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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제10장 보수성과 개혁성 보수성과 개혁성은 기본 성정(性情)과 사심(邪心), 태행(怠行), 박통(博通), 독행(獨行) 등이 모두 어울려서 종합적으로 나타나는 태도다. 체질에 관한 이야기가 마무리되어가는 시점에서 한 번쯤 다뤄볼 만한 주제다. 개요를 먼저 이야기하자면, 기본 성정(性情)은 개인적 성향의 보수성/개혁성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사회적 성향의 보수성/개혁성은 굳이 체질에 따른 경향을 보이지는 않는다. 1. 개인적 성향과 사회적 성향의 차이 체질에 대해 설명한 시중의 책들을 보면, ‘태음인은 보수적이다’ ‘태양인은 급진적이다’라는 식의 표현들이 종종 나온다. 그런데 ‘보수’ ‘진보’라는 용어가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른 용어들 중 하나라서 문제다. 말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듣는 사람이 받아..
5. 독행(獨行), 태행(怠行)에 관한 약간의 사족 독행(獨行)과 태행(怠行)의 문제에 있어 까다로운 점은, 다른 기운을 배우는 것은 맞는데 그것이 무엇에 능해지기 위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사심(邪心)과 박통(博通)에 있어서는 이 문제가 간단하다. 예를 들어 태양인이 태음 기운을 배우려고 한다는 것과, 태음인의 사고방식을 배우려 한다는 것은 같은 문제가 된다. 태음 기운에 해당되는 천기(天機)도 인륜(人倫)이고, 태음인이 잘 느끼는 천기(天機)도 인륜(人倫)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사(人事)에 있어서는 태양과 소양, 태음과 소음이 바뀌고 있어서 까다로워진다. 즉 태양인이 정(情)으로 인사(人事)를 하는 것에 있어 약점을 극복하려고 소음기운을 배우려 한다면, 소음 기운에 해당되는 인사인 거처(居處)의 문..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일지도 모른다 부모나 선생님이 아이를 바로 키워서 사심(邪心)이나 태행(怠行)에 빠져들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요령도 마찬가지다. 소양인 아이에게 마무리에 대한 지나친 강박관념을 불러일으키면, 확실히 그 아이는 어른이 되어 나심(懶心)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마무리하는 버릇은 길러주어야 한다. 그러나 가르치는 사람은, 마무리를 못하는 것이 아이의 능력 부족임을 알아야 한다. 이를 도덕성의 부족이라고 몰아붙여서는 절대 안 된다. 아이가 나쁜 것이 아니라, 부족한 것일 뿐이다. 부족한 것을 나쁘다고 말하는 순간, 아이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능력의 부족임을 지적하고, 능력을 키우기 위한 계획을 아이와 어른이 같이 짜나가고 실행할 때, 아이에게 부족한 부분..
강박관념에서의 탈피와 기분 전환 다른 체질의 독행(獨行)에 대해서는 다 스스로 노력해서 얻는 경지라고 하면서, 유독 소양인에 대해서만 주위에서 격려해주면 재간(才幹)이 발휘될 여지가 높다고 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어 보인다. 필자는 왜 소양인만 편애하느냐고 독자들의 야단을 맞을 것도 같고, 결국 재간(才幹)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도 근본은 소양인 자신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그 노력을 발휘하는 방향은 자신의 장점을 살리는 쪽이라는 것도 마찬가지고. 소양인의 나심(懶心)이 발동되기 쉬운 순간, 즉 일을 벌여놓고 마무리를 못하는 순간을 생각해보자. 주변 사람들 중에 “꼴좋다, 벌여놓고 마무리도 못하고…….” 이렇게 나오는 사람이 더 많을까? 그렇지 않다. 나심(懶心)의 문제는 주로 가까운 사람과의 문제이기 ..
YS의 당무 거부와 IMF 대처 이런 식으로 나심(懶心)은 주로 작은 집단에서 발생하기에 독자들과 공유할 만한 사례가 좀 드문데, 마음 읽는 공부 하라고 다행이 사회적인 일에서 나심(懶心)을 보인 사례가 있다. YS가 당무(黨務)를 거부하고 고향에 내려가 칩거했던 일을 기억하는지? 3당 합당된 민자당에서 YS가 당대표가 되었는데도 박철언이 끊임없이 견제를 하자 벌어졌던 일이다. 그걸 벼랑 끝 전술이니, 노태우, 박철언이 결국은 굴복할 수밖에 없음을 확신한 정치 9단다운 고단수 술수니 하지만, 꼭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사람은 한 가지 동기나 계산만을 기준으로 행동하는 법은 절대 없다. 젊은 시절에는 간혹 그런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도 자세히 알고 보면 꼭 겉으로 드러난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자신..
소양인의 자기 비하 나심(懶心)의 극복을 위해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이 ‘자기 긍정감’이다. 소양인은 모든 감정이 기복이 좀 심한 편이지만, 자신에 대한 평가 역시 기복이 심하다. 일을 벌일 때는 자신에 대한 평가가 높은 상태에서 벌인다. 힘이 벅차면 그 평가가 갑자기 낮아진다. 그 상황이 되면 그냥 뒤로 나자빠져서 남들보고 알아서 해결하라고 버틴다. 그래서 나심(懶心)을 동무(東武)는 ‘자비(自卑)’라고 설명한다. 태음인의 치심(侈心)을 자존(自尊)이라고 설명한 것과 대를 이룬다. 자기 비하의 마음이 나심(懶心)이라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엄마가 파출부인 줄 아니?” 어떤 상황일까? 저녁 설거지 다 끝날 즈음에 아이들이 도시락을 꺼내놓을 때 하는 말이다. 이게 약한 나심(懶心)의 표현이면서 과..
가정에 일반론을 적용하는 문제 소양인의 나심(懶心)이 문제되는 것도 태양인의 절심(竊心)의 경우와 비슷하다. 태양인의 절심(竊心)을 설명할 때, 가정이나 소집단과 같이 노동력 투입의 불균형이 바로 드러날 수 있는 규모 이하가 될 때 문제가 된다고 했다. 소양인의 나심(懶心)이 문제되는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집안일에서, 친구 사이에서, 친한 동료 사이에서 … 나심(懶心)은 늘 이런 곳에서 발동하고, 이런 부분에서 발동되었을 때 주로 문제를 일으킨다. 소양인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기준에 맞춰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큰 집단에서는 일을 벌이는 소양인의 방식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물론 모든 집단 구성원이 소양인의 방식으로 설치다가 일시에 나가떨어지면 문제가 되겠지만, 집단이 커질수록 ..
4. 나심(懶心)과 재간(才幹)/ 소양인의 태음 기운 나심(懶心) 이제 소양인의 태행(怠行), 독행(獨行)만 설명하면 이론적인 부분은 마무리가 된다. 각 체질별로 사상의 기운을 고루 갖추는 방법과 그 과정에서 빠지기 쉬운 함정에 대한 설명이 마무리되는 셈이다. 자, 시작하자. 소양인의 태행(怠行)을 나심(懶心)이라고 한다. 나(懶)란 게으르다는 뜻이다. 그런데 태행(怠行)이라고 할 때의 태(怠)도 게으르다는 뜻이다. 나(懶)와 합치면 ‘나태(懶怠)’가 되어 ‘게으르다’에 딱 대응되는 한자어가 된다. 각 체질의 사람들이 다른 체질의 인사(人事)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 흉내 내는 것을 태행(怠行)이라 부른다. 즉 어설피 알고 대충 흉내 내는 것 자체가 좀 쉽게 해보려는 게으른 짓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치심(侈心)과 위의(威義)의 예 치심(侈心)에 대해서도 유명인의 예를 좀 들면 이해가 쉬울 텐데, 뭐 너무 흔해서 굳이 예로 들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군사 문화에서 갓 벗어난 상황이나 천민 자본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사회는 태음인의 치심이 발동하기 아주 좋은 상황이다. 태음인인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의 90% 이상이 치심(侈心)을 강하게 내보이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교수, 의사 같은 직업에도 치심(侈心)이 강한 사람이 어느 정도 절제되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고 느껴진다. 심지어는 종교인 중에도 치심(侈心)이 강하게 읽히는 사람이 많으니까. 기술자 집단이 비교적 치심(侈心)이 덜 드러나는 집단인 듯하다. 치심(侈心)은 굳이 특정인을 예로 들지 않겠다. 주변에 찾아보면 무지하게 흔하니까. 위의..
자신감 모든 것을 지키려 하지 않는다는 것과, 타인을 배려하는 방법을 익힌다는 두 가지 관점이 동시에 제시되어서 위의(威義)라는 것이 무엇인지 오히려 헷갈릴지도 모르겠다. 이 두 가지는 서로 통하는 것이다. 결과를 중심으로 보면 남을 배려하는 방식을 익혔을 때 나타나는 세심함이 위의(威義)의 모습에 더 가깝다. 근본적으로 위의(威義)란 소양인의 모습을 태음적인 방식으로 구현하는 것이니까. 소양인의 남에 대한 배려는 자신의 기분에 따라 들쭉날쭉한 것에 비해, 태음인의 위의(威義)는 일관성이 있고 지속성이 있다. 게다가 자신을 드러내려는 경박함이 없다. 그러니 대인의 위의(威義)라 부를 만하다. 또 소양인의 배려는 사회 통념에 맞추는 경향이 있는 것에 비해, 태음인의 위의(威義)는 상대가 처한 특수성을 고려..
지나친 수비 성향 위의(威義)에 도달하는 것을 방해하고 치심(侈心)에 빠지게 만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 태음인의 지나친 수비 성향이다. 아이들이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하는 것을 봐도 그런 모습이 나타난다. 확실히 태음인은 수비에 치중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스타크래프트를 잘 아는 사람은 이 말의 의미를 알 것이다. 게임 하나를 할 때도 체질의 영향이 많이 드러난다. 특히 하수 시절일수록 그렇고, 고수가 되면 그 특성이 점차 엷어진다】. 원래 태음인은 매사에 수비적이다. 함부로 남을 공격하는 일이 없다. 그런데 수비에 자신이 없어지면, 즉 겁을 먹게 되면 과잉 수비가 나타난다. 남이 나를 건드릴까 두려워 필요 이상으로 어깨에 힘을 주면서 ‘나 건들지 말란 말야’라고 무언의 시위를 하게 된다. 이게 치심..
지하철에서 너무 개념적인 이야기만 이어지고 있으니, 시선을 지하철로 옮겨보자. 지하철에 앉아 있는데 노인 한 분이 탔다. 경로석은 다 차 있고, 아무래도 일어나서 자리를 비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리를 양보는 하는데, 양보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어떻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렇다. 노인분이 두리번거리며 빈 자리를 찾다가 나와 눈이 마주칠 때 일어난다.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이쪽으로 다가오시기 시작하면 내리는 척하고 문 앞으로 간다. 혹시 옆에서 젊은 사람이 잽싸게 달려들면, 그때는 “노인 분 앉으시라고 양보한 건데요”라고 조용히 말하고, 그런 불상사가 안 생기면 그냥 문 앞으로 가서 서면 된다. 만일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라고 큰 소리로 말하며 자..
