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한시놀이터/서사한시 (587)
건빵이랑 놀자
3. 자식의 결혼식날을 기다려 남편따라 강물에 뛰어든 아내 擧家久乃覺 倉皇迷所爲 온 집안살마 오래되어서야 곧 깨달아 슬퍼하며 황급히 간 곳을 헤매니 山深多惡獸 恐爲虎豹欺 산 깊기에 사나운 짐승들 많아 범과 표범에 속임 당했을까 두렵네. 發卒列炬火 四面圍山陂 하인들 보내 늘어선 횃불로 사면으로 산과 언덕 에워싸니 人聲沸如雷 炬火東西馳 사람 소리 들끓기가 우레 같고 횃불은 동분서주하네. 自夜達天曙 形影安可知 밤으로부터 새벽이 될 때까지 찾지만 모습과 그림자 어디에 있나? 朝日出錦水 傳有婦人屍 아침해가 금강에서 나와 부인의 시체 있음이 두루 퍼졌네. 顔色儼若生 裳衣何淋漓 안색은 의연하게 살아 있을 때 같은데 옷만이 어째 젖었는가? 捨生豈無所 婦人必於斯 삶 버릴 곳이 어디에 없겠는가? 부인은 반드시 이곳이 마땅..
2. 양아들 장가가는 날, 죽기로 결심하다 烈烈尹家婦 早奉君子儀 열렬한 윤씨네 집안 아내는 일찍이 군자의 위의(威儀)로 받들어 恩義如邱山 誓言無睽違 은의가 언덕과 같았고 맹세한 말은 등지며 어기지 않았네. 丈夫不自愼 淪身漢水湄 장부는 스스로 삼가지 않아 몸을 한강에 빠뜨렸네. 賤妾痛肝膓 殺身當同歸 천한 아내는 간과 장으로 애통해하며 몸을 죽여 마땅히 함께 돌아가야 하나 君歿無宗嗣 妾死誰主祀 남편 죽어 종친에 후사가 없으니 아내 죽는다면 누가 남편을 제사지내리오? 黽勉延軀命 養育螟蛉兒 힘쓰고 힘써 몸의 목숨 연명해 양자의 아이 양육했다네. 一刻三抱兒 一日十哺兒 매우 짧은 시간에도 세 번 아이를 안고 하루에도 10번 아이를 젓먹이네. 兒年奄長成 彷彿父容姿 아이는 부쩍 장성하여 아비의 용모와 자태 방불케 하네..
1. 새에 비유하여 말하다 有鳥東南來 雙集嘉樹枝 어떤 새가 동남쪽에서 와서 아름다운 나뭇가지에 쌍쌍이 모이다가 中道其䧺死 雌鳴一何悲 도중에 수컷이 죽으니 암컷의 울음소리 어찌나 서글프던지? 雛生未及長 羽翮苦低微 어린새 태어났지만 자람에 이르지 않아 날갯깃이 몹시도 갖춰지지 않았네. 不得從雄死 含酸待雛飛 수컷따라 죽을 수 없어 씁쓸함을 머금고 어린새 날길 기다리네. 인용 전문 해설
계기. 젊은 시절에 과부가 되었지만 아들을 장가보내고서야 죽다 尹氏婦姓南. 歸尹氏未幾, 夫溺漢江死, 南氏方靑年寡而忍不死. 從伯叔居越中, 待其生男, 取養之. 當是時, 盖無幾微死色也. 旣養子長, 遂娶婦. 婦見親黨, 大會酒食歡甚, 南氏亦懽. 是夜失南氏, 擧家愕不知所往. 時患虎, 家人把火, 搜家後山麓殆遍, 南氏安可得? 哭而歸. 天明得死婦人於錦江中, 南氏也. 擧家方倉卒誰解者? 盖歸而得遺書篋笥中. 告兒及婦書也. 若曰: “汝母豈一日忘死哉. 而爲而父之夭無嗣. 幸養汝長, 娶婦賢, 吾今歸報而父. 我死必於水, 所以從而父也.” 於是, 擧家乃解. 嗚呼! 其婦人中古▣▣之流乎. 丁範祖作詩, 以美之曰: 해석 尹氏婦姓南. 윤씨 아내의 성은 남씨다. 歸尹氏未幾, 夫溺漢江死, 윤씨에게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윤씨가 한강에 빠져 죽었지..
해설. 모시옷에 비친 사별한 아내를 그리는 마음 이 시는 남편으로서 사별한 아내를 그리는 감회를 나타낸 내용이다. 작자 채제공은 신미(辛未: 1751) 정월에 부인 오씨가 죽었다는 기별을 외지에서 들었다. 부인의 장례를 치른 그해 봄에 이 시를 지은 것이다. 시는 모시옷에 사연이 담겨 거기서 정회(情懷)가 우러나온다. 아내는 선비의 옹색한 살림에 모처럼 남편을 위해 모시옷감을 마련한다. 그래서 옷을 짓던 중 그만 병이 나서 남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만 것이다. 이러한 사연이 작품의 전반부를 구성하고 있다. “식전 아침 빈방에서 모시옷 입어보니[朝來試拂空房裏]”부터 후반이 되는데, 그 옷을 마무리 짓게 된 경위는 과감히 생략한 것이다. 그리하여 곧바로 다 지어진 모시옷을 입어보고 아..
사별한 아내가 짓다 만 모시옷을 꺼내 입으며 백저행(白紵行) 채제공(蔡濟恭) 皎皎白紵白如雪 희디 흰 모시는 흰 눈 같으니 云是家人在時物 집 사람이 있을 때의 물건이라네. 家人辛勤爲郞厝 집 사람이 고되게 낭군 위해 만들다가 要襋未了人先歿 바지 허리 대고 동정다는 것 마치지 못하고 먼저 죽었지. 舊篋重開老姆泣 오래된 상자 거듭 열다가 늙은 침모는 울며 말하네. 誰其代斲婢手拙 “저의 손재주 없으니 누가 대신하여 만들까요?” 全幅已經刀尺裁 온 포목 이미 마름질은 했지만 數行尙留針線跡 두어 줄은 아직도 바느질 자취 남아 있네. 朝來試拂空房裏 아침이 와 빈 방에서 시험 삼아 펼치니 怳疑更見君顔色 아스라이 다시 그대의 얼굴 보이는 듯. 憶昔君在窓前縫 옛날에 그대 창 앞에서 바느질할 적을 추억해보니, 安知不見今朝着 어..
버리지 않는다는 낭군의 약조를 굳건히 지킨 기녀 장대지 장대지(章臺枝) 이광려(李匡呂) 지은 계기. 버리지 않겠노라 약조했지만 끝내 함께 하지 못하다 章臺枝者, 故坡平尙書之姬也. 歲辛亥尙書爲成川, 姬邑婢也. 時年十五六, 旅行諸妓中退然不見態色, 公偶見而悅焉, 引欲自侍固不可. 叩其故, 對曰: “妾父良人也, 父將死時, 以女爲賤流, 顧語母甚戚之. 妾用是痛心, 苟有所從, 誓畢身於一人耳.” 公感其言, 卽許以不棄焉. 旣幸而益忠敬, 公心宜之. 居數月去成川爲海西觀察使. 與之約曰: “某時遣迎, 汝且待之.” 姬敬諾. 旣而不果, 盖之官不數月, 又遞去矣. 公居家貧, 又性拙, 不能輒置姬侍. 待更作向西一郡迎取, 屢不諧且六七年. 姬守益堅, 然已沈病矣, 其未病, 嘗一至京拜公而去. 及公留守江都, 聞其已死矣, 公大傷懊, 爲遣親信人持文往祭..
해설. 사회의 진상을 비추인 작품 「장대지(章臺枝)」라는 이 작품은 병서(幷序)와 12수의 5언절구 연작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산문으로 씌어진 병서에서 사실서술과 함께 창작경위를 밝혀놓았다. 12수의 시편은 각각 독립적이면서 하나로 연계되어 있는데 장대지라는 작중의 주인공이 독백하는 형태다. 서사주체가 서정적 1인칭 화법을 쓴 것이라고 하겠다. 때문에 다분히 서정시적이지만 병서와 아울러 전체로서 서사시로 간주하게 된 것이다. “장대류 길가에 선 버드나무 봄바람 부는 이삼월에 이 몸은 나무의 한 가지라면 오직 한분만 꺾도록 하겠어요[章臺路傍樹 東風二三月 妾身比一枝 只許一人折].” 12수의 서사(序詞)에 해당하는 제1수에서 자신의 이름을 장대지라고 한 뜻이 드러나는 동시에 그녀의 비극적인 인생이 암시되고 있..
3. 비류강처럼 변함없이 그대 곁에 있겠어요 其九 抵死與夫君 如今全此身 죽음에 닥쳐 그대와 함께 하기에 지금과 같이 이 몸을 온전히 했지요. 去去傷此身 不作良家人 시간 지날수록 이 몸 상하리니, 양반집 사람 되지 못하겠죠. 其十 良家有夫婦 賤家無夫婦 양반집엔 부부가 있지만 천한 집엔 부부가 었죠. 賤家亦有身 滅身方見守 천한 집이라도 또한 몸은 있으니 몸 사라진대도 곧 수절을 드러내어요. 其十一 不道妾無情 莫作相思死 제가 무정하다 말하지 마시고 그리움으로 죽었다 하지 마셔요. 道妾相思死 有如沸江水 제가 상사병으로 죽었다고 말을 하신다면 비류강 물과 같을 것이어요. 其十二 沸江流日夜 巫峯十二鬟 비류강은 낮밤으로 흐르고 무산의 열두 봉우리 萬古留不滅 娘名與此山 만고에 머물러 사라지지 않으니 저의 이름도 이 산..
2. 박명에도 그대 위해 정절 지키네 其五 不敢恨薄命 到底是君恩 감히 박명이 한스럽지 않는 것은 가는 곳마다 그대의 은혜이기 때문이죠. 君知妾有父 父有臨終言 그대는 저의 아버지 있을 적에 아버지가 임종 때에 한 말이 있다는 걸 아시죠. 其六 父有臨終言 女有終身地 아버지가 임종 때에 한 말이 있네. “딸은 몸을 마칠 땅이 있어야 한단다.” 章臺士人子 死爲尹府使 장대지는 선비의 자식으로 윤부사를 위해 죽었다네. 其七 望郞在天上 天上隔無期 낭군을 바라보니 천상에 계셔 천상은 가로막혀 기약할 수 없어라. 亦知君憐妾 寧知妾死時 또한 그대가 저를 가엾게 여길 줄은 알지만 어찌 저의 죽은 때를 알겠으리오. 其八 人生作女子 極知良苦辛 사람이 태어나 여자가 되어 매우 진실로 괴로움을 알죠. 辛苦盡一生 成就爲一人 괴로움으..
1. 그대에게만 꺾임을 허락했지만 그대 떠난 후론 만나지 못하죠 其一 章臺路傍樹 東風二三月 장대의 버들은 길가의 나무가 봄바람 부는 2~3월에 妾身比一枝 只許一人折 첩의 몸이 한 가지라고 한다면 다만 한 사람에게 꺾임만을 허락하리. 其二 幸許一人折 詎免終身思 다행히 한 사람에게 꺾임을 허락했으니 어찌 종신토록 그리워함 면하리오? 終身思謂何 寸心君見知 종신토록 그리워함은 무언가? 일편단심 그대 아시려나요? 其三 寸心儻見知 萬死死不寃 일편단심 혹시 아신다면 만 번 죽더라도 죽음이 원망 않으리. 情知妾薄命 不是君少恩 정으로 제가 박명할 줄 아노니 이것은 그대의 은혜가 적기에 그런 게 아니죠. 其四 憔悴到如今 留君昔時折 초췌하여 도리어 지금 같은데 그대는 예전 꺾던 때에 머물러 있으니 結作同心帶 同心作死結 동심..
지은 계기. 버리지 않겠노라 약조했지만 끝내 함께 하지 못하다 章臺枝者, 故坡平尙書之姬也. 歲辛亥尙書爲成川, 姬邑婢也. 時年十五六, 旅行諸妓中退然不見態色, 公偶見而悅焉, 引欲自侍固不可. 叩其故, 對曰: “妾父良人也, 父將死時, 以女爲賤流, 顧語母甚戚之. 妾用是痛心, 苟有所從, 誓畢身於一人耳.” 公感其言, 卽許以不棄焉. 旣幸而益忠敬, 公心宜之. 居數月去成川爲海西觀察使. 與之約曰: “某時遣迎, 汝且待之.” 姬敬諾. 旣而不果, 盖之官不數月, 又遞去矣. 公居家貧, 又性拙, 不能輒置姬侍. 待更作向西一郡迎取, 屢不諧且六七年. 姬守益堅, 然已沈病矣, 其未病, 嘗一至京拜公而去. 及公留守江都, 聞其已死矣, 公大傷懊, 爲遣親信人持文往祭之, 姬死時年二十餘. 將死告母曰: “埋我官道側, 儻我公宦遊過之.” 聞者悲其言. 尙書余重表..
‘산유화’란 노래를 부르고 스러진 향랑 산유화녀가(山有花女歌) 최성대(崔成大) 1. 잘 자란 향랑, 3년 간의 꿈 같은 시집생활 砥柱採薪女 哀歌山有花 不識女娘面 猶唱女娘歌 儂是落同女 落同是娘家 娘有羣姊妹 父母最娘憐 少小養深屋 不敎出門前 八歲照明鏡 雙眉柳葉綠 十歲摘春桑 十五已能織 父母每誇道 阿女顔色好 願嫁賢夫婿 同閈見偕老 常恐別親去 不解婦人苦 十七着繡裳 蟬鬂加意掃 有媒來報喜 善男顔花似 袴上繡裲襠 足下絲文履 自言不惜財 但願女賢美 牛羊滿谷口 綾錦光篋裏 阿父喚母語 涓吉要嫁女 金鐙雙裌裙 裝送上駿馬 隣里賀爺孃 阿女得好嫁 山花揷鬂髻 野葉雜釵鐶 升堂捧雙盃 受拜翁姥歡 曉起花滿天 夜宿花滿床 茸茸手中線 爲君裁衣裳 羞學蕩女兒 發豔照里閭 人言冶遊樂 儂織在家居 東門有旨鷊 北墠有綠蕨 三年靜琴瑟 事主未曾失 ⇒해석보기 2. 자신을 이..
