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연재/한문이랑 놀자 (206)
건빵이랑 놀자
이직, 시로 자연을 읊으며 임금을 경계하다 崩崖絶磵愜前聞 깎아지른 벼랑 깊은 골짜기는 전에 듣던 그대론데, 北塞南州道路分 북쪽 변방과 남쪽 고을의 길이 철령에서 갈라진다네. 回首日邊天宇淨 머리 돌리니 해 근처 하늘은 맑은데, 望中還恐起浮雲 바라보는 가운데 다시 뜬구름 일어날까 두렵다네. 『소화시평』 권하 4번의 두 번째 소개된 이직의 시는 숨겨진 맥락까지 있는 시였지만, 나는 너무도 단순하게 생각했다. 단순히 시만 보면 1~2구에선 철령의 지리적인 위치에 대한 설명을, 그리고 3~4구에선 철령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맑디 맑은 하늘을 보다가 갑작스레 ‘구름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괜한 걱정’ 정도로 읽혔다. 이렇게만 읽으면 단순히 생각나는 글이 바로 ‘기우(杞憂)’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천해자연의 아름다운..
최승로, 시로 자연을 읊으며 임금을 경계하다 『소화시평』 권하 4번에서는 한시를 통해 정치적인 풍자를 하고 있다고 홍만종은 보고 있다. 중요한 건 ‘작가가 정말 그런 의도로 썼냐?’하는 것을 따지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이야말로 ‘본질은 뭐냐?’를 따지는 작업이 될 텐데, 문학작품을 볼 때 본질적인 의미로 들어가 따지다 보면 시비를 가리려 하게 되며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늘 그래왔듯 ‘정답’을 원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켜서 오히려 작품을 이해하는 마음에 심한 왜곡을 만들어낸다. 그러니 소화시평을 공부하는 이상 홍만종이 품평한 시어들을 중심으로 작품을 최대한 이해하려 노력하고, 도무지 납득이 안 될 땐 거기에 자신의 의견을 달아 생각의 범위를 확대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錦籜初開粉節明 대껍질..
암초를 보며 양두구육하는 세태를 노래하다 『소화시평』 권하 3번에 네 번째로 소개된 신최의 시도 어찌 보면 삶의 지혜를 담고 있는데 여기서도 홍만종은 자신이 싫어하는 인간의 군상을 발견한다. 이 시의 내용은 기탄(歧灘)이란 곳에 대한 내용이고 배를 타는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암초에 대한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니 수면 바깥으로 드러난 바위는 오히려 위협적이지 않지만 물속에 감춰져 있어 배에 심한 손상을 입힐 수 있는 암초는 큰 위협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홍만종이 ‘입엔 꿀을 머금고 배엔 칼을 지녀 은밀히 공교로운 가운데 발동하는 사람을 비유했다[以譬口蜜腹劒, 潜發巧中者].’이라 평하며,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을 비유한 건 정말 적절했고 쉽게 이해가 됐다. 애초에 누구에게나 ‘저 사람은 별로다’라는 ..
몰입하며 욕심을 내려놓는 경지란 迷花歸棹晩 待月下灘遲 꽃에 빠져 배 돌리기 늦었는데 달을 기다리다 여울 내려가기 또 늦었네. 醉睡猶垂釣 舟移夢不移 취해 자면서도 오히려 낚시대 드리우니 배는 가도 꿈은 그대로구나. 『소화시평』 권하 3번에 여섯 번째로 소개된 송익필의 시도 시 자체에 담겨 있는 의미보다 그 시를 읽고 홍만종이 그려낸 의미가 더 적나라하기 때문에 홍만종의 시를 보는 관점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시다. 1~2구에선 배를 타고 꽃구경을 나선 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꽃구경에 흠뻑 빠지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배를 돌려 떠나야 할 시간이 지체되었다. 지금처럼 일분 일초 단위로 시간을 체크하며 움직이는 시대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모습이기도 하다..
배가 정박한 모습과 선비들의 출처관 日暮滄江上 天寒水自波 저물녘 푸른 강위에 날씨는 차갑고 물은 절로 파도치네. 孤舟宜早泊 風浪夜應多 외로운 배 마땅히 일찍 정박한 것은 풍랑이 저녁에 응당 많기 때문이지. 『소화시평』 권하 3번에 다섯 번째로 소개된 최수성의 시는 시의 내용보다 홍만종의 해석이 더 빛난다고 할 수 있다. 최수성의 시는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기보다 아주 일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반해,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처세술의 한 방향으로 본 것은 홍만종의 시평이기 때문이다. 1~2구에선 저물녘 강가의 풍경을 읊고 있다. 아무래도 계절적인 배경은 늦가을 내지는 초겨울일 것 같다. 그러니 저물녘 강가엔 차가운 한기가 돌고 그 한기를 더욱 배가(倍加) 시키듯 파도가 일어나니 말이다. 이 구절을 읽..
멋있게 나이 먹어야 하는 이유를 금강산으로 비유하다 一萬二千峰 高低自不同 일만이천봉의 높낮이가 절로 다르니, 君看日輪上 何處最先紅 그대 보게나, 해가 떠오를 때 어느 곳이 가장 먼저 붉어지는지? 『소화시평』 권하 3번에 네 번째로 소개된 성석린의 시는 산에 올라본 사람이라면 보는 순간 대번에 이해하게 되는 시다. 금강산의 일만이천봉은 누구에겐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다’는 소감을 자아내지만 성석린에겐 인격을 나타내는 증표로 보았기 때문이다. 1~2구에선 금강산의 수많은 봉우리의 높낮이가 같지 않다는 지극히 사실적인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밑밥 깔기(build up)를 시도한 것이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지극한 현실을 묘사하고 나서 결국 그 얘기를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팍하고 ..
바쁠수록 돌아가야 하는 이유 『소화시평』 권하 3번에서 홍만종은 사람들에게 경계하는 듯한 뉘앙스를 담은 시들을 선별하여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홍만종의 이런 시도가 남다르게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글의 소재란 일상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소감의 정리이거나 기존의 나온 작품들의 재해석이거나, 이미 나온 해석에 나만의 해석을 붙이는 것이거나 하는 따위이기 때문이다. 해 아래 새 것은 없듯이 참고할 만한 자료들이 있고 그걸 내가 생각한 방식대로 엮으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표절’이라거나 ‘단순한 편집’이라는 식으로 가볍게 말하진 말자. 의미 있는 하나의 내용으로 구성하기 위해 작가는 여러 생각들을 하고 그걸 정리하며 구성해냈을 테니 말이다. 홍만종이 이 ..
정포가 자식들에게 알려주고 싶던 삶의 비의를 한시로 전하다 乏食甘藜藿 無衣愛葛絺 먹을 것이 없으면 변변찮은 콩잎도 꿀맛이고 옷이 없으면 갈포옷도 아끼는 법. 若求溫飽樂 不得害先隨 따스함과 배부름의 즐거움을 구하려 한다면, 얻지 못하고 해가 먼저 따르지. 『소화시평』 권하 3번에 두 번째로 소개된 정포의 시는 아이에게 보여주는 시답게 대단히 교훈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관점과는 너무도 다른 내용이기 때문에 흥미롭기도 하다. 우리나라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아무렇지 않게 아이에게 욕망을 지니라고, 그래서 같이 경쟁하는 아이들을 이기라고 무시로 말을 할 것이다. 예전엔 대안학교에서 교사를 했었는데 그 당시 학교설명회 때 온 부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꽤나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
순간순간의 감정에 휩쓸리는 사람에 대해 『소화시평』 권하 3번은 아주 의미심장한 말로 서두를 열고 있다. 시는 일의 실정을 전달할 수도 있어 풍자적인 비유와 통한다. 만약 말이 세속을 교화시키는 것과 뜻이 비흥에 있지 않다면 또한 헛수고일 뿐이다. 詩可以達事情, 通諷諭也. 若言不關於世敎, 義不存於比ㆍ興, 亦徒勞而已. 문학에 대한 관점 중 두 가지는 되풀이 되어 왔다. ‘순수 문학론’과 ‘참여 문학론’이 그것이다. 순수문학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문학은 정치ㆍ이데올로기ㆍ현실에서 벗어나 문학이 지닌 순수성을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참여문학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애초에 문학작품이란 현실을 벗어나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실의 아픔ㆍ상황 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사찰에서 하루 재워주시렵니까?”를 전하는 방법 東湖停棹暫經過 동호에 노를 멈추고 잠시 들러 가려고 하니, 楊柳悠悠水岸斜 수양버들은 치렁치렁 강둑에서 늘어졌는데, 病客孤舟明月在 병든 객의 외로운 배에 밝은 달빛이 비추겠고, 老僧深院落花多 늙은 스님의 깊은 뜰 진 꽃잎만 가득하겠지. 歸心黯黯連芳草 돌아가려는 마음에 시름겹게 고운 풀로 이어지나, 鄕路迢迢隔遠波 고향 길은 까마득이 큰 파도에 막혀 있어, 獨坐計程雲海外 홀로 앉아 갈길 따져보니 구름바다 밖이라, 不堪西日聽啼鴉 해질녘 길가마귀 울음소리 차마 못 듣겠네. 『소화시평』 권상 109번에 소개된 두 번째 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다들 이해를 못하고 있으니, 교수님은 “시를 안다는 건 그 정황을 그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허균과 이달의 재미난 첫 만남 이야기 공부를 막 시작할 때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홍길동전』의 작자인 허균은 이달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웠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재밌는 사실은 허균은 정통 양반가의 자제인 반면 이달은 어머니가 관기 출신으로 서얼 신분이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계급이 있는 사회(우리나라는 계급이 타파되었지만 직업적인 계급은 존재한다. 그래서 재벌은 재벌들끼리, 권력 있는 사람은 권력 있는 사람들끼리만 관계를 유지한다)가 그러하듯, 그 당시 조선도 마찬가지라 양반과 서얼은 어울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허균은 그런 것에 상관없이 어울렸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배울 만하다고 여기면 계급에 상관없이 스승으로 삼아 배웠던 것이다. 그런데 『소화시평』 권상 109번을 보니 허균이..
본 것과 시로 표현하는 것과의 차이를 한시에 담다 手持一卷蘂珠篇 손에 한 권 『예주편』을 잡고 讀罷空壇伴鶴眠 다 읽고 빈 단에서 학을 벗해 잠들었다가 驚起中宵滿身影 한 밤 중에 몸에 가득한 그림자에 놀라서 깨니, 冷霞飛盡月流天 찬 구름은 흩어진 채 달빛만 흐르네. 『소화시평』 권상 108번의 마지막 시는 정말 꿈결 같은, 그림 같은, 아니면 매우 몽환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시다. 시 제목만으로도 뭔가 그럴 듯한 게 있어 보인다. 제목이 ‘세 가지로 뻗은 소나무에 걸린 달’이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제목의 시라면 왠지 소나무와 달에 대해 이야기를 할 것만 같은데 이 시에선 전혀 그러질 않는다. 정황은 이렇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아마도 그 밤은 날던 학도 고이 쉬던 밤이었으리..
스님을 전송하며 신세 한탄을 하는 이유를 밝힌 백광훈의 시 智異雙溪勝 金剛萬瀑奇 지리산 쌍계사는 빼어나고, 금강산 만폭동은 기이하다는데, 名山身未到 每賦送僧詩 명산에 몸소 가질 못하고서, 매번 스님을 전송하는 시만 짓네. 『소화시평』 권상 108번의 두 번째 시는 읽는 순간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그대로 보였다. 그건 마치 ‘디어 마이 프렌드’라는 드라마에서 문정아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이탈리아, 로마를 출발해 전 세계를 돌고, 다시 이탈리아 시칠리로 돌아오는 둘만의 세계일주를 하자”고 툭 던진 말을 희망으로 삼아 ‘언젠가는 세계일주를 할 것이다’는 희망 하나만을 부여잡고 사는 모습과 엇비슷하다. 이 시에서 백광훈도 ‘지리산 쌍계사나 금강산 만폭동이 절경이라는 건 많이 들어봐서 알고 있으니 언젠가는 가보겠..
