다는 익숙해진다 이제 본격적으로 스키를 타러 가면 된다. 어제 아주 기초적인 부분을 익히고 나니, 본격적으로 어떻게 타야 하는지 궁금해지더라. 그래서 기태와 함께 보드 타는 동영상을 찾아봤다. 거기엔 이미 많은 영상들이 있더라.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좀 보고 올 것을’하는 후회도 들..
10. 치열한 토론의 순간, 우린 이 순간을 살아내고 있다 그런데 결과는 어차피 ‘실패’이기에 보통 ‘역시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맡기면 그건 실패할 수밖에 없어. 그러니 더욱 더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워 실패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해’라고 결론 내리기 십상이다. ▲ 2월 3일에 열심히 회의를 하고 잠시 쉬는 모습. 우리가 원하는 학교를 만들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자유를 누려봐야 누릴 줄 안다 실패의 경험보다 계속된 성공의 경험을 통해 아이가 자신감을 얻고 더 나은 조건에서 자신의 꿈을 찾도록 하자는 논의가 바로 이런 생각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처럼 ‘돼지엄마’가 극성을 부리고, ‘엄마=학습 매니저’가 각광 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아이를 부모의 욕망을 대리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
9. 4년 만에 다시 시작된 교사 없는 학교 오전엔 2016학년도 학사일정, 2월 한 달 동안 진행될 ‘교사 없는 학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오후엔 스키를 타러 간다. 이런 상황이니 한껏 여유로울 수밖에 없다. 8시에 일어나기로 했기에 7시 30분에 일어나 씻고 준비를 했다. 기태가 덥다며 창문을 열어놓고 자서, 찬바람이 그대로 얼굴을 닿아 설잠을 자야 했다. 아침밥은 볶음밥과 미역국이다. 아이들이 8시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초이쌤은 일찍 일어나셔서 준비를 해줬다. 아침을 먹고 아이들이 씻을 동안 잠시 쉰 다음에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 아침밥을 먹고 설거지 하는 현세. 2016년 학사일정, 예술과목에서의 선택 올해 변화된 부분은 크게 세 가지다. 다양한 예술 활동을 ..
8. 처음 보드를 타며 速成의 문제점을 간파하다 보드를 슈즈에 연결하니 몸은 더욱 더 굳어져 간다. 두 발이 족쇄에 묶여 자유라도 박탈당한 마냥 힘겹게만 느껴지니 말이다. ▲ 보면 어렵게 생겼는데, 두 개의 끈만 꽉 조이면 된다. 생각보다 쉽고 편하게 되어 있다. 보드에서 일어서기 부츠를 보드에 연결할 땐 두 끈을 바짝 조이면 된다. 앵글버클과 토우버클을 당기면 꽉 조여지고, 그 안의 작은 버튼을 누르면 풀리는 형식이다. 물론 이건 빌린 부츠이기에 간혹 고장 난 것들도 있어 쉽게 풀어지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번 보드에 연결했다 풀었다를 반복해보니, 어떤 구조로 작동하는지 알겠더라. 역시 모든 건 시행착오를 겪으며 몸으로 익혀야 한다. 이제 보드도 연결이 되었겠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기만 하면 ..
7. 몸이란 타자와 소통하기 이제 본격적으로 보드 타기에 도전해야 한다. 스키를 타는 아이들은 초급코스로 갔고 보드를 타는 아이들(기태, 현세, 나)은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해야 했기에 연습코스로 왔다. 아주 완만한 언덕을 보드를 들고 올라간다. 보드슈즈를 보드에 묶고 푸는 방법도, 보드에서 일어서는 방법도 하나도 모르는 생초보 둘을 이끌고 기태가 앞장서서 간다. ▲ 식당에서 바라보이는 스키장의 모습. 저긴 급경사여서 그런지 탈 수 있는 곳은 아니더라. 육체는 타자이기에 지배하려 하기보다 이해하려 해야 한다 새로운 것을 배울 때마다 “몸이야말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자연물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연물을 대할 때 지성이 비로소 발동되는 것이죠”라는 우치다쌤의 말이 떠오른다. 지금까진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
6. 도전엔 늘 불안이 따른다 5년 전엔 모두 스키를 타는 분위기였기에 당연히 스키를 탔다. 그리고 스키를 타본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보드는 좀 더 실력이 쌓여야 탈 수 있다고 한다. 스키는 두 발이 자유롭기 때문에 오히려 컨트롤하기 쉽지만, 보드는 두 발을 동시에 붙여야 하기 때문에 한 번 넘어지면 일어서기도 힘들고 이동도 힘들다는 것이다. 겨우 스키장에 두 번 와봤기 때문에 보드를 탄다는 건 언감생심이라 생각했고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지 모르는 꼴’이라고만 생각해서 이때도 스키를 타려 했다. 두 번째 스키장 방문에 보드를 타게 된 사연 하지만 어떤 결정을 하기 전에 여러 사람에게 똑같은 얘기를 들으면 갈등하게 마련이다. 한 사람에게 듣는 거야 ‘뭐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나 보다’ 정도로 생각..