적응에 대한 강박관념 결국 태음인이 치심(侈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빠른 적응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 나는 원래 느려’라고 인정하고, 차분히 천천히 적응해나가라는 것이다. 치심(侈心)이 극복되었을 때 나타나는 독행(獨行)을 위의(威義)라 부른다. 보통 쓰는 말로는 위엄(威嚴)이라는 단어에 가까운 뜻이다. 태음인의 위의의 모습을 검토하고 나서, 치심(侈心)을 극복하고 위의에 도달하는 과정을 검토해보자. 거지왕 김춘삼이라는 사람이 있다. 거지에서 출발해서 나중에는 재산도 꽤 모으고, 사회적 영향력도 큰 명사가 되었다. 그런데 거지로 동냥 다닐 때 들고 다니던 깡통을 꼭 승용차에 싣고 다녔다고 한다. 거지였을 때의 마음을 잃지 않겠다는 것이다. 어떤가? 사회적 명사가 타고 다..
멋 부리기 돈을 쓰는 문제로만 따지자면 아무래도 소양인이 가장 사치스럽다. 일단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 충동구매 같은 것도 잘하고, 예쁜 것, 고급스러운 것에 대한 집착도 강하기가 쉽다. 멀쩡하게 아직 쓸 수 있는 물건을 유행이 지났다며 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의외로 소양인은 사치스럽다는 느낌보다 ‘고상하다’ ‘안목이 있다’라는 느낌을 주는 경우가 훨씬 많다. 소양인은 멋을 알고, 제대로 멋을 부린다는 것이다. 멋이라는 것도 결국은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에 맞추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소양인은 자신이 부릴 수 있는 최대치까지 멋을 부리고, 최대치에 맞춰서 소비한다. 그걸로 만족하지 못할 때는 무리를 해서라도 수입을 늘리려고 애쓴다. 하지만 수입의 한도를 넘어서는 사치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또 들이는 돈에..
3. 치심(侈心)과 위의 태음인의 소양 기운 어깨에 힘주기 다음은 태음인이 소양 기운을 얻는 이야기다. 역시 태행(怠行)으로 가는 길과 독행(獨行)으로 가는 길이 있을 것이다. 이중 태행(怠行)으로 가는 길을 동무(東武)는 치심(侈心)이라고 했다. 사치스러운 마음이라는 것이다. 결론을 먼저 말하고 가자면, 쓸데없이 어깨에 힘을 주는 것이 치심(侈心)이다. 남에게 무언가 드러내 보이려는 마음이다. 소양인의 당당함은 대중의 정서에 대한 빠른 파악에서 나온다. 그런 말이 있다. 똥개도 자기 바닥에 가면 50점은 접어준다고, 자기 바닥이라는 것이 별 게 아니다. 돌아가는 켯속을 잘 알고 있는 곳이 자기 바닥이다. 소양인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바에 대한 파악이 빠르다. 자존심이상해서 억지를 필 때를 제외하면, 대부..
공간적 구분, 시간적 구분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먼저 극복한 모습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보자. 태양인의 독행(獨行)을 방략(方略)이라고 부른다. 태양인이 절심(竊心)을 극복하면 대인의 방략(方略)이 나온다고 되어 있다. 방략(方略)에 쓰인 방이라는 글자는 역시 나누어진 작은 부분이라는 뜻이다. 즉 나누어진 작은 부분에 적용할 책략이라는 것이다. 소음인의 독행(獨行)인 식견(識見)을 이야기하면서 소음인은 굳이 따지자면 견(見)을 세우는 쪽이 아니라 식(識)을 얻는 쪽에 약점이 있다고 했다. 같은 방식으로 태양인의 방략(方略)을 따지자면 문제는 략(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방(方)에 있다. 나눌 것을 나누고, 관계없는 것을 배제하고, 주변을 정리하고, 좁혀진 영역에 집중하는 등의 과정에 태양인의 약점..
절심(竊心)이 두드러지는 경우 사심(邪心)과 태행(怠行)을 설명하면서, 사심(邪心)이 강해지거나 태행(怠行)을 하게 되면 주변에 피해를 줄 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잘못된 결과를 낳는다는 식으로 설명해왔다. 그런데 태양인의 절심(竊心)이 다른 사람의 성과물을 자신에게 돌리는 경우만을 낳는다면 이건 좀 불공평하다. 행하는 태양인에게 이득만 주게 되니까. 그런데 물론 그럴 리가 없다. 공적인 일에 있어서는 절심(竊心)을 발동시킨 태양인이 자신의 태행(怠行) 때문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 경우가 좀 드물다. 뭐 쓸데없이 골목대장 노릇을 하려 한다는 오해는 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결과가 좋으면 문제 없이 이해되기도 한다. 결과가 나빠서 피해를 보는 것은 절심(竊心) 때문은 아니니까 별개의 문제다. 그러나 남이 대..
태양인이 일하는 방식 태양인의 절심(竊心)은 소음인을 잘못 흉내 내서 생기는 것이니, 소음인이 일하는 방식을 간단히 검토해보자. 소음인은 본래 혼자 기준을 세우고 혼자 일하는 것에 익숙하다. 팀 작업이라 할지라도 할 일이 정확히 나눠지고 기준이 확실할 때는 대단한 집중력을 보이며 효율적으로 일한다. 이런 소음인의 모습을 태양인이 흉내 내려 한다. 깔끔하고 확실하게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모습을 가져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소음인처럼 몰두한다. 그럼 잘 될까? 잘 될 리가 없다. 소음인이 몰두하기 전에 하는 사전 정지 작업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음인은 영역을 나누는 일에 능하다. 지방(地方)을 맛보는 일에 강하다고 할 때의 방(方)이 나누는 기운이라는 이야기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착각하지 말아야 할..
2. 절심(竊心)과 방략(方略) / 태양인의 소음 기운 태양인의 도둑질 이제까지 해오던 순서대로 한다면 소양 기운을 이야기할 차례다. 그러니까 태음인의 소양 기운을 이야기할 차례인데, 순서를 조금 바꿔보자. 소음인 이야기를 하면서 태양인의 경우와 계속 비교했으니, 이해가 쉽도록 태양인이 소음 기운이 필요한 영역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먼저 해보자. 태양인의 태행(怠行)은 욕심(慾心), 혹은 절심(竊心)이라 부른다. 동무(東武)는 이를 절물(竊物)이라고 설명한다. 소음인의 탈심(奪心), 천심(擅心)을 탈리(奪利)라고 표현한 것과 아주 대조된다. 탈(奪)은 드러나게 빼앗는 것이고, 절(竊)은 몰래 훔치는 것이다. 리(利)를 빼앗는다는 것이 명성을 쫓는 것이라면 물(物)을 훔치는 것은 구체적 성과를 훔친다는 것이..
이름 붙이기 소음인이 탈심(奪心)이 앞서서 창조에 집착하면, 함부로 이름 붙이기를 한다. 일상용어 하나를 불쑥 끌고 와서는, 그것이 상당한 뜻을 품고 있는 철학적 단어라고 주장한다. 거기까지는 좋다. 사람들이 가볍게 생각했던 내용에 깊은 뜻이 숨어 있음을 환기시켜서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이야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세상을 보는 사람들의 시각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고, 철학의 가장 기본이며, 인류가 앞으로 나아갈 바라고 주장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되기 시작한다. 똥 철학, 밥 철학, 숟가락 철학, 젓가락 철학, 몸 철학, 손가락 철학, 발가락 철학 등등, 하나하나가 으리으리하고 대단한 것들인데, 어느 것이 진짜고 어느 것이 과장인지 알 길이 없다. 그런데 막상 그 내용을 들어보면 굳이 새 이름이..
소음인의 창조(創造) 소음인의 탈심(奪心)과 식견(識見)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잘 아는 소음인에게 보였더니, “그렇다면 소음인은 창조력이 없다는 건가? 수학이나 과학같이 논리를 따지는 분야에서는 소음인이 최초로 밝힌 부분도 상당히 많을 것 같은데”라는 반론을 받았다. 그럴 것이다. 아주 새로운 영역을 소음인이 개척한 경우도 찾아보면 꽤 있을 것이다. 또 굳이 논리가 아니라 예술 분야에서도 소음인이 새롭게 연 분야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창조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어느 조각가가 한 이런 말을 읽은 기억이 난다. “나는 나무 속에 형상이 숨어 있다고 느낀다. 나는 내가 무엇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 나무 속에 숨겨져 있는 형상을 정확하게 드러내려고 노력할 뿐이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생..
제멋대로 기준 정하기 이것이 외부로 드러나기는 천(擅), 즉 제멋대로 하는 모습으로 드러나게 된다. 출발은 분리해야 할 것을 분리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명성, 당파의 이익과 같은 것은 소음인의 본성을 잃지 않으면 명백히 판단의 기준에 넣지 않았을 부분이다. 이를 판단 기준으로 사용하면서 문제가 커진다. 그렇게 잘못 들어간 부분들은 논리적 모순을 낳고, 그 모순 때문에 공격당하게 된다. 이제는 당연히 고려해야 할 내용을 고려 대상에서 빼는 식으로 방어한다. 정보 왜곡에서 말했던 정리 과정에서의 왜곡을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 논란거리가 되는 문제를 따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고려되어야 하며, 무엇을 고려 대상에서 제외해야 하는가의 기준을 그때그때 바꾼다. 태양인이 주장하는 모습을 언뜻 보면 그런 면이 보인다..
명성에의 집착 식견(識見)에 도달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보자. 비교가 되어서 식견(識見)이 뭔지 더 선명해질 것이다. 소음인이 식견(識見)에 도달하는 것을 방해하는 태행(怠行)을 탈심(奪心)이라고 했다. 무언가 빼앗으려는 마음이라는 건데, 이게 연결이 쉽지 않다. 빼앗으려는 마음이 있으면 왜 식견(識見)이 생기지 못할까? 이 부분을 동무(東武)가 다른 용어로도 설명하는데, 소음인의 태행(怠行)을 천심(擅心)이라는 용어로 쓴 곳도 있다. 천(擅)이란 보통 ‘제멋대로 할 천’으로 새긴다. 그리고 이걸 다시 설명하면서 천심이란 탈리(奪利)라고 설명한다. 여기까지 해놓고 생각해보도록 하자. 요점은, 소음인이 태양인의 행동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 흉내 내는 모습이 천(擅)이요, 탈(奪)이라는 것이다..
1. 탈심(奪心)과 식견(識見) / 소음인의 태양 기운 어떻게 식(識)을 얻을 것인가 소음인은 자신의 락성(樂性)으로 소음 기운이 필요한 일을 처리한다. 또 희정(喜情)으로 태음 기운이 필요한 일을 처리한다. 수양을 잘해서 경륜(經綸)의 경지에 도달하면 소양 기운이 필요한 일을 잘 처리할 것이고, 사심(邪心)에 빠져 긍심(矜心)이 강해지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마지막 남은 것이 태양 기운이 필요한 일이다. 이 부분, 즉 소음인의 독행(獨行)에 해당되는 부분을 동무(東武)는 식견(識見)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식견(識見)을 얻는 것을 방해하는 태행(怠行)으로는 탈심(奪心)을 든다. 그러니까 ‘소음인의 머리에 탈심(奪心)이 없으면 대인(大人)의 식견(識見)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된다. 식견(..