변함없는 자연과 변하는 인공물을 대비한 백광훈의 시 『소화시평』 권상 108번에선 백광훈의 시 세계를 다루고 있다. 강서시파의 시가 이전에 살펴봤듯이 엄청난 수식이 가해지고 퇴고를 거친 후에 만들어진다면 백광훈의 시는 그렇지 않다. 그를 삼당시인(최경창, 백광훈, 이달)이라 부르는데 당시의 특징은 수식이나 퇴고를 가하려 하기보다 보이는 정감을 그대로 표현하여 마치 읽고 있으면 저절로 그 정황이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를 흔히 ‘그려지는 시’라 표현하고, 송시를 ‘서술하는 시’라 표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나오는 세 편의 작품들은 모두 마치 그림 같은 그 잔상이 그대로 묻어나고 있고 심오한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해하기도 수월한 편이다. 秋草前朝寺 殘碑學士文 ..
홍만종도 인정한 당시풍의 최고 작가, 최경창 아직 당시(唐詩)와 송시(宋詩)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건 아니지만, 해동강서시파의 시(권상 73, 81, 102)를 보고 나서 이 시를 보면 어렵지 않다는 느낌을 쉽게 받을 수 있다. 당시(唐詩)는 해석이 난해하지 않고 그 상황이 머릿속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시인이 이 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언지 깊게 고민해보지 않아도 바로 드러난다. 『소화시평』 권상 107번에선 고죽 최경창이야말로 당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배운 사람이라 평가하고 있다. 더욱이 당시를 배웠다 할지라도 만당(晩唐)을 배운 이달 같은 경우는 유약하다고 비판 받는 경우가 많다. 당시(唐詩) 내에서도 최고의 시는 성당(盛唐)시를 쳐주고, 그보다 못한 경우는 중당(中唐)까지는 이해해주지..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遠岸起暮靄 寒江生白波 먼 언덕에 저녁 아지랑이 일어나니 찬 강물에 흰 물결 생기네. 泊舟人不見 買酒入漁家 정박한 배에 사람은 보이질 않으니, 술을 사러 어부의 집에 들어갔겠지. 窅窅日沈夕 蕭蕭風起波 아득한 해가 저녁에 잠기고 쓸쓸한 바람이 물결에서 이네. 遙知泊船處 隔岸有人家 멀리서도 알겠지, 배를 정박한 곳, 강둑 너머엔 인가가 있다는 걸. 『孤竹遺稿』 『소화시평』 권상 106번에 두 번째로는 이달의 시(위의 시)와 최경창의 시(아래의 시)를 소개하고 있다. 두 시는 모두 같은 정황을 묘사하고 있다. 이 시는 그림을 보고 그 상황을 묘사한 시로 제화시(題畫詩)라고 불린다. 그런데 재밌게도 두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을지 충분히 상상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재밌다..
깊은 산골임을 시인이 묘사하는 방식 東峯雲霧掩朝暉 동쪽 봉우리에 구름 끼고 이슬 내려 아침 해를 가려서 深樹棲禽晩不飛 깊은 숲속에 자던 새 늦도록 날질 않네. 古屋苔生門獨閉 옛집 이끼 껴 문 홀로 닫혀 있어, 滿庭淸露濕薔薇 온 뜰에 맑은 이슬이 장미를 적셨다네. 『소화시평』 권상 106번에 처음으로 소개된 최경창의 「제낙봉인가(題駱峯人家)」라는 시는 전형적인 당풍(唐風)의 시다. 시를 해석한 것만으로도 그 상황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앞에서 봤던 지천 황정욱의 시와 시적 미감이 확연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시 한편을 통해 여기서 말하는 인가가 얼마나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지를 우리는 여실히 알 수 있다. 시인은 한 번도 집이 ‘깊숙한 곳에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구름과 이슬이 해를 가..
지천의 시, 한시가 어렵다는 인식을 가중시키다 春事闌珊病起遲 봄 풍경이 끝물인데, 병이 더디게 나은지라. 鶯啼燕語久逋詩 꾀꼬리 울고, 제비 재잘대도 오래도록 시를 못 지었네. 一篇換骨脫胎去 한 편의 환골탈태(윤두수가 보내온 시)가 오니, 三復焚香盥手時 향을 사르고 손을 씻고 세 번이나 반복하여 읽었다네. 天欲此翁長漫浪 하늘은 이 늙은이(윤두수)에게 오래도록 자유롭게 해주고선, 人從世路苦低垂 나는 세상길에서 괴롭게도 떨구고자 하는 구려. 銀山松桂芝川水 은산의 소나무와 계수나무, 지천의 물이 應笑吾行又失期 응당 비웃겠지, 나의 행실이 또한 실기했다고. 『소화시평』 권상 102번에서 이 시를 처음 해석했을 땐 그저 보이는 그대로만 해석했다. 깊게 생각해볼 여지도 없었고 도무지 무슨 말인지도 모르니 난감하기만 ..
강서시파의 시가 어려운 이유 호소지(湖蘇芝)로 불리워지는 관각삼걸(館閣三傑)은 해동강서시파로 유명하다. 권상 73번과 권상 81번 글에서 시구를 단련하기로 유명한 강서시파의 시를 음미했었다. 확실히 당풍(唐風)의 시들은 내용도 별로 어렵지 않고 해석이 매끄럽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강서시파의 시는 아무리 보아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경우가 많다. 『소화시평』 권상 102번에 보는 황정욱의 시도 마찬가지다. 해석도 매끄럽지 않을뿐더러, 해석하고 나서도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쏭달쏭하기만 하니 말이다. 해동강서시파는 송풍(宋風)의 시 중에서도 여러 가지를 안배하여 시구를 꾸며내기로 유명하다. 그러니 한시 품평에선 ‘난삽(難澁)하다’, ‘정교(精巧)하다’와 같은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 그만큼 자..
꽃은 비에 피고 바람에 지네 花開昨夜雨 花落今朝風 꽃은 지난 밤 비에 폈고 꽃은 오늘 아침 바람에 졌다네. 可惜一春事 往來風雨中 가련쿠나, 한철 봄 일이 바람과 비속에 오고 가니. 花開因雨落因風 꽃은 비 때문에 피었다가 바람 때문에 지니, 春去秋來在此中 봄은 가고 봄이 오는 것이 이 가운데에 있구나. 昨夜有風兼有雨 지난밤 바람이 불고 또한 비까지 와 梨花滿發杏花空 복숭아꽃은 만발했고 살구꽃은 졌다네. 『소화시평』 권상 101번에 소개된 송한필의 시(위의 시)나 권벽의 시(아래의 시)는 모두 같은 운치를 담고 있다. 비에 봄꽃이 만개했다가 하룻밤 사이에 바람이 불어 꽃이 져버렸으니 말이다. 봄 또한 송익필이 말한 달처럼 순식간에 상황이 변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금세 꽃이 펴서 좋아했더니 바람이 불자 져버..
보름달과 같은 사람이 되길 未圓常恨就圓遲 보름달이 아닐 땐 항상 둥글어짐이 더딤을 한스러워하고, 圓後如何易就虧 보름달이 된 뒤엔 어째서 쉬이 기울어지려는가? 三十夜中圓一夜 30일 밤중에 보름달은 하룻밤이니, 百年心事摠如斯 인생 백년의 마음이 모두 이와 같다네. 『소화시평』 권상 100번에 소개된 이 시를 너무도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다시 배우며 제대로 착각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당신은 이 시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그리고 과연 송익필은 이 시를 통해 무얼 말하고자 했겠는가? 보름달을 기대했다가 순식간에 이지러지는 현상을 보면서 ‘욕심의 허망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 욕심엔 명예, 지위, 돈과 같은 모든 것들이 포함된다. 더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보름달과 세잎 클로버 『소화시평』 권상 100번에 나오는 송익필의 「달을 바라보며望月」라는 시는 임용시험에도 두 번이나 출제되었을 정도로 유명한 시이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시다. 시 자체만 읽어봐선 보름달이 되는 지난한 과정, 그리고 하루 사이에 조금씩 이지러지며 얇아지는 모습에 대한 한탄이 들어 있다. 달은 늘 떠 있어 구름이 끼지 않는 한 언제든 볼 수 있기에 달에 관한 수많은 작품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수많은 달 중에서도 보름달은 우리에게 수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가장 크고 밝은 달이기에 늑대인간은 보름달이 뜬 날만 늑대로 변해 자신 안에 숨겨진 파괴본능을 맘껏 드러내기도 하니 말이다. 나 또한 달 중에서 보름달을 좋아했다. 그래서 평상시엔 달을 보며 어떤 감상도 남기지 않다가 보름달..
성리학의 주제를 담아낸 권필의 시 雨後濃雲重復重 비 갠 뒤 짙은 구름 뭉게뭉게 捲簾晴曉看奇容 발 걷으니 갠 새벽의 기이한 풍경이 이네. 須臾日出無踪跡 잠깐 사이에 해가 나와 종적조차 없어져 始見東南兩三峯 비로소 동남의 두세 봉우리 보이네【삼각산의 비 갠 구름[右三角晴雲]】. 『소화시평』 권상 99번에 두 번째로 소개된 권필의 「호정팔경(湖亭八景)」 중 ‘삼각청운(三角晴雲)’이라는 시다. 이 시는 그냥 읽으면 너무도 일상을 잘 담아낸 시처럼 보인다. 비 갠 아침에 안개가 자욱이 껴 있고 구름도 뭉게뭉게 피어올라 있다. 그러니 늘 보이던 삼각산의 경치는 눈 씻고 찾아보아도 보이질 않는 것이다. 그런데 잠시 후 해가 뜨고 나니 구름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환하게 삼각산의 경치가 보인다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이라면..
도를 깨친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 성혼의 시 一區耕鑿水雲中 물가 구름 속의 한 구역에 밭 갈고 우물 파느라, 萬事無心白髮翁 만사에 무심한 백발의 늙은이라네. 睡起數聲山鳥語 두어마디 산새소리에 잠을 깨서는 杖藜徐步繞花叢 명아주 지팡이로 천천히 걸으며 수풀 맴돈다네. 『소화시평』 권상 99번에 첫 번째로 소개된 우계 성혼의 시는 저절로 「격양가(擊壤歌)」가 생각나며 달관한 사람의 면모가 가득 보인다. 세상을 달관한다는 게 무관심해진다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그저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다른 욕망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는 절대정신 같은 것일 거다. 그러니 겉에서 보면 만사에 무심한 노인 같지만, 그는 자연의 흐름을 온몸에 받아들여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어제와는 달리 오늘 새로 피어난 수풀의 이름 모를..
시와 작가와의 관계 『소화시평』 권상 99번에선 ‘문장을 지음으로 도를 깨쳤다[因文悟道]’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온다. 이런 얘기를 하려고 하면 조선시대의 문장관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성리학이 송나라 시대에 발흥한 이후로 문장은 도를 싣는 도구여야 했다. 그래서 ‘글은 도를 실어야 한다[文以載道]’는 논의와 덧붙여 ‘도가 근본이고 글은 말단이다[道本文末]’와 같은 문학논쟁이 불붙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에 대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어찌 되었든 글을 통해 도를 전해주고, 그 글을 읽으면서 도를 깨쳐야 한다는 기본 정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조선시대의 문장론을 현대에 적용해보면 전혀 어색한 말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글이란 어찌 되었든 저자의 생각이 녹아들어 있게 마련..
정철의 자기 인식과 자유 我非成閔卽狂生 나는 성혼이나 민순은 아니고 곧 미치광이로 半世風塵醉得名 반백년 풍진 맞으며 취하여 명성을 얻었다네. 欲向新知道姓字 새로이 알게 된 이를 향해 성과 자를 말하려 하니, 靑山獻笑白鷗輕 청산은 비웃고 흰 기러기 무시하네. 『소화시평』 권상 98번에 소개된 「주중사객(舟中謝客)」라는 시는 정철의 후손이 문집에 그때의 상황을 기록해둔 덕에 왜 이런 시가 나오게 됐는지, 그리고 왜 사죄하게 됐는지 그 상황을 잘 알 수 있었다. 자신을 그 당시에 유명하면서도 명망 있는 사람으로 착각한 데에 대해 ‘저는 그럴 만한 인물은 못 됩니다.’라고 사죄하며 시를 지은 것이다. 여기까지야 뭐 어려울 게 없었기 때문에 쉽게 이해가 됐지만, 3구와 4구에선 무얼 말하고 싶은 것인지 도무지 이..
