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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5-1. 총평 1이 글은 서른여섯 살 무렵의 연암의 자화상이라 이를 만하다. 연암은 자신의 착잡한 심리 상태와 자의식을 기복起伏이 풍부한 필치로 솜씨 있게 그려 내고 있다. 2이 글은 현실에 절망하면서도 힘겹게 버티며 저항하고, 또 힘겹게 버티고 저항하면서도 자신이 지치고 낙담에 빠져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응시하는 한 인간의 내면 풍경을 잘 보여준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아름답고, 한편으로는 슬프다. 연암의 산문 중 이 작품만큼 페이소스pathos가 그득한 작품도 없을 것이다. 더보기호기로움만은 젊은 시절 못지 않네酬素玩亭夏夜訪友記 六月某日, 洛瑞夜訪不侫, 歸而有記. 云: “余訪燕巖丈人, 丈人不食三朝. 脫巾跣足, 加股房櫳而臥, 與廊曲賤隸相問答.” 所謂燕巖者, 卽不侫金川峽居, 而人因以號之也..
6-1. 총평 1이 글은 1773년(영조 49) 경에 창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연암의 나이 37세 때이다. 당시 연암은 과거科擧를 포기한 채 곤궁하게 살면서 문학과 사상을 한층 더 높은 방향으로 발전시켜 가고 있었다. 이 글은 이 시기 연암의 감정과 태도를 잘 보여준다. 2이 글을 읽으며 우리는 어떤 대목에서는 빙그레 웃게 되고, 어떤 대목에서는 이 글 속 인물들의 처지에 공감되어 슬픈 마음이 되기도 하며, 어떤 대목에서는 그 아름다운 묘사에 마음을 빼앗겨 황홀해지기도 하고, 어떤 대목에서는 흐뭇해지기도 하며, 어떤 대목에서는 정신이 각성되기도 한다. 이처럼 이 글은 파란과 변화가 많아, 배를 타고 장강長江을 따라 내려가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강안江岸의 풍경을 바라보며 여러 가지 감정에 잠기게..
1. 작은 규모의 집에 있을 건 다 있다 주영염수재晝永簾垂齋[각주:1]는 양군梁君 인수仁叟[각주:2]의 초당草堂이다. 이 집은 오래된 소나무가 있는 검푸른 절벽 아래에 있으며 기둥이 여덟 개인데, 깊숙한 안쪽을 막아서 심방深房[각주:3]을 만들고, 격자창格子窓을 통하게 하여 탁 트인 대청을 만들었다. 높다랗게 다락을 만들고 아담하게 곁방을 둔 데다 대나무 난간을 두르고 이엉으로 지붕을 덮었으며 오른쪽엔 둥근창을 내고 왼쪽엔 빗살창을 내었으니, 집의 몸체는 비록 작아도 있을 것은 다 갖춰져 있어 겨울에는 환하고 여름에는 서늘하다. 집 뒤에는 배나무 십여 그루가 있고, 대나무 사립문 안팎으론 모두 오래된 살구나무와 붉은 과실이 열리는 복사나무다. 개울 머리에 흰 돌을 두어 맑은 물이 돌에 부딪쳐 세차게..
1. 대나무에 관한 글을 써주지 않으려는 이유 예로부터 대나무를 찬양한 사람은 무지하게 많다. 『시경』 「기욱淇燠」 시[각주:1] 이래로 읊조리고 찬탄하는 것만으론 부족해서 ‘차군此君[각주:2]’이라 일컬으며 숭상한 사람까지 있었으니, 대나무는 그래서 마침내 피폐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천하에는 ‘죽竹’으로 자호字號를 삼는 사람이 그치지 않고 게다가 그런 호를 지은 까닭을 기문記文[각주:3]으로 적곤 하지만, 설사 채윤蔡倫[각주:4]이나 몽염蒙恬의 지필紙筆이라 할지라도, 대나무를 두고서 풍상風霜에도 변치 않는 지조라느니 소탈하고 자유로운 모습이라느니 하고 서술하는 데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이처럼 사람들이 머리가 허옇게 되도록 쓴 글이 죄다 진부한 글이니, 대나무는 그래서 마침내 그 정채를 잃게 되었..
1. 자연을 담아내는 신채나는 표현 밤에 봉상촌鳳翔村[각주:1]에서 자고 새벽에 강화로 출발하였다. 5리쯤 가자 비로소 동이 텄는데 티끌 기운 하나 없이 깨끗하였다. 해가 겨우 한 자쯤 떠오르는가 싶자 문득 까마귀 머리만 한 시커먼 구름이 해를 가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해를 반이나 덮어 버렸다. 침침하고 어둑하여 한을 품은 것 같기도 하고, 수심에 잠긴 것 같기도 한데, 잔뜩 찡그려 편치 않은 모습이었다. 햇살은 옆으로 뻗쳐 나와 모두 꼬리별을 이뤘으며, 하늘 아래로 방사放射되는 모양이 흡사 성난 폭포 같았다. 夜宿鳳翔邨, 曉入沁都. 行五里許, 天始明, 無纖氛點翳. 日纔上天一尺, 忽有黑雲, 點日如烏頭, 須臾掩日半輪. 慘憺窅冥, 如恨如愁, 頻蹙不寧. 光氣旁溢, 皆成彗孛, 下射天際如怒瀑. 글머리를 아..
3-1. 총평 1이 글은 현재에서 과거로 돌아갔다가 다시 현재로 빠져나오고 그런 연후에 다시 과거와 현재를 뒤섞는 등 굴곡과 변전變轉이 심한 글이다. 이런 글쓰기를 통해 연암은 의도적으로 기억과 현재의 풍경을 마주 세우고 있으며, 이 마주 세움을 통해 자신의 심경을 절묘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이 글에서 기억이란 단순히 과거의 재현이 아니요, 과거와 현재의 관계, 더 나아가 현재에 대해 발언하는 하나의 미적 방식이 되고 있다. 연암은 묘지명의 상투적인 형식이나 일반적인 격식을 무시하고 마음의 행로에 따라 글을 써 나가고 있다. 그 결과 이 글은 형식적으로는 아주 파격적이되, 내용적으로는 더없이 진실하고 감동적인 글이 될 수 있었다. 2이 글은 연암의 누이에 대한 글이고, 삽입된 에피소드도 연암..
‘고’를 탐구해나가는 힘찬 발걸음들 ‘고古’란 무엇인가. 그것은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부분이며, 그 점에서 하나의 ‘지속’이다. 우리의 이 지속성 속에서 잃었던 자기 자신을 환기하고, 소중한 자신의 일부를 되찾을 수 있으며, 자신의 오랜 기억과 대면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고’는 진정한 자기회귀自己回歸의 본질적 계기가 된다. 진정한 자기회귀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를 긍정하되 자기에 갇히지 않고, 잃어버린 것을 통해 자기를 재창조해 내는 과정이다. 이 점에서 ‘고’는 한갓 복원이나 찬탄의 대상이 아니라, ‘오래된 미래’를 찾아나가는 심오한 정신의 어떤 행로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의미의 ‘고’에 대한 탐구다. 텍스트에 대한 사유와 자아의 확장 세상은 점점 요지경이 되어 가고 있다..
1. 16살에 시집간 누이가 고생만 하다 43살에 죽다 유인孺人의 이름은 아무이니, 반남 박씨이다. 그 동생 지원趾源 중미仲美는 묘지명을 쓴다. 유인은 열 여섯에 덕수德水 이택모李宅模 백규伯揆에게 시집가서 딸 하나 아들 둘이 있었는데, 신묘년 9월 1일에 세상을 뜨니 얻은 해가 마흔 셋이었다. 지아비의 선산이 아곡鵝谷인지라, 장차 서향의 언덕에 장사 지내려 한다. 孺人諱某, 潘南朴氏. 其弟趾源仲美誌之曰 : 孺人十六歸德水李宅模伯揆, 有一女二男, 辛卯九月一日歿, 得年四十三. 夫之先山曰鵝谷, 將葬于庚坐之兆. 죽은 누님을 그리며 지은 묘지명이다. 번역만으로는 원문의 곡진한 느낌을 십분 전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것만으로도 애잔하고 가슴 뭉클한 한편의 명문이다. 연암과 죽은 누님과는 여덟 살의 터울이..
1. 좋은 골동품도 몰라보는 세대 옛날에 고기古器를 팔려 했으나 3년이 지나도록 팔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그 바탕은 딱딱한 것이 돌이었는데, 술잔으로나마 쓰려 해도 밖은 낮고 안이 말려있는데다, 기름 때가 그 빛을 가리고 있었다. 나라 안을 두루 다녀 보아도 거들떠 보는 자가 있지 않자, 다시금 부귀한 집을 돌았지만 값은 갈수록 더 떨어져 수백전에 이르게 되었다. 하루는 그것을 가지고 서여오徐汝五에게 보여준 사람이 있었다. 여오가, “이것은 붓씻개이다. 돌은 복주福州 수산壽山의 오화석갱五花石坑에서 나온 것으로 옥 다음으로 쳐주니 민옥珉玉과 같은 것이다” 하고는 값의 고하를 묻지 않고 그 자리에서 8천을 주었다. 그 때를 벗겨내자 앞서 딱딱하던 것은 바로 돌의 무늬결이었고, 쑥색을 띤 초록빛이었다...
1. 사흘을 굶고 머슴과 친해진 연암 윗글은 제자 이서구李書九(1754-1825)가 연암 댁을 방문했던 일을 적은 「하야방연암장인기夏夜訪燕巖丈人記」란 소품 산문이다. 여기에는 연암이 사흘 굶던 이야기가 나온다. 아무리 가난이 선비의 다반사라지만, 그 높은 뜻에 안쓰런 궁핍이 읽는 이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5월 그믐에 서편 이웃으로부터 걸어 연암 어른 댁을 찾았다. 때마침 희미한 구름은 하늘에 걸렸고, 숲속에 걸린 달은 푸르스름하였다. 종소리가 울렸다. 처음엔 은은하더니 나중엔 둥둥 점차 커지는 것이 마치 물방울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만 같았다. 이 어른이 댁에 계실까 생각하면서 그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먼저 그 집 들창을 살펴보았다. 등불이 비치고 있었다. 季夏之弦, 步自西隣, 訪燕巖丈人...
1. 무더운 여름밤 연주하고 춤추던 친구들 이번에 읽을 두 편 글은 연암과 그 벗들이 격의 없이 만나 예술을 논하고 인생을 논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들이다. 암울한 시대를 건너기가 답답해 가슴 터지기야 그들이 우리보다 덜하지 않았겠지만, 이런 풍류와 여유가 있었기에 그들은 발광發狂에는 이르지 않을 수 있었다. 윗글의 제목은 「하야연기夏夜讌記」이다. 22일, 국옹麯翁과 함께 걸어서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에게 갔다. 풍무風舞 김억金檍은 밤에야 도착하였다. 담헌이 슬瑟을 타자, 풍무는 금琴으로 화답하고, 국옹麯翁은 갓을 벗고 노래한다. 밤 깊어 구름이 사방에서 몰려들자 더운 기운이 잠시 가시고, 현絃의 소리는 더욱 맑아진다. 좌우에 있는 사람은 모두 고요히 묵묵하다. 마치 내단內丹 수련 하는 이가 내관..