해설. 낭만적으로 향랑의 이야기를 담아내다 이 시 역시 향랑 고사를 작품화한 것이다. 그러나 앞의 「향랑요(薌娘謠)」와 대비해보면 내용 성격이 서로 같지 않다. 「산유화녀가(山有花女歌)」에서는 향랑이 시집가기 전에 계모에게 구박을 받은 것이 아니고 오히려 친부모 슬하에서 귀염을 받으며 곱게 자랐던 것으로 되어 있다(여기서는 어머니가 세상을 뜬 것은 출가한 후의 일이다). 결혼한 다음에도 남편이 처음부터 포악했던 것이 아니고 신혼 초에는 금실이 좋은 편이었다. 그러다가 남자가 변심을 한 것이다. 왜 그랬던가? 향랑은 워낙 정숙하고 근면해서 남편의 호색적ㆍ속물적 욕구에 부응하지 못한 것으로 그려진다. 밤 늦게 베를 짜면 빨리 오지 않았다, 곱게 치장하지 못한다 이런 식이었다. 향랑은 남편에게 무조건 순종하는..
2. 자신을 이해해주는 이 없어 스러진 향랑 豈意分明別 恩情中途絶 어찌 분명히 헤어져 은혜로운 정이 중도에 끊길 걸 의도했겠는가? 織罷故嫌遲 粧成不言好 길쌈이 끝났지만 짐짓 더디다고 싫어하고 화장 다 됐지만 좋다 말하지 않네. 惡婦難久留 語妾歸去早 사나운 아내 오래 머물게 하기 어렵다하며 “아내 돌아가 떠나길 일찍하라”고 말하네. 含悲卷帷幔 痛哭出畿道 슬픔 머금고서 휘장 걷고 통곡하며 길로 나가니 春山異前色 淚葉蕪蘼草 봄산은 예전과 빛깔이 달라 잎 무성한 장미에 눈물 떨구네. 願將奉君意 爲君暫鞠于 원컨대 장차 그대의 뜻 받들어 그대 위해 잠시 집에서 살려하네. 傳聞上荊村 有婦已從夫 전하는 말 들어보니 상형 마을에 아내는 이미 남편을 따른다네. 驅車畏日暮 反袂猶回顧 수레 몰며 날이 저무는 게 두렵고 소매 ..
1. 잘 자란 향랑, 3년 간의 꿈 같은 시집생활 砥柱採薪女 哀歌山有花 지주비 근처에서 땔나무 모으던 처녀가 애달프게 ‘산유화’를 부르네. 不識女娘面 猶唱女娘歌 처녀의 얼굴 알지 못하나 오히려 처녀의 노래를 부른다네. 儂是落同女 落同是娘家 우리들은 같은 부락의 처녀인데, 같은 부락에 향랑 집이 있지요. 娘有羣姊妹 父母最娘憐 향랑에겐 뭇 자매 있었는데 부모가 가장 향랑을 가련히 여겼죠. 少小養深屋 不敎出門前 어렸을 땐 깊은 방에서 길렀고 문 앞 나가라고 가르치지 않았다네요. 八歲照明鏡 雙眉柳葉綠 8살 때 밝은 거울에 얼굴 비추니 두 눈썹 버들개지처럼 푸르고 十歲摘春桑 十五已能織 10살 때 봄 뽕잎을 땄으며 15살 땐 이미 길쌈할 수 있었다죠. 父母每誇道 阿女顔色好 부모는 매번 과장되게 말했죠, “우리 딸 ..
열녀 향랑의 노래 향랑요(薌娘謠) 이광정(李光庭) 1. 착한 향랑, 미친 남편을 만나다 一善女子名薌娘 生長農家性端良 少小嬉戱常獨遊 行坐不近男兒傍 慈母早歿後母嚚 害娘箠楚恣暴狂 娘愈恭謹不見色 紡絲拾菜常滿筐 十七嫁與林家兒 兒年十四亦不臧 愚騃不知禮相加 擢髮掐膚殘衣裳 謂言稚兒無知識 年長還又加悖妄 惡娘箠撻不去手 彪虎決裂誰敢向 →해석보기 2. 친부모와 외숙부조차 받아들여주질 않네 舅姑憐娘送娘家 荷衣入門無顔儀 母怒搥床大叱咜 送汝適人何歸爲 嗟汝性行必無良 吾饒不畜棄歸兒 閉門相與犬馬食 父老見制無奈何 爲裝送娘慈母家 母家悲憐迭戚嗟 爲言汝是農家子 見棄惟當去從他 四鄰皆知汝無罪 胡乃虛老如花容 娘言此言大不祥 兒來只欲依舅公 女子有歸不更人 兒生已與謀兒衷 見逐秪緣數命奇 之死矢不汚兒躳 數言不從終怒視 且謂尋常兒女語 要人涓吉迎娘去 釃酒宰羊列品庶..
해설. 개가(改嫁)를 권하는 현실에 맞선 여성의 주체적 자각 향랑의 사적은 『선산읍지(善山邑誌)』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향랑은 상형곡(上荊谷) 양민의 딸로 임칠봉(林七峰)의 처가 되었다. 계모에게 용납이 되지 못하고 남편에게 버림받은 바 되자 그의 외숙과 시아버지는 개가할 것을 권하였다. 향랑은 듣지 않고 지주비(砥柱碑) 아래 이르러 다래[髢]와 치마를 풀어 나무하는 소녀에게 맡기며 ‘이것을 우리 부모님께 갖다드려 나의 죽음을 증언하고 시체를 물속에서 찾게 해다오.’라고 말하고 나서 산유화 노래를 불러 그 소녀에게 가르쳐준 다음 드디어 물에 빠져죽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 해는 숙종 28년(1702)이다. 그런데 향랑 이야기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내내 전승되었으며 향랑이 불렀던 산유화는..
7. 선산의 유풍이 향랑에게 스미다 世人嘖嘖說靈異 세상 사람들 혀를 차며 신령하고 기이하다 말하지만 孝烈如娘終無訴 효열이 향랑과 같더라도 끝내 하소연할 곳 없었다니. 生逢母嚚歸夫凶 살아선 완악한 계모 만났고 흉악한 남편에게 시집갔으니 阿誰見聞能如是 누가 보고 들은 게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至行端宜化暴愚 지극한 행실은 실로 마땅히 사납고 어리석은 이 변화시킬 만한데도 終不見容而底死 끝내 용납되지 않아 죽음에 이르렀다. 或言義烈大抵竆 혹자는 의열함이 대체로 곤궁하게 한다 말들 하지만 我謂竆後見烈義 나는 곤궁해진 후에야 의열해짐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天生義烈風百世 하늘이 의열을 내면 유풍(遺風)이 100대토록 전해지니 不待生前倘來寄 생전에 혹 와서 붙은 것 기다릴 거 없네. 烏山洛江節義藪 금오산과 낙..
6. 향랑 시신을 찾아서 是處偏近竹林祠 이곳은 죽림사 근처이니 江上高碑名砥柱 강가의 높은 비석 이름은 지주비다. 吉子當年餓首陽 길재는 그 당시에 아사한 백이숙제처럼 금오산에 은거하여 淸風萬古只此土 맑은 유풍이 오래도록 이 땅에 이어져 娘生卑微能知義 향랑은 미천하게 태어났음에도 의리를 알아서 捐身得地何其奇 몸을 버림에 마땅한 땅을 얻었으니 얼마나 대단한가. 樵女傳衣送阿爺 나무꾼 계집아이는 전해 받은 옷을 아버지께 전송하니 浹旬號哭循江湄 열흘 동안 부르짖고 곡하며 강가를 맴돌았네. 層波嗚咽江鳥啼 층층의 파도 오열하고 강의 새도 우니 江上招招魂有知 강가에서 부르고 부르자 혼도 알았던지 阿爺旣去尸載浮 아비 떠난 뒤에 주검이 떠올랐는데 單衫被面顔如故 홑적삼으로 가린 얼굴, 예전 그대로였다. 인용 전문 해설
5. 소녀에게 자신의 기구한 사연을 남기다 悲吟披髮下江干 슬프게 읊조리며 머리를 풀어헤치고 강가로 내려가니 霜葉鳴秋蘆花睡 서리 맞은 잎사귀는 가을날 바스락거리고 갈대꽃은 오므라들었네. 江頭採薪小女兒 강어귀에서 땔나무 채취하던 어린 여자 아이를 携來問名年十二 데려 와 이름을 물으니 나이는 12살이란다. 沙際兩立盡心語 모래톱에 둘이 서서 진심으로 말했다. 汝家幸與吾家邇 “너의 집은 다행히도 우리 집과 가깝구나. 嗟吾隱痛無所歸 아! 내 마음의 고통 붙일 데가 없어서 今將舍命隨淸水 이제 장차 목숨을 버려 맑은 물 따르려 한단다. 但恐死去不明白 다만 죽더라도 명백하게 이유를 말하지 않으면 世人疑吾有他志 세상 사람들이 내가 다른 뜻이 있다고 의심할까 걱정했는데 而今遇汝眞天幸 지금 너를 만난 건 참으로 하늘이 내린 ..
4. 향랑, 죽기로 결심하다 弱質東西不見容 ‘여자의 몸, 사방에서 받아들이지 않았고 四顧茫茫迷去津 사방을 봐도 망망해서 나루터 갈 길 희미하네. 忍詬但能汙吾義 치욕을 참자니 다만 나의 뜻 더럽혀질 것이고 自裁還爲舅所惡 자결하자니 도리어 시아버지의 미움만 살 것이니, 仰天噓唏拊心啼 하늘 보고 한숨 쉬며 가슴 치며 우니 玉筯亂落如飛雨 날리는 비처럼 옥 젓가락 같은 눈물 어지러이 떨어지네. 父不我子夫不婦 ‘아버지는 나를 자식으로 여기지 않고 남편은 아내로 여기지 않으며 再來還逢舅姑忤 다시 와선 도리어 시부모의 미움만 샀네. 三從道絶人理乖 삼종지도는 끊어졌고 사람의 윤리 어그러졌으니 有生何面寄寰㝢 살아도 무슨 면목으로 세상에 붙어살거나. 嗚呼一身無所歸 아! 이 한 몸 돌아갈 곳 없는데 面前滄波流萬古 면전의 푸른..
3. 다시 찾은 시댁, 매몰찬 시아버지 跳身還向故夫家 몸을 빼내 옛 남편 집으로 돌아가니 野心未化狂童且 야비한 마음 변하지 않아 미친 아이 그대로였다. 舅言吾兒大無行 시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내 아들 몹시 행실이 없으니 汝雖復來何所益 네가 비록 다시 온대도 무슨 보탬이 있겠느냐. 不如從他美丈夫 다른 멋진 남자 따라 寒衣飢食安床席 추우면 옷 입고 주리면 먹고 편안히 살 거라. 吾兒已與汝相絶 우리 아들은 이미 너와 서로 관계를 끊었으니 不復問汝有所適 네가 어디로 가든 다시 묻진 않으련다.” 娘爲垂淚復公爺 향랑은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 시아버지께 말했다. 不意公今有此言 “공께서 이 말씀을 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貧兒無敎又無行 가난한 저는 배움도 행실도 없지만 此心誓不登他門 이 마음으로 맹세컨대 다른 집 문..
2. 친부모와 외숙부조차 받아들여주질 않네 舅姑憐娘送娘家 시부모는 향랑을 가엾게 여겨 친정집으로 보내니, 荷衣入門無顔儀 옷가지를 매고 문에 들어섰지만 얼굴을 들지 못하는데 母怒搥床大叱咜 계모는 상을 치고 크게 꾸짖었다. 送汝適人何歸爲 “너를 시집보냈는데 어째서 돌아왔느냐? 嗟汝性行必無良 아! 너의 행실이 보나마나 불량했겠지. 吾饒不畜棄歸兒 내 살림이 넉넉하대도 쫓겨난 자식 거둘 순 없다.” 閉門相與犬馬食 계모가 문을 닫았기에 개와 말과 함께 먹으니 父老見制無奈何 아빠는 늙어 눌려 지내 어찌할 수 없었고 爲裝送娘慈母家 행장을 꾸려 향랑을 외가로 보냈네. 母家悲憐迭戚嗟 외가는 슬퍼하고 가련해하며 번갈아가며 근심하고 탄식했다. 爲言汝是農家子 외삼촌이 말씀하셨다. “너는 농가의 자식으로 見棄惟當去從他 버림당했으..
1. 착한 향랑, 미친 남편을 만나다 一善女子名薌娘 일선부에 사는 여자 아이의 이름은 향랑으로 生長農家性端良 농촌에서 자랐지만 성품은 단아했으며 少小嬉戱常獨遊 어려서부터 장난이 적었고 항상 혼자 놀아 行坐不近男兒傍 다닐 때나 앉을 때나 남자 곁엔 가지 않았다. 慈母早歿後母嚚 친 엄마 일찍 돌아가셨고 계모는 우악스러워 害娘箠楚恣暴狂 향랑을 해하며 매질하고 포악하게 굴어도 娘愈恭謹不見色 향랑은 더욱 공경하고 삼가며 싫은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紡絲拾菜常滿筐 길쌈한 것과 나물을 딴 것이 항상 광주리에 가득했다. 十七嫁與林家兒 17살에 임씨네 아들에게 시집갔는데 兒年十四亦不臧 남편은 14살에 또한 불량한데다 愚騃不知禮相加 어리석어 예로 서로 대우할 줄을 몰라 擢髮掐膚殘衣裳 머리채 잡고 살을 할퀴며 옷을 뜯곤 했다..
