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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3. 변해가는 세태를 개탄하다 6-23.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모난 고(觚) 술잔이 모나지 않으면, 어찌 고라 할 수 있으리오! 어찌 고라 할 수 있으리오!” 6-23. 子曰: “觚不觚, 觚哉! 觚哉!” 고(觚)는 술잔의 이름이다. 나팔모양으로 생긴 술잔인데, 손잡이 쪽은 좁고 입술을 대는 테두리 쪽은 넓다. 손잡는 곳에 빙둘러 아름다운 문양이 조각 되어 있다. 고주는 마음의 설을 들어, ‘고(觚)는 예기(禮器)인데, 1승들이를 작(爵)이라 하고, 3승들이를 고(觚)라 한다’고 풀이해놓고 있다. 『의례』의 「특생궤식례(特牲饋食禮)」의 정현주에 의하면, 작(爵)이 1승이고, 고(觚)가 2승이며, 치(觶)가 3승이고, 각(角)이 4승, 산(散)이 5승이라고 되어있다. 그런데 이 승이라는 것이 우리 상식..
22. 공자의 이상국가론 6-22.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제나라가 한 번 변하면 노나라에 이를 것이요, 노나라가 제대로 한 번 변하기만 한다면 이상국가에 이를 텐데.” 6-22. 子曰: “齊一變, 至於魯; 魯一變, 至於道.” 주자의 집주가 본 장의 내용을 잘 말해주고 있기 때문에 나의 구구한 설명이 필요치 않다. 그러나 한마디 해두고 싶은 말이 있다. 노나라는 주공의 나라, 제나라는 강태공의 나라, 두 나라는 인접해 있었다. 그러나 제국(齊國)은 노국(魯國)에 비하면 엄청난 대국이었다. 물질적ㆍ문명적 향유의 수준에 있어서 제나라는 노나라와 비교도 안 되는 대국이었고 패도의 나라였다. 그러나 공자의 자부감을 한번 생각해보자! 아무리 대국이 군사적으로 ㆍ정치적으로ㆍ경제적으로 향유의 수준이 높다 하더라도 ..
21. 물을 좋아하는 인자와 산을 좋아하는 지자 6-21.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지자(知者)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仁者)는 산을 좋아한다. 지자는 동적이고 인자는 정적이다. 지자는 즐길 줄 알고 인자는 수(壽)할 줄 안다.” 6-21. 子曰: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 소라이(荻生徂徠)는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은 공자시대의 말이 아니고[非孔子時辭氣], 공자가 암송했던 고언(古言)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4구절 이 옛날의 법언(法言) 같은 것을 해설한 공자 자신의 주석이라는 것이다. 매우 그럴듯한 분석방식 같지만, 소라이의 이러한 분석방식 자체가 매우 상투적이며, 그가 고언(古言) 운운하는 그 고언이 도무지 무슨 근거가 있는 것인지 아무도 밝힐 수..
20. 인함과 지혜로움에 대해 6-20. 번지가 앎(知)에 관하여 여쭈었다. 공자께서 이에 말씀하시었다: “백성의 마땅한 바를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면, 안다고 말할 수 있다.” 6-20. 樊遲問知. 子曰: “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 번지가 또 인(仁)에 관하여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인한 사람은 항상 어려운 큰 일을 먼저 도모하고, 자신을 위하여 얻는 일은 뒤로 한다. 그리하면 가히 인하다 말할 수 있다.” 問仁. 曰: “仁者先難而後獲, 可謂仁矣.” 번지에 관해서는 「위정(爲政)」 5에서 충분히 해설하였다. 번지는 46세 연하의 말년 제자로서 수레몰이를 하며 공자의 측근에 있었던 제자다. 요즈음의 언어로 말하면 공자의 쇼파 노릇을 했던 당돌한 20대의 젊은이다. 분명 ..
19.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는 사람에게 말하라 6-19.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지력이 중등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곧바로 고등한 지식을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중등 이하의 사람들에게는 고등한 지식을 곧바로 가르치면 아니 된다.“ 6-19. 子曰: “中人以上, 可以語上也; 中人以下, 不可以語上也.” 소라이(荻生徂徠)는 송유들이 모든 사람이 다 성인이 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가설 때문에 이 장의 해석도 그르치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균일하게 깨우칠 수는 없는 것이며, 성인은 지력이 못 미치는 것을 인간에게 강요하지 않는다고 설파한다. 놀라운 우민(愚民)의 낭설이다. 자신의 기설(奇說)을 위해 공자의 말 그 자체를 왜곡하는 우(愚)을 펼쳐서는 아니 될 것이다. 여기 공자는 근원적으로 인간의 ..
18. 아는 자와 좋아하는 자와 즐기는 자 6-18.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배움의 길에 있어서 무엇을 안다고 하는 것은 그 무엇을 좋아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무엇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 무엇을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 6-18. 子曰: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많은 사람들이 이런 구절도 매우 상투적으로 해석하여 유교의 본질을 흐리게 만든다. 공자가 앎의 단계(객관적 지식의 단계), 좋아함의 단계(감정적 호오의 단계), 즐김의 단계(대상과 나가 일치되는 합일의 경지)를 설정해놓고 즐김을 예찬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유교를 빙자하는 자들이, 지식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즐김만 같지 못하니 …’하고 시건방진 훈수를 두는 것이다. 도대체 ‘즐긴다는 것[樂之]’이 무엇이냐? 대상..
17. 타고난 대로 살리 6-1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사람의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은 반듯하다. 그런데 그것을 구부리어 사는 삶이란 요행으로 면하는 삶일 뿐이다.” 6-17. 子曰: “人之生也直, 罔之生也幸而免.” 참으로 위대한 공자의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맹자의 성(性)의 주장 이 맹자로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요, 그 디프 스트럭쳐(deep structure)는 모두 공자에게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라는 사실이 입증되는 기온이라 할 것이다. 우선 이 장을 해석하는 고주의 입장과 신주의 입장이 매우 다르다. 우선 첫 번째 구절에 대한 마융馬融)의 주석을 한번 살펴보자!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스스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정직의 도(道)로써 일관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言人之所以生於世而自終者, 以其正直之..
16. 사(史)하기보다 야(野)하리라 6-1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질(質)이 문(文)을 이기면 야(野)하고, 문이 질을 이기면 사(史)하다. 문과 질이 골고루 배합된 연후에나 군자라 일컬을 수 있는 것이다.” 6-16. 子曰: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 너무도 유명한 문구이기에 별다른 해석을 요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말화 되어 있기에 풀어 번역하면 오히려 원의가 협애하게 축소될 뿐이다. ‘야(野)’는 가공되지 않은 투박함, 촌스러움, 생긴 그대로의 원초적 질박함이요, ‘사(史)’는 문명의 세련화를 거친 닳아빠짐, 반지르르함, 교양미를 지칭한다. 나 도올은 양자에 있어서 완벽한 빈빈(彬彬)을 기대할 수 없다면 항상 사(史)보다는 야(野)로 치우치는 것을 사랑한다. 야가 사보..
15. 이 길 6-15.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누구인들 밖을 나갈 때에 문을 거치지 않을 수 있으리오? 그런데 어찌하여 이[斯] 도(道)를 거치지 아니 하려느뇨!” 6-15. 子曰: “誰能出不由戶? 何莫由斯道也?” 고대 중국인들의 가옥구조를 보면, 내실에서 외당 사이에 동서로 가로지르는 벽이 있고, 그 벽에 문이 달려 있는데 그것을 호(戶)라고 한다. 그러니까 내실에서 외당으로 나아가려면 이 호를 거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일상생활의 예를 들어 사람이 살아가는데 사도(斯道)를 거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공자가 말한 것이다. 이것은 요시카와의 설명이지만, 나는 이러한 번잡한 지식을 전혀 공자의 말에 적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요시카와가 말하는 가옥구조가 보편적인 중국인의 구조일 리도 없고, ..
14. 말 잘하는 것과 아리따움을 칭송하는 세상을 미워하다 6-14.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축타의 말재주와 송조의 미모가 없으면 요즈음 세상에선 환난을 면키 어렵다.” 6-14. 子曰: “不有祝鮀之佞而有宋朝之美, 難乎免於今之世矣!” 공자가 어지럽고 더럽게 느껴지는 세상을 한탄한 이야기임에 틀림이 없지만, 그 해석에는 제설이 분분하다. 더러운 세상이 정말 아니꼬와서 두고 못 보겠다는 식의 분노가 서린 공자의 푸념이야말로 공자를 공자다웁게 만드는 위대한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공자는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이러한 메시지도 ‘성인의 말씀’으로서 거룩하게만 새기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그 발랄한 로기온의 생명력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할 것이다. 이미 서막에서 이야기했지만 송조는 송나라의 미..
13. 패주할 땐 후미에서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은 맹지반 6-13.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맹지반(孟之反)은 공을 자랑하지 않는구나! 노 나라의 군대가 퇴각할 때에 후미를 맡아 싸웠다. 노나라의 북성 문을 최후로 들어갈 때 말 궁둥이를 채찍질하면서 말했다. ‘내가 용감해서 후방을 맡은 것은 아니다. 말이 시원찮아 뒤처졌을 뿐이다.’” 6-13. 子曰: “孟之反不伐, 奔而殿. 將入門, 策其馬, 曰: ‘非敢後也, 馬不進也.’” 맹지반(孟之反, 멍 즈환, Meng Zhi-fan)은 공자 당대의 인물로서 노나라의 대부라고 한다. 이름이 측(側), 또는 자측(子側). 지반(之反)은 자(字)인데, 그냥 반(反)이라고도 쓴다. 맹자반(孟子反)이라고도 쓴다. 이 전투의 상황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애공(哀公)..
12. 정치엔 인재를 구하는 게 먼저다 6-12. 자유(子游)가 무성(武城)의 읍제(邑)가 되었다. 공자께서 자유를 만났을 때 물으시었다: “너는 사람을 얻었느냐?” 6-12. 子游爲武城宰. 子曰: “女得人焉爾乎?” 자유가 대답하였다: “담대멸명(澹臺滅明)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길을 다닐 적에 골목 지름길로 가는 법이 없습니다. 여태까지 공적인 일이 아니면 한 번도 제 방에 온 적이 없나이다.” 曰: “有澹臺滅明者, 行不由徑. 非公事, 未嘗至於偃之室也.” 공문(孔門)의 활약상의 다양한 면모에 관하여 풍요로운 정보를 제공하 는 위대한 장이라 할 것이다. 자유가 무성의 읍재가 된 것은 애공 12년(BC 483) 전후의 일이며 공자의 귀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때의 일이다. 그때 공자의 나이는 69세 ..
본서의 표기체계에 관하여 공자(孔子)는 ‘공쯔’로 표기되어야 마땅하다. 이것은 내가 1982년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부터 주장한 것이다. 13경이라는 고전은 어디까지나 중국고전이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에게서 객관화되어야 할 외래문명이다. 수메르문명의 『길가메시 서사시』의 인명을 ‘길가메시’라고 표기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것을 우리식의 독특한 발음으로 표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러한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내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중국어와 일본어에 관한 표기법을 만드는 것이었다. 1985년 1월에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나의 저술을 통하여 발표한 ‘최영애-김용옥 표기법(씨케이 시스템 C.K.System)’은 중국어ㆍ일본어 표기의 문제를 음운학의 성과 위에서 일관된 원칙을..