제9장 태행(怠行)과 독행(獨行) 태행(怠行)이란, 글자 그대로 게으른 행동이다. 독행(獨行)이란, 지조를 지키며 꿋꿋이 나아간다는 뜻이다. 사심(邪心)과 박통(博通)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자신이 약한 영역에 요구되는 능력을 얻고자 할 때 남을 흉내 내어 잘못 가는 경우와, 제대로 도달하여 뛰어난 능력을 얻게 되는 경우를 각각 가리키는 말이다. 사심(邪心)은 다른 체질의 마음 씀을 배우려 할 때 어설피 흉내 냄으로써 마음 씀이 잘못되는 것이고, 박통(博通)은 어설피 흉내 내지 않고 자신의 장점을 꾸준히 늘려감으로써 자신이 약하던 영역에서 바르게 마음을 쓰는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사심(邪心)과 박통(博通)이 마음의 문제라면, 태행(怠行)과 독행(獨行)은 행동의 문제다. 타인의 행동을 잘못 흉내 내는 것이..
4. 평가 단계에서 태양인이 범하는 오류 태양인의 강한 직관은 정보 평가에서 강점을 가진다. 그러나 그 직관이 공정한 평가를 방해하는 경우가 있다. 태양인은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의 의도를 빨리 읽어낸다. 그런데 그 의도가 틀렸거나 자신이 추구하는 바와 다르다고 생각할 때는, 그 정보를 공정하게 평가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즉 전달자의 의도에 대한 평가와 정보에 대한 평가를 뒤섞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기 과시를 목적으로 떠드는 사람에 대해서 태양인은 필요 이상으로 냉담하다. 그런 사람들이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든다. 사소한 부분에 걸려서 전체적인 평가를 그르치는 것은 어느 체질이나 범하는 오류다. 소음인의 경우 부분적으로 비논리적인 부분이 있으..
3. 전달 단계에서 소양인이 범하는 오류 소양인은 정보 전달 과정에서 오류를 범하기 쉽다. 소양인은 다른 사람에게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도 잘하고, 남에게 전하는 것도 잘한다. 남에게 받아들이는 것을 잘한다는 것은 눈치가 빠르다는 것이고, 전달하는 것을 잘한다는 것은 상대가 알아듣기 쉽게 전달한다는 의미다. 감성에 예민하다는 것이 이렇게 작용한다. 그런데 문제는, 소양인은 정보를 받아들일 때 그 정보에 대한 상대의 느낌을 받아들이고, 정보를 전달할 때 그 정보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전달한다는 것이다. 느낌의 전달이라는 것이 부정확한 것 같지만, 사실은 아주 효율적인 전달 방법인 경우도 많다. 느낌이 실린 정보 전달은 그 정보에 대한 평가, 그 정보의 중요성, 정보 전체에서 중요시할 부분 등, 2차적 정보..
2. 정리 단계에서 소음인이 범하는 오류 소음인은 정보 정리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태음인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가장 강한 영역에서 왜곡을 범할 가능성도 가장 커지는 것이다. 수집된 정보 중에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것들을 걸러내고, 드러난 사실의 전후관계 및 인과관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정리하는 능력, 이것이 소음적인 능력이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이 소음인의 왜곡이 발생하기 쉬운 지점이다. 즉 객관적 처리가 정보 정리에 필요한 핵심이지만 바로 이 객관에 대한 맹신이 왜곡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소음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의 대부분이 서로 논리적으로 연결되는데 한두 가지 정보만 연결이 잘 안 되면, 연결이 안 되는 정보를 배제하려 한다. 누구나 그럴 수 있지만 소음인에게 유독 이런 경향이 강..
1. 수집 단계에서 태음인이 범하는 오류 정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들은, 개별적인 사실들은 정보라고 부르지 않고 첩보라고 부른다. 첩보들이 모여서 하나의 방향을 나타낼 때 비로소 정보라고 부른다. 판단을 서두르는 사람은 적은 양의 첩보를 바로 정보로 가공하며, 바로 정보화되지 않는 첩보는 가치가 없다고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첩보를 충분한 양이 될 때까지 모으지 않는다. 내용이 복잡한 경우에는 첩보들을 무시하지 않고 일단 모아두는 버릇이 있어야 정보로의 가공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결국 선 접수 후 판단의 버릇이 있는 태음인들이 정보 생산에 강해진다. 정보 생산이라는 용어는 좀 전문적인 이야기이고, 그냥 일반적으로 쓰는 표현으로는 이 단계까지를 정보 수집이라고 표현하니까, 거기에 맞추자...
제8장 정보의 왜곡 세상을 인식하는 과정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과정을 거쳐 이뤄진다. 이 과정이 왜곡되면 세상에 대한 인식 역시 왜곡된다. 따라서 사회적으로는 언론의 문제와 관련된다. 또한 정보의 문제는 사람들 사이의 교류의 문제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관계에서의 정보 왜곡은 사람들 사이의 논쟁이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앞에서 천시(天時)와 사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철새 정치인들에 대해 잠깐 언급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철새 행각이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진짜로 믿고 있는 경우가 꽤 많다는 내용이었다. 정보 왜곡 문제도 마찬가지다. 물론 ‘어차피 누구나 자기 이익을 위해서 적당히 왜곡하며 사는 것 아니냐’는 뻔뻔스런 논리를 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명백한 왜곡에..
사심(邪心)으로서의 공주병과 도사병 사심(邪心), 박통(博通)이 정리된 기념으로 가벼운 이야기를 하나 하도록 하자.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아주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사심(邪心)의 형태가 있다. 일상생활에서 많이 보이기도 하면서 상당히 강한 사심(邪心)에 해당되는 것이라, 이해하기도 쉬운 예가 될 것이다. 긍심(矜心), 과심(誇心)은 강한데 사회성이 부족하면 보통 공주병의 형태로 나타난다【여기서 공주병은 공주병/왕자병을 통칭하는 말이다. 여성을 비하해서 공주병을 대표로 잡은 것이 아니라, 공주병이라는 말이 왕자병이란 말보다 먼저 나왔기에 대표 용어로 삼았다】. 그런데 그게 또 긍심(矜心)형과 과심(誇心)형의 차이가 있다. 소음인의 긍심(矜心)에 토대를 둔 공주병은 ‘나 잘났어’ 형의 공주병이다. 남들에게 돋..
사심(邪心)과 태행(怠行)의 비교 사심(邪心)에 대해 이해해둘 것 하나만 더 이야기하고 마무리하자. 사심(邪心)과 박통(博通)이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과 관련된 문제다. 즉 성(性)과 관련해서 천기(天機)에 있어 자신이 약한 영역을 이해하고자 할 때 나타나는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자면 사심(邪心)에 빠졌다거나, 박통(博通)에 도달했다고 하는 것은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사고방식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이를 설명할 때는 아무래도 그런 사고방식에 의해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예로 들어 설명할 수밖에 없다. 재미있는 것은,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사고방식만을 설명해도 자기 체질에 대한 설명은 잘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즉 교심(驕心)이니, 주책(籌策)이니 하는 내용을 세상에 대한 인식 방식에 관한 ..
5. 사심(邪心)과 박통(博通)에 관한 몇 가지 태음인, 태양인의 관점 사심(邪心)과 박통(博通)에 관한 이야기는 대충 정리가 되었는데, 소음인의 ‘옳다/그르다’, 소양인의 ‘좋다/싫다’라는 관점을 이야기한 김에 다른 체질 이야기도 같이 다뤄보자. 태음인의 관점은 일차적으로는 ‘성(成)/패(政)’에 많이 치우쳐져 있다. ‘된다/안 된다’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겉으로 ‘성/패’를 강하게 내세우지 않는 사람도 꽤 된다. 너무 ‘된다/안 된다’ 만을 따지면 좀 속물같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차적으로 ‘맞다/틀리다’를 내세우는 사람이 많아진다. 이 책의 앞 부분에서 상당히 강조했기 때문에 ‘맞다/틀리다’와 ‘옳다/그르다’가 같은 이야기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맞다/틀리..
소양인 아이의 교육 계속해오던 대로 교육 이야기로 마무리를 하자. 소양인 아이가 과심(誇心)이 자라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다. 아이의 자신감을 키워주면서 아이가 받아들이기 쉬운 방식으로 가르쳐서 스스로 깨우치게 하는 것이다. 아이의 행동을 받아들일 수 없을 때, “아빠는 그거 싫어” “엄마는 그런 행동 불쾌해” “네가 그런 행동 하는 것을 보니 엄마, 아빠가 몹시 슬프구나”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기본이다. 아이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것이 아빠나 엄마에게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거 틀렸어, 그거 나빠”라는 말보다 아이가 훨씬 쉽게 받아들인다. 감성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걸 옳지 못하다고 하면 아이는 자기 주장을 지키려고 무리하게 논리를 끌어댄다. 과심(誇..
‘좋다/싫다’와 ‘옳다/그르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위에서 말했던 정오(正誤)와 호오(好惡)의 관점을 조금 더 생각해보자. 소음인은 ‘옳다/그르다’에 민감하다. 즉 무엇이 옳은지를 알았다면, 설령 자신의 역량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렇게까지 힘겨워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자체를 모르면 굉장히 답답해한다. 반면에 ‘좋다/싫다’라는 관점에는 비교적 둔감하다. 소음인의 특징 중 하나가, 자기 주변의 일이 딱딱 아귀가 맞아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야 마음에 안정감을 갖는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이 안 되면 불안해한다. 그런데 각자가 ‘좋다/싫다’라는 관점을 쫓아간다면, 이건 아귀가 맞기도 곤란하고, 예측도 어려워진다. ‘옳다/그르다’라는 관점이 사람들이 공유하고 따르..
새 판 펼치기 과심(誇心)은 어느 정도 정리된 것 같으니, 다음은 과심(誇心)이 극복되었을 때 나타나는 도량(度量)을 보기로 하자. 이 역시 ‘절세의 도량(度量)’이라고 부를 만한 대단한 배포로 나타나는 모습이다. 사람들 간의 갈등이 심한 상황에서 “아, 왜들 그래”하면서 어깨 한 번 툭 쳐줄 수 있는 모습, “자, 자, 우리 술이나 한잔 하러 갑시다”라며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모습, 그런 게 바로 도량(度量)이다. 사실 이 정도 행동을 보여주는 사람들은 주변에서도 꽤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정도를 ‘절세의 도량(度量)’이라고 부르는가? 보통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하기 힘든 살벌한 상황, 폭발 직전의 상황에서도, 도량(度量)의 경지에 도달한 소양인은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다. 그것이 ‘절세의 도..
과심(誇心)이 떴을 때의 말하기 논문 쓰기에서 나타나는 과심(誇心) 이야기는 연구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나 느낄 수 있는 이야기이고, 과심(誇心)이라고는 해도 절제된 형태로 나타나는 가벼운 과심(誇心)일 뿐이다. 일반생활에서 자주 나타나는 과심(誇心)의 형태를 찾아보자. 보통 생활에서 가장 자주 보이는 과심(誇心)은 역시 강한 단어 사용하기다. 좀더 부드러운 단어로 말할 수도 있는데 굳이 가장 강한 단어를 골라 쓰는 것이다. 특히 소양인이 “절대 안 돼” “절대로 그런 일은 없어”와 같이 ‘절대’라는 단어를 쓰는 빈도가 높아지면, ‘이거 내가 과심(誇心)이 심해지는 것이 아닌가’라고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절대’라는 단어는 더 이상의 논리 전개를 차단하는 단어다. 자신의 논리가 의심받는다고 느낄 때 반사적..