5. 장갑사건과 스키복장에 관해 여는 글에서 밝혔다시피 겨울방학 동안에 두 가지 숙제를 한꺼번에 받으며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개학을 했고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온 것이다. 아이들에게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 이 날엔 처음으로 보드를 타기에 두렵기도 기대되기도 하는 등 더 혼란스럽기만 했다. ▲ 숙소에서 잠시 쉬며 티비를 보는 아이들. 장갑이 없으시다구요? 우리에겐 양말이 있잖아요~ 점심을 먹고 다시 숙소에 올라와 스키 탈 준비를 했다. 스키복을 가져온 아이들이 있기에 스키복을 입고 모이기로 한 것이다. 아무래도 이런 상황이 생소하다 보니,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아 시간이 많이 걸렸다. 민석이는 스키복을 챙겨서 입기 시작했고, 나머지 아이들은 빌릴 ..
4. 한파가 찾아온 날 떠나는 스키여행 9시 30분에 왕십리역에서 모이기로 했다. 지민이는 같이 가자고 카톡을 보내왔지만, 정훈이는 이번엔 혼자 가고 싶은지 아무런 반응도 없더라. ▲ 꽁꽁 얼어붙은 북한강의 모습. 이런 모습 처음이야. 올겨울 최악의 한파가 찾아온 날 여행을 떠나다 9시 15분쯤 왕십리역에 도착했지만 모이는 장소가 ‘1번 출구 지하’로 명시되어 있기에 중앙선 환승통로로 가지 못하고 1번 출구 앞에서 서성 거려야 했다. 혹시나 빨리 와서 개찰구를 빠져나가 기다리는 경우도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민이는 “왜 20분이나 일찍 도착해서 이렇게 기다려야 해요?”라며 불멘소리를 하지만, 서로 동선이 엉켜서 시간이 지체되는 것보단 나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늦지 않고 제 시간에 ..
3. 개학여행 그리고 자나 깨나 동파조심 올해엔 특별하게 개학과 동시에 여행을 가게 되었다. 원래는 단재학교도 제도권 학교와 같이 3월에 개학했지만, 한 달 정도 워밍업을 하자는 의미로 2013년부터는 2월에 개학하고 있다. ▲ 이번 여행의 모든 계획은 승태쌤이 짰고, 초이쌤이 식단을 짰다. 1월 마지막 주에 개학과 동시에 여행을 떠나는 이유? 그런데 올핸 2월도 아니고 1월 마지막 주에 개학하는 것이니, ‘그러다 아예 방학 자체가 없어지는 거 아니야?’라고 의아해할 만도 하다. 하지만 개학이 앞당겨지게 된 데엔 특별한 계기가 있다기보다, 설날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올해의 경우 설이 2월 둘째 주에 있기에 2월에 개학하여 조금 학교생활이 적응될 만하면, 다시 쉬게 되어 어중간한 느낌이 있기 때문..
2. 겨울방학에 받은 두 번째 과제, 우물 안 개구리 한 때는 공교육 교사를 꿈꾸다가 그게 좌절되자, 출판사 편집자가 되기 위해 준비했었다. 그러다 운 좋게 대안학교인 단재학교에 교사로 오게 되면서 다시 교육자의 꿈을 꿀 수 있게 된 것이다. ▲ 학교에 들어와서 있으니 여러 교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공교육 교사들이 던진 숙제 ‘군자는 그 자리에 처하여 그 자리에 합당한 행동에 최선을 다할 뿐, 그 자리를 벗어난 환상적 그 무엇에 욕심내지 않는다(君子 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 『중용』 14장’라는 인용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떤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자신의 생각도 달라지고 고정된다. 지금은 교사이기에 교육에 대해, 배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교사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게 자..
