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정민 (378)
건빵이랑 놀자
5. 토론문 정민(한양대) 1. 16세기 후반 당시풍으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해동강서시파의 공이 적지 않다고 했다. 해동강서시파 또한 두보에 대한 연구가 깊었던 점을 그 증거로 들었다. 그리고 박순, 백광훈, 이달 등과 해동강서시파 사이의 사승과 교류를 지적했다. 단순히 해동강서시파의 시인이 두보를 존숭한 사실과 16세기 후반 당시풍의 성향은 그 성격면에서 판연히 다르다. 우리의 관심은 그들이 강서시풍과는 전혀 다른, 두시풍과도 구분되는 낭만적 당시풍으로 선회했다는 점일 뿐인데, 단순히 강서시파와의 계기성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이러한 변별이 명확해지지 않는다. 공이 많았다는 말은 16세기 당시풍의 성립에 해동강서시파가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는 것인가? 아니면 해동강서시파의 바탕을 딛고 그 극복과 계기선상에서..
한시미학산책(漢詩美學散策) 목차 정민 지은이의 말 1) 허공 속으로 난 길1. 푸른 하늘과 까마귀의 날개빛박지원 - 答蒼厓之三박지원 - 菱洋詩集序박지원 - 答京之之二2. 영양(羚羊)이 뿔을 걸듯엄우 - 시란 말이나 이치에 천착치 않는다3. 허공 속으로 난 길이옥 - 俚諺引 一難고조기 - 山莊雨夜이달 - 撲棗謠백광훈 - 弘慶寺4. 눈과 귀가 있다 말하지 말라홍양호 - 疾雷이규보 - 論詩5. 이명(耳鳴)과 코골기박지원 - 孔雀館文稿 自序 2) 그림과 시1. 그리지 않고 그리기노자 - 45번2. 말하지 않고 말하기정곡 - 落葉두보 - 春望두보 - 江南逢李龜年서거정 - 獨坐3. 장수는 목이 없고, 미인은 어깨가 없다박지원 - 菱洋詩集序어우야담 - 그대의 좋아하는 마음 잘 싣고 갑니다신광수 - 峽口所見4. 정..
9. 도로 눈을 감아라② 이 책의 맨 처음을 연암(燕巖)으로 시작했으니, 이제 연암으로 끝맺겠다. 본분으로 돌아가라 함이 어찌 문장만이리요? 일체의 모든 일이 모두 그렇지요. 화담(花潭) 선생이 길을 가다가 집을 잃고 길에서 울고 있는 사람을 만났더랍니다. “너는 왜 우는가?” 대답하기를, “저는 다섯 살에 눈이 멀어 이제 스무 해나 되었습니다. 아침에 나와 길을 가는데 갑자기 천지만물이 맑고 밝게 보이는지라 기뻐 돌아가려 하니, 골목길은 갈림도 많고 대문은 서로 같아 제 집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웁니다.” 선생이 말하기를, “내가 네게 돌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 도로 네 눈을 감아라. 그러면 바로 네 집을 찾을 수 있으리라.” 이에 눈을 감고 지팡이를 두드려 걸음을 믿고 도달할 수 있었더랍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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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도로 눈을 감아라 오늘날 한시에 대한 관심은 한갓 회고 취미나 골동품을 완상하는 호사는 아닌가? 더 이상 한시를 짓는 전문 시인이 배출되지 않는 현실에서 한시에 관한 담론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국문학과의 교과과정을 보면 현대시론이나 현대소설론, 현대비평론 등의 강좌는 있어도, 한국시론이나 한국소설론, 한국비평론 등의 강좌는 찾아볼 수 없다. 시론과 비평론은 꼭 ‘현대’라는 수식어를 달고, 서구의 문예이론을 전달한다. 독일문학비평사와 프랑스문학비평사, 중국문학비평사는 서점에 버젓이 꽂혀 있는데, 정작 볼만한 한국문학비평사는 한 권이 없다. 고작해야 그간 비평주제로 쓴 논문을 모아 엮은 것이 전부다. 문학사 강의는 언제나 고전문학사와 현대문학사가 따로 논다. 갑오경장이 없었다면 문학사는 어떻..
7. 사기의 불사기사(師其意 不師其辭)② 동문(同門)인 위(魏) 나라 방연(龐涓)의 책략에 말려 앉은뱅이 병신이 된 손빈(孫臏)은 제(齊) 나라로 달아나 군사(軍師)가 되었다. 이때 위(魏)가 한(韓)을 치자 합종(合從)의 약속에 따라 제(齊)가 위(魏)를 쳐 한(韓) 나라를 도왔다. 방연(龐涓)이 이를 듣고 한(韓) 나라에 들어갔던 군사를 돌려 제(齊) 나라 군대를 쫓았다. 손빈은 첫날 주둔지에 밥 짓는 아궁이 자국을 10만 개를 만들었다. 다음날에는 5만개, 그 다음 날에는 2만 개로 줄였다. 사흘을 뒤쫓던 방연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위나라에 들어온 지 사흘도 못 되어 제나라 군사 5분의 4가 겁먹고 달아난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이에 방심하여 기병만을 거느려 손빈을 뒤쫓은 방연은 마릉(馬陵)에서..
4. 사기의 불사기사(師其意 不師其辭) 어떤 지금도 옛 것의 구속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옛 것을 바로 알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옛 것을 어떻게 배울 것인가? 그 껍질을 배우지 말고 그 정신을 배울 일이다. 당대(唐代) 고문(古文) 운동을 제창한 한유(韓愈)에게 한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 글을 지을 때 무엇을 본받아야 합니까?” “마땅히 옛 성현을 본받아야지.” 그가 갸우뚱하며 다시 묻는다. “옛 성현이 지은 글이 다 남아 있지만 그 말은 모두 같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느 것을 본받아야 할지요?” “그 정신을 본받아야지, 그 말을 흉내내서는 안 된다.” 이른바 ‘사기의 불사기사(師其意 不師其辭)’의 정신이다. 「답유정부서(答劉正夫書)」에 보인다. 또 그는 옛 사람의 정신을 본받되, ‘사..
5. 그때의 지금인 옛날② 옛 것으로 말미암아 지금을 보면 지금이 진실로 낮다. 그렇지만 옛 사람이 스스로를 볼 때 반드시 스스로 옛스럽다 여기진 않았을 터이고, 당시에 보던 자도 또한 지금 것으로 보았을 뿐이리라. 세월은 도도히 흘러가고 노래는 자주 변한다. 아침에 술 마시던 자가 저녁엔 그 장막을 떠나간다. 천추만세는 지금부터가 옛날인 것이다. 由古視今, 今誠卑矣. 古人自視, 未必自古. 當時觀者, 亦一今耳. 故日月滔滔, 風謠屢變, 朝而飮酒者, 夕去其帷, 千秋萬世, 從此以古矣. 연암(燕巖)의 「영처고서(嬰處稿序)」 일절이다. 천추만세는 지금으로부터가 옛날이 된다. 무서운 말이 아닌가. 옛날은 그때의 지금이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먼 후일의 옛날이 된다. 현재에 충실하라. 그러면 그것이 뒷날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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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때의 지금인 옛날 『주역(周易)』 「계사(繫辭)」에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 통하면 오래 간다[窮則變, 變則通, 通則可久].”라 했다. 천지만물은 변화유동한다. 한 시대가 가면 또 한 시대가 온다. 이 도도한 변화 앞에 옛 것만 좋다고 우겨서야 될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새 것이 옛 것과는 별개의 무엇인가? 그럴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것과 저것이 다름을 확인함에 있지 않고, 그 사이에 숨을 통하게 하여 오래 갈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이른바 ‘통변(通變)’의 정신이 여기서 나온다. 유협(劉勰)은 『문심조룡(文心雕龍)』 「통변(通變)」에서 이렇게 말한다. 무릇 시(詩)ㆍ부(賦)ㆍ서(書)ㆍ기(記)는 이름과 실지가 서로 상응하니 여기에는 항상된 형식이 있다. 문사(文辭)와 기력(氣力)은..
3. 거미가 줄을 치듯② 또 말거간꾼의 이야기를 적은 「마장전(馬駔傳)」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내가 아침에 쪽박을 두드리며 동냥을 다니다가 포목전엘 들어가지 않았겠나. 마침 다락에 올라와 베를 사려는 자가 있더군. 베를 골라 혀로 핥아도 보고 허공에 비춰 살펴보더니, 값은 말하지 않고 먼저 값을 불러보라고 주인에게 말하는 게야. 그러더니 둘 다 베 팔 일은 까맣게 잊은 듯이, 주인은 갑자기 먼 산을 바라보며 저기 구름이 피어나는 것 좀 보라고 하고, 살 사람은 뒷짐 지고 서성대면서 벽 위에 걸린 그림을 보고 있지 뭔가. 吾朝日鼓瓢行丐, 入于布廛. 有登樓而貿布者. 擇布而舐之, 暎空而視之, 價則在口, 讓其先呼. 旣而兩相忘布, 布人忽然望遠山, 謠其出雲, 其人負手逍遙, 壁上觀畵. 물건 값을 놓고 흥정하는 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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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거미가 줄을 치듯 22일, 국옹(麯翁)과 함께 걸어 담헌(湛軒)에게 갔다. 풍무風舞도 밤에 왔다. 담헌(湛軒)이 슬(瑟)을 타자, 풍무(風舞)는 금(琴)으로 화답하고, 국옹(麯翁)은 갓을 벗고 노래한다. 밤 깊어 구름이 사방에서 몰려들자 더운 기운이 잠시 가시고, 현(絃)의 소리가 더욱 맑아진다. 좌우에 있는 사람은 모두 고요히 묵묵하다. 마치 내단(內丹) 수련 하는 이가 내관장신(內觀臟神)하는 것 같고, 입정에 든 스님이 돈오전생(頓悟前生)하는 듯하다. 대저 스스로 돌아보아 곧으매 삼군(三軍)이 막아선다 해도 반드시 나아갈 기세다. 국옹(麯翁)이 노래할 때를 보면 해의방박(解衣磅礴), 옷을 죄 벗어붙이고 곁에 사람이 없는 듯 방약무인하다. 매탕(梅宕)이 한 번은 처마 사이서 늙은 거미가 거미줄 치..
30. 그때의 지금인 옛날, 통변론(通變論)한시(漢詩) 전통의 미학의의 1. 지팡이 자국마다 고이는 봄비 자료를 찾으러 대학 도서관에 들렀다. 고서 영인본 서가를 둘러보는데 「송산하(頌山河)」란 시집이 한 권 꽂혀 있다. 옛 책 매듯 제본하였기에 잘못 고서로 분류한 것이다. 산기슭/ 물굽이/ 도는 나그네/ 지팡이/ 자국마다/ 고이는 봄비 (春 2) 소나무/ 가지 끝에/ 달랑/ 앉아/ 봄맞이 노래로/ 해 지는 멧새 (春 25) 갈매기/ 흰 나래/ 타는 저녁놀/ 기다림에/ 지쳐서/ 조는 나룻배 (夏 37) 청개구리/ 버들 타고/ 울면/ 파초 잎에/ 후두둑/ 소나기 (夏 64) 못 잊어/ 찾는 이 길/ 하도 덧없어/ 허랑해/ 잊잔 길이/ 이리 삼삼해 (秋 97) 긁어 모은/ 낙엽에/ 불을 붙이면/ 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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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남는 이야기 김부식(金富軾)과 정지상(鄭知常)은 문장으로 한때에 명성이 나란하였다. 한 번은 정지상이 다음과 같은 시구를 지었다. 琳宮梵語罷 天色淨琉璃 절에서 독경소리 끝나자마자 하늘 빛 유리처럼 깨끗해지네. 독경소리가 맑게 하늘로 울려 퍼지니, 그 소리에 씻긴 듯 하늘빛이 유리와 같이 맑아졌다고 했다. 청각을 시각으로 옮긴 절묘한 포착이 아닐 수 없다. 본시 독경소리와 맑아진 하늘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시인은 독경소리에 쇄락해진 마음을 맑아진 하늘에서 새삼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교감적 심상의 교묘한 결합과 행간에 의미를 감추는 심층화의 수법은 한시가 아니고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심오처이다. 이를 본 김부식(金富軾)이 이 구절을 좋아 해서 정지상에게 그것을 자기에게 ..