강가 여자의 노래 강상여자가(江上女子歌) 이광정(李光庭) 1. 원통한 죽음을 앙갚음하러 길을 떠나다 江上持瓢誰氏兒 玉貌蹣跚兩相隨 自言幼少不知家 三歲零丁逐寒鴉 阿爺南州責逋奴 歸舟正與商人俱 巨禍潛祟越中裝 寃魂夜泣吳天霜 兒齡八九尠兄弟 四顧茫茫無所抵 父死尸沒向誰叩 讎强身弱難容手 秪與兒婢兩結束 出家號呼竆山谷 變衣匿跡尋讎去 風行草宿靡處所 懷中的皪雙金刀 頭上髼鬆兩蓬毛 丹衷耿耿天日皎 秋岸三紅河上蓼 →해석보기 2. 열 살의 소녀가 아버지 원수를 갚다 商人逐利無東西 昨夜舟泊銅江堤 林烏啞啞霜月白 碧波碇沈囂語寂 江妃嗚泣助煩寃 約束睡魔噤一村 金刀跳出神獨知 一擲正中讎人脾 斬胷茹肝復歸路 曉霧瞳矓汀上樹 →해석보기 3. 복수할 수 있는 깡다구가 있던 조선 여자의 힘 天明客子爭奔走 死與尸者果誰某 是夜寄宿老婆女 隔牕暗聞兩兒語 爲言終始僅如..
해설. 연약한 여자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은 이야기를 형상하다 여자의 연약한 몸으로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갚았다는 이야기는 야담으로 전하는 것이다. 그 이야기가 원주 땅에 은거했던 학자 정시한(丁時翰)에 결부되어 꾸며진 것도 있고, 삼남(三南)에서 기사(奇士)로 알려졌던 소응천(蘇凝天)에 연결된 것도 있다. 후자는 안석경(安錫儆)의 손에서 「검녀(劍女)」라는 한문단편으로 빼어나게 작품화된 것이다. 이 시는 원수를 갚은 사건을 전하는 매개자를 주막의 할멈으로 설정하였다. 할멈이 작중화자다. 야담에서 명망가에 결부시켜 흥미를 끌게 한 방식과는 다르다. 시는 어린 소녀의 몸으로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다는 사실 자체를 중시하고, 그것의 의미를 드러내는 데 치력(致力)한다. 내용을 극히 단순화시키면서 작중화자를 평범..
3. 복수할 수 있는 깡다구가 있던 조선 여자의 힘 天明客子爭奔走 하늘이 밝아오니 나그네들 분주함을 다투지만 死與尸者果誰某 죽인 자와 죽은 자는 과연 누구인가? 是夜寄宿老婆女 이 밤에 기숙하던 할머니는 隔牕暗聞兩兒語 창 너머로 몰래 두 아이의 말을 듣고는 爲言終始僅如此 말했다. “시작과 끝이 겨우 이러하니, 不知何許小娘子 어떠한 어린 낭자인지는 알지 못한다네.” 聞者相傳但涕淚 듣는 사람들이 서로 전하며 다만 눈물 흘릴 뿐 肎料稚顔辦大事 어찌 생각했으랴. 어린 소녀가 대사를 해낼 줄을. 重男賤女世人情 아들을 중히 여기고 딸을 천히 여기는 세상의 인정이지만 十子何如一女英 열 명의 사내 어찌 한 명의 영리한 딸만 하겠는가. 君看千古復讎人 그대 보시오. 천고의 복수했던 사람 중에 未有年齡如此倫 나이가 이와 같은..
2. 열 살의 소녀가 아버지 원수를 갚다 商人逐利無東西 상인은 이끗을 따라 사방 다니다가 昨夜舟泊銅江堤 어젯밤 배를 銅雀津에 대었지요. 林烏啞啞霜月白 숲 까마귀 까악까악 울고 서리 맞은 달은 새하얘 碧波碇沈囂語寂 푸른 파도에 닻 내리자 떠들썩하던 말도 잔잔해졌죠. 江妃嗚泣助煩寃 강비가 오열하여 번뇌한 원혼을 도우니 約束睡魔噤一村 졸음귀신에 묶여 한 마을 적막해졌죠. 金刀跳出神獨知 금빛 칼 빼어 내니 귀신만이 홀로 알고 一擲正中讎人脾 한 번 던지니 바로 원수놈 가슴팍에 맞았죠. 斬胷茹肝復歸路 가슴을 베어 간을 씹고서 다시 길로 나왔더니, 曉霧瞳矓汀上樹 새벽안개만 강가의 나무에 희미했죠.” 인용 전문 1. 원통한 죽음을 앙갚음하러 길을 떠나다 2. 열 살의 소녀가 아버지 원수를 갚다 3. 복수할 수 있는 깡..
1. 원통한 죽음을 앙갚음하러 길을 떠나다 江上持瓢誰氏兒 강가에서 바가지 든 이는 누구의 아이인가? 玉貌蹣跚兩相隨 옥 같은 모습으로 비틀비틀 둘 서로 따르네. 自言幼少不知家 스스로 말하네. “어려서부터 집은 모르고 三歲零丁逐寒鴉 3년에나 외로이 찬 까마귀 쫓았죠. 阿爺南州責逋奴 아버지는 남쪽 땅에서 도망간 노비를 잭임 맡아 歸舟正與商人俱 돌아오는 배에서 바로 상인들과 함께 했답니다. 巨禍潛祟越中裝 큰 재앙과 남모를 재앙이 월나라 전대에서 일어나 寃魂夜泣吳天霜 원통한 아버지의 혼이 밤새 오나라 서리에서 울었답니다. 兒齡八九尠兄弟 제 나이 8~9세에 남자 형제가 없어 四顧茫茫無所抵 사방으로 막막하여 저항할 수 없었어요. 父死尸沒向誰叩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시신은 사라졌으니 누굴 향해 물으며 讎强身弱難容手 원수..
기생의 절개라 하여 하찮게 여기지 말라 단천절부시(端川節婦詩) 김만중(金萬重) 지은 이유. 미천한 신분 때문에 절개를 지켰음에도 정표되지 못하다 節婦名逸仙, 端川官妓也. 本郡報其節行, 禮官以素賤, 抑而不旌. 豫讓不死於范中行而死於智氏, 先儒奚取焉? 其言不曰: “士爲知己者死乎.” 余時爲儀部員外, 蓋嘗陳以此義, 退而綴其行實, 以爲歌詩. 庶幾樂府所錄「秦羅敷焦仲卿妻詩」遺意云. ⇒해석보기 1. 서울로 떠나야 하는 낭군과 단천에 남아야 하는 일선 皚皚黑山雪 鮮鮮濁水蓮 皎皎靑樓婦 自名爲逸仙 逸仙小家子 初不學詩禮 感郞一顧恩 本無衿帨誡 郞爲上舍生 家在京城裏 妾爲端州婢 去留不由己 ⇒해석보기 2. 헤어지던 날 피로 맹세하다 喔喔晨鳴鷄 燭燭晨明月 蕭蕭征馬嘶 行子侵晨發 逸仙送上舍 相送雲嶺頭 嶺頭有流水 各自東西流 流波日以遠 千里復..
해설. 시인의 감정은 담지 않고 계급적 억압을 담담이 담아내다 이 시는 한 기생 신분의 여성이 사랑과 절조를 지킨 이야기를 서술한 것이다. 시인은 자서(自序)에서 이 사적(事蹟)은 자신이 예조좌랑(禮曹佐郎)으로 있을 때 접수된 것으로 밝혔다. 「서포연보(西浦年譜)」에 김만중이 예조좌랑에 보임된 것은 을사년 5월인데 이 「단천절부시(端川節婦詩)」를 지은 것도 그해의 일로 기록하고 있다. 시의 창작연도는 그의 나이 29세 때인 현종 6년(1665)인 것이다. 함경도 『단천읍지(端川邑誌)』를 보면 열녀조(烈女條)에 ‘관비일선(官婢一仙)’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기(妓)는 신분적으로 비(婢)에 속하기 때문에 관비(官婢)라고 했을 것이며 이름은 한자로 표기되는 과정에서 각기 다르게 씌어졌을 것이다. “일선은 소시에..
7. 세상에 드문 절개이니 역사가들이여 소홀히 말라 春露何圑圑 秋霜被草莾 봄이슬은 어찌나 동글동글한가? 가을서리가 풀더미에 입히네. 嵽嵲北邙陂 纍纍四尺墓 우뚝한 북망의 언덕에 즐비한 4척의 무덤들. 朝挹澗中水 暮攀松柏樹 아침에 시내의 물 긷고 저녁엔 소나무 잣나무 어루 만지며 妾淚樹可枯 妾恨城可崩 첩의 눈물에 나무는 고사할 만하고 첩의 한에 성은 무너질 만하네. 慟哭流泉咽 哀響散靑冥 통곡은 샘에 흘러 오열하고 애통한 울림은 푸른 하늘에 흩어져 어둡네. 羈禽爲嘲哳 孤獸爲跼顧 새장 속 새 이 때문에 울고 외로운 짐승 이 때문에 머뭇거리며 돌아보네. 行人盡回首 駐馬不忍去 행인은 모두 고개를 돌리고 멈춘 말들 차마 떠나질 못하네. 苦節世所希 姬姜亦不如 괴로운 절개 세상에 드문 것이니 궁중의 아녀자라도 같이할 수..
6. 서울에 들어와 결국 한 가족으로 인정받다 朝越咸州關 暮渡城川江 아침에 함주의 관문을 넘고 저녁에 성천의 강을 건너니 肌裂朔野風 足瘃鐵嶺霜 살갗이 북녘 매서운 바람에 찢어지고 발이 철령의 서리에 동상 걸리네. 望見東郭門 痛哭穿衢街 동대문을 바라 보고 통곡하며 길거리 지나니 京洛百萬戶 何處是君家 서울의 많고 많은 집들 어느 곳이 낭군의 집인가? 路從相識問 君家誠易知 길을 가며 서로 아는가 물어보니 낭군의 집 진실로 알기 쉽네. 外庭設柳車 內庭設素帷 바깥 뜰에 유거 설치되어 있고 안쪽 뜰엔 흰 장막 설치되어 있네. 遠行已有日 親賓紛雜沓 낭군 멀리 떠난 지 이미 여러 날이라 친지와 빈객이 분주하게 어지러이 섞이네. 上堂拜尊姑 慈顏忽不睪 당에 올라 시어머니께 절하니 자상한 얼굴이 갑자기 즐거워하지 않더니 咄..
5. 색이 변한 동심결과 낭군의 비보 朝朝啓箱篋 珠淚雙雙結 아침마다 상자를 열고 구슬같은 눈방울 쌍쌍이 맺히니 篋中亦何有 有郞頭上髮 상자 속엔 또한 무엇 있는가? 낭군 머리 위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동심결 있네. 如何九秋霜 染此綠雲鬒 어째서 9월 가을 서리에 이 푸른 머리카락이 오염되었는가? 見此心內痛 心知人事變 이걸 보니 마음이 내심 아프니 마음으로 사람 일의 변화 알겠구나. 客從京洛至 遺我一書札 손님이 서울로부터 와서 나에게 한 편지를 주네. 開緘讀未竟 長慟肝腸絶 편지를 열어 다 읽지 못했는데 길이 애통스러워 애간장 끊어지네. 上堂辭阿母 下堂理行裝 당에 올라가 기생어미에게 사직인사 하고 당에서 내려와 행장 꾸리네. 東市賣金釵 西市賣羅裳 동쪽 저자에서 금 팔찌 팔고 서쪽 저자에서 비단 치마 팔아 南市買苴..
4. 수청을 거부한 일선, 죽기를 결심하다 逸仙謝差人 不幸惡疾纏 일선은 관리에게 말했다. “불행히 나쁜 질병에 얽매여 衆人所厭避 況可侍貴人 뭇 사람이 싫어하며 피하는데 하물며 귀한 사람을 모시는 것에는 오죽하겠습니까.” 差人還致辭 一如逸仙言 관리가 돌아와 말을 마치길 한결같이 일선의 말대로 했지만 未回太守意 反觸太守嗔 태수는 뜻을 바꾸지 않고 도리어 태수의 성냄에 저촉되었네. 阿母心煩惱 曰兒一何愚 기생어미가 내심 번뇌하다가 말했네. “요년아 한결같이 뭐에 걱정하누? 生爲娼婦身 悅己人盡夫 나서 기생의 몸이 되었으니 자기 좋아해주는 사람이 모두 남편인 걸. 雖爲人所賤 亦爲人所憐 비록 남들이 일천하게 여기지만 또한 사람들이 가련하게도 여기기도 하지. 何況侍按使 平地登神仙 더군다나 안찰사를 모시는 것은 평지에서..
3. 단천에 들른 안찰사 일선에게 맘을 품다 按使從西來 玉節何煌煌 안찰사(按察使)가 서쪽으로부터 오는데 옥절이 어찌나 번쩍이던지. 璽書在馬頭 道路自生光 옥새 찍힌 공문서 말머리에 있으니 길에 절로 빛이 나네. 按使飭無驅 襜帷暫踟躕 안찰사가 몰지 말도록 주의 주니 귀인의 수레가 잠시 머뭇거리네. 將爲問謠俗 抑爲戒畏途 장차 소문과 풍속 물으려는지 아니면 위험한 길 경계하려는지? 按使無所問 按使無所戒 안찰사는 묻는 게 없고 안찰사는 경계하는 게 없지만 怳然若有覩 中心自歡喜 황홀한 듯 보게 있는지 내심 스스로 기뻐하네. 太守敬按使 飾妓侍中房 태수는 안찰사를 공경해 기녀를 꾸며 중방에서 시중들게 하니 北方出傾城 東隣進名倡 북방의 경성지색 나오게 하고 동쪽 이웃의 이름난 창기 나오게 하네. 室內贈羅襦 小衙脫明璫 집..