11. 자하야 너는 군자유가 되어라 6-11. 공자께서 자하(夏)에게 일러 말씀하시었다: “너는 군자유가 되거라. 소인유가 되어서는 아니 되나니!” 6-11. 子謂子夏曰: “女爲君子儒, 無爲小人儒.” 자하(子夏)에 관해서는 1-7에서 충분히 논의하였다. 군자유와 소인유의 공통분모는 유(儒)이다. 따라서 군자와 소인이 모두 같은 유이며 계급적ㆍ신분적 차별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유는 사(士)이며 배우는 자의 통칭이다. 군자와 소인은 같은 지식사회에서 분별되어질 뿐이다. 왜 하필 자하에게 공지는 이 말을 하였을까? ‘위자하왈(謂子夏曰)’이라는 것은 자하를 맞대놓고 얘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너[女]’라는 이인칭을 쓰고 있다. 자하는 문학으로 꼽힌다. 문학이란 요즈음의 문학(literature)이 아..
10. 하려는 의지도 없이 아예 선을 그어버리다 6-10. 염구가 말하였다: “저는 선생님의 도(道)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힘이 딸릴 뿐입니다.” 6-10. 冉求曰: “非不說子之道, 力不足也.”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참으로 힘이 딸리는 자는 중도라도 그만 둘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너는 스스로 한계를 긋고 있을 뿐이니라.” 子曰: “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劃” 인간의 나태에 관한 통렬한 비판이다. 앞서 말했듯이, 염구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였고, 실무형 관료였다. 이렇게 실무에 밝은 자들이 항상 삶의 지혜로 삼는 것은, 스스로의 가능성에 관하여,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여건에 관하여 한계를 긋고 살아가는 것이다. 현명하고 또 슬기롭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런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
9. 한 대나무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의 즐거움 6-9.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훌륭하도다! 안회는 한 소쿠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청수로 누추한 골목에서 산다.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디지 못하건만, 안회여! 그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는도다. 훌륭하도다! 안회는.” 6-9. 子曰: “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 한 인간에 대한 이 이상의 찬사는 없을 것이다. 제자에 대한 사랑이 너무도 감동적으로 듬뿍 실려있다. 이 장의 감상 포인트는 ‘그 근심[其憂]’과 ‘그 즐거움[其樂]’이다. ‘그(其)’라는 말에 강조가 놓여있다. 바로 그 근심, 그 누추함에서 그 즐거움을 발견할 줄 아는 지혜, 그 현명함[賢哉!]을 상찬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의 지혜문학에..
8. 백우에게 이런 병이 들 줄이야 6-8. 백우가 몹쓸 병에 걸렸다. 공자께서 병문안을 가시었다. 6-8. 伯牛有疾, 子問之. 방안으로 들어가시지는 않으시고 창으로 그 손만 잡으시고 말씀하시었다: “맥이 없구나! 명이 다 했구나! 이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이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自牖執其手, 曰: “亡之, 命矣夫! 斯人也而有斯疾也! 斯人也而有斯疾也!” 참으로 중후한 공자의 인품과 삶의 비운의 한 장면을 가슴 저미게 보여주는 훌륭한 장이다. 이런 파편은 거의 공자 생전 그대로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과도 같은 느낌이 든다. 여기 등장하는 염백우는 염구ㆍ염웅과 함께 노나라 염씨의 한 사람으로서 사과십철(四科十哲)에 덕행으로 손꼽힌 공문의 무게있는 인물이다. 성이 염(冉) 이름이 경(耕), 자..
7. 계씨의 신하되는 걸 거절한 민자건 6-7. 계씨가 민자건(閔子)을 비읍의 읍재(邑宰)로 삼으려 하였다. 6-7. 季氏使閔子騫爲費宰. 민자건은 심부름 온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를 위해 말 좀 잘 해다오. 또다시 나를 부르러 온다면 나는 반드시 문수(汶水)가에 있을 것이다.” 閔子騫曰: “善爲我辭焉. 如有復我者, 則吾必在汶上矣.” 여기 민자건(閔子騫, 민 쯔치엔, Min Zi-gian)이 처음 나오고 있다. 우선 「칠십이제자해(七十二弟子解)」를 보자. 민손은 노나라사람이다. 자가 자건이다. 덕행으로 이름이 드높았다. 공자는 그의 효성을 칭찬하였다. 閔損, 魯人, 字子騫. 以德行著名, 孔子稱其孝焉. 그리고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는 『논어』 기사를 편집한 것 외로는 다음과 같은 정보만 있다. 민..
6. 중유와 자공과 염구는 정치할 만한가 6-6. 계강자(季康子)가 여쭈었다: “중유(仲由: 자로)는 정치를 맡길 만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유는 과단성이 있으니 정치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으리오!” 6-6. 季康子問: “仲由可使從政也與?” 子曰: “由也果, 於從政乎何有?” 여쭈었다: “사(賜: 자공)는 정치를 맡길 만합니까?” 말씀하시었다. “사는 사리에 통달했으니 정치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으리오!” 曰: “賜也, 可使從政也與?” 曰: “賜也達, 於從政乎何有?” 여쭈었다: “구(求: 염유)는 정치를 맡길 만합니까?” 말씀하시었다: “구는 다재다능하니 정치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으리오?” 曰: “求也, 可使從政也與?” 曰: “求也藝, 於從政乎何有?” 여기 공자에게 질문을 하는 계강자는 ..
5. 3개월 간 인을 떠나지 않았던 안회 6-5.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안회는 말이다, 그 마음이 석 달 줄곧 인(仁)을 어기는 법이 없나니. 석 달이 지나도 날이면 날마다, 달이면 달마다 인(仁)한 채로 흘러갈 뿐이다.” 6-5. 子曰: “回也, 其心三月不違仁, 其餘則日月至焉而已矣.” 이 구절도 대강의 뜻은 알아차릴 수 있으나 주어가 명료하지 않아 해석의 여지가 너무도 많다. 1 고주는 ‘기여(其餘)’를 공문에서 안회 이외의 학생들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풀었다. 타 제자들은 잠시만 인에 이를 때가 있고 오로지 안회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言餘人暫有至仁時, 唯回移時而不變也]. 나는 이 설이 매우 졸렬하다고 생각한다. 공자가 안회와 여타의 학생을 그런 식으로 분별심을 ..
4. 중궁은 자질이 있기에 쓰일 것이다 6-4, 공자께서 중궁(仲弓)을 평하여 말씀하시었다: “보통 황소의 새끼라도 털이 붉어 아름답고 각진 뿔이 웅장하다면 사람들이 제물로 쓰지 않고 내버려 두어도, 산천의 하느님께서 어찌 그것을 내버려 두겠느냐?” 6-4. 子謂仲弓曰: “犂牛之子騂且角, 雖欲勿用, 山川其舍諸?” 남면할 만하다고 평한 중궁에 관하여서는 본 편 첫머리(6-1)에서 설진(說盡)하였다. 중궁은 염옹(冉雍)의 자(字)이다. 염웅은 앞서 말했지만 비천한 집 안의 소생이다. 따라서 ‘황소의 새끼[리우(犂牛)]’로 비유한 것은 그 천한 소생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공가(公家)에서는 제물로 쓰는 특별한 소를 길렀다. 그러나 그러한 소가 모자랄 때에는, 민가에서도 털에 붉은 기가 돌며 뿔이 아주 ..
3. 공서적과 원헌의 행동방식 차이 6-3A. 자화(子華: 공서화의 자字)가 제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였다. 염자(冉子)가 자화의 홀로 남을 어미를 위하여 곡식을 청하였다. 6-3A. 子華使於齊, 冉子爲其母請粟.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한 말이나 주려무나.” 子曰: “與之釜.” 더 많이 청하자, 말씀하시었다: “그럼 한 가마 정도 주렴.” 그런데 염자는 곡식 다섯 섬을 주고 말았다. 請益. 曰: “與之庾.” 冉子與之粟五秉. 공자께서 내심 불쾌히 여겨 말씀하시었다: “적(赤: 공서화의 이름)이 제나라로 가는데, 살찐 말수레를 타고 가볍고 호사한 가죽옷을 입고 가는구나. 나는 들었지. 군자는 곤궁한 사람을 도와주어도 부유한 사람을 보태주는 짓을 하지 않는다고.” 子曰: “赤之適齊也, 乘肥馬, 衣輕裘. 吾聞之..
2. 안연의 호학 6-2. 애공(哀公)이 물었다: “제자 중에서 누가 배우기를 좋아합니까?” 6-2. 哀公問: “弟子孰爲好學?” 공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안회顔回)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배우기를 좋아하고,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으며, 잘못은 두 번 다시 반복하는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명이 짧아 죽었습니다. 그가 지금은 이 세상에 없으니, 아직 배우기를 좋아한다 할 만한 자를 듣지 못하였습니다.” 孔子對曰: “有顔回者好學, 不遷怒, 不貳過.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未聞好學者也.” 우리 또래의 사람들만 해도, 좀 고전의 소양이 있는 집안에서 큰 사람이라면, 공자의 안회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 그리고 공자가 그리는 안회의 모습에 서 얻어지는 교훈은 항상 몸에 배이도록 들었던 『논어』의 ..
1. 중궁은 남면할 수 있겠구나 6-1.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옹(雍: 중궁의 이름)은 남면케 할 만하다.” 6-1. 子曰: “雍也可使南面.” 중궁(仲弓)이 자상백자(子桑伯子)에 관하여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의 간솔함은 괜찮다.” 仲弓問子桑伯子, 子曰: “可也簡.” 중궁이 말하였다: “자기는 공경함에 거(居)하면서 남에게 간솔하게 행동하고, 그렇게 백성들을 살핀다면 괜찮다고 할 만도 하겠지요? 그러나 자기도 간솔함에 거(居)하면서 남에게도 간솔하게 행동한다면, 그것은 지나치게 간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仲弓曰: “居敬而行簡, 以臨其民, 不亦可乎? 居簡而行簡, 無乃大簡乎?”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옹의 말이 옳다.” 子曰: “雍之言然.” 『논어』의 모든 장이 그러하듯이, 본 장의 의..
옹야 제육(雍也 第六) 편해(篇解) 이 편의 대체적 구성에 관하여 주희는 매우 재미있는 주석을 달아놓고 있다: ‘「옹야」편은 2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편의 제14장 이전은 그 대의가 「공야장(公冶長)」편과 같다[범이십팔장(凡二十八章). 편내제십사장이전(篇內第十四章以前), 대의여전편동(大意與前篇同)]’ 이것은 곧 「옹야」편의 28장이 앞의 14장과 뒤의 14장으로 그 성격이 대별되며, 앞 14장은 전편인 「공야장」과 그 대의가 연속성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주희는 「공야장」편의 성격을 ‘옛과 지금의 인물들의 현부 득실을 논함[논고금인물현부득실(論古今人物賢否得失)]’이라 규정했으므로, 이것은 「옹야」편의 전14장 또한 고금인물들의 현부 득실을 논하는 성격에서 그 대의가 벗어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되..
27. 호학(好學)해야만 한다 5-2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열 가호쯤 되는 조그만 마을에도 반드시 나와 같이 충직하고 신의 있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5-27. 子曰: “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논어』 전체 중에서 참으로 내가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명구 중의 명구로서, 나 도올이 항상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또 들려주는 대목이다. ‘십실지읍(十室之邑)’이란 열 가호 정도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작은 마을[邑]이다. 읍(邑)의 가장 작은 단위로서, 강조적인 표현이다. 그렇게 작은 마을에도 충직하고 신험있는 말을 하는 자들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충신(忠信)한 자들이란 좋은 사람들이요, 착한 사람들이다. 충(忠)과 신..