5. 말하지 않고 말하기 종래 시화에 보이는 한시 감상 태도는 세밀한 분석보다 총체적인 감상을 중시하여, 두 세 마디로 자신의 직관적인 느낌을 말하고 있을 뿐 논리적 분석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오늘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모호한 느낌을 갖게 되지만, 이는 그들의 문학 인식이 낮거나 구체적이지 못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1920년대 이미지즘 시인 아치볼트 매클리쉬(Archibald MacLeish, 1892~1982)는 「시의 작법(Ars Poetica)」이란 시에서 “시는 의미해서는 안 된다. 다만 존재할 뿐이다. A Poem should not mean: but be”고 하고, 또 “시는 사실 그 자체를 말해서는 안 되고 등가적이어야 한다. A Poem shuold be e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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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말이 씨가 되어 흔히 “글은 바로 그 사람[文如其人].”이라는 말을 한다. 대개 시에는 그 사람의 기상이 절로 스며들게 되니, 그 시의 한 구절로도 그 사람의 궁달을 점칠 수가 있다. 이를 달리 기상론(氣象論)이라고도 한다. 옛 사람들은 언어의 힘을 믿었다. 우리 속담에도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다. 시화를 읽다 보면 의외로 이런 예화와 자주 접하게 된다. 비유가 조금 유감스럽긴 하지만, 예전 어느 가수가 “한 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라는 노래를 부르더니, 실제 그렇게 되고 만 것 같은 예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앞서 무심히 한 말이 뒷날의 예언이 되는 경우를 따로 시참(詩讖)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대개 이는 언어의 주술적 힘을 믿어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됨을 경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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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를 쓰면 궁해진다 허구헌 날 이렇듯 시만 생각하다 보니, 그 생활이야 일러 무엇 하겠는가. 시화를 빈번하게 장식하는 화제 가운데 “시가 사람을 능히 궁하게 한다[詩能窮人].”는 말이 있다. 시가 무슨 조화가 있어 사람을 궁하게 할까마는, 폐백사하고 시만 생각하고 앉았으니, 궁함이 뒤따라오는 것은 또 당연할 법하다. 어느 여류 시인이 자신은 시를 쓸 때 먼저 커튼을 치고 촛불을 켜고 실연의 기억과 같은 슬픈 일을 생각하노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거니와, 대체 문학은 모든 것이 충족된 만족 속에서 나오지 아니하고, 무언가를 상실하거나 무참하게 버려진 느낌 속에서 더욱 밝게 빛나는 법이다. 중국의 『사명시화(四溟詩話)』에는, “요즘 두보(杜甫)의 시를 배우는 자를 보면 부유하게 살면서도 궁상스런 근심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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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마(詩魔)의 죄상 네가 오고부터 모든 일이 기구하기만 하다. 흐릿하게 잊어버리고 멍청하게 바보가 되며, 주림과 목마름이 몸에 닥치는 줄도 모르고, 추위와 더위가 몸에 파고드는 줄도 깨닫지 못하며, 계집종이 게으름을 부려도 꾸중할 줄 모르고 사내종이 미련스러운 짓을 하더라도 타이를 줄 모르며, 동산에 초목이 우거져도 깎아낼 줄 모르고, 집이 쓰러져가도 고칠 줄을 모른다. 재산이 많고 벼슬이 높은 사람을 업수이 보며, 방자하고 거만하게 언성을 높여 겸손치 못하며, 면박하여 남의 비위를 맞추지 못하며, 여색에 쉬이 혹하며, 술을 만나면 행동이 더욱 거칠어지니, 이것이 다 네가 그렇게 시킨 것이다. 自汝之來, 萬狀崎嶇, 悗然如忘, 戇然如愚, 如瘖如聵, 形熱跡拘. 不知飽渴之逼體, 不覺寒暑之侵膚, 婢怠莫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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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시화(詩話), ‘행복한 시읽기’ 1. 한시 비평과 시화(詩話) 어느 시대고 많은 작품이 생산되면 으례 이의 옥석을 구분하려는 비평의 욕구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범람하는 작가와 작품의 홍수 속에서 악화와 양화를 구별해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문학이 펼쳐질 수 있게 하기 위해 비평 활동이 전개된다. 그런데 이 악화니 양화니 하는 개념이나 문학의 바람직한 전개 방향이란 것이 고정불변일 수 없다는 데서 시대마다, 또 평자마다 개성이 드러나고 견해가 갈리게 된다. 오늘날 시단에 비평이 존재하듯, 과거에도 한시를 중심으로 한 비평활동은 꾸준히 펼쳐져 왔다. 과거의 비평활동은 크게 선집류(選集類)의 간행을 통한 방법과, 시화(詩話)의 저술을 통한 방법이 있었다. 전자가 규모가 크고 간접적이라면, 후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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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낯선 마을의 가을비 앞산에 가을비 뒷산에 가을비 낯이 설은 마을에 가을 빗소리 이렇다 할 일 없고 기인 긴 밤 모과차(木瓜茶) 마시면 가을 빗소리 박용래 시인의 「모과차」다. 일이 없어 긴 밤의 시간이 짓누르면 모과차를 마신다. 잠 안 오는 밤 보글보글 화로에 주전자를 얹어 놓고, 모과차를 끓인다. 훈내 속에 코를 박고 있자니 마음이 따뜻하다. 한 김 식혀 한 모금 머금어 내릴 때, 내 귀에는 문득 가을 빗소리가 들려온다. 앞산과 뒷산에서 갈잎을 툭툭 치는 가을 빗소리. 처음 가본 낯선 마을, 외딴 여관방에서 혼자 누워 밤새 듣던 그 가을 빗소리가 자꾸만 들려온다. 오늘도 그 빗소리 듣자고 모과차를 끓인다. 旅館殘燈曉 孤城細雨秋 여관, 가물대는 등불, 새벽 외론 성, 부슬비, 가을. 思君意不盡 千里..
8. 밤비와 아내 생각③ 황진이의 시가 나온 김에 덧붙인다. 윤석중의 동시 「낮에 나온 반달」 3연은 이렇다.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해님이 빗다버린 면빗인가요 우리 누나 방아찧고 아픈 팔 쉴 때 흩은 머리 곱게 곱게 빗겨줬으면. 밤하늘에 뜬 달이 아닌 처연한 낮달이다. 누나가 저녁밥을 지어 주려고 힘들게 방아를 찧고 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팔이 아파 잠시 방아 찧기를 멈추고 이마에 진 땀을 닦는데 귀밑머리가 헝클어졌다. 우리 예쁜 누나의 흩어진 머리카락을 저 하늘의 옥색 면빗으로 곱게 곱게 정성껏 빗어주고 싶다. 그 마음이 참 곱고 따뜻하다. 그런데 이것은 바로 황진이의 「영반월(詠半月)」에서 가져온 것이다. 誰斲崑山玉 裁成織女梳 그 누가 곤륜산 옥을 캐어다 직녀의 얼레빗을 만들었..
7. 밤비와 아내 생각② 조운의 시조를 하나 더 읽어보자. 「여서(女書)를 받고」이다. 너도 밤마다 꿈에 나를 본다 하니 오고 가는 길에 만날 법도 하건마는 둘이 다 바쁜 마음에 서로 몰라 보는가 바람아 부지 마라 눈보라 치지 마라 어여쁜 우리 딸의 어리고 고운 꿈이 날 찾아 이 밤을 타고 이백 리를 온단다 딸의 편지를 받았다. “보고 싶은 아빠. 오늘도 그리워서 꿈길을 가서 아빠를 만났어요. 늘 건강하세요.” “그리운 내 딸아! 아빠도 네가 못 견디게 보고 싶어 꿈길을 자꾸 헤맨단다. 하지만 내 발걸음은 번번이 너를 놓쳐 안타깝구나. 서로 달려가기만 하느라 중간에 길이 어긋났던 게지. 바람아, 눈보라야! 어여쁜 우리 딸의 고운 꿈길에는 행여 얼씬할 생각도 마라. 그 여린 것이 밤마다 2백 리씩 애비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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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밤비와 아내 생각 가족과 가정의 안온함은 늘 아내의 손길과 함께 떠오른다. 이번에는 밤비 소리를 매개로 아내 생각을 떠올린 현대시와 한시를 엮어 읽어본다. 새로 바른 창(窓)을 닫고 수수들을 까는 저녁 요 빗소리를 철창(鐵窓)에서 또 듣나니 언제나 등잔불 돋우면서 이런 이약 할까요. 조운의 시조 「아내에게」다. 일제 때 감옥에 갇혀 지은 작품이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겨울 준비를 한다. 국화 꽃잎과 단풍잎을 넣고 새로 방문을 바르고 창을 바른다. 풀이 마르면서 헤살 먹은 창이 짱짱하게 펴진다. 방 안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수숫단을 턴다. 그럴 때마다 좌르르 쏟아져 방바닥을 구르던 수수 알갱이 소리는 마치 오밤중에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 같았다. 시인은 이제 철창에 갇혀 밤비 소리를 듣는다. 처정처정 지..
5. 지훈과 목월의 거리② 한시도 지을 줄 알았고 예스러운 표현을 즐겨 쓴 조지훈의 시보다, 박목월의 시가 한시의 기맥에 더 닿아 있다. 사실 청록파 세 사람 중에 한시의 정서에 가장 밀착되어 있는 시인은 단연 박목월이다. 「윤사월」이나 「산도화」는 조촐한 왕유(王維) 풍의 5언절구에 가깝다. 흰 달빛 자하문(紫霞門) 달안개 물소리 대웅전(大雄殿) 큰 보살 바람 소리 솔 소리 범영루(泛影樓) 뜬 그림자 흐는히 젖는데 흰 달빛 자하문 바람소리 물소리 박목월의 「불국사」다. 작품 전체는 ‘흐는히 젖는데’를 제외하고 모두 명사구만이다. 달빛 어린 자하문은 안개에 잠겨 물소리만 들린다. 대웅전 큰 보살상을 솔바람이 휘돌아 나간다. 범영루 뜬 그림자는 달빛에 젖고, 자하문엔 온통 바람 소리 물소리뿐이다. 시인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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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훈과 목월의 거리 차운 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조지훈의 「완화삼(玩花衫)」이다. ‘완화삼’은 글자 그대로 풀면 ‘꽃을 구경하는 적삼’이다. 꽃구경하는 나그네란 뜻이다. 시 속에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에서 따왔다. 「완화삼」의 첫 연, “차운 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는 두목(杜牧)의 「산행(山行)」 1구, ‘비탈진 바위 길에 찬 산 멀리 오르는데[遠上寒山石徑斜]’를 단번에 떠올린다. 다만 시의 감정이 다소 과잉되어 한시의 말하기 방식과 멀어졌다. ‘차운..
3. 한시와 모더니즘② 돌에 그늘이 차고, 따로 몰리는 소소리 바람. 앞섰거니 하야 꼬리 치날리여 세우고, 죵죵 다리 깟칠한 산(山)새 걸음거리. 여울 지여 수척한 흰 물살, 갈갈히 손가락 펴고, 멎은 듯 새삼 돋는 빗날 붉은 닢 닢 소란히 밟고 간다. 정지용의 시를 한 수 더 읽어보자. 인용한 작품은 「비」다. 16행 8연이다. 의미로 구분하면 두 연을 단위로 한 기승전결의 구조다. 돌에 그늘이 졌다. 소소리바람이 몰려든다. 모두 소나기가 쏟아질 조짐이다. 꼬리를 치날려 세우고 까칠하게 종종걸음을 걷는 것은 할미새다. 꼬리를 치들고 연신 흔들며 물가를 쏘다녀서 오죽하면 ‘할미새 꼬리 방정’이란 말까지 있다. 수척하던 흰 물살이 갈갈이 손가락을 편 것은 위쪽에서 비가 내려 물이 불어난 증거다. 잠시 멎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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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시와 모더니즘 벌목정정(伐木丁丁) 이랬거니 아람도리 큰 솔이 베어짐 직도 하이 골이 울어 메아리 소리 쩌르렁 돌아옴직도 하이 다람쥐도 좇지 않고 멧새도 울지 않아 깊은 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 우는데 눈과 밤이 종이보다 희고녀! 달도 보름을 기다려 흰 뜻은 한밤 이 골을 걸음이련가? 웃절 중이 여섯 판에 여섯 번 지고 웃고 올라간 뒤 조찰히 늙은 사나이의 남긴 내음새를 줏는가?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노니 오오 견디련다. 차고 올연히 슬픔도 꿈도 없이 장수산 속 겨울 한밤 내~ 이번에는 정지용의 「장수산(長壽山) 1」을 읽어본다. 아름드리 큰 솔을 도끼로 찍어내면 쩡쩡 소리를 내며 쓰러질 것만 같다. 메아리 소리도 유난히 크게 들릴 듯한 공간이다. 산은 깊어서 고요하다.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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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한시와 현대시, 같고도 다르게 1. 동서양의 수법 차이 조지훈은 「또 하나의 시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낮은 소리 가만히 그리웠냐 물어보니, 금비녀 매만지며 고개만 까닥까닥[低聲暗問相思否, 手整金𨥁少點頭].’ 여기에 동양의 수법이 있다. 서양의 시인은 이렇게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도 당신을 사랑했어요, 한 시도 잊을 수 없어요 하고 빨간 입술을 내밀었을 것이다. 어느 것이 낫다는 것은 별문제로 하고라도 표현 방법에서도 동양의 수법은 신비롭다. 이 동양의 수법이란 곧 한시의 수법이다. 직접 말하지 않는다. 다 보여주지 않는다. 입상진의(立象盡意), 이미지를 세워 할 말을 대신한다. 현대시도 한 가지다. 현대시와 한시는 여러 모로 참 닮았다. 한시와 현대시의 관련을 찾는 가장 쉽고..