1. 기린협으로 들어가는 그대를 장하게 여기리 현실에 좌절하고 가난을 못이겨 식솔들을 이끌고 강원도 두메 산골로 들어가는 벗 백영숙白永叔을 전송하며 써준 글이다. 친구를 전송하면서도 글을 써주느냐고 물을 수 있겠는데, 예전에는 그랬다. 그의 이름은 백동수白東修(1743-1816)이니 영숙永叔은 그의 자이다. 호는 인재靭齋 또는 야뇌당野餒堂이라 하였고 점재漸齋라고도 했다. 영숙永叔은 장수 집안의 자손이다. 그 선대에 충성으로 나라를 위해 죽은 이가 있으니, 지금까지 사대부들이 이를 슬퍼한다. 영숙은 전서와 예서에 능하고 장고掌故에 밝다. 젊어서 말 타기와 활 쏘기에 뛰어나 무과에 뽑히었다. 비록 벼슬은 시명時命에 매인 바 되었으나,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위해 죽으려는 뜻만은 선조의 공덕을 ..
1. 벗을 찾겠다고 하면서 상우천고를 외치다 옛날에 벗을 말하는 자는 벗을 두고 혹 ‘제이오第二吾’라 하기도 하고, ‘주선인周旋人’이라고도 하였다. 이런 까닭에 글자를 만든 자가 ‘우羽’자에서 빌려와 ‘붕朋’자를 만들고, ‘수手’자와 ‘우又’자로 ‘우友’자를 만들었으니, 새에게 두 날개가 있고 사람이 양 손이 있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古之言朋友者, 或稱第二吾, 或稱周旋人. 是故造字者, 羽借爲朋, 手又爲友. 言若鳥之兩翼, 而人之有兩手也. 벗은 ‘제 2의 나’이다. 나를 위해 온갖 일을 다 나서서 ‘주선해 주는 사람’이다. ‘붕朋’이란 글자는 ‘우羽’자의 모양을 본떴고, ‘우友’자는 ‘수手’자에 ‘우又’자를 포개 놓은 모양이다. 진정한 벗이란 새의 양 날개나, 사람의 두 손과 같이 어느 하나가 ..
1. 드넓은 자연에 대비되는 하찮은 존재 이번에 읽으려는 「호곡장好哭場論」은 『열하일기』의 한 부분으로, 압록강을 건너 드넓은 요동벌과 상면하는 감격을 적은 글이다. 본래 제목이 없으나 선학先學의 명명命名을 따랐다. 1939년 경성제국대학 대륙문화연구회가 북경과 열하 일대를 답사하고 펴낸 보고서, 『북경ㆍ열하사적관견北京熱河の史的管見』에서 결론 대신 이 글을 적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문장이다. 초팔일 갑신 맑음. 정사正使와 가마를 같이 타고 삼류하三流河를 건너, 냉정冷井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십여리를 가서 한 줄기 산 자락을 돌아 나오자, 태복泰卜이가 갑자기 몸을 굽히고 종종걸음으로 말 머리를 지나더니 땅에 엎디어 큰 소리로 말한다. “백탑白塔 현신現身을 아뢰오.”태복이는 정진사鄭進士의 말구종..
1. 장서마다 도장을 찍어 자손에게 물려주다 「유씨도서보서柳氏圖書譜序」는 유련柳璉(1741-1788)이 자신이 수집한 고금의 인장印章을 찍어 한 권의 인보집으로 만든 『유씨도서보柳氏圖書譜』의 서문으로 써준 글이다. 연옥連玉 유련柳璉은 도장을 잘 새긴다. 돌을 쥐고 무릎에 얹고, 어깨를 기우숙하게 하여 턱을 숙이고서, 눈을 꿈뻑이고 입으로 불며 그 먹글씨를 파먹어 들어가는데 실낱처럼 끊어지지 않는다. 입술을 삐죽 모아 칼을 내밀고 눈썹에 힘을 주더니만 이윽고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보며 길게 숨을 내쉰다. 連玉善刻章. 握石承膝, 側肩垂頤, 目之所瞬, 口之所吹, 蚕飮其墨, 不絶如絲. 聚吻進刀, 用力以眉, 旣而捧腰仰天而欷. 그는 전각篆刻에 취미가 있어 옥돌 위에 쓴 글씨가 끊어지는 법 없이 잘도 ..
1. 음산한 빛에 놀라 명문을 부탁하다 「주공탑명」은 윤광심尹光心(1751-1817)이 엮은 『병세집幷世集』과 이규경李圭景(1788-1856)의 『시가점등詩家點燈』에 연암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수록되었을 만큼 당대 문인들에게서 그 예술성을 인정받았던 작품이다. 행간이 미묘할 뿐 아니라, 전체 글이 중층의 비유로 이루어져 있어 의미 파악이 쉽지 않다. 첫 단락은 명銘을 쓰게 된 전후 사실을 적고 있다. 주공麈公 스님의 입적 사실과 다비식을 거행하는 과정에서 생긴 이상한 일들, 그리고 사리 수습 및 부도탑浮圖塔을 세우려고 탑명塔銘을 자신에게 청탁해 온 일 등을 기술하였다. 주공麈公 스님이 입적한 지 엿새되던 날 적조암寂照菴 동대東臺에서 다비를 하였다. 그곳은 온숙천溫宿泉 노송나무 아래에서 열 ..
1. 사라지는 연기 담배가 방생한 연기는 지금어디쯤 자유로이 날아가고 있을까 우리들 삶을 연기와 같다고 말하지만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말하지만 담배연기,담배연기를 보며허무와 자유는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박상천의 「방생放生ㆍ5」란 작품이다. 시인은 삶이란 흔적도 없이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 담배 연기와 같은 거라고 말한다. 그것은 자유롭지만 그러기에 허무한 거라고 말한다. 내 입에서 품어져 나간 담배 연기, 허공으로 사라져 버린 담배 연기, 분명히 있었지만 찾을 길 없는 담배 연기. 그는 왜 담배 연기를 보며 허무와 자유를 같이 떠올렸을까? 자취도 없이 사라졌으니 허무하고, 얽매임 없이 제멋대로 날아가고 있기에 자유롭다고 했다. 그런데 허무는 자유로운가? 자유는 과연 허..
1. 송욱이 송욱을 찾아다니다 송욱宋旭이 취해 자다가 아침에야 술이 깼다. 드러누워 듣자니 솔개가 울고 까치가 우짖으며 수레 끄는 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떠들썩하였다. 울타리 아래서는 방아 찧는 소리, 부엌에서는 설거지 하는 소리. 늙은이가 소리치고 아이가 웃는 소리, 계집종이 잔소리하자 사내종이 헛기침 하는 소리, 무릇 문밖에서 벌어지는 일은 하나도 모를 것이 없는데, 유독 제 소리만은 없는 것이었다. 宋旭醉宿, 朝日乃醒. 臥而聽之, 鳶嘶鵲吠, 車馬喧囂. 杵鳴籬下, 滌器廚中. 老幼叫笑, 婢僕叱咳. 凡戶外之事, 莫不辨之, 獨無其聲. 이에 그만 멍해져서 말하였다. “집안사람들은 모두 있는데, 나만 어째 혼자 없는 걸까?” 눈을 둘러 살펴보니, 저고리는 옷걸이에, 바지는 횃대에 있고, 갓은 벽에 걸려 ..
1. 모범답안을 모아 합격집을 만들다 「소단적치인騷壇赤幟引」은 처남 이재성李在誠(1751-1809)이 우리나라 고금의 과체科體를 모아 열 권으로 묶은 『소단적치』란 책에 써준 글이다. ‘소단적치’란 ‘문단의 붉은 깃발’이란 뜻이고 붉은 깃발은 대장군의 상징이다. 지금까지 과거에서 높은 등수로 합격한 모범 답안만을 엮어, 과거를 준비하는 수험생이 참고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 실린 글을 익혀 과거 시험을 준비한다면 어떤 문제가 출제되더라도 답안 작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터이다. 그렇지만 과연 그럴까? 해마다 출제되는 문제는 같지가 않고, 채점하는 사람의 기준 또한 서로 다르니, 예전 모범 답안을 외우는 것이 과연 수험 준비에 어떤 도움이 될까? 사실 이러한 문제는 오늘날 논술고사를 ..
1. 밤과 쌀 같은 문집을 내밀며 소천암小川菴이 우리나라의 민요와 민속, 방언과 속기俗技를 두루 기록하였는데, 심지어 종이연에도 계보가 있고, 아이들 수수께끼에도 풀이를 달아 놓았다. 후미진 뒷골목의 흐드러진 인정과 익숙한 모습들, 문에 기대서거나 칼을 두드리거나, 어깨짓으로 아양 떨고 손바닥을 치며 맹세하는 시정市井 사람들의 모습이 실려 있지 않은 것이 없는데다 제각금 조목조목 엮어 놓았다. 입과 혀로는 분변하기 어려운 것도 반드시 드러내었고, 생각이 미치지 못하던 바도 책을 열면 문득 실려 있다. 무릇 닭 울고 개 짖으며 벌레가 날고 좀이 꿈틀대는 것도 모두 그 모습과 소리를 얻었다. 이에 있어 십간十干으로 배열하고는 이름 지어 『순패旬稗』라 하였다. 小川菴雜記域內風謠民彛方言俗技, 至於紙鷂有譜,..
1. 본받는다는 건 흉내내기가 아니다 일전 석사논문을 지도했던 제자에게서 E-mail을 받았다. 고문론을 주제로 쓴 제 논문을 누군가에게 주었다가, 연암을 고문가라고 한 논문 중의 언급 때문에 논란이 일었는데, 연암이 왜 고문가이냐? 그는 패관소품체를 썼다 해서 문체반정의 와중에서 정조에 의해 순정고문으로 된 반성문을 지어 제출하라는 견책을 입었다. 그렇다면 그는 반고문가임이 분명한데 무슨 근거로 고문가라고 했는가? 이것은 한양대학교에서만 통용되는 주장이 아닌가? 뭐 이런 말이 오갔던 모양이다. 요컨대 그런 상대의 계속된 힐난에 속수무책으로 신통한 대답을 못하고 물러선 녀석이 멀리 대만까지 글을 보내 내게 구조요청을 해온 것이었다. 연암은 고문가인가, 아닌가? 김택영이 『여한십가문초』에서 연암을 당..