송강 정철과 팰컨 헤비 『소화시평』 권상 98번의 주인공은 송강 정철이다. 송강 정철은 「사미인곡(思美人曲)」ㆍ「속미인곡(續美人曲)」으로 대표되는 가사문학을 활짝 열어젖힌 인물로 한문학계에서보다 국문학계에서 더 비중이 있는 인물이자 정여립의 역모사건을 처참하게 처리한 인물이기도 하다. 정철에 대해 알게 된 건 권필과 이안눌이란 제자 때문이었다. 둘 다 정철이 죽은 이후에 그를 떠올리며 시를 지었다. 이안눌은 달이 뜬 밤, 용산에서 기녀가 「사미인곡」을 부르는 것을 들으며 ‘오직 우리 선생을 알아주는 이는 기녀뿐이로구나.’라는 깊은 탄식을 시에 담았다. 권필은 낙엽지고 비 부슬부슬 내리는 날 스승의 무덤가를 지난다. 그때 스승이 지은 「장진주사將進酒辭」를 떠올리며 시를 지었다. 두 명의 제자를 통해 회상되..
고경명의 백마강 시에 은근히 드러난 정서 病起因人作遠遊 벗 때문에 병석에서 일어나 먼 여행을 떠났더니, 東風吹夢送歸舟 봄바람 꿈결에 불어 돌아가는 배를 전송하네. 山川鬱鬱前朝恨 산천은 짙푸르니 전 왕조의 한인 듯, 城郭蕭蕭半月愁 성곽은 쓸쓸하니 반달도 시름겨워하는 듯. 當日落花餘翠壁 그 날 당시의 낙화는 푸른 석벽에 남아 있고, 至今巢燕繞紅樓 지금도 둥지의 제비는 붉은 누각을 맴도네. 傍人莫問溫家事 벗이여 온조왕 옛 일은 묻지 마시라. 弔古傷春易白頭 옛날을 조문하고 봄을 애달파하면 쉬 백발이 될 테니. 『소화시평』 권상 97번에 두 번째로 나온 시는 고경명의 시다. 1~2구까진 자신이 어떻게 백마강까지 오게 됐는지를 표현했다. 병으로 시달리던 때 친구의 방문으로 백마강 답사가 실현되었고 마치 꿈처럼 어느..
백마강을 보며 울분에 찬 정사룡 시 『소화시평』 권상 97번은 정사룡과 고경명은 시를 통해 백제 멸망의 스산함을 간직한 백마강 일대를 둘러보며 그 감회를 담아내고 있다. 이런 식으로 시를 통해 역사를 서술해나가는 것을 영사시(詠史詩)라고 하며 그 대표작으론 이규보의 「동명왕편(東明王篇)」이 있다. 나 또한 단재학교에 신입교사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첫 겨울방학을 맞이했고 3명의 아이들과 부여여행을 떠났었다. 첫째 날엔 정림사지와 부여박물관을 돌아보며 백제의 역사를 곱씹었고 찜질방에서 하루를 묵은 후에 둘째 날엔 부소산성과 백마강 일대를 둘러보며 백제의 최후를 간접 경험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정사룡의 시나 고경명의 시에서 느껴지는 가슴 절절한 아픔은 없었다. 우리에겐 이미 너무 머나먼, 그래서 ..
당시와 강서시, 그리고 엘리트주의와 다원주의 『소화시평』 권상 97번은 백마강을 둘러보며 백제의 멸망을 바라본 두 학자의 시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한 강서시파의 시를 봐야하기 때문에 강서시파의 면모를 좀 더 살펴봐야 한다. 호소지는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중국에서 최대한 다듬은 시구를 구사했던 송시(宋詩)의 계열인 황정견과 진사도를 위시한 강서파의 조선 버전이다. 지금은 ‘버전’과 같은 영어식의 표현을 쓰는데 익숙해져 있지만, 이 당시엔 조선을 나타내는 ‘해동(海東)’이란 말을 덧붙여 ‘해동강서시파’라고 불렸다. 해동강서시파의 멤버를 보자면 거두인 눌재 박상이 있는데 그가 쓴 글이 얼마나 난해한지는 소화시평 권상 73번에서 여실히 보았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호음 정사룡, 소재 노수신, 지천 ..
이달과 고경명의 인연 『소화시평』 권상 96번에서 완전히 해석이 틀린 부분이 있었다. 양경우의 맨 마지막 말이 끝나는 부분에 대한 해석이 그것이다. 여기에서의 원문은 ‘익견기장자야(益見其長者也)’이다. 난 별로 생각하지 않고 ‘고경명 어르신이 이달을 자기의 오른편에 두었으니, 고경명 어른이야말로 이달의 장점을 본 사람이라 할 수 있으리라.’라고 해석했다. 이렇게 해석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고, 이달을 살뜰히 챙기는 고경명 어르신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녹아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형술 교수님은 그렇게 봐선 안 된다고 말해줬다. 益見其長者也 더욱 그 장점을 본 사람이다. 더욱 그가 어른 됨을 볼 수 있다 ‘장점을 봤다’라고 하면 ‘그저 좋은 점을 인정해줬다’는 얘기가 될 테지만, ‘고..
공부에 열중한 홍만종 『소화시평』 권상 96번은 홍만종이 말하는 부분을 제외하면 이미 양경우의 문집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이걸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책이 귀하던 그 시절에 홍만종은 여러 사람의 문집을 찾아 동분서주했고 그런 문집들을 읽다가 자신이 언제가 활용하고 싶은 구절이 나오면 그대로 발췌했을 거라는 사실이다. 양경우의 문집과 이 글의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서 열나게 베끼고 있는 홍만종의 모습이 그려진다. 열나게 베끼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으면 단연 『열하일기』에서 연암이 청나라를 여행하던 도중 한 곳에 들어갔고 그곳에 액자로 걸려 있는 내용이 너무도 재기발랄하여 저녁에 정진사와 함께 찾아 반을 나누어 베꼈던 장면이 떠오른다. 바로 이 글이 지금 봐도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엄청..
경험을 해야 더 맛깔나는 한시들 ‘책 너머의 지식과 학교 너머의 공부’라는 것이 무언지는 『소화시평』 권상 94번에 명확히 드러나 있다. 홍만종도 책을 통해서 시를 익혔던 사람이라 시에서 피상적으로 느껴지는 것들은 ‘잘 이해는 되지 않지만 이런 경우도 있는 거겠지’라고 갸우뚱하며 넘어갔나 보다. 굳이 홍만종이 아니더라도 현대인처럼 지식을 책을 통해서만 쌓는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경험은 수도 없이 했을 것이다. 학교에서 수없이 배웠던 여러 과목들은 분명히 경험이 무르익어 생성된 것임에도 우리의 경험은 완전히 배제된 ‘앙꼬 없는 찐빵’으로써의 지식만을 무작정 암기하고 익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배우면 배울수록 삶은 배움과 철저하게 괴리되어 갔던 것이다. 뭔가를 많이 아는 것 같은데 막상 현실에선 적용도 ..
책 너머의 지식, 학교 너머의 배움 한참 임용을 준비하다가 결국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단재학교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6년을 지지고 볶고 하면서 그 전까지만 해도 전혀 갖지 못했던 생각들을 하게 됐는데, 그건 예전엔 미처 하지 못했던 경험들을 하게 되었고 전혀 생소한 인연들과 엮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 밖에 길이 있다’라던지, ‘교실이란 공간 밖에 배움이 있다’라던지 하는 말들을 해왔던 것인데, 여기서 말하고자 했던 얘기는 텍스트에 사로잡혀서도, 공간에 사로잡혀서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우린 무의식적으로 ‘지식은 책 속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책을 읽으라고 강권하고 다른 건 하지 않더라도 아이가 책을 읽는다고 하면 그 누구보다도 좋아하며, 잠을 잘 때에도 부모가 책을 읽어주면 ‘..
권벽과 권필의 한시 중 어느 게 더 좋나? 『소화시평』 권상 92에서 이안눌은 권벽과 권필 부자와 가까웠기 때문에 그들의 시를 놓고 비교를 한다. 우선 비교를 하려면 같은 느낌으로 쓰여진 시를 선별해야 한다. 두 사람의 상황은 달랐고 시적 재능도 완전히 달랐으니, 다른 작품을 놓고선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안눌은 ‘중국 사신을 전별하는 시’가 두 사람 모두에게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쓴 사신 전별시를 골랐고 그걸 통해 우열을 가리기로 했다. 一曲驪駒正咽聲 한 곡조의 이별곡은 바로 오열하는 소리 朔雲晴雪滿前程 변방의 구름과 쌓인 눈이 앞길에 가득하구나. 不知後會期何地 훗날 기약 어디일지 알지 못하니, 只是相思隔此生 그저 그리움만 지닌 채 이 생은 떨어져 있으리. 梅發京華春信早 매화 피어 서울에..
권필과의 추억과 그의 친구 이안눌 『소화시평』 권상 92에 나오는 권필은 나와 묘한 인연이 있다. 나는 2007학년도 임용고시부터 시험을 봤었다. 그 당시 목표는 ‘졸업과 동시에 임용합격’이란 꿈을 꾸고 있던 때라 그 전 해에 실시된 임용 기출문제를 공부하던 중이었다. 14번 문제를 보는데 아무리 봐도 괄호 안에 어떤 말을 써넣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는 거다. 이 문제를 풀면서 ‘임용고사가 정말 어렵긴 어렵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그 해에 광주에선 과락(32점)만 넘으면 합격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문교과만 6명을 뽑는 시험에서 5명만 합격하는 사태가 발생했으니 말이다. 그건 그만큼 문제의 난이도가 어려웠다는 걸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괄호 안에 들어갈 정답은 바로 ‘궁류..
우리 고유어로 쓴 시는 아름답다 『소화시평』 권상 90번을 보면 문화사대주의에 쪄들었다고 핀잔을 줄 지도 모르지만, 그 당시엔 상식과도 같은 말이었다. 하긴 지금이라 해서 무작정 ‘한글전용’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어느 곳이든 지나가다 보면 영어로 된 간판이나, 영어를 한글로 표기한 간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며,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수많은 차들의 이름은 한글이 아닌 영어로 지어지고 버젓이 써 있으니 말이다. 그 당시엔 한문이 국제사회의 언어로 맹위를 떨쳤다면 지금은 영어가 그 지위를 이어받은 모양새고, 이 글에서 나오는 것 같은 논조들이 지금도 영어로 대체되어 횡행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이명박 정권 당시엔 영어공용화 논쟁까지 불붙으며 어륀지 파문까지 일었겠는가. 그건 단순히 파문 문제로 끝난 게 아..
도문대작을 어떻게 해석할까? 夢賚元將水月隣 몽뢰는 원래 수월정을 거느리고 인접하여 兩翁分占一江春 두 노인이 한 강의 봄을 나누어 차지했다네. 東家樂作西家聽 동쪽 정자에서 음악을 지으면 서쪽 정자에서 들으니, 絶勝屠門大嚼人 상상하는 사람보다 훨씬 낫구나. 『소화시평』 권상 89번에 두 번째 소개된 시의 4구(絶勝屠門大嚼人)가 명쾌하게 해석되지 않았다. 1~3구까지 명료하게 이해가 된다. 두 정자가 바로 옆에 있고 한 군데서 음악을 연주하면 바로 옆 정자까지 음악이 퍼지고, 함께 봄날의 경치를 누리게 된다는 뜻이니 말이다. 아주 평화로운 기색이 넘실거린다. 그런데 왜 갑자기 ‘도문대작인(屠門大嚼人)’이라는 걸까? ‘도문대작(屠門大嚼)’이란 말은 허균의 작품명을 통해 알게 됐다. 그리고 이게 전거가 있는 단어..