26. 자신의 허물을 알고 자책하는 사람 5-2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아~ 절망스럽구나! 자신의 허물을 보고서 내심 스스로 자책하는 사람을 나는 보지 못하였다.” 5-26. 子曰: “已矣乎! 吾未見能見其過而內自訟者也.” 여기 ‘이의호(已矣乎)’라는 표현은 「위령공」 12, ‘오미견호덕여호색자야(吾未見好德如好色者也)’라는 구문 앞에 한번 다시 나오고 있다. 이것은 주자가 주석 한 대로 종내 그러한 사람을 얻지 못하고 마는 것을 깊게 탄식하는 말이다[已矣乎者, 恐其終不得見而歎之也]. ‘아~ 정말 이젠 틀렸구나!’ 정도의 의미가 될 것이다. 현대 중국어의 표현으로는 ‘쑤안러(算了)’정도의 느낌이 될 것이다. ‘송(訟)’이란 원래 공자의 시대에도 재판의 뜻이 있었다. 그런데 이 장은 그러한 법제적 용어를..
25. 안연과 자로와 공자가 각자의 포부를 얘기하다 5-25. 안연과 계로가 공자를 모시고 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제각기 품고 있는 뜻을 한번 말해보지 않으련?” 5-25. 顔淵, 季路侍. 子曰: “盍各言爾志?” 자로가 말하였다: “원컨대, 수레와 말, 웃 도리와 값비싼 가벼운 가죽외투를 친구와 함께 쓰다가, 다 헤지더라도 유감이 없고자 하옵니다.” 子路曰: “願車馬, 衣輕裘, 與朋友共. 敝之而無憾.” 안연이 말하였다: “원컨대, 잘함을 자랑치 아니하고, 공로를 드러내지 아니하고자 하옵니다.” 顔淵曰: “願無伐善, 無施勞.” 자로가 말하였다: “이제는 선생님의 뜻을 듣고자 하옵니다.” 子路曰: “願聞子之志.”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늙은이로부터는 편안하게 느껴질 수 있으며 친구로부터는 믿음직..
24. 좌구명이 부끄럽다고 여긴 사람 5-24.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번지르르한 말, 꾸민 얼굴빛, 지나친 공손, 이것들을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겼는데, 나 또한 이를 부끄럽게 여기노라. 싫어하는 감정을 감추고 그 사람을 사귀는 것을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겼는데, 나 또한 이를 부끄럽게 여기노라.” 5-24. 子曰: “巧言, 令色, 足恭, 左丘明恥之, 丘亦恥之. 匿怨而友其人, 左丘明恥之, 丘亦恥之.” 14장에서 24장까지, 21장 한 장을 예외로 한다면, 모두 공자의 제자 이외의 인물에 대한 공자의 평어이다. 그 중에서 14장 ~ 20장의 일곱 장은 공자보다 앞선 동시대 열국의 대부에 대한 인물평이라는 의미맥락에서는 매우 동질적이다. 그런데 21장부터 24장까지는 각 장이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21..
23. 미생고는 자신에게 없는 것을 옆집에서 빌려서주다 5-23.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누가 미생고를 정직하다 이르는가? 어떤 사람이 미생고에게 초를 좀 얻으려 하자, 없으면 없다 말할 것이지 얼른 옆집에서 빌어 다가 주는구나!” 5-23. 子曰: “孰謂微生高直? 或乞醯焉, 乞諸其鄰而與之.” 미생고(微生高)라는 사람은 문맥으로 보건대 공자 당대에 정직한 사람으로 평판이 높은 사람이었다. 아마도 그는 공자가 사는 생활권에서 이름이 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한 동네사람이었기 때문에 옆집에서 무엇을 꾸어오는 것까지도 다 관찰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공자는 미생고가 정직한 사람이라는 주변사람들의 평판에 찬물을 끼얹는다. 누가 미생고를 정직하다고 말하는가? 미생고는 정직하지 않다! 왜 그런가? 어떤 사람이..
22. 백이와 숙제는 묵은 원한으로 괴롭히지 않았다 5-22.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백이와 숙제는 사람들이 저지른 지난 잘못을 기억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원망을 사는 일이 거의 없었다.” 5-22. 子曰: “伯夷ㆍ叔齊不念舊惡, 怨是用希.” 임마누엘 칸트의 신(神)의 실존(實存, die Existenz Gottes)에 대한 문제의식은 바로 인간의 도덕성(Sittlichkeit)과 행복(Glückseligkeit)의 불일치라는 인간의 실존적 현실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도덕적으로 선업(善業)을 쌓는 인간에게 그 선업에 비례하여 행복이 보장되질 않는다는 것이다. 행복이란 현세에 사는 이성 존재자가 자기의 전체에 있어서 모든 것을 제 뜻대로 할 수 있는 상태이다.(Glückselig..
21. 우리 학단의 소자들이 광간하구나 5-21. 공자께서 진나라에 계시었을 때, 말씀하시었다. “돌아가자! 돌아가자! 오당의 어린 제자들이 박력있고 뜻이 커서, 찬란하게 문장을 이루었으나, 그것을 어떻게 다듬어야 할지를 모르는구나.” 5-21. 子在陳曰: “歸與! 歸與! 吾黨之小子狂簡, 斐然成章, 不知所以裁之.” 모든 교육자들에게는 가슴을 설레게 하는, 멋드러진 『논어』의 한 구절이다. 교육자로서 이와 같은 설레임을 느낄 수 없다면 어찌 그를 교육자라 이를 수 있을까보냐! 이것은 공자의 생애에 있어서 하나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귀로(歸魯)라는 사건을 직면하고 있는 공자의 인간적 ‘그리움’을 묘사한 탁월한 파편이다. 문학적으로도 아름다운 문장을 발하고 있다. 후학의 교육이란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다. 교..
20. 영무자의 지혜로움은 따라할 수 있지만, 어리석음은 따라할 수 없다 5-20.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영무자(甯武子)는 나라에 도가 있을 때는 지혜롭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는 어리석었다. 그 지혜로움을 따를 수 있으나, 그 어리석음은 따르기 어렵다.” 5-20. 子曰: “甯武子邦有道則知, 邦無道則愚. 其知可及也, 其愚不可及也.” 영무자(甯武子)의 실명은 영유(甯兪)다. 춘추 초기, 공자보다 약 1세기를 앞선 진문공(晋文公)의 시대, 위(衛)나라의 가로(家老)였다. 진문공(晋文公)은 제환공(齊桓公)의 뒤를 이어 춘추의 제2의 패자가 된 사람으로, 19년의 기나긴 유랑생활 끝에 군위(君位)에 오른 그 유명한 헌공의 아들 공자 중이(重耳)이다. 이때 위(衛)나라는 북방의 진(晋)나라와 남방의 초(楚)..
19. 세 번 생각하지 말고 두 번이면 된다 5-19. 계문자(李文子)는 세 번 곰곰이 생각한 뒤에야 행동하였다. 공자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시었다: “두 번이면 충분하다.” 5-19. 季文子三思而後行. 子聞之, 曰: “再, 斯可矣.” 계문자(李文子, ?~BC 568)는 삼환(三桓) 중의 막강한 계씨가문의 제3대 영주로서 노나라의 문공(文公)ㆍ선공(宣公)ㆍ성공(成公)ㆍ양공(襄公), 4대를 섬기면서 깊은 신뢰를 쌓은 인물이다. 그는 계씨가문의 대부(大夫)라는 우리의 상식적 편견과는 달리 노나라의 현인으로서 사람들의 뇌리에 박힌 훌륭한 인물이었다. 매우 상식적인 사람으로서 재지(才知)도 있었고, 매우 질소(質素)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그의 명(名)은 행보(行父)이고, 문자(文子)는 시호이다. 『춘추경』..
18. 영윤인 자윤은 충성스럽고 진자문은 청렴하다 5-18 자장이 여쭈었다: “영윤 자문이 세 번 벼슬하여 영윤이 되었는데도, 그때마다 기뻐하는 기색도 없었고, 세 번 벼슬을 그만두면서도 그때마다 서운해 하는 기색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맡아보던 영윤의 정사를 반드시 새로 부임해온 영윤에게 상세히 알려주었습니다. 이만하면 어떠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충성스럽다 할 만하다.” 5-18. 子張問曰: “令尹子文三仕爲令尹, 無喜色; 三已之, 無慍色. 舊令尹之政, 必以告新令尹. 何如?” 子曰: “忠矣.” “인하다고 할 만합니까?”하고 다시 여쭈니,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모르겠다. 어찌 인하다고까지야 말할 수 있으리오?” 曰: “仁矣乎?” 曰: “未知, 焉得仁?” 자장은 또 여쭈었다: “최자가 ..
17. 장문중은 지혜롭지 못하다 5-1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장문중이 큰 거북딱지를 걸어두었고, 기둥머리 두공에는 산모양을 조각하고, 들보 위 동자기둥에는 수초모양을 그렸으니, 어찌 그를 지혜롭다 하겠는가?” 5-17. 子曰: “臧文仲居蔡, 山節藻梲, 何如其知也?” 장문중(臧文仲)의 성(姓)은 장손(臧孫)이요, 명(名)은 진(辰), 중(仲)은 자(字)요, 문(文)은 시호(諡號)이다. 장손진(臧孫辰)은 공자의 고국 노나라의 대부였다. 그러나 공자와 동시대의 인물은 아니고, 춘추 초기 진문공(晋文公)이 패자(覇者)가 되었을 시기의 인물이다. 장공(莊公)ㆍ민공(閔公)ㆍ희공(僖公)ㆍ문공(文公) 4대에 걸쳐 50년 가까이 노나라의 대부로서 활약하였다. 『춘추(春秋)』 경문(經文), 문공십년춘(文公十年春, ..
16. 공자가 존경하던 선배님 안영 5-1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안평중(晏平仲)은 사람과 잘 사귀는 구나! 오래 사귈수록 오히려 공경하니.” 5-16. 子曰: “晏平仲善與人交, 久而敬之.” 안평중(晏平仲, 옌 핑쫑, Yan Ping-zhong)이란 공자(孔子)와 동시대의 인물로서 공자보다 약간 선배며, 자산(子産)보다는 약간 후배인, 당시의 대국 제(齊)나라의 재상 안영(晏嬰)을 가리킨다. 안(晏)은 성이요, 영(嬰)은 이름이요, 평(平)은 시호며, 중(仲)은 자이다. 평중(平仲)이 자라는 설도 있다. BC 567년에 제나라에 멸망당한 내(萊)나라의 이유(夷維)【지금의 산동성(山東省) 고밀현(高密縣)】 사람으로 제(齊)나라의 영공(靈公), 장공(莊公), 경공(景公)을 섬겼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15. 선배 정자산을 평가한 공자 5-15. 공자께서 자산을 평하시어 말씀하시었다: “군자의 도가 네 가지 있으니, 자기의 몸가짐이 공손하며, 윗사람을 섬김이 공경스러우며, 백성을 기름이 은혜로우며, 백성을 부림이 의로운 것이다.” 5-15. 子謂子産, “有君子之道四焉: 其行己也恭, 其事上也敬, 其養民也惠, 其使民也義.” 자산(子産, 쯔 츠안, Zi-chan)은 정(鄭)나라의 왕족출신의 재상인 공손교(公孫僑)의 자(字)이다. 자를 자미(子美)라고도 한다. 교(橋)는 그의 명(名)이다. 그는 정나라 목공(穆公)의 손(孫)이며, 자국(子國)의 아들로 태어나, BC 554년에 경(卿)이 되었고, BC 543년에 정권을 장악하였다. 공자보다 1세대가 빠른 명망 높은 정치가였다. 자산이 죽은 것이 노(魯)나라 소..