1. 사라진 예법은 시골깡촌에 살아있다 초등학교 4학년 난 딸아이는 날마다 일기를 쓰는데, 담임 선생님이 날씨를 그저 ‘맑음’ ‘흐림’으로만 적지 말고 설명적인 기술로 적어오라고 한 모양이다. 몇 달이 넘게 일기를 써오고 있지만, 그 날씨의 묘사가 어느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노랗고 어여쁜 개나리같이 생긴 해가 허연 수염 난 구름과 둥실 둥실 떠 있다.” “시원한 바람이 사뿐사뿐 뛰어 다니고, 하늘이 울적해 보인다.” “어두운 하늘에서 시커먼 구름들이 각자 심술을 내면서 귀엽고 아주 조그만 빗방울들을 하나하나씩 새나 강아지에게 먹이를 주듯이 떨어뜨린다.” “탱탱볼처럼 동그랗고, 오렌지처럼 상큼한 햇님이 방글방글 벙글벙글 신나게 수영하듯 저리 빙글 요리 빙글 거리며 파아란 하늘에 동동 떠 있다.”..
1. 흉내내는 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연암의 아들 박종채는 『과정록』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선군의 시고詩稿는 몹시 적어서, 고체와 금체시 모두 50수 뿐이다. 고체시는 오로지 한유韓愈를 배웠는데 기이하고 험벽하기는 그보다 더 해서, 정경情境은 핍근하고 필력이 막힘이 없다. 율시와 절구 등의 시는 항상 성률에 구속되어 마음 속에 말하려는 것을 그대로 쏟아낼 수 없음을 못마땅히 여기셨다. 그래서 왕왕 한 두 구절만 이룬 채 그만 둔 것이 많다.-김윤조 역, 『역주 과정록』(태학사, 1997), p.279 연암이 시 짓기를 즐기지 않았던 것은 그러니까 운자니 평측이니 하는 성률에 얽매여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없는 것이 싫어서였다. 이번에 보려고 하는 연암의 시 「증좌소산인贈..
1. 무관의 시는 옛날의 시가 아닌 지금의 시 자패가 말하였다. “비루하구나! 무관懋官의 시를 지음은. 옛 사람을 배웠다면서 그 비슷한 구석은 보이지를 않는구나. 터럭만큼도 비슷하지 않으니, 어찌 소리인들 방불하겠는가? 촌사람의 데데함에 편안해하고, 시속時俗의 잗단 것을 즐거워하니 지금의 시이지 옛날의 시는 아니다.”子佩曰: 陋哉! 懋官之爲詩也. 學古人而不見其似也. 曾毫髮之不類, 詎髣髴乎音聲. 安野人之鄙鄙, 樂時俗之瑣瑣, 乃今之詩也, 非古之詩也.『영처고』는 이덕무가 젊은 시절 지은 시문을 모은 것이다. ‘영처嬰處’는 영아嬰兒와 처녀處女를 가리키는 말이니, 어린아이와 같이 천진스러운 생각을 담은 글이지만, 처녀처럼 순진한 수줍음을 지녀 남에게 보여주기는 부끄럽다는 뜻으로 붙인 제목이다. 자패子佩는 앞..
1. 진짜 같아지려 하면 할수록 「녹천관집서綠天館集序」는 진짜와 가짜, 같고 다름에 관한 이야기이다. 연암은 글의 처음을 ‘방고倣古’, 즉 옛날을 모방하는 문제로 시작한다. 글을 짓는데 사람들은 자기의 말과 뜻으로 하지 않고 옛것을 모방하여 짓는다. 옛것을 모방함은 옛 사람과 거의 분간이 가지 않을 만큼 꼭 같게 하면 되는가? 그 결과 읽는 이가 이것이 옛글인지 지금 글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우리의 글쓰기는 성공한 것일까? 옛것을 본떠 글을 지음을 마치 거울이 형상을 비추듯 하면 비슷하다 할 수 있을까? 좌우가 서로 반대로 되니 어찌 비슷함을 얻으리요. 그렇다면 물이 형체를 그려내듯 한다면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본말이 거꾸로 보이니 어찌 비슷하다 하리오.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듯..
1. 대나무도 없는 집인데 죽원옹이란 호를 짓다 사함士涵 유한렴劉漢廉이 죽원옹竹園翁이라 자호하고 거처하는 집에 불이당不移堂이란 편액을 걸고는 내게 서문 지어주기를 청하였다. 내가 일찍이 그 집에 올라보고 그 동산을 거닐어 보았지만 한 그루의 대나무도 보이지 않았었다. 내가 돌아보고 웃으며 말하였다. “이것은 이른바 무하향無何鄕의 오유선생烏有先生의 집이 아니겠는가? 이름이란 것은 실질의 손님이거늘, 나더러 장차 손님을 위하란 말인가?” 사함이 머쓱해져서 한동안 있더니만, “애오라지 스스로 뜻을 부쳐본 것일 뿐이라오.”라고 하였다. 士涵自號竹園翁, 而扁其所居之堂曰不移, 請余序之. 余嘗登其軒, 而涉其園, 則不見一挺之竹. 余顧而笑曰: “是所謂無何鄕烏有先生之家耶? 名者實之賓, 吾將爲賓乎?” 士涵憮然爲間曰: ..
1. 세상을 보며 글자를 만들었던 포희씨 연암은 40세 전후로 지금의 파고다 공원 뒤편인 전의감동典醫監洞에 머물러 살았다. 이 시기 전후 몇 년간의 글을 묶어 『종북소선鍾北小選』이라 이름 짓는다. 이글은 이 묶음의 첫머리에 얹은 것이다. 연암 문학론의 최상승最上乘 문자로 그 문학 정신의 울결鬱結이 이 한편에 녹아 있다. ▲ 전의감동에 살 때의 울분은 醉踏雲從橋記에 담겨 있다. (사진 출처 - [연암을 읽다]) 우주라는 기호를, 만물이라는 텍스트를 어떻게 읽어야 좋을까? 연암은 이 「종북소선자서鍾北小選自序」에서 그 방법을 성색정경聲色情境이란 네 항목에 담아 이야기한다. 다시 처음의 원문으로 되돌아가서 그의 설명에 귀를 기울여 보자. 아아! 포희씨庖犧氏가 죽으매 그 문장文章이 흩어진지 ..
1. 나비 놓친 사마천의 심정으로 읽어라 그대가 태사공의 『사기』를 읽었다 하나, 그 글만 읽었지 그 마음은 읽지 못했구료. 왜냐구요. 「항우본기」를 읽으면 제후들이 성벽 위에서 싸움 구경 하던 것이 생각나고, 「자객열전」을 읽으면 악사 고점리가 축筑을 연주하던 일이 떠오른다 했으니 말입니다. 이것은 늙은 서생의 진부한 말일 뿐이니, 또한 부뚜막 아래에서 숟가락 주웠다는 것과 무에 다르겠습니까. 아이가 나비 잡는 것을 보면 사마천의 마음을 얻을 수 있지요. 앞발은 반쯤 꿇고 뒷발은 비스듬히 들고,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해가지고 살금살금 다가가, 손은 잡았는가 싶었는데 나비는 호로록 날아가 버립니다. 사방을 둘러 보면 아무도 없고, 게면쩍어 씩 웃다가 장차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 이것이..
1. 같은 소리도 마음 따라 달리 들린다 강물은 두 산 사이에서 나와 바위에 부딪치며 사납게 흘러간다. 그 놀란 파도와 성난 물결, 구슬피 원망하는 듯한 여울은 내달리고 부딪치고 뒤엎어지며 울부짖고 으르렁대고 소리 지르니, 언제나 만리장성마저 꺾어 무너뜨릴 기세가 있다. 만대의 전차와 만 마리의 기병, 만대의 대포와 만개의 북으로도 그 무너질 듯 압도하는 소리를 비유하기엔 충분치 않다. 모래 위에는 큰 바위가 우뚝하니 저만치 떨어져 서 있고, 강가 제방엔 버드나무가 어두컴컴 흐릿하여 마치도 물 밑에 있던 물귀신들이 앞 다투어 튀어나와 사람을 놀래킬 것만 같고, 양옆에서는 교룡과 이무기가 확 붙들어 나꿔 채려는 듯하다. 어떤 이는 이곳이 옛 싸움터인지라 황하가 이렇듯이 운다고 말하기도 하나, 이는 그런..
1. 바른 견식은 어디서 나오나? 진정지견眞正之見, 즉 참되고 바른 견식見識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이번에 살펴보려는 「낭환집서蜋丸集序」와 「공작관문고자서孔雀舘文稿自序」는 바로 이 진정眞正한 견식의 소재에 관한 이야기이다. 연암의 글이 늘 그렇듯 이들 글 또한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여러 겹의 비유로 이루어져 있어 글쓴이의 진의를 온전히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자무子務와 자혜子惠가 나가 놀다가 장님이 비단옷 입은 것을 보았다. 자혜가 휴우 하고 탄식하며 말하였다. “아아! 제게 있는데도 보지를 못하는구나.”자무가 말하였다. “대저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비교하면 어떨까?”마침내 서로 더불어 청허선생聽虛先生에게 이를 물어보았더니, 선생은 손을 내저으며 “나는 모르겠네. 나는 모..
2. 까마귀의 날갯빛능양시집서(菱洋詩集序) 1. 달사와 속인 達士無所恠, 俗人多所疑. 所謂少所見, 多所恠也. 夫豈達士者, 逐物而目覩哉? 聞一則形十於目, 見十則設百於心, 千恠萬奇, 還寄於物而己無與焉. 故心閒有餘, 應酬無窮. 所見少者, 以鷺嗤烏, 以鳧危鶴. 物自無恠己, 廼生嗔一事不同, 都誣萬物. 噫! 瞻彼烏矣, 莫黑其羽. 忽暈乳金, 復耀石綠. 日映之而騰紫, 目閃閃而轉翠. 然則吾雖謂之蒼烏可也, 復謂之赤烏, 亦可也. 彼旣本無定色, 而我乃以目先定. 奚特定於其目, 不覩而先定於其心. 噫! 錮烏於黑足矣, 廼復以烏錮天下之衆色. 烏果黑矣, 誰復知所謂蒼赤乃色中之光耶? 謂黑爲闇者, 非但不識烏, 並黑而不知也. 何則? 水玄故能照, 漆黑故能鑑. 是故有色者, 莫不有光, 有形者莫不有態. 觀乎美人, 可以知詩矣. 彼低頭, 見其羞也;..
1. 이미지는 살아 있다, 코끼리의 기호학상기(象記) 1. 에코와 연암 몇 해 전 일이다. 강의 시간에 연암의 글을 강독하고서 평설을 써오는 과제를 내준 적이 있다. 한 학생이 과제 끝에 쓴 ‘장미는 예로부터 그 이름으로 존재해 왔으나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영락(零落)한 이름뿐’이라는 구절이 내 시선을 끌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 인용한 대목이었다. 에코의 이 책에는 연암의 코끼리 이야기와 아주 비슷한 내용의 글이 실려 있다. 듣거라, 아드소. 수수께끼 풀이는, 만물의 근본 되는 제 1원인으로부터 추론해낸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특수한 자료를 꾸역꾸역 모아들이고 여기에서 일반 법칙을 도출하면 저절로 풀리는 것도 아니다. …… 뿔이 있는 짐승의 예를 들어보자. 왜 짐..