1. 겨울방학에 받은 첫 번째 과제, 날 멸망시킬 태풍 2016년 1월 25일은 단재학교의 겨울방학이 끝나고 2016학년도 1학기가 시작되던 날이다. 한 달여의 아쉬운 겨울방학은 그렇게 순식간에 지나갔다. ▲ 올겨울은 기록적인 한파가 찾아왔고, 남부지방엔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그 기간동안 난 뭘 했지? 나에게 던진 겨울방학 숙제 방학이 시작 될 때만 해도, 이걸 해볼까, 저걸 해볼까 생각은 많았지만 막상 시작되면 별 것 없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어렸을 때 방학계획표를 짤 때의 모습도 딱 이랬다. 계획표를 짠다고 거의 하루를 다 보내곤 했었는데, 야심차게 24시간을 시간대별로 나누어 배치했다. 그 중 단연 ‘공부’에 제일 많은 시간을 할당했고 자는 시간은 11시, 일어나는 시간은 6시로 정할 정도로 ‘..
연수&강의 후기 목차배움을 따라 걷다 연수 2024년신규교사 연수(사진)교사 승진제도신규 직무강화 계획신규 직무강화(사진)교내 연수계획디지털 역량통합학급주역 상담소한글 필수 키트나무학교 2019년수박 먹고 대학 간다 2017년강상중 강의수학하는 신체 2016년트위스트 교육학트위스트 교육학(사진)아마추어 사회학아마추어 사회학(사진)아빠학교 특강아빠학교(사진)동화책 특강이오덕 삶과 교육사상 강의 ㄱ00수레 설명회교컴 겨울수련회과학사 이야기(박철민)국립생태원 북콘서트교사 신뢰 서클 ㄴ내일을 알 수 없는 역경의 시대(강상중)남양주종합촬영소 체험기나도 영화감독 ㄷ동아시아의 평화와 교육(우치다 타츠루)대안교육과 자식교육(박준규)독립출판 워크숍(김진곤) ㅁ민주와 교육(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 ㅂ부모..
44. ⑤강: 조랑말이 되어 뚜벅뚜벅 가다 그래도 운 좋게 5강의 강의 중 4강까지는 어찌 어찌 정리할 수 있었다. 이건 운이 좋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초반엔 열정만으로 가능했으나, 중반부턴 동섭쌤의 응원과 준규쌤의 지지, 쓰다가 도무지 막혀 아무 것도 쓸 수가 없을 땐 황경민 시인의 아포리즘이 역동적인 힘을 주어 쓸 수 있었다. 초반만 해도 나의 힘으로 충분히 써나갈 수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마음은 금세 바닥이 났고, 갈피를 못 잡아 허둥지둥될 때 이끌어주고 당겨주고 안아주는 사람들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 황경민 시인의 아포리즘. 생각이 막힐 때, 글이 막힐 때 샘솟게 만드는 힘이 있다. 지금까지의 후기는 우리 모두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은 ‘천리마는 환상’..
6. 공생의 필살기와 똥 누기의 공통점 ‘동아시아 평화와 교육’이라는 제목으로 전주에서 한 강연은 뭔가 거대한 얘기의 연속이라 오히려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쉬웠다. 나와 멀리 떨어진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냥 ‘그런 일이 있었구나’라고 생각하니 거부감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공생의 필살기’라는 제목의 제주 강연은 나와 관련된 이야기며, 어떤 고정관념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쉽게 이해되지도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 두 강연은 한 사람에게 나왔지만, 나에겐 다른 강연처럼 들렸다. '공생의 필살기' 강연은 내면을 뒤흔드는 이야기~ 똥 누기와 교회 다니기의 차이점 이 두 강연을 들으며 사람은 어떤 거대한 것이나 외적인 것에 대한 얘기는 오히려 쉽게 받아들이지만, 나와 어떤 식으로 관련된 것..