사제(賜祭)를 드리며 조정을 찬양한 정유길의 시 『소화시평』 권상 89번에 처음에 소개된 시가 바로 이런 유형의 시다. 조정에 아부하기 위해 자신의 나태함을 나타낸다던지, 아예 조정이 없는 모습을 표현한다던지하는 두 가지 방식 외에 정유길의 이번 시는 또 다른 방식을 보여준다. 聖朝枯骨亦沾恩 성스런 조정이라서 마른 뼈가 또한 은혜를 입고, 香火年年降塞門 향불 해마다 변방에 내리네. 祭罷上壇風雨定 제사 마친 제단에 오르니 바람과 비는 멎고 白雲如海滿前村 흰 구름은 바다처럼 앞마을에 가득 찼구나. 그건 1구에서부터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성스런 조정이라서 마른 뼈가 또한 은혜를 입고[聖朝枯骨亦沾恩]’라고 아예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첫 구절만 읽어도 이 시가 지향하는 바는 어렵지 않게 ..
조정에 한시로 아부하는 방식 관료로서 조정을 찬양하는 방식의 시는 여러 편을 봤었다. 권상 34번에 나오는 곽예는 시에서는 하릴없이 공무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칫 잘못하면 ‘나태한 관리의 전형’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한가로이 근무하며 천상의 음악을 듣는다는 표현을 통해 이 시대가 태평성대의 시대이며 조정의 정치가 얼마나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동양 사회에 이런 식의 태평성대에 대한 찬양이 생긴 것은 태평성세의 전범으로 삼는 요순시대의 「격양가(擊壤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日出而作 日入而息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쉰다네. 鑿井而飮 耕田而食 우물을 파마시며 밭 갈아 먹으니, 帝力何有於我哉 임금의 정치가 어찌 나에게 영향을 미치겠는가 이 시는 얼핏 보면 무정부상태를 칭송하..
퇴계 선생의 선비화 시가 불편한 사람들 앞선 후기에서 ‘공부란 여러 자료를 참고하며 제대로 알고자 하는 노력이다’라고 했듯이 『소화시평』 권상 88번도 다양한 측면에서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지만 퇴계의 시에서 스님의 말을 어느 부분까지 볼 것인지도 명확해진다. 이 얘기를 하기 전에 잠시 살펴보고 가야 할 게 있다. 영주 부석사의 어느 암자 처마 아래엔 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건 예로부터 의상대사가 좌선을 하기 위해 꽂아둔 석장이 어느새 뿌리가 내리더니 무럭무럭 자라나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을 안고 있는 나무다. 바로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흘러오는 얘기이고 그런 기이한 이야기에 감동한 퇴계는 시까지 지으며 뒷받침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퇴계야말로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유학자 ..
신이한 이야기를 대하는 태도 『소화시평』 권상 88번의 글을 처음에 읽었을 땐 신이한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종교계열의 이야기엔 상식으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과학적인 지식으론, 일상적인 이해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천지창조 이야기랄지, 홍해가 갈라진 이야기랄지, 단군의 이야기랄지 하는 것들이 그렇다. 그래서 예전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저 종교의 영역으로만 받아들여 도무지 이해는 안 되지만 무작정 수긍해야 한다거나, ‘어디서 그런 뻥카를’이란 생각으로 거부하려고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옛 이야기를 읽고 옛 이야기의 대가인 김환희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무작정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무작정 배척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거기엔 융이 말했던 ‘집단..
한시로 ‘멋지게 나이듦’에 대해 말해준 이황 性癖常貪靜 形羸實怕寒 천성은 항상 고요함을 탐하나 형체는 삐쩍 말라 실제론 추위를 두려워하네. 松風關院聽 梅雪擁爐看 솔바람 빗장 건 채 듣고 눈 속 매화는 화로 낀 채 보다보니, 世味衰年別 人生末路難 세상의 맛은 늘그막에 각별하지만 인생은 말년이 어렵다지. 悟來成一笑 曾是夢槐安 깨닫고서 한바탕 웃고 말았으니, 이전엔 괴안을 꿈꾸었기 때문이라네. 나야 사단칠정 논쟁을 폄하할 생각은 없었지만 고정관념적으로 이황 선생에 대해 되게 교조적이고 경직된 인간으로 보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웬만하면 퇴계의 글은 보지 않으려 했지만 이번에 『소화시평』 권상 87번에 이황의 시가 실려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보게 되었다. 그런데 솔직히 이 시를 보고나선 깜짝 놀랐다. 매우 인..
사단칠정론과 고정관념 『소화시평』 권상 87번의 주인공은 1000원짜리 지폐의 주인공을 장식한 이황 선생이다. 이황하면 기대승과의 사단칠정 논쟁을 했다는 사실만이 깊이 남아 있다. 대부분의 논쟁들이 그렇지만 그 당시엔 치열하게 싸워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었고 그걸 관철하기 위해 논리를 더 예리하게 다듬게 되지만, 그걸 전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쓸데없는 것에 힘쓴다’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그건 마치 비전향 장기수가 사상전환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그 생각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본 사람이 아니고서야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의 세상은 성리학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기에 유전적으로 우린 조선 사람들의 후손이라 할지라도 철학적으론 전혀 ..
시를 통해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다 天險傳三峽 雷霆鬪激湍천험(자연적인 험지)라 전해지는 삼협은 우레소리가 급류와 다툰다네.風檣今日試 客膽向來寒돛단배 오늘에서야 시험해보려 하나, 손님의 간담은 예로부터 서늘했었다지.但覺巖崖峻 誰知宇宙寬다만 바위 벼랑의 험준함만 깨달았을 뿐, 누가 우주의 관대함을 알겠는가.淸猿啼不盡 送我上危灘원숭이 끝없이 울어대면서 험한 여울 탄 나를 전송해주네. 『 忍齋先生文集』 卷之一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소화시평』 권상 85번은 꽤나 흥미진진했다. 시 한편의 내용 중 결구의 내용에서 생에 대한 의지가 있음을 보았고 그렇기 때문에 홍섬은 어떠한 시련이 닥쳐와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용된 이 이야기는 신흠의 「청창연담(晴窓軟談)」에 실려 있던 글을..
시참론과 결과론적인 얘기의 불편함 한시를 공부하다보면 재밌는 일화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시참(詩讖, 생각 없이 지은 시가 예언서마냥 훗날의 일과 맞아떨어지는 것)’이란 말은 예나 지금이나 매우 흥미로운 주제긴 하다. 예를 들면 『소화시평』 권상 85번에서처럼 마지막 구에서 작자의 생에 대한 의지를 봤고 그렇기 때문에 죽지 않을 줄 알았다고 하는 경우나, 유몽인 ‘잘린 지렁이[斷蚓]’, ‘추운 파리[寒蠅]’라는 시어를 썼더니 단명하게 됐다고 평가하는 경우나, 홍명구란 사람이 ‘화락천지홍(花落天地紅)’라는 시를 짓자 할머니가 보고 “‘花發天地紅’이라 했으면 복록을 누렸을 텐데, 그러지 못해 요절할 거 같다.”라고 평가했고 실제로 42세에 죽었다는 하권49번의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이런 경우..
정사룡의 시가 던져준 화두 擁山爲郭似盤中 산을 둘러 성곽이 되니, 소쿠리 안과 비슷한데, 暝色初沈洞壑空 어둠에 막 잠기자 골자기는 텅 비었네. 峯頂星搖爭缺月 묏 봉우리의 별은 흔들리면서 이지러진 달과 다투고 樹顚禽動竄深叢 나무 끝의 새가 움직여 깊은 숲으로 숨누나. 晴灘遠聽翻疑雨 갠 여울소리 멀리서도 들리니 문득 비 오나 싶고 病葉微零自起風 시든 잎사귀 지자 절로 바람이 일어나네. 此夜共分吟榻料 이 밤에 함께 시를 읊조린 침대값은 함께 나눠 내겠지만, 明朝珂馬軟塵紅 내일 아침이면 말방울 소리 나고 붉은 먼지 날리겠지. 『소화시평』 권상 81번에 소개된 시는 ‘곽(郭)’ 한 글자를 머릿속에 넣어두고 본다면 이해가 쉽더라. 그래서 1구에선 이곳이 성곽으로 빙 둘러 있는 분지지형이라는 걸 알 수 있다고 한다...
한 번 봐도, 두 번 봐도 모르니 조급해하지 말라 『소화시평』 권상 73번 박상 시를 할 때 해동강서시파의 특징을 제대로 음미해봤었다. 여러 책을 참고하거나 ‘한국한시약사(韓國漢詩略史)’를 보다 보면 16세기에 이르러 15세기 후반에 중국에서 유행하던 강서시파의 시풍을 본받아 박은ㆍ이행ㆍ박상ㆍ정사룡ㆍ노수신ㆍ황정욱이 강서시를 수학했고, 박은ㆍ이행ㆍ정사룡을 해동강서시파라 부르게 됐다는 설명이 나온다. 그러면서 이들의 시풍에 대해 흔히 ‘기괴(奇怪), 난삽(難澁)’이라 평하고는 한다는 말이 덧붙여 있다. 그만큼 그들의 시는 머리를 온통 쥐어 짜네 늘상 습관적으로 써 오던 관습을 집어 던지고 전혀 새로운 전고를 쓴다던지, 기존에 쓰던 전고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쓴다던지, 문장을 비틀어버린다던지 했던 것이다. 그..
유영길이 한시로 전해주는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는 메시지 落葉鳴廊夜雨懸 낙엽소리 울던 곁채에 밤비가 걸렸는데 佛燈明滅客無眠 불상의 등불 깜빡여 손님은 잠이 없네. 仙山一躡傷遲暮 신선의 산 한번 밟으니 나이 들음이 속상하네. 烏帽欺人二十年 오사모로 사람을 20년이나 속였구나. 『소화시평』 권상 80번에 두 번째로 소개된 유영길의 시는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는 메시지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유영길은 직접 복천사에 가서 낙엽소리가 울리던 곁채에서 머물고 있었다. 때마침 비까지 내려 스산한 분위기는 더욱 짙어졌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 등불은 바람에 꺼질 듯하다가 다시 피어나고 꺼질 듯하다가 다시 피어나며 심란한 마음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막상 떠나온 이곳이 그토록 꿈에도 그리던 선..
신광한이 한시로 전해주는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는 메시지 『소화시평』 권상 80번에 나온 신광한이 지은 금강산 시는 『우리 한시를 읽다』의 12번 챕터에서 읽었었다. 거기엔 금강산을 중심으로 다양한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기에 금강산을 면모를 엿보는데 매우 긴요했다. 최근에 남북엔 화해 무드가 무르익으면서 더욱 평양의 냉면이랄지, 평양의 부벽루랄지, 금강산, 백두산 같은 한반도에 사는 사람이면 으레 남아 있는 명승지에 대한 감각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갈 수 없다 치더라도 머지않아 나의 두 발로 밟아볼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어리기 때문이다. 그런 정감을 키워주는 데에 선조들이 써 놓은 한시가 아주 긴요하게 작용한다. 위의 시는 두 편 모두 하나의 주제를 얘기하고 있다. 삶에 치..
한 글자를 바꾸니 생긴 일 『소화시평』 권상 78번에서 한 글자를 바꿨을 뿐인데 내용의 깊이가 달라지는 걸 보니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겨우 한 글자에 무에 그리 심상이 달라지겠냐고 영화 ‘신세계’에서의 이정재 말투처럼 “거 번, 광한형 이거 한 글자 가지고 너무 장난이 심한 거 아뇨?”라는 말이 절로 나올지도 모른다. 나도 처음엔 단순히 그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바뀐 글자를 놓고 시를 보니, 거기다가 교수님의 설명까지 들으니 한 글자로 시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두 시의 상황은 모두 다르지만 한 글자가 바뀜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 같다. 노골적으로 보여주려 하기보다 살짝 가려서 보일 듯 말 듯, 줄 듯 말 듯, 알쏭달쏭하게 만드는 기법을 구사한 것이다..
