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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8. 시귀(詩鬼)와 귀시(鬼詩)③ 10년 만에 완성한 대구 또 선조 때 문인 양희(梁喜)가 눈 오는 밤에 매화를 감상하다가 다음과 같은 시구를 얻었다. 雪墮吟脣詩欲凍 읊는 입에 눈 내리자 시조차 얼려하고 그러다 마침내 그 바깥짝은 채우지 못하고 잊어 버렸다. 십년 뒤 꿈에 한 사람이 나타나 “그대는 왜 ‘시욕동(詩欲凍)’의 구를 계속 잇지 않는가?” 하더니 다음과 같은 시구를 읊조리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梅飄歌扇曲生香 부채에 매화 나부끼니 노래에 향기 나네. 그래서 마침내 한 편 시를 이루었다. 혹 이 시화는 달리 이런 이야기로도 전한다. 충청도에 시에 능한 두 형제가 있었는데, 아우가 형만 못하였다. 분통이 터진 아우는 화가 나 요절하고 말았는데, 원귀가 되어 형에게 달라붙었다. 집안사람들이 무당을 불..
7. 시귀(詩鬼)와 귀시(鬼詩)② 꿈속에서 지은 시를 알아보다 이와 같이 귀신이 나타나 시를 지은 경우가 시화에 종종 나타난다. 윤결(尹潔)이 차식(車軾)과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이 지은 오언시 한 수를 들려주며 어떠냐고 물었다. 그 시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偶入石門洞 吟詩孤夜行 우연히 석문동(石門洞) 골짝에 들어 밤길에 시 읊으며 외로이 갔네. 月午澗沙白 空山啼一鶯 달은 중천에 떠 백사장 모래 밝은데 빈산에선 새 한 마리 울음 울었다. 시를 듣고 난 차식은 “이것은 귀시(鬼詩)일세[此乃鬼詩也].”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윤결(尹潔)이 깜짝 놀라, “사실 내가 간 밤 꿈에 한 깊은 골짝에 놀러 갔는데, 백사장이 십여 리나 펼쳐져 있고 달빛은 마치 그림 같은데, 어디선가 꾀꼬리 소리가 들려왔었네. 그곳..
4. 시귀(詩鬼)와 귀시(鬼詩) 김덕령의 시인가, 권필의 시인가 시마(詩魔) 이야기를 꺼낸 김에 시와 귀신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겠다. 시화(詩話)를 보면 또 시귀(詩鬼)와 귀시(鬼詩)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시마(詩魔)가 보통 지속적으로 시인에게 들러붙어 있는 것이라면, 시귀(詩鬼)는 일회적으로 시인의 입을 빌어 대신 노래하게 하거나, 그 자신이 홀연히 나타나 시를 읊조리기도 하는 귀신이다. 또 이 시귀(詩鬼)가 지은 시를 귀시(鬼詩)라 한다. 광주 교외에는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의 명장 김덕령(金德齡)을 모신 사당 충장사(忠壯祠)와 취가정(醉歌亭)이란 정자가 있다. 그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조직하여 위국진충(爲國盡忠)하였으나 간신배의 모함을 입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와 한 시대..
5. 시마(詩魔)의 죄상(罪狀)② 최연이 말한 시마의 죄 최연(崔演)도 「축시마(逐詩魔)」에서 시마(詩魔)의 죄상을 모두 네 가지로 적시하고 있다. 대개 이규보(李奎報)가 든 시마(詩魔)의 죄상을 말만 바꾼 것인데, 첫째는 제멋대로 붓을 휘둘러 어지럽게 하고, 샘솟는 듯한 생각과 봄날 구름 같은 태도로 번화함을 다투어 사람의 이목을 현혹시키며, 날로 진원(眞元)을 소모케 하고 태소(太素)를 깎아 내게 하는 죄이고, 둘째는 천지자연의 비밀을 엿보고 서책을 표절하여 오묘한 표현을 찾으며, 자구(字句)를 탁련(琢鍊)하고 기이함을 다투며 일생의 마음을 토하고 수염을 배배 꼬면서 정미(精微)함을 추구하고 동탕(動盪)케 하는 죄이며, 셋째는 온갖 형식과 격식을 만들어 변화를 뽐내고 솜씨를 자랑케 하여 마침내 그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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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마(詩魔)의 죄상(罪狀) 이제 「구시마문(驅詩魔文)」에서 이규보(李奎報)가 적시하고 있는 시마(詩魔)의 다섯 가지 죄상에 대해서 알아볼 차례이다. 첫째,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는데 시인으로 하여금 붓만 믿고 찧고 까불게 만드는 죄이다. 사람이 세상에 나서 바탕이 소박할 때에는 화려하지 않은 꽃떨기 같고, 총명함이 가리워져 있음은 마치 눈이나 귀가 열리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다가 허술한 틈을 타서 시마(詩魔)란 놈이 들어와 붙게 되면 여기에 의탁하여 세상을 어지럽게 하고 남을 현혹시켜 아름다움을 꾸미고, 요술을 부리고 온갖 괴상한 짓을 하며, 아양을 떨면 살과 뼈가 녹는 듯하고, 떨쳐 소리 지르면 바람이 일고 물결이 출렁이게 한다. 세상에서는 아무도 너를 장하다 하지 않는데 어찌 이다지 날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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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마(詩魔)와의 논쟁과 시마(詩魔) 증후군 가난과의 한 판 승부를 청한 양웅 한나라 때 양웅(揚雄)은 「축빈부(逐貧賦)」를 지어, 자기를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는 ‘가난’이란 놈의 축출을 시도한 적이 있다. 글을 보면, 먼저 ‘가난’을 불러내어 내 인생을 이렇듯 고달프게 만드는 연유를 따져 묻고, 이어 잠시도 나를 가만두지 않고 따라다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은 뒤, 지체치 말고 썩 물러가라고 호통을 친다. 자못 등등한 기세다. 그러자 ‘가난’이란 녀석이 나타나 물러가는 것은 좋으나 나도 할 말이 있다며 반발한다. 추위를 견디고 더위를 참아내는 법을 어려서부터 가르쳐 주었고, 걸(桀)이나 도병(盜甁) 같은 탐학의 무리를 거들떠보지 않는 기상을 길러 주었으며, 사람들은 모두 겹겹이 둘러싸인 곳에서 지내..
10. 시마(詩魔) 이야기 1. 즐거운 손님, 시마(詩魔) 시를 짓지 않고 배길 수 없게 하는 시마 앞에서 이규보(李奎報)의 「시벽(詩癖)」이란 작품을 소개하면서, 시마(詩魔)에 대해 잠시 말한 바 있다. 여기서는 이 시마(詩魔)의 정체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시마(詩魔)란 말 그대로 ‘시 귀신’이다. 이 시마(詩魔)는 어느 순간 시인의 속으로 들어와 시인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시만 생각하고 시만 짓게 하는 귀신이다. 이 귀신이 한 번 붙고 나면 그 사람은 다른 일에는 하등 관심이 없고, 오로지 시에만 몰두하게 되며, 짓는 시마다 절창이 아닌 것이 없게 된다. 실제로 예전 시화(詩話)를 보면 이 시마(詩魔)에 관한 삽화를 자주 접할 수 있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선조 때 사람 이현욱(李顯..
12. 개미와 이② 시를 무가치하게 보다 사실 실용적으로만 말한다면 시처럼 아무 짝에 쓸모없는 것도 없고, 시인처럼 무능한 인간들도 없다. 공연히 세상 고민을 혼자 다 짊어진 듯이 끙끙대지만, 실제로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김종직(金宗直)은 「영가연괴집서(永嘉連魁集序)」에서, “문장은 잗단 기예(技藝)이다. 시부(詩賦)는 더더욱 문장의 보잘 것 없는 것이다[文章, 小技也. 而詩賦, 尤文章之靡者也].”라고 했는데, 앞뒤 헤아리지 않고 보면 시(詩)란 것은 소기(小技)인 문장 중에서도 가장 하급에 속하는 것이 된다. 정약용(丁若鏞)은 또 「오학론(五學論)」에서 “문장학이란 우리 도(道)의 커다란 해독이다. 대저 이른바 문장이란 것은 무엇이던가? 문장이란 허공에 걸려 있고 땅에..
6. 개미와 이 일찍이 높은 산에 올라 성시(城市)를 굽어보니 마치 개미굴 같았다.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 알 수 없으나, 높은 데서 바라보니 참으로 한 번 웃을 만했다. 산이 성시(城市)보다 높다한들 능히 얼마나 되랴마는, 그런데도 이미 이와 같으니, 하물며 진짜 신선이 허공 속에 있으면서 티끌세상을 굽어본다면 또 어찌 다만 개미굴이겠는가? 허균(許筠)의 『한정록(閒情錄)』에 나오는 말이다. 실제로 옛 사람이 보허등공(步虛登空)하여 하계(下界)를 조감하는 유선시(遊仙詩)에는 이러한 광경을 노래한 구절이 있다. 김시습(金時習)은 「능허사(凌虛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下視塊蘇嗟渺渺 굽어보니 땅 덩어리 너무도 아득한데 大鵬飛少蠛蠓多 대붕은 잘 안 뵈고 하루살이만 우글대네. 임제(林悌)..
10. 참을 수 없는 가려움, 기양(技癢)② 그렇다면 시인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어, 정신을 피폐케 하고 진기(眞氣)를 온통 소모해 가면서까지 순단월련(旬鍛月鍊), 시구의 조탁에만 힘 쏟게 하는가.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떠날 수 없게 만드는 마물(魔物)이 있으니, 옛 사람들은 이를 일러 시마(詩魔)라 했다. 이규보와 시마 이규보(李奎報) 또한 매요신(梅堯臣)과 마찬가지로 「시벽(詩癖)」이란 제목의 긴 시를 남긴 바 있다. 年已涉縱心 位亦登台司 나이 이미 칠십을 지나 보냈고 지위 또한 삼공(三公)에 올라 보았네.始可放雕篆 胡爲不能辭 이제는 시 짓는 일 놓을 만도 하건만 어찌하여 능히 그만 두지 못하는가.朝吟類蜻蛚 暮嘯如鳶鴟 아침엔 귀뚜라미처럼 읊조려 대고 저녁에도 올빼미인양 노래 부르네.無奈有魔者 夙夜潛相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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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참을 수 없는 가려움, 기양(技癢) 구양수(歐陽修)는 글을 지으면 벽에다 붙여놓고 볼 때마다 이를 고쳤는데, 마지막 완성되고 나면 처음의 것은 한 글자도 남지 않은 적이 많았다고 한다. 소동파(蘇東坡)가 「적벽부(赤壁賦)」를 지었을 때, 사람들은 그가 단숨에 이를 지은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이를 짓느라 버린 초고가 수레 석 대에 가득하였다 했으니 그간의 고초를 헤아려 무엇하랴. 『사문유취(事文類聚)』에 나온다. 송자경(宋子京)이란 이가 “나는 번번이 예전에 지은 문장을 볼 때마다 그것을 미워하여 반드시 불태워 버리고 싶어진다”고 말하였다. 그 말을 들은 매요신(梅堯臣)이 기뻐하며 말하였다. “그대의 글이 진보하는 것입니다. 나의 시 또한 그러합니다.” 매요신(梅堯臣)은 앞서 여러 시인이 그랬듯 시..
8. 가슴 속에 서리가 든 듯② 고문위(顧文煒)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爲求一字穩 耐得半宵寒 한 글자의 온당함을 구하느라고 긴긴 밤의 추위를 참아 견뎠네. 두순학(杜荀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典盡客衣三尺雪 엄동설한 나그네 옷 죄다 잡히고 煉精詩句一頭霜 시구를 가다듬다 머리 다 셋네. 제기(齊己)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覓句如探虎 逢知似得仙 좋은 시구 찾기를 범 찾듯 했고 알아줌을 만나면 신선 만난듯 했지. 유소우(劉昭禹)는 「풍설시(風雪詩)」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句句夜深得 心從天外歸 구절마다 깊은 밤에 얻은 것이니 마음은 하늘 밖에서 돌아온다오. 밤마다 작시(作詩)에 골몰하느라 넋이 아득한 하늘 밖까지 나갔다가 되돌아오는 ‘즐거운 괴로움’을 토로하고 있다. 배설(裵說)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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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슴 속에 서리가 든 듯 『섭석림기(葉石林記)』란 책에는 송나라 때 진사도(陳師道)의 일화가 실려 전한다. 그는 산수를 노닐다가 시상이 떠오르면 곧 돌아와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푹 뒤집어쓰고 침상에 누워 버린다. 가족들이 이 사실을 알면, 즉시 고양이나 개는 멀리 쫓고 애기는 안고 어린애는 데리고 가서 이웃집에 맡긴다. 그리고는 그가 시를 완성하기를 기다린다. 시가 완성된 뒤라야 감히 다시 애도 데려오고 고양이와 개도 불러올 수 있었다. 어떤 때는 사흘씩 방에 처박혀 나오지 않는 때도 있었다. 사람들은 시인이 고심참담한 결과만을 놓고 좋으니 나쁘니, 잘 되었네 못 되었네 말들 하지만, 정작 그 갈피 갈피에 서린 고초는 간과해 버리기 일쑤이다. 고인(古人)이 작시(作詩)의 괴로움을 읊은 시 몇 구를 살..