14. 공문자가 문(文)이란 시호를 받은 이유 5-14. 자공이 여쭈어 말씀드렸다: “공문자(孔文子)를 어찌하여 문(文)이라 시호 하였습니까?” 5-14. 子貢問曰: “孔文子何以謂之文也?”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영민한 사람인데도 배우기를 좋아하였으며,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런 까닭으로 문이라 일컬은 것이다.” 子曰: “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之文也.” 이 14장에서부터 분위기는 일신된다. 여기서부터 24장까지는 당대 혹은 과거의 사회적 전범을 이룬 사람들에 대한 공자의 평어가 수록되어 있다. 공자의 학내의 가까운 제자의 범위를 벗어난 인물들에 대한 평론이 수집되어 있는 것이다. 21장만이 공자의 삶의 역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예외적이다. 잘못 삽입된 파편일 수도 있다..
13. 자로는 실천하지 못하고선 다시 듣는 걸 두려워하다 5-13. 자로는 좋은 가르침을 듣고 아직 미처 실행하지 못했으면, 행여 또 다른 가르침을 들을까 두려워하였다. 5-13. 子路有聞, 未之能行, 唯恐有聞. 자로의 우직함과 진실함을 잘 나타내는 명구로서, 듣는 이의 가슴에 와 닿는 느낌이 깊은 파편이다. 이것은 자로의 독백도 아니요, 자로에 대한 공자의 평어도 아니다. 자로를 관찰해온 어떤 사람이 자료에 관하여 평한 것을 여기 담아놓은 것이다. 브룩스는 이 파편이 자로에 관한 이야기가 집중적으로 실려있는 「선진(先進)」편으로 삽입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자로에 관한 평론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공자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진 평론이므로, 공자의 제자평론과 양식은 다를지라도 앞의 컬렉션과 동일한 맥락..
12. 성과 천도를 거의 말하지 않던 공자 5-12. 자공이 말하였다: “선생님의 문장은 얻어 들을 수 있으나, 선생님께서 인간의 본성과 천도를 말씀하시는 것은 얻어 들을 수가 없다.” 5-12. 子貢曰: “夫子之文章, 可得而聞也; 夫子之言性與天道, 不可得而聞也.” 1장부터 11장까지는 모두 공자가 주변의 친근한 제자들을 평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12장은 제자 중의 한 사람인 자공이 공자를 평한 이야기다. 1장부터 13장까지를 공자의 제자에 대한 평어 모음이라고 말한다면, 그 중 12장과 13장은 약간 성격을 달리하는 것으로 11장까지의 편집에 대한 부록적 성격을 지니는 것이다. 브룩스는 본 장을 양화편 뒤로 재편시켰다. 아마도 이것은 자 공이 훗날에 그의 스승을 회상하면서 한 이야기로서 후대에 구성..
11. 남이 나에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을 남에게 하지 않다 5-11. 자공이 말하였다. “저는 남이 저에게 무리한 것을 강요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남에게 무리한 것을 강요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5-11. 子貢曰: “我不欲人之加諸我也, 吾亦欲無加諸人.”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야! 그것은 네가 쉽게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子曰: “賜也, 非爾所及也.” 이 장에 대한 해석은 미묘한 차이 같지만, 신주와 고주의 해석이 크게 다르다. 나는 고주의 해석을 따랐다. 고주와 신주의 차이는 자공의 제1문장과 제2문장을 단절적으로 보느냐, 연속적으로 보느냐에 달려있다. 고주는 양자를 단절적으로 파악하는데 반하여, 신주는 양자를 연속적으로 파악한다. 고주는 우선 ‘가(加)’라는 동사를..
10. 나는 굳센 사람을 보질 못했다 5-10.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는 아직도 참으로 강(剛)한 자를 보지 못하였다.” 5-10. 子曰: “吾未見剛者.” 어떤 사람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신장(申棖)이 있지 않습니까?” 或對曰: “申棖.”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신장은 항상 욕심이 앞서는 사람이니 어찌 그를 강하다 하리오?” 子曰: “棖也慾, 焉得剛?” 고주는 신장(申棖)을 단지 노(魯)나라 사람이라고만 했을 뿐 그 외의 정보를 주지 않았다[苞氏曰: “申棖, 魯人也”]. 신장(申棖)이라는 사람이 과연 공자의 제자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다. 주자는 신장(申棖)을 ‘제자성명(弟子姓名)’이라 했으나 별 근거는 없다. 『공자가어』 「칠십이제자해(七十二弟子解)」에는 신(申)씨 성을 가진 제자로서 신적(..
9. 재아, 낮잠을 자다 5-9. 재여(宰予)가 낮잠을 자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가 없고, 거름흙으로 쌓은 담은 흙손질할 수가 없다. 내 재여에 대하여 뭔 꾸짖을 일이 있겠는가?” 5-9. 宰予晝寢. 子曰: “朽木不可雕也, 糞土之牆不可杇也, 於予與何誅.”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내가 처음에는 남에 대하여 그의 말을 듣고 그의 행실을 믿었으나, 이제 나는 남에 대하여 그의 말을 듣고 그의 행실을 살펴보게 되었다. 나는 재여 때문에도 이 같은 습관을 고치게 되었노라.” 子曰: “始吾於人也, 聽其言而信其行; 今吾於人也, 聽其言而觀其行. 於予與改是.” 『논어』 전편을 통하여 재여는 공자에게 미움을 사는 제자의 모습으로 거의 일관되게 그려지고 있다. 재여의 자(字)는 자아(子我)이며..
8. 자공과 안회, 둘 중에 누가 나은가? 5-8. 공자께서 자공에게 일러 말씀하시었다: “너와 안회, 누가 더 나으냐?” 5-8. 子謂子貢曰: “女與回也孰愈?” 자공이 대답하였다: “제가 어찌 감히 안회를 넘나보겠습니까?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알 뿐이옵니다.” 對曰: “賜也何敢望回. 回也聞一以知十, 賜也聞一以知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래, 너는 안회만 같지 못하다. 그래! 나와 너 두 사람 모두 안회만 같지 못하다.” 子曰: “弗如也! 吾與女弗如也.” 안회를 공자보다 30세 연하라고 한다면, 자공은 31세 연하이니까, 자공은 안회보다 한 살 어릴 뿐이다. 즉 이 두 사람은 동년배의 사람들로서 공자의 총애를 받았던 탁월한 동량들이었다. 이 두 사람은 공자문하..
7. 자로와 염구와 공서화는 인합니까? 5-7. 맹무백(孟武伯)이 여쭈었다: “자로는 인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5-7. 孟武伯問: “子路仁乎?” 子曰: “不知也.” 그러자 맹무백은 다시 여쭈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유(由: 자로의 이름)는 천 수레의 나라라도 그 군재정을 맡겨 다스리게 할 만하지만, 그가 인한지는 모르겠습니다.” 又問. 子曰: “由也, 千乘之國, 可使治其賦也, 不知其仁也.” “그렇다면 구(求: 염유의 이름)는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구는 천 가호의 읍이나 백수레의 대부 영지에서 지방장관을 하게 할 만하지만, 그가 인한지는 모르겠습니다.” “求也何如?” 子曰: “求也, 千室之邑, 百乘之家, 可使爲之宰也, 不知其仁也.” “그러면 적..
6.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떠나고 싶어라 5-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의 도가 실현되지 않는구나. 뗏목을 타고 바다에 둥둥 떠 있고 싶다. 이럴 때 나를 따르는 자는 오직 유(由: 자로의 이름) 이겠지?” 5-6. 子曰: “道不行, 乘桴浮于海. 從我者其由與.” 자로가 이 말을 듣고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 시었다: “유는 용맹을 좋아하는 것은 분명 나를 뛰어넘는다. 그러나 그는 사리를 헤아리는 바가 부족하다.” 子路聞之喜. 子曰: “由也好勇過我, 無所取材.” 『논어』는 자로가 없으면 재미가 없다. 우리가 공자를 성인이라 부른다면, 진정으로 우리가 아성(亞聖)이라 부를 사람은 안회보다도 자로가 되어야 할 것 같다. 공자는 자로와 더불어 역사에 등장하였고 자로와 더불어 역사에서..
5.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 칠조개 5-5. 공자께서 칠조개에게 벼슬을 권하시었다. 칠조개가 그것에 대하여 말씀드렸다: “저는 벼슬하는 것에 관해서는 아직 자신이 없습니다.” 공자께서 기뻐하시었다. 5-5. 子使漆雕開仕. 對曰: “吾斯之未能信.” 子說. 칠조개(漆彫開)는 『논어』 전편을 통하여 단지 이 장에서 한번 언급되고 있는 인물이다. 성이 칠조(漆雕) 이름이 개(開)다. 원래 그 이름이 계(啓)였는데, 한(漢)나라 경제(景帝)의 실명이 계(啓)였기 때문에 존귀한 사람의 이름을 경피(敬避)하는 과거의 풍습 때문에 한때 그 이름이 개(開)로 기술된 것이다. 그런데 공안국(孔安國)이 그의 이름을 개(開)로 표기하면서 계라는 원명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사마천의 「열전」은 칠조개의 자(字)가 자개(子開)..
4. 중궁은 어질지만 말재간은 없다 5-4. 누군가 말하였다: “옹(雍)은 인하기는 한데 말재주가 없습니다.” 5-4. 或曰: “雍也仁而不佞.”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말재주를 도대체 어디에 쓰겠다는 거냐? 약삭빠른 구변으로 남의 말을 막아, 자주 남에게 미움만 살 뿐이니, 그가 인한지는 모르겠으나 말재 주를 도대체 어디에 쓰겠다는거냐?” 子曰: “焉用佞? 禦人以口給, 屢憎於人. 不知其仁, 焉用佞?” 옹(雍)은 성(姓)이 염(冉), 명(名)이 옹(雍), 자(字)가 중궁(仲弓)이다. 제자적(弟子籍)의 본래 모습을 더 가깝게 전달하고 있는 『공자가어』의 「칠십이제자해(七十二弟子解)」는 옹에 관해 다음과 같은 정보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염옹은 자가 중궁이다. 염백우의 같은 종족이다. 매우 못난 아버지 ..
3. 자장은 호련과 같은 사람이다 5-3. 자공이 여쭈어 말하였다: “저는 어떻습니까?” 5-3. 子貢問曰: “賜也何如?”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너는 그릇이다.” 子曰: “女器也.” 자공이 이어 “어떤 그릇입니까?”하고 되묻자, 曰: “何器也?”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귀한 호련(瑚璉) 옥그릇이다.” 曰: “瑚璉也.” 자공(子貢)은 현실적인 관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공자학단의 경제적 지원자였고 정치적으로도 크게 성공한 인물이었다. 자공은 아마도 공자가 자천에 대하여 그렇게 높은 평가를 하는 것을 보고 샘이 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기도 공자에게 어떤 평을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다. ‘자공문왈(子貢問曰)’이라는 최초의 구절은 그러한 자공의 안달복달하는 심정을 잘 나타내고 ..