한시에서 한 글자의 가치 지금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퇴고(推敲)’라는 단어의 뜻은 글을 다 쓰고 난 다음에 검토해보며 고친다는 뜻이다. 글자 하나 바꾼다고 무에 달라질 게 있냐고 할 테지만, 한시의 경우는 매우 한정된 분량(5언 절구는 20자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야 한다)에 담아야 하니, 한 글자 한 글자에 무척 신중할 수밖에 없다. 나도 글을 쓰다 보면 단어 때문에 고민할 때가 많다. 뭔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를 적확하게 표현하고 싶은데 마땅한 글자가 떠오르지 않아 글쓰기를 멈추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럴 땐 그 한 단어에 자꾸 미련이 남아, 알맞은 단어를 골라내기 위해 이리저리 뒤적거리게 된다. 거기엔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단어로 써야 한다’는 생각이 분명..
소나무에 자신의 절망감을 이입하다 枝柯摧折葉鬖髿 가지 꺾였고 잎사귀는 헝클어져 斤斧餘身欲臥沙 도끼에 잘린 남은 몸통은 모래에 누우려 하네. 望絶棟樑嗟已矣 희망 끊긴 동량은 이제 그만이로구나! 枒楂堪作海仙槎 뗏목으로 바다의 신선이 탈 배를 만들련다. 『소화시평』 권상 75번에 첫 번째로 소개된 시에선 소나무를 보며 희망을 노래했다. 하지만 두 번째 시에선 감정이 확연히 달라진다. 곁에 있는 다른 소나무를 보니 그 소나무는 가지도 꺾였고 잎사귀도 아무렇게 헝클어져 있으며 몸통은 도끼에 잘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하고 많은 소나무들 중에 그 소나무가 눈에 들어왔고 이렇게 시까지 쓰여지게 된 이유는 뻔하다. 그건 바로 지금 자신의 심정을 대변하는, 아니 바로 쓰러질 듯 위태하게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자신이..
유배지로 가는 절망 속에 희망을 읊은 김정 어쨌든 이런 저런 사정으로 『소화시평』 권상 75번은 3개월 동안 묵고 묵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은 대부분의 것들은 묵혀두면 더 진한 맛을 내게 된다는 사실이다. 글을 쓰다보면 막힐 때가 자주 있다. 일이 밀려 있으니 빨리 써재끼고 싶지만 한 번 막히면 도무지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그러니 맘은 더욱 급해지고 그만큼 부담은 더욱 가중되며, 그럴수록 더욱 글은 써지지 않는다. 그럴 땐 멈추고 다른 일을 하는 게 훨씬 낫다. 어떻게든 글에 대한 고민이 있는 이상 그건 내 머릿속 어딘가에서 굴러다니며 이런 저런 것들과 결합되며 생각지도 못했던 것으로 발효될 테니 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 생각들이 용솟음쳐 오르며 콸콸콸 쏟아져 나와 한 편으..
3개월 만에 재개된 소화시평, 그리고 김정과 소나무 『소화시평』 권상 75번은 1학기에 순서를 배정할 때 내가 맡은 작품이라 이미 7월 16일에 모두 정리해서 해석해놓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1학기 소화시평 수업은 바로 이 작품 앞에서 끝이 났고 무려 3개월이란 시간 동안 발효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2학기 수업이 과연 언제 시작될까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었다. 나에게 소화시평 수업은 ‘한시가 얼마나 맛있을 수 있는지?’를 알게 해준 시간이다. 10년 전에 열나게 공부할 때 한시란 미로처럼 아무런 감흥조차 주지 못했었다. 해석도 제대로 되지 않지만 해석이 된다 해도 도대체 무얼 말하고 싶은지 확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시의 맛을 느낄 새도 없이, 그저 많은 작품을 ..
한유의 글을 시로 담아낸 박상의 한시 『소화시평』 권상 73번에선 박상이 나오는데 당풍을 연 사람이라고 알려주셨다. 그러면서 강서시파라는 설명도 덧붙여줬는데, 그렇다면 당풍 내에 강서시파라는 게 별도로 있는 건지, 당풍과 강서시파는 전혀 다른 것인지 헛갈리긴 하다. 『한국한시사』라는 책을 읽고 정리한 한시 약사에선 송풍에서 당풍으로 변하는 과정 속에 강서시파가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그렇다면, 변화되는 과정 속에 전혀 다른 게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건가? 어찌 되었든 강서시의 특징은 ‘난삽하고 기괴’하다고 알려주셨고, 약사에선 기교에 힘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보충: 이 시를 처음 배웠을 때가 18년 8월이었고 다시 정리하는 지금은 19년 2월이다. 그새 6개월 정도가 지났고 지금은 1월에 진도를 쭉쭉..
봄이 감을 아쉬워한 이행의 시와 두보의 악양루시 衰年奔走病如期 늦은 나이에 분주하여 병이 약속한 듯 와서 春興無多不到詩 봄의 흥취가 많지 않아 시 지을 만큼 이르질 않네. 睡起忽驚花事晩 자다 깨니 어이쿠야! 꽃피는 계절이 다 가버려, 一番微雨落薔薇 한 번 보슬비에 장미꽃 져버렸네. 『소화시평』 권상 71번에 두 번째로 소개된 시에선 1구가 원인이 되어야 2구가 이해가 된다. 그러니 1구를 해석할 때 병들었다는 사실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병이 들었기에 2구의 봄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프면 입맛도 떨어지고, 좋은 경치도 아무런 감흥을 남기지 않는다. 그러니 건강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맛있는 걸 먹고, 좋은 걸 보기 위해서다. 낙화시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거기엔 당연히 비애가 담길 수..
반전이 담긴 멋진 시를 쓴 이행 순서대로 진행되기에 권상 57번 이후의 시들을 준비해갔다. 그런데 그걸 맡은 학생들이 업로드를 하지 않아 과연 수업이 진행될 수 있을지 우려스럽긴 했다. 하긴 그래도 예전에도 아이들 시험 기간 때면 교수님이 그냥 진행한 적도 있었으니, 이번에도 그렇게 나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더욱이 오늘은 예비 TO까지 나왔고, 22명을 뽑는데 무려 전북에서 6명이나 뽑는 대이변이 일어났다. 나야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올해 될 리는 없고 내년에나 바라볼 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니. 그런데 이번에 한참이나 순서가 뒤로 처져 있지만, 동원이가 ‘71번’ 준비한 것을 올렸었다. 너무나 멀기에 보지도 않았는데, 교수님은 이번엔 순서를 아예 바꿔서 이 시부터 하자고 하시며 진행하셨다. 세상에나 ..
영보정 시를 읽었더니 그곳에 가고 싶어지다 『소화시평』 권상69번을 개발새발 해석했을 땐 잘 몰랐다. 하지만 교수님과 수업을 하면서 「영후정자(營後亭子)」가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더라. 어디까지나 정자를 묘사하며 지은 시였는데, 정자를 묘사한 방식도 탁월해서 정말 그곳에 가서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地如拍拍將飛翼 땅이 푸드덕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날개 같고, 樓似搖搖不繫篷 누각은 흔들흔들 거려 매어 있지 않은 배와 같다. 北望雲山欲何極 북쪽으로 바라보니 구름 낀 산은 어디서 끝나려는가? 南來襟帶此爲雄 강물이 남으로 와 띠처럼 둘렀으니 이곳이 웅장해지네. 海氣作霧因成雨 바다 기운이 안개가 되었다가 인하여 비를 이루고 浪勢飜天自起風 파도의 기세가 하늘로 솟구쳐서 저절로 바..
홍유손의 한시가 최치원에 비해 뒤떨어지는 이유 濯足淸江臥白沙 맑은 강에 발 씻고 흰 모래에 누우니 心神岑寂入無何 마음과 정신이 적막하여 무아지경에 들어가네. 天敎風浪長喧耳 하늘이 바람과 파도로 하여금 길게 귀를 시끄럽게 하지만 不聞人間萬事多 인간의 온갖 일 많음조차 들리지가 않네. 『소화시평』 권상65번에 나온 홍유손의 「제강석(題江石)」은 어렵지 않았던 시다. 그리고 최치원의 작품인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에서 풍기는 느낌까지 그대로 드니, 더더욱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3~4구에 이르면 완벽하게 최치원의 시가 생각날 정도로 판박이다. 분명히 홍유손은 이 시를 지으며 최치원의 시를 염두에 두고 쓴 게 맞을 것이고, 그만큼 최치원의 풍도를 풍기고 싶었을 것이다. 시화를 읽으면서 작자의 평..
도를 깨달은 사람이 쓴 시엔 깊은 뜻이 담긴다 김시습하면 우리에겐 『금오신화』로 너무나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리고 특이한 그의 이력으로 또 한 번 알려져 있기도 하다. 신동(神童)이라는 내용의 삼각산 이야기와 함께 홍만종도 김시습의 이야기를 실었고, 위에 언급한 이수광도 김시습의 이야기를 잘 실어놨다. 그만큼 김시습의 이야기는 여러 사람에게 회자가 될 정도로 유명한 얘기였고 그만큼 많이 알려진 얘기였다는 것이리라. 終日芒鞋信脚行 종일토록 짚신 신고 발 가는 대로 다녀 一山行盡一山靑 한 산이 건너 다하면 다시 한 산 푸르네. 心非有想奚形役 마음이란 상상조차 없으니, 어찌 형체의 부림을 당하랴. 道本無名豈假成 도란 본디 무명이니 어찌 빌려서 이루겠는가?(도를 얻은 척 할 수 없다) 宿露未晞山鳥語 묵은 이슬..
과거 사람들의 평가도 눈여겨 볼 떄 한시는 훨씬 재밌다 『소화시평』 권상62번에 나머지 두 시도 전문(全文)으로 공개했고 그것으로 공부했지만, 사람들은 그러질 않았다. 프린터를 해오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심지어 교수님까지도. 그래서 다음부턴 전문을 함께 보고 싶을 땐 내가 프린터를 해서 나눠주는 방법 밖에는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쉽다 함께 보면 좀 더 얘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그것은 홍만종이 인용해둔 구절을 중심으로 살짝 봤기 때문에 별다른 감흥이 남지 않았다. 그래도 교수님이 신흠이 『청창연담』에 나오는 내용을 프린터해서 주셔서 함께 볼 수 있었고 내용이 꽤 흥미진진했다. 전혀 준비하지 않았기에 버벅였고, 때론 보는 순간 이게 무슨 글자지 하는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지..
김종직과 두보의 그림 같은 시 籬外紅桃竹數科 울타리 밖 붉은 복숭아꽃과 대나무 몇 그루 𩁺𩁺雨脚閒飛花 부슬부슬 빗발에 이따금 꽃이 날리네. 老翁荷耒兒騎犢 노인은 보습을 메고, 아이는 송아지 타니, 子美詩中西崦家 두자미의 시 중에 「적곡 서쪽 산의 인가[赤谷西崦人家]」라는 시에서 얘기한 풍경이로다.『東文選』 『소화시평』 권상62번에 두 번째로 소개된 「장현촌가(長峴村家)」라는 시는 ‘시중유화(詩中有畵)’라고 평한 정도전의 「방김거사(訪金居士)」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다. 이 시는 해석이 그리 어렵지 않았고 보는 순간 그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시는 느낌이 「도중(途中)」의 시와 매우 흡사하다. 마치 그 그림 속에 들어가 지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특이하게 4구에선 아예 두보..
한유와는 달리 고향 선산으로 의기양양하게 태수로 가는 김종직 津吏非瀧吏 官人卽邑人 나루의 아전은 농리는 아니고 관인인 나는 곧 이 고을 사람이네. 三章辭聖主 五馬慰慈親 세 차례 상소문은 성주께 사직했지만 태수가 되어 사랑하는 어머니를 위로하네. 白鳥如迎棹 靑山慣送賓 흰 새는 마치 노를 맞이하는 듯하고 푸른 산은 익숙히 손님을 보내는 듯. 澄江無點綴 持以律吾身 티 하나 없이 맑은 강을 지님으로 이 몸을 규율(단속) 하리라. 『소화시평』 권상62번엔 김종직의 시가 나열되어 있다. 「관수루제영시(觀水樓 題詠詩)」라는 시는 어렵게 느껴졌다. 여긴 나름의 스토리가 달려 있고 한유가 농리(瀧吏)와 나눴던 얘기라는 고사도 포함되어 있다. 더욱이 김종직이 왜 중앙관직을 마다하고 선산으로 가려 하는지에 대한 이해도 뒷받..