2. 헤어지던 날 피로 맹세하다 喔喔晨鳴鷄 燭燭晨明月 꼬끼오 새벽닭이 울고 환하디 환한 새벽달이 밝아 蕭蕭征馬嘶 行子侵晨發 쓸쓸히 정벌하러 가는 말 울어대고 떠나는 이 새벽에 이르러 출발하네. 逸仙送上舍 相送雲嶺頭 일선은 유생을 전송하러 서로 마운령(摩雲嶺) 정상에서 전송하네. 嶺頭有流水 各自東西流 마운령 정상에서 흐르는 물 각각 절로 동쪽으로 서쪽으로 흘러 流波日以遠 千里復千里 흐르는 물결은 날로 멀어지니 천 리에 더하여 천 리라네. 上舍謂逸仙 此別如此水 유생이 일선에게 말하네. “이 이별은 이 물과 같으니 盛年不可棄 空床難獨守 융성한 나이 버릴 순 없고 빈 침상은 독수공방하기 어렵우며 宛宛楊柳枝 一一行人手 구불구불 버들개지의 가지 하나하나 떠나는 이의 손에 있네. 善事新夫壻 時時懷故人 잘 새로운 남편..
1. 서울로 떠나야 하는 낭군과 단천에 남아야 하는 일선 皚皚黑山雪 鮮鮮濁水蓮 검은 산의 희디 흰 눈처럼 흐린 물에 신선하디 신선한 연꽃처럼 皎皎靑樓婦 自名爲逸仙 푸른 누각의 순백의 아낙은 스스로 일선이라 이름한다네. 逸仙小家子 初不學詩禮 일선은 없는 집 자식으로 처음엔 시와 예를 배우지 않았고 感郞一顧恩 本無衿帨誡 “낭군의 한 번 돌아본 은혜 감격한 것이지 본래 금세계를 할 사이는 아니었어요. 郞爲上舍生 家在京城裏 낭군은 성균관 유생이 되어 집은 서울 속에 있으니 妾爲端州婢 去留不由己 저는 단천의 노비가 되어 떠나고 머묾을 나의 맘대로 못하죠.” 인용 전문 해설
지은 이유. 미천한 신분 때문에 절개를 지켰음에도 정표되지 못하다 節婦名逸仙, 端川官妓也. 本郡報其節行, 禮官以素賤, 抑而不旌. 豫讓不死於范中行而死於智氏, 先儒奚取焉? 其言不曰: “士爲知己者死乎.” 余時爲儀部員外, 蓋嘗陳以此義, 退而綴其行實, 以爲歌詩. 庶幾樂府所錄「秦羅敷焦仲卿妻詩」遺意云. 해석 節婦名逸仙, 端川官妓也. 절개를 지닌 아낙의 이름은 일선으로 단천의 관기다. 本郡報其節行, 단천 고을에서 절개를 지킨 행실을 보고하자 禮官以素賤, 抑而不旌. 예조에선 소박하고 빈천함 때문에 억누르고 정표(旌表)하지 않았다. 豫讓不死於范中行而死於智氏, 예양이 범중항을 위해 죽지 않고 지백(智伯)을 위해 죽었는데 先儒奚取焉? 앞선 유학자들은 어째서 취한 것인가? 其言不曰: “士爲知己者死乎.” 예양은 “선비란 자기를 ..
해설. 남녀의 애정을 담은 민요를 한시로 쓰다 이 시는 민요에서 취재한 것이다. 모두 8수인데 일관된 줄거리로 엮인 것이 아니다. 서사적 연락(連絡)은 단속적이고 다만 남녀 사이에 얽힌 애정사라는 점에서 내용상 통일성이 있다. 남편이 멀리 장사를 떠나 외로운 여자의 하소연이 들리고, 젊은 남녀들의 밀회와 미묘한 사랑의 갈등이 있는가 하면 중국 비단을 무역하는 상인이 기생에게 탕진하는 장면도 나온다. 5언절구의 단형시 속에 이런저런 사연을 담아 서사적 전개는 펼 수 없었으나 서사성은 각기 함축한 것이다. 이 「황주염곡(黃州艶曲)」의 형식적 특징 또한 민요에서 온 것으로 생각된다. 황주지방과 관련된 민요가 있었던바, 그 내용 형식을 그대로 살린 것 같다.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 2권, 창비, 2020..
5 夜登太虛樓 潛邀好門子 밤에 태허루에 올래 몰래 좋은 집안 사내 만나려니 却有上尊來 誰人敎至此 도리어 상존이란 아전이 오니 누가 시켜 여기에 이르게 했는가? 許穎陽使本國, 改廣遠樓. 名曰太虛樓也. 허영양은 우리나라에 사신 와서 광원루(廣遠樓)를 개칭하여 태허루(太虛樓)를 이름 붙였다. 上尊, 卽戶長吏名也. 상존이란 곧 아전 우두머리의 이름이다. 6 璀璨成都錦 花間蛺蝶飛 찬란하디 찬란한 성도의 비단, 그리고 꽃 사이로 나비 나네. 與儂償一宿 裁作舞時衣 나와의 하룻밤 보상으로 준 것이니, 춤출 당시의 옷 제작했네. 7 節使年年返 逢郞意更長 사신은 해마다 돌아오지만 낭군 만난 뜻은 더욱 길기만 하네. 若無平壤妓 紈素可盈箱 만약 평양의 기생이 없었다면 흰 비단이 상자에 가득했을 텐데. 8 半夜踰窓入 黃紬濃宿香..
1 上有正方山 下有簇錦溪 위쪽엔 정방산이 있고 아래쪽엔 족금계가 있어 寧作倡家婦 莫作商人妻 차라리 노래 부르는 아낙이 되었지 상인의 아내는 되지 말게. 2 商人江上去 八月以爲期 상인은 강 거슬러 가 8월에 기약 삼았네. 重陽今已過 酒熟爾何遲 중양절은 이제 이미 지나 술 익어가건만 당신은 어째 늦소? 3 花娥耽晝睡 鶴娥耽夜行 꽃 아가씨는 낮잠을 탐하고 학 아가씨는 밤 다니는 걸 탐하니 相逢連晝夜 何處見儂情 서로 만나 낮과 밤을 연이으니 어느 곳에서 나의 정 보리오? 4 儂愛雙頭蓮 郞愛相思子 나는 두 꽃잎의 연꽃을 사랑하고 낭군은 상사자를 사랑하네. 不如去浣紗 行人在溪水 빨래터에 가는 것만 못하니 행인들 시냇가에 있겠지. 인용 전문 해설
해설. 그네터는 조선의 헌팅포차? 이 시는 그네터에서 젊은 남녀들의 만남을 소묘한 민요적 단가(短歌)다. 처녀들이 몰려와서 그네타기 시합을 벌이는데 지나던 총각이 눈이 팔려 발걸음을 멈추고 섰다. 이것이 1연이며 2연에서 그네 타는 동작을 신선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 조그만 사건이 발생한다. 한 처녀가 그네를 타다가 비녀를 떨어뜨리는데 그 비녀를 총각이 주워서 두 남녀 사이가 통하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 『춘향전』에서도 춘향이 그네 타는 모습을 이도령이 보고 연애감정을 느껴 마침내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게 되었거니와, 여기 설정된 화폭은 서사적 단면이다. 인간성이 고식되었던 분위기에서 젊은 남녀의 그네터 사랑은 대서사로의 발전을 예비한 것도 같다.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 2권, 창비,..
해설. 출세하러 떠난 남편을 무작정 기다리는 아낙의 이야기 이 시 역시 봉건적 질곡 속에서 고달픈 여성의 처지를, 한 여자가 자기 신세를 술회하는 형식으로 엮은 것이다. 1인칭의 여성 진술에 의해 작품은 여성의 삶의 갈등이 여성적 언어 정감으로 표출되고 있다. 주인공(진술자)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떠날 때 태중에 있었던 아기가 “지금은 대막대 타고 다닌답니다[去時在腹兒未生 卽今解語騎竹行].”라고 하여 생이별이 7, 8년이나 경과했음을 짐작게 한다. “이웃집 아이에게 배워서 ‘아부지’하고 부르는 데 만리 밖에 계시는 아버지 네가 부르는 소리 행여 들리겠느냐[便從人兒學呼爺 汝爺萬里那聞聲].”라는 대목은, 특히 인정에 절실하면서 그속에 무심한 남편을 탓하는 뜻도 담긴 것 같다. 남편 ..
용강의 노래 용강사(龍江詞) 백광훈(白光勳) 妾家住在龍江頭 첩의 집은 용강 어귀에 있어 日日門前江水流 날마다 문 앞에 강물이 흐르죠. 江水東流不曾歇 강물이 동쪽으로 흘러 일찍이 쉬질 않으니, 妾心憶君何日休 첩은 내심 그대 생각을 어느 때나 그칠까요? 江邊九月霜露寒 강가 9월이라 서리와 이슬은 차가워 岸葦花白楓葉丹 강의 갈대꽃 희고 단풍잎은 붉어졌어요. 行行新雁自北來 줄지어 새로운 기러기 북쪽에서 오지만 君在京河書未廻 그대 한양에 있음에도 편지 보내오질 않네요. 秦樓望月幾苦顔 그대는 한양 누각에서 달 바라보며 얼마나 얼굴 찡그리셨을까요? 使妾長登江上山 첩은 늘 강가 산에 오른답니다. 去時在腹兒未生 떠난 때 배에 있던 아이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었는데 卽今解語騎竹行 지금은 말을 하고 대나무 말 타고 다녀요. ..
해설. 조선시기 여성이 감내해야 했던 비운을 담아내다 이 시는 자결한 젊은 여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중세기 여성의 비극적 운명을 보여준 것이다. 주인공 여자는 지체 높은 가문에서 태어나 역시 양반집으로 출가하였다. 그런데 그의 남편이 멀리 벼슬을 살러 간 부친을 뵈러 갔다가 중도에서 객사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꽃다운 나이의 여자가 죽어야 하는가? 거기에 당시 여성 일반이 벗어날 수 없는 엄중한 질곡이 있었던 것이다. 여성에게는 자주적 삶이 주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불경이부(不更二夫, 두 명의 남편을 바꾸지 않는다)’라는 윤리 규정 때문에 한번 배우자를 정했으면 어쨌거나 개가를 용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양반 가정일수록 여성에게 가해진 윤리적 굴레는 더욱 완고했다. 작품은 주제 사상을 낭만적ㆍ정감..
부모님께 인사 드리러 떠난 낭군을 그리며 저물어간 아낙이여 이소부사(李少婦詞) 최경창(崔慶昌) 相公之孫鐵城李 이씨는 상공의 손녀인 철성 이씨로 養得幽閨天質美 규방에서 길러져 천부적인 자질이 예쁘네. 幽閨不出十七年 규방을 17년간 나가지 않았는데 一朝嫁與梁氏子 하루 아침에 양씨의 아들에게 시집 갔네. 梁氏之子鳳鸞雛 양씨의 아들은 봉새와 난새의 새끼처럼 길러져 珊瑚玉樹交枝株 산호와 옥수처럼 가지가 서로 얽히였네. 池上鴛鴦本作雙 연못 위 원망은 본래 짝을 지으니 園中蛺蝶何曾孤 동산 속 나비라해서 어찌 일찍이 외로우리오? 梁家嚴君仕遠方 양씨의 아버지 먼 지방에 벼슬살이 해서 千里將行拜高堂 천리를 장차 가서 어버이 계신 곳에서 절하려 했네. 出門恩愛從此辭(隔) 문을 나서면 은혜와 사랑은 이로부터 헤어지게 되니 山..
이순신 장군이 한없이 그리워지는 지금 이충무공귀선가(李忠武公龜船歌) 황현(黃玹) 1. 원균이 막지 못해 왜구가 코앞에 와 있다 天狗蝕月滄溟竭 罡風萬里扶桑折 主屹雄關已倒地 舟師十萬仍豕突 元家老將一肉袋 孤甲棲島蚍蜉絶 封疆重寄無爾我 葦杭詎可秦視越 ⇒해석보기 2. 거북선으로 왜구를 물리친 충무공 左水營南門大開 淵淵伐鼓龜船出 似龜非龜船非船 板屋穹然碾鯨沫 四足環轉爲車輪 兩肋鱗張作槍穴 二十四棹波底舞 棹夫坐卧陽侯窟 鼻射黑烟眼抹丹 伸如遊龍縮如鼈 蠻子喁喁哭且愁 露梁閒山漲紅血 赤壁少年逢時幸 采石書生誇膽决 孰能橫海經百戰 截鯨斬鰐鋩不缺 ⇒해석보기 3. 200년이 지난 지금도 충무공이 있었다면 二百年來地毬綻 輪舶東行焰韜日 熨平震土虎入羊 火器掀天殺機發 九原可作忠武公 囊底恢奇應有術 創智制勝如龜船 倭人乞死洋人滅 ⇒해석보기 인용 목차 ..