2. 자천을 군자라 칭찬하다 5-2. 공자께서 자천(子賤)을 평하여 말씀하시었다: “군자로다! 이 사람이여. 노나라에 군자의 전통이 없었다면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러한 덕성을 취했겠는가?” 5-2. 子謂子賤,“君子哉若人! 魯無君子者, 斯焉取斯?” 자천은 누구인가? 공자가 말년에 노나라에 돌아왔을 때, 목격한 노나라의 훌륭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젊고 유능한 판관과도 같은 어떤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칠십이제자해(七十二弟子解)」 3는 자천에 관해 매우 간결하고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복부제는 노나라 사람이다. 자는 자천이다. 공자보다 49세 연하이다. 그는 벼슬하여 선보의 재가 되었다. 재주와 지략이 있었으며, 인자스럽고 사람을 아끼었다. 백성들을 기만하는 일이 없었다. ..
1. 공자 형의 딸과 자신의 딸을 시집보내다 5-1A, 공자께서 공야장을 평하여 이르시기를 “사위삼을 만하다. 비록 그가 오랏줄에 묶여 감옥에 갇혀 있지만 그것은 그의 죄가 아니다”하시고, 자기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셨다. 5-1A. 子謂公冶長, “可妻也. 雖在縲絏之中, 非其罪也”. 以其子妻之. 공야장(公冶長)은 성이 공야(公冶)고 이름이 장(長)이다【‘장(萇)’으로 쓰기도 한다】. 공자제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하나, 기실 그 인간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다고 말한 주자의 주가 정설일 것이다[長之爲人, 無所考]. ‘위(謂)’라 한 것은 단순히 ‘일컫는다’는 뜻이 아니고, 인간에 대하여 평가한다는 가치판단의 의미가 깊숙이 내포되어 있다. ‘처(妻)’는 자기 딸을 시집보낸다는 의미의 동사이다. ‘가처야(可妻也..
공야장 제오(公冶長 第五) 편해(篇解) 「공야장(公冶長)」편은, 「팔일(八佾)」편이 예악(禮樂)의 주제를 중심으로 일관되게 편집된 느낌이 강한 것처럼, 그 자체로 어떤 일관된 테마가 있는 듯이 느껴지는 편이다. 그리고 그 구성의 양식도 1~13, 14~24, 24~27의 3부로 나뉘면서 서로 관련을 가지는 치밀한 구도를 가지고 있다【24장은 중복되는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서 연결고리를 형성】. 주희는 이 장이 고금인물(古今人物)의 현부득실(賢否得失)을 논하고 있다고 갈파하였다. 「공야장」은 분명 인물평론집과도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인물평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인물평을 통하여 격물궁리(格物窮理)의 일단(一端)을 밝히려 했다고 주희는 말하고 있다. 이면의 주제는 「학이(學而)」편..
26. 가족이 아니고서야 적당선이 필요하다 4-26 자유가 말하였다. “임금을 섬김에 너무 자주 간하면 욕을 당하고, 붕우간에 너무 자주 충고하면 멀어지게 마련이다.” 4-26. 子游曰: “事君數, 斯辱矣, 朋友數, 斯疏矣.” 이것은 물론 자유(子游)의 말로서 기록된 것이며, 「이인(里仁)」편에서는 이질적인 성격의 것이다. 원래 이인」편에 속하지 않는 파편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보면 제18장의 주제와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이 장은 18장을 보완하는 성격이 있다. 그리고 공통되는 주제가 「안연(顔淵)」 23에도 나온다. 그러니까 이 말은 비록 자유의 말이긴 하지만, 공자가 평소 자기체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항시 말했던, 제자들이 자주 들었던 말씀이었을 수가 있다. 그래서 부록격으로 「이인」..
25. 덕이 있다면 친구가 생긴다 4-25.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덕은 외롭지 아니하다. 반드시 이웃이 있게 마련이다.” 4-25. 子曰: “德不孤, 必有隣” 호인의 말대로 15장부터 24장까지를 증자 문인의 소기(所記)라고 한다 면 이장은 또 다시 공자의 오리지날한 기온 파편의 수집일 것이다. 그런데 이 로기온을 여기 편집시킨 의도는 매우 명백하다. 제1장의 ‘이인위미(里仁爲美)’와 수미일관한 주제의 공통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인」 편은 ‘이인위미(里仁爲美)’로 시작하여 ‘덕불고(德不孤), 필유린(必有隣)’으로 끝나는 매우 짜임새 있는 편집체제를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다음의 26장은 자유(子游)의 말로서 부록격으로 귀엽게 첨가된 것이다. 그리고 ‘덕불고, 필유린’이라는 주제는..
24. 말은 어눌하게, 행동은 민첩하게 4-24.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말은 어눌하게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4-24. 子曰: “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 돈오점수(頓悟漸修)와 정혜쌍수(定慧雙修), 그리고 선교일치(禪敎一致) 를 주장한 고려 중기의 대국사 보조지눌(普照知訥, 1158~1210)의 이름도 바로 이 장에서 유래된 것이다. 불교도 한자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한에 있어서는 이미 유교 경전의 격의를 거치게 마련이다. 군자라면 모름지기 바램이 있어야 한다. 무엇을 바라는가? 언(言)에는 눌(訥)하고, 행(行)에는 민(敏)하기를 바래야 한다. 고주(苞氏)에 눌(訥)을 ‘지둔(遲鈍)’이라 했다. ‘느리고 둔한 것이다.’ 말은 아무리 느리고 둔해도 상관없는 것이지만, 행동 ..
23. 약(約)하는 사람은 실수가 적다 4-23.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약(約)으로써 잃는 자는 적다.” 4-23. 子曰: “以約失之者鮮矣.” ‘약(約)’이란 경제적 검약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언어의 검약, 행동의 검약, 가치관의 총체적 검약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인간은 어차피 과불급이 없을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항상 과(過)의 오류보다는 불급(不及)의 오류가 개선의 여지가 더 많다. 다시 말해서 노자가 말하는 허(虛)가 확보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약(約)이란 불급(不及)보다도 훨씬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의도적인 검약이다. 공자의 사상은 결코 노자의 사상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모두 동시대의 시대 정신의 소산이라 생각된다. 여기 공자가 말하는 ‘약(約)’이나 노자가 말..
22. 말을 할 때 신중히 해야 하는 이유 4-22.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옛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내지 않은 것은, 몸소 실천함이 거기에 미치지 못할 것을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4-22. 子曰: “古者言之不出, 恥躬之不逮也.” 질박하지만 정곡을 찌르고 있는 이런 평범한 『논어』의 구절에서 우리는 가장 심오한 인생의 예지를 얻는다. ‘고자(古者)’란 추상적인 ‘옛 시간’을 의미하지만 실제적으로 ‘옛 사람들’을 의미한다. 고인(古人)들의 삶의 태도를 예찬하며 금인(今人)들의 경박함을 경계한 공자의 말이다. 공자가 산 시대가 신ㆍ구세대가 교차하고 역사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였다. 공자는 옛 사람들의 훌륭한 점을 신세대에게 전하고 싶어 했다. 옛 사람들은 말을 함부로 내뱉지 않았다. 그 말을 몸소..
21. 부모님의 나이에 대한 자식의 일희일비(一喜一悲) 4-21.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부모님의 나이는 알지 않으면 안 된다. 한 편으로 는 그로써 기쁜 마음이 들고, 한 편으로는 그로써 두려운 마음이 든다.” 4-21. 子曰: “父母之年, 不可不知也. 一則以喜, 一則以懼.” 옛날에는 사람의 나이를 아는 것도 갑자(甲子)를 세어 아는 것이다. 지 금처럼 십진법에 의한 직선적 숫자로 출생연도만 알고 있으면 자동적으로 몇 살이라는 것이 산출되는 것이 아니다. ‘환갑(環甲)’이니 ‘진갑(進甲)’이니 하는 따위의 개념들이 모두 갑자의 순환적 흐름에서 생겨나는 개념이다. 갑자(甲子)의 한 싸이클을 돌아온 ‘환갑(還甲)’이야말로 고대인들에게는 인생 역정의 대기준이 되는 것이었다. 부모님의 나이는 애써 기억하고 ..
20. 효도의 방법 4-20,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삼년 동안 아버지의 도(道)를 고침이 없으면 효(孝)라 이를 만하다.” 4-20. 子曰: “三年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 「학이(學而)」 11에서 이미 논의되었다. 「학이」편의 문장이 이 「이인(里仁)」편의 파편을 토대로 구성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이인(里仁)」편의 성립이 「학이」편의 성립보다 시대적으로 앞선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이 「이인」편의 파편에다가 ‘부재(父在), 관기지(觀其志); 부몰(父沒), 관기행(觀其行)’을 덧붙여 그 맥락을 새롭게 한 것이다. 3년이라는 숫자가 은나라의 풍습과 관련이 있다는 호적(胡適)의 설도 새겨들을 만하다. 호인이 말하였다: “이 장은 이미 「학이」편에 나왔다. 이것은 중복하여 나왔는데 그 절반이 빠..
19.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도록 하는 법 4-19.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부모님께서 살아 계실 때에는 멀리 놀러가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놀러 갈 때에는 반드시 부모님께 갈 곳을 알려 드려야 한다.” 4-19. 子曰: “父母在, 不遠遊. 遊必有方.” ‘유(遊)’라는 표현은 단지 요새말로 ‘놀러간다’는 뜻만은 아니다. 집을 떠나 여행하는 모든 행위를 총칭한다. 유세한다, 유학한다, 유람한다는 등등의 의미를 모두 내포한다. ‘유필유방(遊必有方)’의 ‘방(方)’은 가는 방향, 즉 갈 곳을 부모님께서 아시도록 한다는 뜻으로 신주는 새기었다. 그러나 고주는 ‘방(方)’을 여행할 때에는 반드시 규율이 있는 여행을 한다, 즉 정도에 의거한 여행을 한다는 식으로 풀었다[方, 常也]. 『예기』 「곡례」 상에는 다음과..
18. 부모와 생각이 다를 때 자식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4-18.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부모를 섬길 때는 은미(隱微)하게 간(諫)해야 한다. 부모님의 뜻이 내 말을 따르지 않음을 보더라도 더욱 공경하여 어기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괴로웁더라도 원망하지는 말아야 한다.” 4-18. 子曰: “事父母幾諫. 見志不從, 又敬不違, 勞而不怨.” 부모란 나의 존재의 한계이다. 부모로 인해서 내가 태어났고, 부모로 인하여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다. 부모라 할지라도 성인이 된 나의 입장과 그 삶의 뜻[志] 사이에 충돌(不從)이 생겨나는 상황은 얼마든지 우리가 일상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이러한 충돌의 상황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기간(幾諫)’의 ‘기(幾)’는 고주나 신주나 모두 ‘미(微)’로 풀었다..
17. 남을 보고 반면교사로 삼다 4-1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어진 이를 보면 그와 같아지기를 생각하며, 어질지 못한 이를 보면 안으로 자기를 되돌아본다.” 4-17. 子曰: “見賢思齊焉, 見不賢而內自省也.” 「이인(里仁)」편의 테마는 본장에서 클라이막스에 오른다. 다음의 18장부터는 「이인」편의 주요테마가 효(孝)라는 주제로 굴절되면서 증자학파의 내음새가 보다 짙게 드러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현인(賢人)을 만나면 우리는 그와 같아지기를 생각해야 한다. 여기서 ‘견(見)’이란 단순히 시각적인 ‘봄’이 아니라, 내면적인 만남(Encounter)이다. ‘사제(思齊)’는 배움의 동경이요, 그것은 본받음이다. 기독교에도 이 비슷한 전통이 있다.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 137..