7. 시에 숨겨진 시간의 단절을 찾아 烟楊窣地拂金絲 내낀 버들 어느새 금실을 너울대니 幾被情人贈別離 이별의 정표로 꺾이어짐 얼마던고. 林外一蟬諳別恨 숲 밖 저 매미도 이별 한을 안다는 듯 曳聲來上夕陽枝 석양의 가지 위로 소리 끌며 오르누나. 김극기(金克己)의 「통달역(通達驛)」이란 작품이다. 버들가지에 아지랑이 하늘대고, 연두빛 물이 오른 금실이 바람결에 일렁이는 봄날이다. 헤어지는 사람들이 서로 잊지 말자고 버들가지를 꺾어주며 전별하는 것은 당나라 이래의 오랜 관습이다. ‘유(柳)’와 ‘류(留)’가 음이 같은데다 버들은 꺾꽂이가 가능하므로, 우리는 비록 헤어졌지만 다시 만날 것이라는 다짐을 여기에다 얹은 것이다. 통달역은 평안도 고원군(高原郡)에 있던 역이다. 이름 그대로 사통팔달의 길목이고 보니, 안..
6. 불합리 속에 감춰진 의미를 찾아 결국 여러 시비가 모두 헛짚은 셈이 되는데, 그렇다면 시인의 시적 진술에 대해 시비를 거는 것은 쓸모없는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제 세 편 시를 함께 읽으며 글을 맺겠다. 먼저 김시습(金時習)의 「도점(陶店)」이란 작품이다. 兒打蜻蜓翁掇籬 아이는 잠자리 잡고 늙은인 울타리 엮는데 小溪春水浴鸕鷓 작은 시내 봄물에선 가마우지 멱을 감네. 靑山斷處歸程遠 청산도 끊어진 곳 갈 길도 아득해라 橫擔烏藤一箇枝 등나무 한 가지를 비스듬히 매고 간다. 도점은 지명이다. 아이가 잠자리를 잡는다고 했으니 계절은 한 여름이나 가을이라야 겠는데, 2구에서는 ‘춘수(春水)’ 즉 봄물이라고 했다. 노자(鸕鷓), 즉 가마우지는 겨울 철새다. 해안 절벽의 바위 가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논다. 소..
5. 시의 과장된 표현에 딴지 걸기 다음은 『동인시화(東人詩話)』의 언급이다. 진화(陳澕)가 “비온 뒤 뜨락엔 이끼가 깔렸는데, 기척 없는 사립은 낮에도 열리잖네. 푸른 섬돌 꽃이 져서 깊이가 한 치인데, 봄바람에 불려 갔다 불려서 오는구나[雨餘庭院簇莓苔, 人靜柴扉晝不開. 碧砌落花深一寸, 東風吹去又吹來].”라 노래한 것을 두고, 깎아 말하는 자가, “진 꽃을 ‘심일촌(深一寸)’이라 한 것은 이치에 어긋나는 것 같다”고 했다. 내가 말했다. “조퇴암(趙退菴)의 시에 ‘부들 빛 푸릇푸릇 버들 빛 짙은데, 금년 한식에도 지난해의 마음일세. 술 취해 관하(關河)의 꿈 기억나지 않는데, 길 위 날리는 꽃 한 무릎에 차는 도다[蒲色靑靑柳色深, 今年寒食去年心. 醉來不記關河夢, 路上飛花一膝深].’라 했으니, ‘일슬(一..
4. 시의 언어를 사실 언어로 받아들이다 우리나라 시화에서도 이 같은 문제는 여전히 흥미로운 관심사의 하나였다. 이수광(李晬光)도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이런 종류의 언급을 몇 남겼다. 이백의 시에, “오월이라 서시가 연밥을 따니, 사람들 보느라 야계가 미어지네[五月西施採, 人看隘若耶].”라 하였으니, 대개 5월은 연밥을 따는 때이다. 백광훈의 시에, “강남이라 연밥 따는 아가씨, 강물은 산기슭 치며 흐르네. 연이 짧아 물위로 나오질 않아, 뱃노래에 봄날은 근심겨워요[江南採蓮女, 江水拍山流. 蓮短不出水, 櫂歌春正愁].”라 하였다. 대개 연꽃이 물 위로 나오지 않았으니 연밥 따는 때가 아니다. 잘못이라 할 수 있다. 李白詩曰: ‘五月西施採, 人看隘若耶’, 盖五月是採蓮之時也. 白光勳詞云: ‘江南採蓮女, ..
3. 한밤 중의 종소리에 담긴 진실 『육일시화(六一詩話)』에도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시인이 좋은 구절을 구할 욕심에 이치가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또한 시어의 병통이다. 예컨대 “소매 속 간초(諫草) 넣고 조회하러 갔다가, 머리 위 궁화(宮花) 꽂고 잔치에서 돌아오네[袖中諫草朝天去, 頭上宮花侍宴歸].”는 진실로 아름다운 구절이지만, 다만 간언을 올릴 때는 반드시 장소(章疏)로 하는 것이지 곧바로 원고의 초고를 사용하는 경우란 없다. 당나라 사람이 말하기를, “고소대 밑 한산사, 한밤중에 종소리 객선(客船)에 드네[姑蘇臺下寒山寺, 半夜鐘聲到客船].”라 했다. 말하는 자가 또 “구절은 좋은데, 삼경은 종을 칠 때가 아니다”라고 한다. 詩人貪求好句, 而理有不通, 亦語病也. 如‘袖中諫草朝天去, 頭..
2. 이성적으로 시를 보려던 구양수 구양수가 가우(嘉祐) 연간에 왕안석의 시, “황혼에 비바람이 동산 숲에 어둡더니, 남은 국화 흩날려 온 땅이 금빛일세[黃昏風雨暝園林, 殘菊飄零滿地金].”라 한 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온갖 꽃이 다 져도 국화만은 가지 위에서 마를 뿐이다.” 인하여 장난으로 말하기를, “가을꽃을 봄꽃 짐에 견주어선 안 되나니, 시인에게 자세히 보라 알려 주노라[秋英不比春花落, 爲報詩人子細看].”고 하였다. 왕안석이 이 말을 듣더니, “그가 어찌 『초사(楚詞)』에 나오는 ‘저녁엔 가을 국화의 진 꽃잎을 먹는다[夕餐秋菊之落英].’를 모른단 말인가? 구양수가 공부하지 않은 잘못이다”라고 하였다. 毆公嘉祐中, 見王荊公詩‘黃昏風雨暝園林, 殘菊飄零滿地金’, 笑曰: “百花盡落, 獨菊枝上枯耳.”..
27. 시적 진술의 논리적 진실 1. 시에 담긴 과장과 함축 ‘승고월하문(僧敲月下門)’은 단지 망상으로 억탁한 것일 뿐이니, 마치 다른 사람의 꿈을 말하는 격이다. 설령 형용이 아주 비슷하다 해도 어찌 터럭만큼이라도 마음을 끌겠는가? 그런 줄 아는 것은 ‘퇴(推)’와 ‘고(敲)’ 두 글자를 침음한 것이 바로 그가 지어낸 생각이기 때문이다. 만약 경(景)과 마주해 마음으로 느꼈다면, ‘퇴(推)’든 ‘고(敲)’든 반드시 어느 하나였을 터이다. 경(景)과 정(情)에 따르면 절로 영묘(靈妙)해지니, 어찌 수고로이 따져 의논하랴? ‘장하락일원(長河落日圓)’은 애초에 정해진 경이 없었고, ‘격수문초부(隔水問樵夫)’는 처음부터 생각으로 얻은 것이 아니었으니, 선가(禪家)에서 이른바 ‘현량(現量)’이라는 것이다.僧..
3. 용사(用事)의 미감② 원작의 분위기를 계승시키다 이색(李穡)의 「부벽루(浮碧樓)」시의 1ㆍ2구는 다음과 같다. 昨過永明寺 暫登浮碧樓 어제 영명사를 지나가다가, 잠시 부벽루에 올라 보았네. 시를 배운 사람은 이 구절을 읽는 즉시 이것이 두보(杜甫)의 「등악양루(登岳陽樓)」의 1ㆍ2구에서 가져온 것임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昔聞洞庭水 今登岳陽樓 예전부터 동정호의 물을 들어왔는데, 이제야 악양루에 올라 보았네. 이러한 인지는 한시의 독자에게는 친밀과 신뢰의 감정을 일으키는 동시에, 용사를 통해 원작의 분위기를 그대로 작품 속에 전이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같은 시의 5구 ‘린마거불반(麟馬去不返)’도 최호의 「황학루(黃鶴樓)」시의 3구 ‘황학일거불부반(黃鶴一去不復返)’에서 허사(虛辭)인 ‘일(一)’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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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용사(用事)의 미감 몇 글자만 바꿔 다른 미감을 만들다 보다 구체적으로 전인(前人)의 시구를 가지고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예를 들어 도연명의 시 중 「사시(四時)」라는 시가 있으니 다음과 같다. 春水滿四澤 夏雲多奇峰 봄물은 사방 못에 넘실거리고 여름 구름 기이한 봉우리 모양을 짓네. 이 가운데 실사(實辭)는 ‘수(水)’와 ‘택(澤)’, ‘운(雲)’과 ‘봉(峰)’이고, 그 나머지 글자는 모두 허사(虛辭)이다. 만일 시인이 이 시구로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내려 할 때, 허사를 그대로 두고 실사만을 바꾼다면 이런 시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春陰滿四野 夏樹多奇花 봄 그늘 사방 들에 가득 차 있고 여름 나무엔 기이한 꽃 많이 피었네. 또 다음과 같이 실사는 그대로 두고 허사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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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한시의 용사(用事) 1. 이곤의 부벽루시와 용사 한시의 표현 방식 가운데 용사법(用事法)이 있다. 여기서는 이에 대해 살펴 표현방식의 한 양상을 검토하기로 한다. 한시에서 운자를 사용하여 여러 시인이 반복적으로 시를 짓다 보면 나중에는 표현 방식이 유형화 되게 마련이었다. 한시에서 앞선 시인이 사용한 것과 비슷한 표현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띄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적 관점에서 보면 명백한 표절인 표현이 한시에 있어서는 별 문제되지 않고, 오히려 옛 사람의 표현을 얼마나 적절하게 자기화 하느냐에 시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까지 생각되었다. 다음은 『동인시화(東人詩話)』에 실려 있는 이혼(李混)의 「부벽루(浮碧樓)」란 작품이다. 永明寺中僧不見영명사 가운데 스님은 뵈지 않고 永明寺前江自流영명사..
5. 좌절된 꿈을 아로새기다 봄여름 한철을 울고 내처 휴식하는 꾀꼬리 종달새의 교앙(驕昻)함보다, 사철 지저귀는 까마귀 참새의 시끄러움만 가득 찬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시단의 표정이다. 앉을 자리조차 가리지 못하는 범용(凡庸)한 시 따위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지용의 말마따나 꽃이 봉오리를 머금고 꾀꼬리 목청이 제 철에 트이듯, 아기가 열 달을 차서 태반을 돌아 탄생하듯 온전히 제자리가 돌아 빠진 시를 찾아보기 힘든 것은 고금이 한 이치이다. 시의 위의(威儀)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어떻게 쓰는 시가 좋은 시인가? 어찌하면 좋은 시인이 될 수 있는가? 허균(許筠)의 그때나 지금의 여기나 우리를 늘 곤혹스럽게 하는 물음들이다. 이 짧은 글에서는 허균의 시 창작과 관련된 논의만을 추려 간단히 살펴보았..
6. 묘오론: 학력과 식견과 공정② 허균(許筠)의 시관도 송나라 때의 시를 비판하는 같은 기조 위에 놓여 있다. 시는 송나라에 이르러 없어졌다 할 만하다. 이른바 없어졌다는 것은 그 말이 없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그 원리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시의 원리는 상세함을 다하고 에돌려 곡진히 하는 데 있지 않고, 말은 끊어져도 뜻은 이어지고 가리킴은 가까우나 지취(旨趣)는 먼 데에 있다. 이치의 길에 걸려들지 아니하고 말의 통발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 가장 상승(上乘)이 되니 당나라 사람의 시가 왕왕 이에 가까웠다. 詩至於宋, 可謂亡矣. 所謂亡者, 非其言之亡也, 其理之亡也. 詩之理, 不在於詳盡婉曲, 而在於辭絶意續, 指近趣遠. 不涉理路, 不落言筌, 爲最上乘, 唐人之詩, 往往近之矣. 「송오가시초서(宋五家詩鈔序)」의 첫..
4. 묘오론: 학력과 식견과 공정 시에는 자기만의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점철성금(點鐵成金)하는 표현의 묘를 통해 전달된다. 그렇다면 자기만의 목소리는 어떻게 얻어지는가? 점철성금하는 표현의 묘는 어떻게 획득되는가? 이 글의 세 번째 화두는 ‘묘오론(妙悟論)’이다. 좋은 시를 쓰려면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깨달음은 이론을 많이 알거나, 학력이 높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의 깨달음은 그런 것과는 별 관계가 없다. 권필이 이름과 지위가 사람을 움직일 만하지 못한데다가 세상 사람들이 눈으로 봄을 가지고 그를 천하게 여기지만, 옛날에 태어나게 했더라면 사람들이 그를 우러름이 어찌 다만 김종직 정도일 뿐이겠는가? 어떤 이는 권필이 학력이 적고 원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마땅히 ..