소화시평 스터디가 부딪힐 수 있는 용기를 주다 이 스터디는 4월 중순에 들어와 지금까지 6번의 스터디와 한 번의 맥주파티, 그리고 한 번의 교수님과의 내소사 탐방이 있었을 뿐이다. 어찌 보면 3개월이란 시간은 흘렀지만 소화시평을 공부한 시간보다 안 한 시간이 훨씬 많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그 기간 이상으로 나에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처음 스터디에 갈 때만 해도 머리는 완전히 백지상태였고 어떻게 공부해야하는 지도 몰라 헤매고 있었는데, 그새 공부하는 방법도 알게 됐고, 정리하는 기쁨도 알게 됐으며, 나만의 자료를 만들어가는 행복도 알게 됐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소화시평을 준비하는 마음도 바뀌었다. 예전엔 그냥 가서 따라가기에 바쁘기만 했다면 이젠 어느 ..
신종호의 시와 김영랑의 시에 담긴 상춘(傷春) 茶甌飮罷睡初驚 차 마시길 다하고 깜빡 졸다가 막 깨니, 隔屋聞吹紫玉笙 집 너머에서 자주빛 옥피리소리 들려. 燕子不來鶯又去 제비 오지 않고 꾀꼬리 가버린 채, 滿庭紅雨落無聲 뜰 가득 붉은 비가 뚝뚝 떨어지네. 『소화시평』 권상59번의 네 번째 인용된 신종호의 「상춘(傷春)」이라는 시도 재밌는 시였다. 우선 1구부터 문제가 됐다, 잠이 깼는데 그 이유는 당연히 차를 마셨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차 마시니, 잠이 깼다는 내용이 순차적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수님은 달리 생각해보라고 말씀해주셨다. 이 사람이 잠을 깨게 된 이유는 차와는 상관없이 바로 다음 구절에 나오는 것이라는 걸 암시한다. 즉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생황소리에 잠이 깬 거라는 거다. 그렇다..
시의 제목을 통해 시를 봐야 한다 江湖當日亦憂君 강호에서 있던 당시에 임금이 근심스럽고 白首無眠夜向分 하얀 머리인데도 잠 못 이루고 자정을 넘겼는데, 華省寂寥疎雨過 궁궐은 적막한데 가랑비 지나가자, 隔窓梧葉最先聞 창 너머 오동잎이 가장 먼저 빗소리를 들려주네. 『소화시평』 권상59번의 세 번째 인용된 「독직내조문야우(獨直內曺聞夜雨)」라는 시를 볼 땐 제목과 1구에 나오는 ‘강호(江湖)’에 집중하며 봐야 한다. 지금껏 시를 볼 땐 제목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대부분 ‘우연히 읊다[偶吟]’이나 ‘그 자리의 일을 읊다[卽事]’와 같은 전혀 시의 내용과 상관없는 제목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엔 아예 시 제목을 풀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고, 최근에 다시 공부하면서는 시 제목을 해석하긴 하지만, 여전..
지나가는 가을의 강과 산을 싣고 돌아오는 경지 水國秋高木葉飛 물나라 가을 깊어 나뭇잎 흩날리고, 沙寒鷗鷺淨毛衣 모래 추워 기러기와 해오라기는 깃털을 고르는데, 西風日落吹遊艇 해가 지니 가을바람이 놀잇배를 불어줘서 醉後江山滿載歸 취한 뒤라 강산을 한 가득 싣고 돌아오는구나. 『소화시평』 권상59번의 두 번째 인용된 이요정의 시는 너무도 익숙히 알고 있는 ‘양화대교♬’를 배경으로 글을 썼다. 그 당시의 양화나루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한강의 직선화 공사 이전엔 자연하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잠실 같은 곳은 섬까지 있을 정도로 비좁은데 반해 양화나루쯤엔 하구로 좀 더 거대한 물줄기가 흘렀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직선화 공사 이전의 한강엔 모래톱도 자연스럽게 있고 해수욕장도 있어 사람들이 더욱 친근..
태평의 기상을 노래한 신숙주의 시 6월 27일에 마지막 소화시평 스터디를 했으니, 근 한 달 만에 다시 스터디를 하는 셈이다. 소화시평을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하다가 막상 한다니까 부담이 되긴 한다. 특히 이번엔 한 달 정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던 터라 미리 내가 할 분량을 올려놓긴 했는데, 다른 것들은 전혀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서당에 들어간 아이도 있고 각자 방학에 따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요일엔 갑자기 교수님에게 전화가 오기에 이르렀다. “잘 지내죠? 부탁이 있어서 전화했어요.”라고 시작한 통화는, 하나 더 준비해달라는 거였다. 더군다나 하루 전날에 온 전화이기에 부담이 될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지금의 내 마인드는 ‘내가 해갈 수 있는 만큼만 해가고, 나머지..
악부시의 묘미와 시경 해석의 문제점 『소화시평』 권상57번엔 악부시에 대한 소개까지 하고 있다. 소개된 악부시는 민간에서 떠돌던 노래들을 한시로 변용하여 정착시킨 것이다. 지금으로 보면 유행가, 특히나 소속사에서 만든 노래보다 인디밴드의 노래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일 없이 산다’와 같은 노래들이 꼭 그런 꼴이다. 그래서 ‘관풍찰속(觀風察俗)’이라 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공공기관의 마인드이고 그저 자연스럽게 나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을 담아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관에선 왜 이런 노래들을 담으려 했을까 하는 점이다. 보통 사람은 누군가와 마주 앉아 있을 땐 좋은 얘기만 하게 되어 있다. 서로 불편한 이야기를 나눠 나쁜 감정을 가질 필요가 없으니 좋은..
신비로운 시를 쓴 성간 籬落依依半掩扃 마을 뵐 듯 말 듯 사립문을 닫혔는데 夕陽立馬問前程 석양에 말 세우고 앞길 물어야 해. 翛然細雨蒼烟外 갑자기 가랑비 내리고 푸른 안개 피어오르는 저 편에 時有田翁叱犢行 때마침 늙은이 ‘이랴!’ 소를 끌고 가네. 『소화시평』 권상57번에 소개된 「도중(途中)」라는 시는 머리로 상상하며 시를 그려야 한다. 말을 타고 어딘가를 찾아가는 선비가 있다. 처음 가는 길인데 날씨가 약간 흐린지 멀리 있을 땐 마을이 보일 듯 말 듯 흐릿하기만 하다. 말이 서서히 앞을 향해 나아가니 드디어 사립문이 보였지만 반쯤 닫혀 있다. 저물기 전에 빨리 도착했으면 하는데 도무지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길을 묻고 싶지만 사람은 보이질 않는다. 마음은 급한데 갑자기 비가 내리다가 그치니..
호쾌한 시를 쓴 성간 鉛槧年來病不堪 글 짓느라 근래에 병을 견디지 못했는데 春風引興到城南 봄바람이 흥 이끌어 성남에 도착했네. 陽坡草軟細如織 볕든 언덕의 풀은 연하고 가늘기가 실을 짠 듯 正是靑春三月三 바로 이때가 푸른 봄 3월 3일이네! 『소화시평』 권상57번에 소개된 「여옥당학사 유성남(與玉堂學士, 遊城南)」는 매끄럽게 해석되진 않아도 말하고자 하는 바는 크게 문제없이 전해진다. 공무에 시달리다 봄바람 따라 친구들이 이끌어서 야외에 나왔더니, 언덕 위에 연하고 가는 풀들이 보여 그제야 ‘아 맞다! 오늘이 3월 삼짇날이지’라고 알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우리에겐 이런 시들에서 전혀 감흥을 느낄 수 없다. 도대체 이런 류의 시를 통해 뭘 말하려 하는지 알지 못할 정도다. 하지만 이 시를 지었..
여유로움을 칭송하던 사회에서 지어진 한시 『소화시평』 권상56번의 주제인 나태함에 대해 얘기를 하다가 이와 관련된 시 두 번도 함께 소개해줬다. 김형술 교수님은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 1671~1751)은 3만 수의 시를 썼으며 이덕무가 영조 때의 제일 시는 사천을 꼽아야 한다고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시 중에 『직중기하동(直中寄巷東)』을 보면 다음과 같다. 官寺淸閒聽禁鍾 관청이 맑고 한가로워 통행금지 종소리 들으니, 此中那得一從容 이 가운데 한결같이 조용히 있을 수 있겠는가? (친구 불러 시를 짓겠네라는 뜻) 故人不起知非病 고인이 일어나질 않으니 병 때문이 아님을 아니, 兒女傍邊好得慵 지금 처자식 옆에서 실컷 늘어졌겠지. 이 시를 잘못 읽으면 불러도 오지 않고, 그저 아녀자의 치마폭에 싸여 ..
나태함을 칭송하다 晝靜溪風自捲簾 낮 고요하고 시내엔 바람에 저절로 발이 걷혀 吟餘傍架檢書籤 시 읊은 뒤에 서가 옆에서 책갈피를 뒤적이네. 今年却勝前年懶 금년은 도리어 작년의 게으름보다 더하여 身世全敎付黑甛 몸 신세 온통 꿀잠에 부치네. 『소화시평』 권상56번에 소개된 「즉사(卽事)」를 읽으면서 지금과 확실히 다른 조선 지식인들의 사고방식, 생활방식을 볼 수가 있다. 지금은 ‘빨리 빨리’, ‘성과가 있어야 한다’, ‘하나라도 더 하지 않으면 낙오한다’와 같은 완벽한 경쟁주의 사회 속에 치열한 삶의 방식이 좋은 것처럼 회자되고, 티비에 성공한 사람들이 나와서 하는 얘기들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느림의 미학』,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과 같은 책들이 ..
자연이 약동하는 걸 시로 표현하다 舍後桑枝嫩 畦西薤葉抽 집 뒤 뽕나무 가지 새싹 뾱 돋고, 서쪽 밭의 부추잎이 쑥 자라네. 陂塘春水滿 稚子解撑舟 언덕엔 봄물 가득하여 어린 자식 메어놓은 배를 저을 줄 아네. 『소화시평』 권상55번에 두 번째로 인용된 「자적(自適)」이란 시는 봄의 정경을 읊고 있는 평범한 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재밌는 부분은 ‘눈(嫩)→추(抽)→만(滿)’으로 행위 자체가 확대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눈(嫩)은 여린 새싹 뾱 돋아나는 모습이라면, 추(抽)는 쏙 하고 약간 더 큰 모양새로 돋아나는 모습이고, 만(滿)은 이미 단어만으로도 가득 차 있는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이런 걸 점층법(漸層法)이라 할 수 있고, 해석을 할 때에도 그걸 반영하여 점차 거대해지는 모습으로 알맞게 해석하면..
이첨, 급암을 통해 사회를 풍자하다 諂諛從來易得親 아첨하는 무리들이 예로부터 쉽게 총애를 얻는다는 것을 君看大將與平津 그대는 대장인 위청과 평진후인 공손후에게서 볼 수 있네. 高才久屈淮陽郡 높은 재주임에도 회양군에서 오래도록 구부렸으니, 孰謂當時社稷臣 누가 당시 사직의 신하라 하였던가? 『소화시평』 권상55번에 첫 번째로 인용된 「영급암(詠汲黯)」이라는 시는 명재상인 급암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회풍자시다. 그런데 이 시에서 재밌는 점은 아양을 떠는 신하들만을 비판한 게 아니라, 그런 신하임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들에게 휘둘리는 임금까지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4구를 통해 임금에 대한 비판이 가열차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냐면, 급암을 ‘사직의 신하[社稷臣]’라 띄워준 게 바로..