16. 군자와 소인의 깨달음 4-1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의(義)에서 깨닫고, 소인은 이(利)에서 깨닫는다.” 4-16. 子曰: “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본 장의 해석은 ‘유(喩)’의 의미규정에 따라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유 (喩)를 깨닫는다[효曉]는 뜻으로 해석하면, 그 엄밀한 논리를 따라가면 소인(小人)이 결코 이원론적으로 배제되지 않는다. 즉 군자는 의로움에서 깨달음을 얻고, 소인은 이로움에서야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이다. 즉 깨달음의 층차의 단계적 고하를 나타낸 말로서만 해석되는 것이다【고주나 신주나 모두 유(喩)를 효(曉)로 풀이했지만 이런 식으로 해석하지는 않았다. 군자는 인의(仁義)를 좋아하고, 소인은 재리(財利)를 탐한다는 식으로 풀이했을 뿐이다】. 그런데 ‘유(喩)’를 ..
15. 공자, 하나의 도로 모든 걸 꿰뚫다 4-15.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삼(參: 증자의 이름)아! 나의 도는 하나로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다.” 4-15. 子曰: “參乎! 吾道一以貫之.” 증자는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曾子曰: “唯.” 공자께서 나가시자, 증자의 문인들이 물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子出. 門人問曰: “何謂也?” 증자가 말하였다: “선생님의 도는 충(忠) 과 서(恕)일 뿐이다.” 曾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이 장에 대한 나의 논의는 「학이(學而)」 4와 「학이(學而)」 10의 안(案)에 대강 그 윤곽이 드러나 있다. 전통적으로 이 장의 언사가 중후하게 취급되게 된 것은, 공자 생전에 사상을 그의 정통 수제자인 증자(曾子)가 공자의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하여 표현한 절세..
14. 남의 알아주지 않을수록 나의 실력을 키워라 4-14.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지위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무엇을 가지고 설 것인가를 걱정하라. 사람들이 자기를 알지 못함을 걱정하지 말고, 참으로 알려질 수 있기를 구하라.” 4-14. 子曰: “不患無位, 患所以立;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은 이미 「학이(學而)」 16에서 충분히 논의된 것이다. 위(位)와 입(立)은 생긴 글자 모양도 비슷하지만 의미가 상통한다. 위(位)가 없다는 것은 사회적 지위를 얻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적 지위를 얻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기 보다는, 과연 내가 무슨 실력으로 그 자리에 당당히 설 수 있을 것인가를 걱정해야 한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도 위가 없다[무위無位]는 것과 ..
13. 예와 사양함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 4-13.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예와 겸양으로써 나라를 잘 다스린다면, 도대체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예와 겸양으로써 나라를 잘 다스리지 않는다면 도대체 예를 어찌할 것인가?” 4-13. 子曰: “能以禮讓爲國乎? 何有? 不能以禮讓爲國, 如禮何?” ‘예양(禮讓)’의 ‘양(讓)’은 ‘사양’, ‘겸손’, ‘겸양’의 의미를 나타낸다. 양(讓)은 예(禮)의 한 표현이며, 예(禮)보다 그 외연(外延)이 좁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12년조 기사에는 진(晉)나라의 장수들이 서로 사양하여 질서를 지키고 무공을 세워, 국민들이 크게 화합한 미담을 싣고 있다. 그리고 평하기를 ‘사양이란 예의 근본이다[양(讓), 예지주야(禮之主也)]’라고 말한다. 사(士)..
12. 이익에 따라 행동하면 원망이 많아진다 4-12.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이익에 질질 끌려 행동하면, 원망만 많이 생겨날 뿐이다.” 4-12. 子曰: “放於利而行, 多怨.” 공안국의 고주는 ‘방(放)’을 ‘의(依)’로 해석했다. 여기서 ‘의(依)’는 단순히 ‘의지한다’. ‘의거한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에 질질 끌려 다닌다’라는 어감이 강하다. 공안국은 말한다. 방(放)이란 질질 끌려다님을 의미한다. 매사를 이익에 질질 끌려 다니면서 행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放, 依也. 每事依利而行之者也. 여기서 말하는 ‘이(利)’란 자신의 개인적 이익[사리私利]만을 앞세우는 행동이다. ‘이(利)’는 공자에게 있어서는 인(仁)의 반면(反面)이다. 여기에 바로 맹자사상의 배아(胚芽)를 발견하는 것이다. 인(仁)..
11. 군자와 소인의 생각 4-11.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큰 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안온한 삶의 터를 생각한다. 군자는 두루 적용되는 법을 생각하고 소인은 작은 혜택을 생각한다.” 4-11. 子曰: “君子懷德, 小人懷土; 君子懷刑, 小人懷惠.” 이 장은 문구의 해석에 있어서는 크게 난해할 것이 없다. 그러나 해석은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나뉜다. 그 첫째 번 입장은 전통적 해석으로 고주나 신주나 크게 차이가 없다. 이 전통적 해석에 대한 반론은 에도의 유학자 소라이(荻生徂徠)에 의하여 제기된 것이다. ‘회(懷)’라는 것은 ‘생각한다’, ‘그리워한다’는 뜻이다. 즉 무엇을 삶의 중심테마로서, 가치관으로서 간직한다는 뜻이다. 덕(德)이란 큰 덕이다. 즉 보편적인 삶의 가치다. 주희는 주(注)하여 ..
10. 군자는 극단이 아닌 의에 따라 처신한다 4-10.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세상 일에 관하여서는 가까이 할 것도 없고 멀리 할 것도 없다. 오로지 의로움에 따를 뿐이다.” 4-10. 子曰: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 이 장의 해석에 관해서도 심하게 많은 논란이 있다. 문자가 소략하고 그 함의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출전을 활용하여 그 진의를 밝히려 하지만, 그러한 인용학(citology)의 한계는 분명한 것이다. 적(適)이라는 것은 긍정의 언사요, 막(莫)이라는 것은 부정의 언사다. 적(適)이란 가까이 함이요, 막(莫)이란 멀리함이다. 무적(無適)과 무막(無莫)이라는 것은 중용에 대한 양단(兩端)이다. 군자(君子)는 위(位)를 얻은 벼슬아치를 가리키는 ..
9. 거친 옷과 밥에 초연한 까닭 4-9.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비가 도에 뜻을 두고서 나쁜 옷과 나쁜 음식을 부끄럽게 여긴다면, 그와 더불어 말할 꺼리가 없다.” 4-9. 子曰: “士志於道, 而恥惡衣惡食者, 未足與議也.” 악의(惡衣)와 악식(惡食)은 부끄러움의 대상이 아니다. 도에 뜻을 둔 선비가 악의ㆍ악식을 부끄러워한다면, 어찌 그를 친구 삼아 말벗할 수 있으리오? 악의ㆍ악식이란, 조의(粗衣), 조식(粗食)을 말하는 것일진대, 더러운 옷과 더러운 음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비싸고 사치스러운 의식(衣食)이라 할지라도, 더러운 것 투성이일진대, 오히려 그것을 멀리하는 것이 선비의 아름다움이요 멋이다. 이 장의 주어가 ‘사(士)’라는 사실을 한번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사는 자유민으로..
8. 도를 들을 수만 있다면 4-8.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 4-8. 子曰: “朝聞道, 夕死可矣.” 사람들의 일상적 체험 속에서 자주 회자되는 이 유명한 『논어』의 구절의 해석에 관해서도 고주의 입장과 신주의 입장이 다르다. 우리는 이 두 입장을 모두 수용해야만 본 장의 언어에 담겨있는 공자의 삶의 애틋한 호소를 보다 리얼하게 느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주는 이 공자의 고백을 정치사적 맥락에서 푼다. ‘문도(聞道)’의 도(道)는 도덕의 정치가 실현되는 세상의 출현을 의미한다. 공자는 죽음에 임박할 때까지 자신의 고국, 노나라에 그러한 인정(仁政)의 밝은 세계가 도래하기를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몸은 쇠해가고 죽음의 그림자가 엄습한다. ..
7. 잘못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 줄을 알 수 있다 4-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사람의 과실이란 각기 그 습벽(習癖)을 따른다. 그 사람 의 과실을 보면 곧 그 사람의 인함을 알 수 있다.” 4-7. 子曰: “人之過也, 各於其黨. 觀過, 斯知仁矣.” 이 장의 해석에 있어서 고주와 신주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으나, 신주의 해석이 탁월하다. 고주는 도무지 명료한 관점이 결여되어 있다. 공안국은 말한다. 당(黨)이란 끼리끼리 같은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소인은 도저히 군자의 행동을 할 수가 없으니 그러한 것은 소인의 과실로 볼 수가 없다. 그러니 당연히 용서하고 책망하지 말아야 한다. 그 과실을 보아서 현명하고 어리석은 무리들이 각기 제자리로 귀속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곧 인을 실천하는 것이다. 黨,..
6. 힘이 부족하여 인을 못하는 경우는 없다 4-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는 아직도 인을 좋아하는 자와 불인을 미워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다. 인을 좋아하는 자는 더 이상 보탤 것이 없다. 그런데 불 인을 미워하는 자는 그 인을 행함에 있어, 불인한 것이 자기 몸에 물들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는 자들이다. 하루라도 그 힘을 인에 쓸려고 노력하는 자가 있는가? 나는 그 인함에 쓸 힘이 부족한 인간을 본 적은 없다. 과연 그런 자가 있을 까? 나는 단연코 그러한 자를 본 적이 없다.” 4-6. 子曰: “我未見好仁者, 惡不仁者. 好仁者, 無以尙之; 惡不仁者, 其爲仁矣, 不使不仁者加乎其身. 有能一日用其力於仁矣乎? 我未見力不足者. 蓋有之矣, 我未之見也.” 이 장에서는 주어가 ‘오(吾)’로 쓰이지 않았다. 모두..
5. 군자여 어느 순간에도 인(仁)을 해야 한다 4-5.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부귀는 사람들이 다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면 그것에 처하지 않는다. 빈천은 누구나 다 싫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비록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부당한 방법으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군자가 인함에서 떠나 있다면 어찌 명예로운 이름을 이룰 수 있겠는가? 군자는 한 끼니를 마칠 시간 동안에도 인을 어기는 법이 없다. 황급한 때에도 반드시 인과 더불어 하며, 실족할 때에도 반드시 인과 더불어 할 뿐이다.” 4-5. 子曰: “富與貴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得之, 不處也; 貧與賤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得之, 不去也. 君子去仁, 惡乎成名? 君子無終食之間違仁, 造次必於是, 顚..
4. 인에 뜻을 두라 4-4.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진실로 인함에 뜻을 둔다면, 사람들이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않게 될 것이다.” 4-4. 子曰: “苟志於仁矣, 無惡也.” 이 구절도 여러 가지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으나, 나는 기본적으로 ‘악(惡)’을 ‘악’으로 읽고 그것을 객관적 명사적 실체로서 전제하는 모든 해석은, 현대어에서 비롯된 그릇된 편견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사상에는 성악설(性惡說)이라는 것이 없다. 근원적으로 인간의 본성에 관한 존재론적 규정이 없는 것이다. 오직 성(性)의 문제를 정(情)의 문제로서 다루었다는 것이 최근의 간백문헌연구 성과가 밝히는 사실이다[凡人雖有性, 心無定志, 待物而後作 … 性自命出, 命自天降. 道始於情, 情生於性. 郭店楚簡 『性自命出』). ‘성악설..