6. 눈을 상처 내고 가슴을 찌르듯③ 또 한 번은 가도(賈島)가 이응(李凝)의 유거(幽居)를 찾아가다가 다음의 시구를 얻었다. 鳥宿池邊樹 僧推月下門 새는 연못 가 나무에서 잠들고 스님은 달빛 아래 문을 미누나. 그리고는 ‘퇴(推)’로 할까 ‘고(敲)’로 할까 결정치 못하고, 손짓발짓하며 가다가 그만 경조윤(京兆尹) 한유(韓愈)의 수레를 가로 막고 말았다. 좌우의 하인들이 가도(賈島)를 한유(韓愈) 앞에 무릎 꿇게 하고 힐문하니, 가도(賈島)가 사실대로 이야기하였다. 수레를 멈추고 한참을 서 있던 한유(韓愈)는 “고자(敲字)가 낫겠네[作敲字佳矣]”하고는, 함께 돌아가 시도(詩道)를 논하며 포의(布衣)의 사귐을 맺었다. 그리고는 아예 중노릇을 그만 두고 과거에 응시케 하였다. 두 글자가 다 좋지만, ‘퇴(推..
5. 눈을 상처 내고 가슴을 찌르듯② 이 맹교(孟郊)와 나란히 일컬어지는 시인에 가도(賈島)가 있다. 송나라 소식(蘇軾)은 「제유자옥문(祭柳子玉文)」에서 “맹교는 차고, 가도(賈島)는 수척하다”고 하여, ‘교한도수(郊寒島瘦)’의 말이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 이 가도(賈島) 또한 맹교(孟郊) 이상으로 고음(苦吟)의 시인(詩人)으로 유명하다. 그는 3년을 침음(沈吟)한 끝에 「송무가상인(送無可上人)」의 경련(頸聯)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獨行潭底影 數息樹邊身 홀로 걸어가는 연못 아래 그림자 자주 쉬어가는 나무 가의 몸. 이 득의구(得意句)를 얻고는 감격한 나머지 그 아래에다가 다시 시 한수를 써서 득구(得句)까지의 사연을 주(注)내어 적었다. 兩句三年得 一吟淚雙流 두 구절을 삼 년 만에 얻고서 한 번 읊조리..
3. 눈을 상처 내고 가슴을 찌르듯 한유(韓愈)는 「정요선생묘지명(貞曜先生墓誌銘)」에서 맹교(孟郊)의 시에 대해, “그 시를 지음에 미쳐서는, 눈을 상처 내고 가슴을 찌르듯 하였다[及其爲詩, 墫目鉥心].”고 하여, 준열한 시정신을 기린 바 있다. 실제 맹교(孟郊)는 한 편의 좋은 시를 짓기 위해, 칼로 자기 눈을 찌르고 가슴을 도려내는 것 이상의 고통을 달게 여겼던 시인이다. 「야감자견(夜感自遣)」이라는 다음과 같다. 夜吟曉不休 苦吟鬼神愁 밤새 읊조려 새벽까지 쉬잖으니 괴로이 읊조림, 귀신조차 근심하리. 如何不自閑 心與身爲仇 어찌하여 제 스스로 한가치 못하는가 마음이 몸과는 원수 되었네. 오죽하면 몸이 마음을 원수로 알 지경에 이르렀겠는가마는, 시를 향한 마음이 골수에 깊이 박힌 고질(痼疾)이 되고 보니..
3. 늙음이 오는 것도 모르고② 좋은 시구를 얻어 기쁜 나머지 당나라 때 주박(周樸)이란 이는 경물과 만나면 괴로이 시구를 찾으며 읊조렸다. 산에서 해가 지는데 돌아오기를 잊은 적도 있었다. 만약 좋은 시구를 얻게 되면 더욱 신이 나서 즐거워했다. 한 번은 들판에서 등에 나무를 지고 오는 나무꾼을 만났는데, 그를 꽉 잡으며 소리 지르기를, “잡았다!”고 하였다. 나무꾼은 너무 놀라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다가 그만 나무를 진 채로 땅에 엎어지고 말았다. 그때 마침 순찰 돌던 나졸이 그 광경을 보고 나무꾼을 도적인 줄 알고 붙잡아 신문하였다. 주박(周樸)이 급히 달려와 말하기를, “내가 저 나무꾼을 보자마자 갑작스레 기막힌 영감이 떠올라 좋은 시구를 얻었소.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만 그를 붙잡았던 것이오.”라..
2. 늙음이 오는 것도 모르고 한 구절의 시구도 목숨처럼 고려 때 김황원(金黃元)이란 이가 평양 감사가 되어 부벽루(浮碧樓)에 올랐는데, 누각에 걸린 고금의 제영(題詠)이 성에 차는 것이 없는지라 시판(詩板)을 다 떼어 불사르게 하고는 하루 종일 난간에 기대 괴로이 읊조렸으나 다만 다음의 두 구절만 얻었다. 長城一面溶溶水 장성 한 면에는 넘실대는 강물이요 大野東頭點點山 넓은 벌 동편에는 점점이 산일래라. 그러고선 뜻이 고갈되어 마침내 통곡하고 돌아왔다는 일화가 역대 시화에 두루 전한다. 역시 고려 때 유명한 시인 강일용(康日用)은 백로를 가지고 시를 지으려고, 비만 오면 짧은 도롱이를 입고 성문 밖 천수사(天水寺) 남쪽 시내 위로 가서 황소 등에 걸터앉아 이를 관찰하였다. 날마다 수염을 꼬며 고심하기 백..
9. 작시(作詩), 즐거운 괴로움 1. 예술(藝術)과 광기(狂氣) 대상을 향한 미친 듯한 몰두 없이 위대한 예술은 이룩되지 않는다. 그것이 비록 하찮은 기교라 할지라도 자신을 온전히 잊는 몰두가 있어야 만이 성취를 이룰 수 있다. 예로부터 예술의 천재들에게는 스스로도 주체하기 힘든 광기(狂氣)가 있다. 인간의 열정(熱情)이 뿜어내는 거친 호흡과, 다른 사람을 빨아들이는 흡인력이 그들 안에서는 느껴진다. 최흥효(崔興孝)는 조선 초의 유명한 명필(名筆)이다. 일찍이 과거를 보러 갔는데, 답안을 쓰다 보니 우연히 한 글자가 왕희지(王羲之)의 글씨와 같게 되었다. 넋을 잃고 하루 종일 가만히 앉아 뚫어지게 그 글자만을 바라보던 그는, 답안지를 차마 제출하지 못하고 그냥 품에 넣고 돌아오고 말았다. 우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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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시안(詩眼)과 티눈 시안(詩眼)과 일자사(一字師) 이야기는 고인(古人)이 한편 시를 창작함에 있어 한 글자가 바뀌면서 발생하는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까지 십분 고려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렇게 언어 형식을 묘하게 변화시키는 것은 어디까지나 예술성의 추구일 뿐, 문자의 유희와는 구분된다. 문자의 유희와 시는 조금도 관계가 없다. 이수광(李晬光)이 “대체로 글을 일러 조화라고 말한다. 마음속에서 이루어진 문장은 반드시 예술적이지만 손끝으로 이루어진 것은 결코 예술적이지 못하다”고 한 것은 까닭이 있는 말이다. 최자(崔滋)는 『보한집(補閑集)』에서 다시 이렇게 말한다. 무릇 시를 탁련(琢鍊)함은 두보(杜甫)와 같이 한다면 묘하기는 묘하다. 그러나 저 솜씨가 생경한 자는 조탁하고자 애쓰면 애쓸수록..
10. 일자사(一字師)의 미감(美感) 원리(原理)④ 김부식과 정지상의 원한 관계에 빗댄 일화 다음은 이규보(李奎報)의 『백운소설(白雲小說)』에 실려 전하는 일화이다. 정지상(鄭知常)의 재주를 시기한 김부식(金富軾)은 그를 죄로 얽어 죽였다. 하루는 김부식(金富軾)이 시를 다음과 같이 지었다. 柳色千絲綠 桃花萬點紅 버들은 천 실이 푸른 빛이요 복사꽃은 만 점이나 붉게 피었네. 그러자 공중에서 홀연 정지상(鄭知常)의 귀신이 나타나 김부식(金富軾)의 뺨을 치며 “천사(千絲)와 만점(萬點)은 누가 세어 보았더냐. 어찌 ‘버들은 실실이 푸르고, 복사꽃은 점점이 붉도다[千絲萬點, 有孰數之也? 何不曰 ‘柳色絲絲綠 桃花點點紅].’라 하지 않는가?”라고 하였다. 이 경우 과연 ‘천(千)’과 ‘만(萬)’으로 규정함보다 ‘..
9. 일자사(一字師)의 미감(美感) 원리(原理)③ 가(可)와 만(滿)의 분위기 차이 일자사(一字師)의 세 번째 미감 원리는 여운(餘韻)을 남기되 앞뒤 호응을 중시하라는 것이다. 여운(餘韻)은 딱 부러지게 규정하지 않은 추상의 여백에서 생겨난다. 시가(詩家)는 단정적 언사를 꺼린다. 상식에 절은 타성을 거부한다. 사물과 시인이 만나 빚어내는 의경은 카메라의 렌즈처럼 명징한 장면으로 포착되지 않는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초점을 흐리는데 묘한 맛이 있다. 그렇지만 의경(意境)의 일관된 호흡이 흐트러지면 안 된다. 다음은 엽몽득(葉夢得)의 「금릉오제(金陵五題)」 중 한 수이다. 生公說法鬼神聽 생전의 공의 설법 귀신도 들었거니 身後空堂夜不扃 죽은 뒤 빈 집은 밤에도 걸지 않네. 猊座寂廖塵漠漠 불좌(佛座)는 적막하고..
8. 일자사(一字師)의 미감(美感) 원리(原理)② 태평을 한스럽게 여기다? 일자사(一字師)의 두번째 미감 원리는 시사(詩思)의 온유돈후(溫柔敦厚)를 중시하라는 것이다. 감각적 직설(直說)보다는 에돌려 말하는 데서 오는 온건한 맛이 더 깊고, 모난 말보다는 각지지 않은 표현에서 중후한 체취가 풍겨난다. 獨恨太平無一事 홀로 태평하여 일 없음을 한하니 江南閑殺老尙書 강남 땅서 한가로운 늙은 상서(尙書)로다. 장괴애(張乖崖)란 이가 늙마의 한가로움을 이렇게 읊자, 소초재(蕭楚材)가 못마땅한 낯빛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나라가 하나로 통일되고, 공의 공명과 지위가 높고 중한데, 홀로 태평함을 한스러워한다 함은 무엇입니까?”하고는 한 글자를 고쳤다. 무슨 글자였을까? 첫 구의 ‘한(恨)’자를 지우고 그 자리..
4. 일자사(一字師)의 미감(美感) 원리(原理) 중복된 의미를 피하라 이상 살펴본 일자사(一字師)의 예화를 찬찬히 음미해보면 한 글자를 놓고 무게를 되는 미묘한 저울질이 있다. 글자가 바뀌면서 미감의 차이가 발생한다. 그 차이를 범주화할 수 있다면 여기서 한시의 미감 원리를 발견할 수 있을 법하다. 일자사(一字師)가 환기시키는 첫 번째 미감 원리는 의미의 중복을 피하라는 것이다. 서거정(徐居正)은 『동인시화(東人詩話)』에서 진관(秦觀)의 소사(小詞) 가운데, “두견새 울음 속에 봄날 해가 저물고[杜鵑聲裏斜陽暮].”라 한 구절을 들고, 이미 ‘서양(斜陽)’을 말해 놓고 ‘모(暮)’자를 다시 썼으니 뜻이 중첩되었다고 지적하였고, 또 이인로(李仁老)의 「어양(漁陽)」시의 첫 구절에서 “무궁화 꽃 나직히 푸른 ..
6. 한 글자의 스승② ‘일(一)’을 ‘반(半)’으로 바꾼다는 것 또 당나라 때 임번(任翻)이 과거에 낙제하여 돌아가는 길에 절강(浙江)의 천태산(天台山)에 들렀다가 시정(詩情)이 동탕(動蕩)하여 절 담장 위에 시 한 수를 써 놓았다. 絶嶺新秋生夜凉 산마루 새 가을에 밤 한기 돋아나니 鶴翔松露濕衣裳 학 날자 솔 이슬은 옷깃을 적시누나. 前村月落一江水 앞마을에 온강 가득 달빛이 떨어져도 僧在翠微閑竹房 산중턱의 스님네는 죽방(竹房)에서 한가롭네. 천태산(天台山)을 내려와 전당강(錢塘江)에 다다른 그가 늦은 밤 강물에 비친 달빛을 보니, 강물이 조수를 따라 물러나자 달빛도 단지 ‘반강(半江)’에만 남는 것이었다. 그는 문득 전날 시에서 ‘일강수(一江水)’라 한 것이 잘못임을 깨닫고 마음이 불안하여 길을 되짚어..