물아일체의 묘미를 한시로 담다 秋陰漠漠四山空 가을 그늘 어둑침침하고 온 산은 고요한데, 落葉無聲滿地紅 소리 없이 떨어지는 낙엽에 온 산 붉구나. 立馬橋頭問歸路 말 다리머리에 세워두고 돌아가는 길 묻자니, 不知身在畵圖中 알지 못했구나, 몸이 그림 속에 있었다는 것을. 『소화시평』 권상51번의 두 번째로 나온 「방김거사(訪金居士)」는 너무도 익숙히 읽어왔던 시다. 더욱이 마지막 구에 ‘그림 속에 있었다’라는 구절 때문에 나 자신이 외물과 융합된 경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고, 그 때문에 자연과 하나로 섞였다는 표현을 하려 할 때 편안히 쓰게 된다. 여기선 ‘공(空)’에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즉, 어둠이 깔렸기에 인적이 드물다라는 표현과 함께, 나뭇잎이 떨어져서 비어 있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 정도로만..
태평의 기상을 한시로 담다 『소화시평』 권상51번에서도 그렇듯이 시를 보고 나선 ‘작자는 이런 시를 왜 지었을까?’하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시를 오롯이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春隨細雨渡天津 봄은 가랑비 따라 천진교를 건너서 오고, 太液池邊柳色新 태액지 가의 버들빛 싱그럽다. 滿帽宮花霑錫宴 사모에 궁화를 가득 꽂고 내려주신 잔치에 참가했더니, 金吾不問醉歸人 호위도 취해서 돌아가는 사람을 검문하지 않네. 「봉천문(奉天門)」에서라는 시는 얼핏 보면 그저 궁궐의 풍경을 읊고 세금을 낭비하고 있는 관리들과 임금에 대한 이야기인 것만 같다. 더욱이 4구에 이르고 보면 자기 업무도 소홀히 하는 게 느껴지니 더욱 그런 생각을 강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관리를 노출시키고 게으르며, 때론 자기의 일도 제..
홍만종, 고려시보다 조선시를 높게 평가하다 幽居野興老彌淸 숨어사는 시골의 흥취는 늙을수록 더욱 맑아져 恰得新詩眼底生 새로운 시가 눈 밑에서 생겨나는 것을 흡족하게 얻네. 風定餘花猶自落 바람은 멈췄지만 남아 있던 꽃 오히려 스스로 지고 雲移小雨未全晴 구름은 사라졌지만 부슬비 아직 덜 개었네. 墻頭粉蝶別枝去 담장 위의 나비는 가지와 이별하여 떠나고 屋角錦鳩深樹鳴 처마 귀퉁이 비둘기는 깊은 숲에 숨어 울어대네. 齊物逍遙非我事 제물과 소요는 나의 일이 아니니, 鏡中形色甚分明 거울 속에 모든 사물이 이렇게도 분명한 것을. 『소화시평』 권상49번의 이색의 시에서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여기엔 『장자』의 편명인 「제물」과 「소유」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제물은 ‘절대 평등’이라 풀어냈고, 소유는 ‘초월의..
고려시의 시는 송풍의 시다 이번 글의 주제는 ‘고려시와 조선시 중 어느 시대의 시가 좋은가?’일 터다. 그래서 처음부터 두 시대의 시를 비교하며 두 사람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서거정의 대답을 들었을 땐 ‘두 시대의 시가 모두 우열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장점과 단점을 지니고 있다’는 뉘앙스로 읽혀지지만, 막상 홍만종은 그 말을 “서거정의 말로 그것을 보면 조선이 나은 것처럼 보인다”라고 결론을 지어 놨다. 분명 지금 다시 읽더라도 장단점이 특기되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홍만종이 왜 그렇게 평가했는지 알 길이 없다. 아마 저 문장만이 아닌 전체를 다 읽으면 다른 뉘앙스가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그렇게 보지 않더라도 홍만종이 조선인이기에 자신의 관점에서 저 말을 왜곡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삼봉도 전횡을 노래했지만 스승에게 비판을 듣다 嗚呼島在東溟中 오호도는 동쪽의 바다 한 가운데 있어 滄波渺然一點碧 푸른 물결에 아득히 하나의 점으로 푸르다. 夫何使我雙涕零 그런데 어찌 나의 두 눈에 눈물을 흐르게 하나? 祇爲哀此田橫客 다만 전횡의 식객들이 애처롭게 하는구나. 田橫氣槩橫素秋 전횡의 씩씩한 기상과 절개가 가을을 가로질렀으니 壯士歸心實五百 씩씩한 선비로 죽으리라 마음을 먹은 이가 실로 500명이나 되었다. 咸陽隆準眞天人 함양에서 콧날이 우뚝한 유방은 참으로 천상의 사람으로, 手注天潢洗秦虐 손으로 은하수를 부어 진나라의 학정을 씻어냈었는데 橫何爲哉不歸來 전횡은 어찌하여 귀의하려 하지 않고 寃血自汚蓮花鍔 원망의 피가 스스로 연꽃이 새겨진 칼날을 더럽혔던가? 客雖聞之爭柰何 식객이 비록 그 사실을 들은..
한문공부의 방향잡기 『소화시평』 권상39번엔 한신이 빨래터 아낙에게 밥을 빌어먹은 이야기를 주제로 발표를 했었는데, 이번에도 권상47번에선 우연하게 유방과 전횡에 대한 이야기를 맡게 됐다. 초한쟁패 시기의 이야기로 우연하게 두 번이나 맡게 된 셈이다. 어찌 되었든 나에겐 축복이라 생각했다. 지금의 내 공부 패턴은 무언가를 진득하게 잡고 가는 방법이기보다 이것 하다가 저게 보고 싶으면, 저걸 보고, 그러다 또 다른 게 보고 싶으면 그것으로 건너 뛰어가는 이름하야 ‘메뚜기식 공부법’,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공부법’으로 하고 있다. 바로 이 공부법은 4월 11일에 첫 스터디를 했고 바로 그 다음 주에 발표를 맡게 되면서 고민 끝에 결정된 것이다. 솔직히 말해 4월 11일만 해도 머릿속은 새하얀 상황이었고 무식..
홍만종의 평가가 시를 깊이 있게 보도록 한다 『소화시평』 권상46번에선 화운한 시를 보며 어느 작품이 더 낫냐를 생각해보게 한다. 영천에 있는 명원루(지금의 조양각)를 보고서 정몽주가 먼저 시를 지었고, 그 시에 탄복한 이안눌도 차운을 하며 시를 짓고자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그렇게 몇 시간 끙끙 앓다가 결국 시를 쓰긴 했는데, 이에 대한 홍만종의 평가는 “청신한 시구를 만들어냈지만, 그럼에도 마침내 정몽주의 굉장하고 원대한 기상에는 미치지 못했다[李詩雖淸絶, 然終不逮鄭詩宏遠底氣像].”라는 평가를 내린다. 교수님은 “그러면 전문을 한 번 해석해보면 그때서야 홍만종이 왜 저런 평가를 했는지 느낌이 올 거예요”라고 알려준다. 난 그 순간 ‘어디서 약을 파시려고?’라는 마음으로 반신반의했다. 靑谿石壁抱州回 맑..
친숙한 것을 낯설게 표현하는 한시의 저력 平生南與北 心事轉蹉跎 평생 남북으로 떠돌았지만, 마음 둔 일이 갈수록 어긋났네. 故國海西岸 孤舟天一涯 고국의 바다는 서해안 쪽에 있고, 외로운 배만 하늘 한 끝에 매어 있구나. 梅窓春色早 板屋雨聲多 매화 핀 창이라서 봄빛이 빠르고, 판잣집이라서 빗소리 많이 들리네. 獨坐消長日 那堪苦憶家 홀로 앉아 긴 하루 보내려 하니, 자꾸 생각나는 집 생각을 어이 견디랴. 『소화시평』 권상44번에서 이 시를 스터디할 땐 정말 넋이라도 있고 없고 했다. 거의 두 시간을 꽉 채우며 수업이 진행되어 너무 머리를 많이 쓰다 보니 지끈지끈해지며, 거의 마지막에 이르고 보면 분명 시를 배우고 있긴 한데, 뇌는 작동은 멈춘 듯, 나는 이 자리에 없는 듯 소리와 교실 안의 공기는 심연 속으로..
인생무상과 부벽루의 정감 昨過永明寺 暫登浮碧樓어제 영명사를 지나다 잠시 부벽루에 올랐네.城空月一片 石老雲千秋성은 텅 빈 채 달 한 조각 있고, 바위(조천석)는 천년 두고 구름뿐인데,麟馬去不返 天孫何處遊기린 말 타고 떠나 돌아오지 않으니, 천손이여 어디서 노시는가?長嘯倚風磴 山靑江自流 길게 바람 부는 돌계단에 기대어 읊조리니, 산을 절로 푸르고, 강은 절로 흐르는구나. 『東文選』 卷之十 『소화시평』 권상43번에 나오는 「부벽루」라는 시는 읽은 적이 여러 번 있었을 테지만, 기억에 그다지 남아 있지 않았다. 어려운 글자가 없어 수월하게 변역되었다는 정도로 만족했었지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지 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은 이 시는 주몽의 설화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주몽=선군의 이미..
작가 비평의 문제점과 한계 솔직히 이런 식으로 작가를 나열하고 평가하는 무수한 글을 볼 수 있지만, 『소화시평』 권상43번은 전혀 와 닿지 않는다. 그래도 허균의 평가는 느낌적인 표현보다 한문학사에서의 영향력에 대한 평가가 덧붙여져 있기에 이해가 되는 부분이 충분히 있고 참고해볼 만한 부분이 있었지만, 여기선 도무지 그런 건덕지를 찾아볼 수가 없다. 고려의 문인 중 조운흘이 명명한 12명의 시인을 그대로 반영하여 각 문인마다 두 글자로 인상비평을 가하고 있다. 분명히 우리가 그 당시의 학자였다면 이런 인상비평을 듣는 순간 ‘아 맞다!’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의 글을 한 번 읽어보면, 더욱 분명해질 거다. 보수파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을 썼지만, 좌우를 떠나 가..
문인들의 한바탕 구강액션 『소화시평』 권상42번에선 구양현과 목은은 칼만 들지 않았지, 서로의 기를 짓누르려는 언어의 칼이 사정없이 번뜩인다. 『공작』이란 영화를 한 마디로 ‘구강액션’이라 표현했었는데, 딱 이 글이 그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과 비슷했다. 자칫 잘못하면 상대방을 넉다운 시킬 수 있고, 다시는 공부의 공자도 꺼내지 못하게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나름 긴장감 넘치는 상황을 아주 기묘하게 다룬 이 글이 그래서 사랑스럽다. 근데 나는 이번에도 생각이 많이 짧았다. 좀 더 문장으로 들어가 이해하려 하기보다 피상적인 느낌만으로 이해하려 했기 때문이다. 獸蹄鳥跡之道, 交於中國 鷄鳴狗吠之聲, 達于四境 해석 들짐승의 발굽과 날짐승의 발자국이 만든 길이 중국에서 어지럽다. 닭 울음소리와 개 짓는 소..
엽등하려 하지 말고 기본부터 충실히 한문공부를 해야 한다 『소화시평』 권상42번은 교수님이 준비해왔고 교수님이 대부분 해석을 해줬다. 더욱이 가지의 시와 두보의 시와 함께 가져왔고, 그걸 함께 해석하는 것을 보여줌으로 준비해온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명확히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한문 공부의 저력은 하나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거기에 관련된 다른 작품을 찾아보는 걸 ‘시간이 아깝다’, ‘너무 곁다리로 가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계속 횡적으로 네트워킹을 해야만 하나의 해석을 제대로 할 수 있고, 그 당시의 사람들이 어떤 감각에 의해 그런 평가를 했는지 제대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까지 듣고 나면 ‘좀 더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나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고 생각할지 모..