해설. 서세동점의 시기에 위기감을 충무공의 기억으로 풀어내다 이 시는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앞세우고 왜적을 통쾌하게 격파한 역사 사실을 그린 노래다. 전체를 세 단락으로 구성하였는데, 거북선이 등장하는 대목까지가 서장이다. 이 제1부는 객관적인 서술인데도 상징성ㆍ형상성이 높은 언어를 적절히 구사하여 분위기와 함께 의미망이 뚜렷이 잡힌다. 제2부는 물론 작품의 중핵이다. 거북선의 괴걸ㆍ신출한 용자, 거북선이 적을 격파하는 통쾌한 장관이 굳세고 날카롭고 생생한 필치로 묘사되고 있다. 3부는 시인의 현재다. “충무공 돌아가신 지 이 백년 오늘에 지구가 트이니 / 화륜선 동쪽으로 돌아오자 불꽃이 해를 가리는도다.”라고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세계사적 진운이 제국주의 침략으로 현실화된 문제적 사태를 제기한다. 시..
3. 200년이 지난 지금도 충무공이 있었다면 二百年來地毬綻 200년 이래에 지구가 트이니 輪舶東行焰韜日 증기선이 동쪽으로 오자 불꽃이 해를 가리네. 熨平震土虎入羊 평화를 누르고 땅을 진동시키며 범이 양떼로 들어와 火器掀天殺機發 화기가 하늘을 치켜들어 헤치는 기미가 발산되네. 九原可作忠武公 무덤에서 충무공을 일으킬 수 있다면 囊底恢奇應有術 주머니 속의 넓은 기이함엔 응당 나라 구할 기술이 있을 테지. 創智制勝如龜船 지혜를 창조하고 이김을 제어함이 거북선 같으리니 倭人乞死洋人滅 왜구가 목숨을 구걸할 것이고 서양놈들 싹쓸어버릴 것이다.「梅泉集」 卷一 인용 전문 해설
2. 거북선으로 왜구를 물리친 충무공 左水營南門大開 좌수영 남쪽 문이 크게 열리니 淵淵伐鼓龜船出 둥둥 북을 치며 거북선이 나가네. 似龜非龜船非船 거북인 듯 아닌 듯 배인 듯 아닌 듯 板屋穹然碾鯨沫 철판의 하늘 같은 지붕은 고래의 포말을 가네. 四足環轉爲車輪 네 발은 동그랗게 돌으니 수레의 바퀴가 되고 兩肋鱗張作槍穴 두쪽 갈비엔 비닐 펴져 창의 구멍을 만들었네. 二十四棹波底舞 24개의 노가 파도 밑에서 춤추니 棹夫坐卧陽侯窟 노 젓는 군사는 파도의 굴에서 앉았다가 누웠다 하네. 鼻射黑烟眼抹丹 코로는 검은 연기 쏘고 눈엔 붉은 것 발라 伸如遊龍縮如鼈 펴면 용이 노니는 듯, 움츠리면 자라인 듯하지. 蠻子喁喁哭且愁 왜구들 웅웅거리며 통곡하고 근심하니 露梁閒山漲紅血 노량과 한산에 붉은 피 넘쳐나지. 赤壁少年逢時幸 ..
1. 원균이 막지 못해 왜구가 코앞에 와 있다 天狗蝕月滄溟竭 천구가 달을 좀먹으니 바닷물 마르고 罡風萬里扶桑折 만 리에 세차게 부는 바람은 부상을 꺾어버렸으며 主屹雄關已倒地 주흘산(主屹山)의 웅장하던 관문도 이미 뒤집혔고 舟師十萬仍豕突 배의 군사 10만도 연이어 멧돼지처럼 닥쳐왔네. 元家老將一肉袋 원균(元均)의 노쇠한 장군은 하나의 고기 자루 孤甲棲島蚍蜉絶 외론 갑옷으로 섬에 서식하니 하루살이도 끊어졌네. 封疆重寄無爾我 영토의 막중한 임무를 맡겨졌으니 너나 없구나. 葦杭詎可秦視越 곧 들이닥치리니 어찌 진나라 사람이 월나라 사람 보듯 할 수 있겠는가? 인용 전문 해설
해설. 임전무퇴의 정신을 표출한 어재연 장군의 모습을 그리다 이는 신미양요(辛未洋擾) 당시 어재연 장군이 분투하다가 전사한 사실을 기려서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19세기 중후반의 개항 직전에 발발한 사건이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다. 두 사건 모두 강화도에서 일어났는데 강화도는 한반도의 심장부인 서울로 들어오는 해로 상의 길목이었기 때문이다. 로저스 제독(J.Ridgers)이 이끄는 미 해군함대가 침입을 하자 조선정부는 앞서 병인양요 때도 실전 경험이 있었던 어재연을 진무중군(鎭撫中軍)으로 급파, 광성보(廣城堡)를 방어하도록 한다. 1871년 6월 10일 미 해군은 강화도 상륙작전을 개시, 초지진(草芝鎭)을 점거하고 다음날 덕진진(德津鎭)을 함락한 다음, 광성진(廣城鎭)을 수륙 양면으로..
신미양요 때 강화도에서 산화한 어재연(魚在淵) 장군을 애도하며 애어장군(哀魚將軍) 이희풍(李喜豊) 奕世簪纓族 燀爀著乘史 어장군은 여러 세대의 고관대작의 겨레로 밝디 밝게 저술하여 역사서에 실려 있네. 跗注通仕籍 華膴與終始 전쟁복으로 벼슬자리에 통하여 청직(淸職)과 함께 시작하여 마쳤네. 歲暮思休退 藍田有故里 말년에 휴식하며 은퇴할 것 생각하여 남전의 옛 마을에 있다가 惶恐復承詔 金門聽進止 황공하게 다시 임금의 명령 받자옵고 대궐에서 임금님 뜻을 들었으니, 江都關防地 往佐鎭撫使 “강화도는 관문 방어의 땅이니 가서 진무사로 도우라.” 旗幟變精彩 號令嚴巡視 어장군 깃발의 변하는 정미로운 색채와 호령하며 엄히 순시하네. 四月獰風至 蕩潏飜海水 4월에 매서운 바람 불어 찰싹찰싹 바닷물 뒤집으니 西來黑帆船 盤桓如有俟..
해설. 그림을 시로 표현했기에 묘사가 생생하다 이는 운암에서 왜적을 쳐부순 그림에 붙인 노래다. 운암전투를 이끈 청계 양대박은 원래 이름난 시인이다. 그런 그가 민족적 위기를 당해서 직접 의병을 일으키고 진두지휘하는 영용한 모습을 부각시키는 데 시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런데 초장의 배경 묘사에서부터 시각적 인상을 뚜렷이 보이는데, 특히 왜군들의 생김새나 전투의 장면은 마치 영화의 화면을 대하는 듯 극적이고 동적이다. 이런 측면은 이 시가 본래 회화와 결부된 것이기 때문에 회화의 예술적 특징을 시에서도 적절히 살린 결과로 생각된다.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 2권, 창비, 2020년, 145쪽 인용 전문
1000명도 안 되는 의병으로 운암에서 왜놈을 격파한 양대박 장군 雲巖樹色蓊若雲 운암의 나무색 우거져 구름 같으니 石棧縈紆路微分 바위에 잔도(棧道)는 휘돌아 길이 희미하게 나눠지네. 谷口長川流渙渙 골짜기 입구에 긴 천의 흐름은 세차고 亂石疑是鳧雁羣 어지런 돌들은 의심컨대 오리와 기러기 무리인 듯하네. 倭燐爍爍飛艸末 왜놈들 혼은 반짝반짝 풀 끝에 날고 倭鬼咿嚘山日曛 왜놈들 귀신은 흐느끼며 황혼녘 산에 있네. 破倭者誰梁將軍 왜놈 격파한 양장군은 누구인가? 將軍帶方之烈士 장군은 대방의 충정을 다해 싸운 사람이네. 寶刀千金馬千里 천금의 보검으로 천리를 말 타고 灑泣艸檄風雨生 눈물을 뿌리며 격문을 지으니 비바람이 일어나네. 破家養士熊虎似 집을 파산하면서 길러낸 군사는 곰과 범인 듯하지. 倭子午爨幽箐間 왜놈들 낮에..
시를 짓게 된 연유 梁靑溪大樸, 萬曆壬辰, 以義兵將破倭於雲巖之野. 後孫參議周翊作圖請歌. 해석 梁靑溪大樸, 萬曆壬辰, 청계 양대박은 만력 임진(1592)년에 以義兵將破倭於雲巖之野. 의병의 장수로 운암의 들판에서 왜적을 격파했다. 後孫參議周翊作圖請歌. 그의 후손인 참의 양주익이 「운암파왜도(雲巖破倭圖)」를 짓고 나에게 노래를 청하였다. 인용 전문 해설
해설. 장독을 지켜낸 노인과 나라도 지켜내지 못한 지배층 이 시는 장독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의 애국적 형상을 제시한 것이다. 시인 신광하는 1783년(정조 7년)에 함경도 지방을 유람하여 백두산까지 등반을 한다. 이 여행의 도중에 조술창이라는 곳에서 한 노인을 만나는데, 그 노인으로부터 그의 6대조 할아버지가 병자호란 당시 장독을 때려 부수려고 덤비는 되놈을 활을 쏘아 격퇴시킨 이야기를 듣는다. 지금 노인은 작중의 화자이며 서사의 진정한 주인공은 용감한 6대조 할아버지다. 작품은 노인의 이야기가 끝나면서 문제의 장독을 직접 보여준다. 옛이야기를 실제 사실로 확인시킨 셈이다. 우리 민족의 생활에서 독은 거기 담는 장이 그렇듯 별것 아니지만 한때도 없어서 안 되는 긴요하고 친숙한 물건이다. 작중의 서..
병자호란에 오랑캐를 물리치고 장독을 지킨 이의 이야기 조술창옹 장옹가(助述倉翁 醬瓮歌) 신광하(申光河) 我行助述萬山中 나는 조술창의 뭇 산 속을 가다가 野宿村家逢老翁 야외의 시골집에서 묵었는데 할배를 만났네. 翁言家有老醬瓮 할배가 말하네. “집에 묵은 장독이 있는데 六世相傳安屋東 6대에 서로 전해져 곧 집의 동쪽에 있지요. 憶昔丙子國大亂 생각건대 옛날 병자년에 나라가 크게 어지러워 咸關北南迷犬戎 함관령(咸關嶺)의 북쪽과 남쪽이 오랑캐에 당하여 夜蹋鐵嶺三丈雪 밤에 철령 세 길이의 눈을 밟아 넘어오니 千村萬落人烟空 온 마을과 여러 촌락에 사람과 밥짓는 연기 사라졌죠. 走入翁家先擊瓮 할배집에 달려 들어가 먼저 장독을 치니 翁祖八十鳴桑弓 할배 여든 살에 뽕나무 활을 당겼어라. 一箭中胡胡走哭 한 화살이 오랑캐에 ..
임진왜란에서 유거사가 안동을 지키다 유거사(柳居士) 홍신유(洪愼猷) 1. 유거사와 유성룡 居士出安東 西厓之叔父 藏名名不傳 世但知姓柳 容貌望若愚 默無言出口 平生不出戶 似學節無咎 惟有酒戶寬 一吸數三斗 且愛一寶刀 匣裏深深貯 西厓時入相 才氣大自負 黃扉事業盛 遭遇聖明主 ⇒해석보기 2. 유성룡을 찾아간 유거사는 그림자처럼 처신하다 居士謂家人 相國不見久 我欲一往見 懷緖舒窈紏 家人聞此言 驚喜便相許 即騎一健牛 五日京城走 粗粗山人衣 潭潭丞相府 相國望見之 下階拜傴僂 居士問無恙 癡然更無語 但願居同室 暫不離左右 今日車馬至 明日冠紳聚 朝廷論得失 軍務談細巨 居士坐在傍 若不聞不睹 ⇒해석보기 3. 유거사와 유성룡의 바둑 한 판 내기와 유거사의 이상한 제안 一日謂相國 與我圍棋否 相國斂容對 小子誠國手 叔父棋不妙 未可論勝負 居士再三請 華堂..
해설. 체제 밖 인물을 끌어들여 정치권력의 환멸을 담아내다 이 시는 야담으로 널리 전하는 ‘유거사 이야기’를 재료로 삼아 엮은 것이다. 유거사라는 인물은 초야에 묻힌 존재인데 유성룡의 숙부로 설정되어 있다. 유성룡은 임진왜란 때 탁월하게 능력을 발휘했던 재상으로 유명하지만, 그의 숙부는 일개 무명의 인사다. 그래서 ‘바보 아재[癡叔]’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런 유거사가 실은 앞날을 내다보는 눈을 가진 이인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유능한 정승을 제거하고자 잠입한 왜놈 첩자를 물리치고 미구에 큰 전란이 있을 것을 예언했다는 것이 작품의 대략이다. 유거사 이야기는 『동패낙송(東稗洛誦)』과 『청구야담(靑邱野談)』 등 야담집에 두루 실려 있다. 줄거리는 모두 대동소이하지만 문학적인 면에서 서사시 「유거사(柳居士)」..
4. 스님과의 거나한 술자리, 그리고 스님의 비밀 翌日果有僧 謁公洸洸武 다음날 과연 스님이 있어 공을 뵈는데 용감한 무사였으니, 公言方有事 無暇可接汝 상공이 말했네. “시방 일이 있어 당신을 접대할 겨를 없습니다. 家有一居士 室淸汝可去 집에 한 거사가 있으니 집이 깨끗해 당신이 가볼 만합니다.” 僧拜昂然退 幽窓來相叩 스님은 절하고 의연하게 물러나 깊은 창으로 와 서로 두드리니 居士倒屣迎 慇懃若親友 거사는 짚신을 거꾸로 신고 맞으며 은근히 챙기는 게 친구 같았고 云余無佳味 山肴與薄酒 말했네. “나에게 맛난 음식은 없고 산채소 안주와 묽은 술이 있소.” 自飮復勸僧 夜闌盡十卣 스스로 마시고 다시 스님에게 권하며 밤이 다하도록 열통을 마셨네. 僧醉席上倒 喉中酒半歐 스님이 곤드레만드레 자리 위에서 쓰러져 목구멍 ..