과심(誇心)이 강해지는 상황 태양인의 경우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소양인의 과심(誇心) 역시 가정이나 작은 집단에서 더 드러나기 쉽다. 특히 위아래가 있는 집단에서 문제가 심각해진다. 소양인은 윗사람의 의견이 옳을 경우가 더 많다는 일반론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어서, 문제를 일으키기가 쉽다는 것이다. 공적인 일은 결국 윗사람, 경험이 많은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이 최종 책임을 지고 결정해야 되는 경우가 많다. 고민도 윗사람이 더 하고, 자료도 윗 사람이 더 챙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적인 문제는 다르다. 공적 논리를 사적 영역에 들이대는 것이 양인(陽人)의 사심(邪心)이 드러나는 일반적인 경우다. 소양인은 아이의 불만이나 아랫사람의 항변을 반항이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무시당하고 모욕당했다고 느끼는 경..
과심(誇心)이 실생활에서 드러나는 모습 ‘별 생각 없이 그냥 일반화되어 있다고 여겨버린 근거’라는 말이 어려운가? 실제 나타나는 모습은 간단하다. 정도 이상으로 숫자를 들이대는 일, 권위자의 말이라고 우기는 일, 많은 사람이 지지하는 주장이라고 머릿수로 밀어붙이려 하는 일 등등, 이런 것이 다 과심(誇心)이 드러나는 모습이다. 예를 들면, 남대문시장에서 선물을 사가지고 미도파 포장 센터에서 미도파 포장지로 포장해서 선물하는 것. 비교적 경증에 속하는 경우이기는 하지만, 이런 정도도 엄밀히 따지면 다 과심(誇心)이다. ‘미도파는 남대문보다 좋다’ ‘비싼 선물은 싼 선물보다 성의가 들어간 것이다’라는 식의 일반론을 지나치게 따르는 것이 과심(誇心)이라는 것이다. 이번에는 숫자 선호의 형태로 나타나는 과심(誇..
4. 과심(誇心)과 도량(度量) / 소양인의 소음 기운 근거의 문제 소양인의 사심(邪心)과 박통(博通)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소양인의 사심(邪心)은 과심(誇心)이라고 한다. 자랑하고 과장하는 마음이다. 이 과심(誇心)을 극복했을 때 나오는 박통(博通)은 도량(度量)이라고 한다. 이른바 ‘도량이 넓다’라고 할 때의 그 도량(度量)이다. 과심(誇心)은 소양인이 소음인을 어설프게 흉내 내는 것이다. 일단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먼저 보자. 과심(誇心)이 뜬 소양인은 자기 말의 근거를 대는 일에 아주 민감해진다. 원래 소양인의 본성은 근거에 크게 관심이 없다. 어떤 주장이나 사실을 들었을 때, 이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기준에 안 맞으면 바로 배척하고, 일반적인 기준에 비추..
퇴로 차단의 문제 박정희 전대통령 이야기가 나오고 정당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니까, 주로 스케일이 큰 부분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는데, 사실 벌심(伐心)이 문제가 되는 것이나 행검(行檢)이 돋보이는 것은 당여(黨與)나 거처(居處)와 같이 작은 모임이나 가정에서 더 두드러진다. 교심(驕心)/주책(籌策), 긍심(矜心)/경륜(經綸)의 경우와는 반대다. 자신이 약한 영역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의 문제니까, 태양인의 경우 당연히 당여(黨與)와 거처(居處)의 문제가 두드러지게 된다【정확하게 말하자면, 사심(邪心)과 박통(博通)의 문제는 천기(天機) 이해의 문제다. 따라서 인륜(人倫)이나 지방(地方)의 문제와 관련이 가장 깊다. 다만 현실로 드러나는 모습을 위주로 설명해야 이해가 쉬우니까, 당여(黨與) 및 거처(居處)와 관..
태양인의 파벌 만들기 태양인의 벌심(伐心)을 관찰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하나 더 있다. 원래 태양인은 파벌 만드는 일을 잘 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교우(交遇)에는 강하고 당여(黨與)나 거처(居處)에는 약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교우(交遇)에 능하다는 것은 낯선 사람끼리 만나도 의견을 나누고 바른 길을 찾아갈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굳이 파벌을 만들 필요가 없다. 하지만 태양인이라도 때로는 혼자서 하기 힘든 큰일을 할 경우가 있을 것이다. 길을 찾는 일이 아니라 구체적 성과물을 내는 단계에서는 어느 정도 사람을 모을 수밖에 없다. 사람을 모으는 데는 태음인의 희성(喜性)이나 소음인의 희정(喜情)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이는 어느 정도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동의가 된 일을 추진..
박정희 전대통령의 예 박정희 전대통령이 했던 일들 중에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포항제철의 건설은 비교적 행검(行檢)이 작동한 결과라 부를 만하다. 물론 그 두 가지 일에도 부분적으로는 벌심(伐心)이 작용하여 무리를 낳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긍정적인 요소가 더 많았다 하겠다. 하지만 새마을사업이나 재벌 위주의 경제 운용 같은 경우에는 벌심(伐心)에 의한 무리가 훨씬 더 많았다. 유신 선포, 노동운동 및 민주화운동에 대한 탄압 같은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벌심(伐心)이다. 그 중 벌심(伐心)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은 장발단속, 치마 길이 단속 같은 것들이다. 물론 사안 자체나 국민들에게 피해를 준 정도로는 위에서 언급된 것들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작은 일이지만, 개인생활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 관여했다는 면..
인(仁)과 행검(行檢) 태양인이 태양인의 본성을 지키면서 구체적인 일에 접근하는 방식은 어떠한가를 검토해보고서 다시 비교해보도록 하자. 태양인이 자신의 장점을 확대해서 태음적인 영역에 이르는 것, 즉 태양인의 박통(博通)을 행검(行檢)이라고 한다. 행동을 단속한다는 뜻이다. 그 검의 뿌리는 어진 마음, 바로잡아주려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앞에서 태양인을 설명할 때, 환경운동에 관한 예를 든 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사람에게 유리해지는 환경운동을 생각할 때 동물의 관점에 서고, 다른 사람들이 동물의 관점까지 받아들일 때, 식물이나 미생물의 관점까지 생각하는 것이 태양인의 애성(哀性)이라고 했다. 이것은 약점이며 동시에 강점이다. 태양인이 당여(黨與)나 거처(居處)에 능하지 못한 것은, 좁은 부분에 집중해야..
새마을운동 예를 들어보자. 60년대의 우리나라에는 유교문화가 나라의 발전을 막는 요소로 작용하는 부분이 분명 있었다. 유교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유교 중에서도 주자학, 성리학 일변도의 흐름이 수백 년을 쌓이며 곪았던 것이다. 또 주자학 자체에도 긍정적인 요소가 많지만, 주장의 본질은 외면하고 형식만 중시하는 식이 되어버려서 더 문제였다. 결국 공맹의 뜻은 사라지고 이상한 형식주의만 남은 그런 풍토가 우리나라 농촌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새마을운동은 분명히 긍정적인 요소를 안고 시작된다. 유교적 전통만을 중시하면서 과거의 방식을 맹목적으로 답습하는 풍토를 바꿔보자는 의식개혁 운동으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방법이 이상하게 가버린다. 의식개혁을 유도하는 옳은 방식은 대충 이렇다. 새로운 공동체 구..
3. 벌심(伐心)과 행검(行檢) / 태양인의 태음 기운 벌(伐)이 사심(邪心)이 되는 과정 이제 태양인의 사심(邪心)과 박통(博通)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태양인의 사심(邪心)은 벌심(伐心)이라고 한다. 벌(伐)이라는 글자는 ‘벌목(伐木)’ 처럼 부드럽게 사용되기도 하고, ‘토벌(討伐)’과 같이 좀 살벌(殺伐)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어쨌든 쳐내고, 잘라내고, 배척하고, 그런 것이다. 앞의 경우와 같이, 벌심(伐心)이란 태양인이 태음인을 잘못 이해하고 어설프게 흥내 내는 모습이다. 그런데 그걸 왜 벌이라 부르느냐가 요점이다. 벌은 사실 전쟁을 칭하는 용어 중의 하나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이라크 전쟁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용어다. 전쟁이란 명분도 비슷하고 세력도 비슷한 집단 간의 무력 충돌을 일컫는..
안성기 씨에게서 느끼는 편안함 긍심(矜心)과 경륜(經綸)의 이야기가 좀 길어졌는데, 마지막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한 소음인이 대화하는 자세가 어떻게 나타나는가의 예를 하나 들고 마무리하자. 예로 들고 싶은 사람은 영화배우 안성기 씨다. 특히 토크쇼에 나온 안성기 씨의 모습을 잘 보면 정신적으로 건강한 소음인의 특징을 아주 잘 보여준다. 안성기 씨의 특징이 편하게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소음인은 긴장이 지나치면 말수가 줄어든다. 오히려 그럴 때 긍심(矜心)이 강해지는 수가 많다. 그러다가 입을 열면 이상한 고집을 피우면서 한 발도 안 물러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안성기 씨에게는 그런 모습이 없다. 안성기 씨의 말은 달변이 아닌데도 듣기에 정말 편하다. 자신이 생각하는 바, 자신이 느낀 것, 때로는 자신이 실수..
조금만 방심하면 고개를 드는 긍심(矜心) 긍심(矜心)도 교심(驕心)과 마찬가지로, 잘 극복된 사람도 조금만 방심하면 고개를 든다. 특히 긍심(矜心)은 원치 않는 과도한 경쟁 상황에 몰렸을 때 나타나기 쉽다. 때론 경쟁 상황에서, 혹은 경쟁의 후유증으로 나타난다. 정치인 중에서 소음 성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김근태(金槿泰, 1947~2011) 의원이다. 김근태 의원 이야기를 좀 해보자. 원래 재야라는 곳이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많다. 개성이 강한 사람들을 모아놓았을 때 가장 힘든 것이 화합이다. 그래서인지 재야의 거물 소리를 듣는 사람들 중에 ‘누구만 끼면 판 깨진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좀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모인 상황에서도 김근태 의원이 끼면 ‘김근태가 끼었으니 판은 안 깨지고 굴러가..
소음인과 경쟁 그럼 소음인이 긍심(矜心)을 가지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태음인 아이에게 속도를 강요하지 말아야 하듯이, 소음인 아이에게는 경쟁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경쟁이란 보편적 기준을 놓고 달성하는 정도를 다투는 것이다. 일반화된 것을 거부감 없이 쉽게 받아들이는 아이는 경쟁을 즐기며, 경쟁에서 불안감을 별로 안 느낀다. 하지만 자신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소음인들에게 대중 교육에서의 경쟁은 아무래도 힘겹다. 소음인에게 경쟁을 강요하면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는 숫기가 부족하고 위축되는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강한 긍심(矜心)을 띠는 형태이다. 유명인들 중에 긍심(矜心)을 강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몇 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천재 소리 듣는 형제들과 계속 비..