3. 한 글자의 스승 일자사(一字師) 제기(齊己)의 세 가지 일화 당나라 때 시승(詩僧) 제기(齊己)가 사방을 유력타가 당시 자고시(鷓鴣詩) 한편으로 정자고(鄭鷓鴣)의 별명을 얻었던 시인 정곡(鄭谷)을 찾아가 5언율시 한 수를 지어 헌정하였다. 대문간에서 명함 대신 시를 들여 놓고 한참을 기다렸으나 안쪽의 기별은 좀체 없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더니 하인의 전언은 시 가운데 한 글자를 고쳐 가지고 오면 그때 만나 주겠다는 것이었다. 며칠을 고심한 뒤 제기(齊己)는 한 글자를 수정하여 다시 정곡(鄭谷)에게 보냈다. 정곡(鄭谷)은 이를 보고 기뻐하며 그를 기꺼이 맞이하였을 뿐 아니라 평생 시우(詩友)로 교유하였다. 뒤에 제기(齊己)가 다시 「조매(早梅)」시를 지어 정곡(鄭谷)에게 보였다. 萬木凍欲折 孤根暖獨回..
4. 뼈대와 힘줄② 한 자로 포착해낸 정채로움 또 가도(賈島)의 「봉승(逢僧)」 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天上中秋月 人間半世燈 하늘 위엔 중추의 둥두렷한 달 인간엔 반세(半世)를 비추는 등불. 여기서는 ‘반(半)’자가 시안(詩眼)이 된다. 중년의 삶을 돌아보는 고단함이 환한 8월의 보름달 아래 가물거리고 있다. ‘반(半)’은 윗 구의 ‘중(中)’과 대구를 이루면서 둥두렷한 보름달과 반이 꺾인 지나온 생애가 다시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또 두시(杜詩) 「절구(絶句)」 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江動月移石 溪虛雲傍花 강물이 출렁대자 달은 바윌 옮겨가고 빈 시내에 구름은 꽃가에서 피어나네. 여기서는 ‘이(移)’자가 시안(詩眼)이 된다. 강물은 넘실대므로 그 위에 비친 달빛도 덩달아 일렁인다. 물 위..
2. 뼈대와 힘줄 시안(詩眼), 시의 핵심처 정진규의 「몸詩 26」에는 ‘자안(字眼)’이란 부제가 붙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입술이든 자궁(子宮)이든/ 사랑하는 사람아/ 나는 다른 곳으론 들지 않겠고/ 오직 네 눈으로만 들겠으며/ 세상의 모든 빗장도 그렇게 열겠다/ 술도 익으면 또록또록 눈을 뜨거니/ 달팽이의 더듬이가 바로 눈이거니/ 너와 함께 꺾은 찔레순이/ 바로 찔레의 눈이거니/ 아, 자안(字眼)이란 말씀도 있거니/ 글자에도 살아 있는 눈이 있거니/ 모든 것엔 눈이 있거니/ 나는 오직 그리로만 들겠다 정말이지 시에도 눈이 있다. 시의 빗장을 옳게 열려면 시의 눈, 즉 시안(詩眼)을 찾아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시안(詩眼)이란 말은 소동파(蘇東坡)가 「승청순신작수운정(僧淸順新作垂雲亭)」의 5..
2. 한 글자를 찾아서② 한 글자를 지워 언어감각을 키우다 송나라 때 어느 원벽(院壁)에 두보(杜甫)의 「곡강대우(曲江對雨)」 시가 적혀 있었는데, “숲속 꽃잎 비 맞아 연지가 젖었구나[林花着雨臙脂濕].”라 한 구절의 마지막 ‘습(濕)’자가 떨어져 나갔다. 소식(蘇軾)과 황정견(黃庭堅)과 진관(秦觀)과 불인(佛印) 등이 제각기 ‘윤(潤)’과 ‘노(老)’, ‘눈(嫩)’과 ‘락(落)’으로 채웠으나, 원시의 ‘습(濕)’이 주는 선명하고 촉촉한 느낌을 전달하기에는 부족한 듯 보인다. 또 소동파(蘇東坡)가 일찍이 「병학(病鶴)」시를 지었는데 “석 자 되는 긴 다리에 마른 몸을 얹었네[三尺長脛閣瘦軀]”란 구절이 있었다. 하루는 소동파(蘇東坡)가 ‘각(閣)’자를 가리고서 임덕장(任德章) 등에게 적당한 글자로 채워 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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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시안론(詩眼論): 일자사(一字師) 이야기 1. 한 글자를 찾아서 서거정(徐居正)은 『동인시화(東人詩話)』에서, “무릇 시는 묘(妙)가 한 글자에 달려 있다. 옛 사람은 한 글자를 가지고 스승으로 삼았다[凡詩妙在一字, 古人以一字爲師].”고 하였고, 호자(胡仔)는 『초계어은총화(苕溪漁隱叢話)』에서 “시구는 한 글자가 공교로우면 자연히 빼어나게 되니, 마치 한 낱의 영단(靈丹)으로 돌을 두드려 금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했다. 원매(袁枚)가 『수원시화(隨園詩話)』에서, “시는 한 글자만 고쳐도 경계가 하늘과 땅 차이로 판이한데, 겪어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한 것도 다 한 뜻이다. 한 글자가 시를 죽이고 살린다. 그렇다면 시인은 어딘가에 있을 꼭 맞는 딱 한 글자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
13. 즉정견경 정의핍진(卽情見景, 情意逼眞)② 平生性癖似嵇康 평생의 성벽이 혜강 같아서 懶弔人喪六十霜 육십 평생 초상 위문 게을렀었네. 曾未識公何事哭 공을 전혀 모르는데 어찌 곡하나 亂邦當日守綱常 어지럽던 그날에 강상(綱常)을 지켜설세. 오억령(吳億齡)은 광해 계축년 인목대비(仁穆大妃) 폐비의 논의가 있었을 때 분연히 일어나 그 부당함을 논단하였던 기개 있는 인물이었다. 뒤에 물러나서도 이따금 천정을 우러르며, “어찌 어미 없는 나라에 처하여 구차히 살겠는가?”하는 탄식을 발하였다고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은 전한다. 당초 그의 무덤은 원주(原州)에 있었는데, 무덤을 쓴 후 두 아들이 어머니보다 먼저 죽자 묘자리가 좋지 않다 하여 배천(白川) 선영으로 천장하였다. 이때는 광해의 난정(亂政)이 인조반정..
6. 즉정견경 정의핍진(卽情見景, 情意逼眞) 시경(詩經) 이래로 전통적인 인식은 ‘시언지(詩言志)’를 시의 본령으로 삼아왔다. 시란 무엇인가? 뜻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뜻이란 무엇인가? 말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에 이르면 다소 복잡해지지만 고대 위진(魏晉) 이전의 시들은 영물(詠物)보다는 영회(詠懷)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 서거정(徐居正)은 『동인시화(東人詩話)』에서 “시는 뜻을 말하는 것이다. 뜻이란 마음이 가는 바이다. 이런 까닭에 그 시를 읽으면 그 사람을 알 수가 있다[詩者, 心之發氣之充, 古人以謂讀其詩, 可以知其人].”고 하였다. 장계(張戒)가 『세한당시화(歲寒堂詩話)』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려는 것이 시인의 본의(本意)이니, 물건을 읊조리는 것은 다만 시인의 여사(餘事)일 뿐이..
11. 지수술경 정의자출(只須述景, 情意自出)② 籬落依依半掩扃 반쯤 닫은 사립문에 울타리 촘촘한데 夕陽立馬問前程 석양에 말 세우고 앞길을 묻네. 翛然細雨蒼烟外 푸른 안개 밖으로는 보슬비 흩뿌리고 時有田翁叱犢行 때마침 농부는 소를 몰고 오는구나. 성간(成侃)의 「도중(途中)」이다. 싸리로 둘러친 울타리에 사립은 반쯤 열려 있다. 석양인지라 지친 나그네는 잠자리가 걱정이다. 앞길을 물어 마땅찮으면 여기서라도 묵어가야 할 형편이다. 문간을 나그네가 서성거려도, 안쪽에선 좀체 아무런 기별이 없다. 주인은 들일을 나가고 없는 것이다. 앞길을 묻는다고는 했지만, 정작 시인은 물어보려 해도 대꾸해 줄 사람조차 만나질 못하고 있다. 앞길을 묻는 나그네의 먼 시선에 푸른 안개 자옥한 저 들판 위로 흩뿌리는 보슬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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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지수술경 정의자출(只須述景, 情意自出) 이어(李漁)는 『한정우기(閑情偶寄)』에서 “정(情)을 버려두고 경(景)을 말하는 것은 노력을 줄이려는 시도에 불과하다”고 하였고, 하상(賀裳)은 『추수헌사전(皺水軒詞筌)』에서 “시는 함축을 귀히 여기고 천직(淺直)에서 병이 든다. 시인은 마땅히 다만 경상(景象)을 묘사할 뿐이나 정의(情意)가 절로 드러나야 한다”고 하였다. 왜 경(景)만으로 보여주는가? 꼬집어 무언지도 모를 감정을 언어로 설명하기란 큰 인내가 필요한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물만을 묘사했는데 어찌 정의(情意)가 드러나는 법이 있는가. 滿空山翠滴人衣 초록의 연못에는 백조가 난다. 艸綠池塘白鳥飛 푸른 이내 허공 가득 옷을 적시고 宿霧夜棲深樹在 깊은 숲 밤을 새운 묵은 안개가 午風吹作雨霏霏 낮바람 불어..
9. 정경교융 물아위일(情景交融, 物我爲一)③ 屋角梨花樹 繁華似昔年 집 모롱이 하얗게 피어난 배꽃 화사함 지난해와 다름없구나. 東風憐舊病 吹送藥窓邊 봄바람 묵은 병이 애처로운지 약 달이는 창가로 바람 보낸다. 북창(北窓) 정렴(鄭𥖝)의 「이화(梨花)」란 작품이다. 봄기운을 타고 집 모롱이에 배꽃이 활짝 피었다. 적막하던 마당이 환하니 밝다. 꽃은 지난해와 다름없는데 주인의 쇠락은 회복될 기미가 없다. 긴 병 끝의 꽃잔치는 마음 한 구석에 애잔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래도 아직은 실망하지 말라고, 추운 겨울을 견뎌 활짝 핀 꽃처럼 어서 빨리 회복하라고, 봄바람은 약탕관 위로 살랑살랑 바람을 보낸다. 어김없는 자연의 섭리 속에서 인간의 무상을 되새기는 정조가 애틋하고, 물아일체의 호흡이 있어 따뜻하다. 山窓..
8. 정경교융 물아위일(情景交融, 物我爲一)② 고요한 밤의 한적한 풍경 枕上得詩吟不輟 베게 베고 시를 얻어 계속 읊조리자니 羸驂伏櫪更長鳴 마굿간의 마른 말도 더욱 길게 우는구나. 夜深纖月初生影 밤 깊어 초승달은 그림자를 만들고 山靜寒松自作聲 고요한 산 찬 솔도 절로 소릴 내었다. 「야와송시유감(夜臥誦詩有感)」의 첫 네 구이다. 베게를 베고 누워 이전 지은 시를 펼쳐 들고 읊조려 본다. 청을 돋워 읽다 보니 소리는 점점 낭낭해지고, 그 소리에 무슨 느낌이 있었던지 마굿간에 엎드려 있던 파리하게 마른 말도 힝힝대며 화답한다. 어디 그뿐인가. 가녀린 초승달도 그 여린 빛으로 마당에 그림자를 만들었고, 고요하던 산의 찬 솔조차도 파도소리를 내며 시를 읽는 내 목소리에 박자를 맞추고 있는 것이다. 교향악의 합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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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경교융 물아위일(情景交融, 物我爲一) 마음을 드러내려할 땐 오히려 감춘다 육시옹(陸時雍)은 『시경총론(詩鏡總論)』에서 “정(情)을 잘 말하는 자는 삼키고 토해냄이 깊은 듯 얕아 드러날 듯 다시금 감추어져 문득 그 마음의 무한함을 깨닫게 하고, 경(景)을 잘 말하는 자는 형용함을 끊어버리고 약간의 보탬만을 더하였는데도 참 모습이 또렷하고 생기가 또한 흘러넘친다”고 했다. ‘욕로환장(欲露還藏)’, 즉 말할 듯 침묵하는 데서 정(情)의 맛은 더 깊어지고, ‘절거형용(絶去形容)’ 곧 시시콜콜히 묘사함을 거부하는 데서 경(景)의 상(相)은 한결 살아난다. 사실 서로 녹아 들어간 정(情)과 경(景)의 경계를 시 속에서 구분해내기란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니다. 박은(朴誾)만큼 역대 시화에서 자주 거론되는 시인도..