31. 책을 떠나 세상을 살고, 사람을 만나다 탈디쿠르간에서의 정식적인 첫 날이다. 어젠 공휴일이고 야외 활동을 한 것이니, 워밍업을 한 셈이다. 워밍업치고 좀 빡센 워밍업이었지만, 그 때문에 대통령학교 학생들과 친해졌고 단재친구들의 색다른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오히려 빡센 일정이었기에, 그런 속내를 볼 수 있었던 것이리라. ▲ 어제의 광활한 대지를 걸었던 체험은 정말 많은 걸 느끼게 해줬다. 백색의 앎이 아닌 잡색의 삶으로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나는 야외활동을 좋아한다. 아무리 책상에 앉아서 세상을 파헤친 글을 읽고, 이상을 그리며 삶을 비판할지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피상적인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말과 행동이 따로 놀 수밖에 없다. 아아, 골방에 갇혀 천하를 꿈꾼들 무슨 소용 있으랴. 현실..
18.03.01.(목) 7. 아디오스 단재학교 2011년 10월부터 2018년 1월까지 6년 3개월 동안 일했던, 나와는 떼려야 뗄 수 없을 것 같았고, ‘건빵=단재학교 교사’란 등식이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단재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 6년간 나를 키워준 단재학교여 안녕~ 꿈만 좇던 이에게 찾아온 느닷없는 행운 난 꿈을 좇아 살아왔다. 물론 교사가 되려던 꿈은 매우 현실적이었지만, 한문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은 이상을 좇은 결과였다. 한문을 공부하며 공부하는 재미를 알았고, 좀 더 깊이 있게 그 시대를 탐닉하며 시대를 보는 재미를 느꼈으니 말이다. 어느 시기에 써진 내용이든 그건 결코 ‘그 당시의 케케묵은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 당시의 시대적 맥락을 담고 있지만, 지금의 내가 해석하는 순간부턴..
가슴 뛰게 하는 순간들이 있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때의 긴장과 설렘이, 날 가로막던 금기의 벽을 넘어설 때의 걱정과 불안이, 생판 모르던 사람들과 만날 때의 두근거림과 어색함이 가슴을 뛰게 한다. 그럴 땐 마치 ‘쇼생크 탈출’의 앤디가 비를 흠뻑 맞아가며 두 팔을 번쩍 들고 환희를 온 몸으로 표현하듯 온갖 감정들을 맘껏 표현하고 싶어지며, ‘김씨표류기’의 김씨가 직접 밀을 재배하여 짜장을 만든 후 한 입 베어 물며 환희를 맛보듯 작은 행복이라도 흠뻑 맛들이고 싶어진다. ▲ 그 어떤 장면보다 뭉클한 두 장면. 가슴 뛴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시간이 흐를수록 마비되어 가다 그 얘기는 곧 너무도 익숙하여 어떤 고민도 안겨주지 않는 사람들만 만나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척척 진행되는 일만 반복할 때, 더..
목차 1. 공부를 벗어나 공부를 하게 되다 배우면 배울수록, 알면 알수록 내 생각에 고립되다 깨져야만, 무너져야만, 앎의 무가치를 알아야만 생각이 확장된다 기독교가 나에게 반공부의 깨달음을 주다 2. 도올과 건빵 한문이 재밌었어요 꼭 꼭 숨기보다 당당히 외치라 3. 인디스페이스와의 추억, 그리고 ‘나의 살던 고향은’ 『귀향』을 보러 인디스페이스에 갔으나, 인디스페이스는 없었다 인디스페이스를 다시 찾아 왔수다 『나의 살던 고향은』 첫 장면이 핵심이다 4. 고구려를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다 주몽은 흘승골성에 도읍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에 자막이 거의 없는 이유? 5. 상상력으로 역사를 대하라 유적지가 뭣이 중헌디 상상력으로 유적지를 여행하라 길은 사람을 통해, 역사는 상상을 통해 태어난..
12. ‘나의 살던 고향은’ 질의응답Ⅱ 북한 얘기하기 전에 남한부터 바뀌어야 한다 Q 민족의 앞날에 가장 큰 숙제는 ‘남과 북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가?’ 인데요. 제가 학교 다닐 때 배우기로는 삼부자가 주민들에게 강압적으로 통치를 해서 주민들에게 끽소리 못하고 복종하게 만들었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듣기로는 북한 체제도 그 나름대로 존재의 이유가 충분히 있기 때문에, 유지가 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이 구조가 어느 때까지 유지가 될 건지, 그리고 통일이 언제쯤 가능할지 선생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A 그런 것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시지 말고, 남한 정권이 바뀌어야 돼요. 북한 얘기할 필요가 없어요. 남한이 북한보다 더 개판이라고. 거긴 최순실이 장난을 하진 않아요. 우리가 북한 ..