경륜(經綸)과 긍심(矜心)이 갈라지는 지점 이야기가 약간 두서없이 된 듯하니 간단히 정리를 해보자. 소음인의 장점은 함부로 경계를 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논리에 엄밀할 뿐만 아니라, 그 논리가 적용되는 한계를 쉽게 넘지도 않는다. 이것은 의식적으로 조심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영역이 어느 정도 정리될 때까지는 다른 영역에 대해 무관심해지기 때문이다. 다른 영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냥 듣기만 하든지, “난 잘 몰라”라고 해버린다. 소음인이 새로운 영역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본래 관심을 두었던 영역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깊어진 뒤의 일이다. 따라서 그 이해의 정도가 주변의 다른 영역에도 어느 정도 적용 가능한 수준인 경우가 많다. 태음인은 폭이 확보되어야 비로소 서로 연계성을 가지..
자기 의견의 고집 주제에선 좀 벗어나지만 말이 나온 김에 의견을 고집하는 문제를 좀 더 이야기해보자.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에 두 가지 경우가 있다. 하나는 그 주장의 관철이 분명히 자신에게 이익을 주는 경우다. 하지만 또 다른 경우로서, 객관적인 입장에서의 토론이나, 학술적인 토론에서도 절대로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런 자세는 자신의 주장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의견이 무시되면 자신이 그만큼 가난해지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이나 그 결과인 주장들이 자신을 키우고 바람직한 방법을 찾아내는 데 도움을 준다면, 사상이 사람을 섬기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 반대가 되면 사람이 사상을 섬기는 꼴이 된다. 자신이 내놓은 의견이 자신의 주인이..
제갈량의 경륜(經綸) 사람들과 어울려 같이 세상 이치를 공부하는 일을 늘 그런 식으로 꾸준히 한다면 어떤 경지에 도달하게 될까? 제갈량(諸葛亮, 181~234)을 보통 소음인으로 많이 본다. 진짜 제갈량이야 어떤 사람인지 알 방법이 없지만, 『삼국지연의』에 묘사된 제갈량은 여러 가지로 소음인의 모습을 많이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이 소음인이 사람의 감정에 아주 귀신이다. 소음인이 주로 감성 영역에 가장 약하다는데, 제갈량은 아예 심리학 도사다. 이러저러한 상황이 되면 이 사람이 이리 갈 것이고, 거기서 또 복병을 만나면 이리저리 할 것이고 하는 식으로 여러 수를 내다보고서 장수들을 미리 배치시키는데, 그 예측이 줄줄이 사탕으로 다 들어맞는다. 바로 그런 것이 소음인의 경륜(經綸)이다. 이른바 절세의 경륜..
소음인과 토론 이번에는 긍심(矜心)을 잘 극복하고 경륜(經綸)의 경지에 도달한 소음인의 모습을 만나보자. 보통 소음인이 작은 집단 내의 토론은 잘한다. 사회를 맡겨도 곧잘 한다. 주장이 논지를 벗어나면 적절히 제지하고, 중간 중간에 이제까지 나온 이야기들을 한 번씩 정리도 해주고, 토론 전체를 적절히 리드하기도 한다. 그런데 기본 가정들을 공유하지 않고 있는 집단에서의 논쟁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특히 적대적인 집단끼리의 싸움이라도 되면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경우가 많다. 언제 논리에서 감정으로 튀고 있는가를 알아채고 제지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눈치가 부족한 것이다. 뭐 이 정도로 적대적인 경우는 아니라 할지라도, 다양한 정파가 모인 집단에서의 토론은 어려워한다. 서로의 기본 가정..
논리의 성급한 일반화 보통 소양인이 목소리가 크다. 성량이 풍부하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장이 강하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소양인이 주장하는 바는 여러 사람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쪽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소양인은 다른 사람의 감성에 대한 느낌이 빠르다. 그래서 대중이 일반적으로 지지하는 바를 느끼고, 받아들이고, 이를 주장한다. 즉 자기 주장에 대해 반박받을 여지를 이미 줄여놓고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니 목소리가 클 수 있다. 그런데 소양인이 대중 정서를 파악하는 그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소음인이 소양인의 겉모습만 보면 어떻게 보일까? ‘목소리가 커야 통하는 구나’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고는 저도 같이 목소리를 키운다. 이게 긍심(矜心)이 드러나는 모습이다. 물론 아무것에나 목소리를 키우지는 않는다..
2. 긍심(矜心)과 경륜(經綸) / 소음인의 소양 기운 절대적 긍정과 상대적 긍정 다음은 소음인 차례다. 소양인을 어설프게 흉내 내면 사심(邪心)에 빠지고, 소음 기운을 잘 키워서 소양의 영역에 도달하면 박통(博通)에 도달한다. 소음인의 사심(邪心)을 긍심(矜心)이라 부르고, 소음인의 박통(博通)을 경륜(經綸)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 긍심(矜心)이라는 용어가 좀 고약하다. 바로 앞에서, 사람이 다른 체질을 어설프게 흉내 내어 그릇된 길로 가는 경우를 막고, 자신의 장점을 꿋꿋이 살려나가 바른 길로 가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자기 긍정감’이라고 했는데, 동무(東武)는 ‘긍정’이라고 할 때의 ‘긍(矜)’ 자를 딱 따와서 긍심(矜心)이 사심(邪心)이라고 말하니 좀 난처하다. 긍정이라는 것에는 대체로 두..
어른의 교심(驕心) 어른의 교심(驕心)도 나타나는 모습은 아이의 교심(驕心)과 같다. 다만 좀 세련되게 나타날 뿐이다. 성급한 일반화, 성급한 개념화 등등, 특수한 상황에서 적용되는 것이나 특수한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을 함부로 일반적인 경우에 적용시키려 한다. 교심(驕心)이 강한 사람은 보통 아는 것은 많다. 그런데 그 중에도 꼭 이상한, 자질구레한 것들을 들고 와서 자기 주장의 근거로 사용한다. 그러면서 ‘너희들은 이런 것까지는 잘 모르지?’ 하듯이 목에 힘을 준다. 그럴 때 딱 적절한 말이 있다. “그래, 니 × 굵다.” 좀 심한 표현이 되려나? 그럼, 조금 점잖은 표현으로 바꿔보자. “아는 것 많으니, 먹고 싶은 것도 많겠다” 정도면 어떨까? 뭐 바꿔도 마찬가진 것 같다. 많이 들어가면, 그만큼 많..
아이의 교심(驕心) 다시 태음인의 경우로 돌아가자. 앞에서도 여러 번 말했듯이, 태음인은 판단을 미루는 경향이 있다. 그런 태음인 아이에게 속도를 강요하는 것은 곧 아이를 교심(驕心)에 빠져들게 만드는 짓이다. 태음인은 폭을 확보한 뒤에 깊이를 가진다. 폭과 깊이가 확보되면 비로소 핵심을 찾아낼 줄 알게 된다. 그 뒤에 비로소 속도가 붙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얻어지는 속도를 강요하면 어떻게 될까? 아직 자신의 장점을 키워 약점을 메울 수준이 되지 못한 상황에서 약한 부분을 자꾸 요구받으니까, 남을 흉내 내는 방식으로 도망가게 된다. 그런 식으로 아이들이 교심(驕心)이 강해지면 잡다한 지식을 줄줄 나열하는 모습, 문제의 답을 외워서 발표하는 모습 등으로 나타난다. 폭에서 바로 속..
자기 긍정감의 중요성 그 차이가 갈라지는 지점을 좀더 자세히 검토해보자. 일단 기본은, 자기 체질의 장점을 지켜나가면 박통(博通)에 도달하는 것이고, 이를 버리고, 다른 체질을 흉내 내면 사심(邪心)으로 빠진다는 것이다. 모든 체질에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왜 남을 흉내 내게 되는가? 한 마디로 자기가 자기 자신을 못 믿기 때문이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인식 부족, 자기 긍정심의 부족, 이런 것 때문이다.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보는 교만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벼락부자가 된 사람, 벼락출세를 한 사람이 많다. 즉 자기의 사회적 위치는 갑자기 올라가버렸는데 자기 긍정심은 과거의 수준에 머물러 있으니, 이 차이를 빨리 메우려는 마음이 교심(驕心)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반면에 벼락출세를 하고 벼락부자가 돼..
교심(驕心) 그럼 주책(籌策)으로 가는 길을 방해하는 교심(驕心)이란 무엇인가? 결국 교심(驕心)이란 주책(籌策)의 경지에 이를 만큼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것을 섣불리 결론내리는 것이다. 태음인의 약점 때문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결론을 유보하면서 내용을 충실하게 하는 태음인의 장점을 저버리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냥 생긴 대로 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약한 영역에는 영 젬병이 되겠지만, 적어도 쉽게 사심(邪心)에 빠지지는 않는다. 그냥 전형적인 태음인, 전형적인 태양인, 그런 식으로 사는 것이다. 시중에 돌아다니는 체질에 관한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의 대부분이 이런 사람들을 기준으로 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런 태음인이라도 자신의 영역을 꾸준히 노력하며 살 때, 느리기는 하지만..
주책(籌策) 뭐 용어야 개념을 정확히 알면 되는 것이지 글자에 연연할 필요는 없지만, 주책(籌策)이라는 글자 자체를 좀 설명해야겠다. 주책(籌策)이란 단어가 좀 낯선 단어라서. 여기에 나온 주책(籌策)은 우리가 흔히 ‘주책이 있다’ ‘주책이 없다’라고 할 때 쓰는 주책과는 다른 단어이다. 그 주책은 순 우리말이라는 주장도 있고, 한자어 ‘주착(主着)’에서 나온 말이라는 견해도 있다. 어쨌든 그 주책은 ‘일정한 생각이나 줏대’라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 나오는 주책(籌策)은 ‘이리저리 따진 끝에 생각한 꾀’라는 뜻이다. 책(策)이라는 글자는 별로 어려운 글자가 아니니 설명할 것이 없고, 주(籌)는 계산한다, 따진다는 뜻이다. 우리말에 ‘헤아린다’는 말이 있다. 단순히 세어본다는 뜻으로도 쓰이지만, 이치에 ..
벼리와 빙산 일단 바른 길은 무엇인가를 먼저 검토해보고, 바른 길과 그른 길의 차이를 다시 비교해보자. 태음적인 장점을 고수하는 사람이 걸어가는 길은 어떤가 보도록 하자. 자신을 믿는 태음인은, 잘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일단 접수하고 쌓아둔다. ‘이것이 천시(天時)가 아닐까?’라는 정도에 놓아두고, 천시(天時)인지 아닌지 결론은 유보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구체적인 사실에 부딪힐 때 그것이 자기가 듣고 기억해 두었던 내용과 관련된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때 그걸 다시 꺼내어서 비교해본다. 그렇게 비교하다 보면, ‘아하, 그때 그 부분이 내가 접한 사실의 이런 측면을 이야기한 것이었구나’라고 정리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구체적 사실들의 개념적 측면, 다른 사실과의 연관성 등이 하나씩 눈에 뜨이다 보..
제7장 사심(邪心)과 박통(博通) 1. 교심(驕心)과 주책(籌策) / 태음인의 태양 기운 직관과 감각의 차이 그냥 ‘사심(邪心)’ ‘태행(怠行)’ ‘박통(博通)’ ‘독행(獨行)’ 하니까 좀 딱딱해 보이지만, 각 체질별로 이야기하게 되면 그렇게 딱딱한 이야기는 아니다. 계속 태양, 소양, 태음, 소음의 순서로 다루었으니, 이번에도 그 순서대로 하자. 즉 태양 기운과 관련된 이야기부터, 그러니까 사람을 기준으로 보면 태음인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태양인을 설명할 때, ‘태양인의 귀가 천시(天時)에 밝아 사람들이 서로 사기 치는 것을 잘 듣는 것이 태양인의 애성(哀性)의 근본이다’라고 했다. 또 ‘태양인은 직관이 강하다’는 말과, ‘양인(陽人)은 부정적 요소를 줄이는 것에, 음인은 긍정적 요소를 늘리는 것에 각..