3. 유거사와 유성룡의 바둑 한 판 내기와 유거사의 이상한 제안 一日謂相國 與我圍棋否 하루는 승상에게 “나와 바둑 두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相國斂容對 小子誠國手 승상은 용모를 단정히 하고 대답했다. “소자는 국수를 정성스레 모시고 있고 叔父棋不妙 未可論勝負 숙부께선 바둑솜씨가 절묘하지 못하니 승부를 논할 없습니다.” 居士再三請 華堂日正午 거사가 두세번 청했는데 화려한 당에 해는 정오였다네. 相國謾應諾 陣勢按法譜 승상은 어쩌지 못하고 응낙하니 바둑 진의 기세가 기보를 참고한 듯했네. 政似謝東山 山陰賭別墅 바로 사동산이 동산의 별장에서 내기하는 것 같았으니 忽如楚漢戰 兵入濰水渚 홀연히 초나라와 한나라의 싸움에 병사들이 유수로 들어간 듯 했네. 居士嬴全局 推平掌一拊 거사는 전판을 이기고 승패를 정하고서 ..
2. 유성룡을 찾아간 유거사는 그림자처럼 처신하다 居士謂家人 相國不見久 거사가 집사람들에게 말했다. “정승을 오래도록 보지 못했으니 我欲一往見 懷緖舒窈紏 내가 한번 가서 보고 마음을 품고 깊은 근심을 고하려네.” 家人聞此言 驚喜便相許 집사람이 이 말을 듣고 놀라 기뻐하며 곧 서로 허락했네. 即騎一健牛 五日京城走 곧바로 한 마리 건강한 소를 타고 5일동안 서울로 달려갔네. 粗粗山人衣 潭潭丞相府 거칠디 거친 산 사람의 옷으로 깊고 넓은 승상의 집에 도착하니 相國望見之 下階拜傴僂 승상은 우두커니 보다가 계단을 내려와 바짝 엎드려 절하네. 居士問無恙 癡然更無語 거사는 ‘무탈하시오?’라고 묻고선 바보처럼 다시는 말하지 않고 但願居同室 暫不離左右 다만 같은 방에 있으며 잠시도 좌우로 떨어지지 않으려 했네. 今日車馬..
1. 유거사와 유성룡 居士出安東 西厓之叔父 거사는 안동에서 나와 서애의 숙부지. 藏名名不傳 世但知姓柳 이름을 감춰 이름이 전하지 않아 세상에선 단지 유(柳)씨 성만 알려졌네. 容貌望若愚 默無言出口 용모 바라보면 어리석은 듯하고 묵묵히 말을 입에서 내질 않네. 平生不出戶 似學節無咎 평생 문에 문을 나가지 않았으니 절제를 배워 허물이 없는 것처럼 하려 함이다. 惟有酒戶寬 一吸數三斗 오직 주량만이 넉넉하여 한 번 두세 말을 마시고 且愛一寶刀 匣裏深深貯 또한 한 보검을 아껴 갑 속에 깊이 깊이 숨겨두었네. 西厓時入相 才氣大自負 서애는 이때에 승상이 되어 재기가 커 절로 자부하였고 黃扉事業盛 遭遇聖明主 승상의 사업 성대하니 성스럽고 현명한 군주 만나서라네. 인용 전문 해설
100년이 지나 임명대첩의 역사가 바로잡히다 임명대첩가(臨溟大捷歌) 홍양호(洪良浩) 함경도의 왜구를 대파한 정문부의 억울함을 풀어주다 臨溟驛, 在城津ㆍ吉州之間, 鄭評事文孚, 壬辰大破倭奴於此, 有勝戰碑. 鄭公與鄕人李鵬壽等, 擧義於鏡城武溪漁郞里. 首斬叛奴鞠世必, 進擊倭, 屢立奇功, 北方遂平. 監司尹卓然誣奏抑其功, 只加通政階, 官遂不顯. 仁廟朝死於詩案. 逮至顯廟朝, 李畏齋端夏爲評事陳疏, 閔老峰鼎重, 以監司啓聞, 伸雪褒贈. 鄕人立祠於武溪, 賜額曰彰烈. ⇒해석보기 1. 임진왜란의 발발로 관북까지 무너지다 鄭評事奇男子 微爾盡黔北人齒 時有長鯨 怒鬣閃㸌若火熾 滄海爲沸東天紫 三京焚燒八路崩 翠華遙遙鴨水沚 其酋淸正最黠驚 萬隊橫行遂北指 快劒如霜彗日芒 毒丸如雷洞人髓 元戎旆折鐵嶺上 三軍潮退未敢發一矢 鳥言卉服滿朔野 腥氛慘憺興王里 ..
해설. 정문부의 공적에 일어난 논공행상을 비분감으로 담아내다 이 시는 함경도 땅에서 왜군을 몰아낸 의병대장 정문부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원래 『삭방풍요(朔方風謠)』 속에 들어 있는 작품인데, 『삭방풍요(朔方風謠)』는 시인이 정조 1년(1777) 겨울에 함경도 경흥부사(慶興府使)로 좌천되어 갔던바, 이때 견문한 사실들을 잡아서 쓴 것이다. 시는 첫 머리에 “정평사는 기남자로다 / 당신 아니런들 함경도 백성들 흑치(黑齒) 면치 못했으리[鄭評事奇男子 微爾盡黔北人齒]”라고 주인공의 성격을 먼저 규정하고 들어간다. 요컨대 그 인물은 ‘기남자(奇男子)’요 그 업적은 함경도를 적군의 수중에서 회복한 것이다. 이런 규정이 진실임을 증언한 것이 시의 내용인 셈이다. 그런데 임명대첩이 함경도 전역의 전세를 뒤집는 데 결정..
5. 100년 만에 제자리를 찾은 정문부의 평가 公議百年竟得伸 공적인 의론이 100년에 마침내 펼쳐져 贈誄輝煌邦人祀 조문을 드리니 지방 사람들의 사당에 빛나는 구나. 武溪之上漁郞里 무계 가 어랑리의 山川欝欝環古壘 산천은 울창하고 옛 보루 둘러있네. 昔日金尹拓疆土 옛적에 김종서(金宗瑞)와 윤관(尹瓘) 두 장군은 강토를 개척하였으니 國威兵力是憑倚 나라의 위세(威勢)와 군사의 위력(威力) 두 장군에게 의지했네. 公遭板蕩奮空拳 정문부 공은 나라가 어지러운 상황을 만나 빈 주먹을 떨치며 屹若狂瀾障一砥 우뚝하게 미친 물결을 숫돌로 막아냈네. 不然不惟豆江以內非吾有 그렇지 않았더라면 두만강 이내는 우리의 국토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荐食上國從此始 중국에 덤벼드는 것도 이 땅으로부터 시작됐으리라. 如公樹立更卓然 공이 수..
4. 승승장구의 미담을 가려버린 함경도 감사 可憐堂堂二壯士 가련쿠가 당당하던 이붕수와 이희당(李希唐) 두 장사여 功成身殞馬前墜 공 이루어졌지만 몸은 말의 앞 부대에서 운명했구나. 蠟紙遙飛奏行在 밀랍 입힌 밀서(密書)가 멀리 날려져 행재소에 알려지자 至尊動容悲且喜 지존의 행동거지와 용모는 슬프고도 기쁘셨다네. 壐書寵嘉進官秩 임금은 친서로 총애하고 가엾이 여겨 관직 올려주고 賜賚便蕃及衣履 먼 변방에까지 하사하고 옷과 신에 미쳤지만 藩臣擁兵但自衛 변방 함경감사 윤탁연(尹卓然)은 병사만을 옹위한 채 다만 스스로만 지켜 君父蒙塵越人視 임금의 피난 보길, 월나라 사람 보듯 했네. 奈何耻己無功嫌人有 어째서 자기의 공 없음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공 있음을 미워하여 媒孽其短反揜美 흠집으로 죄에 빠뜨려 도리어 미담(美談)을..
3. 혼비백산하는 왜구들 驕虜膽破若無骨 교만하던 왜구 담이 찢어졌으니 뼈가 없는 것 같고 蝸縮蛇蟠土窟裏 달팽이 움츠러들고 뱀이 토굴 속에서 서린 듯하네. 端川大兵自來迎 단천의 대병력이 스스로 맞이하여 와서 半夜銜枚將南徙 야밤에 재갈 물고서 장차 남쪽으로 이동하여 萆山偃旗截歸路 산에 숨고 기를 눕힌 채 귀로를 끊으니 前有角兮後有掎 앞은 뿔 잡히고 뒤는 다리 끌어 당겨지는 꼴이구나. 白塔之原臨溟野 백탑의 언덕과 임명의 들에 健兒賈勇如虎兕 건장한 사내가 용맹을 뽐낸 것이 범이나 외뿔소 같네. 紛紛鼠竄與兎脫 왜구들은 바쁘게 쉬가 숨는 것처럼 토끼가 달아나는 것처럼 하여 往往裂腦而折臂 이따금 뇌가 찢어지고 팔이 골절되네. 髧頭裸足化京觀 늘어진 머리에 헐벗은 발의 왜구는 경관으로 변해 長繩簇簇貫左耳 긴 끈으로 빽빽..
2. 정문부가 의병을 일으켜 전세를 역전하다 維時蓮幕隻身跳 이때 막부에 홑못으로 뛰어나와 山行草伏形容毁 산으로 가서 풀에 숨었으니 형용은 야위었네. 彷徨歧路誰與歸 갈림길에서 방황하며 누구와 함께 귀의(歸意)하려는가? 邂逅同志崔姜李 해후한 동지는 최배천(崔配天)ㆍ강문우(姜文佑)ㆍ이붕수(李鵬洙)라네. 揮涕飮血仰天誓 눈물 떨구고 피를 마시며 하늘 우러러 맹세하니 一百義旅投袂起 백 명의 의병들이 소메 떨치며 일어났네. 裂裳爲旂鋤爲兵 치마 찢어 기를 만들고 호미로 병기 삼았으며 白面將軍杖尺箠 백면서생(白面書生)의 장군은 한 자의 채찍 잡고 鳴皷徐行入鏡城 북 울리며 천천히 경성(鏡城)에 들어가니 士女歡迎惟命侯 남녀는 환영하며 오직 자신들의 제후이길 명하네. 南樓嶪嶪建牙纛 남쪽 누대 우뚝하니 아기(牙旗)을 세우고 磔..
1. 임진왜란의 발발로 관북까지 무너지다 鄭評事奇男子 평사 정문부(鄭文孚)는 기이한 사내로 微爾盡黔北人齒 그대 아니었다면 모두 북쪽 사람들의 이는 검어졌으리. 時有長鯨 이때에 큰 고래가 있어 怒鬣閃㸌若火熾 화난 지느러미 반짝반짝 불 타오르는 듯했네. 滄海爲沸東天紫 푸른바다 들끓어 동쪽 하늘 붉었고 三京焚燒八路崩 삼경(三京)은 불타오르고 팔도(八路)는 무너져 翠華遙遙鴨水沚 임금께서 아득하고 아득한 압록강에 이르렀네. 其酋淸正最黠驚 우두머리 가등청정(加藤淸正 )은 가장 악랄하고 두려워 萬隊橫行遂北指 만 명의 부대 멋대로 가서 마침내 북쪽 가리키니 快劒如霜彗日芒 날카로운 검은 서리 같으니 혜성의 불꽃 같고 毒丸如雷洞人髓 독한 탄환은 우레 같으니 마을 사람의 골수 같네. 元戎旆折鐵嶺上 장군의 기는 철령의 위에서..
함경도의 왜구를 대파한 정문부의 억울함을 풀어주다 臨溟驛, 在城津ㆍ吉州之間, 鄭評事文孚, 壬辰大破倭奴於此, 有勝戰碑. 鄭公與鄕人李鵬壽等, 擧義於鏡城武溪漁郞里. 首斬叛奴鞠世必, 進擊倭, 屢立奇功, 北方遂平. 監司尹卓然誣奏抑其功, 只加通政階, 官遂不顯. 仁廟朝死於詩案. 逮至顯廟朝, 李畏齋端夏爲評事陳疏, 閔老峰鼎重, 以監司啓聞, 伸雪褒贈. 鄕人立祠於武溪, 賜額曰彰烈. 해석 臨溟驛, 在城津ㆍ吉州之間, 임명역은 성진과 길주 사이에 있어 鄭評事文孚, 壬辰大破倭奴於此, 평사 정문부는 임진왜란 때에 여기서 왜구들을 대파했으니, 有勝戰碑. 승전비가 있다. 鄭公與鄕人李鵬壽等, 정공은 고향 사람 이봉수 등과 擧義於鏡城武溪漁郞里. 함경도 경성의 무계 어랑리에서 의병을 거병했다. 首斬叛奴鞠世必, 進擊倭, 먼저 배반한 관노 국세..