3. 타인을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의 조건 4-3.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오로지 인(仁)한 자래야 사람을 좋아할 수 있으며, 또 사람을 미워할 수 있는 것이다.” 4-3. 子曰: “唯仁者能好人, 能惡人.” 나 도올은 『논어』의 이 구절을 심히 사랑한다. 동양적 세계관에서는 선(善, the Good)과 악(惡, the Evil)은 대립적 가치로서 나타나지 않는다. 선(善)의 대립적 개념은 불선(不善)일 뿐이요, 악(惡)이 아니다. 악(惡)이란 본시 인간의 호오(好惡)의 일측면일 뿐이다. 모든 악(惡)은 나의 감정의 오(惡: 미움)로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만으로 인격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나 증오감을 동시에 포섭하는 것..
2. 인자는 인을 편안히 여기고 지자는 인을 이롭게 여긴다 4-2.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인하지 못한 자는 오랫동안 곤경에 처하지 못하며, 또 오랫동안 즐거움에 처하지 못한다. 인자(仁者)는 인에서 편안할 줄 안다. 지자(知者)는 인에서 이로움을 취한다.” 4-2. 子曰: “不仁者不可以久處約, 不可以長處樂. 仁者安仁, 知者利仁.” 인간이 오랫동안 곤궁한 상황에 처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 곤궁한 상황을 참고 견디어 낼 수 있는 극기의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범인은 곤궁한 상황에서 쉽게 좌절하고 만다. 그런데 인간이 혜택받은 환경과 성공의 즐거움에서 오랫동안 처할 줄 아는 슬기를 발휘하는 것도 곤궁한 상황에서 좌절하지 않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다. ‘약(約)’이란 궁핍하고 곤궁한 ..
1. 어진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살라 4-1.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마을에서 인하게 사는 것이 아름답다. 택하여 인(仁)에 처하지 않는다면, 어찌 지혜롭다 할 수 있겠는가?” 4-1. 子曰: “里仁爲美. 擇不處仁, 焉得知?” 사실 이 구절은 너무도 짤막하고 전후 맥락이 무시되어있기 때문에 정 확하게 해석하기가 어렵다. 고주ㆍ신주를 막론하고, 전통적인 해석은 ‘이(里)’를 사람이 거처하는 동리를 말하는 것으로 본다. 동리[里]는 『주례』의 규정에 의하면, 25개의 집이 모여있는 취락의 규모를 말한다. 다산은 ‘이인위미(里仁爲美)’의 구문은 리(里)에서 일단 구두점을 찍고 해석해야 한다고 말한다[里一字爲句, 其義方鬯]. 사는 동리를 선택하는데 있어서는 인한 동리에 사는 것을 우선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판..
이인 제사(里仁 第四) 편해(篇解) 많은 사람들이 이 「이인(里仁)」 편이야말로 『논어』의 진정한 시작일 것이라는 가설을 심정적으로 동의하는데 주저치 않는다. 『논어』의 편제가 「이인(里仁)」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공자의 로기온자료 모음 중에서 이 「이인」의 자료야말로 최고층(最古層)을 형성한다고 보는 것이다. 웨일리(Arthur Waley)는 원래 『논어』는 제3편에서 제9편까지로만 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1~2편, 10~20편은 그 뒤로 증보된 것인데 어떤 일관된 성격을 찾을 수 없는 잡다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인」편의 느낌은 소박하고 원시적이며 함축적인 공자의 언사를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공자의 원래적 사유를 담아내고 있다. 물론 ‘이인’이라는 편명은 관례대로 첫 장 첫..
26. 윗자리에 있을 땐 너그럽고, 예를 행할 땐 공경하며, 초상에선 슬퍼하라 3-2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아니하며, 예를 행함에 공경스럽지 아니하며, 상에 임함에 슬퍼하지 않는다면, 내 그를 무엇으로 평가하겠는가?” 3-26. 子曰: “居上不寬, 爲禮不敬, 臨喪不哀, 吾何以觀之哉?” 아무리 자유의 민주사회가 되고 공산의 평등사회가 되더라도 장유(長 幼)의 차이는 있고, 상하(上下)의 분별은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어느 사회든지 장(長)ㆍ상(上)의 사람들이 보다 많은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윗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은 관용(tolerance)이다. 그리고 의식을 행할 때 요구되는 것은 허식이 아닌 인간에 대한 깊은 경의(propriety)다. 그..
25. 소악(韶樂)과 무악(武樂)에 대한 공자의 평가 3-25. 공자께서 소악을 평하시어, “지극히 아름답고 또한 지극히 좋다” 하셨으며, 무악을 평하시어, “지극히 아름답지만 지극히 좋지는 못하다” 하시었다. 3-25. 子謂韶,“盡美矣, 又盡善也.” 謂武,“盡美矣, 未盡善也”. 소(韶)란 순임금 자신이 지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순임금 시대 에 지어진 대표적 악곡이다. 무(武)란 무력으로 은나라를 정벌하고 혁명으로 주 나라를 세운 무왕(武王)의 시대에 만들어진 악곡이다. 소악은 천하를 선양받은 성군 순임금의 평화로운 시대의 목가적인 분위기를 반영하는 멜로디의 음악일 것이며, 무악은 무력혁명의 열기와 새로운 시작과 건설을 의미하는 의욕을 담은 매우 진보적인 음악일 것이다. 여기 미(美)와 선(善)의..
24. 목탁처럼 공자는 곧 쓰일 것이다 3-24. 의(儀) 땅의 국경수비대장이 공자를 뵙기를 청하여 말하였다: “군자께서 이 땅에 이르시면 내 일찍 아니 뵈온 적이 없었다.” 3-24. 儀封人請見. 曰: “君子之至於斯也, 吾未嘗不得見也.” 공자의 시종인들이 뵙게 해주었다. 그가 뵙고 나와서 말했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선생께서 지위를 얻지 못하고 유랑하심을 걱정하는가? 천하에 도가 없은 지 오래되었다. 하늘은 장차 선생님을 목탁으로 삼으실 것이다.” 從者見之. 出曰: “二三子, 何患於喪乎? 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子爲木鐸.” 인간세란 본시 사람들의 네트워크이다. 살다 보면 여러 종류의 인간을 만나게 된다. 아주 기대되는 상층의 지식세계에서 오히려 빈곤한 인간상의 군중들을 발견하기도 하고, 아주 편벽한 ..
23. 음악의 달인 공자가 말한 음악의 흐름 3-23. 공자께서 노나라의 악관인 태사에게 음악에 관하여 말씀하시었다. 이르시기를: “악곡의 전체 구성은 알만한 것이다. 처음에 시작할 때에는 모든 음색이 합하여진 듯 타악기가 주선을 이룬다. 다음에 풀어지면서 순결한 현악기들의 소리가 이어진다. 그러면서 점점 밝아지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연음형식으로 서로 꼬여 나간다. 그러면서 최종의 완성으로 치닫게 된다.” 3-23. 子語魯大師樂. 曰: “樂其可知也: 始作, 翕如也; 從之, 純如也, 皦如也, 繹如也, 以成.” 어떠한 경우에도 이러한 장의 번역은 어렵다. 그 내용이 뜬구름 잡는 것 같아 어떻게 표현하든 그것은 자의적 요소를 내포하게 되는 것이다. 공자는 음악의 명인이요 달인이었다. 여기 실린 이야기는 같은 ..
22. 관중은 그릇이 작다 3-22.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관중(管仲)의 그릇이 작구나!” 3-22. 子曰: “管仲之器小哉!” 그러자 어떤 이가 말했다: “관중은 검소했습니까?” 或曰: “管仲儉乎?”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관씨는 부인을 셋을 거느렸고, 관의 사무를 부하들에게 겸임시키는 일이 없었으니 어찌 검소했다 말할 수 있겠는가?” 曰: “管氏有三歸, 官事不攝, 焉得儉?” “그래도 관중은 예는 아는 사람이었지 않았겠습니까?” “然則管仲知禮乎?”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라의 임금이래야 나무를 심어 문안을 가릴 수 있거늘 관씨 또한 나무를 심어 문안을 가렸고, 나라의 임금이래야 두 임금이 만나는 의전 절차를 위해 대청에 술잔받침대를 두었거늘 관씨 또한 술잔받침대를 두었으니, 관씨가 예..
21. 재여가 모르는 것을 아는 듯 말하다 3-21. 애공(公)이 사(社)에 관하여 재아(宰我)에게 물었다. 재아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하후씨는 소나무를 썼고, 은나라 사람들은 측백나무를 썼고, 주나라 사람들은 밤나무를 썼습니다. 밤나무를 쓴 것은 백성들로 하여금 전율(戰慄)케 하려 함이옵니다.” 3-21. 哀公問社於宰我. 宰我對曰: “夏后氏以松, 殷人以柏, 周人以栗, 曰使民戰栗.” 공자께서 이를 들으시고 말씀하시었다: “내 이미 이루어진 일은 말하지 않으며, 끝난 일은 간하지 않으며, 이미 지나가버린 일은 탓하지 않겠다.” 子聞之曰: “成事不說, 遂事不諫, 旣往不咎.” 애공(哀公)은 정공의 아들로서 공자 58세의 때에 어린 나이로 즉위한 노 나라의 군주라는 것은 이미 전술한 바와 같다(2-19). 그..
20. 관저의 시는 지나치지 않고 감정을 잘 담았다 3-20.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관저(關雎) 노래는 즐거우면서도 질탕치 아니하고, 구슬프면서도 상심케 하지 아니한다.” 3-20. 子曰: “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 『시경』은 중국의 고대가요선집이며, 오늘날 현존하고 있는 『시경』의 체 제가 공자라는 역사적 인간의 편집체계를 반영하는 거의 유일한 문헌이라는 것은 크게 의심할 나위가 없다. 『시경』의 노래들은 크게 풍(風)ㆍ아(雅)ㆍ송(頌)이라는 세 장르로 대별되고 있는데, 풍(風)은 주(周)나라의 각 제후국들의 민요이며, 아(雅)는 귀족의 노래이며, 송(頌)은 종묘제례악이다. 풍(風)에는 15개국의 노래가 실려 있는데 160수가 전하고, 아(雅)는 소아(小雅)와 대아(大雅)로 나뉘며 105수에 ..
19. 아랫사람을 부림과 윗사람을 섬기는 방법 3-19. 정공이 물었다: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임금을 섬김에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3-19. 定公問: “君使臣, 臣事君, 如之何?” 공자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었다: “임금은 신하를 부리기를 예(禮)로써 하고, 신하는 임금을 섬기기를 충(忠)으로써 해야 합니다.” 孔子對曰: “君使臣以禮, 臣事君以忠.” 앞의 18장의 내용도 결국 정공(定公)시절의 공자의 삶을 배경으로 한 것 으로 보아야 한다면 18장과 19장은 내재적으로 깊은 연관이 있다. 같은 맥락에서 수집된 파편일 것이다. 그리고 19장은 ‘자왈(子曰)’이 아닌 ‘공자대왈(孔子對子曰)’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어 1장과 함께 공자학단 외부전승일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1장과 19장은 인민의 지배..