연암의 글을 읽고 붓 가는 대로 쓴 서문독연암필서(讀燕放筆序) “연암의 글은 한군데 못질 한 흔적이 없는데도 꽉 짜여져 빈틈이 없다. 그의 글은 난공불락의 성채다. 방심하고 돌진한 장수는 도처에서 복병과 만나고 미로와 만나 손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주저앉고 만다.” 책갈피에 써둔 메모다. 92년 7월 27일이란 날짜가 쓰여 있다. 또 97년 6월 20일의 메모에는 “서늘함은 사마천을 닮았고 넉살 좋음은 장자에게서 배운 솜씨다. 소동파의 능청스러움, 한유의 깐깐함도 있다. 불가에 빠진 사람인가 싶어 보면 어느새 노장으로 압도하고, 다시금 유자의 근엄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고 적혀 있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이란 이름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 두 메모 사이에 놓인 몇 해..
무엇과 무엇의 차이를 비교하는 방식의 접근 방법을 나는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시각 즉 비교하고 그 차이를 드러내는 관점은 몇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그러한 관점은 가장 본질적인 것, 핵심적인 것을 놓치기 쉽습니다. 물론 본질적인 부분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만 그러한 경우보다는 그 형식에 있어서나 그 표현에 있어서의 차이, 즉 지엽적인 부분이 비교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차이를 주목하는 것은 부분을 확대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본질적인 차이가 지적된다 하더라도 이른바 차이라는 개념으로 그것의 본질 부분을 설명하거나 이해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요. 지금 여러분 가운데 두 사람을 일어서게 하고 두 사람의 차이에 주목한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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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향(書香) 산책 목차 사전 고사성어어휘사전개념어사전한어대사전 한문 비슷한 것은 가짜다연암을 읽는다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우리 한시를 읽다이조시대 서사시한국한시사한시미학산책고려, 조선시대 한시 읽기 역사 종횡무진 한국사한국문학통사종횡무진 동양사종횡무진 서양사 철학통합교육입국론난세일기 시네필 다이어리애노희락의 심리학회복적 생활교육철학, 삶을 만나다(밑줄)동양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금강경 강해 논어한글역주맹자, 사람의 길효경한글역주주역강해장자, 타자와의 소통장자수업노자와 21세기강의실에 찾아온 학자들서양기독교성서의 이해도마복음 이야기철학과 굴뚝청소부마르크스를 읽자신화의 숲 소설파친코채식주의자소년이 온다희랍어시간 밑줄긋기 강신주노자: 국가의 발견과 제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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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 우리 한문학 유산의 국문학에로의 계승 문제는, 그동안의 거듭된 논란 끝에, 이제는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거의 긍정쪽으로 정착이 되어 가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 너무나 호한(浩汗)하고도 난삽(難澁)함으로 해서, 아직도 많은 국문학도들로부터 은근히 경원(敬遠) 내지 소외되어 오고 있음이 오늘의 실상이다. 유일무이한 표기수단이었던 한자 우리는 그 옛날 우리 선인들의, 그 다정다감한 가슴속에 무시로 피어오르던 문학적 정서와, 무엇에 의해서든 이를 표현하지 않고는 못 견딜, 강한 욕구와 충동으로 애타하던 정황을 상상해 본다. 당시 만일 우리 주변에 보다 편리한 표기 수단이 달리 있기라도 했었더라면, 사정은 사뭇 달라졌으리라만, 그러나 그 당시로서는 한자야말로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수단이었던 만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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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시읽기 머리말 한문학(漢文學)의 백미(白眉)는 한시(漢詩)이다. 조선시대의 한시사(漢詩史)에 대해 김만중(金萬重)은 『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본조의 시체(詩體)는 네다섯 번 변했을 뿐만 아니다. 국초에는 고려의 남은 기풍을 이어 오로지 소동파(蘇東坡)를 배워 성종, 중종조에 이르렀으니, 오직 이행(李荇)이 대성하였다. 중간에 황산곡(黃山谷)의 시를 참작하여 시를 지었으니, 나의 재능은 실로 삼백 년 시사(詩史)에서 최고이다. 또 변하여 황산곡과 진사도(陳師道)를 오로지 배웠는데, 정사룡(鄭士龍)ㆍ노수신(盧守愼)ㆍ황정욱(黃廷彧)이 솥발처럼 우뚝 일어났다. 또 변하여 당풍(唐風)의 바름으로 돌아갔으니, 최경창(崔慶昌)ㆍ백광훈(白光勳)ㆍ이달(李達)이 순정한 이들이다 本朝詩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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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한시 읽기 머리말 한문학(漢文學)의 백미(白眉)는 한시(漢詩)이다. 고려시대 역시 용재(慵齋) 성현(成俔)이 『용재총화(慵齋叢話)』 권1에서 “고려시대의 문사들은 대부분 사(詩)를 업으로 삼았다[高麗文士, 皆以詩騷爲業].”라고 언급했듯이, 산문(散文)보다는 시(詩)에 경도(傾倒)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서거정(徐居正)은 「목은시정선서(牧隱詩精選序)」에서 조선(朝鮮) 이전의 대표적인 시인(詩人)들을 거론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동방은 예로부터 시서(詩書)의 나라라고 일컬어질 만큼 문장으로 한 세상을 풍미한 이들이 각 시대마다 끊이지 않고 배출되었으니, 을지문덕은 고구려에서 이름을 날렸고, 설총과 최치원은 신라에서 이름을 드날렸다. 그러다가 고려가 새로 나라를 열면서 문치가 크게 일어난 결과,..
항소이유서 본 적 : 경상북도 월성군 내남면 망성동 163 주 소 :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흥 1동 한양아파트 11동 1107호 성 명 : 유시민 생년월일 : 1959년 7월 28일 죄 명 :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요 지] 본 피고인은 1985년 4월 1일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에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이에 불복, 다음과 같이 항소이유서를 제출합니다. [다 음] 본 피고인은 우선 이 항소의 목적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거나 1심 선고 형량의 과중함을 애소(哀訴)하는데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합니다. 이 항소는 다만 도덕적으로 보다 향상된 사회를 갈망하는 진보적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노력의 소산입니다. 또한 본 피고인은 1심 판결..
인간은 기억의 총합 인간이 기억의 총합이라면 그 기억을 가진 누군가를 찾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기억하고 있는 그 누군가. 하지만 그녀는 정답이 될 수 없다. 그녀는 십 년 전의 나만을 알고 있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말은 진실일 테지만 그것은 그녀의 진실뿐이었다. - 41쪽 망각의 인간이 남기는 기록 보통 사람에게 일상은 매일 망각의 강을 건너는 것과 같다. 알람에 맞추어 겨우 일어나 요기를 하고 일터로 나가는 분주한 하루의 시작부터 그 하루를 바삐 보내고 지친 몸으로 귀가해 식사를 하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켜놓은 채 앉아 있다가 잠드는 나른한 하루의 끝까지, 그리고 하루의 순간순간을 함께하는 ..
때때로 그는 점심을 굶고 있는 시다들에게 버스값을 털어서 1원짜리 풀빵을 사주고 청계천 6가부터 도봉산까지 두세 시간을 걸어가기도 했다. 일이 늦게 끝나는 날은 주린 창자를 안고 온종일 시달린 몸으로 다리를 휘청거리며 미아리까지 걸어가면 밤 12시 통금시간이 되어 야경꾼에게 붙잡혀 파출소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에 다시 도봉산까지 걸어서 집에 당도하는 일도 있었다. -112p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인간의 개성과 참 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을 가지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을 증오한다. (1969, 어느 겨울날) -114p 오늘도 보람없이 하루를 보내는 구나. 하루를 보내면서 아쉬움이 없다니, 내 정신이 이렇게 타락할 줄은 나 자신도 이때까지 생각해본 적이..
그런데 바람직해야 할 이 발달이 실은 아이들을 억압하고, 어른들도 부자유의 가치관에 묶어 둔다는 사실을 밝힌 것은 야마시타 츠네오山下恒男이다. 야마시타는 자신의 저서 『反발달론-억압의 인간학으로부터의 해방』에서 현대의 ‘발달development’이라는 개념이 아이가 우리 어른에 가까워지는 것을 선으로 규정하고, 혹여 아이가 어른이 기대하고 있는 길로부터 벗어나거나 다른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일 때는 강제적으로 원래 어른이 의도했던 길로 되돌리려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어른은 아이를 어떻게 하면 좋은(바람직한) 발달로 이끌 수 있을 것인가라는 ‘기술론’에 경도되어 있다고 발달개념의 억압성 구도를 상세하게 파헤치고 있다. -pp 25 ‘발달’ 개념은 생명의 평등을 말하는 데 사실은 겉으로 보기에만 ..
어찌하면 좋을지 모를 때 대처법 무도 수행이 체력과 투지를 기르고 격투기 기술을 훈련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지만, 이는 무도 수행의 본래 목적이 아닙니다. 합기도뿐만 아니라 무도라는 것은 본래 ‘어찌하면 좋을지 모를 상황에 처했을 때 적절하게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하기 위한 프로그램입니다. 어찌하면 좋을지 모를 상황에서도 어찌하면 좋을지 아는 것, 이것이 무도인들이 추구하는 궁극의 경지입니다. ‘어찌하면 좋을지 모를 상황’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천재지변을 맞닥뜨렸을 때, 사업에 실패하거나 병이 들었을 때 우리는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는’ 상황에 처하게 되지요. 이럴 때 우리는 흔히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는 채 방황하거나 기력을 잃곤 합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어찌하면 좋을지 아는 사..
해낸 후에야 알 수 있는 수업의 의미 노력이라는 것을 일종의 상거래쯤으로 여기는 사람은 이 같은 시스템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노력하게 만드는 이상, 노력한 이후에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사전에 보여달라. 그러면 노력하는 데 훨씬 인센티브가 될 것’이라고 말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엄청난 착각입니다. 원래 ‘인센티브’라는 것은 수업과는 무관한, 본질적으로 ‘반수업적’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왜 반수업적인가 하면, 인센티브incentive(동기, 장려금, 보상, 격려 등을 의미)의 가치는 노력하기 전에 이해할 수 있는 것이어야만 비로소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노력하면 돈을 주겠다’는 제안이 효과적인 것은, 노력하기 이전에 ‘돈의 가치’를 미리 알 수 있기 때문이..
도량형으로 계산하는 사회는 살아가는 힘을 거세하는 사회다 스포츠 프로선수 중에는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거나 도핑을 하고 시합에 나가 연전연승을 거두지만, 심장이 너덜너덜해진 사람도 있다고 하잖아요. 그것이야말로 신체 능력을 화폐나 ‘삶의 보람’ 같은 근대적인 도량형으로 계산하는 사회에서만 통하는 이야기예요. 강약, 승패, 우열로 순위를 매기거나 비율로 계산하여 수치로 생각하는 사람은 극단적으로 말해 ‘살아가는 힘’이 튼실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할지 몰라요. 살아가는 힘을 중시하지 않아도 의료나 재해 방지 같은 안전 보장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만 신체 능력을 수량화하는 법이니까. -52~53쪽 성공은 나의 것이 아닌, 위탁받은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은 내 힘으로 손에 넣었으니까 배타적으로 사용할..