6. 이정입경 경종정출(移情入景, 景從情出)② 비 내릴 때의 연잎에 빗대 인간의 욕망을 얘기하다 貯椒八百斛 千載笑其愚 팔백 곡 후추를 쌓아 두다니 어리석음 천년 두고 비웃는 도다. 如何碧玉斗 竟日量明珠 어이하여 벽옥으로 됫박을 삼아 종일토록 명주 구슬 되고 또 되나. 최해(崔瀣)의 「우하(雨荷)」이다. 당나라 때 원재(元載)는 지위를 이용하여 뇌물을 받아 축재하였다. 죽은 뒤 창고를 뒤져 보니 후추가 팔백 곡에 종유(鐘乳)가 오백 량이나 나왔으므로 나라에서 이를 몰수하였다. 얼마나 살겠다고 후추를 팔백 곡이나 쌓아 두었더란 말인가? 하기야 이즈음 나라꼴이 멀리 당나라 때를 탓할 겨를도 없지만 말이다. 처음 1.2구에서 원재(元載)의 고사를 엉뚱하게 들이민 것은 3ㆍ4구를 이끌기 위해서이다. 그 원재를 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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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정입경 경종정출(移情入景, 景從情出) 술 취해 수창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담는 방식 심웅(沈雄)은 『고금사화(古今詞話)』에서 “정(情)은 경(景) 때문에 그윽해지니 정(情)이 두드러지면 의경이 노출되고, 경(景)은 정(情)으로 인해 아름다운데 경(景)만 있게 되면 엉기어 막히고 만다”고 하였고, 왕창령(王昌齡)은 『시격(詩格)』에서 “시가 뜻만 말해 버린다면 맑지 않아 맛이 없고, 경(景)만 말해도 또한 맛이 없다. 일이란 모름지기 경(景)과 의(意)가 서로 어우러질 때 비로소 좋다.”고 하였다. 昨日南山飮 君詩醉未酬 간밤 남산서 술 마시다가 술 취해 그대 시에 화답 못했네. 覺來花在手 蛺蝶伴人愁 깨고 보니 손에는 꽃이 있구나 나비만이 나마냥 근심 겹구나. 다시 백광훈(白光勳)의 시 「기량천유(..
4. 정수경생 촉경생정(情隨景生, 觸景生情)② 울적할 때 환하게 떠오르는 해 舟中晨起坐 相對是靑燈 새벽녘 배 위에 일어나서는 푸른 등불 마주 보며 앉아 있자니, 鷄犬知村近 星河驗水澄 닭 울음에 개 짖어 마을 가깝고 은하수 비취니 물이 맑구나. 隨身唯老病 屈指少親朋 늙음과 질병만이 이 몸 따르고 손꼽아도 친구는 몇이 안 되네. 世事又撩我 東方紅日昇 세상 일로 마음은 심란만 한데 동녘에 붉은 해가 솟아오른다. 홍귀달(洪貴達)의 「광진주중조기(廣津舟中早起)」란 작품이다. 떠도는 것이 인생살이라지만 그는 무슨 일로 배 위에서 밤을 지새웠을까. 축축하고 서늘한 서리 새벽에 일어나니 밤은 아직도 깊었다. 조금이라도 따뜻해질까 싶어 등불과 마주 앉는다.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가물거리는 등불을 보다가 시인..
2. 정수경생 촉경생정(情隨景生, 觸景生情) 기다리는 그대 오지 않는 봄날에 양재(楊載)는 『시법가수(詩法家數)』에서 “경(景)을 묘사함은 경(景) 가운데 뜻을 머금고, 일 가운데 경(景)을 보여주어야 한다. 세밀하고 청담(淸淡)해야지, 진부하거나 교묘함을 꺼린다. 뜻을 묘사함은 뜻 가운데 경(景)을 담고, 의론함을 밝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또 비경우(費經虞)는 『아론(雅論)』에서 “시는 정(情)을 일으킴을 귀히 여기나, 편편마다 정(情)을 마구 늘어놓으면 마침내 방탄(放誕)하게 된다. 시는 경(景)이 핍진함을 귀히 여기나, 작품마다 경(景)만을 펼쳐 놓으면 문득 조잡하고 천박해진다”고 했다. 岸有垂楊山有花 산에는 꽃 피고 언덕엔 수양버들 離懷悄悄獨長嗟 이별의 정 안타까워 홀로 한숨 내쉰다. 强扶藜杖..
2. 가장자리가 없다② 명(明) 나라 도목(都穆)은 『남호시화(南濠詩話)』에서 “시를 지음에는 반드시 정(情)이 경(景)과 만나고, 경(景)은 정(情)과 합해져야만 비로소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다”고 하고, 두 사례를 들었다. 芳草伴人還易老 방초는 사람마냥 다시금 쉬 늙고 落花隨水亦東流 지는 꽃 강물 따라 동으로 흘러간다. 위의 시는 정(情)이 경(景)과 만나 하나가 된 예이고, 雨中黃葉樹 燈下白頭人 빗속에 누렇게 잎 시든 나무 등불 아래 하얗게 머리 센 사람. 위의 시는 경(景)이 정(情)과 합하여 하나가 된 예라 하였다. 시든 풀은 탄로(歎老)를 부추기고, 덧없이 져 강물 위로 떠가는 꽃은 세월의 무상(無常)을 일깨운다. 경물과 마주 하기 전까지만 해도 시인은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경물과 마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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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정경론(情景論) 1. 가장자리가 없다 山沓水迎 樹雜雲合 산은 첩첩 물은 감돌고 나무들 섞여 있고 구름은 합해지네.目旣往還 心亦吐納 눈길이 갔다가 돌아오면은 마음도 따라서 움직인다네.春日遲遲 秋風颯颯 봄날 해는 느릿느릿 가을바람 스산해라.情往似贈 興來如答 정을 줌은 건네듯이 흥이 읾은 답하는 듯. 유협(劉勰)의 『문심조룡(文心雕龍)』 「물색(物色)」의 한 절이다. 산첩첩(山疊疊) 수중중(水重重), 강산은 고운데 제각금의 나무들을 구름이 감싸 안는다. 어디가 산이고 어디가 물인가. 저 나무는 무슨 나무며, 어디까지가 구름인가. 그저 눈앞의 경물이건만 눈길이 한 번 갔다가 돌아오는 사이에 어느새 마음에는 느낌이 자리 잡는다. 사실 하루의 물리적 시간이야 봄가을이 다를 바 없고, 부는 바람 또한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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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문에 기댄 사람은 이러한 외에 고사(故事)를 모르고 축자역(逐字譯)을 하는 데서 오는 오역(誤譯)은 연구자들 사이에 흔히 발견되는 오류이다. 권필(權韠)이 중국 사신을 접빈(接賓)하러 의주(義州)에 갔다가 겨울을 나며 몇 달을 머물 때에 형 권겹(權韐)이 멀리 그곳까지 아우를 찾아 왔다. 감격의 상봉을 한 형제가 겨우 감정을 추스린 뒤 아우는 이렇게 그 심경을 읊었다. 京口分離後 音書久杳茫 서울서 손 나누고 헤어진 뒤로 오래도록 소식도 아득했었네. 相思今幾月 玆會却殊方 서로를 그리기 몇 달이던가 더욱이 낯선 땅서 이리 만났네. 雪裡生春色 天涯似故鄕 눈 속에도 봄 빛은 피어나거니 하늘 가도 고향인양 포근하구나. 仍懷倚門望 喜極輒悲傷 인하여 문 기대어 바라보자니 기쁨은 스러지고 구슬퍼지네. 필자의 번역..
6. 뱃속 아이의 정체 위와 같은 오독은 감상자의 착각, 즉 상식의 허(虛)에서 말미암은 경우지만, 시구 해석상의 오독일 경우는 그 문제가 자못 심각하다. 그 대표적인 한 예로 정몽주(鄭夢周)의 「정부원(征婦怨)」이란 작품을 들 수 있다. 一別年多消息稀 한 번 떠난 뒤로 여러 해 소식 없어 寒垣存沒有誰知 수자리의 삶과 죽음 그 누가 알랴. 今朝始寄寒衣去 오늘 처음 솜옷을 지어서 보내나니 泣送歸時在腹兒 울며 보내고 돌아올 때 뱃속에 아기 있었네. 위 풀이는 『한국 한시(漢詩)』(민음사, 1991)에 수록된 김달진(金達鎭, 1907~1989) 선생의 번역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한 번 헤어진 뒤 여러 해가 되도록 님은 생사조차 알 길이 없다. 3구에서 오늘 아침에야 비로소 님께 겨울옷을 보낸다고 했다. 이 ..
8. 백발삼천장② 10자로 표현된 유학자의 자세 이와 비슷한 경우가 하나 더 있다. 병주(幷州)에 얽힌 이야기가 그것이다. 타관 땅을 떠돌며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를 되뇌이다가도, 막상 고향 언덕에 서서 변해 버린 산천을 바라보노라면, 또 노산의 노래처럼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닐래라’의 탄식은 금할 수 없는 법이다. 조선 중기의 시인 권필(權韠)은 그의 「술회(述懷)」시의 서두에서 이렇게 노래한 바 있다. 建德豈吾土 幷州非故鄕 건덕(建德)이 어찌 내 살 땅이리 병주(幷州) 또한 고향 아닐세. 여기 나오는 건덕(建德)과 병주(幷州)는 땅 이름인데, 그 속에는 깊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건덕(建德)은 『장자(莊子)』 「산목(山木)」에 나오는 도가적 이상향의 이름이다. 그 나라 ..
5. 백발삼천장 白髮三千丈 緣愁似箇長 흰머리 풀어 헤쳐 삼천 장 됨은 근심으로 이다지 길어진 걸세. 不知明鏡裏 何處得秋霜 해맑은 거울 속 그 어디메서 가을 서리 얻었는가 아지 못게라. 첫 구로 너무나도 유명한 이백(李白)의 「추포가(秋浦歌)」 중 한 수이다. 추포(秋浦)는 가을날의 물가가 아니라 양자강 연안 안휘성(安徽省) 귀지현(貴池縣)의 옛 지명이다. 황숙찬(黃叔燦)은 『당시전주(唐詩箋注)』에서 “거울에 얼굴을 비추다가 백발을 보자 갑자기 느낌이 일어 차례도 없이 곧장 말하여 이처럼 돌올하게 되었다.”고 하여, 어느 날 우연히 거울을 비쳐보다가 문득 희어진 머리털을 발견하고, 그 놀란 마음을 삼천장의 길이로 환치하여 다짜고짜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의 돌연한 표현으로 말문을 열었다고 하였다. 흔히 ..
6. 무지개가 뜬 까닭② 一鷺踏柳根 一鷺立水中 백로 한 마리 버들 뿌리 밟고 서 있고 백로 한 마리 물속에 그냥 서 있네. 山腹深靑天黑色 짙푸른 산 허리 캄캄한 하늘 無數白鷺飛翻空 무수한 백로가 솟구쳐 난다. 頑童騎牛亂溪水 아이가 소를 타고 시내를 첨벙대자 隔溪飛上美人虹 시내 저편 무지개는 날아 오르고. 박지원(朴趾源)의 「도중사청(道中乍晴)」이란 작품이다. 길을 가다가 잠깐 날이 개이고 무지개 뜨는 광경의 묘사이다. 두 마리 백로의 돌올한 묘사로 시상(詩想)을 열었다. 물가에도 백로, 물속에도 백로다. 산허리는 짙푸른데 하늘은 검은빛으로 잔뜩 흐렸다. 잔뜩 흐린 하늘과 푸르다 못해 검은 산빛은 조그만 백로의 흰 깃을 파묻을 듯 압도한다. 그러자 갑자기 한두 마리가 아닌 무수한 백로들이 허공을 번드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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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무지개가 뜬 까닭 한시에서 모호성은 흔히 문장 성분이 생략되어 그 여백을 채우는 과정에서 많이 발생한다. 다음은 이달(李達)의 「제김양송화첩(題金養松畵帖)」이란 작품이다. 一行二行雁 萬點千點山 한 줄 두 줄 기러기 만 점 천 점 산. 三江七澤外 洞庭瀟湘間 삼강(三江) 칠택(七澤) 밖 동정(洞庭) 소상(瀟湘) 사이. 한마디로 번역을 거부하는 시다. 말이 번역이지 글자를 그대로 옮기고 보면 아무런 서술어 없이 그저 명사를 토막토막 이어 놓았을 뿐이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독자를 당혹하게 한다. 화면에는 아득한 점으로 한 줄인지 두 줄인지도 분명치 않게 기러기 떼가 날고 있고, 그 너머로 만점인지 천점인지 이루 헤일 수도 없는 산들이 연이어 있다. 그들이 날아가는 곳은 어디인가? 삼강(三江)과 칠택..