세상을 피하려는 뜻을 시에 담은 이유 『소화시평』 권상41번은 역사적인 상황을 담고 있다. 공민왕은 친원파(親元派)들이 정권을 장악한 상황에서 친원파들을 축출하여 자신의 입지를 넓히고자 했다. 그래서 기용한 것이 스님의 신분이었던 신돈(辛旽)이었고 그의 활약으로 고려 말의 조정은 나름 활기를 찾게 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신돈의 영향력이 커지게 되면서 의구심이 싹트기 시작했고, 결국 그를 제거하기에 이른다. 마치 이런 일련의 상황이 항우와 범증의 이야기와 매우 유사하다. 그리고 「기무열사(寄無悅師)」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공민왕만이 신돈을 눈엣가시로 봤던 게 아니라, 권문세족 중에서도 신돈을 제거하려는 논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世事紛紛是與非 세상 일에 시비가 분분하여 十年塵土汚人衣..
교수님의 단서만으로도 술술 해석되던 한시 甲第當時蔭綠槐 큰 집 그 당시엔 푸른 회화나무 우거졌겠고 高門應爲子孫開 높은 문 응당 자손을 위해 문을 열었겠지. 年來易主無車馬 근래에 주인이 바뀌어 거마가 끊겼고 惟有行人避雨來 오직 나그네만이 비 피하러 들어오네. 『소화시평』 권상40번에 나온 이곡의 「도중피우(道中避雨)」라는 시를 처음에 할 때만 해도 1, 2구가 잘 해석되지 않았다. 3, 4구야 너무도 명확했으니 괜찮은데 1, 2구는 뭘 말하고 싶은지 몰랐다. 그래서 ‘큰 집 푸른 회화나무 그늘 진 때에, 귀한 집 응당 자손을 위해 문을 열었겠지’라고 풀이했었다. 그만큼 글자만 따라 내용은 전혀 이해를 못한 채 해석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오늘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수업을 진행하셨는데, “좀..
한신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주제를 드러내다 『소화시평』 권상39번은 소화시평 스터디에 참여한 후 처음으로 발표했던 편이었다. 번역서가 있기 때문에 참고하며 준비할까도 생각했지만 지금 있는 그대로의 실력 그대로 노출하기 위해 보지 않고 준비하기로 했다. 7년 만에 다시 한문을 공부하게 되어 실력은 쥐뿔 없지만 지금은 뭔가 있어 보이게 꾸미는 것보다 솔직하게 인정하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해나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발표를 준비한 덕에 십팔사략도 정리하고 블로그도 공부장으로 사용하게 됐다. 그런 변곡점을 통해 공부방법도 많은 부분이 바뀐 것이다. 이숭인의 시에서 ‘맹사가(猛士歌)’를 고민 끝에 찾아낸 건 정말 대박이었다. 아래 부분은 제대로 찾질 못해 수업을 듣고 새롭게 알게 된 내용들을 정리해..
핍진하게 자연을 담아낸 한시 『소화시평』 권상37번의 핵심은 얼마나 보이는 사물을 그대로 담아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핍진하다는 말을 쓴 것이다. 滿空山翠滴人衣 허공 가득한 산의 푸르름이 사람의 옷에 물들고 草綠池塘白鳥飛 초록 연못가에 흰 새가 날아든다. 宿霧夜栖深樹在 간밤에 깃든 밤안개가 깊은 숲에 남아 있다가 午風吹作雨霏霏 낮 바람 불자 비가 되어 주룩주룩. 동암의 「산거우제(山居偶題)」라는 시는 자기 주변의 풍경을 감각적으로 그리고 있다. 2구의 대비는 두보가 지은 「절구(絶句)」란 시의 ‘강벽조유백 산청화욕연(江碧鳥逾白 山靑花欲燃)’라는 구절처럼 색조의 대비가 뛰어나고 3, 4구의 밤안개가 바람으로 비로 변해 내렸다는 구절은 상상력을 자아낸다. 이런 류들의 시는 지은이가 별 것 아닌 자..
가을이 왔는데도 일하러 가야 하다니 『소화시평』 권상 35번은 홍만종이 자신의 12대 선조인 홍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紫氣橫空澗水流 상서로운 기운 하늘을 비끼고 시냇물 흐르니, 風烟千里似滄洲 천리의 좋은 경치 마치 창주(滄洲)인 듯. 石橋西畔南臺路 돌다리 서쪽 가 남대길 柱笏看山又一秋 홀든 채 산을 보니 또한 온통 가을이네. 「조조마상(早朝馬上)」이란 시는 출근길에 본 풍경과 마음을 꾸미지 않고 그대로 표현한 시다. 출근하는 길에 주변을 둘러보니 상서로운 기운이 하늘까지 닿고 곁의 시냇물은 졸졸 흐르며 안개까지 가득 끼어 이곳이 마치 신선들의 세상인 것만 같다. 그런데 자연은 어느덧 가을로 물들어 나를 하염없이 잡아끌지만 나는 공무를 보러 출근을 해야만 한다. 아~ 내 맘과 현실은 어찌 이다지도 어긋..
곽예, 태평성대와 나이듦을 시로 담다 『소화시평』 권상 34번엔 곽예(郭預)가 지은 두 편의 시가 소개되어 있다. 半鉤踈箔向層巓 엉성한 발을 반쯤 걷어 산꼭대기를 바라보니 萬壑松風動翠烟 수많은 골짜기의 솔바람이 푸른 이내를 일으키네. 午漏正閑公事少 정오라 참으로 한가하여 공무가 거의 없으니, 倚窓和睡聽鈞天 창에 기대어 평화롭게 졸며 천상의 음악을 듣누나. 「제직려(題直廬)」라는 시는 태평성대의 모습을 ‘균천(鈞天)’와 ‘공사소(公事少)’란 시어로 잘 드러냈다. ‘균천(鈞天)’을 통해 상제와 임금을 동일시하고 ‘공사소(公事少)’를 통해 자신의 게으른 모습을 등장시킴으로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묘사는 ‘일출이작 일입이식 경전이식 착정이음 제력하유우아재(日出而作 日入而息 耕田而食 鑿井而飮..
요체시의 묘미가 담겨 있는 김지대의 한시 『소화시평』 권상 33번에 나온 「제유가사(題瑜伽寺)」라는 시는 요체시(拗體詩)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요체시란 시의 수사미를 위해 평측 자리를 뒤바꾸는 등 조탁에 대단히 신경을 쓴 시를 말한다. 寺在煙霞無事中 절은 짙은 안개 낀 텅빈 곳에 있고, 亂山滴翠秋光濃 어지러운 산에 푸른빛이 떨궈져 가을빛이 짙구나. 雲間絶磴六七里 구름 사이로 난 끊어진 돌 비탈 예닐곱 리오, 天末遙岑千萬峰 하늘 끝까지 닿을 듯한 아득한 봉우리는 천만 봉우리로구나. 茶罷松檐掛微月 차를 다 마시니 솔 처마엔 초승달 걸려 있고, 講闌風榻搖殘鐘 강 끝나니 바람 품은 책상엔 잔잔한 종소리 들려오네. 溪深應笑玉腰客 시내 깊어 응당 옥대 찬 나그네 비웃으리라. 欲洗未洗紅塵蹤 속세의 자취 씻으려 하나 ..
이규보의 ‘유어(游魚)’와 ‘문앵(聞鶯)’ 시의 이해 圉圉紅鱗沒復浮 비리비리한 붉은 물고기 물에 빠졌다가 다시 나타나니, 人言得意好優游 사람들은 ‘뜻을 얻어 잘 노닌다’고 말하네. 細思片隙無閑睱 곰곰이 생각하면 조금도 한가하지 못하니, 漁父方歸鷺又謀 어부가 곧 돌아가면 해오라기가 또 도모하려 하겠지. 『소화시평』 권상 30번의 첫 번째 시인 「유어(游魚)」는 물고기가 노니는 걸 보고 ‘한가하다[閒]’고 느끼던 당시의 통념을 깨는 ‘변안법(飜案法, 기존의 관념을 180도 뒤집음)’을 썼다. 그래서 작자는 물고기를 통해 자신을 투영함으로 제대로 된 본질은 모른 채 자기 식대로 재단하고 평가하여 ‘득의호유우(得意好優游)’라 말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公子王孫擁綺羅 공자와 왕손이 기생을 끼니 要憑嬌唱助歡多 ..
한문이랑 놀자 목차 1. 한시랑 놀자 권필의 宮柳詩와 시화권필의 過松江墓有感이안눌의 江頭誰唱美人詞을지문덕의 與隋將于仲文정지상의 送人정지상의 送人2최치원과 황상, 그리고 류석춘 2. 서사한시랑 놀자 성간의 老人行 1 / 2조선의 문인이 농부의 말을 담는 이유 3. 소화시평 상권이랑 놀자 이규보의 ‘游魚’와 ‘聞鶯’ 시의 이해(30)요체시와 김지대(33)태평성대와 나이듦에 관한 시(34)가을이 왔는데 일하러 가야 한다니(35)핍진하게 자연을 담아낸 한시(37)한신의 일화를 담은 한시(39)단서만으로도 술술 해석되던 한시(40)세상을 피하려는 뜻을 담다(41)기본부터 충실히 공부해야 한다(42)문인들이 말로 하는 칼싸움(42)작가 비평의 문제점과 한계(43)이색이 지은 부벽루 이해(43)친숙함에서 낯섦 담아내..
조선의 시인들이 농부의 말을 담는 이유 올해 스터디가 저번 주부터 시작되어 첫 스타트를 끊었다. 올해는 서정적인 필치로 쓰여진 일반적인 한시를 벗어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서서한시를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이번에 공부하게 된 내용은 공교롭게도(아니 매우 치밀한 계획대로?) 두 편 모두 농부의 열심히 살아도 살 수 없는 현실을 담아내고 있다. ▲ 코로나로 인해 두 번째로 카페에서 진행되는 스터디. 기대된다. 서거정이 담아낸 농부의 말 처음으로 본 한시는 서거정의 「토산촌사록전부어兎山村舍錄田父語」라는 시다. 이 시는 서거정이 불암산 아래에 살고 있는 농부의 말을 듣고 그대로 기록한 시다. 과연 어떤 사연을 담고 있는지 들여다보도록 하자. 我家佛岩下 傍隣三四屋 1. “우리집 불암산 아래에 있어 이웃엔 3~4집뿐...
황상과 최치원의 시와 류석춘 어제 2학기 들어 두 번째 한시 스터디가 있었다. 작년부터 했던 『소화시평』이 올해 7월에 상하권 선집을 무려 1년 4개월 만에 끝낸 후에 방학 기간엔 서사한시를 마쳤고 2학기부턴 이의현이 집필한 『陶谷集』을 보기로 했다. 지난주에 예행연습 삼아 『雲陽漫錄』에 나온 ‘재물과 관직을 탐내는 사람들에게’라는 편을 보면서 2학기의 스터디를 화려하게 열었다. ▲ 늦은 시간임에도 학구열을 불태우는 아이들, 그리고 명강의를 펼치는 교수님. 황상의 시와 그 기반이 된 최치원의 시 그래서 어제 두 번째 스터디를 하며 각자가 맡아온 부분을 발표한 후에 교수님이 가져온 시 두 편을 봤다. 하나는 다산의 애제자인 황상의 지은 것으로 짚신 짜던 가난한 계집아이에 대한 기록을 담은 「여인이 짚신을 ..
암초를 보며 양두구육하는 세태를 노래하다 이번 편에 네 번째로 소개된 신최의 시도 어찌 보면 삶의 지혜를 담고 있는데 여기서도 홍만종은 자신이 싫어하는 인간의 군상을 발견한다. 이 시의 내용은 기탄이란 곳에 대한 내용이고 배를 타는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암초에 대한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니 수면 바깥으로 드러난 바위는 오히려 위협적이지 않지만 물속에 감춰져 있어 배에 심한 손상을 입힐 수 있는 암초는 큰 위협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홍만종이 ‘입엔 꿀을 머금고 배엔 칼을 지녀 은밀히 공교로운 가운데 발동하는 사람을 비유했다.以譬口蜜腹劒, 潜發巧中者.’이라 평하며,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을 비유한 건 정말 적절했고 쉽게 이해가 됐다. 애초에 누구에게나 ‘저 사람은 별로다’라는 사람은 별로 위협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