3. 표현론: 입의(立意) → 명어(命語) → 점철성금(點鐵成金)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 편의 시 속에 나만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을까? 이글에서 다루려는 두 번째 화두는 ‘표현론’이다. 허균은 「시변(詩辨)」에서 그 과정과 단계를 다음과 같이 친절하게 설명한다. 먼저 뜻을 세움에 나아가고 그 다음으로 말을 엮는 것을 바르게 하여, 구절이 살아 있고 글자가 원숙하며, 소리가 맑고 박자가 긴밀해야 한다. 그리고 소재를 취해 와서 엮되 놓여야 할 자리에 놓아두고 빛깔로 꾸미지 아니하며, 두드리면 쇳소리가 울리는 것만 같고 가까이 보면 화려한 듯하여, 이를 눌러 깊이 잠기게 하고 높이 올려 솟구쳐 내달리게 한다. 시상(詩想)을 닫는 것은 우아하면서도 굳세게 하고, 여는 것은 호방하고 시원스레 하여, 이를 펼..
3. 개성론: 정신은 배우되 표현방식은 배우지 않는다② 옹(翁)께서는 저의 근체시가 순숙(純熟) 엄진(嚴縝)하여 성당(盛唐)의 시가 아니라 하며, 물리쳐 돌아보지 않으시면서, 유독 고시(古詩)만은 좋아 안연지(顔延之)와 사령운(謝靈運)의 풍격이 있다 하십니다. 이는 옹께서 얽매여 변화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그려. 저의 고시(古詩)가 비록 옛스럽기는 해도, 이는 책상에 앉아 진짜처럼 흉내낸 것일 뿐이니, 남의 집 아래 집을 얽은 것이라, 어찌 족히 귀하다 하겠습니까? 근체시는 비록 핍진하지는 않아도 절로 저 자신만의 조화가 있습니다. 저는 제 시가 당나라 시와 비슷해지고 송나라 시와 비슷해짐을 염려합니다. 도리어 남들이 ‘허자(許子)의 시(詩)’라고 말하게 하고 싶답니다. 너무 외람된 것일까요? 翁以僕近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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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성론: 정신은 배우되 표현방식은 배우지 않는다 이제 허균의 문학 주장을 몇 가지로 대별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그의 첫 번째 화두는 ‘개성론’이다. 시에는 자기만의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시필성당(詩必盛唐)이라하여 그 지향을 성당(盛唐)의 시에 두고 있기는 해도, 지금 내가 시를 쓰는 목적은 이백(李白)과 두보(杜甫)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진정한 ‘나’를 찾는데 있다는 것이다. 명나라 사람으로 시 짓는 자들은 문득 말하기를 “나는 성당(盛唐)이다, 나는 이두(李杜)다, 나는 육조(六朝)다, 나는 한위(漢魏)다”라고 하여, 스스로 서로들 내세우며 모두 문단의 맹주가 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는 어떤 이는 그 말을 표절하고 어떤 이는 그 뜻을 답습하여 모두들 남의 집 아래에다..
25. 허균 시론, 깨달음의 시학 1. 조선의 문제아 당대 최고의 비평가 허균, 그의 이름을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 그는 국문소설 「홍길동전」의 작가이면서, 『성수시화(惺叟詩話)』ㆍ『학산초담(鶴山樵談)』 등의 시화를 엮은 당대 최고의 비평가였다. 그를 ‘천지간(天地間)의 일괴물(一怪物)’이라고 폄하하던 사람조차도 시를 보는 그의 안목만은 높이 인정하였다. 역대로 가장 훌륭한 엔솔로지(anthology)라는 평가를 들은 『국조시산(國朝詩刪)』을 엮은 것도 바로 그였다. 그는 다채로운 지적 편력을 거쳐, 당대에 성행했던 도교와 내단 수련 방면에도 정심한 이론과 실천을 보였다. 남궁두와 송천옹, 그리고 유형진 등 당대에 이름난 도류(道流)들과 교유하였고, 단학(丹學) 이론에도 밝았다. 스스로 100상자가..
11. 내가 죽고 그대가 살았더라면③ 羅幃香盡鏡生塵 휘장 향내 스러지고 거울 먼지 쌓였구나 門掩桃花寂寞春 닫아건 문 안엔 복사꽃만 적막해라. 依舊小樓明月在 누각에는 그때처럼 달 떠있건만 不知誰是捲簾人 발을 걷고 같이 볼 사람이 없네. 이달(李達)의 「도망(悼亡)」이다. 주인을 잃은 빈방을 찾아보았다. 그렇게 훌쩍 가버린 아내의 체취가 그리워서였다. 그러나 주인 잃은 거울 위엔 먼지만 자옥히 쌓여 있고, 휘장에는 향내마저 스러진 지 오래다. 사람 없는 빈방은 이다지도 적막한가. 나갈 일 없어 닫아건 문가엔 예전처럼 복사꽃이 피었고, 달빛 받아 그 꽃잎은 곱기도 한데 그 꽃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적막하기만 하다. 아내가 곁에 없는 지금 봄이 온들 무엇하며 꽃이 핀들 무엇하리. 엘리어트(T. S. Eliot..
10. 내가 죽고 그대가 살았더라면② 玉貌依稀看忽無 곱던 모습 아련히 보일 듯 사라지고 覺來燈影十分孤 깨어 보면 등불만 외로이 타고 있네. 早知秋雨驚人夢 가을비가 잠 깨울 줄 진작 알았더라면 不向窓前種碧梧 창 앞에다 오동일랑 심지 않았을 것을. 이서우(李瑞雨)의 「도망실(悼亡室)」을 보자. 오동잎에 듣는 성근 가을 비 소리에 잠이 깨었다. 깨고 보면 등불만 외로이 제 살을 태우고 있는 밤. 등불을 켠 채 든 잠이니, 불면의 시간 알지 못할 허전함과 외로움에 뒤척이다 자신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음을 알 수 있다. 꿈인 듯 생시인 듯 어여쁘던 아내의 모습을 보았건만 문득 깨고 보면 그 모습은 어디서고 찾을 길이 없다. 안타까운 그의 꿈을 깨운 것은 야속할사 오동잎에 듣는 빗발이었다. 꿈을 깬 그는 오늘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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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내가 죽고 그대가 살았더라면 정시(情詩) 가운데서도 가장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은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뒤 남정네들이 부르는 노래이다. 평생 고생만 하다 떠난 아내이기에 가슴에 저미는 아픔이 유난스럽다. 이런 시를 망자를 애도하는 시라 하여 도망시(悼亡詩)라고도 하는데 몇 작품을 함께 보기로 하자. 嫁日衣裳半是新 시집 올 제 해온 옷이 반 너머 그대로니 開箱點檢益傷神 궤를 열고 살펴보다 더욱 맘을 상하네. 平生玩好俱資送 평생 좋아하던 것을 함께 담아 보내서 一任空山化作塵 빈 산에 다 맡기니 티끌되어 스러지라. 이계(李烓)의 「부인만(婦人挽)」이다. 아내가 훌쩍 세상을 떠버리고, 땅에 묻으려고 아내의 옷가지를 뒤적이다 목이 메이고 만 노래다. 아내의 옷상자를 꺼내어보았다. 시집 올 때 지어온 옷이 ..
8. 까치가 우는 아침② 搖蕩春風楊柳枝 봄바람 버들가지 휘날리우고 畵橋西畔夕陽時 그림 다리 서쪽에 해가 기울제, 飛花撩亂春如夢 나는 꽃 어지러운 꿈 같은 봄 날 惆悵芳洲人未歸 슬프다 방주에 님은 안 오네. 이정귀(李廷龜)의 「유지사(柳枝詞)」 다섯 수 가운데 한 수다. 봄바람이 버들가지를 간지르며 흩날리우는 정경을 뒤로하고 다리 저편으로 봄날의 하루해가 저물고 있다. 저무는 해의 잔광 속에서 봄날을 빛내던 꽃잎들도 분분히 진다. 어지러이 날리어 땅 위로 떨어지는 꽃잎, 아름답던 봄날은 진정 한바탕 꿈이었던가. 아지랑이 나른하던 봄이 다 지나도록 지난날 방주에서 아름답던 사랑을 속삭이던 그 님은 소식도 없고, 하루를 일 년같이 손꼽아 기다리던 꽃답던 마음도 날리우는 꽃잎 따라 땅 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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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까치가 우는 아침 有約來何晩 庭梅欲謝時 약속을 하시고선 왜 안 오시나 뜨락의 매화 꽃도 시드는 이때. 忽聞枝上鵲 虛畵鏡中眉 나무 위서 까치가 울기만 해도 부질없이 거울 보며 눈썹 그려요. 이옥봉(李玉峯)의 「규정(閨情)」이란 작품이다. 절망의 겨울을 다 보내고 봄이 다 가도록 금세 오마던 님은 돌아올 줄 모른다. 저 매화꽃이 지기 전에는 오셔야 할 텐데. 봄이 되면 온다던 님이 꽃마저 지면 영영 안 오실 것만 같아 여심은 공연한 조바심을 지우지 못한다. 꽃망울이 부프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꽃이 피면 님이 오마고 했으므로. 그런데 정작 꽃이 피자 이제는 님이 오시기도 전에 시들까봐 조마한 가슴을 어쩌지 못한다. 그러나 매화꽃이 질 때는 이제 막 봄이 시작될 무렵인데도 그녀의 마음은 벌써 봄이 다 가..
6. 진 꽃잎 볼 적마다② 春風忽駘蕩 明月又黃昏 바람 어느덧 화창해지고 밝은 달 빗기는 황혼 무렵에, 亦知終不至 猶自惜關門 끝끝내 안 오실 걸 잘 알면서도 오히려 문을 닫아걸지 못하네. 제목은 「대정인(待情人)」으로 실명씨의 작품이다. 봄바람이 화창하게 느껴지니 봄도 무르익었다. 봄날의 하루해는 또 그렇게 저물어 가고, 남의 속도 모르고 밝은 달이 두둥실 떠올랐다. 행여나 오늘은 오시려나 싶어 하루종일 사립문을 부여잡고 님 소식을 기다리던 여인은 결국 님을 맞지 못한 채 또 하루를 보내며 울적한 마음을 달래고 있다. 꽃 피는 봄이 오면 다시 돌아오마고 약속하며 떠났던 님, 그러나 그 봄이 다가도록 님은 오시질 않는다. 그녀는 봄이 오기도 전부터 행여 님이 오실까 싶어 날마다 기다림으로 하루하루를 채워 왔..
4. 진 꽃잎 볼 적마다 長興洞裏初分手 장흥동 어귀에서 헤어지고는 乘鶴橋邊暗斷魂 승학교 다리 께서 애를 끊누나. 芳草夕陽離別後 헤어진 뒤 저물 녘 방초 길에서 落花何處不思君 진 꽃잎 볼 적마다 우리 님 생각. 권붕(權鵬)의 여종 금가(琴哥)의 시이다. 제목은 「이별(離別)」이다. 장흥동은 서울 남쪽의 지명이다. 불과 조금 전에 장흥동 어귀에서 님과 헤어졌던 그녀는 근처 승학교를 건너며 벌써 그리움에 애가 끊어진다. 바로 눈앞에서 바라보고 있어도 그리운 것이 사랑이라고 했던가. 사랑에 겨운 봄날의 한 때를 보내고 난 꽃잎들이 분분히 지고 있다. 진 꽃잎으로 떠나가는 봄날을 보내며 방초길을 거니는 그녀의 마음은 노을빛이다. 노을빛에는 님을 향한 지울 수 없는 그리움의 영상이 가득하다. 그녀는 떨어진 꽃을 보..
3. 야릇한 마음② 白面書生騎駿馬 백면서생 도련님 준마 타시고 洛橋西畔踏靑來 낙교 서쪽 길로 답청놀이 나오셨네. 美人不耐懷春思 미인은 싱숭생숭 마음 야릇해 擧上墻頭一笑開 담장 너머 고개 들어 웃음 보내네. 성간(成侃)의 「염양사(艶陽詞)」이다. 청춘 남녀가 서로에게 이끌리는 정은 예와 지금이 다를 수 없다. 훤한 얼굴에 수려한 용모의 도련님이 준마를 타고 봄나들이를 나섰다. 낙교의 서쪽 물가라 했으니 번화한 도성 근처의 야외임을 알 수 있다. 답청이란 새로 돋은 푸른 풀 위를 걷는 봄날의 흥겨운 산보이다. 바깥 구경하는 법 없이 글방에서 공부만 하던 도련님도 일렁이는 봄날의 흥취를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말 위에 오똑하니 앉아 곁눈질도 하지 않고 도도하게 걸어가는 그 모습이 그만 길가 집 처녀의 시선..