4. 개가 짖는 이유② 달과 개 조선조의 문인 이경전(李慶全)이 9살 때 일이다. 그의 할아버지 이산해(李山海)가 손주를 무릎 위에 앉혀 놓고 눈앞의 풍경을 읊게 하였다. 一犬吠二犬吠 첫째 개가 짖어대자 둘째 개가 짖어대네. 三犬亦隨吠 셋째 개도 따라 짖으니 人乎虎乎風聲乎 사람일까, 범일까, 바람 소릴까? 童言山月正如燭 산달은 촛불처럼 환히 밝고요 半庭唯有鳴寒梧 뜨락에는 오동잎새 소리뿐예요. 가을밤 산골 마을의 고즈넉한 광경이다. 한 마리가 짖어대자 동네 개가 모두 짖는다. 무슨 일일까? 뉘 집에 도둑이라도 들었는가, 아니면 범이라도 나타났단 말인가? 그도 저도 아니면 바람 소리에 놀라 저리 짖는가? 바깥 좀 내다보라는 어른 말씀에 꼬맹이의 대답이 맹랑하다. 산달이 촛불처럼 환히 밝다는 말씀이다. 뜨락의..
3. 개가 짖는 이유 해 그림자와 달 그림자 老身倦馬河堤永 늙은 몸 지친 말 방죽은 길어 踏盡黃楡綠槐影 느릅나무 지나가자 회나무 그림자라. 늙은 몸으로 지친 말을 끌고 가던 나그네는 끝없이 방죽으로 이어진 길이 고단하기만 했다. 한동안 길옆으로 느릅나무 행렬이 줄을 잇더니, 느릅나무 길이 끝나자 이번에는 짙푸른 회나무 그림자가 나그네 위로 드리운다. 가도 가도 방죽 길은 끝이 보이질 않는 것이다. 송나라 때 유송(劉憽)이 소동파(蘇東坡)에게 물었다. “이것이 그대의 시가 아닌가?” “그렇네만은.” “그렇다면 이것은 해의 그림자인가, 달의 그림자인가?” “한퇴지(韓退之)가 「성남연구(城南聯句)」의 첫 구에 쓴 ‘대 그림자에 금가루 부서지고[竹影金朠碎]’에서도 언제 해의 그림자니 달의 그림자니 말하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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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랑캐 땅의 화초 이렇듯 일상의 언어에서 의미는 어느 하나가 옳으면 나머지는 그른 것이 되지만, 시의 언어에서는 꼭 그렇지가 않다. 이 대목에서 모호성(Ambiguity)의 문제가 발생한다. 어떤 면에서 시인은 이러한 언어의 모호성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시 속에서 이러한 의미들은 애매와 모호가 아니라 오히려 풍부와 함축이 된다. 모호성의 문제가 시학(詩學)의 관심사가 된 것은 영국의 언어학자 윌리엄 엠슨(William Empson, 1906~1984)이 「모호성의 일곱 가지 유형」이란 논문에서 시에서 모호성이 발생하는 7가지 유형을 소개하면서부터다. ‘ambiguity’라는 말은 ‘두 길로 몰고 간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시의 어휘나 구절들은 대개 어느 하나로 규정짓기 어려운 포용력과 융통성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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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즐거운 오독(誤讀), 모호성에 대하여 1. 그리고 사람을 그리다 꿈보다 해몽 언어는 가끔씩 오해를 일으킨다.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의 화장실 면전(面前)에 이런 스티커가 붙은 적이 있다. “이단은 당신의 영혼을 노리고 있다.” 그리고는 그 아래 이른바 이단 종파에서 주장하는 상투적 주장을 환기시킨 뒤, 이에 동조하는 여러 교파의 이름을 나열하고, 끝에 가서 ‘김○○ 이단집단대책위원회’라고 써 놓았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이 단체가 이단을 집단으로 대책하는 위원회인지, 이단집단을 대책하는 위원회인지 알 수가 없어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었다. “할머니가죽을드신다”는 “할머니가 죽을 드신다”이냐, 아니면 “할머니, 가죽을 드신다”이냐. “예수가마귀를쫓는다”고 할 때, 예수가 쫓는 것이 마귀인가 까마귀..
6. 이해 못할 「국화 옆에서」 특정 어휘의 속뜻을 알아야 시를 맛볼 수 있다 앞서 어떤 시인이 부른 노래가 사람들의 정서를 파고들어 깊은 공감을 일으키면, 이것이 자주 여러 시인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어떤 특정 단어 위에 사전적 의미를 넘어선 정운(情韻)이 얹히게 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남포(南浦)’나 ‘절류(折柳)’, 그리고 ‘추선(秋扇)’과 ‘의루(倚樓)’ 등이 다 그런 예들이다. 한시에는 이런 정운(情韻)이 풍부한 어휘들이 유난히 많다. 한시의 언어 특성 상 이러한 어휘들은 시가(詩歌) 언어의 함축을 더욱 유장하고 깊이 있게 해주는 효과를 발휘한다. 한시 감상에 있어 이러한 어휘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수반되지 않으면, 전혀 엉뚱하게 읽어 시의 의미를 곡해할 염려가 크다. 대개 ..
5. 저물녘의 피리 소리 예전 진(晉) 나라 때 향수(向秀)는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이었다. 뒤에 칠현(七賢)이 죽거나 뿔뿔이 흩어진 후 예전 함께 노닐던 산양(山陽) 땅 옛 벗의 집을 지나다가 이웃에서 들려오는 피리 소리를 듣고 옛 생각에 사무쳐 「사구부(思舊賦)」를 지었다. 이후 석양 무렵의 피리 소리는 지나간 옛날을 그리워함, 또는 가고 없는 벗을 그리워함의 의미가 되었다. 當時逐客幾人存 그때에 쫓겨간 이 몇 이나 남았던고 立馬東風獨斷魂 봄바람에 말 세우니 홀로 애가 끊는다. 烟雨介山寒食路 안개 비 자욱한 개산 한식 길에서 不堪聞笛夕陽村 저물녘 피리 소리 차마 듣지 못하겠네. 신광한(申光漢)이 참판 김세필(金世弼)의 옛 집을 지나며 지었다는 「과개현김공석구 유감(過介峴金公碩舊 有感)」라는 시..
8. 난간에 기대어② 雲鬟梳罷倚高樓 검은 머리 곱게 빗고 누각에 기대 鐵笛橫吹玉指柔 쇠 피리 빗겨 부는 부드러운 손. 萬里關山一輪月 관산월 한 가락에 그대 그리워 數行淸淚落伊州 두 줄기 맑은 눈물 떨구었다오. 강혼(姜渾)이 은대선(銀臺仙)이라는 기생에게 준 「정성주기(呈星州妓)」란 작품이다. ‘관산월(關山月)’ 구슬픈 피리 곡조에 얼음 같이 맑은 눈물이 떨어진다. 가녀린 손가락도 알지 못할 슬픔에 하릴 없이 곡조 속으로 잠겨만 간다. 윤기 나는 머리를 곱게 빗어 땋고서 누각에 기대 앉아 피리 부는 여인. 피리 소리는 달에까지 사무치고, 그 소리에 달빛조차 흐느끼며 서쪽 나라로 떠내려간다. 넷째 구의 ‘낙이주(落伊州)’는 당나라 때 어느 여인이 멀리 벼슬살이 가서 소식조차 없는 님을 그리며 지었다는 「이주..
4. 난간에 기대어 그리워 난간에 기댔죠 한시에서 자주 보이는 표현 중에 하나가 누각에 올라 난간에 기댄다는 표현이다. 누각 위에는 왜 오르는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때문이다. 난간에는 왜 기대는가? 기다림에 지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루(登樓)’, ‘의루(倚樓)’, ‘의란(倚欄)’ 혹은 ‘빙란(憑欄)’ 등의 표현 속에는 ‘그리움’의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난간은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으므로, 그곳에 올라보면 먼 곳에서 오는 사람을 잘 알아볼 수 있는 까닭이다. 이경(李璟)이 「탄파완계사(攤破浣溪沙)」에서 “보슬비에 꿈을 깨니 닭울음소리 아득하고, 작은 누대 위에서 부는 젓대 소리 서늘해라. 구슬처럼 지는 눈물에 한(恨)은 끝이 없어, 난간에 기대이네[細雨夢回鷄塞遠, 小樓吹徹玉笙寒. 多少淚珠無限恨, 倚..
6. 가을 부채에 담긴 사연② 버려진 신세=가을부채 가을 부채가 버림 받은 여인의 상징으로 쓰이게 된 것은, 한 나라 때 반첩여(班婕妤)가 지은 「원가행(怨歌行)」이란 작품 때문이다. 新裂齊紈素 鮮潔如霜雪 제나라 고운 비단 새로 자르니 깨끗하기 마치 눈 서리 같구나. 裁爲合歡扇 團團似明月 말라서 합환선을 만들었는데 밝은 달 모습처럼 둥그렇구나. 出入君懷袖 動搖微風發 님께서 출입할 제 손에 들고서 흔들흔들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네. 常恐秋節至 凉飇奪炎熱 언제나 근심키는 가을이 와서 싸늘한 바람이 무더위 앗아가면, 棄捐篋笥中 恩情中道絶 고리 속에 깊숙히 내던져 져서 사랑하심 중도에 끊어질까 함일세. 제나라의 질 좋은 흰 비단을 잘 말라서 둥근 합환선(合歡扇)을 만들었다. 이를 님께 드리니 님은 늘 품 속에 지..
3. 가을 부채에 담긴 사연 가을부채로 자신의 신세를 대변하다 이왕 사랑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시에서 사랑과 연관되어 상징적 의미로 쓰이는 어휘를 더 살펴보자. ‘추선(秋扇)’ 즉 가을 부채가 그것이다. 예전에도 한 번 소개한 바 있지만, 여기서 다시 한 번 감상해 보기로 한다. 銀燭秋光冷畵屛 은 촛불 가을빛은 병풍에 찬데 輕羅小扇搏流螢 가벼운 비단 부채로 반디불을 치누나. 天際夜色凉如水 하늘 가 밤빛은 물처럼 싸늘한데 坐看牽牛織女星 견우와 직녀성을 오두마니 바라보네. 두목(杜牧)의 「추석(秋夕)」이란 시이다. 가을밤의 애상적 분위기가 물씬한 작품이다. 방 안에는 은촉불이 타고 있고, 방에는 화사한 그림 병풍이 둘려 있다. 그녀의 손에는 가벼운 비단 부채가 쥐어져 있다. 한 눈에도 매우 넉넉한 귀족풍의 ..
4. 버들을 꺾는 마음② 김극기의 통달역(通達驛) 감상 烟楊有地拂金絲 내낀 버들 어느새 금실을 너울대니 幾被行人贈別離 이별의 징표로 꺾이어짐 얼마던고. 林下一蟬椛別恨 숲 아래 저 매미도 이별 한을 안다는 듯 曳聲來上夕陽枝 석양의 가지 위로 소리 끌며 오르누나. 고려 때 시인 김극기(金克己)의 「통달역(通達驛)」이란 작품이다. 역시 버들가지가 이별의 징표로 쓰이고 있는 예이다. 1구에서 ‘연양(烟楊)’이라 했으니 아지랑이 가물거리는 봄날임을 알겠다. 파릇파릇 물 오른 버들개지의 여린 초록빛을 ‘금사(金絲)’로 표현한 데서 이점은 더 분명해진다. 그 여린 가지는 푸른 잎을 달아보기도 전에, 많은 사람들의 손에 수도 없이 꺾이었다. 헤어지는 장소가 역참(驛站)이고 보니, 으레 수많은 이별을 이 수양버들은 지켜..
2. 버들을 꺾는 마음 송원이사안서(送元二使安西) 감상하기 김만중(金萬重)도 『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정지상(鄭知常)의 위 작품을 두고 우리나라의 ‘양관삼첩(陽關三疊)’이라 하였다. ‘양관삼첩(陽關三疊)’이란 저 유명한 왕유(王維)의 「송원이사지안서(送元二使之安西)」가 널리 훤전(喧傳)되어 악곡(樂曲)으로 편입된 뒤의 이름이니, 결국 이에 버금가는 이별 노래의 절창이란 뜻이다. 渭城朝雨湎輕塵 위성(渭城) 아침 비가 가벼운 먼지 적시니 客舍靑靑柳色新 객사엔 파릇파릇 버들빛이 새롭고야. 勸君更進一杯酒 그대에게 다시금 한 잔 술 권하노라 西出陽關無故人 양관(陽關)을 나서면 아는 이 없을지니. 땅으로 사신 가는 벗 원이(元二)를 송별하며 지은 시이다. 위성(渭城)은 당나라 때 수도인 장안(長安)의 서쪽, 지금..