운전학원 강사는 ‘다른 사람과 같은 수준에 도달했는가?’로 당신을 평가합니다. 반면 레이스 드라이버는 ‘다른 사람과 어떻게 다른가?’로 당신을 평가합니다. 그 평가를 실시하기 위해서 한쪽은 ‘이것으로 끝’이라는 도달점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다른 한쪽은 ‘끝이라는 것은 없다’고 하면서 도달점을 소거시킵니다. 두 교사가 다른 점은 이것입니다. 네, 이것뿐입니다. -35쪽 배움에는 송신하는 자와 수신하는 자, 두 명의 참가자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수신자’입니다. 제자가 선생님이 발신하는 메시지를 ‘가르침’이라 믿고 수신할 때 비로소 배움은 성립합니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배움’으로서 수신된다고 하면 그 메시지가 ‘하품’이든 ‘딸꾹질’이든 ‘거짓말’이든 상관없습니다. -39쪽 지금까지 당신..
교육제도를 개혁한다는 것은 ‘고장 난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는 상태에서 수리한다’는, 일종의 고난이도 곡예에 비유할 수 있는 어려운 일입니다. -pp 20 우리 교육이 추구해야 할 것은 비용절감과 조직의 경직화가 아니라, 교사들의 교육적 성취도를 향상시켜서 그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겁니다. 현장 교사들을 위해 창의적인 기운이 충만한,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정치인과 지식인, 교육관료들의 생각과는 정반일 것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교사를 겁먹게 만들고 무기력하고 비굴한 존재로 만들지에만 골몰하고 있으니까요. -pp 24 학교는 영리기업이 아닙니다. 수익을 올리기 위해 투자자를 모집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히려 학교는 원래부터 ‘이익이 창..
청춘은 도약이다. 청춘은 위협을 무릅쓴다. 청춘은 無知의 향유Enjoyment of Ignorance이다. 청춘은 無에로의 投己이다. 청춘은 단절된 현재의 순간을 사랑한다. 청춘은 비상이다. 청춘은 모험이다. -18쪽 누가 청춘을 아름답다 말했던가? 청춘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노인들의 청춘에 대한 회상만이 아름다운 것이다. 청춘에 대한 추억이 아름다운 것이다. 추억은 항상 아름다운 로맨스만을 추상해내는 능력이 있다. 거기에 부수된 불안과 공포와 고통은 떨쳐낸다. 청춘의 압도적인 사실은 좌절이다. 절망에는 내일이 없으며, 남아있는 재난의 기억조차 없다. -20쪽 꿈이란 나에게 있던 것을 넘어서서 현재는 없으나 있을 수 있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있던 것과 있을 수 있는 것의 확연한 질적 콘트라스트가 없..
물리학자 최무영의 말 “그것도 업자들의 농간이죠(핵력발전이 제일 싸다는 말에 대해). 아니 업자들과 결탁한 과학,기술계, 그 과학, 기술계와 결탁한 정치권력, 그 정치권력의 세계질서 지배방식, 이런 것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핵전의 신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죠. 핵전이 어떠한 전기발생방식보다 가장 값이 비쌉니다. 가장 비효율적인 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이죠. 핵쓰레기 처리까지를 포함, 후쿠시마와 같은 비상사태에 드는 비용까지를 계산하면, 그 비용은 수천배 비싼셈이죠. 그런데 일단 그런 방식으로 돈을 버는 자들이 있으니깐 그 관성체계는 아무도 스톱을 못시키고 있을 뿐이죠.” -41쪽 단재는 역사를 “인류사회의 아와 비아의 투쟁이 시간부터 발전하며 공간부터 확대하는 심적활동의 상태의 기록”이라고 애매모한 말로 ..
자크 모노가 ‘우연과 필연’을 이야기했지만, 인생이란 역시 필연보다는 우연이 더 지배적이다. 세포의 활동자체가 필연보다는 우연이 더 결정적이다. 진화라는 것이 결국 우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우연이 없으면 모험이 없고, 모험이 없으면 창조가 없다. -16쪽 나는 젊은 날, 1972년 만 24세의 나이에 유학의 장도에 올랐다. 그때만 해도 내가 유학을 가게된 가장 절실한 이유는 우리민족의 역사가 과학을 포함하여 학술적으로 너무 뒤져있다는 생각때문이었다. 서양에 뒤져있어 깔뵘을 당한다는 것이 몹시 분했기 때문에, 부지런히 서양을 배워서 서양을 극복해야겠다는 일념에서 조선땅을 떠났던 것이다. 요즈음 학생들은 개인의 스펙이나 캐리어를 위해서, 혹은 더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 유학을 간다 할지라도 우리세대의..
인간은 궁극적으로 언어의 노예다. 자기가 만들어 놓은 언어의 굴레를 맴돌 뿐이다. -28쪽 곽점죽간의 하나인 『語叢 二』의 제29간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喜生於性, 樂生於喜, 悲生於樂” 이것은 性에서 발현된 “기쁨喜”이라는 감정이, “즐거움樂”으로 발전되고, 또 그것이 “슬픔悲”으로 전환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옛 사람들이 情이라는 것을 단순하고 맹목적인 “쾌락”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매우 복잡한 인식론적 중층성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인간학적 과제상황으로서 파악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82쪽 인간을 교육시킨다고 하는 문제는 결코 이성적 인간을 만드는 데만 그 목적이 있지 아니 하다. 이성은 상식이다. 우리가 배양해야 할 것은 情感의 윤리성과 심미성이다. 심미적 감성을 결여한 윤리는 독..
살다보면 사무치게 외로운 날이 있다. 가족도 날 달래주지 못하고, 책 읽거나 영화 보기조차 귀찮은 그런 날이 있다. 이런 날이면 나는 친구를 생각한다. 술이나 한잔하자고 할까? 그러나 이내 그만두고 만다. 가슴 한쪽이 텅빈 듯한 공허감을 그냥 두기로 한다, 비어 있는 채로. 얼마간 비어 있는 채로 두면 된다. 중요한 것은 그 빈 공간을 간직하고 견디는 일이다. 삶은 그런 것이다. 그러니 좋은 친구는 그 빈 공간을 채워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 공간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끝까지 지닐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이들(옛 인물로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과 만나본 뒤 이런 결론을 얻었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독과 친해지는 일, 어디에도 기대지 않고 홀로 판단하고 서고 책임지는 능력, 그 리고 그 바탕 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사랑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들이 이 목적을 추구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남자들이 특히 애용하는 방법은 성공해서 자신의 지위의 사회적 한계가 허용하는 한 권력을 장악하고 돈을 모으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여성이 애용하는 또 한 가지 방법은 몸을 가꾸고 치장을 하는 등 매력을 갖추는 것이다. -14쪽 사랑에 대해서 배울 필요가 없다는 태도의 배경이 되는 두 번째 전제는 사랑의 문제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는 가정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고, 사랑할 또는 사랑받을 올바른 대상을..
그런데 지금 온 세상 교육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아이들에게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하는 힘을 기르는 일은 뒷전에 두고, 남의 몫을 가로채는 법, 남에게 기대 사는 법, 몸 놀리고 손발 놀려 살길을 여는 게 아니라 잔머리 굴려서 불쏘시개감도 못 되는 돈만 산더미처럼 쌓아올리는 게 유일한 꿈이라고 여겨 주식시장, 증권시장 같은 도박판을 기웃거리면서 마지막에는 패가망신하는 노름꾼이 되는 법…… 들만 가르치고 있다. -1쪽 “으응, 올콩은 감꽃 필 때 심고, 메주콩은 감꽃이 질 때 심는 거여.” 이 말을 듣고 나는 정신이 번쩍 났다. 그래, 책을 보고 날짜를 따져서 씨앗을 뿌리겠다는 내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지역마다 토양이 다르고 기후도 온도도 다르고 내리는 비도 바람길도 다른데, 그래서 지역..
사실 관상학은 우리의 心身이 일원적이라는 사고, 그리고 우주의 형상과 인간의 형상이 다르지 않다는 사고에 기반해 있다. 화가로서의 세잔의 초기 역사는 자신의 常套型과의 싸움의 역사다. 그의 의식은 새로운 인식을 원했다. 그런데 기성품으로서의 그의 두뇌적 의식은 줄곧 그에게 기성품적인 표현을 베풀었던 것이다. 자기 자신의 캔버스 위에서 자기를 조롱하는 듯한 기성의 상투형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내적으로 자존심이 강했던 세잔은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형상들을 파괴시키는 데 보냈다. (……) 그는 무엇인가를 표현하기를 열망하는데, 그것을 할 수 있기 이전에 그는 끊임없이 대가리가 다시 살아나는, 마치 히드라와 같은 상투형과 싸워야 했다. (……) 상투형과의 투쟁, 이것은 세잔의 그림들에서 가장 분명한 현상이다..
페리(닐의 父)가 닐에게(모든 부모의 거짓말) 일단 의대를 졸업해라. 그러고 나서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늦지 않는다. 그 땐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아무 상관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내가 하라는 대로 해 –38쪽 모든 때는 지금 이 순간에만 있다. 장미꽃 봉오리를 따려면 바로 지금이니 언제나 시간은 쉼 없이 흐르고 오늘 이렇게 활짝 핀 꽃송이도 내일이면 시들어지고 말지어라 (Carpe Diem) 지금도 내가 살아있다는 것 오 나여! 오 나의 생명이여! 한없이 떠오르는 이 의문들 부정한 것들이 꼬리를 물고 달려오고 도시는 온통 바보들로 넘칠 뿐.... 이 어디에 아름다움이 있단 말인가? 오 나여! 오 생명이여! 대답은 하나. 내가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 그리고 장엄한 연극이 계속되니..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은 육신의 욕망에 따르다가 타락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착취하여 자기 배를 불린다는 사실을. -120쪽 개인 차원의 자선은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 해도 경제적 불공정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없다. 눈앞에 닥친 긴급한 상황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무조건적인 재정 보조는 수혜자를 그것에 길들게 만들어 결국은 자생 의지를 꺾는 부정적 효과를 가져올 뿐이다. 갈런드 기금은 급진적 단체들에게 ‘자생력’을 부여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그러나 기금 보조는 그 단체들을 영원한 구걸꾼으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다. -125쪽 부를 피하지 않고 되레 그것을 추구했더라면 나는 분명 안이한 삶에 말려들었을 것이다. 가르치는 사명은 사회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고..