2. 야릇한 마음 耶溪五月天氣新 5월이라 야계엔 날씨가 화창하고 耶溪女子足如霜 야계의 아가씨는 다리도 희고 곱네. 相將採蓮耶溪上 어울려 야계 위에서 연밥을 따니 翠微㔩葉輝艶陽 파아란 머리 장식 햇볕 받아 반짝이네. 採採蓮花不盈掬 연밥은 따고 따도 한 줌 안 되고 却妬沙上雙鴛鴦 백사장 쌍쌍 원앙 샘이 나누나. 鴛鴦雙飛不得語 원앙은 짝져 날고, 내 님은 못 만나 蕩槳歸來空斷腸 노 저어 돌아오며 속상해하네. 성간(成侃)의 「채련곡(採蓮曲)」이다. 5월 화창한 여름 날, 야계의 아름다운 아가씨가 희고 고운 다리를 드러내고 연밥을 캐고 있다. 그녀의 파란 머리 장식이 햇볕에 반짝이며 푸른 물 위에 비쳐지니, 그 선연한 아름다움은 비길 데가 없다. 캐고 캐도 한 줌이 되지 않는 연밥은 그녀의 마음이 영 딴 데 가 ..
24. 사랑이 어떻더냐 1. 담장가의 발자국 사랑은 아름답다. 슬퍼서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슬프다. 평소 한시를 고리타분하게만 생각하다가 막상 가슴 저미는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노래한 정시(情詩)를 대하고는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많다. 흔히 염정시(艶情詩) 또는 향렴체(香匳體)라고도 불리는 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정시(情詩)를 감상해보기로 하자. 凌波羅襪去翩翩 비단 버선 사뿐 사뿐 가더니만은一入重門便杳然 중문을 들어서곤 아득히 사라졌네.惟有多情殘雪在 다정할 사 그래도 잔설이 있어屐痕留印短墻邊 그녀의 발자욱이 담장 가에 찍혀 있네. 강세황(姜世晃)의 「노상소견(路上所見)」이란 작품이다. 길을 가다 앞서 가는 어여쁜 아가씨의 뒷모습에 넋을 놓고 만 연모의 노래다. 사뿐사뿐 걸어가는 아..
10. 사시(史詩), 역사로 쓴 시② 명나라 사람 정민정(程敏政)이 엮어 펴낸 『영사절구(咏史絶句)』는 우리나라에서도 출판되어 사대부의 애호를 받았다. 이 가운데 한 수를 더 읽어 보자. 이상은(李商隱)의 「가생(賈生)」이란 작품이다. 宣室求賢訪逐臣 선실(宣室)에서 어진이 찾다, 쫓은 신하 만나 보니 賈生才調更無倫 가생(賈生)의 재주는 겨룰 짝이 없었다네. 可憐夜半虛前席 슬프다 한밤중에 자리 당겨 앉았지만 不知蒼生問鬼神 백성의 일 돌보잖코 귀신의 일 물었구나. 가의(賈誼)는 한문제(漢文帝) 때의 신하였다. 20대의 젊은 나이로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나 대신의 미움을 사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로 좌천되었다. 뒷날 문제(文帝)가 가의(賈誼)를 다시 불렀다. 이때 왕은 축복을 받느라고 선실(宣室)에..
5. 사시(史詩), 역사로 쓴 시 祖舜宗堯自太平 요순(堯舜)을 본받으면 절로 태평하련만 秦皇何事苦蒼生 진시황(秦始皇)은 어찌하여 창생(蒼生)을 괴롭혔나. 不知禍起蕭墻內 재앙이 궁궐 안에서 일어날 줄 모르고 虛築防胡萬里城 헛되이 만리성(萬里城) 쌓아 오랑캐를 방비했네. 호증(胡曾)의 「장성(長城)」이란 작품이다. 아폴로 호가 달에 처음 착륙했을 때 감격한 우주비행사의 일성은 “만리장성이 보입니다.”였다. 장성을 쌓은 벽돌을 모두 해체하여 적도를 따라 벽을 쌓으면 허리 높이로 지구를 한 바퀴 돌 수 있다고 하니, 과연 그 규모에 기가 질릴 뿐이다. 역사는 이 일을 이렇게 기록한다. 진시황(秦始皇) 32년 병술(B.C 215)이라. 시황(始皇)이 북쪽 변방을 순행하는데, 노생(盧生)이 바다에 들어갔다가 돌아와..
8. 궁사(宮詞), 한숨으로 짠 역사② 허균(許筠)도 1610년(광해 2)에 벼슬에서 물러나 수표교에 있던 종의 집에서 요양하던 중, 종의 이모로 그 집에 얹혀 살던 76세의 은퇴한 궁인(宮人)을 만나 그녀에게서 궁중의 일을 이야기 듣고 마침내 왕건(王建)의 일을 본떠 「궁사(宮詞)」 100수를 남겼다. 그녀는 선조대왕(宣祖大王)과 의인왕후(懿仁王后)의 성덕과 궁내(宮內)의 절목(節目) 및 여러 고사들을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었고, 허균(許筠)은 이를 시로 남겨 마침내 일대(一代)의 시사(詩史)를 이루었다. 이 가운데 세 수를 감상해 보자. 驅儺聲徹寢門深 나례(驅儺) 소리 침문 깊이 울려 퍼지고 鶴舞鷄毬鬧禁林 학무(鶴舞)와 포구락(抛毬樂)에 대궐이 떠나가네. 五色處容齊拂袖 다섯 빛깔 처용(處容)님은 소매를 ..
4. 궁사(宮詞), 한숨으로 짠 역사 寂寂花時閉院門 쓸쓸히 꽃이 필 제 원문(院門)을 닫아 걸고 美人相拄立瓊軒 미인(美人)들 나란히 경헌(瓊軒)에 기대 섰네. 含情欲說宮中事 정 머금어 궁중 일을 말하고 싶지만은 鸚鵡前頭不敢言 앵무새 앞인지라 감히 말을 못하네. 주경여(朱慶餘)의 「궁사(宮詞)」이다. 꽃이 피는데도 ‘적적(寂寂)’타 하여 이미 그녀가 군왕(君王)의 총애를 잃은 지 오래되었음을 보였다. 난간에 서 있는 것이 여럿이니 총애를 잃은 궁녀는 혼자만이 아닌 것이다. 아니 그녀들은 여태 총애를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청춘의 일렁이는 마음은 꽃과 마주 하여 원망의 넋두리를 한 없이 풀어 놓고 싶었다. 그러나 앵무새 앞인지라 두려워 감히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절묘하다. 글자마다 ..
6. 변새(邊塞)의 풍광(風光)② 秋塞雪初下 將軍遠出師 가을 변방 첫눈이 하마 내리고 장군은 멀리로 군대를 출정한다. 分營長記火 放馬不收旗 병영을 나눔은 횃불로 표시하고 말은 풀어 깃발도 거두질 않네. 月冷邊帳濕 沙昏夜探遲 싸늘한 달빛에 장막은 축축한데 사막은 깜깜하여 밤 정찰 더뎌지네. 征人皆白首 誰見滅胡時 군사는 모두 흰 머리이니 오랑캐 멸할 날을 볼 사람 그 누구랴. 장적(張籍)의 「출새(出塞)」이다. 가을인데도 변방엔 벌써 첫눈이 내린다. 오랑캐와의 전투를 위해 장군은 한밤중에 출정을 서두른다. 야습에 나선 길이다. 소리를 죽이려고 말은 풀어두고 깊은 밤이라 깃발도 챙기질 않았다. 싸늘한 달빛에 천막엔 서리가 내려 축축하고, 깜깜한 사막 길은 지척을 분간하기 어렵다. 7ㆍ8구에서 느닷없이 군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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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변새(邊塞)의 풍광(風光) 막막한 모래벌판은 끝간 데 없고 아득히 사람도 보이질 않는다. 황하의 물은 감돌아 흐르고 뭇 산들은 어지러이 솟아 있다. 어둑어둑 참담한데 바람은 석양에 구슬피 불어온다. 쑥대는 꺾어지고 풀은 말라 오싹하기 마치 서리 아침 같구나. 새도 날뿐 내려오지 아니하고 짐승도 내달리느라 무리를 잃는다. 정장(亭長)은 내게 말한다. “이곳은 옛 싸움터입지요. 일찍이 삼군(三軍)이 전멸 당했답니다. 이따금씩 귀곡성(鬼哭聲)이 날이 흐리면 들려옵니다.” 슬프도다! 진(秦)나라 때였던가? 한(漢)나라 때였던가? 아니면 근대(近代)였더란 말인가? 浩浩乎平沙無垠, 敻不見人. 河水縈帶, 群山糾紛. 黯兮慘悴, 風悲日曛, 蓬斷草枯, 凜若霜晨. 鳥飛不下, 獸挺亡群. 亭長告余曰: “此古戰場也, 嘗覆三..
4. 시로 쓴 역사, 시사(詩史)② 흔히 조선후기 삼정(三政)의 문란을 말할 때 백골징포(白骨徵布)니 황구첨정(黃口簽丁)을 말한다. 이러한 폐단이 낳은 비극을 노래하고 있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애절양(哀絶陽)」을 감상해 보자. 蘆田少婦哭聲長 갈밭 마을 젊은 아낙 곡소리 구슬프다 哭向縣門號穹蒼 현문(縣門) 향해 울부짖다 하늘에 호소하네. 夫征不復尙可有 구실 면제 안해줌은 있을 수 있다지만 自古未聞男絶陽 남근(男根)을 잘랐단 말 듣도 보도 못하였소. 舅喪已縞兒未澡 시아버진 세상 뜨고 아이는 갓난앤데 三代名簽在軍保 삼대의 이름이 군적에 실렸구나. 薄言往愬虎守閽 억울함 하소차니 문지기는 범과 같고 里正咆哮牛去皁 이정(里正)은 고래고래 소마저 끌고 갔네. 磨刀入房血滿席 칼 갈아 뛰어들자 피가 온통 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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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로 쓴 역사, 시사(詩史) 시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시의 거울 속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원망(願望)과 애환(哀歡)이 그대로 떠오른다. 한 편의 시는 방대한 사료로 재구성한 어떤 역사보다도 더 생생하다. 사람들은 이를 일러 시사(詩史)라 한다. 맹계(孟棨)가 『본사시(本事詩)』에서 두보(杜甫)의 시를 논하면서, “두보가 안록산의 난리를 만나 농촉(隴蜀) 지방을 떠돌며 시에다 이때 일을 모두 진술하였다. 본 바를 미루어 숨겨진 것까지 이르러 거의 남김없이 서술하였으니 당시에 이를 일러 시사(詩史)라 하였다”고 언급한 것이 시사(詩史)란 말의 첫 용례이다. 간난(艱難)의 피난 시절 두보는 기주(夔州) 지방까지 떠돌며 많은 시를 남겼는데, 뒷사람들은 그곳에 시사당(詩史堂)을 세워 두보의 화상을 걸어..
2. 할아버지와 손자② 四月十五日 平明家家哭 4월이라 보름날 이른 아침 집집마다 곡하는 소리. 天地變簫瑟 凄風振林木 천지는 변하여 쓸쓸해지고 싸늘한 바람은 숲을 흔든다. 驚怪問老吏 哭聲何慘怛 깜짝 놀라 늙은 아전에게 물었네. “곡소리 어찌 이리 구슬프더뇨?” 壬辰海賊至 是日城陷沒 “임진년에 바다 도적 몰려와서는 바로 오늘 성이 함락되었답니다. 惟時宋使君 堅壁守忠節 이때 다만 송사또께서 성벽을 굳게 하여 충절 지켰죠. 闔境驅入城 同時化爲血 백성들 성 안으로 몰려 들어와 한꺼번에 피바다를 이루었지요. 投身積屍底 千百遺一二 쌓인 시체 밑에다 몸을 던져서 천백 명에 한 둘만이 살아남았죠. 所以逢是日 設奠哭其死 그래서 해마다 이날만 되면 상을 차려 죽은 이를 곡한답니다. 父或哭其子 子或哭其父 아비가 제 자식을 곡..
23. 시(詩)와 역사(歷史): 시사(詩史)와 사시(史詩) 1. 할아버지와 손자 白犬前行黃犬隨 흰둥이 앞서 가고 누렁이 따라가는野田草際塚纍纍 들밭 풀가에는 무덤들 늘어섰네.老翁祭罷田間道 제사 마친 늙은이는 두둑 길에서日暮醉歸扶小兒 손주의 부축 받고 취하여 돌아오네. 이달(李達)의 「제총요(祭塚謠)」란 작품이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광경이다. 흰둥이가 컹컹 짖으며 저만치 앞서 가자 누렁이도 뒤질세라 뒤쫓아 간다. 잠시 두 놈의 장난질에 시선이 집중되는 동안 카메라는 그 뒤에 즐비하게 늘어선 무덤으로 초점을 당긴다. 다시 무덤들이 원경으로 처리되면서 개 짖는 소리 사이로 두 사람이 나타난다. 해질 무렵의 양광(陽光)이 빗기는 가운데 술에 까부룩 취한 할아버지와 그 옆에서 할아버지를 부축하고 있는 손주..