2. 남포(南浦)의 비밀② 송인(送人) 감상 다시 시로 돌아가 보자. 1구에서는 비가 개이자 긴 둑에 풀빛이 곱다고 했다. 겨우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긴 둑에 봄비가 내리자, 그 아래 어느새 파릇파릇 돋아난 봄풀이 마치 갑자기 땅을 헤집고 나온 것처럼 제 빛을 찾았던 것이다. 지루했던 겨울의 묵은 때를 말끔히 씻어 내리는 봄비를 맞는 마음은 설레이는 흥분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춥고 길었던 겨울이 끝나고 이제 막 생명이 약동하는 봄을 맞이하면서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있으니, 그 처창(悽愴)한 심정이야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으랴. 김동환은 「강이 풀리면」에서 “강이 풀리면 배가 오겠지. 배가 오면은 님도 탔겠지. 님은 안 타도 편지야 탔겠지. 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 가노라.”라고 노래..
5. 버들을 꺾는 뜻은, 한시(漢詩)의 정운미(情韻味) 1. 남포(南浦)의 비밀 사신에게 보여줘도 부끄럽지 않던 송인(送人) 雨歇長堤草色多 비 개인 긴 둑에 풀빛 고운데送君南浦動悲歌 남포에서 님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 물이야 언제 마르리 別淚年年添綠波 해마다 이별 눈물 푸른 물을 보태나니. 너무나도 유명한 정지상(鄭知常)의 「송인(送人)」이란 작품이다. 필자는 이 시만 보면 고등학교 1학년 국어 첫 시간에 배웠던 이수복 시인의 시,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오것다. 푸르른 보리밭 길 맑은 하늘엔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를 외우던 시절이 아련히 떠오른다. 대동강 가 연광정(練光亭)에는 고금의 시인들이 지은 제영시(題詠詩)가 수없이 많이..
5. 배 속에 넣은 먹물 문학의 기능: 거울과 등불 에이브럼즈(M.H.Abrams, 1912~2015)는 『거울과 등불(The Mirror and Lamp)』이란 책에서 문학의 기능을 거울과 등불의 두 가지로 나누고 있다. 시인은 캄캄한 밤에 등불을 들고 어둠 속을 헤매이는 영혼들의 갈 길을 일깨워주는 선지자(先知者)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시인은 그 시대를 물끄러미 비춰주는 거울이어야 하는가. 보기에 따라서는 당시와 송시도 거울과 등불이라는 문학의 두 기능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다만 ‘나는 당시풍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괜찮지만, ‘송시풍의 시는 시가 아니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내가 빨간색을 좋아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파란색을 좋아하면 안 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
7. 송조(宋調), 머리로 쓴 시(詩)② 봄은 바로 곁에 있었는데, 그걸 몰랐구나 그런데 김시습(金時習)의 위 시는 송(宋) 나라 어느 여니(女尼)가 지은 「오도시(悟道詩)」의 분위기와 흡사하다. 오도시(悟道詩)란 도를 깨달은 순간의 법열(法悅)을 노래한 시이다. 終日尋春不見春 종일 봄을 찾았어도 봄은 보지 못했네. 芒鞋踏破嶺頭雲 짚신 신고 산 머리 구름 위까지 가 보았지. 歸來偶把梅花臭 돌아올 때 우연히 매화 향기 맡으니 春在枝上已十分 봄은 가지 위에 벌써 와 있었네. 그녀는 봄을 찾기 위하여 하루 종일 온 산을 찾아 헤매이고 있다. 산꼭대기 구름 위에까지 올라가 보았지만 그녀는 봄을 찾지는 못하였다. 지칠 대로 지친 그녀는 이제 봄을 찾으려는 생각을 접어두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바로 그..
4. 송조(宋調), 머리로 쓴 시(詩) 김시습의 이지적인 무제시 당시풍에 대비되는 송시풍의 특징을 일괄하여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체로 송시는 이 시기 발달한 선종(禪宗)과 성리학(性理學)의 영향으로 인생에 대한 철학적 음미를 내용으로 하는 철리적 성향이 강하고, 쓸데없는 수식을 배제하고 섬세한 관찰과 개성적 표현을 중시하였으며, 제재 상에 있어서는 일상생활에의 관심과 밀착이 두드러짐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에 따라 시의 공용성은 더욱 강조되었고, 표현은 다분히 산문적이고 서술적이 되어, 정감이 풍부하고 유려한 당시에 비해 송시는 이지적이고 심원한 풍격을 갖추게 되었다. 또 송대(宋代)에 발달한 사문학(詞文學)은 시(詩)에 비해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세계를 노래하여, 송대(宋代)에는 시(詩)와 사(詞)..
5. 당음(唐音), 가슴으로 쓴 시② 변방의 추위에 괴롭지만 어머니껜 ‘봄처럼 따뜻합니다’라고 말하다 欲作家書說苦辛 집에 보낼 편지에 괴로움 말하려 해도 恐敎愁殺白頭親 흰 머리의 어버이 근심하실까 저어하여, 陰山積雪深千丈 그늘진 산, 쌓인 눈이 깊이가 천장인데 却報今冬暖似春 금년 겨울은 봄처럼 따뜻하다 말하네. 선조 때 시인 이안눌(李安訥)의 「기가서(寄家書)」란 작품이다. 이안눌은 평생에 두보(杜甫)의 시를 일만 삼천 번을 읽었다는 시인이다. 그가 함경도 북평사의 벼슬을 살러 북방에 가 있을 때 집에 편지를 보내면서 지은 시이다. 문집에 보면 편지를 받고 지은 시가 위 시 바로 앞에 실려 있다. 그 사연인 즉, 지난해 집에서 보낸 편지와 겨울옷을 해를 넘겨서야 받았는데, 집 식구는 남편이 변방에서 고생..
3. 당음(唐音), 가슴으로 쓴 시 이달의 낭만적 느낌이 담긴 시 당시(唐詩)는 가슴으로 쓴 시이다. 여기에는 시인의 웃음과 눈물이 있어, 마음으로 전해오는 인간의 체취가 물씬하다. 이에 반해 송시(宋詩)는 머리로 쓴 시이다. 그래서 인생에 대한 깊고 담담한 관조(觀照)와 거리를 두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조망(眺望)이 있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 앉혀 주는 위안과 인간의 정신을 고원(高遠)한 곳으로 이끌어주는 깊이가 있다. 그래서 예전부터 시에서 서정함축을 중시하고 의흥(意興)이 뛰어난 시를 ‘당음(唐音)’이라 하고, 생각에 잠기고 이치를 따지며 유현(幽玄)한 맛을 풍기는 시를 ‘송조(宋調)’라고 일컬어 왔다. 그렇다면 이러한 두 풍격은 실제 작품 상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를 보여주는가. 먼저 당시풍의 시를 ..
3. 작약의 화려와 국화의 은은함② 신경준의 당시와 송시 평론 조선 후기의 학자 신경준(申景濬)은 「시칙(詩則)」이란 글에서 역대로 많은 시가 있어 왔지만, 시의 작법은 ‘영묘(影描)’와 ‘포진(鋪陳)’, 두 가지를 벗어날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인(唐人)은 광경을 즐겨 서술하였다. 그래서 그 시에는 영묘(影描)가 많다. 송인(宋人)은 의론 세움을 즐겨하였다. 그래서 그 시에는 포진(鋪陳)이 많다. 대저 광경을 서술함은 국풍(國風)의 나머지에서 나온 것이니 자못 참되고 두터운 맛이 적다. 의론을 세움은 양아(兩雅)의 나머지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의 자취가 완전히 드러나 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당인은 시(詩)를 가지고 시(詩)를 지었고, 송인은 문(文)을 가지고 시(詩)를 지었다고 ..
2. 작약의 화려와 국화의 은은함 당시와 송시의 차이 송대의 유명한 화가 곽희(郭熙)는 그의 『임천고치(林泉高致)』에서 이렇게 말한다. 진짜 산수(山水)의 안개와 이내는 네 계절이 같지 않다. 봄산은 담박하고 아름다와 마치 웃는 듯하고, 여름산은 자욱이 푸르러 마치 물방울이 듣는 듯하며, 가을산은 맑고 깨끗하여 단장한 듯하고, 겨울산은 어두침침하고 엷어 마치 잠자는 듯하다. 산은 늘 그 자리에 서 있지만,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면 날마다 그 모습을 바꾼다. 봄산이 좋기는 하지만 여름산의 짙푸름은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가을산의 조촐함과 겨울 산의 담박함은 또 그것대로의 매력이 있다. 사람마다 기호가 같지 않으므로, 꼬집어 어느 산이 더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시 또한 이와 다를 것이 없다. 당시(唐詩)..
4. 보여주는 시(詩)인 당시(唐詩)와 말하는 시(詩)인 송시(宋詩) 1. 꿈에 세운 시(詩)의 나라 대관재몽유록(大觀齋夢遊錄)을 통해 시 나라에 초대된 심의 시인은 캄캄한 밤에 등불을 들고 어둠 속을 헤매이는 영혼들의 갈 길을 일깨워주는 선지자(先知者)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시인은 그 시대를 물끄러미 비춰주는 거울이어야 하는가. 조선 전기의 문인 심의(沈義)가 지은 「기몽(記夢)」은 「대관재몽유록(大觀齋夢遊錄)」이란 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지은이가 얼풋 잠이 들었다가 홀연 한 곳에 이르렀는데, 금빛으로 번쩍이는 화려한 궁궐에는 천성전(天聖殿)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다. 그곳은 천상(天上) 선계(仙界)에 자리 잡은 시(詩)의 왕국(王國)이었다. 이 나라의 왕은 최치원(崔致遠)이고 수상은 을..
6. 청산 위로 학이 날아간 자취 인종의 물음에 한시로 대답한 관사복 송나라 때 ‘관사복(管師復)’은 스스로 와운선생(臥雲先生)이라 자호(自號)하며 전원에 묻혀 살았던 사람이다. 인종(仁宗)이 그를 불러, “경이 전원에 살며 얻은 것은 어떤 것인가?”하니, 그가 대답했다. 滿塢白雲耕不盡 둔덕 가득 흰 구름은 갈아도 끝이 없고 一潭明月釣無痕 못 속의 밝은 달은 낚아도 자취 없네. 언제나 흰 구름 자옥한 둔덕, 그 구름을 밭 삼아 다 갈아볼 날은 과연 언제이겠는가. 못 위에 둥두렷이 떠오는 밝은 달은 제 아무리 낚아채도 한량없는 무진장이다. 그러니 어떻다는 말인가? 竹影掃階塵不動 섬돌 쓰는 대 그림자, 먼지는 그대로요 月光穿沼水無痕 못을 뚫는 달빛에도 물에는 흔적 없네. 대나무 그림자는 바람에 일렁이며 섬돌..
10. 어부가 도롱이를 걸친다③ 날 향해 핀 꽃을 얘기하다 春風忽已近淸明 봄바람 문득 이미 청명이 가까우니 細雨霏霏晩未晴 보슬비 보슬보슬 늦도록 개이잖네. 屋角杏花開欲遍 집 모롱이 살구꽃도 활짝 피어나려 數枝含露向人傾 몇 가지 이슬 머금고 날 향해 기울었네. 그리하여 봄은 다시 우리 곁으로 찾아온다. 위 시는 권근(權近)의 「춘일성남즉사(春日城南卽事)」이다. 청명이 가까워진 어느 봄날 성남의 소묘이다. 굳이 ‘두목(杜牧)’의 “청명시절우분분(淸明時節雨紛紛)”을 말하지 않더라도, 이 시절에는 꽃 소식을 재촉하는 봄비가 대지를 촉촉히 적신다. 이른바 행화(杏花)의 시절이 온 것이다. 가을날의 근심이 덧없이 스러진 청춘의 꿈을 애상(哀喪)하는 허탈한 독백이라면, 봄날의 근심은 근심이라기보다는 무언가 알 수 없..
9. 어부가 도롱이를 걸친다② 이색, 사립문을 닫은 까닭 이제 입상진의(立象盡意)의 거울에 비추어, 시 몇 수를 감상해 보자. 1수 「팔월초십일(八月初十日)」이고 2수 「신흥(晨興)」으로 다음과 같다. 夜冷貍奴近 天晴燕子高 차운 밤 고양이는 가까이 붙고 개인 하늘 제비는 높이 나누나. 殘年深閉戶 淸曉獨行庭 남은 해 깊이 문 닫아 걸고 맑은 새벽 홀로 뜰을 걸으리. 『소문쇄록(謏聞瑣錄)』에서 한적시(閑寂詩)의 대표적 예로 들고 있는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작품이다. 서늘해진 가을 밤, 고양이는 추위를 못 이겨 자꾸 사람 곁을 찾아들고, 하늘 높이 제비는 강남 가는 길을 서두른다. 시인은 고양이와 제비를 빌어 가을이 깊어 감을 말하고 있다. 유난히 추위를 타는 고양이만이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외롭고 ..