기억은 항상 선택적이다. 내가 기억하는 나는 실제 내 삶에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들 가운데 내게 유리한 것들로만 구성되는 기억의 게슈탈트다. …… 이러한 기억의 선택적 구성을 통해 자기 아이덴티티가 성립된다. 자기를 서술하는 방식이 자기 자신이 된다는 이야기다. ‘내가 이야기하는 나’가 ‘나’다. -105쪽 아이들은 배변 훈련을 하면서 처음으로 처벌을 경험한다. 아이는 처벌 때문에 더 이상 본능적 욕구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 이 처벌을 피하기 위해 현실 원리에 따라 행동하는 ego, 즉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우리 자의식은 회초리를 피하기 위한 잔머리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평생 지속된다. -147쪽 심리학자인 내게, 인류 역사의 가장 의미 있는 심리학적 발견을 하나만 이야기하라면 주저..
세상 만물이 다 그렇겠지만 식물이 자라고 영그는 데는 다 때가 있다는 것이지. 요놈이 본 줄기 양쪽에 코딱지만 한 눈을 처음 틔웠을 땐 저놈이 언제나 자랄까 하고 별로 신경 쓰지도 않았다. 실제로 그 싹은 2개월이 되도록 별로 자라지 않는 것 같았어. 그러다가 기온이 25도를 웃도는 7월이 되면서 겁나게 자라기 시작하는데, 자고 일어나 보면 구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네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싶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더러 아무리 공부해라 뭐해라 하고 부모가 야단을 친들, 때가 아니되면 아무 소용이 없어. 아이가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면서 언젠가 자신의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힘을 기다려 인내하고 있어야지, 조급한 마음에 이리저리 뛰어다녀 보아야 ‘치맛바람’ 밖에 더 되겠니? 또 그 억지야말로..
가르침=깨우침 옛날 분들은 가르치는 것을 ‘깨우친다’고 했습니다. 모르던 것을 이야기만 듣고 알게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불러내는 것입니다. -13~14쪽 차후에 알게 되는 것 우리의 강의는 여기 저기 우연의 점들을 찍어 갈 것입니다. 순서도 없고 질서도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그런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날 문득 인연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연들이 모여서 운명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강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저기 우연의 점들을 찍어 나가다 그것이 서로 연결되어 선이 되고 인연이 됩니다. 그리고 인연들이 모여 面이 되고 場이 됩니다. 들뢰즈는 장을 배치agencement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
저는 전에는 말씀드렸듯이 결코 많은 책을 읽으려 하지 않습니다. 일체의 실천이 배제된 조건하에서는 책을 읽는 시간보다 차라리 책을 덥고 읽은 바를 되새기듯 생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필요가 있다 싶습니다. 지식을 넓히기보다 생각을 높이려 함은 思沈하여야 思無邪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선 제 사고의 서랍을 엎어 전부 쏟아내었습니다. 그리고 버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아까울 정도로 과감히 버리기로 하였습니다. 지독한 ‘지식의 사유욕’에, 어설픈 ‘관념의 야적’에 놀랐습니다. 그것은 늦게 깨달은 저의 치부였습니다. 사물이나 인식을 더 복잡하게 하는 지식, 실천의 지침도, 실천과 더불어 발전하지도 않는 이론은 분명 질곡이었습니다. 이 모든 질곡을 버려야 했습니다. 躡屩擔簦(史記) 언제 어디로든..
진정한 아름다움은 기다림과 견딤의 시간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고통과 인내의 필터를 거친 후에야 우리 손에 주어집니다. 아름다움은 아주 조금씩 그리고 아주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그것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10쪽 목숨을 다하도록 뜨거웠던 사랑이 설사 이루어지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래서 바람이 불때마다 가슴에서 피리 소리 나는 아픔이 되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 애틋함으로 인해 결국 뜨거운 가슴을 가지게 되었다는 고백을 하게 될 것이다. -32쪽 모든 미움과 적의는 소통의 부재에서 탄생한다. 단지 몇 마디 말을 걸고 간단한 인사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많은 미움은 사라진다. 같이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같이 한 끼 밥을 먹는 것이 무어 그리 어려운 일인가. 출근길에 혹은 퇴근길에 가볍게 인..
카오산에 오면 몇 달씩 배낭 여행을 하는 게 어려운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행이 어렵다고 생각된다면 그건 돈과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다. 단지 여행하는 법을 잘 몰라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하루에 만 원으로 아시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수두룩하다. 영어를 못하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영어 한 마디 못해도 다들 여행만 잘한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여행을 하느냐고? 게스트하우스에 가보면 안다. 모두들 특별할 게 없는 보통 사람들이다. -25쪽 윤지현 32세 인터뷰 살면서 물질에 집착하고 갖고 싶은 거 다 가지려 하면 돈이 많이 들잖아요. 그런데 거기서 한 걸음만 벗어나도 사는 데 돈 그렇게 안 들거든요. 여행도 마찬가지예요. 항상 새로운 것만 찾고, 꼭 좋은 데서 자고 먹고 하면 당연히 돈 많이 ..
열정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넌 자와 건너지 않은 자로 비유되고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강물에 몸을 던져 물살을 타고 먼 길을 떠난 자와 아직 채 강물에 발을 담그지 않은 자 그 둘로 비유된다. 열정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맡겨 흐르는 것이다. 잘못하면 스텝이 엉키죠. 하지만 그대로 추면 돼요.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지요. 사랑을 하면 마음이 엉키죠. 하지만 그대로 놔두면 돼요. 마음이 엉키면 그게 바로 사랑이죠. 그러니까 잘 살기 위해선 뭔가를 자꾸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교훈과 내가 죽더라도 아무도 목이 메게 하거나 다리에 힘이 풀리게 하면 안 되겠다는 교훈을 얻은 거야. 뭔가를 갖고 싶어 한다. 뭔가를 찾아서 헤맨다. 뭔가가 더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는 모를 일이다. ..
우리네 인생살이에는 종종 느닷없는 행운이나 불행이 찾아오곤 한다. 그리고 그것은 느닷없이 우리 삶을 뒤흔들어, 우리를 전혀 다른 존재로 바꾸어 놓기도 한다. 우리는 바로 이때를 조심해야 한다. ‘예전의 나’와 ‘느닷없이 바뀌어 버린 나’ 어느 쪽이 진짜 나인지 혼란에 빠져 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143쪽 아홉 살은 사람들의 부질없는 허영심까지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므로. 그러나 허영심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나는 알게 되었다.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맹장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조차 기필코 차지하려 드는 멍텅구리들이 세상에 뜻밖에도 많다는 사실을. -199쪽 아아, 골방에 갇혀 천하를 꿈꾼들 무슨 소용 있으랴. 현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욕망은 우리 마음속에 고이고 ..
나는 자식들을 가르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에게 한 사람으로서 제 몫을 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50쪽 그런 가운데서도 그의 왕성한 독서열은 식을 줄 몰랐다. 천식으로 쉽사리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이면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으며 밤을 하얗게 지새우곤 했다. 그 습관은 시에라마 에스트라에서 게릴라 생활을 할 때에도 계속되어 다른 게릴라들이 단잠에 곯아떨어진 한밤중에 그는 책을 읽느라 밤을 지새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천식은 체게바라의 운명과 떼어놓을 수 없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지나치다 싶을 만큼의 과도한 활동성과 다른 사람들보다 두 배, 세 배로 농축하여 살았던 날들, 그리고 그가 럭비 경기장에서 몸을 구를 때조차도 그를 떠나지 않았던 고통들을 모조리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그는 다른..
이제부터 ‘시선의 고문’에 시달려야 하고 스스로의 내면을 단단히 감싸지 않으면 안 되었다. -64쪽 꼭 학교를 다니고 졸업을 해야만 하겠냐? 나중에 내키면 그 때 가서 혼자 공부하면 안 될까? 하여튼 나는 꼴리는 대루 할 거야. 달마다 학력고사에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고 일등에서 꼴찌까지 석차를 매기구 말야. 너 시험지에 쓴 내용이 기억나니? 거의가 개떡 같은 속임수들이다. …… 그건 그 때 가서 몸으로 때우든지, 우리가 저지른 실수의 흔적들을 치우든지 하면서 살아가면 된다. 나는 각오를 하구 있어. 저 봐, 길거리에서 애들이 막 총에 맞아 죽구 그러는데, 어쨌든 우린 살아갈 거잖아. 하여튼 앞날은 잘 모르지만 제 뜻대루 할 수 있잖냐구. 너 어른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게 고작 뭔지 생각해 봐라. 우리 어머..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는 지금 내가 아주 애용하는 말이 되었다. 전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힘에 부칠 것 같은 일을 계획할 때, 혹은 무언가 조금 늦었다고 생각될 때, 그래서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내가 나에게도 하는 말이다. 실제로 자신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물에 빠지면 십중팔구는 허우적거리다 죽는다. 그런데 사람이면 누구나 물에 뜨게 돼 있다고 한다. 이 경우는 순전히 자기가 수영을 못한다는 ‘생각’이 일을 그르친 것이다. 너무 억울한 일이 아닌가. 원래부터 할 수 있는 일이건만 단지 ‘난 못해’하는 생각 때문에 할 수 없게 된다면. 그런 억울한 일을 원천봉쇄하는 주문이 바로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꿈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질 수 있어도, 목표는 하루에 한 발짝씩 걸어가야만 도달할 수 있다. 잘하려면 싸우지 말고 놀아야 한다니? 이게 무슨 천지개벽할 말인가. 여태껏 우리는 무엇을 잘하려면 그것과 싸워 이겨야 한다고 배웠다. 항상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그래야 뭔가 이룰 수 있다고 말이다. 나는 여행도 진이 빠질 때까지, 일도 이를 악물고, 공부도 눈에서 피가 날 정도로 했다. 그래야만 성에 차고 내심 뿌듯했다. 뭐든 싸워 이기려 했던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잔뜩 긴장한 채 싸웠던 실체는 일 자체가 아니라 ‘남’이었다. 남보다 늦었다는 생각, 남보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 그러나 기초 공사가 잘 되지 않았다는 불안감, 긴장된 표정과 태도는 다름 아닌 부실한 자신을 감추기 위..
2005년 통계라고 하던데 1083, 819, 577, 521, 476, 471, 412, 405, 403, 341 …… 이게 부동산 소유 순위 상위 10명이 가진 집 숫자랍니다. -447p 지금은 누구도 자기를 안 돌본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를 챙기는 거예요. 그런데 남태평양의 어느 원주민 사회를 보면 젊은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으면 노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다 나눠줘요. 노인들은 젊었을 때 자기한테 물고기를 나눠줬던 사람들이고, 아이들은 자기가 노인이 됐을 때 물고기를 나눠줄 사람들이에요. 이게 공동체예요. 소유의 형식과 사뭇 달라요. 인류학 책을 왜 많이 봐야 하냐면,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너무 오래 살다 보니까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몰라요. ‘소유 형식의 문제야’라고 하면 ‘..