11. ‘나의 살던 고향은’ 질의응답Ⅰ 우리는 역사를 잘못 알고 있다 Q 영화를 보니 그간에 상상으로만 알게 있던 것들이 구체화, 실체화되어 좋았습니다. 이 기회에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역사적 실체’를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조선에 대해서도 지금과 같은 열정으로 한 번 전체적으로 조명해주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A 김부식이가 『삼국사기三國史記』를 썼다는 것은 그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신라ㆍ백제ㆍ고구려의 건국을 시조설화를 빌려 설명하고 있는데, 이런 엉터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 전에 아무 것도 없던 허허벌판에, 문화도 없던 곳에 나라가 어찌 갑자기 건국이 됩니까? 삼국의 시작 자체를 순 엉터리로 기술한 것이죠. 지금의 우리의 감각..
10. 고구려는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며 새 패러다임을 만들다 그래도 풀리지 않던 건 고구려는 왜 중원을 향해 나아가지 않았냐는 점이다. 이 문제가 풀리질 않으니, 고구려가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수도를 옮긴 것이 자꾸 후퇴처럼 보인다. ▲ 미천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파헤쳐져 누가 보면 그냥 돌이 난자하게 엉클어진 곳인 줄 알겠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고구려 패러다임을 완성하다 이에 대해 도올 선생은 고구려가 중원중심주의에서 벗어나게 된 계기가 바로 15대 왕인 미천왕美川王 무덤의 도굴 사건이었다고 얘기해준다. 미천왕 때 고구려는 옆 나라인 모용선비와 치열하게 다툼을 벌인다. 두 나라의 영토가 확장되는 만큼 서로의 전쟁은 불가피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미천왕은 죽었고, 고국원왕이 왕위를 잇게 된다..
9. 지도를 뒤집어본다는 것의 의미 그런데 도올 선생이 제시한 지도를 뒤집어보라는 방법, 어디선가 본 듯한 방법이다. 그러고 보니 이미 2014년에 반영된 『미생』이란 드라마에서도 나왔던 장면이다. ▲ 지도를 똑바로 본다는 것은 계림에서 시작되어 한양으로 수렴되는 역사를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미생에 나온 지도를 뒤집어 본다는 것의 의미 12화에선 요르단 중고자동차 수출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실제로 이 사업은 자원2팀 과장이었던 박과장이 추진했던 사업으로 리베이트를 받은 게 걸려 사업은 흐지부지 됐다. 이렇게 안 좋게 끝난 사업의 경우엔 회사의 불문율처럼 아무리 사업성이 있다 해도 치부라 생각하여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장그래는 그게 못내 아쉬운지 다시 시작하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고,..
8. 당연함을 전복시켜라 지금껏 우린 역사를 배워오면서 중원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중원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사회가 안정이 되고 문명국이 된다고 배워왔다. 그런 시각은 한반도를 한없이 변방국가로 인식하도록 만들었고, 임진왜란 이후엔 청나라에 의해 무너진 중화주의가 한반도로 왔다는 ‘소중화小中華’로까지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이런 시각으로 고구려를 보니 그렇게 광대한 영토를 점령하여 승승하다가 장수왕 때에 이르러 동북지역에 있던 수도를 평양으로 천도했다는 게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동아시아의 나라들이 원나라나 청나라처럼 중원을 차지한 경우엔 역사책에 기록되며 역사를 이어간데 반해, 그렇지 못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소멸되었기에, 고구려 수도를 중원이 아닌 한반도로 천도했다는 게 상식..