5. 어부가 도롱이를 걸친다 다시 그림을 가지고 설명해 보겠다. 산수화에서 비가 오는 광경은 어떻게 그리는가? 화면 위에 빗금을 그어 빗줄기를 그리지는 않는다. 눈이 오는 것을 어떻게 그리는가? 학생들이 크리스마스카드를 그릴 때처럼 칫솔에 흰 물감을 묻혀 뿌리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바람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불 때는? 바람은 없고 비만 올 때는? 비를 그리지 않고, 눈을 그리지 않고, 바람을 그리지 않으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부는 것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비와 바람을 시로 담는 법 왕유(王維)의 저술로 전해지는 「산수결(山水訣)」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비가 오면 천지가 구분되지 않고 동서를 알 수가 없다. 바람만 불고 비는 오지 않으면, 단지 나무의 가지만 보인다. ..
7. 내 혀가 있느냐?② 부드러운 게 강한 걸 이긴다 그러나 이러한 오해의 염려 때문에 입상(立象)을 포기할 수는 없다. 직설적 언어의 나열보다 전달면에서 더욱 훌륭한 효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허균(許筠)의 『한정록(閑情錄)』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상용(商容)은 어느 때 사람인지 모른다. 그가 병으로 눕자 노자가 물었다. “선생님! 제자에게 남기실 가르침이 없으신지요?” “고향을 지나거든 수레를 내리 거라. 알겠느냐?” “고향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시군요.” “높은 나무 아래를 지나거든 종종걸음으로 가거라. 알겠느냐?” “노인을 공경하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러자 상용이 입을 벌리며 말했다. “내 혀가 있느냐?” “있습니다.” “내 이가 있느냐?” “없습니다.” “알겠느냐?” “강한 것은 ..
4. 내 혀가 있느냐? 언어가 이처럼 불완전한 도구라면 우리는 언어를 통해 자신의 뜻을 전달하려는 노력을 포기해야 할 것인가? 불완전하게 남겨둬 많은 얘기를 담긴다 서진(西晋)의 구양건(歐陽建)은 「언진의론(言盡意論)」에서 이렇게 말한다. “고금에 이름을 바로잡으려 힘쓰고, 성현이 말을 능히 떠나지 못한 것은 그 까닭이 무엇인가? 진실로 이치를 마음에서 얻어도 말이 아니면 펼 수가 없고, 사물을 말에 고정시켜도 이름이 아니면 구분할 수 없다.” 언어가 제 아무리 불완전한 존재라 해도, 인간은 언어를 떠나서는 결코 살 수 없다. 그렇다면 옛 성인의 뜻은 어떻게 전달되는가? 『주역(周易)』 「계사(繫辭)」는 다시 이렇게 말한다. “성인은 상(象)을 세워서 그 뜻을 다하고, 괘(卦)를 세워서 참과 거짓을 다하..
5. 언덕에 오르려면 뗏목을 버려라② 스승이 미처 전하지 않은 본질을 떠난 다음에 알아채다 백아(伯牙)의 절현(絶絃)은 지음(知音)이던 종자기(鍾子期)의 죽음 때문이었다. 백아가 물 흐르는 것을 생각하며 연주하면 종자기는 곁에서 “강물이 넘실대는 것 같군.” 했고, 산을 오르는 것을 생각하면 종자기는 또한 그 마음을 그대로 읽었다. 그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고 평생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 「수선조(水仙操)」란 시의 서문에는 이 백아가 처음 성련(成連)에게서 거문고를 배울 때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성련에게서 3년을 배운 백아는 연주의 대체를 터득하였으나, 정신을 텅 비게 하고 감정을 전일(專一)하게 하는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성련은 “내가 더 이상은 가르칠 수 없겠구나. 내 스승 방자춘..
3. 언덕에 오르려면 뗏목을 버려라 언어로 전할 수 없는 것 『장자(莊子)』 「천도(天道)」편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제나라 ‘환공’이 누각 위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아래서 수레바퀴의 굴대를 끼우던 ‘윤편(輪扁)’이 다짜고짜 계단을 올라와 임금에게 물었다. “전하! 지금 읽고 계신 것이 무엇입니까?” “옛 성인의 책이니라.” “그 분은 지금 살아 계신가요?” “죽었지.” “그렇다면 전하께선 옛 사람의 껍데기를 읽고 계신 거로군요.” 제 환공은 화가 났다. 윤편의 수작이 방자하기 그지 없었던 것이다. “네 이놈! 무엄하구나. 그 말이 무슨 뜻인가. 까닭이 있으면 살려 주려니와, 그렇지 않다면 살려두지 않으리라.” 윤편은 대답한다. “저는 저의 일을 가지고 판단할 뿐입니다. 제가 바퀴를 끼운 것..
3. 왜 사냐건 웃지요② 왜 산에 사냐고 물으니, 그냥 산다 하지요 問余何事棲碧山 어찌하여 푸른 산에 사냐 묻길래 笑而不答心自閒 웃고 대답 아니 해도 마음 절로 한가롭네. 桃花流水杳然去 복사꽃 흐르는 물 아득히 떠 가거니 別有天地非人間 또 다른 세상일래, 인간이 아니로세.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이다. 산속에 묻혀 사는 나에게, 왜 답답하게 산속에 사느냐고 묻는다. 묵묵부답(黙黙不答), 싱긋이 웃기만 하고 대답은 하지 않았다. 말한다고 한들 그가 내 마음을 어이 헤아릴 것이랴. 또 낸들 무슨 뾰족한 대답이 있을 리 없다. 그저 “산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나, “왜 사냐 건 웃지요” 밖에는. 복사꽃이 물 위로 떠가니, 상류 어디엔가 무릉의 도원이 있지나 않을런지. 잠자다 일어나니, 분별하려는 기심조..
2. 왜 사냐건 웃지요 백지 편지에 보내온 센스 가득한 아내의 답장 옛 사람의 글에는 야단스러움이 없다. 간결하게 할 말만 하고, 때로 아무 말도 않기도 한다. 그래도 마음은 글자 사이로 흘러, 행간에 고여 넘친다. 예전 중국의 곽휘원(郭暉遠)이란 이가 먼 데로 벼슬 나가 있다가 집에 편지를 보냈는데, 착각하여 백지를 넣고 봉하였다. 그 아내가 오랜만에 온 남편의 편지를 꺼내 보니 달랑 백지 한 장뿐이었다. 답시를 보냈다. 碧紗窓下啓緘封 푸른 깁창 아래서 봉함을 뜯어보니 尺紙終頭徹尾空 편지지엔 아무 것도 써 있질 않더이다. 應是仙郞懷別恨 아하! 우리 님 이별의 한 품으시고 憶人全在不言中 말 없는 가운데 그리는 맘 담으셨네. 청나라 원매(袁枚)의 『수원시화(隨園詩話)』 「기부(寄夫)」에 나오는 이야기다. ..
3. 언어의 감옥, 입상진의론(立象盡意論) 1. 싱거운 편지 열 두자로 보낸 편지 함경도 안변(安邊) 땅에 벼슬 살러 가 있던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이 서울에 있던 백광훈(白光勳)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반가운 마음에 겉봉을 뜯어보니, 딱 열 두 자 한 줄의 사연이 있었다. 삼천리 밖에서 한 조각구름 사이 밝은 달과 마음으로 친히 지내고 있소.三千里外, 心親一片雲間明月 이만한 사연 전하자고 천리 길에 편지를 띄웠더란 말인가. 그러나 음미할수록 새록새록 정감이 넘나는 뭉클한 사연이다. 한 조각구름 속에 밝은 달이라 했으니, 달은 달이로되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달이다. ‘심친(心親)’이라 하여 그밖에 다른 것에는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있음을 보였다. ‘월인천강(月印千江)’이랬거니, 달은 ..
13. 마음에서 얻어 뜻으로 깨달으니③ 기러기에 자신의 감정을 얹다 차천로(車天輅)는 「영고안(詠孤雁)」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山河孤影沒 天地一聲悲 산하엔 외로운 그림자 없어지고 천지에 한 소리만 비장하더라. 날아가던 기러기의 외로운 그림자는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도 아직 시인의 귀에는 천지를 가득 메운 기러기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러기야 무슨 외롭고 말고 할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깊은 밤 까닭 모를 근심에 겨워 잠 못 이루고 뜨락을 서성이던 시인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아, 저도 모르는 사이에 기러기라는 대상에 자신의 감정을 얹어 노래하게 되었던 것이다. 큰 기교는 졸렬해 보인다 대개 이러한 것이 경물과 시인의 정신이 만나 결합되는 양상들이다. 이렇듯 한 편의 훌륭..
12. 마음에서 얻어 뜻으로 깨달으니② 자연과 인간의 대비 이색(李穡)은 그의 「부벽루(浮碧樓)」에서 노래하였다. 城空月一片 石老雲千秋 성은 텅 빈 채 달 한 조각 있고, 바위(조천석)는 천년 두고 구름뿐인데, 텅 빈 성과 조각달, 바위와 구름의 대비는 읽는 이로 하여금 참으로 많은 생각에 젖게 한다. 예전 번성했던 성엔 이제 사람의 자취는 찾을 길 없고 조각달만 옛 기억처럼 희미하게 떠 있을 뿐이다. 그나마 그 달마저 얼마 안 있어 그믐의 암흑 속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 아닌가. 바위에는 세월이 할퀴고 간 흔적만이 남았다. 그 위로 또 무심한 구름은 천년 세월을 덧없이 흘러갔다. 그 세월 동안 인간 세상의 영고성쇠는 또 말하여 무엇 하겠는가. 이렇듯 각 구절의 사이에는 말하지 않고 남겨 둔 여운이 길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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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마음에서 얻어 뜻으로 깨달으니 10자의 글자에 형상화하기 구양수(歐陽修)의 『육일시화(六一詩話)』에 보면, 매요신(梅堯臣)과 시에 대해 논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매요신은 “반드시 능히 묘사하기 어려운 경치를 형상화하여 마치 눈앞에 있는 것 같이 하고, 다하지 않는 뜻을 머금어 말 밖에 드러나게 한 뒤라야 시가 지극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자 구양수는 묘사하기 어려운 경물을 형상화 하여 다하지 않는 뜻을 머금는다는 것은 어떤 시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매요신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짓는 사람은 마음에서 얻고, 보는 이는 뜻으로 깨달으니, 말로써 무어라고 꼬집어 진술하기는 어렵다. 비록 그렇기는 해도 또한 그 방불함을 대략 말할 수는 있다. 온정균(溫庭筠)의 “주막집 달빛에 ..
10. 정오의 고양이 눈② 안목 있는 사람의 눈엔 덧칠한 게 보인다 홍만종(洪萬宗)의 『소화시평(小華詩評)』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이호민(李好閔)이 어느 날 소낙비가 창문을 두드리자 갑자기 시 한 구절을 얻었는데, “산 비가 창문에 떨어짐이 많구나[山雨落窓多]”라 하였다. 그리고는 이를 이어 다시 짓기를, “시냇물은 대 숲 뚫고 졸졸 흘러가네[磵流穿竹細]”라 하고, 마침내 시 한편을 이루어 이산해(李山海)에게 보였다. 그러자 그는 ‘산우락창다(山雨落窓多)’에만 비점을 찍어 돌려보냈다. 이호민이 그 까닭을 묻자 이산해는 이렇게 말하였다. “공이 실제 경물과 만나 먼저 이 구절을 얻었을 것이다. 나머지 구절은 그 다음에 만든 것이다. 시 전편의 참된 뜻이 모두 이 구절에 있기 때문에 거기에만 비점을 ..
4. 정오의 고양이 눈 마음을 놓치면 졸작이 된다 옛날에 절묘하다고 세상에 전하는 그림이 있었다. 장송(長松) 아래 한 사람이 고개를 들어 소나무를 보는 모습을 그렸는데 신채(神采)가 마치 살아 있는 듯하여, 천하의 명화로 일컬어졌다. 처사(處士) 안견(安堅)이 말하기를, “이 그림이 비록 묘하기는 하지만, 사람이 고개를 올려 보면 목 뒤에 반드시 주름이 잡히는 법인데, 이것은 없으니 그 뜻을 크게 잃었다”고 하였다. 이로부터 마침내 버린 물건이 되었다. 古有買妙畵於中國者. 畵長松下, 有人仰面看松, 神采如生, 世以爲天下奇畵也. 處士安堅曰: “是畵雖妙, 人之仰面也, 項後必有皺紋, 此則無之, 大失其旨.” 自此終爲棄物. 또 옛날 그림으로 묘필(妙筆)을 일컬은 것이 있었다. 늙은이가 손주를 안고 숟가락으로 밥을..