이화암 노승의 기이한 삶을 노래하다 이화암노승행(梨花庵老僧行) 최성대(崔成大) 1. 이화암에서 기이한 사연을 지닌 노승을 만나다 梨花古庵一老釋 九十五歲猶矍鑠 我昔南遊客湖中 偶過此寺曾一識 黃髮髼鬆剪復生 碧眼閃睒光如射 不念菩薩不燒香 深居但調龜鶴息 有時發喉作商調 不似山歌與村曲 大漠陰風吹颯颯 滿寺紅葉驚摵摵 寺中苾蒭向余言 異哉此僧平生跡 悄悄山鐘初歇後 熒熒佛燈微翳夕 斂手就坐坐近師 願聞一語談宿昔 良久愀然若有思 欲說未說顔綽虐 →해석보기 2. 병자호란에 참화에 휩쓸려 포로가 되다 家本歡州世爲吏 少小名屬歡州籍 却憶丙子胡亂時 年纔十七遭百六 京都已陷南漢圍 銕騎彌滿搜山谷 死者枕藉塗草莾 生者束縛驅向北 累累相隨渡鴨水 回頭却望東天哭 歡州遠別舊鄕里 瀋陽來添新部落 饑食黃羊渴駱漿 習性移人久漸熟 →해석보기 3. 군대에서 인정받으며 남부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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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이화암노승전의 논찬 정범조(鄭範祖)의 문집 『해좌집(海左集)』에는 「이화암노승전」이 실려 있다. 바로 「이화암의 늙은 중」을 읽고 그 인물에 대단히 흥미를 느껴 전의 형식에 담아본 것이다. 사실의 서술은 시를 자료로 삼았기 때문에 다른 내용이 있을 수 없지만 그 인물 성격에 대한 해석 역시 서로 통하고 있다. 참고로 「이화암노승전」의 논찬(論贊) 부분을 소개해둔다. 노승은 기남자다. 그는 바야흐로 어린 나이에 묶이어 강로强虜(여진족을 가리키는 말) 속으로 들어가 능히 자신의 용력으로 대열 사이에서 자취를 떨치게 하였으니 기회를 잡아 진출을 하였다면 부귀를 쉽사리 이룰 수 있었을 터이다. 그럼에도 부모의 나라를 저버리고 되놈 속에 몸을 빠뜨리는 짓을 차마 하지 못하여 발을 빼내 동쪽으로 돌아왔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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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전환기 시대의 자유로운 영혼 이 시는 17세기 동북아의 전환기적 상황에서 한 파란의 인생역정을 장편으로 엮은 내용이다. 시인이 작중 서술자로서 주인공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형식인데,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곧 시의 현재다. 따라서 주인공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작품의 중심부를 이루는데, 앞에 서장이 붙고 뒤에 시인의 말로 마무리 지었다. 주인공은 지금 95세의 늙은 중이다. 첫 구절에서 대뜸 “이화암 옛 절에 스님 한분/아흔다섯 나이에도 눈에 정기가 번쩍[梨花古庵一老釋 九十五歲猶矍鑠]”이라 하여 그 인물에 관심을 비상히 끌도록 하는데, 게다가 “부처님 앞에 향불도 피우는 법 없이 나무아미타불 외우지도 않고[不念菩薩不燒香]”라고 하여 더욱 기묘한 느낌을 준다. “이상도 하지요, 우리 스님의 행적[異哉此僧..
7. 스님에게 바치는 시인의 말 我觀師貌心已奇 내가 스님의 모습을 보고 내심 기이하다 생각했는데 復聞此語駭心魄 다시 이 말을 들으니 마음이 놀랐다. 萬化紛綸天地間 온갖 변화가 분분한 천지간에서 造物於師偏戲劇 조물주가 스님에게만 편파적으로 짓궂었구나. 紅兜纔脫着白衲 붉은 두건를 겨우 벗자마자 백납을 입었고 一軀變態誰能測 한 몸뚱이 이런 변화 누군들 예측하랴. 霜顱學士寄空門 상로학사는 불문에 의탁했고 草衣王子逃巖屋 마의태자는 바위집으로 도망쳤네. 古往今來盡如此 예로부터 지금까지 모두 이와 같았으니, 世上可歎非師獨 세상에서 탄식할 만한 이는 스님 혼자만이 아니라네. 神州消息師未聞 중국 소식을 스님은 듣지 못했을 텐데 萬國衣冠染臊羯 만국의 의관은 오랑캐에게 오염됐네. 吳王看戲泣魋髻 오왕은 연극을 보다가 상투를 ..
6. 스님이 되어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다 自此浮雲無繫絆 이로부터 뜬 구름처럼 얽매이는 게 없이 桑下不曾三過宿 뽕나무 아래에서 일찍이 사흘 지나도록 묵지 않았네. 南浮漲海上漢挐 남쪽으로 너른 바다에 떠서 한라산에 올랐고 北窮玄菟登長白 북쪽으로 현도에 다다라 장백산에 올랐으며 妙香頭流視跬步 묘향산과 두류산은 지척쯤으로 여기고 金剛俗離如踐閾 금강산과 속리산은 문지방 넘듯 다녔지. 甓寺苔深懶翁碑 신륵사 이끼 깊은 나옹 화상 비문 보았고 鳩林石古詵公塔 계림의 오래 묵은 도선국사 탑도 보았지. 携持甁錫遍域內 바리때와 지팡이 들고 방방곡곡 다녔으니, 萬水千山幾回踏 수만 수천 산과 강을 얼마나 다녔던지. 老病如今筋力盡 지금은 늙어 근력이 소진되어 住着平地思休脚 평지에 가서 다리 쉴 것을 생각했소. 此庵多應過數臘 이 암자..
5. 아전일을 하다 스님이 된 사연 春風領漕受郡牒 봄바람 불 적에 조운선을 통솔하란 군의 공문을 받아 白粲連檣京口泊 흰쌀 실은 잇단 배를 한강 어귀에 정박했지. 津頭遊女蕩人心 나루머리의 유녀들이 인심을 방탕하게 해서 一曲嬌歌散千斛 한 곡조의 교태스런 노래에 천 섬을 날려버렸네. 自知作孽落坑穽 스스로 죄를 지어 함정에 떨어진 줄 알았으니, 何處藏身免金木 어느 곳에 몸을 숨어야 형벌을 면할꼬? 窮猿避禍入山深 궁한 원숭이도 화를 피해 깊은 산으로 들어가듯이 懶龍逃誅畏電迫 나태한 용도 벌 피하려고 번개를 두려워하듯이 夜叩伽倻絶頂庵 밤에 가야산 정상의 암자를 두드려 劫以利匕求髡削 날카로운 칼로 겁을 주고 머리털 깎아 달라 요구했지. 斯須化作一和尙 금세 일개 화상으로 변해 項掛串珠身緇服 목에 염주를 걸고 몸엔 장삼..
4. 설레던 귀향길과 도착하여 맞닥뜨린 씁쓸한 현실 順治單于帝中原 순치제 선우가 중원의 제왕이 되자 鳳林大君歸故國 봉림대군께서 고국으로 귀향하셨지. 傳聞被擄男與婦 듣자하니 포로로 잡힌 남과 여는 許令贖還輸金帛 돈과 비단을 바치면 속환을 허락해준다더군. 十載居夷縱自豪 10년 동안 오랑캐 땅에 거처하며 萬里離家那禁憶 만리 이역 떠나올 집 어찌 그리움 막을 수 있겠는가. 覊禽出籠魚返淵 잡힌 새도 새장을 떠나고 물고기도 연못으로 돌아가듯이 翠眉啼挽揮手却 고운 아내가 울면서 붙잡아도 손을 저어 뿌리쳤다네. 行近龍灣眼漸明 걸어 의주에 가까워질수록 눈이 점점 환해지니 九連城畔三江碧 구연성 곁으론 삼강이 푸르기만 하더군. 去來人情悲喜異 갈 때 마음 올 때 마음 기쁨과 슬픔이 사뭇 달라 跋履道里山川逖 길을 걷고 또 걸으..
3. 군대에서 인정받으며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하다 一日軍中闘角觝 하루는 진중에서 각저 시합을 하는데 蒙㺚圍立如堵壁 몽달들이 에워싼 것이 담벽인 듯했네. 賈勇跳踉直趨前 내가 용기를 내서 재빨리 곧장 그 앞으로 달려가 隻手連仆三長狄 한 손으로 연이어 장성 3명을 쓰러뜨렸지. 帳裏戎酋撫掌喜 휘장 속 오랑캐 지휘관이 박수치고 좋아하면서 親賜追風大宛足 바람도 따라잡는 대완마를 친히 하사했다네. 巫閭暮獵十丈雪 의무려산에서 저녁에 열길 눈속 사냥을 나갔는데 猛虎猝騰聲霹靂 사나운 호랑이가 갑자기 튀어올라 벼락처럼 울어댔네. 據鞍彎弓一箭殪 안장에 기대 활을 당겨 단 발로 죽이니, 怒血色漬邊草赤 새빨간 피가 근처 풀을 적셔 붉어졌지. 羣胡吐舌氣爲奪 오랑캐 무리들이 혀를 내두르며 기가 꺾여 皆曰夫夫勇無敵 다들 “저 장..
2. 병자호란에 참화에 휩쓸려 포로가 되다 家本歡州世爲吏 “집안은 본래 환주에서 대대로 아전이 되었고 少小名屬歡州籍 어릴 적부터 이름이 환주의 관적에 올랐네. 却憶丙子胡亂時 문득 생각나니 병자호란 때에 年纔十七遭百六 내 나이 겨우 17살에 액운을 겪었네. 京都已陷南漢圍 한양은 이미 함락되었고 남한산성 포위되니 銕騎彌滿搜山谷 철갑 기병 쫙 깔려 산과 골짜기를 뒤져대자 死者枕藉塗草莾 죽은 자들은 포개진 채 수풀에 널려 있고 生者束縛驅向北 산 자들은 포박되어 북쪽으로 쫓겨났네. 累累相隨渡鴨水 줄줄이 꼬리를 물고 압록강을 건너 回頭却望東天哭 머리를 돌려 도리어 동쪽 하늘 바라보며 통곡했네. 歡州遠別舊鄕里 환주를 멀리 떠나니 옛 고향이 되었고 瀋陽來添新部落 심양은 더해 오니 새 부락이 되었지. 饑食黃羊渴駱漿 굶주..
1. 이화암에서 기이한 사연을 지닌 노승을 만나다 梨花古庵一老釋 이화 오랜 암자의 한 노승이 九十五歲猶矍鑠 95세인데도 아직도 눈빛이 또렷했다. 我昔南遊客湖中 내가 옛적에 남쪽으로 충청도를 유람할 적에 偶過此寺曾一識 우연히 이 사찰에 들러 일찍이 한 번 알게 됐다. 黃髮髼鬆剪復生 누런 빛 머리털은 쑥대머리로 잘라도 다시 나고, 碧眼閃睒光如射 푸른 눈은 반짝반짝하여 빛을 쏘는 듯했다. 不念菩薩不燒香 보살에 염불하지도 향불을 사르지 않으며 深居但調龜鶴息 깊은 곳에 거처하며 다만 장생을 위한 귀학의 숨만 골랐다. 有時發喉作商調 이따금 목청을 열어 구슬픈 노래를 지었는데 不似山歌與村曲 「산가(山歌)」와 「촌곡(村曲)」과는 같지 않았다. 大漠陰風吹颯颯 광막한 땅에 음풍이 쏴아 불어대니 滿寺紅葉驚摵摵 절 가득 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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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참영웅 정금남을 기리며 이 시는 명장 정충신을 노래한 것이다. 길마재 싸움으로 이괄 반란을 진압한 사적은 그의 가장 큰 무훈이기 때문에 제목을 「길마제 노래」로 붙인 것이다. 내용 구성 역시 이 길마재 싸움을 중심으로 엮여 있다. 시의 서두에서 먼저 작중 주인공의 성격을 ‘정금남 참영웅[鄭錦南眞英雄]’이라고 규정짓고 들어간다. 그가 과연 어찌하여 ‘참영웅’인가를 증언하는 것이 시의 내용인 셈이다. 서장에서 그 인물 됨됨이를 전체적으로 평가한 다음 “한때 장옥성(張玉城) 밑에 있게 되었다네”라고 생애적 사실을 끌어와서 본장으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길마재의 일전으로 반군을 궤멸하게 되는 과정, 이어 공신들이 회맹(會盟)하기까지 일련의 상황이 시간의 순차에 따라 서술된다. 정충신의 ‘참영웅’으로서의 면..
길마재에서 이괄의 난을 제압한 정충신을 그리며 안현가(鞍峴歌) 김창흡(金昌翕) 鄭錦南眞英雄 금남 정충신(鄭忠信)은 참 영웅이니 骨聳精緊萬人中 뼈가 솟고 정기가 만 사람 중에서 휘 감았으며 氣候分明朱義封 기후가 분명한 건 의봉 주연(朱然)이고 胸襟沈靜王司空 흉금이 잠잠하고 고요한 건 왕사공이네. 亦有春秋癖經緯 또한 세월 동안 역사에 관심이 있어 六韜三略通平生 육도와 삼략을 평생동안에 통하였지. 知遇李鰲城 오성 이항복(李恒福)과 친했으며 一時服事張玉城 한 때에 옥성부원군 장옥성[張晩]을 심복하며 섬겼네. 關西督府載草草 관서의 도독부는 임무가 어설퍼 半繕營壘未鍊兵 반쯤 보루를 보수하고 경영하며 병사들 훈련을 마치지 못했는데 蜂目將軍擧事速 봉목장군 이괄(李适)은 거사를 신속히 하였으니 卒銳久已輕朝廷 마침내 정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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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신출했지만 끝내 은둔했던 곽재우 이 시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용명을 떨친 홍의장군 곽재우를 노래한 것이다. 시인의 발길이 장군의 유적지에 닿아 그의 무훈을 기리고 기품을 추모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전반부에서는 장군의 빛나고 빼어난 형상을 그려낸다. 그런데 그의 행적의 전말을 서술하는 방식보다는 최초 기의(起義)를 해서 신출한 전법으로 승리한 사실을 주로 부각시켜 인상을 선명히 하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전쟁이 끝난 이후 장군의 처신을 다룬다. 그는 공훈을 세웠을 뿐 아니라, 세상을 구제할 재목임에도 은거하는 쪽을 택하였다. 그리 된 사정을 개탄하며 “강물에 낚싯대 드리웠으되 강태공(姜太公)의 때 기다림이 아닌데 / 솔잎 먹은 뜻인들 적송자(赤松子) 따라 신선되려 함이랴[持竿不是太公釣 食松寧慕..