8. 이카로스의 날개② 夜夢靑童引我去 밤 꿈에 푸른 동자 나를 끌고 가더니만 忽到雲霞最深處 어느새 구름 안개 자옥한 곳 이르렀지. 仙樂風飄自帝所 신선 음악 궁궐에서 바람결에 들려오고 玉樓十二高入天 백옥루 열두 기둥 하늘까지 솟았네. 五色靄靄煙非煙 오색구름 뭉게뭉게 안개인 듯 아닌 듯 攝身飛上身飄然 몸 떨쳐 날아올라 몸이 나부끼는 양. 金支翠蓋相後先 황금 자기 비춰 일산 앞뒤로 벌여 있고 左右環佩羅群仙 좌우론 패옥 두른 신선들 늘어섰네. 余乃長跪玉皇前 옥황상제 앞에서 내 길게 무릎 꿇고 焚香敬受長生編 향 사르며 공경스레 장생편을 받으니 一讀可度三千年 한 번만 읽어도 삼천 년을 산다 하네. 簷間語燕聲呢喃 처마 사이 제비는 지지배배 재잘대고 破窓透雨寒𩁺𩁺 부서진 창 비 새어 찬 기운 스멀스멀. 招魂不復煩巫咸 ..
4. 이카로스의 날개 유선시에는 선계에서 노니는 도중 인간 세상을 굽어보는 하계조감(下界鳥瞰)의 묘사가 자주 나온다. 김시습(金時習)의 「능허사(凌虛詞)」 중 한 수다. 朝餐沆瀣暮流霞 아침엔 항해(沆瀣) 먹고 저녁엔 유하(流霞)로세 須信凌處有作家 허공 걷는 사람 있음 모름지기 믿을레라. 下視塊蘇嗟渺渺 굽어보니 땅덩어리 너무도 아득한데 大鵬飛少蠛蠛多 대붕은 잘 안 뵈고 하루살이 우글댄다. 人間無地不風波 인간 세상 어디에도 풍파 없는 곳이 없어 八翼凌風是大家 날개 달고 바람 타니 큰 집이 여기 있네. 下界蜉蝣寰宇窄 하계엔 하루살이 온 세상에 가득한데 塵埃萬丈贐君何 만 길이나 쌓인 먼지 그댈 속임 어찌하리. 이렇듯 유선사에서 하계는 하루살이만 득실대고, 풍파 잘 날이 없으며, 만 길이나 없으며, 만 길이나 쌓..
6. 구운몽, 적선의 노래② 華表柱鶴不來 화표주 위로 학은 오지 않고 遼山日暮歸雲靑 요동 땅 저문 날엔 구름만 푸르도다 當時學仙倣生死 그때에 선도 배워 생사 하찮게 여겼어도 故國歸來有愴情 옛 땅이라 돌아와선 슬픈 정만 있었다오 而吾未了齊物義 내사 여태 제물의 뜻도 깨치지 못했건만 到此轉覺悲浮生 예 와서 외려 뜬 인생 슬픔 깨닫누나 亦有多小曾知情 또한 정을 품었던 이 많이도 있으리라 蓬萊元自蓮渤海 봉래산은 원래부터 발해에 있었거니 安得跨鶴尋仙扄 어이해야 학을 타고 선계를 찾아볼까 松江居士謫仙人 송강 거사께서는 귀양 온 신선이라 往年按節遼陽城 지난해에 요양 땅에 사신으로 왔다네 題詩弔古多感慨 옛 조문해 지은 시는 감개함 많았어도 旋駕飇輪朝帝庭 수레를 돌이키어 황제께 조회했지 人間擾擾竟何有 인간 세상 시끄러워..
3. 구운몽, 적선의 노래 「구운몽(九雲夢)」에서 ‘구운(九雲)’은 무엇을 상징할까? 혹자는 양소유(楊少遊)와 팔선녀(八仙女)의 사랑 이야기이니, 결국 ‘아홉 사람의 구름 같은 꿈 이야기’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제임스 게일(James S Gale) 박사가 1922년에 이 작품을 영어로 번역하면서 제목을 ‘The cloud dream of nine’이라 한 것은 이러한 이해의 좋은 증거다. 초기 도쿄 경전의 하나인 『운급칠첨(雲笈七籤)』에 천상 선계에 대한 묘사가 보인다. 이 가운데 “태하(太霞) 가운데 성대한 집이 있는데 백기(白氣)를 맺어 서까래를 얹었고, 구운(九雲)을 한데 모아 기둥을 세웠다.”는 구절이 있다. 이때 ‘구운’은 아홉 가지 영롱한 빛깔의 구름을 뜻한다. 신선이 거처하는 장소의 의미로도..
4. 닫힌 세계 속의 열린 꿈③ 이수광(李晬光)은 「기몽(記夢)」이란 작품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紫宮半夜群仙會 자궁(紫宮)의 한밤중 신선들 모여들어 群仙色喜迎我拜 기쁜 낯빛 신선들 날 맞아 절 올리네 坐我堂中七寶床 방 안의 칠보상(七寶床)에 나를 앉게 하나니 怳然身入靑蓮界 아득히 이 몸이 청련계(靑蓮界)에 들었구나 餉我一杯船若湯 반야탕을 한 잔 따라 나를 마시게 하며 云是玉帝之瓊漿 옥제께서 드시는 경장(瓊漿)이라 일러주네 啜罷精神頓淸爽 마시자 정신이 맑고 상쾌해지며 洗盡十年塵土腸 진토에 찌든 속을 깨끗이 씻어준다 庭前有爐烟細起 뜰 앞의 화로에서 가는 연기 일더니만 令我了悟三生事 삼생의 온갖 일들 깨치게 하는구나 瑤空笙鶴覺來失 요대 허공 생(笙) 불던 학, 깨어보니 간 곳 없고 萬里烟霞造夢裏 만 리 가득 ..
3. 닫힌 세계 속의 열린 꿈② 허난설헌 또한 선계인 광상산(廣桑山)에서 노니는 꿈을 깬 뒤 그곳 광경을 묘사했다. 을유년에 내가 상을 만나 외삼촌댁에 묵고 있을 때 일이다. 밤중 꿈에 바다 위의 산으로 둥실 날아올랐다. 산은 온통 구슬과 옥이었다. 뭇 봉우리가 첩첩이 쌓였고, 흰 옷과 푸른 구슬이 밝게 빛나 현란하여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무지개 구름이 그 위를 에워쌌는데 오색 빛깔이 곱고도 선명했다. 옥 샘물 몇 줄기가 벼랑 사이에서 쏟아지고, 콸콸 쏟아져 내리는 소리는 옥을 굴리는 것 같았다. 乙酉春, 余丁憂, 寓居于外舅家. 夜夢登海上山. 山皆瑤琳珉玉. 衆峯俱疊, 白璧靑熒明滅, 眩不可定視. 霱雲籠其上, 五彩姸鮮. 瓊泉數派, 瀉於崖石間, 激激作環玦聲. 스물 남짓 두 여인은 얼굴빛이 모두 빼어나게..
2. 닫힌 세계 속의 열린 꿈 현실의 억압은 개체의 삶을 질식시킨다. 인간은 닫힌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반란을 꿈꾼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 어떤 갈등도 없으며 모든 것이 조화롭고 충만한 세계는 어디에 있는가? 인생은 그렇듯이 슬프고, 인간은 그렇듯이 나약한 존재인가? 삶의 짙은 회의 속에서 시인들은 무의식의 저편에 저장된 언젠가 떠나온 곳, 잃어버린 낙원의 기억들을 떠올린다. 그것은 모든 것이 완벽한 꿈의 세계이다. 유선시(遊仙詩)는 고대인이 꿈꾼 상상의 세계를 노래한다. 그것은 아득한 은하수 저편 아홉 층의 하늘을 지나 있는 옥황상제가 거처하는 황금 궁전이거나 동해 너머 출렁이는 파도 속에서 거대한 여섯 마리 거북이가 등에 업고 오르락내리락한다는 상상의 섬 삼신산으로 나타난다. 아니면 서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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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실낙원의 비가(悲歌) 1. 풀잎 끝에 맺힌 이슬 인간에 낙원은 있는가? 낙원은 없다. 따지고 보면 인생은 절망과 비탄의 연속일 뿐이다. 믿었던 것들로부터 배반당하고, 사랑하던 사람마저 하나 둘 떠나보낸 후 빈 들녘을 혼자 헤매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뒤돌아보면 뜻대로 된 일은 하나도 없다. 한나라 때 악부시 「해로(薤露)」는 풀잎 끝에 맺힌 이슬만도 못한 인생을 이렇게 노래한다. 薤上露풀잎 위에 이슬何易晞너무 쉽게 마르네露晞明朝更復落내일아침 이슬은 다시 내리겠지만人死一去何時歸한 번 떠난 사람은 돌아올 줄 모르누나 고대 중국인들이 상여 메고 나갈 때 덧없는 인생을 슬퍼하며 불렀다는 노래다. 중국 위진 시대의 「고시십구수(古詩十九首)」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들과 마주하게 된다. 人生奇一世 奄..
12. 가을 구름이 내 정수리를 어루만지네③ 다시 한 대목을 보자. 금표(禁篻) 스님과 더불어 『법화경(法華經)』의 화택(火宅)의 비유를 강론하였다. 스님은 오십여 세로 송경(誦經)은 잘 하지만 사람과 마주하는 것은 꺼리는 듯했다. 그 형인 혜신(慧信) 또한 중이 되어 극락전(極樂殿)에 거처하는데 불경의 조예가 금표(禁篻)보다 낫다 한다. 내가 물어 보았다. “중 노릇이 즐거운가?” “제 한 몸을 위해서는 편합지요.” “서울은 가보았소?” “한 번 가보았지요. 티끌만 자옥히 날려 도저히 못살 곳 같습디다.” 내가 또 물었다. “대사! 환속할 생각은 없소?” “열둘에 중이 되어 혼자 빈 산에 산 것이 40년 올씨다. 예전에는 수모를 받으면 분하기도 하고, 자신을 돌아보면 가엽기도 했었지요. 지금은 칠정(七..
11. 가을 구름이 내 정수리를 어루만지네② 옛 사람의 문집을 뒤적이다 보면 뜻밖에 많은 산수유기(山水遊記)와 만나게 된다. 유기(遊記)는 산수(山水)를 향한 고인(古人)의 진지한 열정의 산물이니, 여기에는 자연 앞에 선 외경이 있고, 인간의 왜소를 돌아보는 겸허가 있다. 오늘날 이들 유기(遊記)는 고작 수필의 대접 밖에 못 받아 설 자리를 잃고 한문학 연구자들에게도조차 외면당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구도자의 심경이 되어 산수간을 노닐던 고인들의 그 헌활(軒豁)한 정신의 경계도 다시 만날 길이 없으니 안타깝다. 고목(古木)이 절벽에 기댄 채 말랐는데, 우뚝함은 귀신의 몸뚱이 같고, 서리어 움츠림은 잿빛 같았고, 껍질 벗음은 마치 늙은 뱀이 벗어놓은 허물 같았으며, 대머리가 된 것은 병든 올빼미가 걸터앉아..
5. 가을 구름이 내 정수리를 어루만지네 유종원(柳宗元)의 유명한 「영주팔기(永州八記)」는 그가 좌천되어 영주(永州) 땅에 쫓겨 와 있던 시절, 울적한 심회도 달랠 겸, 공무의 여가에 틈만 나면 주변의 산수간을 소요하며 노닐던 일을 기록한 글이다. 다음은 그 가운데 「시득서산연유기(始得西山宴遊記)」의 일절이다. 금년 9월 28일에 법화사(法華寺) 서정(西亭)에 앉았다가 서산(西山)을 바라보고 비로소 기이하게 여겨 마침내 하인을 시켜 상강(湘江)을 건너 염계(染溪)를 따라 잡초 덤불을 찍고 무성한 풀을 살라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서야 그만 두게 하고, 더위잡고 올라가 걸터앉아서 노닐었다. 무릇 여러 고을의 땅이 모두 깔고 앉은 자리 아래로 펼쳐져 있어 그 높고 낮은 형세의 솟아오르고 움푹한 것이 개미둑 같고 ..