3. 태행(怠行)과 독행(獨行) 행동의 영역에서는 자신과 뿌리는 같고 겉에 드러난 것이 다른 체질을 배우려 한다. 위에서 괘상(卦象)으로 설명했듯이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은 위의 효의 차이에서 나타난다. 그 차이를 보고 자신과 다른 행동 양식을 배우려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과 뿌리부터 다른 기운은 마음 쓰는 것이 달라서 다르다고 느끼기 때문에 이는 단순히 행동 양식을 배울 일은 아니라고 느끼게 된다. 따라서 태양인은 소음을, 소음인은 태양을 배우려 한다. 같은 양의 뿌리에서 갈라졌지만 행동 양식에 있어서는 다르게 나타나는 기운을 배우려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태음인은 같은 음의 뿌리에서 갈라진 소양을, 소양인은 태음을 배우려 한다. 이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장점을 갈고 다듬어 약점에 도달하도록 ..
2. 사심(邪心)과 박통(博通) 마음의 영역에서는 각자의 체질과 가장 다른 쪽을 공부하려 한다. 안팎이 모두 자신과 다른 체질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이다. 즉 태양인은 태음 기운을, 태음인은 태양 기운을 공부하려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태양인은 인륜(人倫)을, 태음인은 천기(天機)를 배우려 하는 것이다. 소양인은 소음을, 소음인은 소양을 배우려 한다. 즉 소양인은 지방(地方)을, 소음인은 세회(世會)를 배우려 하는 것이다. 그냥 그렇게 배우려고 한다고 알고 넘어갈 사람에게는 필요 없는 이야기지만, 모든 것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넘어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약간의 이론적인 설명을 덧붙이도록 하자. 앞에서 사상의 괘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한 적이 있다. 태양(⚌), 소양(⚎), 태음(⚏), 소음(⚍)의 괘..
제2부 체질에 따른 약점과 극복 제6장 약점 극복의 개요 1. 왜 약점에 도전하는가 이 정도면 기본적인 성정(性情)에 대한 부분은 거의 다뤄진 것 같다. 앞으로는 자신이 약한 영역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의 문제가 나온다. 사심(邪心)과 이의 극복, 태행(怠行)과 이의 극복의 순서로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다. 체질별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이제까지의 이야기 흐름을 한번 정리해보자. 이 책의 처음에 가장 강조했던 것이, ‘같다/다르다’ ‘옳다/그르다’를 구분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야 다른 것끼리 맞을 수 있는 방법이 찾아지고, 다른 것이 틀린 것이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다른 것을 그른 것으로 보니까 맞출 생각을 못하고, ‘틀렸다’라고 주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좋다/나쁘다’..
3. 역할 책임론 / 도덕 책임론 앞에서 역할책임론/도덕책임론에 관해 이야기할 때, 역할책임론의 경우 소양인이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설명을 했는데, 도덕책임론의 경우 소음인이 가장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고만 하고 설명은 없이 넘어갔다. 이 문제도 법과 질서의 존중 방식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으니 이어서 다뤄보도록 하자. 정해진 법이 있는 영역에서는 그 법을 넘어가는 것이 비도덕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비난의 대상이 된다. 소음인은 그런 상황에서 보통 보편 상식에 어긋났다는 식으로 비난한다. 그런데 그것이, 소음인이 보편 상식에 강해서 나오는 태도는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강한 영역에서는 오히려 관대할 수 있다. 자신이 약한 부분에 민감한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소음인은 보편이라는 토대..
교통법의 준수 법과 질서의 존중 이야기로 시작한 것이니, 교통법 이야기도 좀 해보자. 아무래도 소음인이 교통법을 어기는 경우가 가장 적다. 계획 자체를 교통법을 어길 일이 없도록 잡으니까. 태음인은 교통법도 쓸데없는 규제라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길을 닦아 놓고 제한속도 60km가 뭐냐? 당연히 80km로 올려야지. 벌금 받아먹으려고 별 짓 다하는 구나.’ 뭐 이런 식이다. 비보호로 하면 훨씬 잘 통할 곳에 괜히 신호등 세워서 막힌다고 투덜대고. 그래도 교통법을 평소에는 잘 지킨다. 벌금 쪽지가 날아오면 억울한 기분을 가장 오래 가지는 것이 태음인이니까. 하지만 피곤해서 주의가 흐트러지거나 상황이 급하면 위반을 하게 된다. 위반을 하면 주로 과속 같은 걸 많이 한다. 상대적으로 갓길 운행이나, ..
태양인의 경우 태양인의 운전은 어떨까? 운전을 썩 즐기는 것 같지는 않다. 차를 살 형편이 돼도 차를 안 사는 경우도 자주 보이고, 막히는 길 차 몰고 나가서 더 막히게 할 필요 있느냐는 생각도 있는 것 같고, 교통 통제에 따라야 된다는 것에서 구속감을 느끼는 것도 같고, 사실 우리나라 교통시스템이 불합리하게 된 곳이 많다. 그나마 점점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도저히 교통법을 지키면서 운전하는 것이 불가능한 곳이 많았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열 받는 것이 싫어서 아예 운전 자체를 꺼리는 경향이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 태양인에 대해서 관찰한 것은 그런 정도다. 태양인의 독창성이나 풍부한 상상력이 이런 부분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반영되는 부분이 있을 듯한데, 아직 찾지 못했다. 운전 습관에 관..
소음인의 효율성 소음인은 운전 자체를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대중교통으로 가면, 가면서 생각도 하고 쉬기도 하고 일도 할 수 있는데, 자기 차로 가면 그걸 못한다. 그 점이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면허 딴 지는 10년쯤 되는데 핸들 잡아 본 건 손으로 꼽을 정도인 사람은 소음인 중에 많다(물론 차 몰 형편이 되는 경우의 이야기다). 소음인이 차를 몰고 다니는 경우는 확실히 그쪽이 이득을 주는 경우이다. 즉 같이 의논할 일이 있는 사람끼리 한 차를 타고 가면 남의 방해를 안 받고 의논할 수 있다든지, 중간에 들를 곳이 많아서 차를 가지고 가는 편이 확실히 시간 절약이 된다든지, 짐이 많다든지, 뭔가 뚜렷하게 유리할 경우에만 차를 몰고 가고,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소음인은 늘 다니던 길을 선호하..
소양인의 목적 지향성 소양인은 어떨까? 소양인은 과정이란 ‘목적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다른 체질보다 강한 편이다. 태음인과 비교하기 쉽도록 바캉스 가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태음인은 돌아가고, 샛길로 가고 하는 식으로 과정을 즐김으로써, 목적지로 가는 어려움이 주는 고통을 줄인다. 반면 소양인은 목적지로 가는 게 아주 어려우면 아예 목적지 자체를 바꾼다. 목적은 바캉스지, 경포대나 만리포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경포대나 만리포는 바캉스라는 목적을 위한 과정, 도구에 불과하기에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가다가 중간에라도 틀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런 사고방식이라면 굳이 샛길로 갈 이유가 없다. 샛길이나 산길로 차를 좀 빨리 몰다보면 운전 기술은 매우 빨리 는다. 그런 게 태음인은 재미있다. 그런데 ..
태음인의 과정 즐기기 어쨌든 갈 것이냐 말 것이냐, 간다면 차를 끌고 나올 것이냐 말 것이냐,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표를 구할 것이냐 등등이 체질에 따라 각각 차이가 난다. 그런데 그것은 운전 과정 자체를 어떻게 느끼느냐의 문제와도 관련된다. 태음인의 구체성 중시라는 것이 과정 중시라는 면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소양인의 일반성 중시는 결과 중시와 관련되고, 소음인의 객관성 중시는 효율 중시와, 태양인의 주관 중시는 독창성 중시와 각각 관련된다. 이런 것들이 운전에 대한 자세에도 여러 가지 차이를 만들어낸다. 태음인은 운전을 즐길 수 있는 방식을 선호한다. 즉 이왕이면 경치 좋은 길, 좀 돌아가고 시간이 더 걸려도 안 막혀서 시원스레 달릴 수 있는 길을 선호한다. 위에서 말한 ‘과정 중시’라..
2. 운전 습관의 문제 출발할 때 교통법 지키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운전 습관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보자. 단순히 핸들을 잡은 뒤의 문제만이 아니라, 차를 가지고 갈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부터 한번 넓게 다뤄보도록 하자. 명절에 고향 가는 문제는 늘 골칫거리다. 또 명절 이외에도 성묘나 바캉스 시즌에는 길이 유난히 막힌다. 이런 상황에서 체질에 따라 대처하는 방법이 차이가 난다. 먼저 태음인을 보자. 태음인은 차를 가지고 가기를 고집하는 비율이 좀 높다. 자기 차를 가지고 가야 가서 예상치 않은 일이 생겼을 때 대처하기가 쉽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소양인은 예상치 않은 일이 생기면 그때그때 알아서 대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소음인은 예상치 않았던 일이 생기는 경우 자체를 줄이..
체질적 특성이 잘 드러나는 부분 법과 질서를 대하는 태도에 체질별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법과 질서에 대한 심각한 위반은 아무래도 자라난 환경, 처한 환경, 경제적 여유, 사회적 신분 등등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물론 같은 상황에 처하면 체질에 따른 약간의 차이가 나지만, 그런 정도는 읽어내기가 어렵다. 보통은 사소한 부분에서 오히려 체질적인 차이가 잘 나타난다. 이야기가 좀 다른 곳으로 번지지만, 시중에 나와 있는 체질에 따른 성격에 관한 이야기가 잘 맞지 않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이것이 좋고, 이것은 나쁘다’라고 사회적 통념이 있는 부분에서는 체질적 특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약속을 잘 지키는가?’ ‘남을 잘 배려하는가?’ 등의 질문은 ‘당신은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
제5장 법과 질서의 존중 1. 법을 대할 체질에 따라 받는 느낌 질서의 존중과 경시 앞장의 설명으로 사상인의 성정(性情)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도구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처음에는 직관, 감성, 감각, 사고가 각각 잘 발달된 사람이라는 내용에서 출발했고, 이어서 애노희락(哀怒喜樂)의 성(性)과 정(情)에 대한 부분들을 이야기했다. 이제 주관, 보편, 특수, 객관을 각각 중요시하는 사람들이라는 새로운 설명 방법을 하나 더 얻었다. 이 각각은 서로 동떨어진 특성들이 아니라, 서로 다 연결되어 나오는 내용들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이 중에서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용어를 사용하면 될 것이다. 융 이제마 주장을 내세울 때 직관 태양 주관, 자신 있게 주장 감성 소양 보편, 강하게 주장 감각 태음 특수, 끈질기게..