홍의장군 곽재우의 혁혁한 공로와 쓸쓸한 말년 홍의장군가(紅衣將軍歌) 김창흡(金昌翕) 壬辰討倭義士多 임진년 왜구 토벌한 의사가 많지만 紅衣將軍孰能過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를 누가 넘어설 수 있으랴? 將軍初自宜寧起 장군은 초반에 의령에서부터 일어나 請誅逗撓奮天戈 관망만 하는 이들 베라 청하며 하늘의 창을 떨쳤네. 登陣白馬以橫行 진에 올라 흰 말로 비껴 달리니 一望紅衣衆倭驚 한 번 홍의장군 볼 적에 뭇 왜구들 놀라네. 逡廵不敢與交鋒 뒷걸음칠 뿐 감히 교전하지 못하고 及至相薄風火生 서로 싸우게 되면 바람과 불꽃이 생기네. 砲丸雨落雪鬣騰 포환이 비처럼 떨어지나 눈 같은 갈기로 달리니 鐵甲潮退霞袍輕 철갑옷 입은이 썰물처럼 물러나고 노을빛 겉옷 가벼웠지. 將軍跳宕蓋有神 장군은 뛰어다니며 호탕하니 대체로 귀신 들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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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명나라 멸망 시에 표류하던 중국인들 이 시는 명나라가 멸망한 이후 우리 땅으로 표류해왔던 중국인들의 말을 듣고 감회를 표현한 내용이다. 그네들은 배를 타고 일본으로 몰래 무역을 하러 나섰다가 표류한 것이다. 그들의 말인즉 단순한 생업이 아니고 조국의 회복을 위한 자금 마련이 목적이라 한다. 그런데 이조 정부는 이들을 청국으로 강제 송환하는 것이다. 작중의 현재가 곧 그들이 억지로 끌려가는 상황이다. 지금 그들은 “진작 바다에 빠져나 죽을 것을 / 구차히 살아서 되놈 세상에 치욕을 당하게 되다니[蹈海悔不死 苟活恥帝秦]”라고 하며 바다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을 오히려 통한하는 것이다. 『설초집』에서 「표류한 상인들의 노래」은 정미, 즉 1667년(현종 8년, 중국은 강희 6년)에 쓴 것으로 밝혀져..
청나라에 잡혔다가 조선에 표류한 바다 상인들의 이야기 표상행(漂商行) 최승태(崔承太) 可憐漂海商 九十有五人 가련쿠나. 바다에 표류하는 상인 95명. 自言泉漳客 生少居海濱 스스로 말하네. “천주와 장주의 나그네로 어려서부터 바닷가에 살았죠. 每憤中土裂 天步方艱屯 매번 중국의 찢어짐 분개하였고 한 나라의 운명이 곧 고난에 시달렸지요. 販貨充軍儲 徇國不爲貧 재화를 벌어 군인의 창고 채우니 나라에 다한 것이지 가난을 위한 건 아니었죠. 五月辭鄕土 遙向日東垠 5월에 고향에서 인사하고 아득히 일본의 가장자리로 향했어요. 張帆拂烟瘴 捩柁淩波臣 펼쳐진 돛은 장기(瘴氣)를 떨쳐버리고 휘두른 키에 파신을 두렵게 하죠. 層飈激陽侯 驚濤噴嶙峋 겹겹이 쌓인 태풍이 양후를 격동시키니 놀란 파도가 드높이 내뿜어지네. 日月蕩洶湧 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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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비장하고 숭엄하게 김응하 장군을 그리다 17세기 전반 동북아의 정세는 질서의 재편이 진행되고 있었다. 명(明)ㆍ청(淸)의 교체로 결산되는 역사의 과정에서 이 지역의 삼국은 갈등 쟁투를 치열하게 벌인 것이다. 1619년 심하전투는 혈맹관계로 맺어진 조선과 명의 연합군이 누루하치의 후금에 대패하여, 앞으로 다가올 대국을 예견하는 사건이었다. 김응하는 그 싸움에서 비록 패군의 장수였으나 군인으로서 최후가 장렬하였으므로, 적국사람들의 입에서까지 그를 ‘유하장(柳下將)’ 혹은 ‘호남아’라고 칭송했다 한다. 더욱이 후금의 급격한 팽창에 위기의식을 가진 데다 명에 대해 정신적 연대감이 끈끈했던 당시 조선의 처지로서 김장군의 죽음은 비상한 의미를 갖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 그에게 ..
후금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김응하 장군 김장군응하만(金將軍應河輓) 송영구(宋英耈) 皇帝四十七秊春 황제 47년(1619) 늦봄에 薄伐奴酋命將帥 오랑캐를 정벌하라 장수에게 명하셨다. 我國曾荷再造恩 우리나라는 일찍이 ‘재조은(다시 지어준 은혜)’를 져서 二萬兵因檄徵起 2만의 병사가 격문으로 인해 불러 일으켰네. 將軍脫穎爲營將 장군은 재주가 뛰어나 군영의 우두머리가 되었지만 人不知其死所矣 사람들은 그가 죽을 곳을 알지 못했네. 披甲上馬渡江去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 강을 건너 떠나니 戰陣無勇其心愧 적진에서 용기 없음을 마음으로 부끄러워했지. 天兵謂虜在目中 명나라 군사가 말했네. “오랑캐가 눈 안에 있으니 要入虎穴得虎子 요컨대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 새끼를 잡지.” 期會未成綿竹計 모이길 기약했지만 면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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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임란으로 도륙 당한 동래백성의 통곡소리 이 시는 임진왜란 당초에 동래성에서 왜적의 손에 백성들이 도륙당한 상황을 그린 것이다. 시의 작자 이안눌은 선조 40년(1607)에 동래부사로 부임하였다. 4월 15일은 동래성이 적군에 함락된 날이다. 이날 아침은 성안이 울음바다를 이루는데 그 곡성이 역사적 사실을 재현시킨 것이다. 시는 시인과 고을 아전이 대화하는 방식으로 구성되는바, 아전의 구술을 통해 현재의 울음에 연관해서 당시의 참혹한 죽음의 사연들이 낱낱이 폭로된다. 16년 전의 사건을 회고하는 셈이지만 생생한 화폭처럼 펼쳐지고 있다. 시인은 “이야기 끝까지 듣다 못해 /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네[蹙額聽未終 涕泗忽交頤]”라고 중간에 한번 끼어드는 것으로 자기 정서를 간략히 표출할 뿐, 이내 “울어줄..
4월 15일에 동래를 뒤흔든 곡소릴 듣고 4월 15일(四月十五日) 이안눌(李安訥) 四月十五日 平明家家哭 4월 15일 새벽 집집마다 곡소리. 天地變簫瑟 凄風振林木 천지 스산하게 변했고 처량한 바람 숲을 뒤흔드네. 驚怪問老吏 哭聲何慘怛 놀라고 괴이하여 늙은 관리에게 물었네. “통곡소리 어째서 저리 슬픈가? 壬辰海賊至 是日城陷沒 “임진년에 왜적이 쳐들어와 이 날 성이 함락 당했습죠. 惟時宋使君 堅壁守忠節 오직 이때에 송상현(宋象賢) 사또만이 성벽을 굳건히 해서 충절을 지켜 闔境驅入城 同時化爲血 동래 백성이 빨리 성에 들어와 한 날 한시 죽었답니다. 投身積屍底 千百遺一二 쌓인 시체 더미 아래로 파고든 1000명 중 1~2명만 살아 남았으니, 所以逢是日 設奠哭其死 이 날이 되면 설전하고 죽은 이를 곡합니다. 父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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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전란에도 강인하고 고결한 여성의 품성 이 시는 한 여성의 구체적 경험을 통해 임진왜란에 우리 인민들이 겪은 고통을 표현한 것이다. 「풍악기행(楓嶽紀行)」의 시편 속에 들어 있다. 시인은 금강산을 찾아가는 도중 철원의 객점에서 한 늙은 여자를 우연히 만난다. 그로부터 소경력을 듣게 되는데, 그의 이야기가 곧 전편의 내용이다. 서울이 적군에 함락될 때 일가족이 피난을 나섰다가 시어머니와 남편은 왜놈의 손에 살해를 당하고 어린 아들을 빼앗기고 여자 혼자만 남는다. 일본에 의해 저질러진 전쟁이 우리 인민 일반에 얼마나 고난을 끼쳤던가 실감케 하는 하나의 전형적 정황이다. 그런데 주인공 여자는 외톨이의 고달픈 인생이지만 좌절하지 않고 끈덕지게 살아가고 있다. 왜군에 끌려갔던 아이 또한 적지에서 죽지 않고 ..
왜구에 의해 한 가족이 풍비박산나 홀로 남은 할매의 사연 노객부원(老客婦怨) 허균(許筠) 東州城西寒日曛 동주성의 서쪽은 춥고도 해는 지니 寶蓋山高帶夕雲 보개산은 높아 저녁 구름이 띠를 이루었네. 皤然老嫗衣藍縷 머리 세고 남루한 옷 입은 할매는 迎客出屋開柴戶 손님 맞으러 집을 나와 사립문 열며 自言京城老客婦 스스로 말하네. “서울의 접객 할매는 流離破產依客土 흘러다니며 파산해 타향에 의지했죠. 頃者倭奴陷洛陽 최근에 왜구가 서울을 함락해 提携一子隨姑郞 한 자식 데리고 시어머니와 남편 따랐어라. 重硏百舍竄窮谷 백 리마다 한 번씩 쉬며 물집이 겹으로 생기며 곤궁한 골짜기에 숨어 夜出求食晝潛伏 밤엔 나가 먹을 것 찾고 낮엔 숨었죠. 姑老得病郞負行 시어머니 병 들자 남편이 업고 다녔고 蹠穿峥山不遑息 가파른 산을 밟..
해설. 코는 베였지만 살아남은 사람의 증언을 기록하다 임진왜란의 잔혹상을 민중의 피해에 초점을 맞춰서 클로즈업시킨 작품으로 앞의 「부시행(負尸行)」과 나란히 「무비자(無鼻者)」를 들어볼 수 있다. 당시 왜군은 전과를 허위로 과장하기 위해 무고한 백성들의 코를 마구 잘라갔다는 것이다. 전래(傳來)의 일반적인 방식은 귀를 가지고 전과를 계산했는데 귀 대신 코였던 셈이다. 그때 잘라갔던 코를 모아 만든 무덤이 교토시 히가시야마구 차야마치[京都市 東山区 茶屋町]에 조선인이총(朝鮮人耳塚)이란 이름으로 남아 있다. 시인은 왜군의 칼날이 번득인 마당에서 군인이 아닌 민간인들의 얼굴에 코가 무수히 달아나는 사실을 고발하여, 하늘도 응당 벌을 내려서 괴수는 천형을 받을 터요, 졸개들까지 모조리 도륙이 나 독수리밥이 되고..
코를 벤 왜구들아 하늘이 너희 가만 둘 것 같으냐 무비자(無鼻者) 임환(林懽) 無鼻者誰家子 코가 없는 이는 뉘집 자식인가? 掩面坐泣荒山隅 얼굴 가린 채 황량한 산 모퉁이에서 앉아 우네. 賊刀尖利揮生風 왜구의 칼은 날카롭고 예리해 휘두르면 바람이 생기니 一割二割千百傷 한두 번 베니 100~1000명이 다치네. 吁嗟湖甸淪毒手 아! 호서(湖西)와 경기(京畿)가 잔혹한 솜씨에 어지럽혀져 孑遺半是爲巫虺 혈혈단신의 남겨진 이 반이나 코 없는 무당과 뱀 되네. 皇矣上帝賦下民 하늘의 하늘님이 백성에게 부여하심에 耳目口鼻期全形 이목구비 온전한 형체를 기약하셨는데 胡爲割剝無辜人 어찌 무고한 사람을 베고 쪼아내어 忍逞淫刑發腥刑 차마 음탕한 형벌을 펴내고 비린 형벌을 발하는 것인가? 刑書鼻典雖古有 형벌 서적에 코 베는 전범이..
해설. 참으로 지극한 말이기에 수사도 필요치 않았다 임진왜란에서 민중이 체감한 고통을 서사적 화폭에 담은 명편으로 다음에 실려 있는 허균의 「노객부원(老客婦怨)」과 이안눌의 「사월십오일(四月十五日)」을 손꼽는다. 후일에 상흔(傷痕)을 회상하는 트라우마적 성격을 갖는 것이다. 여기 새로 발굴해서 소개하는 임환의 「부시행(負尸行)」과 「무비자(無鼻者)」는 시인 자신이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웠거니와, 현재 시점에서 전쟁의 실상을 매우 극적으로 표출한 작품이다. 「부시행(負尸行)」은 삶의 터전인 마을을 잿더미로 만들고 민간인을 마구 학살한 참상을 고발하는 내용이다. “그네들 하는 말 들어보니 적군을 만나 목숨을 잃었다고 누군 아비 잃고, 누군 어미 잃고, 누구는 형제를 잃었다는 구나[皆言逢賊殞身命 或父或母或兄..
전쟁으로 죽은 가족의 시체를 등에 매고 가다 부시행(負尸行) 임환(林懽) 男丁傴僂負何物 남정네들 등굽은 채 어떤 물건을 짊어진 건가? 小屍在背大屍舁 작은 시신은 등에 있고 큰 시신은 마주 들었네. 皆言逢賊殞身命 모두 말하네. “적을 만나 몸의 운명이 떨어졌으니 或父或母或兄弟 혹은 아비이고 혹은 어미이며 혹은 형제인데 家爲灰燼殯無所 집은 잿더미가 되어 빈소 마련할 곳 없으니 落日轉向荒山路 해질녘 황량한 산 길 향해 가지요.” 紙錢鳴風哭一聲 지전이 바람에 우는데 통곡과 한 소리이니 天地有情應亦苦 천지에 정이 있다면 응당 또한 괴로워하리. 『習靜遺稿』 인용 목차 해설