9. 들 늙은이의 말② 이와 비슷하게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은 산에 사는 즐거움을 노래한 「산거집구(山居集句)」 연작을 무려 100수나 남겼다. 집구(集句)란 이 사람 저 사람의 시에서 한 구절 씩 따와서 새로 조립하되 운자도 맞아야 하니, 순수한 창작은 아니라도 그 노고는 창작 이상의 품이 든다. 매월당 자신도 다음과 같이 쓰게 된 이유를 이야기 했다. 성화(成化) 무자년(戊子年, 세조 13, 1468) 겨울 금오산에 있을 때, 눈 오는 밤 화로를 안고 앉았자니, 고요하여 사람의 발소리는 없었지만 바람과 대가 우수수 소리를 내어 나의 흥취를 일으켰다. 인하여 산동(山童)과 함께 재를 헤쳐가며 글자를 써서 고인(古人)의 시구를 집구하니 산거(山居)의 취미에 합당함이 있었다. 成化戊子冬, 居金鼇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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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들 늙은이의 말 봄날이 무르익어 숲으로 들어가면 꼬불꼬불 숲속으로 산길이 통해 있고, 소나무 대나무 서로를 비추이고 들꽃은 향기 가득 산새들은 지저귄다. 이러할 때 거문고 안고 바위 위에 올라앉아 두세 곡 연주하면 이 몸은 아득히 동중선(洞中仙) 화중인(畵中人)일세. 春序將闌, 步入林巒, 曲逕通幽, 松竹交映, 野花生香, 山禽哢舌. 時抱焦桐, 坐石上, 撫二三雅調, 幻身卽是洞中仙畫中人也. 구름은 희고 산은 푸르다. 시내는 흘러가고 돌은 서 있다. 꽃은 나를 맞이하고 새는 노래 부른다. 골짜기는 메아리로 대답하고 나무꾼은 노래한다. 사방이 온통 적막해지니 내 마음 절로 한가해지네. 雲白山靑, 川行石立. 花迎鳥歌, 谷答樵謳. 萬境俱寂, 人心自閑. 꽃이 너무 화려한 것은 향기가 좋지 않고, 꽃에 향기 짙은 ..
7. 요산요수(樂山樂水)의 변(辨)③ 萬物變遷無定態 만물이 변천함은 일정함이 없나니 一身閒適自隨時 한가로이 자적하며 때를 따라 사노라. 年來漸省經營力 근년 들어 사는 일은 돌보질 않고 長對靑山不賦詩 청산을 마주 보며 시도 짓질 않는다. 이언적(李彦迪)의 「무위(無爲)」란 작품이다. 소동파(蘇東坡)는 「적벽부(赤壁賦)」에서 “대개 장차 그 변하는 것으로부터 본다면 천지는 일찍이 한 순간도 그대로 있지 못하고, 그 변치 않는 것으로부터 본다면 물(物)과 아(我)가 모두 다함이 없다[蓋將自其變者而觀之, 則天地曾不能以一瞬, 自其不變者而觀之, 則物與我皆無盡也].”고 했던가. 젊은 날 성취를 향한 집착과 작위하고 경영하던 마음을 훌훌 던져 버리고 자연의 변화에 몸을 맡겨 다만 일신(一身)의 한적(閒適)을 추구할 뿐..
6. 요산요수(樂山樂水)의 변(辨)② 滿庭月色無烟燭 뜨락 가득 달빛은 연기 없는 등불 入坐山光不速賓 둘러앉은 산빛은 뜻밖의 손님. 更有松弦彈譜外 솔바람 악보 없는 가락 울리니 只堪珍重未傳人 소중히 지닐 뿐 전할 수 없네. 고려 때 최충(崔沖)의 「절구(絶句)」이다. 달빛을 등불 삼아 자리를 벌리자, 청하지도 않은 손님 청산이 슬그머니 차지하고 들어와 앉는다. 손님이 왔으니 풍악이 없을 쏘냐. 솔바람은 악보로 옮길 수 없는 미묘한 곡조를 연주한다. 맑고 상쾌한 경지다. 이 거나하고 해맑은 운치를 어찌 말로 다하랴. ‘소이부답(笑而不答)’할 뿐이다. 茅齋連竹逕 秋日艶晴暉 띠집은 대숲 길로 이어져 있고 가을 날 햇살은 곱기도 하다. 果熟擎枝重 瓜寒著蔓稀 열매가 익어서 축 쳐진 가지 참외도 달리잖은 끝물의 덩쿨..
3. 요산요수(樂山樂水)의 변(辨) 공자(孔子)가 『논어(論語)』 「옹야(雍也)」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움직이고, 어진 사람은 고요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즐거워하고,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고 말한 이래로, 산수간(山水間)의 노님은 자못 철학적 의미를 담게 되었다. 주자(朱子)는 공자(孔子)의 말에 대해 “지혜로운 사람은 사리에 통달하여 두루 통하고 막힘이 없는 것이 물과 같은 점이 있으므로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의리에 편안하여 중후하여 옮기지 않는 것이 산과 같은 점이 있는 까닭에 산을 좋아한다는 것[知者達於事理而周流無滯, 有似於水, 故樂水; 仁者安於義理而厚重不遷, 有似於山, 故..
4. 청산에 살으리랏다② 다시 김부식(金富軾)은 「제송도감로사차혜원운(題松都甘露寺次惠遠韻)」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俗客不到處 登臨意思淸 속객의 발길 닿지 않는 곳 올라서니 생각이 해맑아 지네. 山形秋更好 江色夜猶明 산 모습 가을이라 더욱 고웁고 강 물빛 밤인데도 외려 밝아라. 白鳥高飛盡 孤帆獨去輕 해오라비 높이 날아 사라져가고 외론 돛만 홀로 가벼이 떠가네. 自慙蝸角上 半世覓功名 부끄럽다. 달팽이 뿔 위에서 공명(功名)을 찾아다닌 나의 반평생. 속객(俗客)의 자취가 끊어진 곳을 속객(俗客)이 홀로 찾았다. 산마루에 올라 툭 터진 시계(視界)에 서니, 함께 짊어지고 온 속된 생각도 말끔히 씻어진다. 3ㆍ4구의 자안(字眼)은 ‘갱(更)’과 ‘유(猶)’에 있다. 낙엽이 지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나무, 여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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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청산에 살으리랏다 衆鳥高飛盡 孤雲獨去閑 뭇 새들 높이 날아 사라져 가고 외론 구름 홀로 한가로이 떠간다. 相看兩不厭 只有敬亭山 서로 보아 둘 다 싫증나지 않는 것은 경정산(敬亭山) 너 뿐이로구나. 이백(李白)의 「독좌경정산(獨坐敬亭山)」이란 작품이다. 속세의 시름을 지닌 채 경정산을 찾은 나그네는 산정(山頂)에서 물끄러미 산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그때 저 골짜기 아래로부터 새떼들은 산 위로 비상한다. 새떼의 돌연한 비상을 쫓다가 마침내 아득히 사라진 그 자리에서, 시인은 문득 ‘홀로’ 유유히 떠가는 구름을 발견한다. 새들은 그다지도 바쁘게 어디로 사라져 간 것일까. 왁자지껄 무리를 지어 들끓다가 사라진 새떼는 사실 시인이 물 아래에서 지고 올라온 욕망과 번뇌의 찌꺼기는 아니었을까. 산 위에 올라선..
2. 가어옹(假漁翁)과 뻐꾸기 은사② 말로만 되뇌는 ‘나 돌아갈래’ 송대(宋代) 곽희(郭熙)는 유명한 『임천고치(林泉高致)』 가운데 「산수훈(山水訓)」에서 이렇게 말한다. 군자가 산수(山水)를 사랑하는 까닭은 그 뜻이 어디에 있는가? 구원(丘園)에서 바탕을 기름은 항상 머무는 바이고, 천석(泉石)에서 휘파람 불며 노님은 늘 즐기는 바이며, 고기 잡고 나무하며 숨어 지냄은 늘 즐거워하는 바이고 원숭이나 학이 울고 나는 것은 항상 친하게 지내는 바이다. 티끌세상의 시끄러움과 굴레에 속박됨은 인정(人情)이 항상 싫어하는 바이나, 연하(烟霞) 자옥한 가운데 사는 신선은 인정(人情)이 늘 추구하면서도 볼 수는 없는 바이다. 그러나 사람이 저 혼자 즐겁자고 사회적 책임을 다 버려두고 이세절속(離世絶俗)하는 삶을 추..
21. 산수(山水)의 미학(美學), 산수시(山水詩) 1. 가어옹(假漁翁)과 뻐꾸기 은사 天翁尙不貰漁翁천옹(天翁)은 어옹(漁翁)을 받지 않으려는지故遣江湖少順風 일부러 강호에 순풍 적게 보내네.人世險巇君莫笑 인간 세상 험하다 그대여 웃지 마오自家還在急流中 그대 외려 급류의 한가운데 있는 것을. 고려 김극기(金克己)의 「어옹(漁翁)」이다. 어옹(漁翁)은 순풍을 기대하고 강호에 들어왔다. 그런데 뜻밖에 강호에서조차 순풍은 좀체 불 생각을 않는다. 순풍을 잔뜩 기대하고 강호를 찾은 어옹(漁翁)은 강호행(江湖行) 이전 순풍은커녕 역풍에 온갖 고초와 신산(辛酸)을 겪었음에 틀림없다. 현실의 거센 풍파를 피해 강호의 순풍 속에 안기려는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강호에서 조차 순풍은 잘 불어주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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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달마가 오지 않았는데도 도연명은 선을 아네 이 글은 두 가지를 말했다. 시와 선이 만나는 지점을 살폈고, 선시의 세계를 조금 맛보았다. 이 두 가지는 조금 층위가 다른 이야기다. 하지만 선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굳이 다를 것도 없다. 시의 생각과 선의 사고는 무던히도 닮았다. 시인과 선객은 자주 가깝게 왕래한다. 서로 말귀가 통하고 배짱이 맞기 때문이다. 선방에 가짜 선객이 많듯이 시단에 가짜 시인이 많은 것도 같다. 대충 비슷하게 흉내 내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점에서도 둘은 비슷하다. 하지만 진짜 앞에서는 둘 다 꼼짝도 못한다. 숨도 쉴 수 없다. 시와 선이 하나로 만나 선시가 된다. 절묘한 결합인 셈이다. 선시의 언어는 직관의 언어다. 의미를 해체하고, 사물로 말한다. 풍경으로 보여주고 설명하려 ..
10. 동문서답의 선시들⑤ 다음은 고려 때 최유청(崔惟淸)의 「잡흥(雜興)」이다. 春草忽已綠 滿園蝴蝶飛 봄풀이 어느덧 저리 푸르러 동산 가득 나비가 날아다닌다. 東風欺人垂 吹起床上衣 봄바람 잠든 나를 속여 깨우려 침상 위 옷깃을 불어 흔드네. 覺來寂無事 林外射落暉 깨고 보면 고요히 아무 일 없고 숲 밖엔 저녁 해만 비치고 있다. 依檻欲歎息 靜然已忘機 난간에 기대어 탄식하려다 고요히 어느새 기심(機心) 잊었네. 봄볕이 따스해 혼곤한 낮잠에 빠졌다. 자는데 누가 자꾸 일어나라고 옷깃을 흔들어 깨운다. 무슨 일인가 싶어 부스스 일어난다. 일은 무슨 일, 봄바람의 공연한 장난이다. 밖을 내다보니 그게 아니다. 숲밖에는 저물녘 햇살이 빗겨있고, 봄 동산엔 풀빛이 벌써 짙었다. 꽃 찾는 나비는 햇살을 등에 안고 훨..
9. 동문서답의 선시들④ 이렇듯 선시의 세계는 칼끝 같은 깨달음을 노래한다. 언어가 무력화되고 의미가 힘을 잃는다. 다시 정진규의 「모기 친구」를 읽어 본다. 진종일 뛰어 놀고서도 씻지 않으려 하기에 얼굴엔 온통 암괭이를 그리고서도 말을 듣지 않기에 지난 밤 모기에 물린 자리가 발갛게 부어 올랐기에 모기는 깨끗한 것보다는 더러운 걸 더 맛있어 한다고 겁을 주었더니, 그럼 모기에겐 깨끗한 것이 더러운 거고 더러운 것이 깨끗한 거네, 모기가 목욕을 해주었잖아! 더러운 걸 먹어버렸잖아! 난 모기 친구가 될 거야 그러곤 여섯 살짜리 내 상욱이는 깔깔깔 달아나버렸다. 깨끗하고 더럽다는 말의 의미가 한 순간에 증발해버리는 상쾌함이 있다. 내게 깨끗한 것이 남에겐 더럽고, 내가 더러워 못 견딜 것도 남에겐 아무렇지 ..
8. 동문서답의 선시들③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선시를 몇 수 보자. 김시습(金時習)의 「증준상인(贈峻上人)」 20수 연작 중 제 8이다. 終日芒鞋信脚行 종일 짚신 신고 발길 따라 가노라니 一山行盡一山靑 한 산을 가고 나면 또 한 산이 푸르도다. 心非有想奚形役 마음에 생각 없으니 어찌 형상 부리며 道本無名豈假成 도는 본시 무명(無名)한데 어찌 거짓 이룰까. 宿露未晞山鳥語 간 밤 이슬 마르잖아 산새는 지저귀고 春風不盡野花明 봄 바람 그치잖아 들꽃은 피었구나. 短笻歸去千峯靜 지팡이로 돌아갈 때 천봉이 고요터니 翠壁亂烟生晩晴 푸른 절벽 짙은 안개 저녁 햇살 비쳐드네. “저 들판 끝난 곳이 그 바로 청산인데, 행인은 다시금 청산 밖에 있구나[平蕪盡處是靑山, 行人更在靑山外].”의 탄식을 떠올리게 하는 구절로 시상..