직관과 주관 특수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다수 의견의 지나친 강조에 대한 반발로 보편이라는 것을 이데올로기의 하나로 취급해버리듯이, 보편 상식의 교조적 강조에 대한 반발심리를 가지는 사람은 객관성을 맹목적 답습 정도로 여긴다. 직관력이 강한 사람이 주로 그렇다. 기존의 합의된 기준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기존의 기준을 토대로 쌓아 올린 객관성의 가치를 인정할 이유가 없다. 직관이 강한 사람들이 제시하는 새로운 기준, 새로운 가치관을 객관을 내세워 검증하려 들면 “그 게 기존의 상식으로 검증이 되느냐”며 비웃을 뿐이다. 태양 기운은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일에 강하다. 사상의학의 원본은 상당히 어렵다. 아무런 설명 없이 대뜸 “천기(天機)에는 넷이 있으니 천시(天時), 세회(世會), 인륜(人倫..
보편 상식에 대한 집착 논리에 강한 사람들은 보편을 중요시한다. 보편이 없는 영역에서는 아무런 기준이 없어지며, 자신들의 강점인 논리를 펼칠 토대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보편을 찾아내는 데 능한 사람들, 즉 보편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인 일반화에 강한 사람들은 오히려 덜하다. 보편을 중시하지만 논리를 중시하는 사람들처럼 악착같이 지키려 하지는 않는다. 필요하면 그때 다시 찾아내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보편 상식’이란 필요하다. 진짜로 보편적인 것들이 존재할 수도 있다. 또는 이른바 불가지론(不可知論)이라는 것이 맞아서 보편 상식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경우, 즉 엄격한 의미에서의 진정한 보편 상식이란 존재하지 않는 경우라 할지라도, 사회의 효율적 운용을 ..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나 옳지 않은 경우 사실 위의 경우는 보편/특수, 객관/주관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그리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이는 객관이라는 단어에 대한 오해 때문에 나타나는 해프닝에 불과한 일이다. 그러나 초보적 논리성 부족으로나 빚어질 수 있는 그런 황당한 사고가 우리나라의 대표적 언론이라고 주장하는 신문의 사설에 너무 자주 등장하기에 좀 길게 다뤄봤을 뿐이다. 우리가 마음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진짜 중요한 것은 두 번째 문제, 즉 ‘객관적이고 논리적이지만 옳지 않은 경우’의 문제다. ‘객관이란 방법론이다’라는 말을 예를 좀 들어서 다시 설명해보자. 객관이란, “‘A=B’이고 ‘B=C’이면 ‘A=C’다”라는 식의 기본적인 논리들에 익숙하고 이를 정확히 적용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A=B’인지..
양비론과 양시론 객관적 태도의 한계나 객관성의 잘못된 적용 역시 보편과 일반화의 경우와 비슷하다. 보통 두 가지 점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하나는 ‘객관적이지만 비논리적인’ 주장의 문제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몇몇 특수한 경우에 도입해보면 바로 문제점이 드러나는 ‘일반적이지만 보편적이 아닌’ 경우가 있다고 했듯이, 마찬가지로 객의 입장을 취하지만 논리적이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이의 대표적인 부분이 이른바 양비론(兩非論)과 양시론(兩是論)이다. 사회적인 문제가 불거졌을 때 글 꽤나 쓴다는 많은 사람들이 양비론이나 양시론을 주장한다. 그런 태도가 객관적(인 태도로 보)이고, 그래야 합리적이라고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괄호 밖이 요즘 언론인의 생각인지, 괄호 안이 더 사실에 가까운 것인지는..
객관이란 무엇인가 ‘객관’이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객(客), 즉 손님의 시각을 가진다는 것이다. 손님이라는 말은 다루어야 할 문제와 이해관계가 없는 위치를 의미한다. 그런 위치에 선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 당사자는 자기 이익에 합치되는 쪽으로 생각하게 마련이며, 이해관계를 떠나야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국 객관의 목적은 합리성의 추구에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합리적이라는 것, 이치에 맞는다는 것이 곧바로 올바른 결론의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모든 논리는 기본적으로 어떤 보편, 엄밀히 말하면 보편이라고 인정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그것이 진짜 보편이 아닐 수도 있다. 그냥 일반적으로 인정받는 내용일 뿐 사실은 틀린 가정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생명의 기본 단위는 무엇일까 수학은 아무래도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으니, 다른 학문에서 몇 가지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이번에는 생물학이다. 독립적인 생명체의 단위는 무엇일까? 나는 하나의 생명체일까? 내가 하나의 생명 단위가 맞을까? 확실할까? 내 몸속에는 상당히 많은 대장균이 있다. 대장균들은 나와 공생하고 있다. 내 장 속의 대장균을 다 쓸어내버리면 소화 기능이 현저히 약화된다. 내 몸의 능력만으로는 도저히 소화시킬 수 없는 여러 종류의 물질들이 대장균에 의해 소화 가능한 물질로 분해된다. 그 대장균들은 세포나, 소화액을 내는 내 몸속의 기관처럼 내 몸의 일부일까? 아니면 나와는 독립된 생물일까? 위의 질문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장균이 자신과 독립된 생명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좀더 까다로..
공리는 직관의 소산이다 수학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수학이란 말이 나오면 머리가 아파지는 사람이 많은데, 긴장할 필요 없다. 뭐 여기서 수학 문제를 풀어보자는 것은 아니니까. 수학은 가장 논리적인 학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수학의 가장 바닥에 있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직관이다. 기하학의 가장 바닥에 가면 공리라는 것이 나온다. 보기에는 뻔한 것들인데, 이걸 증명해보라고 하면 말이 막힌다. ‘아, 그 뻔한 걸 뭘 증명해?’ 보통은 그렇게 나오게 된다. 그런데 그게 뻔한 걸까? 리이만(Riemann) 기하학이라는 것이 있다. 공간이 휘어 있다고 보고 풀어나가는 기하학이다. 공 위에 세 점을 잡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지구에 비유하자면 북극점과, 적도상에 경도로 90도쯤 떨어져 있는 두 점에 해..
2. 주관 / 객관 이성의 한계 이제 주관과 객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때가 되었는데, 이 이야기는 사전 설명을 충분히 하고 시작해야 할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 문명이 상당히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과학은 거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비밀을 밝혔다고 생각하고, 철학, 사회학, 경제학은 개인이나 사회가 취해야 할 적절한 행동에 대해 대부분 밝혀놓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성의 힘과 사고 능력, 그리고 거기에서 유도되는 합리적 태도는 물론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 그런 능력들이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는 중요한 능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이 알고자 하는 모든 것에 도달하기에는 여전히 터무니없이 부족한 능력이다. 의사들은 사람의 생리, 병리에 대해서 일반인보다는 훨씬 많이 알고 있..
일상생활에서의 유의점 사회적, 정치적인 경우만이 아니다. 일반 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사회나 조직에 대해 특수성을 존중하라고 지나치게 요구해서는 안 된다. 위에서 전형적 태음 논리라고 길게 쓴 파병 반대 논리에서 보듯이, 특수를 일반에게 이해시키는 과정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따라서 각각이 느끼는 모든 특수를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무엇을 결정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에 그 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을 요구한다. 결국 사회는 일반론을 어느 정도는 보편으로 인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시간, 자원 등의 한계 때문이다. 가정 내의 문제에서는 반대다. 사망률 1%인 병에 걸리면 사람이 99%의 기능은 돌아가고, 1%의 기능은 정지된 채로 있게 될까..
특수성 중시의 위험성 특수한 경우를 중요시하려면 그 특수한 경험이 적용되는 범위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 범위를 넘어가는 곳에 특수한 경험을 적용하려 할 때 고집불통이란 소리를 듣게 된다. 또 보편이라고 잘못 인식된 내용을 특수한 사례를 내세워 뒤집으려 할 때는 사람들이 그 특수한 상황을 느낄 수 있게 유도하고, 직접 경험이 안 되면 간접 경험이라도 가능하도록 상황을 제시하는 선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을 느끼고 바뀔 때를 기다려야 한다. 서두르면 역시 함정에 빠진다. 노무현(盧武鉉, 1946~2009)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가 되고 얼마 안 되어 김영삼 전대통령을 찾아간 일이 있다. 그 만남에서 당시 노 후보는 김 전대통령에게 지나치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여서 구설수에 오르게 된다. 이..
일반론 중시의 위험성 보편/특수, 일반화/구체화에 관한 이야기는 그것만으로도 책 한 권은 될 만한 분량이라 계속 이야기할 수는 없다. 삶의 지혜가 될 만한 것만 몇 가지 더 추려보자. 일반론의 중시는 인기 영합, 좀 어려운 말로는 ‘대중 추수주의(大衆 追隨主義)’에 빠질 위험이 있다. 또 그 대중 정서가 바뀌는 때에는 큰 망신을 당하는 수도 있다. “공산당에 부역하고 인민재판에 참여한 자를 장인으로 둔 사람이 국가의 대통령에 적합한가?”라는 공격이 보편 정서라고 보고 자신 있게 내세웠던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다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단 말입니까?”라는 반격 한 마디에 인신공격이나 하는 치사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일반론을 중시하려면 끊임없이 시대의 흐름을 쫓아가며, 지금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무..
이라크 파병 문제에서 자, 그럼 질문이다. 태음인과 소양인 중에는 어느 쪽이 파병에 찬성하는 비율이 높을까? 일단 전쟁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가 대세니까, 양쪽 모두 반전(反戰)의 입장을 전제하고 생각해보기 바란다. 앞에서도 이런 식의 질문을 한 번 던졌던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또 함정에 빠지지는 않았기를 바란다. 정답은 ‘그런 부분은 체질에 따라 갈라지는 것이 아니다’이다. 다만 같이 파병에 반대하더라도 태음인과 소양인의 논리가 다르며, 찬성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내세우는 이유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소양인부터 보자. ‘평화와 안전은 인류가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이다. 따라서 침략 전쟁에 파병하는 것은 보편적 도덕을 위배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대표적인 파병 반대 논리다. 찬성논리는 이렇다. ‘..
도덕책임론과 역할책임론 이런 성향들이 사회적 문제에서는 어떻게 드러날까? 우리나라의 이라크 파병 문제를 놓고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 와중에 논객들이나 정치가 사이에서 ‘도덕책임론’과 ‘역할책임론’이라는 말이 몇 번 사용되었다. 사실 필자도 그때 처음 배운 말인데, 꽤 의미 있는 용어라는 느낌이 들어서 한번 다뤄보려고 한다. 풀어쓰자면 도덕책임론이란, 어떤 행동을 결정하려 할 때 ‘도덕적으로 따지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옳으냐’를 중시하는 것이다. 반면 역할책임론은 ‘사회에서 내가 맡아야 할 역할을 고려하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으냐’를 중시하는 태도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이 두 가지 태도가 서로 부딪히는 경우가 꽤 많다. 역할책임은 역할에 대한 기준이 있어야 비로소 생겨난다. 예를 들어 남편 노..
수양이 부족한 소양인/태음인 이론적인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으니, 좀 구체적이고 도움이 되는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수양이 쌓인 소양인인지 아닌지는, 남과 비교하는 버릇이 있나 없나를 보면 된다. 매사를 옆집 아내, 옆집 남편, 옆집 아이와 비교하면 그것은 수양이 부족하다는 증거다. 앞에서도 말했다. 거처(居處)에 필요한 바탕은 애노(哀怒)가 아니라 희락(喜樂)이라고. 집안일에 지나치게 보편적 원리를 중시하면 가족들이 불편하게 된다. 우리 가족이 가지는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수양이 부족한 태음인의 예를 들어보자. 모든 회사에 꼭 그런 사람 한둘씩 있다. 기획안을 볼 때마다 아주 특이한 경우를 내세우며 “이런 경우에 대한 대비책이 없지 않느냐”며 트집을 잡는 사람, 모든 것을 다 대비하면..