자유로운 개체들의 연대는 타자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이나 민중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으로부터 모색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산다면 연대의 운동은 또 다시 초월적 가치의 형태들 가운데 하나로 전락하고 말 겁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자유로운 개인들 간의 연대, 그것은 오직 우리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한, 그리고 우리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운동으로 진행되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 이 운동은 그 자체로서 우리 삶의 전체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의 삶과 연대는 비로소 수단과 목적이 통일된 유쾌한 대장정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pp 8 상에 대한 욕망은 선을 실천하려는 의지로, 그리고 벌에 대한 공포는 악에 대한 죄의식으로 내면화 된다. 니체가 지적..
이중적인 전도와 착각 속에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민주주의를 자본주의와 동일시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일치된 것으로 사유되는 민주주의는 결국 재분배를 강조하는 민주주의에 불과한 것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자본주의와 결합될 수 있는 민주주의는 사회민주주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여기에서는 애초에 자본가가 ‘자본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 문제되지 않는다. 이것은 노자가 ‘남음이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전혀 문제삼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원초적인 불평등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파생되는 부족함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란 존재할 수 없다. 우리뿐만 아니라 태어나는 모든 우리의 후손들이 그들이 원하든 원하고 있지 않든 간에 원초적 불평등의 상황에서 태어나는 것은 정당한 것일까? 유한한 ..
철학과 삶 음미되지 않는 삶은 맹목적인 삶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철학은 풍성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 우리가 삶을 ‘낯설게 만들어야만’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 자체가 이미 우리로부터 ‘낯설어지는 그 무엇’이기 때문입니다. -pp 14 철학적 사유란 미리 삶을 낯설게 만드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pp 15 에피쿠로스는 세계 형성 이전에 무수한 원자가 허공 속에서 평행으로 떨어졌다고 설명한다. 원자는 항상 떨어진다. 이는 세계가 있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동시에 세계의 모든 요소는 어떤 세계도 있기 이전인 영원한 과거로부터 실존했다는 것을 함축한다. 이는 또한 세계의 형성 이전에는 어떤 의미(Sens)도, 또 어떤 원인(Cause)도..
‘-1’의 평화 집단과 하나가 되는 한에서만 개체는 안전하다. 그리하여 부조리한 실존들은 괴상한 집단주의 속에서만 구원을 찾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필사적으로 자기를 집단과 동일시하려 한다. 그 집단은 작게는 교실 안의 패거리, 크게는 국가와 민족일 수 있다. 집단과 동일시에 실패하는 자는 공동체의 성스러움을 지키기 위한 희생양이 된다. 그러다가 희생자가 사라지면? 문제 없다. 개별자들은 집단 속에서 기어이 또 하나의 ‘모난’ 놈을 찾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또 하나의 희생양이 선택되면, 적어도 그가 존재하는 동안은 개별자들은 다시 안심하고 살아간다. 그리하여 ‘전체 빼기 하나’의 화해와 평화, 보편적 카오스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이너스 1’의 祭儀 -pp 21 一家心中(잇카신주) 을 쓴 에밀 뒤르켐..
보수란? 보수성은 이론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대부분 이론의 반성 없이 습관으로 존재한다.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는데도 그저 익숙하기 때문에 집요하게 존속하는 폭력들이 있다. 그것을 없애려면 우리 주위의 익숙한 모든 것들을 한 번쯤 낯설게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인의 신체는 고통 받고 있다. 하지만 고통도 익숙해지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 법. 적어도 한 번쯤 낯설게 보기를 통해 한국인의 신체가 어떤 고통을 당하는지 느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pp 14 출애굽기 Rural-exodus는 본질적으로 저곡가 정책으로 도저히 농촌에서는 먹고살 수 없게 한 정책의 결과였다. 해가 뜨고 지고, 달이 차고 기울고, 계절이 교차하는 자연의 리듬에 따라 살던 이들이 햇볕 안 드는 쪽방에서 자며 공장에서 1..
‘고통 없는 죽음은 극히 드물다’에서 ‘고통스런 죽음은 극히 드물다’로. 이는 그동안 죽음의 이미지가 어떻게 변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과거 교회는 죽음에 육체적 고통의 흉측한 이미지를 덧붙임으로써 죽음의 공포를 팔아먹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백과사전」은 이 교회의 프로파간다를 믿는 우매한 민중을 향해 계몽적인 어조로 외친다. “고통스런 죽음은 극히 드물다. ……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관습, 교육 혹은 편견 때문이다.” -pp 29 죽음과 악 과거 천 년이 넘는 세월동안 죽음은 인류가 지은 죄의 대가였다. 하지만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사랑하는 너의 죽음을 죄의 값과 연결시키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너의 죽음이 네가 지은 죄의 당연한 대가라니. 때문..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이 된 것은, 기독교가 로마에서 공인되고 또 십자가형이 폐지된 이후라 한다. 다른 처형 도구가 사용되면서 비로소 십자가는 ‘범죄자’를 연상시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고, 기독교의 상징으로 버젓이 자리잡게 된다. -pp 40 죽음은 필연적인 게 아니라 뭔가 우연적인 것으로 설명된다는 점이다. 원래 인간은 죽지 않는다. 아담이 우연히 실수를 저지름으로써 죽게 된거다. 죽음은 삶의 본질적인 특징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도덕적 실수 때문에 삶에 덧붙여진 이물질일 뿐이다. 그렇다면 죽음을 삶에서 떼어내기도 한결 쉬워진다. 죽음을 끌어들인 그 죄를 뉘우치기만 하면 되니까. 이 회개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신은 인간에게 그의 독생자를 보내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
1부 대중의 흐름 1. 주변화와 소수화 : 국가의 추방과 대중의 탈주 전체를 위한 일부의 희생 노무현 정부는 이들 국책사업에 막대한 ‘국익’이 달려 있다는 이유로 사업 추진을 정당화했다. ‘전체’를 위해 ‘일부’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논리가 시종일관 따라다녔다. 그러나 이제 희생이 불가피한 그 ‘일부’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지역 개발을 위해 불가피하게 희생된 자연, 무역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나라에서 희생이 불가피한 농민,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위해 불가피하게 희생된 노동자(특히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 국가 안보를 위해 자기 안보를 희생해야 했던 대추리 주민들.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된 지난 십여 년간 대중들의 삶은 이 ‘불가피하다’는 희생 속에 존재하고 있다. ‘전체’를 위해 희생된 ‘일부’,..
차라투스트라의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질 때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오디세우스처럼 자신을 묶어 줄 우리 시대의 굳건한 돛대를 찾을 것인가, 아니면 그 부하들처럼 밀랍으로 귀를 막은 채 그저 노만 저을 것인가. 둘 다 아니다. 뛰어들지 않은 채 그저 즐기기만 하는, 행여 끌려 들어갈까 봐 시대의 기둥 하나에 제 몸을 단단히 묶어 두는, 그런 지식인 무리들이 밀랍으로 귀를 막은 자들보다 나을 게 무언가.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귀를 열고 위험에 스스로를 내던져야 한다. -pp 9~10 그는 에머슨(Emerson)의 글을 인용하기도 했다. “위대한 신이 우리 행성에 한 사상가를 오게 할 때, 그대들은 조심하라. 그때 모든 것은 위험에 처해진다.” 사물들의 질서가 뒤바뀌며 순식간에 인간적 노력의 모든 체계가 전복될..
우리는 왜 그렇게 많은 조각들을 빠뜨리는 걸까? 둔감한 신체, 그것이 문제다. 길들여진 눈이나 길들여진 귀는 너무도 많은 것들을 놓친다. 눈이 시대의 ‘광학 훈련’에 익숙해져 상식을 벗어난 어떤 것도 보지 못하고, 귀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들만을 들으려 한다.”면 신체는 더 이상 우리 것이 아니다. 길들여진 눈, 길들여진 귀, 무엇보다 길들여진 두뇌를 지배하는 것은 관습과 법이다. 그것들이 감각하고 그것들이 명령한다. -pp 4 하나의 현실이 이성적인 것으로 간주된다면 다른 현실을 꿈꾸는 자의 사상은 광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pp 4 철학자는 먼저 “꿀을 많이 모은 꿀벌”이지 않으면 안 된다. 스스로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행복에 대해 혼동하지 않는다. 스스로 건강한 사람만이 병을 옮기지 않고..
“사랑하는 대상이 바로 ‘나’다” 아무리 심한(?) 배신을 당했다 할지라도 애초 모든 사건이 자신으로부터 비롯했음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원인이 될 때, 사랑은 그 자체로 축복이다. 열심히 사랑한 다음, 그 대가로 천국에 가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행위 자체가 천국인 것. 거기에는 배신과 복수 따위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따라서 복수혈전이 펼쳐진다는 건 그 사랑의 원인이 내가 아니라, 상대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전제하고 있는 셈이다. …… 이렇듯, 사람들은 사랑을 언제나 대상의 문제로 환원한다. 한마디로 대상만 잘 고르면 만사형통이라 여기는 것이다. 사랑에 실패한 건 대상을 잘못 골랐기 때문이고, 아직까지 사랑을 못해 본 건 ‘이상형’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14쪽 상식적인 말..
대중지성 - 잡초는 범람한다 학교가 자본과 권력의 욕망에 달라붙은 ‘기식자’들을 양산하는 동안, 그 외부에서는 전혀 다른 유형의 지적 욕망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이름하여 대중지성!(고병권) 꿀벌이나 개미떼처럼 언제나 무리로 움직이고, 오직 네트워크를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대중지성은 ‘무리지성’이기도 하다. 대중보다 더 대중적이고, 지식인보다 더 지성으로 충만한 집단. 테크노크라트들이 ‘지식, 자본, 국가’의 삼위일체 속에서 움직인다면, 대중지성들은 그 외부에서 ‘지성의 敎海’에 몸을 던진다. -26쪽 발트해 연안의 거대한 숲, 나무와 나무 사이로 붉은 장막들이 나부낀다. 몰이꾼들이 요란하게 나팔소리를 울리며 한 무리의 늑대를 붉은 장막 쪽으로 몰아붙인다. 빼곡이 늘어선 나무들과 울퉁불..
실험들은 자주 실패했고, 가끔씩 성공했다. 하지만 우리는 실패를 즉시 잊었고, 성공 또한 오래 기억하지 않았다. 자기를 배려하는 힘이 흘러넘쳐야 비로소 타인을 배려할 수 있다. -6쪽 생의 길섶에는 무수한 우연들이 숨겨져 있는 법 …… 마음이 통하면 천 리로 지척이라고, 보이지 않는 인연의 선들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아무리 광대한 시공간도 단숨에 주파할 수 있다는 것. -7쪽 자신의 고향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미숙한 초보자이다. 모든 땅을 자신의 고향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강인한 자이다. 그러나 전 세계를 타향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완벽한 자이다. 위그 「工夫」 근대성이란 한마디로 사람들을 ‘고향’에 묶어두는 인식론적 기제라고 생각한다. ……공부란 고향에서 떠나는 과정이라고, 더 정확히 ..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한다. 정말 그런가?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대학에 자리 잡으면 그 때부터 공부는 끝난다는 게 우리 시대의 상식이다. 대학원, 석ㆍ박사과정을 마치려면 30대 중반이 넘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요즘 같은 대량 교육 시스템과 지적 풍토에서 박사논문은 하나의 출발점일 뿐이다. 따라서 제대로 라면 도제과정이 끝나는 30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앎을 구축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이다. 그때부터 교수임용 전선에 뛰어들어, 실패한 경우는 세상을 비관하느라, 성공한 경우는 온갖 프로젝트니, 회의니 하는 것들에 휘둘리느라 공부는 바로 끝이다. -43쪽 (노브레인, 크라잉넛이) 먼저 의기투합하는 친구끼리 밴드를 짠다. 그 다음에는 작업실을 하나 마련해 합숙을 ..