18. 임금에게 최선을 다하는 걸 아첨이라 비난하다 3-18.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임금을 섬김에 예를 다하는 것을 사람들이 아첨한다 하는구나!” 3-18. 子曰: “事君盡禮, 人以爲諂也.” 예를 다함과 아첨은 전혀 별개의 사태이다. 인간의 선의의 표현으로서의 질서있는 삶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은 수학자가 수의 질서를 아름답다고 느끼듯이, 물리학자가 우주의 질서를 아름답다고 느끼듯이, 생물학자가 생물을 지배하고 있는 놀라운 호미오스타시스(Homeostasis)의 질서를 아름답다고 느끼듯이, 공자는 인간세에 존속되는 예의 질서를 아름답게 느꼈을 것이다. 공자는 모든 인간에 대하여, 그 신분과 상황의 차이에 따라 예를 다하는 삶을 실천한 사람이었다. 그것은 비단 나에게서 높이 있는 자에게만 해당되는 사..
17. 이미 사라진 예법이지만 흔적이 남아 있길 3-17. 자공이 초하루를 알리는 제식에 바치는 희생양 제도를 없애려 하였다. 3-17. 子貢欲去告朔之餼羊.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야! 너는 그 양을 아끼는구나, 나는 그 예를 아끼노라.” 子曰: “賜也, 爾愛其羊, 我愛其禮.” 이 장을 이해하기 전에 우리는 ‘칼렌다(calendar)’ 즉 역(曆)이라고 하는 인류 문명의 특유한 현상을 본질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역(曆)이란 일정한 시간의 길이를 나누는 시스템의 총칭인데, 이 역이란 것은 문명화된 삶의 기본적 사무를 규율화시키는 가장 본질적인 제도인 것이다. 농업, 상업, 정치, 종교, 과학이 모두 이 역(曆)과 관련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런데 우리에게 인지되는 가장 자연스러운 시간의 주기성은 낮..
16. 가죽을 뚫는 활쏘기를 비판하다 3-1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활쏘기는 과녁의 가죽을 뚫는 것을 장끼로 삼지 않고, 힘을 쓰는 운동은 획일적 기준으로 그 등급을 매기지는 않는다. 이것이 곧 옛사람의 도이다.” 3-16. 子曰: “射不主皮, 爲力不同科, 古之道也.” 이 장의 해석을 문법적으로 고주와 신주에 큰 차이가 있으나 그 철학적 함의는 크게 차이가 없다. 고주는 ‘사부주피(射不主皮)’와 ‘위력부동과(爲力不同科)’를 고지도(古之道)의 두 개의 다른 사례로서 병치시켜 두 문장으로 만들었고, 신주는 이 양자를 한 사례를 설명하는 한 문장으로 연결시켰다. 따라서 ‘위력부동과(爲力不同科)’는 ‘사부주피(射不主皮)’를 설명하는 조건절로 종속되고 만다. 나는 신주의 해석을 존중하면서 고주의 기본 틀을 ..
15. 공자, 태묘에 들어가 모든 절차를 묻다 3-15. 공자께서 태묘에 들어가 제사가 진행됨에 매사(每事)를 물으시었다. 3-15. 子入大廟, 每事問. 혹자가 말하기를: “그 누가 저 추인(鄹人)의 자식을 일러 예를 안다고 하는가? 태묘에 들어와 매사를 물으니.” 或曰: “孰謂鄹人之子知禮乎? 入大廟, 每事問.” 공자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시었다: “묻는 것이 곧 예니라.” 子聞之曰: “是禮也.” 곡부에 가면 지금도 주공 단을 모신 태묘가 웅장한 자태를 과시하고 있다. 무분별한 홍위병의 상흔이 아직도 지난 시절의 무지와, 역사의 홍류 속에서 끊임없이 휘몰아치곤 하는 비공(批孔)의 함성을 전해주고 있지만, 그 소조한 뜨락, 기나긴 신도와 하늘을 가르는 청동빛 서린 측백나무의 늘어진 모습들은 원성(元聖..
14. 공자는 주나라를 이상향으로 여기다 3-14.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주나라는 하나라 은나라 이대(二代)를 거울삼았다. 찬란하도다, 그 문화여! 나는 주를 따르리로다.” 3-14. 子曰: “周監於二代, 郁郁乎文哉! 吾從周.” 이 장은 이미 여러 문맥에서 거론되었기에 장황한 설명이 필요치 않다. 혹자는 ‘감(監)’을 단순하게 주(周)와 하(夏) 은(殷) 두 왕조를 비교한다는 뜻으로 풀기도 하지만, 역시 ‘감(監)’은 그런 비교의 뜻에 국한될 수 없다. 계승발전시켰다는 적극적 뜻으로 풀어야 마땅하다. 주나라는 하나라와 은나라의 장단득실을 참고하여 새로운 인문주의 문화를 꽃피웠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하는 자연주의적 문화요, 은은 초월주의적 종교문화요, 주는 인문주의적 문화다. 주(周)는 하..
13. 아랫목 신보다 부뚜막 신에게 아첨해야 하지 않소 3-13. 왕손가가 공자에게 물어 말하였다: “아랫목 신에게 잘 보이기보다는 차라리 부뚜막 신에게 잘 보이라 하니,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3-13. 王孫賈問曰: “與其媚於奧, 寧媚於竈, 何謂也?”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렇지 않다! 하늘에 죄를 얻으면 빌 곳이 없다.” 子曰: “不然, 獲罪於天, 無所禱也.” 이에 관해서는 구구한 주석이 많으나 다 각설하고 내 생각대로 간결하게 해설하겠다. 왕손가(王孫賈)는, 「헌문」편 20장에 공자자신의 말 속에서 잘 해설되어 있듯이, 위나라의 현신(賢臣) 삼인(三人) 중의 한 사람이다. 위국(衛國)의 대부인데, 주나라 왕손으로 위국으로 출사(出仕)했다는 설도 있고, 원래 위나라 사람으로 ‘왕손’은 성씨일 뿐..
12. 제사엔 예(禮)보다 정성이 먼저다 3-12. 제사를 지낼 적에는 있는 것 같이 하라 함은, 하느님을 제사 지낼 적에는 하느님이 계시는 것 같이 하라는 뜻이다. 3-12. 祭如在, 祭神如神在.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내가 직접 참여하여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면 그것은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과도 같은 것이다.” 子曰: “吾不與祭, 如不祭.” ‘자왈(子曰)’ 앞에 있는 문장은 분명 공자의 말이 아니며, 공자의 말에 선행하는 당대의 관용적 표현이거나 어떤 고전의 인용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그 인용문이 어디까지냐 하는 것이다. 정자(程子: 이천伊川)는 ‘제여재(祭如在)’의 ‘제(祭)’는 자기 조상을 제사지내는 것을 말한 것이요, ‘제신여신재(祭神如神在)’의 ‘제신(祭神)’은 자기 조상 외의 신들을 제사지내..
11. 체제사를 알면 나라를 다스림은 쉽다 3-11. 어떤 이가 체에 관한 해설을 듣고자 하였다. 공자께서 이에 말씀하시었다: “나는 알지 못한다. 그 설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천하를 대함에 있어서, 그것을 여기에 놓고 보는 듯 하겠구나!” 그러면서 손바닥을 가리키셨다. 3-11. 或問禘之說. 子曰: “不知也. 知其說者之於天下也, 其如示諸斯乎!” 指其掌. 이 장 역시 난해하다. 그러나 그 대화의 형식이나 기술의 방식이 생기발랄하고 매우 구체적인 상황을 잘 그려내고 있다. 당시 이미 체(禘)에 관한 학문적 논의(설說)가 있었다. 그러나 합의된 이론(理論)이 없고 이론(異論)이 분분하였다. 더욱이 체제사가 노나라에서 거행되고 있는 현실은 전혀 당위적 형태를 반영하고 있질 못했다. 물론 이 11장은 상기(上記..
10. 노나라가 참람되이 천자의 제사인 체(禘)제사를 지내다 3-10.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체제사에서, 강신주를 따르는 절차 이후로는, 나는 현행의 체제사를 보고 싶지 않다.” 3-10. 子曰: “禘自旣灌而往者, 吾不欲觀之矣.” 사실 이 장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 길이 없다. 따라서 해석에는 무한한 가능성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문장 그 자체는 문법적으로는 의미가 명료하다. 고주에 따라 그 뜻을 새기면 다음과 같다. 체(禘)라는 것은 왕자(王者)의 대제(大祭)다. 이것은 군주가 선조의 위패들을 모신 태묘에서 철에 따라 지내는 대제인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종묘대제(宗廟大祭)야말로 체(제사의 한 전형을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종묘의 정시제(定時祭)는 춘하추동 사계절의 시작과 납일(臘日)에 지..
9. 문헌이 부족하여 증명할 수가 없네 3-9.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하나라의 예는 내가 말할 수는 있지만 그 후예인 기나라가 증험을 대주지 못하며, 은나라의 예 또한 내가 말할 수는 있지만 그 후 예인 송나라가 증험을 대주지 못한다. 문헌자료와 구두자료가 모두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 자료들이 충분하다면, 나는 하은의 예를 증명해낼 수 있을 텐데.” 3-9. 子曰: “夏禮吾能言之, 杞不足徵也; 殷禮吾能言之, 宋不足徵也. 文獻不足故也, 足則吾能徵之矣.” 나는 여기에 숨은 뜻을 명료하게 드러내어 쉽게 이해되도록 번역을 했지만, 기실 이 장의 문장만으로 그 명료한 뜻을 파악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그 대강은 반드시 「위정(爲政)」편의 23장과 본편의 14장의 미언대의(大義)와 아울 러 함께 파악하여야 ..
8. 흰 바탕이 있어야 색칠할 수 있다 3-8. 자하(夏)가 여쭈어 말하였다: “‘어여쁜 웃음 보조개 짓고, 아리따운 눈동자 흑백이 분명하니, 흰 것으로 광채를 내도다!’ 하니, 이것은 무엇을 일컬은 것입니까?” 3-8. 子夏問曰: “ ‘巧笑倩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 何謂也?”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것을 뒤로한다.” 子曰: “繪事後素.” 자하가 말하였다: “예가 제일 뒤로 오는 것이겠군요?” 曰: “禮後乎?”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를 깨우치는 자, 상(商: 자하의 이름)이로다!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겠구나.” 子曰: “起予者商也! 始可與言詩已矣.” ‘회사후소(繪事後素)’라 제목 지을 수 있는 이 장은 중국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논점을 제기하는 공자의 말로..
7. 군자다운 경쟁 3-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다투는 법이 없다. 그러나 굳이 다투는 것을 말하자면 활쏘기 정도일 것이다. 상대방에게 읍하고 사양하면서 당에 오르고, 또 당에서 내려와서는 벌주를 마신다. 이러한 다툼이야말로 군자스럽지 아니한가!” 3-7. 子曰: “君子無所爭, 必也射乎! 揖讓而升, 下而飮, 其爭也君子.” 노자는 ‘부쟁(不爭)’을 말하였다. 쟁(爭)의 덕성에 의한 사회적 질서는 결국 인간을 유위(有爲)의 파탄으로 몰아갈 뿐이라고 질타한다. 공자 역시 군자(君子)의 덕성으로서 쟁(爭, competition)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자는 노자처럼 쟁(爭)을 근원적으로 거부하는 그러한 무위(無爲)의 철학을 구가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쟁을 근원적으로 거부한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