7. 신라 패러다임과 국정화 교과서 우리가 지금껏 알고 있던 삼국에 대한 상식은 김부식金富軾(1075~1151)이 쓴 『삼국사기』의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된 내용이다. 김부식은 그 당시 내려오던 『구삼국사』를 저본으로 삼아 새로운 삼국의 역사서를 편찬했다. 하지만 『구삼국사』라는 책이 현재는 전해지지 않기에 어떤 내용을 첨가했으며, 어떤 내용을 뺐는지는 알 수가 없다. ▲ 지금 남아 있는 삼국에 대한 가장 오랜 된 기록물이 [삼국사기]다. 그러다 보니 우린 이 기록에 갇힐 수밖에 없다. 역사서에 기록되기 이전에도 나라는 있었다 그런데 『삼국사기』엔 삼국 이전의 역사는 누락되어 있고, 삼국의 시조를 모두 난생卵生으로 처리했다. 난생이란 알에서 태어났다는 뜻으로 부계혈통 및 과거를 지워내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6. 신라 패러다임에서 고구려 패러다임으로 『나의 살던 고향은』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고구려 패러다임’에 알아야한다. 지금껏 우린 알게 모르게 자학사관이나 신라중심사관에 빠져 우리의 역사를 비하하기에 바빴다. 그래서 밖으론 늘 강대국의 침략에 꼼짝없이 당하는 나라로, 안으론 권력과 돈에 눈이 먼 권력자들의 아귀다툼에 시름하는 나라로 인식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역사수업을 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우리 역사는 늘 당하기만 하는 역사잖아요. 그래서 공부하기가 싫어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런 식의 자학사관이나 ‘신라 패러다임(신라중심사관)’으로 우리 역사의 무대는 한없이 좁아졌고 부정적인 시각만이 판을 쳤다. 이때에 도올 선생이 제시하는 방법이 바로 ‘고구려 패러다임으로 전환하자’는 ..
5. 상상력으로 역사를 대하라 또한 이 영화는 소제목을 간간히 넣어서 다음에 펼쳐질 내용을 상상하게 만든다. ‘삼배가 아니라 오배다’, ‘걸어가는데 그냥 눈물이 나온다’, ‘역사는 감이다’와 같은 소제목은 아무리 읽어도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감조차 잡을 수가 없다. ▲ 장군총엔 바람과 중력에 무너지지 말라고 각 면마다 거대한 세 개의 돌을 대어놨다. 이런 큰 돌을 운용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다는 얘기다. 유적지가 뭣이 중헌디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나면 그런 소제목만큼 그 장면 하나하나를 제대로 전달해주는 제목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 영화가 다 끝난 다음엔 소제목만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그 당시에 어떤 장면들을 봤는지 머릿속에서 저절로 떠올라서 내용을 곱씹기에 좋다. 이 영화에..
4. 고구려를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다 『나의 살던 고향은』의 상영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다. 도올 선생이 거닐었던 길을 따라 우리도 함께 거닐며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어느새 백두산 정상에서 “홍익인간!”이라 힘주어 외치는 도올선생의 결기 어린 목소리를 듣게 되며 스텝룰을 보게 된다. 그만큼 적당하고도 간명한, 그러면서도 여운이 남는 상영시간이라 할 수 있다. ▲ 사람들이 하나둘씩 차고 있다. 첫 개봉일이니만치 많은 사람들이 왔으면 좋겠다. 주몽은 흘승골성에 도읍할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는 각 유적지마다 도올 선생이 직접 발로 걸으며 그때 느꼈던 감회를 들려주고, 거기서 미처 말하지 못한 역사적인 사실은 연변대학 숙소에서 보충해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니 이 영화는 한 편의 ‘도올..
2. 도올과 건빵 그런 깨달음의 근저엔 도올 선생이 자리하고 있다. 이미 그 전에 티비를 통해 도올 선생의 강의를 어렴풋이 들은 기억만이 있을 뿐이다. 그땐 단순히 ‘강의할 때 소리를 지르는 사람’ 정도로 받아들였었지만, 막상 책을 읽어보면서 너무도 거대한 산이며, 깊이와 넓이를 헤아릴 수 없는 강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 예전에 몰랐을 때만 해도 도올 선생은 그저 소리만 지르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다. 한문이 재밌었어요 더욱이 나의 전공이 ‘한문 교육’이다보니, 도올 선생의 책들이 어렵긴 해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 과정을 통해 한문공부의 재미도 느끼게 됐으며,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관심 갖게 됐고, 공부의 의미도 알게 됐다. 우선 한문은 그저 어려서부터 해왔기에 해야만 하고, 막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