감각/감성과의 관계 이번에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기본 기능인 감각과 감성의 측면에서 한번 검토해보자. 태음인의 기본 기능은 감각이고, 소양인의 기본 기능은 감성이라고 했다. 감각이란 항상 특수한 것에서 얻어진다. 책상이라는 감각은 어떻게 얻어질까? 책상이라는 것을 처음 본 순간에? 아니다. 나무 책상 혹은 철제 책상, 힘들게 시험공부를 하던 내 책상, 외할아버지가 쓰다가 물려주신 손때 묻은 책상, 아이에게 처음 사주었던 날 아이가 부쩍 대견스러워 보이게 만들었던 책상 등등, 그런 것들이 책상에 대한 감각의 토대가 된다. 일반적인 책상이라는 감각은 그런 구체적인 것들이 엄청나게 모인 뒤에야 비로소 생긴다. 감각은 구체적인 것에서 생겨난다. 융 이제마 내용 직관 태양 일이 돌아가는 이치, 원리를 수용하는 것 ..
핑계 심하고 덜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보편 논리를 별 저항감 없이 받아들이고 쉽게 기본으로 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에는 특수한 경우를 검토해서 보편을 검증하려고 드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향이 소양인과 태음인에게서 각각 두드러진다. 소양인과 태음인이 관심을 두는 것은 원리의 문제라기보다는 상황의 문제이다. 사회생활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소양인은 집단이 공통적으로 처한 상황에 관심을 두고, 태음인은 각 개인이 처한 상황에 관심을 둔다. 소양과 태음은 다 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 음(陰)이다. 그 바닥의 음은 구체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원리가 아니라 상황 쪽으로 관심이 간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음/양으로 다르기에 방향이 달라진다. 앞서도 말했듯이 태음인은 주어진 상황을 최대..
1. 보편 / 특수 보편은 다수결의 결과일까 우리는 ‘보편타당’하다는 말을 사용한다. 이런 말을 사용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보편부당’한 것도 있을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물론 이런 말은 반론의 여지가 있다. “보편이라는 말 자체가 여러 가지 상황에 잘 들어맞는 ‘최대 공통성’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보편은 타당이라는 뜻을 어차피 품고 있다”라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즉 ‘보편타당’이라는 표현은 비슷한 의미의 두 단어가 중복된 강조 용법이라는 것이다. 어느 쪽 주장이 맞는 걸까? 철학에서 사용하는 ‘보편’이라는 용어는 ‘타당’의 뜻을 상당히 품고 있다. 예를 들자면 우리가 논리를 따지는 데에 있어서 기본 또는 출발점으로 사용하는 토대를 ‘보편명제’라고 부른다. 이는 수학에서 ‘공리’라고 부르는 것들..
제4장 보편 / 특수, 주관 / 객관 체질에 대한 기본 설명에서는 벗어나지만 묶어서 하나의 주제로 다루는 편이 체질에 대한 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는 주제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중에서 보편 / 특수, 주관 / 객관의 문제를 먼저 다루도록 하자. 이 각각을 어느 정도 중시하는가의 문제가 각 체질에 따른 기본 특성에 가까운 것들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다뤘던 직관, 감성, 감각, 사고만큼이나 기본 성정(性情)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또 이런 치우침은 사심(邪心)이 강해졌을 때 더 강화되는 면도 있다. 따라서 이 부분을 여기서 한 번쯤 다루고 나면 뒤의 이야기가 여러 가지로 쉬워진다. 각 체질에 대해 분석할 기본 도구를 하나 더 가지는 셈이기도 하고, 뒤에서 설명할 사심(邪心)에 대한 예비 정보도 되기 때문이..
10. 성정(性情)에 관한 보충설명 앞에서는 체질별로 개별적인 성정(性情)의 이야기를 주로 했다. 그런데 전체적인 성(性)과 정(情)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할 부분이 좀 있다. 성(性)은 천기(天機)를 느끼면서 자연스레 나오는 것이고 정(情)은 사람이 애써서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성(性)은 세상 사람들의 일에서 느끼는 것이고 정(情)은 내가 관련된 일에서 느끼는 점에서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성(性)보다는 정(情)이 수준이 낮은 능력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절대로 정(情)이 성(性)보다 수준이 낮은 것이거나 천박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성(性) 정(情) 자연스레 나오는 것 사람이 애써서 하는 것 세상 사람들의 일에서 느끼는 것 내가 관련된 일에서 느끼는 것 필자의 세대가 죄수같이 머리 깎..
9. 애노희락(哀怒喜樂) 성정(性情)에 대한 정리 이번 절에 나왔던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애(哀)의 뿌리는 거부하는 마음이다. 애성(哀性)이란 천시(天時)에 어긋나는 사기(詐欺)에 대한 거부의 마음이고, 애정(哀情)은 상대가 나를 속이는 것에 대한 거부의 마음이다. 노(怒)의 뿌리는 알리려는 마음이다. 사람들이 서로 모욕(侮辱)하는 것을 보고 노성(怒性)이 이는 것은 기본적인 원칙이 무엇인지를 알리려는 마음이다. 내가 모욕당했을 때 노정(怒情)이 이는 것은 상대가 나를 다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이다. 희(喜)의 뿌리는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사람들이 서로 돕는 것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모습이기에 희성(喜性)이 일어난다. 사람들이 나를 도울 때 희정(喜情)이 나타나는 것은 그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인..
희락(喜樂)에 대한 보충 설명 사상인의 기본 성정(性情)에 대한 설명이 이것으로 끝났는데, 부분적으로 보충설명이 필요한 부분들이 좀 있다. 우선 희락(喜樂)에 대한 보충설명이다. 동무(東武)가 기본적으로 사회구성 원리에 대한 생각이 강한 사람이라서 사무(事務), 교우(交遇), 당여(黨與), 거처(居處)라는 ‘더불어 살기의 단계’로 나누어 설명했기에 여기서도 그 흐름을 따라 설명했다. 하지만 개인 심리에 맞춰서 희(喜)는 받이들이는 기운, 락(樂)은 몰두하는 기운이라는 면에서 보면 또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성(性)이야 문제될 것이 없지만, 정(情)은 지나치면 아무래도 문제가 된다. 희정(喜情)이 지나치면 받아들이지 말 것을 받아들인다. 앞의 글에서 태음인인 김대중(金大中, 1924~2009)이 받아들이지..
락성(樂性)이 아닌 락정(樂情)으로 가정이 운영되는 이유 하지만 집이라고 변화가 전혀 없을 수 있을까? 안정감을 위해서도 약간의 긴장은 필요하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별로 유쾌한 예는 아니지만, 이해를 돕는 적절한 예라서 드는 것이니 이해하기 바란다. 사람을 고문하는 방법 가운데,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으면서 강력한 효과를 내는 고문 중 하나가, 아무런 자극을 주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즉 빛도, 소리도, 냄새도 완전히 차단된 곳에 가둬두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몇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환각, 환청이 시작되며 발작을 일으킨다고 한다. 결국 집안이 휴식에 최적인 적절한 공간이 되려면 큰 긴장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완만한 변화가 필요하다. 하늘은 변화무쌍하다. 멀쩡하던 하늘이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
8. 락정(樂情)과 거처(居處) / 태음인의 소음 기운 가정(家庭)이란 무엇인가 소음 기운에 해당되는 인사(人事)를 거처(居處)라 부른다. 거처(居處)란 집안을 다스리는 일이다. 또는 집안을 다듬는 일이라 할 수도 있고, 집안을 정리하는 일이라고, 또는 집안을 꾸미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왜 이렇게 여러 가지 표현을 계속 나열하느냐고? 앞에서도 몇 번 강조했듯이 집안일이라고 할 때도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다. 그런데 꾸민다. 다스린다 등등의 표현 중 어느 하나에만 얽매인다면, 내 생각을 고집하는 것에 불과하다. 집안일의 요체가 무엇인지를 알아내어야 가족들 간에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집이라는 공간의 필요성은 긴장을 완화하고 쉬는 것에 있다. 집을 나서서 부딪치는 모든 일은 긴장을 필..
DJ의 당여(黨與) 필자가 정치인들 중에 당여(黨與)에 가장 강하다고 꼽는 사람은 김대중(金大中, 1924~2009) 전 대통령이다. 그런데 DJ는 소음인은 아닌 듯하다. 정치 스타일을 보면 태음인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다만 태음인치고는 소음 기운도 아주 강하다. 태음인의 폭과 소음인의 깊이를 같이 갖춰서 정리도 잘하고, 토론에도 능하고, 남을 설득하는 데도 일가견이 있다. 즉 동지적 관계를 구성하는 바탕이 단단하면서도 가족적 관계를 동시에 도입할 능력이 있으니 당여(黨與)에 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점점 DJ의 당이 진정한 당으로서의 모습을 잃어간다. 앞에서 말했듯이 소음인의 희정(喜情)은 스승이나 부모가 돕듯이 돕는 것이라서 많은 사람을 다 그렇게 챙기기는 어렵다. 따라서 받을 사람..
소음인이 태음인보다 당여(黨與)에 능한 이유 그런데 희성(喜性)이 잘 발달된 태음인보다 희정(喜情)으로 당여(黨與)를 하는 소음인이 당여(黨與)에 더 능한 이유가 있다. 희성(喜性)은 사람들이 ‘서로 돕는 것’을 기뻐하는 것에서 발달한다고 했다. 희정(喜情)은 남이 나를 돕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라고 했다. 희성(喜性)에 의해 서로 받아들이고 돕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나를 돕는 것이 아니다. 나의 ‘뜻’을 돕는 것이다. 그래서 동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나의 ‘뜻’이 아닌 ‘나’ 자체를 돕는 것을 따지자면 동지보다 훨씬 더한 사람이 있다. 부모나 스승이다. 부모나 스승처럼 도와주는 사람을 만나면 정말 기쁠 것이다. 그 기쁨이 희정(喜情)의 발현 모습이다. 당여(黨與)도 누군가 ..
7. 희정(喜情)과 당여(黨與) / 소음인의 태음 기운 동지 관계의 형성 이제 희성(喜性)과 희정(喜情)을 비교해보도록 하자. 희정(喜情)으로 하는 당여(黨與)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하자. 태음 기운에 해당되는 인사(人事)는 당여(黨與)라고 했다. 글자 그대로 하자면 당(黨)을 만드는 것인데, 요즘은 당이라고 하면 정당만을 생각하지만 정당은 정치를 목적으로 하는 당이다. 즉 당의 특수한 한 예일 뿐이다. 그 외에 학문 탐구를 위한 모임이나, 사회개혁을 위한 모임도 동무(東武) 시절의 용어로 쓰자면 다 당(黨)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정당이나 각종 사회단체부터 시작해서 뜻이 맞는 친구들끼리의 모임까지를 다 망라하는 표현이 당(黨)이다. 그렇게 넓혀서 생각하자면 당여(黨與)의 기본은 동지(同志)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