적이 지닌 온갖 결함에 의존해서야 비로소 나의 옳음이 입증된다면, 그 때 증명되는 건 정당성이 아니라 나의 초라함과 비겁함일 뿐이다. (돈의 속물성을 비판하되, 대안적인 소비생활을 고민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15쪽 생로병사의 번뇌에서 자유로워지는 게 행복의 기초라면 보험상품은 정확하게 반대방향으로 취하고 있는 셈이다. 생로병사의 전 과정을 불안과 공포의 원천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상품의 유형과 숫자가 정신없이 늘어만 간다. 태아보험에 어린이 보험, 급기야 사후보험까지 출현했다. -44쪽 더 큰 문제는 질병과 노후를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 실제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광고가 있다. “내 몸 내가 지켜야지”하면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불쑥 나타나선..
그런데 어느 정도 산업화된 나라 중에서 왜 하필이면 한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이 ‘생계형 영세 창업’이 최근에 이렇게도 유행하게 됐는가? 나는 위에서 잠깐 언급한 한국 국가의 성격에서 그 대답을 찾고 싶다. 한국 국가는 재벌이나 토건 업체들을 중심으로 해서 돈을 풀어 성장률을 높이는 기술을 잘 구사해왔지만, 또 한 편으로는 노동 부문이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이나 복지가 우선 순위 중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아주 익숙하다. 자본이 노동자의 임금을 깎으면서 성장하면 다행이고, 복지란 국가가 아닌 가족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IMF 이전에도 위정자의 ‘상식’이었지만 IMF 사태 이후에 개발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결합되어 노동은 그야말로 ‘동네북’이 된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체 근로자의 65%나 되고, 적어..
국가 폭력을 거부하는 데서 가장 근본적인 행동인 병역의 양심적 거부도 그들에게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제국주의에 종속된’ 국군이긴 해도 그 ‘국군’에서 복무하는 것을 ‘우리’ 대가족의 남성 어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로 인식하는 듯했다. 물론 국가와 군대를 ‘우리’의 기구로 인정한 이상, 그들이 1960년대의 구미 운동권이 목표로 한 폭력의 전면적인 거부와 근절을 생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한 문맥에서, 그들이 내무반에서 벌어지는 폭력 전통을 획기적으로 근절하지 못한 것이 과연 놀라운 일일까? (물론, 그들 중 개인적으로 삼갈 수 있을 때까지 폭력적 행위를 삼간 예외적인 인물도 있었다.) 한마디로, 1960년대에 서구와 미국의 무정부주의자들이 갈망하던 ‘모든 국가와 제도로부터의 인간성 해방’과 ..
메모리즈 (기억의 세 가지 시제) 마그네틱 로즈 우리 역시 아름다운 시간을 멈추게 하기 위해, 혹은 현재와 미래가 언제나 그 가장 아름다운 시절의 시간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욕망하고 있지 않은가? 사진이나 영상을 이용하여 시간의 흐름을 멈추게 하기 위해 수없이 반복된 시도들도 그러하다. “남는 것은 사진 밖에 없다!” 기억이란 이처럼 어떤 순간을 멈추게 하려는 의지의 형식이다. 추억이나 회상, 그것은 이런 기억이 과거의 시제를 취할 때 나타나는 단어이다. pp 66 最臭兵器 어떤 상황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명령의 기억은 노부오의 행적을 따라 죽음의 가스를 살포한다. 마지막 장면은 이 점에서 더욱더 익살스럽다. 나사의 우주복을 입고 결국은 ‘물건’을 전하는 노부오. 이 경우 기억이란 단지 과거에 관한 것이 아..
수단이 목적, 물음이 해답 手段がそのまま 수단이 그대로 目的であるのはうつくしい 목적이 되는 것은 아름답다. アイスクリームの容れものの三角が 용기로서의 아이스크림이 そのままたべるウエファースであり 그대로 먹을 수 있는 웨하스이고 運ぶ材木の幾十百本が 운반하는 수천 개의 목재가 そのまま舟の筏であるように 그대로 배의 뗏목이 되듯이 「なんのために生きるのです」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이지요?” そんな少女の問いかけに 그런 소녀의 물음에 「問いはそのまま答えであり」と “물음은 그 자체로 대답”이라고 だれかの詩句を心に呟きつつ 누군가의 시구를 마음에 중얼거리면서 だまつて僕は微笑んでみせる- 杉山平, 「問い」 잠자코 나는 미소 짓는다.
사람에게 인상을 남기는 방법 나는 카메라의 눈으로 보지 않는다. 사람이 실제 풍경을 보듯 인상적인 부분만 보고 그린다. 풍경의 왜곡이어도 그것이 사람에게 인상을 남기는 방법이다. - 미야자키 하야오, 한가람 레이아웃전에서
대변이 아닌 똥에 머물기를 ‘똥’이라는 말의 동심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순간, 거기에서 시적인 것이 발생한다. 그리고 ‘똥’이라는 말에서 벗어나 ‘대변’이라는 말을 흠모하려는 어린이들을 조금 더 오래 ‘똥’에 머물도록 만드는 게 동시의 역할인지도 모르겠다. -『한겨레신문』, 「안도현의 발견」, 13.12.30
좋은 사람과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 - 장조張潮 貌有醜而可觀者, 有雖不醜而不足觀者; 文有不通而可愛者, 有雖通而極可厭者. 此未易與淺人道也. 해석 貌有醜而可觀者, 얼굴이 추하지만 볼 만한 사람이 있고, 有雖不醜而不足觀者; 비록 추하진 않지만 볼 만한 게 없는 사람이 있다. 文有不通而可愛者, 글이 잘 이해되진 않지만 사랑스러운 글이 있고 有雖通而極可厭者. 비록 이해가 되지만 매우 싫어할 만한 것도 있다. 此未易與淺人道也. 이것은 쉽게 천박한 사람에게 말해줄 수 없는 것이다. 인용 까마귀의 날갯빛
인류는 진드기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거대한 바다와 산들은 모두 지질학적 토대의 변화에 따라 생겨나는 산물들이다. 지구라는 모자이크판에 끼워 맞춰진 지각판들의 배열에 따라 생겨나는 것이다. 만약 그 지각판이 움직이면 모든 것이 재배치될 것이다. 인류는 바다가 낮아지고 기후가 비교적 온화해진 극히 짧은 시기에 일시적으로 불어나 지각판 위에 매달려 기생하는 진드기나 다름없다. 지금 있는 땅과 바다의 배열은 언젠가는 변할 것이다. 그와 함께 극히 순간에 불과했던 인간문명의 영화도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다 -리처드 포티Richard Fortey(Earth: An Intimate History, New York:Vintage Books, 2005, p.164) 인용 중용 26장
우분투 아프리카 부족에 대해 연구 중이던 어느 인류학자가 한 부족 어린이들을 모아 놓고 게임을 제안했습니다. 나무 옆에 싱싱하고 달콤한 과일들로 가득 찬 바구니를 놓고 누구든 먼저 바구니까지 뛰어간 아이에게 과일을 모두 주겠노라 한 것이지요. 인류학자의 말이 통역되어 전달되자마자 아이들은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손에 손을 잡은 채 함께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바구니에 다다르자 모두 함께 둘러앉아 입 안 가득 과일을 베어 물고 키득거리며 재미나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인류학자가 아이들에게 누구든 일등으로 간 사람에게 과일을 몽땅 주려 했는데 왜 손 잡고 함께 달렸느냐고 물어보자 아이들의 입에선 UBUNTU라는 단어가 합창하듯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한 아이가 이렇게..
나는 내가 아닌, 모든 사람들의 총화다 모든 살아있는 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배후에는 30명의 영혼이 서 있다. 그것이 죽은 자의 산 자에 대한 비율이다. 역사의 미명부터 지금까지 이 지상을 걸어간 사람은 천억 명에 이른다. -Clark
교사란 자리의 신비 가르친다는 것은 매우 희한합니다. 나는 지금 교탁 이쪽에 서 있습니다만, 이 장소에 서게 되면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누구라도 일단은 그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일단은 무지를 이유로 부적격 판정을 받을 교사는 없습니다. 사람은 알고 있는 자의 입장에 서게 되는 동안은 늘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가르치는 자의 입장에 서는 한, 그 사람이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는 결코 없습니다. -자크 라캉, 『가르치는 자에 대한 물음 下』 중 ▲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의 키팅 교사와 학생들.
선택 아닌 선택 저는 ‘선택’하면 항상 떠오르는 영화가 있습니다. 『소피의 선택』인데, 주인공 이름이 ‘소피’입니다. 소피가 두 자식을 데리고 아우슈비츠로 끌려갑니다. 여기까지는 빤한 내용이지요. 그때 나치 장교가 소피에게 두 아이 중 한 명을 구해줄 수 있으니 선택하라고 합니다. 그 순간,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소피는 선택을 하지 못합니다. 저는 ‘선택’하면 늘 그 장면이 스쳐가곤 합니다. 그건 형식적으로 선택인 것 같지만 ‘선택’이 아닌 거죠. 두 자식 중 하나를 고르라는 건 선택일 수가 없습니다. 지금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한국에 사는 사람들, 한국뿐 아니라 약자 혹은 피지배자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와 유사한 ‘선택’이 강요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을 ‘선택’하기 위해 여기 젊..
좋은 글의 조건 夫昔之爲文者, 非能爲之爲工, 乃不能不爲之爲工也. 山川之有雲霧. 草木之有華實. 充滿勃鬱, 而見於外. 夫雖欲無有, 其可得耶. - 蘇東坡, 「南行全集敍」 해석 夫昔之爲文者, 非能爲之爲工, 옛적에 글을 짓는 사람은 잘 짓는 것을 ‘좋은 글’로 여기지 않고, 乃不能不爲之爲工也. 짓지 않을 수 없어 짓는 것을 ‘좋은 글’로 여겼다. 山川之有雲霧. 草木之有華實. 充滿勃鬱, 而見於外. 산천의 구름과 안개, 초목의 꽃과 열매도 충만하고 무성하여야 밖으로 드러나듯이, 夫雖欲無有, 其可得耶. - 蘇東坡, 「南行全集敍」 인위적으로 짓고자 하지 않아야 좋은 글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