8. 장수는 목이 없고, 미인은 어깨가 없다② 노새에게 덧붙여진 짐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談)』에는 이런 시가 실려 전한다. 한 사나이가 길을 가다가 나귀를 타고 가는 미인을 만났다. 선녀가 적강(謫降)한 듯 아름다운 모습에 그는 그만 발길이 얼어붙었다. 연정의 불길을 주체할 수 없었던 그는 즉석에서 시를 써서 그녀에게 보냈다. 心逐紅粧去 身空獨倚門 마음은 미인 따라 가고 있는데 이 몸은 부질없이 문 기대 섰소. 넋은 이미 그대에게 빼앗겨 버리고 나는 빈 몸뚱이만 남아 문에 기대 섰노라는 애교 섞인 푸념이었다. 그녀가 답장을 보내왔다. 驢嗔車載重 却添一人魂 노새는 짐 무겁다 투덜대는데 그대 마음 그 위에 또 얹었으니. 그녀의 대답은 도무지 뚱딴지같다. 당신이 내 마음을 온통 다 가져 가 버렸..
3. 장수는 목이 없고, 미인은 어깨가 없다 과장과 왜곡으로 본질을 강조하다 이왕 그림 이야기가 나왔으니, 몇 가지 더 보기로 하자. 형호(荊浩)의 「화론(畵論)」을 보면 “장수는 목이 없고, 여인은 어깨가 없다[將無項, 女無肩].”이란 말이 나온다. 무슨 말일까? 목이 없는 장수가 어디 있는가. 여인은 어째 어깨가 없을까. 없어서 없는 것이 아니다. 그림을 그릴 때, 장수의 기상은 목을 없는 듯 짧게 그리는 데서 드러나고, 미인의 가녀린 모습은 어깨 없이 부드럽게 흘러내린 곡선을 통해 강조된다는 말이다. 또 왕유(王維)가 「원안와설도(袁安臥雪圖)」를 그렸는데, 고사(高士) 원안(袁安)이 눈 쌓인 파초 아래 누워 있는 모습이었다. 실제 파초는 남국(南國)의 식물이므로, 눈 내리는 추위 속에서는 시들고 만..
6. 말하지 않고 말하기③ 주변을 읊어 자기감정을 얘기하다 獨坐無來客 空庭雨氣昏홀로 앉아 오는 손님도 없고 빈 뜰엔 빗 기운만 어둑하구나.魚搖荷葉動 鵲踏樹梢飜물고기 흔드는지 연잎이 움직이고 까치가 밟았는가 나무가지 흔들리네. 琴潤絃猶響 爐寒火尙存거문고 젖었어도 줄은 울리고 화로는 싸늘한데 불씨는 남아 있네.泥途妨出入 終日可關門 진흙길이 출입을 가로 막으니 하루 종일 문을 닫아 걸고 있으리. 서거정(徐居正)의 「독좌(獨坐)」란 작품이다. 일견 속세를 떠나 칩거하고 있는 은사의 유유한 생활을 노래한 작품인 듯하지만, 속사정을 따져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찾아오는 손님 없이 혼자 앉아 있다는 1구는, 아무도 나를 찾아올 리가 없다는 체념과, 그래도 혹시 누군가 오지는 않을까 하는 기다림의 마음이 뒤섞인 모순..
5. 말하지 않고 말하기②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시 다음은 두보(杜甫)의 유명한 「춘망(春望)」이란 시이다. 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나라 망했어도 산하는 그대로 봄 성엔 초목만 무성해. 感時花溅淚 恨別鳥驚心 때에 느꺼워 꽃을 대해도 눈물 쏟아지고 이별 한스러워 새 보아도 마음 놀라네. 이 시를 지을 당시 두보는 안록산(安祿山)의 난리 중에 반군의 손에 사로잡혀 경성에 갇혀 있는 처지였다. 만신창이가 된 종묘사직과 도탄에 빠진 백성의 생활은 그로 하여금 무한한 감개에 젖어들게 했다. 그는 이러한 감개를 흐드러진 봄날의 경물에 얹어 노래하고 있다. 사마광(司馬光)은 이 시를 평하여 『온공속시화(溫公續詩話)』에서 이렇게 적었다. “산하(山河)가 남아 있다고 했으니 나머지 물건은 없는 것이 분명하다. 초목이 우거..
2. 말하지 않고 말하기 화가가 달을 그리지 않고 달을 그리는 방법과, 시인이 말하지 않고 말하는 수법 사이에는 공통으로 관류하는 정신이 있다. 가렸기에 보여진다 구름 속을 지나가는 신룡(神龍)은 머리만 보일 뿐 꼬리는 보이지 않는 법이다. “한 글자도 나타내지 않았으나 풍류를 다 얻었다[不著一字, 盡得風流].”는 말이 있다. 또 “단지 경물을 묘사할 뿐이나 정의(情意)가 저절로 드러난다[只須述景, 情意自出].”고도 한다. 요컨대 훌륭한 한 편의 시는 시인의 독백으로써가 아니라 대상을 통한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iative)의 원리로써 독자에게 전달된다. 즉 시인은 자신의 정서를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 대상 속에 응축시켜 표달해야 한다. 그래서 “산은 끊어져도 봉우리는 이어진다[山斷..
3. 그리지 않고 그리기③ 호접몽중가만리(胡蝶夢中家萬里)와 임금께 바칠 춘화도 그려내는 법 또 가령 “호랑나비 꿈속에 집은 만 리 밖[胡蝶夢中家萬里]”라는 화제(畵題)가 제출되었다면, 화가는 꿈속에 향수에 젖어 있는 나그네의 모습을 그려야 하는데, 그러자면 화면에는 잠든 사람이 있어야 하고, 또 그가 지금 고향 꿈을 꾸고 있음을 나타내 보여주어야 한다. 1등에 뽑힌 화가는 소무(蘇武)가 양을 치다가 선잠이 든 모습을 그렸다. 소무(蘇武)는 한(漢) 무제(武帝) 때 흉노에 사신 갔다가 억류되어 흉노의 회유를 거부하여 사막에서 들쥐를 잡아먹으며 짐승처럼 살다가, 무려 20년 만에야 고국으로 돌아왔던 인물이다. 황제의 사신으로 왔다가 어처구니없이 포로로 억류되어 아무도 없는 사막 가운데 버려진 채 양을 치던 ..
2. 그리지 않고 그리기② 홍일점을 그려내는 법 “여린 초록 가지 끝에 붉은 한 점, 설레이는 봄빛은 많다고 좋은 것 아닐세[嫩綠枝頭紅一點, 動人春色不須多].”라는 시가 출제된 적도 있었다. 화가들은 일제히 초록빛 가지 끝에 붉은 하나의 꽃잎을 그렸다. 모두 등수에는 들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푸른 산과 푸른 강이 화면 가득한 중에, 그 산 허리를 학 한 마리가 가르고 지나가는데, 그 학의 이마 위에 붉은 점 하나를 찍어 ‘홍일점(紅一點)’을 표현하였다. 그런데 정작 일등으로 뽑힌 그림은 화면 어디에서도 붉은 색을 쓰지 않았다. 다만 버드나무 그림자 은은한 곳에 자리 잡은 아슬한 정자 위에 한 소녀가 난간에 기대어 서 있는 모습을 그렸을 뿐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흔히 여성을 ‘홍(紅)’으로 표현하곤 하였..
2. 그림과 시 1. 그리지 않고 그리기 ‘대교약졸(大巧若拙)’, 정말 큰 기교는 겉으로 보기에는 언제나 졸렬해 보이는 법이다. 시인의 덤덤한 듯, 툭 내뱉듯이 던지는 한 마디가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예리한 비수가 되어 독자의 의식을 헤집는다. 사의전신(寫意傳神)과 입상진의(立象盡意) 전통적으로 시와 그림은 서로 깊은 연관을 맺어 왔다. 옛말에 ‘시는 소리 있는 그림이요, 그림은 소리 없는 시’라 하였다. 특히 한시는 경물의 묘사를 통한 정의(情意)의 포착을 중시하는데, 이는 마치 화가가 화폭 위에 경물을 그리면서 그 속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표현하는 것과 같다. 경물은 객관적 물상에 지나지 않는데, 여기에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얹을 수 있는가. 화가는 말을 할 수 없으므로 경물이 직접 말하게 ..
5. 이명(耳鳴)과 코골기 내가 아는 걸 남이 몰라도, 내가 모르는 걸 남이 알아도 화가 난다 다시 연암에게로 돌아가자. 「공작관문고자서(孔雀館文稿自序)」의 한 도막이다. 어린 아이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그 귀가 갑자기 우는지라 놀라 기뻐하며 가만히 옆에 아이에게 말하였다. ‘얘! 너 이 소리를 들어보아라. 내 귀가 우는구나. 피리를 부는 듯, 생황을 부는 듯, 마치 별처럼 동그랗게 들려!’ 옆에 아이가 서로 맞대고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마침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이명(耳鳴)이 난 아이는 답답해 소리 지르며 남이 알아주지 않음을 한하였다. 일찍이 시골 사람과 함께 자는데,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고는 것이 게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고, 탄식하거나 한숨 쉬는 소리 같..
4. 눈과 귀가 있다 말하지 말라 이미지의 구성이 이렇게 탄탄하고, 언외의 함축이 이렇듯 유장하다 보니, 한시의 감상은 매우 지적이고 감성적인 바탕이 요구된다. 그 비밀은 아무에게나 알려줄 수도 없고, 아무나 알 수도 없다. 껍데기가 아닌 실상을 보고 들을 수 있는 눈과 귀 조선 후기의 문인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 1724~1802)는 「질뇌(疾雷)」란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레 소리에 산이 무너져도 귀머거리는 듣지 못하고, 해가 중천에 솟아도 소경은 보지 못한다. 도덕과 문장의 아름다움을 어리석은 자는 알지 못하며, 왕도와 패도, 의(義)와 리(理)의 구분을 속인은 변별하지 못한다. 아아! 세상의 남아들이여. 눈과 귀가 있다고 말하지 말라. 총명은 눈과 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조각 영각..
4. 허공 속으로 난 길② 함축함으로 상상의 여지를 만들어낸 백광훈의 ‘홍경사’ 다음은 조선 중기의 시인 백광훈(白光勳)의 「홍경사(弘慶寺)」란 작품이다. 秋草前朝寺 殘碑學士文 가을 풀, 전조(前朝)의 절 남은 비(碑), 학사의 글 千年有流水 落日見歸雲 천년을 흐르는 물이 있어서 지는 해에 돌아가는 구름을 보네. 이 작품을 다시 이렇게 배열해 보면 어떨까. 가을 풀 고려(高麗) 때 절. 남은 비(碑) 학사(學士)의 글. 천년(千年)을 흐르는 물이 있어서, 지는 해에 돌아가는 구름을 본다. 이미지의 배열이 박목월(朴木月)의 「불국사(佛國寺)」를 연상시킨다. 흰 달빛 자하문(紫霞門) 달 안개 물소리 대웅전(大雄殿) 큰 보살 바람 소리 솔 소리 범영루(泛影樓) 뜬 구름 흐는히 젖는데 흰 달빛 자하문 바람 소리..
3. 허공 속으로 난 길 시는 시인이 짓는 것이 아니다. 천지만물이 시인으로 하여금 짓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시에서는 사물이 직접 말을 건넨다. 시에서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이유 조선 후기의 문인 이옥(李鈺)은 「이언인(俚言引)」이란 글에서 “시는 만물이 사람에게 가탁하여 짓게 하는 것이다. 물 흐르듯 귀와 눈으로 들어와서 단전(丹田) 위를 맴돌다가 끊임없이 입과 손을 따라 나오니, 시인과는 상관하지 않는다[故其假於人, 而將爲詩也, 溜溜然從耳孔眼孔中入去, 徘徊乎丹田之上, 續續然從口頭手頭上出來, 而其不干於人也].”고 말했다. 사물은 제 스스로 성색정경(聲色情境)을 갖추고 있어, 단지 시인의 입과 손을 빌어 시가(詩歌) 언어(言語)로 형상화 된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이때 시인은 사물의 몸짓..
2. 영양(羚羊)이 뿔을 걸듯 대저 시인은 천기(天機)를 누설하는 자이다. 시를 쓰는 능력은 누구나 타고나는 것이 아니고,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언어의 그물에 걸려들지 않는 시인의 정신처럼 송나라의 유명한 평론가 엄우(嚴羽, 약 1290~1364)는 그의 『창랑시화(滄浪詩話)』에서 이렇게 말한다. 대저 시에는 별도의 재주가 있으니, 책과는 관계하지 않는다. 시에는 별도의 지취(旨趣)가 있으니 이치와는 관계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많이 읽고 이치를 많이 궁구하지 않으면 지극한 경지에는 도달할 수가 없으니, 이른바 이치의 길에 빠지지 않고, 말의 통발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 윗길이 된다. 夫詩, 有别材, 非關書也; 詩有别趣, 非關理也. 然非多讀書多窮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