7. 동문서답의 선시들② 의미가 도처에서 단절된 것은 현대시 속에도 있다. 이승훈의 「너」를 읽는다. 캄캄한 밤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너를 만났을 때도 캄캄했다 캄캄한 밤에 너를 만났고 캄캄한 밤 허공에 글을 쓰며 살았다 오늘도 캄캄한 대낮 마당에 글을 쓰며 산다 아마 돌들이 읽으리라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캄캄한 밤에 너를 만나, 아무 것도 안 보이는 허공에 글을 써왔다. 오늘은 캄캄한 대낮 마당에 글을 쓴다. 내 글은 돌들이 읽을 것이다. 역시 요령부득이다. 시인은 ‘그리고’라고 말해야 할 때 ‘그러나’를 말하고, ‘오늘은’ 하지 않고 ‘오늘도’라고 말한다. ‘캄캄한 밤 허공’은 아무렇지도 않게 ‘캄캄한 대낮 마당’으로 미끌어진다. 아무 것도 안 보이는 허공에 쓴 글은 쓰나마나 한 글이다. ..
3. 동문서답의 선시들 이제 선시에 대해 살펴보겠다. 선은 분별지를 마음에서 걷어내는 것이다. 명상(瞑想) 즉 생각을 잠재우고, 묵상(黙想) 곧 생각을 침묵시키는 것이다. 그때 남는 것은 마음뿐이다. 선은 마음을 텅 비워 본래의 나와 만나는 순간이다. 명상이란 뜻을 지닌 범어의 댜나(Dhyāna)를 선(禪)으로 옮겼다. 정려(靜慮) 또는 사유수(思惟修)로도 옮긴다. 다시 말해 선은 생각을 걷어내는 마음공부다. ‘근심과 기쁨을 마음에서 걷어내는 것이 바로 선[喜憂心忘便是禪]’이다. 달마는 제자와의 문답에서 선을 이렇게 설명한다. 선(禪)은 어지러운 마음이 일어나지 않음을 말한다. 생각도 없고 움직임도 없는 것이 선정(禪定)이다. 마음을 단정히 하고 생각을 바로 하여, 생(生)도 없고 멸(滅)도 없으며 감도..
5. 학시와 학선의 원리④ 다시 이어지는 셋째 수이다. 學詩渾似學參禪 시 배움은 마치도 참선 배움 같거니 自在圓成有幾聯 자재롭고 원성(圓成)함 몇 연이나 있었던고? 春草池塘一句子 사령운(謝靈運)의 지당춘초(池塘春草) 한 구절이 나오자 驚天動地至今傳 천지가 놀라 떨며 지금껏 전하누나. 수많은 학구(學究)들이 참선으로 득도의 길을 찾아 나서지만, 활연대오(豁然大悟)의 소식을 통통쾌쾌(痛痛快快)하게 깨치는 자는 몇 되지 않는다. 대부분 깨친 척하는 가짜들과 깨달음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엉터리들이 뜻 모를 공안(公案) 몇 개 들고 앉아 대중을 우롱하고 있을 뿐이다. 진짜 앞에 서면 가짜는 오금도 펴지 못한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자재원성(自在圓成)이다. 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느 것 하..
4. 학시와 학선의 원리③ 선의 어떤 경지를 설명하기 위해 시를 끌어들이는 방식은 이후로 여러 문헌에 자주 등장했다. 고려 때 선승 경한(景閑)도 그의 어록에서 시와 선이 만나는 지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만약 어떤 중이 내게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아득히 강남 땅 2,3월을 생각하니, 자고새 우는 곳에 온갖 꽃 향기롭네[遙憶江南三二月, 鷓鴣啼處百花香].”라고 대답하겠다. 또 어떤 중이 내게 조사(祖師)께서 동쪽으로 온 뜻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더딘 해에 강과 산은 곱기도 한데, 봄바람에 꽃과 풀은 향기롭구나[遲日江山麗, 春風花草香].”라고 대답하거나, “산꽃이 활짝 피니 비단 같은데, 시냇물은 쪽빛도곤 더욱 푸르다[山花開似錦, 澗水碧於藍].”라고 하겠다. 이 같은 싯귀..
3. 학시와 학선의 원리② 선과 시는 왜 넘나드는가? 시와 선을 하나로 보는 시선일여(詩禪一如)의 사고는 선학(禪學)이 일어난 송나라 이후에 활발해지지만, 일찍이 당나라 두보(杜甫)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시 지을 때 용사(用事)는 선가(禪家)의 말과 같아야 한다. 물속에 소금이 녹은 것은 물을 마셔보아야 짠맛을 안다. 『서청시화(西淸詩話)』에 나온다. 물속에 녹은 소금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마셔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눈에는 안 보이지만 분명히 있다. 꼭 꼬집어 말하지는 않았어도 너무도 또렷하다. 시와 선은 이 지점에서 만난다. 당나라 때 시승 제기(齊己)도 「기정곡낭중(寄鄭谷郞中)」란 작품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詩心何以傳 所證自同禪 시심(詩心)을 무엇으로 전할 수 있나 증명함이 절로 ..
2. 학시와 학선의 원리 시가 선과 만나 선시(禪詩)가 된다. 시가 선의 경지에 이르면 시선(詩禪)이다. 시와 선은 어떤 공통점이 있기에 자주 한 자리에서 거론되는가? 송나라 때 엄우(嚴羽)가 『창랑시화(滄浪詩話)』에서 “선도(禪道)는 오직 묘오(妙悟)에 달려 있고, 시도(詩道) 또한 묘오에 달려 있다”고 하여, 시와 선을 나란히 보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시와 선의 공통점을 ‘묘오(妙悟)’로 들었다. 묘오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깨달음이다. 시를 잘 쓰는데 필요한 것은 이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아니라 떨리듯 다가오는 묘오라는 것이다. 그는 다시 이렇게 말한다. 무릇 시에는 별도의 재주가 있다. 책을 얼마만큼 읽었는지는 상관이 없다. 시에는 별도의 지취(旨趣)가 있다. 이치로 따져서 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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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선시(禪詩), 깨달음의 표정 1. 선사들이 깨달음의 순간 시를 선택하는 이유 언어란 본래 부질없는 도구다. 말로 무언가를 설명하고 남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은 번번이 수포로 돌아간다. 툭하면 오해를 낳고, 곁길로 샌다. 옛 시인이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고 노래한 것은 진실로 까닭이 있다. 언불진의(言不盡意), 말은 뜻을 다 전달할 수 없다. 이 생각은 옛 사람들을 늘 절망케 했다. 말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뜻, 말의 범위를 넘어서는 의미는 어떻게 전달되는가? 오묘한 깨달음의 세계는 늘 언어를 저만치 벗어나 있다. 수레 깎던 윤편(輪扁)은 제 자식에게조차 그 기술을 설명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한 『주역(周易)』의 대답은 ‘입상진의(立象盡意)’다. 말로 하려들지 말고, 이미지를..
14. 거문고의 소리는 어디서 나는가④ 南窓終日坐忘機 하루 종일 남창에서 마음 비워 앉았자니 庭院無人鳥學飛 뜨락에 사람 없어 새가 날기 배우네. 細草暗香難覔處 가는 풀의 여린 내음 찾기가 어려운데 淡烟殘照雨霏霏 엷은 안개 지는 해에 비는 부슬부슬. 강희맹의 「병여음(病餘吟)」이다. 큰 병을 앓은 뒤라서인지 눈빛이 더없이 투명하다. 볕 좋은 남창에 기대 해바라기를 하고 앉았는데, 발길 끊긴 마당에선 어린 새가 걸음마를 배우고 있다. 첫 비상을 시작하려 푸드득거리는 어린 새의 날갯짓에서 시인은 뜨거운 생명력을 느낀다. 그 생명력은 가는 풀의 여린 향기로 전이되어 나의 후각을 자극하고, 두리번거리는 눈길에 희뿌연 안개와 저녁노을,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 선취(禪趣)가 물씬하다. 흔히 선시를 말하는 것을 보면,..
13. 거문고의 소리는 어디서 나는가③ 空山不見人 但聞人語響 빈 산 사람은 보이질 않고 다만 사람의 말소리만 들리네. 返景入森林 復照靑苔上 저물녘 볕 숲속에 비치어들어 다시금 푸른 이끼 비추는 구나. 시불(詩佛) 왕유(王維)의 「녹시(鹿柴)」란 작품이다. 산은 비어 사람도 없다. 그런데 어디서 도란도란 말소리가 들려온다. 그때 뉘엿한 햇볕은 다시 금 숲속에 들어 푸른 이끼 위에 빗긴다. 사람은 어디 있는가? 시인은 또 어디에 있는가? 시의 내용을 앞에 놓고 화가를 불러 그림으로 그리려 해도, 사람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그 어디에도 없다. 숲속에 비쳐드는 투명한 햇살처럼 허공에 빛나는 투명한 정신의 광휘가 감돌고 있을 뿐이다. 마음을 맑게 씻어준다. 월산대군의 시조에 다음과 같은 절창이 있다. 추강에 밤..
12. 거문고의 소리는 어디서 나는가② 이 이야기를 소동파(蘇東坡)는 그의 「금시(琴詩)」에서 다시 이렇게 읊조린다. 若言琴上有琴聲 거문고에 소리가 있다 하면은 放在匣中何不鳴 갑 속에 두었을 젠 왜 안 울리나. 若言聲在指頭上 그 소리 손가락 끝에 있다 하면은 何不於君指上聽 그대 손끝에선 왜 안 들리나. 거문고의 소리는 어디서 나는가. 거문고와 손가락의 사이에서다. 거문고에 손가락이 닿아 소리로 울리는 이 미묘한 이치를 아는가? 소리는 그렇다면 어디에 숨어 있었더란 말인가? 깨달음은 어디에 있는가? 도연명(陶淵明) 「음주(飮酒)」시의 뒤 네 구절을 보면 다음과 같다.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산 기운 저녁이라 더욱 고운데 나는 새 짝을 지어 돌아가누나. 此中有眞意 欲辨已忘言 이 가운데 참된 뜻이 있으나 말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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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거문고의 소리는 어디서 나는가 『장자(莊子)』 「산목(山木)」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숲 속에 천년 묵은 나무는 옹이가 많이 져서 재목으로 쓸 수가 없는 까닭에 나무꾼의 도끼를 피할 수 있었고, 여관집의 거위는 잘 울지 않아 쓸모없다 하여 목숨을 잃었다. 둘 다 쓸모없기는 매 일반인데 하나는 그로 인해 수명을 연장하였고, 하나는 그 때문에 명을 재촉하였다. 자! 그대는 어디에 처하겠는가? 장자는 망설임 없이 그 중간에 처하겠다고 한다. 그곳은 어디인가? 연암 박지원(朴趾源)은 「낭환집서(蜋丸集序)」에서, 익숙한 황희 정승의 이야기를 패러디 하여 이런 이야기로 들려준다. 황희 정승이 퇴근하여 집에 오니, 딸이 맞이하며 말하기를, “아버지! 이가 어디서 생겨요? 옷에서 생기죠?” “그렇지.” 그러자 ..
10. 설선작시 본무차별(說禪作詩, 本無差別)③ 學詩渾似學參禪 시 배움은 흡사 참선(參禪) 배움 같거니 筆下隨人世豈傳 앞 사람을 흉내 내면 그 누가 알아주리. 好句眼前吟不盡 좋은 시구 눈앞에서 끝없이 읊조려도 痴人猶自管窺天 어리석은 이들은 우물 안 개구리라. 예전 불법(佛法)의 대의(大義)를 묻는 제자의 물음에 임제(臨濟)는 할(喝)로, 덕산(德山)은 몽둥이로 대답하였다. 선가(禪家)의 화두(話頭)도 송대(宋代) 이후로 오면 아포리즘의 어조를 띄게 되어 영동(靈動)하는 활법(活法)으로서가 아닌 어정쩡한 흉내가 되고 만다. 자가(自家)의 체인(體認) 없는 흉내만으로는 무문(無門)의 관문도 소용이 없다. 시(詩)의 법도 이와 같다. 눈앞에 놓인 좋은 시구들을 백날 읊조려 본들, 미묘한 깨달음과 만나지 못하면..
9. 설선작시 본무차별(說禪作詩, 本無差別)② 시선일여(詩禪一如)의 인식이 보편화됨에 따라, 시를 배우는 과정을 선(禪)에 비유한 이선유시(以禪喩詩)의 생각도 활발하게 제출되었다. 學詩渾似學參禪 시 배움은 흡사 참선(參禪) 배움 같거니 竹榻蒲團不計年 대 걸상 부들자리에 해를 따지지 않네. 直待自家都了得 스스로 깨쳐 얻음을 얻게 되면 等閑拈出便超然 멋대로 읊조려도 문득 초연하리라. 북송(北宋)의 시인 오가(吳可)의 「학시시(學詩詩)」이다. 대나무 걸상 위에 부들자리를 깔고 좌선(坐禪)을 오래 했다 해서 선(禪)의 화두(話頭)를 터득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자연(自家)의 ‘료득(了得)’이다. 증심(證心)하는 깨달음이 있고 보면 그저 심상히 읊조리는 말도 초연(超然)한 상승(上乘)의 경계가 된다. 오가(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